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변호사, 시인.
김복동&김옥숙 남매의 고종사촌 동생[1] 이자 노태우의 손아래 고종사촌 처남이자 탁구선수 현정화의 사촌형부이다.
2. 일생
1942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박태형(朴泰亨)[2] 과 김당한(金棠漢)[3] 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수석 졸업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시절 전혜린이 지도한 독우회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였다.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검사로 근무하다가 신군부의 등장 이후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법사위원으로 파견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 헌법의 기초 작업에 참여했다. 1980년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대통령비서실 소속 정무비서관과 법무비서관으로 활동하면서 청와대 밖에 있던 노태우의 청와대 내부 소식통 역할도 했다. 당시 선배 검사 김기춘이 1977년의 국군보안사령부 조직 축소에 관여한 것 때문에 하나회 출신 정권 수뇌부들에게 밉보여서 검사에서 짤릴 위기에 처하자 허화평 대통령비서실 수석보좌관에게 충성 편지를 쓰도록 조언하였다.[4] 1985년 초 장세동이 국가안전기획부장이 되자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이 되었으며 이 때 북한 정권의 요인들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남북 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월계수회'를 조직하여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제6공화국의 황태자로 불렸다. 1988년 2월 대통령비서실 소속 정책보좌관에 임명되었으며 1988년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구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국가들을 비밀리에 수 차례 방문하여 수교를 맺는 일에 물꼬를 텄으며 북한에도 비밀리에 방문하여 남북 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하였다.
한때 노태우의 후계자로 거론되었으나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한 이후 대표였던 김영삼과 끊임없이 부딪혔다. 의원내각제 개헌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김영삼의 반 협박으로 인해 포기하였다.[5]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대구 수성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지만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김영삼이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외사촌 형 김복동과 함께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통일국민당으로 이적해 정주영의 선거 운동을 지원하였다.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슬롯머신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수감 생활을 하였다.[6][7] 박철언의 국회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1994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박철언의 부인인 현경자가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구 수성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김대중과 김종필의 DJP연합 성사에 기여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만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고 이후 정계를 은퇴하였다. 2005년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을 출간했으며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3. 기타
- 노태우의 대선 승리를 위해 박철언이 직접 이끌었던 사조직으로 '월계수회'가 유명하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월계관을 쓰자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는데 이 때문에 노태우 정부 내내 각종 이권 사업 개입으로 시끄러웠으며 동시에 박철언의 대권 후보 경쟁자였던 김영삼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월계수회 출신 유명 정치인으로는 강재섭이 있다.
-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노태우의 옆에서 정치적인 조언을 하는 참모 포지션으로 등장하며 박철언 역할을 맡은 배우는 이승형이다. 전두환 정권 7년이 끝나갈수록 노태우의 비중이 증가하는데 덩달아 출연 비중이 높아진다. 드라마 후반부에 나온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에 본인이 간여하였다고 묘사된 내용에 대해서 소송을 걸어 일부 승소하였다.
- 개그맨 김형곤의 히트작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양종철이 노태우의 연줄로 실세가 된 박철언을 풍자하는 캐릭터로 출연하기도 했다.
- "6공의 황태자"라는 수식어에 대해 6공의 황태자는 본인이 아니라 YS라고 발언한 적 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닌게 노태우는 후계자로 김영삼을 꾸준히 밀어주었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민주자유당 총재였던 김영삼과 상의하고 결정했다. 때문에 노태우와 박철언은 일시적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박철언 역시 민주정의당계의 좌장 격인 인물이였고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서 북방 외교를 강력히 추진하는 등 제6공화국의 실세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체육청소년부(現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재임 시절 농림부(現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였던 한국마사회를 체육청소년부 산하로 가져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후 문화관광부 산하였던 한국마사회는 2001년부터 다시 농림부 산하로 환원되었다.
- 홍준표와의 악연이 깊은데 1994년 '슬롯머신 사건'으로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가 바로 홍준표였기 때문.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는 원래 제목이 '이카루스의 날개'였고 이는 홍준표의 제안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박철언이 불편해했던 나머지 모래시계로 바꿨다고 한다.문서 참조
4. 선거 이력
5. 소속 정당
[1] 정확히는 이 둘의 작은고모인 김당한의 차남이다. 옆은 출처 사진. [image][2] 아버지(박철언의 친할아버지)는 박대윤(朴大允)이다.[3] 아버지(박철언의 외할아버지)는 김선진(金璇鎭)이다.[4] 김기춘은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법무장관으로 재직하였다.[5] 김영삼이 만약 자기를 대선 후보로 세우지 않으면 당을 탈당해서 반정부 운동을 하겠다고 노태우를 협박했다. 다만 김영삼의 협박이라고 하기는 우스운 것이 애초에 '3당 야합'이라고까지 불리는 3당 합당이 가능했던 것 자체가 <여소야대 국면에서 심각한 정국 장악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노태우(민주정의당)>과 <차기 대권을 위해 보수층을 향한 지지 기반 확대가 절실했던 김영삼(통일민주당)>의 이해 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3당 합당을 통해 김영삼과 통일민주당을 끌어들여 다수 여당의 정국 장악력을 확보했으니 그 대가로 당권과 차기 대권주자의 자리를 지불할 차례가 되었던 것. 이 상황에서 노태우의 후계자로 '6공 황태자'라고까지 불리던 박철언이 의원내각제 개헌 주장을 내세운다는 것은 김영삼에게 약속한 대가를 주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김영삼을 대체하여 내세울만큼 경쟁력있는 대권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김영삼에게 차기 대권을 주느니 판 자체를 엎어리겠다고 나온 셈이다. 박철언과 노태우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영삼이 협박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보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박철언, 노태우, 민주정의당계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먼저고 김영삼, 통일민주당계는 "너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반응한 것에 가깝다.[6] 이 때 박철언을 수사한 검사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7] 박철언은 자서전에서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한다.[8] 1992. 10. 14 탈당, 11. 17 통일국민당 입당, 1994. 6. 28 슬롯머신 사건으로 피선거권 상실[9]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10] 정주영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