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사건사고

 






1. 개요
2. 경기 관련
2.1. 삼성과의 잇단 난투극
2.2. 개막전 최다연패 경신
2.4. 송창식 벌투 및 김성근 감독 경기 도중 병원 이송
2.5. KBO 역대 최다연패 기록 갱신 도전
3. 선수 관련
3.1. 권근한 음독자살 사건
3.2. 최진호 뺑소니 사건
3.3. 최우석 임의탈퇴 사건
3.4. 김태균 인종차별 발언 논란
3.6. A 선수 육성선수 전환 사건
3.7. 한상훈 FA 계약 기간 방출 및 잔여연봉 지급 논란
3.8. 유창식 한화 이글스 시절 승부조작 자진신고
3.9. 양성우, 오선진 나이트클럽 사건
3.10. 김원석 인스타그램 DM 폭로 사건
3.11. 이창열 성 추문 의혹
3.12. 엄태용 미성년자 성폭행 논란
3.13. 김성훈 실족사 사고
4. 구단 관련
4.1. 대전구장 코치박스 논란
4.2. 한대화 사칭 사건
4.3. 송주호 2군 엔트리제 위반 사건
4.4. 김성근 감독 관련
4.6. 덕아웃에 스마트 워치 반입 논란
4.7. 김정준 전력분석원의 에스밀 로저스에 대한 월권 논란
4.8. 김성근 사퇴 요구 시위 관중 강제퇴장 논란
4.9. 방수포 미설치 논란
4.10. 도태훈 헤드샷 응급처치 논란
4.11. 진통제 투약 강요 및 보복성 인권침해 내규 강요, 노동법 위반 논란
4.12. 권혁 자비 수술 지시 논란
4.13. 박상열, 이홍범 코치 선수 대리운전 지시 논란
4.14. 김해님 코치의 타구단 아르바이트생 폭행 논란
5. 팬 관련
5.1. 1988년 관중 집단 난동 & 심판 집단 구타 사건
5.2. 1988년 해태 구단 버스 파손 사건
5.3. 1988년 해태 우승 시상식 훼방 사건
5.4. 1989년 대전구장 관중 난동 및 천보성 삼성 코치 실신 사건
5.5. 1991년 해태전 관중 난동 사건 1
5.6. 1991년 해태전 관중 난동 사건 2
5.7. 심판진 숙소 앞 항의 농성 사건
5.8. 1992년 그라운드 편싸움
5.9. 1992년 관중 난투극
5.10. 1992년 한국시리즈 2차전
5.10.1. 배경
5.10.2. 경기 중
5.10.3. 경기 후
5.10.4. 결말
5.11. 대전구장 관중 난동 사건
5.12. 1996년 플레이오프 관중 난동
5.13. 한화 구단, 대전구장 욕설 관중들과의 전쟁
5.14. 김태균 관중 말싸움 사건
5.15. 욕설이 난무하는 대전구장
5.16. 관중 욕설 사건
5.17. 그물망 위 난투극 사건
5.18. 김인식 감독 욕설 사건
5.19. 연일 계속되는 관중 난입
5.20. 보문산 호루라기 과도 응원 논란
5.21. 대전구장 관중 공 투척 사건
5.22. 주사기 투척사건
5.23. 경기 방해로 관중 퇴장 사건
5.24. 경기 방해로 관중 퇴장 사건 2
5.25. 경기 방해로 관중 퇴장 사건 3
5.26. 청주구장 관중 난입 및 이물질 투척
5.27. 잠실 야구장에서의 행패와 권혁에 대한 인신비방


1. 개요


KBO 10개 구단의 사건사고 문서들 중 가장 늦게 개설되었지만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분량이 급격하게 많아졌다.

2. 경기 관련



2.1. 삼성과의 잇단 난투극




2.2. 개막전 최다연패 경신


한화 13연패 ‘대굴욕’ 개막후 최다연패 신기록
2003년 롯데가 개막전 12연패를 기록후 정확히 10년만에 개막전 최다연패 기록경신에 성공하고 말았다. 감을 잃어버린 듯한 감독, 제구력 난조의 투수진과 자멸하는 수비진으로 인해 그야말로 총체적난국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연패를 끊어줄 류현진마저 미국으로 떠나버린 상황인지라 꿈도 희망도 없는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2013년 4월 16일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연패를 끊으며 시즌 첫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
2015년 신생팀 kt wiz가 개막전부터 연패를 이어가며 이 기록을 갈아치우나 싶었는데, 11연패 끝에 첫승을 달성하면서, 개막전 최다연패 기록은 여전히 한화의 13연패로 유지되었다.

2.3. 이동걸 빈볼 사건




2.4. 송창식 벌투 및 김성근 감독 경기 도중 병원 이송




2.5. KBO 역대 최다연패 기록 갱신 도전



2020시즌 끝나지 않는 침체 속에 결국 1999년 쌍방울이 세운 17연패와 타이를 세우고 말았다. 그 내용도 아슬아슬한 패배는 거의 없이 완벽하게 상대는 거의 무조건 두 자릿수 득점을 세우고 한화는 2,3점도 겨우 내는 완패. 만약 6월 14일[1]까지 패배한다면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18연패를 넘는 '''19연패'''로 KBO 최다 연패 기록을 갱신하게 되며, 두 경기를 모두 지게 된다면 하루에 '''한국 신기록과 아시아 신기록을 동시에 세우게 될 뻔했지만''' 다행히도 6월 14일 경기 두산을 상대로 승리하며 18연패로 연패행진은 막을 내리게 된다.

3. 선수 관련



3.1. 권근한 음독자살 사건


1996년에 외야수였던 권근한[2]이 10월 20일에 청주의 한 여관에서 제초제를 마시고 음독자살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1996년 정식 계약에서 구단 관계자로부터 "너같은 놈이 무슨 선수냐, 돈을 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자신의 유서에 적었던 것으로 보아 구단의 차별과 2군 생활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던 것으로 밝혀졌고 신인 선수에 대한 부당대우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권근한은 결국 "몸이 회복돼도 다시는 야구를 하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긴 채 그 해 11월 6일 향년 21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3.2. 최진호 뺑소니 사건


기사는 # 참조.
2011년 6월 4일 새벽 2시 30분경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 대로에서 길을 건너던 보행자를 치고 달아난 뒤 청주에 은신해 있다가 추적에 나선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해당 보행자는 즉시 사망하였다. 뺑소니 사고 당시 최진호는 음주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3]
이에 대전지방법원은 최진호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여 징역 7년형을 선고하였다.[4]

3.3. 최우석 임의탈퇴 사건


2012년 방송인 변서은과 사귀다가 헤어진 것도 모자라 불성실한 태도를 이유로 구단에 의해 임의탈퇴되었다. 안그래도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들이 불순하기도 방탕하기도 해서 팬들 사이에선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던 선수로, 방탕한 것도 모자라 연예인 만나더니 그 멘탈로 임의탈퇴까지 당했으니 말이 필요없다. 이후 방황하다 2013년에 최익성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훈련하다 2014 시즌을 앞두고 팀에 재합류했으나 2015시즌이 끝난 뒤 다시 방출되었다.

3.4. 김태균 인종차별 발언 논란


얼굴이 까매서 하얀 이와 공이 겹쳐 보인다?
2013년 6월 10일 오후 방송된 네이버 라디오볼에서 '''각 구단 4번 타자들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와 구종'''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런데 김태균은 롯데 자이언츠쉐인 유먼을 꼽으면서 그 이유로 '''(유먼의) 얼굴이 너무 까매서 마운드에서 웃을 때 하얀 이와 공이 겹쳐 보여서 진짜 치기가 힘들다'''라고 하였다. 이 발언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비판받았다. 웃긴 것은, 유먼은 투구시에 '''입을 다물고 투구한다.''' 결국 김태균은 사과했으나 이전부터 워낙 설화가 많았던 선수라 비판을 받았다.
상대인 유먼은 대인배스럽게 용서하였다. # 그렇지만 기분이 상할 만한 발언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HAPS 기사 영어 울렁증이 있는 이들을 위한 번역본
[image]
근데....그 유먼이... 독수리가 되었다...??? 2015년 한화는 유먼을 영입해서 두 선수가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 또한, 유먼은 인종차별 철폐의 아이콘 재키로빈슨의 번호 42번을 달았다... 다행히 김태균는 그때 일을 사과하고 유먼도 훈훈히 김태균의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먼은 하필이면 팀이 5강다툼을 하는 중요한 시기에 어깨부상이 발목을 잡아 7월 말에 웨이버 공시로 내쫓기고 말았다.

3.5. 최진행 도핑 사건




3.6. A 선수 육성선수 전환 사건


#
최영환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최민규 기자가 쓴 기사로서, A 선수는 당초 2015시즌을 위해 연봉계약까지 마치고 시즌을 준비하고 있던 참에, 이글스 구단으로부터 구단 사정상[5] 육성선수로 전환 후, 정식선수로 추후에 전환 및 연봉보전을 약속했으나, A는 그 조건을 거부하고 그럴 거면 차라리 자유계약선수로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이글스 구단은 A에게 "알았다. 선수등록 데드라인인 1월 31일까지 선수등록을 해주겠다." 라고 말했으나, 데드라인 하루 전날이었던 1월 30일에 자유계약선수로 A를 공시하고, 심지어 '''그 사실을 본인에게 전달하지도 않았다.'''
현 KBO 규정상 2월부터는 어느 팀과도 다가오는 시즌에는 등록선수로 계약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A가 울며 겨자먹기로 이글스의 육성선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드러났다.
저 기사로부터 유추하자면, A는 9월달에 1군에 등록되었고 시즌 앞두고 갑자기 육성선수로 계약되었다가 다시 정식계약선수로 등록되었기에 여기에 일치하는 정재원 선수라는 설이 널리 퍼지고 있으나, 확실히 드러난 것은 아니기에 A 선수로 우선 칭한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글스 구단은 당초 연봉계약때부터 선수를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는 육성선수 계약을 숨기려 하다가 1월에야 뒤늦게 제안을 했고 그것을 선수가 거부하자 선수계약 데드라인에 맞춰 선수에게 통보없이 선수의 선택을 가로막았다는 점에서 큰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 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은 당시 노재덕 단장이 이끈 이글스 프론트의 책임이 가장 크나, 감독 부임 후 선수에 대한 모든 전권을 가지고 선수들의 로스터를 책임 및 관리하는 김성근 감독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3.7. 한상훈 FA 계약 기간 방출 및 잔여연봉 지급 논란


2003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이래 13년 동안 한 팀에서 뛴 한상훈은 2013년 11월 4년 13억원의 FA 계약을 하였다. 그러나 2014년 발목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재활 마저 늦어지는 바람에 2015년 시즌 내내 제대로 출장하지 못했다. 결국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최소 신고선수 전환, 최대 방출이 확정되었다. 한상훈의 나이를 생각하면 방출 쪽에 무게가 실리는 편. 그러면서 권용관은 보류선수명단에 포함되면서 살아남았다.
구단에서는 발목 부상 악화로 방출하게 됐다고 언급 중. 그러나 FA 계약 기간 중 방출 건으로 인해 크게 논란이 일고 있다.
한화 구단에서는 한상훈에게 육성선수 전환 + 잔여연봉 보전을 해준다고는 했다. 다만 한상훈 본인이 육성선수가 되기보다는 정식선수로서 시즌을 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정식선수가 되면 시즌 시작부터 함께 할 수 있지만 육성선수는 그렇지 못하다는게 문제.
기사에서 한상훈 본인은 "발목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한 시즌을 통째로 쉴 정도로 아픈 건 아니다. 현재 러닝 훈련을 비롯해 재활 훈련을 단계적으로 밟고 있다. FA 계약 기간 중 방출된 사례가 처음이라고 하는데[6] 사실 나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혼란스럽다”라고 말했다. 방출을 받아들이면 남은 연봉은 받지만, 타팀 이적시 이미 맺은 FA 계약이 완전히 짬되기 때문이다. 결국 한화서 이적하더라도 잔여연봉을 부담하기로 하면서 이적시에 발목은 잡히지 않게 되었다.출처 하지만 한화 팬들은 권용관을 보호하고 프랜차이즈에 나이도 더 어린 한상훈을 풀어줄 수 있다는 말에 이게 무슨 처사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한편, 경기 못 뛸 몸상태는 아닌데 왜 마무리 캠프에는 참석하지 않았는지 의아해 하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귀국' 한상훈 "마음 정리됐고, 발 상태도 좋다" 근황 인터뷰가 나왔다.
16년 2월 19일 한화를 떠나게 됐다.# 등록선수 마감일인 1월 31일까지 타 구단의 제안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커리어를 한화에서 보낸터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존 기사에서는 FA 연봉 관련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본인은 인터뷰에서 이를 부정했다. 구단에서는 "한상훈이 4억원을 일시불로 지급해달라고 요청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팀을 떠나도 잔여 연봉은 지급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한상훈도 "남은 연봉 4억원을 달라고 한 것은 맞지만 무조건 일시불을 요구한 건 아니다. 일시불이 아니라 분할 지급도 좋다. 빨리 계약이 해지되어야 다른 팀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에 나온 말이었다. 아직 연봉 문제와 관련 구단과 합의된 것이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커뮤니티 등에서 한상훈의 통산성적 등을 이유로 FA 계약에 따른 금액을 달라고 하는 것이 주제 넘은 짓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력과 계약은 별개이다.''' 구단과 FA협상을 맺고서 금전을 지급하기로 하였으면 지급해야한다. 연봉을 지급 받기 위한 조건인 계약기간 또한 계약의 내용이므로 계약기간을 어긴 한화측의 귀책사유가 맞다. 계약에서 보장된 기간과 명시된 금원을 지급하지 않으면 구단 측이 채무불이행 책임을 지게 된다. 한상훈은 계약에 따라 자신의 법률상 권리에 대해 청구하는 것일 뿐이다. 자신에 권리에 따라 구단에 대해 채무불이행 책임을 묻는 것인데 한상훈을 비난하는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구단이 처음부터 FA계약을 맺지 않았으면 모를까, 쌍무계약으로서 합의한 사항인데 이를 이행하지 않는 한화 구단은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면 패소가 확실한 상황이다.
규정상 5월 이후에 1군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몸상태를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한화의 언플과 달리 육성선수 계약을 맺지 않으면 잔여연봉을 안 주겠다 했다는 기사와 현재 한상훈은 일시불을 요구하고 있고 구단은 일시불로 해줄 수 없다는 기사가 연달아 나오면서 연봉지급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나 진짜 논점은 그게 아니다. 이전부터 야구 구단들은 계약을 해제하고서 잔여계약동안 지급 해야할 금원을 지급하다가 선수가 타구단과 재계약시 전혀 지급하지 않는 관행을 저질러 왔는데 이게 법과 어긋나는 것이다. 민법 538조 1항에 따라 본래 지급되어야 하는 금원을 계속 지급해야하고, 타 구단과 계약시 538조 2항에 따라 지급금원의 차액분은 계속 지급해야 한다.[7] 한상훈의 경우 남은 2년분의 연봉을 타구단과 계약시 전혀 지급하지 않겠다고 구단에서 압박까지 한 상황이다. 또한, 구단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한상훈에게 약정된 금원을 포기하고 육성선수로 전환해 선수생활을 이어가라고 압박을 넣었던 것도 문제인데 이를 특정팬덤들이 회피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쉽게 설명하면 임금피크제와 유사한 상황이다. 해고는 안할테니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한상훈을 압박한 것이다. 한상훈은 이 같은 부조리에 당연히 불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한상훈과 잔여 연봉 관련한 합의를 최근에 끝냈다. 구단은 한상훈의 잔여 연봉 4억원을 보전해주기로 했고, 지급 방식 역시 선수가 원하는대로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상훈과 연봉 문제 원만하게 합의 연봉지급 문제가 해결됨과 함께 한화를 떠났으며, 이후 은퇴를 하게 될지 다른팀에서 영입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화에서의 13년 행복했다


3.8. 유창식 한화 이글스 시절 승부조작 자진신고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때문에 KBO에서 자진신고기간을 주었는데 유창식이 한화 시절 2014년 4월 1일 삼성라이온즈의 박석민 상대로 승부조작한 것을 자진신고하였다.기사
하지만 경찰조사과정에서 2014년 4월 19일 LG 트윈스전에서 조쉬 벨을 상대로 승부조작했다는 것이 추가로 드러났다.기사

3.9. 양성우, 오선진 나이트클럽 사건



3.10. 김원석 인스타그램 DM 폭로 사건



3.11. 이창열 성 추문 의혹


기사
이창열이 일본의 쇼핑몰인 이온에서 여직원에게 성추행을 한 혐의로 체포된 사건. 그러나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 대놓고 성추행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인데다가 CCTV도 비공개로 하는 등 논란이 많다. 당사자는 강력하게 혐의를 부인했고, 결국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되었다.

3.12. 엄태용 미성년자 성폭행 논란



3.13. 김성훈 실족사 사고


2019년 11월 23일 김성훈이 아버지인 김민호 KIA코치를 만나러 광주에 갔다가 9층 건물 옥상에서 7층 테라스로 추락해 안타깝게 꽃을 피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

4. 구단 관련



4.1. 대전구장 코치박스 논란


1990년 5월, 해태가 대전 구장의 1루 코치박스가 비정상적으로 앞당겨져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실제로 줄자를 이용해 측정해 보니, 규정보다 1미터 가까이 당겨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정팀이 사용하는 3루측 덕아웃을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사인을 훔쳐 보기 위한 의도라는 정황이었다.
해태측은 즉각 시정을 요구하며 불응시 빙그레와의 경기를 거부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나타냈다. KBO도 사안을 심각히 여기며 엄중 경고 의사를 표시했다. 결국 빙그레 구단도 유감을 표시하며 시정 조치를 약속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4.2. 한대화 사칭 사건


기나긴 6연패를 끊고 3연승을 달리던 2012년 5월 27일,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 '''안녕하세요 한화이글스 감독 한대화입니다''' 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에는 '''그냥 닥치고 지켜봐주십시오 X달고 두말하지 않겠습니다''' 등 욕설이 섞인 어조의 내용이 실려있어 한대화의 아들이 문자로 이 사실을 알려 구단에서 사이버수사대에 신고 및 게시글 삭제를 요청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섰다.
2012년 6월 4일 오전 게시글을 올린 당사자가 구단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용서를 구했고, 구단측은 더 이상의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여담으로 사칭 글을 올린 당사자는 20대 고시준비생이었고, 한화 팬으로서 최근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

4.3. 송주호 2군 엔트리제 위반 사건


2015년 6월 23일, 삼성 라이온즈와 2군 경기에 송주호가 출전하였다. 이 때만 해도, 2군 경기는 1군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은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기에 다들 1군 말소된 줄 알았으나, 정작 당일 말소 명단에 송주호는 들어있지 않았고 23일 넥센과의 1군 경기에 7회 말 대주자로 출전하면서 송주호는 1군 엔트리에 등록된 채로 2군에서 경기를 뛰고 온 KBO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결국 기사화되었고, KBO에서도 엔트리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관계로 한화 운영팀장과 매니저에게 구두경고 조치를 취하는 선에서 징계가 마무리되었다.

4.4. 김성근 감독 관련





4.5.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CCTV 논란


SPOTVNEWSSBS Sports(또는 네이버)
2015년 9월 3일 청주구장에서 벌어진 KIA와 한화의 경기에서 경기 중 KIA 김기태 감독이 덕아웃에 일반적으로 비치되어 있는 불펜용 CCTV 이외에 자유롭게 줌 인 및 각도 조작이 가능한 CCTV가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항의해 논란이 일었다. 보통은 덕아웃에 불펜 투수들의 워밍업 상태를 볼 수 있는 카메라를 2대 가량 설치해 두지만, 이 카메라는 홈 플레이트 주변을 비추고 있었으며 덕아웃에 따로 설치된 컨트롤러를 통해 배율 조절이 되므로 상대 덕아웃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상대 투·포수가 내는 사인을 캐치하는 것이 가능해 논란이 되는 것. TV의 존재는 경기 전에 상대측에서도 알고 있었을 수 있으나, 컨트롤러의 존재와 그 조작방법을 상대팀에서까지 알고 있었으리란 법은 없다. 청주시가 밝힌 바에 따르자면 본 카메라는 한화 구단과 무관하게 청주시 차원에서 설치한 것라고 한다.
어필 이후 양 팀은 모니터를 끄고 경기하기로 하였으나, 이후 방송화면에서 한화 측 덕아웃에서 계속 해당 TV를 켜고 경기하는 것이 중계되었다.
CCTV를 보고 놀라는 김기태 감독
결국 경기 이후 KBO측에서 제거하라는 명령을 했는데 여기에 대한 김성근 감독의 대답이 또 가관이었다. 사용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려우니 제거만 하면 깔끔하게 끝날 문제인걸 또다시 김성근의 입이 일을 키운 경우. 항목 참조.

4.6. 덕아웃에 스마트 워치 반입 논란


'전자 기기 논란' 한화 측 "통역의 실수…시계 풀었다"
'이번엔 스마트 워치?' 한화, 바람 잘 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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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2일 사직 야구장에서 벌어진 한화와 롯데의 경기에서 2회말 MBC SPORTS+의 중계 화면에 스마트워치를 차고 덕아웃에 있는 사람이 포착되어 논란이 일었다. 해당 인물은 일본어 통역을 해주는 직원인것으로 밝혀졌다. KBO 리그 규정에 따르면 제 26조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 금지''' 항목에서 아래와 같이 명시하고 있다.

'''경기시작 후 벤치 및 그라운드에서 감독, 코치, 선수, 구단 직원 및 관계자의 무전기, 휴대전화, 노트북, 전자기기 등 정보기기의 사용을 금지한다. 또한, 경기 중에 구단 직원 및 관계자는 위 장비를 사용하여 감독, 코치, 선수에게 그 경기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 (벤치 외 외부 수신호 전달 금지, 경기 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 금지)'''

명백히 규정을 위반한 행위지만, 구단에서는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하고 있는 상태. 게다가 김성근 감독이 해명에서 '''문자가 와서 확인했다'''고 말했는데, 애플워치는 '''연동된 아이폰이 근거리(약 10m) 내에 있지 않으면''' 문자나 전화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즉, 아이폰도 같이 반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
이와 같은 기사가 나온 뒤, 야구팬들은 올해 7월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도 스마트워치를 차고있는 직원의 모습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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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김정준 전력분석원의 에스밀 로저스에 대한 월권 논란




4.8. 김성근 사퇴 요구 시위 관중 강제퇴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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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8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에서 포수 뒷자리에 앉은 관중 4명이 김성근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걸었다가 현장 경호요원들에 의해 퇴장당했다. 여러 기사로도 소개되었다. 이미지에서 보듯이 케이블 중계에도 시위 장면이 잡혔다.
이 관중의 시위 후기에 따르면 시위한 사람들은 경기진행 방해 명목으로 퇴장 당했고, 시위 물품을 압수당할 뻔했으며, 대전청주 야구장 ''''영구'''' 출입금지 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굳이 대전 및 청주 야구장이 아니더라도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네티즌들은 한화를 북한에 비유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무시하는건 물론이고, 2명이 경기진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같이 있던 일행 2명도 같이 퇴장시킨 점을 보아 북한과 마찬가지로 연좌제를 적용시킨거 아니냐는 이유다. 더군다나 퇴장 사유가 ''''2명의 관중이 소리를 질러 팬들의 관전을 방해''''해서 라는데, 그렇다면 왜 보문산 호루라기는 퇴장시키지 않는지 의아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그 분들께서는 타팀팬들의 분탕이라고 분개하는 상황이다.


4.9. 방수포 미설치 논란


2016년 5월 10일, 비가 내리자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는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근처만 덮는 방수포가 깔렸다. # 그러나 4월 16일 기사에서는 내야 흙 부분을 덮는 방수포까지 깔린 장면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결국 이날 경기는 우천 취소 되었다.[8]# 이 사실을 알게 된 야구팬들은 한화가 투수진이 혹사에 지쳤고, 특히 이날 예고된 한화의 선발 투수가 5월 8일 불펜으로 나왔던 심수창이었던 만큼, 고의로 우천 취소를 유도하기 위해 성의 없는 방수포 설치를 한 것이냐며 KBO가 한화 구단에 징계를 내려야한다며 목소리가 높다.
그러자 SBS Sports 정우영 캐스터가 한화 구단에 물어보니, 기존 방수포가 효율적이지 못해 새로 제작하는 거 같다고 하는데...# 왜 비시즌 때 준비하지 않고 이제서야 방수포를 다시 제작하는지, 또 기존 방수포는 어디에 두고 새 방수포만 기다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이후 7월 1일에 대형 방수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 팬들도 진작좀 이렇게 하지하며 호평중.

4.10. 도태훈 헤드샷 응급처치 논란


2016년 8월 7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 7회초 권혁의 144km/h짜리 볼이 그대로 NC 선두타자 도태훈의 헬멧에 강타했는데 이때 권혁은 헤드샷으로 퇴장당했고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런데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구급차가 야구장까지 들어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사고 발생 후 2분여가 훨씬 지난 뒤 였다. 도태훈이 구급차에 탑승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분. 그 전까진 공을 맞고 쓰러진 그 자리에 누워 한동안 구급차만 기다려야 했다.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항시 구급차가 야구장에 대기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 당시 구급차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사고 발생 2분 50초 후에야 경기장에 등장했다. 한참을 누워서 기다리던 도태훈은 답답한 마음에 본인 발로 걸어가 구급차에 탑승했다. 상태의 정도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카트가 아닌 본인 발로 이동한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장면. 심지어 의료진은 이 상황에서 '''구급차의 문을 열지 않는!''' 병크까지 저질렀다. 당연히 팬들은 임수혁의 사례를 생각하며 해당 의료진을 가루가 되도록 깠다. 만약 정근우나 로사리오가 헤드샷을 당했으면 어땠을까...?
이 때문에 한화 구단은 사죄 기사를 냈다. 그리고 엄청나게 지탄받았 던 을지대 병원은 3일 뒤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배영섭이 손목에 공을 맞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4.11. 진통제 투약 강요 및 보복성 인권침해 내규 강요, 노동법 위반 논란



[탐사보도] 김성근, 한화 2군 '인권침해' 지시했나

<공지사항>

-23:30~00:00 이후 타 호실 출입금지 및 취침

-한달에 한번 휴식일 외박가능.

-선수단 휴일(매주 월요일) 외박금지. 일요일 클럽하우스 복귀시간 23:00

-2층 비상구, 실내연습장 뒷문 출입금지(CCTV 확인) - 적발시 징계 및 벌금 부과

-각 호실 정리정돈 및 청결상태 불량시 벌금 부과

-클럽하우스 내 음주, 도박시 징계 및 벌금 부과

-시간 엄수 07:50 기상 08:00 산책 및 조식

-공지사항 위반시 벌금 1차 100,000원 2차: 300,000원 3차 및 코칭스탭 지시 불이행: 1,000,000원 및 퇴소조치

위 사항은, 고교 야구 숙소나 사회인 팀의 전지훈련 내규가 아니라 지난 9월부터 한화 2군 선수단이 강요받은 내규 내용이다. 고교 선수들, 심지어 군대에 적용해도 인권침해 논란이 나올 법한 가혹한 조항들이 선수들에게 가해졌는데, 이것을 시행할 근거도 벌금을 징수하고 징계를 내릴 근거도 미비한 상태에서 2군 선수단 전체에게 일률적으로 강요되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일명 '콘신헌법'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 내규는 여기에서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벌금조항 정리 전문
이 규정을 도입한 것은 김성근 감독 본인으로, 엠스플뉴스의 취재에 따라 이 규정의 비인간성과 동시에 도입 목적을 놓고 큰 논란이 벌어졌다. 엠스플 뉴스에 따르면, 이 규정은 9월에 권혁이 서산 2군으로 내려갔을 때 도입한 것으로, '''무통주사를 맞고 계속 마운드에 오르라는 김성근 감독의 지시를 거부한 권혁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사실 권혁과 김성근 감독간에 불화가 있다는 설은 기사로 확인되기 전부터 지인 피셜 등의 비공식적 창구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서산 캠프에 사실상 권혁을 감금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방해하고 있다거나, 보복성으로 수술조차 못하게 하고 있고 권혁은 일찌감치 시즌아웃이라거나 수 많은 설이 있었는데 이 내용 전부가 하나씩 하나씩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즉, 권혁이 8월 중순 즈음부터 통증을 호소하고 마운드에 오르기 힘들다고 했을 때, 애초에는 권혁이 경미한 통증이라고 인터뷰했고, 그 후에는 권혁을 쓸 생각이 없다고 주장했으면서, 뒤로는 마운드에 오르기도 힘들 정도로 큰 통증을 앓고 있던 선수에게 진통제 투약을 강요하고 어떻게든 혹사하려 들었었다는 뜻이다. 그에 대해 선수가 반발하자 '''연대책임 및 집단 보복으로 2군 선수단 전체에게 저런 중징계성 내규를 강요했다'''. 야구계 내부의 도의적 인권 논란을 떠나 이건 빼도박도 못하는 노동법 위반이다. 특히 저런 거액의 벌금을, 일개 구단이 법적 근거 없이 징수하려 드는 건 80년대에도 안 했을 크나큰 위반행위이다. 당장 위 사항 중 하나인 'CCTV로 선수 동선 감시'만 저질렀던 롯데 프런트 전체가 큰 논란 끝에 갈려나갔다. 사실 이 정도면 다른 구단들의 사건사고들이 그냥 장난으로 보일 정도의 병크이다.
김성근 감독이 역대 최악의 성적 부진 및 레임덕 ,언론과의 관계 악화가 지속되면서 그의 비인간적인 혹사 이면에서 저질러지고 있던 불법적 업무상 위력행사와 각종 위법행위가 하나씩 까발려지고 있는 과정이다. 상식적으로 일반인들도 혹사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직접 현장에서 뛰는 프로들이 혹사의 위험성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혹사 지시에 따랐던 것은 그 이면에 이런 강한 수준의 위협과 협박과 위력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저 2군에 가해진 가혹행위 수준의 조항 중 '부상자 트레이너 치료 거부 및 태만(벌금 100만원)', '부상자 치료 및 훈련 태만(벌금 100만원)'.'평상시 본인 몸 상태 관리 소홀(벌금 100~200만원)'은 권혁을 표적으로 보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부상의 원인을 선수 본인의 치료의지 부족, 몸 관리 소홀 따위로 돌리고 있다.
이와 별개로, 동시에 김성근 감독이 가진 구시대적이고 현 트렌드에 들어맞지 않은 그릇된 야구관이 저 콘신헌법에서도 드러나고 있는데, 2군은 실수하며 배우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미스플레이 하나하나에 벌금을 매겨 적극적인 플레이가 힘들게 되었다. 10~50만원은 1군을 밟아본 적 없는 2군 선수에게는 만만치 않은 돈이니 위축될 수 밖에. '루에 주자로 나가 있을 때 직선타구에 판단을 잘못해서 루상아웃' 시 10만원(...) 등 말도 안 되는 벌금이 있다.
법적 견문이 있는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이 사안이 노동법 위반으로 검사가 기소 및 구속을 행사할 수 있는 사안이며,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 사안을 국가인권위원회, 국민 신문고 등에 제보하는 움직임도 크게 일고 있다.[9][10]
엠스플뉴스는 티저로, 11월 1일 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일을 고발하겠다고 밝혔고....

4.12. 권혁 자비 수술 지시 논란



엠스플은 김성근 감독이 권혁에게 자비 수술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무통주사를 맞고 1군에서 뛰라고 지시 한 이후 더 큰 논란을 불러온 것인데, 사실상 무통주사 거부 이후 보복성 지시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다. 한국에서 수술받겠다는 선수에게 미나미공제병원으로 갈것을 강권했는데 기사를 본 팬들은 리베이트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당초 권혁은 8월부터 마운드에 올라가기도 힘들 정도의 팔꿈치 통증을 겪었고, 일찌감치 수술 의사를 구단에 밝힌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성근은 권혁의 부상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며 경미한 부상이라고 정보를 조작하고, 뒤에서는 이런 협박을 동원해가며 권혁이 무통주사를 맞고 뛸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정보 관제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한 한화 관계자는 자신이 알기로는 권혁은 분명히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했는데, 10월까지 권혁의 부상이 경미하다고 주장하여 뭐가 뭔지 몰랐다고 한다.
몇 몇 노리타들이 무통주사가 그렇게 이슈가 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양현종, 김광현 등의 투수들이 자의적으로 무통 주사를 맞고 등판한 일이 있다는 점을 들지만, 그들은 수술 소견이 있는 상황에서 억지로 등판한 것이 아니라 자의로 투약하고 등판한 것이다. 만약 그들도 권혁처럼 당장 팔꿈치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무통 주사를 맞았을까? 하다못해 비인간적인 혹사가 자행되던 80 90년대에도 억지로 무통주사를 투약시켜 등판을 시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예 없었다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도 강제로 무통주사를 맞힌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지시자는 역시 '''김성근'''이다. SK에서도 이와 같은 일을 시도하여 선수단 내부에서 크게 반발했었다는 풍문이 돈 적이 있다. 그때에는 성적이라는 변명과 프런트의 언론 관리로 노출되지 않았지만 구단이 손을 놓은 지금 그의 추악한 민낯이 완연히 드러나고 있다.
선수들이 보복을 두려워해 공황증상까지 보일 정도의 극도의 정보통제로 팀을 고립시키고 김민우 수술기사가 나간 이후 자기사람들을 동원해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색출지시까지 내렸다. '''한화는 야구팀이 아니라 완벽한 독재국가, 작은 북한이었다.'''
기사를 끝마치며 엠스플은 '한화 선수들은 바깥에 나가서 '무언가'를 맞고 올 수밖에 없었다' 며 또다른 티저를 선사했는데, 아마도 이병훈 해설이 2015년 제시한 한화 선수 집단 대포주사 설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분분하다[11]. 만약 , 비인가시설에서 처방전 없이 무통주사 즉 마약성 진통제를 투약했을 경우, 이건 마약류 관리법에 따라 처벌도 가능한 사안이다. 이걸 교사하는건 강력범죄다. 또 이 썰이 확인되는 대로 엠스플이 내용을 공개할 것이 예상되는데, 이대로 구단이 자진사퇴 압박을 계속하는데도 김성근이 자진사퇴를 하지 않는다면 새해는 감옥에서 볼 확률도 있어보인다.
참고로 대포투사에 들어있는 메틸프레드니솔론(methylprednisolone)은 엄연히 시즌 중엔 사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암암리에 도핑을 강요했다고 볼 수도 있다. '''스포츠 윤리는 팔아먹은거다.'''
감독이 얼마나 기사를 일일이 확인한 뒤 항의전화를 해대고 홍보팀장과 철저히 대응하는지를 고려하고 핵심 선수의 실명까지 뜬 것을 감안할 때 명백한 사실로 보인다. 결국 프런트가 권혁을 달래 겨우 구단 돈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9월 초에만 수술을 받았어도 11월 초부터 재활이 가능했음을 고려하면 얼마나 뻘짓이었는지...
아직도 선수들 중에는 권혁이 자비로 수술을 받았다고 아는 이들이 많고, 재활을 하는 선수가 공황장애에 시달린다는 내부고발이 선수들과 코치진에서 나오는 중이다.[12]
그러나 이 와중에도 그 놈의 의리가 뭔지 구단은 유임 소식을 전해버리고 만다.[13] 성근강점기 3기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단장이 타 보직으로 좌천되고 박종훈 전 LG 감독이 단장으로 부임하여 김성근을 견제하는 역을 맡게 되었다.

4.13. 박상열, 이홍범 코치 선수 대리운전 지시 논란


2016년 11월 초, 김성근 사단으로 분류되는 박상열 육성군 투수코치와 이홍범 트레이닝 코치가 2군 선수들은 물론 부상으로 재활 중인 선수들에게 대리운전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폭로되었다. 구단 자체조사 결과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도 코치들의 힘이 강해 알면서도 쉬쉬했다고 하며, 결국 11월 15일, 구단 이미지 훼손과 선수단 관리 미흡의 책임을 물어 두 코치를 해임하고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4.14. 김해님 코치의 타구단 아르바이트생 폭행 논란


2019년 5월 7일 SK 와이번스전 원정경기 때 김해님 코치가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밝혀졌고, 그 전후 처리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KBO 상벌위원회에서는 해당 코치에 대해 경고로 일단락되었다.

5. 팬 관련


인기가 많은 구단인것과는 별개로 악질 훌리건과 경기장 난동이 많았다. 대전광역시라는 도시 자체가 문화 시설에 대한 투자가 빈약하고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보니 야구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클 수 밖에 없고,[14] 최소한 2번 이상은 우승을 했던 비수도권 광역 도시 연고 구단들과는 달리[15][16]한화 이글스는 우승을 단 한번밖에 못했기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훌리건 문제는 이전에 비하면 줄어들었다. 대전 홈구장 훌리건 아재들의 직관이 줄어들고[17] 뒷세대의 직관이 늘어나서 한화의 관람객 세대 교체가 되어 보살 응원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훌리건이 줄어든것에 불과할뿐 도화선은 여전히 남아있다. 야구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대전의 도시 문화와 한화의 부진이 원인이다.
2018년 한화가 11년만에 마침내 비밀번호를 깨고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함으로서 대전 시민들과 충청 연고자들의 야구에 대한 집착과 울분은 일시적으로나마 다소 해소되었지만, 2019년부터 다시 몰락의 조짐이 보임에 따라 언제 도화선이 터질지 모른다.

5.1. 1988년 관중 집단 난동 & 심판 집단 구타 사건


1988년 5월 19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빙그레-해태 경기 도중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은 200여명의 관중이 그라운드로 난입, 무법천지를 연출하며 심판들을 집단으로 구타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 영상. 이 사건을 계기로 '관중 난동에 의한 몰수게임 규정'이 생기게 되었다.
2:2 동점 상황이었던 5회초 해태 김성한이 균형을 깨는 솔로홈런을 터뜨리자 관중들이 야유를 보냈고 이에 김성한은 주먹으로 음란한 제스처를 취해 관중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6회초 1사 상황에서 해태 서정환이 2루앞 내야안타로 살아나가자 관중들이 흥분하기 시작, 세이프 판정에 항의하며 빈병과 돌 따위를 그라운드에 마구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이어 1, 3루 쪽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하여 심판진들에게 시비를 걸며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하던 심판이 발길질로 응수하다가 시비걸던 관중이 발길에 채이자 순식간에 200여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난입하여 심판들을 집단 구타했다. 경비원 39명이 이들을 막아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30여분 동안 200여명의 관중들이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심판진들을 집단으로 구타, 폭행했다. 그 와중에 빙그레 유승안 포수가 달려 나가 난동 관중을 끌어안고 제지하기도 했다. 관중들의 심판 집단 폭행이 계속되고 빈병이 날아드는 와중에 볼걸 박모양이 빈병에 맞아 이빨이 부러지는 등 2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
6명의 심판들이 관중들에게 얻어맞아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오광소 주심을 비롯해 백대삼 1루심, 김찬익 우익선심 등이 허리와 등, 옆구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충격에 휩싸인 KBO는 다음날인 5월 20일 경기장 폭력사태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 발표했다. KBO는 구장질서확립을 위한 시설을 즉각적으로 확충하도록 7개 구단에 지시했다. 아울러 ‘관중들의 투병, 투석이 일어나면 홈 구단에 1차 경고를 하고, 계속될 경우 몰수게임을 선고하며, 관객이 구장에 난입, 난동을 부릴 경우는 즉시 몰수경기 패를 선고한다'로 밝혔다. 또한 KBO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경기장 질서유지에 소홀한 빙그레 구단에 책임을 물어 벌금 100만 원을 부과했다. # #
이날 사건은 그때까지 발생했던 프로야구 사건사고 중 해태 구단 버스 방화 사건 다음 가는 최악의 관중 폭력 사건으로 거론되었다. 특히 판정불만을 이유로 다수의 관중들이 심판진을 집단으로 폭행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했다. 이날 사태 이후 심판들은 "관중들의 폭거(暴擧)로 심판보기가 두렵다"로 언론에 토로하기도 했다.

5.2. 1988년 해태 구단 버스 파손 사건


관중들 경기장으로 집단 난입하여 심판들을 집단 구타한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인 1988년 5월 20일 일부 빙그레 홈 관중들이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고 해태 구단의 버스에 돌을 던져 버스가 파손되어 200여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
1988년 들어 빙그레 이글스팬들의 관중 난동과 폭력 사태가 유독 심각한 양상을 띄는 것에 대해 한 전문가는 "그동안 성적이 나빴던 빙그레 이글스가 좋은 성적을 거두자 관중들이 승부에 집착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

5.3. 1988년 해태 우승 시상식 훼방 사건


1988년 10월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해태-빙그레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해태가 빙그레를 4승2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 후 해태의 우승 축하 세레머니 및 시상식이 열렸는데, 이때 빙그레팬으로 추정되는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빈 깡통을 던지는 등 무질서 사태가 빚어지며 해태의 우승 시상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

5.4. 1989년 대전구장 관중 난동 및 천보성 삼성 코치 실신 사건


1989년 5월 17일 대전구장. 삼성과 빙그레의 시즌 6차전 9회 초 경기 도중 극렬한 관중 난동으로 경기는 22분간이나 중단됐고, 이 과정에서 천보성 삼성 코치가 실신하여 들 것에 실려 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경기에서 삼성 선발투수 양일환의 호투로 빙그레가 자랑하던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침묵하며 단 한 점을 뽑는데 그쳤다. 반면 빙그레 선발 이상군은 이날 매우 저조한 컨디션을 보이며 유독 제구가 흔들리면서 5자책으로 부진했다.
삼성은 롯데에서 이적해 온 김용철의 홈런 등으로 5회까지 6-1로 앞섰고 8회에 한 점을 더 뽑아 승부가 기울었다. 그러자 빙그레 응원 팬들은 경기 후반에 빈병과 깡통 따위를 그라운드로 마구 던져댔다. 어린이 주먹만 한 돌멩이도 날아들었다. 그 와중에 천보성 코치가 빈병에 맞아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사실 천보성이 진짜 기절한 것은 아니었다. 천보성이 병을 머리에 맞았을 때 심판이 ‘이 참에 한 번 대전 관중들에게 겁을 줍시다. 아예 드러누우십시오.’라고 해서 일부러 뻗은 척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을 다룬 기사는 "‘일등선수 꼴찌관중’ 대전구장 관중 소란행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것이 중론이다."라고 지적했다. # #

5.5. 1991년 해태전 관중 난동 사건 1


1991년 5월 21일 대전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와의 시즌 1차전이 열렸다. 빙그레는 해태 선발 선동렬의 구위에 눌려 7회까지 무득점에 그치고 있었다. 한편 해태는 이호성의 홈런과 박철우, 이건열, 장채근 등의 적시타로 6회에만 5점을 뽑아 앞서나갔다. 6회에 대량실점이 이어지자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 관중들이 빈병, 맥주캔, 음료수병 따위를 그라운드에 난사했고 일부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하여 급기야 경기가 중단됐다. 난동 관중들은 어디라 가릴 것 없이 오물을 마구 뿌려대 사진기자들이 대피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경기 후 대전구장 그라운드는 쓰레기 천지로 변했다.
빙그레는 0-6으로 뒤져 이미 승부가 기운 8회 말 전대영이 선동렬로부터 2점 홈런을 뽑아내는 등 8, 9회에 3점을 얻었지만 결국 3-6으로 졌다. #

5.6. 1991년 해태전 관중 난동 사건 2


1991년 5월 23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해태-빙그레 전에서 해태 이강철의 호투와 한대화, 김성한이 각각 3점 홈런을 날려 해태가 크게 앞서면서 빙그레의 패색이 짙어자 관중들이 난동을 부리고 그라운드에 난입하면서 이날 3차례나 경기가 중단되었다. 특히 이날 3점 홈런을 비롯하여 4타점을 올린 대전고 출신 한대화에게 "배신자" 운운하며 욕설이 난무했다.
이날 경기는 해태가 빙그레를 16-2로 꺾는 대승을 거두었다. # #

5.7. 심판진 숙소 앞 항의 농성 사건


10월 12일에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빙그레 이글스가 해태 타이거즈에 역전패하자 50여명의 극성스런 관중들이 경기 후 대전구장에서 200여m 떨어져 있는 심판진 숙소로 몰려가 1시간 이상 소란을 피웠다. 관중들은 “심판판정이 잘 못돼 빙그레가 역전패했다”며 밤늦게까지 숙소 앞에서 연좌 농성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

5.8. 1992년 그라운드 편싸움


1992년 5월 10일 대전구장에서 열렸던 해태-빙그레의 경기 도중 일부 관중이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싸움을 벌이는 ‘대낮 활극’이 펼쳐졌다.
빙그레는 정민철을 선발로 내세웠으나 해태 이순철, 김성한, 장채근에게 홈런 3발을 얻어맞는 등 8회까지 8실점했다. 그러자 관중들이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경기도중 일부 관중이 그라운드로 뛰어들어 해태 덕아웃 앞에서 편싸움을 벌였다. 한 관중이 대형 쓰레기통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상대편을 향해 던지려고 하자 웃통을 벗어 제친 다른 관중이 그에 맞섰다. 그 모습을 해태 선수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5.9. 1992년 관중 난투극


1992년 5월 11일 대전구장에서 심판판정을 놓고 관중 50여명이 유리병과 의자를 집어던지며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 이중 식당종업원 김모씨 등 2명이 구속되었다. #

5.10. 1992년 한국시리즈 2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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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버스방화 사건과 1990년 잠실구장 패싸움 사건에 이은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관중 폭력 사태'''로 남아있다. 이 경기에 나온 사건사고를 나열하면 '''그라운드 오물 투척 / 원정팬들에게 욕설 및 오물 투척 / 원정팬 집단구타 / 대전구장 기물 파손 / 빙그레 구단버스 파손 / 경찰과의 집단 몸싸움, 경찰 상해'''가 된다.

5.10.1. 배경


1992년, 2위인 해태 타이거즈와 10.5게임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한 빙그레 이글스는 막강한 전력으로 창단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첫우승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었다. 빙그레는 이전까지 세 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모두 해태에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92년 한국시리즈 상대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연속으로 치르고 올라온 정규리그 3위 롯데 자이언츠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번번히 해태에 가로막혀 우승을 놓쳤던 빙그레는 플레이오프에서 롯데가 숙적 해태를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오자 쾌재를 부르면서 이번에야 말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하늘이 내려 준 기회로 여기며 우승에 대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 게다가 빙그레는 1992시즌 롯데와의 상대전적 14승 4패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한편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강병철 감독 특유의 쓸놈쓸 전략[18]으로 주전 투수진의 체력 소모가 매우 큰 상태였다. 특히 롯데의 원투펀치 윤학길, 염종석 모두 플레이오프 5차전에 등판하여 한국시리즈 1, 2차전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승을 향한 빙그레 팬들의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마침내 10월 8일, 9일 양일간 대전구장에서 한국시리즈 1, 2차전이 펼쳐졌다. 빙그레는 그해 다승왕을 차지한 19승 송진우와 평균자책점 2위를 차지한 14승 정민철을 1,2차전에 투입했다. 특히 송진우는 시즌 중 롯데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롯데는 1차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대량실점하며 크게 부진했던 3선발 박동희를, 2차전에는 그해 신고선수로 입단한 신인 윤형배를 선발로 투입하여 두 경기 모두 버리는 경기로 가져갔다. 롯데보다 한 수 위의 전력으로 평가받았던 빙그레 이글스는 그러나 1, 2차전 홈 경기에서 송진우의 부진과 야수들의 연속된 실책 등이 이어지며 두 경기 모두 패하고 말았다. 특히 송진우는 1차전에 나서 부진한 투구내용으로 패전투수가 된 후 다음날 2차전 0:0 상황에서 9회에 다시 마무리로 올랐다가 3실점하여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상대팀 감독 강병철은 원래 김영덕에 이어 빙그레의 차기 감독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강병철은 원래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서 84년 우승을 이뤄낸 바 있었다. 그러나 짠돌이 구단 롯데에 불만이 많았던 강병철은 빙그레 차기 감독직을 물려받는 것을 보장받고 롯데 감독직을 그만두고 1988년 빙그레의 수석코치로 왔다. 그러나 김영덕이 당초 약속과 달리 감독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장기 집권하려 하자 강병철은 격분하여 빙그레 수석코치를 사임하고 다시 롯데 감독이 되어 김영덕에게 시원하게 분풀이를 했던 것이었다.
한국시리즈 1, 2차전에서 연거푸 패하자 홈팀 빙그레 이글스 관중들은 격분했다. 특히 김영덕 감독의 투수 운용 실패가 연패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송진우는 1차전 1회부터 크게 흔들렸으나 교체하지 않고 밀고 가다가 결국 추가 대량 실점으로 이어지며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고, 2차전은 정민철의 호투로 8회까지 0:0 상황이 이어졌으나 전날 부진했던데다가 피로도까지 쌓인 송진우를 다시 투입했다가 또다시 패전으로 이어진 상황이었다.

5.10.2. 경기 중


8회까지 팽팽한 동점 상황이었다가 9회초에 올라온 송진우가 흔들리면서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롯데 김민호가 선취점을 뽑아내자 대전 관중들은 흥분하여 그라운드를 향해 오물들을 비오듯 쏟아냈다.
9회 롯데가 연속 득점을 이어가자 한화 관중들은 흥분하여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한화팬들은 3루쪽에 자리잡은 100여명의 롯데 원정팬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시비를 걸더니, 이내 롯데 원정팬들을 향해 각종 오물을 투척했다. 당시 롯데 원정팬들을 향해 던져진 오물에는 내용물이 가득 담긴 소주병들이 난무했다고 한다. 당시 이를 보도하던 언론은 '운동회 빈바구니 터트리기가 연상된다'고까지 묘사했다.
오물 투척이 잠잠해진 후 한화 팬들은 한 롯데팬을 내야쪽 철책까지 끌어내더니 수십명이 둘러싸고 집단 폭행을 가했다. 폭행을 당하던 팬은 웅크린 채 속수무책으로 수십명에게 발길질을 당했으나, 주변에는 이를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 제지하는 청원 경찰도 없었다고 언론은 개탄했다. 3루쪽 집단 폭행이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1루쪽에서도 한 관중을 향한 집단 폭행이 가해졌다. #

5.10.3. 경기 후


9시경 경기가 패배로 끝나자 관중들은 격분하여 난동을 일으켰다. 분노한 관중들은 구장 본부석 대형유리창을 모두 박살냈다. 경찰이 제지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일부 관중들은 그라운드로 난입하여 불을 지르기도 했다. 흥분한 관중들은 구장 밖으로 몰려 나왔다. 구장 정문을 박살낸 후 뜯어내 버렸고, 정문 주위의 유리창 40여장을 부쉈다. 이때 빙그레 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구장을 빠져 나가려 하자 관중들은 버스를 가로막아 세운 후 버스를 향해 돌, 술병, 쓰레기통을 비롯한 각종 오물을 투척하여 버스 유리창을 모두 부숴버렸다. 빙그레 선수들은 버스 안에서 필사적으로 커튼을 붙잡으며 쏟아지는 유리창 파편과 돌멩이 등 각종 오물들을 막아냈다.
흥분한 관중들을 제지하기 위해 대전 중부경찰서 및 충남도경 소속 경찰기동대 4개 중대 등 1000여명의 경찰 병력이 출동했다. 그러나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자 대부분 술에 취한 상태였던 500여명의 관중들은 더욱 흥분하여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관중과 경찰 양측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 광경을 취재하던 몇몇 기자들도 관중들이 던진 돌멩이와 술병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관중들의 과격한 몸싸움과 쏟아지는 돌멩이, 병 투척을 견디지 못한 경찰은 한때 단체로 후퇴하여 대전구장 안으로 피신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편 관중들이 경찰들과 한창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이 빙그레 선수들은 버스를 탈출해 구장으로 대피했다.
한편 롯데 구단 측은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관중 소요에 대비해 구단 버스를 대전구장에 주차하지 않고 숙소인 대전 새서울호텔에 주차시켜 놓은 상태였다. 경기 종료 직후 관중들의 난동이 발생하자 롯데 구단측은 선수들을 태우러 오고 있던 구단버스에 무전으로 연락해 호텔로 돌아가 대기하도록 했다. 롯데 선수들은 관중들의 소요를 피해 경기장 안에 피신해 있었다. 롯데 선수단은 약 1시간 후인 10시경 경찰들의 보호 아래 관중들이 몰려있던 정문 반대쪽으로 간신히 구장을 떠났다.
10시 이후 경찰 진압에 의해 대전구장 앞 관중들은 해산했다. 그러나 여전히 관중들은 대전구장 앞 도로와 구장 주위를 떼지어 다니며 도로를 점거하고 가두시위를 벌이며 김영덕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소란을 이어갔다.

5.10.4. 결말


이날 사건으로 경찰 수 명이 부상을 당했다. # 이 사건은 86년 해태 버스 방화 사건에 버금가는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관중 난동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날 대전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했던 김영덕 감독의 외아들은 경기장에서 아버지에게 쏟아지는 욕설을 듣고 충격을 받아 밤새 눈물을 쏟아내고 다음날 아버지에게 "야구를 그만두시라"고 말했다고 한다.

5.11. 대전구장 관중 난동 사건


1995년 7월 18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롯데-한화전에서 8회말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품은 대전 관중들이 깡통 등 각종 이물질을 운동장에 투척했고, 일부 관중들이 운동장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렸다. 일부 관중은 혁대를 풀러 심판에게 매질을 가하려 했고 이를 롯데 공필성이 온몸으로 막았다. 관중이 던진 깡통이 임채섭 심판의 이마를 직격하여 임 심판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기도 했다. #

5.12. 1996년 플레이오프 관중 난동


1996년 10월 1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현대-한화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현대 유니콘스가 작전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15:0으로 승리하자, 대전 관중들이 상대방 선수와 원정팀 팬들에게 각종 오물을 투척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대전 관중들의 수준낮은 경기장 매너는 올 시즌에도 변함없이 재현.'''

점수는 차이났지만 경기내용면에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던 4회까지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던 홈팀 한화의 관중들은 5회초 현대가 대거 5점을 뽑아 6-0으로 점수가 벌어지자 `때가 왔다'는 듯 난동을 피우기 시작. 3루측에 마련된 원정팀 관중석의 일부를 차지한 한화 팬들은 바로 옆의 현대 관중들에게 물통을 던져 패싸움 일보직전까지 가는 추태를 보였고 5회말 한화 임수민의 잘 맞은 타구를 현대 좌익수 이숭용이 호수비로 잡아내자 물통, 라면찌꺼기 등을 이숭용을 향해 쏟아붓기도. #


5.13. 한화 구단, 대전구장 욕설 관중들과의 전쟁


"대전구장에서는 야구하기 싫어요."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 원인은 일부 몰지각한 대전 관중들의 욕설 때문이다. 대전 경기 때면 상대팀 선수들은 노이로제에 걸린다. 1루측 내야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욕설로 인해 경기 내내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
몇몇 대전팬들의 무절제하고 비이성적인 욕설은 정도를 넘어섰다. 선수 개인의 신상을 소재로 목청을 높이는가 하면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험담을 퍼붓는다. 홈팀 선수들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급기야 대전구장은 가족과 함께 못갈 곳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선수들이 무슨 잘못, 무슨 큰 죄를 진걸까. 익명의 숲에 숨어 무차별적으로 가하는 언어테러. 그들이 쉽게, 재미삼아, 내던지는 욕설에 선수들은 멍이 든다. 두산의 한 선수는 "웬만하면 참겠지만 정말 해도 너무한다. 타 팀 선수들도 대전에 오기 싫어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들의 언어폭력은 한화 구단까지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2005년 9월 그동안 상대 팀들의 항의에 시달려온 한화 구단이 드디어 나섰다. 현장 프런트가 두 차례에 걸쳐 욕쟁이 손님들에게 주위에 경고까지 줬다. 하지만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미 이들의 신상을 파악한 구단은 향후 더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매표소에 전담 직원을 배치해 티켓 판매를 막고 입장을 원천 봉쇄한다는 방침이다. 팬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구단으로선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욕을 달고 다니는 그들 또한 한화를 좋아하는 팬이고 자칫 이런 조치가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화 프런트는 "대전구장은 이미 자정 능력을 잃었다. 일부 때문에 다수가 피해를 보는 사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충절의 고장으로 불려온 충청도, 양반의 도시 대전. 그러나 대전구장에는 이런 좋은 수식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물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일부 몰지각한 팬들에게 있다. 경기 관람 자격 심사가 필요해진 대전구장이다. #

5.14. 김태균 관중 말싸움 사건


2005년 10월 6일 준플레이오프 5차전. 한화가 4-3으로 앞선 5회 1사 후 타석에 김태균이 들어섰다. 김태균은 당시 준플레이오프에서 1안타만을 기록한 채 침묵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태균이 이번에도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고 2루 땅볼로 아웃이 되어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때 덕아웃쪽 일부 관중들이 김태균에게 심한 야유와 욕설을 가했다. 이에 덕아웃으로 들어가려던 김태균은 참지 못하고 관중과 말싸움을 했다. 급기야 김태균은 헬멧을 벗어 던지고 그라운드로 내려오라는 손짓까지 보였다. 이에 김인철, 제이 데이비스가 말려 덕아웃 안으로 들어가는 듯했지만 곧 다시 나와 그물망을 사이에 두고 그 관중과 시비를 벌였다. #

5.15. 욕설이 난무하는 대전구장


2006년 7월 6일 대전구장에서 훈련 중인 LG 이병규가 대전구장 욕설 문제를 기사로 써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이병규는 "이따가 경기중에 밖에 나와서 한번 들어보라"며 "내가 야구 선수라는게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한화 홈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야유가 도를 지나친다는 것이다. 단순 육두문자는 그래도 참을만 하다고 했다. 하지만 낯뜨거운 욕설에다 가족을 거론하는 욕설엔 정말 치가 떨릴 정도라고 한다. 대전구장에 오면 '충청도 양반'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할 정도라는게 선수들의 얘기다.
조인성 역시 "다른 야구장에선 심하게 욕하는 관중이 있으면 경비 용역 업체 직원들이 조치를 취하는 걸로 아는데 대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내가 부모라도 이렇게 욕설이 난무하는 야구장에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흥분했다. 조인성은 포지션이 포수이기 때문에 공격은 물론 수비때도 관중들의 욕설을 줄곧 들어야 하는 입장이다.
이 욕설의 피해자는 심판들도 포함된다. 한명이 하는게 아니다. 여러명이 돌아가면서 욕설을 퍼붓고, 쉼없이 내뱉는다. 심지어 플레이가 시원찮은 홈팀 선수도 대상이 된다.
한화 구단에서는 '저질' 관중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

5.16. 관중 욕설 사건


2006년 8월 18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LG전에서 LG 선수에 대한 대전팬들의 과도한 욕설 때문에 한화 김인식 감독까지 나서서 진정시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를 보도한 언론 기사는 "대전구장은 관중들의 홈팀 한화에 대한 사랑이 큰 만큼 반대로 상대팀에 대한 욕설을 많이 하기로도 유명하다."고 지적했다. 현대 김시진 투수코치는 이 사건에 대해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지금 야구장을 찾는 아이들이 20년 후에 저렇게 할 수도 있잖습니까."라며 개탄했다. #

5.17. 그물망 위 난투극 사건


2006년 10월 2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삼성-한화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연장전 끝에 한화가 3-4로 패하자 관중석이 혼란스러워졌다. 관중들의 욕설이 야구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관중 보호를 위해 쳐놓은 그물망 위로 올라가 팬들끼리 주먹다짐을 벌이는 광경도 목격됐다. 삼성 구단 관계자가 운동장을 빠져나갈 때는 경호원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

5.18. 김인식 감독 욕설 사건


2006년 10월 26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삼성-한화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한화의 패배로 끝난 직후 양 팀 감독의 인터뷰가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패장인 한화 김인식 감독이 먼저였다. 인터뷰를 위해 덕아웃을 떠나 그라운드로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이었다. 바로 뒤 한화 측 관중석에서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이 튀어나왔다. 육두문자가 섞인 "김인식 XXX~"가 두세 차례 반복됐다. 불편한 발걸음을 멈춘 김 감독은 고개를 돌렸다. 이내 표정은 구겨지고 말았다. 한화 관계자가 관중석을 향해 해당 관중을 제지하고 나서야 겨우 상황은 일단락됐다.

대전구장의 '언어폭력'은 널리 알려진 사실. 상대 선수나 감독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한화 팬들의 행태가 좀처럼 끊이질 않고 있다. 시즌 중 김 감독은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욕설을 자제시키기 위해 직접 나선 적도 있다. 그 폭력이 이제 '국민 사령탑' 김 감독에게까지 이른 것이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그 악명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그러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다시 터진 대전구장의 '언어 폭력'


5.19. 연일 계속되는 관중 난입


2008년 5월 한화-LG전이 열린 대전구장 그라운드에 연일 관중이 난입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5월 10일에는 한 외국인이 외야 담장을 넘어 홈까지 달려와 슬라이딩까지 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데 이어 11일에는 한 술에 취한 남자가 방망이를 들고 한화 덕아웃까지 들어가 안전요원의 제지를 받았다. #

5.20. 보문산 호루라기 과도 응원 논란




5.21. 대전구장 관중 공 투척 사건


2015년 3월 17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시범경기 한화-넥센전이 관중의 난동으로 경기가 중단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한화가 4-10으로 뒤진 6회초에 한화 유니폼을 입은 한 남성이 출입이 금지된 외야 쪽에서 그라운드 진입을 시도했다. 이를 발견한 송수근 주심이 곧바로 경기를 중단시키자 이 남성은 그라운드 진입을 포기하고 전광판 뒤로 몸을 숨겼다. 이후 경기는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이 남성은 우측 외야 관중석으로 이동하여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공을 그라운드 안으로 던졌다. 경기 진행요원이 다가가 남성을 만류했지만, 계속해서 4개의 공을 던졌고, 경기는 잠시 중단됐다. 양 팀 선수들은 물론 대전구장을 찾은 팬들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남성이 관중석에서 사라지면서 경기는 속개됐다. #

5.22. 주사기 투척사건


2015년 9월 26일 넥센전에서 최진행이 수비를 보는 도중에 외야 관중석에서 최진행을 항해 10여개의 주사기가 투척되는 사건이 발생했다.[19] 잘 진행되던 경기가 중단되고, 주사기를 투척한 관중은 퇴장조치를 당했다.

5.23. 경기 방해로 관중 퇴장 사건


2016년 5월 21일 kt전에서 6회초 동점 상황에서 이대형이 페어 존에 살짝 들어가는 역전 적시타를 쳤다. 그런데 공은 익사이팅 존 쪽으로 계속 굴러가 관중이 공을 잡았고, 볼데드가 선언되어 인정 2루타가 되었다.# 볼데드가 아니었다면 1루 주자도 충분히 홈으로 들어올 수 있었기에 kt 입장에서는 2점을 올릴 수 있었던 상황에서 1점밖에 못 나고 말았다. 결국 12회 연장 혈투 끝에 두팀은 비겼다(...)
양 팀 팬들 모두가 문제의 관중을 비난했고, 즉시 퇴장당했다. 참고로 4년 전인 2012년 6월 1일 부산 사직구장 경기에서도 이런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5.24. 경기 방해로 관중 퇴장 사건 2


2017년 6월 11일 삼성전에서 한화가 4-3으로 리드한 8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한화 투수 권혁과 삼성 타자 김정혁이 신경전을 벌이던 때 갑작스레 경기가 중단되었는데 한 관 중이 파울볼을 습득하기 위해 대전구장 지붕 위를 거닐고 다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던 것.# 경호원들이 출동해 이를 제지하고 당사자는 야구장 밖으로 퇴장당했으며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고 한다.
이기적인 관중 한 명으로 경기가 중단된 탓에 한화 측에서는 긴장감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고, 경기 흐름이 급격히 삼성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8회에만 3점을 내주고 9회에 1점을 또 허용하면서 4-7로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5.25. 경기 방해로 관중 퇴장 사건 3


2017년 9월 15일 넥센전에서 0:0으로 팽팽히 맞서던 3회초 2사 1,3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윤규진과 넥센 타자 마이클 초이스가 신경전을 벌이던 때 한 관중이 갑작스레 대전구장 좌측 익사이트존 펜스를 넘어 그라운드로 달려와 홈 슬라이딩을 하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었다. .# 경호원들이 달려와 정신이상자를 경기장 밖으로 끌고 갔지만 투수는 정신이 흐트러졌는지 이 타자한데 선취 쓰리런을 맞고 만다.


5.26. 청주구장 관중 난입 및 이물질 투척


2018년 6월 19일 시즌 첫 경기가 열린 청주구장에서 LG가 4-0으로 앞선 9회말 한화의 공격, 2사 1루에서 갑자기 그라운드에 남성 관중 2명이 나타났다. 우측 관중석을 타고 올라와 외야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2명의 남성 관중은 우측에서 좌측을 가로질러 뛰어다니며 소란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경기가 잠시 중단됐다. 경호원들과 볼보이들이 다함께 달려들어 추태 부린 관중들을 잡고 경기장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뿐만 아니라 외야에 이물질이 투척되는 등 그라운드 정비로 약 2분간 중단된 뒤에야 재개됐다. #

5.27. 잠실 야구장에서의 행패와 권혁에 대한 인신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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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vs한화 경기에서 일부 한화 원정팬들의 행패는 관람객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지 않은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한화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다가[20] 참을수가 없어서 자유계약 선수로 풀어달라고 요청한뒤 두산으로 이적한 권혁에게 적반하장으로 욕설을 내뱉는 일부 한화팬들의 행패는 두산팬들의 입장에서 어처구니가 없는 행위였다.


[1] 6월 13일 경기는 우천으로 인해 서스펜디드 게임 선언이 되었고, 6월 14일에 다시 치르게 되었다.[2] 1976년생.[3] 최진호 항목에는 검거 시간이 2일후라서 음주여부 역산이 불가능했다고 써져있음. 교차검증 필요[4] 이후 항소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16년 6월에 형집행만료로 석방되었다.[5] 임경완, 오윤, 권용관, 황선일 등의 입단으로 인해 선수정원이 꽉 찼기 때문에 정원조절을 위해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6] 이미 위재영의 사례가 있으므로 처음은 아니다. 재밌는건 저때도 감독이 김성근이었다는 사실.[7] 예를 들어 2년 10억의 계약을 했는데 1년 후 계약을 구단측이 해제하면 남은 1년분 5억에 대해 지급해야 한다. 타 구단과 1년 3억의 계약을 맺는다면 계약을 해지한 측은 차액분인 2억을 지급해야하는데 이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8] 대전 이외에 광주, 사직 경기 역시 우천취소 되었다. 광주, 사직은 내야 방수포를 제대로 덮어놨다.[9] 야구선수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 아니다. 그이유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려면 '종속노동'이 전제되어야하는데, 야구선수는 업무종속성이나 독립사업자성, 임금종속성등을 고려했을때 '종속노동관계'에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판례는 야구선수보다 근로자에 더 가깝다고 볼만한 골프장 캐디나 학습지 교사등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인하고있다.[10]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엠스플뉴스의 10월 31일자 기사가 나간 뒤 협회 차원에서 선수들의 인권침해 사례가 더 있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정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도 조만간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발벗고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11] 게다가 티저말미에 '''이병훈이 옳았다''' 가 '''그가 옳았다'''로 수정되어 더욱 이 썰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링크[12]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선수는 강경학, 김민우 등으로 추정되며 내부고발자 후보군(...)으로는 송창현, 장운호 등이 거론되는 중. 애초에 부상 후 장기간 재활 중인 1군급 젊은 선수와 군대로 탈출을 노리던 젊은 선수 정도로 좁혀지는데 의외로 몇 없다. [13] 박동희, 배지헌이 별 증거없이 일을 키웠다는 의견도 있다.[14] 이것과는 별개로 대전 공무원들의 지역 야구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상당히 부실했다. 대덕구는 2군 경기장 부지와 연습 시설 부지를 제공한다고 해놓고서는 입장을 뒤집는 추태를 부려서 한화의 2군 육성에 차질을 만들었고, 새로운 1군 구장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나 대전시청은 2018년에 이르러서야 구장 신축 계획을 세웠다.[15] 롯데 자이언츠 2회 우승, 기아 타이거즈 11회 우승, 삼성 라이온즈 8회[16] 다른 구단들에 비해서는 역사가 짧은 편인 NC 다이노스는 제외[17] 그때 대전 홈구장에서 한참 깽판쳤던 훌리건 아재들은 2020년 기준으로 50~60대가 되었다. 야구 직관보다 생계 문제와 노후 대비가 급한 판국이다.[18] 대표적으로 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을 5차례 출전시켜 우승을 거두었다.[19] 심지어 바늘이 달린 주사기였다.[20] 김성근의 무통주사 강요와 자비 수술 강요, 2019년 1군 스프링캠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