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 04 레버쿠젠/역사
1. 개요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차범근이 주역이었던 UEFA컵 우승과 01-02시즌 준우승 트레블 등으로 인해 강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놀랍게도 오랜 역사와 썩 괜찮은 전력을 가져온 팀임에도 불과하고 '''분데스리가 우승이 단 한번도 없다.''' 거기다 준우승만 무수히 한 대표적인 콩라인 팀이다. 유럽대항전 트로피는 있지만 자국 리그 우승은 한번도 없는, 유럽 전역을 봐도 몇 안되는 커리어를 가진 팀이다.[1]
2. 창단과 초기
1903년 11월 27일에 바이엘 사에서 일하던 노동자인 빌헬름 호이스칠트는 고용주인 프리드리히 바이엘에게 스포츠단 창단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는 직장 동료 170여명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이때 바이엘이 이에 동의하면서 1904년 7월 1일에 'TUS 바이어 04 레버쿠젠' 이라는 이름으로 축구단을 포함한 스포츠팀이 창단되었고, 1907년에 본격적으로 독립된 축구팀이 창설되었다. 이후 1928년 6월 8일에 스포츠단은 축구팀인 'SV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체조팀은 'TUS 바이어 레버쿠젠,', 핸드볼과 육상은 '바이어 레버쿠젠 스포츠 연맹'으로 3분할되었다. 여기서는 인지도가 잘 알려진 축구팀을 다룬다. 출범 이후 팀은 상당 기간 동안 3~4부 리그를 전전하다가 종종 승격하여 서부 오베르리가를 누비다가 1963년에 분데스리가 출범을 앞두고 하위 리그로 밀려나고, 1968년에야 또 레기오날리가로 복귀했으나 1973년에 또 하위 리그로 떨어지는 등 하부 리가에서 전전했다.
3. 전성기
1975년에 분데스리가 2부로 승격한 뒤 1976년에 빌리베르트 크레머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영입한 위르겐 겔스도르프를 축으로 리빌딩을 거듭한 뒤 점차 강해져 1978/79 시즌에 2부 리그 우승으로 분데스리가에 승격한 뒤 모기업인 바이엘의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팀은 더욱 강팀으로 급부상했고, 1984년에는 흩어졌던 3개의 스포츠 팀들이 현재의 '바이어 04 레버쿠젠' 으로 재통합되었다. 특히 1983년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이적해 온 차범근이 들어오면서 팀은 차범근 활동 초반 세 시즌 연속으로 두자릿수 득점을 올려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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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UEFA컵 우승 당시 트로피를 든 차범근.
팀 역사상 최고의 업적은 1988년 UEFA컵(현 유로파리그[2] ) 우승으로 '''당시 팀의 핵심이 바로 차범근이었다.''' 당연히 차범근은 팀의 레전드로 대우받고 있다.
이후 1988년에 유소년팀 감독과 프런트의 일원으로 묵묵히 팀의 발전을 위해 힘쓴 라이너 칼문트가 팀의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전성기가 시작되었고, 1990년에는 옌스 멜지, 울프 키르스텐, 안드레아스 톰 등의 동독 출신 스타를 영입함과 동시에 브라질의 스타 조르지뉴, 파올로 세르히오 등을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다. 1993년에 부임한 드라고슬라브 스테파노비치 감독의 지휘 하에 1993년에 DFB 포칼 결승전에서 헤르타 BSC를 꺾고 우승하면서 의기양양해진 팀은 베른트 슈스터와 루디 푈러 등의 베테랑 선수들을 데려와 타 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4. 90년대 말
1995/96 시즌 강등 위기를 맞게 되지만 최종전 매치업이 당시 기준으로 분데스리가 개근기록을 이어가고 있었던 16위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단두대매치였고, 이 경기에서 후반 13분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쿠카에게 골을 먹히며 강등이 눈앞에 왔으나, 경기 종료를 8분 남기고 마르쿠스 뮌히의 천금같은 동점골에 힘입어 잔류하게 되었다.[3]
겨우겨우 탈출에 성공한 팀은 1996년에 VfB 슈투트가르트와 베식타쉬의 감독을 역임했던 크리스토퍼 다움을 감독으로 부임시킨뒤 선수 영입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독일 청소년 대표팀의 영웅 미하엘 발락과 '브라질 삼총사'로 알려진 루시우, 에메르송, 제 호베르투와 에릭 메이여르 등을 영입하여 전력을 강화했다.
다움 감독 시절이던 '''4시즌 중 3시즌 연속으로 준우승'''에 그쳤긴 하지만, 그간의 공적으로 유로 2000을 앞두면서 독일 국대 사령탑으로 거론된 다움 감독은 유로 2000 개막을 앞두고 벌어진 '코카인 스캔들'로 인해 명예가 실추되면서 독일 국대 감독 자리도 물건너갔고, 결국 다움 감독은 2000/01 시즌 초반인 2000년 10월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5. 역대 시즌
5.1. 2001-02 시즌 (콩트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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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발락이 지네딘 지단의 레알 마드리드에게 200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지고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지나치는 장면.
2001/02 시즌 클라우스 토프묄러를 감독에 부임시켰고, 옌스 노보트니, 카르스텐 라멜로프, 베른트 슈나이더, 미하엘 발락등을 앞세웠지만 '''포칼, 리그,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전부 준우승'''을 차지하는 비극을 겪으면서 콩라인에 올라가게 된다.. [4]
5.2. 2002-03 시즌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루시우, 미하엘 발락, 제 호베르투 등 지금봐도 후덜덜한 선수들을 갖추었지만, 결국 준우승 행진 이후로 썩 대단한 성적을 못 거두고 선수들이 하나둘씩 이탈하게 된다. 2001/02 시즌 도중에 이미 바이에른 뮌헨과 핵심 멤버였던 미하엘 발락과 제호베르투 협상을 마친 상태였다. 거기에 수비의 핵이었던 옌스 노보트니가 십자인대 부상[5] 을 당하는 등 에이스들의 공백이 발생해 발락과 제호베르투를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시키고 받은 이적료로 당시 분데스리가와 해외에서 이름 나있던 유망주들을 끌어모으며 대비를 하였지만 그 유망주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버렸다. 이때문에 2001/02 시즌 3개대회에서 우승까지 바라봤던 레버쿠젠은 2002/03 시즌에는 강등권까지 추락하며 감독을 두 차례[6] 나 교체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세 번째 감독 클라우스 아우겐탈러가 남은 잔여경기 2경기를 모두 이겨 최종전에서 빌레펠트를 제치고 15위로 간신히 강등을 모면했다. 그런데... 시즌 종료 후 '''노보트니와 함께 수비를 이끌던 루시우마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5.3. 2003-04 시즌
2003/04 시즌 루시우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3위'''를 차지하며 1년 만에 다시 챔피언스리그로 복귀하였고, 20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라운드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AS 로마, 디나모 키예프와 한 조가 되어 2년 전 결승에서 아픔을 안겼던 레알 마드리드에 3-0 대승을 거두는 등 설욕에 성공하며 조1위로 16강에 오른다. 그러나 16강에서 해당 대회 우승팀 리버풀 FC에 홈&어웨이 모두 3-1로 패하며 탈락했고, 리그에서는 6위에 그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5.4. 2005-06 시즌
2005/06 시즌 초반 리그 4경기에서 1승1무2패에 UEFA컵에서는 불가리아의 CSKA 소피아에 0-1로 지는 부진으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감독이 경질되었고, 루디 푈러 단장이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수석코치였던 미하엘 스키베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5/06시즌 레버쿠젠은 UEFA컵에서 결국 1라운드에서 소피아에게 일찍 떨어졌으나 초반 부진했던 리가에선 6위로 마감하며 UEFA컵에 진출했다.
5.5. 2007-08 시즌
2007-08 시즌엔 '''전반기 2위'''까지 오르며 좋은 스타트를 보였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까지 노렸으나, 후반기 마지막 10경기에서 하위팀에게 잇달아 승점을 따내지 못하며 5패를 기록, 결국 7위로 UEFA컵 조차 나가지 못하며 미하엘 스키베 감독은 결국 경질되었다. UEFA컵에서도 8강에서 그 대회 우승팀 제니트에 홈에서 1-4로 패배하며 2차전에서 1-0으로 이겼음에도 결국 탈락했다.
5.6. 2008-09 시즌
2008-09시즌 전 스키베를 대신하여 브루노 라바디아가 새 감독으로 왔다. 2008/09시즌 리그에서는 전반기엔 흐름이 괜찮았으나 후반기에는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고 상위권 팀들과의 맞대결에서 부진하며 결국 9위로 마감했다. 포칼에서는 8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격파하며 결승에 올랐으나 결승에서 메수트 외질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베르더 브레멘에 0:1로 패배, 또 준우승에 그쳤다.
5.7. 2009-10 시즌
2009-10 시즌엔 유프 하인케스 체제에서 23라운드까지 '''무패 1위'''를 하고 있었으나 25라운드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1위 자리를 내주면 이젠 무패 준우승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게 했다. 결국 25라운드 시즌 첫 패배를 당하며 3위로 주저앉았다가 끝내 4위로 떨어져 챔스도 못나가게 됐다. 그래도 옛날만큼 다시 부흥해가는것은 확실하다.
5.8. 2010-11 시즌
2010/11 시즌 '''발락을 재영입했다.''' 발락은 우승을 하러 왔다고 했지만 32라운드에서 FC 쾰른한테 패배하면서 같은 날 FC 뉘른베르크에게 승리한 도르트문트에게 우승컵을 내주면서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준우승을 한다. 이 시즌 발락의 활약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였다.
5.9. 2011-12 시즌
2011-12 시즌을 앞두고 팀을 잘 이끈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나자 그 뒤를 잇는 감독으로 SC 프라이부르크에서 선전한 젊은 감독 로빈 두트를 영입했다. 아르투로 비달이 유벤투스로 떠났지만 마인츠의 주포였던 안드레 쉬를레, 프라이부르크의 핵심 수비수였던 외메르 토프락과 브라운슈바이크의 유망주 카림 벨라라비를 영입하면서 우승 도전에 다시 나섰다.
DFB 포칼에서는 1라운드에서 2부리그 팀 디나모 드레스덴에 3:0으로 이기고있다가 연장끝에 3:4로 역전당하며 첫 경기에 탈락했다.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골키퍼 2명을 부상으로 잃었다. 주전 골키퍼인 레네 아들러가 장기부상을 당했고, 백업이었던 파비안 기퍼 마저 개막전에서 뇌진탕을 당해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결국 VfB 슈투트가르트의 유망주 골키퍼 베른트 레노를 긴급히 임대 영입하며 골키퍼 공백을 메웠다. 레노 골키퍼는 이적 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아들러의 부상 공백을 훌륭히 메웠고, 결국 완전 영입에 성공하며 이후 레버쿠젠의 든든한 수문장이 된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첼시 FC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7] 그리고 '''FC 바르셀로나'''와 8강 자리를 놓고 격돌하게 되었다.
1월 22일 후반기 첫 경기 마인츠와의 경기에서 3:2로 승리했지만 이 경기에서 로빈 두트 감독과 미하엘 발락 사이에 마찰을 빚었다. 2-2 동점 상황에서 발락을 교체 아웃시키자 발락은 두트 감독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악수를 거절하며 벤치로 향했고, 레버쿠젠 홈팬들은 두트 감독에게 야유를 보냈다. 이후 3경기에서 발락은 벤치만 지킨 채 경기에 나오지 못했고, 레버쿠젠은 2무1패에 그쳤다.
2012년 2월 15일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홈에서 바르셀로나에게 1:3으로 패배했다. 하프타임에 마누엘 프리드리히와 미할 카들레치가 메시 유니폼을 얻기 위해 다투는 촌극도 있었다.
16강 1차전 패배 이후 구자철이 데뷔골을 터뜨린 아우크스부르크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었고, 전반기 홈에서 1:4 패배를 안겼던 쾰른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3월 3일 홈에서 2004년 8월 이후 7년 7개월 만에 바이에른 뮌헨에 2:0 승리, 3연승을 기록하며 바르샤와의 2차전 전 좋은 분위기를 가져갔다.
하지만 3월 7일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FC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리오넬 메시를 전혀 제어하지 못한 대가로 메시에게만 무려 5골을 허용하며 1:7 대패를 당해 참혹하게 탈락했다. 바르사 골키퍼 발데스는 90분 내내 놀면서 경기관람했던 것에 비해 여러모로 레버쿠젠 골키퍼 레노만 농락당하느라 바빴던 경기. 더불어 메시는 역대 챔피언스리그 1경기 개인 최다 골 기록까지 차지했고 레버쿠젠은 불명예를 남겼다.
바르사에게 참패 후 리그에서도 부진이 이어져 25라운드 볼프스부르크 원정경기를 시작으로 4연패를 당하며 챔피언스리그와 멀어졌다. 결국 로빈 두트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사미 히피아와 사샤 레반도프스키 공동감독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공동감독 체제에서 레버쿠젠은 남은 6경기를 4승2무로 마무리하여 분데스리가 5위로 마감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시즌이 끝난 후 미하엘 발락이 은퇴하였다.
5.10. 2012-13 시즌
바르셀로나랑 치른 챔피언스리그 이후 거듭된 부진으로 인해 로빈 두트 감독이 경질되고 리버풀과 레버쿠젠에서 수비수로 활약했던 핀란드 출신의 사미 휘피에가 감독대행을 하게 되었다. 작년까지 해도 현역으로 뛰던 선수를 감독으로 선임한 거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으나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만든 팀 스타일을 잘 계승하여 바이에른 뮌헨을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2-1로 잡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이는 12-13시즌 뮌헨의 리그 유일한 패배이자 무패우승을 저지했다.
리그에선 뮌헨, 도르트문트 다음으로 3위를 차지하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여기에 팀 내 주전 공격수인 슈테판 키슬링은 24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시즌 종료 이후 팀 선수진의 물갈이가 시작되었는데 오른쪽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다니엘 카르바할이 다시 레알 마드리드로 돌아갔고, 안드레 쉬를레는 팀에 2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안겨주고 첼시 FC로 떠났다.
시즌이 끝나고 '''손흥민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적료는 약 1000만 유로로 5년 계약이다.[8] 그 외에도 팀 내 부족한 포지션에 대한 보강을 착실하게 하며 다음 시즌도 올해의 좋은 폼을 유지하려는 듯. 챔피언스리그 진출팀이기 때문에 탄탄한 스쿼드가 필요한 이유도 있다.
5.11.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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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도르트문트의 골키퍼 로만 바이덴펠러를 제치고 결승골을 넣기 전 장면.
포칼컵에서 립슈타트를 5-1로 대파하며 시즌을 예고했다. 이 경기에서 손흥민이 후반전에 교체 출전하여 1골 1어시스트를 올렸다.
분데스리가 개막전 프라이부르크와의 경기에서 팀 컬러인 '''선수비 후역습'''을 제대로 보여주며 3-1로 깔끔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 팀의 삼각 편대인 키슬링, 손흥민, 시드니 샘이 모두 골을 넣었다. 대체로 멋진 경기력을 선보여 국내외로 호평중.
한국인 선수가 들어간 팀들 중에서는 맨유 다음으로 재미있는 경기를 했다는 평이 많다. 특히 손흥민의 전 소속팀인 함부르크 SV가 강등권 탈출에 총력을 다하는 것[9] 과 비교되고 있다.
9라운드까지 7승 1무 1패라는 좋은 성적을 보이며 3위를 꾸준히 지켰다.[10] 다만 11라운드에서 18위 꼴지인 브라운슈바이크 원정에서 졸전을 보이며 0-1로 패배하면서 1위 바이에른 뮌헨과의 승점차가 4점차로 벌어졌다. 그럼에도 2위 자리를 유지했으며, 15라운드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손흥민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기면서 3위 도르트문트와의 승점차를 6점으로 넓혔다.
챔피언스리그에선 맨유, 레알 소시에다드, 샤흐타르 도네츠크와 조를 이뤘다.
1차전 맨유 원정에서 손흥민이 1도움을 기록했지만 결국 2:4로 패하며 여러모로 맥빠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차전 레알 소시에다드전 홈경기에서 2-1, 샤흐타르전 홈경기는 4-0으로 이기면서 조 2위로서 16강 희망을 점치고 있었으나 4차전 레알 소시에다드와 비기고 5차전 홈경기에서 맨유에게 '''0:5''' 참패를 거두며 3위로 추락했다. 6차전 결과에 따라 16강으로 갈지 유로파로 떨어질 수 있었던 상황.[11]
6차전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에서 토프락의 골로 1:0으로 승리, 동시에 맨유가 샤흐타르를 1:0으로 잡으면서 기어이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6강 조추첨에서 파리 생제르맹과 맞붙게 되었다. 1차전 안방에서 0:4 참패를 당했고 2차전 원정에서도 2-1로 패배하여 탈락했다.
이런 분위기는 리그로 이어지면서 2월 중후반 들어서 4, 5, 6위로 추격 중이던 샬케 04(1-2), 볼프스부르크(1-3), 마인츠 05(0-1), 10위 호펜하임(2-3)에게도 연이어 연패를 기록하며 3위 자리를 샬케에게 넘기고 4위로 추락했다. 게다가 5위 묀헨글라드바흐와 2점차, 마인츠 05와 볼프스부르크에게 3점차로 추격당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자리까지 위협을 받고 있었다. 30라운드에서 1무 8패만에 3-1로 아우크스부르크를 이기면서 4위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31라운드 꼴지였던 브라운슈바이크와의 홈경기에서 패널티킥으로 겨우 1-1로 비기는 모습으로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3위 샬케와 6점으로 승점이 벌어졌고 5위 볼프스부르크가 겨우 1점으로 추격하면서 4위 자리도 갈수록 위급해졌다.
결국 4월 5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2012년부터 감독을 맡았던 사미 휘피에 감독이 해임되었고, 사샤 레반도프스키 유소년 감독의 대행체제를 거쳐 4월 25일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감독이었던 로저 슈미트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슈미트는 14-15시즌부터 지휘봉을 잡는다.
최종 라운드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베르더 브레멘과의 홈경기가 진행됐고 손흥민의 결승골로 2대1로 이기면서 4위를 차지, 차기 시즌 챔피언스리그 예선 3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손흥민이 막판 맹활약을 했는데 만일 이 경기를 비겼더라면 레버쿠젠은 리그 5위로 역전당해 유로파리그로 떨어지게 될 뻔한 걸 이 결승골로 이기면서 승점 1점차로 4위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5.12.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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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려와 기량이 만개한 엠레 찬을 1시즌 만에 1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리버풀 FC에 넘겼지만, 함부르크 SV의 젊은 미드필더 하칸 찰하노을루를 구단 최고 이적료인 1400만 유로를 주고 데려오고, 1.FC 뉘른베르크의 에이스 요시프 드르미치를 700만 유로에 영입하는 등 공격수 옵션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 서울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경기결과는 레버쿠젠이 2-0으로 승리. 2013년부터 입고 있는 유니폼의 LG마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식후원 관계인 LG전자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경기. FC 서울은 원래 LG그룹 산하였고 현재는 GS그룹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여담으로 이 때 LG전자의 트위터 계정이 자신들이 후원하고 있는 레버쿠젠의 승리를 예측하는 트윗을 올렸는데, 일부 FC 서울 팬들이 '한국 기업이 왜 독일 팀을 응원하느냐', '남도 아니고 LG가 이럴 수 있느냐'[12] 며 맹비난을 퍼부었고 결국 LG전자 트위터에 사과문이 게시되고, FC서울 구단 계정마저 나서서 구단측과 합의하에 승부예측 트윗을 한 것이라고 해명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8월 8일에 열린 2014~2015 시즌 DFB 포칼 1라운드(64강) 알레마니아 발달게스하임(6부리그)과 경기에서 손흥민이 시즌 1호골을 기록하며 6-0으로 크게 이겼다. 8월 14일 류승우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로 6개월 임대되었다.
8월 23일에 열린 분데스리가 개막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시작한지 7초만에 카림 벨라라비가 분데스리가 역대 최단시간 골을 기록했고, 레노 골키퍼의 빛나는 선방들로 리드를 지켰으며 종료직전 키슬링의 추가골로 2-0 승리해 기분좋게 출발했다.
8월 20일에 열린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 코펜하겐 원정에서는 막판 손흥민이 챔피언스리그 첫 골을 넣은 게 결정골이 되면서 3-2로 꺾었고 2차전 안방경기에서 손흥민 선제골 등에힘입어 4-0, 합계스코어 7-2로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했다.
챔피언스리그 조추첨 결과 SL 벤피카, 제니트, AS 모나코와 한 조가 되었다. 조에 속한 모든 팀들의 전력이 비슷비슷하여 이번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예상이 가장 어려운 조라는 평.
8월 30일 헤르타 베를린과의 홈 경기에서는 주중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4-2 승리를 거뒀다.
9월 13일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골을 비롯한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겼고, 결국 수비의 불안은 9월 21일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1:4로 패배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9월 25일 아우크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이기고, 9월 27일 SC 프라이부르크와는 0:0으로 비기는 것으로 9월을 마무리 지었다.
10월 4일 챔스여파로 인해 SC 파더보른과 0:0으로 비겼고, 10월 18일에는 슈투트가르트전에서는 손흥민의 전반 두 골에 힘입어 3:0으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에 3:3으로 따라잡히는 최악의 경기도 선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챔피언스리그에서 간신히 회복하고 10월 26일 살케 04와는 1:0으로 이겨서 리그전에서는 4경기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11월에는 1일 함부르크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지는 것으로 출발했고, 11월 8일에는 마인츠와의 경기에서 비겼다.
11월 22일 키슬링과 손흥민 등의 골에 힘입어 하노버 96을 3:1로 이겼고, 11월 29일에는 주중 챔스리그에서의 패배를 딛고 벨라라비와 드르믹이 각각 두 골을 기록한데 힘입어 쾰른을 5:1로 이기면서 리그에서는 회복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12월 들어서 7일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1:0으로 지고, 14일 묀헨글라드바흐전에서는 1:1로 비기고, 18일 호펜하임전에서는 1:0으로 이기고, 20일 프랑크푸르트전에서는 1:1로 비기는 등 이기는 경기마다 단 1점 밖에 득점을 하지 못하는 득점난에 시달리면서 전반기를 마무리 짓게 되고 리그 휴식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레버쿠젠의 분데스리가 전반기, 즉 17라운드 성적은 7승 7무 3패 승점 28점으로 패배는 단 세 번 밖에 당하지 않았으나 이른바 얇은 선수층으로 챔피언스리그와 병행으로 리그를 진행하게 되면서 중하위권팀들에게 종종 무승부를 많이 당해서 승점을 많이 얻지 못했다. 그로 인해 샬케 04, 묀헨글라트, 아우크스부르크, 호펜하임 등과 함께 챔피언스 리그 직행이 걸려 있는 3위싸움을 힘겹게 해 나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리그에서는 이렇듯 초반의 강세와는 달리 약간 주춤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순항하고 있다. 첫경기에서 모나코에게 0-1로 패한 것 이외에는 홈에서 벤피카, 제니트에게 승리하였고, 특히 어려운 제니트 원정을 손흥민의 2골로 이기며 3승 1패 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조별리그 5라운드에서 모나코에게 또다시 0-1패배를 당하나 이미 그 전 치러진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6라운드 벤피카 원정에서 무를 캐는 사이 모나코가 안방에서 제니트를 잡는 바람에 마지막 라운드에 와서 순위가 2위로 내려가고 말았고, 결국 그 댓가로 16강에서 저번시즌 라리가의 양강 레알, 바르샤를 밀어내고 리그 우승을 차지한 AT 마드리드를 만나고 말았다.
오랜 휴식이 끝난 후 1월 31일에 열린 18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홈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는 약간 성에 차지 않는 결과를 보였고, 2월 4일에 열린 19라운드 헤르타 베를린과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간신히 승을 챙겼다.
2월 8일 열린 20라운드 베르더 브레멘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반에 2:1로 밀리고 있는 가운데 후반 시작하자마자 손흥민이 교체투입 되어서 활발한 공격력을 보여줬으나 카림 벨라라비의 탐욕스러운 모습과 후반 70분이 넘어가자마자 갑자기 바뀌어버린 크로스 축구에 공격양상이 단조로워지면서 결국 추가골을 넣지 못하고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4위권 진입에 상당히 중요한 경기였던 만큼 이번 패배는 레버쿠젠 입장에서는 타격이 꽤 있는 편이다. 특히 다음 경기가 리그 2위 볼프스부르크, 그 다음이 리그 5위 아우크스부르크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2월 14일 열린 21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의 홈 경기에서는 전반에만 0:3으로 밀리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후반 들어 손흥민의 집중력에 따른 기가막힌 골과 연달아 터진 강력한 두 골 즉 헤트트릭에 힘입어 3:4까지 따라 붙었고, 벨라라비가 71분에 골을 집어넣으며 4:4 동점이 되었다. 하지만 후반전 추가시간 거의 끝나갈 때 즈음에 바스 도스트의 네 번째 골이 터지면서 결국 4:5로 패배하고 말았다. 레버쿠젠의 수비수들과 레노 골키퍼의 한심한 경기력이 돋보였던 경기로 빌트지에서는 레버쿠젠의 골키퍼와 수비수 전원에게 평점 5라는 혹평을 내렸다. 그에 비해 손흥민은 평점 1로 호평을 받았다.
2월 21일 열린 22라운드, 손흥민과 지동원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아우크스부르크 원정 경기에선 1:1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던 도중 84분 라이나르츠의 중거리 골로 앞서나가면서 승점 3점을 챙기나 했지만 93분에 아우크스부르크의 '''골키퍼 마빈 히츠의 '''터닝슛'''[13] 에 실점하며 어이없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 경기가 저번시즌 라리가 우승팀이자 챔스 준우승팀에 현재 라리가 3위를 랭크하고 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랑의 챔스 16강 1차전 홈 경기라 절망적인 분위기였으나 57분 '''찰하노글루'''의 선제골로 1-0 승리를 거두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이날 레노 골키퍼도 중요한것을 몇개 막아주었고 선수들의 압박도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잘 먹혀드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2차전에서 상대 수비의 핵심인 디에고 고딘과 미드필더 티아구 멘데스의 결장을 이끌어냈다. 또한 아틀레티코는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사울 니게스와 길레르미 시케이라가 조기 교체되었다.
2월 28일 열린 23라운드, 프라이부르크와의 홈 경기에서는 전반 33분 지몬 롤페스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3월 3일 DFB 포칼 16강, 저번 시즌 DFB-포칼 8강에서 자신들에게 탈락을 안겨준 카이저슬라우테론에게 연장접전끝에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에 진출해서 만난 상대가 하필이면 바이에른 뮌헨이다. 그나마 홈경기이긴 하다.
3월 8일 리가 24라운드 파더보른 원정에서 파파도풀로스의 선제골과 손흥민의 멀티골로 3:0 승리를 거뒀다.
3월 13일 리가 25라운드 슈투트가르트와의 홈 경기에서 4:0으로 승리, 다가올 아틀레티코와의 챔스 원정 경기와 샬케 04와의 리그 원정 경기를 앞두고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3월 18일 챔피언스리그 2차전 아틀레티코 원정에서 0-1로 패하는 통에 1:1 동률이라 연장전까지 경기를 치뤘으나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PK에 강한 골키퍼 베른트 레노가 모든 슈팅의 방향을 읽고 라울 가르시아의 실축을 유도하고 코케의 슈팅을 선방해 내는 활약을 펼쳤지만, 첫번째 키커 하칸 찰하노글루가 키퍼 정면 소녀슛, 세번째 키커 외메르 토프락과 다섯번째 키커 슈테판 키슬링이 홈런을 기록, 2:3으로 패하며 이번에도 16강을 넘지 못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으로 3월 22일 어려운 샬케 04 원정에서 벨라라비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4위자리를 지킴과 동시에 현재 5위인 샬케와의 격차를 승점 6점차로 벌렸다.
4월 18일 부진에 빠진 하노버 96과의 홈 경기에서 깔끔한 4:0 대승을 거두면서 리가 7연승을 달성하였다.
4월 25일 FC 쾰른과의 원정경기에서는 1:1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연승행진을 마감하게 되었다.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곤살로 카스트로의 부재와 더불어, 공격진들의 부진이 두드러졌던 경기였다.
5월 1일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 경기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주중 챔스를 준비하기 위해 주전들이 빠진 뮌헨[14] 을 완전히 압도하였고 결국 하칸 찰하노글루의 멋진 프리킥 골과 율리안 브란트의 추가골[15] 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32라운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원정경기는 0-3으로 참패하면서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이 걸린 3위권 수성은 실패했다. 3위이던 보루시아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했는데 패배하면 4위를 거의 굳혀 전번 시즌과 마찬가지로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낼 듯 하다. 3위인 볼프스부르크는 3경기가 남아서 다 이기면 2위를 확정짓기 때문에 레버쿠젠이 2경기를 다 이기고 묀헨글라트바흐가 2경기를 져야 극적으로 승점 5점차를 뒤집을 수 있는 상황. 5위 아우크스부르크랑은 승점차가 12점이나 되기 때문에 2경기를 다 져도 최소 4위는 확정한 상황이다.
결국 33차전을 이겼으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도 이기면서 승점차 5점을 뒤집지못하고 마지막 1경기랑 상관없이 시즌 4위가 확정되었다.
5.13. 2015-16 시즌
8월 15일 호펜하임과의 분데스리가 첫 경기는 슈테판 키슬링의 골과 교체로 들어온 율리안 브란트의 골에 힘입어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후반 라스 벤더를 대신해서 들어온 아드미르 메흐메디의 뛰어난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던 경기.
8월 19일 라치오와의 챔피언스 리그 3차예선 원정경기에서는 기존의 약점이 문제가 되어 0:1로 패배했다.
8월 21일 이번 시즌 영입했던 차를레스 아랑기스가 훈련 중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을 입어 사실 상 전반기 아웃이 되고 말았다. kicker는 아랑기스의 대체자를 뮌헨의 제바스티안 로데나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로 예상하였다.
8월 22일 분데스리가 2라운드 하노버와의 원정경기에서는 1: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 경기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4-2-3-1 포메이션에서 4-4-2 포메이션을 꺼냈다는 것이 눈에 띄는 점. 전반 벤더-크라머의 미들 조합과 브란트와 메흐메디 찰하놀루의 절묘한 연계 플레이로 하노버의 수비진을 괴롭혔고, 박스 바로 앞에서 얻었던 프리킥을 찰하놀루가 침착하게 처리하여 골을 넣었다. 후반에도 몇 번의 찬스는 있었지만 살리지 못하고, 프리킥 골을 잘 지켜 승리했다. 특히 2선 중앙에서 뛰는 찰하놀루는 이번 경기에서는 오른쪽 측면에서 뛰었는데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되어 좋은 활약을 펼쳤다. 다만 왼쪽에서 뛰는 브란트가 다소 잠잠했고, 메흐메디의 결정력은 아쉬웠던 점. 미드필더에서는 벤더가 공수 양면에서 괜찬은 활약을 해줬고 무려 95%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한 크라머도 눈에 띄었다. 이번 경기의 결과로 분데스리가 2연승으로 순조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8월 27일(한국 시간 기준) 챔피언스 리그 3차예선 홈 경기에서 라치오에게 기분 좋은 3:0 승리를 거두며 32강에 진출했다. 하노버전과 마찬가지로 4-4-2 포메이션으로 메흐메디를 키슬링과 함께 투톱으로, 찰하놀루와 벨라라비를 양 사이드에 놓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찰하놀루는 번번히 슈팅을 하면서 골망을 흔들 기회를 엿봤고 결국 볼이 라치오선수 몸에 맞고 나온걸 마무리해서 선제골을 넣었다. 이후 벨라라비의 좋은 킬 패스를 받은 메흐메디가 골을 넣어 2:0을 만들고, 후반 막판 공간 침투하여 1:1 상황이 된 브란트의 패스를 받은 벨라라비가 마무리하여 3: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손흥민이 이적함에 따라 한 때 로저 슈미트감독 아래 있었던 도르트문트의 케빈 캄플을 영입하였다. 이적료는 1000만 유로.
8월 30일(한국 시간 기준) 분데스리가 3라운드 바이에른 뮌헨과의 원정경기에서는 0:3으로 크게 패했다. 이번 경기에도 로저 슈미트 특유의 강한 압박과 공간을 좁히면서 상대방의 점유율을 떨어뜨리는 전술을 들고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레버쿠젠 선수들의 몸이 무거웠고, 더글라스 코스타와 아르옌 로벤의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가 효과를 보면서 수비진이 쉽게 무너진게 패인이었다. 특히 로베르토 힐버트는 이번 경기 워스트라 불러도 할말 없을 정도의 플레이를 펼쳐줬는데, 이 경기에서만 PK를 두 번이나 내주며[16] 패배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또 로테이션을 돌릴 수 있는 공격진의 자원이 부족했던 것이 아쉬웠던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부터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를 영입했다. 등번호는 7번이고, 계약기간은 3년.
9월 13일(한국 시간 기준) 분데스리가 4라운드 다름슈타트와의 홈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승격팀 다름슈타트의 철저한 준비에의해 레버쿠젠의 공격 전개가 대부분 막혔고, 좋은 찬스들도 제대로 살리지 못해 1골을 잘 지킨 다름슈타트에 패했다. 이번 경기의 결과로 2승 2패 득실차 -2를 기록했다.
9월 17일(한국 시간 기준)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1차전 FC 바테 보리소프와의 경기에서 기분 좋은 4:1 승리를 거두었다. 이 날 이번에 영입된 치차리토가 팀의 3번째 골이자 레버쿠젠 데뷔골을 넣은 것은 덤. 비록 상대팀이 약체이긴 하지만 분데스리가 2연패로 다소 침체되었던 분위기를 만회할 수 있는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볼 수 있다.
9월 21일(한국 시간 기준) 분데스리가 5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3:0으로 크게 패했다. 도르트문트의 감독인 토마스 투헬은 레버쿠젠이 보여줬던 단점에 대해 완벽하게 학습한 것으로 보였을 정도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했다. 이 날 도르트문트는 공간을 좁히는것을 철저하게 막고자 미들진을 중심으로 측면으로 벌리는 패스와 뒷공간을 노리는 롱 패스로 레버쿠젠의 수비를 정신 없이 만들어 놓고, 짜임새 있는 수비로 레버쿠젠의 공격진들의 턴오버를 유발시켰다. 이 날 박스 근처까지 공을 몰고가는 상황은 많았으나 제대로 된 슈팅으로 연결하는 것 조차 하지 못하고 그 마저도 도르트문트 역습공격의 트리거로서 작용하게 되었다. 이 날 경기의 결과로 5전 2승 3패 등수는 13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5경기 동안 만난 상대 중에 강팀이 두 팀이긴 하지만, 약점에 대한 개선이 매우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5연전이었다.
9월 24일(한국 시간 기준) 분데스리가 6라운드 1.FSV 마인츠 05와의 홈 경기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고 3연패에서 탈출하였다. 무려 20개의 슈팅을 기록했지만, 1골 밖에 기록하지 못한 결정력이 매우 아쉬운 경기. 이 날 치차리토가 리그 데뷔 골을 성공시키면서, 레버쿠젠에서의 희망적인 커리어를 전망해 볼 수 있게 하였다. 이 경기의 결과로 6경기 3승 3패, 득실차는 -4를 기록하게 되었다.
9월 26일 분데스리가 7라운드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원정경기에서, 0:3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전반전 아드미르 메흐메디의 선제골과, 후반 율리안 브란트의 환상적인 프리킥골과 케빈 캄플의 리그 데뷔골 도합 3골을 터뜨리며 이전까지 이어졌던 부진 했던 골 결정력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좋은 경기였다. 이 날 승리로 4승 3패 득실차 -1 리그 5위를 기록하였다.
8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는 레노가 백패스를 헛발질하는 실책을 범하며 1:1로 비겼다. 다음라운드 함부르크 원정에서도 골이 나오지 않으며 0-0으로 비겼다.
이적 후 한 달 가량 2골(리가 1골, 챔피언스리그 1골)에 그치며 적응에 애를 먹는가 했던 치차리토는 10월 20일 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 2골을 시작으로 살아나기 시작했고 그 경기를 시작으로 모든 대회에서를 통틀어 14경기 18골을 득점하는 매서운 골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분데스리가 11월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고, 12월 12일 16라운드 초반 5연패 후 거침없는 상승세의 글라트바흐와의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으로 5:0 대승의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17라운드 잉골슈타트 원정에서도 치차리토가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 8승3무6패로 전반기를 5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에서 로마에 홈어웨이 4-4 무승부, 2-3 패배로 7실점하며 상대전적에서 뒤쳐진게 원인이 되어 결국 승자승에서 밀려 유로파리그로 떨어지고 말았다. 4시즌 전 챔피언스리그에서 합계 2-10 패배의 굴욕을 당했던 바르셀로나와 1무1패 합계 2-3으로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전 바르샤와의 홈경기에선 벨라라비의 탐욕으로 인해 승리했으면 16강에 갈 수 있었음에도 1-1로 비기면서 유로파로 가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후반기 도르트문트와 마인츠, 베르더 브레멘에게 연패하며 25라운드 기준으로 8위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특히 24라운드SV 베르더 브레멘과의 홈 경기에서 클라우디오 피사로에게 해트트릭을 내줬고, 그 다음 라운드인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구자철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0-3으로 끌려가다 3-3으로 비기면서 연패 탈출에 겨우 성공하였다. 2014/15시즌에도 볼프스부르크의 바스 도스트에 4골을 내주며 4-5로 패한 전적이 있는 레버쿠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치욕의 기록인 셈.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슈미트 감독은 심판 판정에 불응하며 퇴장당한 뒤 3경기 출장 금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포칼 8강전 홈경기에서는 브레멘에게 1-3으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유로파리그도 32강 스포르팅 리스본에게 2승을 거두고 16강에 올라갔지만 스페인의 강호 비야레알 CF를 만나며 탈락했다.
그러나 아우크스부르크와의 극적인 무승부 이후, 남은 9경기에서 7연승과 함께 8승 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였다.
2016년 4윌23일 기준 5연승을 거두면서 귀신같은 챔스본능을 보여주며 승점 51점으로 베를린을 따돌리고 3위로 치고 올라갔다 4월24일 샬케 04와의 리그경기서 전반에 2실점을 하지만 후반 7분동안 브란트 벨라라비 치차리토의 골로 대역전극을 이뤘다. 6연승을 거두며 베를린과 6점차로 벌렸다. 브란트는 6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였다. 팬들은 레버쿠젠에도 BBC라인이 나타났다며 찬양중.
최종적으로 18승 6무 10패 승점 60점으로 3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수비진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리가 12위 아우크스부르크와 13위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 구자철과 피사로에게 연속으로 해트트릭을 내줬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AS 로마와의 2연전에서 7골을 내주며 1무 1패를 기록하며 조별 리그에서 AS 로마와 승점 6점으로 동률을 이뤘지만 승자승 원칙에 밀려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중하위권 팀들의 경쟁이 치열한 리가에서는 공격력 강화를 통해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각 리그의 최강자들이 몰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수비력 강화 없이는 절대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을 것이다.
5.14. 2016-17 시즌
여름이적시장에서 알렉산다르 드라고비치(디나모 키예프), 율리안 바움가르틀링거(마인츠), 케빈 폴란트(호펜하임) 등을 영입했다.
리가 1라운드 묀헨 글라드바흐 전에서 2:1로 패했다. 치차리토가 부상으로 결장하여 시종일관 밀어붙였지만 결정 짓지 못한 공격진이 아쉬운 경기. 다만 후반 교체 투입된 핀란드 공격수 포얀팔로가 2분만에 데뷔골을 터뜨린 건 인상적이었다.
리가 2라운드 함부르크 전에서도 공격진은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는 후반 베른트 레노의 스위핑 미스로 선제골을 내주었다. 그러나 후반 교체 투입된 포얀팔로가 데뷔골을 연상시키는 주워먹기로 동점골을 터뜨린데 이어 추가 시간 헨리이히의 패스를 논스톱으로 때려 역전골을 넣고 얼마안가 추가골까지 성공시키며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1로 승리했다. 포얀팔로는 2경기 30분 남짓동안 4골을 터뜨리며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이후 챔피언스리그 체스카 모스크바 전에서 홈 2:2 무승부, 리그에서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게 치차리토의 PK 실축으로 1:2 패배, 홈에서 아랑기스의 PK 실축으로 아우크스부르크와 비기며 부진한 결과를 냈으나 마인츠전에서 치차리토의 해트트릭으로 2:3으로 승리, 도르트문트 전에서도 도르트문트 선수들을 잘 마킹하고 패스를 잘 차단하는 압박을 보여주며 좋은 수비 포지셔닝으로 2:0으로 승리하며 리그 2연승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 토트넘에게 1승 1무를 거두고 체스카 원정에서 비겨서 1승 4무로 승점 7점을 기록했지만 승자승에서 토트넘을 제치는것이 확정되며 2년전처럼 AS 모나코와 함께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마지막 경기는 모나코를 상대로 홈에서 3대0 승리를 거두며 무패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그리고 2년전처럼 16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재회했다.
그러나 리그에선 13 라운드까지 9위에 머물러있다. 로저 슈미트 체제 하의 레버쿠젠이 기복이 심하기는 하지만 호펜하임이나 라이프치히 같은 클럽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와중에... 8라운드에서 홈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호펜하임에 폴란트가 퇴장당하며 0:3 패배, 11라운드 무패행진의 라이프치히엔 홈에서 찰하노글루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2:3 역전패[17] 를 기록했고 12라운드 바이에른 뮌헨 원정은 1:2 패배, 13라운드 승격팀 프라이부르크에 홈에서 치차리토가 또 PK 실축을 하며 팀의 시즌 4번째 PK 실축으로[18] 1:1 무승부에 그쳤다. 하위권에 쳐진 브레멘 원정에서도 7라운드 2:1 패배를 기록했고[19] 9라운드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 2:1 역전승, 10라운드 다름슈타트에 홈에서 3:2 진땀승으로 리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포칼에서는 2라운드에서 3. 리가의 슈포르트프로인데 로테에 승부차기 끝에 떨어지는 이변을 당했다.
12월 11일 14라운드 샬케 원정에서 시작하자마자 나우두가 퇴장당한 상대에게 고전하다가 슈테판 키슬링의 후반 44분 천금같은 결승골[20] 로 1:0 승리, 4경기 만의 리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12월 18일 강등권의 잉골슈타트에 홈에서 1:2로 지며 기복이 심한 행보를 이어갔다. 16라운드 쾰른과의 라인강 더비 원정에서도 1:1로 비기며 6승3무7패 9위로 전반기를 마감하였다. 주전 공격수 치차리토가 6라운드 도르트문트전 이후 10경기 연속 무득점의 극심한 부진에 빠진 것과 라스 벤더, 카림 벨라라비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부진한 성적의 큰 원인이었다.
1월 22일 겨울 휴식기가 지나고 첫경기인 17라운드 3위 헤르타 베를린과의 홈경기에서 하칸 찰하놀루의 멀티골과 외메르 토프락의 선제골에 힘입어 베를린을 3:1로 격파 하였다. 홈에서 10라운드 다름슈타트전 이후 4경기만의 승리였다. 벨라라비가 부상에서 돌아오며 이전과는 다르게 측면공격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찰하놀루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이번 시즌 레버쿠젠의 페널티킥 징크스를 떨쳐냈고, 경기 후반에는 캄플의 측면 돌파에 이은 절묘한 로빙패스를 받아 멋진 발리슛을 성공시켰다. 7승3무7패 승점 24점으로 호펜하임, 도르트문트, 헤르타 등 3~4위 그룹을 승점 7점, 6점 차이로 추격했다. 그러나 1월 28일 하위권에 처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홈경기에서 찰하놀루의 코너킥 2도움과 함께 치차리토가 드디어 12경기 만의 득점에 성공하며 요나탄 타의 선제골[21] 을 더해 2:0으로 앞서갔으나 후반 슈틴들에게 2골, 하파엘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2:3 역전패를 당했다. 프라이부르크에 8위를 빼앗기고 9위로 추락했다.
1월 31일 KRC 겡크로부터 빅클럽의 구애를 받던 유망주 레온 베일리를 영입했다. 그리고 2월 5일에는 외메르 토프락이 시즌 종료 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월 3일 날벼락같은 소식이 떨어졌는데 7골 7도움을 기록하고 있던 에이스 하칸 찰하놀루가 4년 전 이적과정에서 생긴 계약 위반으로 FIFA로부터 '''4개월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는 악재를 맞이했다. 찰하놀루에 이어 치차리토까지 부상으로 빠져 19라운드 17위의 함부르크에게 0-1 일격을 당하며 순위 반동은 더더욱 힘들어 지고 있다. 결승골을 넣은 선수도 레버쿠젠 소속이었던 키리아코스 파파도풀로스라 더 뼈아팠다.
2월 10일 리가 20라운드 3위 프랑크푸르트와의 홈경기에서 부상에서 복귀한 치차리토의 멀티골과 이적 후 무득점 부진에 빠졌었던 폴란트의 레버쿠젠에서의 데뷔골로 3:0 대승을 거두며 연패에서 탈출, 경질설에 시달리던 슈미트는 일단 한숨을 돌렸다. 벨라라비는 2개의 도움을 기록했고 라스 벤더는 4개월 만의 복귀전을 치렀고 베른트 레노는 공식 경기 25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2월 16일 리가 21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에서 3:1 승리로 4개월 만의 연승에 성공했다. 카림 벨라라비는 신예 카이 하베르츠의 땅볼 크로스를 선제골로 연결시키며 분데스리가 통산 50,000호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치차리토는 2경기 연속 멀티골로 최근 3경기 5골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치차리토의 첫 번째 골은 레버쿠젠 통산 분데스리가 900번째 원정득점이었다. 만 17세의 하베르츠는 선제골에 이어 치차리토의 쐐기골까지 어시스트하며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월 21일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홈경기에서 상대의 날카로운 역습에 고전, 2:4로 패하며 8강은 어려워졌다.
2월 25일 리가 22라운드 마인츠와의 홈경기에서 초반 10분 동안 2실점하며 0:2로 무기력하게 졌다. 3월 4일 23라운드 도르트문트 원정에서도 6:2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고, 프라이부르크와 묀헨글라트바흐에 밀려 9승3무11패 승점 30점으로 10위까지 내려왔다. 13위 샬케의 승점이 27점임을 감안하면 더 크게 추락할 수도 있는 상황.
결국 3월 5일 팀의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로저 슈미트 감독이 경질되었다. 후임으로는 타이푼 코르쿠트가 부임했으며 임기는 시즌 종료시까지.
타이푼 코르쿠트가 부임하고 나서도 부진은 이어졌다. 3월 10일 24라운드 브레멘전에서 경기 시작 7분만에 케빈 폴란트가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79분에 클라우디오 피사로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로 비겼다. 경기 종료 직전 막시밀리안 에게슈타인의 파울로 페널티킥까지 얻어냈음에도, 외메르 토프락의 어이없는 실축으로 승점 2점을 허공에 날리며 브레멘과의 승점차를 좁히지 못했으며, 주중 15일 챔피언스리그 2차전 아틀레티코 원정에서도 반전 없이 0:0으로 비기며 16강에서 탈락했다. 3월 18일 25라운드 호펜하임 원정에서는 0-1로 패배했다.
4월 2일 26라운드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2-0으로 앞서다가 경기 종료 10분을 남기고 마리오 고메즈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역전패할 뻔 하다가 17살의 유망주 카이 하베르츠가 자신의 데뷔골을 중요한 순간에 동점골로 넣으며 패배를 겨우 면했다. 하버츠의 동점골이 없었다면 레버쿠젠은 볼프스부르크에게 순위가 역전당하며 13위로 추락할 뻔 했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잡지 못하면서 유로파리그 진출 경쟁이 힘들어짐은 물론이고, 16위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승점차도 3점에 불과하여 최악의 경우 강등 플레이오프까지 밀릴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레버쿠젠 바로 밑에 있는 브레멘, 볼프스부르크, 함부르크가 최근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 [22] 더군다나 주중 경기가 끼어있는 상황에서 원정 2연전을 치르는 일정에, 그 상대가 최하위 다름슈타트와 2위 라이프치히로 다름슈타트는 비록 최하위이긴 하지만 홈에서 도르트문트를 꺾은 전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만히 볼 수가 없고, 라이프치히는 나비 케이타의 복귀로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중. 게다가 원정 2연전 이후에는 홈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만나게 되는 등 앞으로의 일정 또한 순탄치가 않은 상황이다.
주중인 4월 5일 27라운드 최하위 SV 다름슈타트 98 원정에서 브란트와 폴란트가 각각 1골 1어시를 합작하며 2:0 승리, 6경기 만에 승리를 추가하며 12위에서 10위가 되었고 16위 아우크스부르크와 승점을 6점으로 벌렸다. 7위 프라이부르크에 승점 3점 차, 5위 쾰른에 승점 5점 차로 유로파리그에 대한 희망은 남아있는 상황. 그러나 4월 8일 28라운드 2위 RB 라이프치히 원정에서 종료 직전 유수프 폴센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1:0으로 졌고 샬케와 브레멘에 밀려 12위가 되었다. 4월 15일 29라운드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경기에선 예드바이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0:0으로 비겼는데 15위와 16위인 마인츠와 아욱국이 나란히 승리하며 16위에 4점차가 되었다. 유로파 마지노선인 7위 쾰른과도 4점차로 분데스리가 4위 밑으로는 아스트랄한 대혼전상태.
4월 22일 30라운드 6위 프라이부르크 원정에서 종료 2분을 남기고 슈텐첼에게 결승골을 실점하고 2:1로 패배하며 10승6무14패 승점 36점에 12위로 7위 베르더 브레멘에 승점 6점 차이로 멀어져 2008/09 시즌 이후 8년 만의 유럽대항전 진출 실패가 유력해졌다. 다행히 밑에 있는 아우크스부르크와 함부르크, 볼프스부르크가 패하고 마인츠가 비겨 16위와 승점 4점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4월 28일 31라운드 샬케와의 홈경기에선 전반전에만 3골을 허용하는 졸전 끝에 키슬링의 만회골로 영패를 겨우 면하며 1:4 대패를 당했다. 16위 아우크스부르크가 함부르크를 4:0으로 이겨 16위로 끌어내리고 13위가 된 가운데 마인츠와 볼프스부르크와 패배해 16위 함부르크에 승점 3점 차이가 되었다.
5월 6일 32라운드 17위 잉골슈타트 원정에서 플레이오프 확보를 위해 배수진을 치고 나온 상대에게 고전했고 후반 28분 조니 키텔에게 실점하며 패배 위기에 몰렸으나 5분 뒤 코너킥 상황에서 신성 하베르츠의 귀중한 헤딩 동점골로 1:1로 비겼다. 하베르츠는 2골 모두 강등 경쟁팀과의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에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15위-16위인 함부르크와 마인츠의 경기는 무승부가 되며 16위 함부르크와는 승점 3점을 유지했다.
5월 13일 33라운드는 시즌 마지막 홈경기이자 유로파리그 진출을 노리는 7위 쾰른과의 지역 더비였다. 최근 몇 시즌간 레버쿠젠이 꾸준히 유럽대항전 진출을 하고 쾰른은 강등권 근처에서 놀았던 것과는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먼저 2골을 실점했으나 키슬링과 포얀팔로의 골로 2:2로 비겼다. 16위 함부르크와 승점 3점 차이지만 레버쿠젠의 골득실은 -6, 함부르크는 -28이라 뒤집기가 어렵고 최종전 맞대결이 14위 볼프스부르크와 16위 함부르크의 맞대결이라 한 팀은 레버쿠젠을 넘을 수 없어 레버쿠젠은 클럽 역사상 첫 2. 분데스리가 강등은 피하고 잔류를 확정지었다.
5월 20일 헤르타 베를린과의 시즌 최종전 원정에서 시즌 최다 득점경기를 펼치며 6:2 대승을 거두었다. 치차리토가 선제골로 오랜만에 득점했고, 17세의 하베르츠는 데뷔 첫 멀티골을 득점했다. 최악의 경우 최종순위 15위까지 떨어질 수도 있었던 레버쿠젠은 최종전 유종의 미를 거두며 악몽같았던 시즌을 12위로 마감했다.
시즌 초반에는 페널티킥을 계속 놓치는 불운에 라스 벤더, 카림 벨라라비, 치차리토, 요나탄 타 등 시즌 중 부상자가 속출하고 폴란트의 새 소속팀 적응 문제, 찰하놀루의 징계로 인해 제대로 전력을 꾸리기 어려웠고 감독 교체를 겪고 시즌 막판까지 강등 위협으로 극심한 기복에 시달렸던 시즌이었다. 전반기에 죽쑤더라도 후반기에 뒷심을 발휘해왔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2008/09 시즌 이후 8년 만에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했고, 2002/03 시즌 15위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TOP 10 진입에 실패한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판 결정적인 활약을 했던 17세의 신성 카이 하베르츠의 발견 등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시즌 종료 후 6월 9일 레버쿠젠 선수 출신의 하이코 헤얼리히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4부리그의 얀 레겐스부르크를 2년 연속 승격으로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5.15. 2017-18 시즌
개막전 바이에른 뮌헨원정에서 1-3으로 패했고, 홈개막전이었던 호펜하임과의 홈경기에서 2-2로 비겼다. 9월 마인츠 원정에서도 3-1로 패하며 1무2패의 최악의 스타트를 맞이했다. 프라이부르크와의 4라운드 홈경기에서 4:0 대승을 거두며 첫 승을 신고했으나 곧바로 주중 헤르타 베를린 원정에서 1-2 패배를 당하며 1승1무3패, 14위의 부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베를린 원정 패배 이후 전반기 끝까지 12경기 무패에 성공하며 전반기 4위로 마감했다. 6라운드 홈에서 함부르크에 3-0 승리를 거둔 뒤, 7-8라운드 샬케 원정과와 볼프스부르크와의 홈경기를 1-1, 2-2로 비겼다. 그리고 9라운드와 10라운드 지역라이벌 묀헨글라드바흐 원정과 쾰른과의 홈경기를 5-1, 2-1로 이겼다. 11라운드와 12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 원정과 라이프치히와의 홈경기를 비겼으나, 13라운드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뒀고, 14라운드 부진에 빠진 도르트문트와의 홈경기는 1-1로 비겼다. 15라운드와 16라운드 슈투트가르트 원정과 브레멘과의 홈경기는 각각 2-0, 1-0 승리를 거뒀고, 전반기 마지막 경기 하노버 원정은 난타전 끝에 4-4로 비겼다. 34라운드 하노버 96과의 홈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승점 55점으로 호펜하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승점이 같았지만 골득실차에 밀려 최종 순위 5위를 기록하여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5.16. 2018-19 시즌
- 분데스리가: 4위
- DFB-포칼: 16강 탈락
- UEFA 유로파 리그: 32강 탈락
5.17. 2019-20 시즌
- 분데스리가: 5위
- DFB-포칼: 준우승 VS FC 바이에른 뮌헨
- UEFA 유로파 리그: 8강 VS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5.18. 2020-21 시즌
[1] 참고로 파르마 FC도 레버쿠젠처럼 UEFA컵 우승은 있지만 자국 리그 우승은 없다.[2] 유로파리그의 전신이 UEFA컵이긴 하지만 그 위상은 크게 다르다. 당시 챔피언스리그에는 리그별 우승팀만이 참가할 수 있었고, 자국리그 우승을 놓친 팀들은 아무리 강팀이라도 UEFA컵에 참가했기 때문에 유로파리그보다는 오히려 지금의 챔피언스리그에 가까운 위상을 지닌 대회였다. 이때의 업적을 2001/2002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3] 경기 종료 후 라우턴의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눈물을 흘리자 루디 푈러가 독일 국가대표 동료였던 그를 위로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4] 게다가 발락은 팀을 떠난 이후에도 준우승이란 준우승은 다 겪어보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 심지어 발락 뿐만 아니라 2001/02 시즌 레버쿠젠의 주전 멤버였던 노이빌레, 슈나이더, 라멜로프는 2001/02 시즌이 끝나고 열린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로 출전, 월드컵도 준우승을 하며 '''3개월 만에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 리그, 월드컵에서 모두 준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예외적으로 이들의 팀동료였던 루시우는 브라질 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하여 우승했고 2009년 이탈리아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여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UEFA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며 트레블을 달성, 2001/02 시즌 레버쿠젠의 3개대회 연속 준우승 불운을 떨쳐냈다.[5] 노보트니는 이 부상으로 인해 이후로도 계속 고생했고, 결국 2007년 33살의 나이에 은퇴했다.[6] 토마스 회르스터, 클라우스 아우겐탈러[7] 마지막 상대가 헹크 원정이라 이겼다면 조1위도 할 수 있었지만 1:1로 비기며 2위가 되었다.[8] 당시 레버쿠젠의 역대 최대 이적료를 갱신했다.[9] 9차전까지 2승 3무 4패로 15위. 18개 팀이 참가하는 분데스리가는 16위부터 강등권이다.[10] 7승 2무로 1위를 지키는 바이에른 뮌헨, 7승 1무 1패로 골득실에 앞서 2위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다음 순위이며 4위인 헤르타 베를린이 4승 3무 2패였다.[11]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을 이기고 맨유 원정을 가는 샤흐타르가 져야한다. 둘다 비기면 승점이 1점 뒤쳐진 레버쿠젠은 유로파리그나 가게된다.[12] 사실 앞에 서술됐듯이 남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13] 마빈 히츠의 통산 1호골이자 리그에서 3번째로 기록된 골키퍼의 필드골이다.[14] 1.5군이라고는 하지만 마누엘 노이어, 마리오 괴체,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 주전 선수들도 많이 투입되었다.[15] 이 날이 본인의 생일이었다. 가장 좋은 생일선물을 받은듯.[16] 그 두 장면 모두 힐버트의 어이 없는 실수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장면이였다.[17] 라이프치히에게 승격팀 최다 무패기록을 허용했다.[18] 3라운드 프랑크푸르트 원정, 4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전, 11라운드 라이프치히전에 이어 13라운드 프라이부르크전까지 페널티킥 실축으로만 승점 8점을 잃었다.[19] 이 경기에서 카이 하베르츠는 17세 126일로 구단 역사상 최연소 분데스리가 데뷔 선수가 되었다.[20] 키슬링의 시즌 첫 골이었다.[21] 분데스리가 통산 첫 득점이었다.[22] 특히 브레멘은 21라운드부터 27라운드까지 6승1무로 승점19점을 획득했는데, 20라운드까지 브레멘의 승점이 16점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다. 만약 27라운드에서 다름슈타트를 꺾지 못한다면 브레멘에게 순위 밀리는 것은 확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