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등장인물

 


1. 주요인물
1.1. 이세령
1.2. 김승유
1.3. 경혜공주
1.4. 신면
1.5. 정종
3. 김승유 주변
4. 이세령 주변
5. 세조의 측근
6. 왕실
7. 조정&사육신&궁중
8. 청풍관
9. 빙옥관
10. 기타



1. 주요인물



1.1. 이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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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수양대군)의 장녀. 말을 타고 싶어하는 등 왈가닥에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지만 종친이라는 신분상 좀 고지식한 면모도 갖추고 있다.[1] 자신과 혼담이 오가는 중이었던 김승유를 보기 위해 사촌인 경혜공주를 대신하여 강론에 들어갔다가 아버지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대립이라는 긴박한 정치 상황도 모른 채 김승유와 아슬아슬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다정한 사촌이었던 경혜공주가 수양대군의 핍박을 받으면서 둘 사이는 깨지는 듯했지만 6회에서 경혜공주와의 다정한 관계[2]가 부각되면서 본인들의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두 사람의 운명이 안타까움을 주었다. 이후 승유와의 약혼이 깨지고 신면과 반강제로 혼인할 상황에 처하는데도 승유를 계속 만나는 바람에 세령을 짝사랑하던 신면의 분노에 불을 지펴 두 남자의 20년지기 우정이 박살나는 데 한몫했다. 아버지가 김종서를 치려는 것을 알고는 김승유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걸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별로 도움이 된 것은 없는 듯하다.[3]

김승유가 귀양을 간 후 류씨 부인과 아강이를 피신시켜 주지만 그 과정에서 김승유를 태운 배가 침몰한 사실을 알게되어 좌절한다. 결국 아버지 뜻대로 신면에게 시집가게 되었는데 난입한 김승유한테 납치당해 인질이 되었다. 그러나 복수심에 눈이 먼 김승유를 포옹하며, 그를 노리던 화살을 대신해서 맞는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김승유에게 아버지가 강화로 가는 배를 일부러 침몰시켜 자신의 적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듣고 다시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본격 반항 중. 치욕스러운 공주는 절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가 '공주'가 되어야 제목처럼 '공주의 남자'가 완성될 수 있어서 그런지, 17회에서는 공주 책봉을 받았다.[4] 김승유와 경혜공주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에 잠시 아버지와 연모하는 김승유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하는데 아버지가 끝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결국은 19회에서 본인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개를 포함한 사육신들이 거열형을 당하고 상왕인 단종이 폐위되자 아버지 앞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며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하며 궁을 나간다.
일각에서는 너무나 단호하고 강단있으며 사랑도 적극적으로 이끌어 갔던 세령이 김승유보다 오히려 더 히어로 같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강단있는 모습에 시청자들 중에는 그래도 딸 생각하는 아버지 세조의 마음도 몰라주고 너무 대드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딸 생각한다는 아버지가 '''몇 번이나 세령을 이용해먹고 또 세령에게 사기를 쳐댔는지'''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아버지라도 세조가 세령을 탓할 처지는 못된다.
이후 승유와 함께 빙옥관에 머물며 청소, 빨래 등 잡일까지 도와주기도 하지만(...) 또 신면이 찾아와서 본의 아니게 빙옥관에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궁에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딸을 신면의 노비로 보내버리겠다고 맞선언을 해버렸다.

21화에서 결국 노비로 내쳐져서 신면의 집으로 감과 동시에 감금 크리됐으나 승유의 난입으로 함께 광주로 도망치지만 신면에게 또 다시 발각되고 만다. 게다가 이 화에서 승유에게 '''저승길이라도 따르겠다'''는 대사를 했는데 이건 사망 플래그에 속하는 대사다. 플래그가 이뤄질지 분쇄가 될 지는 마지막 화까지 지켜봐야 할 부분. 22화 마지막에서 마침내 승유와 '''검열삭제'''를 하게 됐다. 문제는 이별의 검열삭제라는 것...23화 초반엔 가락지를 교환하며 혼인서약 후 김승유와 헤어져 병에 걸린 남동생 숭이 있는 사가로 돌아갔다.

이후 신면의 집에서 노비생활을 하다 함길도로 부임한 신면과 동행하게 되어버렸다. 한명회와 신면이 자기를 미끼로 김승유를 꾀어내려는 걸 알자마자 말을 타고 달아난다. 이후 첩자로 오인한 이시애 패거리들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김승유에 의해 풀려난다.

마지막 회에서는 승법사에서 경혜공주를 만나던 중 입덧을 하더니 결국 김승유의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밝혀진다. 김승유가 승법사에 온 세조를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옥에 갇히자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김승유와 함께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 후에 온양에서 김승유와 함께 가정을 이루며 딸도 낳고 평범하게 살고있다. 어찌보면 비운의 공주지만 달리보면 드라마에서 어느정도 해피엔딩을 맞은 인물.

1.2. 김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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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3남.[5] 종학의 직강으로 있으며 기방에서 자고 입궐하는 등 여지없이 '''조선 한량'''이다. 수양대군이 대립관계였던 김종서와 야합하기 위해 승유와 세령의 혼사를 추진했으나 김종서는 이를 쓰루해버리고 수양의 세력에게서 단종을 지키기 위해 문종의 사위로 들여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세령의 정체를 모른 채 공주의 남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다소 무모한 연애를 즐겼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며 목이 달아날 뻔 했다가 김종서가 사직까지 하며 풀어나게 해준다.[6] 여담이지만 좀 특이한 게 극 중에서 경혜공주는 조선팔도 최고 미색인데다 종학 스승들마저 홀리는 미녀로 나오는데 단 한번도 경혜공주에게 흔들린 적이 없다. 경혜공주가 자기가 진짜 공주임을 밝혔는데도 면전에서 세령만 찾아 공주를 빡치게 만들었다. 결국 자신의 혼인상대가 세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간택날 좌절한다. 공주 행세를 하던 세령과 만난게 발각되어 부마 간택에서는 탈락했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단종과 공주의 편에 힘을 보태기로 한다. 경혜공주로 인해 세령을 궁녀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령을 사랑하고 있었다. 6회 마지막에 그 사랑을 인정하고 세령을 찾아가 이를 확인했으나 시기가 시기인지라[7] 그야말로 최종눈새가 되었다. 부마간택에서는 탈락했으나 아버지인 김종서가 좌의정이 되면서 본인도 승정원 주서 자리에 올라가는데 이는 암묵적으로 신면과의 사이가 더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령 때문에 아버지가 사직하고 본인도 목숨을 잃을뻔했기에 밀쳐내려고 했으나 결국엔 받아들인다. 세령을 궁녀로 알고있고, 가족의 반대에도 다시 무모하게 만나게 되지만 당연히 계유정난으로 인해 가족도 사랑도 잃게 된다.

그리고 9화에서 '''드디어''' 세령이 수양의 딸이란 걸 알아차렸다. 수양을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날뛰다가 잡혀가서는 참수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단종의 어명으로 참형은 면하고 관노로 신분이 떨어져 귀양을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얌전히 귀양을 갈 수 있을 리는 없고 수양 측의 싹쓸이 음모에 빠졌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 같은 배에서 만난 조석주의 도움으로 한양으로 돌아온다. 이후 신분을 숨기고 색주가에서 기도 노릇을 하면서 틈을 엿보다가, 수양을 죽이기 위해서 수양의 집에 잠입해서 이세령을 데리고 도망친다. 물론 엄청나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러브라인은 없고 앵스트하기만 한 상황. 하지만 세령이 자신을 대신해 화살을 맞은 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원수들에게 차례대로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온녕군부터... 신숙주도 노렸으나 신면이 나타나, 둘이 사이좋게 검상 하나씩 입고 물러났다. 원수들을 죽이고 난 뒤 '''대호'''라는 글자도 함께 남긴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복수로 수양 일파를 한 명씩 암살하고 있었지만 친구 정종과 스승 이개, 형수의 설득으로 사육신의 계획에 가담한다. 사육신이 궁 안에서 수양을 치는 사이 승유는 궁 밖에서 군사들을 몰고 궁으로 들어오기로 했는데, 사육신들이 수양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실패하고 도주한다. 그 와중에 신면과 딱 마주치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사육신과 정종을 구하기 위해 감옥에 난입했지만 이들의 거부로 실패.

21화에서 거사를 치르기 위해 광주로 막 떠나려던 차에 세령이 신면에 집에 노비로 갔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신면 집으로 난입, 세령을 낚아채고 같이 광주로 도주했으나 곧바로 발각크리. -22화에서 함길도의 호족인 이시애와 손을 잡을 것을 결의했는데 세령이 수양의 딸이라는 것이 같은 편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또 세령과 헤어질 판이 되었다.

마지막 회에서는 이시애의 난이 실패하자 직접 수양을 죽이기 위해 승법사에 난입하고 거의 죽일 뻔했지만 수양에게 세령의 임신 소식을 듣고 주춤하던 사이에 붙잡힌다. 옥에서 사망 플래그를 꽂는 듯한 대사를 하는데 결국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세령과 도망친다. 세월이 흘러 수양이 온양행궁으로 가던 중 서로 마주치는데 딸아이와 걷고 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맹인이 되어있다.[8] 그러나 더이상 이전같은 불타오르는 복수심은 남아있지 않기에 모든 걸 뒤로 하고 세령과 딸과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

실제 역사 속 김승유는 배우자 민씨가 있었으며 드라마 속 김승유의 모티브가 된 캐릭터는 금계필담에 등장하는 김종서의 손자 김차동이다. 김승유에 대한 기록이 워낙 적어서 생몰년도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김종서의 나이와 세조의 나이를 추측해봤을 때 실제 김승유의 나이는 드라마 속의 연배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9]

1.3. 경혜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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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의 장녀이며 단종의 누나. 조선 최고의 미녀로 강론에 들어오는 스승들마다 골탕을 먹이는 바람에 선생들이 다 도망가버렸다. 강론에 들어가는 것을 귀찮아 하다가 세령의 제안으로 공주 대리 노릇을 하게 시켰는데 이 이후에야 수양대군의 입지와 이를 견제하려는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된다.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세령과의 관계도 틀어지고 승유와의 혼사 역시 물거품이 되었으며 자신은 웬 듣보잡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10] 나름대로 수양대군에게 맞서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는 있으나 많이 밀리는 상황. 경혜공주와 그의 남편 정종은 신면을 제외한 야사에서만 나오는 메인 주인공들과 달리 실존인물이며 드라마에서 처한 상황 역시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이 캐릭터가 드라마 내에서도 상당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이 많다. 그리고 다소 츤데레적인 기질이 있다.

세령과는 원래 친했다는 묘사가 있으며 중간에 사이가 틀어졌음에도 완전히 미워하고 있지는 않다. 세령이 찾아오지 말라는데도 찾아오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소에 가고 싶다는 걸 알고 꽃을 꺾어오고, 등등의 일을 하자 말로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엄청 좋아한다. 일단 곁에 있는 정종에게도 츤츤대지만 잘 보면 가끔 만나는 세령에게도 츤츤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정종을 남편 대접은커녕 듣보잡 취급했지만, 자신에게 진지하게 충고를 하고 계유정난 와중에 남동생 단종과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등 정종의 새로운 면을 보고 정종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 정종이 새를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후원에 새장을 가득 사다 놓는 등 이벤트를 벌이고,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정종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이때도 "이런 쓸데없는 짓을...", "딱히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전하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임"하면서 츤츤대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 상황이 점점 더 급박해지면서 정종에게 점점 더 의지하고 마음을 주게 된다. 그 자존심 높던 경혜공주가 정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수양대군을 찾아가 무릎을 꿇을 정도. 물론 수양은 씹었지만, 단종의 양위 덕분에 정종은 풀려난다. 풀려난 정종과 함께 단종의 양위 소식에 오열한다. 그 뒤 정종이 사육신과 거사를 일으키기로 하기 전날 늘 자신의 곁을 지켜주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정종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고, 혼인하고 나서 처음으로 정종을 '''서방님'''이라고 부른다.[11] 이에 감격한 정종과 입을 맞추고 드디어 합방을 했다! 다음날 아침 정종과 달달한 신혼 모드에 들어가지만, 사육신의 거사가 실패하면서 정종이 잡혀간다.

승유와 세령의 정종과 사육신 구출 시도에 희망을 걸지만, 이마저도 정종과 사육신들 자신이 거부한다. 그러자 궁궐로 가서 수양에게 '''전하'''라고 부르며[12] 석고대죄를 해 정종을 구해내고 함께 광주로 귀양을 가게 된다. 21화에서 회임을 했다는 걸 밝혔는데 정종이 금성대군의 역모에 가담했다는 것이 밝혀져 한양으로 압송당한다. 결국 정종은 끔살 당하고[13] 경혜공주 본인은 임신한 몸으로 관비로 떨어져 버렸다.

함길도로 가기 전 찾아온 김승유가 함께 가기를 권유했으나 남편 곁에 있겠다며 거절, 정미수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찾아온 숙모 정희왕후의 권유에 따라 승법사로 가게 되었다. 마지막 회에서는 김승유가 붙잡혀 괴로워하고 있는 세령에게 아이에게 아비 얼굴은 보여줘야 한다며 세령을 설득한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엔딩에서는 나오지 않으나 역사대로 정미수가 장성할 때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4. 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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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의 차남. 통칭 '''신 판관'''[14]. 이 드라마에서 김승유와 신면은 절친한 사이였으나 세령을 두고 연적관계가 된다. 김승유, 정종과 함께 이개 아래에서 수학한 죽마고우. 강직하고 바른 성품의 무관이었으나 아버지들 일에 휘말리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종서와의 야합을 놓친 수양대군이 신숙주에게 손을 내밀면서 신면과 세령의 혼담이 오고갔고, 이로 인해 승유보다 먼저 세령의 정체를 알았다. 하지만 승유로 인해 몇 차례 마주친 세령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승유에게는 사실을 숨겼었다. 결국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완전히 수양의 편으로 돌아서서 김승유와 대적하게 되었다. 이후 계유정난때 친구 김승유를 사로잡고 그를 미끼로 김종서의 은거지를 알아내는 등 독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숨이 붙어있는 김승유를 차마 끝장내지 못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짝사랑하던 이세령과 혼인을 하게 되었기는 한데 세령은 신면을 벗을 배신한 쓰레기 취급하는 지라 사이가 진전될 기미도 없었다. 사실 그런 취급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하고 그나마 김승유의 조카인 아강이를 치료하게 해주고 남은 가족들을 피신시켜주며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한 덕분에 말종 취급은 벗어난 듯 했는데 정종이 수양대군을 해치려고 자신을 이용한 것을 알고[15] 세령마저 다시 돌아온 김승유 때문에 자신에게 매몰차게 대하자 더 큰 어둠에 빠져들었다. 사육신의 거사를 진압하던 도중 김승유와 마주치고 그의 정체를 알아채게 된다. 완전히 수양대군의 편이기는 하지만 친구나 스승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인지 김승유가 한성부로 잠입했을 때 이를 방조하기도 했다.

20화에서는 자기에게 대드는 딸에게 빡친 수양이 세령을 신면에게 '''노비로 하사해버렸다.''' 21화에선 세령을 도망 못가게 감금시켰으나 또다시 달아나 버리자 빡치고 광주로 들이닥친다. 광주에 귀양 와있던 정종과 툭탁툭탁 하는 과정에서 금성대군이 난을 일으키기 위해 돌렸던 격문이 발견되는 바람에 정종이 끔살당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인배 정종은 죽으러 가는 길에서도 신면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널 미워하긴 했지만 싫어한 적은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고, 이 때문에 더 큰 죄책감을 받은 신면은 인간이 제대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세령이 사가로 돌아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찾아가 말다툼을 하다가 몸뚱이라도 갖겠다는 발언을 날린다. 이시애의 난 때 김승유가 던진 칼에 심복 송자번을 잃으면서 복수심을 불태우며 김승유와 일기토를 벌이다가 김승유를 잡기 위한 한명회의 흉계로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고만다. 결국 자신을 살리려는 승유의 모습에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종이에게 먼저 가마."라는 말을 남기고 김승유를 대신해 화살에 맞아죽고, 김승유는 그의 눈을 감겨주며 "다 잊고 가라."라고 말한다. 출세는 했지만 결국 친구도 잃고 사랑도 얻지 못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 드라마에서 '''제일 안습한 캐릭터'''이자 피해자.

실제 역사에서 신면은 신숙주가 가장 아낀 아들이었고 세조의 도승지(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내지만 이시애의 난 때 함길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함흥 관아에서 반군에 의해 살해당한다. 도승지를 지낸 것이나 실록의 평을 보면 나름 촉망받는 젊은 인재였던 듯하다. 실제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문관이었는데 여기서는 무관처럼 나오는 게 특이점. 여담이지만 이 사람의 아들[16] 이름은 신'''용개'''로 뒷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영의정을 역임한 셈.

1.5. 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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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혜공주의 남편으로 문종의 부마. 즉 이 작품의 또 한 명의 '''공주의 남자'''다.[17] 영양위에 봉작되었다.[18] 가세가 기운 양반가의 자손[19]으로 김승유, 신면과는 절친한 사이다. 4회까지는 비중이 적었고 병든 홀어머니의 약을 지으러 갈 때만 등장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약셔틀이라고 불리웠다.(…)[20]

간택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부마도위 후보로 올라갔으나 김승유가 추문을 일으켜 탈락하고 일부러 뒷배경이 없는 후보를 골라 경혜공주와 짝을 지어주려 한 수양대군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부마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허당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스승인 이개를 만났을 때나 공주를 대할 때 진지하게 정색하는 바람에 복흑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21]

세령이 공주 대리 노릇을 하고 있는 사이 저자 거리를 구경하던 경혜공주와 우연히 마주치고 그녀에게 반했었는데, 길례 때 자신과 혼인하는 공주가 바로 그녀라는 것을 알게 되어 "올레!"를 외쳤으나...정작 혼인을 하고 나니 경혜공주에게는 남편 대접은커녕 듣보잡 취급을 받고 있어 초야도 아직 치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 경혜공주와 정종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정종과 경혜공주 사이의 멜로를 기대하고 있다. 한 회마다 말하기, 손잡기, 감싸안기 정도로 미미하게 진도가 나가는 중이다. 11화에서 경혜공주와 진도가 더 나갈 수 있었는데 때마침 수양대군이 안평대군에게 사약을 보내는 바람에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래도 13회에서는 드디어 와락 껴안기까지 진도가 나갔다!

이후 금성대군의 수양 암살 계획에 참여한 혐의로 한성부에 끌려가고 단종이 퇴위하는 등 급박한 상황을 경혜공주와 함께 견뎌내면서 경혜공주와 좀 더 가까워지게 된다. 드디어 18화에서 사육신의 거사에 가담하기 전날 자신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 경혜공주와 입을 맞추고 합방까지 했다!![22] 다음날 아침에는 경혜와 달달한 신혼 모드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러면서 사망 플래그를 함께 세워버렸다. 19회에서 사육신의 거사에 가담한 죄로 거열형을 받을 뻔 했지만 경혜공주의 난입으로 목숨은 구하고 부부가 나란히 전라도 광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21화에선 경혜공주의 회임소식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아 신면에게 역모를 꾸민 사실이 발각되어 곧바로 끔살 확정.

결국 신면과 다투다 금성대군의 격문이 발각되는 바람에 거열형을 당했다. 신면이 김승유가 자신을 구하러 찾아올 것을 노리고 있음을 알기에 바로 다음날이 자신의 처형일을 숨기면서 구해주었다. 처형되기 전 태어날 자기 자식 이름은 짓고,[23] 경혜공주와 마지막 인사도 나누고 신면과의 앙금도 어느 정도 털어내는 등[24] 나름 할 건 다 하고 죽은게 그나마 위안. 그리고 끔살 직전 수양에게 "너는 물론이고 후손까지 고통을 받으리라!!"는 저주를 내린다.[25] 그리고 죽기 직전 처형장에 찾아온 경혜공주와의 애절한 눈맞춤과 거열형을 당할 때의 처절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26]

2. 김종서 &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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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서 (이순재[27])
김승유의 아버지. 그야말로 대쪽같은 충신이며 가문의 멸망을 각오하고 왕위 찬탈을 노리는 수양대군에게 맞서고 있다. 수양 주변에는 그래도 존재감이 있는 캐릭터들이 여럿 있는데 반해 김종서 주변 인물들은 거의 '''공기'''수준이라[28] 거의 혼자서 수양 패거리에 맞서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워낙 배우의 연기력과 연륜이 받쳐주는지라 혼자서 수양 패거리에 맞서는데도 딱히 포스가 밀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특히 6화에서 보여준 간지폭풍[29]은 과연 이순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명장면. 덕분에 '''순달프'''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철퇴를 맞고도 살아남아 피신후 군사를 결집하려고 했으나 이를 안 수양측에서 먼저 김승유를 미끼로 김종서가 피신한 곳을 찾아내 일이 틀어져 9화에서 역사대로 결국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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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조 a.k.a 수양대군 (김영철[30][31][32])
이세령의 아버지, 조선 제7대 왕. 이 드라마의 만악의 근원. 공홈의 등장인물 소개에서는 마키아벨리에 비견되었다.[33] 야심으로 가득하며 권력에 대한 욕구 역시 강하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줄 수 있는 인물들을 골라 친교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김종서 역시 포섭대상이었으나 김종서가 문종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정적이 되었다. 대신 포섭한 게 신숙주.

문종이 죽고 나서는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남동생 안평대군에게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물론 여기서 수양의 얼굴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 안평대군의 도움으로 정계에 복귀한 김종서가 종친의 정치 참여 금지를 공언하자 이를 갈며 '''"내 손으로 죽여드리리다!!"'''라고 독백했다.[34]

딸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보였지만 세령의 남편을 찾았던 것이 실은 모두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였다. 일단 역대 사극 중 수양대군의 실제 냉혹하고 욕망이 넘치는 악인 이미지를 가장 잘 살린 캐릭터이다. 사실 당시 나이가 30대이기에 실제보다는 늙게 나온 셈이긴 한데 이 당시 30대 후반이었으니 큰 문제는 없다.

15화에서 마침내 단종에게 양위 선언을 받아냈는데 그때 보여준 가증스러운 모습이 그야말로 보는 사람의 입에서 개새끼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16회에서는 결국 단종에게 양위를 받고 즉위했다.[35] 왕 될 때까지는 좋았지만 이젠 사육신 사건이 터진 데다가 그 사육신을 붙잡기는 했는데 그들과의 키워에서 '''개관광''' 당하며 나으리라고 모욕감을 당하는가 하면 자식이 눈앞에서 절연을 선언하는 등 그동안 해온 인간백정 짓의 반작용이 슬슬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믿었던 세자마저 병으로 앓아눕는다.

결국 20화에서는 딸에게 '''신면의 노비가 되라'''는 충격적인 개드립을 날렸다. 무서울 만큼 냉철하던 수양이 이런 개드립을 날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인간이 망가졌다는 반증이라 하겠다.[36] 22화에서는 더 가관인 게 대놓고 '''"세령을 이용해서 김승유를 찾아내라"'''는 드립을 쳤다. 돌려 말한 것도 아니고 진짜로 '''이용'''하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것도 부인 정희왕후가 보는 앞에서. 이 때 정희왕후가 수양을 보는 표정이 대략 '''"아니 이 새끼가..."''' 수준이었다.

23화에선 동생은 아픈데 김승유와 달아났다 돌아온 세령을 차갑게 대하다가 세자의 죽음에 대해 괜히 세령을 탓하면서 승지에게 세령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다 지우라는 명을 내린다. 마지막 회에서는 꿈에 단종이 나와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방울이 손등에 떨어지고 꿈에서 깨어보니 손에 종기가 생긴다. 이 일로 승법사에 세자의 명복을 빌러 갔다가 김승유와 최후의 대적을 한다. 이때 분노에 찬 김승유와 대조적으로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세령의 임신 사실을 이용하여 김승유를 혼란에 빠뜨린 후 사로잡는다. 그러나 정희왕후의 계략으로 세령이 자살했다는 거짓 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인다.

세월이 지나 많이 노쇠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종기가 얼굴까지 퍼져있다. 온천욕이나 할겸 온양 행궁으로 가다가 자신의 손녀와 김승유를 본다.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세령이 평범한 민가의 여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며 중전에게 감사해한다. 그래도 애증은 있었지만 제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걸 보니 부정은 어쩔수 없었던 모양. 처음에 정희왕후에게 세령이 자살했다는 페이크를 들은 후 나름대로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마지막화에서는 폭삭 늙어버렸다. 참고로 역사에서 세조는 이시애의 난 1년 뒤에 사망했다.[37]

이와는 별도로 댄싱 위드 더 스타와 합성한 패러디가 있기도 하고, 배우 본인의 추석인사를 담은 인증사진을 디씨 공주의 남자 갤러리에 드라마 스탭이 올리기도 했다. 배우 김영철의 열연으로 시청자들에게 방영 내내 욕을 얻어먹던 캐릭터다. 그러나 마지막에 세령을 발견 후 딸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배우의 연기에 감탄하는 반응이 많았었다.

3. 김승유 주변


김승유, 신면, 정종의 스승. 초반에는 다소 개그캐릭터 비스무리한 모습도 보여주었으나 세상이 험하게 돌아가면서 어느새 진지 캐릭터가 되었다. 제자인 신면이 흑화한 모습을 보고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면서도 이대로는 안되니 그만 흑화를 풀라고 주문하는 등 진정한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복수심에 눈 멀어 피를 보고있는 김승유도 말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크사이드로 빠져드는 제자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듯. 모두 알고 있듯 이개는 사육신의 일원이라 수양 앞에서 고문당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고, 제자 김승유의 구출 시도를 거부하고 끔살 후 만고의 충신으로 남게 되었다. 승유나 정종이 신면을 매몰차게 대하지만 그래도 이개는 스승이라서 그런지 신면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를 했으며 죽기 전엔 자신을 구해주려고 노력해서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배우가 선덕여왕(드라마)에서 염종 역을 맡았기 때문에 사극덕후들이 매치가 안된다고 하기도 했고, 히트 등의 현대 드라마에서도 악역으로 등장해 악역 이미지를 지우기 어렵다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배우 분은 호연을 펼쳐 초반의 코믹한 모습과 후반의 진지한 모습 모두 잘 소화해 냈다.
  • 김승규 (허정규), 류씨 부인 (가득희)
김승유의 형과 형수. 김승규는 계유정난 때 김종서와 함께 죽었다. 수양대군이 갑자기 찾아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여자 만나겠다고 다른 데로 빠져나간 동생과 달리 끝까지 아버지를 감싸다 죽어 효자라는 평을 듣는다. 죽기 전에도 남동생이 친 사고를 아버지와 함께 수습하는 형다운 든든한 모습을 보였다. 류씨 부인은 딸인 아강과 함께 정난공신인 온녕군의 노비로 불하 되었다가 세령이 빼돌리고 신면이 도와서 멀리로 피신한 상태였다가, 세령의 도움으로 김승유와 다시 만나서 김승유가 있는 색주가에 입성했다. 계유정난 당시에도 놀라운 침착성과 결단력을 보여주더니 승유가 사육신에게 협조하도록 설득하는 정치력까지 보여주었다. 그런데 신면이 빙옥관을 습격한 이후 빙옥관 식구들의 도움으로 다른 곳에서 지내게 된다.
김승규와 류씨 부인의 딸. 김승유에게는 조카가 된다. 공주의 남자 유일의 아역이며 최강의 귀염둥이. 별 비중은 없지만 지켜보고 있으면 엄청나게 귀엽다! 연기도 잘 한다. 극 중에서는 빙옥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조석주는 딸처럼 예뻐한다. 후일담은 나오지 않았지만 엄마인 류씨 부인과 잘 살고 있는 듯하다.

4. 이세령 주변


  • 정희왕후 윤씨 (김서라[38][39])
수양대군의 부인이며, 후에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어 경복궁에 입궐한다. 부부인(대군의 부인) 시절 때 세령이 김승유랑 혼인하겠다면서 민폐를 끼칠 때, 손찌검까지 하면서 세령에게 승유랑 헤어지라고 말하였다. 계유정난 때에는 미리 세령을 집 창고안에 가둬놓고 김승유에게 어떠한 연락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수양대군에겐 그야말로 큰 정치적 조력자인 셈. 사실 역사상의 정희왕후는 이 때도 정치적이지만, 손자 성종이 보위에 오른 후 7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며 나라를 이끌었다. 공홈 소개에 따르면 결국 수양에게 등을 돌린다고 하는데 실제로 22화에서 자기 딸을 대놓고 '''이용'''하라는 수양의 말에 굉장히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23화에서는 돌아온 세령을 감싸주며 살갑게 대해준다. 세자의 죽음 이후 수양에게 세령마저 잘못되면 평생 용서치 않겠노라고 말하며 그동안 세조가 벌인 일에 대한 참회와 함길도로 가게된 세령의 안전을 어머니로써 바라면서 경혜공주를 찾아가 면천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마지막에는 세령의 임신 사실을 알고 그럼에도 세조가 김승유를 죽이려하자 결국 딸의 행복을 위해 세령과 김승유를 함께 도망치게 한다.
수양대군의 장남, 세령의 남동생이다. 이름은 숭. 큰 비중은 없지만 그래도 누나인 세령을 챙겨주며 자신은 세령처럼 아버지에게 맞설 용기는 없어 그저 따를뿐이지만 기회가 온다면 아버지처럼 잔인한 왕이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살육과 이후 행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반감이 있는 듯 하다. 참고로 이 사람보다 아내와 아들이 더 유명한데 아내는 바로 손자 연산군이랑 싸우다가 박치기당한 '''인수대비'''(소혜왕후)이시고 둘째 아들은 '''성종'''. 23화에서 큰아버지인 문종과 사촌인 단종이 보인다면서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다가 퇴갤.[40] 죽을 때까지 누나인 세령을 걱정했다.
이름은 세정으로, 세령의 여동생. 수양대군이 왕이 된 뒤 의숙공주에 책봉된다. 세령이 공주 자리를 버리면서 역사에 기록된 수양, 즉 세조의 유일한 공주가 된다. 아버지가 왕이 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언니 세령과 오빠 도원군과 달리 아버지가 왕이 되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한다. 곧 있으면 공주가 된다고 들떠 있는 상태. 욕심도 많고 질투심도 많은 성격으로 예전부터 도도한 경혜공주를 질투하고 못마땅해 했다. 경혜공주가 비천한 처지에 떨어졌을 때 경혜공주를 괴롭히지 않을까 시청자들의 걱정을 불러일으켰었다. 하지만 공주가 된 이후 비중이 '''공기'''가 되어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의경세자가 죽고 나서 상복입고 잠깐 나온게 마지막. 역사상으로는 정인지의 아들 정현조와 이미 결혼한 상태.
세령의 몸종. 세령이가 승유와 도망친 후에도 여전히 세령과 함께 한다.
  • 임운 (유하준)
수양대군의 그림자. 김종서를 철퇴로 죽인다.

5. 세조의 측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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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휘하에 있다. 양반이지만 벼슬을 하고 있다는 묘사는 안 나온다.[41] 기방을 운영하고 왈짜패들을 부리는 등 음지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부마간택 때 김승유가 후보에서 밀려나고 공주 희롱죄로 감옥에 간 것은 모두 이 사람이 벌인 일이었다. 7화에서 마침내 '''살생부'''를 작성했다. 하는 짓을 보면은 거의 전형적인 간신 스탠스인지라 신숙주에 비해서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 사극에서는 한명회가 신숙주는 물론이고 세조까지 압도하곤 했는데, 오히려 신숙주가 한명회보다 카리스마 있게 나온 것은 이 사극이 처음이다.

하지만 계유정난 당시 김종서 일파들을 처단하면서 '''"저승으로 뫼시어라"'''고 한다던가 자신은 가지지 않고 졸개들에게 돈을 양도하면서 '''"돈이란 권력을 쥐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라고 한다던가 김승유가 탄 배를 수장시킬 계획을 짜면서 '''"김승유를 살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라고 하는 등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포스가 넘쳐 흐른다. 이것을 간드러진 모사 연기를 하면서 읊어대니 시청자들의 분노 게이지는 더욱 올라가는 것이다. 이 캐릭터 역시 수양대군이나 신숙주처럼 한명회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전까지의 한명회들은 여타 인물들에 비해 지나치게 부각된 면이 있다.[42] 이시애의 난 때 실제로는 세조의 의심을 받아 자택에 구금되어 있었는데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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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의 아버지로 2회에서 첫 등장했다. 3회 초반까지만 해도 수양대군에게 맞서서 문종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사람을 찾던 와중에 걸려든다. 수양대군의 측근이 "신숙주는 대나무와 같이 곧은 성품의 사람"이라고 했는데 수양대군은 '''"대나무는 속이 텅 비었다"'''라고 말하는 등 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았고, 4회에 이르자 바로 변절해 수양대군과 짜고 부마 간택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공주를 희롱한 죄로 잡혀간 김승유를 참형에 처하라고 간언하는 등 이미 완전히 수양대군에게 넘어가 있다. 아들 신면과 세령의 혼담을 추진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사람이 변절하기 전에 정종을 부마 후보로 집어넣었었다. 김종서가 정권을 장악하고 수양이 손을 쓰지 못하게 되자 궁에서 왕따 신세가 되어서 아들의 울분을 샀다.

이전 사극들에 나왔던 것처럼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던 나약하고 줏대없는 지식인'에서 탈피하여 능력과 야심을 겸비한 냉철한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계유정난에서도 앞장서서 '''"김종서와 관련있는 자들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또한 단종의 양위과정에서 이개에게 비난을 받지만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43] 어떤 의미에서는 수양대군과 마찬가지로 역대 사극 중에서 신숙주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

그래도 권람과 한명회가 단종을 내치라고 할 때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리기도 했으며, 유배지가 확정되어 수양과 아이들이 좋아할 때도 밝은 얼굴이 아니었기에 양심은 남아있는 것 같았으나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회의에서 논리적으로 수양을 설득하여 결정타를 날려버렸다. 아무래도 이전에 밝은 얼굴이 아니었던 것도 그저 지금 쓸어버리는건 좀 조급하다는 생각이었는듯. 결국 최종화에서 그렇게 아끼던 아들 신면이 죽었는데도 수양에게 김승유를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질책당하자 절망감에 대전을 나오며 비틀거린다.

실제 역사에서 신숙주는 신면의 죽음을 '''감옥에서 칼 쓰고''' 들었다. 이시애의 난 때 세조의 의심을 받아서[44] 세조가 신숙주를 의심 겸 견제 조치로 신숙주를 아들들과 함께 투옥시켜 버린 것. 또한 한명회도 자택에 구금시켰다. 더욱이 신숙주 가족들의 칼의 조임을 느슨하게 했다는 이유로 신숙주를 감시하던 집행관의 목이 달아나기까지 했을 정도로 철저히 경계받고 있었다. 자신의 오른팔인 신숙주마저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던 세조의 냉혹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분이 바로 조선의 제 9대왕 성종의 계비인 폐비 윤씨[45]의 외당숙이다.

이 드라마에서 묘사된 신숙주에 대해 후손들이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했으나 패소하였다. 링크
수양대군의 밑에 있으며 대군 시절부터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기는 한데 드라마에서는 실질적으로 뭔가 한 것은 없다. 온녕군이랑 맨날 맞장구치면서 수양에게 "이 나라의 왕위를 이을 분은 대군 뿐"이라면서 애널서킹하는 것일뿐. 사상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양대군이랑 친하여 수양대군에게 한명회를 소개시켜주었으며 함께 참모로 일하다 1465년에 사망.[46] 신숙주가 새로이 평가받고 한명회도 간신으로 손가락질 받지만, 권람은 존재감이 없는 모양인지 별로 관심이 없다.
왕과 비의 권람[47]이 한명회와는 또 다른 성격의 냉혹한 책사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과 대비된다. 여담이지만 이 권람의 할아버지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대학자인 권근이다. 특히 권근은 1차 왕자의 난 때 역시 수양대군의 조부인 태종 이방원을 지지하였고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이 권람의 사위가 청년 장군으로 28세에 장관인 병조판서에까지 오른 남이이다.
태종의 제3서자, 즉 양녕, 효령, 세종의 이복동생이며 문종과 수양대군의 숙부이다. 종친의 어른인양 나서지만 사실 그는 대군도 아니라 군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리 힘이 막강하지 않았고 수양대군 편에 서서 그를 지지한다. 본작에 등장하지 않는 양녕대군의 빈자리를 채워준 인물.

근데 배우인 윤승원 씨는 수양대군 역의 김영철 씨보다 6살이나 어리다. 나이를 맞추려면 차라리 세종의 제 2서자로서 역시 수양대군을 지지했던 계양군이 더 맞다. 헌데 온녕군은 1453년, 그러니까 계유정난 직후에 죽었는데도 드라마에선 '''멀쩡히 건강하게 잘 살아서''' 수양의 들러리짓을 계속 하고 있다… 싶더니 16화에서 김승유한테 습격당해서 사망. 태종의 아들 중에 굳이 온녕군을 고른 것은 역사상으로는 큰 비중도 없었고 계유정난 직후에 죽었기 때문에 드라마상에서 그렇게 죽여도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수귀로 돌변한 김승유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누구 하나 죽이긴 해야 겠는데 양녕대군을 등장시켜 죽일 순 없지 않은가? 뿌리 깊은 나무의 광평대군과 비슷한 사례이다. 여담으로 전주 이씨 온녕군파 종친회에서 작중 묘사된 온녕군의 캐릭터가 사실을 왜곡하여 조상을 욕보였다고 항의를 해서 사과를 받은 적이 있다.

6.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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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장남, 단종과 경혜공주의 아버지로 조선 제5대 왕. 어린 나이에 어머니 현덕왕후를 잃은 단종과 경혜공주를 무척이나 아꼈다. 초반 경혜공주가 도도하고 다소 오만방자한 성격이던 것도 문종의 딸바보 성향 때문. 6회에서 병으로 퇴갤했다. 드라마에선 수양대군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나오고 위의 사진에도 '허약한 왕'이라고 나오지만, 실제 문종의 권력은 그럴 필요 없이 강했다(문종 항목을 참고). 사후 남겨질 어린 아들을 걱정해 야심이 많은 남동생 수양대군을 견제하고자 김종서와 손을 잡았다. 김종서와의 유대를 굳건히 하기 위해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를 경혜공주의 부마로 들이려 했지만, 수양대군의 방해공작으로 실패하고, 눈물을 머금고 한미한 집안 출신의 힘없는 정종을 부마로 맞는다. 문종으로서는 김종서와의 유대를 단단히 하려던 것이 실패한 데다 정종의 됨됨이도 알 수 없었으니 정종이 영 못 미더웠던 모양이다. 죽을 때 자신 없이 살아갈 단종과 경혜공주를 무척이나 걱정했다. 사실 문종이 즉위했을 무렵 당시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상당히 노화된 감은 있다.
세종의 장손이자 문종의 외아들, 경혜공주의 남동생으로 조선 제6대 왕. 처음엔 유약하게 나오는데 성군이 될 자질이 있다고 설명된 대로 나름 왕으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수양의 쿠데타로 데꿀멍하는 듯 했으나 금성대군 등 새로운 지지세력의 등장에 힘입어 제법 왕으로서 위엄을 보여주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48] 그러나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한 수양의 반격에 또다시 데꿀멍하여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지세력인 안평대군에게 사약을 내려야만 했다.

16화에서 자신의 지지세력인 금성대군과 정종을 살리기 위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어 창덕궁으로 물러났다. 그 전에 수양에게 자신은 할바마마아바마마의 뒤를 이어 성군이 될 자신이 있다고 했으나 물론 수양은 씹고 옥좌를 토해내라는 눈빛을 갈겨댔다. 이후 단종의 운명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자기 목소리도 내고 수양대군에게 항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전 사극에서 묘사된 단종과의 차이점. 사육신의 거사로 상왕 자리에서 쫓겨나고 노산군으로 강등된 채 강원도 영월로 유배가게 된다. 결국 금성대군의 난의 여파로 죽음을 맞이했다. 최종화에서는 수양의 꿈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잠깐 출연한다. 그리고 눈물이 수양의 손에서 떨어지자 꿈에서 깨보니 종기가 되어있었다. 방영 당시 별명은 당하는 역할이라, 쿠크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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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3남으로 문종과 수양대군의 남동생이다. 이전에는 별다른 비중이 없어 지나가는 종친 A 정도의 역할에 불과했으나, 6회 후반에 치닫자 갑자기 문종과 김종서의 밀회를 주선하고, 문종의 유시에 교지를 받아내어 김종서를 화려하게 복귀시키는 등의 활약을 거듭했다. 덕분에 조연 중의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6회 방송 직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김종서가 죽고 난 후 신면의 손에 체포당해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살려두면 후환이 될 것을 염려한 수양대군 일파의 계략에 말려들어 귀양지 구경도 못해보고 귀양 도중 사약을 받고 퇴갤. 수양대군과 대립각을 세우는 기믹은 금성대군이 이어받게 되었다.
세종의 6남으로 문종, 수양대군, 안평대군의 동생. 계유정난 직후 경혜공주와 대면하면서 반수양파 세력을 만들려 한다. 총통위(화포부대)를 배후에 두고 있어 무시할 수 없는 군사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금성대군은 화포의 개발 및 화포부대 훈련에 참여하여 큰 성과를 올린 인물이다. 그 부분을 작가가 참고한 듯.[49] 역사적 사실로는 뒤에 수양이 즉위한 후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복위 운동에 가담했다가 순흥에 유배되었다. 안평대군은 유배가는 모습이라도 나왔지 이쪽은 말로만 처리, 귀양간 다음 공기화 됐다. 그 후 다시 정종과 단종 복위 운동을 전개하려 하였으나 결국 사약을 받는다.

7. 조정&사육신&궁중


  • 성삼문 (박철호[50]), 박팽년 (이용진), 유응부 (이석구)
그 유명한 사육신의 멤버. 17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여 이개와 더불어 수양을 폐하고 단종 복위 운동을 준비한다.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워낙 허술해 금방 한명회에게 덜미를 잡힌데다 김질의 밀고 때문에 한 회만에 저승길 예비행 열차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성삼문의 명대사 "'''나으리'''"[51]도 나오며 수양에게 모욕감을 드렸다. 결국 19회에서 수양에게 바락바락 대들다가 다같이 거열형을 당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드라마다 보니 죽는 모습은 처리가 안 됐다.[52]
  • 전균 (김영배)
대전 내관. 실제 역사에서는 계유정난에 적극 가담하나 드라마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경혜공주의 궁녀. 경혜공주가 관비로 떨어진 이후에도 옆에서 경혜공주를 보필한다.
  • 문내관 (문풍지)
백발의 내관. 단종을 끝까지 모신다.

8. 청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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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귀 (최무성), 칠갑 (정진), 막손 (정근)
청풍관이라는 기생에서 일하며 한명회의 수하로 있는 왈패들이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의 가마꾼으로 위장하며 김종서의 집에서 큰아들 김승규를 죽였고, 뒤이어 김승유를 쫓아 며느리의 친정집에 있던 김종서를 죽였다. 모두 가공인물 같지만 일단 '''함귀는 실존인물'''이다. 단종실록을 보면 계유정난이 일어나던 날 대신들을 때려죽인 무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면면은 다음과 같다.
역사(力士) '''함귀(咸貴)·박막동(朴莫同)·수산(壽山)·막동(莫同) 등'''으로 제3문을 지키게 하고 영을 내리기를,“이 안이 심히 좁으니, 여러 재상으로서 들어오는 사람은 겸종(傔從: 하인)을 제거하고 혼자 들어오도록 하라.”하였다. - <단종실록> 단종 1년(1453년) 10월 10일 -
또한 실록을 보면 황보인, 조극관, 이양 등의 대신들을 때려 죽인 무사들이 바로 함귀 등이었다고 적고 있고 계유정난 이후 수양대군에게 두둑한 포상을 받았으며 이들 모두 세조가 즉위한 그 해(1455년) 겨울에 원종공신에 녹훈된 기록이 있다. 바로 이 무사들을 모티브로 창작된 캐릭터이다. 막손이는 '막동'이나 '박막동'을 변형한 듯. 함귀는 11화에서 김승유의 손에 의해 퇴갤. 칠갑과 막손은 살았다. 9월 14일 방영분에서 칠갑과 막손 둘 다 김승유의 손에 죽는다. 참고로 막 관복을 입고 밤거리를 으스대며 걷는 길이었다.

청풍관 행수.

9. 빙옥관


부하였던 공칠구의 모함으로 유배되어서 강화 가는 배에서 김승유와 만난 사이. 배가 침몰할 때 김승유와는 같은 사슬로 엮여 있던 바람에 사슬을 끊기 전까지는 함께 다니면서 서로 목숨을 보전했다. 함귀 무리가 김승유를 노리는 일로 인해 같이 쫓기게 되자 페이크를 써서 그들을 속였다. 대신 김승유를 칼로 찔러야 했는데 이 일로 상당한 부상을 입혔다. 어쨌든 한양으로 함께 돌아와서 자신이 있던 마포나루 색주가에 데려다 놓은 상태.

빙옥관에 민폐만 끼치는 김승유를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데리고 예뻐하고 있다.[53] 김승유가 사고치거나 일을 벌일 때마다 도와주면서 수습을 담당하고 있다. '''불살'''의 원칙을 가진 인물로서 승유가 적을 상대할 때는 검을 빼서 베는 것도 불사하는데 반해 조석주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검을 뽑지 않고 그냥 패잡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다. 최종회에서는 세령과 김승유가 죽었는 줄 아는건지 빙옥관 식구들과 김승유의 묘(가묘)에 참배한다. 아무래도 세령과 김승유가 함께 도망친 이후로 소식이 끊긴 듯하다.
조석주의 부하였는데 그를 배신하고 마포나루 일대를 장악한 왈패. 신면과 손을 잡았다. 근데 김승유에게 셔틀당하는 거 말고는 이 인간도 별로 존재감이 없다.
김승유와 조석주의 협력자. 승유가 강화도로 유배 가는 배에 타고 있던 죄수였으나 침몰할뻔한 배에서 함께 살아돌아왔다. 엄청난 허풍쟁이로 자신을 무장이라고 속였다가 고려 왕족의 후예라고 했다가[54] 김종서의 아들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악인은 아니지만 입 한번 잘못 놀려서 일행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술에 취해 세령의 정체를 공칠구에게 발설하기도 하는 등 허당에 민폐 속성이 강하다. 김승유에 의해 일망타진된 왈패 무리 사이에서 자기가 적을 족친거마냥 으스대는 허세 캐릭터지만 극중 어두운 분위기에 아강이와 함께 약간의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배우는 SBS 아나운서 윤현진의 동생이다.
빙옥관 주인으로 차갑고 냉정한 성격이다. 조석주의 연인.
  • 소앵 (가원[55])
빙옥관 식구. 김승유를 오라버니라고 하며 따르나 마지막엔 전노걸과 이루어진다.
빙옥관 식구. 여장남자인듯하다.

10. 기타


  • 송자번 (진성[56])
신면의 부하. 쌍검을 차고 다닌다. 신면이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붙겠다고 할때 어디를 가든지 충성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에는 신면 대신 죽음을 맞이했다. 모두가 신면을 외면할 때 유일하게 신면의 곁을 지킨 인물. 벗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며 외로웠을 신면에게 어떤 의미로는 벗이었을듯. 그래서인지 신면도 송자번의 죽음에 무척이나 슬퍼했다. 큰 역할은 없으나 은근히 분량도 대사도 많다.
방영 초까지만 해도 분명 공홈 등장인물 소개에 이시애가 있었는데 9월 1일 현재 사라져버렸다가 29일 방영분에 김승유의 동료들이 이시애의 이름을 언급하며 함길도로 근거지를 옮기자는 말을 하면서 등장이 확정. 드라마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할 것으로 보였으나[57] 종영을 앞두고 늦게 등장했기 때문인지 미칠듯한 급전개로 날림 결말. 이시애의 난? 그냥 산채 습격당해서 잡히고 끝나고 최후도 묘사되지 않았다. 역사에서는 조선 초기 최대의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고 이시애의 난 자체도 세조 치세의 모순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사건인데 여기서는 너무 허무한 종말을 맞았다.
  • 박흥수 (박정우)
함길도에서 김종서를 모시던 군관. 김종서가 죽은 후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나 김승유를 만난 후 그와 의기투합한다.
김승유가 강화도로 유배가는 배에 타고 있던 죄수. 등장초반부터 상의탈의! 빵빵한 가슴근육과 탄탄한 식스팩으로 일명 '식스팩 죄수'라 불리며 관심을 모았다. 조선시대에 보기드문 탄탄한 체격에 나름 한 가닥 할거같은 무술실력까지 나름 중요 배역으로 관심을 불러모았으나 전노걸에 낚여 승유를 처치하려다 되려 칠갑무리와 마주하고 그들과 한바탕 일합을 겨뤘으나 결국 칠갑의 손에 갑빠에 칼빵맞고 그대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허무한 죽음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아 여성팬들 사이에선 살려내란 절규가 이어졌다. 하지만 사극에 난데없는 근육남의 등장은 역사적 고증은 물론 스토리전개에도 뜬금없단 지적이 있다.
  • 흥법사의 동자승들 (송의준, 김형규)
송의준군이 맡은 동자승이 세령을 이쁘다고 하며 김형규군이 맡은 동자승은 다소 시크하다.
  • 염도일 (염동헌)
통칭 염직강으로 초반에 잠깐 나오고 등장이 없었는데 사육신의 거사 에피소드때 다시 등장했다.
  • 이준용 (서진욱)
전라도 광주부사. 정종과 금성대군의 모의에 가담한다

[1] 경혜공주가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만 찾아간다던가 하는 일을 반복했다.[2] 경혜공주에게 신행 선물을 가져다 주거나 현덕왕후의 능에서 꽃을 꺾어다 전했다. 그동안 세령에게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분노했던 경혜공주는 이를 보고 감격했다.[3] 그래도 수양대군 측이 김종서 일가를 첫 습격했을 때 때맞춰 김승유를 빼돌려 한 번은 목숨을 구해 주긴 했었다.[4] 본디 왕가에서는 본명을 휘(諱)라 하여 주술적으로 음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허나 세령공주라 불리운다. 이 부분은 제작진의 실수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가상인물이라 시호를 붙이기 애매해서 그냥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본명으로 지른 것일 수도 있다.[5] 그런데 큰형인 김승규와 김승유만 등장하고 차남인 김승벽은 증발되었다. 드라마에서도 김승유가 3남이라면서 차남 김승벽은 언급하지도 않는다.[6] 사실 직전에도 김승유의 부마간택을 막기위한 수양에 의해서 죽을뻔하다 때마침 신면이 나타나서 목숨을 구했다.[7] 문종이 승하하고 수양대군이 정권을 장악하려던 찰나 문종의 밀지를 받은 김종서가 이를 막아섰다.[8] 스탭의 말로는 세조 암살에 실패할 때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고(슬로우 모션으로 나온 신) 눈이 먼 거라고 한다.[9] 단순히 훨씬 많은 것이 아니라 극 중 나머지 주연들의 거의 '''아버지뻘(...)'''인데다가 심지어 세령의 아버지인 '''수양대군'''과 비슷한 나이였을 확률이 높다.[10] 다만 실제 역사에서 경혜공주와 영양위 정종의 결혼은 세종 32년인 1450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의 묘사와는 다르다.[11] 드라마상 혼인한 해가 1452년이고 사육신 사건이 일어난 해가 1456년이니 무려 4년만이다.[12] 조카딸 경혜공주에게서 전하 소리를 들을 때마다 흐뭇해하는 수양의 표정이 볼 만하다.[13] 석고대죄를 했을 때 다시 역모에 가담한다면 '''네 눈 앞에서 정종을 찢어죽이겠다.'''는 수양의 말이 현실이 되었다. 흠좀무. 정종이 죽는 순간 처형장에 나와 마지막으로 눈맞춤을 하는 애절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14] 이걸 잘못 알아듣고 '''심판관'''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심지어는 인터넷 뉴스에서도 '심판관'이라고 쓴 기자들도 있을 정도.[15] 그래도 정종은 거사에 참여하면서도 신면의 목숨만은 구하려고 노력했는데 신면은 승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실상 내버려 두었다. 둘의 인간성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16] 드라마에서는 세령 때문에 혼인도 못하고 죽은 것처럼 나오지만.[17] 엄밀히 따지면 경혜공주는 면천되어 마지막까지 공주로 남지만 세령은 결국 기록에서 지워져 평범하게 살게 된 공주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공주의 남자는 이쪽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 수도 있다. 확실히 기록에 남은 실존인물이기도 하고.[18] 실제로는 세종 32년에 동궁의 딸로 아직 군주(세자의 적녀)였던 경혜공주와 결혼했다.[19] 실제로는 정종의 누이가 영응대군의 부인이고 고모효령대군의 부인일 정도로 왕실과 이미 연을 맺은 명문가였다. 작 내에서도 아버지가 일찍 사망한 것이 문제될 뿐이지 명문가라는 언급이 나온다.[20] 다만 적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은 친구로 나오는 박시후나 송종호와는 넘사벽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민우가 '''한명회'''에 출연했을 때부터 전설적인 연기를 보여준 걸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젊은 연기자 중 정태우안재모를 데려오지 않는 한 사극에서 이민우에게 맞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21] 물론 좋은 쪽으로. 정종은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능지처참 당한다.[22] 다음날 아침 정종의 잠자리에 놓인 베개 2개로 암시되었다.[23] 아들인지 딸인지 몰라 아들과 딸의 이름을 모두 지었는데 이 중 아들의 이름이 정미수. 야사에서는 정미수는 세조가 지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실제 정종이 정미수가 6살 때까지 살아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실제로도 정종이 지어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24] 다만 신면은 이런 의연한 정종의 모습과 스스로가 비교된 탓인지 인간이 제대로 망가지기 시작했다.[25] 그리고 그 이후 조선왕사를 보면, 세조의 아들과 손자 중 40살 이상을 산 인물은 제안대군 한명뿐이다. 게다가 60세를 이상을 살며 장수한 왕이 단 3명 뿐이고, 그 3명조차 폐위, 존속살해, 망국 등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다. 드라마지만 어떻게 보면 저주가 제대로 들어간 것... [26] 또한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배우 이민우가 왜 사극에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한 배우인지 제대로 각인시킨 장면으로 평가받는 장면이다.[27] 1990년 파천무 이래 무려 21년만에 김종서 역을 맡았다. 본인도 감회가 새롭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는 이순재의 덩치가 작아서 '무신'인 김종서 역할에는 안 어울리는 배우라고 하나 실제로 김종서는 전형적인 '문신'이다. 4군 6진 개척 때문에 '무신'의 이미지가 깊게 박혀있지만. 실제로는 무예도 서툴렀다고...자세한 것은 김종서 항목 참조.[28] 아들 하나가 '''남주인공'''이기는 한데 걔는 사랑 놀음 하느라 바빠서...[29] 수양이 권력을 쥐려는 찰나 후광을 받으며 등장해 수양과 패거리를 모조리 버로우 시켰다.[30] 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대왕 세종에선 태종을 맡더니 이번엔 태종과 성격도 비슷한 그 손자 세조까지 맡았다.[31] 2016년 1월에 방영예정인 장영실에서도 태종을 맡게 되어서 졸지에 김영철은 2번이나 태종을 연기하게 되었다.[32] 배우 때문에 심영물에서도 곤룡포를 입은 김두한을 보게 되었다.[33] 군주론 때문인 듯 한데 마키아벨리보다는 체사레 보르자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계유정난의 과정을 보면 수양을 이렇게 표현한 건 마키아벨리에게 실례이다. 자세한 건 니콜로 마키아벨리 참조.[34] 실제 역사상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문종 사후 궁의 안팎에서 손발이 맞지 않았던 까닭이 크다. 당시 정치 역학관계는 황보인과 김종서 등의 고위대신파와 세종의 고명을 받았던 성삼문 등의 집현전파, 그리고 수양대군파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문종의 사후 내관들이 궁을 엄폐하는 과정에서 대신파와 집현전파가 서로 틀어지게 되었으며, 결국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척살함으로서 권력을 장악했다.[35] 여태까지 <공주의 남자>를 봐온 사람들은 이 정통성 없는 양위를 보고 비록 수양이 왕위에 올랐으나 세조로 안부르고 수양으로 부르기도.[36] 아무리 자기에게 대드는 딸이 괘씸하다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 처벌하면 본인에게도, 세령에게도, 왕실 입장에서도 좋을 거 하나도 없다.[37] 드라마에서는 이시애의 난이 단종 사망 얼마 후 바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종 사망 후 10년 뒤에 일어난 사건이다. 여러모로 미칠듯한 급전개.[38] 김서라는 왕과 비에서 한명회의 부인을 연기했었다.[39] 흥미롭게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는 유동근의 파트너로 나왔는데 유동근 역시 이번 상대역 김영철과 마찬가지로 태종 및 세조를 다 연기한 배우라 태종 내지 세조의 파트너로 전문이 되었다.[40] 실제로는 단종이 사사되기 1달 전에 사망했다.[41] 실제로는 명문가의 자손이기에 문종 재위 당시 음서로 태조 이성계개성에 살때의 잠저인 경덕궁의 문지기라는 미미한 관직에 올라 있었다. 물론 지역 벼슬아치 모임에도 끼지도 못했을 정도로 낮은 직위였다.[42] 무엇보다, 한명회가 노회한 이미지를 지나치게 살리다보니 늙게 너프되어 나오는게(심지어는 60대까지!) 이전 사극들의 가장 큰 특징이었는데, 실제 나이에 맞게 30대 후반정도로 보이게 나왔다.[43] 이개가 신숙주를 비난하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야사에서 국문받는 성삼문이 신숙주에게 일갈하는 장면에서 따온 것 같다. 이개가 신숙주를 비난하는 대사가 야사 속의 성삼문의 말과 똑같다. 야사에서는 신숙주가 부끄러워했지만 여기서는 눈 하나 깜짝 안했다는 것이 차이.[44] 신숙주와 한명회가 의심을 받았던 이유는 이시애가 세조에게 편지를 보내 일종의 반간계를 구사한 데다가(해당 내용은 이시애의 난 참고) 이들 모두 함길도 체찰사를 지내면서 여진족을 정벌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함길도 체찰사를 지내면서 나름대로 함길도에 세력이 있을 거라 판단한 세조가 의심한 것. 글자 그대로 스스로 자신의 양팔을 잘라버린 행동이었다.[45] 폐비 윤씨의 모친인 신씨의 사촌 오빠[46] 드라마에서 이시애의 난때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이시애의 난은 권람이 죽은 후 1467년에 일어났다.[47] 김갑수가 연기했다.[48] 이 때 수양대군에게 '나는 '''숙부'''와 '''상의'''를 하는 게 아니라, '''영상'''(영의정, 당시 수양대군이 영의정이었다)에게 '''어명'''을 내리는 겁니다'라는 명대사를 선보였다.[49]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과 함께 화포개발에 참여했는데 둘이 감독하자 화포의 사거리를 몇 배나 늘이는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50] 공교롭게도 본작의 프리퀄대왕 세종에서의 성삼문도 박철호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본 박철호와 동명이인이다.[51] 일본어 더빙판에서는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긴 '나으리'에 맞는 단어를 찾기가 어려웠는지 그냥 "수양대군"이라고 외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52] 하지만 정종이 처형당할 때는 거열형이 묘사되었다. 정종이 죽을 때의 임팩트를 위해 일부러 넘긴 듯 하다.[53] 나중에 스스로 밝히길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할 때 노비였던 자신의 부모님을 면천시켜서 6진으로 이주시켰다고. 그래서 그 빚을 갚는거라고.[54] 극 중에 풀네임이 나온건 왕노걸 한번 밖에는 없지만 공식 홈페이지에는 전노걸이라고 소개되어있다. 아마도 왕씨들이 고려 왕조 멸망 후에 전씨, 옥씨, 용씨 등으로 성을 바꾸어 숨어살았다는 야사를 반영한 듯 싶다. 아니면 입만 열면 허풍 떠는 이 캐릭터의 특성상 그런걸 이용하여 허세를 떤 걸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정체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55] 최근에는 본명인 '이슬비'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중.[56] 당시 '진성'으로 활동했으나 2016년 현재 '정천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중.[57] 오히려 사람들이 예상하던 금성대군의 난은 역사대로 시도조차 못하고 끝나고 단종, 금성대군, 정종의 죽음만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