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을
1. 소개
서울에서도 민주당계 정당의 텃밭이라 일컬어지는 노원구지만 이 선거구만큼은 매번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지는데. 이는 여타 노원구 지역에 비해 중산층 거주 및 중대형 평수 아파트 비중이 높은 중계동, 하계동의 표심이 팽팽한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7~19대 국회의원 선거때와는 달리 20대,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는 현역 의원의 프리미엄과 새누리당에 실망한 중도, 보수 지지층이 여타 후보쪽으로 이탈한 데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역구 내에서 경쟁력이 있었던 권영진 전 의원이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되며 국회의원 출마가 불가능하기에 보수정당이 인물 대결에서도 밀리게 되었다.
2020년 3월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발표한 선거구획정안에 따르면 노원구는 기존 갑을병에서 노원구 을 지역을 각각 노원구 갑,병 지역이 흡수하여 신설 노원구 갑/을로 재편될 예정이었으나 그 다음날에 여야는 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을 거부하고 노원구 갑/을/병을 유지시키는 선거구 획정안 기준을 선거구획정위에 전달함에 따라 노원구의 통폐합은 백지화되었다.[1]
2. 역대 국회의원 목록
2.1. 14대 총선
현역 3선 김용채 의원이 박정희의 '혁명 동지'이자, 신민주공화당 원내총무이자 국회 건설위원장인 거물인만큼 그를 꺾기 위해 여러 인사들이 도전하였다. 민주당의 임채정 후보는 문동환, 박영숙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했던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에 13대 총선에서도 김용채 의원에 도전했으나 패했다가 다시 도전했으며, 통일국민당 홍성우 후보는 민주공화당에서 정풍 운동을 주도한 3선 의원으로 정계은퇴를 했다가 이번에는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서 공천받아 출마하였다. 진보인사인 무소속 오세철 후보도 나왔다.
개표 결과 김용채 후보가 임채정 후보를 불과 36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어 4선에 성공했으나, 재검표에서 결과가 바뀐다. 군부재자 투표의 100표 다발 하나가 잘못 집계된 것이 드러나 오히려 임채정 후보의 역전승이 선언된 것이다. 김용채는 당선 후 정무제1장관에 임명되었으나 재검표 결과 때문에 의원직 뿐만 아니라 장관직도 잃고 말았다.
2.2. 15대 총선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한 임채정 의원에 대항해 신한국당에서는 박종선 후보가 나왔다. 그는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전문성을 내세우며 힘있는 여당의 젊은 후보에게 표를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재검표 끝에 패했던 김용채 전 의원은 이번에는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는 자신이 지역구 개발에 기여했다며, 서울의 동북부에 우뚝 솟은 중심 생활도시로 가꾸겠다고 밝혔다.
통합민주당에서는 이문옥 후보가 출마했는데, 양심선언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 참공무원의 표상을 구호로 무공해 정치인이 되겠다고 지지를 당부했다. 현역 임채정 의원 역시 자신의 활발한 의정활동을 소개하고 장학로 비리사건 등 여권에 대한 공세를 폈다. 정치가 깨끗해지려면 무엇보다도 청와대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며 깨끗한 정치를 선언하였다.
임채정 후보는 33.25%의 득표로 2위인 신한국당 박종선 후보를 6.6%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다.
2.3. 16대 총선
재선 임채정 의원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지역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당내에서도 탁월한 정세판단 감각을 인정받아 집권여당의 정세분석위원장을 맡는 등 싱크탱크로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주민간담회 등 지역구 관리에도 신경을 써 와 이미지가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에 한나라당은 장두환 후보를 공천했다. 충남 연기 출신으로 정치개혁시민연합 대변인 등을 맡으면서 기성 정치권의 물갈이와 정치개혁을 줄기차게 제기해 온 힘을 바탕으로 '정치신인의 새바람'을 일으켜 보겠다고 다짐했다. 자민련은 한국토지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용채 전 장관을 대신해 민주한국당 창당발기위원이었던 박병일 전 의원이 선거구를 노원구 갑에서 노원구 을로 옮겨 출마했다. 민주국민당은 이동섭 후보가, 민주노동당은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을 지냈던 정윤광 후보가 출마했다.
임채정 의원이 장두환 후보를 4% 차이로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2.4. 17대 총선
17대 국회에서 노원구 병 지역구가 신설되면서, 월계동, 공릉동 지역은 노원구 갑, 하계동, 중계동 지역과 상계6·7동은 노원구 을, 상계6·7동을 제외한 상계동 지역은 노원구 병 선거구가 되었다. 이로 인해 현역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원은 노원구 병 지역구로 출마하게 되었고, 노원구 을 지역구의 열린우리당 후보는 우원식이 되었다. 우원식 후보는 박정희, 전두환 퇴진운동 등을 하며 구속된 경력이 있는 민주화운동 출신으로 서울시의회 의원을 거쳐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과 환경관리공단 관리 이사를 지냈다.
이에 맞서는 한나라당 후보는 권영진으로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의 정무 및 공보 보좌역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고려대 대학원 초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한나라당에서는 개혁성 있는 인물로 알려져있다. 새천년민주당은 임래규 전 산업자원부 차관이 출마했다. 31년간 공직 생활을 한 관료 출신으로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통상산업부 중소기업국장, 산업자원부 무역조사실장 등 수출과 산업 관련 요직을 두루 거쳤다. 나라경제 30년 경륜 노원에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탄핵 정국 등의 호재를 받은 우원식 후보가 접전끝에 권영진 후보를 1.9% 차이로 누르고 당선된다.
2.5. 18대 총선
현역인 통합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17대 총선에서 탄핵 정국에서도 1.9% 차이로 간신히 승리했던만큼, 18대 총선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원내로 첫 진출한 우원식 의원은 김근태 의원, 임채정 국회의장 등과 함께 활동하며, 강남북간 재정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서울시 재산세를 공동과세하는 지방세법 개정안,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육성법' 제정안 등을 주도했다. 또 국회 환노위 여당 간사를 맡아 미군부대 기름유출이나 비정규직 해소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공약으로는 재산세의 50%인 공동과세를 100%로 확대해 강남북 균형발전의 재정적 근거를 확대하고 창동 차량기지 이전의 원활한 마무리를 통해 지역의 교육.생활환경 개선 등을 내걸었다.
17대 총선에서 패했던 한나라당의 권영진 후보는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장 후보시절 비서실장을 맡아 당선을 돕고,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면서 서울시 재산세 공동과세제 도입, 노원구 국제화교육특구 지정 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의 측근으로,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의 호재를 누리게 되었다. 중앙정부의 교육특구 재정지원 실현,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일자리 공급,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자율교육 실현, 창동차량기지 이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88만원 세대 희망본부' 본부장인 민주노동당 조현실 후보도 출마해, 등록금 문제와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해결, 그리고 쓰레기 소각장 이전과 동부간선도로 정체 문제 해결을 대표적인 지역 공약으로 내세웠다.
권영진[20] 후보가 5.8% 차이로 우원식 현역 의원을 꺾고 원내에 진출한다.
2.6. 19대 총선
새누리당 권영진 의원과 민주통합당 우원식 전 의원의 3번째 매치가 성사되었다. 스코어 1:1인 만큼 중요한 승부가 아닐 수 없었다. 권영진 후보는 "우원식 후보가 17대 국회에서 동부간선도로 확장 문제와 창동차량사업소 이전 등에 대해 말만 했지 지키지 못했지만, 저는 성과를 이뤄냈다"며 "서울시 부시장시절부터 국회의원 4년 동안 열심히 일한 것을 주민들이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아직 쇄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새누리당이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해서 완전히 다른 정치세력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원식 후보는 권영진 후보의 주장에 반대하며, "17대 국회에 제가 있는 동안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한 법률 등이 통과됐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는 지지부진했다. 주민들의 실망이 크다"며 "제가 19대 국회에 들어가 이를 제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권영진 후보가 19대 국회에서 4대강 정비 사업, 친수구역 개발, 부자감세 등에 대해 모두 찬성을 했다, 서민경제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부자감세, 토목사업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이 크고 소상공인, 자영업자, 서민경제가 완전히 죽었다고 주장했다.
3번째 매치 역시 박빙의 승부 끝에 우원식 후보가 1.8% 차이로 제치고 승리했다.
2.7. 18대 대선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동별로 봤을 때도 문재인 후보가 모든 동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8. 20대 총선
현역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단수추천으로 공천되어 3선에 도전한다.
19대 총선에서 패한 권영진 전 의원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되어서 경선 지역으로 분류되었고, 대신 새누리당은 영입인재 1호였던 6인 중 한 명인 김태현 변호사와 홍범식 전 당협위원장과 경선을 실시했고, 홍범식 전 당협위원장이 경선에서 승리하여 공천되었다. [22][23]
국민의당에서는 황상모 후보를 공천하였다. 안철수 후보가 바로 옆 지역구인 노원구 병 지역에서 출마해 종종 합동유세를 하기도 했다.
선거 결과 현역 우원식 의원이 3선 고지에 올랐다. 권영진 후보를 상대로 이겼을 때는 두 번 다 2,000표 내외의 박빙싸움이었는데, 이번에는 23,000표가 넘는 여유 있는 승리를 거뒀다.
어떻게 보면 새누리당의 실책이였다. 100% 지역구민 여론조사였다지만, 여론조사 특성상 안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상 영입인재 하나 허공에 날린 셈이 되었다. 정당 지역구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사람들은 당원 밖에 없고, 당원이 영입인재라고 해도 험지에다 생판 모르는 사람 공천해서 탈탈 털리는 것 보다는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을 뽑아 안전한 쪽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셈. 거기다가 권영진이 대구시장 후보로 차출되어 당선된 이후, 사실상 노원 소외론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며, 이는 결국 새누리당의 패착으로 이어진 것이다. 애초 홍범식부터가 이 지역 위원장을 안한지가 꽤 오래 됐으니...
이번 선거에서 보수 진영은 많은 것을 잃었다. 본래 노원구 자체가 호남 인구가 많은 동네라서 험지로 분류된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냥 호남 인구가 다른 지역에도 많아서 그런 거고,[24][25] 사실 노원구는 본래는 보수 성향이 꽤 강한 곳이였다. 이 지역은 이명박 前 서울특별시장의 영향도 컸지만, 2011년 재개발 붐이 불었을 당시 노원구 재개발 사랑방에 한나라당 지지 성향이 많이 존재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부동산계에서도 유명한 얘기였다. 때문에 보수정당이 적어도 경합을 자랑한 곳이였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 비해 원적지가 호남인 사람이 많은 것일 뿐이지 보수 진영에 불리한 지역은 아니었다.[26] 따라서 강남 지역을 제외한 서울특별시 전역이 보수정당에서 이탈해가는 와중에, 이 지역을 놓친 것은 뼈아픈 일.
2.9. 21대 총선
선거 직전 노원구 선거구가 3곳에서 2곳으로 줄면서 변동이 있을 뻔 했으나, 현행 유지로 결론났다.# 명목상으로는 노원구 병이 폐지되고, 갑과 을로 조정되는 것이지만 사실상 노원구 을이 갑/병 양 끝 선거구로 합쳐지는 모양새였다.
우원식 의원이 지역구 관리를 잘 해서 그런지 아파트 지역에서도 과반이 넘는 특표율을 보이며, 62.67%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우원식 의원의 지역구 공약은 '''현 창동차량사업소 부지에 서울대학교병원을 유치'''하는 것이다. 반대로 낙선한 이동섭 의원은 '''창동차량사업소 부지에 스타필드와 게임문화공간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국가혁명배당금당 차동익 후보는 지역구 공약이 아예 없었다.[27]
2.10. 22대 총선
노원구의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인해 병 선거구와 함께 합구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만약 갑/을로 재편된다면 하계동이 거주지인 우원식 의원은 갑 선거구로 나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재선 현역인 고용진과 당내 맞대결을 해야하는 상황. 다만 그때되면 우원식의 나이가 만 67세로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어서 5선 도전에 나설지는 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8]
[1] 다만 노원구와 바로 인접해있는 별내신도시 개발 등의 영향으로 노원구의 인구가 2020년 들어서는 54만명 선을 붕괴하며 지속적인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22대 총선에서는 선거구 갑을 체제로 재편되는 형태로 통폐합될 것이 유력시된다.[2] 제 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될 당시, 지금의 노원구 지역은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 있었다.[3]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2] , 진건면, 진접면[4]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 진건면, 진접면, 별내면[5] 양주군 갑 선거구에서 현재의 양주시, 의정부시 지역과 같이 선거를 치루어 오던 별내면이 양주군 을 선거구로 변경되었다.[6] 돈암동, 종암동, 상월곡동, 하월곡동, 미아동, 장위동, 석관동, 번동, 우이동, 수유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공릉동, 하계동, 중계동, 상계동, 도봉동, 방학동[7] 1963년 1월 1일 부로, 노해면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북구의 관할로 들어가게 된다. 노해면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공릉동, 월계동, 도봉동, 방학동, 창동, 쌍문동의 9개 동으로 나뉘어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이에 따라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도 종전의 양주군 을 선거구에서 성북구 을 선거구로 조정되었다.[8] 성북구 월곡동, 장석동, 창동(현 도봉구 창동,쌍문동, '''노원구 월계동''' 지역), '''태릉동''', '''노원동''', 도봉동)(출처 http://uci.or.kr/G500:1310377-00000010318813)[9] 성북구의 인구가 증가하여 국회의원 선거구도 2개에서 3개로 분구되어, 지금의 노원구 갑 선거구에 해당하는 월계동과 공릉동은 성북구 병 선거구의 소속이 되었다.[10] 제 9대 총선 부터 제 12대 총선까지는 중선거구제를 이용하여 한 선거구 당 두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에, 성북구 선거구는 하나로 합구되어 두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11] 1973년 7월 1일부로, 미아동, 번동, 수유동, 우이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상계동, 중계동, 도봉동, 방학동, 공릉동, 하계동이 도봉구로 분구되어, 국회의원 선거구도 이에 맞게 종전의 성북구 선거구에서 도봉구 선거구로 분구되었다.[12] 1980년 8월 27일에 사직하였다.[13] 노원구 갑 선거구에 편입됬던 창동과 함께 1989년 1월 1일 도봉구 반환 이전까지 1년간 노원구 관할이었다.[14] 1988년 1월 1일 부로, 도봉구에서 노원구가 분구되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도 도봉구 선거구에서 분구되었고, 13대 총선부터 소선거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노원구는 2개의 선거구를 할당받게 된다.[15] 선거구 조정으로 하계동과 중계동이 노원구 갑으로 넘어감.[16] 선거구 조정으로 중계1·4동이 노원구 을로 넘어옴.[17] 선거구 조정으로 하계동과 중계본동·중계2·3동이 노원구 을로 복귀. 상계6·7동을 제외한 나머지 상계동은 노원구 병으로 분구.[18] 재검표결과 낙선[19] 재검표결과 당선[20] 현 대구광역시장이다.[21] 재외국민, 부재자 득표수 및 타후보 득표수 제외[22] 여기에는 공천 잡음이 있었고, 새누리당의 공천 실책 중 하나였다. 김무성이 이들을 데려온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미약한 보수정당의 젊은층 지지율을 끌어오기 위해, 김태현을 비롯해, 배승희, 최진녕, 박상헌, 변환봉, 전희경 등의 1970년대생을 영입한 것인데, 이들 중에 성남시 수정구에 공천된 변환봉을 제외하고 모두 공천에서 패배하거나, 다른 사람이 단수추천으로 공천되어 탈락했다. 전희경은 비례로 틀어 당선되었다. 훗날 김태현 변호사는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1호 영입인사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겠나. 당에서 전략적으로 데려온 사람들은 가산점이 됐든 당 차원의 인력 지원이 됐든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23] 근데 저 영입인재 조차도 비판이 있다. 저 6명 모두 당원이거나 당원만 아니였지, 사실상 새누리당 쪽 인물이였다. 배승희는 국회 비서관, 박상헌은 2008년부터 한나라당 당적이였고, 18, 19대 총선에서 공천에 두 번이나 패배했으며, 전희경도 새누리당 당원이였고, 변환봉, 최진녕, 김태현은 그 전부터 보수 우파 패널로 자주 출연했었다. 친박계 수장인 서청원 최고위원 조차 "당원이거나, 사실상 우리와 연관이 깊었던 사람들인데, 무슨 영입인재냐?"라고 비판했을 정도.[24] 노원구가 호남 출신이 서울에서 관악구 다음으로 2위이다. 호남향우회에서도 노원구에 앞으로 호남 출신이 많이 살 것이라 그랬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며, 원래부터 노원구는 영남 출신은 도봉구 못지않게 굉장히 드물게 사는 편이다.[25] 참고로 영남 출신 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곳은 서울특별시가 아닌 경기도 성남시이다. 이 곳에서 성남시장을 역임했던 이재명부터가 TK로 분류되는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이다.[26] 물론 노원구가 서울에서 가장 전출입이 많고 잠시 살다가 뜨는 지역인지라 호남 출신과 강원도 원주시 출신이 상당히 유입된 경향이 상당히 큰 것도 사실이다.[27] 당에서도 공식적으로 지역 발전에 대해서는 공약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지역 발전에 대한 공약이 없는 것이 정상적이다.[28] 취소선을 치긴 했지만 현재 국회의장을 노리는 선수가 대략 5~6선인데, 민주당 내에서 21대 국회에서 의장을 역임하거나 유력시되는 박병석(6선), 김진표(5선)를 제외한 현역 4~5선중에 당권(송영길, 이인영, 우상호, 홍영표) 또는 대권주자(이낙연)를 제외하고 국회의장에 도전할 후보군은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 다만 우원식 본인도 우선은 당권에 도전할 의사를 지속 내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