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관계
United Kingdom–United States relations
1. 단순비교
[image]
2. 개요
영미권 국가 중 첫 번째로 강한 미국과 두 번째로 강한 영국의 대국관계. 1940년대부터는 Special Relationship, 특별한 관계라고 부르기도 한다.[5] '''현 초강대국과 전 초강대국의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3. 시대상
3.1. 식민지 시대
[image]
미국 독립 전 식민지인들은 소수 다른 유럽 국가 출신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영국 시민들이었고 각 식민지 별로 동떨어져 아메리카인이란 인식도 없었다.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들도 처음에는 본국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속령의 저항 정도였다. 이들이 처음에 내건 슬로건도 어디까지나 '영국 시민으로서의 권리 회복'이었다. 그러나 보스턴 차 사건 같은 여러 가지 분쟁으로 인해 미국의 국가 원형이 형성되면서 반영 감정이 강해졌다. 사실 독립 전쟁 발발 이후 렉싱턴-콩코드 전투까지만 하더라도 새뮤얼 애덤스, 벤자민 프랭클린과 자유의 아들들을 비롯한 혁명 주동자, 주동 단체들도 자신들이 '''영국 식민지인으로서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고 했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아메리카'''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와 혁명가들이 식민지에 사는 영국인으로서의 권리가 아니라 아예 다른 나라, 미국의 독립을 위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 건 전쟁 중 토머스 페인의 저서 상식이 대표적인 수많은 지식인과 문필가들의 투쟁과 논쟁으로 인해 생긴 변화였다. 토머스 제퍼슨을 필두로 한 미국 초기의 열렬한 공화주의적 사상은 이렇게 단시간에 격렬한 전쟁과 함께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뀐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3.2. 19세기
독립 후에도 미국과 영국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미국은 영국과 미영전쟁을 치르고 프랑스의 반 영국 정책에 협조하였으며, 이 시기 미국은 영국이 서양의 패권을 잡는 걸 견제하는 입장이었다. 7년 전쟁 패전으로 퀘백 등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영토를 뺏기고 나폴레옹 시절 돈이 없던 프랑스는 영국보다는 자신들에 더 우호적인 미국에 루이지애나를 싼값에 팔아넘겼고 오리건 분쟁 당시도 미국은 영국을 견제하려던 프랑스와 알래스카 점령 이후 캐나다 서쪽 해안선을 따라 남진하던 러시아와 공조하여 오리건 분쟁 당시 영국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러시아가 크림 전쟁 패전 직후 알래스카를 미국에 판건 땅보단 재정에 관심이 많았던 타 국가에 비해 명백한 운명 운운하며 아메리카 영토 점령 및 영토 확장에 관심이 많은 미국이 구매 욕구가 높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차피 영국령 캐나다에 알래스카를 뺏기느니 영국과 사이가 안 좋은 미국에 팔자는 계산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좋아진 건 양차 세계대전부터지만 청일 전쟁 이후부터는 미영관계가 좋아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이후까지 고립주의를 표방하던 미국은 쿠로후네 사건을 시작으로 일본이나 아메리카 바깥 세계에 진출을 시도하는데, 러시아가 청일전쟁 이후 프랑스, 독일과 삼국간섭으로 영일동맹을 압박하자 미국이 자신들의 아메리카 바깥 세계 진출을 위해 일본을 지지한 시점에서 미국과 영국은 동맹이 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3.3. 20세기 초
여기서 미국과 영국의 국력 비교와 변화를 짚고 넘어가자면,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미국의 공업화가 발달하면서[6] 미국의 경제력은 영국을 뛰어넘게 된다. 다만 경제력을 제외한 다른 국력은 여전히 영국 우위로 제1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미국의 국력이 영국을 추월했다. 그 전까지는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임을 자처하며 전 세계에 자국의 힘을 과시한 반면 미국은 이제 막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했고 경제 규모 면에서는 20세기 초에 영국을 추월했지만 군사력으로는 아직 영국보다 명백히 열세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은 초반부터 전쟁에 개입해 막대한 전비를 허비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물자와 자금을 지원받았다. 반면, 미국은 전쟁 막바지에 참전했기에 영국보다 손실이 적었고 그 동안 연합국 측에 막대한 자금을 원조하면서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변신했다.[7] 또 무기 생산을 도맡았던 미국 기업들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20세기에 들어 '''미국 내 200개 대기업의 자산'''이 '''영국 내 자산을 몽땅 다 합친 것'''보다 더 컸을 정도였다. 즉, 미국 기업들 자산이 한 국가 총 자산보다 더 많았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세계 금융의 중심지도 영국 런던에서 미국 뉴욕의 월 가(Wall Street)로 이동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영국의 국력을 넘어선 것은 물론이요, 세계 경제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선 것이다.
다시 미국과 영국의 관계로 돌아오자면, 청일전쟁 직후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삼국간섭에 대항한 영일동맹과 미국의 연합으로 호전될 기미가 보이던 미영관계는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좋아지기 시작한다. 미국 입장에서 제1차 세계대전은 자신들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 준 사건이고, 영국 입장에서는 보불전쟁 승리 후 자신들을 맹추격하던 독일 제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세계 질서를 주도하려는 계획의 첫 단추였다. 미국과 영국은 베르사유 조약 체결을 주도하며 세계 질서의 두 축으로 협력하기 시작한다.
3.4. 특별한 관계[8]
[image] [9]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두 축으로서 협력하지만 그저 지금의 한미동맹보다도 못한, 세계 질서를 주도할 때의 협력 대상이었지 현재의 영미권을 대표하는 5개의 눈(Five Eyes) 같은 혈맹은 아니었다. 오늘날 미국은 프랑스, 독일, 한국, 일본이라는 미국의 1.5급 동맹국들을 비롯해 여러 나라와 동맹으로서 협력하지만, 영국처럼 5개의 눈이라 부르며 자국에 하듯 혈맹으로서 대하진 않는데 비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5개의 눈으로 묶어 혈맹으로 대우해 준다.
영국과 미국이 오늘날 같은 혈맹으로 발전한 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이다. 2차대전 당시는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카리브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지역의 상당수가 열강의 식민지였을 뿐더러 나치와 소련이 전 유럽을 지배하고 동아시아는 일본 제국의 손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몇몇 공산권과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이[10] 나치에 점령당한 이상 나치, 소련, 일본에 대항할 국력을 갖춘 자유민주주의 강대국가는 미국과 영국 뿐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영미관계는 단순히 친하다 못해 혈맹이라 불릴 수준[11] 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 미국과 영국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는 제로섬 문제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
1960년대 초의 존 F. 케네디와 해럴드 맥밀런 사이의 관계도 매우 가까웠다. 당시 수에즈 전쟁, 미국의 스카이볼트 개발의 일방적 취소로 양국 관계가 파탄 직전까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동맹 관계가 유지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도 한 몫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때는 케네디 대통령이 맥밀런에게 전화를 걸어 일일이 진행 상황을 알려주기도 하였으며,[12] 스카이볼트의 여파로 맥밀런의 총리직이 위기에 처하자 미국에는 그다지 득될 일이 아님에도 케네디가 영국에 폴라리스 미사일 판매를 결심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신자유주의의 두 거두로 꼽히는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밀월관계가 있었고, 21세기 들어서는 토니 블레어와 조지 W.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끈끈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보리스 존슨과 도널드 트럼프의 밀월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다만 현대 영국이 미국의 국제 정책에 언제나 협조적인 건 아닌데,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이 있다. 영국 입장에서 공산 베트남이 영국의 최우선 이권 수호 지역인 홍콩, 말레이시아-싱가포르와 호주 본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 참전에 매우 미온적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명분이 매우 적은 탓에 미국이 영국이 돕지 않는다고 압박하기도 어려웠다.
영국과 미국이 사이가 좋은 것은 영국이 유일 초강대국 미국에 대해 양보하고 지속적으로 외교와 안보 노선에서 공조를 하였기에 이뤄진 것이다. 물론 미국도 영국의 양보와 외교 노선의 공조에 대해 지지 선언 및 협조 등으로 확실하게 보답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포클랜드 전쟁이 있다.
오늘날 안보 문제에서도 미국과 함께 파이브 아이즈라 불리는 앵글로색슨 국가들만의 공동 첩보망을 이끄는 등 이익관계를 넘어 절대적인 운명 공동체로 묶이고 있다.
2020년 5월 5일에 영국은 미국과 FTA협상을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화웨이를 2027년까지 배제한다고 밝히자 주영 미국 대사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미 외교관 부인 교통사고 계기로 면책특권을 고친다.#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미수 사건때에는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에게 책임을 물어 미국과 영국내의 러시아 외교관들을 대거 추방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또한, 냉전이후에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자 영국은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크림 합병, 돈바스 전쟁때에는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를 제재하기도 했다. 2020년 7월 23일에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가 위성 공격용 무기를 우주에 띄워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협했다고 비난했다.#
영국도 TPP에 가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3.5. 갈등
다만 현실에서 미국과 영국이 마냥 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외교인데 영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지역 강대국으로 주저앉고 몰락해버린 반면, 미국은 소련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였고 현재는 소련의 몰락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인 만큼 양국이 서로 동등할 리가 없다. 실제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영국을 깔보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일이 번번히 '''있었다.''' 현재의 우호적이고 친밀한 관계는 영국이 국제 정세에서 스스로의 독자 노선을 거의 포기하고 미국의 국제 전략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며 동참한 것이 매우 크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핵무기 개발과 수에즈 운하로 영국의 핵개발 항목 참조. 당시 미국이 영국에 핵개발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나, 정작 미국 의회에서 핵무기 기술을 타국에 넘길 수 없다고 의결해서 취소시켰다. 이에 발끈한 영국이 호주와 손을 잡고[13]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미국이 반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대영 핵외교 노선을 수정한 미국은 영국과 핵무기 협약을 맺어 공동 핵무기 실험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영국은 미국에게 당했던 것을 그대로 프랑스에게 행한다. 물론 영국과 미국의 무시에 분노한 프랑스도 좌우 성향을 막론하고 핵무장을 지지하여 핵개발에 성공하였다.[14]
또한 수에즈 전쟁 당시, 영국이 무리하게 중동에서 미국에 통보나 상의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자[15] , 이에 대해 미국이 영국에 압력을 행사해 전쟁을 중단시킨 일도 있었다.
1970년대 초에는 영국의 유럽 공동체 가입이 가속화되고[16] 친유럽 성향의 에드워드 히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잠시 미영관계가 소원해졌다. 더군다나 1973년 헨리 키신저가 뜬금없이 '유럽의 해'[17] 를 발표하면서 양국 관계가 험난해지기도 했다. '유럽의 해'에 대한 반응이 시원치 않자 키신저는 영국 내각실장[18] 을 친히 불러 매우 분노하기까지 했다. 이후 ‘유럽의 해’는 키신저에게나 영국에게나 흑역사로 남았다.
또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미영관계는 더더욱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은 자연스레 이스라엘을 지원했지만 아랍 산유국의 눈치를 더 봐야 했던 영국은 이에 협조하기를 공개적으로 거부하여 양국 관계에 결정타를 날렸다. 그러자 미국은 반발하며 영국에 대한 온갖 외교적, 경제적, 정치적 보복을 구상했는데, 이때쯤이면 이전의 혈맹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19] 구상 단계에서 끝났지만.
사실 두 나라는 대체로 친밀하다. 미국이 독립 후 100여년 간의 어마어마한 발전으로 영국이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점점 갖추게 된 상태에서 조금씩 교류를 늘려 나갔고 두번의 세계 대전, 특히 2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을 제외한 사실상의 서유럽을 다 먹어버렸던 강적 나치 독일에 맞서 같이 싸운 경험은 두 나라를 혈맹으로 만들었다. 승전 후에도 폐허가 되어버린 유럽보다 미국이 군사나 경제 등 여러 부분에서 엄청난 우위에 서게 되자 영국은 미국을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고, 그 후에는 나토의 일원으로 소련에 맞서 같은 입장에서 처리하도록 노력해야 했고, 정치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며 유지하게 된 것이다.
결국 영국이 미국에게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미국의 우위를 인정한 것이 현재 원만한 미영관계를 구축한 발판이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미국인들이 영국에 대해 우호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명백한 힘의 격차로 이해 영국에 대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20][21]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오히려 미국이 영국에게 한 수 접어주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인들, 특히 상류층 지식인 미국인들의 경우 영국의 긴 역사와 튼튼한 문화 기반을 동경하고 심지어 흉내 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인지 영국과 미국의 관계가 좋지 못했을 때에도 미국에서는 타 국가들보다 영국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수요가 매우 많았고, 브리티시 인베이전 또한 미국에서 나타난 현상이며, 현재에도 미국 문화계와 학계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여 영국 출신 예술가들과 학자들을 초빙하고 영국 작품들을 사들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리스 존슨이 총리가 되는 것을 지지하자 영국 정부에서는 반발하는 기류가 생겼다. 외국의 국가원수가 자국의 선거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은 것이다. #
주미 영국대사쪽은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에 트럼프에 대한 노골적으로 폄하한다는 외무부 보고서에 공개되면서 곤혹을 치룬 상황이다.# 결국 주미 영국대사는 사임했다.# 2020년 2월 7일에 영국 외무부는 주미 대사에 캐런 피어스 유엔 대표부 대사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2020년 1월에 보리스 총리는 미국의 반대에도 화웨이 장비를 쓰겠다고 밝혀 미국에서는 실망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또한 영국 국방장관은 미국 없이 전쟁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공화당의 일부 상원의원들은 영국이 5G 구축 사업에 화웨이를 참여시킨다는 이유로 최신예 전투기의 영국 배치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완전히 떠나면서 2021년부터는 미영관계가 예전과 같이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4. 여담
미국이 최고의 동맹으로 여기는 네 나라가 이른바 ABCN(Australia, Britain, Canada, New Zealand),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이다. 프리즘 폭로 사건 당시 미국은 자국을 포함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만큼은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을 정도.[22][23] 다만 이건 미국의 입장으로, 영국은 정치적 및 군사적으로는 미국 편이지만 그 외에 경제나 문화 분야에서는 미국-유럽-러시아-중국-한국-일본과 전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 문어발처럼 다리를 걸치고 있다.[24] 5개의 눈 문서 참고.
추수감사절은 뉴욕-런던 항공편 수송량이 김포-제주 노선을 압살할 정도로 미어터진다. 즉 쉽게 말하면 미국은 영국의 집나간 큰아들이라고도 할수 있다.
5대 영미권 중 역사가 깊고 대영제국을 건설한 영국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네 나라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중 미국이 일찍 독립하여 독자적인 힘을 키웠기 때문에 영국과 미국은 세계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영연방 왕국인 캐나다와 호주와 뉴질랜드는 그렇지 않다.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특히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과 미국은 비중있는 역할이지만 나머지 영연방 왕국은 안 나오거나 나오더라도 비중이 작은 편이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시리즈에서 영미권 국가는 미국과 영국만 등장하다가 6번째 작품인 문명 6에서 캐나다 문명이 처음 등장했을때 시드 마이어가 캐나다인임에도 왜 이제야 나왔냐는 반응도 나왔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미국과 달리 독립이 늦고 인구도 적어 선진국은 맞을지언정 강대국은 되지 못했기 때문. 역사적으로 유명한 5대 영미권 인물들도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나머지 3국 출신은 상대적으로 적다. 세계 고전문학 전집만 봐도 영국과 미국이 아닌 곳에서 만들어진 영미문학은 캐나다에서 만든 빨간머리 앤 외에는 없다(...). 호주랑 뉴질랜드는 지못미.
영국과 미국을 의인화하거나 국가 이미지를 나타내는 캐릭터[25] 를 만들 때 영국은 좀 고전적이고 점잖은 이미지인데, 미국은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예를 들어 컨트리볼에서는 영국공이 실크 해트와 단안경을 끼고 있지만, 미국공은 선글라스를 낀다. 두 나라의 국민 모두가 과거와 현대에 쓰는 물건이지만, 영국은 전통문화의 기원지이고 미국은 현대문화의 기원지여서 그런 듯하다.
다만 경제적 수준은 같은 영미권으로 묶이기에는 미국과 영국의 격차가 매우 심해졌다. 총 경제규모는 양국이 인구수 차이가 크니까 말할 필요도 없고[26] 개인의 소득을 나타내는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이 63,000달러 영국이 39,000달러로 격차가 매우 크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가난의 상징이라는 미국 흑인의 1인당 소득이 41,300달러고 영국 백인의 1인당 소득이 39,400달러로 미국 흑인이 영국 백인보다 평균적으로 더 잘산다.
물론 자유시장경제 성향이 강한 미국은 의료비가 매우 비싸고 직장에서 짤리고 재취업을 못하면 그냥 빈곤층으로 전략하고 사회 안전망이 매우 부실하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식료품,집,공산품 가격이 영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고로 풀타임 근무하는 직장만 계속 가지고 있다면 미국 서민 흑인이 영국 중산층 백인보다도 잘산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국과 유럽의 격차가 심해진것은 2차 IT 혁명을 거의 미국이 독점한 이후로,규모가 큰 유럽 국가중 독일처럼 가공업 기업의 수준이 매우 높은 국가만이 선방하고 있다.
경제적인 격차만 나타내면 이렇지만,최근 영국이 미국의 아시아 최고 우방인 일본에 5g 통신 장비를 공급하는 등 매우 친해졌기에 양국의 동맹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5.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사실 영국이 영연방의 주도국 지위를 포기하고, EU의 전신인 EC에 가입한 것이 미국의 의지가 투영된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많았고, 실제로 미국은 유럽의 일원인 영국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럽 공동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 브렉시트 국민 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하고, 호주, 인도, 말레이시아 등 영연방 국가들과, 한국. 멕시코, 중국 등과 직접 접촉을 하며 소극적인 독자 노선을 시도할 기미가 보이자 영미 외교 관계에 파열음이 나기도 했다. 특히 국민 투표 직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하게 된다면 미국과의 교류 줄 가장 뒤에 서게될 것"이라고 밝히며 내정 간섭 논란을 일으켰다.[27] 그리고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민 투표 이후 은근히 독일에 힘을 실어준다는 논란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다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영국과 가까운데다, 영국에 대한 친밀함과 브렉시트 지지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에 브렉시트 이후 혼란을 겪던 미국의 대영 외교 정책이 또다시 뒤집힐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대영 외교 성향은 "미국의 직접적 이익만 침해하지 않으면"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독자 노선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쪽으로 파악되고 있어 향후 미영-영미 관계의 변화에 이목이 쏠린다. 문제는 스코틀랜드과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문제로 홍역을 치루고 있다. 오바마 시절과 달리 분리독립 지지 여론이 높아진 이유가 있는데다가 믹 멀베이니 북아일랜드 특사를 선임하면서 분리독립을 선동하고 있다는 점이 걸린다. 그렇지만 조 바이든이 집권해도 저들의 분리독립을 강행하겠다는 세력이 꽤 된다는 점도 문제.
6. 미국은 영연방에 가입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굳이 영연방에 가입할 이유도 없고''', 다소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있다.
영국으로부터 출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회원국은 아니다. 미국이 영연방이 아닌 것은 영연방 개념이 생기기 한참 예전에 독립했고, 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과정이 지극히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괜히 '''영국의 집나간 큰아들'''이라는 별칭이 있는게 아니다.
대부분의 영연방 국가들은 청원이나 데모같은 상대적으로 평화적인 형식으로 독립의지를 표현했지만 미국처럼 대대적으로 전쟁을 통해 엄청난 피를 보고 독립한 경우는 드문 편이다. 하지만 미국은 '서로 두들겨 패면서 싸우다가' 독립했으니 형식상이나마 '형님으로 계속 대우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독립전쟁은 유럽 각국, 특히 프랑스가 주도적으로 미국과 연합해서 진행된 전쟁이라 규모가 상당히 컸다. 미국이 수십년 뒤 훨씬 큰 땅에서 벌였던 침략 전쟁인 멕시코 전쟁보다 독립전쟁이 훨씬 더 사상자 규모가 컸을 정도니까.
미국이 말하는 개척정신이란 건 이런 독립 및 영토 확장 전쟁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또한 독립 이후에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민도 많이 받는 바람에 미국 시민의 정체성도 많이 바뀌어 국가 속성 자체가 너무 크게 바뀌어 버렸다. 미국 대통령들은 여전히 영국 후예의 핏줄이 많이 섞여 있긴 하지만, 대기업이나 금융계 같은 곳에서는 다른 민족의 후예들이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언어나 문화에서 영국과 공유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미 미영전쟁이 끝난 1800년대 중반부터는 이민은 타 유럽 국가들이나 아시아 국가들에서 받지만, 문화적인 교류나 정치적 협력, 경제적 교역은 영국과 함께하는 경향을 보여왔으며, 혈연과는 별개로 문화적으로는 영국을 위시한 앵글로 색슨 문화권에 속해있다.[28] 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도 부계가 독일 출신인 독일계 미국인의 측면이 있음에도, 모계가 스코틀랜드 출신인 영국계 미국인임을 내세우며 은근슬쩍 영국과의 종족 동맹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20세기, 두 번의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인들의 영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크게 희석되고 긍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된데다, 영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미국인들도 공감하는 편이라 19세기나 20세기 초반처럼 영연방 가입이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 문제를 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여전히 역사적 앙금이 조금이나마 남아있고, 영연방 내에서의 서열 정리 문제가 있어, 미국의 영연방 정회원 가입은 영국과 미국 둘 다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영연방 가입 여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이며, 영연방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1997년 에든버러 선언 이후 미국을 "신청만 하면 언제든 영연방 회원국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국가"로 분류해왔다. 미국이 동부 13개 영국령 식민지의 연합으로 시작한 국가라는 점을 감안해 이렇게 분류했다고 한다. 어차피 영연방 대부분의 국가가 혈연적으로는 영국과 별 상관이 없는 나라들이다. 심지어 1990년대 이후로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들도 문화적 연결성이나 정치적 연관성 등의 이유로 영연방에 받아주고 있다.
영국 왕실과 나이젤 패라지 등 영국 내 보수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에 영연방 참관국 자리를 제안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신의 친영 성향과 영연방 국가들과의 협력 필요성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언급되는 미국의 영연방 가입 여부는 2017년 11월로 예정되었던, 그리고 그 이후 2018년 8월 진행 된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과 엘리자베스 2세 알현 이후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였으나, 미국 내 정치사정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정책 포커스가 중국과 동아시아로 옮겨가면서 흐지부지 된 것으로 보인다.
7. 관련 문서
- 영미권
- 미국/외교
- 영국/외교
- 5개의 눈
- 주요 7개국 정상회담
- 영국계 미국인
- 미국/역사
- 영국/역사
- 미국 독립전쟁
- 상임이사국
- 미국/경제
- 영국/경제
- 미국/문화
- 영국/문화
- 미국인 / 영국인
- 영어 /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1] 미국을 비교적 젊은 여인으로, 영국은 대조적으로 비슷하게 생겼는데 안경 낀 노년으로 묘사한게 인상적이다.[2] 특별한 관계란 말은 1946년 윈스턴 처칠이 사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과 영국은 정보공유와 군사기지공유 등 정치외교적인 면에서 협조를 많이 했다.[3] 영어는 미국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실질적 공용어이지 연방에서 법적인 지위를 가진 언어는 아니다. 실제로 주마다 공용어가 제기각각이며 영어가 공용어로 체택되지 않은 주도 있다. 이베리아 문화권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곳에서는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경우도 많고 911서비스나 월마트 등의 기초생활 및 응급 관련 상황에서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로도 대화가 오간다. 동유럽계 이민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러시아어나 폴란드어 구사자가 응답하기도 하고 차이나타운의 경우에도 비슷한 개념으로 중국어 구사자들이 근무한다. 물론 대다수의 미국민은 영어를 모어로 한다.[4] 영국에도 스코트어, 웨일스어 등의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지만 공용어는 영어이다.[5] 미국과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으로 참전했다. 그 전에는 미국의 고립주의가 강했다.[6] 경영학이란 학문 자체가 이 시기에 미국에서 발생했다.[7] 이 때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으로부터 너무 많이 돈을 빌려서 그 돈을 갚기 위해 패전국인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을 물렸다. 그뿐 아니라 빨리 빚 갚으라고 독일의 대표적인 공업 지대인 루르 지방에 군대까지 주둔시켰다. 이렇게 독일을 향한 가혹한 추심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었다.[8] 특별한 관계란 말은 1946년 윈스턴 처칠이 사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과 영국은 정보공유와 군사기지공유 등 정치외교적인 면에서 협조를 많이 했다.[9] 저 사진에선 짤렸지만 원본에선 루스벨트의 오른쪽에 이오시프 스탈린이 앉아있다.[10] 물론 스웨덴, 스위스는 유럽의 몇 안되는 중립국이었다.[11] 특히 OPEC 국가들과 대립하는 석유개발 문제는 미국과 영국이 거의 한 몸 수준으로 뜻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12] 케네디가 미사일 위기 중 연락한 유일한 타국 정상이었다.[13] 호주가 핵실험 부지와 핵무기 원료 물질을 제공하였다.[14] 이때문에 미국은 반발하여 프랑스에 주둔한 미군을 전부 철수시켰다. 현재도 미군이 유럽에 많이 주둔했지만 프랑스만은 여전히 주둔시키지 않는다.[15] 소련의 눈치를 봤다는 학설도 있으나, 존 루이스 게디스 교수의 저서 "냉전의 역사"에 따르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은 소련과의 관계보다 영국이 미국과 상의하지 않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16] 1973년 1월 1월 가입[17] Year of Europe, 뭔가 그럴싸하지만 당시 영국 정부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는 유럽의 독자적 외교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냉전 구상에 종속시키기 위한 계획으로 받아들였다.[18] Cabinet Secretary[19] 콩코드 여객기를 미국에서 금지해 해당 기체가 실제보다 30년이나 일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보다 더한 보복이 수두룩하다.[20] 영국에서 미국에 비난하거나 디스할 때 미국인들이 이에 대한 반발로 흔히 나오는 말이 히틀러의 손아귀에서 너희(영국)를 구원한 존재(미국)가 누군지 기억하라는 것이다.[21] 이에 분개한 영국인들은 미국이 히틀러로 부터 영국을 구한 것은 '''"결코 공짜가 아니였음을 거론한다."''' 실제로 영국은 2차 대전 전후 과정에서 해외의 여러 해군 기지나 항구등을 미국에게 넘겨 줬다.[22] 현재도 미국은 이 네 영연방 메이저 국가들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도 완전한 우방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 일본, 프랑스, 독일조차도 말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미국은 최대의 우방이지만, 4차 중동전쟁 당시 이미 미국은 한 번 이스라엘을 소련과의 합의하여 갈아버리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박정희 정권 말 무렵엔 진지하게 레짐 체인지를 고려했고 문재인 시대인 지금도 한국이 조금이라도 미국과 반하는 행동을 하면 즉각적으로 압박을 한다.[23] 여담으로 이 네 국가들은 모두 영연방이다. 미국의 최우방국인 영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케이스.[24] 조지 W 부시 시절에 토니 블레어를 부시의 푸들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영국의 경우는 독자적인 외교를 할 만한 국력은 있기 때문에 이건 언제까지나 지나친 친미정책을 까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25] 캐릭터 개인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캐릭터는 제외.[26] 미국은 3억이 넘어가는데 영국은 7천만도 채 안 된다.[27] 이는 미숙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행보 사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28] 당시 미국에서 영국과의 안 좋은 감정 때문에 프랑스, 프로이센, 스페인 등과의 교류를 시도했으나, 결국 영국이 자신들과 가장 잘 맞는다는 걸 깨닫고 결국 남북전쟁을 전후해 감정이 어느 정도 희석된 뒤에는 영국과의 교류를 1순위로 복귀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장 미국인들 다수 백인들 조상들이 영국본토에 있어서 명절때 뉴욕-런던 항공편이 김포-제주따위는 저리가라 할정도로 빗자루질을 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