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
1. 개요
分斷國家
원래는 하나의 국가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복수의 대립정부가 분할통치하는 형태로 나뉘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다시 통일된 단일국가를 지향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단어의 뜻만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나뉘었다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에 분리주의와 의미상 혼동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함의가 덧대어져 둘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분리주의의 예는 남수단[1] 이나 코소보처럼 기존의 국가에서 독립한 경우[2] , 체코와 슬로바키아처럼 하나 이상의 주체가 공식적으로 병합에 관심없는 경우로 이 항목에서 다루는 개념의 분단국가가 아니다. 만약 분단국가와 분리독립을 따로 떼지 않고 정의한다면 식민제국에 병합된 피식민지역이었다가 독립을 성취한 지역과 제국주의 열강들도 죄다 분단국가와 같게 된다(...). 다만 실제로 자국 정부의 합법성과 당위성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인식시키기 위하여 분단된 상대방을 분리주의 반국가단체로 몰아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안관계다. 자세한 건 후술.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어나게 된 미국 및 서방권의 자유진영과 옛 소련 및 동구권의 공산진영이 냉전을 형성하게 되고 자신들의 영역이나 주변국 등에 근접해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세력권 내의 위성국화 하기 위해 하나의 국가였던 곳을 2개 이상으로 분할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분단국가라는 분리독립도 아닌 특수한 상태에 대한 개념이 두드러졌다. 아프리카 수단이나 세르비아 및 몬테네그로와 같이 국민투표를 통해서 그 민족끼리 스스로 분할을 하였던 경우도 있고, 외세에 의해 나뉘었으나 뚜렷한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별개의 국가가 된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경우도 있다.[3]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분리도 넓은 의미에서의 분단으로 인정받기도 하며 분단된 한쪽 국가가 주변국에 점령당하여 통일이 요원해지는 몽골이나 아일랜드와 같은 케이스도 있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흔히 한국을 '''현재 세계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라고 말할 때가 많이 있는데, 이는 냉전의 영향으로 이념대립에 의해 원래 하나였던 국가가 분단된 현실을 강하게 어필하려는 것일 뿐이지 분단국가는 저마다의 사연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면 틀린 것이다. 다만 비슷한 이유로 분단됐던 독일, 베트남, 예멘은 모두 통일이 된 상태라는 점 때문에 통일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목적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법이다. 하지만 이미 통일된 독일, 베트남, 예멘은 둘째로 치더라도 중국과 키프로스도 이념 갈등으로 분단된건 매한가지다.
한국과 가까운 이웃나라인 중국 역시 냉전시대때 국공내전으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분단이 있기는 하나, 외인이 크게 작용한 사례와 내인이 크게 작용한 사례는 분명히 다르다. 한국은 분단의 영향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이고, 중국은 전쟁의 영향으로 분단이 된 것이다. 후삼국시대 이후 고려, 조선 등 단일 민족이라는 유대감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한반도와 달리 중국과 대만은 명청대 이전까지는 아예 다른 지역, 다른 민족으로 단절되어 지낸 시기가 비교적 긴 데다 민족적, 언어적으로 중국과 비슷하게 대만 원주민들이 밀려나고 중국 한족들이 수적 우위를 차지하여 중국에 흡수, 동화된 시기도 근세기에 그쳐 역사적인 배경이나 맥락이 남북한과는 다를 뿐더러,[4] 양측의 규모가 너무나 현격하게 차이가 나고, 그로 인해 대만의 국제적 지위도 애매하여, 양쪽 다 국제[5] 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갖는 남북한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6] 대만은 오히려 자기가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분단국가라는 이미지보다 분리주의 단체로 정치당하는 신세다.
냉전 시대 때 이념으로 분단된 국가는 상대국을 괴뢰 정권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은 북한을 소련의 괴뢰 정권으로 규정했'''었'''고, 북한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미국의 괴뢰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화민국도 비슷하게 중화인민공화국을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했었다.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미국의 괴뢰 정권으로 규정하였다. 키프로스도 남키프로스는 북키프로스를 터키의 괴뢰 정권이라 하고 북키프로스는 남키프로스를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괴뢰정권이라 비난하고 있다.
2. 유형
1990년 통일원 통일홍보국이 낸 홍보만화책 <통일로 가는 길>[7] 에 따르면, 분단국가의 유형은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 국제형 분단: 특정 국가가 너무 강대해서 주변국에 위협이 될 시, 강대국들이 강제로 갈라버린 국가들이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북한, 독일연방공화국-독일민주공화국이 대표적 사례이다.
- 내쟁형 분단: 같은 민족끼리 뜻이 안 맞아 계속 다투다 갈라지게 되는 유형을 말하는데, 중국-대만의 사례가 있다.
3. 분리주의와의 차이
흔히 분리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개념은 서로 다르다.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 단일한 국가 안에 복수의 지역이 있는데, 이중 일부 지역이 별개의 독립된 국가를 수립하길 원하거나, 그러한 논리의 일환으로 갈라서게 된 사례. : 분리주의
- 복수의 국가가 있다. 이들은 현재 서로 다른 국가이지만 과거에는 하나였으며 어떠한 이유로 나뉘어진 상태이나, 단일한 국가를 추구하며 복수의 국가임을 부인하고 있다. 실정은 어떠하든 분단 양측 모두 명분상으로는 어떠한 형태로든 단일한 국가로 통일을 지향한다. : 분단국가
4. 사례
다음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분단된 국가 사례이다.
4.1. 현재의 분단국가
4.1.1. '''대한민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제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직후 미국과 소련이 분할 주둔하면서 분단의 원인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원래는 미소군정의 신탁통치를 받다가 사회가 안정되면 단일국가를 수립하기로 했으나, 결과적으로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한반도 남부에서 탄생하였고, 이어 9월 9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반도 북부에서 탄생하면서 본격적인 분단이 전개되었다. 급기야 1950년에 전쟁이 발발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참전하게 되면서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위기에 놓였다가 1953년에 전격 휴전에 돌입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장치였던 휴전이 종전으로 진전되지 못하면서 수십년간 비정상적인 휴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분단과 전쟁 상황은 70년 넘게 계속되고 있으며, 서로간의 왕래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기본적으로는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환수하려는게 핵심이기에 적대관계로 규정되며,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조상에서 비롯된 가장 가까운 이웃이 웬만한 이름모를 먼나라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 극한의 대립을 벌인 적도 있었지만 관계 개선이 모색된 적도 있다.
남북관계 참조.
4.1.2. '''중화인민공화국''' - '''중화민국'''
이념적인 분단임에는 동일하지만, 위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중국 전체를 통치하고 있었으나, 중일전쟁이 끝난 후 장제스를 필두로 한 중국 국민당과 마오쩌둥을 필두로 한 중국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국공내전은 사회적인 혼란을 극대화하였다. 싸움의 승기가 자신에게 가까이 왔음을 느낀 마오쩌둥은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파죽지세로 영역을 넓혀갔다. 난징에 있던 국민당 정부는 피난을 거듭하다 결국 지금의 타이완 섬까지 몰려나게 되었고[8] , 이윽고 대륙에 대한 통치권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모두 빼앗기고 실질적으로 섬나라로 전락하였다. 그때부터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섬의 중화민국이 각자도생하며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국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중국 논리를 주장하며, 중국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비록 내전에서는 타이완 섬까지 밀리는 수모를 겪었지만, 중화민국은 1945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유엔을 중심으로 외교적으로는 China로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반면, 대륙을 제패한 자신감이 충만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은 한국 전쟁에도 개입하여 유엔에 대적한 까닭에 '침략자'로 낙인이 찍혀 오랜 기간을 '죽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중화민국은 세계적으로 '중국'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오히려 덩치 큰 중화인민공화국이 소외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유엔에서 심상치 않은 전개가 펼쳐졌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이 새로운 중국 대표로 인정받으며 상임이사국 지위까지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반발해 유엔에서 탈퇴한 중화민국은 '''졸지에 가진 것 없는 초특급 약소국이 되어 외교적으로도 많은 관계를 잃으며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유엔 재가입을 타진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강력한 저지와 회원국 다수의 외면으로 무산되었고, 다른 국제기구에는 대부분 가명이라도 써서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세계무역기구에서 이 나라가 쓰는 이름은 '''대만팽호금문마조 개별관세구역'''이니 말 다 했다.
그 와중에도 대만 해협은 줄곧 긴장 상태가 유지됐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엔에 입성하여 중화민국을 팽시키는데 성공하였고 덩샤오핑 시대에 개혁 개방의 길로 나서고 미국과도 수교를 하기에 이르러 중화민국에 대한 노골적인 강경 조치는 줄었고,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감도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중화민국도 내부적으로 오랜 계엄을 종식하고 민주화가 실현된데다 절대적인 쪽수의 한계로 중화인민공화국에 함부로 도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해협이라는 자연적 장벽까지 있어서 전쟁 재개의 위험은 오히려 남북한이 철책을 두고 직접 맞닿은 한반도보다 훨씬 낮다.
지금은 상호왕래가 허용되면서 타이완 섬의 기업들이 대륙으로도 많이 진출했으며, 대륙 관광객들도 타이완이나 진먼 섬을 여행하기도 하는 등 나름 훈훈한 교류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통일을 거론하지 않는 투트랙 상태이다. 어쨌든 양측의 긴장감이 전보다 많이 완화된 것은 사실. 이를 상징하듯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미 징병제를 폐지했으며[9] 중화민국도 징병제를 폐지하는 수순. 이런 면에서 보면 징병제를 고수하며 시시각각으로 대립하는 남북한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양안의 경계는 상당히 느슨해졌음을 실감케 한다.
최근 내부적으로도 양안통일에 대한 이견이 근래에 많이 엇갈리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이념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고 국내에서 이에 반하거나 다른 방식의 관점을 용납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된 중화민국에서는 대륙처럼 획일화된 이념을 강요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중화민국 중심의 통일이나 대등한 통일, 삼민주의적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지향하는 자들과 통일을 반대하고 타이완만을 위한 국가로서 탈중국화할 것을 지향하는 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통일을 반대하는 후자는 단순히 통일 거부를 넘어 중화의 정체성을 가진 중화민국으로부터의 독립까지 내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타이완 문제에는 항상 '독립'이라는 키워드가 따라오는데, 이건 '''타이완을 지배한 적도 없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독립운동이 아닌''', 중화민국이든 중화인민공화국이든 모르겠고 자기들끼리 잘 살아보자는 의미인 '중화로부터의 독립'이 되는 것이다.
범록 강경파 중에는 타이완이 아예 중국에 속했던 적이 없다(!!!)거나 그러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현재의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 정부는 마치 한반도를 지배하던 외세 정권인 일본이나 미소군정처럼 취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대만은 청나라 영토가 되었던 전례가 있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만주 등과 함께 가져갔다가, 태평양 전쟁에서 승전한 중화민국에게 '''반환'''된 것이지만, 아무래도 타이완 토박이들[10] 입장에서는 그냥 지배자만 바뀌어 온거지 중화의 정체성까지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이 지배할 때는 일본인으로, 중화민국이 지배할 때는 중국인으로 둔갑해야만 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느끼고 대만인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확실히 대만은 오랫동안 역사적, 언어적 동질성을 공유해왔던 한반도의 남북한과 달리 근현대를 제외하면 역사적인 연관성이 느슨한 편이다. 이전까지는 한족과는 다른 대만 원주민들이 거주했고, 민족적으로 한족의 피가 가장 많이 섞여들어간 시기는 명나라 말기 때부터이다. 하지만 대만의 독립 주장은 무조건 동질성 문제라고 보기 어려운데, 대만은 중화권으로 볼 법한 요소가 충분히 강세이며 본성인이든 외성인이든 둘다 중국계 한인들이란 점이다.[11] 게다가 교류가 꽉 막혀있는 남북관계와는 달리, 양안은 그럭저럭 괜찮은 교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의 역사가 길었다고 해서 무조건 동질성이 더 깊은 건 아니다. 결국 대만의 정체성 거부는 '대륙을 먹을 형편은 못되니 대륙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 독립하겠다'는 정치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중국은 대만을 홍콩, 마카오와 함께 자신들의 일부로 간주한다. 물론 홍콩과 마카오는 현재로서는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만큼 그 두 곳은 중국 영토가 맞다.
자세한 사항은 양안관계 참조.
4.1.3.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키프로스 섬은 언어, 민족, 종교가 완전히 다른 터키계와 그리스계가 공존하고 있고, 불운하게도 여기에 오랜 앙숙으로 있는 터키와 그리스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개입돼 분단국가가 되었다.[12] 현재 터키계가 주축인 북키프로스는 터키만이 승인을 하였을 뿐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승인된 바 없는 미승인국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다. 때문에 국제적인 행사 등에서는 그리스계가 주축인 남키프로스만이 '키프로스'라는 이름을 당당히 달고 참여한다. 분단 전 키프로스 국기는 현재 남키프로스 국기로 쓰이고 있고, 북키프로스에서는 북키프로스공화국 국기와 함께 터키의 국기가 함께 게양될 때가 많고 남키프로스에서도 그리스의 국기가 함께 게양되면서 각각 터키와 그리스를 등에 업고 강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국제연합에서 북키프로스를 터키가 키프로스 북부지방을 불법 점령하여 탄생한 괴뢰정권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통용되는게 일반적이 되었다. 다만 북키프로스에 남키프로스 정부의 행정력이 전혀 못 미치고 있으며 별도의 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본다면 분단국가가 맞다. 이쪽도 한반도의 휴전선과 같은 철책이 존재하고 유엔이 감시하는 Buffer Zone이 설정돼 있는데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와 유사하다
가뜩이나 터키가 북키프로스를 포기하면 전략적 요충지에 큰 문제가 생길것이다. 사실상 그리스에게 내주는 꼴이 되어 터키의 턱밑에 세워지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기에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를 터키가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스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일 것이다. 한일관계만큼 앙숙이기 때문. 심지어 북키프로스는 북한이랑도 밀접한데 둘 다 국제제재를 받으니 대북제재 회피망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 유학생, 노동자들이 급파되어 있고 해커들과 공작원까지 공조하고 있다.
이런 기사도 있으니 참고하자. 워낙 국제적 영향력이 적은 소국이다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은 덜하지만 어쨌든 분단국가이다. 근래 통일 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급물살을 타다가 또 다시 역경을 맞은 듯하다. 그래도 남북 양측이 모두 의지가 강했고 많은 이견들을 절충했던터라 희망의 불씨마저 꺼트리지는 않은 듯 하다.
4.2. 예전의 분단국가
4.2.1. 서독 - 동독
1945년 나치 정권이 패망하게 되면서 독일은 전범국이라는 오명을 안게 되고, 알자스, 칼리닌그라드, 동프로이센등 많은 본국 영토를 주변국에 반환,할양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분할 점령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분할 점령하에서 자유주의 정권을 세우려는 미국, 영국, 프랑스와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려는 소련의 이념이 대립하여, 결국 통일된 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1949년 미국, 영국, 프랑스 점령지역에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소련 점령지역에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정권이 따로 들어서 동서냉전의 희생양이 되어서 동서로 분단되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심지어 당시 동독이 에워싸고 있었던 베를린도 옛 점령군의 점령 지역에 따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할되었고,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었다. 동구권의 개혁, 개방 열풍속에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동독 정부는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10월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하면서 분단국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사실 동서독이 분단 국가라는 관점은 서독의 입장에서나 그렇지 동독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정부는 독일 통일이 이뤄지면 자신들이 불리해지기 때문에, 자국과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이 그냥 남남인 것으로 취급하여 독일 연방 공화국을 자국과 다른 독립국으로 승인했다. 물론 독일 연방 공화국에서는 자국이 분단 국가라고 인식해서 통일을 목표로 삼고 독일 민주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국가라고 승인하지 않았다. 독일 연방 공화국은 건국 초기에 할슈타인 원칙에 따라 외국이 독일 민주 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면 그 나라와는 외교 관계를 맺지 않기도 했었을 정도였다.[13] 독일 연방 공화국은 나중에 이 원칙을 철회하고 다른 나라가 독일 민주 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묵인하게 되지만, 스스로는 독일 민주 공화국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소련과 폴란드가 차지한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以東)의 옛 영토까지 회복해야 할 땅으로 간주했었다.[14] 그래서 독일의 분단은 당사국 중 한쪽만 분단 상황임을 주장했고 고토 회복까지 운운했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들의 사례와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여담으로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정권 시대에는 오스트리아 역시 독일 민족 국가의 일부로 여겨져서 강제로 통일이 되고, 이후 독일의 한 지역으로 여겨졌지만 전후에는 오스트리아는 독일과는 완전히 다른 국가로 분리되었으므로 '분단국가'로 보지 않는다.
독일 재통일 참조.
4.2.2. 북베트남 - 남베트남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였던 베트남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의 침략을 받다가, 일제의 패망으로 호찌민을 중심으로 공산성향의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북반부에 수립되고, 남반부에는 옛 왕조를 모시는 베트남국이 성립되었으나, 프랑스와의 전쟁이 일어났고, 결국 통일된 정권을 수립하지 못하고 1954년 북위 17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1955년 남반부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성립되어 남북베트남 간의 이념대립이 계속되었다.
몆번의 군사충돌이 있다가 결국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미국과 대한민국 등까지 참전하는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으나, 최후에는 북베트남이 승리하게 되면서 남베트남은 망하고 사회주의 통일로 분단에 종지부를 찍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되어 현재에 이른다. 사실상 북쪽의 흡수통일이고 통일 베트남 정권도 구 북베트남과의 연속성을 두고 있지만, '명칭'이나 '형식'만 놓고 보면 흡수통일은 아니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남베트남 공화국'이 합쳐지면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으므로. 게다가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지자 바로 통일이 된 것이 아니라 남베트남에 새 정권이 생기고 이 새 정권이 북베트남과 통일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래서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진 후 통일이 될 때까지는 1년 2개월이 걸렸다.
베트남 통일 참조.
4.2.3. 북예멘 - 남예멘
예멘은 16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에 남부지방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북부 지방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왕국으로 먼저 독립했으며, 1962년 쿠데타로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8년간의 내전이 벌어졌고 공화파가 승리하여 1970년 왕정이 완전히 폐지되고 예멘 아랍 공화국(북예멘)이 성립되었다. 남부지방은 196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남예멘)이 성립되었다. 남예멘과 북예멘은 성향은 달랐지만, 통일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며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공산권의 쇠퇴로 북예멘 쪽이 협상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1990년 통일하여 예멘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통일 후 구 북예멘 출신과 구 남예멘 출신들의 갈등으로 구 남예멘이 재분리를 선언하자 다시 내전이 터져서 북예멘의 승리로 끝났다.
분단 국가 중 북쪽이 자유 진영인 유일한 케이스다. 북한, 북키프로스, 북베트남은 사회주의 진영 국가인데 비해서다.
현재 예멘은 내전 상태로 시아파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비롯한 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예멘 정부는 남쪽으로 후퇴, 아덴을 임시 수도로 삼으면서 사실상 남북으로 다시 나뉘려는 모양새다. 다만 후티 반군이 독립을 선언하지는 않아서 북부에 따로 국가 형태의 무언가가 성립되지는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아랍연합군이 결성되어 후티 반군과 전쟁을 벌이고는 있지만 후티 반군의 저항이 워낙 거세 사우디아라비아는 굴욕만 맛보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면 이제 분단이 아니라 아예 남수단처럼 남남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예멘 통일 문서 참조.
5. 분단국가의 국세(國勢)비교
모두 인구가 많은 쪽이 체제경쟁에서 이겼거나 이기는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6. 출처
-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9권: 우리나라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206.
[1] 남한, 서독과 달리 국호가 그냥 남수단일 뿐이다.[2] 물론 기존의 국가에서 독립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례가 많으나 이를 분단국가로 보지는 않는다. 소말릴란드가 대표적인 예.[3] 사실 몰도바측에서 통일에 나섰던적이 있었지만 가가우지아와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루마니아와의 통일에 반발하면서 전쟁이 일어난데다가 몰도바 중앙정부가 패하는 바람에 없던일이 되어버렸고, 현재는 루마니아에서 통일움직임은 있지만 몰도바가 경제적으로 가난한데다가 가가우지아와 트란스니스트리아 문제가 급하다보니 통일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4] 물론 현재는 대만에서 중국계 한족이 대다수이고 원주민 또한 한족에 동화된 경우가 많아 현재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이들 자체도 정체성은 중국인이라는 정체성과 대만인이란 생각이 엇갈리고 있다. 이는 한족인 사람들도 마찬가지.[5] 남한과 북한의 수교국을 확인해보면 남한이 북한보다 수교국은 훨씬 더 많지만 전 세계적으로 남북한 동시 수교국도 꽤 많이 존재한다. 특히 과거 공산국가였던 베트남, 중국, 몽골, 독립국가연합, 동유럽국가들이나 6.25 참전 16개국 일부 국가들 중에도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 있다.[6] 90년대 들어 국제 연합(유엔)에 남북한 모두 가입하게 되었다. 한국의 유엔 가입은 소련과 중공, 동독, 베트남, 폴란드, 쿠바 등의 공산권에서 계속 방해를 놓고 반대를 했기에, 냉전이 끝날 90년대 무렵이 돼서야 유엔에 가입이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유엔 가입은 미국, 대만, 영국, 서독,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가 계속 반대했다.[7]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가 집필/작화에 참여했으며, 일부 내용은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에 인용됐다.[8] 공식적으로 수도를 바꾸었다는 내용이 없고, 타이완은 1945년에 편입한 영토이기 때문에 망명도 아니다.[9] 명목상으로는 한동안 유지하였다. 어차피 여기는 어차피 필요한 병력보다 징병 대상자가 더 많고 군대나오면 출세하는 분위기라 군에 앞다퉈 지원하기 때문에 가기 싫으면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 명목상 징병제이고 사실상 모병제였으나 이제는 명목상으로도 징병제가 완전히 폐지된 것이다.[10] 원주민이 아니라 좀 더 일찍 대만으로 건너간 한족들. 오히려 원주민 입장에서는 대만 독립이 진짜 지배자만 바뀐 거다.[11] 덤으로 대만과 대륙의 관계성을 부인하기 위해 거론되는 대만 원주민들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범람연맹을 지지하는 경향이라고.[12] 그리스 군사정권이 키프로스에 군대를 파견해 쿠데타를 일으키자, 터키도 강경대응 하여 키프로스를 침공해버린다. 그리고 키프로스의 북부를 점령한다. 이로 인해 그리스 군사정권은 실각한다.[13] 단 당대의 양대 강대국이자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은 예외로 수교했는데, 이건 소련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소련은 자신들이 건국에 관여한 동독을 독일의 유일 합법 정부하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과 동독의 수교는 소련과 서독의 수교로부터 한참 지난 뒤다.[14] 후대로 갈수록 이 관념이 희박해지고 결국 독일 통일 때 완전 포기했지만.[15] UNSD 2012년 자료 기준[16] IMF 2013년 자료 기준[17] 흔히 알려진 9,251㎢는 키프로스 공화국의 명목상 면적이므로 여기서 북키프로스의 면적을 빼야 한다. 기억하자. 국제사회는 북키프로스를 인정하지 않는다.[18] CIA World Factbook 1990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