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거사 청산 문제

 


1. 개요
2. 나치 독일에 대한 태도
3. 제국주의에 대한 태도
4. 1차대전독일 제국에 대한 태도
5. 위안부 소녀상 철거 논란
6. 일본과의 비교


1. 개요


독일은 같은 추축국인 일본과 달리 그동안 많은 국가에 많은 사죄와 반성을 보이기도 했고, 이로 인해 신뢰를 많이 쌓은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허나 이러한 인식이 무색하게도 '''독일의 과거사 청산의 실상은 힘있는 유대계와 이웃 서방 열강에게만 한정되어있고 독일 제국 시절 아프리카 식민 지배 피해자들은 언급조차도 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도 유대인들이 아프리카 못지 않게 아니 더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더 반성을 할 필요는 있다.

2. 나치 독일에 대한 태도


왜 독일은 네오 나치를 뿌리 뽑지 못하는가?(슈피겔 기사 번역/2012), 독일, 네오 나치 마을 야멜에 가보았다(프랑스2/2019)[1]
2차례 대전과 분단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안았음에도 과거에 대한 반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등 매우 교훈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러나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현재 세계 강대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정치와 외교,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인, 폴란드체코,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벨기에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에게 전쟁 피해를 겪었거나 싸운 적이 있었던 유럽 국가들[2]에게 '''외교적으로 밉보이지 않기 위해 하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패전 직후에는 나치 독일 정권에 대한 비판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1950~1970년대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서 역으로 나치를 비판하다가 주변인들로부터 ''' '배신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3] 대표적인 예가 전후 6년 만에 등장한 사회주의 국가당(SRP, Sozialistische Reichspartei)인데, 이 정당은 서독에서 친위대독일군 출신들이 모여 합법적으로 나치즘을 계승할 목적으로 만든 당이었다. 나치의 정강 정책이나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심지어 북부 독일 일부에서는 25%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하여 나치 깃발이 다시 휘날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결국 헌법수호청은 '''1956년, 이 정당에 해산 명령을 내리고 후속 내지는 대체 정당 금지도 선고했다.''' # 물론 21세기 현재 이 짓을 하면 경찰한테 끌려간다고는 하지만...
독일에서는 나치아돌프 히틀러 우호 발언 뿐 아니라 나치 휘장, 하켄크로이츠를 공중(公衆)에 내비치는 것조차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 역시 위법. 그래서 독일어 위키백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일부 나치 관련 문서는 편집제한 문서로 묶여 있으며, 토론란에도 키보드를 잘못 놀리면 감방 갈 수도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히틀러와 나치즘 경험이 치욕스럽고 끔찍했는지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이 정치인, 공인들을 상대로 사상을 검증하여 조금이라도 나치즘, 파시즘스러운 발언을 했다간 공직 인생은 그대로 말아먹게 된다. 제2의 히틀러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는 것. 이는 외국인에게도 예외는 없어서 나치 등을 소재로 삼아 독일을 비하하면 독일 법에 저촉된다.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도 독일 여행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아예 이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팔만 잘못 올려도 당장 잡아간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축구 응원이나 콘서트에서 응원 영상을 보면 관객들이 절대로 한 팔만 앞으로 뻗어서 응원하지 않는다. 두 손을 들거나, 팔을 위로 쭉 드는 등으로 응원한다.
이러다보니 몇몇 독일인들은 "독일이 애국심을 가지면 좋게 끝난 적이 없다"며 국가의 상징들을 혐오하기도 한다. 이건 독일이 딱히 개념이 충만하다기보다는 '''전 국민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진 것에 가깝다.'''[4]위에서 말했듯이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나치나 히틀러에 대해서 언급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도 않고, 학교에서도 올바른 역사와 나치와 히틀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교육한다. 독일 내 곳곳에 박물관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이나 관광객들에게 과거의 조상이 대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이었으니 절대 이렇게 되면 안 되고 후세에는 절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교육을 철저히 한다.[5]
하지만 이 역시 완전한 나치 청산이 아니라서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서독 법무부 간부 77% 나치당원 출신이라는 자료가 있다. 독일 법조계 일부 변호사들은 서독 전후 판사들은 대부분 나치즘을 믿는 나치 그 자체였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1960년대 서독에서 홀로코스트를 직접 실행한 중간급 장교, 하급 장교들이 많이 체포되어 재판에 섰지만 적은 형량만 선고 받고 그나마도 가석방 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 직접 치클론 B를 주입한 SS 장교 한스 스타크(Hans Stark)[6]같은 범죄자가 겨우 3년 복역하고 석방''' 됐을 정도로 당시 서독 판사들은 지나치게 홀로코스트 전범들을 봐주었고 그 결과 나치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나치당 출신 판사들이 은퇴할 나이가 되고 나치의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은 세대가 판사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홀로코스트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중형을 선고하는 현재와 같은 재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1947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법원에서 홀로코스트에 관여했던 나치 전범 중 책임자급 124명만 종신형을 선고 받고 나머지는 기소 조차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홀로코스트에 관여한 독일인이 수십만명이고 간접적으로 보자면 최소 백만명 이상의 독일인이 관여 되어 있기 때문에 독일 정부와 독일 국민들은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 형제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들춰내기보다는 역사 속으로 묻어 버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우는 어머니와 아이를 뒤에서 총으로 쏘는 사진이 찍힌 나치 병사, 구덩이를 파놓고 무릎 꿇린 포로의 머리에 총을 쏘는 사진이 찍힌 나치 병사 등 처럼 실질적으로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수십만의 독일 사람들이 재판도 받지 않고 손자, 손녀들에게 둘러쌓여 천수를 누리며 죽어가는게 바로 독일 과거사 청산의 현실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아우슈비츠 회계사로 있었던 90살이 넘은 노인도 기소하여 재판을 받게 할만큼 독일 법조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 ' 가스 주입한 SS 장교는 봐주더니 이제 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회계사 노인 기소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 '''라는 비판도 상당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관련자들이 사망하거나 사망할 나이가 되어 실질적으로 '''나치 독일 과거사 청산의 마지막 재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 상징적인 의미''' 로 이제와서 90살 넘은 노인을 재판정에 세우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재판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다만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가 오히려 당시 상황을 객관적이고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여지까지 없애버렸다는 내외적인 비판도 있다. 현재 독일 정부와 국민들의 나치즘이나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자세는 '''흑역사로 묻자'''에 가깝지, 이걸 계속 곱씹어보겠다는 게 아니다. 물론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독일 영화가 조금씩 나오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과 자신들의 국가사회주의 사상자체에 빠진 국방군과 친위대 병사들이 어리석었고 그들이 저지른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 (특전 U보트, 몰락 등)
사회 분위기가 아예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말고, 굳이 해야 한다면 그냥 '절대악'쯤으로 치부하자는 식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 자체가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다. 말 잘못하면 바로 매장 분위기니까... 그러니 독일 가서 사람들에게 매장당하기 싫으면 말실수하지 말자.
독일은 통일 당시 동프로이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했다. 이는 소련폴란드가 통일 독일을 국가로 승인하는 전제조건으로 영토 포기를 내세웠기 때문인데, 그 정도로 주변 국가들이 독일 통일에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기도 하지만 영토까지 포기하는 피해도 감수하면서 통일을 이루려 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물론 당장의 국가의 존립을 위해 소련에게 밉보일 수 없었던 사정도 있긴 했지만. 또한 사실 전후 30년이 넘어서 거의 독일인들 사이에서 '그 땅으로 인해서 수만명이 죽었고 그리고 이미 뭐 다른 나라 영토 아님?' 하고 그냥 포기 자체도 당연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7]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구 독일령 내에 거주했던 독일인들이 추방된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인식되기는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건 우경화 사상이라고 보긴 그런게 그저 추방되는 과정과 추방된 독일인들의 고초를 지적하는 것뿐이었다.
'마스 강에서 메멜 강까지 에치 강에서 벨트 해까지'라는 가사가 실린 국가 1절은 공식 행사에서는 안 불렀으나 월드컵 경기 중 관중들이 떼창을 해서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때때로 다시 네오 나치가 창궐해서 폭력을 휘두르고 다니는데, 경찰이 검거에 실패했다거나 하는 뉴스는 잊을 만하면 올라온다. 심지어는 경찰이 눈이 멀었다고 할 정도다.
전 국방군의 장례식 같은 행사는 생각보다 거창하고, 그 시절의 전투 등 일부 업적은 나치 혐의로 비난받는 일이 있더라도 기념하는 것도 있다. 만약 그렇게 빡세게 배제하고 싫어한다면 전 독일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가 '''티거'''라는 이름의 약국을 운영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전차 에이스 미하엘 비트만SS 소속이어서 전과가 삭제되었다.
희한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소재로 한 RTS 게임인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 보면 그렇게 경멸해야 할 대상임에도 독일인들은 100이면 99는 죄다 독일군으로 플레이한다. 아닌 게 아니라, 미니어처 계열에서도 독일군 미니어처 중 구하기 힘든 모델은 독일제를 구하는 편이 쉽다. 아예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병기들만 주로 생산하는 개인 회사도 있다.
물론 독일 국방군홀로코스트에 관련되긴 했지만 얘네들은 무장친위대와 달리, 나치즘이라는 사상 아래 강제로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다.''' 해군선옥론 문서의 '독일의 깨끗한 국방군 신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도 전쟁범죄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비교적 근래까지 독일에서 독일 정규군은 무죄라는 인식은 널리 퍼져 있었으나 83년을 기점으로 현재는 나아져가는 추세로 대부분 정상적인 독일인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강제든 뭐시기든 국방군이 전쟁범죄를 했자나? 그니까 잘못했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에서 국방군 장교의 군모만 장난으로 써도 독일인들의 시선이 거의 경악에 가깝다. 특히 통독이후 인사개편과 역사 재인식과정을 거치면서 국방군 신화를 거의 부인하고 있고 통독이후 사과에선 독일인들에 의한 이라는 문구를 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독일의 우경화가 진행되면서 다시 한번 국방군 신화가 고개를 들고 있다.
보상문제에 대해선 제일 말이 많은데 일괄적으로 파리조약을 통해 서독정부의 전쟁배상처리를 항복당시 조건에서 완화시켜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독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를 비롯한 여러 약소국에는 일체 아예 배상처리를 안하고 있고 현재 독일정부도 공식적으로 배상금 지급요구 자체엔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통일과 유럽 연합 창설이후 독일 정부는 독일에 부채를 지닌 그리스나 해당 국가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전쟁 종결일에 특별 부채 탕감이라는 태도로 비공식적 배상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유럽약소국들은 비공식적인 것인 만큼 전쟁반성의미로 부채 탕감이라해도 공식적 배상금을 그딴거 안해도 따로 배상금을 지급 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바로 이것이 나치 독일 역사 청산에서 독일이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이다

3. 제국주의에 대한 태도


아프리카의 과거 식민지로 삼았던 탄자니아, 나미비아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민지 침략이나 학살과 인권 탄압 등에 대해선 대부분 유럽의 강대국 국가들이 그렇듯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된 배상과 사과가 이뤄진 적이 없다.''' 2004년에 하이더마리 비쵸레크-조일 경제장관이 관련하여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과를 언급하긴 했지만 독일 정부의 공식적인 생각이라고 보긴 어려운, 장관 개인의 견해를 밝히는 데 그쳤다. 학살에 관해서도 개별적 배상을 하진 않았고 대신 매년 14억 마르크만큼 경제 원조를 약속했던 바가 있다. 그나마도 현금으로 지급되면 배상금으로 보일 수가 있으니 담수화 시설 원조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지원하겠다 천명하였으며 일본이 한국에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건낸 6억불은 당시 일본 외환보유고의 절반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었으나 14억 마르크는 독일 외환보유고의 1%도 안되는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독일 측 대변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과로 인한 배상 조치나 법적 결정이 도출될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고, 사과 이후 관련한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의 태도 전환을 취할 여지 또한 부인하고 있다.
만약 일본한국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하며 소위 '사과 계획'이라는 것을 표명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자. 현재까지 이 사안과 관련하여 독일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그리 칭찬받을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이 전후 제3제국이 자행한 전쟁 범죄를 어찌 다루었는가에 대해 되돌아 보고, 그리고 제3제국 전쟁 범죄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의 면면을 상기하면, 독일이 상대를 봐가며 반성과 사죄를 그때 그때 달리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한 독일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독일이 과거 식민지에게 지원한 경제적 원조는 한국이 일본에게서 받아낸 독립 축하금과 차관보다 미비하며 독일이 식민지에게 한 사과는 한국이 일본 총리들에게 받아낸 담화만 못한 수준이다. 독일은 자신을 패망하게 만든 미국과 서구 열강들, 러시아와 폴란드 그리고 돈 많은 유대인에게는 비굴한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들이 침략하여 지배한 식민지와 집시에 대한 사과는 언급조차 안해왔다. 다만 독일이 지배한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여전히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독일에게 적극적인 사과를 요구할 처지가 못 되는 반면 한국은 안정적인 발전과 민주화까지 거듭하여 일본에게 목소리를 주잘할만한 받아낼 역량을 키워낸데다 중국과 손잡기라도 하면 미국이라면 모를까 일본 입장에서는 명백한 손해이기에 말뿐이긴 하지만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 등으로 사과도 받으며, 일본정부로부터 주기적으로 유감성명 정도라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4. 1차대전독일 제국에 대한 태도


현대 독일은 독일 제국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힌 바가 꽤 된다. 다만 특이한 점은 '''독일 제국에 관해서는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우선 '''빌헬름 1세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다스리던 시절의 독일 제국 전반기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다. 빌헬름 1세는 독일 내에서 거의 한국의 세종대왕이나 광개토대왕만큼 칭송받는 군주 중 한 명이며, 비스마르크는 독일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중 하나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거의 이순신+황희 정승 수준으로 존경받는다. 수백년간 조각조각난 나라를 통일시켰고 또 카를 5세 시대를 마지막으로 프랑스에게 수백년간 무시당하다가 그걸 한 번에 복수해서 뒤집어버렸으니만큼.
하지만 '''빌헬름 2세가 다스리던 제국 후반기 및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평가는 영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 빌헬름 2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군이라고 평가를 하는 군주이며, 특히 빌헬름 2세의 세계 정책, 온갖 외교적 불화,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에 가장 커다란 불씨를 제공했다는 사실 때문에 정말 히틀러나 나치 다음으로 혐오하는 독일인들도 많다. 여기서 제국주의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이 흥미롭다. 빌헬름 1세 시절은 그다지 해외 식민지에 집착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하지만 빌헬름 2세는 심각히 해외 식민지에 집착했고 독일의 식민지 범죄도 대부분 이때 이루어졌다. 물론 제국 전반기나 후반기나 독일은 제국주의 국가이긴 했다. 단지 전반기에는 제국주의성을 숨기고 있던 것 뿐이다. 현재 독일 정부의 공식적 제국주의에 대한 입장은 단순하다. 제국주의란 사상 자체는 끔직하고 타국의 자유와 주권을 박탈하고 영토확장 논리에 빠진 혐오스러운 사상이라는 것이다.[8] 바로 이 입장을 바탕으로 독일 국가 제1절을 공식 국가에서 삭제조치했으며 교육과정에서도 독일통일과 별개로 독일 팽창주의는 제국주의와 함께 엄히 비난대상으로 명시되어있다. 흥미로운것은 제1차세계대전 유발국이라는 것에 대해선 베르됭 묘지에서 매년 인정하고 사과하지만 제국군에 대해선 제국주의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독일의 현재 최대 과거사 청산의 한계라고 볼수 있다.

5. 위안부 소녀상 철거 논란


2019년 독일에서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이 독일의 한 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10㎝도 채 안 되는 작은 '평화의 소녀상'마저도 기념관 측을 압박해 철거하도록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기사 참조
이후 2020년 10월에 다시 일본의 소녀상 철거 요청을 소용한 독일에 의해 베를린 소녀상 철거가 결정되었다.
2019년에 이어 2020년에 또다시 이 논란이 불거짐에 따라 앞으로 한국내에서 만연하였던 독일의 과거사 청산 이미지가 깨질 전망이다. 이 건은 다행히 구청장이 대화로 풀자며, 당분간 철거가 어려워진다.
자세한 사항은 위안부 평화비에서 볼 수 있다

6. 일본과의 비교


한국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깔끔하게 청산했다는 이미지로 인해, 각종 한국 매체에서 일본의 태도를 비판할 때 모범 답안으로 독일이 자주 제시된다. 그러나 후술되어있지만 '''독일의 과거사 청산을 자세히 뜯어보면 대중들의 인식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위에서 언급했듯, 독일이 나치즘은 흑역사로 여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역시 일본군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와 카미카제, 카이텐 등 인명 경시는 분명하게 흑역사로 여기고 있다. 난징 대학살이 존재하였다는 점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다. 또한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가 일본인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많았다는 점,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졌다는 점, 군의 관여 하에서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줬다는 점,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되었다는 점,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하여 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는[10] 인정하고 사과했다.
아시아 각국이 피해를 입은 전쟁 범죄들에 대해서는 무라야마 담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즉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일어난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독일 정부도 모두 공식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일본은 간 담화를 통하여 한일병합이 한국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사과하였다. 그리고 현 아베 총리 또한 이런 담화들을 공식적으로 말로만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은 독일은 매년 공식적 인정과 사과를 반복하며 체코를 침략한 날과 제2차세계대전 발발일인 9월1일, 그리고 종전날인 5월4일 연속적으로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으며 9월1일엔 아예 공식적 행사에선 전쟁으로 인해 학살된 무고한 타국 국민들에게 묵념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2018년 9월1일 독일 폴란드 친선경기에서 일부 독일 관중들이 나치시대 공식 구호인 Sieg Heil 을 외치자 선수단이 국민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공식 규탄입장을 낼 정도다.
독일은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합병한 적이 없었고, 유대인은 '독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독일 땅에 살고 있었다. 즉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자국의(혹은 유럽 내의) 소수 민족에 대한 학살의 문제이며, 제국주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일본 제국은 엄밀히 말해서 나치 독일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에 함께 대응하는 것이며, 구 일본군독일 제국군독일 국방군에 같이 대응해서 봐야 한다. 그런데 독일인들이 과거사를 대할 때 반성의 대상에서는 독일 제국독일 제국군과는 보통 제외된다. 다만 제국주의 사상에 대해선 상당히 국가사회주의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독일 공식 교육과정에선 제국주의를 힘으로 힘없는 국가의 자유를 박탈하고 그들의 국민에게 합법적으로 자유를 박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할 권리를 가지게 하는 사상으로 우리 독일의 제국주의로 많은 식민지인들이 상처를 입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청나라 칭다오 침략, 위화단 운동때 전쟁범죄라든가 아프리카 식민지 학살에서 제국주의 독일에 의해 피해가 있었다 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나치독일과 별개로 제국군자체에 대해 그리 심각한 입장을 취하고 있진 않으며 보상문제에 대해서도 그리 심각히 명시하고 있지않다
심지어 독일 국방군마저도 나쁜 것은 모조리 나치 친위대가 한 짓이라며 미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민간 차원에서 볼 경우 옛 일본군에 대한 현 일본인들의 생각처럼, '나라를 위해 싸운 젊은이들'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전체주의 등의 사상과는 선을 그으려 하는 시선이 전후 직후에 강했으나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어린나이에 목격한 세대와 그들로 부터 그 참혹함을 직접 들은 세대가 주류가 된 80~90년대에는 청중년층을 중심으로 국방군 미화 시선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표현했고 국방군 무오설의 최초 독일인 신고자도 바로 82년에 나왔다. 더나아가 83년부턴 국방군 무오설의 대표주자 롬멜 신화에도 정면적 도전이 이루어졌고 아예 1999년에는 롬멜 박물관 예산 삭감, 2000년에는 베를린시청 롬멜공적비를 철거했으며 통독후 공식 교육과정을 비롯해서 모든 입장에서 독일국방군의 범죄까지 함께 중요 교육과정으로 포함되어 있고 중등교육과정이상에서 반드시 '''독일인들의 만행'''이라는 주제로 구분없이 가해자이고 쉴드 칠 것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또한 현재 독일 국방부 제2차세계대전 백서를 비롯해서 연방군 교육지침에 국방군 전통계승을 부인하며 범죄 참여 를 부인하고 있지 않다. 그들과 어느정도 선을 그어두려고 노력하며 연방군 내부에서 극우사상에 상당히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위에 지적된 관점의 경우 팽배한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앞의 전제 조건이 따로 있었다. '''국가사회주의라는 어리석은 사상에 물들어 정의롭지 못한 국가를 위해 어리석게 목숨을 던져 싸운 젊은이들'''이라는게 상당수의 입장이고 민간차원에서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어찌하여 저렇게 어리석게 목숨을 버렸을까 하는 동정적 시각이 오히려 더 다수 이다. 하지만 전쟁당시 생존했던 이들과 국방군 파편장교들의 국방군 무오설로 인해 극우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동독에서는 다시 무오설 자체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나마 국방군의 경우는 나치와 완전하게 선을 긋는 게 불가능해서 독일 내에서도 자정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서는 일본보다는 조금은 나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제국군으로 시선을 돌리자면, 이들에 대한 독일인의 관점은 결코 모범답안이라 할 수 없게 된다. 독일제국군에 대해선 그저 응 독일군 사상적 문제가 있지 않지라는 입장이기때문이다. 여기서 계속 강조되고 있지만, 일본군은 독일 제국군독일 국방군에 함께 대응하므로, 당연히 독일 제국군에 대한 현 독일인들의 관점을 거론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이쪽에서 독일을 조금 옹호하자면, 2차 대전 이후 추축국에 대한 서구인들의 비판은 전체주의와 학살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나오지 않는 점을 거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이야기로 가자면, 영국이든 프랑스든 자기들도 했던 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추축국들의 과거사 반성에서는 제국주의는 '그때는 외국도 그랬음'이라는 식으로 어영부영 넘어가기 쉬웠다.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파고 들자면, 제국주의는 옛 추축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옛 열강 국가들이 모두 반성해야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달리 보면 제국주의는 당시 대세였고 현 강대국들의 상당수는 제국주의 국가였던 시절이 한번쯤 있던 만큼 파시즘처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이렇게 소수 국가에 특정할 수 없다. (강대국끼리는) 거의 모두가 공범인 상태인지라 독일은 그것으로 인해 "쟤도 제국주의 했는데?" 라고 어영부영 넘어갈 동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영국이나 프랑스도 나치 청산에게만 날카롭고 제국주의는 자기네들도 한 게 있으니[11] 말도 못할 신세고... 다만 독일은 그나마 제국주의 태도 자체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것이 차별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 빌헬름 카이저 과학연구소는 제국주의 사상이 깊이 이름에 반영되어 있단 이유로 영구 사용금지 처분되었고 현재 막스플랑크 과학연구소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저지른 제국주의 학살에 대해선 문제의식정도는 가지고 있다는것도 다르다고 할수 있다. 물론 배상문제엔 영국이나 프랑스도 안한것인데 우린 왜?라는 입장을 은근슬쩍 드러내고 있다.
반면 영토 문제에 있어서는 독일이 분명히 일본보다 태도가 좋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한국러시아에게 독도쿠릴 열도 분쟁을 일으키는 등 일본 제국시절 가지고 있었다가 상실한 영토의 영유권을 계속 주장하는 반면, 독일의 경우 2차대전으로 폴란드와 러시아에게 상실한 영토의 영유권을 폴란드가 독일의 재통일을 승인하는 대가로 포기했다. 물론 독일이 착해서 그런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이루어진 결정이고 개인차원의 반발이 크기에 마냥 깨끗한건 아니지만 일단 더 이상 국가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일본보다 태도가 좋다고 볼 수 있다.[12]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바와 달리 실제 독일이 폴란드의 영토 프로이센에 대해 영구포기선언을 공식적으로 했을때에도 아예 독일 국민들마저 그냥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당시 동프로이센 지역 전투에서 정말 많은 독일군이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후30년 시간이 지나면서 아예 딴 나라 딴 민족이라는 생각이 굳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제국주의 문제가 아니라 2차대전기에 벌어진 반인륜 범죄들에 한정해서 비교하면 그래도 독일이 일본보다는 태도가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나치 독일 때 벌어진 잔혹한 행위들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자세히 밝히며 어떠한 변명 없이 자신들의 잘못이라는 점을 분명하고 철저하게 교육하지만 일본은 그러한 행위들에 대해선 매우 성의없이 넘어가며 잘못에 대한 가치판단은 전혀 드러내고 있지 않다. 일본 또한 공식적으로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원폭 투하등 자국 피해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세하게 가르침으로써 피해자인 듯한 뉘앙스를 강하게 띄우는 등의 문제가 있다.[13]
독일에 비해서 이 문제로 잡음이 많다. 다만 독일의 경우도 난민 문제 등을 계기로 이를 부정하려는 세력이 영향력이 커지는등 마냥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14] 독일의 경우 일본과는 달리 나치라는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것 뿐이지 옛 군대에 대한 태도를 거론하자면 일본군이 독일 제국군과 독일 국방군에 함께 대응되므로 독일이 잘 청산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나 현 독일 교육과정이라든가 공식 정부 입장에선 국방군 무오설같은 것도 일제 부인하고 있고 전쟁이란 그자체로 독일인들이 무고한 민간인들과 타 국민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때문에 위의 말은 틀렸다고 할수 있다
종합해서 이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비교하여 정리하자면 이런 결론이 날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한 독일의 보상과 사죄가 일본보다 컸던 것은 독일의 전체주의에 피해를 입었던 나라의 힘, 그리고 독일에게 있어서의 지정학적 중요성일본의 전체주의에 피해를 입었던 나라의 힘과 일본에게 있어서의 지정학적 중요성보다 컸기 때문이고

제국주의에 대한 일본의 보상과 사죄가 독일보다 컸던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피해를 입었던 나라의 힘, 그리고 일본에게 있어서의 지정학적 중요성독일의 제국주의에 피해를 입었던 나라의 힘과 독일에게 있어서의 지정학적 중요성보다 컸으며

서양 주도의 국제질서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현대 사회에서 세계의 학문, 산업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유럽미국을 대상으로 침략 전쟁을 일으킨 나치 독일의 만행과 그에 대한 과거사 수습이 미국을 제외하면 주로 국제질서에서 상대적으로 변방에 위치한 아시아에 대한 침략을 일으킨 일본제국보다 더 잘 조명이 되었다.

[1] 슈피겔의 기사로부터 7년이 지났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히틀러와 하켄크로이츠에 대한 명확한 언급 없이는 경찰이 개입할 수 없다"라는 기사의 마지막 부분대로 현지 경찰은 이 문제를 방치 중이다.[2] 불가리아루마니아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산업 파괴, 국토 황폐화, 인명 피해 속출 등의 전쟁 피해를 겪었던 것은 맞지만 제2차 대전 초기 나치 독일추축국에 가담하여 군대를 추축국 전선에 파병해 나치 독일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거나 군사 보급로 등을 적극 제공한 전력이 있어 일방적인 전쟁 피해국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점도 있다. 어쩃든 그래도 독일은 지속적으로 모든 자신들의 침략을 받은 국가들에게 사과를 매년하고 있고 전쟁범죄의 책임을 일체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불가리아의 경우는 조금 논란이 있는데 자세한 건 먼 나라/안 좋은 사이, 추축국, 상임이사국 문서 참고.[3] "독일국방군". 볼프람 베테 지음.[4]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제주도 편에서 독일 친구들에게 멕시코 친구들이 국기를 가져오지 않았냐고 묻자, 독일 친구 다니엘이 ‘독일이 국기를 들고 오는 건 그렇게 좋지 않지’라고 말한 경우도 있다.[5] 탈나치화. 독일어로는 Entnazifikation, 영어로는 denazification이라고 한다.[6] 아우슈비츠에서 근무했으며 유대인 학살에 직접 가스를 주입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반성은 커녕 유대인 여성을 죽인 걸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던 인간 쓰레기이다. 3년만에 석방되어 천수를 누리다 1991년 3월 29일 다름슈타트에서 사망했다.[7] 참고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원인도 단치히를 독일에게 넘기라는 구실이었으니 폴란드 영토 반환자체를 민감하게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8] 애초에 독일이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영토와 알자스-로렌을 상실한 것도 지나치게 제국주의를 추구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므로 현대 독일인들이 제국주의 자체에 트라우마를 가질 법도 하다.[9] 사실 강제연행의 성립 문제는 식민지의 불법 여부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참고로 어느 유럽 열강도 식민지가 불법이라고 인정한 나라는 없다.[10] 일단 공식적인 차원에서 일본 정부고노 담화무라야마 담화 등을 계승한다는 태도이긴 하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공식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 실질적으로는 현 일본 정부UN에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개드립을 내뱉으면서[9] 고노 담화의 내용을 전면으로 뒤집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11] 영국의 쿠르드족 학살 방조, 프랑스의 알제리 학살 등만 보면...[12] 물론 독일은 일부 영토의 상실은 물론 남은 국토조차도 동서로 분단되는 등 일본보다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한게 그 원인이다. 오히려 영토문제로 볼 경우 일본은 몰락작전이 실행되기 전에 일찍이 항복했기에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영토를 뜯긴 상황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 다만 일본은 본토가 아니라 식민지 등 확장하며 빼앗았던 영토를 도로 뺏긴 것에 불과하지만 독일은 역사적 문제가 있을지언정 '''본토를 빼앗겼다.'''[13] 최근에는 우경화가 진행되면서 정부 지시로 축소 및 왜곡하는 일이 빈번하다.[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