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역사

 


1. 창립 배경
2. 1990년~1994년: 아이돌 시대 이전의 SM
3. 1995년~2000년: 아이돌의 선구자 & 해외시장 개척
3.1. 외전 : 개국공신의 축출과 싸이더스의 탄생과정
4. 2004년~2012년: 거대 기획사로 성장
5. 2013~2015년: 전략 변화 그리고 최악의 2014년
6. 2016년~2017년 : Neo Culture Technology 과 세대교체의 시그널 그리고 샤이니 종현의 비극적 결별
7. 2018년부터 현재: 세대 교체와 에스파 데뷔


1. 창립 배경


SM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수, MC, 라디오 DJ로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이수만이 컴퓨터공학을 배우기 위해 1981년 미국으로 4년간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수만은 당시 29살이었고, 현역 연예인이 외국 정규대학으로 유학간 사례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미국 팝문화와 MTV에 큰 감명을 받고 연예기획자를 꿈꾸게 된다.
1985년 귀국하면서 다시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홍종화'라는 작곡가를 설득 끝에 섭외하며 앨범을 발표했으나 가수로서는 실패. 이후 이수만은 가수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연예기획사를 설립하기 위해 프로듀서로 전향한다. 그리고 인천 월미도에 헤밍웨이 카페와 방배동 카페를 차려 기획사의 사업자금을 마련한 다음 한동준김광진을 영입한다.#
여기서 이수만은 한국에 흑인음악을 도입하기로 마음먹고 바비 브라운을 참고한다. 바비 브라운은 두 명의 댄서와 삼각편대를 이루어 춤을 추는 형태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은 이수만도 3인조 그룹을 기획한다. 구체적인 구상이 끝난후 이수만은 이태원이나 여러 유명클럽에 찾아다니고, 문나이트에서 최진열[1]을 영입한다. 최진열은 이주노현진영을 이수만에게 소개하였고 고심 끝에 현진영을 자신의 제1호 가수로 발탁한다.

2. 1990년~1994년: 아이돌 시대 이전의 SM


현진영의 데뷔 준비 모습인데 작곡가 홍종화와 함께 있다 #
1989년 이수만은 송파구에서 '''SM기획을 창립'''한다. 최진열에게는 SM기획의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맡기고 홍종화에게는 작곡 및 프로듀싱을 담당하게 한다. 그리고 최진열은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는 정해익을 발탁한다. 그런 후 현진영을 데뷔시키기 위해 홍종화에게 트레이닝을 담당하게 하여 연습시키는 한편 댄스 페스티벌을 열어 구준엽강원래를 영입하여 3인조 그룹을 완성하고 "현진영과 와와"로 명명한다. ‘인순이와 리듬터치’, ‘박남정과 친구들’ 등 메인가수와 댄서명을 합친 그룹명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백댄서 개념을 넘어 쇼 프로 출연이나 잡지촬영까지 댄서와 함께하는 등 댄서와 완전히 3인조 그룹처럼 활동하는 방식은 ‘현진영과 와와’가 국내 최초였다. [2]
1990년 제1집 "New Dance"를 발표하며 현진영과 와와를 데뷔시킨다. 또한 한동준과 김광진의 1집 앨범을 발표한다. 시간이 지난 후 후속곡 '슬픈 마네킹'을 발표했는데 큰 인기를 얻어 현진영은 박남정의 라이벌로 급부상한다. 그러나 도중에 구준엽과 강원래가 군대문제로 입영하게 되자 이수만은 새로 이현도김성재를 와와2기로 발탁한다.
하지만 1991년 현진영이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하게 되면서 그 여파로 최진열, 정해익, 홍종화같은 SM직원들이 경찰에게 수사를 받아 곤욕을 치르면서 결국 최진열은 서태지의 매니저로 이직하게 된다. 이때 현진영의 무책임한 행동에 분노한 이현도는 그때부터 다른 기획사로 오디션을 보면서 가수로써 독립을 꿈꾸게 되며 2년 뒤 가수가 된 후 현진영을 디스한다.
그러던 1992년, 유영진이 군대 제대 후 가수가 되고자 여러 기획사에 여러 오디션를 봤지만 탈락의 고배를 거듭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유영진은 SM기획에 자신이 작곡한 음악 CD를 보내었고 이수만은 유영진에게 “곡이 더 있느냐”고 물어보자 유영진은 하루에 10곡씩 준비해 들려주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입사하게 된다.
1992년 4월에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자 이수만은 잊고 있던 현진영을 찾게 되고 이탁과 함께 부활을 꿈꾸던 현진영은 8월에 2집을 발표하여 “흐린 기억 속의 그대”와 후속곡 “너는 왜 (현진영 Go 진영 Go)”의 히트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2집 앨범은 유통사인 서라벌레코드의 부도로 인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1993년 성공을 확신한 이수만은 현진영의 3집 "두근두근 쿵쿵"을 발표하여 무려 40만장을 찍었지만 일주일 만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현진영은 구속(...)되었고 방송정지를 당한다. 이때의 여파로 현진영의 음반은 검찰에 압류되고 상품은 소각 처리되어 SM은 큰 손실을 보게 되었고 월미도와 방배동의 카페를 매각하여 부도위기를 넘기게 된다.
그 후 1993년에 유영진이 데뷔하고 1994년에 메이저와 J&J등이 데뷔했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회사가 나락에 빠지게 되고 메인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홍종화[3]가 회사를 떠나면서 유영진이 그 자리를 맡게된다. 한편 메이저는 대중의 반응이 좋았으나 방송국에서 이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에 제재를 가했고 단정하게 나오지 않으면 방송활동을 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하는데... 이수만이 사활을 걸고 그들을 설득해도 서연수와 임범준은 비굴하게 음악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고 결국 공중분해가 되어버린다.

3. 1995년~2000년: 아이돌의 선구자 & 해외시장 개척


남은 건 유영진과 나이가 어린 연습생 뿐. 결국 이수만은 '''회사의 모든 역량을 예전에 기획해둔 5인조 그룹에 쏟아 붓기로 한다.''' 이 때 연습생들이 문희준, 장우혁, 토니 안, 강타, 이재원으로 문희준과 강타는 1995년 유영진의 너의 착각의 무대에서 백댄서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사실 이 때 이수만이 이런 기획을 하게 된 계기는 1992년경에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내한을 하면서 한국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게 주요 계기 중 하나였는데 이수만이 예전부터 기획에 참고하던[4]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 모리스 스타가 기획한 그룹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리스 스타는 당시 어린 소년을 찾아 수년간 트레이닝을 거친 후 데뷔시켰는데, 그것이 뉴 에디션과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으로 5인조 아이돌 그룹이 주축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996년 9월 7일 이수만이 기획하고 유영진이 작곡한 '''H.O.T.가 데뷔'''하게 되고 H.O.T.가 캔디로 그야말로 빅히트를 터뜨리면서, 나락에 빠진 회사는 다시 일어서게 된다. 그 후 '''1997년 S.E.S., 1999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2000년 BoA가 연속으로 히트'''하면서 회사를 안정궤도로 올리게 된다. 1998년에 데뷔한 신화는 1집이 3만장 판매로 당시 기준으로는 기대에 못미쳐 해체 위기였으나 H.O.T.의 3집 타이틀곡과 S.E.S.의 일본 싱글곡이 될 예정이었던 'T.O.P.'라는 곡을 H.O.T.와 S.E.S.가 신화에게 양보하여 2집부터는 30만장 이상을 판매하는 안정적인 그룹이 된다. 그러나 H.O.T., 젝스키스, god, jtL 등에 밀려 줄곧 3인자의 위치를 유지하다가 2004년에 SM을 나가 독립한 후 대상을 수상하는 등 빛을 보게된다.
1998년에 H.O.T.와 S.E.S.의 앨범이 중화권에서 첫 발매되었고 S.E.S.는 일본진출도 시도하였다. 2000년, H.O.T.가 북경에서 한국가수 최초로 단독콘서트를 개최하면서 SM은 중국진출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4월, 코스닥시장에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 때 한국금융투자협회(당시 코스닥 관할은 이쪽이었다) 측에서는 SM의 상장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봤던 듯하다.기사

3.1. 외전 : 개국공신의 축출과 싸이더스의 탄생과정


회사의 대표이사였던 최진열이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으로 관두자 정해익이 대표이사가 되었는데, 정해익은 현진영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H.O.T.와 함께 숙소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생활을 통제하고 관리하게 된다. 한편 1995년 김경욱은 이벤트기획사에서 알바를 하다가 연예기획사에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300개의 이벤트사의 명단을 입수해 하루에 20군데씩 전화를 한다. 결국 SM기획에 입사하는데 승승장구하여 넘버3까지 올라간다.
1998년 정해익의 결혼식은 연예인 결혼 못지않게 하객이 화려해 화제가 되었는데... SM에서 "현진영과 와와"로 있다가 독립한 이현도가 참여했을 정도. 그 당시 와와의 매니저가 정해익이었으니 이현도와 매우 친했다. 그러나 넘버 3인 김경욱과 불편한 대립관계가 지속되다가 김경욱의 주도 하에 회사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리고 김경욱이 정식으로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이수만 평전에 의하면 H.O.T. 3집시기에 김경욱이 정해익이 한 뭔가를 고발하여 추방시켰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려진 게 없으며, 루머에 의하면 정해익이 H.O.T. 멤버를 빼돌려서 따로 회사를 차려서 독립하려고 했다는 썰이 있다. 물론 썰일 뿐이다.
그러다 2000년 3월 대기업 로커스홀딩스의 대표 김형순은 각종 기획사, 영화사, 제작사 등을 인수하고 싸이더스를 창립한다. 연예계의 거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영입하는데 연예기획사 EBM의 정훈탁, 전직 SM 대표 정해익, 우노필름의 차승재, 웹시네마의 김창규,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김종학 프로덕션의 김종학 등을 모두 영입하여 순식간에 영향력과 파워를 키웠다.
로커스홀딩스의 대표이자 싸이더스의 대표인 김형순은 배우 기획은 정훈탁에게, 가수 기획은 정해익에게 맡기는데 정해익은 SM의 직원들과 매니저들을 대거 영입한다. 특히 정해익은 전직 SM 대표이사라서 내부 사정을 잘알고 있었고, H.O.T., S.E.S.와 매우 친했는데 정해익은 2001년 계약이 만료된 H.O.T.의 멤버 토니 안, 장우혁, 이재원을 영입하여 jtL을 동년 말 데뷔시킨다. 또한 싸이더스는 S.E.S.의 유진도 영입한다. 싸이더스의 무차별 영입으로 SM은 주 수익원인 H.O.T.와 S.E.S.가 해체하게 되어 매우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마침 이수만은 배임 혐의로 도피하게 되면서 SM의 암흑기가 닥치면서 매우 큰 위기를 겪게 된다.
그리고 정해익이 맡았던 가수가 장혁(TJ Project)이고 그 다음이 god인데, god를 정상의 그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예능 육아일기도 원래 H.O.T.에게 오퍼가 왔던 것을 정해익이 기억해뒀다가 god를 맡을 때 힘을 써서 하게 된다. 싸이더스는 god의 매니지먼트는 정해익이 담당하고 프로듀싱은 박진영 쪽 회사가 담당하게 된다.
이때 박진영은 god의 프로듀싱을 맡게 되면서 원 멤버였던 김선아를 내보내고[5] 김태우를 집어넣게 된다. 문제는 god 2집과 육아일기가 대박이 나자 박진영이 god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싸이더스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박진영과 정훈탁이 대립하면서 god는 갈라져서 서서히 인기가 식어 버렸고, 이 때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정훈탁과 박진영은 2010년 말 박재범 사건으로 다시 서로를 디스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잘 나가던 싸이더스는 임원들의 배신으로 인해 정훈탁, 강우석, 정해익이 분사해버리면서 회사가 공중분해되고 김형순의 야망도 끝장이 나버린다. 배후로는 정훈탁이 있다는 썰이 있으며 정훈탁은 독립하면서 iHQ라는 새로운 연예기획사를 세운다. 결국 로커스홀딩스는 싸이더스를 플레너스로 개명한 후 CJ에게 매각하면서 플레너스를 CJ인터넷이라는 회사명으로 변경하고 CJ엔터테인먼트로 편입된다.
다시 SM 이야기로 돌아가서, 2001년 배임 혐의[6]로 촉발된 검찰수사로 이수만이 한동안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김경욱이 전권을 행사한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흑역사. 김경욱 체제 하에서 SM은 밀크, 신비, 이삭 N 지연, 블랙비트 등을 데뷔시켰지만, 이수만이 사라진 SM은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회사 구조도 불안정해지고 무엇보다도 김경욱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새롭게 데뷔시킨 가수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전부 망했어요로 전락했다. 특히 신비, 밀크. 모든 사업이 폭망하여 큰 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소녀가장 보아가 한일 양국 뼈 빠지게 뛰면서 벌어준 돈으로 메꾸지 않았다면 SM은 부도가 났을 지도... 결국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나게 된 이수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김경욱을 해고한 후, 김영민을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시키고 이 체제는 2021년인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김경욱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사실 이 때 김경욱은 상식적으로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한다. 첫 번째는 김경욱이 대표이사로 올라간 이유가 내부다툼 끝에 전임자를 고발하여 추방시키고 올라갔다는 점이다. 루머에 의하면 김경욱이 고발한 내용은 정해익이 H.O.T. 멤버를 빼돌려서 따로 회사를 차려서 독립하려고 했다는 썰인데, 이 썰을 반대로 생각한다면 김경욱에게 너무 유리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정해익이 물러날때 반사이익으로 대표이사까지 올라갔고 또한 때마침 이수만이 도피하면서 회사를 마음대로 해버리는 독단적 운영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H.O.T.상표권을 회사법인이 아닌 김경욱 개인에게 등록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나중에 이수만에 의해 김영민이 취임하고 김경욱이 물러날 때, 김경욱은 '동방신기를 꼭 망하게 하고 만다.'라며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김경욱의 SM은 아티스트 하나를 만들 때마다 자회사를 만들어 신비를 Cid.K 엔터로, 밀크를 BM 엔터로, 다나를 샤이닝 엔터로 데뷔시킨 점이다. 보통 회사의 규모가 크면 레이블을 만들기도 하지만 아티스트 하나당 회사를 차리는 것은 누가 봐도 쓸데없이 회사의 역량과 인력, 자금을 낭비시키는 행위라는 점이다. 또한 김경욱은 라이벌회사로 이직한 김수현을 김경욱이 자신의 권한으로 샤이닝엔터의 사장으로 부임시켜버렸다. 더구나 김수현은 SM에 있을때 말단직원이었고 더구나 라이벌회사로 이직하여 핑클의 결성에 큰 기여을 한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sm이 라이벌회사에 이직한 임원들이었던 정창환이나 정해익에게 압력을 가한 행위를 보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sm이 이런 사람을 사장으로 부임하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 감정도 그렇고 기존직원의 반발을 무시할수 없다. 이건 김경욱이 SM이라는 회사를 확실이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사람을 독단으로 꼽아버리는 행위에 불과하다. 특히 김경욱은 김수현이라는 사람과 매우 친했고, 김수현은 신문기자에게 김경욱과 특별한 만남을 애기했을 정도이다. 즉 김경욱에게 있어서 확실히 자신의 편이 되어줄 강력한 우군인 셈이다. 자세한 내용은 김경욱의 문서 항목 중 김수현과의 인연을 참고하자
세 번째는 그 당시 김경욱이 SM에서 전권을 행사하면서 H.O.T와 S.E.S 및 신화의 재계약 시기가 도래할때, 모두 재계약 의지가 강했으나 김경욱의 SM 측에서 가수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조건을 내밀어 재계약을 무산시켜 매출을 급감시킨 점이다. jtL 멤버들의 증언에 따르면, 멤버들은 재계약 의지가 강했으나 SM의 대표자[7]로부터 해체통보를 받았다고 하였으며, S.E.S멤버들 역시 그룹으로서 재계약을 원하였으나 회사측에서 개별 재계약을 원해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한다.참고 특히 유진의 인터뷰에서 이수만이 부재한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이런 점을 비추어볼 때 김경욱의 원래 목적은 SM이라는 회사를 집어삼키려는 것 아니었나 라는 설이 있있다. 결국 현재 H.O.T.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김경욱으로 드러나면서 이 썰이 점점 진실성을 얻게 되었다.
김경욱은 2018년 H.O.T. 재결합 콘서트 당시 거액의 로열티를 요구해 팀명과 로고 사용이 불발되었기 때문이다. 상표권자가 SM엔터테인먼트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김경욱이 개인 이름으로 상표권을 쥐고 돈 욕심을 부리니 팬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다. 또한, 김경욱이 12월에 재결합 공연을 기획한 장우혁과 솔트이노베이션을 고소했다는 기사가 올라오면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그러나 2020년 7월 7일 법원의 판결로 김경욱의 H.O.T.의 상표등록이 무효가 되어 해당 상표권은 SM엔터테인먼트로 돌아가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H.O.T. 상표권 분쟁문서를 참조할 것.

4. 2004년~2012년: 거대 기획사로 성장


2003년 1월 SM은 스타라이트 [8] 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스타라이트 아카데미 시스템(Starlight Academy System)은 SM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엔터테이너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가수및 연기자등의 연예인 지망생, 작곡가 및 연예 매니지먼트의 프로듀서등을 가르친다는 개념이다. 2003년 1월 SM은 스타라이트 아카데미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스타라이트을 설립하고, 스타라이트는 SM아카데미라는 학원을 운영한다. SM아카데미는 이름 그대로 본인이 직접 수강료를 내고 다니는 '학원'이며 소녀시대 태연이 여기 출신이다. 결국 2013년에 폐지된다. 자세한 내용은 스타라이트 의 문서 항목 중 스타라이트 아카데미 시스템 항목을 참조
아무튼 내부의 김경욱과 외부의 싸이더스 때문에 이래저래 암흑기를 맞이한 SM이었지만, (김영민의 긍정 재정 관리로 힘입어) 다시 '''2003년 동방신기, 2005년 슈퍼주니어''', 천상지희 The Grace로 한숨을 돌린 다음 '''2007년 소녀시대, 2008년 샤이니를, 2009년 f(x)'''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면서 '''재전성기'''를 맞이한다. 여담으로 SM이 재기하는 사이, 대기업 CJ그룹이미경은 싸이더스(로커스 홀딩스 → 플레너스)를 인수합병하고 CJ인터넷 이라는 상호명으로 변경하며 CJ엔터테인먼트로 편입한 후 영화시장과 케이블 시장을 독점한다. 이 때 음악방송을 하면서 음원과 음반을 유통하는 거대 기획사인 엠넷미디어가 만들어진다.
그러다 2009년경 SM에게 '''3번째 위기'''가 닥친다. 동방신기의 세 멤버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가 노예계약을 주장하며 동방신기를 탈퇴하고 JYJ를 결성하면서 씨제스로 이적한 것이다. 이때 에이벡스 그룹은 JYJ의 일본 활동을 전담하면서 자사가 담당하고 있던 SM가수의 일본 활동을 중지시키는 결정을 내리고, 이로 인해 보아와 동방신기, 천상지희 The Grace[9] 일본 활동이 모두 정지되어 버린다. 또한 음반시장 문제로 CJ와 분쟁이 일어나 SM은 '''근 2년 간 CJ의 모든 방송을 보이콧하게 되고, 엠넷닷컴의 차트에서 SM 가수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MBC 모 PD가 기획한 프로랑 동시간대 타 방송사에 강인이 겹치기 출연한 게 논란이 되어 2008년 말까지 SM 가수들이 모두 음악중심[10]에 사실상 출연정지를 먹게 되었고 게다가 슈퍼주니어 멤버 강인의 술집 폭행 사건과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 그리고 중국인 멤버 한경의 전속 계약 분쟁까지 일어나면어 SM ENT에게 2009년는 최악의 시련를 안기고 만다. 그 사이에 5인조 신인 걸그룹 f(x)가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닥쳐 온 SM의 위기는 드라마틱하게도 '''소녀시대슈퍼주니어가 폭발하면서 대부분 해결된다.''' 소녀시대의 'Gee',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가 터지면서 여차저차 MBC의 방송출연 정지도 해결한다.[11] (이후에는 EXO찬열박유라 당시 부산MBC 아나운서의 친동생으로 밝혀지며 현재로도 MBC와의 긍정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중) 2010년 엠넷마카오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개최하게 되나 SM 가수들이 출연하지 않아 공연이 실패했고, 당시 대세였던 소녀시대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어 반사이익으로 라이벌 로엔이 급성장하게 되자 이를 우려한 CJ는 마침내 백기를 들어 SM과 화해한다. 그리고 2010년 소녀시대가 유니버설 재팬으로 일본에 진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자 이에 놀란 에이벡스JYJ 소속사 사장의 조폭 관련 문제를 제기하며 JYJ의 일본 활동을 중지시키고 SM 가수들의 활동 중지는 풀어주었다. 또한 SM타운 파리 콘서트,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으로 주가는 폭등하였고 2인조로 부활한 동방신기가 일본 5대 돔투어와 닛산 스타디움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크게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거대 기획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2006년 반포텍이 스타엠과 합병→스타엠으로 상호 변경, 2008년 웰메이드 스타엠으로 상호 변경, 2013년 웰메이드 스타엠이 예당컴퍼니, 드림티엔터테인먼트 인수, 2014년 웰메이드 예당으로 상호 변경, 2015년 웰메이드 예당이 YMC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였다는 시기로 나란해질 만큼) 2012년에는 SM C&C라는 자회사를 통해 유명 연예인들을 영입하며 '''음악 산업이 아닌 예능, 드라마 쪽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 8월 울림엔터테인먼트와의 합병을 발표하였다. SM엔터테인먼트가 글로벌 음악 배급/유통 및 부가사업을, SM C&C가 레이블 기능을 담당할 예정이고, 울림엔터테인먼트는 SM C&C 내에 울림 레이블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후 YG엔터테인먼트가 케이플러스, 로엔엔터테인먼트스타쉽엔터테인먼트, 킹콩엔터테인먼트, 에이큐브엔터테인먼트, iHQ큐브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대형 기획사의 중소 기획사 인수와 레이블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보다 예전인 2006년부터 SM브라보라고 노래방 기기 사업에도 진출해 TJ미디어/금영엔터테인먼트 양대 회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2012년 보이그룹 '''EXO'''가 데뷔했고, 이후 열애설과 멤버 탈퇴로 위축되었지만 2010년대 중반 아이돌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2009년 f(x) 이후 5년 만인 2014년 8월에 걸그룹 '''레드벨벳'''이 데뷔해 준수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5. 2013~2015년: 전략 변화 그리고 최악의 2014년


3세대에 접어들면서 SM소속 가수들은 소위 말하는 SMP로 활동하고, 높은 음반 성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음원 성적을 보이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소속 팀이 많은 문제로 국내외에서 그룹 활동만 짧게 하였으며, 팀 내 개별 활동은 연기, 예능, 뮤지컬, 라디오, 광고 등에만 치중되었다. 이러다 보니 연기와 예능에서는 부족한 방송 감각으로 인해 욕을 먹었으며, 뮤지컬에서는 인지도를 널리 알리는 데 제약이 있었다. 사업 영역 확대를 위한 SM C&C도 기존 SM 가수들을 다른 영역으로 진출시키는 데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여러 번 말아먹으면서 비난받았다. 프로그램이 잘 되어야 끼워 팔기를 하지...
2014년에서 15년 1분기는 태민의 솔로 앨범을 시작으로 솔로/유닛[12]으로 채워나갔는데, 음반 활동의 경우 그룹 위주의 정규 앨범 활동에 올인 하고, 솔로 활동은 연기나 MC 등에서만 허용하던 SM이 전략을 변경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특히 규현의 솔로 타이틀곡 '광화문에서'는 대중성 높은 발라드 곡으로 음원차트 1위를 장기간 지켰다. 이 또한 기존 SM과 슈퍼주니어의 전략과 사뭇 다르다. 그리고 2014년에 레드벨벳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아티스트들의 열애설,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의 가족 비극적 사건, 엑소 중국인 멤버 우이판루한의 전속계약 해지소송과 소녀시대 제시카 사태, 에프엑스 설리의 활동중단, 이수만 회장의 세금 탈세 의혹 그리고 이수만 회장의 부인 별세등 각종 악재들이 터지면서 2014년는 SM ENT에게는 최악의 1년이자 잔인한 1년를 보내고 만다.
2015년 종현의 솔로 앨범에서는 Zion.T, 아이언, 윤하 등의 참여로 SM 외 가수들과 많은 피쳐링과 콜라보레이션을 이뤄냈다. 종현의 자작곡도 많으며, 선 공개 곡은 트렌드를 반영한 곡 '데자-부' 였다. 또한 엑소의 CALL ME BABY도 발매 당시 상위권을 선전하였으며, 리패키지 앨범에서 대중성 높은 LOVE ME RIGHT도 방송활동이 거의 없던 상태에서 1위를 하였으며,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EXO의 흥행에도 신경을 써 주고 있다. 확실히 아이돌 장사하던 기존 행보와는 많이 다르다. BoA의 8집 또한 개코, 에디킴 등과 콜라보레이션했으며, 선 공개 곡 'Who Are You'가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선 공개 곡 자체가 SM이 잘 쓰지 않던 방식인데 이제는 '데자-부' - 'Crazy', 'Who Are You' - 'Kiss My Lips' 처럼 대중성 높은 곡을 SM 스타일 타이틀곡 공개에 앞서 먼저 공개하고, 선공개곡이 더 인기를 끌면 활동 곡을 변경하기도 한다! 소녀시대의 5집에서는 선행 싱글로 1곡('Party')을 공개한 후 더블 타이틀을 시도했고, 5집 앨범의 더블 타이틀 중 한 곡인 'You Think'는 음원에서 좋지 않은 성과를 보였지만 다른 한 곡인 'Lion Heart'는 초반 부진을 딛고 2~3주 뒤 역주행으로 5~6위권까지 진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Party'의 선공개로 화력이 분산되어 1위권 진입은 못 해보고 밀려나는 아쉬움을 남겼다.[13]
다만 출격시켜야 할 가수들이 워낙 많다 보니 7월말에 소녀시대 싱글 - 슈퍼주니어의 10주년 앨범 - 동방신기의 군 입대 앨범이 거의 동시기에 발매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땐 그나마 실질적으로 활동하던 팀이 소녀시대밖에 없어서 팀킬 같은 건 없었는데, 8월에는 잠시 슈퍼주니어 활동를 접고 연기쪽으로 전념하고 있는 김기범도 역시 전속계약이 완료되면서 슈퍼주니어에서 탈퇴하여 떠나고 에프엑스에서 잠시 활동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설리가 연기자으로 전향하여 결국 팀에서 탈퇴하여 에프엑스는 5인조에서 4인조 재편했고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소녀시대에서 탈퇴하고 솔로 아티스트 제시카도 역시 SM ENT와의 합의하여 떠나고 발목부상으로 잠시 이탈했던 엑소 중국인 멤버 황쯔타오도 전속계약 해지소송를 걸면서 탈퇴하고 엑소는 9인조으로 재편하게 된다. 8~9월에는 소녀시대 - 레드벨벳의 활동 시기가 겹쳐 레드벨벳이 컴백 주에 소녀시대에게 팀킬당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고(...), 10월에도 태연 - 규현 - f(x)의 발매 시기가 제대로 겹쳐버렸다.

6. 2016년~2017년 : '''N'''eo '''C'''ulture '''T'''echnology 과 세대교체의 시그널 그리고 샤이니 종현의 비극적 결별


2016년 1월 27일. SM아티움에서 프리젠테이션을 개최했다. 이수만은 2016년에 데뷔할 신인 남성그룹과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프리젠테이션 영상
전용 음원 채널인 '''SM STATION'''을 통해 태연의 <Rain>을 시작으로 2월 19일부터 '''매 주 한 번''' 디지털 싱글을 발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EDM 레이블인 '스크림 레코드(ScreaM Records)'와 EDM 페스티벌을 론칭하고, 글로벌 팬들의 디지털 놀이터를 표방하는 SM 전용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SM 신인 프로듀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앱 ‘루키즈 엔터테인먼트(Rookies Entertainment)’, 마지막으로 셀러브리티가 직접 참여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 사업까지 총 5가지의 계획을 공개하였다.
활동 내역을 주로 살펴보자면 1분기는 역시나 솔로 가수들의 데뷔나 컴백이 수두룩했지만, 특이하게 올해는 3월을 넘겨서도 주요 그룹들의 완전체 활동이 거의 없다는 게 눈에 띈다. 레드벨벳의 컴백이나 NCT U의 한국 데뷔를 제외하면 예성티파니가 솔로로 데뷔한 것, 태민종현이 첫 정규 앨범을 들고 나온 정도가 있는데. 이미 여름 컴백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EXO를 제외하면 심지어 컴백한다는 소문이 나온 그룹도 전혀 없다시피 했다. 물론 작년에 시도했던 물량공세가 성공했기에 조금 더 여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한편 스테파니가 5월 16일 마피아레코드로 완전 이적했고 뒤이어 SM 홈페이지의 아티스트에도 빠지면서 천상지희의 완전체 컴백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게 됐다.
그러다 5월 마지막 주를 전후로 레드벨벳의 여름 컴백과 '''EXO의 6월 초순 컴백'''이 알려졌다. EXO는 정규 3집을 들고 나왔다. 가요계 의문의 혼6월 9일에 발매된 EXO의 정규 3집은 초동만으로 '''하프 밀리언'''을 달성했고, 가온 차트의 6월 디지털 + 다운로드 + 앨범 차트는 싹쓸이되었다. 그리고 레드벨벳은 9월에 러시안 룰렛으로 컴백했으며, 꽤나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선방했다.
한편 11월에는 S.E.S.가 재결합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 전부터 세 멤버 간에 이야기가 오고 가던 게 이수만이 직접 참여하는 극비회동으로까지 확대되며 가시화된 것. 11월 28일엔 SM STATION을 통해 3집 타이틀곡인 <Love>의 재녹음 버전이 나오고, 연말에 콘서트를 가진 뒤 2017년 1월 2일에 새로운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2017년 3월 30일, 윤종신이 이끄는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체결했다. 정확히는 SM이 미스틱 주식 28%를 취득, 최대주주가 된 것. 기사[14] 이 일환으로 눈덩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2월 8일, 자사 소속 연예인에 대한 악플러 고소를 선언하였다.
그로부터 10일 후 12월 18일에는 샤이니 종현비극적인 선택로 인해 그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SM의 소속 연예인 케어 관리 문제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7. 2018년부터 현재: 세대 교체와 에스파 데뷔


소녀시대 일부 멤버들의 소속사 이적, 샤이니, EXO 일부 멤버들의 군 입대 등으로 백현, 등이 솔로 앨범을 발매하는 등 기존 그룹들의 그룹 활동보다 솔로 활동으로의 전향이 두드러졌다.
NCT는 서울팀 NCT 127[15], 청소년팀 NCT DREAM으로 나누어져 활동하고 있다. 보이그룹 국내 팬덤 규모로는 3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SM치고는 대중성과 인지도가 약하다는 평이다.[16] 2020년 정규앨범 NCT #127 Neo Zone#, 타이틀곡 '영웅'으로 컴백한 NCT 127은 약 83만장[17]의 판매고를 올리며 상반기 음반 판매량 4위를 차지, 음원 성적에서도 플로, 벅스 실시간 1위, 멜론 실시간 3위를 달성하며 자체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다. 빌보드 앨범차트 200에서도 5위를 기록하였고 2020년 미국 빌보드 실물앨범 판매량 24만9천장으로 연간 6위를 기록하였다. 기사 5월 발매된 리패키지 앨범 또한 약 53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총합 약 136만장으로 NCT 최초 밀리언 셀러를 달성하였다. NCT DREAM은 초동 41만장, 총판은 60만장이상을 기록했고 멜론 실시간 1위를 차지하였다.
강타,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는 전성기가 훌쩍 지난 상태인데다 멤버 변동 등으로 가수 활동보단 타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18] 하지만 SM 남자 아이돌의 특성상 음반과 콘서트에서는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H.O.T.는 2018년 재결합하여 잠실종합운동장 이틀 공연으로 약 10만명, 2019년 고척 스카이돔 3일 공연으로 약 6만 관객을 기록하였다. 슈퍼주니어의 2019년 9집 앨범 판매량이 42만장을 넘기며 15년차 아이돌 치고는 상당히 선전한 성적을 내주었으며 슈퍼쇼8 관객도 코로나 악재에도 불구하고 28만명을 넘어섰다. 동방신기도 콘서트 투어와 멤버별 개인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보아 역시 연기와 예능활동을 포함해 꾸준히 앨범 발매와 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소녀시대, 샤이니, f(x)는 일련의 사건들이나 군 입대 등의 이유로 멤버 수가 줄어 개인 활동에 집중 중이다. 특히, f(x)의 경우 루나, 엠버가 계약 만료를 되였고 믿언니이자 리더 빅토리아는 SM ENT와의 계약이 만료되어서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현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크리스탈도 역시 2020년 여름에 SM ENT와 계약이 만료되고 가수 활동보다 브라운관을 통해 배우의 노선을 굳히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더 이상의 팀 활동은 불가능한 상태이며 사실상 팀은 해체했다. 소녀시대 또한 멤버들의 솔로 활동이 더 활발하다. 태연은 '사계', '불티' 등이 연이어 음원차트 1위를 달성하고 솔로로서도 여전히 엄청난 음반 판매량 실적과 티켓 파워를 보이며 대형 여성 솔로로서 입지를 굳혔다. 윤아는 자신의 스크린 첫 주연작 영화 <엑시트>가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성적을 내고 호평을 받으며 배우로서 인상적인 두각을 드러냈다. 샤이니태민은 꾸준히 솔로 앨범을 발매하며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활발히 활동 중이다.
천상지희,트랙스 일부 멤버들도 역시 SM ENT와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결별했다. 그리고 걸그룹 에프엑스 출신이자 가수 겸 배우 설리는 2019년 10월에 생전에 악성댓글으로 고통에 시달리가 비극적인 선택을 하여 세상을 떠났다.
2019년에 EXO는 시우민과 디오의 군입대로 개인과 유닛활동쪽에 더 초점을 맞췄다. 이 엑소의 공식적인 첫 솔로 주자로 출격하며 준수한 성과를 보여주었고 두번째 솔로 주자 백현은 엑소 내에서도 독보적인 팬덤을 보유한 만큼 음반쪽에서 더욱 강세를 보였다. 솔로 미니 2집 앨범이 2020년 7월 현재 기준 약 102만장[19] 판매되었다. 솔로 음반이 밀리언셀러를 돌파한 것은 2001년 김건모 7집 이후 19년 만이며, 그룹과 솔로 음반 모두 밀리언셀러가 된 가수는 서태지 이후 처음이다.
수호도 솔로 앨범을 냈으며 찬열세훈도 유닛활동을 선보였다. 시우민, 레이, 디오의 공백임에도 2019년 하반기에 6인조로 컴백했다.
2019년에는 런쥔, 천러를 제외한 NCT, SM Rookies의 중화권 멤버들로 구성된 WayV가 본격적으로 데뷔하였다.
엑소의 백현, 카이, 샤이니의 태민, NCT의 태용, 마크, WayV의 루카스, 텐으로 구성된 SuperM을 론칭하였다. 'Jopping'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200에서 1위를 하였다.
사실상 SM의 유일한 걸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 레드벨벳은 2018년 1월의 'Bad boy'와 8월 'Power up'의 대박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음원강자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는 한해를 보냈다. 하지만 이후 'RBB', '짐살라빔'등 연속적으로 대중들의 취향과는 먼 난해한 곡들을 발매하며 음원 성적이 전작들에 비해 부진하였으나, 2019년 12월 23일에 발매된 레드벨벳의 3부작 파이널 앨범인 'Psycho'가 '2019년 걸그룹 역대 최장 시간 실시간 1위', '2019년 걸그룹 최초 지붕킥', '2019년 하반기 걸그룹 24시간 최대 이용자 수'를 기록하면서 다소 부진했던 2019년 걸그룹들의 성적을 완전히 뒤집으며 좋은 음원 성적을 보여주었다. 'Psycho'는 기존의 '빨간 맛'이나 '파워업'의 여름음원강자 '써머퀸' 노선이 아닌, 다크하고 독특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대중에게 통하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성장이라 할 수 있다.
데뷔할 신인 아이돌이 없다는 것은 SM 입장으로선 크나큰 부담이다. 당장 NCT 이후 뚜렷하게 밀고 있는 신인 아이돌이 없으며 그나마 NCT도 역대 SM 남자아이돌만큼 크게 히트한건 아니다. 여자 아이돌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남자 아이돌은 아직 EXO, 슈퍼주니어 등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 있다지만, 현역 여자 아이돌은 레드벨벳뿐이다. 선배 그룹인 소녀시대는 이미 데뷔 13년차이며, SM도 소녀시대 멤버 본인들도 그룹 활동을 할 의지는 분명히 있어보이지만 현재는 레드벨벳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가는중인 상태이다. 레드벨벳도 2019년에 'Psycho'가 크게 성공했다지만 벌써 데뷔 6년차다. 새로운 인재 발굴이나 전략 변화에 대해서는 SM에서 계속 노력을 해야 할 부분이다. 2020년에 새 걸그룹이 데뷔할 거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으나 당초 주요 멤버로 예상되었던 SM Rookies 라미고은 그리고 히나까지 퇴사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마저도 불확실한 실정이었으며, 결국 루키즈 여성 멤버 중에서 닝닝이 유일하게 데뷔하였다.
2020년 코로나 악재로 오프라인 콘서트 개최가 어려워지자, 온라인 실시간 콘서트 Beyond Live를 론칭하였다. SuperM, WayV, NCT DREAM, NCT 127, 동방신기, 슈퍼주니어가 각각 비욘드라이브를 개최하였다. 7월 TWICE가 타기획사 가수 최초로 비욘드 라이브에 출연한다.
2020년 10월 20일 레드벨벳 아이린 갑질 사건이 터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 10월 26일 새 신인 걸그룹 aespa의 11월 데뷔 소식이 알려졌다.
2020년 10월, NCT의 새로운 멤버 쇼타로와 성찬이 공개되었다. NCT의 모든 멤버가 참여하는 NCT 2020 <Resonance>로 컴백하여 'Make a Wish', 'From Home', '90s Love', 'Work it'으로 활동하였다. 2020년 12월 27일 NCT 2020의 비욘드라이브를 개최하였다.기사 글로벌 팬덤 증가의 효과로 NCT는 2020년 한 해 동안 5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참고
2020년 2월, 팬과 아티스트의 1:1 소통 플랫폼 bubble을 개발 • 출시하였다. 2020년 8월부터 타 소속사에서도 bubble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2021년 1월 17일 SBS 인기가요에서 aespa가 데뷔 '''61일'''만에 첫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면서 SM 걸그룹 최단기간 지상파 음악방송 1위기록을 경신했다.[20]


[1] 이후 이수만을 떠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를 맡았고, 팬들 사이에서 코털아저씨로 유명했다. '태지주노양군과 함께한 1036일'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2] 2년 후 ‘서태지와 아이들’도 이 시스템을 적용한다.[3] 이때 홍종화는 이수만과 LA의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로 대전엑스포의 포항제철관의 작곡을 완성후 국내에서는 불가능했던 THX 7.1채널 서라운드 프로세싱 작업을 하러 함께 가게되며, 일본의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에 심취해 일본유학을 준비중이던 홍종화는 미국의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되며 "일본을 가더라도 큰세계를 경험하고 결정해보라"는 이수만의 권유에 따라 뉴욕대(NYU) 대학원에 유학, 최신 학문인 뮤직테크놀로지 석사과정을 하며 수년간 머물게 된다[4] 앞서도 모리스 스타가 발굴한 바비 브라운을 그대로 가져와서 현진영과 와와를 발표한 전례가 있었다.[5] 1박 2일 2015년 10월 4일 방송분에서 박준형과 김선아의 전화 통화 때 직접 인증했다. 그 전까지 데니안은 김선아가 god의 초기 멤버가 아니라고 못박았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숨겨 왔다고 보는 게 맞을 듯.[6] 이수만은 오랫동안 주주를 기만하는 배임혐의는 여러차례 저질렸다. 이것은 주주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혐의이다. 첫번째로 이수만이 1998년 증권업협회 운영규정이 곧 개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개정 직전 회사 돈으로 급하게 유상증자를 하면서 5000만원이던 자본금을 12억원으로 늘렸다. 코스닥 등록 이후 유상증자로 회사의 가치을 뻥튀기했기때문에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다. 이건 주주들의 돈을 강탈한 짓과 동일하므로 배임혐의로 징역형을 살수 밖에 없다. 두번째로 이수만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을 통해 음악 자문 등을 명목으로 일감 몰아주기을 행하였다. 첫번째 행위로 이수만은 긴세월을 도피하여 sm에 암흑기를 도래하였고 2번째는 현재도 진행하고 있어서 sm이 실제가치보다 주가가 떨어진 이유가 된다.[7] 김경욱으로 추정된다.[8] 누군가 다나와 밀크, 신비를 스타라이트에 임대했다고 하는데 SM의 분기보고서를 보면 설립시기는 2003년 1월이다. 즉 존재도 하지 않은 회사에 임대했다고 주장한 셈이다. 엄연히 Cid.K 엔터, BM 엔터, 샤이닝 엔터를 설립에 관여한 사람은 김경욱이다[9] 2007년 1집 한번 더, OK?의 히트로 원활한 국내활동을 하며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었다가, SM의 갑작스러운 뜬금포의 지시로 일본으로 보내버려서, 예상못한 일본활동을 시작하게 됬다. 그러자 일본활동이 서서히 대중에게 알려지고 콘서트도 다양하게 준비되는겸 잘되나 싶었지만, 갑자기 그당시 멤버 스테파니의 큰 허리부상으로 인해 3인채제 일본활동을 이어 갔었다. 그러고 일본 새 앨범을 준비하다가 어쩌다 일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무산되버렸고, 국내 컴백활동 계획도 전부 무산되버린 SM의 비운의 여성그룹 케이스[10] 그 PD가 음악중심 PD도 함께 맡고 있었다. 한마디로 방송국 차원에서 출연정지를 한건 아니었으나 PD의 권한으로 SM가수들 섭외를 안 한 것.(...) [11] 첫 방송을 음악중심에서 가졌다.[12] 태민을 비롯해 규현, 소녀시대 태티서, 조미, 종현, 엠버 등등[13] 사실 이건 모든 가수들에게 있는 일로 그 선례로 보아와 종현도 후속곡에서 아쉬운 성적을 남겼으며, 보통 선 공개곡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화력이 분산되기 때문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14] CJ E&M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관계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15] 127은 서울의 경도를 의미.[16] 2017년, 프로듀스 출신 보이 그룹들에 비해서도 성적으로나 대중성으로나 밀린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NCT만의 문제가 아닌, 남자 퍼포먼스 그룹들이 최근 전체적으로 겪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힙합 계열이나 발라드 계열이 아닌 퍼포먼스형 남자 그룹의 경우 갈수록 대중성보다는 '팬덤형'이 되어 '그사세화'되고 있다.[17] 키노앨범 포함[18] 그마저도 강타는 양다리 논란이 터지며 개막 직전의 뮤지컬에서 하차하고 신곡 발표를 하루 전 취소하는 등 사장되어 가는 분위기다.[19] 키노앨범 포함[20] 종전 기록은 S.E.S. 'I'm your girl'의 86일. 그리고 소녀시대 이후로 14년만에 데뷔곡으로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