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선수 경력
1. 아마추어 시절
유신고등학교 시절에 투타 양면에서 뛰어난 자질을 보였고, 2004년에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다.[1] 봉황대기때에는 자기가 투수로 만루홈런을 맞고 타자로 등장한 다음 타석에서 바로 맞받아치는 끝내기 만루홈런을 쳤다. 졸업 후 계약금 3억원, 연봉 2천만원을 받고 2005년 연고 팀 SK 와이번스에 1차 지명을 받아 입단[2] 했다.[3] 지명 당시에는 '''투수'''로 지명되었으며 당시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도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지목되었다.
2. 프로 경력
'''통산 1781경기 1762안타 368홈런 1180타점 1102득점 타율 0.289'''[4]
2.1. 2005~2006년
2006년 6월 7일 대전 한화전 9회초 2사 1, 3루 상황에서 한화 마무리 구대성 의 공을 배트를 부러뜨리면서 쳐낸 것이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쓰리런 홈런이 되었다. 보통 배트가 부러지면 반발력이 떨어져 비거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이게 홈런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패전투수가 된 구대성이 부정배트 사용을 의심해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조사 결과는 '이상없음'이었고 이를 통해 OB 베어스 시절 심정수가 가지고 있던 ''''소년장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5]
당시 만 19세였던 2006년에 12개의 홈런을 치며 '''김재현-이승엽-김태균'''에 이어서 역대 네 번째로 10대 나이에 두 자릿수 홈런을 치기도 했다.
팀 내에서는 좌완투수에게는 이재원과 함께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이드암과 잠수함 투수에게는 약하다는 평. 타구 방향은 좌측으로 당겨서 퍼올리는 스타일이다. 선구안은 첫 시즌 21사사구-90삼진이라는 막장스러운 스탯을 보였지만 해가 지날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입단 2년차인 2006년에 12홈런을 쳐낸 이후 15년 연속 두자릿 수 홈런을 기록 중이다.[6]
2.2. 2007년
2007년부터 김성근 감독의 지옥훈련을 받은 덕에 2005, 06시즌과 비교했을 때 일취월장한 수비를 보여주었고, 2008시즌 이후로는 리그 정상급 3루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7][8] 박석민과 함께 김동주, 이범호 이후의 국가대표 주전 3루수 자리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시리즈에선 23타수 4안타 2타점 3득점 2도루 4삼진 .174/.174/.174로 부진했으나 팀은 창단 이후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7년 SK의 첫 우승 후 2008년 연봉은 전년 대비 164.7%가 올라, 당시 이 부문에서 팀 역사상 신기록을 세워 종전 기록인 06시즌 정근우의 150% 인상률을 경신했다.[9] 3루수 풀타임 주전으로 자리잡은 것과 팀내 타점 2위를 기록한 것에 대한 보상적 측면이 컸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67 OPS .774 109안타 16홈런 8도루 66타점 49득점 wRC+ 115.1, WAR 3.15를 기록했다. 그러나 도루실패가 7개나 있어서 도루성공률은 50%에 가까웠다.[10]
2.3. 2008년
언더핸드 투수공략을 위해 잠시 스위치 히터를 목표로 좌타석에 들어서 봤지만[11]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겨울이 오면 꾸준히 좌타자 연습을 했다고는 하는데 이젠 포기하고 우타자로 가기로 한지 오래.
2008년에는 마침내 컨택에 눈을 떠 0.328의 타율로 리그 3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한국시리즈에서 클러치 능력까지 과시하며 MVP로 선정되어 프로입문 5년 만에 억대 연봉을 거머쥐었다.
2.4. 2009 시즌
WBC 기간 동안 소속팀의 강훈련을 못 받은 탓인지 2009 시즌 다시 컨택능력을 까먹고 본래의 2할대 중반의 수비형 3루수로 돌아왔다. 그 당시 얼마나 삽을 퍼댔냐 하면, 비난 해설로 이름이 높은 이순철이 자신의 아들과 최정을 묶어서 디스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2009년 6월 25일 무등 기아전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0이닝 1안타 1볼넷 1폭투로 1실점'''(비자책)하여 이날의 패전투수가 되었다.[12] 당시 폭투는 실투가 아니라 포일로 처리됐기 때문에 평균자책점은 '''0.00'''. 이로 인해 '''패정투수'''라는 기묘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윤길현이 투수가 아닌 '''1루수'''로 나왔다.
당황스럽게도 직구 구속이 146km가 찍히며 전 야갤을 경악시켰다. 당시 기아 타이거즈의 타자 이호신을 상대로 2스트라이크까지 잡으며 탈삼진을 눈 앞에 뒀으나, 2스트라이크까지 몰린 후 이호신은 바로 이성우로 교체되었고 유리한 카운트를 살리지 못하고 볼넷 허용, 이후 김형철 타석에서 패스트볼로 경기 끝. 더군다나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사실 처음에 마운드에 올랐을 땐 타자들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프로라 힘들더라." 라고 발언.
사실 최정은 유신고 시절부터 140km 후반대의 좋은 직구를 가지고 있었던데다 포수로서도 탁월한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SK 와이번스는 일단 1차지명해 놓고 나서 어느 쪽으로 키울지 고민하게 된다. 포수 자원으로는 박경완, 정상호 등 특급 자원이 둘씩이나 있었고, 투수 역시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풍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야수 김태균과 김민재의 뒤를 이을 수 있는 3루수로 키우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즉 '''꿈을 던진 패전투수 최정'''이 단순한 김성근 감독의 장난이라고는 볼 수 없다.[13]
이날의 구속으로 인해 야갤에서는 최정을 올스타전 투수로 올리자는 의견이 나온데다가 다음날에는 최정이 인터넷에서 '한화가면 2선발도 하겠다'라는 댓글을 봤더라는 내용의 기사까지 나왔다.
실제로 최정 싸이 방명록에 한화로 오라고 글을 남긴 사람도 있었으며, 웹툰작가 샤다라빠는 6월 25일 경기의 김광현과 최정을 웹툰에다 그렸다.
이 사건으로 현재 프로 통산 3번째로 투수, 내야수, 포수의 포지션을 모두 경험한 선수로 기록되었다.[14] 나이 먹고 3루 수비력이 떨어지면 외야로 옮겨갈 수도 있으니, 이러다간 은퇴 전에 크보 유일의 '''전 포지션 경험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 해 22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사구왕'''에 등극, 이 덕분에 2009년 채병용-조성환 등의 빈볼 시비로 신경이 날카로웠던 SK 와이번스 팬들은 최정의 사구 기록을 보여주며 다른 팀 팬들의 공격을 방어했다. 어쩌면 그 해 부진은 '''너무 많이 맞다보니''' 제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해서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나마 후반기 복귀 후 타율 0.293, 6홈런, 18타점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시즌 19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의 시즌기록을 갈아치워 어느 정도 체면은 차렸다.
2.5. 2010 시즌
2010 시즌 성적은 정확히 3할 타율[15] 에 20홈런, 80타점, 69사사구(이 중 '''몸에 맞는 공 20개'''), 72삼진으로 여전히(?) 까이는 중. 초구에 배트가 잘 나가 '''초정'''이라고 불린다. 눈에 보이는 성적은 준수하지만 대책없는 초구사랑과 상황을 가리지 않는 거포스윙, 그리고 전병두와 쌍벽을 이루는 미숙한 인터뷰 스킬 등이 특징으로, 데뷔 시즌부터 인터뷰가 능숙하기로 유명했던 같은 팀의 그분과 정반대다. 다른 특이한 점은 아프면 더 잘 친다는 것. 6월에 손에 건초염이 걸렸을 당시에는 홈런, 안타 뻥뻥 쳐댔지만, 다 나았다고 한 8월에 오히려 더 못쳤다. 사구 수는 '''2년 연속 20개 이상'''을 기록하며 팀 선배 박경완(27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앞선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지던 4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상대 선발 투수인 차우찬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그리고 팀이 스코어 1:2로 앞선 6회말에는 선두 타자로 나와서 역시 차우찬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치면서 연타석 홈런[16] 을 때려내며 시즌 내내 팀의 천적으로 군림하던 차우찬을 강판시켰다. 이날 최정은 선발 3루수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3타수 3안타 2홈런 1볼넷 3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이겼다. 최정은 2010년 한국시리즈 1~2차전에서 '''8타수 6안타 2홈런 3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최정은 2010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3루수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12타수 6안타 2홈런 1볼넷 3사구(死球) 1희생플라이 4타점 5득점, 타율 .500, 장타율 1.083, 출루율 .588를 기록하여 2010년 포스트시즌에 출전한 선수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장타율, 출루율[17] 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팀 동료들과 찐하게 어울리는 장면이 자주 포착되어 부녀자#s-2들에게 인기가 좋다고는 하지만 찐하게 어울리는 것을 넘어서 후로게이 수준. 흠좀무
불타는 그라운드 시즌2 24화를 보면 박정권이 '미스 최'라 부르며 커피를 타오라는 장면[18][19] 이나 박재상의 '잦드립'[20] , 이진영의 홈런타자 발언 [21] 등을 보면 후로게이에 빵셔틀 수준이지만 팀 내 아끼는 막내이기에 하는 장난……이겠지?
김광현과 친한 사이인지, 한국시리즈에서 홈런을 치고 들어올때 위 사진처럼 약속 제스쳐를 취했다. 아마도 투수 막내와 야수 막내라서 그런듯.
2010년 11월 9일 승승장구에 김성근 감독이 출연했을 때 연속으로 디스당했다. 처음 부임하고 나서 최정에게 송구를 시켰더니 폭투였고, 포구를 시켰더니 놓쳤다고. 그리고 훈련을 시켜놓고 잠시 다른쪽 보는 척 했더니 놀고 있어서 딱 걸렸다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10타수 4안타로 4할 타율을 기록했으나 1차전 대만전에서 크게 부진했던 것이 영향을 끼쳐 결국 대만과의 결승전에서는 급기야 강정호 에게 3루수 자리를 빼앗기고 벤치 신세로 전락했다.
2.6. 2011 시즌
'''최형우, 이대호 다음의 OPS'''와 '''타자 WAR 3위'''에 이름을 올리며 '''호타준족 3루수'''로 거듭났고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에도 성공했다.
2.7. 2012 시즌
'''개인과 구단 최초의 20-20 클럽''',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임을 증명했다.
2.8. 2013 시즌
[22]
2013년 하위권으로 쳐진 SK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타선을, 아니 팀을 이끌어냈고 '''2년 연속 20-20 클럽''', '''리그 WAR 1위''', '''3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 등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2.9. 2014 시즌
1월 15일 스프링캠프를 떠나기 직전, 구단과 5억 2천만원에서 1억 8천만원 인상된 '''7억원'''에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역대 3루수 최다 연봉자였던 김동주와 타이이기도 하다. 게다가 FA자격 미획득 선수의 연봉 7억은 2003년 이승엽과 2011년 이대호가 보유하고 있던 종전 기록인 6억 3천만원까지 능가하는 액수가 되었다.[23]
묘하게 점점 수비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신인 때는 돌글러브 소리를 들었지만 부단한 노력을 통해 국가대표급 3루수로 평가를 받을 수비로 발전했는데, 근 몇 년간 수비 능력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 30대 중후반 노장이라서 노쇠화가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비 능력이 떨어진다면 모르겠지만 최정은 1987년 생으로 한참 선수로서 기량이 왕성할 시기다. 그런데 수비 능력이 벌써 떨어져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니 뭔가 기량 외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의 시선들이 존재.
그렇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다 4월 13일 삼성전에서 안지만을 상대로 자신의 통산 3호 그랜드슬램을 쳤다.그러나 팀은 임창용에게 용병타자 루크 스캇이 역전 희생플라이를 쳐내며 1점차로 역전했지만 지칠대로 지쳤던 필승조 투수들이 2실점을 하며 팀은 끝내 재역전패를 당했다.
4월 22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는 4대 5로 뒤지고 있던 9회말 무사 1루의 상황에서, 김진성을 상대로 자신의 커리어 첫 끝내기 홈런을 때렸다 !!!
5월들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17일 허리와 어깨 통증으로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선발 3루수는 홍명찬... 이었다가 부진하면서 박계현이 주로 맡았었다.
7월 7일 1군에 복귀하여 당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3번 타자로 출장하였다.그리고 그날 경기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증명하다가...
결국 복귀전에서 김사율을 상대로 본인 특유의 스윙으로 시원한 홈런을 치며 솩팬들을 환호케 하였다.
7월 12일 삼성전에서는 '''4타수 4안타 1홈런 5타점'''으로 팀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여담으로 만약 4번째 타석에서 최정이 홈런을 치지 않았다면 이 경기는 연장으로 갈 뻔했다. 8회초에 사구 하나를 추가하면서 '''통산 세번째 150사구'''라는 기록을 가지게되었다(...)
8월 14일 삼성전에서는 이지영의 중견수 앞 안타를 김강민, 박정권과 합작하여 8-5-3 병살로 마무리하는 창조적 병살을 선보였다.
8월 29일 LG전에서 5회초 큰 이병규의 직선타구를 잡아낸 후 송구를 해 귀루를 못한 1, 2루 주자를 그대로 잡아 아웃을 잡아내는데 공을 세우면서 프로야구 역대 55호 '''삼중살'''을 만들어 내는 호수비를 선보였다.시즌이 끝난후 미모의 아나운서와 12월초에 결혼한다고 한다.
2.10. FA 1기
2014 시즌 종료 후 FA 시장 최대어로 평가받고 있다. 부상으로 규정 타석을 제대로 못 채워서 그렇지 시즌 초에는 100억+해외진출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
2014년 11월 26일 원 소속 구단 SK 와이번스와 '''4년 86억'''이라는 당시 역대 최고액 계약을 맺고 잔류하였다.[24] 또한 계약 후 인터뷰에서 '''SK라는 팀 자체가 좋았다. 떠나기 싫었다'''#라는 발언을 하며 FA 선수들의 잦은 이탈로 상처 입었던 SK 팬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최정의 경우 FA 최대어임에도 시즌 초부터 SK 프런트에서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동안 정대현, 정근우를 놓치면서 팬심이 많이 식었고, 팀이 다시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 김광현과 함께 투타의 축이 되어야 할 선수이기 때문에 100억을 줘서라도 잔류시켜야 한다는 입장. 그러나 최정이 부상으로 인해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고, 해외 진출도 무산되었기에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에 잡을 수 있었다. 또한 최정이 팀에 보여준 충성심이나 팬들 사이에서의 인기를 고려했을 때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2.11. 2015 시즌
기량은 여전하지만 잔부상으로 인해 3차례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등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2.12. 2016 시즌
2013년 크리스 세든 이후 '''3년만에 배출된 SK의 타이틀 홀더'''이자 '''KBO 리그 3루수 최초로 40-100-100을 달성'''하며 '''리그 최고의 3루수로 부활'''하는데 성공했다.
부상으로 고전했던 지난 시즌과 달리, 4월과 5월에는 홈런 순위권에도 들며 괜찮은 활약을 했으나 6월에는 홈런은 고사하고 안타도 거의 치지 못하는 등 심각한 슬럼프를 겪으며 부진하다가 7월부터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8월 19일 '''개인 첫 30홈런'''을 달성하며 본인의 한 시즌 홈런 최다 커리어하이인 28개를 넘어서게 되었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 '''팀 한국인 타자 최초 40홈런'''까지 기록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타이틀 홀더(홈런왕)'''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12월 13일, 개인 통산 4번째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25]
2.13. 2017 시즌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타점[26] ''' 갱신과 더불어 '''3루수 역대 최다홈런'''[27] 인 '''46홈런'''을 치며[28] '''2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했고 '''SK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미스터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등 '''작년보다 한단계 진화한 타자'''가 됐다.
2.14. 2018 시즌
슬럼프에 부상, 불운[29] 까지 겹쳐 이름값에 비하면 조금 아쉽지만, '''커리어 로우'''시즌. 하지만 팀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8년 만에 우승 반지를 얻게 됐다.
7월 허벅지 부상 등의 이유로, 최종 약 30경기 가량을 결장한게 우선 눈에 띈다. 다만 이전에도 최정은 풀타임 전경기를 소화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 그저 평균회귀라 볼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타율에 비해 1할2푼 가량 높은 출루율을 감안하면 선구안 자체는 여전하다고 볼 수 있고, 순장타율 또한 그의 커리어 통산 수준보다 살짝 높은 .280은 되므로 파워가 감소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결과 OPS 0.918을 기록하면서 리그 20위로 여전히 상위권 생산력을 보여줬다.
2.15. FA 2기
2018 시즌 종료 후 두 번째 FA를 선언했는데, 구단은 영구결번 후보인 최정을 무조건 잡는다는 입장이고 최정도 팀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결국 12월 5일 '''6년간 최대 106억'''의 대형 계약을 맺으면서 잔류하게 되었다.#[30][31][32] 나이와 계약 기간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SK 와이번스 원클럽맨 및 영구결번 확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4년 계약안에서는 금액차가 있었으나 최정이 먼저 6년 계약을 제안했고, 구단 또한 동의해서 이러한 장기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고 한다.#
2.16. 2019 시즌
정규 시즌에는 29홈런 99타점을 기록. Ops .918[33] , '''war 6.36'''로 맹활약했으나 포스트 시즌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쉽게 마무리를 했다.
2.17. 2020 시즌
이재원을 대신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최정답지 않게 매우매우 부진하며 SK의 꼴찌 추락에 한몫을 하게 되어버렸다. 5월 1달간 타출장 .205/.390/.356에 73타수 15안타, 장기인 홈런은 단 '''2개'''만을 기록하며 부상이 있는것도 아닌데 그야말로 아무 이유없이 망해버렸다.[34] 작년에도 시즌 초반에 줄곧 0할의 타율을 기록하다가 끝내기 안타로 첫 안타를 신고한 후 아름답게 부활하여 3할에 가까운 타율과 29홈런을 기록한바 있는 최정이기 때문에 팬들은 그의 부활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6월 17일에는 개인 통산 340홈런을 기록하며 장종훈과 통산 홈런 공동 3위를 기록했으며, 6월 1달간 타출장 .301/.408/.566에 83타수 25안타, 홈런 6개로 반등에 성공했다.
7월 24일에는 역대 3번째이자 우타자 최초 개인 통산 350홈런을 기록했으며, 7월 29일에는 통산 352번째 홈런을 기록하여 KBO 리그 통산 홈런 단독 2위에 올랐다. 7월 24일까지 성적은 타출장 .407/.485/'''.899'''에 54타수 22안타, 7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7월 이후부터 3루수 중 타격 sWAR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타율을 좀 덜어졌지만, 4할에 근접하는 출루율, 장타율 0.583 , 33, ops 0.930, war '''5.08'''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성적을 올렸다.
2.18. 2021 시즌
3. 국가대표 경력
리그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국제대회에서는 별다른 활약이 없다. 박병호와 비슷하나, 주로 백업으로 출전해서 비판의 강도는 잦은 편.
3.1. 2009 WBC
그동안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3루수 자리는 국가대표 4번타자 김동주가 맡아놓은 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김동주가 국가대표선수에서 은퇴하면서 3루수 자리는 무주공산이 되었고, KBO리그 2008 시즌 최고의 3루수로 성장한 최정이 엔트리 한자리를 차지하면서 2009 WBC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격수 요원이 박기혁 밖에 없는 대표팀 사정상 훈련기간 동안 유격수 훈련을 받았고, 2라운드 일본과의 순위결정전에서 유격수로 출장했다. 하지만 원래 포지션이 아닌 탓에 폭풍에러와 불안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본 포지션인 3루수 자리에서도 대회 올스타에 선정된 이범호의 맹활약으로 백업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최정은 출전한 6경기 동안 단 한타석도 출루에 성공하지 못한채 씁쓸히 대회를 마무리지었다.
이러한 최정의 개인적 부진과는 별개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준우승이란 호성적을 기록한채 귀국했다.
3.2.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지난 2009 WBC에서 풀타임 주전 3루수로 활약한 이범호가 일본프로야구 진출로 아시안게임에 불참하면서 최정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서 올라섰다. 그러나...
대만과의 첫경기부터 본 포지션이 아닌, 2루수로서 선발출전한 최정은 적시 2루타를 때려내는 등 공수 활약으로 15:0 팀의 대승에 기여했다.
그런데, 이후 경기에서 주전 3루수로 출전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이 펼치진 못했다. 결국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대회 내내 백업 유격수로 선발되었던 강정호에게 선발 3루수 자리를 내주고 뜬금없는 벤치맴버로 머물렀다. 이 날 대신 선발 출전한 강정호는 결승에서 두 개의 홈런포를 터뜨리며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조범현 감독의 용병술이 매우 칭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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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따내면서 최정 역시 병역특례를 받고 귀국했다.
3.3. 2013 WBC
박석민과 함께 KBO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로 성장한 최정은 2013 WBC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당연히 선발되었다. 4년전 동 대회에서 이범호에 밀려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당당히 주전 3루수 자리를 차지했다.
최정은 1라운드 3경기중 2경기에 선발출전해 8타석, 6타수 2안타, 2사사구, 1타점, OPS 0.833을 기록했다. 당시 대한민국 역시 호주와 대만을 잡으며 2승 1패 호성적을 거뒀으나, 동률인 네덜란드와 대만에 TQB에서 밀리며 사상 첫 WBC 2라운드 진출실패의 굴욕을 겪어야만 했다.
3.4. 2019 프리미어 12
2013 WBC 이후 무려 6년만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복귀했다. 당해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놓고 결전을 펼친 두산 베어스의 주전 3루수 허경민과 함께 3루수 포지션에서 경쟁을 펼치게 됐다.
대회 개막직전 푸에르토리코 2번의 평가전까지만 해도 최정이 주전경쟁에서 확실히 앞서있는 모습이었다. 최정은 1차전과 2차전 모두 선발출전하며 자신의 입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서 내야수의 경우 수비력이 더 중요시된다는 점과 2번의 평가전에서 최정의 타격감이 월등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정작 본 대회에서 주전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최정은 대한민국이 치룬 8경기중 단 4경기에 출전하는 것에 그첬다. 이 중 선발출전은 2번이었다. 이는 주전 3루수 허경민 뿐만아니라, 황재균에게도 밀린 출전기록이다.
제한된 기회 속에서의 성적 역시 최악이었다. 쿠바전 대타로 나와 1타수 0안타를 시작으로 대회내내 최악의 타격감을 보여줬다. 특히 슈퍼라운드 일본과의 최종전, 무사 만루상황에서 무기력하게 삼진을 당한 모습은 한국 야구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정의 부진과 상관없이 대한민국은 대회 준우승을 거둠과 동시에 2020 도쿄 올림픽 본선직행 티켓을 얻은 채 귀국할 수 있었다.
[1] 사실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치고 성공한 프로선수는 많지 않다. 백인천이나 이만수처럼 과거의 유명 프로선수가 있지만, 21세기에 성공한 선수 중 최정 외에는 김현수 정도가 리그 최정상급이 된 것으로 유명한 정도일 뿐이다. 그 외에 NC 다이노스의 박민우가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된다.[2] 인하대는 군대 미루려고 등록만했다.[3] 류현진과 강정호 등 1987년생들은 2006년에 프로에 입단했지만 최정은 빠른 1987년생이기에 1986년생과 같이 2005년에 프로에 입단했다.[4] 2020 시즌까지의 성적[5] 하지만 정작 본인은 소년장사란 별명을 싫어한다고, 빠른 87년생인 그는 당시 만 19세였다.[6] 이는 KBO 리그 통산 5번째 기록이다. 만약 최정이 2020시즌에도 두자릿 수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다면 이 부분 신기록이 된다. 2020년 7월 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10호 홈런을 기록하며 15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달성하였다.[7] 그 야구 수비 중 쉽다던 1루 수비였음에도 당시 최정이 1루수로 경기에 들어가면 SK팬들은 1루로 공이 날아갈 때마다 '''제발 잡기만 해다오'''란 생각을 했다 한다.[8] 한때는 훈련할 때 김성근 감독 욕까지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김성근 감독은 "의욕이 넘친다"며 허허 웃으며 넘어갔다고 한다. 과거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김성근 감독에게 최정이 펑고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훈련이 끝난 뒤 제작진이 "감독님 어떠신 분 같아요?"라고 묻자 "헉헉..정말 훌륭하신 분이죠..근데 소..솔직하게 말해야 되죠? 헉헉..정말 솔직히..헉헉..(저를) 주..죽이시려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9] 이 기록은 2009년 김광현이 225%의 인상률을 기록하며 깨졌다.[10] 보통 도루는 성공률이 70%를 넘지 못하면 손해로 본다.[11] 이 때문에 여러 야구게임에선 이 시기의 최정은 스위치 히터로 나온다. 그리고 일본의 야구게임 프로야구스피리츠의 09WBC모드에까지 그 명맥이 이어진다.[12] 지금으로써 보면 경기 하나 포기한다고 감독이 욕먹을 상황이지만, 당시는 SK가 원정경기, 동점인 상태로 12회말을 맞이하고, 당시의 승률계산법(승/승+무+패)은 '''무승부와 패배를 동급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SK에게는 무승부나 패배나 다름 없지만 전체를 보면 다르다. 야구에 만약이라고는 없지만, '''이 경기에서 SK가 무승부를 내고 나머지 경기는 변함 없이 끝났다면 SK는 2위가 아닌 공동 1위로서 1위 결정 재경기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체력안배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우승했을 수 있었다.'''[13] 물론 그렇다고 또 과거 심재학의 예처럼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14] 첫 번째는 김재박, 두 번째는 최동수. 그리고 10년 뒤에 강백호가 기록하였는데 이쪽은 이에 더해 외야 전 포지션까지 경험하였다.[15] 400타수 120안타로 정확히 '''0.300'''(!). 그리고 2루타 31개를 치면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16] 한국시리즈 통산 5호, 2004년 송지만이 기록한 이후 6년만에 나온 연타석 홈런이다.[17] SK 와이번스의 안치용 출루율 1.000을 기록했으나, 무타수에 1볼넷이라 사실상 최정의 출루율이 가장 높았다. '''심지어 2010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박정권보다도 성적이 좋다.''' 타점이 적어서 그렇지...[18] 최정은 김성근 감독이 들릴 정도로 '정권이 형!! 커피요?!?!?' 크게 대답해 소심하게 복수했고 후달렸던 박정권은 괜히 애꿏게 최정을 팼다;;;..(...) 정작 최정이 가져온 건 커피에 매실 원액을 탄 커매실…당사자들 말로는 맛있단다.[19] 실제로는 소리를 지른 뒤에 때린 게 아니라 커피에 매실을 탔다는 걸 알게 된 직후에 때렸다. "커피가 맛있네. 근데 왜 이렇게 달달하냐?"고 묻자, "매실 탔어요. 커매실이요."라고 말한 뒤에 때렸다. 오히려 반어법으로 맛있다고 한 거고 실제로는 그리 맛있지 않았을지도..[20] 김성근 감독이 잔여경기 전승을 한다면 팬티만 입고 인천 시내를 만세를 부르면서 뛰겠다는 발언을 들은 선수들이 최정에게 옆에서 같이 뛰라고 권유하다가 김강민이 "'''정이는 팬티도 벗고 뛰라'''"고 하자 박재상이 거들며 '근데 사람들이 벗었는지 모를 거야ㅋㅋㅋ' 이라는 드립을 쳤고…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1] 2009년 LG 트윈스로 이적한 전 동료 이진영이 전날 홈런을 친 최정에게 '홈런 타자 최정 아냐?'하면서 머리를 때리며 미X놈아 홈런 쳤으면 빨리 뛰라면서 타박하자, '홈런 아닌 줄 알았어요'라고 소심하게 대응. 이진영은 어이없다는 듯 더 괴롭혔다. 그러다가 이진영이 조금 멀어지자. 최정은 또 소심하게 이진영의 응원가인 'L~G의 이진영'을 개사해서 '머리! 머리! 머리! 머리! 이진영~!'을 불렀다. 또 맞았을듯…. 그리고 이 장면에서 '미X놈'이 여과없이 방송되어 논란이기도 했다.[22] 2010년 당시에 이대호의 타격 8관왕을 저지한 이대형은 이대호와 소속팀이 달랐지만, 2013년 도루왕인 정근우는 최정과 같은 SK 소속이었다! [23] 이 기록은 1년 뒤인 2015년 김현수가 7억 5000만원으로 갈아치웠고, 현재는 2016년 김광현의 8억 5000만원이 역대 FA자격 미획득 선수의 최고액 연봉이다.[24] 계약금 42억 원, 연봉 44억 원. 다만 발표하지 않았던 옵션이 매년 1억 원 있었기에 총액은 4년 90억 원.[25] 본래 타율이 0.288에 그쳐 3루수 후보 기준(규정 타석 만족, 0.310 이상)에 들지 못한다. 하지만 타이틀 홀더(홈런) 자격으로 입후보하여 수상했다. 그것도 테임즈와 공동 홈런왕에 오른 것이다. 야만없이지만 테임즈가 음주 운전을 하지 않아 잔여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지 않고, 그동안 홈런을 더 쳐서 테임즈가 단독 홈런왕이 되었다면 ,최정에게는 어려웠을 수상이었다.[26] 종전 기록은 2004년 이호준의 112타점.[27] 종전 기록은 2002년 호세 페르난데스의 45홈런.[28] 작년보다 70타석이나 적게 들어섰음에도 6개의 홈런을 더 때려낸 것이다.[29] 2018 최정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리그 최저 BABIP'''로 .262밖에 되지 않는다. 2012년 이후 BABIP가 3할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그에게 이번 시즌은 '''매우 불운'''했다는 것.[30] 계약금 32억 원, 연봉 68억 원, 옵션 6억 원. 옵션 내용은 매년 100경기 출장으로 밝혀졌다.#[31] 4년 계약으로 환산하면 70억 수준으로, 첫 FA 때보다 연 평균 연봉은 적은 편이다. 이는 최정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향해 가기 때문에 구단이 기간을 늘리고 연평균 금액을 줄이는 대신 총액은 세 자리 수를 맞춰주면서 선수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32] 또한 KBO에서 FA 선수가 5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맺은 건 정수근의 6년 40.6억원 이후 두 번째 사례이다.[33] 리그 4위[34] 다만 출루율만은 양호한 수준을 기록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