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요구자/유럽/독일
1. 개요
2. 등재 기준
3. 현재 왕위 요구자 목록
3.1.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3.2. 니더작센 주
3.3. 라인란트팔츠 주
3.4.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3.5.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3.6. 바이에른 자유주
3.7. 브란덴부르크 주
3.8.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3.9. 자를란트 주
3.10. 작센 자유주
3.10.1. 작센 국왕
3.11. 작센안할트 주
3.11.1. 안할트 공작
3.12. 튀링겐 자유주
3.12.1. 로이스-그라이츠 공작
3.12.2. 로이스-게라 공작
3.12.3.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
3.12.4.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
3.12.5. 작센-마이닝겐 공작
3.12.6.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3.12.7.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3.12.8.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3.13. 헤센 주
1. 개요
본래는 왕위 요구자/유럽 문서의 하위 항목이었으나, 너무 길어져서 분리하였다. 본 문서는 독일의 왕위 요구자를 다룬다.
2. 등재 기준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왕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독일 지역의 현재 왕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 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3. 현재 왕위 요구자 목록
3.1.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다른 지방과 달리 프랑스 제1제국의 위성국가가 지역 전체를 지배했었다. 따라서 라인 동맹이 붕괴된 후 이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의 직할지역이 된다.
3.1.1. 리페 공작
마지막 리페 공작 레오폴트 4세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전처 소생의 세 아들은 귀천상혼-나치 테크를 타서 후계자에서 탈락시켜버리고 막내 아르민을 후계자로 정한다. 정작 아르민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귀천상혼하여(...) 외아들 슈테판을 두었고 그는 슈탄데스헤어인 졸름스-라우바흐 백작가의 딸과 결혼해 3남 2녀를 두었다.
한편 레오폴트 4세의 종손인 리페-비스테르펠트 가문의 프리드리히 빌헬름도 슈테판에게 맞서 명목상의 리페 공위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이쪽은 딸만 3명인 데다가, 유일한 남자 형제인 동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게 자식이 없는지라, 살리카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단절될 예정이다.
현재의 샤움부르크-리페 공가 또한 1905년 리페-데트몰트 공가가 단절되었을 때 리페-비스테르펠트 가문에 맞서 계승권을 주장한 바 있다.
3.1.2. 베르크 대공
베르크 대공국은 1805년에 아우슈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806년에 라인 강 서부 유역에 세운 나라였다. 1810년에 루이 보나파르트의 뒤를 이어 홀란트 왕국의 왕이 된 나폴레옹 루이는 그로부터 1년 전인 1809년에 베르크 대공이 된 바 있는데, 나폴레옹 루이는 홀란트 왕국이 프랑스 제1제국에 합병되어 멸망한 뒤에도 베르크 대공위는 한동안 계속 유지했으나, 1813년에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하면서 베르크 대공국이 멸망하여 군주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다. 나폴레옹 루이는 후사가 없었으며 이후 루이 보나파르트의 자식들 중 가장 오래 살았던 나폴레옹 3세와 그의 아들 루이 외젠 보나파르트가 차례대로 베르크 대공국의 대공위 요구권을 물려받았으나, 루이 외젠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쪽 혈통도 단절되어 육촌인 빅토르 보나파르트에게 대공위 요구권이 넘어갔다. 현 대공위 요구자인 샤를과 장-크리스토프 또한 빅토르의 후손이다.
3.1.3. 베스트팔렌 국왕
베스트팔렌 왕국은 독일 제국을 구성하는 제후국은 아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로이센에서 떼어내 만든 자리로 처음이자 마지막 국왕은 제롬 보나파르트였다. 제롬 보나파르트의 후손이 프랑스 황위 계승자가 되었으므로 동시에 요구하는 칭호로 남게 되었다. 나폴레옹 6세가 손자 장-크리스토프에게 이것저것 넘겨주면서 베스트팔렌 국왕 요구자의 자리는 넘겨주지 않았는지 샤를 나폴레옹이 단독 요구자이다.
3.1.4. 잘름 공작
현 공위 요구자 카를 필리프 폰 잘름은 마지막 공작 콘스탄틴의 후손이다.
3.2. 니더작센 주
3.2.1.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현 왕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는 하노버 왕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자세한 건 아래의 하노버 왕국 왕위 요구자 문단 참고.
3.2.2.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현 당주 알렉산더는 1958년생으로, 마지막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아돌프 2세의 동생의 손자다. 아들 하나를 두었다.
3.2.3. 올덴부르크 대공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1918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대공이 퇴위하면서 멸망했고, 현 왕위요구자는 증손자인 크리스티안이다. 크리스티안은 1955년생으로 3남 1녀를 두고 있다.
참고로 왕가 이름이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이다.
3.2.4. 하노버 국왕
하노버 왕국은 게오르크 5세 때 프로이센에 합병되었다. 게오르크 5세의 아들인 컴벌랜드 공작[19]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는 사촌인 前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빌헬름이 죽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를 상속받았다. 프로이센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여겼으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의 아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가 빌헬름 2세의 외동딸 빅토리아 루이제랑 결혼하자 두 집안은 화해하였다. 이후 빌헬름 2세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의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계승을 승인했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컴벌랜드 공작위 계승을 포기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작위박탈법을 통과시켜 해외의 일부 귀족들[20] 의 작위를 박탈한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공식적으로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를 상실한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국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 사후 아들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1987년 사망)를 지나 현재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가 왕위 요구자이다.
3.3. 라인란트팔츠 주
3.3.1. 아렌베르크 공작
3.3.2. 이젠부르크 공작
3.3.3. 비트-노이비트 공작
비트-노이비트 공국은 1806년에 나사우 공국과 프로이센 왕국에 분할편입되면서 멸망했다. 현 공위 요구자 막시밀리안은 마지막 공작 프리드리히 카를의 후손이다.
1914년 당시 비트-노이비트의 명목상 공작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비트-노이비트의 남동생은 빌헬름 폰 비트-노이비트로 알바니아 공국[23] 의 초대 공작이 되었으나 1925년 퇴위했고, 그 아들 역시 후손을 보지 못하면서 1973년 계보가 단절되었다. 이후 해당 권리는 당시 당주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차남 카를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3.4.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3.4.1.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가는 마지막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의 두 아들들이 모두 남자 자손을 얻는 데 실패하여 2001년 단절되었고, 이후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가에서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위도 요구하고 있다.
3.4.2.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현 대공위 요구자는 보르빈이며 2남 1녀를 두고 있다.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의 국장은 위의 문단에 나온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의 국장과 거의 비슷하나 미묘하게 다른 디자인이다.
3.5.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3.5.1. 라이닝겐 공작
라이닝겐 공국은 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위치한 공국으로 1803년에 라이닝겐-다게스부르크-하르텐부르크 백작 카를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라이닝겐 공작이 되면서 건국되었지만 불과 3년 후인 1806년 바덴 대공국과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에 분할되면서 멸망했다. 현재 왕위 요구자는 안드레아스이다. 안드레아스는 2남 1녀를 두고 있다.
여담으로 안드레아스의 형인 카를 에미히 공은 前 라이닝겐 공작이었는데, 귀천상혼을 해서 공작위랑 가문 계승권을 동생 안드레아스에게 넘기고 본인은 러시아의 황제인 니콜라이 3세를 자칭하고 있다.[29]
3.5.2. 라이엔 공작
라이엔 공국은 바덴 서부에 세워진 프랑스 제1제국의 위성국이었다. 1814년에 프랑스 제1제국이 멸망하면서 라이엔 공국도 함께 멸망하였다. 현 왕위 요구자는 필리프 에르바인이다.
3.5.3. 바덴 대공
1918년에 독일 제국이 무너지면서 바덴 대공국은 대공가가 축출되고 바덴 공화국이 되었다. 1945년 이후에는 바덴 북부 지역이 뷔르템베르크-바덴으로 통합되었으며, 남부 지역이 바덴 주가 되어 1951년까지 존속했다가 1952년에 바덴 주도 뷔르템베르크-바덴에 통합되면서 오늘날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되었다.
3.5.4. 뷔르템베르크 국왕
독일 제국의 멸망으로 뷔르템베르크 왕국을 포함한 독일의 여러 제후국들도 멸망한 후 뷔르템베르크는 뷔르템베르크 자유 인민공화국(Freier Volksstaat Württemberg)이 되어 1945년까지 지속되다가 뷔르템베르크-바덴,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주로 잠시 개편되었으며, 현재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를 이루고 있다. 빌헬름 2세의 아들이 요절하여 뷔르템베르크 왕실의 직계혈통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뷔르템베르크-알트하우젠 분가에서 왕위 요구자를 배출하고 있다.
3.5.5.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작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호엔촐레른-헤칭겐 두 공국은 1849년 같은 가문인 프로이센 왕에게 영토를 양도하여 합병된다. 지크마링겐의 마지막 공작 카를 안톤의 차남은 신생 루마니아 왕국의 카롤 1세가 된다. 더불어 호엔촐레른-헤칭겐 가문이 1869년 단절되면서, 지크마링겐 가문이 전체 호엔촐레른 공가를 대표한다.
3.5.6. 호엔촐레른-헤칭겐 공작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호엔촐레른-헤칭겐 두 공국은 1849년 같은 가문인 프로이센 왕에게 영토를 양도하여 합병된다. 이후 호엔촐레른-헤칭겐 가문은 1869년 단절된다.
3.6. 바이에른 자유주
3.6.1. 바이에른 국왕
현 왕위 요구자인 프란츠 공작은 마지막 국왕 루트비히 3세의 증손자로 바이에른 왕국을 통치하던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이다. 비텔스바흐 가문은 여계로 넘어온 자코바이트 계승권자로, 스튜어트 왕조의 왕위들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프란츠 공은 자식이 없어서, 후임자는 동생인 바이에른'''에서의''' 공작(Herzog '''in''' Bayern)[34] 막스가 된다. 바이에른 공국은 1506년 이후 기존의 게르만족의 분할상속제를 폐지하고 장자상속제를 적용시켰는데 이로 인해 기존의 자신들의 영지와 공작위를 잃어버린, 그리고 후에 분할 상속을 통해 작위를 받았어야할 이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에른'''에서의''' 공작(Herzog '''in''' Bayern/Duke in Bavaria)이라는 작위를 만들었고 비텔스바흐 가문의 후예들은 작위를 받게 되었다. 물론 이 작위는 예우상의 작위였고 실제 통치는 바이에른'''의''' 공작(Herzog '''von''' Bayern/Duke of Bavaria)이 통치했다. 이후 바이에른의 공실 구성원들[35] 은 Prinz von Bayern[36] 작위와 Herzog in Bayern 작위를, 방계 후손들은 Herzog in Bayern 작위를 갖게 되었다. 프란츠 공의 동생인 막스 공은 명목상으로라도 통치 공작이 아니기에 Herzog in Bayern 작위를 성으로 쓰고 있는 것이고 형이 사망한 후에야 명목상의 바이에른 공작에 오르는 것이므로 Herzog von Bayern을 성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후임자인 막스 폰 바이에른은 5명의 딸을 두었으며, 그중 장녀는 리히텐슈타인의 왕세자빈인 조피(Sophie)이고 그녀는 3명의 아들을 두었다. 따라서 머지않아 '''리히텐슈타인의 통치자가 바이에른 왕국의 왕위 요구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3.6.2. 뷔르츠부르크 대공
뷔르츠부르크 대공국은 라인 동맹의 가맹국이자 프랑스 제1제국의 위성국이었다. 프랑스 제1제국이 1814년에 멸망함에 따라 뷔르츠부르크 대공국 또한 바이에른 왕국에 합병되어 멸망했다. 현 왕위 요구자 지기스문트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3.7. 브란덴부르크 주
3.7.1. 독일 황제
제1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퇴위한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해 1941년 죽었다. 그 아들인 전 황태자 빌헬름이 왕위 요구자가 되어 1951년 죽었고, 장남은 1940년에 요절했기 때문에 차남인 프로이센 공 루이스 페르디난트가 뒤를 이었다. 1994년 루이스 사후 그의 삼남 프로이센 공 루이스 페르디난트 2세(1977년 사망)의 아들, 즉 손자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에게 호엔촐레른 황실과 왕위 요구자가 계승된다. 페르디난트 2세가 죽을 즈음에 살아있던 두 삼촌(루이스 페르디난트의 장남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차남 미하엘)이 귀천상혼을 해서 왕위 요구를 포기했었기 때문에 형제 중 유일하게 동등결혼을 한 삼남의 아들 게오르크가 뒤를 이은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삼촌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미하엘은 아버지가 죽은 뒤 요즘 시대에 평민과 결혼한다고 상속권을 박탈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여 자신의 조카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고 한다(...).[37][38] 그런 이유로 현 왕위 요구자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반드시 동등결혼을 해야 했고 슈탄데스헤어 가문인 이젠부르크가의 조피 요한나(Sophie Johanna von Isenburg)와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3.7.2.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신성 로마 제국 해체의 여파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이 멸망한 뒤에도 프로이센 왕국 국왕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칭호는 명목상으로나마 계속 이어졌으며, 독일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이 멸망한 뒤에도 독일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왕위 요구자가 대대로 명목상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칭호를 쓰고 있다.
3.7.3. 프로이센 국왕
위에 독일 제국 카이저가 있는데 왜 프로이센 왕이 따로 있냐고 하면, 독일 제국은 명목상 여러 왕국과 공국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독일 제국 시기 동안 프로이센 국왕이 독일 제국 카이저를 겸임하였으므로 두 작위는 명목상 별개로 존재한다. 실제로 1차대전 말기에 빌헬름 2세가 황제위에서 폐위당하자 프로이센 왕국의 왕위라도 유지하려 하였으나 그것마저도 실패하여 망명한 것이다.
3.8.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3.8.1.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3.8.2.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 왕국이 승리함에 따라 슐레스비히 공국, 홀슈타인 공국, 작센-라우엔부르크 공국은 모두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었다. 현재 글뤽스부르크 가문 본가에서 대대로 공위 요구자를 배출하고 있다.
3.8.3.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러시아 제국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의 초대 황제인 표트르 3세는 본래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이었으나 선대 때 자국 영토 대부분이 덴마크에 합병된 탓에 사실상 명목상의 공작이나 다름없었을 뿐더러 그나마 자신의 치세까지 남아있던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 영토마저 어렸을 때 빼앗긴 탓에 이후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거둬줄 때까지 여러 곳을 유랑하며 살아야 했다. 표트르 3세를 폐위한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황제위는 본인이 손에 넣었지만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칭호는 아들인 파벨 1세에게 넘겨주었으며 파벨 1세 이후의 러시아 황제들도 명목상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칭호를 썼다. 현재 명목상의 러시아 황제위를 두고 서로 다투는 마리아와 앤드류 그리고 카를 에미히 또한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칭호를 쓰고 있다.
3.9. 자를란트 주
3.10. 작센 자유주
3.10.1. 작센 국왕
작센 왕가 후손의 전임 당주인 마리아 에마누엘이 2012년에 사망하면서 차기 당주가 누가 되어야 할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마리아 에마누엘의 누이의 후손인 작센-게사페 가문과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다른 친족이 당주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며 전자는 알렉산더를, 후자는 뤼디거를 차기 당주로 내세우고 있다.
수장인 마리아 에마누엘[43] 이 2012년 사망하면서 직계가 끊겼고, 살리카법을 접고 그의 누이의 후손인 작센-게사페 가문[44] 의 알렉산더와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육촌 형제 뤼디거[45] 가 계승해야 할지를 놓고 분쟁이 일어났다.
일단 구 작센 왕국 헌법과 1997년 마리아 엠마누엘에 의해 정해진 계승법에 의하면 여계 후손이 귀천상혼 후손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작센-게사페의 알렉산더가 앞서지만 일부 친족들이 반발하여 뤼디거를 옹립한 상황이다. 여기서 귀천상혼 배제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에는 귀천상혼 계열인 뤼디거를 건너뛰고 또 다른 육촌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46] 수장 카를 프리드리히가 왕위요구자가 된다.
독일의 다른 왕조들은 엄밀히 말해 알베르트 계통이 단절된 것으로 보는데 알렉산더는 여계 후손인데다 아버지가 레바논계 멕시코인이고 뤼디거는 아버지인 티모 왕자가 귀천상혼때문에 작센 왕조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후보 모두 정통성에 결함이 있어 독일 귀족연감에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승권 분쟁에 에른스트 계통도 끼어드는데 작센 왕국 이전 베틴 가문의 구 상속법이 준살리카법[47] 에 엄격한 귀천상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알렉산더와 뤼디거를 모두 부정하고 에른스트 계통의 수장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가 작센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상술했듯 여기도 단절되는 것은 기정사실.
3.11. 작센안할트 주
3.11.1. 안할트 공작
현 왕위 요구자 에두아르트는 1941년 생으로 마지막 안할트 공작 요아힘 에른스트의 차남이다. 세 딸 밖에 없어서 2010년에 살리카법을 폐지하고 맏딸 율리아 카타리나를 후계자로 정했다.[49] 율리아 카타리나는 아들 하나가 있다.
마지막 공작 에두아르드의 아들 요아힘 에른스트의 자손은 전원 귀천상혼(...)을 했으며, 에두아르드의 장녀 마리 아우구스테는 프로이센의 왕자 요아힘과 혼인해 카를 프란츠를 낳고 카를 프란츠의 아들 프란츠 빌헬름은 러시아 제국 제위 요구자인 마리아 블라디미로브나와 혼인해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를 낳는다. 다만 에두아르트 폰 안할트 역시 평민과 혼인하였으나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었던 것을 보면 동군연합을 구성하기는 힘들 듯.
3.12. 튀링겐 자유주
3.12.1. 로이스-그라이츠 공작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가문에서는 '~세'가 동명의 군주를 구별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가문의 남자 구성원들에게 태어난 순서대로 붙이는 숫자라는 것이다. 로이스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6세를 기념하기 위해, 12세기 말부터 가문의 남자 구성원들 모두가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그라이츠 계통에서는 100세까지 다 채우면 그 다음에 태어나는 남자는 1세가 되고, 게라 계통에서는 세기가 바뀌고 처음 태어나는 남자부터 다시 1세로 되돌아가는 방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어차피 그라이츠 계통은 24세까지밖에 못 채우고 단절되었으니까.
1918년 당시 로이스-그라이츠, 로이스-게라 두 계통이 있었는데 1927년에 그라이츠 계통이 끊겨서 게라 계통이 로이스 지역 전체를 대표한다.
3.12.2. 로이스-게라 공작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가문에서는 '~세'가 동명의 군주를 구별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가문의 남자 구성원들에게 태어난 순서대로 붙이는 숫자라는 것이다. 로이스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6세를 기념하기 위해, 12세기 말부터 가문의 남자 구성원들 모두가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그라이츠 계통에서는 100세까지 다 채우면 그 다음에 태어나는 남자는 1세가 되고, 게라 계통에서는 세기가 바뀌고 처음 태어나는 남자부터 다시 1세로 되돌아가는 방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1918년 당시 로이스-그라이츠, 로이스-게라 두 계통이 있었는데 1927년에 그라이츠 계통이 끊겼다. 그러나 1945년에 하인리히 45세가 소련군에 납치되어 게라 본가도 끊기고, 지금은 17세기에 게라 계통에서 분가한 로이스-쾨스트리츠 계통이 로이스 가문을 대표한다. 현 당주 하인리히 14세는 1955년 생으로 2남 2녀를 두었다. 정작 현 당주 하인리히 14세나 그의 아버지, 자녀들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진첸도르프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에 있는 성을 그 대가 끊기면서 로이스-쾨스트리츠 계통이 19세기 초에 상속해서인데, 로이스 지역에 있던 성들이 소군정에 의해 몰수되고 동독이 되어버리면서 더더욱.
3.12.3.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
3.12.4.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가와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가 모두 현재는 남계혈통이 단절된 상태이며, 마리에 안토이네테가 졸름스-빌덴펠스 백작위 요구자인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5세와 결혼하여 자녀를 얻으면서 해당 작위들의 요구권은 졸름스-빌덴펠스 백작가로 넘어갔다.
3.12.5. 작센-마이닝겐 공작
현 왕위 요구자 콘라트는 1952년생으로 미혼이다. 유일한 후계자이자 남계 친족으로 조카 콘스탄틴(1980년생)이 있지만 아버지인 에른스트는 베른하르트가 귀천상혼을 해서 태어난 아들이라 논란이 있는 모양.[53] 콘스탄틴은 아들 미하엘(2015년생)이 있지만 일단 여기도 귀천상혼으로 태어난데다가(...) 혼인 중에 태어났는지가 알려지지 않아서 후계자인지는 알 수 없다.
3.12.6.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현 왕위 요구자는 마지막 대공의 손자인 미하엘이다. 1946년생으로 딸 하나밖에 없으며 사촌인 빌헬름에게 아들 콘스탄틴(1977년생)이 있었으나 2018년 자녀 없이 사망하면서, 살리카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단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은 방계 가문은 작센 왕가, 작센-마이닝겐 공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로 세 개가 있지만 작센 왕가와 작센-마이닝겐 공가는 귀천상혼 문제가 있어서 만약 대공가가 단절된다면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 대공위를 계승한다고 한다.
3.12.7.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작센-알텐부르크 공국 멸망 후 공위 요구자를 배출하던 작센-알텐부르크 공가는 1991년에 마지막 정통 공위 요구자 게오르크 모리츠가 독신으로 사망하여 단절되었다. 현재는 작센-바이바르-아이제나흐 대공위 요구자인 미하엘이 작센-알텐부르크 공위 요구권을 넘겨받았지만, 상술한 이유에 따라 살리카법을 폐지하지 않을 경우 이쪽 또한 단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단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에 합쳐졌지만 그조차도 단절이 확실시되는데, 상술했듯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는 작센-코부르크-고타에 통합될 것으로 추정되는 중이다. 영지가 재조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처럼 작센-코부르크-고타로 통합된다고 가정.
3.12.8.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현 왕위 요구자는 마지막 공작 카를 에두아르트의 손자인 안드레아스이다. 1943년생으로 2남 1녀를 두었으며, 장남인 후베르투스 미하엘은 1남 2녀를 두고 있다. 여담으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가는 현 영국 왕실 및 벨기에 왕실, 그리고 전(前) 불가리아 왕실과 같은 가문이다. 다만, 영국 왕실과 벨기에 왕실은 현재 작센-코부르크-고타 성씨를 쓰지 않는데, 그 이유인 즉슨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 제국과 적으로 만난 까닭에[59] , 반(反) 독일 여론을 의식해서 성씨를 바꿨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은 성씨를 '윈저(Windsor)'로 바꿨고, 벨기에 왕실은 성씨를 '벨기에'[60] 로 바꿨다. 불가리아만 '작센-코부르크-고타' 성씨를 그대로 불가리아어식으로 바꾼 삭스코부르고츠키(Сакскобургготски)를 사용한다.
3.13. 헤센 주
3.13.1. 나사우 공작
현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는 나사우 공위 요구자를 겸하고 있다.
이름의 유래가 된 나사우는 라인란트팔츠에 있지만 나중에 수도가 된 비스바덴은 헤센에 속한다. 멸망 후 헤센나사우 주로 개편된다.
3.13.2. 발데크-피르몬트 공작
현 당주 비테킨트는 1936년생으로, 마지막 공작 프리드리히의 손자다. 서독 공군 중령을 지냈다. 52살 때 20세 연하 귀족 여성과 결혼해 세 아들을 두고 있다.
3.13.3.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졸름스-빌덴펠스 백국은 1806년에 헤센 대공국에 합병되어 멸망했다. 현 백작위 요구자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는 마지막 백작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2세의 후손이다.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부터는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와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의 공위 요구자를 겸한다.
3.13.4. 프랑크푸르트 대공
현재 대공위 요구자인 니콜라우스 폰 로이히텐베르크는 첫 번째 프랑크푸르트 대공[63] 이었던 외젠 드 보아르네의 직계 후손이며, 1974년 사망한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의 재종손자(6촌)이다. 다만 할아버지가 귀천상혼으로 태어나서 공식적으로 상속받지는 않은 모양.
아버지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도 그렇고, 전임자도 그렇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3대 공작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로이히텐베르크가 니콜라이 1세의 딸 마리아와 혼인하면서 러시아로 귀화했기 때문이다. 정작 본인은 독일어 사용자라서 그야말로 혼돈.
3.13.5. 헤센 대공
헤센 대공국은 본래 헤센-다름슈타트 가문이 왕위 요구자였는데, 헤센 대공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타격을 입어 1968년부터 가문이 단절되었다. 왕위 요구자의 자리는 헤센-다름슈타트 가문에서 헤센-카셀 선제후위 요구자인 헤센-카셀 방백가의 수장에게로 넘어갔다.
3.13.6. 헤센 선제후
헤센-카셀 선제후령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 추가된 선제후령으로, 헤센-카셀 방백 가문에서 선출되었다. 베스트팔렌 왕국이 세워지면서 잠깐 멸망했다가 1813년 부활, 빈 회의에서 왕국으로의 승격을 노리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을 들어서 프로이센에 합병되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왕위 요구자는 헤센-카셀 방백가의 수장이 맡는다.
[1] 슈테판의 아버지.[2]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버지.[3] 알렉산더의 아버지.[4] 슈테판의 장남[5]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남동생. 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6] 알렉산더의 아들.[7]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8] 장-크리스토프 루이 페르디낭 알베릭 나폴레옹[9]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10] 제롬 그자비에 마리 조제프 빅토르 나폴레옹[11]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12]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13]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14] 알렉산더의 아버지.[15] 알렉산더의 아들.[16] 크리스티안의 아버지.[17] 크리스티안의 장남.[18]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19] 영국의 작위이다.[20] 대부분이 독일, 오스트리아 등 적국의 귀족들이었다.[21] 막시밀리안의 아버지.[22] 막시밀리안의 동생.[23] 정확히는 알바니아 '''공령'''[24] 보르빈의 아버지.[25] 보르빈의 장남.[26] 보르빈의 아버지.[27] 보르빈의 장남.[28] 안드레아스의 형[29] 단, 카를 에미히 공 본인은 가문명을 "라이닝겐-로마노프"(Leiningen-Romanov)라 칭한다.[30]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버지.[31]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버지.[32]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33] 참고로 리히텐슈타인의 왕세자빈인 조피(Sophie)의 아버지이다.[34] 성이 바이에른에서의 공작이다. 후에 프란츠 공이 사망할 경우 바이에른의 공작(Herzog von Bayern)으로 성이 바뀌게 될 것이다.[35] 보통 공작의 손자까지.[36] 바이에른의 공자(公子). 왕국 승격 이후엔 왕자(王子).[37] 이들이 끝내 독일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왕위 요구권을 손에 넣는 데 실패할 경우, 이들은 프로이센 공국 시절의 프로이센 공위나 현재는 폴란드령 포즈난이 된 포젠에 잠시 프로이센과의 동군연합으로 존재했던 포젠 대공국의 대공위를 요구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세르비아 왕국 왕위 요구자인 알렉산다르 왕세자는 본래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왕위를 요구하고 있었으나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어 유고슬라비아 왕위를 요구해봤자 부질없는 일이 되면서 그 대신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성립으로 폐지되었던 세르비아 왕위를 요구하기 시작한 케이스다. 물론 그렇다고 알렉산다르가 공식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왕위 요구 포기를 선언한 건 아니다.[38] 연방 대법원까지 간 끝에 대법원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가 프로이센 왕가의 적법한 당주라는 것을 인정하였으나, 재산은 그의 삼촌들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39] 키릴 블라디미로비치의 아들, 마리아 여대공의 오빠.[40] 카를 에미히의 아버지. 어머니가 알렉산드르 2세의 증손녀이다.[41] 카를 에미히의 아들.[42]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43] 마리아라는 이름이 세컨드네임도 아니고 당당히 첫머리에 나왔지만 당연히 남자다.[44] 1997년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선언했다. 게사페 가문은 레바논의 마론파 출신으로 멕시코로 이민한 성공한 사업가 가문이다.[45] 어머니가 평민으로 정육점 집 딸이어서 아버지가 왕실에서 절연당했다.[46] 호엔촐레른 왕조의 가톨릭 분파이다.[47] 모든 남성 후손이 단절됐을 때만 여성에게 계승권이 돌아간다.[48] 에두아르트의 형.[49] 왜냐하면 안할트 가문의 남성이 에두아르트 본인 밖에 없고, 작센 계열 공국들과 달리 방계 가문도 없기 때문.[50] 하인리히 14세의 아버지.[51] 하인리히 14세의 아버지.[52] 콘라트의 아버지.[53] 다만 어머니는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직전 공위 요구자인 프리드리히 요시아스의 딸 베아트리체이다. 그런데 베아트리체도 귀천상혼으로 태어났다(...).[54] 미하엘의 아버지.[55]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56] 작센-알텐부르크 공가의 마지막 당주.[57]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58] 안드레아스의 아버지.[59] 특히 벨기에는 이른바 벨기에 강간이라고 할 정도로 독일군에게 막심한 전쟁 범죄의 피해를 당했다. 흡사 벨기에판 난징 대학살 수준이라서 오늘날까지도 벨기에 내에서는 독일을 증오하는 여론이 크다.[60] 프랑스어로는 '드 벨지크(de Belgique)', 네덜란드어로는 '판 벨히어(van België)', 독일어로는 '폰 벨기엔(von Belgien)'.[61] 비테킨트의 아버지.[62] 비테킨트의 장남.[63] 일단 영지는 장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다스리던 바이에른 왕국에서 분리되어 생성되었다.[64] 하인리히 도나투스 필리프 움베르토[65]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아버지.[66]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장남. 할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67] 하인리히 도나투스 필리프 움베르토[68]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아버지.[69]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장남. 할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