한화그룹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 집단. 2020년 기준으로 재계서열 6위다.
2. 역사
1952년 조선화약공판 출신이던 현암 김종희가 부산에서 '''한'''국'''화'''약(韓國火藥) 주식회사로 창립한 게 그룹의 뿌리이다. 1955년 귀속재산 조선유지 인천공장을 불하받아 1959년 화약류 국산화를 달성했고, 1964년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해 사업 확장의 기틀을 만들고 1965년 한국화성공업, 1966년 태평물산을 각각 세운 후 비서실을 설치했고, 1968년 삼호그룹으로부터 제일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69년 미국 유니온오일과 합작해 '경인에너지'를 세워 대한석유공사와 호남정유에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다. 1973년 호텔/관광개발업체 태평개발을 세우고 1976년에 서울프라자호텔을 열어 서비스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위와 같은 성장 와중에도 1977년 익산역의 흑역사를 일으키기도 했으나, 그룹은 여전히 성장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1981년 김종희 회장의 사망으로 장남 김승연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1985년 한양그룹으로부터 한양유통을, 1986년 정아레저타운 등 구 명성그룹 관광계열사들을 각각 인수해 재계순위 10위권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1990년 'PRO 2000' 경영혁신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뒤 이듬해에 국내 기업으로서 최초로 환경경영 'ECO-2000' 운동을 벌였다. 1992년 빙그레가 분가하고 1993년 한국화약그룹에서 한화그룹으로 명칭을 변경한 뒤 1996년 제일화재가 분가했다. 반면 모기업 (주)한화는 1995~1996년까지 골든벨상사, 덕산토건, 한화전자통신, 한화기계 등을 합병해 종합사업군으로 개편했고, 소그룹제도 도입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후 폐지됐다.
원래 이름은 당연히 한국화약 주식회사였고 그룹의 풀네임도 한국화약그룹이었지만[4] 하필 본사의 영문 이름이 Korea Explosives인지라 그룹명은 Korea Explosive Group이 되어 버렸고, 고위관계자가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측에서 이걸 '남조선 폭파집단'(!!!)이라는 지극히 테러 단체 같은 이름으로 번역하는 바람에 그룹 이름을 한화로 바꿔야 했다. (그 근거로 자주 회자되는 것이 매일경제 1994년 4월 7일 신문, 34면에 해당 기사가 실려 있다.) 이후 중화권에서는 화약의 火 자가 아닌 빛날 화(華) 자를 써서 韓華로 표기하고 있다.
3. 참모 조직
그룹 참모조직의 뿌리는 셋으로 나뉜다. 1966년 비서실이 먼저 신설되어 1973년 경영관리실, 1974년 기획조사실이 차례차례 생겼고, 1980년에 기획조사실이 '종합기획실'로 변경되었다. 1990년 세 조직이 합쳐져 '경영기획실'이 됐다가 1994년에 '비서실'로 변경했으나, 1998년에 비서실을 폐지하고 '구조조정위원회'를 신설했다. 이후 2000년 '구조조정본부'로 개편됐다가 2006년 조직개편에 따라 '경영기획실'로 변경했다가 2017년에 폐지됐다.
4. 사옥
저 3개의 사옥 이외에도 세종대로, 여의도 증권가등 곳곳에 꽤 많은 사옥들을 가지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집무실이 위치한 가장 중심적인 사옥인 장교동 사옥은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
동여의도 남쪽에 위치한 한화63시티 사옥엔 한화생명이 입주해 있다. 이는 과거 신동아그룹의 계열사였던 시절 대한생명이 63빌딩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신동아그룹이 해체되고 한화가 매물로 나온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함께 굴러들어왔다. 이후 대한생명은 한화생명으로 개명을 하였고, 63빌딩도 한화63시티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2015년엔 63빌딩에 'Galleria DUTY FREE' 라는 이름의 면세점도 들어왔다. 동여의도의 북쪽에는 한화투자증권, 한화손해보험 통합 사옥이 들어와있다. 그리고 한화금융플라자로 불리우는 세종대로 사옥엔 한화생명, 한화투자증권, 한화손해보험의 일부 부서들이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6]
장교동 사옥은 건축연한이 은근 오래되어(1987년 10월 완공) 노후화 문제나 협소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승연 회장은 3세 경영 승계전에 사옥을 이전 하거나 or 현재 자리에 재건축하는 방안들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최종적으로는 사옥 외벽을 미디어월이 가능한 전면 유리 외벽 형태의 태양광 건축물로 리모델링하고 그 과정에서 내부도 함께 리모델링하여 사실상 새 건물로 탈바꿈시키는 방안이 선정되었다. 이후 2016년 4월 공사가 착공하여 2019년 11월 완공되었다.## 협소 문제는 일단 보유 중인 사옥들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극복 가능하기에 넘어간듯 하다.
5. 특징
그룹명에 대해 말하자면, 한화는 韓國火藥을 줄인 것이지만 한자는 쓰지 않는다.韓華라는 표기가 있긴 하지만 이는 중국 진출을 위한 음역일 뿐이다. 한편, 한화그룹 중국어 홈페이지.를 보면 韓華의 간화자인 韩华로 나온다. 물론 태생이 태생이니만큼 韓火도 쓰이기는 한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韓華(韩华 포함)는 중화권 웹 페이지들이, 韓火는 일본어 웹 페이지들이 주로 검색된다. 한편 한국 화교를 줄여 한화(韓華)라고 부른다지만, 화교와는 상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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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으로 변경한 이유는, 1990년 중국에 사업차 간 간부들 앞에 중국 환영단이 나와서 반기는데, 환영한다는 플래카드에 그룹 영문 명칭이었던 '''Korea Explosives Group'''을 중국어로 번역 후 다시 한국어로 옮긴 듯한 '''"환영 남조선 폭파집단!"'''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출처1출처2[7] 실제로 당시 한국화약그룹의 영문 명칭을 보고 서구권에서는 이게 웬 테러집단? 이라고 해석한 것이 그룹 명칭 변경의 이유라고 한다. 밑에 소개하는 그룹 로고 중 가운데 마름모꼴 안에 '''K'''자가 보이는 로고[8] 가 바로 Korea Explosives Group의 두문자이다.
구타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김승연 회장의 이미지에 더해, 대기업답지 않게 사훈에 "신용과 '''의리'''"가 있다는 사실도 주목을 받으면서 왠지 '''조폭''' 기믹이 덧씌워진 느낌. 사회 공헌[9] 도 많이 하는 기업인데 오너의 화통한 성격 탓에 어째…이 성격의 예를 보여주는 사례가 서울 프라자 호텔 내부 공사를 할 때인데, 3개월간 호텔을 닫아야 하자 김승연 회장은 쿨하게 '''직원 전원에게 공사가 끝날 때까지 전부 유급휴가'''를 줬다.
5.1. 오너 일가
현암 김종희 창업주는 미군들이 붙여준 별명이 ''''다이너마이트 김'''' 일 정도로 화끈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특히 경기공립상업학교 재학 중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학생을 구타하자 김종희가 나서서 그 일본인 학생을 구타했고 김종희는 이 일로 퇴학을 당했다.
김종희 창업주가 후계자를 정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1981년 58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아직 20대였던 김승연-김호연 형제 간에 분쟁이 폭발하였다. 일단 명분상의 우위를 가진 장남 김승연이 불과 29세의 나이로 회장에 취임하였으나, 형제 간의 재산분쟁은 10여 년간 계속되었고 결국 1993년 차남 김호연이 그룹 계열사 중의 하나인 식품기업 빙그레를 가지고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종결되었다.[10] 딸 김영혜도 1996년 제일화재를 들고 분가했으나 2008년 제일화재가 그룹으로 돌아왔고, 대신 한익스프레스를 인수했다.
김승연은 슬하에 3남을 두고 있는데, 장남은 현재 한화큐셀 전무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3세 경영권 승계자로 사실상 점쳐지는 분위기이다. 사건사고를 하나씩 달고 있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사고를 친 적이 없어 평이 매우 좋다. 둘째 아들 김동원은 사고 치고 다니다 수감된 적도 있고, 셋째 아들은 승마 선수로 성공하며 잘 사는 듯 했으나 계속 되는 술집 난동으로 비난과 질타를 받고 있다. 최근엔 변호사 폭행으로 한화 오너 일가의 조폭 이미지를 강화하는 중이다.
셋째 김동선의 2017년초 술집 난동 이후에 둘째 김동원은 한화생명을 비롯한 금융 계열사에서 재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018년 생각치도 않은 깜짝 실적으로 잠시 경영 능력이 호평을 받기도 했다.
김호연은 백범 김구의 손녀와 결혼한 인연으로 김구기념재단의 이사장을 맡기도 했으며, 18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가문의 지역연고인 충남 천안(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이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선 다시 낙선하였다.
5.2. 역대 임원
- 회장
- 김종희 (1973~1981)
- 김승연 (1981~ )
- 성낙정 (직무대행, 1994)[11]
- 총괄부회장
- 성낙정 (1995~1997)
- 부회장
- 화약/통신/무역 소그룹장
- 이진우 (1995)
- 박원배 (1995~1998)
- 화학/에너지 소그룹장
- 박원배 (1995~1998)
- 기계 소그룹장
- 박용식 (1995~1996)
- 박원배 (1997~1998)
- 유통/레저 소그룹장
- 남욱 (1995~1998)
- 금융 소그룹장
- 박종석 (1995~1998)
- 경영관리실장
- 박영종 (1973~1975)
- 오재덕 (1976~1982)
- 이진우 (1982~1984)
- 이종학 (1984~1988)
- 박두용 (1988~1990)
- 종합기획실장
- 조원영 (1981~1983)
- 강상렬 (1983~1986)
- 이진우 (1986~1988)
- 이종학 (1988~1990)
- 경영기획실장
- 박두용 (1990~1994)
- 노경섭 (1994)
- 금춘수 (2006~2011/2014~2017)
- 최금암 (2011~2014)
- 비서실 회장
- 박원배 (1997~1998)
- 비서실장
- 노경섭 (1994~1996)
- 옥종석 (1996~1998)
- 구조조정위원장
- 박종석 (1998~2000)
- 구조조정본부장
- 김연배 (2000~2002)
- 최상순 (2002~2004)
- 최웅진 (2004~2006)
6. 기업정신
6.1. 기업이념
'''신용과 의리'''
6.2. 역대 사훈
- 1952~1959
'''신념, 용기, 봉사'''
- 1960~1973
'''회사발전을 위해 과감히 일하자'''
'''책임을 느끼고 책임질 줄 알자'''
'''고객에게 친절하고 예의를 지키자'''
'''물자를 아껴쓰고 낭비를 없애자'''
'''청결과 정돈에 힘쓰자'''
- 1974~1975
'''의욕을 갖고 일하자'''
'''책임을 지고 일하자'''
'''회사발전을 위해 노력하자'''
- 1976~1992
'''적극적으로 일하자'''
'''합리적으로 일하자'''
'''국가사회에 기여하자'''
- 1993~2006
'''신의, 분수, 최선'''
- 2001~2006
'''인재존중, 혁신추구'''
- 2007~2011
'''신뢰, 존경, 혁신'''
- 2011~
'''도전, 헌신, 정도'''
6.3. 사가
- 구 버전: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김성태가 맡았으며, 1980년에 제정되었다.
- 신 버전
7. 로고
2006년 11월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에게 의뢰해 CI를 교체하였다. 1990년대 재벌 그룹들 사이에서 로고 변경이 유행할 때 1994년 10월 한 차례 변경(위의 H 모양 로고)하였으나 12년만에 다시 교체한 것. 다른 그룹 로고들이 보수적으로 보일 정도로 튄다. 그룹 상징색은 오렌지색으로, 화약에 기인한 것 같다.
1953년 창립 때부터 쓰인 톱니바퀴 모양 로고의 상징을 말하자면, 톱니바퀴는 기간산업을 토대로 한 기업경영에의 의지를 나타내며, 아래 원 모양은 지구를 뜻한다. 또 구 위의 횃불은 평화와 미래의 길잡이로서 온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화약의 의지를 상징했다. 양 옆 망치는 장인정신을 지니고 근면, 성실의 자세로 일하는 근로자를 나타낸다. 또 하단 KEC는 한국화약의 영문 약자였다.
1964년부터 개정된 마름모 로고의 상징을 말하자면, 마크 중앙의 'K'자는 한국화약(주)와 한국화약그룹의 이미지를 통합하고, 입체적으로 구성된 다이아몬드는 상향으로 경사각을 이루어 상승기세를 반영하고 있으며, 마름모와 4면의 모서리는 세계 어디라도 진출한다는 적극적 기상을 표상한다.
왼쪽에 소개된 1994년판 로고의 상징을 말하자면, 우주를 상징하는 주황색 타원 위에 그룹 이니셜을 첨단지향의 역동적 형태로 각인하여 국제적 초우량기업에의 도전의지를 표상했다. 철학적 의미로는 모든 생명의 근본인 우주 속에 그룹의 생성과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요소가 조화되어 인류문명의 진화, 발전에 공헌하며 현재의 장과 미래의 장을 연결하는 그룹 다이나미즘을 담았다.
2007년부터 쓰고 있는 '트라이서클' 로고의 상징을 말하자면, 로고를 이루는 3개의 원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우주 속으로 무한 진화, 팽창, 성장해 나가는 걸 의미하며, 고객과 사회, 인류가 서로 힘을 합하며 발전해 세계 속의 그룹으로 표상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8. 역대 슬로건
- 미래창조 세계도전 (1995~1996)
- Dreams are to same: 같은 꿈을 꿉니다. 한화 (2003)
- 당신의 꿈을 믿습니다 (2004)
- 늘~가까이! 한화 (2005)
- Your Dreamworld (2007~2009)
- 내일을 키우는 에너지 (2011~2015)
- 나는 불꽃이다 (2015~2018)
- 지속가능한 내일 (2019~ )
9. 사업 분야
화학/제조/건설이 주력 분야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매출도 그렇고 순이익도 그렇고 한화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금융 계열사가 제조/건설보다 더 높다.'''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한화에서 가장 자산가치와 매출액이 높은 기업은 한화 화약부문도, 한화건설도 아닌 '''한화생명'''[16] 이었다. 다만 삼성-한화 빅딜을 계기로 제조업 계열사를 대거 인수하면서 15년에는 제조업이 앞지를 것으로 예상되었고 2017년을 기점으로 한화토탈의 영업이익이 한화생명을 추월했다. 최근까지는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거의 절반을 한화토탈 혼자서 책임질 만큼 비중이 컸다.
현재 군수 분야에서는 주로 화약, 포탄, 로켓 추진체 등을 생산 중이며, 항공기용 유압부품 등도 생산 중. 단순 로켓을 넘어 미사일, 집속탄(!) 전체를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기도 하다.[17] 새천년을 앞둔 1999년에는 밀레니엄 특수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폭죽의 수요가 늘어난 바람에 반짝 호황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나름대로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예술 폭죽 제작력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듯. 하지만 현재는 단가 등의 이유로 폭죽을 생산하지 않고 외국(주로 중국, 일부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며, 불꽃놀이를 연출하는 연화연출팀[18] 만 유지하고 있다. 북핵 위협을 구실로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여의도 앞에서 하고 있는 서울세계불꽃축제를 후원하는 기업도 바로 한화. 그리고 '''불꽃놀이 발사 장소가 한화그룹 소유 건물인[19] 63빌딩 앞'''이라는 점도 흠좀무.
2000년대 후반부터 그룹의 제조업 부문을 태양광 발전 산업 수직계열화 체제로 전환했는데, 중국업체들의 난립과 미국의 반덤핑 과세 때문에 태양광산업이 시들시들해져서 제대로 피를 보고 있다. 어차피 태양광발전은 시대적인 숙명이자 과제라서 결국은 빛을 보겠지만, 문제는 그 시기가 너무나도 일렀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건 그룹 차원에서 사활을 걸고 따낸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 신도시 건설사업은 총수인 김승연 회장의 구형이 집행유예로 끝나서 한화건설 같은 비화학계열 회사 관계인으로는 활동이 가능하고, 공사 지역이 이라크 지역 내에서 주요 내전과 동떨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다만 이후 100여 km 떨어진 라마디가 함락되며 최전방이 된 바그다드가 건설현장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였지만 미국의 항공지원을 등에 업은 이라크군의 반격으로 바그다드 목전까지 치고 내려왔다가 후퇴했고 현재는 망하기 직전이다.
2005년에 63빌딩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천억 원대에 이르는 대형 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열사인 한화건설이 입찰에 탈락'''해서 말이 많았다.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이후로 단단히 찍혔는지, 아래 총수 일가의 내력에서도 볼 수 있지만 경제민주화 여론이 조성될 때마다 검찰에게 얻어맞고 있다(…).
2014년 계열 전체[20] 매출액은 49.2조 원, 자산은 132.8조 원(㈜한화의 연결조정 감안)이다. 금융부문은 자산비중 70.8%(103.3조 원), 매출 비중 37.5%(20.2조 원)을 차지하고 있으며, 비금융부문은 자산비중 29.2%, 매출비중 62.5%로 파악된다. 그룹 전체 영업이익은 9,600억.
비금융 주력사업은 석유화학 산업으로 자산비중 8.9%, 매출비중 24.7%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화 무역사업이 포함된 무역/도소매부문이 2.7%, 12.2%의 비중으로 뒤를 잇고 있다. 그 외에는 화약(자산 비중 6.3%, 매출비중 7.8%), 건설(4.4%, 6.6%), 태양광(2.9%, 4.3%)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21]
사회분야에 문외한 일반인도 한화하면 떠올릴 정도로 가장 유명한 계열사인 '''한화 이글스''' 프로야구단도 운영하고 있다.
10. 그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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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출처. 상기 자료와 홈페이지의 계열사 소개를 참고하여 작성한다. 2014년 삼성-한화 빅딜을 반영하기 이전 기준으로, 42개의 비금융 기업(상장 4개, 외감 29개, 일반4개)과 10개의 금융기업(상장 3개, 외감 4개, 일반 3개)을 소속으로 두고 있다.[22]
금융 계열사의 경우 금산분리법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를 세우기 애매해 한화그룹 계열사로 되어있다. 대외적으로는 '''한화금융네트워크'''라는 브랜드를 쓰고 있다.
한화그룹 자체에서 설립하지 않은 회사도 많은 편이다. 특히 레저부문은 명성그룹이 해체될 때 넘겨받았고, 한화탈레스, 한화테크윈, 한화토탈 등은 M&A를 통해 인수한 기업들이다. 특히 삼성이 비주력부문인 화학 부문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매각한 화학 관련 계열사의 상당수를 사들여, 화학 부문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발한 인수합병으로 한화그룹은 덩치를 크게 키워 오늘날의 그룹집단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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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말 기준 지배구조 출처
10.1. 제조/건설
- 한화: 사업 지주회사이자 그룹의 모태다. 화약/방산, 무역, 기계의 3가지 사업 부문을 영위하고 있다. 2014년 별도 기준 5조의 매출과 1,600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사업보고서를 보면 '화약제조업'이 1조 2천억, '기계제조업'이 1,600억, '도소매업'이 3조 6천억을 올렸다고 나와있다. 화약제조업이 화약/방산을 더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결기준, 즉 한화가 종속회사로 두고 있는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을 모두 합한 결과는 14년 37조 4천억의 매출과 5,158억의 영업이익이다.[23] 상술한 그룹 전체의 실적보다 낮은 것은 한화의 연결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일부 계열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24]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구 삼성테크윈. 방위산업체이다. 본사를 2018년 4월 창원으로 이전 예정이다. 1977년, 항공기 엔진 사업 및 필름 카메라 사업을 토대로 설립되어 시큐리티, 에너지 장비, 산업용 장비, 방위산업 분야의 사업을 영위했었다. 2017년과 2018년에 차례로 분사한 이래로 항공우주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2018년 4월 한화테크윈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변경하였다. 기존의 명칭은 시큐리티 사업을 분할해 신설한 자회사가 이어받는다.
- 한화디펜스: 2017년 한화테크윈에서 분리돼 한화지상방산으로 출범했으며, 2019년 (구)한화디펜스를 통합했다.
- 한화시스템: 2018년, 방위산업체를 담당하는 한화시스템과 그룹사의 IT를 담당하는 한화S&C가 합병하여 한화시스템이 출범했다. 현재 한화시스템/시스템과 한화시스템/ICT 두가지 부문을 영위하고 있다.
- 한화시스템/시스템 구 삼성탈레스. 마찬가지로 방위산업체이다. 프랑스 탈레스 社와 합작이었고 지분율은 탈레스 50%, 한화테크윈 50%였었다. 이는 구 삼성탈레스 시절의 5:5 지분율을 이어받은 것. 구축함 전투지휘체계, 열영상 감시장비, 탐지추적장치 등 각종 군사장비를 제조하며 특히 레이더·전자광학, 전투체계, 지휘통제·통신 등 정밀전자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독보적인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14년 6,700억의 매출과 260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한화그룹에 인수되며 사명을 한화탈레스로 바꿨으며, 이후 탈레스 측이 합작을 포기하고 한화 측에 지분 전량을 매도하기로 함에 따라 한화그룹이 탈레스의 잔여지분 50%를 모두 인수했다. 이로서 더 이상 합작회사가 아니게 되어 탈레스의 명칭을 쓰지 못하자 한화시스템으로 사명을 바꿨다.
- 한화시스템/ICT: 그룹 내 IT를 담당하고 있다. 1997년 (주)한화의 정보부문으로 발족 한 뒤, 규모가 커짐에 따라 2001년 한화S&C로 분사했다. 이후 한화그룹의 ICT를 담당했으며, 2018년 한화시스템과 합병하게 되었다.
- 한화테크윈: 한화테크윈 영상보안부문이 2018년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 한화정밀기계: 한화테크윈 산업용장비부문이 2017년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이어 로봇사업도 편입되었다.
- 한화파워시스템: 한화테크윈 에너지장비사업본부가 2017년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 한화솔루션: 케미칼, 큐셀, 첨단소재 3개 부문으로 구성된 종합화학회사로, 케미칼부문은 1965년 설립 이후 국내 PVC(폴리염화비닐),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 LLDPE(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 CA(염소·가성소다)를 국내 최초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지난 50여 년 동안 각종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초화학제품을 생산해 온 종합 화학 회사이다. 자세한 사업 내용은 여기를 참고. 2015년 9월 기준으로 한화첨단소재, 한화갤러리아, 한화화인케미칼 등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태양광 사업도 이 회사에서 담당 중. 14년 연결 기준 8조의 매출과 1,400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 한화컴파운드: 자동차나 휴대폰 부품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구 삼진화학-한화폴리드리머-한화넥스트. 2015년 (구)한화컴파운드와 합병해 현재 형태로 바뀌었다.
- 한화케미칼오버시즈홀딩스: 한화케미칼의 중동 합작사들을 총괄하는 지주사이다.
- 한화종합화학: 구 삼성종합화학.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의 원료인 PTA(고순도 테레프탈산)를 생산하여 섬유원료의 국산화를 이뤘다. 울산 및 대산 사업장에 국내 최대인 연산 200만 톤 규모의 PTA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14년 1조의 매출과 47억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 한화토탈: 구 삼성토탈. 프랑스 토탈 社와 합작으로 설립됐다. 지분율은 역시 5 : 5.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부터 SM(스틸렌모너머)·PX(파라자일렌) 등 화성 제품, PE(폴리에틸렌)·PP(폴리프로필렌) 등 생활 속에 다양한 소재의 원료로 쓰이는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14년 8조 8천억의 매출과 1,700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런데... 15년에 엄청난 실적을 거두면서 한화토탈 인수가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영업이익을 보면 3분기까지 누적 5,700억으로 14년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고, 한화그룹의 주요 계열사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수준.
- 한화종합화학글로벌: 한화종합화학의 해외사업 투자 자회사이다.
- 한화글로벌에셋: 2019년에 기존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법인이 사업부를 분사시킨 후 출범한 지주회사이다.
- 한화솔라홀딩스: 한화큐셀과 한화솔라홀딩스의 합병법인. 구 한화큐셀은 그룹 차원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밀어주고 있는 태양광 발전 산업을 영위하는 계열사 중 하나. 태양광 발전의 미드스트림에 해당하는 잉곳·웨이퍼·셀·모듈 생산부터 개인 주택·상업 시설·대형 발전소에 이르는 다운스트림 분야의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한화케미칼 태양광 부문이 15년 4조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한 것과 달리 14년 2,500억에 불과하다. 영업이익은 180억 손실.
- 한반도태양광
- 영암테크노태양광
- 영암해오름태양광
- 하이패스태양광
- 해사랑태양광
- 해돋이태양광
- 해넘이태양광
- 석문호수상태양광
- 해누리태양광
- 해나라태양광
- 해맞이태양광발전
- 한마을태양광
- 한으뜸태양광
- 아침태양광
- 수리태양광
- 라온태양광
- 마루태양광
- 소수태양광
- 미르태양광
- 아란태양광
- 워터솔라
- 드림라인쏠라파워4호
- 드림라인쏠라파워5호
- 티지솔라넷
- 한화솔라파워글로벌
- 여천NCC: 대림산업과 합작으로 세워진 기업이다. 지분율은 정확히 5 : 5. 일단 한화케미칼의 자회사로 분류하지만 연결대상 기업은 아니다. 즉, 실적을 합산하여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는다. 연간 에틸렌 191만 톤, 프로필렌 97만 톤과 벤젠, 톨루엔, 크실렌, 스티렌모노머, 부타디엔 등 석유화학 공급 원료 232만 톤을 생산하고 있다. 14년 7조 1천억의 매출과 1,300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 한화에너지: 전기 373MW, 스팀 1,950톤 규모의 설비용량을 갖춘 최신 열병합 발전소를 운영하며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군산 2국가산업단지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양질의 전기와 열을 공급하고 있다. 14년 매출 4,600억에 영업이익 1,700억을 기록했다.
- 대산그린에너지
- SIT테크
- 에스아이티
- 천장산발전
- 한화건설: 15년 도급순위 기준 11위의 종합 건설사이다. 14년 3조 3천억의 매출과 4,100억(!)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5년 3분기 누적 기준으로도 2,800억에 달하는 손실을 보았었다. 15년 3분기 부채비율도 273%로 상당히 높은 편. 그러나 2016년 부터 영업이익이 개선되어 2017년을 빼고 2500억 ~ 1200억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기사참조 주거 브랜드로 포레나가 있다.
- 양주에코텍
- 에코이앤오: 김포 등지 하수처리장 운영사이다.
- 레이크파크에이치
- 한화에스테이트: 구 에스엔에스에이스. 시설관리 등 부동산서비스 전담 업체이다.
- 한화에스테이트서비스: 주거시설 관리 자회사이다.
- 한화도시개발: 한화도시개발은 지난 2001년부터 대덕테크노밸리 조성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민간주도 첨단 복합산업단지개발의 선두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화도시개발이 조성한 주요 산업단지는 여기를 참고. 한화케미칼이 10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 경기용인테크노밸리
- 김해테크노밸리
- 서산테크노밸리
- 아산테크노밸리
- 안성테크노밸리
- 제이용인테크노밸리
- 에이치밸리: 구 경기화성바이오밸리.
- 농업회사법인 그린투모로우
- 서울역북부역세권개발
- 에이치피앤디
10.2. 금융[25]
- 한화생명: 옛 명칭은 대한생명. 1946년에 설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 역사를 지닌 생명보험사이다. 2016년 자산 100조원을 돌파했다.#. 14년 매출 14조 8천억에 영업이익이 4,800억에 달하는 거대 보험사이자 한화의 주력 계열사이다. 2018년 4월 16일 메인 스폰을 하던 락스타이거즈를 인수해 Hanwha Life Esports 약칭 HLE로 재창단했다. 젊은 층에 인지도 있는 롤을 노려 추후에 고객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 한화라이프에셋: 2005년 대한생명의 텔레마케팅 부문이 분사된 업체이다.
- 한화손해사정: 2005년 대한생명의 보험심사부문이 분사된 업체이다.
- 한화자산운용
- 한화금융에셋: 한화생명의 보험대리점 자회사이다.
- 한화손해보험: 옛 명칭은 신동아화재. 1946년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의 손해보험사로서 현재 원수보험료 4조 원, 총 자산 10조 원대 규모를 갖춘 중견 보험사로 성장했다. 장기, 자동차, 일반보험 등 다양한 상품 포트폴리오 갖추고 있다. 14년 5조 3천억의 매출과 277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 캐롯손해보험: SK텔레콤, 현대자동차, 알토스벤처스 등과 합자한 국내 최초 온라인 자동차보험사이다.
- 한화투자증권: 2014년 매출 9,700억에 6조 7천억의 자산을 굴리고 있는 중견 증권사이다.
- 데이터애널리틱스랩: 빅데이터 분석 자회사이다.
- 한화인베스트먼트
- 한화저축은행
10.3. 서비스/레저
- 한화호텔앤드리조트: 1979년 명성그룹 주도 하에 국내 최초의 콘도미니엄으로 설립됐으며, 1983년 명성그룹 붕괴 후 법정관리를 받다가 1986년 한화에 인수되었다. 410개의 객실을 갖춘 럭셔리 부티크 호텔인 더 플라자를 비롯, 12개 직영 리조트와 4,800실 이상의 객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콘도미니엄 체인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 또한 활발해 일본 나가사키의 오션팰리스 골프클럽&리조트, 사이판 월드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주력 산업으로 리조트, 호텔, 레저, 푸드 서비스 등을 운영한다. 14년 매출 1조에 110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참고로 (주)한화의 종속기업이다.
- 여수씨월드: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 개발 및 운영법인이다.
- 일산씨월드: 한화 아쿠아플라넷 일산 개발 및 운영법인이다.
- 플라자디앤씨: 호텔사업 자회사이다.
- 한화역사: 서울역, 청량리역과 같은 민자역사를 운영하고 있다. 청량리역사는 애초에 롯데에 임대했고[26] , 서울역사 신관은 '갤러리아 서울역점'으로 운영하다가 서울역 신축 후 '갤러리아 콩코스'로 한동안 명맥을 이어갔으나, 인근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본점과의 경쟁에서 밀렸고[27] , 역세권 백화점이 흥한 일본과 달리 소위 '뜨내기' 고객이 많은 서울역의 특성상 적자만 기록하다 결국 '롯데 아울렛'에 자리를 넘겨줬다.[28] 그동안 보유하던 구 역사 점유권마저 국가에 넘겼다.
- 한화갤러리아: 갤러리아백화점을 운영하는 곳. 비록 신세계나 현대백화점이나 롯데에는 밀리지만 그래도 메이저 백화점으로써 인정받고있다.
- 한화에스테이트
- 한화 63시티: 63빌딩의 위락시설을 운영,관리하는 곳. 업무시설은 한화생명의 본사라서 거기서 관리한다.
- 한화 이글스: KBO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이다. 각 계열사들과 김승연 회장이 나눠서 지분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한화의 인지도를 굉장히 크게 높혀주는 역할을 하고있는데, 일례로 각 기업마다 떠오르는 사업을 조사했는데 한화그룹은 한화생명을 제치고 한화 이글스가 선정 되었었다.
10.4. 매각/해산
- 검단에코텍: 2013년 지분매각.
- 경인해운: 1997년 편입된 후 2000년 청산.
- 경향신문사: 1998년 사원주주들에게 매각.
- 고려씨스템산업: 김종희 창업주의 사위 이동훈이 총괄했던 컴퓨터 제조업체로, 1991년 파산.
- 골든벨상사: 1995년 (주)한화에 합병.
- 공영화학공업: 1972년 한국화성공업에 합병.
- 군장열병합발전: 2012년 여수열병합발전에 합병.
- 군포에코텍: 2014년 지분매각.
- 김포요업: 1980년 태평양건설에 합병.
- 당진테크노폴리스: 2011년 청산 후 '예스인베스트'로 변경했으나, 2015년 폐업.
- 대덕테크노밸리: 2011년 청산 후 2014년 폐업.
- 대한플라스틱공업: 1972년 한국화성공업에 합병.
- 덕산토건: 구 중앙건영. 1988년 태평양건설 전직 임직원들이 인수해 운영했다가 1996년 (주)한화에 인수합병.
- 동양화학공업: 1972년 한국화성공업에 합병.
- 동일석유: 2006년 계열분리.
- 동주가스: 1999년 동일석유에 합병.
- (신)드림파마: 2015년 근화제약에 인수합병.
- 마이크로에어로봇: 2010년 (주)한화에 합병.
- 명성: 1989년 한국국토개발에 합병.
- 부평판지: 한동안 위장계열사였다가 1997년 정식편입 후 2004년 한화기계에 합병.
- 빙그레: 상술했다시피 원래 한화그룹의 계열사였지만, 김승연으로의 승계 과정에서 동생 김호연과 분쟁이 있었고, 1992년 김호연이 빙그레를 분리하여 독립했다. 1998년 공정거래법상 완전 분리.
- 산다: 구 국제전광사. 1988년 한국화약에 합병.
- 삼희통운(현 한익스프레스): 1989년 이석범 대표에게 매각됐다가 2005~2006년까지 보유지분을 태경화성에 판 후, 2009년에 김종희 창업주의 딸 김영혜에게 넘어갔다.
- 서울교통공사: 옛 명성그룹 계열 전세버스 운송업체로, 동명의 지하철 공기업과는 다르다. 한동안 위장계열사있다가 1994년 정식 편입 후 1996년 삼희관광에 합병.
- 서천관광개발: 1996년 한국국토개발에 합병.
- 성운물산: 유조선 해운업체로, 1990년 경인에너지에 합병.
- 성주랜드: 2005년 한화국토개발에서 분할됐다가, 얼마 못 가 한양상선에 매각 후 이듬해 합병.
- 수원관광: 1996년 한화관광에 합병.
- 씨스페이시스: 2006년 NHDL에서 분할한 법인으로, 편의점 '씨스페이스' 운영업체이다. 한화갤러리아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항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규모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매우 경영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는데 2016년 우린이라는 기업에 매각되었다.
- 아크런: 2006년 (구)드림파마에 합병.
- 양주엔바이로: 2013년 청산.
- 에이치컴파운드: 구 대림산업 여수 컴파운드공장. 2015년 한화넥스트에 합병.
- 에이치팜: 구 한국센트랄제약-덕산센트랄제약-센트랄제약-한화/의약부문. 2004년 (구)드림파마에 합병.
- 엔갤러리아: 2001년 한화유통에 합병.
- 엔에이치엘개발: 구 NHDL에서 물적분할된 해상화물운송 업체로, 2016년 해산이 결의.
- 오트론: 자동응답전환기, 유무선전화기, 휴대폰 생산업체로, 1998년 퇴출 후 사업부가 (주)한화 정보통신부문으로 흡수.
- 우영석유: 1994년 동양연료에 합병.
- 우풍화학공업: 1972년 한국화성공업에 합병.
- 이천가스: 1999년 동일석유에 합병.
- 정아건설: 1989년 한국국토개발에 합병.
- 정아관광: 지리산프라자호텔 운영업체로, 1989년 한국국토개발에 합병.
- 정아칸트리클럽: 구 명성칸트리클럽. 1989년 한국국토개발에 합병.
- 제삼석유: 경인에너지 석유제품 판매업체로, 1989년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지분매각했다가 1994년 재인수 후 동양연료에 합병.
- 제일특산: 1999년 한화유통에 합병.
- 제일화재: 1996년 김영혜의 주도로 독립했다가 2008년 재인수 후 2009년 한화손해보험으로 합병.
- 태경화성: 한동안 위장계열사였다가 2011년 정식 편입됐으나, 2018년 청산종결.
- 태안리조트: 2011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합병.
- 태평양건설: 1987년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해외건설 면허 반납 후 1996년 한화개발에 합병.
- 태평양엔지니어링: 1985년 태평양건설에 합병.
- 프라자골프개발: 2010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합병.
- 푸르덴셜자산운용: 구 국민투자신탁운용-현대투자신탁운용. 2011년 한화투자신탁운용에 합병.
- 한국강구공업: 2004년 한화기계에 합병됐다가 2006년에 'KBR'로 재분사.
- 한국다우케미칼: 1984년 한양화학지주에 합병.
- 한국비커스: 1993년 한국종합기계에 합병.
- 한국전자증명원: 2004년 계열분리 후 2014년 폐업.
- 한양상사: 2006년 청산.
- 한양전기화학: 1984년 한양화학지주에 합병.
- (구)한양화학: 이하 동일.
- 한컴: 구 삼희기획. 2015년 두산그룹 계열 광고계열사 오리콤에 매각되었다.
- 한화개발: 구 태평개발. 플라자호텔 운영업체로 2009년 한화리조트에 합병.
- 한화관광: 구 삼희관광. 한동안 위장계열사였다가 1994년에 정식 편입됐으며, '빙그레투어' 및 '한화 이글스 세계여행'으로도 유명했다. 1998년 퇴출 후 일부 조직 및 인력이 한화국토개발로 흡수.
- 한화나노텍: 2013년 한화케미칼에 합병.
- 한화도시개발: 2006년 (구)드림파마에 합병.
- (구)한화디펜스: 옛 명칭은 '두산DST'로, 2019년 한화지상방산에 합병.
- 한화바스프우레탄 (현 한국바스프): 1997년 지분매각.
- 한화베이시스: 구 한화파이낸스-드림파마. 2014년 한화케미칼에 합병.
- 한화소재 (현 한양소재): 벨기에 솔베이 사와의 합작사로, 2004년 박팔용과 배청에게 매각되어 계열분리.
- (구)한화에너지 (현 SK인천석유화학): 구 경인에너지. 1999년 현대그룹에 매각.
- (신)한화에너지 (현 포스코에너지): 구 경인에너지-한화에너지-(주)한화/에너지부문. 2000년 계열분리 후 한국종합에너지가 됐다가 2005년 포스코에 매각.
- 한화에너지프라자: 구 동양연료. 1999년 현대정유에 인수합병.
- 한화자동차부품 (현 한온시스템EFP코리아): 구 한국자동차부품. 미국 포드와의 합작사로 1998년 캐나다 테스마 사에 매각.
- 한화전자정보통신: 구 동양전자통신. 1996년 (주)한화에 합병.
- 한화정공: 구 삼미정공. 1995년 한화기계에 합병.
- 한화종합금융: 구 삼희투자금융. 1998년 퇴출 후 2012년 법인 소멸.
- (신)한화L&C (현 현대L&C): 2014년 분사 후 얼마 안 가 미국 MPSE에 매각.
- 한화청량리역사: 2011년 한화역사에 합병.
-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2020년 한화케미칼에 합병.
- 한화큐셀코리아: 2018년 한화첨단소재에 합병.
- 한화투어몰: 구 한화국토개발 여행사업부-투어몰닷컴. 2004년 계열분리 후 2005년 '투어몰여행'으로 변경됐다가, 2006년 세중나모여행에 매각되어 2007년 합병.
- (구)한화투자증권: 구 국민투자신탁-국민투자신탁증권-현대투자신탁증권-푸르덴셜투자증권. 2014년 한화증권과 합병.
- 한화포리마: 구 유니온포리마. 2003년 삼진화학에 합병.
- 한화화인케미칼: 2016년 한화케미칼에 합병.
- 한화GKN (현 한국GKN): 1998년 영국 GKN 사에 매각.
- 한화NSK정밀 (현 한국NSK): 구 한국정밀. 1998년 일본 NSK에 매각.
- 한화S&C: 구 (주)한화 정보부문. 2018년 한화시스템에 합병.
- 해남석유: 1994년 동양연료에 합병.
- 환경시설운영: 2016년 에코이앤오에 합병.
- 휴먼파워: 2018년 유클릭에 매각.
- FAG한화베어링 (현 셰플러코리아): 구 한화기계 베어링부문. 2003년 지분매각.
- SKF한화자동차부품: 1998년 스웨덴 SKF 사에 매각된 후 SKF자동차부품으로 변경됐다가, 2009년 SKF코리아에 합병.
11. 관련 학교법인
- 학교법인 북일학원
12. 사건사고
12.1. 김승연 일가
1993년 11월 거액의 외화를 밀반출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듬해 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7억 2천여만 원을 서울형사지법에서 판결받았다.# 이후 1995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되었다.
2007년, 김승연 회장이 둘째 아들을 건드린 술집 종업원을 경호원을 동원해 폭행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두목님'''이라는 별명을 획득. 실제 복싱 마니아로 알려져 있는데다 정말로 한국-아시아-국제 아마추어 복싱 연맹 회장 테크를 타서 도합 30년 동안 역임했다. 그리고 누가 ''''화약'''' 기업 아니랄까봐 도금한 '''권총'''(!)으로 협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보복 폭행도 문제지만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뒷처리를 하고 전직 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층에 로비를 하여서 사건화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한 달 넘게 수사를 하지 않다가 언론에 새나가면서 뒷북수사. 이에 김승연은 역시 휠체어를 타고 검찰에 출석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조폭 두목과 경찰 간부들에게 5억 7천여만 원을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폭행 자체는 김승연이 재판에서 피의자 심문 시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자면 '''원투 스트레이트로 아구 몇대 돌리고,''' 흉기와 쇠파이프로 위협한 정도라고 한다. 이 사건은 영화화 시도까지 있었고, 2011년 하반기에 드라마를 통해 패러디됐다.
법원은 이 사건을 '''부정(父情)을 앞세운 나머지 분별력을 잃고 범행한 점을 고려해야…'''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참고로 김승연의 아들이 셋이다. 첫째 아들은 하버드에서 유학 후 공군 통역 장교로 복무했으며 그룹에 차장으로 입사하여 경영 수업을 받았고, 둘째 아들은 예일대학 졸업 후 공군 장교 복무했고, 셋째 아들은 승마 선수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29] 2010년 10월 둘째 형과 마찬가지로 술집에서 행패를 부린 건으로 입건되었다.[30] 2017년 1월 5일 또 다시 청담동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을 하여 입건이 되었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여기서 대한체육회 면죄부 논란이 있다. 기사 자세한 사항은 김동선 문서 참조.
장남 김동관은 1983년생으로 미국 세인트폴 고교와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군복무는 공군 학사장교로 마쳤다. 경영 수업 및 참여의 첫 단추로 태양광산업을 찍은 듯하며, 미국 솔라펀 파워 홀딩스를 인수해서 한화솔라원으로 개명하고(이후 한화큐셀로 통합) 그룹의 전체 능력을 사실상 올인하여 성과를 거두면서 상무 자리까지 올랐다. 2015년 12월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하여 2018년 현재 한화큐셀 전무를 맡고 있다.
차남 김동원은 1985년생으로 미국 세인트폴 고교와 예일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다. 형처럼 군복무는 공군 학사장교로 마쳤다. 2011년 4월에 '''경찰관을 상대로 뺑소니 사고를 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더니'''[31] 2013년에는 마약복용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답이 없었으나 형처럼 경영수업을 받아 2018년 현재 한화생명 상무다.
삼남 김동선은 1989년생으로 미국 태프트 스쿨과 다트머스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승마 마장마술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병역은 예술체육요원으로 해결. 갤러리아 승마단 소속 선수로 활동하면서 2014년 아시안 게임 이후 10월 한화건설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2010년 10월, 강남의 모 주점에서 여종업원과 시비가 붙어 여종업원의 가슴을 만지고, 이를 말리던 남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된 흑역사가 있지만, 2016 리우 올림픽 때 승마협회의 무관심 속에 전담 수의사도 없고, 타국 선수들에게 말 먹이를 구걸해가면서 어렵게 대회를 치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오히려 동정 여론을 받고 있으며, 흑역사도 묻혔다(…) 하지만 2017년 1월 5일 다시 술집에서 필름이 끊겨 종업원을 폭행하고, 순찰차도 파손시켰다. 악화되는 여론을 의식했는지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집행유예가 끝나기도 전인 2017년 9월 말, 다시 취중폭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대형 법무법인 소속 신입 변호사 10여 명의 친목 모임에 참석했다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해 변호사들에게 막말을 하고 폭행을 휘두르는 등 이른 바 '갑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선은 자신보다 연장자도 섞여 있는 변호사들에게 "너희 아버지 뭐하시느냐"고 묻는가 하면 "날 주주님이라 부르라", "허리 똑바로 펴고 있어라", "존댓말을 써라" 등의 주문을 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김동선의 이런 행동에 일찍 자리를 떴고 남은 변호사들이 몸을 못 가누는 김 씨를 부축해 밖으로 데리고 나가다 뺨을 맞거나 머리채를 붙잡히는 등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산업체라는 성격과 이미지 때문인지 이처럼 병역 문제만큼은 깨끗한 편. 김승연 본인을 비롯한 오너 일가 모두 제대로 병역 의무를 마친 상태다.
'''타임라인'''(?)
1993년 - 김승연 외화 밀반출로 구속
2007년 - 김승연 청계산 보복폭행사건
2010년 - 김동선(삼남) 호텔 성추행 및 만취난동 사건
2011년 - 김동원(차남) 청담동 뺑소니 사건
2012년 - 김승연 배임사건
2014년 - 김동원(차남) 대마초 흡연 사건
2017년 - 김동선(삼남) 청담동 바 만취폭행 사건
2017년 - 김동선(삼남) 변호사 만취폭행 사건
12.2. 2010년 비자금 조성 사건
2010년 9월 16일,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 수색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는데…'''2011년 초부터 샅샅이 털렸다'''. 김승연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재계담당 등 고위층들은 죄다 조사받았다. 초동 수사 때는 비자금 관련 증거를 못잡아 검찰은 끝내 비자금과 상관없는 횡령 배임 건으로 김승연을 불구속 기소하며 한화그룹 전체가 총비상에 돌입했다.
사실 검찰의 수사가 '한 놈만 패' 식의 표적수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집요하긴 했다. 하지만 처음 비자금으로 수사를 시작했으나 혐의를 찾지 못하자 횡령과 배임으로 기소하며 용두사미라는 언론의 비판받았다'.[32] 수사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한화의 한 임원이 '죄가 있다면 벌을 받을테니 수사를 빨리 끝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담당 검사가 사직할 정도니 한화의 로비가 있기는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하 구단인 한화 이글스도 예외일 순 없었다. 구단 관계자 말로는 윗선에서 돈이 안 들어온다고…. [33] 현 사장인 김관수에게까지 영장이 날아올 정도면 볼장 다 본 듯. 결국 사장, 단장이 갈렸고, 이후 2011년이 끝나고 회장이 말한 대로 김태균을 잡아오고 박찬호를 붙잡는 등 여러가지로 돈을 펑펑 썼다.
2012년 2월 4일, 대주주인 회장의 횡령혐의는 무죄로 배임 혐의가 유죄로 판결남에 따라 월요일인 6일부터 한화의 주식거래가 정지되고 상장실질심사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2월 5일에 상장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결정나 주식 거래는 재개되었다.
김승연은 2012년 8월 16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관련 기사 2014년 2월 11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 원이 선고되었다.
13. 기타
- 한때 식품업체 빙그레를 계열사로 둔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화 이글스도 옛날에는 빙그레 이글스였는데 이름이 바뀐 것. 김종희 회장이 1981년 급사하면서 김승연이 29세의 나이로 경영권을 승계하였는데, 이때 김승연의 동생 김호연은 공군 중위로 복무 중이어서 나설 수가 없었다. 이후 오랜 상속권 소송 결과 1998년에 빙그레를 포함한 일부 계열사[34] 를 김호연 측에 떼어주는 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35] .
14. 관련 문헌
[1] 재계서열 6위. [2] # 기업집단 중 8위.[3] 통칭 '한화금융네트워크', 브랜드명은 라이프플러스이다.[4] 이 때문에 과거 빙그레 이글스 유니폼 한쪽에 '화약가족'이라는 패치가 붙기도 했다.[5] 바로 뒤에 기업은행의 을지로2가 본점이 있다. 선친의 그리스에 대한 각별한 인연으로 1991년부터 이 건물에 그리스 대사관이 세들어 살고 있다.[6] 이들을 그룹 내에서는 하나로 묶어 '''한화금융네트워크'''라고 부른다.[7] 대한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해는 그로부터 2년이 더 흐른 1992년이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한 때는 1988년이었다. 서울 올림픽에 당시 한국의 미수교국이던 중국이 참가하게 되면서 한국 정부가 기존에 쓰던 '중공' 표기를 '중국'으로 변경해 주었고(당시 대한민국이 자유중국이라고 불렀던 대만 정부에서는 이 소식에 발끈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남조선'을 '한국'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당시는 '한국'이라는 명칭이 중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때였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나 공산당의 고위 인사가 아닌 일반 중국인들에게는 아직 '한국'이라는 이름이 생소했을 것이고 이전까지 썼던 '남조선'이란 표현에 더 익숙했을 것이다. 그래서 Korea 부분을 환영단에서 무심코 남조선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요즘 같으면 하지 않을 실수이다.[8] 이 마름모꼴 로고는 1964~1994년까지 썼으며, 로고 변경 후 마름모꼴 로고를 가지고 K자 대신에 北一이라는 한자어로 바꾸어서 한화그룹 산하의 천안북일고등학교 교표로 2008년까지 사용한 바가 있다.[9] 특히 학술적인 측면에서. 예를 들어 성공회대학교를 후원하고 본관을 짓는데 많은 자금을 보태서 승연관으로 이름붙여질 정도다.[10] 이 때문에 그룹에 잔류하게 된 야구단이 1994 시즌부터 이름을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변경하였다.[11] 전 한국전력공사 및 한국중공업 사장. 김승연 회장이 박철언 前 장관과 엮여서 사법처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부회장으로, 회장 대행이었다. [12] 전 전매청장.[13] 전 농수산부차관.[14] 전 체신부차관, 한국통신 사장 및 이사장.[15] 1993년 이전까지 '화약그룹'이었다.[16] 한화생명은 웬만한 재벌 계열사에 싸닥션을 날릴 수 있는 거대기업이다.[17] 2010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체개발한 모든 미사일은 LIG넥스원(구 LG정밀)에서 만들었다. 한화는 이 회사에 로켓추진체를 납품하는 형태로 미사일 개발에 참여.[18] 높으신 분들들이나 지방 유지들이 수시로 전화해서 와서는 자기들 행사에 불꽃놀이 좀 쏴주라고 한다는 카더라[19]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대한생명의 본사 건물인 63빌딩도 같이 따라온 것이다.[20] ㈜한화 연결 기준 사업부별 현황에 한화S&C(연),여천NCC(50%), 한화테크윈, 한화토탈(50%), 한화탈레스(50%) 합산.[21] 최주옥, 한화그룹 현황과 주요 모니터링 요소, 한국기업평가, 2015.8.31[22] 최주옥, 한화그룹 현황과 주요 모니터링 요소, 한국기업평가, 2015.8.31.[23] (주)한화의 연결대상 기업은 다음과 같다. <한화자산운용, 한화손해보험, 한화생명보험, 한화종합화학, 한화큐셀코리아, 한화저축은행, 한화첨단소재, 한화건설, 씨스페이스, 한화도시개발, 한화케미칼,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윈,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이글스 한화63시티, 한화역사> 여기서 '기업개요'를 클릭하면 전체 목록을 확인가능. 연결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주요 계열사로 여천NCC, 한화탈레스, 한화토탈, 한화에너지, 한화S&C 등이 있다.[24] 다만 연결대상에 해당되지 않으면서 지분율이 20%가 넘는 기업들은 국제회계기준상 관계기업으로 지분법 회계처리가 원칙이다. 쉽게 말하자면 매출과 영업이익은 별개로 계산하지만 당기순이익은 해당 기업의 순이익에 지분율만큼 더해서 계산한다는 것이다.[25] 통칭 '한화금융네트워크', 브랜드명은 '''라이프플러스'''이다.[26] 바로 옆에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이 있었으나, 청량리 신축역사가 개업하면서 이곳으로 롯데백화점이 이전하고, 기존 청량리점에는 롯데플라자가 입점했다[27] '갤러리아'의 이름값을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샤넬 부틱(패션부문)을 최초 입점시키는 등 명품1번지로 명성을 떨쳤던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의 명성에 비해, 브랜드가 매우 부실했다.[28] 역사를 판매한게 아닌 역사 내 상가에 임대할 권리를 주었다. [29] 이 셋째의 승마 실력 향상을 위해 김승연은 일산에 승마장까지 지어주었다. 덕분에 한화그룹 임직원들도 무료로 승마 강습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30] 기사 내용상 2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19살 때 이미 그런 적이 있던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이미 종업원들의 기피인물;[31] 그것이 알고싶다 2015년 01년 10월 방송분[32] 수사를 주도한 남기춘 검사는 검찰내에서 일명 '칼잡이'로 불린다고 한다. 일단 걸리면 회장이고 의원이고 간에 끝까지 샅샅이 파헤쳐서 골로 보낸다고. 대선 비자금 수사를 했던 안대희 현 대법관, 재벌비자금 수사로 유명했던 김용철 변호사 등이 가장 검사다운 검사로 평가했다. 하지만 무리한 수사로 언론의 비판을 받자 도중 갑자기 사직했다.[33] 그룹 재계담당 1순위가 잡혀갔으니 충분히 납득은 가지만.[34] 당시 빙그레 자체는 자기부채 비율이 1400%가 넘는 망하기 직전의 상황이었으니 쿨하게 떼어준 것도 아니었다.[35] 이런 형제간의 반목에 김승연의 한 뒤끝하는 성격까지 더해져서 한화 이글스는 20년 가까이 빙그레 올드유니폼 데이를 치른 적이 없었으나, 2010년 7월 김호연이 천안시 을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형의 지원을 통해 당선되는 등 어느정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2012년 7월 약간 아쉬운 모양새이긴 하지만 드디어 빙그레 유니폼 데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36] 이때 경향신문에 부채를 떠안기고 독립시키는 바람에 1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경향신문이 경영이 어려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는 비판이 있다.[37] 삼양화학은 자동차 부동액 생산을 시작으로 각종 민수/군수용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사실 최루탄은 100여개 생산제품 중에 하나일 뿐인데 1980~90년대 경찰이 시위를 진압한다고 일년에 몇 백만 개씩 쓰면서 때아닌 돈벼락을 맞아 언론에 엄청 까였다. 당시 유수의 재벌 회장들을 제치고 삼양화학 사장이 개인소득세 납부 5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1987년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서 사망한 뒤에 최루탄 생산중지를 선언했지만, 실제론 군대에 계속 납품하고 있다. 훈련소 화생방 체험의 바로 그것. 참고로 라면 나오는 삼양식품이나 설탕으로 유명하고 한때 재계순위도 좀 높았던 삼양사와는 다른 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