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본토 관계

 

[image]''' 홍콩-본토 관계 관련 틀'''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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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
1. 개요
2. 특별행정구와 일국양제
3. 국적/여권 처리
4. 홍콩-본토
5.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이 홍콩과의 국경을 허물고 있는 이유'''
홍콩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직접 통치하는 중국 대륙, 즉 본토를 내지(內地) 혹은 대륙(大陸)이라고 부른다.
홍콩은 일국양제가 시행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본토와는 국방, 외교 부분을 제외한 많은 것이 분리되어 있으며, 서로를 오가는 데에도 출입국 심사에 준하는 행정구역 경계 출입 검문이 필요하다. 세관업무의 경우에도 홍콩 세관이 담당하며 중국 세관은 간섭하지 않는다.
외교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인에게 있어 홍콩과 중국 본토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인식하면 된다.

2. 특별행정구와 일국양제


중영공동선언에서는 홍콩의 주권을 중국이 반환받은 이후 1999년 7월 1일부터 중국 정부가 홍콩에 홍콩 특별행정구를 설치하고, 그리고 일국양제에 따라 하위 조항에서 영국령 당시 체제를 최소 50년 간 유지한다고 할 뿐이다. 여기에 민주주의 등 정치체제에 대한 사항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홍콩은 제한적으로 민주정이 이뤄지는 곳이기는 하나 이는 영국령 홍콩 시절에 도입된 제한적 민주정이 항인치항, 즉 '홍콩 사람이 홍콩을 다스린다'로 대표되는 원칙이나 중영공동선언에 따른 50년간의 영국령 홍콩 체제 유지에 따라 유지될 뿐이지 특별행정구 체제와는 관련이 없다. 물론 이는 일종의 시범 기간의 성격이 강해서 홍콩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큰 의미는 없다.
중국 입장에서 일국양제라는 개념의 등장은 정치보단 경제적 목적이 강했다. 즉 사회주의 체제 내 경제특구보단 아예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별도 정부의 행정구역들이 여럿 있는 게 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행정부가 별도 정부인 특별행정구 내진 특별관세구역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자본주의 국가인 게 원칙이라 중국 본토의 규제들을 적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과 본토 간의 교역은 엄연한 무역이 되고 물건을 팔 경우 수출이 된다.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국가 특성 상 본토 내의 규제를 푸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중국의 특성 상 유연하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다. 외국인들은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 덕분에 중국 정부를 나쁘지 않게 보는 편이다.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를 지속하겠다고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한 '일국양제'와 현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유지가 불가분이고 따라서 50년이 지났다고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폐지할 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밑바닥으로는 중국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홍콩인들은 '진정한 일국양제'는 이미 사라졌다고 간주한다. 홍콩 시민들은 일국양제를 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완전한 자치 보장으로 보고 있는 반면 중국 정부는 그냥 본토와 다른 법을 써서 규제들이 적용 안되고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의 별도 행정부를 보유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특별행정구는 원칙적으로 중국 정부 직할의 행정구역에 불과하다.

3. 국적/여권 처리


중국 대륙 - 홍콩 상호간 왕래에 대해서는 중화권/상호 왕래 문서를 참고하자.
홍콩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영주권이 곧 독립주권국가의 시민권 역할을 한다. 홍콩 영주권을 가진 중화인민공화국 국민[1]의 경우에는 홍콩 특별행정구 여권(香港特別行政區護照, HKSAR Passport)을 받을 수 있는데 중국 본토에 후커우(戶口)를 갖고 있는 중국 국민이 발급받는 중화인민공화국 여권(中國護照, Chinese Passport)과 다르다. 물론 홍콩 여권도 국가코드가 CHN이라고 찍히고 국적란에도 CHINESE라고 찍혀 있어 중국 국적자임을 나타내며, 중국의 외교부에서 홍콩 주민을 보호해달라는 문구가 여권 앞에 작성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홍콩여권과 중국여권을 다르게 분류한다. 해외에서 외국인 등록을 할 때도 홍콩 여권 소지자는 국적을 HONG KONG혹은 HONG KONG SAR (OF CHINA)로 등록하지 PEOPLE'S REPUBLIC OF CHINA로 등록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 본토와 홍콩은 같은 나라(중화인민공화국)지만 일국양제에 의해 정치체제가 분리되어 있으므로 편의상 홍콩을 주권국가에 준하는 취급을 하는 것일 뿐이지, 해당국이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이라고 여기는 홍콩인들도 본토 여권이 아니라 홍콩 여권을 갖고 있으면 '''중국'''이 아니라 '''홍콩''' 국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사실상 해외에선 별개의 국적으로 대우 받는 것이다.
홍콩 여권으로는 전세계에 무비자 입국 가능한 나라가 150개국 이상인 반면 중국 대륙 여권은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하며 홍콩 여권 소지자에게 비자 면제를 해 주는 싱가포르는 중국 여권 소지자에게는 최장 2시간이라는 까다로운 영국 입국 수준의 입국심사를 한다.
한마디로 중국계 홍콩 시민들은 중국에 호적이 없으며, 중국 본토에서 공무 담임권도 없고, 납세 등의 의무도 없고, 홍콩 여권을 사용하며, 해외에서도 사실상 중국과 다른 별개의 국적으로 대우받는다. 또한 중국은 헌법상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홍콩 국적에 한하여서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법적으로 중국 국민인 만큼 해외에서는 중국 대사관홍콩, 마카오 및 해협(대만) 동포과를 운영해 국외주재 홍콩 주민들을 위한 업무를 처리한다. 그런데 중국 본토 및 중앙정부에 반감을 가진 홍콩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중국 대사관 안 가고 일부러 대만 대표부나 홍콩 상공회의소로 간다고 한다. 참고로 홍콩 정부는 세계 각국에 중국대사관과는 별도로 상공회의소를 운영해 특별행정구 주민들과 관련한 업무를 처리한다.
한편, 홍콩 영주권이 있지만 중국 국적이 없는 외국인은 홍콩 여권을 받을 수 없으며 본국의 여권을 사용해야 한다. 본국의 여권에 홍콩영주비자[2] 를 부착하며 홍콩 출입국 시에는 여권 없이 홍콩ID카드로 통과할 수 있다. 무국적자의 경우 여권 대용으로 비자목적용 신분증(Document of Identity for Visa Purposes)을 발급받을 수는 있지만 이외의 경우에는 자신의 국적에 맞는 여권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외국인은 합법적으로 홍콩에 7년 거주하면 영주권을 받는다. 또한 외국인이 중국 국적으로 귀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조부모나 부모 대에 중국 국적 혹은 청나라 혹은 중화민국 국적자가 없을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중국, 홍콩, 마카오 모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을 위한 귀화 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홍콩 영주권을 취득할 경우 홍콩 내에서는 일반 중국계 홍콩시민과 동등하게 대우[3]받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귀화이중국적으로 보지 않는다. 중국과 홍콩은 기본적으로 외국인 귀화를 받지 않지만 조상 중에 중국인이 있는 경우 혹은 중국의 국가적 이익에 부합하는 특별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만약 홍콩에서 홍콩 국적을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면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국적이탈신고를 하면 되며 그 때부터 홍콩 여권을 발급받고 해외에서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홍콩 국적으로 대우받을 수 있다.
예외적으로 중화민국 국적자, 즉 대만인에 대해서는 7년 이상 홍콩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면 홍콩 영주권과 함께 홍콩 여권이 나온다. 중국이 중화민국을 인정하지 않고 중화민국 국적자를 자국 국민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 - 대만 간의 사이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 양국 국민은 상대국에 일정 기간 이상 체류하면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 호적 변경(대륙 지역 호적에서 대만 지역 호적으로 바꾸거나 그 반대)의 형식으로 국적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92공식에 의해 둘 다 서로를 중국으로 보기 때문이다.
홍콩인이 중국 본토로 들어가려면 회향증(回鄉證)이라는 증명서가 필요하다.

4. 홍콩-본토



4.1. 중국으로 환원하기까지



1997년 홍콩 반환식 영상.[4]
물론 홍콩의 중국 복귀를 지지한 사람도 있었지만, 홍콩 사람들은 홍콩 반환 이후 자신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꼈다. 백년 가까이 홍콩계 영국인으로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중국인이 되었으니,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 본토에 반대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 홍콩인들이 존재한다.
사실 1970년대까지는 영국에 반대하고 중국을 지지하는 것을 '애국'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사실 영국 통치 시절의 홍콩이 딱히 통치형태가 민주적이지는 않았고, 1960년대까지도 식민당국에서 빈부격차같은 사회문제에 대해서 그냥 냅두는 경우가 많아 노동착취나 극악한 빈부격차같은 부조리한 점이 많았다. 이 때문에 '''본토에서 문화대혁명이 발발하자 그에 응하여 1967년 4~5월에 꽤 큰 규모의 반영(反英) 폭동을 벌이기도 했다.''' [5] 그러나 67폭동은 말이 반영시위지 사실상 친중공 성향의 사람들이 벌인 테러 수준이었다. 또한 당시 홍콩의 정치형태가 민주적이라 할수는 없어도 대만, 북한, 중국, 필리핀같은 나라보다야 언론자유가 제대로 보장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1970년대 들어 식민당국이 홍콩 사회복지정책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수밖에 없었기도 했다.
그래도 개혁적인 성향의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방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자 중국의 개혁, 민주화에 기대를 걸었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고 중국의 정치개혁이 좌절되면서 홍콩인들이 크게 실망하게 되었고, 민주화 되어가는 중화민국은 이미 홍콩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라서 홍콩인들의 불안감은 더 커져나갔다. 실제로 중영공동선언 당시 일국양제의 원칙이 발표되었음에도 천안문 사태 등에 데인 홍콩인들이 대거 영연방 국가로 이민가기도 했다.
일단 1국가 2체제와 특별행정구(별도 관세구역) 지정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중국의 급속한 성장을 지켜보면서 중국 본토와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앨빈 토플러 등도 홍콩이 광둥성과 함께 중국에서 독립할 것이라고 예측하거나, 쿼런틴 같은 SF소설에는 탈주한 홍콩인들이 호주 북부에 뉴 홍콩을 세운다는 설정도 있는 등 90년대에는 각종 예측들이 난무했으나[6] 그럭저럭 일국양제가 잘 돌아가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본인의 정체성을 홍콩인(지방)이자 중국인(국적, 혹은 민족)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100년 이상을 중국과 분리되어 살아왔으니 홍콩인들의 대륙에 대한 반감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래도 , 사이판. 하와이호주 북부 등에 뉴 홍콩이 들어설 것이라니 하는 예측이 난무했던 1990년대보단 낫다.
중국 본토에서는 영국에 의한 홍콩 점령을 역사적 치욕으로 여긴다. 현대에서나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체제가 의미를 가지지 당시 경위만 놓고 보자면 엄연히 침략자에게 영토를 뺏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본토 중국인들, 특히 분청들이 서양인들의 홍콩을 띄우면서 중국본토를 은근히 디스하는 관련 영상매체나 발언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 본토인들은 홍콩에 딱히 악감정은 없다. 대만처럼 홍콩도 특별행정구로 본토와는 다른 체제로 돌아가며 중국을 구성하는 귀퉁이 변방의 좀 사는 섬으로 본다.

4.2. 홍콩 독립운동


3만의 공산당이 중원을 재패했는데 그 역이 일어나지 않음을 어찌 염려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시사인 굽시니스트-

상당수의 홍콩 주민들은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일국양제 훼손 시도에 비판적이다. 유커들의 추태와 싹쓸이 쇼핑, 소득수준에 비해 과도한 집값과 월세비까지 더해져 중국 대륙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홍콩 경제는 애초부터 대륙과의 교류가 많았던데다가[7] 1980년대에 주요 산업시설이 대륙으로 넘어갔고 홍콩 반환 이후로는 중국경제에 의존하는 비중이 중국의 고도성장과 함께 급속히 높아져서 이제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완전히 종속된 상황이라 홍콩 주민들도 그저 말로만 반감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상하이선전시이 신흥 금융도시로 떠올랐고 그 만큼 중국 당국에서 홍콩에 굳이 신경써야할 필요가 줄어들면서 그 만큼 홍콩에 대한 대우가 박해지는 감도 강하다. 물론 홍콩이 쌓아올린 경험이나 자유무역지구라는 특성을 마냥 무시할수있는것은 아니기때문에 홍콩이 하루아침에 몰락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 만큼 홍콩의 입지가 전체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다는 얘기이다. 중국 본토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안팍이었을때 홍콩은 2만 달러를 넘었고, 1997년 홍콩의 GDP는 1763억 달러로, 9527억 달러였던 당시 중국 GDP의 18.5% 정도였다. 도시 하나가 중국 전체의 1/5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홍콩은 중국경제에서 필수불가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2018년 홍콩의 GDP는 3630억 달러로, 13조 4000억 달러의 중국 GDP 2.7%에 불과해졌고, 이제는 그렇게까지 특별대우를 해줘야할 필요가 없어졌다는것이다.
일부에서는 홍콩 독립운동이나 영국령 복귀 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홍콩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본토파가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다.
대다수 홍콩 주민들의 요구는 그저 행정장관 직선제와 중화인민공화국이 홍콩 반환의 조건으로 영국에 약속한 고도의 자치, 즉 진정한 항인치항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에서 이는 광동 성, 푸젠 성 등으로 민주화 요구를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말이다.[8]

4.3. 홍콩인의 정체성


중국 공산당을 비롯하여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중앙 정부에 대한 반감은 강하지만 홍콩 주민들이 모두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중국이 곧 중공인 것은 아니며 '''애국이 곧 애당인 것도 아니다.'''(中共不等於中國, 愛國不愛黨)'이다.
홍콩에서 중국 공산당을 비난하고 천안문 민주화 운동 추모대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모두 홍콩 독립주의자는 아닌 것이다. 홍콩 주민들 중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독재를 피해서 망명한 중국인들도 있고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중국 본토가 민주화되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며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추모하는 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홍콩이 중화민국의 통치 하에 들어가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이들은 당연히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나 그 주체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일 뿐이다. 자세한 설명은 홍콩-대만 관계를 참고. 중국이 공산화되자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을 피해 홍콩으로 온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기성세대에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홍콩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중국의 민주화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중국의 민주화가 홍콩 정체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아예 홍콩을 하나의 독립된 소국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이고. 다만 대만이 민주화 되기 이전인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이 또한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대만에서 홍콩으로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대만의 민주화가 이루워져서 호응을 얻기 시작했을때는 이미 반환이 확정된 상태였다는것이 안습하다.[9]
홍콩인들은 대부분 자신을 소개할 때 "I'm Chinese(난 중국인이다)"나 "I'm from China(난 중국에서 왔다)"라는 말보다 "I'm Hongkongese(난 홍콩인이다)" 혹은 "I'm from Hong Kong(, China)"(난 (중국의) 홍콩에서 왔다)[10][11]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12], 대부분의 홍콩 주민들이 중국 대륙인으로 오해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화 참고. 이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자신을 캐나다인(Je suis canadien)보다 퀘벡인(Je suis quebecois)이라고 소개하거나, 스코틀랜드인이나 카탈루냐인, 바이에른인이 본국인 영국, 스페인, 독일보다 지역 이름으로 소개하는 경향이 더 큰 것보다 더하다. 이 쪽은 아예 행정권 행사 주체가 다르기 때문.
즉 이렇게 실제로 중앙 정부와 갈등이 큰 지방에서는 본국보다 지역 정체성을 더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만 실제로 간접 통치 지역인 홍콩은 더 특이 케이스다. 홍콩은 무려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던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철저히 독자 의식이 있었던 곳이다. 한 마디로 홍콩홍콩이다. 중국영국도 둘 다 될 수 있으나 둘 다 아닌 셈이다.
절충안으로 Hong Kong Chinese(중국 홍콩인, 중국인이면서 홍콩인, 홍콩인이면서 중국인)라는 개념도 있으나 홍콩이 국제 도시인 만큼 한족 중국인이 아닌 비한족계 홍콩인(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이 아닌 홍콩 주민들)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홍콩 시민 중에서는 8% 정도가 영국계 홍콩인과 인도인, 한국인, 조선족, 일본인 등 비한족계 홍콩인이다.
특히 무려 5%나 차지하는, 비한족 중 과반을 집어먹는 영국계 백인이 가장 메이저한 소수 민족 집단이다. 이들의 이주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식민지 때는 지도층이기도 했고 지금도 경찰 간부 등이 백인인 경우도 있다. 필리핀 이주민도 1% 정도이고 일본계 이주민도 2% 정도이니 생각보단 비한족계 이주민들이 있는 편. 그래서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은 다민족 팀을 표방한다. 홍콩이 중국어가 아닌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이유가 단순히 영국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현실적으로 외국인이 많이 공존하는 곳이라 국제적으로 흔히 통용되는 영어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4. 시민의식, 위생 관념 차이




미국인이 비교한 홍콩과 중국 본토
중국 본토인홍콩인들의 격차는 무시못할 수준인데, 시민의식 특히 공중도덕이나 위생 관념은 크게 차이가 난다. 중국 본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홍콩인과 중국 본토인을 직접 보면 바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
도시철도 안에서 담배를 핀다거나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는 행위 등 홍콩에 온 중국본토인들의 무개념한 행동 때문에 홍콩 사람들 뿐 아니라 대만 사람들도 '''대륙인들은 왜 저렇게 무식하냐?''' 하면서 멸시할 정도. 참고로 홍콩에서 감기에 걸렸는데 마스크를 안쓰고 다니거나 공공장소에서 시원하게 재채기를 해버리면 미개인 취급을 받는다.
홍콩과 가장 가까운 본토의 도시가 선전시인데, 선전 또한 경제특구에다 중국 내 1인당 소득이 홍콩, 마카오 다음으로 높은, 나름대로 잘 사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홍콩과의 이런저런 수준차이를 무시못할 수준. 이럴진대 하물며 다른 지역과의 격차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 주민들이라면 그나마 양반인 수준이고 내륙 시골로 들어가면 격차가 더 커진다.
홍콩 도심 지하철에서 발생한 중국대륙인 여행객과 홍콩인의 말다툼이 원인이 되어 베이징대학 교수란 작자가 홍콩인들을 개(犬)라고 비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이 문제는 홍콩인이 까탈스러운 게 아니라 지하철에서 음식물을 먹는 것은 웬만한 나라에서는 지양해야 비상식적 행위로 여겨진다. 물론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저 베이징대학이라는 곳은 일단 명목상의 세계 대학 순위에서 27위에 오른 중국 최고의 명문대다.#[13] 그런데 나라 최고 대학의 교수라는 작자가 엄연히 중국 관광객 쪽에 과가 있음에도 도리어 홍콩인을 개라고 비하한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다.
“지하철에서 음식을…본토인스럽다” 홍콩시민-중국여행객 ‘문명인’ 논쟁
베이징대 교수, 홍콩인 '개'로 비하발언 파문

4.5. 홍콩의 대중 감정 악화



중국 공산당의 홍콩 정치 간섭이 심화되고, 본토인이 대거 홍콩으로 밀려들면서 일자리를 뺏기고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올라버려서 홍콩인들의 본토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그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서민층, 청년층의 반 본토 정서가 심해지고 있다.
홍콩의 작가나 언론인들의 일부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들은 중국 대륙으로 여행갔다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가 연행해서 잡혀간 것이었다. 이들이 중국 대륙에 수감되어 있음이 확인되어서 중국 공산당이 배후라는 소문이 퍼져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홍콩인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데 예전에는 중국 공산당이 일국양제를 준수하여 홍콩에서 중국 공산당을 비판해도 구속, 감금하지 않았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대륙 내에서처럼 공산당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땅이 좁은 홍콩의 특성 상 본토로의 월경이 어떤 식으로든 불가피해, 보는 눈이 많은 홍콩 내가 아닌 중국 대륙에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국경 등에서 몰래 잡아가 버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이 대륙에서 석방되어 홍콩으로 귀환한 출판업자 처벌 경고로 논란을 빚고 있다. #
이에 대해 중국 공산당은 홍콩에는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 하의 경제 자유를 부여한 것 뿐이지 민주주의나 자치를 허용한 건 아니라며 기본법에 대해 이것저것 덧붙이며 홍콩 통제를 강화하는 반응을 보인다.
중국 대륙의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 우칸 촌에서 당국, 주민간의 대립을 취재하던 홍콩 언론인이 불법적으로 구금, 연행되자 홍콩에서 우칸 촌 주민들을 지지하고 기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었다. #
2016년 10월 태국으로 출국했던 홍콩 우산 시위의 주동자 조슈아 웡이 태국 방콕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밤새 억류되었다가 입국 거절을 통보받고 홍콩으로 돌아갔다. 태국 학생운동가들의 초청을 받아 방문하려던 것이었는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외교당국이 태국에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물론 태국도 현재 군부가 지배하고 있는 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과 태국 양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중국 공산당이 국제사회 감시가 덜 한 제3국행이나 본토행에 있어서 홍콩 독립운동가들이나 중화민국 독립운동가들,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이를 극구 부인하며 주권국가 태국의 결정에 불과하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는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에 대해서 공개 비판을 해 홍콩에 대한 통제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물론 이는 홍콩의 실정에 맞지 않는 기존의 억압 일변도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포함된다. 홍콩 정부가 홍콩인들을 최대한 달래되 홍콩 독립운동에 대해 만큼은 경찰력 동원 등으로 좀 더 강경책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뜻.
사실 여기서는 일국양제라고는 해도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 지속이라는 것은 특별행정구역 및 별도 관세구역으로서 철저히 홍콩의 '''주권'''을 '''통제'''하는 것이 전제조건이고 홍콩의 '''독립을 전제로 하지 않기에''' 강한 대응이 가능하다. 그래서 중국은 일국양제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홍콩에 대한 주권은 계속해서 철저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홍콩 독립 주장 자체가 2015년 이후에 갑자기 튀어나온 주장이며 기존 민주파는 홍콩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함 없는 중국의 일부로 대륙과 홍콩, 마카오, 중화민국은 중화 가족'''이라는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막상 중국 공산당은 홍콩 민주파의 요구는 대개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던 것.
2016년 총선거로 당선된 독립성향의 입법위원이 선서 중에 중국을 지나(支那)라는 비칭에다가 쌍욕을 섞어 언급하여(people's re-f**king of Chee-na) 홍콩 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이에 중국 공산당에서 홍콩 기본법에 대한 재해석을 시사하는 의견이 나온 상태이다. 민주파 성향의 홍콩인들은 중앙정부의 기본법 재해석이 안 그래도 껍데기만 있고 위태로운 일국양제가 더 훼손되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고, 친설립파 홍콩인들도 중앙정부의 개입에 부정적인 의견을 도출했다. 홍콩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의원들 박탈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1만 3천명이 입법부의 3권 분립을 보장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 친중국파 4만명도 맞불시위를 하였다. #
중국 공산당이 홍콩 민주파에 대해서 본토 방문 제한을 완화시키기로 했다. 이에 대해서 홍콩의 민주주의나 항인치항 등의 현실을 인정해서 홍콩 독립운동을 고립시키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그리고 실제로 중국 국민당을 지지하는 범람연맹 등 기존 민주파가 홍콩 독립에 공식 반대하면서 사실 상 소수 극우의 주장 정도로 고립되는 게 독립파이다.
참고로 기존 민주파의 입장은 홍콩의 '''독자성'''은 유지하되 철저히 '''중국의 일부'''가 되어 중화 문명을 서양 문명과 혼합시키고 발전하잔 입장이다.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14]가 앞으로 홍콩 대표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 맹세를 요구키로 했다.# 그리고 주권에 대해서만은 양보가 없어서 2017년 1월 1일에도 홍콩 독립에 대한 경고를 하였다.# 2017년 4월 29일에 중국 공산당의 왕전민 법률부장은 홍콩은 일국이 양제보다 우선이라며 독립 움직임을 보이면 홍콩특별행정구에 대해 자치권을 제한하겠다고 경고했다. 사석인 강연회이긴 하지만 홍콩 독립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크게 우려하는 걸로 보이며 당연한 말이지만 홍콩 독립파는 물론 민주파도 실질적인 자치의 폐지 언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아 방문하였지만,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독립 움직임은 극단주의자 정도 취급을 받으며 홍콩 대중에게 그렇게 와닿지도 않고 맘만 먹으면 기본법 위반으로 경찰이 때려잡아도 되기 때문에 결국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고 있으며 차라리 진정한 민주주의와 50년 이후에도 현 체제 즉 특별행정구를 홍콩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항인치항 원칙이 불변할 것을 요구하는 항인치항 보장 요구만이 있을 뿐이다. 우산혁명 주역은 조슈아 웡은 시 주석의 방문날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 후 훈방되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은 일국양제의 지속을 선언하며 홍콩 독립 움직임을 억누를 것을 분명히 했다. #
한편으로는 같은 특별행정구로 홍콩처럼 사실 상 자치를 하는 마카오의 일국양제 및 자치가 성공했다며 지속할 것이라고 언급해 홍콩 독립파를 우회적으로 깠다. 말그대로 홍콩의 정권 교체 시기에 집중화력으로 독립파의 고사를 꽤하는 셈이며 실제로 독립 움직임은 정치세력을 잃고 나서 쏙 들어가고 있다.
참고로 독립 단체들은 엄연히 '''극우파'''로서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며 외국인들 및 외국계 기업들의 입장에선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훨씬 낫다. 어찌 보면 중국 공산당의 계속되는 엄포는 어차피 독립운동이 저절로 놔두면 고사한단 사실을 알고서 일부러 그러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과격한 수사적인 표현도 있다.
그 외 표현의 자유 문제도 있다. 일단 홍콩의 언론들도 중국 자본의 홍콩 매체 인수가 점차 가시화하면서 중국 정부가 홍콩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인구규모에 비해 신문사들이 난립하여 규모가 영세하고 경쟁이 치열하기에 신문사들의 재정형편이 안 좋은것을 이용한 것이다.''' 즉, 여러 언론재벌들이나 기업들이 이용했던 방법을 응용해서 시장적인 방법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인데, 중국 자본 소유주들이 의도적으로 중국 대륙의 문제점들을 보도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15] 그리고 중국 드라마 중에서 대륙이 아닌 중화민국/홍콩 작품들도 중국 시장을 위해 광전총국의 눈치를 봐야 하며 이를 거부하면 거리낌 없이 수입 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최근에는 중국 유커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중국 유커들은 홍콩에서 민폐로 악명높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관광객 수와 어마어마한 구매량으로 인해 큰 손으로 역할도 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침체된 홍콩 경제를 살려준 것도 유커들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한국, 중화민국,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 중국과 갈등을 빚는 곳들에 대해 유커들의 방문을 자제시키는 습관이 있는데 일종의 경제 보복으로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외교 영향#s-2을 참조하듯 2016년엔 한국과 싱가포르 등에도 가한 바 있고 현재 웃기게도 북한에도 가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은 홍콩의 지위가 원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것이지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완전한 자치나 완전한 민주주의를 허용한 적은 없고 단지 항인치항이니 영국령 당시 정치, 경제 체제 유지이니 하는 애매한 말을 쓸 뿐이다. 그리고 영국령 홍콩의 정치 시스템도 오랜기간 동안 민주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은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 하의 경제특구보다는 별도 정부인 자본주의 체제의 특별행정구역이 여럿 있는 게 낫다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특별행정구역에 굳이 완전한 자치나 완전 민주주의를 허용해야 할 의무는 없고 여러 사정 상 홍콩 및 마카오에서 이전에 있었던 민주주의적 요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이는 특별행정구/일국양제타이완 섬에 있는 중화민국과의 통일을 염두해 둔 것이기 때문이다.[16] 반대로 민주주의나 자치 등을 확실히 원하는 홍콩인들은 당연히 중국 공산당이 반감이 클 수 밖에 없다. 비현실적인 독립운동의 대안으로 홍콩의 명칭에 특별행정'''자치'''구를 넣는 식 등으로 자치권을 달라는 자치 운동들도 있고 좀 더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홍콩 자체는 중국과 서방,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의 양안 간의 중재지로서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으로 미국중국, 혹은 양안 간 전쟁이 날 경우 평화협정을 이 곳에서 맺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까지 있다. 홍콩 경제가 계속 튼실한 이유도 바로 한국이나 대만, 터키, 그리스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다.[17]
2017년 7월 25일에 홍콩 당국이 홍콩내 대륙행 고속철도역의 사전 입국심사 CIQ 구역에서 본토법을 적용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일국양제를 위반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 하지만 홍콩 정부는 사전 입국심사 구역은 임대해 준게 아니라 애초에 홍콩 특별행정구 밖으로 친다고 답하면서 이를 일축했다.[18] 사실 사전 입국심사 구역의 경우 원칙적으로 그 나라 땅으로 간주하는 게 맞다. 대륙과 홍콩의 갈등이 극심해 이러한 부분까지 논란이 될 뿐.[19] 그리고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 추모제를 보도한 홍콩 방송사의 중국 지부에 대해서 지사를 체포했다.#
게다가 홍콩 정부는 2017년 11월 1일에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에 야유를 퍼부으면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
2018년 1월 2일 전술한 것처럼 홍콩 내 고속철역에 중국 대륙법을 적용(!)하는 일지양검 정책을 중국이 실시하려고 하자 홍콩에서는 1만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 전에 말한 것처럼 임대한 것이 아니라 홍콩 특별행정구 바깥 공간으로 쳤으며 이를 근거로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변방관리국(中國邊檢)에서 공안원, 중국해관(中國海關)에서 세관원을 이 중국본토로 간주되는 중립지대에 주둔시키는데, 홍콩특별행정구 바깥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지하공간에 중국본토 관리들이 드나드는 것에 대해 치외법권 논란이 일며 홍콩시민들이 아주 불쾌히 여기고 있다.
그러와던 도중에 홍콩계 스웨덴인 출판업자가 베이징으로 가던 중에 정치적인 이유로 갑자기 끌어가던 것이다.# 그리고 2018년 1월 25일에 표준중국어를 의무화한 홍콩의 침례대학에서 표준중국어 면제시험과정에서 70%에 달하는 불합격을 둘러싸고 거센 논란이 일어났고, 학생들이 반발하면서 정학처분을 받자 홍콩내 다른 대학생들도 표준중국어 필수과목폐지를 주장했다.##
2018년 6월 4일에 홍콩의 RTHK는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서점의 70%를 사들이면서 반중서적의 반입을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8년 7월 1일에 홍콩에서는 반중시위가 열렸지만, 규모가 줄어들었다.#
참고로 최근 중국 중앙정부 및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반중시위를 억제하기보단 맞불시위를 조장해 이를 견제하고 있다. 사실 대륙과 달리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홍콩은 이런식으로 중국 정부가 싫어하는 주장[20]을 일부러 하게 놔두고 반대되는 주장, 즉 중국 정부를 쉴드치는 주장을 나란히 옆에 걸어놓고 외국인에게 이러이러한데 우리가 옳다는 식으로 홍보를 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파룬궁이 시위를 벌이면 반 파룬궁 어용단체가 맞불시위를 하는 식이다.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중국 내 외국인 진입을 억제하기 위한 일종의 게토 역할을 하는 곳이 홍콩인지라 이게 꽤 먹힌다. 그리고 중국의 홍콩통제가 점점 심해지면서 홍콩인들중에는 홍콩을 떠나길 원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는 홍콩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사람이 독일에 망명하기도 했다.#
2019년 여름부터 중국 국가 의용군 행진곡 모독시 벌금형으로 집행하는 법안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또, 홍콩과 중국이 ‘범인 인도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홍콩과 중국이 범인 인도 협정을 맺으면 중국이 요구하는 범법자를 홍콩은 중국으로 인도해야 한다.# 특히, 반중 인사 탄압도구로 쓸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우려해서 시위도 격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산 시위 이후 최대 규모 시위를 벌었다.# 시위대의 규모는 점점 증가하여 100만명까지 증가하였으며, 우산 시위를 넘어 홍콩 반환 후 최대 인원을 기록하였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참고.

5. 관련 문서


[1] 한마디로 '''중국 국적의 홍콩 영주권자'''이다. 원래부터 홍콩에 거주한 홍콩 원주민과 국공내전 및 중국 대륙의 공산화 이후 이주한 중국 대륙인의 두 부류가 있다. 둘 다 홍콩 영주권이 있으면 홍콩 주민으로 인정받는다.[2] 중국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홍콩 바깥, 즉 해외에서는 홍콩이나 중국 인민으로 대우받지 않고 여권 소지국인 본국의 국민으로 대우받는다.[3] 외국 국적의 홍콩 영주권자는 홍콩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으며, 3년 이상 홍콩에 주소가 없고 홍콩에 방문하지 않을 시에는 영주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영주권이 취소된다는 점을 빼고는 중국계 홍콩 시민과 거의 동등하게 대우받는다. 홍콩 내부에서 공무원이나 정치인으로 일할 수도 있다.[4] 2년 뒤 마카오에서도 비슷한 반환식을 실시하였다.[5] 이 사건에 영향을 받아 작품이 폭력적인 성향을 띄게 된 감독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장철.[6] 심지어 타이완 섬의 부속도서인 펑후 열도나 오키나와의 최남단에도 홍콩사람들이 건너가 뉴 홍콩을 만든단 예측도 있기도 했다. , 사이판, 팔라우등도 마찬가지.[7] 마오쩌둥이 홍콩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홍콩을 중국과 서방세계를 잊는 주요 교역항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8] 우산 혁명 당시에도 보도 통제가 있긴 했지만 본토에서도 알 사람은 다 알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륙 인민들은 민주주의를 대놓고 요구하지는 못 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최근에는 2015년 이후 경제난 등으로 공산당의 헤게모니가 어느 정도 약화되어 예전처럼 억압 일변도는 아니고 서서히 각이 풀리고 있다.[9] 참고로 대만이 민주화 된 시기는 한국과 비슷한 1980년대 후반의 일이며, 민주화 작업이 완료된것은 1996년도의 일인데 홍콩으로 반환이 확정난 것은 1983년도의 일이다.[10] 대부분 ', China'는 안 붙이는 편이다.[11] 상하이선전 등 본토의 타 지역보다 잘 사는 지역에서도 지역 정체성을 좀 더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12] 마카오인들도 자신들을 대륙인과 동일시하는 것을 기분 나빠하고 꼭 '중국계 마카오인' 등으로 마카오를 강조한다. 마카오가 홍콩보단 대륙에 우호적인 듯하지만 실은 그저 돈을 써주니 좋아하는 척할 뿐이다.[13] 한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가 74위다.[14] 한국 국회에 해당된다.[15] 홍콩 자체적으로의 문제는 없지만 문제는 중국 시장이다. 홍콩은 내수라는 개념이 희박해 사실상 중국 본토를 내수시장처럼 여기고 있으며 이 때문에 광전총국 등의 눈치를 본다.[16] 중국 공산당은 중화민국과의 통일 후 들어설 타이완 특별행정구에 본토 출신 관료들을 행정장관 등으로 보내지 않고 기존의 정부 인사들을 그대로 쓰고, '''중화민국군'''도 그대로 유지되고 인민해방군이 주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어찌 보면 홍콩 및 마카오는 시범 기간 중이다.[17] 한국은 북한, 대만은 중국본토의 존재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워왔다. 한반도는 남북/북미정상회담으로 비록 비핵화 협상이 더디고는 있지만 어쨌든 긴장완화 단계로 들어서며 실질적으로 종전선언이 논의되는 등 이제 겨우 냉전이 끝나가고 있으나 대만해협은 현재진행형이다. 민진당 등 범록연맹이 집권 시 중국이 얼마든지 대만을 밀어버릴 수 있다. 터키그리스는 불량국가로 소문난 이란, 전쟁터인 시리아이라크, 그리고 옛 힘을 되찾으며 중국과 함께 미국을 위협하는 초강대국으로 다시 등장하는 러시아 사이에 낀 샌드위치이며, 터키와 그리스 양국 정부가 친러 정책을 편다고는 하지만 에르도안은 대미관계 악화 때문에 유럽에도 손을 뻗치기하고 있어 러시아가 반발해 러-터키 양국관계가 다시 악화될 여지가 있다. 2016년에는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앙카라에서 IS소속 전직 경찰관에게 총격으로 암살당하여 양국이 전쟁 일보직전까지도 갔고 시리아에선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군에 의해 격추당했다.[18] 임대 어쩌구는 한국언론이 덧붙이기 한거고 원문에선 언급이 안되는 내용이다. 현지 언론은 서구룡역의 사전입국심사 및 면세구역을 홍콩특별행정구 밖으로 친다고 하였다.[19] 대신에 대륙행 사전 입국심사를 통과하면 특별행정구를 벗어나 내지로 온 걸로 간주, 따로 입국 심사 없이 중국 국내선 철도역들에 자유롭게 내릴 수 있다.[20] 파룬궁 시위나 류샤오보 추모집회 혹은 대만으로 간 중국 국민당 지지집회 등 중국 본토였으면 당장 공안에 끌려가 경을 칠 사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