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덴바움 왕조/역대 황제
1. 개요
2. 특이사항
3. 역대 황제
3.2. 2대 - 지기스문트 1세 (Sigismund I)
3.3. 3대 - 리하르트 1세 (Richard I)
3.4. 4대 - 오토프리트 1세 (Otfried I)
3.5. 5대 - 카스퍼 (Kasper)
3.6. 6대 - 율리우스 (Julius)
3.8. 8대 - 오토프리트 2세 (Otfried II)
3.9. 9대 - 아우구스트 1세 (August I)
3.10. 10대 - 에리히 1세 (Erich I)
3.11. 11대 - 리하르트 2세 (Richard II)
3.12. 12대 - 오토하인츠 1세 (Otto Heinz I)
3.13. 13대 - 리하르트 3세 (Richard III)
3.16. 16대 - 프리드리히 1세 (Friedrich I)
3.17. 17대 - 레온하르트 1세 (Leonhard I)
3.18. 18대 - 프리드리히 2세 (Friedrich II)
3.19. 19대 - 레온하르트 2세 (Leonhard II)
3.21. 21대 - 막시밀리안 요제프 1세 (Maximilian Josef I)
3.22. 22대 - 구스타프 1세 (Gustav)
3.23. 23대 -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Maximilian Josef II)
3.25. 25대 - 만프레트 1세 (Manfred I)
3.26. 26대 - 헬무트 (Helmut)
3.28. 28대 - 빌헬름 1세 (Wilhelm I)
3.29. 29대 - 빌헬름 2세 (Wilhelm II)
3.30. 30대 - 코르넬리우스 2세 (Kornelius II)
3.32. 32대 - 에르빈 요제프 1세 (Erwin Josef I)
3.34. 34대 - 오토하인츠 2세
3.37. 37대 - 에르빈 요제프 2세 (Erwin Josef II)
3.38. 38대 - 카타린 케트헨 1세 (Katharin Kätchen I)
1. 개요
다나카 요시키가 쓴 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 역대 황제들에 관한 설명을 담은 목록.
몇몇 황제의 일화는 역사상의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2. 특이사항
은하영웅전설 소설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는데, 본편에서 언급된 선대 황제들과 비교할 경우 약간의 괴리가 있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외전 2권 부분에서 리스트를 작성하다가 본편에서 언급한 걸 잊은 것으로 추정된다(...).
- 루트비히 3세 - 본편에서는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는 선선제 루트비히 3세의 증손녀라는 언급이 있지만, 정작 외전 2권의 내용에서는 루트비히라는 이름은 3세는커녕 1명도 없다. 더 나중에 나온 OVA에서는 오토프리트 5세로 수정됐다.
- 게오르크 2세 - 알프레드 폰 란즈베르크 백작의 5대 전 선조가 당시 황제 게오르크 2세의 명을 받고 비밀 통로를 만들었다고 언급되었으나 정작 역대 황제 목록에는 게오르크란 이름조차 없다. 다만 시기적으로 120여년 전후가 되므로, 실제로는 만프레트 1세에서 빌헬름 2세 치세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 외에 선대 황제와 동일한 이름으로 즉위한 황제가 없으면 1세를 붙이지 않는다. 실제 외전 2권에서 프리드리히 4세 황제 재위시절 과거 황제 계보도가 소개될 때 32대 황제의 경우 "에르빈 요제프"로만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를 이은 인물이 에르빈 요제프 2세로 불렸기 때문에 훗날 기록에서 에르빈 요제프 1세로 수정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원칙이 100% 지켜진건 아니다.[2] 루돌프 대제의 경우엔 루돌프 1세라고 기록되었는데 역시 루돌프 2세라는 후속 황제가 없다(...). 이건 마지막 황제인 카타린 케트헨 1세도 마찬가지. 굳이 합리화 하자면, 로엔그람 왕조가 '은하제국'이라는 국가 체계와 '은하제국 황제'라는 지위를 이어받은 것이므로 로엔그람 왕조에서 세대수를 리셋하지 않고 골덴바움 왕조에 연계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유럽 국가에서 왕조가 교체되어도 국가가 동일하면 왕명 뒤에 붙는 세대수는 그냥 가산한다. 즉, 로엔그람 왕조에 루돌프 2세, 카타린 케트헨 2세가 존재하면 이런 호칭이 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른 해석으로는 보통 국왕이나 황제의 명칭은 군주 본인의 고유 특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가 그 이름을 처음 쓴 군주라도 일부러 1세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요한 바오로 1세나 후안 카를로스 1세. 이 경우 루돌프는 후계자들이 자기 이름을 대대손손까진 아니라도 이어받길 원했는데 후임 황제들이 알아서 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래도 카타린 케트헨 1세는 설명이 어렵다.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에서는 이에 대해 루돌프가 스스로 루돌프 1세를 칭했다고 변경하면서 설정오류를 메꿨다.
작품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최근 들어 5명이나 황제가 암살당했다는 서술로 보아 말기로 갈수록 궁중 암투가 더 치열해진것 같다. 오토프리트 3세 같은 경우 그거 때문에 사람이 망가져서 결국 죽기까지 했으니 뭐.....
소설에서 황실에서 태어난 황자들에게 이름을 붙여줄 때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다고 나온다.
1) "루돌프(Rudolf/ルドルフ)"는 개조 루돌프 폰 골덴바움으로 인하여 피휘 비슷하게 금기시하여 짓지 않는다. 추가로 황실뿐만 아니라 귀족들 중에도 루돌프란 이름을 쓰는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3]
2) "루트비히(Ludwig/ルートヴィヒ)"와 "카를(Karl/カール)"은 제위계승을 하지 못하고 좌절한 사례가 너무 많아 운이 없다는 이유로 기피함.[4]
3) "아우구스트(August/アウグスト)"는 은하제국 사상 개막장 폭군으로 기록된 아우구스트 2세 때문에 이후 기피함.
더불어 초대 황제 루돌프를 제외하면 대제 칭호를 받은 황제가 없다. 작중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도 대제 칭호를 쓰지 않는다.2) "루트비히(Ludwig/ルートヴィヒ)"와 "카를(Karl/カール)"은 제위계승을 하지 못하고 좌절한 사례가 너무 많아 운이 없다는 이유로 기피함.[4]
3) "아우구스트(August/アウグスト)"는 은하제국 사상 개막장 폭군으로 기록된 아우구스트 2세 때문에 이후 기피함.
그 외에 사생활이 깨끗한 황제가 거의 없는 것도 공통점이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역시 어린 나이에 폐위 및 퇴위했던 에르빈 요제프 2세나 카타린 케트헨 1세를 제외하면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만이 유일하게 사생활이 깨끗했다. 이 때문인지 후술하겠지만 사생활 관련해서 별별 황제가 다 나온다. 동성애에 빠져 황제 자리를 갑자기 내던진 카스퍼, 90대 노년의 나이에 10대~20대 여자를 밝힌 율리우스, 긴머리 페티시즘에 열광하던 아우구스트 1세, 총희가 수백명에 달했던 리하르트 3세, 궁중음모를 두려워해 황후와 황태자를 밥 먹듯 갈아치우던 오토프리트 3세, 1만 후궁 하렘을 달성한 오토프리트 4세 등 다양하다. 그나마 성적으로 좀 건전한 인물은 앞서 말한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를 포함해 오토프리트 1세, 구스타프 1세[5] 정도로 보인다.
3. 역대 황제
3.1. 초대 - 루돌프 대제 (Rudolf der Groß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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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ドルフ・フォン・ゴールデンバウム.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의 개조. 제국력 원년 ~ 42년(우주력 310 ~ 351년, 서력기원 3110 ~ 3151년) 재위.
다나카 요시키의 연표에는 루돌프 1세라고 기록되었으나, 루돌프 2세는 없다. 흔히 '''루돌프 대제(Rudolf the Great)'''로 불린다. 이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3.2. 2대 - 지기스문트 1세 (Sigismun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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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ギスムント1世. 루돌프의 외손자. 즉위 당시 나이가 어려[6] 아버지 요아힘 폰 노이에슈타우펜 공작의 보좌를 받아 제국을 다스렸다.[7] 루돌프의 죽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제국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제국에 충성하는 신민들에겐 선정을 펼치고, 공화주의자들을 철저하게 탄압하여 은하제국의 주춧돌을 마련하였다.
또한 루돌프의 폭정 하에 숨죽이던 공화주의자들의 마지막 영광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루돌프의 사망을 기점으로 제국 전역에서 공화주의자들의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 한때는 수도 오딘의 황궁 코앞까지 진격했으나 결국 패배하였고 5억 명에 달하는 공화주의자가 죽었고 그 가족 100억명이 농노로 전락했다.
3.3. 3대 - 리하르트 1세 (Richar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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リヒャルト1世. 통치보다는 미녀와 시, 음악에 심취하였지만 황제로써의 직무는 잊지 않았고 별다른 특징 없이 제국을 다스렸다. 단지 드센 성격인 황후와 60여명의 애첩 사이에서 무난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8]
3.4. 4대 - 오토프리트 1세 (Otfrie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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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トフリート1世. 리하르트 1세의 아들, 아버지와 달리 어떠한 취미도 갖지 않았다. 아버지보다는 성실했지만 완고하고 금욕적이었고 매일같이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황제로써의 일정을 담담하게 소화했을 뿐 아버지가 심취하던 미녀도 음악도 관심갖지 않았고[9] 오로지 짜여진 '일정'에 자신을 맞춰 살았다. 심지어 군 기지에서 초대형 폭발사고가 나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터진 날에도, 식사를 마친 뒤 사고에 대한 보고가 급히 들어오자 황제는 '일정에 없던' 딱 한 마디를 남기고 다음 일정인 '식후 15분 간의 산책'을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런 사고에 관해 보고를 듣는 일은 오늘의 예정에 없었느니라"[10]
변화도 개혁도 관심이 없고 제국을 통치하는 것조차 오직 루돌프 대제가 남긴 전례만을 따랐을 뿐이었고, 그나마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일정조차 본인 스스로 짜는 것이 아니라 특근 황실 정무비서관[11] 에크하르트 자작이 사전이 준비한 대로 따를 뿐이었다. 이러다보니 자작의 권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고 급기야 추밀고문관 및 황궁 사무총장까지 겸임하자 사람들은 황제 오토프리트 1세는 에크하르트 자작의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면 때문에 그의 별명은 잿빛 인간이었다고 한다. OVA에서는 당대 사람이나 현대 사람이나 지루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외모와 동생인 율리우스가 황제가 될 때 70이 넘었다는 점을 보면 그럭저럭 오래 산 편에 속하는 황제로 추정된다.
3.5. 5대 - 카스퍼 (Ka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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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スパー1世. 에크하르트 자작이 실질적인 제국의 황제나 다름 없어진 상황에서 오토프리트 1세가 사망하고 아들인 카스퍼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였다. 재위기간 약 제국력 123년~제국력 124년(추정)
카스퍼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 쪽을 닮아 음악에 심취하였으나 정확하게는 음악 자체보다는 음악을 하는 성악대의 '카스트라토'를[12] 좋아한 것이였다. 즉, 황제 카스퍼는 루돌프 대제가 혐오해마지 않았던 동성애자였다.
특히 프로리안이라는 이름의 성악대의 카스트라토 '소년'에 마음을 빼앗긴 황제는 어떠한 미녀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국정의 실권을 장악하며 자신의 딸을 황비로 들여 절대권력을 취하고자 했던 에크하르트 자작은 크게 분노하게 된다.[13] 결국 자작은 프로리안을 살해하기 위해 사병대를 이끌고 황궁으로 쳐들어갔으나 자작의 폭거를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던 리스너 남작이 자작의 음모를 미리 알아채고 황제의 윤허를 받아 황궁에 매복하여 자작이 사병들과 궁에 들이닥치자 '''즉시 제거하였다.'''[14]
제국을 뒤흔들던 간신이 제거되며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으나 카스퍼 황제는 '''퇴위 성명서를 옥좌에 던져놓고 자신의 사랑, 프로리안을 데리고 잠적'''하였고 그 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15] 퇴위 당시 즉위한지 고작 1년쯤 지났을 때였다.
사람들의 평가는 "전 황제가 회색의 산문이라면 현 황제는 회색의 운문."
3.6. 6대 - 율리우스 (Ju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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ユリウス1世. 은하제국의 6대 황제로, 4대 황제 오토프리트 1세의 동생이다.
제국 역사는커녕 인류 역사에도 유례가 있었는가 싶은 기가 막힌 황제의 퇴위 선언과 잠적으로[16] 제국이 혼란에 빠지려 들자 황제가 퇴위한지 140일 만에 중신들이 모여 회의를 거듭한 끝에 '''당시 70세가 넘어간 율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이런 고령의 인물이 황제가 된 배경은 율리우스 본인에게 있다기 보다는 중신들이 그의 아들인 프란츠 오토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당대 프란츠 오토는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고 누가 봐도 미래의 훌륭한 황제감이었다. 문제는 전임 황제의 갑작스런 잠적으로 누가 제위를 계승하건 정통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율리우스의 나이는 이미 70이 넘어 몇년 내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노인이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계계승을 통해 나이 50줄의 프란츠 오토가 제위를 계승하여 정통성까지 세워줄 수 있었다. 이에 중신들은 프란츠 오토를 바로 추대하지 않고 그의 아버지 율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는 꼼수를 부렸다.
율리우스는 즉위 직후 황태자로 서임한 아들 프란츠 오토에게 전권을 일임하였다. 그리고 본인은 궁정에 틀어박혀 적절한 사치와 여색을 즐기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데 집중했다.[17] 중신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프란츠 오토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매우 능숙하게 제국을 이끌어나가며 제국은 또다른 안정기를 맞이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율리우스는 골덴바움 황실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장수'''하면서 몇 년 살지 못할 것이란 중신들의 예상을 처참하게 박살냈다.
황제는 나이가 70대에서 80대를 찍고, 80대에서 마침내 90대가 되었는데도 죽음을 앞두기는 커녕 후궁을 줄줄이 들이고 또 갈아치워가며 행복한 노년을 보낸다. 황제가 식사 자리에서 96세로 사망했을 때 옆에 있던 후궁만 5명인데, 이들 다섯의 나이를 '''모두 합쳐도''' 황제의 나이를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 평균 19살, 전원이 고작 10대 중후반~20대 초반이었다는 건데, 이들은 율리우스가 즉위할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고로 이들이 후궁에서 가장 막내라인이라고 해도 앞서 들인 후궁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으나[18] ) 분명히 다수 있을 수밖에 없다.
성욕만큼이나 식욕도 엄청나서, 사슴갈비를 먹는 모습이 '''성장기 청소년이 먹는 모습과도 같았다'''고 할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과시했다.[19]
중신들은 자신들의 심각한 계산 착오를 깨닫고 후회하였으나 이 곤란한 상황에 대한 별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를 교체하려면 죽이든가 폐위하든가 해야 했는데 죽이다가 발각되거나 죽였어도 발각되면 역적이 되니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크고, 폐위하기에는 딱히 폐위당할 정도로 잘못한게 없었다. 장수했다고 폐위할 수는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그게 그거라는 위험부담도 있다.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황태자''' 프란츠 오토가 74세로 병사하고[20][21] 더구나 프란츠 오토의 아들, 즉 율리우스의 손자도 일찍 죽기까지 하자 중신들은 이제 '''황제가 급사하기를 필사적으로 빌기까지 했다.'''[22][23][24]
이 상황은 갑작스런 황제 시해 사건으로 마감될 수 있었는데 범인은 바로 차기 제위 계승권자였던 증손자 칼 대공이었다. 사실 칼 대공은 가만히 있었어도 제위 계승을 할 수 있는 신분이었지만 100세도 너끈히 살 것 같은 황제의 모습을 보고는 '''영원히 죽지 않는 노인네'''를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도 늙어 죽을 때까지 제위를 물려받지 못할 것이란 공포감에 빠져 독살을 감행했던 것이다.[25]
그 결과 율리우스는 제국력 144년 4월 6일 향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리고 율리우스 1세는 골덴바움 왕조 최초로 암살당한 황제로 기록되었다. 이 의외의 사건은 중신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공표된 모습이었고 속으로는 너무 기뻐서 미쳐 날뛸 정도(…)였다고 한다.[26]
정작 사건을 일으킨 칼 대공은 본인의 실수에 발목을 잡혀 제위를 물려받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던 5명의 젊은 후궁들은 황제가 죽어가는데도 비상 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죄목으로 스스로 자결해야 했는데, 독잔을 마시고 죽어가던 5명 가운데 한 사람이 팔찌를 유품으로 남긴 것. 황궁 경찰 장교이던 오빠가 유품을 전해받았는데 팔찌 안에는 립스틱으로 적은 진실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칼 대공에게 매수되어 황제를 독살시킨 실행범이었고 토사구팽당했던 것이다. 누이의 죽음에 분노한 오빠는 이걸 함부로 공개할 수는 없고 해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차기 황제 자리에 앉을만한 사람을 찾아가 이 모든 걸 털어놓았다. 바로 그가 다음 황제가 된 지기스문트 2세였다.
지기스문트 2세는 엄청 좋아라 했고 이 증거를 바탕으로 칼 대공을 황제 시해 범인으로 잡아가뒀다. 하지만, 이 사실을 공개하지는 않아 (수백여년이 지나서 로엔그람 왕조 때에서야 모든 게 드러났다) 칼 대공은 병중이란 명목으로 갑자기 사라져서 대신 즉위한 게 지기스문트 2세였다. 칼 대공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으며 그 뒤로도 70년 넘게 살았고, 세상 사람에게 잊혀진 채 97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었을 때는 황제가 3명(목록 상으로는 5명)이나 재위한 다음이었다고.[27]
이 황제는 76세에 즉위해서 재위기간이 20년이 넘는데, 골덴바움 왕조 전체를 통틀어도 상당히 긴 편이다. 골덴바움 왕조의 평균 재위기간이 13~14년에 불과함을 생각해보면 정말 길다. 더구나 그 긴 재위기간 내내 공식적으로 신나게 먹고 놀기만 했다. 증손자에게 독살당한 것만 빼면,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들 중 가장 팔자 좋은 황제였던 셈이다.
3.7. 7대 - 지기스문트 2세 (Sigismund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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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ギスムント2世. 바보 황제(痴愚帝, 치우제)라는 별칭이 있다. 본명은 지기스문트 폰 브로네, 즉위 전 작위는 후작. 칼 공작의 사촌이다.
3.8. 8대 - 오토프리트 2세 (Otfried II)
オトフリート2世. 재건 황제(再建帝, 재건제)라는 별칭이 있다. 재위기간은 제국력 160년 ~ 166년.
아버지 지기스문트 2세가 16년에 걸쳐 탕진한 국고를 보다 못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한 장원에 가두고 새 황제로 즉위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망쳐놓은 국정과 텅 빈 국고를 다시 채워넣었다.
우선 지기스문트 2세의 심복으로 나라를 망친 국무상서 바르텐베르크 후작, 재무상서 루벤 남작, 군무상서 나우가르트 자작을 처형하고 그 재산을 몰수했으며, 그 밑에서 단물을 빨아먹던 2만명의 문무 정신,廷臣,과 4만 명의 상인들의 재산도 모조리 몰수하였다. 정치개혁으로 아버지가 망쳐놓은 국정을 정리하고 국고를 다시 채워넣어, 은하제국은 다시 안정화되었다. 이로 인해 각지에서 솟아나던 불평불만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선제가 너무 나라를 망쳐놓은 탓에 그는 재위기간동안 아버지의 잘못을 시정하는 일에 집중해야 했고, 결국 재위 6년만에 과로사해버렸다.
오토프리트 2세는 딱히 독창적인 정책이나 개혁을 하지는 않았지만, 선제가 파괴해 놓은 정국을 원상복구시키는 데 성공하여 흔들렸던 제국 정부의 통치력을 다시 재정립한 공은 매우 크다. 지기스문트 2세의 실정이 너무 엄청난지라, 황제와 제국정부의 위엄과 통치력이 개판이 되었으며, 반란이 터지기 직전의 상황에 몰렸기 때문에 조금만 더 선제의 실정이 지속되었으면 제국이 붕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상황에서 이를 막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후 오토프리트 2세의 개혁은 아우구스트 1세가 이어받아, 은하제국은 모처럼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된다.
참고로 이 당시는 몰랐겠으나 자유행성동맹이 건국되는 계기인 장정 1만 광년이 이 시기에 벌어졌다.
3.9. 9대 - 아우구스트 1세 (August I)
アウグスト1世. '후궁들에게는 범군(凡君), 국사(國事)에 있어서는 명군(明君)'이란 평을 들은 황제. 재위기간은 제국력 166년 ~ ???
'''긴머리 페티시즘'''을 지닌 황제라 침대에 '''1,000명'''이나 되는 여인의 머리를 묶어놓고 의기양양해 했다고 한다. 덕분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지녀 총애를 받았던 후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 머리카락이 가발이었고 황제를 속인 이 불쌍한 후궁은 '''추운 겨울날 물 속에 처넣어져 얼어죽었다.''' 또한 경쟁 상대의 머리에 불을 질러 타 죽게 한 후궁까지 있었을 정도. 거기에 총애하던 후궁이 죽자 '''죽은 후궁의 머리카락을 집어 삼켜''' 위장에 머리카락이 박히는 바람에 태의들이 뒤집어지기도 했다고...
사생활은 이렇게 개판 5분 전이었지만, 정치는 무척 잘했다고 한다. 따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오토프리트 2세의 작업을 이어받아 제국의 통치력을 유지,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명군의 명칭을 얻는 일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다. 개인사가 저 정도로 난장판인데도 성군 소리를 듣는다면 웬만한 명군들보다도 더 잘했을듯. 어쩌면 성군으로 통치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 긴머리 페티시즘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을지도 모른다.[28][29]
3.10. 10대 - 에리히 1세 (Erich I)
エーリッヒ1世. 별 기록 없음.
3.11. 11대 - 리하르트 2세 (Richard II)
リヒャルト2世. 별 기록 없음.
3.12. 12대 - 오토하인츠 1세 (Otto Heinz I)
オットー・ハインツ1世. 마찬가지로 별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머나먼 옛날에 6대 황제 율리우스를 독살한 칼 공작이 제국력 217년 97세로 이때 사망하였다. 수십년 전 황위에 오를 '''뻔''' 했던 남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칼 공작은 제도 인근 정신병원의 한 병실에서 홀로 쓸쓸하게 사망하였다. 그리고 칼 공작이 사망한 다음해인 제국력 218년 장정 1만 광년에 나섰던 공화주의자들이 바라트 성계의 하이네센 행성에 도착해 자유행성동맹을 건국한다.
3.13. 13대 - 리하르트 3세 (Richard III)
リヒャルト3世. 별 기록 없음.
다만 후대인 아우구스트 2세의 행적을 보면 여자를 무지 밝혔고 그로 인해 자식이 많았다.[30] 그러나 그 많은 아들이 하나같이 아우구스트 2세보다 낫지 않았다는 묘사가 나오는 걸 볼 때 자식 농사는 영 실패한 황제였다고 볼 수 있다.
3.14. 14대 - 아우구스트 2세 (August II)
アウグスト2世. The Blood-Maker(유혈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유혈제(流血帝)로 번역되었다.
제국력 247 ~ 253년(우주력 556 ~ 562년) 재위. 골덴바움 왕조 역사상 최악의 폭군 넘버 1,2를 다툴 인물[31]
3.15. 15대 - 에리히 2세 (Erich II)
エーリッヒ2世. The Blood-Stopper(유혈을 멈춘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지혈제(止血帝)로 번역되었다.
3.16. 16대 - 프리드리히 1세 (Friedrich I)
フリードリヒ1世. 별 기록 없음.
3.17. 17대 - 레온하르트 1세 (Leonhard I)
レオンハルト1世. 별 기록 없음.
3.18. 18대 - 프리드리히 2세 (Friedrich II)
フリードリヒ2世. 별 기록 없음.
3.19. 19대 - 레온하르트 2세 (Leonhard II)
レオンハルト二世. 치세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직계 아들이 없는 관계로 조카인 프리드리히 3세를 후계로 선언한 후 급사했다. 황후 크리스티네의 강력한 권유로 후계를 세우자마자 급사했기 때문에 황후와 조카간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의심한 사람이 많았다고.
3.20. 20대 - 프리드리히 3세 (Friedrich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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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リードリヒ3世. The Defeated(패전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패군제(敗軍帝)'로 번역되었다. 다곤 성역 회전에서 총애하던 아들을 억지로 사령관에 앉혀놓아 참패한 원인이 된 원흉으로, 자신도 이런 대참패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참패한 그 해 갑자기 죽고 말았다. 이후 제국 역사에서 패전 황제라 불리며, 멍청이 군주로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제국력 324 ~ 331년(우주력 633 ~ 640년) 재위.
3.21. 21대 - 막시밀리안 요제프 1세 (Maximilian Josef I)
マクシミリアン・ヨーゼフ1世. 프리드리히 3세의 이복형. 그 외 특별한 기록은 없으나 멀쩡히 전 황제의 황태자가(병약하다지만) 살아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황위에 오른 걸 보면 그만큼 황실의 상황이 막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32][33]
3.22. 22대 - 구스타프 1세 (Gustav)
グスタフ1世. The Hundred Day King(백일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백일제(百日帝)'로 번역되었다.
프리드리히 3세의 장남. 어릴 때부터 몸이 너무 허약해 일반적인 생활조차 힘들 정도라서 기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34][35] 겨우 황위에 오르긴 했으나 이복동생인 헤르베르트의 부하에게 독살당한다. 하지만 죽기 전에 자신의 동생이자 프리드리히 3세의 차남이었던 막시밀리안 요제프에게 황위를 물려 주었고 결과적으로 이 판단이 골덴바움 왕조의 수명을 늘려주었다.
여담으로 백일제라는 호칭이 진짜 백일만 재위해서 붙었는지 재위기간이 극도로 짧은것을 표현한건지는 소설과 애니에서 설명이 없다.
여담으로 구스타프란 황제는 또 등장하지 않는데 1세가 붙어있다.
3.23. 23대 -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Maximilian Josef II)
マクシミリアン・ヨーゼフ2世. The Seer, The Rebuilder(혜안의 황제, 재건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청안제(晴眼帝)'로 번역되었다.
3.24. 24대 - 코르넬리우스 1세 (Kornelias I)
コルネリアス1世.
3.25. 25대 - 만프레트 1세 (Manfred I)
マンフレート1世. 별 기록 없음.
3.26. 26대 - 헬무트 (Helmut)
ヘルムート1世. 별 기록 없음. 다만 다음 황제인 만프레트 2세의 사례를 보면 나라가 굉장히 개판이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서자긴 하나 왕자가 적국에서 어릴적부터 살았을 정도면 막장이 아닐 수 없기 때문. 더군다나 그 왕자가 즉위한 것을 보면 황후에게서 아들도 딸도 못 보았거나, 혹은 서로 공멸했다고 예상해 볼 만 하다.
3.27. 27대 - 만프레트 2세 (Manfred II)
マンフレート2世. The Exiled(망명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망명제(亡命帝)'로 번역되었다.
3.28. 28대 - 빌헬름 1세 (Wilhelm I)
ウィルヘルム1世. 별 기록 없음.
3.29. 29대 - 빌헬름 2세 (Wilhelm II)
ウィルヘルム2世. 빌헬름 2세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 시기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나중에 제국 귀족들이 단체로 망신당하는 흑역사가 하나 터졌다.
빌헬름 2세는 황후 콘스탄체와의 사이에서 장남 코르넬리우스를, 총희 도로테아와의 사이에서 차남 알베르트를 얻었다. 이 문제로 인해서 황후 콘스탄체가 적잖이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36] 황제 빌헬름 2세가 병으로 자리보전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절묘하게도, 이 시기에 차남 알베르트 대공이 시종무관과 함께 황궁 지하로 들어갔다가 실종되는 사건이 터졌다.
당시 황궁 노이에 상수시 지하에는 황제들이 혁명이나 반란을 두려워하면서 만든, 탈출을 위한 비밀통로가 여럿 존재했다. 하지만 비밀통로란 특성 상 정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한 황제들이 저마다 제각각 비밀통로를 뚫는 바람에 통로끼리 대차게 꼬여서 사실상 '미로'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알베르트 대공은 문제의 미로를 탐사하겠다고 나섰다가 졸지에 변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황후 콘스탄체가 총희 도로테아와 그 아들 알베르트 대공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사건의 내막에 대한 뒷소문이 돌았다.
한 가지 소문은 빌헬름 2세의 승하 후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예견한 도로테아가, 믿을 수 있는 무관과 함께 알베르트 대공을 일부러 탈출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장성하여 잘 지내고 있는 알베르트 황자를 페잔 등지에서 목격했다는 소문도 따라나왔다. 반면, 황후 콘스탄체가 호기심 많은 알베르트 대공을 지하미궁 탐사에 나서도록 꼬드겨 내려보낸 다음 죽도록 내버려뒀다는 것이며, 미궁에서 황후를 저주하는 알베르트 대공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어쨌든 알베르트 대공이 실종된 직후 빌헬름 2세는 병석에서 숨을 거두었고, 코르넬리우스 2세의 즉위가 공표된 이후 알베르트 대공의 어머니 도로테아는 독살의 징후를 보이면서 급사했다. 게다가 빌헬름 2세의 황후 콘스탄체는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면서 열병을 앓다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사망하는 바람에 여러 괴담이 만들어졌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3.30. 30대 - 코르넬리우스 2세 (Kornelius II)
コルネリアス2世. 선제 빌헬름 2세와 황후 콘스탄체의 아들로 무난히 제위를 물려받아 제국을 다스렸으나 자식복이 없었는지 후사를 얻지 못했다. 이에 황제가 중병에 들어 자리에 눕는 상황이 벌어지자 중신들 사이에서도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런데 '''자신이 실종된 알베르트 대공'''임을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했다.[37] 상당히 말재간이 뛰어난 인물인데다가, 그럴듯한 증언과 증거물까지 제시하면서 사람들이 진짜 알베르트 대공이 나타났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게다가 황제도 오랜기간 모후 콘스탄체의 범행을 의심하고 있었기에 '동생'을 불러 병상에서 눈물 어린 대면식까지 치뤘다. 그러자 귀족들은 이 젊은이가 '알베르트 1세'로 즉위할 것이라 예상하고 온갖 아첨을 떨기 시작했다.[38]
하지만 차기 황제 후보 1순위 알베르트 대공은 자신을 모시던 청초한 시녀와 함께 5천만 제국마르크 상당의 보석을 '''먹튀'''하고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39][40] 대귀족들은 당연히 망연자실, 막대한 재화를 잃어버린 것은 그렇다고 쳐도 미래의 황후를 꿈꾸던 10여명이 넘는 귀족 영애들은 알베르트 대공에게 몸을 바쳤다가 '''절반 이상이 '불명예스러운 사생아'를 출산해야만 했다.'''[41] 알베르트란 이름을 가진 귀족들은 불쾌한 사기꾼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서 개명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이 사건은 평민들이 어리석은 귀족들을 씹을 때 써먹는 단골재료가 됐다.
그런데 큰 의문점은 이 '가짜 알베르트 대공'은 코르넬리우스 2세와 대면하는 등 '''정말 황위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어째서 이런 먹튀극을 벌였냐는 것이다.[42] 황제 코르넬리우스 2세는 눈물로 이 '알베르트 대공'을 맞이했고 제국에 내로라할 대귀족들이 흐름을 읽고 발빠르게 아첨하고 나서 병중의 황제가 곧 죽고 옥좌에 앉아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것이 바로 직전까지 다가왔음에도[43] 돌연 사라진 점을 들어 이 알베르트 대공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며 '''과거 도망치듯 고국을 떠난데다 모후까지 의문사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인하여 제국 체제에 큰 환멸을 느껴''' 은하제국에 복수를 감행했다는 소문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황후나 총희가 될 꿈에 젖어있던 대귀족의 영애들은 농락한 반면 자기 시녀는 데리고 도망친 걸 봐도 단순 먹튀 사기가 아니라 작정하고 벌인 일종의 (문벌귀족에 대한) 증오범죄가 아니었겠냐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한편, 팬들 사이에선 제위를 찬탈하려던 가짜였는데 시녀와 사랑에 빠져서 계획을 포기하고 달아난 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물론 사건 당사자는 한번 사라진 이후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진실을 알 길이 없다.
3.31. 31대 - 오토프리트 3세 (Otfried III)
オトフリート3世.
3.32. 32대 - 에르빈 요제프 1세 (Erwin Josef I)
エルウィン・ヨーゼフ1世. 별 기록 없음. 다만 에르빈 요제프 2세 즉위 전에는 그냥 에르빈 요제프 황제였다. 그런데 선제인 오토프리트 3세가 황태자를 5번이나 바꿨다는 서술을 볼때 아무래도 오토프리트 3세의 직계였다면 굉장히 어린 나이에 즉위했을 것이고 적당한 나이에 즉위했다면 오토프리트 3세의 직계는 아닐듯하다. 오토프리트 3세가 죽은 나이는 위에 나와있듯 40대 초반이기 때문이다.
3.33. 33대 - 오토프리트 4세 (Otfried IV)
オトフリート4世.
3.34. 34대 - 오토하인츠 2세
オットー・ハインツ2世. 별 기록 없음.
3.35. 35대 - 오토프리트 5세 (Otfried V)
オトフリート5世.
3.36. 36대 - 프리드리히 4세 (Friedrich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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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リードリヒ4世. '''사실상의 골덴바움 왕조의 마지막 황제.'''
제국력 456 ~ 487년, 우주력 765 ~ 796년 재위. 29세에 즉위했다는 기록으로 따지면 452년 혹은 453년에 즉위한 걸로 보이지만, 제3차 티아마트 성역 회전이 그의 즉위 30주년에 일어났다는 기록을 따랐다. 영문판 은하영웅전설 위키백과의 기록에서도 452년을 따르고 있는데, 이러면 이제르론 요새 공사기간과 겹치게 된다.
상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3.37. 37대 - 에르빈 요제프 2세 (Erwin Josef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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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ルウィン・ヨーゼフ2世. 은하제국 정통정부에 납치된 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은하제국 공식 역사상으로는 폐제(廢帝)로 기록됐다. 상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3.38. 38대 - 카타린 케트헨 1세 (Katharin Kätchen I)
カザリン・ケートヘン1世.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 골덴바움 왕조 마지막 황제이며 유일한 여제(女帝).
즉위 당시 생후 8개월의 젖먹이에 불과하였다. 상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1] 당장에 사치가 심한 편이던 프리드리히 4세도 수백개의 황금 미녀상을 만들고 소비를 견디지 못한 재정이 거상들의 재산을 빼앗아야 될 정도인 지기스문트 2세보다는 양호했다.[2] 다나카 요시키는 설정 디테일이 허술한 작가다. 은영전을 꼼꼼히 읽어보면 작가가 한번 써 놓고 까먹어서 다음 부분에서 뒤집어버리거나, 내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한 구성이 셀 수도 없이 나온다. 그래서 그 부분은 독자가 창작하던가 알아서 상상(...) 해야한다.[3] 참고로 자유행성동맹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데 이쪽은 혐오감으로 짓지 않는다.[4] 사실 칼(카를)은 황제를 암살한 사람 이름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기피 대상이 되었을 걸로 추정할 수 있다.[5] 이쪽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6] 근데 그 어리다는 나이가 25세다. 라인하르트가 사망했을 당시의 나이가 똑같은 25세였음을 감안하면 어리다고 보기엔 조금 어폐가 있다(...). 추측하건대 정말 나이가 어려서 보좌받았다기보다는 즉위 이후 벌어진 공화파의 반란 일로 아버지의 보좌를 받아야 했을 가능성이 크다.[7] 위의 이미지에서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요하임 폰 노이에슈타우펜으로 공화파 반란의 진압을 지휘했다. 또한 노이에슈타우펜 공작은 제국재상이기도 하다.[8] 수백명의 애첩을 거느린 황제도 있었다.[9] 황족, 귀족들이 많이 즐기는 사냥이건 여색이건 신경쓰지도 않고 심지어 독서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평생 스스로 읽은 책이 딱 두 권, <루돌프 폰 골덴바움 언행록>과 <가정의학전서> 뿐이었다. 언행록을 읽은 건 루돌프의 전례를 따르는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읽었을 것 같지만 가정의학전서를 읽은 것을 보면 의학에 관심이 있는 황제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듯.[10]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6권 <비상편>, 김완, 이타카(2011), p.172[11] 현실로 따지면 대통령비서실장 정도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12] castrato, 변성기가 되기전에 거세하여 소년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남자 가수.[13] 그런데 이것도 에크하르트 자작의 지나친 욕심으로, 카스퍼가 자작의 말을 거절한 일은 오직 그의 딸을 황비로 맞는 것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딸이 외모나 몸매가 영 아니라는 점. 원작 설명에 의하면 에크하르트 자작이 젊은 시절에는 제법 미남이었으나, 나이가 든 지금은 살찌고 여러 모로 나이 든 모습인데 젊은 딸은 자작의 젊은 시절이 아닌 '''지금을''' 많이 닮았다라고 서술되어 있다.[14] 황궁에 사병을 이끌고 들이닥친 시점에서 영락없는 반역자라 깨끗하게 사살되었다. 애니에서는 사병들을 데리고 들어와보니 이미 황궁 호위대를 이끌고 기다리던 남작만이 있었고 당황한 자작과 그 사병들을 향해 남작이 손짓으로 사살 명령을 내려 벌집이 된다.[15] 도주자금으로 황실의 값진 보석 일부를 가져가는 꼼꼼함까지 보여주었다.[16] 그나마 비슷한 사례가 영국의 에드워드 8세나 루마니아의 카롤 2세 정도라고 할 수 있지만 카스퍼를 넘어서지 못한다.[17] 이 점을 보면 율리우스는 충분히 자신의 깜냥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황제로서의 업무는 중신들이 원하는대로 아들에게 넘겨버리고 대신 자신은 황제로서 누릴 걸 누리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이다. 어차피 율리우스가 자신이 나서겠다고 해도 중신들은 '뭐... 저 영감 몇년 안 가 죽을텐데 괜찮겠지?' 라는 심정으로 허용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18] 그 숫자가 언급되지 않은 것을 보면 부황인 리하르트 1세의 60명보다는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19] 다만 나이를 많이 먹으면 이렇게 많이 먹으면 안된다(...) 하지만 저렇게나 먹어대는대도 96세, 심지어 100세도 가능했을 모습을 생각해 보면 정말 의외다. 그의 선조인 루돌프조차 젊은 시절에 과식해서 말년에 고생하다 죽었는데 본인은 100을 찍을 기세로 살았다는게 참 아이러니[20] 다나카 요시키가 이 소설을 쓰던 1980년대라면 이 기록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05년에 81살에 국왕이 된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1924~2015)가 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왕이 되었지만 2012년 왕세제인 나예프 왕자가 78살로 이 기록을 깨며 먼저 죽어버렸다. 후임 왕세제로 압둘라 국왕 사후 왕이 된 살만 국왕도 만 79살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부자상속이 아닌 형제상속으로 왕위가 전해지기 때문에 이들은 엄격히 따지면 왕세자가 아니라 왕세제이므로 황태자/왕세자에 국한시킨다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찰스 왕세자가 올해(2020년)로 71살이니, 엘리자베스 2세가 3년만 더 살면 이 기록을 깬다. 여담으로 이렇게 되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유럽 '''역사상''' 최장수 군주가 된다.)[21] OVA에서는 48세에 사망.[22] OVA에서는 프란츠 대공이 죽은게 율리우스가 95세때 일이라고 나오며 율리우스의 손자는 언급이 없고 칼 대공으로 바로 넘어간다.[23] 비슷한 예로 말년의 티베리우스가 있다(...). 단 티베리우스는 사람들이 싫어할 짓을 하면서도 장수해 그런 시선을 받았지만 이쪽은 그냥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시선을 받았다는게 차이점[24] 역사에서 비슷한 사례로 루이 14세도 있다. 루이 14세는 '''불과 77살밖에 '''살지 못하기는 했지만, 장남 그랑 도팡 루이가 50세(루이 14세가 73살 때), 맏손자 프티 도팽 루이가 30살(루이 14세가 74세 때)에 모두 죽는 바람에 5살밖에 안 된 증손자 루이 15세를 즉위시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루이 14세에게는 다른 손자인 펠리페 5세도 있긴 했지만 그는 이미 스페인 왕이었으며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인해 프랑스 왕이 될 수 없었다.[25]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지만 당시 칼 대공의 시점이 서술된 문장을 읽어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칼이 겨우 철이 들 무렵부터 율리우스는 이미 노인이었다. 지금도 노인이다. 그래도 미래에도 그럴 것인가. 저 '영원한 노인'은 후세의 생명력을 모조리 빨아들여, 옥좌라는 빛나는 관 속에서 늙어서도 스러지는 일 없이 계속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독살당하기 직전까지도 사냥을 하고, 후궁을 끼고, 고기를 냠냠 드시는 그 모습을 보면 최소한 10년은 더 너끈히 살아있을 법도 하다. 더욱이 지기스문트 2세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칼 대공이 차기 제위계승자이긴 하나 그 자리를 노리는 인물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율리우스가 장수할수록 칼 대공이 아닌 다른 이들 입장에서는 시간이 벌어지는 셈. 그 사이에 칼 대공이 이런저런 이유로 죽거나 사고를 일으키면 그 다음 계승자가 이어받을테니까[26] 때문에 장례식도 성대하지만 진심이 아닌(...) 애도의 분위기로 치뤄졌다고 한다.[27] 아이러니하게도 칼 대공 사망 당시 나이는 그가 죽인 율리우스의 나이를 1살 더 넘겼다. 작가가 의도했을 수도? OVA에선 비실비실하다 바깥 창문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죽어갔다.[28] 조선시대의 왕들이 유독 여자가 많았던 것도 이것의 일환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업무 스트레스는 여색으로 풀려고 했다는 건데 확실히 조선 성군의 쌍벽을 이루는 세종과 성종은 아내와 자식들이 많기는 하다.[29] 하지만 조선시대 왕들의 후궁 숫자를 보면 동시기 타국들 대비 매우 적은 축이다. 청대에는 검약을 지향하여 궁녀가 굶주릴 정도라 후궁 자체도 적었지만 명대에는 외국인 후궁도 넘쳐났고, 일본에서는 일개 지방 다이묘도 수십 명의 측실을 둔 경우도 많았다. 고로 동시기, 타국 대비 적정수를 논하자면 아무리 중국 대비 국력이 딸린다 해도 조선왕쯤 되면 후궁이 수십은 되어야 할 판. 거기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후궁에도 여러 정치적 요인이 섞이기 마련이라 마냥 사랑하고 편히 대할 수 있는 상대만은 아니었고, 명색이 왕의 여자인 궁녀라 해도 막상 최측근인 지밀에는 나이든 궁녀가 주로 배치되고 젊은 궁녀라 해도 중궁전이나 이런저런 웃전에 소속된 경우가 많아 왕이 마음대로 손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십수명의 측실을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분히 현대적인 관점이고, 왕실에 다산을 장려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던 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또 이와는 별개로 정식 후궁의 품계를 받지 못한 '승은궁녀'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왕의 승은을 입어본 궁녀다. 우리가 말하는 후궁이란 정식 품계를 받은 이들을 말하는 만큼 그 정식 품계를 받지 못한 채 그냥 승은궁녀로 남은 이들의 숫자를 꼽아보면 왕비와 후궁만이 아닌 여기에 승은궁녀까지 포함되어야 할지도 모른다.[30] 황후 소생 아들만 네 명.[31] 다른 하나는 루돌프 대제[32] 개인적 추정이지만 동생인 프리드리히 3세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제위를 강탈했을 수도 있다. 마침 다곤 성역 회전의 패전이 있던 만큼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황제에 대한 지지도 떨어졌을테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게 없다. 심지어 프리드리히 3세 즉위 전에는 1세기 동안이나 황제 자리를 두고 암투가 벌어졌고 프리드리히 3세 사후에는 '검붉은 6년'이라 불리는 각종 혼란이 발생했다고 하니 그런 일이 발생했다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33] 이에 근거할 수 있는게 또 정작 이렇게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 요제프 1세 또한 오래 못 살았다는 건데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의 재위기간은 제국력 330년대에서 350년대로 밝혀져 있고 다곤 성역 회전과 막시밀리안 요제프 1세의 즉위 년도는 제국력 331년이다. 즉 막시밀리안 요제프 1세의 재위기간은 10년도 안 된다는 얘기다. 재위기간이 10년도 안 된다는건 건강상으로도 문제가 있었을 수 있지만 당시의 상황으로는 건강보다는 정치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34] 처음에 프리드리히 3세는 장자인 구스타프를 당연히 황태자에 앉혀놨는데 하필이면 구스타프가 황태자는 커녕 일개 개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도 어려워했다. 결국 프리드리히도 구스타프가 제국의 황제가 될 역량이 없다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어 새 후보를 물색해야 했을 정도. 사실 다곤 성역 회전에서의 제국군의 참패도 이 일과 연관이 있다. 하필 허약한 큰아들 대신에 황태자 삼으려고 한게 헤르베르트였기 때문.[35] 다곤 성역 회전에서 구스타프가 얼마나 상태가 안 좋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 다곤 성역 회전 도중 자기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한 헤르베르트가 미래를 위한 플랜을 짰는데 이 중 구스타프에 대해선 오래 살지는 못할 테니 냅두면 된다고 여겼을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전 황태자 신분이 될 형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경계심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구스타프의 상태가 안 좋았고 누가 봐도 제대로 된 황제감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소리가 된다.[36] 만일 골덴바움 왕조가 중세 유럽처럼 서자는 황제가 될 수 없다면 별 문제가 안 됐겠지만, 이미 만프레트 2세처럼 서자이면서 황제가 된 사례도 나왔고, 이미 골덴바움 왕조는 프리드리히 3세가 즉위하던 1세기부터 궁중암투가 잦았던 만큼 황후가 화가 난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37] 러시아의 혼란 시대에 등장했던 가짜 드미트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38] 사실 21세기에 이 스토리를 다시 곱씹어 보면 그 흔한 DNA 검사 한번 안해봤냐는 의문이 바로 제기되지만, DNA를 통한 친자확인이 실용화된 것은 80년대 후반인 반면 은영전은 82년부터 출간된 작품인지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왕위계승자를 자처하는데 그정도 증거물은 안들고 왔을까.[39] 5천만 제국마르크가 어느 정도나면, 하급 공무원 키르히아이스의 아버지의 연봉이 약 4만 마르크라는 언급을 기준으로 계산해볼 때 대략 한화 '''450억'''이 넘어가는 돈이다.[40] 그런데 이상한 점은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영원히 자취를 감출 수 있었는지는 의문,(카스퍼도 자취를 감추기는 했지만 이쪽은 딱히 대귀족들에게 밉보일 짓은 안 했다. 반면 이 인물은 대귀족들과 황제를 제대로 엿먹였기에 은하제국은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했을 텐데 그럼에도 못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는 대목을 보면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41] 이들 중 상당수는 수치심에 자살까지 했다고 한다.[42] 설령 가짜라고 해도 귀족이나 다른 황족이 명확한 증거라도 잡지 않는 이상은 유전자 검사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친황제파 세력들이 "이것들이 어디 감히 신성한 황제 폐하께 그따위 행동을 하려는거냐?" 라고 할 수 있기 때문. 더군다나 이미 앞서 보았듯 10여명의 귀족 영애들이 가짜 알베르트 대공에게 몸을 바쳤다가 절반 이상이 사생아를 출산해야 했다고 나오는데, 이는 바꿔서 보면 '''열 몇 개나 되는 귀족 가문들'''이 알베르트의 적극 지지자라는 말이 된다. 즉, 절대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거다.[43] 이 점이 중요한데 만일 황제로 즉위한 뒤 사라졌다면 앞서 말한 귀족 영애들이 출산한 자식들은 '''정당한 황위계승권'''이 있기에 복수의 효과가 작다. 하지만 옥좌에 앉기 전에 사라졌다면 이 '가짜 알베르트 대공'이 과연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정된게 아니므로 황위 계승권도 없어서 제대로 물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