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1. 개요
2. 지역에 따른 토박이 비율
2.1. 경기도(수도권)
2.2. 강원도
2.3. 충청도
2.4. 전라도
2.5. 경상도
2.6. 제주도
3. 둘러보기
4. 토박이인 인물


1. 개요


본토박이의 줄임말로, 한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을 의미한다. 농업이 기반이던 전근대에는 토박이가 사회 구성원의 주류였겠지만 현대에 들어서 도시화, 공업화가 촉진되어 이농현상이 잦아지고, 대도시에서 교외 베드타운으로의 이주를 포함하여 도시화된 지역들 안에서도 인구 이동이 빈번하다보니 과거에 비해 토박이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보통 토박이로 쳐줄 때의 '대대로'는 보통 '''3대째 이상'''이 전제되지만, 최근에는 위와 같은 현상 때문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같은 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오거나, 태어날 때부터 현재까지 쭉 같은 지역에서 살아왔어도 토박이라고 쳐주기도 한다.[1]
하지만 이 문서에선 한 지역에 3대째 이상 살고있는 본토박이들을 토박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본인이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부모 세대가 타지역에서 온 경우에는 토박이에서 제외된다. 또, 뉴스 기사에서 얘기하는 토박이의 수치는 대부분 3대째 이상이 아닌, 그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비율만을 측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 문서에 각 지역의 토박이 수치를 기록할 때, '''꼭 3대째 이상인 경우에만 기록하길 바란다.'''
참고로 토박이 비율과 사투리 간 관련성은 꽤나 깊다. 다양한 지역 출신이 모이는 곳에서는 모두 다 알아들을 수 있는 표준어가 우세해질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으로 현재 서울에 거주 중인 사람들 중 전통적인 서울 방언 구사자의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 그 예시이다.[2] 물론 방언의 쇠퇴로 인해 모든 지역에서 사투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긴 하지만, 토박이 비율이 낮은 동네일수록 그 속도가 빠르다. 반대로 토박이 비율이 높은 동네일수록 그 속도가 느리며, 현재까지도 그 지역 사투리를 젊은 세대도 구사할만큼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 지역에 따른 토박이 비율


오늘날에도 농어촌 지역에서는 귀농 인구가 해마다 꾸준히 있지만 여전히 도시 지역에 비해 토박이의 숫자가 많다.
한편 도시 지역이어도 시골만큼은 아니지만 토박이들이 제법 거주하는 동네들이 한두 곳씩은 항상 있는 편인데, 그런 곳은 대체로 도시 내의 미개발 그린벨트 지역[3]이거나 노후 주택이 많은 구도심일 확률이 높다.

2.1. 경기도(수도권)


서울은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가 전체 인구의 '''5%'''도 안 된다. 특히 노원구, 양천구, 강동구 같은 곳은 토박이가 정말 손에 꼽힐 정로도 희귀하다.[4] 노원구의 경우에는 서울에서 토박이가 가장 적은 지역인데, 3대째 살아온 사람이 무려 '''3명도 안 된다고 한다.'''[5][6] 그나마 서울 내에서 토박이를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성저십리 지역이라고 한다.
인천의 경우에도 서울과 비슷하게 토박이가 거의 없는 편인데, 특히나 충청도 출신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7], 전라도, 경상북도, 황해도 출신이 뒤를 잇는다.[8]
경기 북부 지역의 경우에는 경기 남부보다는 토박이들이 많은 편에 속하는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인 남양주시[9]의정부시[10][11]에선 3대째 이상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의 비율이 '''10~15%'''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 북부의 제2의 도시인 양주시의 경우엔 본토박이의 비율이 전체의 '''35~40%''' 정도 된다.[13] 가평군 역시 양주시와 비슷한 수치의 '''30~40%'''정도가 본토박이라고 한다.[14][15] 전방 지역인 연천군의 경우엔 '''약 60%''' 정도이며[16], 포천시의 경우엔 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북부의 두 군 지역보다도 더 많은 '''70~75%''' 정도가 본토박이로 경기 권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이다.
경기 남부 지역은 토박이가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는 편인데, 안성시평택시는 그래도 '''40%''' 이상이 3대째 이상 살고있는 토박이로 경기도 남부 지역에서는 토박이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리고 수원시, 이천시, 여주시, 양평군 도 본토박이들이 그나마 많이 거주하는 편[17]이며, 용인시[18]광주시의 경우에도 본토박이 비율이 두 자리 수로 아예 없는 편은 아니다. 반대로 과거 근대적 고도성장기에 정부 주도로 개발된 성남시[19], 부천시, 과천시[20], 안산시[21]의 시민들은 백이면 거의 백 외지인이라고 보면 된다.

2.2. 강원도


강원도 지역은 아무래도 군지역이 많다보니 대체적으로 토박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데, 그중에서도 영동 지역의 토박이 비율이 꽤나 높은 편이다.
우선 영서 지역의 대표 도시인 원주시의 경우 23부제, 13도제 시행 이후 쇠락하던 도시가 6.25 이후 제1야전군사령부, 캠프롱 등의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성장하였고, 근대화 이후 강원도 외부와의 편리한 이동, 수도권 인접이라는 특성이 맞물려 적었던 토박이 수 + 많은 이주민 수로 3대째 살아온 토박이가 강원도에서 가장 드물다. 원주시 전체 인구의 '''5%''' 정도가 3대 이상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원주시에서 사는 강릉 출신 원주시민이 언급해 주었다.[22][23] 그래도 원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의 토박이 비율이 수도권과 충청권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강원도 영서 북부의 중심도시이자 강원도의 수부도시(제1 도시)인 춘천시의 경우엔 '''35~40%''' 정도가 3대째 이상 살아온 토박이라고 한다. 화천군의 경우에는 '''약 40~45%''' 정도가 본토박이라고 한다.
강원도 영동 지역의 경우엔 영서 지역보다 토박이 비율이 높은데, 강원도 영동 북부(영북 지역의 중심도시)의 속초시[24]의 전체 인구 중 '''35~40%''' 정도가 3대째 이상 살아온 토박이라고 한다. 본토박이가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강릉시의 경우에는 전체 인구 중 '''65~75%''' 정도가 대대로 살아온 본토박이라고 한다.[25]

2.3. 충청도


충청도의 경우엔 토박이 비율이 낮은 편에 속하는데[26][27], 특히 충남 동부(대전, 세종 등 주요 도시가 있음.) 위주로 발전되었기에 이 일대는 3대째 이상 살고있는 토박이의 비율이 낮은 편이다.
충청권 최대의 도시이며, 충청남도에서 가장 큰 광역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전광역시[28]의 경우에는 3대 이상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25~30%'''로 추정되며, 모든 지방 광역시들 중에서 가장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타 지방 광역시의 경우엔 그래도 인근 지역민들이 모이는 반면, 대전의 경우엔 아예 충청권 밖에서 인구가 유입되는 경향이 높은데, 그중에서도 서울 및 수도권에서의 인구 유입이 높은 편이다.[29][30] 그렇기에 대전 내에서 본토박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사투리 사용률이 높으며, 외지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충청도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31][32]
행정수도인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엔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지만, 충청남도 연기군이었던 시절엔 정말 깡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외지인의 비율이 높진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세종시(구 연기군)의 출범이 결정된 이후엔 2012년 6월 말 기준 88,256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8년이 지난 현재는 약 35만으로 늘어났으니 토박이의 비율이 대전과 비슷하거나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지인 중 대전에서 전입된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세종의 언어 특성도 대전과 아주 유사하며, 동지역과 읍면지역의 차이가 확연한 편.
충청남도의 최대도시인 천안시의 경우엔 2012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당시 약 57만)의 '''약 18%'''만이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였다고 한다. 현재는 인구 약 66만으로 8년 사이 10만이나 증가한 걸 보면 토박이 비율은 더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33][34] 아산시의 경우에도 천안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한 도시이기에 토박이 비율이 적은 편에 속한다. 그리고 대전과 동일한 생활권에 속한 계룡시의 경우 1980~90년대 3군 본부 이전으로 조성된 계획도시이자 '''군사도시'''라는 특성상 인구 유출입이 잦아 토박이 비율이 '''20%''' 정도로 낮은 편이다.[35] 반면 충남 남부 지역(대전, 계룡 제외)과 서해안(내포) 지역은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들이 많은 편이다.[36]
충청북도의 경우엔 충남에 비해선 본토박이들이 많은 편인데, 충청북도 제1 도시이자 충청북도 내의 모든 인프라가 집중돼있는 청주시의 본토박이 비율이 적어도 '''40%''' 정도가 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청주시 다음으로 큰 충주시 또한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비율이 '''5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수도권 접경지역으로 혁신도시가 건설되고 수도권에서 이전한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있는 진천군음성군의 경우는 토박이 비율이 '''35%''' 정도로 충북에서는 낮은 편에 속한다.

2.4. 전라도


전라도는 수도권과 떨어진 남부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본토박이의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전라도 전체를 통틀어 최대 도시겸, 전라남도에서 가장 큰 광역권을 형성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경우에는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의 비율이 '''45~50%''' 이상으로 대전의 2배 정도이다.
전라남도의 토박이 비율도 전체적으로 높은 편인데, 목포시만 해도 '''80%''' 이상[37]이 3대 이상 살아온 토박이이다. 특히 무안군, 진도군, 완도군 등 군 지역의 경우는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93%''' 정도가 훨씬 넘어가며,[38] 신안군의 경우에는 무려 '''98%'''에 달한다.[39] 다만 석유화학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여수시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들어서있는 광양시의 경우에는 토박이 비율이 '''40%''' 정도로 전라도 치고는 낮은 편에 속한다.
전라북도 최대 도시인 전주시의 경우에도 '''약 40~45%''' 정도로 낮지도 높지도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전북 내에서는 토박이의 비율이 그나마 낮은 편에 속한다.[40] 전라도로 들어오는 철도가 놓인 익산시의 경우에는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약 76~80%'''[41] 정도로 강원권이나 충청권의 들과 비교하자면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다. 군 지역으로 넘어가면 이 수치는 더 증가하게 되는데, 고창군, 부안군의 경우는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93%''' 이상, 무주군, 장수군, 진안군 등 속칭 무진장으로 불리는 동부 지역은 무려 '''95%''' 이상이다.

2.5. 경상도


경상도 역시 전라도와 더불어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의 수가 많은 편이다.
경상도 내에서 그나마 외지인이 많으며, 경상남도와 경상도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도시인 부산광역시는 전체 인구의 '''35%''' 정도가 3대째 대대로 살고 있는 토박이다.[42][43]
한국 최대의 공업도시인 울산광역시 역시 '''35~40%''' 이상의 비율을 보여주며 광역시임에도 수도권에 인접한 웬만한 지방 도시들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경상남도에서 큰 도시축에 끼는 진주시는 시 전체 인구의 '''약 65~70%''' 정도가 토박이로 추산되고 있다. 이 지역 역시 군지역으로 내려가면 그 비율이 엄청나게 증가하는데, 합천군이나 의령군 일대는 적어도 구한말 이전부터 살아온 토박이가 '''95%''' 이상이다. 다만, 경상남도 최대의 도시이자 국가산업단지와 해군기지를 끼고 있는 창원시의 경우엔 '''30~35%''' 정도로 낮은 편이다.[44]
경상북도에서 가장 큰 광역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구광역시의 경우에는 '''약 55%'''로 모든 광역시를 통틀어 토박이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경상북도 내에서 큰 도시축에 끼는 안동시의 경우에는 3대 이상 살아온 토박이가 '''75%''' 정도, 경주시는 '''65%''' 정도로 역시 토박이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송군, 영양군, 봉화군 등 일명 BYC로 불리는 북부 산간 오지의 경우 적어도 구한말 이전부터 살아온 토박이가 '''95%'''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외지인이 정착하기 아예 어려운 곳도 상당히 많다. 물론 토박이 비율이 낮은 편에 속하는 지역들도 있는데, 국가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구미시의 경우 토박이가 '''20~25%''',[45] 경상북도 최대 도시로 포스코의 본사와 해병대 제1사단이 자리잡은 포항시의 경우는 토박이 비율이 '''30~35%''' 정도로 낮은 편이다.[46]

2.6. 제주도


제주도는 섬이다 보니 본토박이 비율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00년도 제주도 인구총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인구 약 54만 명 중 '''79%'''가 토박이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많은 연예인들이 제주살이를 하며 제주도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는 등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서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 제주도로 이사를 오게 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육지 사람들에게 3대 이상 살아야지 진정한 제주인이 된다면서 텃세를 부리는 토박이들로 인해[47] 육지 사람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등 여전히 소외 받는 삶을 살고 있다. 또, 로망을 안고 왔지만 정작 자기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현재에도 토박이 비율이 높은 편이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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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토박이인 인물




[1] 한편, 기초자치단체 단위가 서로 달라도 생활권이 묶여있는 관계인 경우 그 둘을 오가도 쳐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현재 구리시-남양주시 양쪽에 연고지를 걸친 주광덕 국회의원이다. 또한 중랑구 신내.묵동 택지개발로 인해 별내, 갈매, 진접, 진건읍 인근로 이사가 배농사를 하는 사람들, 현재 구리/남양주 먹골배를 재배하는 과수농업 종사자의 경우에도 지역 토박이로 쳐준다. 더 넓게 보면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랑구 전 지역(면목동까지 포함한 지역)도 과거 구리면에 속했고 고양주면 북부 지역인 면목동, 즉 구 고양주면 면목리 역시 구리와 미금 지역과 교류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왔던 사람들을 서울 토박이이자 남양주 토박이로 인정해 주기도 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괜히 구 2231번(구 2004년 6월 30일 이전 서울 165번 시내버스)이 면목동에서 회차를 했겠는가? 그만큼 교류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1963년까지 양주군 남부였던 곳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까지는 독자의식이 그다지 없었던 이유는 1980년 이후부터 남양주군 분리와 구리시, 미금시 승격을 거쳐 남양주시에 이르는 지역 개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물론 1980년 이전에는 사실상 행정상으로만 의정부에 의존했다 할지라도 교류가 현재의 양주시, 의정부시, 전곡읍(영근면) 지역과 교류가 상당히 적었다. 다만, 별내면(퇴계원 포함) 지역은 1-1번을 이용하여 약간이나마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중심지로 나가기 위해서는 구리로 나가는 게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한다. 현재도 그렇다.[2] 물론 'ㅗ'를 'ㅜ' 발음하는 것("뭐하고 놀래? → 뭐하구 놀래?")과 'ㅏ'를 'ㅐ'로 발음하는 것("거지 같아" → "그지 같애")처럼 일부 발음이 남아있긴 하나, 미싯가루(미숫가루), 빈자떡(빈대떡), 코보(코주부), 도야지(돼지), 우렁쉥이(멍게)처럼 많은 서울 방언들이 지방 방언(이었으나 현재는 표준어로 등재된 단어)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3] 주로 자연마을.[4] 하지만 양천구 목동 같은 경우에는, 어르신 중에서 토박이를 꽤 찾아볼 수 있으니 아주 없진 않다.[5] 노원구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주의식이 가장 낮고 애향심도 아예 없다 보니 뜨내기들이 가장 많은 까닭이며, 인구 전출입이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편.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다. 2019년 3대 이상 살아온 현재 본토박이는 3명인 것으로 확인됨.[6] 더욱이 노원구에 토박이가 극히 드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리상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마들역 일대의 과거의 상계동은 북풍 골바람이 상당히 불었고, 농사도 쉽지 않았고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될 수가 없다고 의정부, 양주시에서 대대로 살아온 한 토박이가 언급하였다.[7] 인천 사람 10명이 모이면 그중 충청도 출신이 4명일 정도로 충청도 출신이 많다고 한다. 특히 충남 서해안 지역 출신이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8] 인천은 충청도 출신들의 비율이 높은 만큼 토박이가 아닌 충청도 사람들에 의한 텃세가 심하고 수도권 치고는 배타성도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어서 경상도 출신이 정착하기 힘든 지역으로 꼽힌다. 참고로 수도권에서 부울경 출신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인천이다. 다만 도서 지역인 옹진군강화군은 예외적으로 토박이가 '''50%''' 이상 많은 편이다.[9] 이 지역에선 주로 양정동, 일패/이패/삼패동, 금곡동, 화도읍, 와부읍, 별내면 청학리, 광전리 등에서 3대 이상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계속된 개발로 인해 지금은 토박이 비율이 상당히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토박이들은 양평, 가평, 포천, 심지어는 춘천까지 밀려난 상태. 화도읍, 와부읍에서도 외진 산골 마을로 들어가야 토박이들이 많으며, 평내랑 호평, 도농, 별내동, 다산은 거의 대부분이 외지인으로 채워진 신도시라고 봐도 된다.[10] 이 지역도 의외로 토박이가 많은 편이다. 특히 문희상 의원이 10대 이상을 대대로 살아왔다 하니 의정부시의 가장 대표적이고 진정한 의정부 토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의정부에서 문희상 의원 하면 지역 공무원 및 고위 공직자도 아주 깍듯이 대하는 게 사실이라고 하며, 의정부시 소속 한 공무원의 제보에 따르면, 의정부 시장인 안병용 시장마저도 문희상 전 의원을 크게 모신다고 한다. 이렇듯 그는 의정부의 진정한 토박이이자 명문가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도 그는 의정부시 의정부동에서 살고 있으며, 원래 고향은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구 시둔면) 가능리(현재의 가능동)이다. 또한 빅뱅의 동영배 군도 3대 이상 살아왔으며, 그 역시 진정한 토박이라고 할 수 있다.[11] 아울러 경기 북부의 제2의 대표도시인 양주시(양주군 포함, 남양주시, 구리시 제외) 출신까지 합치면 약 35% 정도 이상 된다. 결국 광의의 의미로 보면 양주 본토박이가 상당히 많은 편이며, 순수 경기 북부 출신(의정부, 양주, 동두천, 연천, 포천) 및 토박이를 다 합쳐도 의정부시 전체 인구의 50%가 된다고 한다.[12] 양주시의 전 관료였던 임사빈, 임충빈 또한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에 속한다.[13] 실제로 3대 이상, 적어도 고주내면, 회암면, 천천면, 백석읍, 묵은면(현재의 은현면) 일대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대다수라고 한다. 또한 풍천 임씨[12], 전의 이씨, 전주 이씨, 수성 최씨, 경주 정씨 등의 집성촌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14] 참고로 춘천 사람들도 가평군에 많이 거주하는 편으로, 광의로 보면 춘천시 출신도 제법 있는 편이고, 가평과 춘천은 과거 같은 강원도였고, 행정상으로는 비록 경기도라 할 지라도 춘천 출신 역시 어느 정도의 토박이라고 볼 수 있겠다.[15] 2020년 12월 14일 기준으로 한 춘천발전을 위해 일하는 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복사매현이었던 조종면 일대와 과거 양평 지역인 미원현이었던 설악면 일대는 실제로 가평 본토 사투리와 다르고 토박이 성향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다만, 가평군청 관광문화과의 한 주무관에 따르면 가평은 예맥(현재의 춘천시 전역)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실제로 예맥국에 속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 뭐 상대적으로 보도록 하자. 일단 가평의 경우에는 춘천과 상당히 밀접해 있고 언어도 동일한 것도 또한 사실이라고 춘천의 한 연구원 또한 언급한 바 있으며, 하나의 식구로 묶어도 다름없다고 언급하였기 때문이다.[16] 이 지역이 과거 북한 땅이었을 때부터도 당연히 포함된다.[17] 경기도의 수부 도시인 수원시도 3대 이상 대대로 살아온 사람이 '''25%''' 정도로 김장환 목사가 수원의 진정한 토박이라 할 수 있으며, 이천, 여주 지역도 '''30~40%''' 정도 된다.[18] 전체의 '''10~15%''' 정도가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본토박이로 추정되는데, 최근 개발이 지속됨에 따라 토박이 숫자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난개발이 심한 수지구, 기흥구와 달리 도농복합 지역인 처인구는 토박이의 비율이 높은 편.[19] 구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분당신도시의 서현동, 수내동 일대), 낙생면(판교동, 백현동, 운중동, 정자동, 금곡동), 중부면(현재의 구성남, 즉 수정구, 중원구 일대)의 토박이들은 경기도 광주군(현 경기도 광주시) 출신이니 경기도 광주시 출신 역시 이 지역의 토박이로 봐도 될 것이다. 이는 광의의 성남 토박이의 기준이다. 현재 진짜 성남 토박이 비율(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성남출장소 지역),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 남부지역 출신자)은 약 3~4% 정도 되는 걸로 추산되고 있다. 단, 광의의 토박이 비율인 광주시 출신을 합치면 10% 정도 된다고 한며, 경기 남부권까지 합치면 약 15% 정도가 된다.[20] 단, 주암동이나 문원동 일대는 토박이가 약간은 있다고 한다.[21] 상록구 수암동, 반월동 및 단원구 선부동, 신길동 일부, 그리고 실질월경지대부도에는 토박이가 남아있다.[22] 원주가 그래서 외지인 유입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특히 서울 노원구에서 집값을 피해 이사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최근에 원주 혁신도시나 기업도시나 새 아파트에 노원구 출신이 많이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23] 물론 원주와 서울은 과거 132km 정도의 거리였으나 최근 제2 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하여 110km 정도로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원주의 외지인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지속될 전망이다.[24] 소도시지만 토박이가 상당히 많은 편. 외지인이라 착각할 수 있으나 외지인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며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는 양양군, 고성군 토성면까지 포함한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모두 다 양양군이었기 때문이다.[25] 강릉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강릉 김씨, 강릉 최씨, 삼척 심씨, 안동 권씨, 남양 홍씨, 강릉(양근) 함씨, 연일 정씨, 창녕 조씨, 강릉 박씨, 영월 신씨 등의 가문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고 대를 이어서 끊임없이 거주하고 있다고 강릉에서 수십 대째 살아온 토박이가 언급하였다.[26] 특히 충청도의 경우에는 수도권과 가까이 위치해있는 지역이다보니 적어도 우리 조부모 세대가 청년기이던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일찌감치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됐던 것도 낮은 토박이 비율에 한몫했다.[27] 남부 지방 -> 충청도 -> 수도권 -> 강원도 순으로 인구 이동이 많은 편인데, 충청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수도권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보니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듯 하며, 강원도의 경우엔 최근 수도권과의 이동이 용이해짐에 따라 상경 이후 높은 집값을 피해 온 사람들 덕분에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반면, 충청도와 강원도의 인구는 수도권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1925년 당시 경상도와 전라도의 인구가 전국에서 1, 2위를 달리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역전된 셈.[28] 89년도에 직할시로 승격되어 현재 충남 소속은 아니지만 광의(廣意)의 '충남권'에는 여전히 포함된다.[29] 주변 4-50대의 출신 지역만 보더라도 대전 토박이보다는 외지 출신이 많은데, 대부분이 서울, 경기, 부산, 전라도 등지에서 온 사람이다. 다만, 수도권의 경우는 전라도 출신이라 하면 대체로 광주-전남 출신의 비율이 높은데 비해 대전은 지리적 여건상 전라도 출신 중 광주-전남 출신은 강원도 출신보다도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적고 전북, 그중에서도 완주군, 무주군, 진안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당장에 같은 충청도 지역인 천안아산만 봐도 오히려 전남 출신이 전북 출신보다 더 많다.[30] 충청도 내에서 경상도 출신 거주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도 대전이다. 특히 주변을 둘러보면 부산 출신 거주자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며, 그 외에 대구, 경남 창원시, 김해시, 진주시, 거창군, 함양군, 경북 김천시, 구미시, 상주시, 문경시, 경산시, 칠곡군 출신도 많이 거주한다. 다만 울산 출신은 매우 적다.[31] 서구 둔산동, 관저동 일대부터 유성구 일대는 본토박이가 정말 적은 지역으로, 서구 원도심(직할시 승격 이전부터 대전 소속이었던 정림동, 도마동, 변동, 가장동, 복수동 등), 중구, 동구, 대덕구 일대에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사투리조차 거의 쓰지 않으며, 단어의 경우엔 뒤에 나온 지역들이 사투리와 표준어를 번갈아가며 쓰는 것과 달리 대부분 표준어 혹은 경기 방언을 쓴다. 자세한 건 대전광역시/문화 참고.[32] 이거 때문에 충청도 사투리 관련 유튜브 영상에 "대전도 사투리 쓰는 거였구나"라는 댓이 달리면 "나는 표준어만 쓰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입만 열면 사투리 쓰는 거였더라, 출생의 비밀급 충격"처럼 '''공감'''하는 댓글과 "대전이 뭔 사투리를 쓰냐, 개소리 하지 말아라"처럼 '''부정'''하는 댓글이 서로 싸우는 걸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3] 수도권 개발 규제 정책으로 인해 수도권 바로 밑에 위치해있는 천안 및 아산 지역으로 공장들이 지어지게 되었고, 점차 공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다보니 지난 30년 동안 젊은 노동자 계층이 많이 유입되었다. 또, 수도권 바로 밑에 위치해있기에 남부 지역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진출하기 전 거쳐가는 도시가 된 까닭도 있다. 외지인들 중에서도 특히 충청남도 타 시군 출신과 전라도 출신이 많은 편이며, 대전과 달리 경상도, 특히 부울경 출신은 매우 적다. 이는 아산도 마찬가지.[34] 다만 동남구 농어촌 지역인 북면, 동면, 목천읍, 풍세면, 광덕면, 병천면, 수신면, 성남면 등지는 토박이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35] 특히 신도안면의 경우 백이면 백 거의다 외지인이다. 그나마 두마면엄사면 일부 지역은 토박이가 꽤 남아있다.[36] 당진시의 경우엔 최근 개발됨에 따라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충남 서해안 지역에선 토박이 비율이 낮은 편에 속한다.[37] 광의의 목포 생활권인 무안군, 신안군 출신을 모두 포함한 수치이다.[38]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대표적인 진도 토박이이다.[39] 신안군 지역이 육지 사람들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고 지역 집단범죄 등으로 사회 이슈화되는 원인이 외지인이 거의 없는 이러한 지역 특성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40] 그렇다 할지라도 전라북도 전 지역에서 올라온 토박이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41] 과거 여산군, 용동군, 함열군, 익산군의 토박이를 다 포함한 수치이다.[42] 오거돈 前 부산시장이 부산에서 대표적인 토박이다.[43] 부산은 6.25 전쟁 당시 피난왔다가 휴전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착한 인구가 상당수이며, 제주 4·3 사건 당시 서북청년회의 만행을 피해 제주도에서도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부산의 대표적 향토기업인 화승그룹의 창업주 역시 부산 토박이가 아닌 충청북도 괴산군 출신이며, 1955년 부산에서 신진그룹을 창업했던 김창원 회장 역시 충청남도 공주시 출신. 또한 영남권의 중심지이자 항구도시로 물류량도 상당하고, 많은 기업체들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 특성상 토박이 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사하구, 강서구, 해운대구의 경우 토박이 비율이 '''10%''' 전후밖에 안될 정도.[44] 실제로 창원은 부모 중 한 명이 서울 혹은 전라도 출신인 경우가 많아서 사투리라고 해봐야 주로 억양 위주인 경우가 많으며 단어나 어미의 경우엔 대부분 표준어를 주로 사용한다. [45] 특히 구미는 충청도 밖에서 상당수 인구가 유입되는 대전처럼 경상도 밖에서 인구가 유입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아예 동남 방언 억양조차 없이 표준어를 쓰는 인구도 상당하다.[46] 포항의 경우도 경상도 밖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상당하며, 이로 인해 표준어를 쓰는 인구도 적지 않은 편이다. 경북에서 표준어 화자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두 지역이 구미와 포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47] 특히 육지에서 건너온 서북청년회 출신들이 주도한 제주 4.3 사건 등의 만행으로 인해 제주도 토박이들의 육지 이주자들에 대한 불신과 텃세는 의외로 심한 편이다. 오죽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육지 출신 목사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제주 지역 교회로의 부임은 귀양살이로 인식될 정도. 최근 사례로는 서울특별시에서 서귀포시로 이주한 돈가스 전문점 연돈 대표 부부 역시 이주지에서 원주민들에게 견제를 당한다는 제보가 있을 정도이다.[48] 그래도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와 더불어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자체인만큼 본토박이 비율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