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딘 지단/국가대표 경력
1. 개요
지네딘 지단의 국가대표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2. 데뷔
A매치 첫 데뷔는 1994년 8월 17일 체코와 맞붙은 친선 경기였는데, 0-2로 끌려가던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된 지 얼마 안 되어 수비수 2~3명을 드리블 돌파하고 환상적인 중거리 골로 데뷔 골을 기록했고, 이후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를 꽂아 넣어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었다. 지단은 이때의 감격에 대해 "절대 잊지 못할 만큼 컸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다비드 트레제게, 티에리 앙리, 클로드 마켈렐레, 니콜라스 아넬카, 유리 조르카에프 등 황금 세대와 같이 맹활약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지네딘 지단이 선발되지 못한 1994년 미국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프랑스는 약체 이스라엘에게마저 2-3으로 충격패하고, 또한 불가리아전에서 다비 지놀라가 엉성한 크로스를 차는 바람에 백패스가 되면서 불가리아에게 공을 내주었고 결국 역전 골을 얻어맞으면서 연달아 패배하였다. 부진한 성적으로 결국 1990년에 이어서 또 다시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지역 예선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1][2]
참고로, 1990년과 1994년 레 블뢰의 스쿼드는 지네딘 지단이 맹활약했던 1998년의 황금세대와 비교해도 그에 못지 않게 화려했었다. 다비드 지놀라, 장 피에르 파팽[3] , 에릭 칸토나, 폴 르갱같은 황금세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1990년, 1994년 세대를 통틀어서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라고 부른다. 지단 급의 선수가 월드컵에 처음 나온 것이 꽤 늦은1998년인(한국나이로 27살)이유는 결국 90 94월드컵에 프랑스가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
3. UEFA 유로 1996
지단은 당시 대회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프랑스는 4강까지 올라갔다. 당시 지단은 프랑스 국가대표로 주전을 차지했지만, 이후 대회에서와는 달리 입지를 완전히 다지지는 못했다. 지단은 그래도 대회 내내 평타 정도를 쳤으며, 8강전과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나서서 두 번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체코와의 준결승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탈락했다.
4.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전부터 지단은 이미 스타 플레이어였고, 대회 전부터 호나우두, 데니스 베르캄프와 함께 가장 유력한 MVP 후보 중 하나로 꼽혔다. 물론 배당은 호나우두가 가장 높았지만, 지네딘 지단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 마냥 깜짝 등장한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지단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느껴진 것은 아무래도 2경기 출장 정지 탓이 크다.
이 대회에서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티에리 앙리와 유리 조르카에프를 전방에 세워 상대 진영을 헤집었다. 이 때 지단이 전진하면서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해 디디에 데샹이 전진해야 했는데, 그 뒤에 펼쳐진 공간은 마르셀 드사이와 로랑 블랑,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며 미친 듯한 운동량을 보여준 릴리앙 튀랑이 성공적으로 메웠다. 이때의 레 블뢰는 지단은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도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급이었다.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만 해도 훌륭한 플레이로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린 지단이었지만, 사우디와의 조별 리그 2차전에서 사우디 주장 푸아드 아민의 배를 밟아 버리는 행동으로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4] 이로 인해 지단은 2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으며, 결국 조별리그 3차전과 16강전 경기에 뛸 수 없었다.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 복귀를 하였으나, 이 경기 자체가 0:0으로 무승부로 비긴 상태에서 승부차기까지 갔던 경기였기에 딱히 돋보이지는 않았고,[5]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릴리앙 튀랑의 인생 골 2개가 더욱 강렬하였다.[6]
결국 레 블뢰는 결승전까지 진출을 하였지만, 지단이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신들린 활약으로 조국을 결승으로 이끈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와 비교한다면 당연히 아쉬운 활약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결승전까지의 지단의 활약을 평가하자면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닌 정도의 준수한 활약이었다. 물론 지단은 지단이었지만 그에게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었다고 해야 할까...
실제로, 당시만 해도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에 MVP 투표를 했기 때문에 대회 MVP는 예상대로 호나우두였고, 2위는 대회 골든 슈 수상자인 다보르 슈케르가, 3위는 릴리앙 튀랑이 차지하였다.[7] 그리고 결승전 직전 도박사들의 예측은 브라질의 우승이 6:4 정도로 우세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호나우두의 발작 사건으로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월드컵 결승전이지만, 그래도 브라질이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단은 코너킥 두 번을 모두 헤더로 골대 안으로 꽂아 넣으며 레 블뢰의 승리를 이끌고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반면, 호나우두는 경기 내내 제대로 화면에 잡힌 장면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호나우두는 고개를 숙였고, 지단은 기쁨의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 세계는 '마에스트로'의 충격적인 등장에 열광했다. 그렇게 지네딘 지단은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레 블뢰 역사상 첫 번째 FIFA 월드컵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다.
(왼쪽부터 다보르 슈케르,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이미 시즌에서 유벤투스의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끄는 활약을 보였던 지단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상까지 더하게 되면서 1998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시상하는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은 지단이 주인공이 되었다.
5. UEFA 유로 2000
지네딘 지단 이외에도 티에리 앙리와 다비드 트레제게가 기량을 만개한 상태였던 때라, 안 그래도 사기 캐릭터급으로 강했던 레 블뢰의 능력이 정점을 찍었다. 8강 스페인전에서 매우 잘 감긴 불꽃 프리킥으로 선취 득점을 하며 프랑스를 4강으로 이끌었다.
4강에서 루이스 피구가 이끄는 포르투갈과의 혈전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PK 골든 골을 성공시킨다. 이 때 연장 종료 직전 PK가 선언되었을 때 루이스 피구의 반응도 걸작이었다. 처음에는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하다가 결국 판정이 번복되지 않자, 지단이 PK를 차기전에 유니폼 상의를 미리 벗어 젖히고 스스로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물론, 지단이 실축을 한다면 경기는 다시 속개되는 상황이었으나 피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는 지단이 강력한 킥력을 지녔고, 침착성 뛰어나기 때문에 절대 실축을 하지 않을 거라는 피구의 확신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4강전에서 피구가 보여준 경기력은 훌륭했지만 지단이 보여준 경기력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엄청났다. 특히 후반에 보여준 볼 컨트롤은 예술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유로 2000 결승전 당시[8] .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도 지단은 선발 출전하여 전체적으로 무난한 반면에 프란체스코 토티가 엄청난 활약을 하였지만, 결국 승리자는 트레제게가 결승골을 터뜨린 프랑스였다. 그리고 지단은 대회 MVP를 차지했다. 이 대회서의 우승으로 프랑스는 1974년 이래 서독 이래 최초로 FIFA 월드컵과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을 동시에 석권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지단은 이 유로 2000에서의 놀라운 활약과 유벤투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다.
6.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회 직전(2002.05.26, 수원)에 열린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시즌을 치르며 1년 내내 누적된 피로와 무리한 출전으로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 부상을 당했다.[9] 결국 지단이 결장한 프랑스는 세네갈 쇼크를 맞고 위기에 빠졌다. 2차전인 우루과이전에서도 0-0 무승부. 프랑스는 문학에서 열리는 조별 리그 마지막 덴마크전에서 무조건 2골 차이로 이겨야 16강 진출이 가능한 절박한 상황인 탓에 부상당한 지단을 16일만에 불러내서 뛰게 하는 무리수를 두었지만, 오히려 토마손과 롬메달에게 얻어맞고 2-0으로 패하며 결국 짐을 싸게 된다.[10] 1950년 이탈리아와 1966년 브라질에 이어 월드컵 사상 세번째로 전대회 우승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vs 세네갈 0:1 패
vs 우루과이 0:0 무
vs 덴마크 0:2 패
7. UEFA 유로 2004
세네갈 쇼크 이후에 지단의 국대 커리어도 슬슬 정점에서 내려간 듯 했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선언을 꽤나 오래 전부터 하였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프랑스는 역시나 강력한 우승 후보로 뽑혔다.
지단의 커리어에서 가장 강렬한 경기 중 하나인 조별리그 1차전 잉글랜드전도 바로 이 경기. 당시 프랭크 램파드의 선제 헤더로 잉글랜드가 리드하면서 후반 막판까지 앞서갔으나 이후 지단은 프리킥으로 동점골, 추가 시간에 앙리가 얻어낸 PK를 성공시키면서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조별리그 2차전 크로아티아전에서도 선발출전하여 앙리의 짧은 코너킥을 올리자 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도 없이 감각적으로 몸을 돌리면서 발뒤꿈치로 볼을 띄어 갈라스에게 전달하는 경악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갈라스는 헤딩을 했지만 아쉽게도 골로 연결되진 않았다.
조별리그 3차전 스위스전에서 지단은 로베르 피레스의 코너킥을 헤더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지단의 영향력은 조별리그까지만 빛났고, 8강에서는 수비형 볼란치만 4명을 쓴 복병 그리스에게 0-1 패배로 일격을 맞고 결국 대회 종료 후에 초라하게 은퇴하게 된다.[11] 한 시대를 발 아래 둔 마에스트로의 국가대표 은퇴가 이렇게 씁쓸하게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8. 2006 FIFA 월드컵 독일
이미 레알 마드리드에서 2006년 5월 현역 은퇴를 선언한 지단이었기에, 그의 선수로서의 공식적인 은퇴는 다음 달인 2006 독일 월드컵이 되었다. 프랑스가 2005년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심각한 부진으로 월드컵 본선행에서 멀어져 가는 위기를 맞자 프랑스 언론과 여론에서는 지단의 대표팀 복귀를 원했고, 지단은 고국을 위해 국가대표 복귀를 선언[12] 한다. 복귀전에서부터 3-0 승리를 이뤄냈고, 레 블뢰가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합류하는데 일조한다.
대회 직전인 5월 27일, 멕시코와의 친선경기에서 개인 통산 프랑스 국가대표 100번째 경기를 치렀다. 지단은 마르셀 드사이, 튀람, 그리고 디디에 데샹에 이어 프랑스 국가대표팀 역사상 4번째로 100경기를 치른 선수로 기록되었다. 경기는 프랑스의 1-0 승리.
그 이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1차전 스위스전과 2차전 한국전에서는 본인의 이름값에 맞지 않는 부진에 빠지면서 전세계 언론들은 이제 지단도 한물 갔다는 평가를 내렸다.[13] 2차전 한국전만 보더라도 이영표와의 개인기 대결에서 공을 뺏기고... 후반 막판 이운재가 앙리의 결정적인 1대1 찬스를 선방하자 김영철을 밀어넘어뜨리고 경고까지 적립했다. 이미 스위스전에 받은 경고가 있어 경고 누적으로 토고와의 조별 리그 3차전에 나설 수 없게 되어 하마터면 2차전 한국전이 선수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될 뻔했다.[14] 다행히 프랑스는 지단이 결장한 조별 리그 마지막 토고전에서 월드컵 본선 5경기 연속 무승 징크스를 깨고(패-무-패-무-무) 후반전에만 2골을 넣는 뒷심을 발휘하여 2-0 승리를 거두고 1승 2무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며 기사회생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프랑스도, 지단도 16강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각성하기 시작한다.
8.1. 16강: vs 스페인전
16강 상대는 조별리그 3승으로 일찌감치 토너먼트행 티켓을 끊은 스페인으로 그 포스는 가히 압도적이였다. 당연히 스페인의 승리가 점쳐졌고 킥오프한지 얼마 못가 다비드 비야에게 pk선제골을 내준다. 그러나 선제골을 먹혔음에도 지단과 비에이라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는 스페인을 아작을 내며 3대 1로 압승을 거두는데 스코어 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초반 이후로 제대로 된 공격이 안보였을 정도로 탈탈 털렸다. 지단의 골은 이 경기를 함축하는 장면으로, 1:2로 지고 있어서 공격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스페인의 상황을 활용, 수비수 푸욜을 떨어져나가게 하고 골키퍼 카시야스까지 낚으며 경기 종료 직전 쐐기골을 터뜨린다.
라울이 지단의 월드컵 은퇴 경기를 치르게 해 주겠다고 도발하고, 페르난도 토레스가 스페인 전이 지단의 은퇴 경기가 될 것이라고 도발하자 지단은 '''"나의 은퇴 무대는 월드컵 결승전이다."'''라는 명언으로 대응했는데 그게 현실이 되었고, 라울의 경우는 오히려 자신이 월드컵 은퇴 경기를 여기서 치르게 되었다. 지단은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번이 내 마지막 경기가 될 거라고 했던 스페인에게, 이 경기가 마지막이 되게 해서 미안하다" 라며 대놓고 비꼬았다.
8.2. 8강: vs 브라질전
사실 스페인전은 지단도 뛰어났지만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더 빛난 경기였다. 진정으로 그가 빛난 경기는 브라질과의 8강전. 이 경기는 '''빛난다는 말로도 부족한 경기이자 역사에 남은 경기'''였다.
당시의 브라질은 판타스틱 4 또는 환상의 4중주라고 불렸던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아드리아누를 보유하고 있었고,[15] 당연히 우승 배당 1위에 모든 전문가들이 브라질을 우승 후보 1순위로 뽑았으며,[16] 역대 최고의 브라질 국가대표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반면 프랑스는 조별리그 때부터 언론에게 조롱의 대상이었고, 16강전 스페인을 꺾으면서 평가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브라질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늙은 수탉이라고 조롱받았을 만큼 지역예선 때부터 성적이 좋지 않았고, 스쿼드도 이름값만 높고 실속이 좋지 않았다. 지단을 위시해서 튀랑, 마켈렐레는 국가대표를 은퇴했다가 돌아온 선수였으며, 비에이라와 바르테즈는 기량이 하락하고 있었고, 프랑크 리베리, 플로랑 말루다, 에릭 아비달은 신예에 불과했다. 프랑스 대표팀 주전 중에 정상적인 기량을 유지한 채로 세계적인 수준의 실력을 지닌 선수는 티에리 앙리, 윌리엄 갈라스, 윌리 사뇰 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팀 동료이자 후배에 해당하는 호비뉴는 라울 곤살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지단은 8강 브라질전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는 자신감있는 도발을 날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단은 은퇴를 앞둔 선수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판타스틱 4를 비롯한 브라질 국가 대표를 완전히 떡실신시켜 버렸다.
경기 시작한 지 30초 만에 제 호베르투와 주니뉴의 압박을 가볍게 벗어나고, 지우베르투 시우바를 헛다리 짚기로 제치고, 카카의 눈앞에서 공놀이를 하며 그를 농락하고, 카푸를 발재간으로 농락하질 않나, 루시우와 지우베르투 시우바의 연속 태클을 가볍게 돌파한 뒤 킬 패스를 찔러 넣을 뿐만 아니라 마르세유 룰렛을 보여주고 호나우두의 키를 넘기며 공을 갖고 노는 등... 이게 정녕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선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갖고 놀았다.
점수는 1-0이었지만, 역대 최고라고 불렸던 브라질이 경기력으로 압도되어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결승골은 지단의 어시스트에 의한 티에리 앙리의 골. 여담으로 그렇게 국대에서 안 맞는 조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둘은 결국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했던 월드컵 은퇴 무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합작품을 만들어냈다.[17] 그리고 지단 본인 역시 직접 득점할 뻔한 아쉬운 장면을 몇 번 만들었다.
전 세계의 보도 매체들이 지단의 '''전성기 시절 볼 터치'''가 살아났다며 그야말로 대서특필. 시종일관 군계일학의 활약으로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며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여담으로 경기가 끝난 이후 대다수 브라질 선수들은 멘탈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지단에게 해당 경기 이후 은퇴할 것이라며 도발 겸 패배 플레그를 쌓았던 호비뉴는 가장 먼저 지단에게 다가가 포옹하는 모습을 보였다.
8.3. 4강: vs 포르투갈전
4강에서는 28년 만에 16강에 진출한 뒤 1966년 이후 40년만에 4강까지 올라온 포르투갈과 만났는데 [18] , 한때 최고의 라이벌로 불렸던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의 마지막 대결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두 전설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승부를 앞두고 국내 스포츠 신문 1면에서는 이 둘의 사진을 보이고는, '''"이제 우리의 시대는 이걸로 마지막이네."'''라는 문구를 썼을 정도.
그 결과는 팽팽한 승부 끝에 지단의 PK 결승골에 의한 프랑스의 승리였다. 그리고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만나게 되는데...
8.4. 결승: vs 이탈리아전
결승까지 단 1실점만 하는 완벽한 수비를 자랑하던 이탈리아였지만 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치명적인 PK를 허용한다.
여기서 지단이 잔루이지 부폰을 완전히 속인 멋진 파넨카 킥 PK 선제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가져온다. 그러자 스코어가 뒤지는 이탈리아가 빗장을 풀고 맹공을 개시, 프랑스의 측면이 연이어 뚫리며 크로스에 계속 얻어맞다가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헤더 동점골을 먹었으며 이후로도 계속 난타당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도 연장 전반 윌리 사뇰의 크로스를 받아 결정적인 헤더를 날리는 등 큰 활약을 하였으나 아쉽게도 부폰에게 막히게 되었는데...
연장 후반전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경기가 중단되었다. 심판이 뛰어가는 곳에는 마테라치가 쓰러져있었다. 리플레이를 통해서 '''지단이 마테라치의 가슴을 박치기로 공격해 쓰러뜨린 장면'''이 나왔다. 엘리손도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지단에게 레드 카드 보여주며 퇴장을 시켰다. 이른바 '''지단 박치기'''[19] 의 탄생이었고, 수많은 패러디가 양산되었다.[20]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동점골의 주인공인 마르코 마테라치가 지단의 누이를 모욕했고 이에 빡친 지단이 그대로 박치기로 응수를 한 것. 정확히 문제가 되는 내용인 즉슨, 자신의 옷을 자꾸 잡아당기던 마테라치를 향해 지단이 "그렇게 내 유니폼이 가지고 싶으냐? 경기 끝나고 주마."라고 말하자 마테라치가 "유니폼보단 니 창녀 누이가 낫겠다(I would prefer your whore of a sister)."라는 매우 모욕적인 말을 했고, 이에 격분한 지단이 뒤돌아서 박치기를 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지단이었기에 정말 안타까운 은퇴 경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프랑스는 승부차기에 들어갔는데 다비드 트레제게의 승부차기 실축이 빌미가 되어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지막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단의 공식적인 은퇴 경기는 월드컵 결승전'''이었고, 그 경기에서도 골을 넣고, 또 퇴장까지 당하며 가린샤 클럽에 가입한 것을 보면 그야말로 '''전설적인 선수의 전설적인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조국의 2번째 월드컵 우승은 아쉽게 놓쳤지만, 대회 MVP(골든 볼)는 지단이 차지했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박치기 때문에 그의 골든 볼 수상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되지 않고 지단에게 돌아갔다.
이 덕에 결승전이 끝난 뒤 전 세계의 언론이 '''"지단, 왜 그랬나?"'''라는 식의 보도를 하게 되었고, 이탈리아가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은 그대로 묻히게 되었다. 오죽하면 신문의 1면이 이탈리아가 우승 트로피를 드는 사진이 아니라, 지단이 박치기를 하는 사진이었을까.
지단은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게 된 이유를 언론을 통해 해명하였고, 마테라치는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결국 자신이 지단의 누이를 모욕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렇게 마테라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죽도록 까였다. 이 박치기 장면은 프랑스 파리에 동상으로 건립되었고, 마테라치는 이 동상 앞에서 인증 샷을 찍어 화제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지단보다 마테라치가 나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나, 해외에서는 지단이 순간적으로 흥분하는 성향이 원래부터 있었으며 이를 이탈리아가 영리하게 이용하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2000년 유벤투스가 UEFA 챔피언스 리그 1차 조별 리그에서 충격적으로 탈락할 당시 함부르크 SV와의 경기에서 박치기로 퇴장당한 전례가 재조명되었다.
어쨌든 지단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팀을 주장으로서 이끈 점, 무엇보다 우승 후보였던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을 모조리 제압하며 월드컵 결승까지 진출시킨 활약을 인정받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받지 못한 대회 MVP를 수상하게 된다. 그야말로 한 시대의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화려한 은퇴라고 할 수 있겠다. 16강에서 라울 곤살레스를 은퇴시키고,[21] 8강에서는 호나우두를 은퇴시키고[22] , 4강에서는 루이스 피구를 은퇴시키며 자신의 은퇴를 자축한 대회였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 어웨이 유니폼이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팔렸고, 추가 생산을 하는 위엄을 보였다.[23][24]
여담으로 이 사건 이후 2011년 챔피언스 리그 16강 바이에른 뮌헨과 인테르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마르코 마테라치와 싸움 직전까지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슈바인슈타이거가 "지단의 심정을 잘 알겠다."라고 말했었다.
9. 지단의 은퇴 이후 레 블뢰
지단이 레 블뢰를 완전히 떠난 후, 당장 유로 2008 지역 예선부터 프랑스는 플레이메이커의 공백에 시달리게 되며 본선에서는 역대급 졸전으로 1무 2패로 광탈하게 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역시 오심골로 간신히 본선에 올랐으나, 이에 그치지 않고 도메네크 감독의 막장 지도력이 아주 제대로 빛을 보게 되면서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레몽 도메네크는 곤살로 이과인을 원했지만, 이과인의 선택은 아르헨티나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홈 팀 남아공에 돌림빵을 당한 건 둘째 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서도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다행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꿀조에 편성된 덕인지 막강 화력을 과시하며 조별 리그를 통과하고 8강까지 올랐다.
2012년에 로랑 블랑의 후임으로 사령탑에 오른 디디에 데샹 감독이 이끄는 프랑스가 UEFA 유로 2016 때 앙투안 그리즈만, 폴 포그바, 드미트리 파예등을 필두로 선전했으나, 아쉽게도 날두국에 밀려 준우승했다. 그러나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갖가지 징크스를 극복하고 마침내 20년 만에 우승하여 지단 없이도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다른 국가들 못지않은 유럽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지단의 존재 유무에 따라서 경기력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면, 지단의 존재감이 프랑스에서 얼마나 큰 무게감을 지녔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축구계의 영원한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지단의 은퇴 이후 프랑스에서도 "제 2의 지네딘 지단" 열풍이 불면서 수많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스트 지네딘 지단이라고 각광받던 선수는 프랑크 리베리, 사미르 나스리, 아템 벤 아르파, 요앙 구르퀴프 등 여러 명이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된 명단에 있는 선수들 중 12-13시즌 리베리를 제외하면 전성기 시절의 지네딘 지단급에 도달했다 평가받지 않는다.'''[25] 그나마 포지션이 다르긴 해도 향후 프랑스 축구를 10년간은 이끌어갈 것으로 평가받는 슈퍼 유망주인 킬리안 음바페가 출현하면서 향후 어떻게 성장할지가 기대받고 있다.
[1] 결국 프랑스를 꺾은 불가리아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고 8강에서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독일을 꺾고 4강 진출 신화를 이뤄냈다.[2] 재밌게도 프랑스가 있던 조에는 스웨덴도 있었는데 이 팀도 불가리아랑 함께 4강에 오랜만에 안착했다.[3] 심지어 발롱도르 수상자였다.[4] 의외로 사람들이 지단이 성깔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5] 사실 이탈리아의 감독이던 체사레 말디니가 지단을 집중 마크하는 전술을 썼다.[6] 항목에 설명이 있지만 간단히 써보면, 튀랑의 국가 대표 커리어가 142경기 '''2골'''인데 그 2골을 이 경기에서 넣었다. 그것도 동점 골과 역전 골.[7] 당시 대회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튀랑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데, 튀랑은 당시 다수의 언론사가 매긴 평점에서 전체 선수 중 1위였고,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 동점 골과 역전 골을 뽑아 프랑스를 결승으로 이끄는 등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경기를 펼치기도 했기 때문에 튀랑이 브론즈볼을 수상한 것은 정당했다.[8] 참고로 지단을 수비하는 선수는 잔루카 페소토이며 당시 유벤투스에서 함께 뛰던 사이였다. 뒤에 13번 수비수는 '''알레산드로 네스타'''[9] 원래 컨디션이였다면 가벼운 부상이였을 것이다.[10] 이 날 경기 양국 국가 연주 때 카메라가 국가를 부르는 프랑스 선발 멤버 지단을 비춰주자, 프랑스 팬들을 포함한 인천문학경기장의 상당수 관중들이 환호했다. 경기는 2-0으로 졌지만, 정작 지단 본인은 이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이 날 경기의 MVP에 선정된다.[11] 결국, 그리스는 UEFA 유로 2004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다.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이기도 하다.[12] 역시 유로 2004를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클로드 마켈렐레와 릴리앙 튀랑도 함께 복귀했다.[13] 당시 같은 조였던 한국 언론들은 프랑스와 지단을 늙은 수탉이라고 대놓고 조롱할 정도였다. 물론 해외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본인도 조별 리그 당시 부진한 경기력에 빡쳤는지 한국전 1-1 무승부 직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철제 라커룸 문을 걷어차버렸다. 한국전 무승부 직후 라커룸 문을 걷어찬 지단[14] 왜 선수 커리어 마지막이라고 했냐 하면 월드컵 직전 소속팀에서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15] 물론 대회가 끝나고서는 브라질에게 환상의 4중주니 뭐니 언론들이 찬사를 보냈지만 이는 이름값만 지나치게 믿고 엮은 조합일 뿐, 저 4명을 쓰기 위해 무리하게 진영을 짠 결과 효율성 면에선 답이 없다는 우려가 결국 증명되었다.[16] 당시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던 브라질 뒤로는 개최국 독일과 황금 세대가 도래했다는 잉글랜드, 그리고 조별리그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이 우승 후보로 꼽혔고, 정작 독일 월드컵 우승팀인 이탈리아와 준우승팀 프랑스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17] 여담으로 지단과 앙리가 같이 선발출장한 A매치 수는 60경기인데 지단의 어시스트 - 앙리 골은 이때가 유일하다.[18] 이때 포르투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 반대로 그 당시 우승후보였던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를 격파했다.[19] 을용타에 빗대어 '''지단타'''라고도 많이 불렀다.[20] 이때 이를 풍자하는 여러 플래시 게임들도 양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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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21] 이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22] 정확히 국가대표는 2011년에 은퇴하지만, 월드컵은 2006년이 마지막이었다.[23] 국가대표팀 유니폼은 클럽팀 유니폼과는 다르게 처음에만 대량 생산하고 끝난다. 지단 현역 은퇴 기념 및 박치기 사건으로 인해 수요가 폭증하면서 추가 생산을 하게 된 것.[24] 실제로 대회 중 프랑스 대표팀이 홈 유니폼을 입은 경기는 조별리그의 토고전과 스위스전뿐이었다.[25] 그나마 프랑크 리베리를 제외하면 월드 클래스에 도달했다고 평가받은 선수도 없다. '''물론, 그 리베리마저도 12-13시즌을 빼면 지네딘 지단만큼 뛰어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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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21] 이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22] 정확히 국가대표는 2011년에 은퇴하지만, 월드컵은 2006년이 마지막이었다.[23] 국가대표팀 유니폼은 클럽팀 유니폼과는 다르게 처음에만 대량 생산하고 끝난다. 지단 현역 은퇴 기념 및 박치기 사건으로 인해 수요가 폭증하면서 추가 생산을 하게 된 것.[24] 실제로 대회 중 프랑스 대표팀이 홈 유니폼을 입은 경기는 조별리그의 토고전과 스위스전뿐이었다.[25] 그나마 프랑크 리베리를 제외하면 월드 클래스에 도달했다고 평가받은 선수도 없다. '''물론, 그 리베리마저도 12-13시즌을 빼면 지네딘 지단만큼 뛰어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