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대한민국 국회의원 (인천 부평구 을)'''
제18대
구본철[1]

'''제18~21대
홍영표'''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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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제19대 후반기
김영주

'''제20대 전반기
홍영표'''

제20대 후반기
김학용
'''대한민국 국회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제20대 전반기
김성태[14]

'''제20대 후반기
홍영표'''

제20대 후반기
이인영
'''대한민국 제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제20대 후반기
심상정

'''제20대 후반기
홍영표'''

''활동 종료''

'''대한민국 제18 ~ 21대 국회의원
홍영표
洪永杓 | Hong Youngpyo
'''
<colbgcolor=#004ea2> '''출생'''
1957년 4월 30일 (66세)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거주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신성미소지움
'''본관'''
남양 홍씨 당홍계[2]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3]
'''학력'''
고창국민학교 (졸업)
고창중학교 (졸업)
이리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철학 / 학사)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 박사 과정 수료)
'''병역'''
[image]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가족'''
배우자 임영희, 홍일수, 홍일강
'''신체'''
168cm
'''소속 정당'''

'''지역구'''
인천 부평구 을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8, 19, 20, 21
'''소속 위원회'''
국방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부평구 을 지역위원장
'''경력'''
새한자동차 사원
대우자동차 노동자대표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사무처장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소장
대우자동차 영국판매법인 주재원 근무
참여연대 정책위원
개혁국민정당 중앙당 조직위원회 위원장
참여정부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
열린우리당 특임위원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 지원단 부단장
재정경제부 FTA 국내대책본부 본부장
우석대학교 유통통상학부 초빙교수
민주당 노동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8대 국회의원(인천 부평구 을)
민주당 원내부대표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원내대변인
민주통합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
민주통합당 원혜영 · 이용선 임시당대표 비서실장
제19대 국회의원(인천 부평구 을)
새정치민주연합 인천광역시당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인천 부평구 을)
제20대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주권공동선거대책위원회 일자리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 후반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1대 국회의원(인천 부평구 을)
'''서명'''
[image]
'''SNS'''

1. 개요
2. 생애
2.1. 정치 활동
2.1.1. 더불어민주당 제4대 원내대표
2.1.1.1.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서의 평가
2.1.2. 원내대표 퇴임 이후
4. 기타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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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前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제18대 ~ 21대 국회의원으로 소속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인천 부평구 을 지역이다. 대표적인 친노무현계-친문재인계로 분류되어온 정치인으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 뒷얘기를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서 기술한 저서 '비망록(2013년)'이 있다. 지난 2016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 홍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당내 '친노' 진영이 뒷선으로 물러났다는 말까지 나왔으며, 2017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7표 차이로 우원식 의원에게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후 2018년 원내대표에 재도전하여 총 116표 중 78표를 득표하며 노웅래 의원을 '''40표''' 차이로 꺾고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2. 생애


1957년 4월 30일,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익산 이리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대우자동차에 입사하여 당시 어용노조를 비판하면서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이러면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구심점으로 떠올랐고, 1985년 대우자동차 파업이 벌어지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공식적인 노조집행부들을 제치고 홍영표와 직접 협상해서 임금인상에 합의해주었다. 대우자동차 노동운동 생애 참고.

2.1. 정치 활동


2001년 부터는 시민운동을 주도했고, 2002년 무렵에 유시민을 만나 개혁국민정당에서 조직위원장을 맡아 당시 노무현 후보 당선에 일조를 하게 된다. 이후, 개혁국민정당열린우리당에 합류할 때, 같이 입당,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평구 갑 지역 출마를 노렸지만, 문병호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하면서 출마를 접었다. 이후, 이해찬 총리 임명 당시 총리실의 권한이 강해지면서 총리실 비서관으로 임용되었고, 이해찬 총리가 사퇴한 후에는 한미 FTA 지원단장으로 임명되어 참여정부에서 계속 활동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인 홍미영 의원을 제치고 부평구 을 지역의 공천장을 받으며 출마하였다가 낙선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구본철 국회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2012년 18대 대선당시 문재인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지냈으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서 '비망록'을 저술했다. 2013년 국회 환노위 간사로서 정년 60살 보장법을 통과시켰다.[4]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정봉주의 전국구에 출연하여 김종인 대표의 공천방식을 비판하였다.
2015년에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을 맡아 인천 지역에서 20대 총선19대 대선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20대 총선 후에 돌연 사임했다. 친노계 3선 중진 의원으로써 원내대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친노 세력의 당 장악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으며 오히려 20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6월 13일 제20대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7년 5월에는 우상호 의원의 뒤를 이을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해 우원식 의원과 양자 대결을 하였으나 7표 차이로 아깝게 우원식 의원에게 승리를 내줘 친문 지지층들의 아쉬움을 샀다. 2017년 10월에는 김어준의 파파 이스 162회에 출연하여 이명박의 자원외교를 비판하였다.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정 자본금을 2조 원에서 3조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한국광물자원공사 지원법 개정안’에 대해 표결에 앞서 홍 의원은 반대토론을 통해 멕시코 볼레오 광산 등 연이은 투자실패로 부채 덩어리가 된 광물공사는 더이상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개정안을 강력히 반대하였고 결국 부결되었다. 이 경우는 같은 집권 여당(소속 송기헌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하였다가 자당 의원의 반대토론 후 표결에서 부결된 꽤 특이한 사례이다.
2018년 4월에는 전북 군산에 있는 한국 GM 공장 폐쇄로 촉발된 노사 간 대립을 놓고 민주당의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GM 본사와 노조 간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중재하였고, 폐쇄된 군산공장에 남은 근로자 680명에 대해 희망퇴직과 전환배치를 시행하고, 무급휴직은 실시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다. 임금 및 단체 협약은 데드라인을 57분 남겨둔 가운데 노조가 법정휴가, 상여금 지급방법, 귀성여비 및 휴가비, 학자금 등 일부 복리후생 항목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동의하면서 타결되었다고 한다. *

2.1.1. 더불어민주당 제4대 원내대표


2018년 5월 4일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칙을 지키면서도 통 큰 타협을 하는 역지사지의 정치를 하겠다"며 민주당의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 재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홍 의원은 "민주당의 한국 GM 대책특별위 위원장으로서 정부와 노사 간 협의와 중재를 이끌었던 경험을 살려서, 여야가 경쟁자이자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입법과 정책, 예산에 대한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을 활성화해서, 여당인 민주당이 국정 운영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
우원식 원내대표의 임기가 끝나고 노웅래 의원과의 경쟁 끝에 5월 11일 더불어민주당 3대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116명이 출석한 가운데 78표를 얻어 38표에 그친 노 의원을 2배 이상 앞섰다.[5] 이번 원내대표 투표에 민주당 소속 의원 121명 중 116명, 그러니깐 현재 장관직을 수행 중인 5명[6]을 제외하고 모든 의원들이 모였다. 그만큼 신임 원내대표에 거는 민주당 내부 기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취임 첫 행보로 단식 투쟁 중인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았다. 둘 다 노동계 출신이고,[7] 19대 국회 환노위에서 각각 여당 간사, 야당 간사를 맡아 노동 관련 법안과 정책을 조율했던 인연이 있는 만큼 김 원내대표가 홍 신임 원내대표를 반갑게 맞았다. 홍 원내대표는 건강 챙기라며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다만, 김 원내대표가 홍 원내대표에게 오후에 바로 협상하자고 말하자 아직 업무 파악이 안되었다고 협상을 뒤로 미루었다.
5월 14일, 추경안 동시 통과 등을 조건으로 드루킹 특검을 수용했다. 민주당이 특검 수용으로 지방선거에 참가하는 의원 4명의 사직서가 본회의에서 처리되었고, 국회는 40여일 만에 정상화 되었다. 비록 야당의 요구대로 특검을 수용했지만 민주당은 사직서 처리와 체포 동의안, 그리고 추경안 처리의 실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특검법 처리에 소비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특검의 본격적인 수사는 지방 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여 야당 입장에서는 특검을 관철했다는 명분 말고는 얻은 것이 없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특검 수용 사실이 알려진 초기에는 친문계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여론이 거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반응하는 인원이 늘고 있다.
결국 한 차례 진통을 더 겪고, 5월 21일 정부 추경안과 드루킹 특검법을 동시에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원내대표 취임 이후 첫 발걸음을 뗐다.

2.1.1.1.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서의 평가

원내대표로 부임한 이후 현재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4당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거듭해서 걷고 있고,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야당들의 근거없는 정치공세에 너무 쉽게 일방적으로 밀렸던 모습이 있었다는 평이 있다. 드루킹 댓글조작 특검을 수용했던 것과, 지난 2018년 중후반부터 이어졌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의 동반 하락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었던 점에 대한 비판도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 취임 이후 자유한국당의 반복되는 협상 거부와 문재인 정부의 전반적 지지하락 속에서 민주당의 개혁 입법 성과를 충분히 내지 못한건 아쉽지만, 막판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사법 개혁 핵심 공약 중 두 개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과 연계하여 패스트 트랙 안건 지정을 성공시키면서 원내대표로서의 마지막 발걸음은 성공적으로 남겼다.

2.1.2. 원내대표 퇴임 이후


2019년 7월 18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정개특위를 맡아서 책임 있게 운영하겠다"면서 "(홍 위원장이) 정치개혁에 대한 확고한 뜻이 있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과정에서 여야 4당 공조에 대한 의지를 결자해지하는 차원에서 실권을 갖고 협상에 임할 책임자"라고 발표하였다. #
홍 위원장은 4+1 협의체를 통해 8월30일 정개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정개특위 위원장을 넘어 4+1 협의체의 실질적 주도권을 쥐고 개혁법안의 국회 통과를 주도했다. 2020년 1월 마지막 개혁법안인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주요 언론에 "제대가 늦었다. 이제야 (원내대표) 임기가 끝난 기분이다”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
21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부평구 을에 다시 단수공천을 받아 56%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어 4선 고지에 올랐다. 이후 이해찬 대표의 뒤를 이을 더불어민주당 4대 당대표에 도전할 예정이다. # 다만 유력 차기 대선 주자이자 당내에서 영향력이 막강해진 이낙연 전 총리 역시 당대표 직에 도전할 의사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승리를 노리기 쉽지는 않을듯. 결국 이낙연 의원의 출마가 확실해지자 당 대표 출마를 포기하였다. #
21대 국회에서는 국방위원회정보위원회에 상임위원으로 보임받았다.

3. 비판 및 논란




4. 기타


  • 저서로 (개요 부분에 잠깐 언급한) 2012년 18대 대선 이후 낸 비망록 #이 있다.

비망록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으로 활동했던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선 캠페인 과정을 회고한 책이다. 특히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의원들과 실무자들의 증언을 통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보통 정치인의 저서는 자기자랑 일색인 자서전이나 출마를 앞두고 급조되는 지역 정책제안서 형식이 대부분이나 홍영표 의원의 비망록은 순전히 2012년 대선과정에 대한 회고와 복기, 반성을 목적으로 집필된 책으로 통상적인 정치인의 출판물과는 구분된다.
비망록은 2012년 12월 19일 대선 투표일, 투표를 마친 늦은 오후에 패배를 예감하고 충격에 휩싸인 민주통합당사의 모습과 문재인 후보의 패배 기자회견으로 시작되는데 정치인의 저서 치고는 극적인 구성이 잘 잡혀 있어 정치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을 듯. (비망록 요약) 정치인 저서로는 이례적으로 여러 매체에 서평이 실리기도 했다.
다만,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측의 입장 차이에 따라 뒷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낸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통합당을 탈당해 안철수 후보에게 간 송호창 의원과 나중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되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비망록에 대해 ‘악의적 왜곡’ 이러며 강하게 비판했으나, 홍영표 의원은 비망록에 기술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 과거 할아버지 홍종철이 중추원 참의를 지냈는데 이에 홍 의원은 2015년 광복절 당시 이를 공개사과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다른 친일파 조상의 친일 행적을 부정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순순히 잘못이 있음을 인정했다.
어쨌건 이미 오래전부터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환수하기 위한 운동과 부평 미군 부대 부지 공원화 추진 운동을 해왔으며,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손에 대한 지원 활동을 꾸준히 펼쳐 광복회 등 독립운동 유공단체들로부터 감사장 등을 받은 적도 있다. 심지어는 2016년 20대 총선 때 상대 후보인 새누리당 강창규 후보가 홍 의원 조부의 친일 행적 등을 문제 삼고 본인 선거 운동에 활용하자 광복회 간부들과 회원들이 격분하여 지지 선언과 선거 유세 활동을 펼치는 등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까지 했다. 훗날 홍 의원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 문상을 갔을 정도라고.
이렇게 독립운동가 단체들에 대한 홍영표 의원의 꾸준한 지원 활동은 애국 단체 등의 지지와 성원으로 나타났으며 20대 총선에서 3선 고지에 오르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당선된 후에도 2.8독립선언 같은 독립유공자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기도 했으며 매년마다 대표적인 애국 독립단체인 광복회 임원들이랑 같이 독립운동 기념 행사 등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견조호손의 사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당선돼 주류 정치권으로 나온 뒤로 자유한국당 지지층 같은 보수 진영 사람들은 홍영표가 이렇게 독립 유공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었다는 사실을 빼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점만 부각하여 비난하는 공격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 결과와 드루킹 특검법 합의에 실망한 강경 친문 지지자들도 한때 이런 공격에 힘을 보태는 촌극을 벌이기까지 했다.
  • 지역구 사무소는 갈산역 1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건물에 있다.
  • 본인이 노동운동가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8] 옛 친정인 '민주노총이 너무 고집불통이고 양보를 모른다'며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또한 "우리 사회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한국노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남긴 바 있다. 오마이뉴스 , YTN 그래서인지 지역구에 위치한 GM부평공장의 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굉장히 사이가 나쁘다. 지역구 사무소 앞에 틈만나면 금속노조의 규탄 현수막이 걸릴 정도.

그렇지만 시사 팟캐스트 등에 출연하여 본인이 대기업과 기득권을 대변하는 의원으로 비추어져서 속상하다고 한탄했고, 원내대표 임기가 끝나면 진보 정당으로 가야하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발언했다. 본인은 평소 자신을 진보적인 의원이라고 생각해왔다고.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2 - 2003
정계 입문

2003
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

2004 - 2007
창당

2007 - 2008
합당[9]

2008
합당[10]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11]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12]

2015 -
당명 변경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부평 을

33,707 (38.15%)
낙선 (2위)

2009
상반기 재보궐선거

'''20,881 (49.54%)'''
'''당선 (1위)'''
'''초선'''[13]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63,099 (55.24%)'''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54,974 (43.77%)'''
'''3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74,264 (56.13%)'''
'''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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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2] 남양 홍씨 당홍계 34세손 '杓'자 항렬이다.[3] 주안장로교회 안수집사이다. 출처.[4]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84467.html [5] 우상호 대 우원식, 우원식 대 홍영표의 지난두 차례의 원내대표 경선 모두 7표차였음에 견줘 본다면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6] 김부겸, 김영춘, 김현미, 김영주, 도종환[7] 홍 의원은 민주노총, 김 의원은 한노총[8] 민주노총 출신이라는 말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홍영표는 민주노총 창립 이전인 1995년에 복직하여 런던 지사에 갔다가 2002년에 구조조정으로 퇴직했으므로 민주노총에 몸 담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대우차 부평공장이 이름만 한국노총 사업장이었지 민주파 노동운동가들이 활동했다는 건 사실이다.[9]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0] 민주당과 신설 합당[11]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3] 한나라당 구본철 의원 당선 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