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2]
- 제42대 미합중국 대통령 빌 클린턴
1. 개요
共同警備區域 / 板門店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軍事停戰委員會板門店共同警備區域)''', 영어로는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Joint Security Area - Pan Mun Jŏm'이다. 이를 통상적으로는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라고 짧게 지칭하며, 대중적으로는 더 짧게 '''판문점'''이라고 부른다.
비무장지대의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구역으로,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3] 와 북한의 황해북도 개성특별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접경 동서 800m, 남북 600m에 걸쳐 장방형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휴전 당시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및 북한군이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하여 1953년 10월 합의,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 군사분계선(MDL)상에 설정한 것이다.
2. 상세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북한 측의 '판문각', 유엔 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 남북 공동 성명 등으로 판문점은 당시 5천만 한민족의 가슴을 한때 뜨겁게 한 바가 있고, 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가 결렬된 지 7년 만인 1980년 8월부터는 남북총리회담의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8차까지 거듭한 끝에 북한 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공전(空轉, 없던 일로 됨)된 일도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2015년 8월 서부전선 포격 사건의 연장선으로 이루어진 남북고위급접촉으로 다시 한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로 한국전쟁 교전당사 사이에 맺어진 정전 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의와 협상의 장소로 이용되었지만, 1971년 9월 20일에 열리게 된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한을 왕래하는 통과 지점으로 활용되었다.
2016년 2월 11일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건으로 인해 북한 측에서 판문점 연락 통로의 폐쇄를 선언한 상태다.
2018년 1월 3일 다시 판문점 연락 통로가 개통되었다.
그리고 2018년 11월 내에 자유왕래가 허용될 계획이다.
南·北·유엔사, 3자 협의체서 'JSA 공동근무수칙 마련' 합의
비무장화된 JSA 남북 공동근무 초읽기 …이달 중 관광객 자유왕래
南 굴착기로, 北 폭파로 철거…JSA 자유 왕래 머지않았다
남북·유엔사, 민사경찰·가이드 인솔로 'JSA 왕래' 협의(종합)
3. 그 외
1972년까지의 행정구역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이다.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이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특별시 [4] 판문점리에 해당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쌍방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서울특별시에서 서북방으로 62㎞, 북한의 평양직할시에서 남쪽으로 215㎞, 개성으로부터는 동쪽 10㎞ 지점으로 동경 126° 40' 40″(126.6768°), 북위 37° 57' 20″(37.9560°)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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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당시 판문점. 국방색 군용 텐트가 쳐진 방향(+ 헬기가 주차되어 있는 방향)이 대한민국 문산 쪽 방향. 허허 벌판으로 하얀 건물이 있는 쪽이 전쟁 후 북한령이 되고 만 개성 쪽 방향이다. 판문점 남동쪽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실제 정전협정 조인이 이뤄진 판문점이며, 현재는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설명되는 곳이다. 이곳과 현재의 판문점은 다른 곳이다. 사진의 지역은 현재의 판문점으로부터 약 1km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구글 지도를 통해서 판문점을 검색해보면, 북서쪽에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표시되어있다.
6.25 전쟁 전만 해도 조선시대 의주로와 사천(砂川)내가 만나는 지점의 이름없는 한촌(寒村)으로 초가집 몇 채뿐이었지만 1951년 10월 25일 이곳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되면서 이곳 명칭은 유엔군과 인민군의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포로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곳이 휴전선보다 북측에 있는 것이 문제였고, 결국 1953년 10월 동쪽으로 약 1 km 이전하여 휴전선 위에 새로운 판문점을 설정하고, 중립국 감독 위원회 관할로 포로교환장소 건물을 짓게 되었으며, 이 건물들은 현재 판문점에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하늘색과 회색 건물의 원형이 되었다. 하늘색 건물은 유엔군 측, 회색 건물은 북한 및 중국군 측 포로 교환 장소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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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래의 옛 판문점은 "정전협정조인장"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견학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남한에서는 당연히 갈 방법이 없다. 판문점 견학 시에 다리 너머로 보이는 옛 판문점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북한 쪽을 통해서 판문점 견학시에는 반드시 거쳐가는 관광 코스이다. 평화 박물관이라고도 불리워지며 내부에 도끼만행사건 당시 사용되었던 도끼를 전시해놓았다. 그 외에 여러 사진 자료를 전시해놓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북쪽 판문점 견학은 불가능에 가깝다.(북한 측 초청에 의해서 대한민국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서 방문하는 경우는 예외, 물론 어렵다) 유튜브 등에 보면, 북한 측 판문점 관광객들이 올려놓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올린 사진들을 인터넷상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 명칭 그대로 유엔군과 북한군에 의해서 공동으로 경비가 되던 구역이었다. 그래서 북한군 초소가 현재 남측 경비구역에 설치가 되었으나, 반대로 유엔군 경비 초소는 북측 경비구역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서로 가끔 같이 사진을 찍거나 맞담배도 피우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https://youtu.be/Qv0c3A0l-V8
그러나 판문점 서쪽 사천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부근에 있던 미루나무에서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에 의해 발생한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미군 장교 아서 보니파스 소령과 마크 배럿 대위가 사망하면서, 사건 당일 북한군은 남쪽에서 도망치듯 모든 남쪽 초소에서 철수하였다. 이후에는 북측은 북한군이, 남측은 유엔군이 경비하는 지역으로 제한되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4. 주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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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에서 만든 간단한 안내도.
남북회담본부에서 만든 공동경비구역 안내도는 여기로.
이 항목은 남북회담본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 자체가 최신의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각 언론의 추가 자료가 나올 때마다 갱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평화의 집 항목의 경우, 남북회담본부 자료에 의하면 "1층에 기자실과 소회의실이 있다"고 되어 있으나, MBC보도에 의하면 "귀빈실과 기자실로 되어 있다"고 보도되었다.
4.1. 남한 지역
4.1.1. 자유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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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바라본 자유의 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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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바라본 자유의 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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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바라본 뒷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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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바라본 옛 자유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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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자유의집 뒷면 모습
북측의 판문각에 대응되는 건물이다. 첫 자유의 집 건물은 1965년 9월 30일에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두 동에 중간에 팔각정이 있는 형태로 준공됐다. 그러나 판문각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이고, 건평도 달랑 86평으로 대단히 협소해서 1996년 후반에 기존 건물을 싹 밀고 다시 지었고, 1998년 7월 9일에 재오픈했다.
새로 지은 자유의 집은 지상 4층에 지하 2층 규모로 판문각보다 크고 아름답다. 팔각정은 새로 지은 자유의 집 한켠으로 옮기는 형태로 보존되었다. 첫 번째 사진 좌측에 나온 정자가 바로 팔각정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판문점 세트는 새로 짓기 전의 자유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판문점의 옛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2019년 6월 30일 오후 3시 54분부터 53분간 이곳에서 남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착공 1996.12.13
준공 1998.7.9
건평 1,437평(지상 4층, 지하 2층)
위치 파주군 군내면 조산리
용도 공공업무시설 및 전시시설
준공 1998.7.9
건평 1,437평(지상 4층, 지하 2층)
위치 파주군 군내면 조산리
용도 공공업무시설 및 전시시설
각 층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1 층 : 로비/ 기자실/ 편의시설(식당 등)- 2 층 : VIP실/ 회의실/ 사무실
- 3 층 : 남북연락사무소, 대회의실
- 4 층 : 전망대 및 다용도 공간
4.1.2. 평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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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집에서 13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북회담용 석조건물이다. 1989년에 지어진 3층 구조의 건물로 1층에는 귀빈실/기자실, 2층에는 회의장, 3층에는 연회실이 있다. 특이 사항으로 각 귀빈실에는 전용 통신선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2015년 8월 22일 부터 24일까지 진행된 남북고위급접촉이 진행되었다. 또한 2018년 1월 9일날 2018년 남북고위급회담이 2년 만에 진행되었다. 2018년 4월 27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정상회담을 위해 내부수리를 했다고 한다.
링크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할 것.
일단 남북회담본부의 자료에 따른 각 층별 안내는 다음과 같다.
- 1층 : 기자실, 소회의실
- 2층 : 회담장, 남북회담대표대기실
- 3층 : 대회의실, 소회의실
4.1.3. 돌아오지 않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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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다리'''[5] 옛 이름은 널문다리이며 1번 국도의 명목상 구간이기도 하다.[6]
이곳의 거의 모든 장소에는 나름의 사연이 담겨있다. 동명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더욱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한국전쟁 포로교환이 이루어진 장소로,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에서는 이 다리 앞에 있는 초소에서 근무를 서다 월북하였으나... 판문점을 기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면 공동경비구역 밖이 되므로, 이 다리 건너편의 북한군 감시초소는 병력이 많고 중무장 되어 있다. 반면 그와 대치해야 하는 한국군 감시초소는 공동경비구역 내부에 있어 정전협정에 의거 중무장이 불가능한 관계로[7] 무인 감시장비만을 가동하고 병력은 배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판문점에 지뢰매설하였는데, 군인들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며, 판문점 인근에 지뢰를 매설한 것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4.1.4.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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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내부에서 촬영된 모습. 미군과 한국군 경비병 외에도 민간인 기자와 캐나다군 육군 (검은 베레모에 CADPAT 전투복)의 모습이 보인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인근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 (NNSC,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ttee) 캠프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이곳도 판문점 경비부대의 책임구역이다. NNSC는 정전협정 당시 정전협정 이행 여부를 관리 및 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스웨덴, 스위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의 4개국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스웨덴과 스위스는 유엔군 측에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 측에서 선택한 중립국가들이었다. 90년대 초 동구권 민주화 과정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쪼개졌고 중감위 업무는 체코가 승계받았다. 이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북한은 양국 중감위원단을 본국으로 추방했고(...) 현재는 스웨덴과 스위스만이 판문점에 상주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북한에서 자기들을 쫓아내자 학을 떼며 중감위에서 아예 사퇴했고, 폴란드는 일단 아쉬운 대로 본국에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큰 회의가 열릴 때만 남한의 협조를 얻어 잠깐잠깐씩 판문점에 들른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임무는 정전협정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 온 귀순 군인을 취조심문하는 것이 임무인데, 중립의 입장에서 귀순자가 자발적인 귀순을 했는지 묻고(영상촬영을 한다) 이것을 북측에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스웨덴과 스위스가 군사분계선 남쪽에 세운 캠프가 바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NNSC 캠프이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캠프는 군사분계선 북쪽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두 나라가 모두 민주화된 이후 중립성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식수 및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체코를 1993년에, 폴란드를 1995년에 축출했다. 이후 체코는 중감위 임무에서 완전히 빠졌고, 폴란드의 중립국 감독위원회 임무는 폴란드 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년 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남한 쪽 출입구를 통해 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
북한 측 NNSC 캠프 건물이 평화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되었다는 헛소문이 나돌지만 사실이 아니다. 문제의 박물관은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정전협정이 체결되었고, 판문점이 현 위치로 이전하기 전에 잠시 주재했던 구 판문점이다. 아무래도 북한군이 점거해서 자기네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와전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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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서 공동경비구역으로 지름길로 갈 수 있는 파란색 도보교가 있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다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단독회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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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자체가 군사분계선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현재 캠프에 남아있는 스위스군과 스웨덴군 그리고 가끔 폴란드 까지 참여한 회의를 하는데 회의가 끝나면 회의결과를 북한측 통보함에도 꽂아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 통보함에 넣은 회의결과를 단 한번도 갖고간적이 없다. 또한 아무래도 원래는 임시로 사용했던 건물들인 탓에 아무리 리모델링을 해도 상주인원들의 숙소가 노후화된편이라고 한다. 정기적으로 대포병 대피훈련도 한다.
4.1.5. 기타 건물
- 경비병 막사
- 공동당직장교 사무실
- H128 헬기장
- 4개의 초소
- 검문소
4.2. 군사분계선
군사분계선에 걸쳐 지어져 있는 건물들은 관할권이 수시로 바뀐다. 만약 남측 관광객들이 판문점에 와서 회담장에 들어갈 경우 이 건물은 일시적으로 남측의 관할이 된다. 이때 남측 경비병 중 1명이 건물의 북쪽 출입문을 잠그고, 그 문 앞에 서서 북한군의 돌발행위에 대비하여 경비를 서고, 또 1명은 회담장 한가운데 있는 회담테이블 끄트머리에 서서 경비를 서 게 된다. 반대로 북한 측의 관광객이 같은 건물에 들어오게 될 경우, 북한군은 남측 출입문 앞에 2명이 모두 배치된다. 현재 양측 국민들이 합법적으로 휴전선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관할권과 별개로, 관리 책임은 한쪽에 일임되어 있다고 한다. 파란색 건물은 남쪽에서 관리하고 회색 건물은 북쪽에서 관리한다.
4.2.1.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中立國監督委員會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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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모습.
가장 최근의 내부 모습.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서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비공개 회의로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 사진이 없다시피 하다. 다만 한국측에서 촬영한 중감위 관련 다큐에서 내부 모습이 잠깐씩 나온다. 구조적으로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 유사하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의 외적인 차이로는 건물 자체의 창문이 작게 나있는데, 군정위 회의와는 달리 위에서 말한 대로 비공개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회의실 본채 건물(파란색)이 서쪽의 회색 건물 3채와 연결 통로로 조립이 되어 하나의 세트를 형성하는 형태인데, 이 건물들의 용도와 내부 모습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관광객들도 본채 건물 입구 쪽만 사진을 찍고 이 회색 건물 부분의 남쪽 면은 잘 안 찍는지라 외부 모습도 사진이 거의 없었다가 2019년 9월 보수공사 때 유엔사 측의 홍보용 사진 촬영으로 기록사진이 조금 남게 되었다.#1#2
4.2.2.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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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에 서양관광객들이 방문한 모습.[8]
군정위 회의가 공개 회의이기 때문에 창문이 큼지막하게 나 있다. 파란색 건물이며 따라서 남쪽에 관리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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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오브라이언(우)과 스티븐 연(좌)이 코난의 내한 중일 때 찍힌 장면. 사진에서 두 사람은 북한 쪽 탁자에 앉아 있다.
가운데 있는 회담테이블의 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지나가고 있다. 즉, 한국 육군 경비병의 오른쪽 반신은 남한 땅에, 왼쪽 반신은 북한 땅에 걸쳐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에어컨이 앞뒤로 2대 설치되어 있고, 실외기도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있다. 때문에 북측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북한 육군 경계병들 옆에 삼성 로고 찍힌 실외기가 놓여 있는 묘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북측 실외기를 정비할 일이 생기면, 삼성전자 직원들이 예외적으로 북측과 협의해 방북을 몇 시간 허가받고 잽싸게 작업하고 돌아온다.
실외기를 포함하여 유엔사에서 관리하는 군사회담장 내[9] 시설 관리가 필요할 경우 유엔사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에 협조문을 보내 동의를 얻은 후 유엔사 소속 민간인 직원들이 해당 작업을 수행한다. 단 이 경우 경비병은 군사분계선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긴장되는 광경이 연출된다.[10]
4.2.3. 당직장교 회의실
군정위 회의실 동쪽에 위치한 파란색 건물이며 판문점에서 24시간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상주시키는 당직 장교들의 회의실. 역시 비공개 회의라 창문이 작게 나 있으며, 가끔 다큐에 내부 모습이 나오거나 간혹 가다 개최되는 공식 행사 등 때문에 내부가 공개되기는 하는 중감위 회의실과는 달리 이쪽은 내부 모습 사진이 아예 없다.
4.2.4. 북측 경비병 휴게실
당직장교 회의실 동쪽에 있는 회색 건물. 이름은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실제 용도와 내부 모습은 전혀 안 알려져 있다. 유엔군에서 부르는 별명은 The Monkey House.
이 건물 동쪽으로는 건물이 없고 콘크리트 경계석이 조금 더 연장되어 있다가 끝나고 거기서부터는 흰색 말뚝으로 분계선이 표시되는데, 이 콘크리트 경계석 부분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때 소를 실은 트럭들이 넘어간 통로였다. 정주영 회장 본인은 중감위 회의실을 통해 입북했다.
4.3. 북한 지역
4.3.1. 판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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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바라본 판문각
조선인민군 육군 경비병들은 보통 한국 육군 경비병들을 경계하며 서 있는 것이 원칙이나, 모종의 이유로 소집할 때에는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간다. 물론 저 건물 안에서 망원경으로 감시하는 것은 24시간이다. 현관 바로 왼쪽에 있는 창문 안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항시 감시인력이 대기하고, 주간에는 현관 바깥에도 병사가 위치하여 두 감시병 간 소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2008년에 주 북한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들은 군기 없이 그냥 막 돌아다닌다고 한다.
건물 자체의 용도는 북측 경비대 지휘소, 판문점대표부[11] , 적십자연락대표부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립은 69년 9월 9일에 120평 규모로 처음 지어졌으나 1994년 12월 1층과 2층을 260평, 3층을 130평으로 증축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다.
4.3.2. 통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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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건물. 1985년 8월에 김정일의 지시로 건설되었다. 우리 측의 평화의 집과 같은 남북회담용 건물이다.
이렇게만 보면 어디 섬마을 초등학교 건물마냥 작아 보이지만 규모도 상당하고 내부 시설도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고급이다.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 문서에 올라온 몇 없는 사진과 영상자료만 봐도 대충이나마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 대리석 장식이 호화스럽다.
2018년 5월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곳에서 극비리에 열렸다.
4.3.3. 돌아오지 않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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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바라본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후방 모습. 북쪽에서 판문점으로 진입하는 길은 중간에서 72시간 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 방향으로 나뉜다. 사진은 판문점으로 들어가는 '72시간 다리' 쪽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 쪽으로 향하는 길목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4.3.4. 72시간 다리
'72시간 다리'는 말 그대로 72시간 만에 건설된 다리다. 이 다리가 있기 전, 본래 북한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사천강을 건너 보급을 받고 있었다.[12] 그런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공동경비구역 남측의 북한군 출입이 통제되자 보급로가 막히게 되었고, 밥차가 다닐 수 있도록 공동경비구역 북쪽에 급하게 다리를 건설해서 72시간 만에 완성시킨 것.
그 밖에도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이 소몰이를 한 길이나 북한이 대한민국 수해 시 쌀을 지원해줬던 길 등이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큼직한 남북한 교류가 도라산 CIQ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이런 장소들은 말 그대로 역사속의 장소로 남은 상태다.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당시 귀순 북한 병사가 이 다리를 통해 판문점 지역에 접근하기도 했다.
4.3.5. 기타 건물
- 경비병막사
- 7개의 초소 - 이 중 6번, 7번 초소는 엄밀히 따지면 공동경비구역 밖에 있는 초소이다.
5. 관광
재미있는 사실은, 판문점은 원래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고 지금은 남북 간의 교류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장소인데, 정작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일반 민간인 관광객들이라는 점이다.[13] 남북 양측에서도 분단의 상징이라는 점을 내세워 통일/안보관광 자원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 판문점을 경비하는 부대입장에서도 관광객 보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군사정전위원회, 적십자 등의 정부관련 인원들이야 이곳을 드나드는 게 일상이다보니 알아서 처신을 잘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명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보통 판문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남측의 패키지를 기준으로, 인근의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까지 패키지로 둘러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런 분위기의 장소가 전 세계적으로 드물기는 하다. 번쩍번쩍하는 서울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판문점과 그 일대 비무장지대의 풍경과 분위기가 이곳을 굉장히 특색 있는 관광지로 만들어준 것이다. 냉전으로 분단된 마지막 지역이며, 현재 휴전 상태에 있는 특수한 지역이다 보니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인데, 실제로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 관광객들의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이다.
- 판문점을 관광하려면 우선 국가정보원에서 국민과 함께 - 견학신청을 하면 된다. (만 10세 이상의 일반국민,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단체만 해당)
- 2018년 11월부터 일반인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별다른 조건 없이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5.1. 대한민국에서
내국인의 경우 판문점 관광이 대단히 까다롭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개인 관광은 불가능'''하고, 사전 예약을 통해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단체 관광만 가능'''하다. 최소 30명이나 사람을 모아야 하기에 기회를 얻기 매우 어려운만큼, 만약 소속된 학교나 회사 등에서 판문점 견학을 간다고 하면 꼭 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신원조회에만 '''7주일''' 씩이나 걸리기에 관광신청은 2개월 이전에 해야 하고,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견학이 가능하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의 이곳에서 온라인 신청을 받는다. 2019년 동아시아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및 2020년 4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상황으로 인해 잠정 중단된 상태.
2019년 9월 현재, #단체 뿐 아니라 개인 관광도 가능하게끔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 관광신청도 국정원이 아닌 통일부로 일원화하고, 7주일 씩이나 걸리던 신원조회 기간도 1주일 정도로 대폭 완화시킬 듯 하다.
복장 제한이 조금 세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못 입고 오게 한다. 그런데 청바지 중에서는 좀 웃긴 것이, 특별히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오지 말라고 하는데 이유는 남한이 가난한 나라라고 북한의 선전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이다. 그런데 반면 남쪽에서도 판문점을 가보고, 북한을 통해 판문점에 가본 한 외국인의 말로는, 북한에서는 복장규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북한군 군관들이 관광객들에게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14]"여러분, 남쪽에서는 판문점에 갈 때 아무 옷이나 못 입고 갑니다. 하지만 '''공화국은 자유이기 때문에 복장 규제가 없습니다."'''
조금 더 편하고 간단한 방법은, JSA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면회를 가는 것이다. 면회 가는 것 중에서 판문점을 관광시켜주는 행사가 있다. 물론 JSA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지만.
한편, 목걸이, 귀걸이 등 금속 장신구는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면 북한 경비병들이 발포로 오인하여 대응사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허하며, 착용하고 왔다면 방문 전 인솔자가 제거해 소지하고 있다 끝나고 재착용하라고 한다. 또한, 유사시 신속히 대피해야 하기 때문에 신발은 운동화가 원칙인데 이는 잘 안 지켜진다. 구두 신고 왔다고 쫓아낼 수는 없는데다 하이힐 같은 것 아니면 일반적인 구두 정도는 단거리 뛰는 데 별 지장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카메라는 휴대가 가능하고 인솔자의 통제 하에 촬영도 가능하다. 사진 찍을 시간도 넉넉하게 주고 촬영 가능한 범위도 다양한 편이다. 애초에 군사시설이 아닌 남북 간의 회담을 위해 만든 장소이기 때문에 촬영 제한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촬영제한을 두기는 한다. 남측을 찍으면 북측에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고 해서 북측을 찍는 것만 허용된다.
견학 코스에는 제3땅굴과 도라산 안보전망대, 도라산역 견학도 세트로 들어 있다[15] . 총 견학시간은 5~6시간이고 판문점 견학시간은 그 중 90분을 차지한다. 민간인 출입통제선에서는 당연히 군 검문소에서 경비병의 검문을 받아야 하고, 이때 받는 출입증은 돌아올 때까지 항상 옷에 달고 있어야 한다.
일단 주차장 안보전시관에서 브리핑을 들은 뒤에 자유의 집, 팔각정,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돌아오지 않는 다리' 등을 관람한다. 여기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창밖으로만 관람한다. 유명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데다, 휴전선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미루나무가 잘리고 남은 밑둥도 볼 수 있다.
특히 휴전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안에서는 선을 넘어 '''북한 땅을 잠시나마 밟아볼 수 있는''' 희귀한 기회도 있지만, 북한 쪽으로 나가는 문은 경비병이 철저히 경비하고 있으므로 나갈 수 없다. 이때 회의실 옆에 난 창문을 통해 북한군 경비병이 감시의 목적으로 들여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보통 양측 모두 이거까지 제지하진 않는다. 창문 너머지만 북한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중립국감시위원회 건물은 군정위의 바로 서쪽 옆에 있는 건물로, 남쪽이건, 북쪽이건 관광객들은 여기 들어갈 일이 절대 없다. 창문도 큼지막하게 난 군정위 회의실과는 달리 벽 윗부분에 치우쳐서 좁게 나 있는데, 이것은 중감위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반면 군정위 회의는 공개로 진행된다.
견학요금은 무료지만, 제3땅굴은 1인당 1,800원을 받는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지정된 여행사를 통하여 견학이 가능하다. 내국인에 비하면 상당히 쉬운 편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단체 관광이 기본이기 때문에 통일자문회의, 바른생활협의회, 자유총연맹 등의 단체에 속한 사람들 또는 단체 견학을 오는 학생[16] 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는데, 2000년대 이후로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내한 때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테이블을 가로질러가서 콩트를 진행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5.2. 북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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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에서는 주로 외국인들의 평양 관광 공식 일정 후반에서 개성 관광의 부수 코스로 강제 선택되며, 남한과 달리 인원 제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중국인 관광객들과 조총련계 일본인들이 단체로 방문하고 있다. 인원 제한이 없는 만큼 50명 이상이 한 번에 올 때도 있으며, 이럴 경우 일부는 회담장견학을 하고 나머지는 판문점 옥상으로 올라가 관광을 실시한다.
대부분 평양에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한 뒤, 북방한계선에서 경비대원이 차에 동승해 판문점까지 이동한다. 견학 전에는 전문 강사에게 한국전쟁과 분단 상황에 대한 북한 또는 중국 시점의 설명을 들은 뒤 판문각과 회의실을 둘러보고 다시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라고 한다.
물론 이 북측 관광에서도 회의실 내부를 견학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남한 쪽으로 나가는 문을 북측 경비병이 막아서고 있으니 그 쪽으로 나갈 수는 없다. 2000년대 초반에는 국군 경비병들이 북한군이 하는 것처럼 감시 목적으로 들여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증언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있었다. 2010년대에는 감시장비의 발달로 직접 들여다 보는 경우는 없다.
6. 군 복무지로서의 판문점
6.1. 타의로 JSA에 가게 되는 경우
1사단 소속 장병의 경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JSA에 가게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파견 병력으로서의 임무가 부여되는 것이지, JSA대대원들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미군이 대규모 훈련이라 할 경우, 당연히 판문점 인근 미군의 공백은 JSA의 몫이다. 그럼 JSA의 공백은 누가 메꿀까? 1사단이 메꾸게 된다. 이를 위해 편제된 부대가 전진타격대인데, 주로 보병여단 예하의 중대 병력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쉽게 말해 사단 기동타격대. 전진타격대는 JSA 상황 발생 시 10분 내에 현장에 도착해 아측을 지원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유사시 비무장지대 진입 및 증원임무에 대한 교육도 받기는 하나, 단순히 훈련을 목적으로 비무장지대 내에 진입할 순 없으므로 상황조치 훈련의 대부분은 (비무장지대 바깥에 위치한) JSA병력 주둔지 캠프 보니파스를 지원하는 데 맞춰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 다행히도 도착 시에 상황은 이미 잘 끝나있고, JSA 농구장에서 농구나 하며 윗선 부대로부터 상황 종료 명령이 떨어질때까지 기다린다.
연대마다 경비대대가 있는 최전방 부대 환경상 장병들에게 전진타격대 근무는 비교적 여유로운 파견지로 꼽히곤 했다. 휴전선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24시간 긴장해 있을 필요도, 페바에서의 과도한 훈련과 작업에 혹사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파견이기 때문에 상급부대의 간섭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롭다. 대부분의 일과는 상황조치 훈련과 체력단련, 민통선 출입 영농인들에 대한 검문검색으로 채워진다. 충분한 수면시간과 적절한 체력훈련, 여유로운 근무환경 덕에 두달 쯤 지나면 중대원들의 체력수준이 급격히 향상되는데, 몇몇 장병들은 전진타격대 파견을 "요양"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두달마다 각기 다른 병력들이 돌아가며 주둔하는 곳이라 생활 수준은 정식 소속 부대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7. JSA 비무장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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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 비무장화 공동검증을 위해 경계석에서 협의하는 남북미 군 관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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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평화의집에서 남, 북, 유엔사 관계자들이 삼자 회의를 갖는 모습.
9월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은 2018년 10월에 판문점 및 공동경비구역 일대의 일체 비무장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 동안 판문점을 비롯한 공동경비구역 및 비무장지대 지역에서 남과 북이 비무장이 아닌 중무장 상태로 정전협정을 어겨가면서 상호간 첨예한 대립과 감시를 했고 남북이 우발적인 충돌이 잦았다. 따라서 이러한 충돌을 막고 비무장지대의 의미를 살리고자 남북은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를 추진했고 수 차례의 군사회담과 정상회담을 통해 계획을 확정지었다.
'''DMZ 내 GP 시범 철수 및 JSA 비무장화''' (2018년 10월 25일 비무장화 완료)
남북은 비무장지대 상호 1km 이내에 근접한 감시초소 각 11개씩을 시범 철수하고, 향후 비무장자대 내의 모든 감시초소를 철수해 실질적 비무장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비 인력의 비무장화도 정전협정 취지에 따라 복원하기로 했다. 이는 2018년 11월 1일부터 20일 동안 지뢰를 제거하고 초소 및 인원·화기 철수, 감시장비 정보 공유, 공동 검증 등의 방식으로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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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남한과 북한은 JSA 상호 경비 인력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추진했다. 기존에는 중화기, 소총등이 반입 금지되고 권총만 휴대가 가능했으나, 비무장화가 된다면 권총등 일체의 총기류를 무장하지 못한 채로 완전한 비무장상태의 남북 경비병이 경계를 서게 된다. 또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나뉘어졌던 경계선을 제거하고 다시 이전의 공동경비 상태로 복원하여 판문점 지역 내에서 만큼은 군사분계선을 없애 남북 민간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하기로 했다. 대신 돌발적 월경의 위험성을 감안하여 이에 대한 별도의 경비조치를 하기로 했다. 또한 북측 판문점 지역에 우리 경비초소 1초소를, 우리측 판문점 지역에 북측 경비초소를 1초소 두어 완전한 공동경비체제로 복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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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남북은 상호간 군용 전술도로를 연결하기로 했다.[17] 6.25 전쟁 당시 남북 최대 격전지였던 지역 위에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군용도로가 개설된 것이다. 사진의 노란 팻말은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팻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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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각군 공병대가 도로공사를 맡았는데, 남북 군인들이 서로 조우하고 악수를 나누는 익숙치 않은 광경이 나오기도 했다.
8. 기타
- 2007년 17대 대선에서 허경영이 UN본부를 이곳으로 옮긴다는 공약을 했다.
- 상단에 설명한대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남양주종합촬영소는 영화 진흥 위원회가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영화 세트장이 존재한다. 세트장 중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쉬리에서 나온 판문점이 이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더 킹도 이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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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경비구역의 설치 이후 구역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의 효력이 반쯤 소멸되어[18] 남북 쌍방의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의 효력을 완전히 되살리고 기존의 표지판 외에 추가적으로 자재를 들여와 군사분계선을 표시,[19] 이후 상대 영역에 있던 병력들은 모두 철수하였으며 모든 군인들은 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상대 측의 지역에 넘어갈 수 없고, 상호 간 대화도 금지되었다. 그러나 사건 이전에 친분을 다졌던 남북 경비병들이 이후에도 분계선에서 몰래몰래 만나 전역할 때까지 친분을 유지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물론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이런 모습은 대부분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암암리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딸기맛 단물과 말보로 교환?). 판문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탈북자에 의하면 원래 감시가 심해서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몰래 한국 측 병사에게 조심스럽게 껌을 달라고 얘기해서 받았다고 한다. 민정중대 관할 방축골이나 얄미 쪽으로 순찰 나가거나 특이사항을 대대장이 직접 보겠다고 해서 나가면 아직도 북한군들이 담배 달라고 소리친다. [20]
- 2018년 10월 남북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날에 평양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하였던 JSA 내 지뢰 제거가 모두 완료되었는데, 닷새 이후에 판문점 내 초소 철거 및 비무장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비무장화가 완료되면 남북한 민간인과 관광객, 외국 관광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JSA 남북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 남북통일이 성사된다면 판문점은 군사지역에서 해제될 것이며[21] , 판문점은 역사박물관 겸 교육연수원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당시 완전한 종전과 평화협정을 맺고 군사분계선을 평화구역으로 지정하자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 2019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곳을 통해 북한 지역에서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이로 인해 트럼프는 사상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현직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 2019년 9월 12~14일 태풍으로 파손된 판문점 건물을 한국군, 북한군, 유엔군사령부가 협력해서 보수했다.#
- 판문점의 지명의 유래에대해서 몇 가지 민간어원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선조가 도주하다가 이 지역에 널판지를 깔아 도망치며 생긴 지명이라는 설, 본래 지명이 널문리였으나 6.25 전쟁이후 협상에 참여한 중국측이 널문리를 기록할 방법이없었기때문에 중국을 배려해 판문이라는 한자어 지명으로 바꿔 버렸다는 설, 판문점의 '店'이 널문리 가게앞에서 회담을 했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선조 해당지역을 지날때 판문이라는 지명이 이미 쓰였다는 점(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선조 훨씬 이전인 문종시기에 개성부 판문평에 군사를 주둔한 기록(조선왕조실록 문종실록), 순조시기에 김경선의 여행록에 나타나는 판문점이라는 문구(연원직지 회정록), 이 이외에도 현 판문점지역에 해당지역을 부르는 명칭이 판문교, 판적교(板積橋),판적천 등의 이미 판문이라는 한자표기법이 존재했음을 보면 판문점에 대한 민간어원설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9. 사건 및 사고
10. 관련 대중매체
11. 관련 문서
[1] 과거 대한민국 경기도 장단군[2]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상황, 아울러 위기국면, 그리고 주변 4대 강국들 사이의 알력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납득되는 말이다. 더구나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우, 전쟁이라도 일어났다간 그야말로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정도의 위험성과 파괴력을 지닌 지역이다. 강력한 5개국(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이 이곳에서 서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도 다른 3개국에 비해서는 밀려도 군사력이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군사력은 주변에서 영향력 다툼을 하고 있는 러시아, 미국, 중국에 밀려서 그렇지 전세계적으로 보면 최상위권에 속해있는 나라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기간동안 군사, 경제력으로 알력다툼을 해왔고 소련 해체후 지금도 미묘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 데다 중국은 2010년대에 들어서 급부상하고 있는 나라이다.[3] 그동안 어룡리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지번주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룡리는 포털사이트에서 임의로 부여된 것. 원래 주소는 선적리였으며, 결국 2020년에 선적리를 복원하는 것으로 해결하였다.[4] 판문군은 2002년 11월 폐지되었다.[5] 사진의 군사분계선 표지판 0090번은 군사분계선에 설치된 1292개의 표지판들 중 유일하게 군사분계선상에 설치되지 않은 표지판이다. 분계선이 다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관계로 다리 한가운데에 꽂는 것이 맞으나 기술적 문제 때문에 부득이하게 다리 입구에 설치되었다. 남쪽에 설치된 것은 이 표지판의 관리 책임이 남쪽에 있어서로 추측된다.[6] 실질적인 1번 국도의 역할은 통일대교 횡단 후 통일촌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나오는 도라산역을 거쳐 개성공단으로 가는 희망로가 수행한다. 판문점으로 가려면 해당 삼거리에서 직진해야 한다. [7] 판문점 내에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권총만 소지 가능하다. 판문점의 병사들은 '''군사경찰 완장과 헬멧만 착용할 뿐, 군사경찰이 아니다.'''[8] ACU 복장의 미 육군은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투어가이드이며, 군사경찰 행사복을 입고 있지만 사실은 보병인 대한민국 육군은 경비중대 소속의 경비병이다.[9] 군사분계선에 걸친, 파란색 건물들만을 말한다. 역시 군사분계선에 걸쳐져 있지만 회색인 건물들은 북한에서 관리한다.[10] 이유는 당연히 경비병이 작업중에 도청장치를 넣어놀 수 있기 때문이다.[11] 북한은 군정위가 철수한 1994년 4월 28일 이후, 동년 5월 24일 이곳에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한다.[12] 그때까지 북한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이다.[13] 이러한 국경을 관광으로 이용하는 나라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이다. 카슈미르라는 지역의 국경은 남북관계보다 더 활기찬(?)분위기의 국경인데, 울타리를 사이로 두고 누가 더 발을 높이 들어 차느냐, 누가 더 맹렬하게 바라보느냐 등의 군인이 대놓고 싸우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대결은 인도만 관심이 있고 파키스탄은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14] 1990년대~2000년대 평양의 고위층 자제들은 몰래 구해다 입는 것으로 알려지긴 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청바지를 허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이러한 소식이 없는것을 볼때 더이상 허용하지 않는것으로 보이고 또한 걸렸을때 커버를 해 주지 못 한 경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5] 이쪽은 다른 안보관광 코스에도 들어 있어서 꼭 판문점 견학이 아니라도 언제든지 관람이 가능하다.[16] 대학생의 경우에는 군사나 안보, 통일 및 북한학 관련 학과에 기회가 많이 오는 편이다.[17] 이로써 경의선과 동해선처럼 남한과 북한을 직접적으로 잇는 3번째 도로가 완성되었다. 이 도로는 예전 국도 3호선의 중심 부분이기도 하다.[18]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전에도 JSA 내에는 군사분계선이 엄연히 존재하였으며, 군사분계선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다.[19] 회의장 구역에는 그 유명한 콘크리트 경계석으로 (이거...당시 군정위 근무하던 한국군 소속 병사가 손으로 공구리 쳐서 발라 만들었다), 그 밖의 지역에는 일정 간격으로 하얀색 말뚝을 박았다.[20] 현재에도 정전위나 중감위 회의장을 비롯하여 분계선상에 세워진 가건물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물론 상대 쪽 출입문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다.[21] 베를린 장벽과 구 동서독 국경이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