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문화
1. 개요
'''대전'''은 '''문화의 불모지'''라고 불릴만큼 대전 특유의 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 최근엔 '''노잼 도시'''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는데, '''울산''', '''광주'''와 더불어 '''노잼 도시 3대장''' 중 '''첫째'''를 맡고 있다. 그나마 울산은 바다도 있고 바로 옆에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을 끼고 있으며, 광주는 나름의 독특한 식문화와 특산물이 있는 반면, 대전은 고유의 뚜렷한 식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어가 눈에 띄게 독특한 것도 아니어서 정말 내세울 것이 없다.[1] 전국에서 처음으로 엑스포를 개최한 적이 있기는 하나, 현재는 그렇다할 성과를 내지는 못 하고 있다. 그렇기에 꼭 대전에 와야지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 울산이나 광주보다 노잼이라는 이미지가 더 커졌으며, ''''노잼 도시 = 대전'''' 또는 ''''Daejeon is 노잼''''이라는 인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최근엔 전국구로 유명한 빵집인 '''성심당'''을 필두로 ''''빵의 도시''''라는 타이틀과, ''''대전 빵문의 해''''를 추진하는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는 하나..이게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볼거리가 없는 것치고는 인지도도 있고 나름의 지역 정체성''' '''도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인 것 같다.[2]
게다가 대전 사람들도 이 노잼이라는 이미지를 싫어하는듯 하면서도 나름 즐기는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대전하면 대부분 성심당과 빵[3] , 교통과 관련된 얘기밖에 나오지 않았던 반면, 최근 노잼의 이미지가 커지면서 각종 미디어에서 주목을 받으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니 아무래도 인지도가 없는 것보단 좋다는 식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최근 대전 출신 방송인들이나 대전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나와서 대전이 '''칼국수'''로 유명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차츰 칼국수의 도시라는 인지도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2. 언어
모든 지역이 그러하듯 공용어는 표준어이다.
다만, 대전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비해선 서울말씨와 더욱 가깝게 들린다. 아무래도 충청도가 수도권 바로 밑에 위치해 있다보니 원래부터 억양 차이가 그리 심하지 않았거니와[4][5][6] , 남부 지방 사람들에 비해선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더 용이하기 때문에 왕래가 잦아지고 교류가 많아진 것 또한 이에 한몫했다.[7]
또, '''방언의''' '''쇠퇴'''로 인해 대부분의 지방에서 세대가 지날수록 사투리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데, 충청도의 경우엔 경기 방언과 공유하는 어휘들이 많았기에 남부 방언들에 비해 비교적 빨리 쇠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8]
충청권 최대 규모의 도시인만큼 외지인의 유입 또한 많았는데, 각종 연구소와 정부, 군사 기관으로부터 유입된 타 지역 주민과 더불어 수도권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대도시라는 점도 외지인 유입에 한몫했다. 그 결과, '''대전은 지방 광역시 중에선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본토박이의 비율이 25~30%로 가장 낮다.'''[9][10] 그리고 타 지방 광역시들은 유입원의 대부분도 인근 지역민들이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지역 고유의 언어가 유지되고 있지만, 대전의 경우엔 유입원도 충청도보다도 서울경기, 전라북도, 경상도 등지 출신이 상당히 많다.[11] 이러한 이유로 대전 지역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어 이 지역만의 언어가 쇠퇴하게 됐다는 점도 들 수 있다.[12]
2.1. 사투리
'''그렇다고 사투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록 충청도 사투리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유"'''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15][16]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에 비해 좀 더 표준어 내지 서울말에 가까울 뿐[17][18] 위의 영상처럼 알게 모르게 사투리를 쓰는 경우도 많고, <머쉬베놈>의 말투 및 억양과 비슷하거나,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서울과 차별화 된 억양 역시 존재한다.
- "~여", "~겨"[19] , "~겄", "~디" 등과 같은 어미는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단어의 경우엔 대부분 표준어로 대체해서 쓰지만, "댕기다(다니다), "대간하다(힘들다, 피곤하다, 고되다)"[20] , "기다(맞다, 그렇다)"[21][22][23] , 그리고 위의 영상에서 나온 "쩜매다(묶다)"[24][25] 등은 현재까지도 많이 쓰이고 있는 사투리 단어들이다.
- 발음 측면에서도 아직까지 충청 방언의 특징이 꽤나 자주 드러나는 편인데, 앞의 모음과 바로 뒤에 오는 모음이 둘 다 'ㅏ'일 경우, 뒤에 있는 모음이 'ㅓ'로 바뀌는 현상[26] 과 'ㅏ'나 'ㅓ'가 'ㅐ'[27] 나 'ㅡ'[28] 로 변하는 현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대전 특유의 사투리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띠가다"와 "쫄때기살"이다. "띠가다"의 경우에는 "떼어먹고 (도망)가다"라는 뜻을 지닌 일종의 준말 \"둔눠\", \"일어나\" -> \"인나\" 등.">[29] 로 대전 토박이, 그중에서도 4-50대 이상 세대에서 쓰이는 단어이다.[30] "쫄때기살"[31] 의 경우에는 "돼지고기 사태"를 일컫는 단어로 꽤나 자주 접할 수 있는 사투리 중 하나이다.[32]
- 여담으로 대전의 편가르기 게임은 '우에시다리'인데, 이는 '위'를 뜻하는 일본어 '우에'와 '아래'를 뜻하는 일본어 '시타'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위'를 의미하는 단어인 '우에'인데, 충청 방언에서는 'ㅟ'에서 'ㅣ'가 빠져서 'ㅜ'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기에 '위에'를 '우에'로 발음하는 경우도 많다. [33] 이외에도 '바퀴'를 '바쿠'로 발음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자세한 사항은 대전 방언과 충청 방언 문서 참조.
2.2. 일본어의 영향
대전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충청권에서 눈에 띄게 발전된 지역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전 서쪽에 위치한 공주[35] 와 대전 동북쪽에 위치한 청주가 충청권을 대표하던 도시들 중 하나였기에 대전 일대는 이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인구 역시 매우 적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인 1910년에 조사된 바로는 당시 대전의 인구 4,350명 중 58%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36] 이후 1925년에 이뤄진 조사에서 역시 대전 인구 8,861명 중 56%가 일본인일 정도로 당시의 대전은 일본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도시들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대전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꽤나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대전의 편가르기 게임 용어인 '우에시다리'가 대표적인 일본어의 잔재이다.
우에시다리와 관련된 내용은 후술할 예정.
이외에도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단무지를 '닥광' 혹은 '단광'으로 불렀으며, '엄청 많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잇빠이', '아예, 차라리'라는 뜻의 앗싸리, 지퍼의 일본식 표현인 '자크', 그리고 컵을 '고뿌'로 발음하는 등 일본어식 표현의 단어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8~90년대를 기점으로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많은 단어들이 당시의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차차 사라지게 되었고 현재는 '닥광'이나 '잇빠이' 같은 일본어식 표현을 쓰는 이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부터 대전에서 쭉 살아온 어르신들의 경우엔 아직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현대의 젊은이들의 경우엔 조부모와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대전 지역 본토박이들을 중심으로 간혹가다가 쓰이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한다.[37]
2.2.1. 우에시다리
편가르기 놀이를 할 때 대전에서는 '우에시다리'라는 말이 쓰이는데, 어원은 일본어 우에(うえ, 上)와 시타(した, 下)로 알려져 있다. 청주와 공주 등 한국인이 주를 이루던 유서깊은 지역과 달리 대전은 20세기 들어 철도의 개통과 도청의 이전으로 형성된 신도시로서 대전역 인근에 형성된 일본인 동네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표현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38] 다른 지역에서 쓰이는 일본어 어원의 편가르기 놀이 용어들이 여러 지역에 변형되어 분포하는데 비해[39] '우에시다리'는 대전 이외의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으로, 타 지역 출신들에게는 생소하게 여겨지기도 한다.[40][41] 다만 상술하였듯이 대전의 지역 특성상 충청도 이외의 외지 유입인구가 상당하고, 그만큼 대전 토박이들이 쓰는 지역 고유의 사투리가 점차 사라져가면서 서구, 유성구 등 외지인의 비율이 압도적인 지역에서는 '우에시다리' 대신 '데덴찌' 등 다른 지역의 용어로 점차 대체되어 지금은 토박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구도심 지역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워낙 독특한 표현이다 보니 여전히 편가르기 놀이에서 대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에시다리'를 꼽을 정도의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링크
3. 종교
종교단체들도 조용하기로 유명하다. 대전은 신자 인구수만 보면 불교와 개신교가 1:1로 거의 대등한 수준이지만,[42] 사회적 영향력이나 재정능력, 종교단체 수 면에서는 개신교가 압도적 우위이다.[43] 부유한 서부권(서구, 유성구)에 개신교세가 몰려있으니 당연한 것.[44] 그러나 대전에는 중문교회 장경동 목사[45] 외엔 이른바 네임드 목사가 드문 편이다.[46] 용문동에 순복음교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근처인 용문역 8번 출구 부근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대전지부가 있다. 대전광역시 도시철도공사 홈페이지-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용문역 출구 유상표기에 항의하는 글이 뒤늦게 올라와 있고 2018년 2~3월부터는 1호선 용문역을 지나는 시내버스에서도 사이비 종교에 속하는 신천지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는 2019년 기준으로도 마찬가지[47]
3.1. 개신교
특정 교파에 편중이 심한 부산[48] 이나 인천[49] 등지와 달리 대전은 오히려 지역내 큰 교회들이 여럿이 각각 갈라져 교인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교파나 단체에 위세가 편중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시끄러운 전도활동도 없는 편이다. 다만 신천지 측에서 인근 교회 주변에 묵언시위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천성교회'라는 대형 교회 앞에서도 몇 차례의 묵언시위를 행하며 교회 앞 주차장을 에워싼 적이 있으며, 순복음교회에서도 비슷한 묵언시위가 행해졌다. 때에 따라서는 경찰도 출동했을 만큼 분위기가 험악했다.
대전의 개신교 교단별 비율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한국침례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이 대전의 6대 교단으로 거의 대등한 교세를 이루고[50] , 나머지 교단들이 군소 교단으로 사이좋게 대전의 개신교인들을 나누고 있는 형국이다.[51][52] 다른 지역에 비해 특이한 점이라면 대전은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동아기독교회(현재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전신)의 선교지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6.25 이후 미국 남침례회 존 애버내시(John A. Abernathy, 한국명 나요한) 선교사가 대전 지역에 침례교회와 신학교를 세우면서 침례회의 연고지처럼 인식되며 교세가 급성장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침례회의 교세가 뚜렷하게 강하다는 것이다.[53][54]
또 하나, 대전은 본래 감리회 선교 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로회의 교세가 세종특별자치시나 공주시, 논산시 등 인접 지역에 비해 매우 강한 편인데,[55][56][57] 장로회 선교 구역인 옥천군, 금산군, 청주시 등과 인접하다 보니 일찍부터 장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데다 장-감 선교구역 분할이 철폐된 1938년에 처음으로 장로교회가 세워지고 해방 이후에는 38선 이북에서 피난온 장로회 신자들의 대거 유입[58] 과 함께 한남대학교 등의 교육 기관이 세워지면서 해방 이후에서야 장로교회가 처음으로 세워진 인천 등의 다른 감리회 선교지역에 비해 장로회가 비교적 일찍 자리잡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개신교 사회복지 단체인 기독교연합봉사회가 1949년에 장로회, 감리회, 구세군의 참여로,[59] 대한민국 최초의 지역 개신교 연합 기구인 대전시기독교연합회(약칭 대기연)가 6.25 전쟁 때인 1952년에 장로회, 감리회, 성결교회, 구세군의 참여로 조직되면서 교단들끼리 경쟁보다는 협력하는 관계가 일찍부터 정착되었기 때문이다.[60] 특히 대전은 예장백석 교단의 교세가 강한 편인데, 1958년 한국에 입국하여 대전에 자리를 잡은 레오날드 쿠드 선교사의 극동사도선교회[61] 를 모태로 1963년 창설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은혜측이 1981년 연합측과 교단을 합칠 때까지 대전을 중심으로 주로 충청과 전북 지역에서 교세를 크게 확장해 나갔고, 이듬해 합동진리측과 결합하여 합동정통 교단이 된 후에도 교세를 계속 확장해 나가면서 현재까지도 백석교단은 대전 지역 내 장로회의 강세에 힘을 보태고 있다.[62]
이러한 영향으로 대전은 교단별 비율이 국내 다른 지역과는 크게 다른 독특한 구성을 갖게 되었고, 개신교 교단들 간의 관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원만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교단별로 진보/보수의 교단색을 명확히 띠기보다는 대체적으로 예장통합과 예장백석 사이 정도의 중도 내지는 온건보수 성향으로 통일되어 있는 편이다. 반면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성공회, 기독교한국루터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등의 진보성향 교단이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재건, 순장, 계신,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등의 극보수 장로회 교단, 한국성서침례친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예수교대한감리회 등의 군소 보수 교단들은 대전에서 교세가 약한 편이다.[63] 역시 대전 지역의 개신교 교단들은 중도~온건보수 성향이 강세. 그나마 극보수 장로회 교단 중에서는 교인수 1.000명 이상의 중견 교회들도 대전에 있고 선교센터까지 설립한 예장고신이 어느 정도 선전하고 있다.[64]
'새로남교회'라는 대형교회가 있는데,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친동생 오정호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만년동으로 새로 교회를 지을 때 사랑의교회 측에서 지원이 있었고, 정부대전청사가 바로 옆에 있고 둔산지역이기 때문에 지역 정치인들이나 고위공무원, 사업가 들의 인맥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교회 규모도 겉에서 보는 것 보다 많이 크며, 대전 내에서 나름 유명하다. 서울에 사랑의교회가 있고 부산에 수영로교회가 있다면 대전에는 새로남교회가 있다고 할 정도이며, 이들 세 교회는 교회갱신협의회 소속으로 상호 교류도 상당히 활발한 편이다.
그외 개신교 예수쟁이가 주로 출몰하는 곳은 대전역과 대전복합터미널이다. 간혹 유성역같은 준번화가 인근에서도 나온다. 출현 빈도나 예천불지를 외치는 소리 톤이나 타 지역에 비해 조용하다. 다른 지역처럼 "주예수를믿으라" 혹은 "예수님과 반공"[65] 을 차 끌어다 놓고 주변에 민폐 엄청 끼치며 시끄럽게 떠드는 게 아니라, 차 위에 스피커 놓고 중저음으로 외치면서 최대한 민폐 안 끼치면서 금방 사라진다. 2010년대 들어 한물간 베리칩 드립을 치는 사이비 교회 사람들이 스피커 들고나와 자주 포교를 나오긴 하는데, 역시 대전 예수쟁이들답게 스피커 소리가 근처 지나다니는 차소리 수준이다.(...) 2015년 11월 들어서는 물티슈와 광고지 뿌리는 데 더 열심인 듯.
그나마 시끄러운 편인 대전역 인근 예수쟁이들도 '''불교 포교나 탁발나온 승려들보다 더 조용하다.''' 한 위키니트가 등교길에 목격한 예수쟁이는 심지어 큰길가에서 '예수믿고 천당가자' 라는 팻말을 들고 조용히 10분정도 서 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위엄을 보였다. 뭐 소리지르거나 소음 따위는 없었다. 그냥 10분정도 서 있었을 뿐이다. 최근 대전역에 찬양을 부르면서 전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변 노숙자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하고, 찬양도 죽어라 큰 건 아니라서 명불허전 대전이라고 느껴진다.
심지어 대전복합터미널 근처에서는 여호와의 증인 선교단이 가판대를 설치하고 선교하는 바로 옆에서 근처 교회에서 나온 아줌마들이 교회 팜플렛을 나눠주며 선교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곳은 서대전네거리역부근, 이곳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신도들이 철천지원수인 CBS 근처의 서대전시민공원을 중심으로 상주하면서 집중적으로 전도를 하는 곳이므로 기독교인들의 경우는 이곳을 조심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타 지역 예수쟁이들에 비하면 정말 조용하다.
다른 타 도시에 비하면 전반적인 종교단체가 조용한 편이기는 하지만 개신교에 한정해서 대학 내 종교단체(사실상 개신교 종파간) 분쟁은 전국 최고 수준. 장로회 계열인 한남대학교나 침례회 계열인 침례신학대학교와 감리회 계열인 배재대학교, 목원대학교가 있는데, CCC, DFC 등 그 쪽 계열 종교 동아리는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IYF 등 이단 동아리로 알려진 곳은 거의 내패치는 분위기다. 심지어는 몸싸움까지 나오고, 욕설이 왔다갔다 할 정도라고. 2000년대 말에는 모 학교의 모 기독교 동아리방이 1학기 개강을 앞두고 인분테러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단동아리의 소행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으나 딱히 대처할 방법도 없었다고... 덕분에 그 해 신입생 모집은 망했어요
3.2. 불교
불교의 경우, 사찰 자체는 조계종 소속 기준 총 35곳으로 제법 되지만 대전시 자체가 독립된 도시로 등장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데다(대전광역시/역사 문서 참조)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곳에 기도처로 유명한 명산인 계룡산이 있고 충남/충북까지 포함하면 각 지역의 본사인 마곡사와 법주사가 있어 중요한 불교 행사가 열리는 날이 되면 그곳의 사찰들로 사람들이 많이 가는지라 대전의 사찰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거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대전 시민들은 사찰 하면 근처 계룡산의 동학사나 갑사를 맞이 찾아가는 게 일반적. 대전의 사찰 중에 그럭저럭 유명한 곳들을 몇 군데 꼽자면 탄허스님이 세운 곳이자 계룡산에 가까워 계룡산파가 자주 모이는 곳으로 알려진 유성구 학하동에 있는 자광사, 국립대전현충원근처 작은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예쁜 사찰인 여래사(2002년 개원), 1985년 성립된 공성회를 모체로 하는 보현불교대학/보현문화회관[66] , 2001년 개원한 대전 백제불교회관, 대웅전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산사, 조선시대 건립된 비래사 등이 있다. 이외에 다른 절들은 상당수가 절(불교)/한국항목에 나오듯이 보문산에 많이 위치하고 있다.
이외에는 진각종의 사찰인 심인당이 4곳 있으며, 천태종이 2곳[67] , 정토 계열의 군소 종파 사찰 2곳이 있다. 한때는 한마음선원도 있었으나, 2004년 공주로 이전했다.(참조)
3.3. 천주교
천주교 대전교구의 중심이며, 주교좌성당은 구도심에 위치한 대흥동주교좌성당[68] 이다. 다만 번화가 특성상 교통이 다소 불편하거나 주차공간이 협소한 등의 문제로 인해 주교좌 성당을 새로 옮긴다는데, 세종쪽에 신축하는 성당으로 옮기는걸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대흥동성당이 세종 신축성당쪽에 주교좌성당 바톤을 넘기는것은 시간문제.
3.4. 민족종교 및 무속
증산계통 종교중 대순진리회와 맞먹는 규모의 경쟁교단인 증산도가 대전광역시를 총본산으로 하고있다. 사실상 증산도 기관지로 기능하는 상생방송역시 대전에 있다. 왜냐하면 증산도 수장 안씨 일가가 대전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증산도에서는 한때 대전을 태전이라고 박박 우겼는데 증산도 말로는 "조선총독부가 태전 지명을 뺏고 멋대로 다이덴(대전)이라고 붙인것이다"라고 하는게 그 주장. 하지만 그 논거는 빈약하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지역 곳곳에 소위 '''조상신'''을 포교하는 대순진리회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복합터미널, 대전역 목척교 부근, 세이백화점 부근, 유성터미널 부근, 시청 부근을 배회하며, 항상 2인 1조로 다니고, 특정 사람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 사람이 반응하면 두 사람이서 속사포로 말을 던져 자신들 종교의 정당성을 포교한다. 은연중에 활동하는데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특별한 복색도 없어서 구별도 어렵다. 그냥 모르는 사람이 길 묻는 거라 생각하고 멈췄는데 정작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쿨하게 헤어질 것. 대개 '학생이세요?' 혹은 '직장 다니세요?' 등 신상을 캐는 이야기로 시작하므로 구별하기에 어렵진 않은 편이다. 이나마도 대전답다고 해야할지 떨쳐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대순이 증산도와 앙숙관계인 것을 보면 참 간도 크지 싶은데, 동네 단위로 봤을 때 증산도 활동 영역이 겹치는 곳을 피해가면서 전도하는듯 하다. 증산도 관련 시설은 서구 괴정동, 중구 선화동, 대덕구 중리동[69] 쪽에 몰려있기 때문.
대전지역의 무속신앙도 독특하다. 타 지역의 시끌시끌하고 대규모로 열리는 굿과 달리, 대전/충청도에서는 각종 굿이나 부정풀이의 대부분을 앉아서 하는 앉은굿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설경을 치거나 미친굿을 할 때를 보면 타 지역에 주술적 행위에 비해 화려함이나 과격함이 절대 떨어지는 건 아닌데, 거의 대부분을 앉아서 한다. 굿을 하는 것도 다른 지역의 굿처럼 넓은 자리에서 여러 굿거리에 따라 무복을 갈아입으며 하는 게 아니라, 설경과 단을 마련하고 그 앞에 앉아서 법사가 북과 징을 치며 경을 읽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런 점 때문에 대전에서는 무복이 발달하지 않았고, 신당도 복잡하고 정교한 설경을 제외하면 비교적 단순소박한 편이다. 굿을 할 때도 '굿 한다'는 말보다는 '경 읽는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래서 대전 출신의 고령자들은 이런 타지의 굿에 대해 "그럼 굿을 앉아서 하지 어느 동네에서 서서하냐?"고 말할 정도. 실제로 조금이라도 나이 든 대전 사람들은 굿 하면 개량한복 입은 법사가 경 읽는 걸 먼저 떠올리지, 타 지역처럼 무당이 화려하게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낮설게 여긴다. 무속인들 사이에서도 대전/충청도 지역의 앉은굿은 그냥 굿이라 하지 않고 '''양반굿'''이라 부르며 따로 분류할 정도다. 1990년대 들어 충청도 전통 앉은굿이 많이 위축되긴 햇지만, 앉은굿 전수회도 생긴데다 2000년대 기준 고연령층은 물론 민속에 관심이 있거나 무교에 친숙한 사람일 경우 20대 중후반~30대 중에도 앉은굿이 익숙한 대전 사람들은 많다.
그 외에는 자운대 근처에 동학계열 군소 종교단체인 수운교의 본부가 있다.
4. 문화 예술
대전에서는 문화 예술 활동이나 각종 사회 활동 참여율은 저조한 편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길거리 응원 열기가 타 광역시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70] 광우병 사태 때 촛불시위도 딱 한 번 경찰 통제 아래 별다른 충돌 없이 대전역 광장에서 충남도청까지 점잖은 시가행진을 하는 것으로 끝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무효 집회도 꽤나 평화로웠고. 유일한 예외라면 1987년 6월 항쟁 정도인데, 이때[71] 는 비단 대전 뿐만 아니라 전국 대도시에서 넥타이부대니 대학생이니 할 것 없이 쏟아지던 때였으니.
환경도 좋지 않고 사람들도 관심이 없어서 문화 행사를 열어도 반응이 무덤덤하다. 대전시민들 사이에서도 "대전은 문화 불모지"라며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할 정도. 이 때문에 예술, 공연계에서 절대 흥행 동원이 안되는 지역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노라조가 공연을 와서 "대전사람들이랑 같이 달려 보는 게 소원입니다!"라고 하며 슈퍼맨을 부른 적이 있지만 같이 따라 부르는 사람이...
아마도 이는 충청도 기질 때문으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충청도 사람들의 특징이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며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4.1. 행사
그나마 충청권을 염두에 둔다면 행사가 천안시나 청주시로 돌려지는 경향도 있다. 최근에는 좀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객석 점유율은 애매하다.[72] 게다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비수도권 광역시이므로 소수의 열광적 참여자들은 서울에서 하는 공연문화를 감상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전보다 인구가 30~50만이나 적은 수원-창원-울산에서 문화공연을 해도 대전보다 2~3배 이상 많은 인원이 찾아온다고 한다. 종합해보자면, 문화예술의 전당이라든지 시설/인프라 면에서는 타 광역권에 비해 모자라지 않지만, 대전 특유[73] 의 방관적 태도와 문화 전반에 대한 건조한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 중앙로 일대에 몇몇 연극용 사설 소극장들이 개장하여 서울 대학로의 흥행작들이 라이선스로 공연되고 있는데 적어도 주말에는 만석인 편이다.[74]
4.2. 스포츠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야구.''' 연고 팀 한화 이글스에 대한 애정이 강하며, 10년간 비밀번호를 찍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응원을 보낸 바 있다. 10~20대 팬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빙그레~한화 초기였던 90년대 까지만 해도 악질 훌리건이 넘쳐나는 강성 팬덤을 보유하던 구단이었다. 다만 이 부분도 이때 부산 - 마산 아재들이 전성기를 누릴 시절이기라 주목 받지 못하였고, 훌리건 세대가 지나고 2000년대가 들어서며 다함께 즐기는 응원문화로 변모하며 그 유명세가 더욱 커진 부산권, 전라권 팬층과 달리 대전, 충청권 팬층의 응원문화는 정숙함과 무심한듯 챙겨보는 스타일이 대세여서 관심도가 적었다. 그러다 홍창화 응원단장과 함께 2010년대를 맞이해 각종 병맛 응원가(...)와 함께 열정적인 응원문화로 발달하며 비로소 주목받게 된 것이다. 아무튼 로컬 야구구단 사랑은 부산아재/마산아재, 옛날 도원아재보다 덜 유명해서 그렇지 그 열정은 이들 못지 않다.
충청 지역의 중심지답게 여러 종목의 프로구단이 소재하고 있으며 한때는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적도 있었지만, 문화의 불모지인 대전 특유의 한계 탓에 장기적으로 이쪽의 반응도 썩 좋지는 않다. 다만 딱 하나 예외가 있는데, KBO 리그 소속이자 1986년부터 대전광역시를 연고로 출범한 '''한화 이글스'''[75] 는 대전을 넘어 충청권을 상징하는 프로스포츠 팀으로 등극했을 정도로 열광하고 응원하는 시민들이 많다. 대전 시티즌은 2003년, 2004년 동안 잠깐이나마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지만 이후에는 침체되었다가 해체되어 2020년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재창단되었고, V-리그 최강팀인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남자 배구단과 삼성화재와 짝을 이루는 여자배구단인 대전 KGC인삼공사가 있지만 이쪽도 성적과는 별개로 관객 흥행은 그저 그렇다. 프로농구 팀은 KBL 출범 후 대전 현대 다이넷/걸리버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한때 팬 싸인회에 타임월드가 마비될 정도였으나 ,이후 모 기업인 현대전자가 부도나고 팬들의 관심이 식게 되자 KCC가 인수하고 연고지도 전주시로 옮겨 이제는 아무도 농구를 보지 않는다. 굳이 농구 경기를 보려면 대전권에 속하는 청주시로 가서, 청주 KB 스타즈 경기를 보면 되긴 하지만...
- 야구
- 한화 이글스 - 명실상부 대전 최고 인기 스포츠팀이자, 문화 불모지 대전의 문화적 희망. 그렇기 때문에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는 꽤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며, 대전 시민들은 한화 야구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러나 2008년 이래 성적이 죽을 쑤고 있다. 특히 2013년부터는 그야말로 역대 최악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친히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를 찾아 줌으로써 부처님 팬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76] 2016년에는 더욱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제는 감독과 노장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그러나 2018년에 마침내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하여 11년만에 대전 시민들의 울분을 해소시켰다. 정말 오래간만에 포스트시즌 경기라 그런지 야구장 앞에는 텐트부대가 출몰 하고,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3, 4차전 경기일엔 서울행 버스, 기차에는 대전과 각 지역에서 응원하러 가는 한화팬들로 가득 찼었다. 그리고 팀 팬층 특성상 수도권과 서울에 거주하는 팬들도 매우 많아 주말 홈경기가 열리면 대전역과 고속도로 휴게소에 한화 유니폼을 입은 팬들히 상당히 보인다. 반대로 주말 수도권 경기가 열리고 나면 밤중에 한화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상당 수 돌아오는 광경을 목격할수 있다. 2020년에 18연패[77] 를 당한 뒤 최다 연패 불명예를 쓸 뻔 했지만,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2연승을 해 연패 사슬을 끊음으로서 다행히 최다 연패 신기록인 19연패는 면했다.
- 축구
- 대전 하나 시티즌 - 재창단 이전의 시민구단 축구팀 대전 시티즌은 2000년대 초반 정도를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대대광강으로 알려진 하위권 도/시민구단의 일원이었고, 시민구단이라는 한계상 정치적 외압에 시달리며 늘 하위권에만 머물렀다. 2014년 기적의 K리그1로 승격되는 기적을 얻기도 했지만, 2015년 K리그2 출신 승격 팀이 그랬듯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고전하다 결국 다시 K리그2로 강등됐다. 더욱이 2017년에는 아예 K리그2에서도 최하위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감독 운도 영 따라주지 않아서... 게다가 대전 시티즌의 암흑기를 사실상 시작하게 만든 김호가 대표이사에 앉아 막장 행정을 선보이며 대전은 존폐 위기에 까지 몰렸다. 결국 2019년 팀이 해체되면서 하나은행 측에서 구단을 인수하여 2020년부터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재탄생되었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보기 참 어려운 도시다. 2001년 개장 기념으로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 2002년 월드컵 16강전인 이탈리아와의 경기 후로는 국대 경기가 아예 없었다가 2015년 3월 27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 경기가 열린 것이 고작이다. 다른 지자체들이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유치하고자 함에도 대전은 손놓고 있다. 근방인 천안에서도 최근 경기를 유치한 바 있지만 대전에서의 국가대표팀 경기는 언제 볼 수 있을지 요원하다.
-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에 참여하는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대전코레일로 불렸었으며, 대한민국 FA컵에서 준우승까지 한 잠재력 있는 팀이다.
- 대한민국 5부 축구리그인 K5리그 대전/충남/세종 리그에 참가하는 대전 위너스타 FC의 소재지가 대덕구에 있다.
- 배구
- 남자배구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과거 한국 프로 배구를 호령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으나, 2014년 이후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몰빵배구의 폐해가 드러나며 몰락했다가, 2017-18 시즌에서 신진식 감독 부임 후 다시 전략을 변경함으로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어 그나마 대전 연고 프로팀 중에서는 형편이 괜찮은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매우 아쉬운 현실이다.
- 여자배구 - 대전 KGC인삼공사는 과거에는 잘나갔지만 2010년 중반 이후부터는 막장화 되었으며, 이성희 감독이 부임한 이후로부터는 몰빵배구의 폐해가 드러나며 한국 프로배구 역사상 유래 없는 최악의 부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서남원 감독 부임 이후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점차 나아지고 있는 중이며 2016~2017시즌에 봄배구도 한 적이 있다.
그 외 K3리그 소속의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이 위치해 있다. WK리그 소속의 대전 스포츠토토 여자 축구단은 2014년 옮겨왔으나 2016년 다시 구미시로 옮겼고 2020년 세종시로 옮겼다.
[image]
바둑의 경우 KT&G의 정관장황진단이 2017년 한국바둑리그에서 우승한 바 있다. 정관장황진단 팀은 신진서-이창호-김명훈-한승주-박진솔 5명으로 구성. 2006년 당시 신성건설의 연고지가 바로 대전이다. 2007년에는 서울로 이전했다.
프로야구팀이 존재하는 도시지만 고교야구팀은 한대화, 구대성, 정민철 등을 배출한 대전고등학교가 유일하였으나, 2016년에 대전제일고등학교가 야구부 창단을 하게 됨으로서 2개의 팀이 되었다. 이후 대전고등학교가 2016년부터 국제고등학교로 변경되면서 다른 고등학교로 야구부가 이관될 것으로 보였지만 동문들의 반발과 오랜 진통 끝에 국제고 전환이 무산되면서 명맥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4.3. 덕질
만화책/라이트노벨/서브컬처서적의 경우, 계룡문고와 영풍문고의 만화책 코너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앞서 자주 언급된 홍명서적과 오직 용문역 인근의 PSB(박서방)뿐이다. 박서방은 대전에서 1995년에 시작해 현재까지도 20년이 넘도록 운영중인 역사가 오래된 매장이며 만화와 라이트노벨 외에도 플라모델과 피규어, 에어소프트건도 취급하는 복합 덕질 매장이다.[79] 그 외 건담 프라모델, 피규어 판매로 전국구로 이름이 있는 언플러그몰 매장이 지하상가 은행동 지하상가에 위치해있다가 지상으로 확장 이전하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서적의 다양함은 홍명서적이 좀 더 나은 편이다. 일례로 홍명서적은 한국과 일본 만화 외에도 미국 그래픽노블을 비롯한 서양권 만화와 덕질 관련 일반 서적(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기반 소설, 도해 시리즈 등)이 각각 별개의 진열대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의외로 밀덕 책들도 잔뜩 들여 놓는다.
박서방의 경우 다양성 보다는 일본 라이트노벨과 만화책등의 초점을 맞춘 편이며, 중고 만화책을 매입해 재판매 한다는 특징이 있었지만, 현재는 중고 매입을 중단한 상황이다.
박서방은 프라모델과 일본 서적및 중고 서점을 중심으로 2층 전체를 사용하던 큰 매장이었지만 2010년경 2층의 절반을 신한은행에 떼어주고 규모를 줄였으나, 2013년 즈음 옆 건물로 이전하면서 그 이외에 다양한 물품을 추가로 취급하면서 다시 규모가 늘었다.
일반적으로 서적을 사러 간다면 홍문서적을, 그 외에 굿즈 관련 해서는 박서방을 가는것이 좋은 편이다.
여담이지만 박서방은 대전바닥 동인녀들에게는 천국이다. BL(!!)류 소설,만화책이 일부 공간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 또한 굿즈들의 경우 Fate시리즈나 원피스,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품목이 제법 많은 편이여서 남성뿐이 아니라 여성들도 종종 볼수있다.
이외에도 대전역-대전천 지하상가에 해외 원서를 취급하는 해풍사(海風社)라는 수입서점이 아직까지 잘 운영중이다. 세일러문 등 고전 작품의 포스터나 고전 일본서적 및 잡지 등을 여전히 보유하면서 찔끔찔끔 판매하고 있다. 손님도 몇 없어 보이는 곳인데, 어떻게 굴러가는 곳인지 참 의아한 곳이다.
범위를 넓혀서 서브컬처 전반 매장들의 경우, 상술했듯 용문동에 박서방이 서적뿐 아니라 각종 오덕 굿즈를 취급한다.
2018년경에 으능정거리에 종합서브컬처 제이굿즈의 대전점이 생겼다.
이 외에는 아동과 대중적인 굿즈를 취급하던 가챠삽이 나왔으나 반짝 하고가챠샵에 있던 일부 가챠폰과 프리파라는 인근 가오스 게임센터로 이전되었다.
메이드 카페가 있었다. 다만, 본격적인 메이드 카페가 아니라 일부 대학생들의 취미겸으로서 운영되던 카페였기에 불규칙적인 운영시간과 기타 요인으로 사라졌다.
또한 대전은 1년에 2번 대전 만화 페스티벌 일명 디쿠(DICU)가 열린다. 서울 코믹월드나 부산 코믹월드와 비슷한 대전 코믹월드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디쿠는 대전의 아마추어 만화 협회에서 대전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별도로 실시하는 만화 축제이다.
따라서 열리는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몇개의 후보군을 보유한 체로 섭외가 되는 장소에서 개최가 된다.
기본적으론 아마추어들의 굿즈 판매나, 코스튬을 보는것이 메인이며, 정해진 시간에 맞춰 사전 신청자들의 노래나 현장에서 사람을 뽑아 골든벨을 하는 일정이다.
대전의 낮은 문화 참여율에도 제법 사람들이 모이는 편이지만, 전문적인 단체에서 여는 행사가 아니기에 진행이 비교적 다양하지 못해 특색은 적은 편이다. 그나마 서울 코믹월드 등과 일정이 겹치면 정말 한산해진다. 대신 서코의 북적임을 꺼리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디쿠 쪽을 선호하기도 한다.
루리웹의 한 유저가 대전에서의 덕질 여행기를 올린 것이 있으니, 대전의 게임매장이나 어떤 서브컬처 전문점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대전] 노잼이라는 대전에서 덕질여행! 대전에서 덕질하는 방법!
4.4. 게임
콘솔게임 판매점의 경우, 구도심에서는 과거 홍명상가가 있던 시절 대전판 용산이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예전에는 게임샵이 꽤 많았었다. 그러나 홍명상가가 터지고 난 뒤 그 많던 게임샵들도 많이 사라졌다. 이때 홍명상가에서 역사가 깊고 오래된 점포 중 하나인 호키랜드가 대전역-대전천 지하상가로 이전한 후 이 일대 독보적인 콘솔매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외에는 NC백화점 주변에 플레이스테이션 공식대리점이 있다. 만년동에는 테크노월드의 전자상가에 콘솔게임을 취급하는 코어전자가 있다.
오락실의 경우, 구도심의 경우 예전에 한국 오락실이 그나마 흥성하던 시절, 은행동 번화가 역시 오락실이 꽤 많았었다. 1차 리듬게임 붐이 일은 1999년 경만 해도 많은 수의 오락실이 성업하고 있었다. 그러다 전반적인 오락실 업계의 침체로 오락실들이 많이 사라졌으나, 다행히 2000년대 말부터 오락실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말에는 가족형 오락실 대형체인이 생겨서 오락실의 숫자 자체는 1990년대 수준 비슷하게 회복한 것으로 여겨진다.
구도심 이외의 지역의 경우, 대전 둔산 타임월드 초창기(대략 1990년대 후반)부터 상층부에 대형게임센터가 있었는데 그 규모가 입주하고 있는 층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매우 컸었다. 당시 대전 최대 규모의 게임센터로 추정되었는데 2000년대 중반(추정)에 오락실이 철거되었다. 이후로 타임월드 번화가에 오락실은 존재감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렇게 소규모의 오락실 하나 있는 상태였다가, 2016년에 좀 규모 있는 오락실이 생긴 듯하다. 다른 둔산 지역에는 챔프 오락실이 있으며, 동네 오락실이지만 둔산 거주자들이 선호하고 있다.
유성구의 경우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큰 호텔에도 오락실이 딸려있었다. 그중 리베라호텔[80] 지하 오락실의 경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시 한국에서 드물던 핀볼기계(!)'''까지 가동했던듯하다. 유성호텔에도 오락실이 있었으나, 게임 라인업은 리베라호텔 오락실보단 상대적으로 떨어진 듯하다. 다만 호텔 오락실 자체는 유성쪽이 리베라보다 더 길게 영업한듯하다. 아무튼 1990년대 말 호텔 오락실들이 사라지면서 유성 일대의 청소년 오락실은 자취를 감춘 듯 하였으나, 2017년 가을 더벙커 게임존[81] 이 생기면서 대전 최대급 타이틀을 다시 가져간 듯하다. 아무튼 유성권에 새로 등장한 화려한 오락실이라 유성-충남대학교 대학가권, 넓게는 둔산권 거주자들에게 있어서는 단물이나 다름없는 곳.
각 오락실들의 정보는 오락실/대전 참조. 이외에도 VR방도 몇 군데 성업 중이다.
4.4.1. 출신 프로게이머
4.5. 유흥 및 음반
앞서 설명했듯이 문화 불모지 취급을 받고 대전 시민들조차 자조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정도로 공연 수익이 나지 않는 곳 답게 처절할 정도로 없다.(...) 게다가 2020년 기준으론 대전 음반 시장의 핵심인 신나라 레코드까지 망해버리며 완전히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수도권이나 부산권에 비교해 보아도 교보문고의 핫트랙스 만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열악하다라는 한마디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전도 음반점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고는 한다.
'''현대레코드''' (현재 폐업)
중구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에 위치해있던 음반점. 유명 체인은 아니었지만 규모가 꽤 큰 편이었던지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입 맥시 싱글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고 당시 플레이스테이션2 붐이 불었던 때라 플레이스테이션도 같이 판매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 재고정리를 하며 냄새를 풍기더니 결국 폐업. 현재 그 자리는 원더플레이스가 입점해있다.
'''튜브뮤직''' (현재 폐업)
중구 문화동에 위치한 백화점 세이에 입점해있던 음반점으로 처음 오픈시에는 대전 제일급의 규모를 자랑했다. 2001년 즈음까지 위세를 날리다가 점점 규모가 작아지고 cgv 옆 구석으로 쫓겨나기도 하고 그렇게 천덕꾸러기가 되더니 결국 폐점했다. 그래도 대전 내에서는 후에 언급할 신나라레코드와 함께 싸인회 등의 행사가 잦았던 매장이다.
'''뮤직타워''' (현재 폐업)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 타임월드 안에 자리하고 있던 음반점이다. 음반과 함께 악기까지 함께 판매하던 중간 규모의 매장이었으나 역시나 점점 규모가 줄어들더니 서점인 타임문고에 통합되었다. 그래도 타임월드 주차동 지하로 옮겨가 타임문고와 같이 입점했을때에는 퀸의 리마스터링 앨범들이 모두 들어올 정도로 구경할 규모는 되었으나, 결국 사라졌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교보문고가 분점 1호로 대전에 자리를 잡으면서 함께 들어왔었다. 꽤 괜찮은 규모였다는 말이 있으나, 본체인 교보문고의 실적이 곤두박질치며 어느샌가 사라졌고 본체인 교보문고가 2007년 천안으로 옮겨가 버렸다. 그러다 2016년 7월 드디어 다시 교보문고가 컴백하며 둔산의 핫트랙스를 기대하였으나, 최신 신보들과 디비디, 블루레이 몇 타이틀을 입구 근처에 배치해놓은게 전부다. 이에 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
'''신나라 레코드 대전점''' (현재 폐업)
중구 은행동에 위치. 대전에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던 유명 체인 음반점이자 '''대전 음반 유통의 코어.''' 사이비종교 사업체라는건 알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그냥 어쩔 수 없으니... 시설은 좀 낙후되어보이고 규모도 생각보다 큰 편은 아니라지만 대전에서 유일하게 유명 아이돌들의 싸인회 등을 독점하다시피 개최하고 있었고[84] 가장 많이 음반이 들어오는 곳이여서 대전의 음반시장 중추이자 지역 아이돌 팬들의 성지 취급을 받았었으며, 그렇다 보니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소량 한정판 등의 음반들이 출시되면 대전 음반점 중에는 유일하게 입고가 된다고 봤었다.[85]
2층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1층은 가요 및 OST, DVD와 블루레이, 음향기기등을 판매하고 2층은 재즈 및 팝, 락 등을 구비해놓고 있었으며, 2층은 직원이 없어서 올라갈때 1층 직원이 따라 올라가곤 했는데, 요즘 수익이 시원찮은건지 아니면 컴플레인을 견디지 못했는지 폐쇄됐다.
이후 교보문고가 대전에 돌아오면서 둔산 핫트랙스 VS 은행동 신나라의 쌍벽이 이루어지나 했으나 교보문고의 음반 보유량이 원 시원찮으니까 신나라의 독주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였는데.... 2020년에 '''소리 소문 없이 폐점 해버렸다.''' 아마도 요즘 세대가 음반 대신 MP3 다운로드를 즐겨찾고 있어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더 다양한 장르의 음반에 책같은 다른 컨텐츠까지 풍부한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기며 경쟁력이 팍 죽어버린 와중에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재정난까지 겹치다 보니 더 이상 버티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86]
'''알라딘 중고서점 대전은행/대전시청역점'''
최근에 신품 음반 코너를 배치해놓았다. 작지만 요즘 잘나가는 팝스타들 신보나 락밴드의 대표작 등 있을만한 건 있다. 구매하면 포스터 등 사은품을 제공하는 앨범도 있다.
중앙시장 중앙메가프라자 부근에 중고 LP매장이 있으며 7~80년대 발매된 음반들을 찾아 구매할 수 있고 장르에 따라 주인 할아버지에게 음반을 추천받고 잠깐씩 들어볼 수도 있다. 눈,비가 오는 날엔 습기 문제로 열지 않는다.
4.6. 쇼핑
대전은 특이하게 홈플러스가 우후죽순 몰려있다.[87][88] 7개 지점으로 상당히 많다. 까르푸가 대전에 3개 매장을 지어놓았는데, 이후 홈에버, 나중에는 홈플러스가 인수하면서 기존 자사 2개 지점에다 홈에버를 통합해 5개가 되었는데 홈플러스가 이후에 가오점과 서대전점을 신설하면서 7개가 되었다. 허나 유성점, 문화점, 둔산점 등 일부 지점만 제외하면 그렇게 인기 있는 편은 아니다.[89] 이 외에도 롯데마트 3개점, 이마트 3개점(이마트 트레이더스 1개점 포함), 코스트코 1개점이 있다. GS마트 대동점도 대동역 3번 출구 앞에 있었으나 2010년 6월에 롯데마트에 흡수되어 롯데마트 동대전점으로 변경되었지만, 2018년 6월 30일을 끝으로 폐점하면서 롯데마트는 유성구 외에는 단 한 곳도 남지 않게 되었다.
다만 홈플러스의 경우 탄방점과 둔산점이 폐점할 예정이다. 시설 노후화와 같은 둔산권 내의 이마트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로 추정된다. [90]
특이한 것은 대전은 마트끼리 거의 밀집해있는다는 점이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월평점과 이마트 둔산점이 동쪽으로 1.4km, 서쪽 갑천건너서 800m에는 홈플러스 유성점이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월평점에서 바로 보인다. 이마트 둔산점에서 동쪽으로 직선거리로 900m밖에 안떨어진 곳에 홈플러스 둔산점이 있고, 거기서 남쪽으로 직선거리로 1km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 탄방점이 있다. 이마트 둔산점 중심으로 원형으로 약 2.5km 이내에서 대형마트가 무려 5개나 있다.[91] 또한 홈플러스 문화점과 코스트코 대전점은 900m 거리에 있고, 이마트 대전복합터미널점과 홈플러스 동대전점이 300m 거리에 있다. 원래에는 홈플러스 동대전점이 혼자 대전 동구 북부와 대덕구 남부 수요를 차지하고있어 홈플러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입을 거두고 있었으나 이마트가 300m 거리에 생겨 지대한 타격을 입고 이마트는 마트 안에 있는 신세계마켓과 함께 성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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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없어진 마트도 있는데 대전천변에 동방마트가 그것이다. 본래 1974년 중앙데파트라는 이름으로 대전천을 복개하여 세워진 복합상가건물로 1970년대 대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본래 동양백화점과 같은 동양어패럴 소유였기 때문에 1996년에는 리모델링을 거쳐 동양패션몰이란 이름으로 운영했으나 IMF로 동양백화점이 망하자 1999년에 동방그룹으로 넘겼으며 다시한번 리모델링을 거쳐서 마트가 되었던 것. 그러나 대전천-목척교 복원사업으로 폭파 철거되어 지금은 그 자리 근처에 있는 동방마차라는 이름의 선술집만이 그 흔적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는데 최근에는 그 건물도 없애버렸다. 하여튼 이 많은 마트로 대전에 있는 재래시장이 지대한 타격을 받아 대전시청에 항의한 결과 대전에서는 지금 대형마트 설립이 사실상 막혀있다.[92][93]
이외에도 대전천변에 또다른 마트는 하술할 중앙시장 인근에 있는 태전마트가 있다. 중앙시장의 시장가와 낙후된 주변건물중 그나마 좀 규모가 있어보이는 건물이다. 지금은 철거된 동방마트나 홍명상가보다는 늦었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모습을 유지하고있는 마트인데, 다만 '태전'이라는 이름이 상술하듯 증산도 쪽에서 대전의 원래 이름이라고 박박 우겼던 고유명사라는 점이 걸리는데, 마트 설립 내지는 운영측이 증산도와 관계있는지는 불명.
백화점은 주로 둔산동과 중앙로에 몰려있고 이외로 도시규모에 비해 전국구 백화점이 적은편[94] 이다. 전국구 백화점으로는 롯데백화점, NC백화점[95] , 세이브존 각각 1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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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아 타임월드는 대전의 새로운 중심가인 둔산에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전국 매출액 순위 13위로[96] 충청권에서는 비교 가능한 백화점이 없고[97] 서울권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를 자랑한다. 롯데백화점 본점 정도가 비슷한 규모다.[98] 대전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덩치가 주변의 고층빌딩을 압도할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 건물이 3동이나 되고 입점한 주요 브랜드는 3대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루이비통을 비롯하여 구찌, 프라다, 버버리, 페라가모, 발렌시아가, 몽블랑, 롤렉스 등 고급 브랜드들이 입점해 충청도에서 가장 비싼 백화점이기도 하다. 대전 내 백화점에서는 유일하게 자체적 주차빌딩도 있다. 도심인 둔산신도시로 오는 버스들도 대부분이 정차한다. 덕분에 주변의 상권은 으능정이와 중앙로를 바르고 남을 정도의 땅값을 창조해냈다.
갤러리아 다음의 백화점으로는 롯데백화점 대전점이 있다. 대전의 세 백화점 중 가장 마지막에 생겼다. 오픈당시 갤러리아 타임월드점이 아직 동양백화점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국구백화점 최초였으며, 사람들 기대도 컸었다. 본관만 따지면 규모도 갤러리아 타임월드와 엇비슷하고 처음엔 나름 명품브랜드도 들여오고 고급이미지를 만들어 나갔으나, 입지가 타임월드보다 좋지 못해서..둔산권 부유층 고객들을 타임월드에 빼앗겨 버리며 명품관도 많이 빈약해지고[99] 규모로는 2위를 유지하고있다. 나름 지하철도 코앞에 생기고[100] 입지도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매출액 1위를 차지하기는 힘들어보인다.
여담으로 대전 백화점 3대장인 둔산동 갤러리아, 문화동 세이, 괴정동 롯대백화점은 모두 구 대덕군 유천면 지역에 위치하며, 계룡로에서 멀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전에 한번 이슈가 있었는데. 이 점포가 롯데꺼가 아니라 임차해서 쓰는 거라서 30년계약이 끝나면 없어진다는 둥. 터미날에 새로 지을거라는 둥.. 한동안 롯데월드 만들면서 새로 지을거란 소리도 떠돌았다. 뭐 어떻게 될진 가봐야 알겠지만.
그 다음 백화점은 중구 문화동에 있는 세이백화점이다. 1996년에 영업을 시작해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2001년도에 세이 투라는 이름으로 별관을 세워 확장했으며, 6~8층에는 지방에 1830석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영관에다 나중에 4DX관과 아이맥스관(둘다 2010년에 탄생)까지 생긴 CGV가 있다. 상기한 두 백화점에 규모와 매출액 모두 밀린 세번째이다. [101][102]
1980년대부터 대전의 부도심으로 부상해온 서대전네거리 일대에 입지해 기본 수요가 보장된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백화점의 주요 매출원인 VIP, VVIP등 부유층 고객들을 대부분 갤러리아 타임월드나 롯데백화점에 빼앗겼기 때문에 세이 백화점은 타 백화점과는 달리 젊은 느낌에 고급 이미지가 덜한 백화점으로, 개점 초기에는 갤러리아 타임월드와 롯데가 없었고, 대전시내 통틀어 가장 큰 백화점이었던지라 꽤나 고급백화점에 속했다. 현재에도 아울렛으로 변모한 상당수 지역 백화점들과 달리 크리스챤 디올, 샤넬, 설화수 등등 고급 화장품 브랜드 등 기본적인 메이저 백화점 브랜드는 있으나 명품관은 거의 없는 수준이고[103] 갤러리아 타임월드에 없는 중저가 브랜드가 좀 더 많으며, 점차 컨셉트 자체를 전통적인 백화점에서 다목적 엔터테인먼트 공간+지역 밀착형 백화점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신도심 최초 백화점인 한신코아 백화점이 삼천동[104] 에 있었으나 IMF때 망하고 세이브존이 인수해 운영중이다. 또한 옛날 1990년대 말 지도에는 지금의 교직원공제회관과 메가박스 자리에 뉴코아 백화점이 표기되어 있었는데 망하고 지금은 로데오타운이 입점하고 있다. 또 동구 대전천변에 대전백화점도 있었으나 망하고 대진마트와 시장으로 쓰고 있다.
아울렛으로는 대전복합터미널 서관 2층의 신세계 스타일마켓과 은행동의 밀라노21이 있다. 밀라노21은 몇해 전 전면 리모델링을 위해 문을 잠시 닫았다가 LG패션계열 멀티샵 입점과 함께 재개관했었는데 그것마저 망한 뒤 2013년에 아예 대전 최대규모의 유니클로 매장을 오픈하면서 재개장했다.
또한 미국식 아울렛인 모다 아울렛 대전점[105] 이 외곽인 대정동에(홈플러스 서대전점 옆) 있다. 또 동방마트 옆에 있던 홍명상가도 전자제품 가게(컴퓨터나 콘솔게임 매장들도 포함된)로 유명했으며, 그외에 성인나이트와 학원들도 입주해있다. 이 건물은 1970년대 만들어저 옥상에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롤러스케이트장이 유명하였지만 대전천 복원사업으로 폭파되었다. 이후 2010년대 후반 대전천변의 한 상가건물이 리모델링후 홍명상가 이름을 이어받았지만, 예전 홍명상가의 위엄이 무색하게 평범한(?) 상가건물이다. 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파는 식당과 휴대폰 대리점이 입주해있는듯하다.
예전에는 서울에 비하여 뚜렷하게 유행이 뒤쳐졌고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수입품 같은 경우에는 전 대전을 다 뒤져야 구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았고 같은 브랜드여도 서울과 대전 지점에서 진열해 놓은 상품이 달랐을 정도. 일단 고급 브랜드들 자체가 대전 백화점들에 많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전하고 교통이 점점 좋아지면서 유행 격차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고, 명품 열풍이 대전에도 불어닥치며 2008년경 둔산 타임월드 백화점 1층이 전면 리모델링에 도입, 명품 브랜드들이 우후죽순처럼 입점하기 시작한다. 현재는 격차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교통의 발전은 대전의 쇼핑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KTX로 서울까지 1시간만에 주파가 가능해지자 원정 쇼핑을 가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은 전통 5일장인 유성장이 있으며 나머지는 일제강점기나 광복후에 세워진 시장이다 대표적으로 중앙시장이 있다. 대전역 100m 거리에 있으며 주변의 옥천, 금산, 청원, 보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자체적으로 빌딩주차장이 있어 주차하기가 편하다. 또한 역전시장은 중앙시장에서 길 건너면 있고 , 도마시장은 역사가 짧지만 논산 등지에서 온사람들로 넘처난다. 인동시장은 만세운동이 펼처진 유서깊은 시장으로 지금은 쌀만 거래하는 시장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 외에도 6~70년대에 조성된 유천시장, 중리시장, 한민시장 등이 있다.
이외 오정동과 노은동에 대형창고형태로 농수산물도매센터가 있다. 규모가 엄청나다. 그러나 서울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도 못된다. 특히 이 도매센터들은 농수산물을 한 곳에서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밀히 따지면 규모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니다.
은행동 지하상가에서는 의류 보세 가게가 상당히 많다.지금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한때는 전국 최대규모 지하상가 소리를 들었으니 말 다 했다. 그 외에 자라[106] , 유니클로 등 SPA매장도 갖추고 2018년 5월 31일 H&M도 둔산동에 입점했다.
2017년 11월 기준, 현대 많은 쇼핑센터들이 들어올 예정에 있다. 우선 엑스포 활성화 사업을 통해 대전 엑스포공원을 롯데가 인수할려 했으나 롯데의 크나큰 사건들로 신세계로 넘어가게 되었다.
대전광역시가 발표한 것에 따르면 '신세계 사이언스콤플렉스'로 상업시설과 과학의 도시답게 상가와 과학시설이 결합되었고 2018년 6월에 착공하였다. 완공은 2021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가는 소상공인 보호를 이유로 고급, 차별된 상가들이 들어올 예정이며 상가대비 과학시설의 비율을 약 40%후반대로 잡고 있다.
기존의 형태는 타워의 형태로 지을려 했으나 최근 새롭게 구상된 건설도에 따르면 피라미드 형태로 건물을 3개의 축으로 나눠공간을 분산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디자인은 2017년 12월에 발표되었다. 조감도
용산동에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 있다.
그 이외에도 유성구 봉명동에 지어지고 있는 지하 6층 ~ 지상 10층 규모의 프리미엄 패션아울렛 골든하이[107] , 무산될 뻔 했지만 대전시에서 다시 추진중인 유성복합환승센터가 예정중에 있다.
최근에 지어진 유성구 봉명동의 매드블럭도 꽤 큰 규모의 복합상가이며 명품관, 이자카야, 락볼링장등 많은 시설들이 모여있으며, 특히 중부권 2위의 영풍문고가 매드블럭에 위치해 있다.[108]
비록 대전은 아니지만 대전광역시의 바로 옆에있는 충청남도 계룡시에 IKEA가 들어올 예정이다.
4.7. 영화관과 공연장
영화관의 경우 (거의 모든 대도시들이 그러하듯) 멀티플렉스 위주이다.
- CGV 6개관
- CGV 대전 - 중구 문화동 세이백화점 세이 투 관에 위치, CGV 첫 충청지역 지점이자 직영점이다. 대전 내 영화관 중에서 가장 크다.[109] 연식이 롯데시네마 괴정점 다음으로 오래되었지만, 2회의 리뉴얼을 통해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
- 대전터미널 - 동구 용전동 대전복합터미널 동관에 위치 CGV 대전지역 두번째 직영점.
- 대전가오 - 동구 가오동 소재. 구 롯데시네마 대전가오, 희한하게도 홈플러스 가오점에 입주해 있다.
- 유성노은 - 유성구 노은동 소재. 과거 씨네위가 자체 브랜드로 운영하다 CGV 브랜드로 변경한 위탁관.
- 대전탄방 - 서구 탄방동 세이백화점에 위치, 20m 옆 로데오타운에 메가박스가 있음.
- 대전가수원 - 서구 가수원동 가수원네거리 인근 KD U 프라자에 입주해 있다.
- 메가박스 4개관
- 대전 - 서구 탄방동 로데오타운에 위치, 씨너스 대전 이였으며 구 씨너스 직영점 중 하나였다. 여담으로 대전 소재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영화관람권은 이 곳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메가박스가 하는 각종 라이브뷰잉은 이 지점이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20m 옆에 CGV 대전탄방점이 있다.
- 대전중앙로 - 2019년 4월 17일부터 번화가인 중앙로(중구 은행동)에 메가박스가 신규 지점을 오픈하였다. 도시철도 중앙로역 4번 출구가 가장 가깝다.
- 대전유성 - 유성구 온천동 소재. 유성온천역 1번 출구 쪽 센트럴프라자로, 구 CGV 유성온천점을 2020년 3월에 인수해 바꿨다.
- 대전현대아울렛 - 유성구 용산동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내 7개관이 들어설 예정으로, 충청권 최초 MX관(4관) 입점점이다. 6월 26일 오픈 했다.
CGV세가 타도시보다 매우 강한데, 메가박스가 2010년대 들어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다. 대전에도 1990년대까지 10여개 이상 단관극장들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망하기 시작하더니 대전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롯데시네마가 2000년에 롯데백화점에 생기고 결정타로 2001년 비교가 안되게 엄청나게큰 CGV 대전이 생기고 나서 멀티플랙스로 리뉴얼한 MCV 아카데미빼고 옛날부터 명맥을 이어온 단관극장들은 모조리 멸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았던 대전의 향토 대형영화관이자 대전역-은행동 권역의 유일한 멀티플렉스였던 MCV아카데미마저도 입지상의 한계및 시설 낙후, 줄어든 관객을 버티지 못하고 2016년 7월 31일부로 폐업을 하고야 말았다.
예술영화전문극장인 대전아트시네마등이 있으며 공연장의 경우 대규모 공연장인 대전예술의전당, 충남대학교 정심화국제문화회관, 우송대학교 우송예술회관 등이 있으며[113] , 소극장들은 대부분 중구 대흥동에 몰려 있는 편. 소극장 중에서는 대흥동 주교좌성당 인근 가톨릭문화회관 아트홀이 가장 유명하며, 이 외에도 여러 소극장들이 몰려있다.
대덕구에는 대형마트는 물론 영화관도 없다.
음악 공연장의 경우 문화의 불모지 축에 드는 곳 답게 2010년대 이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클럽이 대세인 유흥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성인)나이트클럽/캬바레가 다수를 차지하고 EDM클럽은 별로 없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클럽 하면 이비자 정도를 들수있다. 클럽에 대한 설명은 대전/클럽 참조.
1970년대 당시 백두산의 유철상이 회고하길 '유성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이 의외로 인기였다고 한다. 대마초 파동때 유일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연장이었다는 후문. 다만 소규모 공연장은 빈약하기 그지 없어서 1990년대 후반에야 생겼을 정도고, 2000년대에는 헤비/하드록 중심으로 융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탈대전 성향이 강해서 진정한 의미의 대전 씬은 아예 '''없었다'''고 주장하는 현지 뮤지션도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는 그나마 그린빈버찌라이브하우스 같은 곳이 생기는등 좀 나아진 편. 출처
4.8. 도서관
공공도서관은 21곳이 있다(한밭도서관 홈페이지의 정보검색-자료검색 코너 참조). 동대전 쪽에 밀도가 좀 높긴 하지만 그럭저럭 대전 전역에 고르게 설치되어 있다. 네이버 지도검색 참조. 근데 여기는 공공도서관이라 치니 17곳이라 나온다? 대표적인 곳은 한밭도서관, 가양도서관(구 문화정보관), 갈마도서관 등이 있다.
특히 한밭도서관은 시립 공공도서관 답지 않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무려 '''장서수가 85만권'''으로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큰 정독도서관과 남산도서관 보다 크며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보다 더 크다. 나머지 공공 시립도서관은 대체적인 규모는 그럭저럭한 규모이며 각 구에서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의 수준은 원래 규모가 다소 작다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열악한 곳이 많다. 특히 근처에 대학도서관을 갖춘 4년제 대학이 있는 경우에는 이게 심한지라 대학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이러한 도서관 환경 덕분에 대전은 도서관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 도시 중 하나다.
게다가 문화 관련 교육기관도 엄청 협소하다. 생활체육이나 음악 관련은 소수나마 있지만...그 외에는...답이 없다.
4.9. 서점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전국구 대형 서점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이 있다.
2007년까지는 중구청역과 연결된 교보문고 빌딩 지하에 교보문고 대전점이 있었고, 당시 잘나가던 문경서적을 몰락시켰다. 그러다가 보유서적을 계룡문고에 넘겨주고[114] 천안의 대학생 수요가 '''넘쳐 흐르는''' 천안종합버스터미널로 갔다. 이후 대전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교보문고 지점이 충남대학교 제1학생회관 2층 구내서점이었지만, 2015년 10월 23일자로 계약 종료되어 폐점되었다. 이로서 2015년 10월 이후 대전에는 교보문고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6년 7월 8일 둔산동 타임월드 근처에 교보문고가 다시 들어왔다. 한 층 전체를 사용하는 규모이며, 이전 교보빌딩 지하에 있었던 교보문고보다 매장 규모는 작지만 더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115] 다만 갑자기 천안으로 옮긴 사례 때문에 영풍문고나 계룡문고에 엄청나게 밀려 예전같이 않게 부진한 상황이지만.
지역구 최대 규모이지만 매번 콩라인인 대훈서적은 2009년 말에 부도로 문을 닫았다. 원래는 규모면에서 문경서적보다 못했고, 대전지역 1위 규모였던 문경서적이 2003년 망하면서 한동안 교보문고가 대전 1위를 먹은적이 있었다. 대훈서적이 부도났던 이유가 시청점을 열면서 무리하게 차입경영을 했던 것도 있지만 회장님이 북한서적 덕후여서 그런 것도 있었다. 실제로 북한 책 전문 코너가 있었고,[116] 이 서점에서 북한판 황진이 소설(홍명희의 손자 홍석중 저)을 출간한 적이 있었다. 대훈서적이 있던 곳은 타임문고는 교보문고에게 밀려 2018년 12월 31자로 폐점되어 분점인 시청점으로 통합되었고 같은 계열의 세이북스는 홈플러스 둔산점에 이어 세종점, 인천에 송도점을 오픈하며 세력을 확장하였다.
지금은 교보문고의 서적을 인계한 삼성생명빌딩 지하의 계룡문고가 유명하며 2011년 12월 말 대전복합터미널에 영풍문고가 들어와서 전국구 서점이 다시 생겼다. 그리고 2017년 7월 유성구 봉명동에 매드블럭이 생기면서 영풍문고가 하나 더 생겼다.[117]
사실 이는 대전 시민이 책을 잘 읽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대전은 인구당 서적 구매 비율이 서울 다음으로 높은 도시다.# 당시 상황이 대훈서적에 매우 불리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교보문고, 문경서적, 계룡문고가 1위 쟁탈전에 나섰기 때문에 열세인 대훈서적에게는 안습할 시기였다.
대전지역 한때의 1위 서점이었던 삼성생명빌딩 지하의 문경서적과 이를 빼앗은 교보문고, 지하의 교과서 전문코너와 대량의 학습지 코너로 탄탄한 고정수요를 갖고 있던 계룡문고가 서로 1위자리를 가져가면서 여기에 있던 서적들은 인수인계를 거치며 수난을 많이 겪었다.
참고로 당시 대훈서적 가운데에 한 개의 계단이 있었는데,그 계단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대훈서적 교과서 전문 코너였고 위로 올라가면 홍명서적 본점이었다.정확히는 2층으로 올라가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한쪽은 홍명서적, 한쪽은 박서방 옛 본점(!)이 있었다. 지하 교과서 코너에는 교과서 외에 상당수의 성경과 찬송가책도 배치했었다. 만일 대훈서적이 문경서적이 파산한 이후 대훈서적이 문경서적 자리와 입지를 동시에 차지하려다 돈문제로 허덕이다 파산할 즈음에 진출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일단 2008년에 계룡문고가 구 문경서적 자리를 차지하고 옛 문경서적의 입지에 오른 상태이며, 대훈서적은 망하고 그 자리에 베스트프랜드북이라는 서점이 들어와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2012년 2월부로 폐점하고 자리를 은행동 KFC 건물 2층으로 옮겨 은행문고로 상호명을 바꾸며 재개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폐점하고 그 자리에 만화카페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만화카페에 가보면 은행문고는 폐점하였으니 착오없길 바란다는 문구가 있다.
일단 홍명서적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지하의 교과서 코너 으로 통하는 부분이 폐쇄되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대전에서 유명한 불교상인 보문불교상이 바로 옆의 헌책방과 자리를 바꾸는 동시에 확장 공사를 하면서 보문불교상 측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창고로 쓰고 있다. 베스트프랜드북 위층을 쓰고 있었던 홍명서적은 옆 건물의 금은방인 보성당 2층으로 이사하였다.
2011년 말 대전 동구의 복합터미널 완공과 더불어 이마트와 같이 영풍문고가 들어왔으며, 한 때 영풍문고가 들어오면 대전의 서점계에 후삼국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였으나 대훈서적이 망하면서 무산되었다. 영풍문고 바로 옆이 대전복합터미널이고 계룡문고는 중앙로역에서 200여m거리에 있다.
철수했던 교보문고가 2016년 7월 8일에 다시 오픈하였다. 갤러리아 타임월드 건너편 명동프라자 3층에 약 560평 규모로 계룡문고와 영풍문고에 맞먹는 규모로 생긴다. 게다가 핫트랙스도 함께 입점.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의 알라딘 중고서점도 두 곳 있는데, 중앙로역 인근의 대전은행점과 시청역 부근의 대전시청역점이다.
2021년 8월 개점하는 신세계백화점 대전 엑스포점 관내 대형서점 입점이 확정되었다. 상세 브랜드는 불명.
참고로 대덕구에만 네임드 서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118]
[1] 이는 비단 대전만의 문제가 아닌데, 원래 충청도 자체가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 남한 내에서 모든 도와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유일한 도로, 모든 도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대전 다음으로 충청도에서 큰 도시겸, 충청북도 내의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있는 청주의 경우에는 대전보다 더 노잼이라고 한다. [2] 서울 사람들이 보는 지도 참고.[3] 하지만 성심당이 아무리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성심당을 모르는 사람도 은근 많고, 성심당의 이름만 알지 이것이 대전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4] 충청 방언이 표준어의 바탕이 되는 경기 방언 (+ 영서 방언, 황해 방언)과 같은 '''중부 방언'''으로 묶이는 것만 봐도 이들 사이의 유사성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5] 충청도 특유의 억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말 중간에 들어가는 약간의 바이브레이션이나, 비음, 그리고 말끝을 늘이는 정도가 있다.[6] 원래 충청도 억양은 서울경기 지역과 전라도 지역의 중간 성격을 띄고 있었지만, 50~60년대 사이에는 많은 충청도민이 서울로 상경했으며, 이후 60~90년대 경에는 전라도민이 서울로 대거 이주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서울 억양과 충청도 억양, 전라도 억양이 섞이다보니 차츰 충청도 억양과 비슷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서울 사람들의 억양과 말투가 충청북도와 유사하다는 언어학자의 개인 소견도 있다.[7] 현재 대전에서 서울은 KTX로 1시간이면 간다.[8] 이와 같은 이유로 대전 이외의 충청도 지역에서도 젊은이들의 사투리 사용률은 낮으며, 수도권 바로 밑에 위치한 천안과 아산의 경우에는 대전보다도 더 심각한 사투리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9] 정확히 말하면 30%가 채 못되는 수치이다. 다른 지방 광역시만 봐도 대구 55%, 광주 50%, 울산 40%, 외지인이 많다는 부산조차 35% 이상이다. 자세한 건 토박이 문서 참조.[10] 게다가 애초부터 대전 일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지 않았다. 1904년에 경부선 철도 노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도시화가 시작되었으며 이쯤부터 인근 지역민과 일본인의 유입이 시작된 것인데, 1910년 당시 인구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대전에 거주 중이던 4,250명 중 '''58%'''가 일본인이었다고 하니 실질적으로 원래부터 대전에서 거주하던 인구는 약 1,700~1,800명 정도였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이것도 나머지 42%를 나타낸 수치일 뿐이지 유입된 인근 지역민까지 제외한다면 이 수치는 더 적어질 것이다.[11] 수도권의 경우는 전라도 출신이라 하면 대체로 광주-전남 출신의 비율이 높은데 비해 대전은 지리적 여건상 전라도 출신 중 광주-전남 출신은 강원도 출신보다도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적고 전북, 그중에서도 전익군 및 완주군, 무주군, 진안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 대전은 충청권 시군구 중에선 경상도 출신의 거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한데, 부산 출신 거주자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며, 그 외에 대구, 경남 창원시, 김해시, 진주시, 거창군, 함양군, 경북 김천시, 구미시, 상주시, 문경시, 경산시, 칠곡군 출신도 많이 거주한다. 다만 울산 출신은 매우 적다.[12] 대전 본토박이나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쓰는 어휘를 들어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충청 방언보다 더 독특한 형태의 방언을 구사한다.[13] 이 영상에선 '기야'가 대전 사투리이고, '기여(겨)'가 서해안 쪽 사투리라고 나와있는데, 사실 '기야'는 '기여(겨)'의 최신식(?) 표현이다. 아마 '~거여(겨)'를 표준어 '~거야'로 바꿔쓰기 시작했던 거랑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전 지역 토박이 어르신들은 현재까지도 '기여(겨)'라고 한다. 물론 충청도 내에선 당시의 대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사용되던 표현이긴 하지만 광주에서도 사용하긴 했다고..[14] 물론 현재 30~50대들이 젊은 시절에 사용했던 사투리이지 현재는 거의 죽은 표현이다. 오히려 "기여(겨)"를 더 썼으면 썼지 "기야"보다 덜 쓰진 않는다.[15] 중장년층 토박이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16] 충청도 지역 젊은이들 중 현재까지도 이 어휘를 쓰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은 표준어 높임체인 '''"~요"'''로 바꿔쓰기 때문. 아마 몇 십 년 후에는 일상어로서는 아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17] 억양 자체도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에 비해 부드러워서 남부 지방에 가서 표준어를 구사하면 서울 사람인 줄 안다. [18] 간혹 매체에서는 지역색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구수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라도의 경우에는 억양이 충청도보다 셀 뿐이지 사투리 사용률은 충청도와 거의 비슷하며, 사투리 하면 떠오르는 도시인 부산의 거주민들조차 영화에서 나오는 부산 사투리가 오글거린다고 할만큼 현대의 언어 사용보다 더 과장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9] 특히 "~겨"의 경우에는 그 사용 범위가 너무 넓다보니 대부분 자각하지 못 하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겨"가 사투리라고 하면 대부분 "겨가 왜 사투리야..?"라는 반응이다.[20] 노년층 토박이 사이에선 높은 사용률을 보이며, 젊은층 사이에선 간혹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21] 동의 및 긍정의 표현으로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은 주로 "겨(기여)"를, 그 이하 세대부터는 "겨(기여)" 이외에도 "기야", "그래", "맞아", "맞어" 등으로 말한다. "그여?"나 "그야?"라고 쓰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려"와 "기여(겨)"가 혼합된 형태로 보인다.[22] 사실 이 "기"라는 표현법은 의외로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를 "내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나, "그치?"를 "기지?" 등으로 말이다. 여담으로 충청도 내에서 대전 다음 가는 대도시인 청주 사람들이 대전에 왔을 때 놀라는 것 중 하나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기"라는 어휘는 주로 충남 내륙 지역, 그중에서도 남부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기 때문에 충남 서북부나 충북 지역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23] 타지 출신의 경우에는 "기여"의 준말인 "겨"와 "~거여"의 준말인 "~겨"를 구분하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는데 그렇기에 대답할 때 "아 겨?" 이러면 겨가 거기서 왜 나오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24] "쩜매", "짬매" 두 가지로 발음되며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투리 중 하나이다. Ex) "머리 좀 확 짬매(쩜매)", "봉지 좀 쩜매(짬매)놔"[25] 경상도에선 "짜매다", 전라도에선 "싸매다"로 쓰인다고 한다.[26] Ex) '아파' -> '아퍼', '맞아' -> '맞어' 등[27] Ex) '남기다' -> '냄기다', '먹이다' -> '맥이다', '덤비다' -> '댐비다' 등[28] Ex) '성질' -> '승질', '거지' -> '그지', '먹어야지' -> '먹으야지', '막아야지' -> '막으야지' 등[29] 사실 충청 방언에서는 경기 방언의 축약형이 자주 발견되기도 한다. 예) "드러누워" -> "둔눠", "일어나" -> "인나" 등.[30] 물론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는 사투리라 사용자의 수는 극히 드물 것으로 추정된다.[31] 발음할 때는 "쫄때기쌀"이 되는데, 대부분이 이 사투리를 말로 직접 발음하기 때문에 글로 적혀있는 것을 보면 뭔가 싶을 수 있지만 본인이 직접 발음해보면 감이 올 것이다. "쫄때기"라고도 불리는데, 경상도 사투리 "쫄때기"와는 다르다.[32] 최근엔 요식 업체에서도 쓰이는 단어가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대전 및 충남 일부 지역 이외의 지역에선 생소한 단어라고 한다.[33] 젊은층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 발음이지만 50대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러한 발음을 현재까지도 사용하는 이들을 의외로 많이 찾아볼 수 있다.[34] 특히나 젊은 세대의 경우엔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35]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로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고 대전이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어 현재에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광역시가 되었고, 이에 반비레해 공주는 충청권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잃고 중소도시로 쇠퇴하면서 공주 주민들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에 대한 피해의식과 반감이 상당했다. 옛 대전사범학교가 교육대학으로 개편되면서 공주로 이전한 것이나 충남권에 있던 공립 전문대학들이 충남대학교 대신 공주대학교로 통합된 이유가 이러한 공주 사람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던 것. 공주 토박이 어르신들의 경우엔 지금도 "그 촌구석 한밭이 그렇게 발전될 줄 누가 알았겠냐"와 "재수없는 한밭 촌놈들" 등으로 말씀하시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36] 대전은 원래 공주군의 일부 지역과 회덕군, 진잠군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경부선 철도 노선이 깔리기 시작한 1904년부터 도시화가 시작되며 일본인과 인근 지역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원래부터 대전에서 살았던 인구는 대략적으로 1000~2000명 사이일 것이다. 오늘날의 대전의 모습도 이때부터 갖춰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광역시/역사 참고.[37] 이러한 이유로 본토박이들 중에선 예전부터 존재했던 대전 지역 사투리를 구사하는 경우도 꽤나 많이 있다.[38]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밀집해서 살던 지역에는 이와 같은 일본어 어원으로 추정되는 말이 남아있는 사례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서울에서 편가르기 놀이를 할때 쓰는 '데덴찌'라는 말도 그러한 표현. 자세한 사항은 편가르기 참조.[39] 예를 들어 서울에서 쓰이는 일본어 어원의 편가르기 용어인 '데덴찌'의 경우 '데덴찌'(수도권), '덴찜뽕'(진주), '덴디'(경남 해안), '덴지씨'(대구) 등의 변형이 전국 각지에 분포한다.[40] 일제 강점기 국내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대부분 도쿄나 오사카 출신이었던 반면 대전에는 나고야 등 다른 지역 출신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그 지역의 방언이 대전에 전파되면서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자적인 표현이 정착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편가르기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대전 이외에도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편가르기 용어를 사용하는 지역들은 많다(일본어, 고유어 모두).[41] 세종특별자치시의 건설과 함께 다수의 대전 주민들이 세종으로 이주하면서 2010년대 들어서는 세종에도 '우에시다리'가 전파되어 사용하는 사례가 발견되는 중.[42] 이전 판에서는 가톨릭도 대등한 수준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대전은 교구청 소재지라서 약간 그렇게 보일 뿐이지 전국적인 신자 비율을 비교해 보면 가톨릭의 교세가 약한 편에 속한다. 현재 대흥동성당에 지정되어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주교좌성당 지위가 추후 세종특별자치시 신설 성당으로 이전할 예정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43] 대전은 일제강점기 말기까지만 해도 관내 개신교 교회가 5곳(감리회 2곳-대전제일교회·유성교회, 성결교회 1곳-대전중앙교회, 구세군 1곳-대전중앙영문, 장로회 1곳-대전제일교회)에 불과한 개신교 약세 지역이었으나 해방 이후 이북 출신 개신교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들 교회에서 여러 교회가 분립되었으며, 6.25 전쟁을 전후해 한국에서 최초로 개신교 사회복지 단체(기독교연합봉사회)와 지역 개신교 연합기구(대전시 기독교연합회)가 창설되었고, 1990년대 말 국내 성시화 운동 발생 태동기에 지역 성시화 운동 조직이 발족, 참여하는 등 해방 이후부터 개신교가 급속히 세력을 키워 오면서 현재까지 개신교 우위 지역으로 분류될 정도로 개신교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오죽하면 아직까지 대전에 불교방송이 개국하지 못하는 이유가 개신교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 대전의 지역 개신교 연합기구에 대해서는 후술할 내용을 참조.[44] 반면 구도심인 중구와 동구, 대덕구는 불교세가 상대적으로 더 강한 편이긴 한데, 이 지역에서도 개신교의 영향력이 약한 편은 아니다.[45] 막말 파동으로 시끄러웠던 그 목사 맞다(...)[46] 무작정 없는 편이라는 말은 살짝 어폐가 있는 것이,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 한밭제일교회 이영환 원로목사,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 대전복음교회 창시자 김신옥 원로목사 등이 전국구는 아니더라도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대외활동 또한 활발한 등 지역에서 나름 저명성을 확보하고 있는 목사들이다.[47] 사실 이는 버스회사 혹은 도시철도공사 잘못이 아닌 '유니비젼'이라는 광고 담당하는 회사 측에서 돈 받고 광고 해주는거라 따질 생각이면 여기에다가 따져야한다. 네이버에서검색해보면 회사 홈페이지도 검색되고 전화번호도 있다. 다만 돈 받고 광고해주는 부분이 불법도 아니라 항의하더라도 소용은 없을 듯.[48] 합동, 고신, 통합 등 대한예수교장로회 분파에 편중되어 있다. 단 백석은 교세가 매우 약하다.[49]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비중이 타 교단에 비해 강세를 보인다.[50] 경우에 따라서 여기에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구세군 대한본영, 그리스도의 교회 유악기파 총회측, 대한예수교복음교회를 추가하여 대전의 10대 교단으로 일컫기도 한다. 예장백석 교회가 대전에서 교세가 강한 이유는 1960년대 예장 은혜측 총회와 총본산인 중도성서신학교(현 대전백석신학교 전신)가 대전(가양동 현 가양제일교회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51] 국내에서 대전과 같이 개신교 여러 교단이 대등한 교세를 유지하는 곳은 서울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나마 서울도 침례회의 교세는 인구수 대비 약한 편. 참고로 개교회 수는 감리회가 341개로 가장 많으나 교인 수는 예장합동, 예장통합, 감리회가 각각 약 7만명 수준으로 거의 대등하며, 침례회가 약 4만 8천명, 성결교회가 약 2만 5천명, 순복음교회가 약 2만명 수준이다.[52] 다만 대한예수교복음교회의 경우 교단 자체와 창시자가 대전에 연고를 두고 있고, 총회와 교단 신학교도 대전에 있어서인지 전국적으로는 군소 교단에 불과함에도 관내 54개 교회로 대전에서는 꽤 흔한 편이다.[53] 물론 절대적인 개교회 수나 신자 수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인구 대비 개교회 수나 신자 수의 비율로 계산하면 공주시, 울릉군, 울진군 등 대전보다 침례회의 교세가 더욱 강한 지역도 여러 곳 존재한다. 더욱이 이들 지역은 구한말 대한기독교회 시대부터 침례회가 전파되어 선교한 지역으로 6.25 이후 침례회가 전파된 대전보다 역사적으로나 정통성으로나 훨씬 우위에 있다.[54] 그러나 대전 지역의 침례회는 개교회 수가 300개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교인 수는 5만 명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에 불과한데, 대흥침례교회, 중문교회, 디딤돌교회(구 둔산중앙교회) 등의 대형교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교회들이 교인수 200명 미만으로 영세하고 교단 특성상 다른 교단에 비해 정체성, 결속력이 약하며 교회의 신규 개척과 소멸(합병, 폐쇄 등)이 잦은데다 대전의 지역적 특성상 외지인(특히 호남권 출신)의 비율이 높아 사도신경 및 유아세례 불인정, 침수세례, 회중제 교회정치, 극단적인 탈(脫)전례 성향 등 침례회 특유의 관습을 생소하게 여기거나 거부감을 갖는 개신교 신자들도 적지 않다 보니 침례회의 성장에 한계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55]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전에서 교세가 강한 장로회 교단은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백석 등이며 예장고신, 예장대신, 예장합동개혁(대전측, 홍도동 유향교회)이 그 다음.[56] 실제로 교단별 개교회 수를 살펴보면 각각 260여 개인 장로회 통합, 합동 교단에 비해 감리회는 개교회 수만 340여 개로 언뜻 보면 감리회가 가장 교세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교인수 통계를 살펴보면 장로회 통합 교단과 합동 교단, 감리회가 각각 7만 명 정도로 거의 대등한 수준의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57] 예를 들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 홈페이지에서 교회 주소록을 검색해보면 선교 초기 감리회 선교 구역이었던 인천과 대전의 교회 수가 270여개로 거의 동등하게 나온다. 인천의 거주 인구수가 대전보다 2배 이상임을 감안하면 통합 교단만 놓고 보더라도 대전의 장로회 교세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58] 대전 최초의 대형교회인 대전중앙교회(현재 예장합동 소속)는 1947년 대전제일교회에 출석하던 이북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59] 1950년대 한국 장로회의 분열로 현재 기독교연합봉사회에는 예장통합, 기장, 기감, 구세군 등 4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60] 일부 자료에 대전시기독교연합회 창단 교단에 성결교회나 구세군 대신 침례회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상기한 대로 미국 남침례회 선교사가 대전에 처음 자리를 잡고 교회를 세운 것은 한국 전쟁 이후인 1953년이고, 신학교가 세워진 것은 그 이듬해로 대전시기독교연합회가 조직될 당시 침례회는 아직 대전에 전래되기도 전이었다. 대기연 홈페이지에서도 대기연은 장로회, 감리회, 성결교회, 구세군 등 4개 교단이 연합하여 창단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참고로 침례회가 대기연에 가입한 것은 포항파(구 동아기독교 계열)와 대전파(미 남침례회 계열)가 합동한 후 한참이 지난 1980년대 초반이다.[61] 한국에서는 장로회 신앙을 표방하였으나 실제 쿠드 선교사는 미국 오순절교회 소속으로 장로회 신학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극동사도선교회 재단이 현재는 미국 본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오순절교회나 장로회가 아닌 침례회 소속의 대형교회인 대흥침례교회의 사실상 산하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아이러니.[62] 특히 동구와 대덕구 등 구도심 지역에서 백석 교단의 교세가 강하다.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백석교단 교회로 구 은혜교단의 총본산이었던 가양제일교회를 비롯하여 한밭제일교회, 송촌장로교회, 중도교회, 지구촌사랑교회 등이 있다.[63] 아이러니한것은 전국에 세개 밖에없는 대한성공회 교구중 하나가 대전에 있다(성공회 대전교구). 다만 이 경우는 성공회가 강세인 충청권 북부 지역의 경우 지역을 대표할 만한 도시를 딱히 꼽을만 하지 않고(그나마 대표성이 있는 충주의 경우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강하고 대한성공회는 약세이다.) 전라도 지역의 경우 대전보다도 성공회 교세가 더 약하기에 호남권에 성공회 주교좌성당을 세우기에는 적합치 않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공회 대전교구의 관할구역은 대전, 충남북 뿐 아니라 광주, 전남북, 강원도 남부 지역까지 매우 넓다.[64] 그나마 예장고신은 특정 지방에 교회가 몰려있는 지역편중 현상이 심한 교단들 중에서는 이를 탈피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교단에 속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의 천안 이전, 고신 선교센터의 대전 설립, 고신총회의 서울 이전 등이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65] 기독교와 반공을 외치는 사람들이나, 항문성교는 에이즈를 발병시킨다며 기독교 믿으라는 사람들이 2010년 전후하여 복합터미널 근처 등 사람이 많은 지역에 종종 나타나긴 한다. 타 지역에서 원정온 거지만.[66] 특이하게 교회를 매입하여 사찰로 쓰고 있다. 본래 이 건물은 1975년 준공된 인근 동대전성결교회의 옛 예배당으로, 1986년 바로 옆에 새 예배당을 지은 이후 교회 부설 예식장으로 활용되던 건물이었다.[67] 광수사, 삼문사. 삼문사는 유치원도 운영하고 있다.[68] 성심당(빵집)과 이웃해 있다.[69] 괴정동은 증산도의 총본산이며, 중리동은 상생방송의 사옥이 있다.[70] 이는 당해 벌어진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71] 당시에는 충청남도 대전시였다. 다만 직할시 승격이 예정된 상태였고, 대덕군 유성읍과 회덕면은 이미 1983년에 대전시로 편입되었다.[72]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경향이 정석이었으며, 심지어 대전 출신인 신승훈도 대전 콘서트를 안 하던 시절이었다. [73] 앞서 설명한 것처럼 충청도의 색채나 기질로 확대해석하기엔 조금 어렵다.[74]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성향 때문에 대전은 조용한 관람 매너가 요구되는 공연(클래식, 오페라, 뮤지컬 등)의 관람 매너가 상당히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75] 전신은 빙그레 이글스이며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됨에 따라 1993년 시즌 종료 후 한화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른다.[76] 사실 이건 관람객 세대 교체가 된 2000년대 후반 이후 기준이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 성질하는 대전 홈구장 훌리건 아재들이 경기장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었었다. 다른건 몰라도 야구에는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지역 문화 부실이 낳은 비극.[77] 1985년의 삼미 슈퍼스타즈와 최다 연패 공동 1위 기록이기도 하다.[78] 2018-19시즌 V리그 올스타전이 충무체육관에서 열렸다.[79] 참고로 안양시의 안양 1번가 부근에도 박서방 지점이 하나 있다.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의외로 오래토록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외 제주시에도 지점이 있다.[80] 전신은 만년장으로 만년장이 망해서 같은 자리에 우성그룹 계열의 강남 리베라의 분점격으로 개설된곳이었다. 우성그룹의 부도로 한번 망했다가 신안이 인수한뒤 리모델링을 거쳐서 예토전생했지만, 2017년 12월 31일 부로 완전 폐업, 지금은 철거 후 주상복합단지가 건축될 예정이라는듯.[81] PC방, 코인노래방, 싱글로케이션 게임 공간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어 규모로 따지면 대전 최대급이다.[82] 전 Afreeca Freecs 현 Team Vitality 정글러[83] 현 서울 다이너스티 힐러[84] 타 지방에서 팬들이 몰려올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따지고 보면 독점은 아니고 영풍문고 대전점에서 개최하는 경우도 있긴 있지만 신나라의 빈도수에 비하면 비교도 안 돼서 결국 신나라를 대전 아이돌 팬들의 성지로 끌어올렸다.[85] 서태지 15주년 앨범 박스세트 역시 대전에서 유일하게 100장 정도가 입고가 됐었다. 그렇게 입고된 수량도 전국 각지에서의 전화주문+대전 서태지 매니아들의 구매러쉬로 일순간에 증발.(...)[86] 애초에 2층 규모였던걸 1층으로 줄인게 이상했었다.[87] 하지만 대전 현지인에게 홈플러스의 인식은 영 좋지 않으며, 대부분 이마트를 선호한다. 문제는 이마트가 대전에서 동구 용전동, 서구 둔산동의 2곳에만 있는데(트레이더스를 제외한다면), 둔산점이야 대전 중심부에 있다 해도, 복합터미널 건물의 3층을 쓰는 용전동 쪽 지점은 동쪽 끝에 있다는 것.[88] 반대로 같은 충청권 도시인 천안은 홈플러스가 약하고 이마트가 강하다.[89] 특히 탄방점의 인식이 매우 좋지 않다. 시설도 오래된데다 쇼핑 동선도 매우 불편하기 때문. 세제나 기초화장품 코너가 식료품 코너와 같이 있는 타 매장과 달리 층별 면적이 작아 식료품을 쇼핑하고 나서는 무조건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오히려 마트 자체 면적이 작아도 알차게 활용하는 가오점의 인식이 더 좋다.[90] 정작 세 단지 입주민 모두 이마트 둔산점을 더 선호한다. 이들 단지로부터 이마트가 홈플러스 탄방점/둔산점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말이다!!![91]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둔산신도시는 1기 신도시와 함께 개발된 신도시로 원래 이곳은 허허벌판이었다. 전통시장은 무조건 차로 20분 거리의 구도심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대형마트의 입점에 아무런 제약도 없었고, 둔산신도시 거주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다수의 대형마트 입점은 필수적이었다.[92] 이 정책이 먹혀서 대전에는 신규 대형마트 출점이 안될뿐더러 기존의 대형마트도 같은 구를 벗어나는 이전을 할 수 없도록 되었다. 중구 오류동에 위치한 코스트코가 이 문제로 한번 폐점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파리만 날리는' 홈플러스도 지점 통폐합을 안하는 이유가, 한번 폐점하면 향후 장사가 잘 되더라도 신규출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93] 비슷한 이유로 이케아도 대전이 아닌 인근 계룡시에 출점 예정이다.[94] 전국 3대 전국구 백화점중 신세계, 현대만 없다. 신세계는 엑스포 재창조사업 부지에 신세계사이언스컴플렉스사업의 일환으로 2018년 6월 착공이 확정되어있으며, 현대는 테크노밸리에 땅(용산동 608, 용산동 579)을 사놓고 아울렛 매장형태로 들어오는 것이 확정되었으며 대전의 토종백화점 세이백화점이 유성구 관평동 1343필지를 매입하고 세이백화점 북대전점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현대라는 범전국적 기업이 들어온다면 게임이 안될 게 뻔하기에 사업유보 후 메종드세이라는 오피스텔 사업을 시행중이다.[95] 옛날에 1979년에 생긴 동양백화점이라는 역사 깊은 지역 백화점이였으나 동양백화점이 타임월드 짓다가 망하고 갤러리아에 타임월드와 함께 인수되고 이후 2013년 갤러리아 동백점 폐점이후 이랜드에서 인수함.[96] 출처[97] 롯데백화점 대전점이 면적이나 주차대수 등은 엇비슷하지만 명품관 규모와 매출액에서 밀린다. 2019년 매출액 기준으로 갤러리아타임월드 반토막도 안된다. 최근에는 청주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충청점과 천안에 있는 갤러리아백화점 센터시티점이 충청권에서는 갤러리아타임월드 뒤를 쫓고 있으나 매출은 타임월드의 약 절반 정도에 머물고 있다.[98] 물론 수도권 플래그쉽 매장보다는 약간 부족한 규모. 롯데 본점 1개건물(애비뉴얼 등 제외)과 비슷한 규모라고 하면 될듯. 참고로 매출액 순위는 2019년 기준으로 13위로 롯데 명동(서울) 본점의 1/3보다 약간 더 많은 수준이며 수도권 백화점과 비교하면 현대백화점 목동점과 비슷한 수준이다.[99] 그나마 있던 버버리마저 철수한 상태이고 현재는 롯데쇼핑의 자체 명품 편집샵인 롯데TOPS와 페레가모, 코치 등 몇몇 브랜드들만 소수로 남은 상태이다.[100] 용문역이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생겼지만, 앞마당에 생긴건 아니라서 연결통로를 만들진 않았다.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 나름 검토했다고 하지만 수도권에 비해 지하철 버프가 덜 한 지방에서 어마무시한 돈을 써가면서 통로를 길게 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101] pdf의 내용을 보면 갤러리아, 롯데, 세이의 시장 비율이 53:30:17정도로 나온다. 다만 매장면적과 주차장 규모는 세이가 압도적으로 많다.[102] 그리고 세이백화점은 다른 두 백화점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롯데와 갤러리아가 명품 지향적이라면, 세이는 좀 더 대중 지향이고 멀티 편의시설에 가까운 백화점이다. 그래서인지 롯데와 갤러리아보다 구비한 시설도 많다. 우선 영화관부터 대전 최대규모 10개관 1830석에, 푸드코트도 풍부하고, 서점, 팬시점, 오락실, 만화방, 키즈카페까지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참고로, 둔산동 타임월드에는 서점, 팬시점, 영화관이 있었다가 폐점했고, 괴정동 롯데백화점에는 영화관이 있긴 하지만 세이백화점 CGV에 비하면 시설도 매점도 영 부실하다.[103] 대신에 명품 편집샵 자체는 위치하고 있다.[104] 현 둔산3동.[105] 구. 자루아울렛 대전점[106] 은행동 자라는 폐점, 둔산동 갤러리아에도 자라가 있으나, 확장공사로 인해 19년 5월에 재개장 예정이다.[107] 2021년 4월 개점이라고 한다.[108] 종전 문서에는 중부권 최대라고 적었지만, 사실 복합터미널 영풍문고가 조금 더 크다.[109] 본래 10개 상영관 2000석 가량이었으나, 2번의 리뉴얼을 통해 9개 상영관에 1830석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충청권 최대 영화관이며, 매점이 층별로 2개나 있는 유일한 매장이다. 롯데시네마 괴정점이나 월평점도 1600석대에 불과하다.[110] 이름은 둔산이지만 사실은 월평동이다. 다만 도로 하나 차이기도 하고, 월평동이 둔산신도시 권역에 속하긴 한다.[111] 공교롭게도 모두 서구에 위치하고 있다.[112] 메가박스 코엑스 MX관과 스크린 면적이 비슷하다 .[113] CMB 엑스포아트홀은 사이언스콤플렉스 공사가 시작되면서 철거되었다.[114] 이러한 사정으로 지금은 중구청역은 일평균 승하차합계가 5,000명을 넘지 못하는, 대전지하철 22개 역 중에서 이용객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115] 중소 서점과의 상생을 목적으로 초중고 학습참고서는 전혀 없다. 다른 대형서점에서 참고서 매장이 꽤 크다는 것을 보면 참고서를 제외한 일반 서적 서가만으로 비교해보면 작은 편이 아니다.[116] 북한에서 펴낸 단군릉 홍보 서적도 있었다. 가격이 눈 튀어나오게 비쌌던 건 함정(...)[117] 참고로 계룡문고가 삼성생명 빌딩에 자리 옮긴 것은 교보문고가 천안으로 떠난 2007년때 일이었다.[118] 서구는 둔산동 교보문고, 알라딘과 세이북스, 동구는 용전동 복합터미널 영풍문고, 중구는 은행동 계룡문고, 알라딘과 문화동 세이북스, 유성구는 봉명동 매드타운에 영풍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