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특진

 

1. 개요
2. 한국군의 사례
2.1. 특진하는 경우
2.2. 전사자의 예우
2.3. 특진하기 곤란한 경우
2.4. 2계급 특진?
3. 미군의 사례
4. 소련군의 사례
5. 독일군의 사례
6. 일본군의 사례
7. 한국 경찰공무원
8. 한국 소방공무원
10. 미디어에서의 묘사


1. 개요


군대에서 뛰어난 전공을 보여주거나 큰 활약을 한 사람에게 더 큰 직책을 맡기려고 특별히 진급시켜주는 것. 전시에 큰 업적이나, 공을 쌓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포상. 혹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1][2] 같이, 크게 국가의 위상을 높여준 사람에게 준다.
군대에서 가장 많이 쓰는 용어며 계급이 존재한다면 다른 곳에서도 못 쓸 건 없다. 경찰에도 특진 제도가 존재한다.

2. 한국군의 사례


'''군인사법 제30조(전사자ㆍ순직자 및 전투유공자의 진급)'''

① 전사자와 순직자에 대하여는 제26조와 제29조에도 불구하고 진급시킬 수 있다. 다만, 장성급 장교로 진급시킬 때에는 장교진급·선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② 전투,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국가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사람은 진급 최저 복무기간에도 불구하고 장교진급·선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1계급 진급시킬 수 있다. 다만, 소령 이상으로 진급시킬 때에는 진급 최저 복무기간의 3분의 2에 도달하여야 한다.

③ 제2항 단서에 해당하는 사람이 진급 최저 복무기간의 3분의 2에 도달하기 전에 전역하거나 퇴역(退役)하는 경우에는 장교진급·선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1계급 진급시킬 수 있다.

[전문개정 2011.5.24.]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33조(병의 특별진급)'''

병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제32조에도 불구하고 특별진급시킬 수 있다.

1.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

2. 간첩을 체포한 사람

[전문개정 2012.5.1.]

보통 1계급 특진, 2계급 특진이라고 한다.

2.1. 특진하는 경우


몇 계급 특진이냐는 그 사람의 업적과, 작전 수행 내용, 보직 등등을 고려해서 정한다고 한다. 한국군을 기준으로 대간첩작전에서 적군 사살 등의 공적을 올려서 1계급 특진하는 경우가 많다. 간첩을 잡아도 특진을 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애먼 사람 족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는 에 1계급 특진을 한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위 이상의 장교들이 특진에 필요한 최저복무기간이 적혀있는 군인사법 제30조 2항도 전시에는 소용이 없는 것이 3항에서 전역과 퇴역간부에 한해서만 특진을 시켜줄 수 있다고 했지만 전시에는 의무복무기간을 다채웠으나 전쟁으로 인하여 전역하지 못한 장교나 부사관, 병들도 있을 수 있고 이들이 바로 다음날에 갑자기 전역하거나, 3개월 뒤에 갑자기 부상으로 퇴역할수도 있으므로 이에 따라 언제 전역하고 퇴역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 바로 특진을 할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밖에도 과거에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1계급 특진을 시켜줄 뿐 의무복무기간이 줄어든 적은 '''절대''' 없었다. 그러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부터는 곧바로 특례로 보충역에 편입시켜 주기로 했다.
그 밖에도 필요와 수요에 의해 특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군 훈련소 조교들 중에 이등병이 들어올 경우 이등병이 훈련병을 가르친다고 깔볼까봐 바로 일등병으로 진급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전시에 장교부사관들이 모자랄 경우 남아있는 병력 중에서 뛰어난 사람을 진급시켜서 역할을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로 한국전쟁이 끝날 때 쯤에는 20대 중령, 대령, 30대 장군, 제독들도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허나 이들은 보통 전후 강등이나 너무 빨리 진급한 나머지 최종계급을 정년이나 연금지급 복무기간 이전에 달아버려 기반 없이 전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열악함이 이루 말할 수 없던 그 당시 국군이기에 중장[3]으로 전역해도 별 볼일 없는 경우가 있었고 급기야 생활고에도 시달리곤 했다고 한다[4] 물론 현재로써는 중장의 연금액수만 봐도 생활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 뒤늦게 문제를 인식한 국방부가 사회재적응교육이나 여러 기업에 찔러주었고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육군은 창설 당시부터 이미 20,30대 장성들이 존재했다. 창군 당시엔 막 신설된 군을 지탱할 인재가 급하다 보니, 일본군 좌관급 출신 정도면 단기 양성 과정을 밟고 영관을 거쳐 불과 1~2년만에 장성급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장 육군의 역대 참모총장 명단을 보면 알 수 있다. 초대 참모총장이었던 이응준(48년 취임 당시 만 56세)과 3대 참모총장이었던 신태영(취임 당시 만 58세)을 제외하면, 한국 육군 2대 참모총장인 채병덕(당시 34세)을 비롯하여, 6.25 중의 참모총장들의 명단을 봐도 줄줄이 30대 참모총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북한의 인민군도 마찬가지여서, 6.25 당시 북한군 총참모장이었던 강건의 나이는 32세였다. 해군의 경우도 젊은 상선사관 출신들이 모여 창설한 사설 조직이 미군정의 인정을 받아 조선해안경비대를 창설 후 해군으로 바뀐 탓에, 30~40대의 제독들이 많았다. 해군참모총장이던 손원일 제독도 1909년생으로 1948년 해군 창설 당시 30대 후반이었다.

2.2. 전사자의 예우


'''한국군에서 작전 수행 중[5] 사망하면 1계급 추서다.''' 이 때문에 특진이라고 하면 '''군대에서 죽는 것을 돌려서 하는 말'''이라 하기도 한다.
사망시의 보상금은 "군인연금법 제31조(사망보상금)" 에 명시되어 있다.
  • 전사자에게는 군인 전체의 기준소득월액 평균액[6]의 10분의 577에 상당하는 금액
  • 특수직무 순직자에게는 군인 전체의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의 10분의 442에 상당하는 금액
  • 복무 중 공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하거나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 기준소득월액의 10분의 234에 상당하는 금액 [7]
2014년 기준으로 전사자의 유족에게는 약 2억 5천만 원의 사망보상금이 지급된다. 연평도 포격 사태 에서 전사한 2명의 장병은 전사자로 예우되어 약 2억원 정도의 사망보상금이 지급되었다.#관련기사
병이 작업중에 산사태 등의 자연 재해나, 작전 중 강을 건너다 익사하는 경우처럼 작전수행 중에 사망할 경우, 나라에서 보상으로 1계급 추서와 함께 1000만원이 지급된다. 작전 수행이 아니라 자살 같은 자기 과실에 의한 사망일 경우 500만원이라고 한다[8]. 군인의 목숨값이 일반 국민에 비해서 낮은 것은 헌법(29조 2항)에 유족연금 등 외에는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도록 했기 때문. 박정희 정권때 월남전 파병으로 늘어나는 사상자로 인한 보상금이 국가재정을 압박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군인 등의 이중보상 금지규정을 골자로 한 국가배상법을 재정했지만, 대법원에서 국가배상법이 위헌이라고 판결내버리자[9] 이번에는 10월 유신을 통해 해당 판결을 한 대법관들을 전부 잘라버리고, 이중보상 금지규정을 아예 헌법에 박아버렸고 두번의 개헌에도 남아있다.[10]
참고로, 저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금액이다. 병이 사망할 경우 해당 사단의 모든 간부(부사관, 장교 모두 포함)에게 반강제적으로 부조금을 걷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이상의 적지 않은 금액이 모인다.[11]
징병제에다가 병들에 대한 진급심사가 가라에 가까운 한국군에서는 전사자의 계급 특진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는 편이다. 병장이라도 복무중에 재수없이 사고 일어나서 죽어서 단다는 계급이 5+16주만에 찍혀 나오는 하사[12]이니. 상병 이하는 말할 필요가 없다.
안중근의 경우 조선시대 사람이지만 1계급 특진하려고 추진하는 이유가 이 현행법을 근거로 하여 독립운동가에 대해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대한의군 참모 중장이라는 것을 들어 안중근 장군이라 부르고 있다.

2.3. 특진하기 곤란한 경우


병장에서 특진을 하면 부사관하사가 된다. 이 경우 관련 규정에 의해 '지원에 의하지 아니하고 임용된 하사'로 간주한다. 그래서 본인이 장기복무를 원하지 않을 경우 복무기간이나 예비군 면에서는 병사만큼만 채우면 된다. 부사관은 예비군이 40세까지 편성되고 병사보다 복무기간도 더 길지만, 자원에 의하지 아니한 하사는 원래의 병 복무기간에 해당하는 날짜만 채우면 전역할 수 있다. 예비군 역시 병과 동일하게 전역 후 6년까지만 훈련이 부과되며,[13] 8년까지만 편성되고 이후 민방위로 전환된다.
원사는 특진하면 준위가 되는데, 부사관과 준사관의 신분 차이는 있지만 준위는 명실상부한 원사의 상급자로 여겨지고 있으므로 큰 문제는 없다. 보통 준사관은 짬이 찬 부사관 출신이 대부분이기 때문.
준위는 특진해야 할 상황에서 소위로의 특진을 거부할 수 있다. 이는 국군에서 사관의 양성 과정이 준사관·부사관·병의 그것과 분리되었다는 것에서 기인하는데, 준위는 '''형식적'''으로는 소위보다 낮지만 '''엄청나게 되기 힘든''' 만큼 짬이나 실질적인 대우는 소위보다 '''넘사벽'''으로 높다.[14] 한나라당에서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구조 작업 도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에 대해서 절차상 1계급 특진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유족들이 특진을 사양해서 일단락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도 많았다. 과거에는 이런 특진을 수용했다. 1949년 육탄10용사 중 서부덕 이등상사[15]는 소위 계급이 추서되었다. 1970년대 이전에는 부사관, 준사관의 위상이 지금에 비해 많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고 계급인 대장은 순직해도 그딴 거 없다. 군인사법 상 더 윗계급이 하나 있긴 있는데, 이건 명목 상으로도 수여된 적이 없는 우주 저 멀리의 계급이라 순직 정도(?)로 수여하기는 왠지 부담되기 때문. 실제로 1994년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조근해 장군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순직했을 때, 함께 순직한 조종사·전속부관·승무원 등은 모두 1계급 특진을 받았으나 조근해 장군 본인만은 원수로 추서되지 않고 대장 계급 그대로 장례를 치렀다.

2.4. 2계급 특진?


1계급 특진(혹은 추서)과는 달리 2계급 특진은 산 사람한테는 거의 하지 않고, 엄청난 공을 세우고 전사한 사람에게나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살아서 2계급 특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춘천-홍천 전투에서 적 전차 10대를 육탄으로 격파하고 생환한 육탄 11용사 중, 조달진 일병을 포함한 3명이 살아서 2계급 특진을 했다.

3. 미군의 사례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병사/수병으로 시작해서 장교로 임관한 뒤, 영관급 장교까지 진급한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병력이 적고 기술군의 성격이 강한 육군(나중에 공군으로 독립)/해군/해병 항공대 조종사 등에서 이런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군의 경우 전시에 벌어지는 특진에 매우 관대하고 체계적인데[16], 미군에만 있는 특이한 전시 진급과 직책 진급이 있다. 전시라는 상황 하에서 고속 승진이 가능하지만[19] 원래 계급도 따로 기록되어서 급여는 원래 계급 기준으로 지급되며, 전쟁이 끝나면 본 계급으로 환원된다. 물론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전쟁시 진급된 것이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기도 하다.
직책 진급의 경우 군 내의 중요한 직책에 서열상으로 낮은 직위의 군인을 임명하게 되면, 직책은 높은데 계급이 낮아서 명령체제가 뒤흔들릴 위험성이 있으므로 해당 직위에 있을 때만 한정으로 높은 계급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해당 직책에서 해임되면 원래 계급으로 돌아간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인공 격인 리처드 윈터스가 중위대위소령으로 불과 2년만에 진급했는데, 상급자들이 죽거나 직위 이동에 전공이 겹쳐서 진급이 빨랐다. 아이젠하워 대장은 원래 계급이 '''준장'''이었는데, 전시 진급으로 초월 진급한 것이다. 상기에 나와있는대로 급여가 지급되었기에, 결국 '''준장 월급을 받는 대장'''이 되었다(…).[20]태평양 함대 사령관, 중부태평양 해역군 사령관을 역임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소장에서 중장 계급을 건너뛰어 진주만 공습 이후의 미 태평양 전역을 지휘하게 된다. 진주만에 대한 앙갚음으로 1942년 일본 본토 공습을 단행하고 귀환한 제임스 두리틀 중령은 준장으로 2계급 특진. 전설적인 영화배우 제임스 스튜어트는 1941년 3월에 조종 특기 사병으로 입대, 1945년 '''대령''' 계급으로 종전을 맞이하여 1959년 7월 23일 미 예비공군(AFRC) 준장으로 진급했다.
2차 대전 이후, 베트남전 때의 그린베레 대원 중에는 어느 전설적인 상사가 역사에 남을 활약을 하고서[21] 파월 미군 사령관과 만난 자리에서 대화 몇 번에 그 자리에서 대위로 진급(!)하여 아예 자기 부대를 지휘하게 된 경우도 있다.
그 반대로, '''전사자에 대한 특진'''에는 매우 인색하다. 영웅적인 희생이라도 의회 명예 훈장에서, 서훈을 추서받은 장병들이 세운 무공에 대해서 훈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명예 훈장을 비꼬는 말이 바로 '''죽은 영웅들을 위한 훈장.''' 살아서 받는 사람들도 많지만, 명예 훈장을 받을 상황이라는게 일개 보병한테는 사실상 '''죽음과 가까울 만큼 위험한''' 수준이고 실제로도 산 사람보다는 전사한 사람에게 주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군은 준위에서 소위로 진급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군의 경우 소위 정도면 대한민국으로 따졌을 때 행정고시급이기 때문이다. 미군의 사관학교는 장성급 장교, 상원의원, 미국 대통령 등 에게 추천서를 받아야 하고 이걸 따내기 위해 쓰는 에세이는 어렵다. 비사관학교의 경우는 ROTC는 원칙적으로 JROTC를 거쳐야 하고 이러면 훈련기간이 최소 10년이 된다. 게다가 상위 5%만 현역으로 배치하기 때문에 미군 ROTC 출신 현역 장교의 숫자는 훈련인원에 비해 극소수다. OCS/OTS의 경우는 지잡대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하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미군이 괜히 대학 출신 사병에게 처음부터 Private가 아닌 Corporal을 주는 게 아니다. 따라서 미군 장교는 사병에서 지원해서 계급장을 바꿔다는 GTG의 비율이 제일 높은데 대한민국의 학군사관보다도 더 비율이 높다.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니고 고과성적으로 걸러진다. 미군 사병이 괜히 Sergeant를 넘겨야 GTG를 지원하는 게 아니다. 고과성적을 채울 때까지 사병으로 복무하느라 그런 것이다.
군복무를 엄청 오래해서 거기까지 진급하거나 행정고시같은 시험에 합격해야 장교가 되는 것이 미군이다. 그만큼 장교되기가 어렵다. 심지어 미군은 Green To Gold라고 해서 상사 이상이더라도 만 40세 이하일 경우 장성급 장교와의 면접과 회견을 한 뒤 고과성적을 검토해서 계급장을 소위로 바꿔서 달아주는 정식 제도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게 진급한 소위는 대한민국 국군의 소위와는 달리 부사관 시절의 호봉이 모두 인정된다.

4. 소련군의 사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비행을 떠나면서 공군 상위에서 소령으로 2계급 특진되었다. 사실 이 경우는 4계급 특진을 시켜줘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게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탐사를 한 업적'''은 어지간한 군공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돌아온 뒤 한 번 더 2계급 특진되어,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대령에 진급했다. 이후 훈련 중 사고로 순직해 1계급 추서되어, 최종 계급 준장이 된다.
Ak소총의 개발자 칼라시니코프도 하사에서 중장으로 명예진급한 케이스이다.

5. 독일군의 사례


2차 대전 당시의 나치 집권기 독일국방군에서도 전시 진급이 매우 빈번했으나, 직책에 따르는 계급을 대부분 한시적으로 부여한 미군과는 약간 달랐다. 즉 병이나 부사관, 초급장교의 경우는 전공에 따라 부여받은 계급에 걸맞는 직책을 맡기고, 장관급 간부가 특진하는 것은 특정 직책의 적임자로 선임되었으나 계급이 낮은 경우였다. 물론 전사하거나 순직한 후 계급을 추서받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사례는 다음과 같다.
'''발터 루바르트''': 프랑스 전역 당시 제10기갑사단 공병대 소속으로 열한 명의 특공조를 지휘하여 마스 강변의 프랑스군 진지를 점령한 후 중사에서 소위로 특진
'''후고 슈페를''', '''알베르트 케셀링''': 프랑스 전역 종결 후 아돌프 히틀러가 주관한 승전 행사장에서 항공대장원수로 2계급 특진
'''쿠르트 차이츨러''': 육군 참모총장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의 경질 이후 소장에서 보병대장으로 2계급 특진
'''카를 되니츠''': 아돌프 히틀러와의 마찰 후 사임한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원수의 후임으로 대장에서 상급대장을 건너뛰어 원수로 2계급 특진
'''오토 에른스트 레머''':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당시 그로스도이칠란트 수도경비대대장으로서 거사 가담자들을 체포하고, 그 공으로 소령에서 대령으로 2계급 특진, 이듬해 1월에는 장군이 되어 베를린 방어전에 참여
'''발터 폰 휘너스도르프''': 제4기갑군 사령관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 밑에서 제6기갑사단장으로 복무하던 중 소련군 저격수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서 사망, 소장에서 중장으로 사후 1계급 추서
'''하인츠 브란트''':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당시 동프로이센의 총통 지휘본부에서 회의 참석 도중 폭발에 의해 치명상, 이튿날 사망. 대령에서 소장으로 1계급 특진.

6. 일본군의 사례


미군과는 정반대로 '''전사자가 아니면 진급 대상이 못 되는'''사례도 나오는데, 그 대표적인 군대가 바로 '''일본군이었다!'''
일본군은 경직된 인사로 특진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대공의 사무라이' 라는 자서전으로도 유명한 에이스인 사카이 사부로 병조장(해군 준위)도 상관들이 번번히 '이 친구는 매우 훌륭한 인재니 장교로 임관시켜 지휘관으로 써먹어야 합니다!'라고 하는데도 일본 해군 지휘부는 '''"진급은 전사자에 한해서. 예외따윈 없다."'''라고 일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종전 1개월 전) 간신히 소위로 특진했는데, 그마저도 일본군 전체에서 사카이 사부로를 포함해서 이렇게 진급한 사람이 딱 두 명뿐이었다고 한다.[22] 심지어 본인도 "바라지도 않았고 생각도 못했는데 장교로 임관됐다. '''믿을 수가 없었다.'''"라고 회고할 정도니 이건 뭐….그리고 사카이는 종전을 앞두고 중위까지 진급했다.
비단 진급 및 신분전환뿐 아니라, 일본군에서 훈장에 있어서의 차별은 더 심했다. 해군 하사관 에이스가 공중전에서 큰 전공을 세우자 상관인 제독 한 명이 훈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지휘부에서 "하사관에게 훈장이 웬말이냐?"라며 훈장 수여를 인정하지 않자, 열받은(…) 제독이 대신 자신의 군도를 그 하사관에게 선물한 이야기도 사카이 사부로의 회고록에 등장한다.

7. 한국 경찰공무원


경찰에서도 특진 제도가 존재한다. 중국 불법조업 어선 나포작전에서 중국 어민이 휘두르는 흉기에 살해당한 박경조 경사 살해사건, 이청호 경장 살해사건 때 박경조 경사경위로, 이청호 경장경사로 올렸다.
전의경 중 수경이 순직하면 "명예 순경"으로 임용된다. # 병장이 순직하면 하사가 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의무소방대의 수방이 순직하면 아예 정식 소방관으로 임용시켜주고 소방사로 진급시키는 것과는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부산경찰청에서 SNS 업무를 맡은 여경 때문에 경찰청 이미지가 좋아졌다며 1계급 특진후 몇달만에 다시 1계급 특진시켜 실질적으로 2계급 특진 시킨 일이 있어 구설수에 올랐다. 다만 경찰은 군과 다르게 특진이 매우 빈번하므로 군의 특진만큼 어렵지 않다.

8. 한국 소방공무원


직무 수행 중 공적이 크거나 순직할 경우 1계급 특진이 가능하다. 그리고 소방위 이하의 계급, 즉 소방사, 소방교, 소방장, 소방위의 경우 모든 소방공무원의 귀감이 될 커다란 공을 세우고 순직한 사람에 대하여 2계급 특진까지 가능하다. 소방사시보 및 의무소방원 중 수방이 순직하면 순직 전 날에 소방관에 임용된 것으로 보고 소방사로 추서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이후 의무소방대의 특방 계급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달 일이 없게 되었다.

9. 프랑스 외인부대의 사례


1970년대 이전에는 군공을 세울 기회가 많아 특진이 가능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그런 기회가 적다.
선임원사가 상당히 많은데 선임원사의 보직이 중대장 보좌관이다. 선임원사 상태에서는 중대장 보좌관으로 계속 지내아만 하지만 소위로 진급하는 순간 '''중대장으로 취임할 자격'''이 생긴다.[23]

10. 미디어에서의 묘사


각종 미디어에서는 훈장등의 다른 것보다 군인에게 주는 포상으로 계급 특진을 시키는 일이 '''엄청나게 많다.'''
가장 간단한 이유는, 작가가 무슨 훈장이 좋은지 잘 몰라서. 물론 독자들도 모른다. 그나마 잘 알려진 훈장의 경우 해당 국가의 사정에 박식하지 않으면 어떤 종류의 훈장이 있으며, 수여대상에 따라 훈장의 종류가 달라지며, 훈장간의 서열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훈장이 가장 높은 훈장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의 명예훈장이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훈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건, 인터넷 검색 몇 번 해 보거나, 국방부나 보훈 기관에 문의하거나, 관련 서적을 구입 및 대여하는 등으로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일부 독자들은 작가들의 이러한 행태를 일종의 자료 수집 의지 부족이라 여겨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계급은 국가가 다르더라도 부르는 호칭만 약간 차이날 뿐 구조 자체가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강 어떤 구조며, 어떻게 승진하고 등의 내용을 잘 안다. 그래서 실제 역사상에서는 잘 보기 힘든 3계급 특진 이상의 계급 특진을 의외로 많이 볼 수 있기도 하다. 뭐 '''캡틴 테일러처럼 무려 14계급 특진이라는 엽기적인 일도 벌어지지만'''.
소설 은하영웅전설 에서 양 웬리엘 파실 탈출작전 의 공으로 2계급 특진하여 중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한다. 그리고 본편에서 200년 전 인물인 샴버크 준장은 대장으로 무려 3계급 승진했는데, 유혈제 아우구스트 2세를 죽인 공을 인정받아서였다. 그리고 계급이 오른 샴버크 대장이 기뻐하자 바로 폭군을 비호한 죄를 물어 처형했다.
마징가 Z에서 아수라 남작마징가 Z와 싸우다가 전사하자 닥터 헬이 특진을 시켜서 백작이라는 작위를 줬다고 한다.
일본 영화 뮤지엄[24]에서는 살인범이 자신을 쫒는 경찰을 잡아 옥상 난간끝에 걸친다음 넥타이로 붙잡고 있다가, 놓으며 ''' 2계급 특진 축하한다'''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1] 요즘은 이런 경우 보충역 예술체육요원에 편입돼서,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자기 분야에서 일정 기간 활동만 하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 것으로 인정한다.[2] 다만 이미 군 복무중인 사람이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한 경우 대상이 된다. 보충역으로 복무전환을 하더라도 계급은 오른다. 또한 의무복무가 아닌 여군이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받는다면 당연히 보충역 전환 없이 특진 대상이 될 수 있다.[3] 대장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4] 백선엽의 회고중에 저런 내용들이 있다. 백선엽 본인도 33살에 대장을 달아버려 일본군 복무기간 포함 19년(!)만에 전역했다. 물론 그는 이후 승승장구.[5] 여기에는 순수한 의미의 전투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비가 내릴 때 작업중에 산사태로 사망하는 것이 있다.[6] 군인 전체의 기준소득월액은 국방부장관이 매년 4월 30일까지 고시하여야 하며 2014년 기준 4,470,000원이다.[7] 기준소득월액이 군인 전체의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의 1천분의 1,042보다 적은 경우에는 군인 전체의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의 1천분의 1,042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준소득월액으로 보아 사망보상금을 산정한다.[8] 물론 계급 특진 따위 없다.[9] 이 때는 헌법재판소가 없었고, 대법원에서 위헌법률심사를 했다.[10] 10차 개헌 등 7공 관련 개헌을 시도할 때마다 이걸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다.[11] 물론 간부뿐만 아니라 해당 현역병과 친했던 동기나 다른 현역병들이 조의금을 모아서 주는 경우도 있다.[12] 가입소 5일+육군부사관학교 기초군사훈련 기간 16주.[13] 물론 1~6년차에 받지 않고 넘어간 훈련이 있다면 7~8년차에도 훈련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물론 관련 규정에 의해 보류처리가 된 경우라면 해당되지 않는다.[14] 부사관에서 임관한 경우 임관 시기와 짬에 따라 대위~중령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15] 현재의 중사에 해당.[16] 이것은 미군이 평시에는 군대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전시에 팽창하는 역사적 전통에 기인한다. 미국이 탄생했던 독립전쟁때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주요 전쟁때마다 군 규모를 매우 늘렸다가 전쟁이 끝나면 매우 축소한다.[17] 베트남 전의 사령관이었던 웨스트모어랜드, 에이브람스 장군이 이 기수이다.[18] 1940년 7월 경에 미국은 1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평시 징병법이 통과되어 나름 전쟁 대비를 시작했고 육군의 경우 정규군과 주방위군, 예비군을 모두 합쳐 Army of the United States라는 징집군 체제를 형성했고 이 체제는 후일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까지 이어진다. 이때부터 장병들에게 전시계급을 부여했다.[19] 어느 정도였냐면 20대 후반의 나이에 소령-중령계급과 그 직책에 보임되는 경우에 무척 흔했고 위관/영관급들중에, 특히 전쟁 전부터 복무했던 정규군은 한 계급에 진급한지 6개월이 안돼서 다음 계급으로 재진급이 되었던 경우도 흔했고 전시 군대의 기간장병으로서 고속 승진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예를 들면 웨스트포인트의 1936년 졸업생[17]의 경우 진주만 기습 무렵 대위(전시 계급)[18]였는데 이들중 상당수는 계속 승진하여 44-45년 무렵 대령(전시 계급)으로 진급했다! 이들의 연령상으로는 30대 초,중반에 달성한 것이다.[20] 단 아이젠하워 장군과 니미츠 제독은 1944년 연말에 원수로 진급했고 원수는 역사적으로 국가를 불문하고 종신계급이었기때문에 평시계급 역시 원수로 등록되어 전/평시 상관없이 의전서열과 연봉(당시 물가기준으로 1만 5천달러)은 원수의 그것으로 받게된다.[21] 이 정도 활약이면 고과성적이 엄청나게 높다.[22] 그나마 사카이 사부로 이전에 장교로 임관한 병 또한 도조 히데키의 아버지였다.[23] 똑같이 중대장이 유고가 되더라도 소위 중대장 보좌관은 경우에 따라서는(장교 소대장도 소위일 경우) 장교 소대장을 제치고 바로 중대장이 되기도 하지만 선임원사 상태의 중대장 보좌관은 장교 소대장보다 계급이 낮기 때문에 장교 소대장이 중대장으로 취임하게 되어 선임원사는 계속 중대장 보좌관으로 머물러야 한다.[24] 원작은 동명의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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