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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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 위치한 현재 본사인 두산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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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정자동에 위치한 신사옥 분당센터 조감도. 2021년 1월 18일 준공되었다.
대한민국의 기업집단. 2021년 1월 기준으로 재계서열 12위.두산은 지금 내일을 준비합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두산타워가 본사이며, 쇼핑몰이 함께 있다.[3]
창업주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매헌 박승직이며, 1896년 8월에 서울 종로에서 창업한 '박승직 상점'이 시초다. 2016년 3월 25일부터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이 그룹회장을 맡고 있다.[4]
두산(斗山)이라는 이름은 그룹의 창업주인 박승직이 "쌀을 한 말(斗) 두 말 쌓아서 큰 뫼(山)를 이루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관련 기사. 그리고 간체자 중국어에서는 斗山이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진다.[5]
2. 역사
2.1. 100년 역사의 시작(1896~)
구한말인 1896년 8월, 창업주 매헌 박승직이 한성부(현 서울) 종로에서 세운 '박승직 상점'이 모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된 기업이다. 다만 현 모기업 (주)두산은 존속법인이 다를 뿐더러[6] 업종 변경과 단절 기간이 있다는 이유로 정통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동화약품을 최장수 기업으로 꼽기도 한다. 동화약품은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줄곧 한 상호와 한 업종과 한 제품으로 한 자리를 지켜 왔다. 본사를 옮긴 것도 그나마 재개발 때문에 옮긴 것이다. 비슷한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는 동화약품과 닌텐도가 있는데 동화약품은 1년 늦은 1897년에, 닌텐도는 7년 앞선 1889년에 설립되었다. 조흥은행 역시 1897년에 창립되었는데 2006년 존속법인 지위를 유지한 채 신한은행과 대등합병되면서 동화약품과 신한은행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기업이 된 상태다.
설립 당시에는 포목점으로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였던 매헌 박승직 선생은 넓은 안목으로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고가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하여 박승직상점은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박승직은 박승직상점의 주요 단골들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이게 반응이 좋자 1916년 화장품 공장을 만들고 '박가분'이란 화장품으로 히트시켰다.[7] 이 성공으로 종로의 거상이 된 박승직 사장은 일제로부터 우리 상권을 지키기 위해 광장시장의 대표로 취임했으며 1925년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로 개편했다. 1933년 박승직 사장은 쇼와기린맥주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일부 주식을 소유했다.[8]
다만 사업 과정에서 1909년 이토 히로부미 국민대추도회 발기인을 지낸 것을 비롯해 1940년 박승직 사장이 창씨개명을 하고 '미키상사'로 바꾼 후, 국방헌금을 내는 등 일제의 시정에 협력한 어두운 면이 있었다. 1945년 8.15 광복 후 박승직상점은 문을 닫았으나, 박승직의 아들 연강 박두병이 1946년 두산상회를 다시 세웠다. 귀속재산 쇼와기린맥주 관리인으로 선임되어 주류 생산에 뛰어들었고, 1952년에 후신인 동양맥주를 정식으로 불하받아 그 약자인 OB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그래서 1978년 이전까지 그룹명도 두산그룹이 아닌 'OB그룹'이었다.
1969년 박두병 동양맥주 사장이 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후 삼성에서 돌아온 정수창이 사장이 되면서 전문경영인 운영체제가 확립되었고, 1973년 박두병 사후 1975년 동양맥주 기획실을 '종합기획실'로 개편한 후 1977년부터 정수창 사장이 그룹회장이 되어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출신 총수 시대를 열었다. 1981년 박용곤이 회장이 되어 3세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1983년 을지로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소재사업, 정보유통사업, 생활문화사업 등, 주로 경공업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짜여져 있었다. 이 당시 계열사가 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 OB맥주, 두산백화, 두산경월 같은 소비재 기업이었고, 두산상사는 폴로 랄프 로렌 및 월풀의 수입사로도 유명했다. 한때는 유가공사업(두산유업)[9] 이나 즉석김치 사업(두산종합식품)까지 각각 손댄 적도 있었다. 1982년에 프로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하였고, 1985년 동아출판사 및 동아인쇄공업을 인수해 출판/인쇄업에도 손을 뻗었다.
2.2. 가업을 버리다(1991~)
91년 이전까지 두산의 주력 사업분야는 현재의 중공업 분야가 아닌 소비재 중심, 특히 주류산업이였다. 그룹의 모태나 다름없었던 OB맥주의 경우 창립 당시부터 꾸준히 업계 1위를 고수했으며 1982년에는 상표 이름을 딴 야구단까지 창단하면서 인기를 독차지했다. 심지어 후발주자인 크라운맥주는 OB맥주의 아성에 밀려 도매상에게 홀대받기 일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두산전자(현 두산 전자BG)가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발생시켜 낙동강 라인인 대구 및 경북, 부산 및 경남 지역으로부터 불매 운동 대상이 되어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이하 두산음료), 네슬레, 코닥, 3M 등 소비재 사업을 주로 하던 기업이였기에 타격이 만만치 않았으며 무엇보다 100여년을 이어온 OB맥주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주류의 특성상 물 맛이 중요한데 같은 계열사인 두산전자가 거하게 사고를 치는 바람에 이미지가 거하게 깎여나간데다 경쟁사인 크라운맥주가 이를 겨냥하듯 천연암반수를 강조한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시장 1위의 자리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이 사건 이후 당시 회장이던 박용곤이 물러나고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두산종합기술원을 세우고 1993년 새 경영이념을 제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1995년 적자 규모 9천억 원, 부채비율 625%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1996년 동생 박용오가 회장으로 취임했고 두산 가 3세들은 그룹의 미래를 건 가족회의를 열게 된다. 그룹의 뿌리나 다름없는 소비재 산업에 대한 운명을 결정하는 회의였다. 당시 큰형이던 박용곤, 둘째 박용오는 소비재 산업을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집안의 뿌리나 다름없는 OB를 버리는 것은 가문의 정체성을 집어던지는 것이라며 완강히 반대했고 셋째 박용성, 막내 박용만 등은 다 죽게 생겼는데 가업이 무슨 소용이냐며 되받아쳤다. 특히 박용성은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은 다 걸레로 봐야 한다는 소위 '걸레론'을 내세우며 기존의 소비재 산업을 깎아내렸고 형제 간의 갈등이 폭발하며 그룹 전체로 번져나갔다. 3남 박용성, 5남 박용만이 차남 박용오를 회장 자리에서 퇴출시켰고 박용오는 박용성과 박용만을 비자금 조성과 탈세로 고발하는 등 난타전을 벌였다.
형제들 간의 싸움은 결국 이 권고를 기점으로 마무리되었고 큰형인 박용곤이 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산업에서의 철수를 결정하면서 두산은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의 계열사를 매각 혹은 사업 철수를 통해 구조조정하여 소비재 산업에서 떠났고, 1998년에 기존 OB맥주 법인이 모기업이던 두산상사, 두산정보통신, 두산동아, 두산경월 등을 합병해 '(주)두산'으로 탈바꿈한 후, 을지로 사옥을 하나은행에 팔고 동대문 두산타워로 본사를 이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룹의 미래는 불투명했고 형제들 간의 갈등도 아물지 않아서 둘째 박용오가 형제들과 의절하는 등 진통을 겪어야했다.'''"지금 이 상태로라면 3개월 안에 그룹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OB맥주를 매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 미국 컨설팅 업체 맥킨지 앤 컴퍼니 사 -
2.3. 중공업 분야로의 진출 (2000~)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수합병과 비주력 사업부문 매각을 통해 우리가 알고있듯이 중공업, 플랜트 기업으로 변했다. [10]
2000년대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산이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공격적이다. IMF 전에 그룹을 이끌던 박용성 전 회장의 걸레론,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이기 때문에 사지 않을 것이다'라는 인수합병에 대한 생각에 따라 돈 되는 주력 기업들, 국내에서 영위하던 해외 프랜차이즈 식당 기업들과 종가집 김치까지 몽땅 비싸게 팔아넘기며 실탄을 장전했다. 2000년 네오플럭스를 세운 뒤 2001년에 대아건설 등으로 이뤄진 스페코컨소시엄을 제치고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중공업 그룹으로의 토대를 마련했는데, 이때 5조 원의 자산가치를 가진 한국중공업을 3,057억 원에 두산에 민영화하면서 헐값 매각이니 특혜니 하는 의혹이 퍼지기도 했다.[11] 2003년 고려산업개발, 2005년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한 두산은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수 러시를 벌였는데,
- 2005년 미국 AES社 미주지역 수처리사업 (現 두산하이드로테크놀로지)
- 2006년 영국 미쓰이밥콕 (現 두산밥콕)[12]
- 2006년 루마니아 IMGB (現 두산IMGB)
-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사 밥캣[13] 등 3개 사업부
- 2007년 미국 CTI, 중국 연대유화기계
- 2008년 독일 물류장비 전문업체 ATL(現 두산목시)
- 2009년 체코 발전설비업체 스코다파워 (現 두산스코다파워)
- 2011년 독일 발전설비업체 AE&E 렌체스 (現 두산엔퓨어)[14]
- 2012년 영국 수처리 전문업체 엔퓨어 (現 두산엔퓨어)
- 2014년 룩셈부르크 동박제조업체 서킷포일[15]
- 2014년 미국 클리어엣지파워 (現 두산 퓨얼셀 아메리카)[16]
- 2015년 영국 IWWE社 음식 폐기물 처리 기술
- 2016년 미국 에너지저장장치업체 원에너지시스템즈 (現 두산그리드텍)[17]
- 2017년 미국 가스터빈서비스업체 ACT 인디펜던트 터보 서비시스 (現 두산터보머시너리서비시스)
이 외에도 원전설비 세계 1위인 웨스팅하우스가 매물로 나왔을 때 두산도 물망에 올랐었지만, 결국 도시바가 홀라당 가져가버렸다. 그렇다고 두산이 원전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년 전부터 국내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모든 원자력 발전소에는 두산의 설비가 들어가고, UAE 원전 수출처럼 정부가 밀어주는 사업 말고도 세계 각지에 원전기자재를 수출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우리나라 원전 개발을 할 때 터빈 부분을 한국중공업에 정부차원에서 올인해줬기에... 하지만 두산중공업이 만드는 터빈 성능은 세계 최고급인 지멘스 등에 비해 70% 수준 밖에 안 된다.
그 와중에도 두산은 2008년에 롯데 등을 제치고 중앙대학교 재단을 인수하였다. 두산은 중앙대 인수 후 박용성 회장이 직접 이사장을 맡아서 구조조정에 나섰다.'학문단위 재조정'의 명분으로 기업식 구조조정을 단행해서 사실상 학과 계열[18] 을 대폭 폐지, 축소하고 경영/경제 계열를 대규모로 확대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이러한 개편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 단위의 극심한 반발이 있었으며 총학 및 교수들과도 갈등을 빚었다. 다만 그동안 지나치게 세분화돼서 난립했던 일부 학과 단위를 재조정한 것은 필요한 일[19] 이지만, 폐과된 학생들의 수업축소 문제와 학문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인기 학과 위주로의 통폐합이라는 비판도 있다.[20] 하지만 재단 인수 후에 신교사 건축과 도서관 리모델링 등 학교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확실히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서울캠퍼스에 한해서만 투자가 이루어져 안성캠퍼스는 방치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비판이 있다.[21] 여담이지만, 두산그룹이 재단에 들어오면서 중앙대학교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기초회계를 교양과목으로 이수하게 했는데, 처음에는 대학을 직업훈련소로 만드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회계는 모든 기업의 기본이기 때문에 지금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2007년 인수한 밥캣이 6조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했음에도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어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인수 당시 밥캣의 부채를 떠안은 것, 그리고 인수자금 조달원 중 자기자본 1조 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외부에서 조달해 이에 대한 이자가 만만찮다는 것이 많은 부담으로 작용하고있다. 덕분에 2007년 30조 원에 가깝던 두산그룹의 시가총액은 2011년 16조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때문에 그룹 차원에선 밥캣의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계열사 정리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두산그룹의 골칫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2011년 포츈지 선정(매출기준) 세계 500대 기업에 489위로 이름을 올렸다.
2.4. 두산그룹의 위기(2012~)
2012년 서울시내 주요 대학에서 열린 채용설명회 기념품으로 16GB USB를 줬다.[22] 그 시각에 수업이 있었던 학생들은 아쉬워했다. 재밌는건 두산산업차량 채용상담회에선 4GB USB를 줬다. 그러니 두산산업차량 채용상담을 받고,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졸지에 두산에서 USB를 두 개씩 준 셈이다.[23] 그리고 여기까지가 두산이 이름있는 재벌로서 최소한 대중들에게 날리던 시절이었다. 당시 '''사람이 미래다''' 라는 슬로건과 iPhone을 언박싱 하는 영상을 올리며 얼리어답터로서 젋은 대학생들에게 호감을 얻던 박용만 회장의 이미지가 더해져 취준생들에게도 인기있는 회사 였지만 '''이미 두산그룹의 위기는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두산그룹의 위기는 소비재 중심의 기업에서 중공업 중심 기업으로 체질 개선하면서[24] 한때 성공적인 혁신이라 추켜세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면에는 M&A와 경영진의 경영실패에서 본격적인 위기가 도래하기 시작한다. 두산그룹의 위기설은 위에 상술한 밥캣 인수부터 시작한다. 2008년 밥캣 인수를 위해 과다한 차입금을 지불하면서 운없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건설 경기가 맛이 가버렸다. 그로인해 기업가치가 폭락하면서 부채 문제가 도래했고, 이를 영구채로 전환시켜 한숨 돌린다. 2012년 11월 초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행한 영구채(신종자본증권)가 금융위원회에서 '부채로 판단해야 한다'라는 판단이 나와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중이다. 금융감독원, 한국산업은행 측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를 자본으로 인정했고 IFRS 자본분류 기준으로도 자본으로 판단했으나 금융위원회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중. 11월 8일 한국회계기준원 연석회의에서 부채인지 자본인지가 결단날 듯..했으나 이 날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12월 13일 자본으로 결정나며 두산은 한시름 놓게 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밥캣 인수는 당시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성공적인 M&A로 평가받는다. 밥캣 때문에 휘청거리는 2012~2013년에 소위 '''3D1S'''라는 증권가에 돌았던 위기에 처한 기업 명단 약자가 있었다. 저 기업들은 '''동부, 동양, 대성 그리고 STX'''로 모두 알다시피 현재 동양과 STX는 완전히 멸망했고, 동부는 그룹해체를 모면하고 금융계열만을 건진 중견기업 수준, 대성은 사세가 약화되었다. 그런데 두산이 저 시기에 3D의 일원이 아니냐?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질 정도로 밥캣 때문에 휘청거린건 사실이다. 밥캣이 이렇게 골칫덩어리였으나 위기를 지난 이후 매출액이 2019년 기준 4조 5천억(!)에 영업이익이 연간 5천억에 가까운 명실공히 두산 최고의 캐시카우다. 즉 밥캣 때문에 힘든적은 있었지만 밥캣 인수가 두산의 위기에 큰 영향을 준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진짜 문제는 밥캣 인수와 동시기인 '''두산건설'''의 PF 부실이 두산그룹을 위기속으로 몰아넣는다. 2013년 11월 26일 두산건설이 오전에는 자본 감소를,[25] 오후에는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사실 두산건설은 몇 년 전부터 적자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일산에 짓고 있던 위브 더 제니스 아파트 단지가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면서 맛이 가 버렸다.[26] 그래도 일산 위브 더 제니스는 2016년 기준 미분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2018년에도 대형평수는 여전히 시망, 용인시에 지어놓은 '''용인 행정타운 두산 위브''' 아파트는 2012년에 준공 이후 2016년까지 미분양률이 80%, 1293가구 단지에 1034가구가 여전히 미분양 상태이다. 그래서 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돈을 쏟아부었는데, 문제는 '''실패했다'''는 것이며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에도 용인타운 분양을 6천만원을 깎아주면서 미분양을 해소하려 애썼지만 결과는 시망.
즉 일산 두산 위브 더 제니스의 미분양으로 '''1646억'''의 손해를 보았다. 더 골때리는 점은 일산 제니스 미분양은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진 것이지 그것만으로 두산건설만 아니라 두산그룹을 늪으로 밀어넣는 정도는 아니다. 진짜 시작은 2006년 PF에 보증 1550억원을 건 울산 대현 주택사업은 10년 만인 2015년 분양했지만 1437억원의 적자를 보았다. 용인 삼가, 천안 청당, 화성 반월 등의 PF 보증도 2019년 2월 기준 대여금을 포함해 7705억원 규모인데 아직 미분양 상황이다. 여기에 맥쿼리는 흑자를 안정적으로 땅짚고 버는 지하철 사업을 두산건설은 신분당선을 가지고 있음에도 누적적자가 4천억에 육박해서 매각까지 고려하지만 신통치 않다.
온갖 미분양과 사업적자가 발생하니 당연히 적자는 천문학적으로 증대되어 2011년부터 두산건설은 적자를 3000억, 2012년은 무려 적자를 6500억이나 기록하며 현재까지 단 한번도 흑자를 낸적이 없다. 2018년에도 적자 4200억을 내며 답이 없으니 2019년에 상장폐지 크리를 밟는다. 계열사가 1년만 수천억대의 적자가 나도 웬만한 재벌은 분위기 매우 안 좋아지며 이 회사의 전문경영인들은 당연히 목이 날아간다. 무려 10년 동안 두산건설이 연간 수천억에 총 수조가 넘는 적자를 내는 것을 두산이 살리려고 하니 그룹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두산건설은 혼자서 그룹 자금 1조 7천억을 빨아먹은 블랙홀'''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경영적 판단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두산건설을 정리 매각해야 했다. 각종 언론과 시장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두산건설은 어떻게든 빨리 정리했어야 하는데 계열사의 재무 악화와 알짜 자산 매각에 부실 전이까지 감수하며 무리하게 살리려다 이런 참사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건설을 쉽게 처리하지 못했던 건 건설사 특성상 비자금 조성의 필수요소라는 음모론적인 시각 외에도 형제가 돌아가며 경영권을 맡는 두산그룹의 사촌경영 구조가 원인이었다는 시각도 있다.http://www.investchosun.com/2019/03/04/3235192
물론 두산도 자금마련을 위해 사업 매각을 통해 자금확보를 하였다. 일례로 두산중공업은 알짜중에 알짜인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부를 두산건설에게 넘겨주며 두산건설의 위기를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유일한 알짜였던 HRSG를 두산건설은 결국 2017년에 3천억에 GE에 매각해버리고, 보유한 두산DST 지분 51%를 3500억에, 논현동 사옥조차 빚갚는다고 매각해버린다.[27] 거기에 두산그룹이 중앙대에 온갖 공사를 해서 죄다 두산건설에 몰아준 것은 덤. 이럼에도 두산건설의 부실은 상술했듯이 꾸준해서 2018년에도 적자 4200억을 기록했고, 급기야 두산중공업과 같이 유상증자로 9500억을 그 해에 조달했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두산건설의 상장폐지 - 두산중공업 자회사 편입으로 사망테크를 탔다. [28] '''2013년부터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쏟아부은 지원금은 1조 9252억 이다'''. 당연히 두산이 삼성도 아니고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1조 9천억'''을 보존했으면 두산의 상황이 어떠했을까? 유동성 위기로 매각한 온갖 알짜 자산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룹이 이렇게 핀치에 몰리지 않는다. 또 두산인프라코어의 진짜 알짜중에 알짜인 공작기계 사업부도 1조 1천억에 매각한 후 두산 밥캣 상장으로 3천억을 끌어모았는데 여기서도 실패한 결과물이 되었다. 두산공작기계는 두산이 MBK에 판지 3년만에 2019년 M&A 매물로서 무려 2조 8천억부터 몸값이 시작하며 두산의 마음을 다시 한번 울렸으며[29] 밥캣 상장도 밥캣의 규모에 비해 그저그런 실적이었다. 그리고 맥킨지 컨설팅의 LG그룹과 더불어 컨설팅 실패의 양대산맥으로 꼽히고 있다. [30]
사내 업무적으로 결정적인 문제는 트라이시(Tri-C)라는 사내 컨설팅 조직을 만들었는데, 문제는 이 조직 출신자들이 회사의 주요 부분들을 장악했다는 것. 오너 경영진들의 친위부대와 같은 역할을 전담하다보니 실제 필드에서 벌어지는 일에 문외한이 되기 좋은데도 프론트 부서로 가면 점령군처럼 강압적인 드라이브를 걸어 조직의 사기와 효율성을 감퇴시켰다는 거다.
2015년에 당시 황금알 거위 취급받던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 동대문 두산타워에 면세점을 개장하였지만 면세점 사업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으며, 실제로 사업권을 따낸 직후 주가가 급락했다. 결국 2019년 말, 두산은 면세사업 면허를 반납하며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중앙대 특혜 논란, 인프라코어 쪽에선 영업이익을 상회하는 이자 때문에 지속적으로 적자가 누적되어 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중이고 경영문제 때문인지 사원, 대리 직급까지 비자발적 명예퇴직을 신청 받는다는 소문이 '언론에까지' 나도는 등 악재도 터지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회장이 직접 나서 철회했다.
결정적으로 박용만을 비롯한 오너 경영진들이 위장 계열사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시국이 흉흉한 지금, 정권 차원에서 칼춤을 추기 딱 좋은 대상으로 지목당할 가능성이 있다. 안습.
그래 놓고서 너무 많이 잘랐는지 퇴직자 중 일부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하고 있다.#
2018년 들어서는 두산중공업,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의 흑자전환으로 그룹 분위기가 한숨 나아졌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자회사인 밥캣과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영업이익이 1조에 육박하는 성과를 내었다. 다만 이 회사 이미지가 방산문제 때문에 워낙 좋지않고, 주가도 별 관리를 안하다보니 실적이 상당히 좋아졌음에도 개잡주 취급을 받고있다. 이는 두인뿐만이 아니라 두산그룹 자체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의 영업이익 성과는 흑자일지언정 영구채의 이자와 당기순손실이 누적되어서 당기순이익은 계속 적자였다.
https://www.google.com/amp/s/m.mt.co.kr/renew/view_amp.html%3fno=2017053014111689525
http://m.joseilbo.com/news/view.htm?newsid=392452#_enliple
이와중에 두산중공업이 2018년 3분기까지는 순이익을 올리다 갑자기 4분기에 '''순손실 5천억'''이라는 대형사고를 치고 급하게 유상증자를 하자 주가는 땅을 뚫고 내려가고 있다. 그래도 순손실의 원인이 시장에서 실패해 손실이 난건 아니고 위에 자세히 설명한 그놈의 두산건설 살리기 위해 대손충당금 설정에 의해 생긴 손실이라 한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탈석탄''' 트랜드에 의해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 두산중공업의 전망이 매우 좋지 않다. 2017년부터 3년동안 두산중공업의 주요 사업인 원전과 화력발전의 수주 감소로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규모는 10조원에 달하는 수주가 취소되면서 영업이익이 2012년과 비교해서 17%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여기에 순손실이 1조원이 넘어가니 2018년 3분기 말 두산중공업의 차입금은 무려 5조에 육박하면서 두산중공업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31] 두산건설에 큰돈을 쏟았지만, 전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가속화된 탈석탄 추세에 의해 소모된 자본과 시너지가 나서 완전히 늪에 빠져버린것이다. 2010년대 초반 두산인프라코어의 위기보다 지금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결국 2020년 2월 직원 2,600여명을 명예퇴직 시킨다고 발표했으며 3월 11일에 무려 회사 휴업까지 검토한다는 뉴스까지 나온 상황이다. #
4월 1일에는 아예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산업은행과 채권단에서는 우선 1조원을 지원해주기로 하여 잘 이루어지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채권단에서는 당연히 경영 책임을 물어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밥캣의 계열분리'''를 요구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부실 전이를 막기위한 방법. 두산중공업이 두산의 중간지주회사라서 채권단 요구대로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두산그룹은 금호와 별 다를 것이 없는 패망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32] 두산 경영진은 궁여지책으로 그룹의 돈 먹는 암덩어리인 두산건설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너무 부실한 회사여서, 살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고육지책으로 알짜 계열사까지 팔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알짜 계열사들을 모조리 팔아버렸다. 이 와중에 정신 못차리고 '''맥킨지에 구조조정 컨설팅을 의뢰했다'''. 이쯤되면 두산이 본체인지 맥킨지가 본체인지 모를 지경.
전세계적으로 친환경 트렌드 때문에 석탄발전이 사양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은 석탄 발전에 목을 매 미래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다른 에너지발전에 다방면 투자를 해야 했으나 원자력에 올인을 하였고, 이는 두산중공업의 패착이 되었다. 내수시장 아파트 건설에만 올인한 경영전략의 실패로 그룹의 돈을 막대하게 빨아먹는 암덩어리가 된 두산건설 때문에 두산은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한국과 유럽의 탈원전 추세는 두산중공업에겐 너무나 아픈 타격이었다. 두산중공업은 석탄과 원자력 말고는 주력 먹거리가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실적부진으로 두산중공업의 영업손실액이 불어나자 두산건설과 함께 그룹 전체의 위기로까지 번진게 현재의 두산 위기이다. 미국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가 말하는 두산이 무너진 이유
결국 두산중공업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매각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단독]"두산重 뺀 모든 자산 매각"..채권단, 두산과 3년간 특별약정체결
2020년 6월 16일 두산그룹의 핵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매물로 나왔다.#
2020년 12월 3일 두산의 재무구조가 나아지고 있는 상태다.[33]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이 진행된다면 두산퓨얼셀이 대신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은 1.2조의 유상증자에 성공하여 현재 그 금액은 빚을 갚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3. 역대 그룹임원
- 명예회장
- 박용곤 (1996~2019)
- 회장
4. 기업정신
4.1. 1993년 이전
- 사훈: 인화
- 경영이념: 자아의 실현, 기업의 성장, 사회에의 봉사
4.2. 1993~2012
- 경영이념: 고객은 우리의 스승이고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며, 혁신은 우리의 생활이고 인재는 우리의 보배이다.
- 사원정신: 우리는 두산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모든 일에 전문가적이고 열정적이며 긍정적인 자세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4.3. 2012~ : 두산 Credo
- 목표: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두산
- 핵심가치: 인재, 인재양성, 정직과 투명성, 인화, 고객, 이익, 기술과 혁신, 사회적 책임, 안전과 환경
5. 백과사전사업
출판사 두산동아가 두산에 합병되었다가 다시 분사되는 과정에서 두산에 남았다. 이후 YES24가 백과사전 부문을 제외하고 동아출판을 인수하였다.
6. 계열사
지배구조 출처. 두산그룹은 지배구조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다. 지주회사 (주)두산이 거의 모든 핵심 계열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어 실적을 계산하기도 아주 편하다. 연결기준의 지주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의 실적이 모두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편 두산중공업은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여기서 지주회사 두산과 두산중공업은 별도 기준으로 실적을 소개한다. (주)두산은 사업지주회사로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6.1. 주요 계열사
6.1.1. (주)두산
자체 사업군을 영위하고 있으며, 사업부문은 규모에 따라 'BG' 혹은 'BU'로 구분한다.
상술했듯 거의 모든 계열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연결기준의 실적은 곧 두산그룹 전체의 실적이다. (주)두산의 14년 별도기준 실적은 매출 1조9,954억, 영업이익 2,564억으로 사업보고서에 나온 사업부문의 실적을 합친 것과는 차이가 있는데, 이는 다른 사업분야가 있거나 내부거래의 중복 등을 제거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34]
이하는 그룹 홈페이지의 계열사 설명란 요약.
- ㈜두산 전자BG
전자제품의 필수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의 주요소재인 동박적층판(CCL)과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인 OLED 소재(형광/인광용 발광층 및 공통층)를 생산 공급한다.
사업영역: 동박적층판, 기판소재, 방열기판, 매스램, OLED 재료
사업영역: 동박적층판, 기판소재, 방열기판, 매스램, OLED 재료
- ㈜두산 산업차량BG
엔진식 지게차와 전동식 지게차를 생산하고 있다.
사업영역: 엔진지게차, 전동지게차, 지게차 부품 및 서비스
사업영역: 엔진지게차, 전동지게차, 지게차 부품 및 서비스
- ㈜두산 모트롤BG
건설 중장비용 유압기기 및 방위산업용 유압부품을 생산하였으며,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ISB 분야의 부품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중이다.
사업영역: 유압기기, 방위산업
사업영역: 유압기기, 방위산업
- ㈜두산 퓨얼셀 파워BU
국내 최초 건물/주택용 연료전지 핵심 소재 및 시스템기술을 기반으로 연료전지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사업영역: 신재생에너지, 연료전지 시스템
사업영역: 신재생에너지, 연료전지 시스템
- ㈜두산 디지털이노베이션[35]
Digitalization 서비스, Application 개발 및 운영, Platform/IT Infra구축 및 운영을 포함한 Total IT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영역: 컨설팅, IT 시스템 구축/운영, IT 인프라 운영
사업영역: 컨설팅, IT 시스템 구축/운영, IT 인프라 운영
- ㈜두산 유통BG
동대문의 랜드마크 쇼핑몰인 두타를 운영하고 있다
사업영역: 패션 전문몰
사업영역: 패션 전문몰
6.1.2. ISB[36]
산업의 기초 소재인 주단조 제품, 원자로, 보일러, 터빈, 발전기 등 발전설비를 비롯해, 담수를 생산하는 해수담수화 설비 및 수처리 설비, 운반 하역 설비 등을 제작해 국내외 플랜트 시장에 공급하는 글로벌 EPC 전문 기업이다. 발전, 수처리, 주조 및 단조, 건설, 운반설비, 그린에너지 등의 사업을 영위한다. 앞서 언급했듯 그룹 내 주력 기업인 인프라코어, 건설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어서 중간 지주회사 역할도 한다. 14년 별도 기준 매출은 5조 4,968억, 영업이익은 2,200억.[37]
두산그룹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으나 무산되고 결국 한국 코스피 시장에 기업공개를 결정했는데, 수요예측에서 한차례 무산되는 통에 원래 2조 5000억원을 끌어서 두산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탈출하려던 것이 수요예측 실패로 한차례 공모를 취소하면서 겨우 8,800억원만 조달하게 되었다. 2016년 11월 말 코스피시장에 상장을 완료했지만 자금조달에 실패해버려서 여전히 두산그룹의 재무상태를 압박하고 있다. 참고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연결대상 자회사이다.
두산그룹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2. 아파트 브랜드로는 두산 위브가 있다. 두산건설에서 건설한 대표적인 건물로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마린시티에 건설한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80층짜리 해운대 두산위브 더 제니스가 있다. 매출구성은 국내건설 65.73%, 해외건설 등 27.69%, DVH 3.21%, 두산큐벡스 1.49%, 기타 2.73%, 연결조정 -0.84%로 구분된다. 연결기준 14년 매출은 2조 3,639억, 영업이익 1,430억.
- 두산메카텍
반응기, 압력용기, 타워&컬럼, 열 교환기 등의 CPE(Chemical Process Equipment) 제품 제작 회사이다.
- 두산로보틱스
고성능 토크센서 및 충돌 감지력을 탑재한 협동로봇을 제작한다.
- 두산퓨얼셀
2019년 10월 (주)두산 연료전지 사업부문이 분할 설립된 계열사로, 발전용 연료전지를 제작한다.
(주)두산 산하인 (주)두산 퓨얼셀 파워와는 별개의 회사이다.
(주)두산 산하인 (주)두산 퓨얼셀 파워와는 별개의 회사이다.
-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
물류 센터 설계 및 컨설팅, 물류 프로세스 제어 및 관련 소프트웨어/자동화설비를 통합 공급한다.
6.1.3. 소비재/기타 기업
6.1.4. 스포츠단
한국프로야구 출범 첫 해인 1982년 1월 최초로 창단한 프로야구단이다.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유망주와 신진 선수 육성에 꾸준히 힘쓰고 있다. 2012년 두산그룹 위기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논란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두산그룹이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수조원의 돈을 끌어쓰면서 구조조정으로 임원급 부터 신입사원까지 자르는 조처를 단행하는 동안 베어스는 수십억의 연봉협상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이에 야구팬이 아닌 일반인들은 소비재기업도 아닌 회사가[38] 도대체 뭐하러 야구단에 이 돈을 쏟으며 신입사원은 잘라버리냐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참고로 두산 채권단의 요구에도 오너일가가 절대 매각은 없다고 완강히 반대 중이다.
원래는 강원 지역 소주 업체인 경월에서 창단한 팀으로, 1993년 경월을 두산그룹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같이 넘어 왔다. 핸드볼팀은 두산건설을 거쳐서 지금은 (주)두산베어스 소속.
6.1.5. 부속기관
- 연강재단
두산연강재단은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연강(蓮崗)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을 기리고자 1978년 설립되었으며, 장학사업, 연구비지원, 교사해외학술시찰, 교육복지, 도서보내기 및 문화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7년 두산 창립 111주년을 기념하여 문을 연 두산아트센터는 연강홀, Space111, 두산갤러리를 통해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지원한다.
- DLI
DLI(Doosan Leadership Institute)는 두산의 글로벌 리더 양성 전문기관으로서, 워크샵, 포럼, 세미나, 프로젝트 등 기업철학과 가치가 반영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인재육성 활동을 통해 그룹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직장 보육시설인 사내어린이집으로서,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 사업장이 있는 인천 중구에 ‘두산 미래나무어린이집’ 개원을 시작으로 이후 경남 창원, 서울 종로, 서울 강남, 전북 군산 등 주요 계열사가 있는 지역에 어린이집을 열었다. 관련기사 5~7세(만 3~5세, 각 '두리반', '우리반', '산이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과 음악, 체육, 언어, 수학, 과학 등을 교육한다. 상주 원어민 교사와 함께 놀면서 영어를 배우는 통합 영어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두산그룹 어린이집은 2014년엔 근로복지공단이 주최하는 ‘직장어린이집 우수 보육프로그램 공모전’에서 보육프로그램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고 2016년에는 공간환경디자인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두산중공업의 베트남법인 두산비나도 2012년 ‘두산드림 유치원’을 개원했다.
6.2. 과거 계열사
- 두산인프라코어 : 크게 공작기계, 건설기계, 엔진의 세 분야로 나뉜다. 매출의 75%가 건설기계에서, 25%가 나머지 사업분야에서 비롯되었다. 연결기준 14년 매출 7조 6,886억, 영업이익 4,530억. 다만 공작기계 사업부는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해 약 1조원에 MBK파트너스에 매각했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는 좀처럼 해결이 안됐고 결국 인프라코어 자체가 매각대상으로 나왔다. 결국 2020년 12월 10일, 현대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기로 결정하였다.
- 두산DST: 2016년 한화그룹에 매각된 후 '한화디펜스'로 변경했으나, 2019년 한화지상방산에 합병됨.
- BNG증권: 2015년 청산됨.
- OB맥주: 1998년 구 법인이 지주회사 (주)두산으로 출범하면서 물적분할한 후, 벨기에 인터브루에 일부 지분이 매각되면서 2001년 계열 분리됨.
- 금강융단: 1975년 해산됨.
- 대관농산: 1972년 해산됨.
- 대진전자: 1985년 두산컴퓨터에 합병됨.
- 대한주류: 2002년 (주)두산에 합병됨.
- 덴쯔영앤드루비컴코리아: 오리컴과 일본 덴츠, 미국 영앤루비컴과의 합작사로, 2003년 청산됨.
- 동방여운: 1972년 설립된 관광업체로, 1978년 정리됨.
- 동아인쇄공업: 1996년 동아출판사에 합병됨.
- 동현엔지니어링: 2011년 두산모터스에 합병됨.
- 두산개발(1차): 1981년 (주)합동에 합병됨.
- 두산개발(2차): 1946년 설립된 합동통신사를 모태로 했으며,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뉴스통신사업을 신규업체 연합통신에 넘긴 뒤 합동-두산개발-두산유업-두산농산 등으로 바뀌다가 1998년 OB맥주 등과 합쳐져 (주)두산으로 통합됨.
- 두산개발(3차): 구 덕수개발-덕수종합개발-동현건설. 1997년 두산농산에 합병됨,
- (구)두산건설: 2004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에 역합병됨.
- 두산경월: 1998년 OB맥주 등과 함께 (주)두산으로 통합됨.
- 두산기계: 이하 동일.
- 두산동아 (현 동아출판): 2014년 YES24에 매각됐으나, 두산백과 사업은 (주)두산에 존속함.
- 두산렌탈: 1995년 동아출판사에 합병됨.
- 두산메카텍: 2010년 두산건설에 합병됨.
- 두산모트롤: 2010년 (주)두산에 합병됨.
- 두산모트롤홀딩스: 이하 동일.
- 두산백화: 1998년 OB맥주 등과 함께 (주)두산으로 통합됨.
- 두산산업차량: 2013년 (주)두산에 합병됨.
- 두산상사: 1896년 세워진 박승직상점을 모태로 한 종합상사. 1998년 OB맥주 등과 함께 (주)두산으로 통합됨.
- 두산생물자원: 가축용 배합사료 브랜드 ‘백두사료’를 전문으로 생산, 판매하는 축산전문기업이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식품 관련 기업으로, 2017년 3월 10일 지분 100% 353억에 동원그룹에 매각되었다.
- 두산수퍼네트워크: 이 방송국은 독립법인이 아니라 오리콤 산하 사업부로, 1995년 개국 이래 두산동아 산하였다가 이듬해 오리콤을 거쳐 1998년 재능교육으로 매각됨.
- 두산씨그램 (현 디아지오 코리아): 2000년 미국 씨그램 사에 매각됨.
- 두산엔지니어링: 2001년 (구)두산건설에 합병됨.
- 두산엔진 (현 HSD엔진): 디젤 엔진 생산 전문 기업으로, 선박용 중.저속 디젤엔진 생산, 디젤발전소 건설과 운영, 엔진부품 판매와 서비스한다. 2018년 소시어스-웰투시 컨소시엄에 매각됨.
- 두산요업: 1982년 동산토건에 합병된 후 1985년 사업부까지 매각됨.
- 두산인터내셔널코리아: 건설장비 수입/유통업체로,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에 합병됨.
- (구)두산전자: 구 한국오크공업. 1998년 OB맥주 등과 함께 (주)두산으로 통합됨.
- (신)두산전자: 구 코오롱전자. 1999년 (주)두산으로 합병됨.
- 두산정보통신: 인터넷 서비스 '인터피아' 운영사. 1998년 인터피아 서비스를 아이네트에 넘기고 OB맥주 등과 함께 (주)두산으로 통합됨.
- 두산제관: 1998년 두산유리에 합병됨.
- 두산종합식품: 구 동방식량공업-천일곡산공업-두산곡산. 즉석김치 '종가집' 판매업체로 알려짐. 1996년 두산음료에 합병됨.
- 두산음료: 서울/강원지역 코카콜라 보틀링 업체. 1997년 OB맥주에 합병됨.
- 두산창업투자: 1995년 동아출판사에 합병됨.
- 두산캐피탈: 구 연합캐피탈. 2015년 미국계 사모펀드 JC캐피탈에 팔린 후 2016년 애큐온캐피탈에 합병됨.
- 두산컴퓨터: 1988년 사업부문을 신규법인 DEC코리아에 넘기고 법인이 두산산업에 합병됨.
- 두산콘프로덕츠코리아 (현 인그리디언코리아): 구 콘프로덕츠코리아. 2001년 계열분리 후 2005년에 지분매각됨.
- 두산타워: 구 두산타워상가관리. 2005년 (주)두산에 합병됨.
- 두산테크팩 (현 테크팩솔루션): 2002년 (주)두산에 합병된 후 2008년 사업부문이 MBK파트너스로 넘어감.
- 두산환경산업: 1995년 동아출판사에 합병됨.
- 두타몰: 2018년 (주)두산에 합병됨.
- 렉스콘: 2014년 두산건설에 합병됨.
- 베리나인: 1994년 OB씨그램에 합병됨.
- 비스톰: OLED 제조업체로, 2005년 (주)두산에 합병됨.
- 빅앤트: 광고기획사로, 2017년 청산됨.
- 삼화왕관: 1994년 세우회로부터 인수했으나, 2010년 (주)금비에 매각됨.
- 새재개발: 이화령터널 운영사로, 2007년 청산됨.
- 엔셰이퍼: 2013년 (주)두산에 합병됨.
- 세왕화학: 2000년 (주)두산에 합병됨.
- 정공사: 1977년 인수된 후 1981년 두산기계에 합병됨.
- 카스맥주: 2001년 OB맥주에 합병됨.
- 퓨얼셀파워: 2014년 (주)두산에 합병됨.
- 한국네슬레 (현 롯데네슬레코리아): 1991년 스위스 본사측의 증자로 사실상 경영권을 잃고 1996년에 지분매각함.
- 한국도서보급 (현 티알엔): 2003년 태광그룹에 매각됨.
- 한국맥아공업: 1972년 동양맥주에 합병됨.
- 한국병유리: 1979년 대한유리공업에 합병됨.
- DFMS: 구 두산모터스. 혼다 수입판매 및 건물용역업체로 2012년 (주)두산에 합병됨.
- DIP홀딩스: 2014년 (주)두산에 합병됨.
- IK디벨롭먼트: 2001년 두산기업에 합병됨.
- IK엔터프라이즈: 구 일경통산. 2002년 (주)두산에 합병됨.
- SRS코리아: KFC 및 버거킹 한국사업 담당사로, 2014년 매각됨.
6.3. 지분관계사
- : 1999년 하나은행과 합병됨.
- : 1996년 지분매각.
- : 이하 동일.
7. 사건사고 및 논란
박승직상점 시절, 유해성이 이미 해외에 알려져있던 납이 든 화장품을 팔았던 것을 비롯해 친일파 행적과 위안부 모집,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전차 개발비 줬더니 그 돈으로 언플하면서 자사 굴착기 개발했던 K-2 흑표/파워팩 논란 등. 역사가 오래되었기에 사건사고 몇 개 있는 것이야 당연하다지만 원체 굵직한 사건사고들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7.1. 형제의 난
2005년, 어른의 사정으로 가족회의(...)에서 회장직에서 축출된 박용오 전 회장이 박용성 후임 회장, 박용만 당시 그룹 부회장의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막내 박용욱의 이생그룹에 일감 몰아주기 등의 부정행각을 폭로하고, 반대로 나머지 형제들이 박용오의 회장 시절 비리에 대해 맞폭로한 사건.
7.2. 신입사원 명예퇴직 논란
해당 문서 참조.
7.3. 명예퇴직 거절 직원 면벽(面壁) 책상 배치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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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1일,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이 대기발령을 내린 직원에게 스스로 직장을 떠나도록 종용하는 방법 중 하나인 ‘면벽(面壁) 책상 배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관련기사)
두산모트롤은 지난해 11월 사무직 20여 명을 대상으로 명퇴 신청을 받았다. 대상자 중 40대 직원 이모(47)씨는 명퇴를 거절하자 두산모트롤은 곧바로 그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 이후 회사는 해당 직원의 자리를 동료 선후배가 멀리서 보이는 사무실 구석에 사물함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배치했다.
두산모트롤은 대기발령과 함께 해당 직원에게 ‘인사대기자 준수사항’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르면 대기발령을 받은 사람은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1시간의 점심시간과 15분씩 두 차례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7시간 30분 동안 책상에서 대기해야 한다. 10분 이상 자리를 비우려면 팀장의 허락을 받도록 했다. 졸아선 안 되고 통화는 물론 인터넷도 활용하지 못하게 했다. 사보를 포함한 서적조차 읽을 수 없고 어학 공부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달리 말하면 '벽만 보고 있으라.' 과장이 아니며, 다른 직원들이 키보드 두드리며 열심히 일하다가 '명퇴를 거부하고 저 꼴이 된 사람' 을 힐끔힐끔 쳐다보곤 하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서도 안 되고 벽만 봐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이 짓거리를 당사자가 어떻게 한두 달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싶다.
회사가 컴퓨터를 지급하지 않자 해당 직원은 소명자료라도 만들겠다며 회사로 개인 노트북을 들고 왔다. 그러자 회사는 ‘보안규정 위반’이라며 그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에 해당 직원은 지역 노동위원회에 부당 대기발령 구제신청을 했다. 회사는 노동위원회에 “재교육을 위한 조치”라고 답한 뒤 해당 직원을 대상으로 한 1인 교육을 실시했다. 면벽 책상 배치 후 2개월이 지난 뒤였다. 교육 직후엔 경력직으로 입사한 이 직원을 경력과 무관한 직무로 발령 냈다. 결국, 해당 직원은 두산을 상대로 고소했다.
그리고 대기발령을 내리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대기발령 시 임금의 70%만 지급’하는 것으로 사규를 긴급 변경했다. 이전까진 대기발령을 받아도 기존 임금 손실이 없었는데 갑자기 사규를 바꾼 것이다.임금 손실도 문제이지만, 퇴직금의경우 퇴직 직전 3달치의 월급을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한달 버틸때마다 퇴직금이 10%씩 날아간다. 차부장급의경우 퇴직금이 억단위기 때문에 한달에 천만원 이상 날리는 샘. 아이러니하게도 이 계약서에 싸인을 받아간 사람들은 기업문화 담당자(두산웨이 CA)들이었다고 하더라
7.4. 두산그룹 창업주 박승직의 친일 행위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저격으로 사망했을 때, 창업주 박승직(미키 쇼우쇼크(三木承稷))은 이등박문을 추도하는 ‘국민대추도회’의 발기인(총 41명) 및 위원(총 100명)으로 참여했다. 이 국민대추도회는 한성부민회가 주최하고 각 단체가 연합하여 추진한 것으로, 한성부민회는 1907년 10월 일본 황태자의 ‘한국시찰’을 환영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비상설단체인 ‘대일본(제국)황태자봉영한성부민회’를 모체로 조직되었고 이듬해 유길준이 주도해 한성부민회로 재조직되었다고 기록돼 있다.(이용창,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참조).
박승직의 친일행적은 일제 치하 내내 계속되었는데 1919엔 박영효, 최진 등이 만든 친일단체인 조선경제회 이사로 참여하였고 1922년엔 조선실업구락부 발기인으로 참여해 평의회 임원 등을 지냈다. 조선실업구락부는 1920년 유력 경제인들이 친목도모와 일선융화(日鮮融和)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다. 박승직은 또한 1924년 4월 반일운동 배척과 일선융화를 표방하던 친일단체 동민회(同民會)의 평의원에 선임되었다고 친일인명사전은 기록하고 있다.
1938년 1월 1일 신년을 맞이해 매일신보가 마련한 ‘조선인의 진로와 각오’라는 주제의 좌담회에서 박승직은 “중일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중국에 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조선인들이 보여준 거국일치의 ‘애국정신’에 찬사를 보냈다. 이어 조선통치에 있어 조선총독부의 시정(施政)이 적절하므로 개선이 전혀 필요없음을 강조했다”고 되어 있다. 박승직은 같은 해 2월 조선지원병 제도 제정축하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박승직은 매일신보에 지원병 제도 실시를 축하하는 담화를 통해 ‘지원병 제도 실시는 내선일체의 구현이며, 조선인도 제국 신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갖추게 되었다’며 환영했다.
친일인명사전은 박승직이 같은 해 8월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평의원에 선임되었고, 국민정신 총동원 경성부연맹 상담역을 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1938년 총동부의 종용 하에 동아일보 김성수, 조선일보 방응모, 이화여대의 김활란 등이 결성한 전시동원 선전조직으로 이듬해에 공표된 국민징용령에 맞춰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모집 등에 앞장섰다. 박승직은 이 조직이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확대개편된 뒤인 1940년 10월에도 평의원을 맡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41년 12월엔 경성부 총력과를 직접 방문해 해군 국방헌금으로 1만원을 헌납했고 1943년에도 두차례에 걸쳐 방공감시대 위문금과 국방헌금을 헌납했다.
8. 기타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두산동'''이 있으며 한자까지 斗山으로 똑같지만, 두산그룹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수성못역이 있는 교차로 이름도 "두산오거리"다. 다만, 두산오거리에서 한참한참 북쪽의 범어네거리 동쪽에 범어 두산위브 더 제니스아파트[39] 가 있다. 강원도 강릉시에도 '''두산동'''이 있고 한자까지 斗山으로 똑같지만, 마찬가지로 두산그룹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 또한,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에는 서울두산초등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초등학교도 있지만, 이 학교 역시 한자만 같을 뿐 아무 상관도 없다.
간체자 중국어에서 斗山은 '산과 싸우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간체자를 제정하면서 鬪(싸울 투)를 斗(말 두)에 병합했는데, 현대에는 '말'이라는 단위가 거의 쓰이지 않으므로 간체자 중국어 화자들은 斗를 보면 기본적으로 '싸우다'로 인식한다. 다만 표기로는 구별할 수 없지만, 말은 3성 싸우다는 4성이므로 발음으로는 구별할 수 있다.
2016년 제작된 두산그룹 광고는 BGM만 바꾼 채 2년째 우려먹고 있다. 2016년 당시 광고, 2018년 BGM 변경 광고.
9. 관련 문헌
[1] 2020년 기준.[2] 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 인프라 구축 사업.[3] 두산의 사옥이면서 쇼핑몰의 이름이기도 한 경우이다. 줄여서 두타라고 부른다.[4] 참고로 두산그룹은 장남 박용곤 전 회장을 시작으로 차례로 차남 박용오 - 3남 박용성 - 4남 박용현 - 5남 박용만이 회장직을 맡아 왔다.[5] 참고로, 간체자 중국어에서 斗山은 '뫼와 싸우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간체자를 제정하면서 鬪(싸울 투)를 斗(말 두)에 병합했는데, 현대에는 '말'이라는 단위가 거의 쓰이지 않으므로 간체자 중국어 화자들은 斗를 보면 기본적으로 '싸우다'로 인식한다. 鬪山(투산)?다만 표기로는 구별할 수 없지만, 말은 3성 싸우다는 4성이므로 발음으로는 구별할 수 있다.[6] 현 (주)두산은 구 OB맥주가 모태이며, 박승직상점을 모태로 한 두산상사는 1998년 소멸법인으로서 합병됐다.[7] 그러나 박가분의 재료는 다름아닌 납이였다. 사실 예전에는 납이나 수은같은 중금속이 화장품으로 쓰이던 시대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8] 일본인 주주 20명에 한국인 2명을 형식상으로 넣은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런 행적은 훗날 친일행위자로 의심받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9] 프랑스 유가공업체인 '다논(Danone)'의 국내 판매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었다.[10] 물론 포스코, STX 등 이미지광고 쏟아내는 다른 중공업 회사들도 마찬가지.[11] 당시 한국중공업의 주가와 액면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매입한 것이긴 하다. 그리고 기업의 자산이란 것은 자기자본에 부채를 더한 개념이고, 자산과 기업가치는 별개의 문제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총자산 5조 원 중에서 순수 자기 자본은 1조 원이고 부채는 4조 원인데,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부채 상환을 감당하기 어렵다면??[12] 전세계에서 화력발전 원천기술을 가진 단 3개 회사중 하나.[13] 북미지역 소형중장비시장에서 밥캣은 상당한 네임드다.[14] 순환유동층 보일러, 탈황설비 등 친환경 발전 원천기술을 보유.[15] 연성회로기판(FCCL, Flexible CCL) 등 동박적층판(CCL, Copper Clad Lamintes)용 동박 제조 기술을 보유.[16]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 보유.[17]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 이하 ESS)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보유.[18] 학과 구조조정이라고 해서 인문학 계열을 대폭 줄였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 사실 구조조정의 대부분은 안성캠퍼스를 본교화시키면서 중복학과를 통폐합한 것이고, 서울캠퍼스의 인문대학에서 폐과된 것은 한 학부의 세부전공 하나뿐이다. 참고로 서울캠퍼스 인문대의 정원은 오히려 늘어났다.[19] 일례로 그 이전까지는 사실상 똑같은 내용을 교육하는 사회복지학과,아동복지학과,청소년학과 3곳이 병립했다. 과거부터 학과 간의 기득권 문제로 번번히 통합이 무산되었는데 2010년 사회복지학부로 전격 통합하였다.[20] 아시아문화학부의 경우 일어일문학과, 중국어학과, 민속학과가 합쳐지고 국어국문학과는 제외되었고, 유럽문화학부의 경우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노어학과가 합쳐지고 영어영문학과는 제외되었다. 줄어든 정원은 경영경제대학에 배정되었다.[21] 반면 운동부에 대한 투자는 이전만 못하다는 평. 전통의 강호이자 2010년 대학 농구를 평정했던 농구부는 09학번 5인방(장재석, 임동섭, 유병훈, 김현수, 정성수)이 졸업하는 2013년부터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고 실제로 2013년에는 6강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했다.[22] 2012년에는 USB 메모리가 채용설명회 기념품으로 엄청 퍼졌다. 채용설명회 10번을 가면 4~5번 정도는 USB를 받아 처치곤란이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 두산정보통신, 스마일게이트, 나비스오토모티브가 16GB짜리를 주었다. 8기가짜리도 많았고 오히려 4기가짜리가 적었다.[23] 참고로 고려대학교에 박용만 회장, 성균관대학교에는 두산중공업 한기선 사장, 인하대학교에는 두산인프라코어 김용성 사장이 직접 왔다.[24] 그래도 주류부분은 남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두산이 체질전환에 성공했다고 여겨질 때는 무슨 소리냐는듯이 묵살되었지만 소주 부분을 가져간 롯데주류와 맥주부분을 가져간 AB인베브가 잘나가는 것을 보면 결과론적으로는 안 파는게 맞았다. 주류는 안전사고가 없는 한 꾸준한 실적을 내기 때문이다.[25] 그냥 감자도 아니고 '''90%'''다. 한마디로 말해서 두산건설 자본이''' 1/10'''로 토막이 났다는 것이다.[26] 그것도 미분양 물량을 그룹 임직원들에게 밀어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막아보려 했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 2010년대에 제대로 된 메리트도 없는 곳에 누가 가려고 할까?[27] 논현동 사옥을 세일앤리스백으로 매각해서 자금을 확보하려 했는데, 두산분당센터가 지어지면서 두산건설이 두산분당센터에 임대차 계약을 새로 맺어 얻은거 없는 삽질이 되었다. 사옥을 매수한 하나은행과 임대차 해지는 답없으니 두산건설이 다시 논현동 사옥을 하나은행에게 사서 되팔아야 하는 삽질이 진행중이다.[28] 더 갑갑한 점은 두산건설의 순차입금이 2020년 현재 6천억에 육박하며 이 때문에 가뜩이나 실적 안 좋은 두산중공업에 부담이 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29] 두산을 울린 M&A 매물은 역시 뭐라해도 OB맥주이다. 박씨 일가는 OB맥주를 적절하게 잘 팔았다고 인터뷰했지만 OB맥주가 두산에게 팔리고 난 뒤 6조 2천억에 실거래로 팔리고, 현재 몸값이 '''9조원'''을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속이 안 아플수가 없다. 한진의 S-OIL 지분 매각과 버금가는 밑지는 거래.[30] 유동성 위기는 두산그룹이 2000년대 초반 중공업 중심으로 체질변화를 꾀하며 인수했던 기업들의 실적부진에서 비롯된 탓에, 중공업 중심으로의 체질변화를 주문했던 맥킨지는 20여년 전의 컨설팅 결과 때문에 두산 위기의 주범 내지는 종범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두산인프라코어 구조조정 위기 ‘일파만파’[31] 더 골때리는 점은 이 상황에서도 두산건설 살리겠다고 유상증자 했다.[32]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의 자산이야 많지만 빚잔치로 쌓은 자산일뿐이다.[33] 구조조정도 거의 완료되었다.http://www.newspim.com/news/view/20201203000892[34] 사실 두산 뿐만 아니라 여러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실적을 사업부문별로 쪼개서 살펴보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업이라, 전체 실적과 괴리가 심한 경우가 아주 많다.[35] 2018년 '(주)두산정보통신'에서 사명을 변경, 새로 부임한 그룹 CDO 겸 BU장인 형원준 사장의 Digital Transformation 강화 영향으로 보인다.[36] 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 인프라 구축 사업.[37] 2010년 9월 9일, 사우디아라비아 전력청(SEC)으로부터 라빅6 화력발전소 프로젝트 공사 수주통보서를 받았다. 수주금액은 34억달러(약 4조원)로 한국 회사가 해외에서 수주한 단일 화력발전 프로젝트로는 사상 최대 규모. 이 사업은 설계, 기자재 제작, 시운전 등을 모두 포함하는 일괄수주계약(EPC) 형태로 50개월간 진행한다. 다만 두산중공업이 EPC를 하고있긴 하나 시행 초기라 그런지 매끄러운 진행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베트남의 몽중2 프로젝트와 함께 회사에서 추진 중인 양대 초대형 프로젝트. 두개 중 하나만 실패해도 정말 회사가 위태해질지도 모른다.[38] 야구단은 보통 소비재기업이 기업 홍보를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롯데. 베어스가 과거 오비시절 소비재 중심이던 두산이 이를 홍보하기 위해 창단 됐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이상 이정도로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39] 前 야구선수 이승엽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