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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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왕국
འབྲུག་རྒྱལ་ཁབ་[1] | Kingdom of Bhutan
'''
[image]
[image]
'''국기'''[2][3]
'''국장'''
'''국가'''
<colcolor=#000> 전룡의 왕국
'''수도'''
팀부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보호국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84위'''(2020년)[혼합된체제]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འཇིགས་མེད་གེ་སར་རྣམ་ རྒྱལ་དབང་ཕྱུག
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총리'''
로타이 체링[4][5]
'''통화'''
눌탐
'''공용어'''
종카어, 영어
'''면적'''
38,816km²[6]
'''인구'''
779,900명(2021년) | 세계 164위
'''인구밀도'''
km²당 19.9명
'''군대'''
부탄군
'''GDP'''
PPP 5,860,000$(2014),
GDP 명목 22억 900만 $(2015)
'''1인당 GDP'''
명목 2,837$(2015)
'''시간대'''
UTC +6:00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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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지형도 보기
1. 개요
2. 국기
3. 역사
3.1. 고대~근대사
3.2. 현대사
4. 정치
4.1. 민주화 그 후
4.1.1. 선거제도
5. 자연
6. 경제
8. 사회
8.1. 치안
9. 교통
10. 외교
11. 문화
13. 스포츠
14. 종교
15. 관광 정보
16.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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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중국 사이에 낀 남아시아의 작은 산악 국가. 이 나라의 북쪽의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중국 티베트 자치구와 접해 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부탄(Bhutan)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의 끝"이란 뜻인 "보따-안따(भोट-अन्त)"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앞의 보따(भोट)는 고대 티베트어티베트를 가리키던 말인 "보드(བོད་)[7]"이며, 티베트의 끝이라는 이유는 말 그대로 티베트 고원의 남쪽 끝에 있었기 때문. 부탄인들 스스로는 용의 나라라는 뜻으로 쭈위(འབྲུག་ཡུལ་)라고 부른다. 수도는 팀푸(Thimphu). 팀부(Thimbu)라고도 한다. 면적 38,816km2, 인구는 약 81만 명(2018년). 종교티베트 불교가 대다수이며 네팔계들이 힌두교도 믿는다. 티베트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최후의 티베트계 독립국가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2. 국기


부탄의 국기는 짙은 노란색과 오렌지색이 조합을 이룬 바탕에 동양의 용이 그려진 국기로 용이 발마다 구슬을 잡으며 날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란색은 나라의 영광, 광명을 상징하고 동시에 왕가의 색이기도 하며 오렌지색은 불교를 상징한다. 무늬로 그려진 동양의 용은 부탄의 용맹, 충성, 강인, 단결, 웅비함을 상징하며 발마다 잡고있는 구슬은 나라의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참고로 국기에 그려진 용은 백룡(白龍)이며 부탄이라는 나라 이름도 종카어로 '''용의 나라'''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용이라는 자체가 파괴와 강포함으로 인식하지만 동양에서는 용을 신성시하는 것이 다르다. 한국에서도 조선왕조 당시에 동양의 용 무늬가 그려진 용기(龍旗)와 용고(龍鼓)를 쓰고 국왕의 안면을 용안(龍顔), 국왕의 복장을 곤룡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청나라 국기와도 비슷하다.

3. 역사





3.1. 고대~근대사


지진과 화재로 인해 역사적인 사료가 될 문서들이나 역사서들이 대거 소실당해, 19세기 이전의 역사는 개괄적인 파악이 가능한 선에 머무른다. 부탄 현지에선 부탄에 처음 정착한 민족을 샤르초프인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인구조사를 할 때는 같은 한장어족이고 불교가 대다수라는 이유로 보티야인과 샤르초프인을 그냥 같이 묶고 네팔계만 따로 분류할 때도 있다. 그러나 보티야인들과 같은 티베트 계열이 중국어파와 분리된 것은 이미 선사시대에 있었던 일인 반면 샤르초프인들은 기원전 2세기에야 분리되었기 때문에[8] 그 사이 많은 차이가 생긴 데다가, 인도의 영향으로 아삼어를 모국어로 쓰는 샤르초프인들도 있기 때문에 보통은 샤르초프인도 따로 집계하는 일이 더 많다. 그런데 티베트 쪽의 역사 기록을 보면 고대로부터 부탄 땅을 로몬(Lhomon, 남쪽의 어두움)이나 몬율(Monyul, 어둠의 땅)이라 부른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샤르초프인들이 정착하기 전 이미 벵골인들이 선주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방향으로 딱히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7세기에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감포가 부탄에 2개의 사찰을 건립하였으며, 9세기 경 인도의 승려 파드마삼바바가 부탄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이러한 티베트인들의 남하는 꾸준히 이어졌다. 이외에도 구전되어 오는 전설이나 야사들에 따르면, 몽골에서 온 군사들의 침입에 당시 부탄을 아끼던 공주가 항복을 거부하다 죽으면서 늪지 거머리가 되어 몽골군을 막아주었다고 한다. 전설의 진실여부를 떠나 외부 세계 침략자들도 이 산악지대를 공격해도 이로부터 별달리 얻을 이득이 없었기에 부탄의 땅은 늘 평화를 유지했다고 한다. 때문에 옛날 몽골 제국이 침략전쟁을 벌일 때와 청나라만주족이 티베트를 침공하였을 때 다른 유목민족들이 티베트를 점령하면서 일부 티베트인들이 부탄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인도나 중국의 기록들에는 15~16세기에는 왕과 승왕(僧王)이 따로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인 권력을 누렸으며, 지방 영주들이 자치적으로 산악령에서 권력을 가지는 봉건제와 같은 정치적 구조를 가졌다고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1627년에 포르투갈인 예수회 선교사 이스테방 카셀라(Estêvão Cacella)와 주앙 카브랄(João Cabral)이 부탄을 지배하던 까규빠[9]의 승려이자 영주인 응아왕 남걀(Ngawang Namgyal)을 알현하고 망원경을 바쳤으며, 티베트의 침공에 대비하는 차원의 군사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응와왕 남걀은 이를 거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저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가톨릭 개종 및 가톨릭 선교 자유화와 같은 종교적인 조건을 내세웠으니 거절했던 것. 그리고 남걀은 이런 지원 없이도 티베트 침공을 막아냈다.
17세기 경, 티베트의 5대 달라이 라마 아왕롭상갸초는 전 티베트영역과 그영향력하에있는 작은 왕국들을 통합하려는 목적으로 1629년, 1631년, 1639년, 1647년에 걸쳐 무려 4차례나 부탄을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악이 받친 티베트는 몽골의 지원을 받아 1714년에 또다시 부탄을 공격했으나, 또 실패하였다. 지금도 부탄에는 티베트와 싸우던 요새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로써 결과적으로 티베트와 부탄은 완전히 갈라지고 말았다. 물론 부탄 또한 같은 티베트계 국가인 옆동네 시킴을 몇 차례 침공한 전력이 있으니 완전한 피해자는 아닌 셈이다. 게다가 '''외세인 영국군과 함께''' 동족인 티베트로 쳐들어간 적까지 있다. (....) 사실 다른 티베트계 왕국인 무스탕 왕국 역시 네팔의 편에서 티베트와 싸우다가 네팔로 편입되기도 하는 등의 일도 있었다.
1864년 부터 일어난 앵글로 부탄 전쟁에서 패배하고 영국에 일부 영토를 할양한다.
1903년 티베트에 영국과 같이 침공한다.
1907년에 동부지방 영주이던 '''우겐 왕축'''이 절대군주제를 선언하며 왕축 왕조가 세워졌다. 이후 친영정책을 펴며 영국의 지원을 받아 빠르게 지방영주세력이 차지하던 영토를 통합해나가며 현재의 부탄영역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영국이 부탄의 수장격이었던 우겐왕축을 국왕으로 정식공포하면서 비로소 세계사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대신 1910년 외교권을 영국에 양도하며 보호령이 된다.

3.2. 현대사


1949년 8월 8일에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사실 부탄의 영토 안에는 별다른 자원이 없기 때문에 인도가 겪은 것과는 달리 착취가 없었고, 따라서 반영 감정은 그리 없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일부 영국인들이 각박한 사회가 싫어서 조용하게 살고자 찾아오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1800년대 말에 서방의 나라들이 아시아의 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때, 부탄의 지형적인 요건은 영국 육군 전진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험준한 산악 지형은 공격하기는 어렵지만 지키기는 쉽다.
종교적으로도 같고, 민족도 티베트계들이 대다수인 부탄이었기에 이웃 티베트를 큰형님 나라로 우대하였으나, 티베트가 중국군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면서 시킴이나 같은 라다크 지방과 남티베트 일대의 다른 티베트계 작은 왕국들이 혼란에 빠진 끝에 친인도측에서 집권하였다가 인도를 불러들여 인도에게 합병[10]된 것과 달리, 부탄은 독립국을 유지하였다. 더하여 이전 영국 식민지 시절 때부터 인도에게 외교권을 넘겨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지만, 중국의 침공을 견제하고자 더더욱 친인도 성향이 되었다.

3.2.1. 민주화


부탄은 예로부터 절대왕권을 추구해 왔지만 왕축 왕조에 대한 여론은 매우 긍정적일 뿐 아니라, 교육수준이 높다고 보기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식인 계급에 속하는 국민이 매우 많다. 지식인조차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개진하지 않을 정도이니 의회는 물론이고 국민조차 절대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는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 자신부터 경제보다는 행복지수에 중점을 두고 이른바 '''행복 정책'''을 펼쳤기 때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왕정에 별 불만이 없었고 의회 역시 민주주의로의 파격적인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2002년 부탄의 언론 자유 지수가 170위권에서 발전함에 따라 '''국왕이 몸소 적극적으로 나서서''' 민주주의를 주창하였고, 결국 국민들은 마지못해 국왕을 좇아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역(逆)민주화'''라 할 수 있겠다.
2008년 3월 24일 선거를 열어 하원을 구성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화하였지만,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지지는 가히 광적이라 할 만큼 충성스럽기 때문에 왕의 삼촌이 이끄는 평화번영당이 엄청난 압승을 거두었다. 이는 5년 뒤(2013년 7월 13일 선거) 야당이었던 인민민주당이 압승을 거둠[11]으로써 정권 교체를 이루어 끝났다.
물론 부탄에도 1990년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적은 있었는데, 이는 네팔계(系) 탄압과 민주주의를 원하던 젊은 층의 욕구와 관련이 있으며, 당시 인도로 망명한 민주화 인사도 있었다.
사실 여기에는 다소 복잡한 뒷이야기가 있는데, 1990년 네팔의 왕권이 약화되고 선거제가 도입되었을 당시 네팔계 부탄인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다방면으로 더욱 넓히기 위하여 부탄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였다. 이에 네팔계 사람들이 부탄에서 강제로 축출되었고, 거기에 불만을 품은 네팔계 사람들은 인도의 무력을 빌려 부탄에서 네팔계와 힌두교의 입지를 넓히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인도로서는 여러 면에서 친(親)인도파인 부탄을 뒤엎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므로, 오히려 부탄에게 네팔계 사람들의 행보를 일러 주고 좋을 대로 처리하라며 좌시하였다. 결국 네팔계 사람들을 더욱 많이 축출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러한 흐름의 여파로 민주화를 주장하던 다른 부탄인들까지도 네팔계로 몰리는 곤경에 처하기도 하였다.
행복론으로 행복정책을 펼쳐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준 뒤에 민주주의를 이룬 부탄 국왕의 전통은 그의 아들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말 그대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중이다.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이고 부탄 입헌군주제의 첫 번째 왕이며, 또한 전 세계 독신 지도자 중 가장 매력적인 배우자 감 5명 중 한 명으로 뽑힐 정도로 미남이다. 심지어 그는 오지에 사는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자 직접 배낭을 멘 채 걸어서 찾아가기도 한다.
지식채널e에서 자세히 다뤘다.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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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0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10살 연하[12]의 일반인인 제선 페마와 결혼할 것을 발표하였다. 제선 페마 또한 영국 리젠트 대학에 재학한 유학파로, 결혼식은 2011년 10월 13일 검소하게 치러졌다.

4. 정치



부탄의 정치체계는 나라가 건국될 때부터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결정하던 전제군주제였고, 의회는 그저 왕에게 약간의 충고나 조언을 하고, 자료 정도를 조사하고 실행하던 역할이었다.
그러나 부탄의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과 그 뒤를 이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자신들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 정치를 펼치지만 후대를 이을 왕이 폭군이거나 국민들을 못 살게 굴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롭고 행복정책과 국민들의 행복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여, 자신들이 가지는 왕으로서의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전제군주제였던 부탄을 입헌군주제로 바꾸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먼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알렸고, 의회에도 이러한 안건을 통보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왕이 직접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로 나아가겠다고 했는데도 오히려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정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정치를 너무 잘한 나머지 놀란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민주주의를 반대할 정도로 부탄은 정말로 평화로운 국가였기 때문.
그리고 국민들의 반대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은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민주화를 외쳤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어필하며 국민들의 동의를 얻고 의회의 반대를 일축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왕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인구 77만명의 부탄에서 2008년 7월 18일부로 민주주의가 실행되게 된다.

4.1. 민주화 그 후


그 후 부탄은 헌법을 만들고 지방 정부를 설치하며[13] 상원하원을 설립하고 입법부사법부민주주의에 필요한 기관들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총 47명의 하원의원이 선출되게 되는데, 2008년 치러진 하원 선거에서는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의 친인척(삼촌)이 이끄는 평화번영당이 압승을 했으나, 2013년 치러진 하원 선거에서는 야당이었던 인민민주당이 47석 중 32석을 차지하여 역전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부탄의 총리는 인민민주당의 총수인 로타이 체링이다.
한편 상원은 총 20명을 선출하고, 5명은 정부에서 임명하는데, 특이하게도 상원 의원 25명은 어떤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부탄의 상원에서는, 화폐와 예산에 대한 일을 제외한 다른 부탄의 법률을 작성하고 검토한다고 한다. 상원 선거는 2007년 12월 31일부터 2008년 1월 29일에 걸쳐서 한번[14], 2013년 4월 24일에 한 번이 더 치러졌다.
민주주의가 들어오면 왕권은 자연스럽게 약해지게 되는데, 부탄도 예외는 아니었다. 헌법을 통해 왕의 재위에 관련된 몇 가지의 법률이 생겨났는데, 아래는 그중의 일부다.

'''부탄을 다스리는 왕축 왕조의 국왕은 다음의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를 설립하나 국왕은 그대로 유지하는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 왕의 혈통은 이어진다.

그러나 왕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왕은 65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해야 한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부탄의 모든 국민에게 뜻을 물어 과반수면 즉위를 할 수 있다.'''

또한 왕이 폭정을 일삼을 때에는 '''의회가 왕의 폐위 투표를 개최할 수 있으며, 국민의 3분의 2가 왕의 폐위에 찬성하면 왕은 즉시 폐위된다.'''

이런 규정들은 왕권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만 애초에 국왕이 앞장서서 왕권 약화를 의도한 것이기에 이 법률은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국왕의 솔선수범한 개혁, 검소한 생활, 국토 구석구석까지 방문하여 국민들의 의견들을 들으려는 행보, 평민과의 결혼에 수많은 국민들이 감동하여 왕가의 인기와 권위가 부탄에서 가히 절대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을 때는 국민들이 국왕이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축제를 열고 환영했을 정도였다.
2020년 12월 10일에 부탄은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했다.#

4.1.1. 선거제도


정국의 안정을 중시해서인지, 여러 당 중에 1, 2위를 뽑는 1차 투표를 하고, 그 두 당에게 의석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하는 2차 투표를 한다. 제도적으로 양당제를 강제하는 특이한 나라다. 군소 정당 난립의 방지를 통한 정국 안정과 야당의 정부(여당) 견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함이다.
그리고 기어이 2018년 9월, 집권당인 인민민주당(PDP)이 1차 투표에서 득표율 3위를 기록하면서 순식간에 전체 2/3이상의 거대여당에서 '''0석'''의 원외정당으로 나가 떨어졌다!

5. 자연


정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보장해야 한다. 나라의 천연 자원을 보존하고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부탄 전체 토지의 최소 60%를 산림으로 항상 유지한다.

부탄 헌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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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지형도
히말라야로부터 기인한 여러 산맥들에 위치한 지형상 남쪽은 해발고도가 낮은 반면에, 북쪽으로 갈수록 고산들이 많고 고도가 높아진다. 북쪽 끝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어서 남쪽은 아열대~열대기후, 중부지방의 2,000m~3,000m 지역은 온대기후, 북쪽은 고산기후 또는 냉대기후에 속한다. 수도인 팀푸는 약 2,300m에 위치한 도시로 온대기후에 속한다.[15] 최고봉은 강카르 푼섬이다. 높이는 7,570m. 때문에 부탄인에게 한국의 산을 산이라고 소개하면 "저런 건 부탄에서는 언덕이라고 하는 거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부탄에서는 자연을 보존하고 이를 후대에 물려준다는 확고한 원칙 때문인지 헌법에도 '''삼림의 비율이 60% 이하로 떨어지면 안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부탄 국민은 나무를 벨 때는 반드시 부탄 산림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무거운 처벌이 가해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부탄인들이 얼마나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울창한 삼림 덕분에 부탄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마이너스 탄소 배출량 국가이다.

6. 경제



7. 행정구역


부탄에는 광역행정구역에 해당하는 종카그(Dzongkhag)가 20개가 있고, 종카그는 또다시 기초행정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게워그(Gewog)와 특별 행정 구역인 둥카그(Dungkhag)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로 보면, (좀 많이 크긴 하지만) 군(郡)에 읍, 면을 기초단체로 보고 특별행정구역은 구(區)로 갈음하면 될 듯.
자세한 것은 부탄/행정구역 참조.

8. 사회


세계행복지수 1위로 유명한 나라.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행복지수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부탄 국민들 마인드가 전반적으로 매우 평화로우며 낙천적이고, 남아시아에서 흔히 보게되는 정치/민족적 대립이 부탄에는 거의 없다는 점은 부탄의 행복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이런 무형적인 요소에서 오는 평화만 보고 부탄을 제일 행복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선진국 국민이 품은 1세계적 환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2017년에 발표된 UN 행복 리포트에서 부탄은 97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낮다.[16] 이는 물질적 행복을 뒷받침할 의료/교육/교통 등의 상태가 매우 부실한 것이 큰 원인이다.
단적인 예로 부탄의 사망률은 내전 없는 국가들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물론 부탄 정부가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10여년간 계속 감소해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높다. 2016년 기준 1세 이하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6.8명, 5세 이하 유아 사망률은 32.4명이다.[17] 특히 부탄 국민의 30%가 65세가 되기 이전 사망하고 국민 기대 수명도 69.8세에 불과하다.[18] 인구 1000명당 병상도 고작 1.8개(...)밖에 없을 정도로 의료 인프라가 매우 부실하다. 이는 방글라데시나 시리아보다 객관적인 지표가 나쁜 것이다. 통제력이 강한 중앙 정부에서 복지를 거의 무상 제공하려고 노력함에도 국민 수명이 대단히 짧다는 것은, 복지가 부실하며 복지 혜택이 도시는 물론 농촌까지 골고루 미치지 않고 아직까지 국가 전토에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2000년대 후반 들어 국민소득이 큰 폭으로 늘어난 반면 행복지수는 떨어졌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자본주의의 물결이 들어와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은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듯하다. 게다가 맥도날드피자헛도 없는[19] 이 나라에 디스코텍이라든지 퇴폐 산업 같은 보드카와 위스키 같은 도수 높은 술집이 늘면서 폭력이나 밤 문화가 생기는 것을 우려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외국과의 비교 이전에, 부탄 내부에서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커져가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급격한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빈부/도농 격차를 심화시킨다. 대부분의 사업이 수도인 팀푸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이미 팀푸의 월세는 부탄의 일반 노동자 월급보다 더 비싼 수준으로 올라갔으며 고급 주택의 가격은 한화로 억대를 호가한다. 특히 팀푸에는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클럽에서 사교를 즐기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부유층이 존재하는 반면, 농촌에는 국가가 무상으로 교육을 지원함에도 자식들을 다 학교로 못 보내며 끼니 걱정을 하는 가난한 가정이 흔하다. 교육시킬 돈이 없어 몇 명은 일을 시켜야 생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렇게 학교에 보낸 아이들조차 시설이 낙후된 학교에서 학용품 부족으로 고생하면서 힘겹게 공부한다. 게다가 이렇게 의무 교육을 수료하고 대학을 나온다 해도 취업하기는 쉽지 않으며 청년실업도 높다. 그러다보니 도시에서의 행복지수는 어느정도 유지되고있지만 경제발전의 혜택이 부실한 농촌지역에서의 행복지수는 크게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소득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도 국가가 가난하며 예산이 별로 없고, 경제의 규모 자체도 크지 않다 보니 모든 인프라가 부족하다. 일례로 부탄 전체에 의사는 고작 180여 명밖에 없다. 게다가 이 의사들조차 수도인 팀푸에 몰려있어서 지방으로 내려가면 약방 주인 한 명이 주민 1만 명(...)을 케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나마 군부대가 있는 곳은 군의관이 환자들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이 떨어지고 의료 장비가 열악하여 난치병에 걸리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은 환자는 인도 병원으로 보내는 것 말고는 사실상 답이 없다.[20] 특히 부탄은 부족한 의료 인프라를 방증하듯 아직까지 국민 평균 수명은 60대에 머물고 있다. 한다미로 국가가 추구하는 복지 정책만 훌륭하지 이를 뒷받침할 자본과 기반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 이 때문에 부탄의 행정을 맡은 사람들은 현재의 부탄이 행복하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돈과 물자가 없는 상태에서 키울 수 있는 행복은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
또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엔 아직까지도 부탄 국민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부탄은 인구 중 적지 않은 수가 제대로 교육 이수를 못 마친 상황이라서 문맹률이 아직까지도 상당히 높다.# 또한 한국의 1/6 크기에 불과한 작은 국토와 척박한 험지에다 전체 인구 77만 명이 이리저리 흩어져 살다 보니 동시 투표가 힘들다고 한다. 부탄 정부가 헬기로 투표용지를 전달하려 했으나 실패한 지역도 있다. 그렇다고 전자 투표를 하기엔 아직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이나 불교 유물 도난 및 파손 사건이 연간 200건 넘게 일어나기도 한다. 이쪽도 부탄이 여행객을 제한적으로 받는 나라 특성상 현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행복지수가 높지만 부탄은 2012년에 세계 자살률 22위를 기록했다.# 부탄이 아직 발전 중이고, 빈부격차가 여타 개발도상국에 비해 낮으며, 극빈층이 드물다는 점, 날씨가 특별히 우울한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행복에 크게 신경 쓰는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 자살률은 유의미하게 높은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혼란스러운 남미 국가들이 자살률은 더 낮다. 정책적으로 노력함에도 자살 건수가 조금씩 늘고 있고, 자살자 중 다수가 젊은이라 정부에서 고민이 늘고 있다.
부패인식지수가 선진국과 비교해도 높은 편으로, 세계 26위이다.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나는 것에 비해서 사회 청렴도는 잘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부탄은 최근에 청년실업 문제, 빈부격차 문제, 불법루트로 들어온 마약 중독 문제로 골치를 썩는 중이다. 특히 10-20대에서 마약 복용이 늘어나며 처벌 강화와 동시에 왕실 주관으로 마약퇴치 캠페인, 마약 중독자 재활 프로그램 운영을 벌이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부탄 경제가 발전하면서 고학력자가 늘어났지만 문제는 현재 부탄의 경제규모에 한계가 있어서 이들을 전부 취업시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은 졸업했는데 일자리가 없거나, 학교랑 사회생활에 찌들어버린 청년들이 현실에 절망하여 자살하거나 마약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이 마약 복용 문제가 미성년자들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8.1. 치안


일단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부탄의 범죄는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상술되었다시피 청소년 범죄와 마약사용이 범죄율 증가의 큰 폭을 차지했다.
그래도 미 국무부 여행자문국의 2019년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기준으로 부탄의 치안단계는 1등급이다. 즉, 한국, 일본과 같은 등급이며 매우 치안이 안정되어 있다는 의미. 범죄 발생의 95%가 수도 팀푸에 집중되어 있으며 살인,강도,강간 같은 강력범죄의 발생율은 매우 적다.
인구대비로 수감된 범죄자가 적긴 하지만 2014년 부탄 내 수감자는 1119명이었고 그 중 93.2%가 부탄인이다.# 가장 많은 범죄는 폭력, 절도, 강도 등이고, 성폭행이나 살인 등의 흉악범죄가 상대적으로 적다. 인구가 집중된 팀푸에서 반 이상의 범죄가 일어난다. 현재 부탄에서 걱정하는 범죄는 청년 사이에 만연한 불법 약물 남용 문제다.
물론 근처의 인도나 네팔에 비하면 범죄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내전을 야기할 만한 종교/민족 분쟁도 없어서 테러 위험도 매우 낮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2014년-> 2015년 한 해 동안 범죄 건수가 13.6% 감소했다.

9. 교통



10. 외교



부탄은 32~33개의 국제연합 회원국, 그리고 유럽연합직접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직접 외교관계가 없어도 미국, 영국, 독일 등 명예영사관 등을 통해 비공식 교류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부탄과 개별적으로 직접 수교하지 않은 유럽 국가라도 유럽연합 회원국이면 유럽연합을 통해 간접적 관계가 유지되고 교류가 이루어진다. 인도를 통하여 외교가 이뤄지면서 인도와 외교권을 가진 나라들은 거의 간접적으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부탄인이 해외로 올 일은 거의 없고 소수의 관광객이 부탄을 방문해도 높은 치안 덕분에 크나큰 문제도 없기에 해외 대사관들은 굉장히 한가롭게 일한다는 말이 있다.

11. 문화


부탄에 새로 건축되는 건축물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건축되어야 한다는 명문화된 헌법이 있다. 겉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료부터 인테리어, 구조까지 모두 전통에 따라서 지어져야 한다. 때문에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물들도 사실 알고 보면 지어진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한 건축물 층수 제한까지 둬가지고 6층 이상 높이를 못 넘게 되어있다.
부탄에서는 이 나라와 국민을 잇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며, 종을 중심으로 나라 업무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를 국법으로 보장하지만, 사실상 티베트 불교가 국교나 다름없다.
널리 알려진 사실로 부탄은 세계 유일의 금연 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에 유학 와서 담배를 피우는 부탄 사람이 있다. 본국에 돌아가서 어쩔 것이냐고 물어보면 암시장을 통해 담배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부탄의 길가와 들판에는 대마가 수북이 자생한다고 한다.'''[21] 그러나, 채취는 불법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감옥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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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전통의상 고(Gho, 남성용)와 키라(Kira, 여성용)
역사와 전통문화를 무척 사랑하는 부탄인지라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예전에는 전통의상을 입지 않으면 경찰이 잡아서 벌금을 매길 정도로(....)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했다. 요즘은 복장 자율화 시대라 현대식 옷을 입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학생 및 공무원은 학교에 갈때나 출근할때 의무적으로 입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부탄은 전세계적으로 드물게 남자치마검은색 스타킹을 착용하게 되는 진풍경을 맛볼 수 있다. 그러니까 여성의 전유물인 스타킹이나 치마 등을 착용하는 분위기를 가진 이유는 전통 문화, 독특한 경우 등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네이버 지식백과의 EBS 세계테마기행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남성의 복장 규제가 매우 심화되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전통 의상을 지켜내기 위함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부탄인의 국제결혼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인도인이 일하러 들어오고 이들이 부탄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생기는지라 인도와의 동화를 우려한 정부가 금지시켰기 때문. 그러나 2015년부터 다시 국제결혼을 허가하고 국제결혼에 관한 가이드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인터뷰에 통과해야만 혼인신고가 되는데 인터뷰가 상당히 어려워 2016년 1년에 단 한차례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신청자의 3분의 1 정도만 통과되었다. 부탄의 문화, 역사, 법 등 다양한 질문을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과하고 혼인신고가 되면 부탄에서 살 수 있는 영주권이 주어지므로 이렇게 어렵게 하는 건 어쩔 수 없을 듯. 그리고 외국인과의 결혼을 별로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한몫하는 건지도.
부탄이 고추를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텐데, 실제로 거의 모든 식사에 고추가 들어간다고 한다(!)[22] 대표적인 요리 '에마다시'는 말린 고기[23], 치즈, 고추 등을 버무린 반찬이다. 부탄인들은 이를 주식과 같이 먹는다. 심지어 이 반찬을 삼시세끼 먹는 사람도 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관광객의 경우 목과 혀가 다소 얼얼하고 아플 수 있다.(..)

12. 언어


부탄은 긴 세월 동안 티베트, 네팔, 중국, 인도 등 여러 나라의 문화가 뒤섞이며 언어도 뒤섞였기 때문에 대단히 혼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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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언어 지도.
공용어로 종카어영어를 제정했지만 수 세기 동안 티베트, 중국, 네팔, 인도 등에서 들어온 각종 문화들이 뒤섞이며 고유의 부탄 문화가 형성된 것처럼, 언어도 사방에서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서로 섞이고 창조되며 위의 지도처럼 난잡한 언어군들이 형성되었다. 현재 부탄에서 사용 중인 언어의 종류는 무려 53종류이며, 학교에서는 종카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아이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남부 지방에서 학교에서 네팔어로도 수업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네팔이 중국마오이즘 사상을 받아들이고 친중 국가가 되자 부탄에서는 반중 정서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남부에서는 무장봉기가 일어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 후 부탄에서는 중국의 ㅈ자만 꺼내도 혐오하는 극도의 반중 정서가 일어나면서 인도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네팔과의 관계가 소원해짐에 따라 결국 네팔어는 1990년이 오기 전 학교 수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언어가 뒤섞여 있지만 종카어는 전 국민의 25%가 구사할 수 있고, 현재 청소년들은 국어, 국사, 윤리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영어로 교육을 받으며 시골 노인들도 영어를 구사할 줄 알기 때문에 국민 간의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다.

13. 스포츠


한때는 세계 축구 동네북으로 알아주기도 했으며, 지금도 세계적인 최약체다. 그러나 최근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 진출과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3차 예선 진출을 이루어내며 AFC 시상식에 발전상을 받기도 했다.
국대 축구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부탄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
이 작은 나라도 1986년에 시작된 프로 리그인 부탄 A-디비전이 있었다.(2부 리그는 B-디비전) 이름은 꽤 뭔가 있어 보이는 트랜스포츠 유나이티드 팀이 90년대 후반에 아시안 위너스컵 예선에 나왔다가 우즈베키스탄 파흐타코르에게 13-0으로 뭉개진 적이 있다. 2012년부터 팀푸에만 머물렀던 리그가 전국으로 확대되며 부탄 내셔널리그가 시작되었다. 대신 부탄 A-디비전은 팀푸 지역리그로 강등. 리그 구성은 팀푸 리그 8팀이 경쟁하여 리그 1위부터 3위까지 부탄 내셔널리그 출전권을 얻고 부탄 내셔널리그는 팀푸지역 3팀, 타 지방팀 3팀으로 구성되어 시즌을 치른다. 여기서 우승하는 팀은 AFC 컵 예비 라운드 진출.
지방의 축구 인프라가 안 좋은 관계로 팀푸에서만 리그를 진행하고 나머지 지방 3팀(파로 유나이티드, 푼촐링 시티, 우곈 아카데미)은 팀푸 리그가 끝날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는 신세였지만 타 지역내 다른팀들도 참여를 시작했기 때문에 조만간 지역리그 체제가 잡힐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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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나라에서 자라는 대나무로 만든 '''죽궁'''은 북방계 나라들의 각궁과 거의 '''비등한''' 사거리와 관통력을 자랑한다. 흔히 나오는 죽궁으로 쏜 화살이 몇 백 미터를 날아가는 표현은 과장이지만, 부탄의 죽궁의 사거리와 관통력은 거짓이 아니다. 세계 국궁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전력이 있는 유일한 죽궁이다. 부탄의 왕들은 기본적으로 죽궁을 잘 쏘아야 하며, 부탄에서는 매년 여러 차례의 활쏘기 대회가 열리며, 어린아이들도 죽궁을 가지고 놀 만큼 활과 인연이 깊은 나라이다. 어떤 조사에서는 부탄의 최고 인기 스포츠에 활 쏘기를 꼽기도 했다.
활쏘기 외에도 다트던지기도 주로 한다. 우리가 아는 조그마한 다트가 아니라, 표적이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팽이만 한 다트를 던진다.
농구는 한국인 감독이 대한체육회의 국제 교류 사업 하에 부탄에 진출하여, 대표 팀 감독을 맡고 있다고 한다. 참고기사 다만 이 기사에는 오류가 있는데, 부탄 역사상 구기종목에서 국외 대회 1승을 거둔 게 농구가 처음이라고 하지만, 2003년 서남아시아컵에서 파키스탄을 상대로 거둔 1승이 있다.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14. 종교


부탄인의 75%는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으며, 부탄은 엄연한 불교 국가다. 그러나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22%나 되며, 민속종교도 있는데 약 2%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1%의 사람들은 기독교 등의 외부 종교를 믿는다. 즉 7,700여 명의 사람들이 부탄의 토착 종교나 힌두교, 민속 종교가 아닌 외부 종교를 믿고 있다.
국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부탄의 국교는 티베트 불교이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은 차별받기 쉽다. 불교와 부탄의 정체성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탄 정부는 자국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네팔계 부탄인 힌두교도들에 대한 매우 강력한 배척 정책을 펼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10만 명의 네팔계들이 부탄으로부터 도망쳐서 난민이 되었다. 말이 10만 명이지, 인구 85만 명인 나라에서 10만 명을 쫓아냈으니 무려 인구의 1/8을 국경 바깥으로 내몬 셈이다. 이들은 네팔측이 이들이 부탄 국적임을 들어 입국을 거부하여 네팔로 가지도 못하고, 부탄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20년을 난민촌에서 떠돌다 UN의 도움을 받아 겨우 다른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정착했다.
또한 기독교공포증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기독교 탄압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2008년 부탄 헌법이 제정되면서 부탄 국민에게 종교의 자유가 허가되었지만 기존 관습과 구전으로 내려오는 문화 속에서 진정한 종교의 자유는 아직 없으며 부탄 전체가 기독교 신자들에게 사회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관련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기독교도 부탄인이 나오는 등, 기독교에 대한 배척 사례도 간간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 부탄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이끌고 있다. 과거 부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의례를 치르는데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부담이 가 사람들이 장례의식이 간편한 기독교를 대안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에 부탄 불교에서는 발 빠르게 장례식 비용을 낮췄고, 심지어 정부 후원으로 무료로 하는 것과 더불어 승려도 기독교인처럼 대형병원에 파견을 가 환자들의 병과 죽음을 돌보기 시작했다.
부탄의 왕족 출신인 요셉 킨리 셰링이 첫 가톨릭 신부로 1995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24] 2000년에서 2018년까지 인도에서 선교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부탄에서 사목을 하고 있다.#관련기사
현재 부탄에서 공식적으로 성당을 짓거나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허락되지 않지만[25] 한 개인이 건물 전체를 예수를 찬미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비공식적으로 가톨릭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킨리 셰링 신부는 장기적으로 10년을 내다보며 부탄에 성당건립을 허가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15. 관광 정보


부탄은 인도인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의 배낭여행이 금지된 나라다. 따라서 부탄 정부에서 지정한 여행사를 선택해서 패키지여행을 해야만 한다. 또한 1일 체류비가 성수기 250달러, 비수기(6~8월) 200달러로 매우 비싼 요금을 내야 한다. 다만, 부탄 현지인이 초청하는 형식으로 개인 여행이 가능하다. 단 2017년에는 한국-부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비수기 기간에 요금을 65달러로 내리고, 기타 요금도 할인이 된다고 한다.

16. 창작물에서


김인권이 주연한 영화 방가방가는 취업난에 시달린 청년이 외국인 노동자 행세를 하여 취직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이 사칭한 국적이 부탄이다. 극중 김정태가 분한 친구의 대사에 의하면, 가는 데마다 주인공이 사칭하는 국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서 부탄인 행세를 하게 된 것으로 그려진다. '''"대한민국에 부탄 사람은 딱 3명이 있어. 대사, 대사 부인, 그리고 (부탄 국적을 사칭하는) 너"'''(…) 다만 실제로 부탄에서 한국에 파견한 외교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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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때문에 웨일스와 엮이기도 하는데 두 나라의 국기에 그려진 용이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1] ''Druk Gyal Khap''[2] 국기를 세로로 게양하는 것은 금지된 게양법이다. 그렇게 하면 원래 국기에서 시계 방향으로 90도 각도로 회전하게 되고 용이 향하는 방향이 →에서 ↓로 바뀌어 용이 추락하는 형상이 되기 때문이다. [3] 놀랍게도 용의 비늘의 괴악함 때문에 부탄 정부에서도 국기를 따라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였다.[혼합된체제] 5.71점[4] 비뇨기과 의사도 겸하고 있다. [5] 총리궁, 병원, 절, 양궁장, 축구장을 오가며(…) 바쁜 생활을 한다.[6] 자료마다 다른데, 정확한 면적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어서 해외 자료들도 차이가 심하다. 여기에서는 그나마 가장 많이 보이는 수치를 기재한다.[7] 현대 티베트어로는 '푀' 정도로 읽는다. 와일리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면 'bod'로 쓴다.[8] Burling, Robbins. "The Tibeto-Burman Languages of Northeastern India," <Sino-Tibetan Languages>. Abingdon: Routledge, 2013[9] 이 당시 까규빠는 겔룩빠와의 경쟁에서 패배해 티베트에서는 영향력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부탄에서는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까규의 분파인 둑빠 까규의 법왕은 부탄 국왕의 국사(國師)로 대접받는다.[10] 그래서 남티베트계 나라들이 있던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는 중국 땅이라고 중국인들은 주장하지만 인도에서는 무시하며 군대를 주둔시켜서 악사이친처럼 허무하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부탄은 이에 대하여 강제로 합병당한 게 아니라 원해서 합병한 것인데 왜 중국이 끼어드느냐며 인도 편을 든다. 사실 몇몇 작은 왕국들은 인도에게도 반협박도 당하던 터라 불쾌해했지만, 결국 중국이 아니라 인도에게 병합된 곳이 대다수였다.[11] 전체 의석 47석 중 32석[12] 1990년생[13] 2011년에 지방선거가 있었고, 총 205명을 선출했다.[14] 각 지역이 날짜를 나누어 선거를 치렀다.[15] # 이곳의 기후는 해발고도가 낮았다면 아열대나 열대기후였을 곳이 해발고도가 높아서 온대기후에 속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이런 기후를 아열대고원기후라고 한다.[16] 같은 보고서에서 한국은 56위였다.[17] 동시기 한국 수치의 약 9배에 해당한다.[18] 이것도 꽤 높인거다. 지그메 도르지 왕축 국왕 시절엔 평균 수명이 '''50세 미만'''이었다.[19] 다만 코카콜라펩시는 있다(...).[20] 문제는 인도 역시 의료 기술이 높은편은 아니며 의료 기술이 열악한 병원이 많다는 것이다.[21] 대마는 줄기의 섬유는 옷감(삼베) 소재로, 씨앗은 기름 짜는 용도로 쓰인다. 흔히 말하는 환각효과를 바라고 피우는 부분은 대마 암그루의 꽃이다.[22] 이는 고추를 향신료가 아니라 (같이 먹는)채소로 여기기 때문이다.[23] 인도에서 수입한다.[24] 가족은 모두 열성적인 불교 신도인데, 아버지는 끝내 서품을 받는 장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25] 물론 법에 금지조항은 없지만 사회적 관습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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