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스
1. 개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주신 제우스와 그 정실인 헤라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신들의 왕자'''. 로마에서는 마르스(Mars).
가정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서인지 은근히 양아치 취급을 받는다.[2] 제우스의 정실부인 헤라의 아들로 혈통은 가장 좋지만 그리스가 남긴 기록 중 후대에 전해진 것이 아테네 중심으로 서술된 게 굉장히 많아 같은 분야를 다루는 아테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급이 좋지 못한 기록들이 많아 대중매체에서도 곧잘 악역으로 나오는 등 영 취급이 좋지 못하다.
'아레스'라는 이름의 어원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설이 엇갈린다. 하지만 해악, 폐허라는 뜻인 아레(ἀρή)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다수설이다. 즉 '아레스'는 '해악을 끼치는 자, 파괴자'라는 뜻이다. 강력한 군신이란 의미가 이름에 한가득 반영되었다. 그러나 인도유럽어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에뉘알리오스(Enyalios)라는 명칭도 아레스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는데, 이것이 아레스의 본래 이름이 아닐까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레스가 트라키아(Thracia)[3] 에서 태어났고 트라키아의 수호신이라고 믿었다.
2. 위상
2.1. 아테나와의 비교
사실 이름의 어감도 멋지고, 나름대로 터프한 이미지를 지닌 전쟁의 신이기도 해서 언뜻 생각하면 좋은 이미지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차용되기도 하지만 그 실체는 '''혼란한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단연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망나니'''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현대 그리스 신화가 거의 아테나를 숭배하는 아테네의 기록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 자리에는 아테나와 아레스가 병립하므로, 현대인으로선 교통정리를 하고 싶은 욕구에서 아테나는 방어전과 장군의 신, 아레스는 공격과 병사의 신이라는 구분을 하는 서술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시 그리스 종교나 신화를 모르는 데서 생긴 오해이다. 그냥 둘 다 군신이다. 정확히는 아레스는 순도 100% 군신이고, 아테나는 복합속성이다. 아레스는 전쟁을 통솔하는 군신 그 자체에 몰입된 형태라면 아테나는 투쟁에서 비롯되는 정의, 지혜, 평화, 공예 등 여러 분야를 관장하기 때문이다. 두 신격을 병사의 신과 장군의 신 / 방어전의 신과 침략전의 신으로 나눔은 둘을 어떻게 해서건 독립된 체계 속에 집어넣고자 억지로 구분하는 것이다. 통합교단에서 관리하는 일신교의 천사라면 이런 설정놀음이 의미가 있겠지만, 그리스 다신교 신화는 이런 정리가 불가능하다.
그리스는 다른 민족의 신도 서슴없이 받아들였지만, 대신 개별 폴리스에서 저마다 '마음대로 생각하여' 믿었기 때문에 '전쟁' 같은 단일한 범주를 관장하는 신이 얼마든지 여럿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신들의 속성도 폴리스마다 달라서 아테네에서는 아테나를 군신으로 간주했지만 다른 폴리스에서는 아테나를 그저 학술의 신이라 여겼다. 비슷한 예로 그리스 북부에서는 아폴론을 치유의 신격으로 여겼지만, 아폴론 신앙이 미약한 그리스 남부 폴리스에서는 헤르메스를 치유의 신이라 생각했다. 이처럼 신들의 속성도 폴리스마다 달라지고 그 권능의 차이도 폴리스마다 달랐으므로, 아레스를 아테나의 너프된 버전이나 저열한 신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아레스는 아테나보다 훨씬 호전적이고 흉폭하고 학살을 즐기는 신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아테나는 그저 공예나 학술의 신일 뿐 군신은 아니라고 여긴 폴리스도 많았는데 아레스는 딱 전쟁 하나만 관장했기 때문에 어느 폴리스에서도 빼박 군신으로 여겼다. 사실 이 점 때문에 아레스는 아테네 사람들 손으로 상당히 폄하되었다.
왜냐하면 고대사에서 전쟁만큼 신의 개입이 간절히 필요한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고대의 경제,정치체제는 너무나도 취약했고 정복과 약탈은 이 취약한 경제에서 나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완벽한 해결책이다. 고대에 숭상되는 위대한 군주는 모두 정복 군주였던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반대로 패전은 국가의 모든 체제를 흔들만한 끔찍한 사건이다. 이런 중요한 전쟁에 나서는 아테네 전사들이 군신 아레스를 신으로 섬기고, 그 자손들이라 주장하는 테베, 아레스의 총애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스파르타 전사와 싸우는건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을 안게되고 사기의 저하를 겪게된다. 그러니 아테네의 학자들은 아레스를 폄하하며 원래 공예의 신이던 수호신 아테나가 사실은 전쟁까지도 관장한다는 날조까지 해야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4]
그런데 문제는 지역적으로는 그리스 전역의 20% 정도밖에 영향력을 주지 못하던 아테나가 그리스 제1의 상업국가로서 해운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여서 대외적으로는 그리스를 대표했고, 넘치는 돈에 걸맞는[5] 문예의 중심도시 였기 때문에 엄청난 기록물을 쏟아내는 국가였다는 문제가 있다.그러다보니 현대에 기록물로 보는 아테나와 실제 그 시대 그리스 전토에서 믿어지던 아테나, 아레스와 차이가 생겨버리게 된 것이다.[6]
아테나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 실제 그리스인들이 믿는 종교였던 시절에 비해 현대에 이미지가 너무나 좋아졌다. 아테네 사람들이 기록을 많이 남겼으니 현대에도 아테네産 기록이 많이 전하므로, 현대의 그리스 신화 편찬자들도 당연히 아테네産 기록을 많이 참고하여 그리스 신화의 정본으로 삼고 편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당대 그리스 사회에서보다는 오히려 현대에 더 중요한 신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아테네의 수호신이던 아테나는 권능도 거의 제우스에 가깝고 인격적인 면에서도 완전하게 묘사되었다. 이는 인간적인 결함이 있고 희노애락을 크게 표출하며 추태도 벌이는 그리스 신들의 속성에서 크게 벗어난 형태라, 당대의 많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아테나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아테나의 떡상과 반대로 이미지상 떡락으로 왜곡의 직격타를 받은 신격이 아레스다.
아레스에 다른 속성이 있었다면 아예 과감히 전쟁 부분을 떼버렸겠지만, 아레스는 군신 외에는 다른 속성을 전혀 없었으므로 아테네인이라고 할지라도 아테나에게 줄 군신 속성을 아레스에게서 떼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아테나와 군신 속성을 공유하게 두는 대신 아레스를 아테나보다 훨씬 저열하게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아테네판을 정본으로 하는 현대의 그리스 신화 대중서에서 아레스를 아테네에서 상당히 왜곡한 내용에 근거하여 묘사했기 때문에 적당히 가감해서 볼 필요가 있다[7] .
실제로 당대 아레스의 위상은 그리스 북부에서는 제우스와 비등하게 여길 정도였다.[8] 아레스는 그리스 북쪽 트라키아에서 발원한 신이기 때문에 그리스 북부 지방에서는 신앙이 넓고도 견도했고 남부 지방에서도 영향력이 강했다. 선군정치를 하는 스파르타에서는 아레스 신전의 신탁과 공양이 다른 모든 신전에 대한 것을 합친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여겼다. 아테나가 군신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아테나에 온갖 힘을 실어준 아테네와 그 근방일 뿐이고 다른 폴리스에서는 군신으로서의 위상만큼은 아레스가 아테나보다 압도적이었다 이 때문에 이후 로마 시대에 가면 아테네의 로마 이름이라 할 수 있는 미네르바는 아예 군사 속성이 떨어져버렸다.[9]
그리스 시대의 아레스와 로마 시기의 마르스가 위상이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시기'가 아니라 '장소'에 따라 다른 것이다. 로마 시대의 마르스나 그리스 시대의 아레스나 군사적인 폴리스에서는 그 위상이 최고위로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역사 기록을 남기는 주체가 그리스에선 주로 아테네, 로마 제국에선 로마市였다 보니 아레스의 위상이 올라갔다고 느낄 뿐이다. 아테네가 날조한 바에 따르면 아테나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데리고 다니는 반면, 아레스는 패전의 여신을 데리고 다니며 허구헌날 깨지고, 불화의 여신도 거느리기 때문에 사람들을 불화에 빠지게 하며 약자를 학살할 뿐이다. 만약 다른 그리스인들도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 어떤 폴리스가 아레스를 중요한 신으로 섬기며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겠는가?
아래 단락들은 아테네인들에 의해 윤색된 버전을 중심으로 아레스를 묘사한 부분이 많으므로 적당히 가려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워낙 고대의 일이고, 학술과 저술을 중요시하는 것이 굉장히 드문 시대에 굉장히 많은 저술을 남긴 아테네의 저술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아레스의 수난사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로마에서 저술된 수많은 서사들은 대체로 문학작품들이며 인문적인 작품들이 많다. 그리스와 로마는 시대가 다른만큼 신화를 다루는 태도가 달랐고, 지형 자체도 그리스 시대에는 그리스 영토의 70%가 숲으로서 숲들 사이에 고립된 폴리스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던 유일한 지식인인 최고 성직자들과 엄청난 제국을 이룰 수 있을만큼 교통이 자유롭고 지식이 보편화되어 통치체제가 완성된 뒤의 로마인 성직자들에게는 신화를 마음대로 창작할 수 있는 재량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로마시대에는 프시케 이야기 정도를 제외하면 그리스 신화에서 추가된 내용이 거의 없다.[10]
2.2. 고대 로마
로마 왕정의 시조 로물루스의 아버지답게, 유피테르 다음 가는 신 마르스로 숭배받았다.
로마시대 들어서는 미네르바에게서 상당부분 전쟁 속성이 분리되었고, 심지어 유물에 따라서는 아예 마르스의 아내로 기록되는 것마저 있다. 로마 사회는 그리스 이상으로 가부장적 특성이 강한 사회라 미네르바는 철저히 지혜와 건축 같은 쪽으로 분야가 국한되었다. 군사적 속성이 강조될 때도 마르스의 아내로서 여겨지는 서술들이 많다. 그만큼 로마시대의 아테나는 전쟁으로서의 속성이 약화되었으므로 오히려 전쟁 담당에서는 마르스에게 밀렸다. 실제 로마병사들이 외칠 때도 마르스에다 대고 기도했지 미네르바를 연호하진 않았다.
제정 시대도 로마 군단 주둔지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대다수가 유피테르와 마르스에게 바쳐진 것들이며, 그리스 문화와는 별 연관이 없으며 로마적 미덕의 화신으로 여겨진 트라야누스 같은 황제들은 승전 기념으로 마르스에게 바치는 주화를 발행하였고, 이는 현재에도 유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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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전쟁 승전 기념으로 발행한 데나리우스 은화. 오른쪽이 창과 트로피를 들고 전진하는 마르스를 묘사한 것이다. 마르스가 그리스적인 모습이 아니라 전형적인 로마 군인처럼 묘사된 것에 주목하자. 반면 그리스 문화 애호가로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미네르바 주화를 발행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황제 자리에 있던 사람들임에도 이렇게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신이 갈렸다. 다신교 세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네르바를 숭배하는 로마인들 사이에서도 로마의 건국자 로물로스와 레무스가 아레스의 아들인것은 부정하지 않았으며, 제정 시대에 들어와서도 로마 군단 주둔지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대부분이 유피테르(제우스)와 마르스에게 바쳐진 것으로 보아 최소한 로마 군단에서는 그 위상이 전혀 줄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여러 전승
현전하는 신화에 따르면, 지혜와 전략, 전술이 잘 융화된[11] 장수들의 신 아테나와는 달리, 아레스는 전쟁의 잔인하고 난폭한 면, 육체적인 폭력성을 한껏 드러내는 병사들의 신이다. 앞에 붙는 수식어도 '''피투성이 살인마'''. 그래도 '''황금 투구의 아레스'''같은 간지나는 이명도 있다. 전장에서 전차를 타고 군사들의 전의와 공포를 부추기는 고함을 지르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여러 면에서 육체적 강인함을 머리가 못 따라가는, 뇌근육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 더 안습하다.
기간토마키아에서 산을 집어던지는 용맹함으로 올림포스 신들 진영이 승리하는 데 힘이 되었지만, 인간의 모습일때는 그런 위력이 제대로 안 나오는지 헤시오도스 서사시의 헤라클레스의 방패에서는 헤라클레스에게 허벅지에 창을 맞고 도망친다.
트로이 전쟁에서는 아프로디테를 도와 트로이 편을 들었다.[12] 아킬레우스 등 그리스 영웅의 활약에 패배하여 도주하자 아레스가 나타나 이들에게 자신의 가호를 내렸고 패닉에 빠졌던 트로이군이 죽음도 불사하는 광기 어린 반격을 가하자 그리스군은 수세에 몰리게 된다. 그래서 헤라의 명령으로 아테나의 버프[13] 를 받은 보통 인간인 디오메데스에게 공격을 받고 피를 뚝뚝 흘리는데 그때 온 천지가 울리도록 울부짖었다.[14] 아레스는 큰 상처를 입고 도망쳐서 올림포스에 당도해 제우스에게 피가흐르는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자신들이 싸우는 건 제우스 탓이라고 하소연한다. 다만 제우스는 오히려 호통을 치며 이르길,
원전에서는 단순히 상기의 문장만 말한 건 아니다. 그래도 넌 나와 헤라의 자식이니 널 못 본 척 할 순 없다고 하면서도, 만약 네가 내 아들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내쳤을 거라고 핀잔을 준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이 장면을 제우스가 "시끄러워 이 녀석아! 네 비명에 올림포스가 날아가겠다!"라고 야단치고, 아레스는 울면서 "아버지는 창에 찔려보지 않아서 얼마나 아픈지 모르신다구요!"라고 대드는 모습으로 묘사했다.'''난 올림포스의 신들 중에서 네가 제일 밉다. 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구나!'''
이때 디오메데스에게 버프를 걸어준 아테나에게 원한을 품고 나중에 복수를 하려 하는데, 리턴매치에서도 아테나의 바위 던지기 한방에 떡실신당하고 아레스를 도와주러 온 아프로디테까지 아테나의 주먹에 가슴을 맞고 나동그라졌다. 너무 분한 나머지 제우스에게 고자질하려고(...) 올림포스로 달려갔다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또 혼난다.
그래도 명색의 군신답게 신들의 최대 위기였던 기간토마키아에서는 '''산을 집어던져''' 기간테스를 땅속에 처박는 등 꽤나 활약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레스의 모습이 이처럼 추한 이유는 위에서 길게 설명했으니 생략한다. 마케도니아 전성기 당시 마케도니아 군 구호는 '에뉘알리오스'로 이는 아레스의 다른 이름이다. 일리아스 내에서도 두 이름이 혼용될 때가 간혹 있다. 영화 알렉산더의 가우가멜라 전투 부분에서 멋지게 재현했다.
아레스와 관련된 신화가 잘 부각이 안 되는 이유로는 아테네 중심 서술인 것도 있지만, 일단 아레스가 엮인 신화들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면도 있다. 그래도 꽤나 유명한 일화를 꼽자면 타나토스를 붙잡아 세상에서 죽음이 없어져 대혼란을 일으킨 시시포스를 냅다 끌고 온 일이 그나마 긍정적인 큰 공로. 일단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아무리 치명상을 입어도 죽질 않으니 당연히 하데스만큼이나 아레스가 열받았음은 당연지사.
전체적으로 취급이 안 좋긴 하지만 그래도 본부인 헤라의 아들이라 혈통만큼은 좋아서 그런지, 다른 이복 형제들이 무려 아버지 머릿속에서 태어나고,[15]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이래저래 돌아다니면서 생고생을 하고, 심지어 한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기까지 하는 고생을 할 동안 아레스는 올림포스 신이 되기까지 고생한 바는 없다. 그냥 태어나자마자 자동으로 올림포스에 존속되었을 듯.[16]
물론 그렇다고 일단은 명색이 \''''신''''인 만큼 절대로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하루는 아레스가 아테나를 숭배하는 국가를 지나가는데 한 남성이 아테나 총애를 믿고 아레스의 면전에서 대놓고 모욕을 하자(혹은 화살을 쏟았다), 그 본보기로 자신을 모욕한 그 남성을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는 것은 물론, 그 국가에 사는 모든 인간들을 모두 몰살시켰다. 이에 아테나를 포함한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은 아레스의 행동을 정당하게 봤지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리스 로마 신들은 신을 모욕하거나 기만한 것은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다. 신이 자신을 모욕한 인간을 처벌하는 데에는 다른 신도 말릴 수가 없다.[17]
불량스럽게 묘사되기는 했어도 자식들을 제법 챙기는 의외의 측면도 갖고 있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모인 헤라와 제우스에게 반기를 든 적이 없다.''' 트로이 전쟁에서는 아버지에게 대들 뻔 했으나 아테나가 막았기에 없던 일이 되었고 헤라가 쌍둥이를 임신한 레토가 어디에도 출산을 할 땅에 발을 못 붙이게 할 때, 아레스를 시켜서 엄포를 놓으라는 지시를 따랐다. 우라노스부터 이어져 오던 패륜 세습을 생각하면 신들의 왕자인 아레스가 그 전통을 이었어도 이상할게 없었을 텐데, 정작 아버지 제우스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건 제우스가 그렇게도 아끼던 아테나와 아폴론이었다.
아레스의 기원은 고대 미케네 문명기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이 시기에 이미 아레스가 숭배되었던 흔적이 있다.
원래는 트라키아 지방의 전쟁신이지만 그리스 본토로 넘어오면서 올림포스 12신으로까지 숭상받았다. 아레스의 숭배지역이 적다는 서술이 존재했는데, 스파르타, 마케도니아, 아테네, 테베, 트라키아면 사실상 고대 그리스 전역에서 아레스를 숭배했다고 봐야 한다. 고대 그리스 본토의 사람들은 강력한 전쟁신 아레스를 숭배하면서도 또한 한편으로는 떨떠름하게 여기는 이중적인 자세로 대했던 듯하다.
전쟁 외에도 용기나 생존 본능을 담당해서 비록 미움을 받았으나 전사들에게는 숭배받는 존재였고 심지어는 헤라클레스마저 아레스를 존경했다고 한다. 일리아스에서도 트로이고 그리스고 할 것 없이 장수들이 동료들을 격려하면서 자신들을 '아레스의 시종'이라고 칭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아레스의 시종'을 자처한 인물들 중 하나인 디오메데스가 아레스에게 칼빵을 놓은[18] 장본인이라는 게 함정. 사실 일리아스의 저자인 호메로스는 미케네 문명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서술했지만, 작품 내에서의 풍습, 체제, 문화등은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의 것으로 서술했다. 즉, 일리아스에서 전사 계급이 아레스를 숭상하는 것은 일리아스가 창작된 당시의 전사 계급이 어느 지역권에서나 아레스를 숭상하는 것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다만 위에서처럼 그리스의 아레스가 천대받은 것과는 달리, 전쟁을 중시하는 로마에서 아레스와 동일시된 마르스는 대단히 중요한 신으로 모셨졌다. 로마에서 섬긴 마르스는 에트루리아의 신 마리스가 기원인 신으로 이후에 아레스와 동일시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기원이 다른 만큼 '''아레스와는 정반대'''인 '''위엄 있고 진중한 이상적인 로마 장군'''의 모습이 투영된 모습으로 서술된다.
아테나는 로마 시대에 각각 지혜와 전쟁 미네르바와 벨로나로 분리되는데, 벨로나(에뉘오, Enyo)는 마르스의 정실 부인이자 자매다.
우선 로마의 시조라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부터가 마르스(아레스)와 베스타(헤스티아)의 무녀 레아 실비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늑대 젖을 먹고 자라 로마를 세웠다고 한다.
3.1. 여자들과 자녀
3.1.1. 외모와 연애사
성격은 잔인하지만 키도 크고 미남이라 여성에겐 인기가 있다. 전형적인 허우대는 멀쩡한 미남인데 머리는 바보인 이미지. 간혹 우수에 젖은 눈을 한 흑발을 가진 창백한 피부의 미소년 혹은 항상 피투성이인 잘생긴 야만인이라고 묘사되기도 하고 일리아스에서 자기 입으로 아테나에게 '''"네가 디오메데스를 시켜 내 희고 고운 살을 찢은 일을 잊지는 않았겠지!"'''라고 따지는 걸 보면 적어도 피부가 하얗긴 한 듯. 또한 수염이 없으며 그 누구보다도 가슴이 넓었다고 묘사된다.
아프로디테와의 연애가 가장 유명하지만 다른 여신들과도 사귄 적이 있는데, 칼리오페, 에뉘오와의 사이에도 자식이 있고 에오스와의 열애도 유명하다. 하지만 에오스와 아레스의 관계를 질투한 아프로디테가 에오스에게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모두 비극적으로 끝나는 저주를 내렸다.
여신이나 님프[22] 애인들보다 인간 애인들이 더 많았다. 유명한 인간 연인으로는 알타이아, 처녀 영웅 아탈란테, 아마조네스의 여왕 오트레레, 레아 실비아가 있다. 특히 오트레레는 아레스를 신봉하며 항상 아레스에게 기도를 했는데 이에 감동한 아레스가 직접 강림해서 그녀를 축복해주고 오트레레는 아레스(마르스)의 신부라는 칭호를 얻었다. 레아 실비아와의 일화를 보면 의외로 말로 유혹하는 경우도 있었다. 레아 실비아는 처녀성을 유지해야 하는 베스타(헤스티아)의 여사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도망쳤지만, 위대한 자식들을 낳을 거라는 마르스(아레스)의 설득에 넘어가서 결국 마르스랑 동침했다.
인간들 사이에서의 자식들 중 헤라클레스에게 퇴치당한 디오메데스 왕이나 퀴크노스가 유명해서 그렇지 아레스의 자식들이라고 다 악당은 아니었고 오히려 걸출한 영웅들도 많았다. 그리스에서 손 꼽히는 명가인 테베 왕가[23] 와 아트레우스 가문[24] 에 아레스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히폴리테와 펜테실레이아를 비롯해 아레스의 딸들이라 불리는 아마조네스,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으로 유명한 멜레아그로스와 테베를 공격한 일곱 장군 중 하나인 파르테노파이오스가 아레스의 아들이라는 전승이 있다. 거기다가 로마 신화에 들어서면 로마의 시조가 되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아버지가 되니 자식복 하나는 그 어느 신 부럽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다.
3.1.1.1. 아프로디테 설화
아프로디테와 간통하다 걸려서 망신을 당한 사건도 유명하다. 아폴론 혹은 헬리오스가 태양 마차를 타고 하늘을 날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밀회를 가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헤파이스토스에게 고발한다[25] . 이후 헤파이스토스는 몰래 침대에 그물을 설치해놨고 그물은 다시 밀회를 가지던 둘을 포박하고 이를 포세이돈, 헤파이스토스, 헤르메스에게 들킨다. 전승에 따라서는 그걸 구경하던 포세이돈이 아프로디테를 딱하게 여겨 헤파이스토스와 제우스를 설득해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부부로 만들고 헤파이스토스는 좀 더 현모양처 삘의 얌전한 여신, 혹은 님프와 이어줬다고 한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를 부부신으로 모시는 신전도 있다고 하니 원래는 정상적인 부부였는데 여러 버전의 신화가 합쳐지는 과정에서 추락해버린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혹은 메소포타미아의 전쟁의 여신이자 사랑의 여신인 이슈타르를 둘로 쪼갰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일리아스에서는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아프로디테가 아니라 다른 여신으로 나온다. 일리아스에서는 이 둘이 애인이 아니라 정말 부부일 수도 있다.
아프로디테와 사이에서 조화의 하르모니아, 공포의 포보스, 두려움의 데이모스를 낳았다. 포보스, 데이모스와는 항상 함께 다녔기 때문에 화성의 두 위성은 이들의 이름을 땄다. 전승에 따라서는 에로스를 포함한 사랑의 신들도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자식들이다.
전쟁신의 자식이 공포, 두려움이라는 것에서 그리스 철학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 덧붙여 아레스는 전쟁에 나갈 때 저 둘에 더해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합쳐 트리오를 구성한다. 전쟁-공포, 두려움, 불화. 어울리는 세트지만, 아테나와 달리 그리 않는 날것 그대로의 전쟁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3.1.2. 자상한 아버지
의외로 자식과 내연녀가 헤라에게 고통받아도 내버려두는 제우스와는 달리 정을 붙인 여자들과 그 여자들 소생인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이 많은 듯 자신의 애인들에게 굉장히 잘해주고 인간 여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에게는 말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아레스의 자식들도 아버지인 아레스를 위해 신전을 짓는다는 훈훈한 부자지간이라는 묘사가 자주 나오며, 자신의 딸이 강간당할 뻔하자 직접 내려와 강간 미수범을 조져줄 만큼 가족을 굉장히 챙기는데다가 여자에게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녀를 해친 자의 자녀나 소중한 사람들을 죽이는 등 복수를 한다.
이런 의외의 모습 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과 달리 강간을 했다는 묘사가 없기에 최근 현대에 들어선 올림포스 12신에 드는 남신들 중 제일 정상이었다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이게 아예 틀린 말이 아닌 것이 12주신에 드는 다른 남신들은 강간을 한 적 있다는 묘사가 들어가지 않은 적이 없으며 여자에게 폭력적인 태도를 취할때가 있다. 게다가 가장 문란한 제우스는 항상 강간을 일삼았고 자신의 사생아들을 거의 챙기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자.
3.1.2.1. 알키페 설화
아글라우스 공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알키페를 지키기 위해서 살인을 했다가 처음으로 살인 재판을 열게 한 일화가 유명하다.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가 아레스의 딸 알키페를 범하자(혹은 범하려 하자) 알키페는 아버지의 이름을 울부짖었고 아레스가 바로 강림하여 할리로티오스를 때려죽였다. 하지만 분노한 포세이돈은 '''자기 아들을 아레스가 죽였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레스는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처사였다'''고 반박한다. 결국 두 주신들의 언쟁이 커지자 나머지 올림포스 12신의 주도 아래 아테네의 언덕에서 재판이 치러진다.
결과는 헤르메스가 그 장면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해서, 혹은 아테나를 포함한 여신들이 아레스의 편을 들어주어서 무죄로 결론나고 이 언덕은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의 아레오파고스로 불리게 되었다. 가장 불량스런 폭력의 신인 아레스가 '법과 재판' 덕분에 도움을 받은 어찌보면 아이러니한 케이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래도 여론은 아레스 편을 들어줄 테지만[26] 어쨌든 그때부터 그 언덕을 아레오파고스(아레스의 언덕)이라고 부르며 주로 살인자를 재판할 때 갔다고 한다. 현재 그리스에서는 대법정을 여전히 아레오파고스라고 부른다.
3.1.2.2. 그 외의 설화
- 아에로페 설화 - 아카디아의 케페우스 왕의 딸 아에로페 공주가 아레스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아이를 임신하는데, 안타깝게도 산고로 사망한다. 이를 본 아레스는 아에로페의 시신이 썩지 않게 하고 그녀의 시신에서 모유가 흐르게 하여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을 수 있게 해줬다.
- 퀴크노스 설화 - 펠로피아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퀴크노스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를 지나가는 여행자를 죽여 그 인골을 아버지 아레스를 모시는 신전의 장식품으로 지었는데[27] 그 행각은 마침 12과업 위해 지나가던 헤라클레스와 이올라오스에 의해 토벌되는 걸로 마무리 되었다. 아레스도 아들을 돕기 위해 싸우려 했으나 아테나의 가호를 받은 헤라클레스와 이올라오스에게 패퇴당한다.
- 일리아스 - 아카이아 연합군의 장군으로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아들 아스칼라포스의 복수를 갚기 위해, 제우스의 명령을 어길 뻔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제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신들의 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어기는 자는 엄벌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헤라의 언급으로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바로 무장하고 인간계로 내려가서 복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테나가 아레스를 뜯어말렸기 때문에 불발되고 제우스에게 처벌받지 않았다.
3.2. 알로아다이 설화
제우스의 아레스에 대한 미묘한 태도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에피알테스와 오토스 일화에도 이어진다. 이 오토스와 에피알테스는 각각이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악몽'을 의미한다. 이 두 쌍둥이 거인들은 포세이돈의 아들들로 초기 바다에 자리를 잡은 세력권 관련으로는 도시를 세우기도 하는 등 숭배되었던 흔적이 있으나 이후 제우스를 위시한 올림포스와 대립각을 세운다. 이들은 계속해서 거대하게 자라길 멈추지 않았다는데 이 묘사는 그만큼 포세이돈을 주신으로 섬기는 세력과 갈등을 지속적으로 빚었다는 상징이다.
아무튼 이 두 거인들이 꾀를 내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전쟁의 신 아레스를 납치하는 일이었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즉 전쟁의 신을 붙잡았다는 의미는 전쟁을 포고할 수 없게 미연에 차단했다는 의미이며, 아무리 흠이 있다고 한들 아레스는 누가 뭐래도 제우스의 적자이므로 즉 '''왕손을 인질로 붙잡았다'''는 셈이다. 무엇보다 두 형제의 이름이 지닌 의미를 합치면 '''끝없는 악몽'''이 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정신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악몽같이 실체 없는 것과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신들은 아르테미스의 활약으로 이 둘을 무찌르기 전까지 어쩌지도 못한 채 두 거인을 두고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일화를 언급하는 화자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바로 '''제우스가 직접 얘기'''한다. 붙잡혔다는 걸 알고도 돕지 않은 채, 아레스가 항아리에 갇혀 서서히 희미해지며 사슬에 부서져가는 동안에도[28] , 13달[29] 이 지나서야 헤르메스가 아레스를 구출하게 냅둔 셈. 여러모로 위 두 거인 일화는 다양한 방면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은유가 많다.
4. 여담
로마 신화의 마르스는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는 신화도 있다. 유피테르(제우스)가 스스로 미네르바(아테나)를 낳은 것 때문에 정실의 체면을 잃은 유노(헤라)가 자신도 스스로 아이를 낳기 위해 꽃의 여신 플로라를 찾아가 접한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는 마법의 꽃의 힘으로 미네르바에 지지 않는 전사 마르스를 낳았다고 한다.[30][31]
이때 헤라가 '아버지 없이' 낳은 자식은 아레스뿐 아니라 헤파이스토스, 청춘의 여신 헤베, 출산의 여신 에일레튀이아이며 넷 모두에게 제우스에게 꿀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염원을 투사했다. 이윤기에 의하면 아래 설명처럼 된다.
- 출산의 여신 에일레튀이아: '출산' 은 신성혼의 핵심이므로.
-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그 손재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 전쟁의 신 아레스: 전쟁이 나서는 모든 자리에는 여자(제우스가 끝없이 쫓아다니는)가 낀다.
- 청춘의 여신 헤베: 몸과 마음 양쪽에서 영원한 처녀.
로마 신화에서는 마르스(아레스)가 엄청나게 대접받는 신이었다는게 위안거리. 로마인들은 상무 정신 때문에 마르스를 엄청나게 중요한 신으로 여겼다. 게다가 건국자 로물루스는 로마 신화에 의하면 마르스의 아들이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유노(헤라)도 자식 한 명은 건진 것이 된다.딸에게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는 미소 짓고
폭풍 치던 하늘을 고요히 가라앉히던 얼굴로
딸의 입술에 입 맞추며, 뒤미처 이렇게 말했다.
네 자손의 운명은 여전히그대로니, 약속했던 도시와 라비늄의 성벽을
네가 보리라. 하늘 별자리에 용맹한 에네앗을
네가 높이 세우리라. 내 뜻은 바뀌지 않았노라.
네 아이는 ―근심이 네 속을 끓이니 말해 주련다.
운명의 서책을 펼쳐 더 멀리까지 열어 보겠다.―
이탈랴에서 큰 전쟁을 치르고 거친 족속들을
제압하고 백성에게 도리와 도시를 세우리라.
루틸리의 정복으로 겨울 숙영이 세 번 지나면
셋째 여름이 라티움을 다스리는 그를 보리라.
또 율루스가 이제 아스칸으로 이름 불리는데
―율루스는 일리온이 건재할 적 이름이더라―
그는 달이 서른 번의 커다란 운행을 마치도록
왕권을 행사하리니, 터전을 라비늄에서 옮겨
알바롱가에 강력한 힘으로 강국을 세우리라.
'''여기서 이제 삼백 년을 채워 헥토르의 혈통이'''
'''통치한 맡에 이내 신을 모시는 왕녀 일리아가'''
'''마르스에게 잉태하여 쌍둥이를 출산하리라.'''
이어 키워 준 늑대의 누런 털가죽을 좋아하는
로물룻은 무리를 모아 마르스 성벽을 세우니
이들을 불러 로마인이라 제 이름을 붙이리라.」
강간이나 불륜을 안 해본 남성을 찾기 매우 힘든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남성들 중 드물게 강간 경력이 없는 남성이기도 하다. 가장 성격이 더럽고 전쟁의 신으로서 폭력과 공포를 몰고 다닌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점. 물론 불륜경력은 많고 애초에 아프로디테와의 관계도 불륜이니...
동양권에서는 삼국지연의의 여포와 비교하기도 한다. 절대적인 힘을 가졌으나 아군과 적군 가릴 것도 없이 싸움을 즐기는 이기적인 행적도 비슷하기 때문. 아프로디테처럼 초선이라는 최고 미녀가 애인이었다는 점도 동일.
5. 관련 문서
[1] 현대 그리스어로는 Άρης(아리스)[2] 키가 크고 잘생겼지만,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서 아프로디테를 제외한 다른 신들의 미움을 샀다고. 부모인 제우스와 헤라조차도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와 사이가 좋은 신을 꼽자면 아프로디테(사랑), 하데스(저승), 에리스(불화) 정도다. [3] 흑해와 에게해에 면한, 발칸 반도의 남동쪽 지역을 말한다. 오늘날 그리스와 불가리아 영토에 걸쳤다.[4] 문제는 이런 학자들의 날조를 아테나 시민들이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전쟁활동이 직업인 군사 엘리트인 사람들은 학자들에게 가지는 반감과 전통 때문인지 아테네 장군들까지도 아레스 숭배를 버리지는 못한다.[5] 과거나 지금이나 예술이나 문화는 부유한 도시가 중심이 된다. 먹고살기 힘든 고대에선 더더욱 돈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6] 실제로 아테나는 테베, 스파르타의 몇 안되는 전승에서는 그냥 공예의 신이다. 로마에서도 아테나의 로마 이름인 미네르바는 역시 학술과 공예의 신일 뿐이다.[7] 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을 보면 알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당시 아테네가 페르시아와 승리 이후, 아테네 동맹인 델로스 동맹과 거의 제국 수준으로 만들려고 하자 아테네를 엄청 띄워주고, 반대파인 스파르타 동맹 펠레폰네소스 동맹에서 스파르타가 군신 아레스를 매우 숭배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폄하하고자 아레스를 낮추었을 가능성이 높다. [8] 그리스 북부의 폴리스 테베의 건국 설화에서 카드모스가 아레스에게 봉헌된 용을 죽였다가, 말년에 부인과 함께 용이 되는 저주를 받았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만큼 그리스의 북부 지방에서는 아레스가 굉장히 영험하고 높은 신으로 통한 것이다.[9] 로마가 만든 건국 설화에서도 자신들이 마르스의 후손이라고 자처함을 보면, 아레스가 전쟁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신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10] 1세기와 2세기에서 동굴에서 비밀결사로 믿던 기독교시절에는 성경에 설화 한두편 끼워넣는게 지역 기독교 책임자들에게 어려운게 아니었지만 20세기에 이르른 지금 성경에 뭔가를 끼워넣는건 교황이라도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11] 그렇다고 지혜, 전략, 전술이 잘 융화되었다고 해도 아테나가 아레스와 큰 전투력 차이를 보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아테나는 제우스에게는 꼼짝 못해도 그 밑인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 하데스가 지능, 전략이 매우 뛰어난데 그 자에게 상대가 가능할 수준이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12] 근데 애인 아프로디테를 위해서 자기 친엄마 헤라까지 버리고 트로이 편을 들었다. 그런데 헤라도 아들이 아무리 자기 반대파를 지원했기로서니, 크게 다치든 말든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사실 아레스가 트로이를 편든 것은 비단 아프로디테 때문만은 아니고 자신의 아들이 그리스에서 강제로 참전당해 전사한 것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트로이쪽에 영지가 있었다. 자기 영지를 그리스 연합군이 친 것이니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13] 아레스가 던진 창은 빗나가게 만들고 디오메데스의 창에는 힘을 실어 아레스의 아랫배를 찌르게 했다.[14] 얼마나 크게 내질렀는지 이 소리에 트로이군과 그리스군이 모두 벌벌 떨었다고 한다.[15] 그래도 이쪽은 어머니가 헤라 이전의 정실부인이었으므로 혈통은 꿀리지 않고, 사실상 지위가 제우스와 헤라 및 그 형제들 다음간다.[16] 반면 아레스의 형인 헤파이스토스는 전승에 따라서는 태어나자마자 헤라에게 버려졌다. 참고로 헤라에게 버려졌다는 전승 중 일부 계열에 의하면, 헤파이스토스가 사용자를 구속시키는 황금옥좌로 자신을 버린 모친인 헤라를 엿먹이자, 아레스가 헤파이스토스를 끌고 오기 위해 파견된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의 화염 때문에 아레스가 패배한다.[17] 자비심이 넘치는 아테나조차도 신을 모욕한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었고, 자신에게 제우스 피가 흐르는 것을 믿고 강의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모욕을 준 아킬레우스도 헤라가 월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면 강의 신에게 죽을 뻔했다. 이때 아킬레우스를 구해준 자는 헤라의 명령으로 파견된 헤파이스토스. 망치로 내려찍어 거대한 화염을 만들자 강의 신이 만든 거대한 물들을 모두 증발시켰다고 한다.[18] 상대가 아레스인 줄 '''알고서도 했다.'''[19] 에로스는 아레스와의 자식이 아닌 아프로디테 스스로 만든 자식이라는 설도 있다.[20]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디오메데스와는 다른 인물로, 헤라클레스의 12과업에 등장한다.[21] 그 유명한 아레오파고스 전승의 발단이 된 딸이다. 알키페는 강간당할 위기에 처하자, 울면서 아버지를 찾았고 아레스가 바로 나타나서 강간범(포세이돈의 아들)을 때려죽인 것을 보면, 상당히 아꼈던 자식으로 보인다.[22]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소포스의 딸인 타나그라를 두고 헤르메스와 권투로 겨루어 졌다는 일화가 있다.[23] 테베의 초대 왕비 하르모니아가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24] 펠롭스의 왕비이자 아트레우스의 어머니 히포다메이아가 아레스의 손녀.[25] 근데 헬리오스는 전승에 따르면 제우스 못지 않게 바람을 더 많이 피웠다고 한다. 거기다 헬리오스는 나중에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것까지 까발리는 등의 어찌보면 태양신이라는 칭호와 함께 고자질의 신이다(...). 하지만 이는 태양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고 달리 보면 그러한 부정을 발견한 뒤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밝히는 것은 태양 그 자체의 모습이자 정의로운 행동에 속하기도 한다.[26] 물론 지금도 단순히 개인적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는 처벌받는다. 사실 여론이 어쨌든 현대 법정에서도 해당 사건의 증거, 증인이 없으므로 무죄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고 상황상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는 있다.[27] 그 모습에 기특해 아레스가 가호를 줬다고 한다.[28] 그리스 신들은 불멸인데도 이 납치된 기간 동안 아레스가 서서히 소멸하려 한다는 내용이 암시되는 특이 사례. 하기사 은유적인 부분을 생각해서 풀이해보자면 전쟁, 다시 말해 싸우려면 투지 같은 정신적인 면이 필요한데 악몽 같이 정신력을 깎아먹는 부정적인 영향이 지속된다면 제대로 싸울 수 없다.[29] 이 기간은 음력과도 일치한다. 바로 달을 연상시키는 아르테미스와도 결부된다.[30] 플로라는 처음에는 유피테르가 무서워서 도와주길 망설였지만 헤라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도와줬다고 한다.[31] 이 이야기의 원전은 오비디우스의 '로마의 축제일'이다.[32] 다만 이 시점의 헤라클레스는 헤라와 화해를 했다.[33] 베누스(아프로디테)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