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선수 경력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서울 팜과 함께 가장 질이 좋다는 광주 팜[1] 출신으로 광주일고 1, 2학년 때는 3루수로 뛰었다가 3학년이 되고 나자 주전 포수가 다른 학교로 전학가면서 처음으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뿐만 아니라 나승현에 이은 두 번째 투수#s-1로서도 훌륭한 투구를 보여줬다. 투수로 뛰면서 기록한 방어율은 3.15. 포수, 투수, 야수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만화 속 캐릭터같은 야구천재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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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포수 강정호. 마지막에 포수 강정호에게 공을 던지는 11번 선수는 나승현이다. 위 영상에 나온 경기는 2005년 황금사자기 결승전. 동영상
이미 2학년 시절부터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던 선수였으며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강정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일화들
사실 현대가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뽑으려고 했던 건 투수 손영민인데, 좌완투수 양승진을 뽑기로 했던 KIA 타이거즈가 손영민을 먼저 뽑아간 탓에 강정호를 대신 지명했다.[3] 애초에는 현대 유니콘스 1라운드 바로 다음 픽인 2라운드 롯데 자이언츠가 뽑기[4] 로 했었다. 그 후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슬슬 박진만의 뒤를 이어갈 차세대 국대 유격수 자원을 찾아야 할 시점이었는데 고교야구에 일가견이 있는 팬들은 현대의 강정호, SK 홍명찬에 2년 선배 두산 김재호까지 3명을 주목하며 장차 한국프로야구를 이끌어갈 대형 유격수 자원으로 성장할 것이라 크게 기대했다.[5] 홍명찬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김재호가 치열한 주전 경쟁과 부족한 타격으로 고전하다 2013년에야 입지를 다진 반면 강정호는 크게 앞서 나가며 국가대표 유격수로 성장했다.
3. KBO 리그 시절
3.1. 현대 유니콘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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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절의 강정호.
위에서 언급했듯이 강정호는 고교 시절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만능 선수였으며 지명 당시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입단한 후로는 본격적으로 내야수로 포지션을 고정하게 되었다. 입단 초기 전지훈련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에게 '제2의 박진만'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크게 기대를 받았고 2006년 시즌 개막전에 1년차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기용되어 프로에 데뷔했다.[6] 그러나 기대했던 불망망이 같은 타격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7] 과 더불어 수비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8] 한 달도 못 가 2군으로 내려가게 된다. 2군에서 절치부심한 강정호는 어떻게서든 1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교시절 경험했던 '''포수''' 마스크를 주저하지 않았다.[9]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07년 시즌 전 훈련기간에 선배 지석훈의 배팅볼을 던져 주던 중 얼굴에 타구를 맞고 기대했던 시즌을 말아먹는다. 그렇게 갓 데뷔한 신인은 1군과의 기량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2군에 내려가 2006년, 2007년 2년 동안 주로 2군에서 활동하였다. 반대로 황재균이 2007년 무렵 2군에서 '''무쌍'''을 찍으며, 1군으로 콜업을 받게 된다. 그해 강정호 보다도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08년에는 서로가 정반대 되어버리는데...
3.2. 넥센 히어로즈 시절
3.2.1. 2008~2009 시즌
2008년, 이광환 감독의 눈에 들어[10] 본격적으로 1군 생활을 시작했다. 비단 유격수 포지션뿐만 아니라 3루수로도[11] 자주 나왔으며 시즌 초반엔 포수[12] 로 출장한 경기도 있을 정도였다. 김동수의 노쇠화, 그리고 기대했던 강귀태의 부진으로 이광환 감독은 고교 시절 포수경험이 있고 타격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강정호를 포수로 기용하는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포수는 만들기 힘든 포지션. 내야수 포지션 선수에게 포수 겸업은 역시나 무리였다. 시즌 초반부터 패스트볼 실책이 심심치 않게 나와 결국 포수 마스크는 벗게 된다. 우리 히어로즈 시절 포수, 1, 2, 3루수 수비 움짤
타격에 있어서는 시즌 초반에는 1할 후반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였으나 이광환 감독의 믿음 아래 꾸준히 많은 경기에 출장, 기용됨에 따라 기량이 크게 향상되어 타율 .271 OPS .726 8홈런 47타점의 당시, 리그의 투고타저 시즌이였기에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준수한 성적으로 꼽았다. 이렇게 시즌을 마무리를 했는데. 박진만과 박기혁의 골든글러브 수상 가운데 중 예상 외에 3위까지 올라간 기염을 보여줬다. 이광환은 히어로즈 감독을 맡았던 시절에는 별 임팩트가 없었으나, 사실상 강정호를 프로 선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어떤 선수가 스타덤에 오를 때 주변에서 "내가 키운 선수다"라며 자기 공로를 만천하에 자랑하는 코치들이 많으나, 이광환에 대해서만큼은 강정호 본인도 대놓고 인정하는 사례... 메이저리그 진출 후 스포츠서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은사들 중 하나로 이광환 감독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감사의 마음을 드러냈으며, 이광환이 재직 중인 서울대학교 야구부에 야구 용품도 지원해 주는 등 옛 스승에 대한 보답을 틈틈이 해 오고 있다.
2008 시즌 초반엔 황재균이 주로 유격수로 출장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수비력의 문제를 드러내 2, 3루를 오가던 강정호가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13]
2009 시즌 초반 팀 동료 황재균이 연일 맹타를 휘두르던 것과 반대로 2할대 초반 타율을 기록하며 멘도사 라인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5월부터 타격감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더니 이후 완전히 각성. 눈부신 맹타로 히어로즈 타선을 이끌었다. 또 전 경기 출장에 1경기를 제외한 132경기를 선발로 나와 1147.2이닝을 뛰면서도 수비에서 전혀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여 노쇠한 박진만의 뒤를 이을 차기 국가대표 유격수로 주목받게 된다.[14]
이 시기 기록한 성적은 타율 .286 출루율 .349 장타율 .508 23홈런 81타점.
팬들은 당연히 2009년 KBO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분은 강정호의 차지라고 생각했으나, 야구 안보는 크보대원군한국 기자들이 팀 성적에 유명한 선수 위주로 골든 글러브를 주는 바람에 두산 베어스 손시헌에게 밀렸다. 물론 손시헌이 절대 못한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의 수비력 차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장종훈, 이종범(이 쪽은 30홈런),박진만, 브리또, 홍세완 이후 '''간만에 나온 유격수 20홈런'''의 메리트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다들 강정호가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15]
시즌 종료 후 사장이 '''넥센마켓'''을 단행할때도 '''강정호''', 황재균, 강윤구 3명만은 트레이드 절대 불가라고 묶어두었다.
여담으로 2009시즌 KIA의 우승을 결정지어준 타자다. 당시 기아의 투수인 유동훈의 공을 받아 쳤으나 타구는 3루 땅볼, 그리고 3루수에 의해 공이 잡히면서 아웃을 당해 그 결과로 기아가 우승할 수 있었다.[16]
3.2.2. 2010 시즌
시즌 전 이택근과 브룸바를 보내고 황재균이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허약해진 히어로즈 타선을 홀로 책임졌다. 남아있는 타자들도 파워만 좋지 컨택이 떨어져 공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 이래저래 어깨가 무거웠다. 다들 파워는 좋아서 제대로 걸리면 장타로 연결되지만 선구안이 엉망이라 비슷하면 무조건 휘두르고 보는 통에 팀 타율은 엉망이었다. 본래 이런 문제는 코치나 나이든 노장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히어로즈 타격코치는 코치대로 무능력하고 고참 중에서 송지만은 딱히 볼 고르는 타입은 아니며 이숭용이 선구안은 좋은 편이지만 나이가... 여기에 실력이 되는 황재균이나 강정호는 누구 가르칠 짬밥이 아니라서 답이 안 나왔다. 이런 타선의 부진 덕에 수비상황에서도 어이없는 에러를 기록하고 있었다.
시즌 초반에 4번 타순에 배치되는 일이 많았는데 부담 때문인지 판단착오가 늘었고 2009년만큼의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자청해서 7번 타순까지 내려갔다가 4월 25일 KIA전에서는 6번 타자로 출장했다. 중하위 타선으로 내려간 뒤에는 다시 성적이 좋아지더니 유한준이 해결사로 등장하면서 강정호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고있다. 5월 11일에는 윤석민에게 솔로 홈런도 뽑아냈다. 5월 말에는 3번으로도 출장을 많이 했는데 성적이 좋다.
7월에 황재균이 트레이드되면서 허탈감을 느끼는 모양. '이제 경쟁상대가 없다'고 푸념하는 모습이 넥센 팬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넥센 강정호 "황재균 진짜 없네…" 덕 클락이 팀의 사정으로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자 미니홈피에 '''불쌍한 클락, 힘내'''라는 위로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3할의 고타율과 4할에 가까운 출루율을 기록하며 손목 부상으로 장타력이 줄지만 않았다면 3-4-5놀이를 하고 있었을 공격력은 단연 돋보였지만, 시즌 초반 쌓아둔 막대한 실책 때문에 공격력에 비해 수비가 모자란 반쪽 선수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2010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01, 12홈런, 58타점, OPS .848 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3할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3.2.3. 2011 시즌
개막전부터 넥센의 4번타자로 기용되었다. 일단 타율은 2할 후반대를 찍어서, 출발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4월 24일부터 어째 무안타의 행진을 이어갔다. 4월 28일에는 주자 1, 2루 상황에서 유격수 쪽으로 가는 공을 집고도 송구를 하지 못해 주자 만루 상황을 만들었고, 이 상황에서 밀어내기가 터져 문성현의 승리를 날리고 말았다. 게다가 뇌주루까지 질렀다... 그런데 한화 수비수가 송구를 이상하게 해서 결국 2루에서 세이프.
급기야 5월 1일 LG전에서는 3번 타자인 유한준을 거르고 강정호와 승부하는 어디서 본 듯한 광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강정호는 한 방을 때리지 못했다. 이 날 7타수 2안타를 기록했지만 타율은 이미 .244...
5월 3일부터 5일까지 기아와의 3연전에서 12타석 11타수 2안타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등 하락세를 보인다. 그나마 안타 2개와 몸에 맞는 공 하나로 3출루를 하긴 했지만...
4번타자에서 내려간 뒤론 꾸준히 안타를 쳐주었다. 하지만 또 4번으로 나오면 계속 부진하는 데다가 5월 24일 기아전에서는 9회말 1사 1루의 상황에서 내야 플라이에 2루로 돌진하는 뇌주루를 작렬한 끝에 결국 2군(강진)으로 내려갔다.
6월 4일 한화전에서 박정진을 상대로 좌측 솔로 홈런을 쳐냈다! 6월 9일 SK전에서는 '''만루 홈런'''을 쳐내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팀이 지리멸렬하다가 간신히 이기는 바람에 강정호의 홈런이 빛이 바랜 면이 있다.
6월부터는 6번으로 출전하는 빈도가 높아졌고 그에 따라 타율도 급상승하면서 6월 23일 기준으로 .273까지 상승하였다. 7월 19일과 20일에 연속 수비 실책으로 인하여 동점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두 경기 모두 끝내기 안타로 넥센이 승리하여서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았다. 본인 말로는 실책 순간에 죽고 싶었다고...
9월 11일 롯데와의 연장 12회말까지 이어진 경기에서는 '''포수(!)'''로 출장했다. 경기는 2:2 무승부. 당시 동영상
2011 시즌 타율 .282, 9홈런, 63타점, OPS .754를 기록하였다. 지난 시즌들에 비해 공격력이 많이 하락하면서 3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도 실패하고 말아 다소 아쉬운 모습이었지만, 전년도에 비해 실책수를 비약적으로 줄이면서 수비로도 인정받는 유격수로 장기적으로 한 차원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대수의 3할이 아니었다면 2011 시즌에도 골든 글러브를 노려볼만한 성적이었다.
3.2.4. 2012 시즌
강정호/2012년 문서를 참조
3.2.5. 2013 시즌
초반부터 치고 나간 박병호에 비해 압도적인 페이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 몫을 해주었다.
강정호/2013년 문서를 참조
3.2.6. 2014 시즌
[image] 8월 27일 36번째 홈런을 때려내면서 유격수 최초 30홈런 100타점 고지를 밟았을 때
강정호/2014년으로
4.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4.1. 진출 과정
14시즌 시작 전부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전망이 있었다. 그리고 가치를 증명하듯 타고투저에 힘입어 한국프로야구 역대급 단일시즌 성적을 남기며 2014 시즌 후 포스팅을 신청, 포스팅 금액(이적료) 500만 2,015달러(약 55억 원)에 연봉 4년 11M 보장 최대 14M + 1년 팀 옵션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행이 결정되었다. 매년 최대 75만 달러의 보너스도 있다. 자세한 연봉 내용 기사 류현진에 이어 KBO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직행한 2번째 한국인 선수이자 첫번째 야수다.
MLB 활약 전망, 포스팅 진행 과정 등 자세한 것은 강정호/메이저리그 진출 참조
4.2.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절
4.2.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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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시즌 중 활약은 강정호/2015년으로
부상 때문에 아쉽게 시즌아웃 되었지만,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준 시즌. 한국과 달리 MLB는 극도의 투고타저에다가 홈구장이 매우 큰 PNC 파크 라서 이러한 강정호의 성적이 더욱 빛이 난다고 할 수 있다. 유격수와 3루수로 뛰면서 리그에서 각 포지션 상위 10% 안에 드는 성적을 올렸다.
4.2.2.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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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시즌 중 활약은 강정호/2016년으로
2015년의 활약에 힘입어 추신수를 밀어내고 THE SHOW 2016년 한국판 표지 모델이 되었다. 강정호의 위상을 알게 해주는 사건이다.
2016년 wRC+ 133을 기록하여 지난해보다 비율스탯이 약간 증가했다고 할수있다. 2016년 KBO 3루수와 비교하자면 이범호보다 나은 수준의 활약을 했다고 볼수있다.
시범경기에서 잠깐 나오기는 했지만 시즌 개막 후에도 한달간 더 재활에 매진하다 5월 7일, 부상에서 돌아온 후 첫번째 경기에서 1:0에서 3:0을 만드는 대형 2점 홈런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다음 타석에서 3:2에서 추가점을 만드는 솔로 홈런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4.2.3. 2017 시즌
- 강정호 항목의 '음주운전' 참조
[이영미 人터뷰] 속죄의 길을 찾는 강정호의 심경 고백
여담으로 팀메이트 중에 한국에서 뛰었던 유네스키 마야와 루이스 히메네스가 있다.강정호는 9월 27일(이하 한국시간) 도미니카 야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lidom.com과의 인터뷰를 통해 도미니카 공화국 윈터리그 구단 아길라스 시바에냐스 소속으로 첫 훈련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강정호는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고 들었다. 경기에 안 뛴 지 오래됐는데, 이곳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운을 뗐다.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대해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수준이 높다고 알고 있다”고 답한 강정호는 “첫날 훈련 분위기도 좋았다. 즐기면서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 다만 날씨는 조금 더운 것 같다”며 첫 훈련 소감을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한 점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경기 자체를 못 뛰었기 때문에 팀에 너무 많이 미안했다. 많은 팬에게 실망을 드려 너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 뒤 “더 열심히 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며 윈터리그에 임하는 각오를 다졌다. #
아니나 다를까 도미니카 윈터리그 4경기를 치른 현재 그의 타율은 '''.059'''이다. 팀도 이때까진 실드를 쳐주면서 데려올려 했으나 결국 12월 중반부터는 그를 제외한 전력을 구상 중이라고 밝혀 복귀가 더 힘들어졌다.
또한, 팀에서는 게릿 콜을 트레이드하면서 데려온 유망주 콜린 모란을 주전 3루수로 쓰겠다면서 그야말로 메이저 커리어를 이어갈 확률이 훨씬 더 낮아졌다.
4.2.4. 2018 시즌
1월 19일 엠스플의 기사를 통해 미국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우선은 이 비자 획득 여부에 따라 미래가 갈릴 듯.
4월 27일, 비자를 받는 데 성공하여 미국으로 입국했다. 일단 펜실베니아에서 음주운전 프로그램을 이수할 예정이라고 하며 이후 마이너에서 실전감각을 되찾을 것이 유력해 보인다. 1년 반의 긴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관건. 일단은 당분간 제한 선수 명단에 그대로 둔 채 스프링캠프 기간 만큼 준비한 이후 메이저리그 복귀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복귀를 하더라도 1년간 실전 감각 없이 뛰었던 AAA급인 도미니카 리그에서 1할대의 저조한 공격력이었는데 그보다 수준 높은 메이저에서 제 활약을 할지는 의문스럽다.게다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도 무시할 수 없다.
마이너에서 리햅 경기를 치른다고 해도 바로 레귤러로 기용될 가능성도 의문이다. 현재 피츠버그의 3루수는 콜린 모란. 게릿 콜의 트레이드로 받아온 선수로 피츠버그에서도 기대하고 키우고 있는 선수이며 현재 성적도 괜찮은 편. 유격수는 조디 머서가 강정호 이전부터 있었고, 3루수 백업은 데이비드 프리즈가 2루수/유격수 백업은 션 로드리게스가 있다.
상위 싱글A에서 만루홈런을 쳤다고 한다. 하지만 싱글A는 수준이 낮은 경기라서 살아났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상위 싱글A에서 4타수 4안타 1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싱글A에서의 맹활약으로 헌팅턴 단장의 결정에 따라 곧바로 트리플A팀인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로 콜업되었다.
6월 1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산하 마이너 톨리도 머드헨스와의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 3삼진을 기록하였고 트리플A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12일 경기에서 1회말 1루 땅볼 3회말 우익수 뜬공 4회말 풀카운트 승부에서 2루 땅볼 7회말 2루 땅볼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여 2경기 연속 무안타로 침묵하였다.
6월 13일 경기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하여 3경기만에 안타를 신고하였고, 타율은 .083을 기록하였다.
6월 14일 경기에서 3번타자(유격수)로 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 1볼넷 1타점(희생플라이)를 기록하였고 타율은 .067로 내려갔다.
6월 15일 휴식 차원에서 선발 제외되었다.
6월 1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 콜럼버스 클리퍼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2타수 1안타 1볼넷 1사구 1득점의 3출루 활약을 하였고 타율도 .067에서 .118로 끌어올렸다.
6월 20일 4타수 3안타 3타점을 기록. 타율을 종전 .182에서 단번에 .269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후 손목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라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8월 2일 손목 수술을 하면서 시즌 아웃되었다. 거기에 올시즌 종료 이후 구단 옵션도 걸려있어 자칫하면 메이저 커리어가 여기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9월 초 이후의 복귀 가능성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9월에 복귀할 경우 마이너리그 시즌이 종료되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재활 경기 없이 바로 빅리그 확장 로스터에 합류해야 하는 불리함을 안게 되었다.
현지시간 2018년 9월 28일, 주말 신시내티전에서 '''복귀'''한다. 2018년 9월 29일(한국시간) 신시내티 전에서 7회 대타로 타석에 들어와 2구째 볼을 받아쳐서 '''안타'''를 때렸다. 마지막 안타가 2016년 10월 1일이므로 '''726일만'''에 안타. 득점은 하지 못한채로 이닝이 종료되었다. 다음 날에는 3루수로 선발 출전해서 1안타를 기록하였으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대타로 출전해 아웃 되었다. 결국 2018년은 6타석에 2안타만 기록하고 마감되었다.
4.2.4.1. 향후 전망
피츠버그는 딜레마에 빠졌다. 연장옵션으로 강정호를 붙잡으려면 연봉 55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방출을 결정할 경우 구단의 확정 지출은 25만 달러로 대폭 낮아진다. 첫 2년 간 보여준 스탯과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옵션 발동이 당연하다. 하지만 음주운전같은 비도덕적인 행실과 강제 휴식기로 인한 경기력 저하 가능성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태다.
지역 일간지에서는 지금 당장 550만 달러로는 강정호급의 주전 3루수를 구할수 없거니와 도박수로라도 강정호를 잡아 두는 것은 그리 큰 손해가 아닐 것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다른 지역 언론은 25만 달러를 주고 방출시킨 후 550만 보다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할 수 있다는 추측도 했다.
의외로 메이저리그의 3루수 구인난이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메이저 경력 대부분을 3루수로 보낸 강정호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마우어의 은퇴로 사노가 1루/지타를 메꾸느라 3루가 빈 미네소타 트윈스, 코자트의 2루 이동이 예정된 LA 에인절스, 타격이 아쉬운 모란과 아직 승격까지 1년 정도 남은 유망주 헤이즈가 있는 피츠버그 파이리츠, 무스타커스를 트레이드 한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이 대표적으로 3루를 구해야 하는 팀이다.[17] 문제는 FA시장에 조시 도널드슨, 매니 마차도, QO가 사라진 마이크 무스타커스 등 거물 3루수들이 즐비해 강정호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10월 31일, 결국 피츠버그 구단은 강정호에 대한 연장 옵션을 포기, 선수는 FA가 되어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 11월 9일 피츠버그와 1년 최대 550만 달러[18] 에 재계약을 하면서 2019년에도 피츠버그에서 뛴다. #
4.2.5. 2019 시즌
5. 무소속 신세
5.1. 2020 시즌
6. 국가대표 경력
6.1.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강정호는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이는 강정호의 커리어 첫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합류이다. 단기전에서 유격수의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이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백업 유격수에 머무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는 유격수 자리에 수비력이 매우 뛰어난 배테랑 손시헌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항간의 예상대로 대회 초반에는 손시헌에게 유격수 자리를 넘겨주고 벤치에 있었지만, 이후 3루수 최정의 부진을 계기로 3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결국 대만과의 결승전 2점 홈런 2개를 포함해 홀로 5타점을 쓸어담고 9회말 깊숙한 파울 플라이를 몸을 날려 잡아내는 호수비를 선보이는 등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그래서 강정호가 맹활약할 때마다 이장석 사장이 미소짓고 김시진 감독이 머리를 쥐어뜯는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돌았다. 아무튼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병역 혜택을 받는 데 성공했다. 아시안게임 최종 성적은 '''13타수 8안타 3홈런 8타점.'''
다른 팀이면 그저 기뻐하는 반응이었겠지만 불쌍한 넥센 팬들은 경기 중에는 '정호야 나대지마 ㅠㅠ' 경기가 끝나고는 '너무 나댔어', '그렇게 팀을 떠나고 싶었으면 말로 할 것이지 ㅠ.ㅠ', '안돼, 강정호 가지마 ㅠ.ㅠ' '정호 없으면 뭐 먹고 살아 ㅠㅠ' 하며 불안에 떨었다. 결국 이런 기사도 떴다... 강정호가 뜰수록 히어로즈 팬은 불안하다
6.2.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13 WBC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로써 강정호는 커리어 2번째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네덜란드전에서 실책을 기록했고 타격에서도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마지막 대만전에서 '''3루수'''로 나와 8회말 팀을 1승 2패가 될 수도 있었던 굴욕에서 구원하는 역전 투런 홈런을 기록했다. 극심한 빈타에 시달린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홈런을 때린 타자다.
강정호의 이 홈런으로 대표팀은 1라운드 2승 1패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동률인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에게 TBQ가 밀리면 사상 첫 1라운드 탈락의 쓴맛을 봐야했다.
최종 성적은 3경기, 9타수 2안타(1홈런), 2타점, 1득점, .222/.222/.556, OPS .778
6.3.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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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국가대표팀과 LG 트윈스 1.5군과의 연습경기에서 공백이 무색하게도 3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다만 아직도 오른손에 통증이 남아 있다고 해서 넥센 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른손에 테이핑하는 강정호
9월 22일 태국과의 B조 1차전에서 1회말 한 이닝에 2아웃을 당하는 한아두의 굴욕을 겪기도 했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적시타를 때려 체면치례를 하였다. 이 날 성적은 3타석 3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 이후 김상수로 교체되었으며 경기는 15:0 5회 콜드게임으로 대승했다.
9월 24일 B조 8강 경기 대만전에서는 1회부터 쓰리런홈런을 쳐내어 자칭 타칭 '''대만 킬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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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아웃쪽으로 세리머니를 했는데 미필자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그러나 4년 전 광저우에서 홈런을 때려냈던 대만 투수 천관위가 올라온 뒤로는 2타석 연속 삼진과 범타로 물러나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 이 날 SBS 해설자로 나선 박찬호는 강정호를 보며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생각난다, 하체가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스카우터들도 공백이 길었는데도 슬럼프가 없다며 놀라워했다는 후문. 여러 인터뷰에서 강철 멘탈의 면모도 과시했는데, 아직도 오른손목이 벌겋게 부어있다는 소식도 같이 전해져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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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끝나고 천관위가 인터뷰하는데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9월 27일 준결승 중국전에서는 경기가 풀리지 않고 답답하게 흘러가던 3회말 1:1의 1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중국 투수 치찌핑의 공을 받아쳐 솔로포를 때렸다. 경기의 물꼬를 트는 홈런이었다. 이어서 6회말 박병호도 결정적인 쓰리런 홈런을 날려서 이날 넥센의 두 주포가 국대에서도 승리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강정호 인천 아시안게임 2호포, 홈런친 후 덕아웃 분위기, 강정호 호수비
9월 28일 결승 대만전에서는 2:3으로 뒤지던 8회 초 1사 만루 상황에서 155km/h의 몸쪽으로 오는 빠른 공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어 몸에 맞는 공으로 밀어내기 동점을 얻어 내고, 나성범의 희생 타점과 황재균의 적시타로 득점까지 올렸다. 최종 스코어 6:3으로 대한민국 승리.
최종 성적은 18타석 14타수 5안타 2홈런 7타점 5득점 4(4사구) 타율 .357 출루율 .500 장타율 .929 OPS 1.429. 7타점은 전체 선수 중 1위이다.
여담으로 AG 기간 내내 손아섭과 돈독한(...) 사이임을 과시하였다. 특히 마지막 우승이 결정되고 나서 다른 선수들이 모두 마운드를 중심으로 모이는데 혼자 2루의 강정호를 향해 뛰어가는 손아섭의 모습은 백미(...). 손아섭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날 사진을 딱 3장 올렸는데 그 중 한 장이 바로 강정호에게 뛰어가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페북 그 외 이태양, 이재학을 건드리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사진 모음
[1] 서울은 인구가 많은 만큼 야구 인구도 많아서 그렇고, 광주를 비롯한 호남 팜은 초등학교 야구부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고 또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한테 야구를 많이 시킨다고. 예를 들어 광주일고 한 곳에서만 2017년 현재까지 배출한 선수들을 모아도 프로 1군팀을 꾸릴 수 있다. 그것도 올스타 급으로. 광주일고 출신 선수로는 강정호, 김성현, 김병현, 선동열, 이종범, 최희섭, 이강철, 박재홍, 문희수, 정회열, 김종국, 이호준, 성영재, 서건창, 정찬헌, 장민재, 심동섭, 허경민, , 등이 있다.[2] 훗날 광주일고 김선섭 감독은 "처음부터 유격수를 시켰으면 프로에서 더 일찍 자리잡아 해외 진출도 빨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기사[3] 강정호의 아버지는 기아의 광팬인데, 강정호를 안 뽑아주자 굉장히 빡쳤었다는 카더라가 있다.[4] 어차피 야구판이란 게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신인지명도 1~2라운드는 암묵적인 합의(?) 혹은 양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본문에서처럼 갑자기 변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5] 팬들이 기대했던 이상적인 교체상은 20대 중후반이었던 박기혁과 나주환이 30대 중반인 박진만, 김민재를 이어받았다가 포텐 터지면 20대 초중반쯤 되었을 강정호나 김재호에게 자연스럽게 넘겨주는 거였는데(2008년 베이징 올릭픽때 박기혁과 나주환 둘 중 하나는 차출될거라 생각한 팬들이 많았다.) 당시 유격수 포지션이 워낙 보수적으로 운영된 탓에 2009년 WBC에 박기혁이 차출된 것을 제외하면 새얼굴 수혈 없이 박진만, 김민재로 가다가 바로 강정호에게 넘어갔다.[6] 동기 야수들 중 친구 황재균이나 신현철,유선정, 유재신은 계속 2군에 있었다.[7] 데뷔 첫 홈런은 3년차에 터졌다.[8] 그러니깐, 그 당시 식물방망이 였던 지석훈과 차화준 보다도 수비에서 못했다는 소리다.[9] 다만, 2군에서 1년차 때부터 타율 .323, 73안타, OPS .860를 기록할만큼 여전히 팀에서 기대를 걸어볼만한 타격포텐은 있었다.[10] 평소 나훈아의 열렬한 팬이었던 이광환감독이 나훈아를 닮은 강정호의 모습을 보고 꽂혀서 그를 밀어주기로 했다고 한다.(...)#[11] 정성훈의 백업[12] 원래 강정호는 포수로 지명을 받았었다.[13] 대신 황재균이 3루수로 고정되고, 이때부터는 2012 시즌 서건창이 나타날때까지 2루수 자리만 유재신과 김민우, 김일경, 신현철, 김민성 5인 체제 돌려막기가 시작된다.[14] 그런데, 국가대표 성인 대표팀으로 나간 포지션이 유격수도 아니고 3루수 라는 것에 야갤에 큰 웃음바다를 선사한건 덤[15] 원체 유격수는 타격과 수비력, 주력을 보는 KBO 시각에서 유격수의 20 홈런 이상 친 선수들은 메리트가 있다는 점[16] 근데, 히어로즈가 기아와의 시즌 성적에 좋지도 않았고, 접전보다는 열세였다.[17] 현재 fwar 기준 1.0이 안되는 주전 3루수를 보유한 구단은 파이리츠, 로열스 외에도 자이언츠, 레드삭스, 블루제이스 등이 있다. 하지만 자이언츠는 장기계약자 롱고리아가 주전 확정이며, 레드삭스, 블루제이스 등은 내년 승격이 유력한 메이저 3루수 탑 유망주들을 보유하고 있는 구단으로 강정호의 부활에 기대를 걸 이유가 없으며, 강정호를 영입한다해도 반년짜리 파트타임용 선수로 볼 확률이 높다.[18] 연봉 300만달러, 인센티브 250만달러(200/300/400/500 타석 달성시마다 62만5천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