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게임계의 문제/해법

 


대한민국 게임계의 문제
현황
게임 외부의 문제
게임 내부의 문제
해법
1. 유저들의 현명한 소비
2. 게임의 예술성 제고
2.1. 게임의 예술성과 시장성
3. 정품 구매
3.1. 관련 문서
4. 사회 인식 개선 노력
5. 게임계의 문제 해결 및 다양성 확보
6. 다른 분야와 비교, 분석, 협력


1. 유저들의 현명한 소비


게이머들은 게임계에 만연한 현질유도, 랜덤박스 등에 대해 비판하고 이런 악행들이 게임계를 몰락시킬 것이라 역설한다. 그러나 앱스토어 등에서 제공되는 매출 순위를 보면 소위 말하는 '나쁜 게임'들이 순위권에 올라있는 경우가 많다. 나쁜 게임이니, 게임계가 망할 것이니, 현질 안 하면 게임을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본인들이 '좋은 게임'이라 칭하는 국산 인디게임, 혹은 국내 대형 게임사의 참신한 시도가 들어간 실험작에 대한 지지와 소비를 하지 않는다. 결국 '''게이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료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게임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데도, 고의적인 파워 인플레 때문에 계속 랜덤박스를 질러야 하는데도, 그 랜덤박스의 공개된 확률과 실질 확률이 다른데도, 유료로 판 게임 캐릭터나 아이템의 성능을 '밸런스 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게임사 멋대로 바꾸는데도, 확장팩이라는 핑계를 대며 수준 미달의 DLC를 내놓는데도 게이머들은 매번 앞에선 '망겜, 똥겜'이라 떠들고 그 반대선상에 있는 정가 판매, 무료 DLC 판매를 하는 국산 인디 게임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기준에서' 나쁜 게임을 하는 유저들에게는 '너 같은 개돼지 때문에 한국 게임계가 망하는거다!', '한국 게임판은 린저씨같은 사람들이 지배한 개돼지판이다!' 같은 저주를 퍼부으며 선민의식을 내보인다. 이런 이율배반적 행동이 제작사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게임은 하나의 재화이자 상품이며 게임 제작사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시장도 결국 시장경제와 수요공급법칙의 논리로 움직인다. 게임이 잘 팔린다면 꾸준히 서비스를 하거나 후속작이 나올 것이고 거액의 제작비를 투입해도 흥행에 실패한다면 결국 서비스를 종료 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 문제점 투성이인 게임들이 많다면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문제가 되지 않는 좋은 게임을 선택하여 소비하고, 그 게임을 대중적으로 많이 알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게임들은 사라지고 좋은 게임이 많이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정화될 것이다. 소비자가 합리적이고 현명한 소비를 해야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소비자의 불만사항을 수집하여 게임을 개선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득이 된다.
양산형 게임에 대한 현질과 관련된 안건에서 게이머들이 서로를 개돼지라고 칭하며 비난하는 현상이 자주 벌어지는데, 이렇게 소비자끼리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찻잔 속의 태풍만 일으키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게임사를 향하는 실질적인 행동으로만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소비자에 입맛에 맞는 게임을 하려면, 소비자가 먼저 무슨 입맛이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과 10대, 20대 청년들의 특성상 여론이 너무 쉽게 분열되는 탓인지 불매운동 같은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쉽게 묻히기도 한다.
하지만 몇몇 게이머는 이러한 소비자의 현명한 소비를 잘못 이해하여,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일반인이나 중장년층 게이머를 비난하면서 이들에게 흑우, 개돼지 등의 멸칭을 써가며 비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이자 고객은 상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소위 게이머가 이야기하는 '현질 유도 게임'에 돈을 쓰지 말라고 비난하면서 그 유저들을 공격하는 행동이 옳은 행동이라 보기 힘들다. 당장 플레이 스토어T store에서 나오는 게임 순위랑 게임 리뷰 사이트, 리뷰 블로그 등에서 좋은 게임이라고 평가한 게임을 놓고 보면 일반인, 라이트 게이머와 헤비 게이머의 게임 취향이 완전히 분리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이머가 높게 평가하는 게임이 일반인이나 라이트 게이머의 입맛에 맞지 않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1]
게이머들이 보장하는 소위 갓겜을 강매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 행동으로 일반인이나 라이트 게이머의 소비가 바뀔 수도 있을 지 고민해봐야 한다. 위 문단의 예시처럼 "왜 그렇게 문제가 많은 게임을 하는 거야? 당장 그만 두고 이 게임을 해." 라고 말한다 해서 소비자의 소비를 바꾸거나 멈출 수 있는가? 또한 라이트한 게임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코어 게이머들이 추천하는 게임을 하기 위해 적게는 몇 십 만원 정도의 투자를 하면서 그 게임들을 할까? 아마 힘들 것이다.
롤충, 도슬람, 시계충, 총박이를 생각해보자. 이 게임들은 리뷰어들에게도, 게이머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게임이지만 악질 유저의 강매로 인해 게임의 평가가 낮아졌다. 한국 게임이 아닌 해외 게임인데도 이러한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소비자가 해당 게임을 선택했어도 (멀티플레이에 한해) 게임플레이나 내부 환경을 악화시키는, 소위 고인물화를 통해 신규 유저의 유입을 막기도 한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 배틀그라운드가 이러한 예시의 일종이다.
개인의 선택은 개인의 선택일 뿐, 이를 다른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할 자격이 있고, 모두가 이를 실천하고 있다. 소위 린저씨 같은 경우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인 리니지를 소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한국 게임계가 병들어간다는 의견이 수없이 많이 나오고 실제로 그러한 사례들도 나오고 있지만, 과연 이러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하는 게임은 한국 게임계를 망치고 있는 주범이니 당장 그 게임을 그만 둬라!' 라고 주장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실천할까?
대표적인 사례로 에픽세븐 치트오매틱 대란 사태가 있다. 게임사의 심각한 운영상의 실책이 쌓이고 쌓이다 결국 기폭되어 게임 운영뿐만 아니라 게임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는 유저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심지어 에픽세븐 반대 의견에 앞장선 사람마저 뒤에서는 에픽세븐을 플레이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등 결국 국산 모바일게임을 하면서 국산 게임을 혐오하는 게이머의 이중성이 드러났다. 이는 특정 개인의 선택을 바꾼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대안은 나쁜 게임을 소비하지 말라는 부정적 피드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좋은 게임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홍보하면서 국내 게임 업계들에게 소비자가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지 길을 제시하는 긍정적 피드백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유튜브 등에서 수없이 비난받고 있는 리니지2M, V4가 2019년 12월 기준 플레이 스토어 매출 부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현상, 그리고 비록 수많은 버그와 부족한 콘텐츠로 비판받았지만 참신한 게임성과 유통사 치고는 신선했던 시도라고 불렸던 듀랑고의 서비스 종료는 소비자의 부정적 피드백이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결론적으로 좋은 게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이런 게임들에 대한 소비를 요구하며 여론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소비 유도라고 할 수 있다.

2. 게임의 예술성 제고


"비디오 게임은 예술인가, 혹은 고품격 예술인가?"에 관해서 만약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인정하게 될거예요. 사람들이 예술로 인정할만한 게임이 지금은 없다고 해도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예술로 취급될 물건이 나오겠죠. (중략) 게임이 예술로 발전하는게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에게 미디어의 가능성에 마음을 열라고 하고 싶네요. 지금의 게임이 고품격 예술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그렇게 될수 있는 가능성을 봐야한다구요. 과거에 많은 예술가와 미디어가 무시당했지만 "그들이 뭔가"가 아니라 "그들이 뭐가 될수 있는가"가 오늘날까지의 발전을 이루어 낸겁니다. 이런 것[2]

이런 걸로 발전하는 게 이런 것이런 걸로 발전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에요. 물론 생각없이 소비하는 영화처럼 생각없이 소비하는 게임들도 언제나 존재하겠죠. 하지만 그게 여러분이 볼 수있는 비디오 게임의 한계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건 어떨까요?

- Nostalgia Critic비디오 게임은 예술인가? 논평에서

게임의 문화로써의 모습은 '''텍스트 묘사'''의 접목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오락실 한 판에서 시작해 마치 판타지를 보는 듯한 일러와 상상을 자극하는 텍스트를 담아내는 울티마, 위저드리,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등이 대 히트하고,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 등의 경악적인 반전을 담은 추리게임 등으로 한 차례 문화로써의 발돋움을 시작했다. 특히 울티마 시리즈는 RPG 게임의 목표가 '던전에서 악당을 잡는다'는 단순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도덕적, 철학적, 심지어 신학적이기까지한 심오한 주제를 다루며 전설이 된다.
이후 창작자가 '''주제 의식'''을 담아내며 인간 찬가, 인간 비판 사상이 접목되며 주제 의식이 고조되었다. 『세상이 멸망한 뒤의 세상』이라는 파격적인 배경과 뒷설정으로 인간 비판을 보여준 영웅전설 1, 2편이나 마과학에 자연이 유린당하며 미래가 황폐해지는 『자연과 과학의 공존과 파괴』의 테마를 담아낸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작품 속에 주제를 담아 예술로 발돋움하는 과정은 마치 천대받던 만화, 소설, 영화의 발전과 '''매우 흡사한 과정을 거쳤다.'''
또한 파이널 판타지 7에선 1st 솔져라는 자아의 환상이 깨지면서 폐인이 된 주인공이 이후 자신과 마주하며 '''자아 정체성'''을 깨닫고서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발매 당시 일본에 팽배한 패배주의와 집단자살에 『자아를 찾아!』라는 주제를 보여주었다. 당시 공개된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모두 죽어버려(=사실은 살고 싶어)』나 모노노케 히메의 『살아라!』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본편 스토리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게임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해답을 내놓는 경우도 많았다.'''
하물며 기존의 '''사회적''' 인식을 비틀어버리기도 하는데, 스펙 옵스: 더 라인의 경우, 초반에는 대부분의 영웅주의적인 FPS 전쟁물들이 그러듯 '나는 정의이고, 저들은 악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정의인 내가 저들을 쓸어버리고 그 밑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한다' 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중반의 백린탄 학살 씬부터 이를 완전히 비틀어 내어 '''전쟁을 다루는 것에 영웅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비인간성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이 로딩 메시지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게임 속에서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즐거운지에 대한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진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 강도는 높아진다. 그리고 엔딩에서 등장인물 존 콘래드 대령의 '''"이젠 좀 영웅이 된 거 같나, 워커 대위?"'''란 말은 고립된 두바이를 구하려 했으나 내막도 모른 채 무작정 개입해서 결과적으로 도시를 완전히 붕괴시켜버린 플레이어의 영웅주의를 비판한다.
한술 더 얹어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This War of Mine은 그동안 전쟁과 영웅을 다루는 게임에서 부각되는 호전적이고 쾌활한 전쟁 게임들과는 정반대로, 전쟁의 뒷면에는 온갖 고생을 겪으며 희생되어가는 민간인들도 알아야 한다며 게임으로 표현 해낸 경우다. 위협이 되지 않는 민간인을 죽이면 그 대신 주인공이 생존할 수 있는 갖가지 물품을 얻을 수 있지만, 심해질수록 주인공의 양심과 멘탈이 점점 붕괴된다. 도둑질 또한 마찬가지이며, 전쟁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는 민간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예술적으로든 사회 비판적으로든 게임 속 평범한 민간인 주인공들이 플레이어들에게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 라고 외치는 메시지가 워낙 짠하고 강렬하게 남으며, 인디 게임임에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해 스팀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은 게임이다.
성경에 실린 '이사악의 번제'를 비틀어낸 아이작의 번제 시리즈는 비뚤어진 신앙심을 가진 모친의 학대를 피해 던전으로 도망치는 꼬마 아이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그러나 스토리를 직접적으로 해설하지는 않으며, 새로운 아이템, 로딩 중에 나오는 아이작의 꿈, 회차마다 달라지는 배경과 엔딩 등 게임의 특성을 활용한 은유로 달라져가는 아이작의 모습을 보여주며, 스토리 파악은 플레이한 사람의 개인적 유추에 전적으로 맡겨진다. 때문에 단순한 플레이 방식을 가진 인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과 뛰어난 대중성을 모두 갖출 수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매우''' 놓치기 쉽지만, 제작자들의 깊이 있는 인터뷰와 내적 요소들을 분석한 스토리 텔러나 매니아들의 칼럼으로 퍼지면서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시점에서 이미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예술'''로 자리잡았다 봐도 무방하다.
더욱이 이런 주제의식과 더불어서 유희, 드라마적 측면으로도 발달한다. 제절초카마이타치의 밤, 슈타인즈 게이트 같은 비주얼 노벨을 통해 마치 공포 영화나 SF 영화 같은 스토리를 써내려가며 인간의 성장과 역경, 심층의식 등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흥분, 감동을 고조시키며 사실상 ''''스토리가 있는 모든 문화는 예술이 될 수 있다'''' 는 것을 증명해내기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라스트 오브 어스투 더 문은 '''외국 유명 영화 전문잡지'''에서 극찬을 할 정도로 영화 같은 시나리오와 사람의 가슴을 감동케 하는 스토리와 연출로 이미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한 적이 있다. 심지어 라스트 오브 어스는 영화업계인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고, 외국 유명 잡지에 명작 영화 TOP 100에 매번 반드시 1위를 꼽는 '''전설의 레전드'''인 시민 케인과 비교되는 10점 만점을 받기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언더테일에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리는 분위기와 게임의 스토리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연출로 인해 그래픽이 구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게임 속에서 살아서 등장인물과 교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것은 단순히 즐길거리를 넘어서 영화와 비슷한 '종합적 예술'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의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영화의 구성 요소인 영상미, 음악, 연출, 시나리오 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은
  • (가상이더라도)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수려한 영상미를,
  • 비트 위주의 단순한 음악부터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노래와 소리로 뛰어난 청각적 효과를,
  • 다채로운 효과나 편집 기술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극적인 연출을,
  • 제한된 시간과 흐름에서 벗어나 노력에 따라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풍부한 줄거리를,
  • 기존 매체와 달리 사용자가 화자나 주인공을 (주어진 범위 내에서) 직접 조종하는 개입할 권리를 보장한다.
이 외에도 이미 연출적으로도 만화,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과 스토리성으로 게임의 예술적인 면모를 담아낸 게임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해왔다.
반면 국내 게임들은 카피캣이 범람하여 시장 자체가 망가지거나, 게임에 대해 심도 깊게 토론 및 고찰을 하는 사례가 드물었고 설령 토론을 하더라도 널리 퍼지지 못했기에 외국에 비해 게임에 관한 담론이 생기지 못했다. 유튜브블로그 등지에서 그러한 담론이 생겨나고는 있으나 규모가 작아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고, 그마저도 작은 사회마냥 소수 의견에 동의하는 소수 인원들의 소수 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가 등 권력자들이 게임을 4대 중독으로 지정하여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어버린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게임사, 게이머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이런 면을 좀 더 널리 퍼트려야 한다.'''

2.1. 게임의 예술성과 시장성


다만, 게임의 예술성과 시장성은 엄연히 다르다. 우선 한국 게임의 내적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게임 시장 트렌드가 어떠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 항목에서는 싱글플레이 게임을 위주로 나열하고 있는데, 싱글플레이를 만들어야만 게임의 작품성이 높아지며 문화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다소 편협한 감이 있다. 지금 한국이 잘 하고 있는 멀티플레이 게임으로도 얼마든지 발전시킬 여지가 충분하다.
지난 20년간 컨텐츠 시장의 흐름을 보면, 천재 디렉터가 장인정신으로 만든 소수의 작품이 이끌던 시장에서 가볍고 대중성 있는 다수의 작품이 이끄는 시장으로 변화하였다. 영화의 경우,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3~4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장대한 서사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영화의 제작편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영화계는 보다 짧은 러닝타임, 스피디한 편집을 중점으로 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게임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 개발자의 철학보다는 다수의 입맛에 맞춰 캐주얼하고 라이트한 플레이 방식이 중요해졌으며, 부분유료라는 새로운 과금모델이 등장하고,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멀티플레이 게임들이 큰 인기를 얻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하스스톤을 만들고, F2P 모바일 게임 파이어 엠블렘 히어로즈가 싱글 유료 게임 슈퍼 마리오 런보다 더 적은 수의 유저들로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온라인 게임을 외면해 왔던 각종 게임 시상식에서 오버워치가 여러 상을 수상하는 등 게임 시장의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배틀필드 시리즈는 이미 멀티플레이 중심으로 개발되며 각종 부분유료 아이템까지 넣고 있고, 유비소프트는 차후 AAA 게임들은 멀티플레이 중심이 될 거라고 발표한 바 있다. #
즉 한국 게임계가 고민할 부분은 싱글이냐 멀티냐의 플랫폼 문제가 아니라 "좋은 완성도의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This War of Mine이나 언더테일 등은 모두 인디 게임으로, 해외의 대형 게임 개발사들도 그런 종류의 게임은 잘 만들지 않는다. 상업성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인디 스타일의 게임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시장 교란에 가까운 행위이거나 자가당착이라는 비판도 있다. 게임어바웃의 '애프터 디 엔드' 리뷰
게임이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으며, 꼭 예술성을 추구해야 좋은 게임이라는 주장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우리나라에 PC방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E-스포츠를 탄생시켰으며, 그 속에서 많은 선수들이 다양한 경기를 펼쳐 팬들에게 추억을 남겼다. 이것도 게임의 '작품성', '서사성'과 무관하니 예술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 게임이 반드시 영화나 소설 같은 일방향적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매체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메커니즘이다. 합리적인 과금, 합리적인 룰과 시스템을 통해 모든 유저가 공정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을 연구해야 한다. 애당초 게임과 예술 문서를 보더라도 게임이 예술에 가까운지 스포츠에 가까운지도 의견이 나뉘며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이라면 예술성이, 경쟁이 중요한 게임이라면 스포츠성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스토리 중심의 게임들도 시장의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싱글플레이 게임들은 일본을 제외하면 아시아권에서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이고, 그 일본조차도 8세대 콘솔로 넘어와서는 자국 내 밀리언 셀러 작품이 파이널 판타지 15드래곤 퀘스트 11,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정도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 게임업계의 주된 해외 시장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인데, 풀 프라이스 게임을 판매하려면 타겟을 북미와 캐나다, 유럽 등으로 돌려야 한다. 하지만 일련의 내러티브와 캐릭터가 존재하는 싱글플레이 게임에서는 동양과 서양 간의 문화적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되며 이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예로 든 파이널 판타지 15나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십수년 전부터 서양에서 쌓아온 인지도가 있었기에 글로벌한 흥행이 가능했다. 드래곤 퀘스트 11만 봐도 일본 내수용 게임으로 취급될 뿐, 국제적인 흥행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기존에 널리 알려진 스토리 중심의 게임들은 절대 다수가 콘솔 플랫폼을 중심으로 개발된다. PC 플랫폼에서는 온라인 게임이 엄연한 강세이고, 킥스타터 및 인디 게임들만이 서사 위주 게임의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 게임계는 그 PC 시장이 메인이고, 콘솔 시장도 작은데다 콘솔 게임에 대한 개발 경험도 거의 없는 상태이니 국내에서 좋은 싱글플레이 게임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재로선 어려운 일이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개발 중이라고 알려진 싱글플레이 게임에는 시프트업의 프로젝트 이브크래프톤미스트오버, 라인게임즈의 베리드 스타즈, 창세기전 리메이크 정도밖에 없다. 이 게임들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향후 전망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 배틀그라운드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F2P가 아닌 B2P 과금방식의 게임도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하나의 위안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게임성도 시장성도 캐주얼해졌지만 그만큼 표현의 범위가 넓어진 인디 게임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특히 인디 게임은 스팀이나 모바일 게임 등 이미 닦여진 시장이 존재하기에 어느 정도 기대가 큰 편이다. 불법복제의 횡행, 난무하는 표절, 인디 게임들 간의 작은 시장 갈라먹기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자세한 것은 인디 게임 문서 참고).

3. 정품 구매


이렇든 저렇든 복돌이는 나오게 되어 있다.' 한국' 게임계에 대해서만 얘기할 경우 이 주제는 비중이 줄어드는데, 국내 게임계는 온라인과 모바일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정품' 운운할 패키지 게임이 거의 사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게임 위주로 설명하기로 한다.
한편 한국의 미성년자는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거의 9할 이상 의존상태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산층 자녀의 경우 학교/학원 외에 활동을 강제로 제한당하다보니,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어 부모가 주는 용돈을 제외하면 사실상 경제적인 주체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 용돈을 게임 구입에 사용하더라도, 기성 세대(부모님)는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의 구입을 허용하지 않는다.[3] 그러다 보니 게임을 몰래 구입하거나, 구입을 포기하고 분할압축, 웹하드, 토렌트로 대두되는 불법 다운로드에 손을 대버린다.
그런 점에서 음악계의 저작권 관리 시스템은 참고할 만 하다. 음악계도 공유 문제 때문에 고생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실제로 음원 판매 사이트의 운영도 유지되고 있을 정도로 실적이 좋은 편이다. 스팀은 아주 훌륭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속적인 할인과 자유로운 게임 다운로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품 구매 및 이용을 권장하기 때문이다.

3.1. 관련 문서



4. 사회 인식 개선 노력


'''단순히 하루 십수시간 개미처럼 일만 하는 노동 문화를 갖고 있어서는 소프트파워가 발전하지 않는다.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길 수 없다.''' 단지 돈만 많이 번다고 선진국을 만들지 못한다. 지금은 산업혁명기, 개발도상국 시기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 어떤 국가보다도 자원이 부족하고 인력이 많은 산업을 키워야 한다. 결국 창조경제 같이 말만 공허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창의적인 산업분야를 개척하면서 키워주고 인력을 많이 활용해야 한다.'''
휴식을 해야 그 다음에 더 큰 성과를 내지 않겠는가. "그 휴식 수단이 굳이 게임일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젊은이들의 취향이다. 그럼 몸에도 안 좋은 담배는 뭐하러 피고, 술은 뭐하러 마시는가?"라고 대답하면 된다. 젊은이들이 집권하여 어른들에게 '트로트는 구제도의 잔재이므로 모조리 차단한다'고 한 번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자.[4]
3차 산업 중심의 사회는 더더욱 이런 부가가치 산업을 많이 키워야 한다. 그 이유는 1차나 2차 산업이 아무리 연계해도 3차 산업의 연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업과 제조업 특성상 준비 자금을 비롯하여 초기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에 시장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데 비해, 3차 산업은 약간의 준비만 있다면 얼마든지 참여하여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성층이 과거 산업화 시대의 중공업, 토건개발 중심의 발상을 버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중공업과 토건개발이 사람의 '생존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더라도 '감상의 욕구'를 채워주진 못한다. # #
이 인식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이 '제도화'이다. 제도화에는 부작용도 많지만 그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만큼은 긍정적 작용이다.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는 미술관을 만들었는데, 이는 어떤 미술이 좋은 미술이고 어떤 미술은 저질인지 종사자들과 관객들에게 심미안을 알려주는 공간 역할을 했다.
비슷하게 영화계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을 만들어 영화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교육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굳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잡지 등에 실리는 평론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평론가나 제도 기관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만[5]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런 제도는 꼭 필요하다.
이런 제도가 있으면 그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 '여기는 가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 글은 읽어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같은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예술계 종사자들이 '미술관에 1년에 몇 번이냐 가보냐?', '시민 케인은 본 적 있냐?', '최근에 읽은 소설책이 뭐가 있냐?'고 되물으면 비난자들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걸 생각해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국 게임계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비디오 게임 자료원'을 만들어야 한다. 오래전에 발매돼 더 이상 플레이 해보기 어려운 게임들을 복각하여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같은 고위직 공무원들이나 기업가들이 행사에서 테이프 커팅하든 축사를 하든 이에 얽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 체험 행사 같은 걸 마련해서 학생들과 함께 '교사'들도 와서 게임을 해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불어 기성세대들을 위한 교육강좌도 병행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사료 보존 및 자료 전달
오래된 고전 명작 게임(레트로 게임)들을 복원함으로써 게임계 종사자들에게는 게임 개발에 되는 자료를, 게이머나 일반인들에게는 게임의 역사와 발전 과정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특히 트렌드를 형성하거나 파악하기 위해, 과거에는 기술적 문제로 구현되지 못했던 기능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사료 보존은 꼭 필요하다.
  • 일반인들의 체험
적게는 게임 애호가들, 넓게는 학생이나 사회적 동호회가 행사나 모임을 가지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게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입문하는 문턱을 낮출 수 있다.[6]
  • 대외적인 홍보
공무원이나 기업인들이 관련 기관이나 행사에 참석하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대중은 '게임이 이렇게 인정받는 분야구나' 하고 인식함으로써 홍보하는 효과가 생긴다. 더 나아가 정치계나 사법계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규제나 시장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게임업계를 확대시키는 발판
단순히 게임을 전시하는 것 이외에 관련 강좌와 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새로운 업계인들을 양성하거나 게임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상술했듯이 단순히 게임 기기 및 기판의 전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개발자들이 이렇게 게임 스테이지를 설계했고, 이것이 게이머가 어떤 인지효과를 경험하도록 유도한 것인지 설명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게임은 출시된 지가 이미 30년이 넘었다보니 게임계 내부에서도 세대가 나뉘었고, 그러다보니 '''슈퍼 마리오의 조작감이 어떤지 모르는 채''' 게임계에 입문하는 젊은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현재 이런 역할을 하는 행사는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정도인데, 이는 일시적인 행사여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전파하는 노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한국에 이런 역할을 하는 기관은 현재 넥슨컴퓨터박물관 정도밖에 없는데,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제주도에 있어 수도권이나 영남권 같이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의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립 박물관은 정부 지원과는 별개로 게임사 지원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같이 정부 지원을 받은 제도 기관은 문화부 같은 정부 기관의 안정적 지원을 받는 기관이 되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정부 기관들은 이런 제도 기관에서 벌이는 일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게 된다.
단순히 정당 대표가 "게임산업의 과도한 규제 완화할 때"라고 공허한 제스처를 날리는 건 믿을 수 없다. 그런 정치적 수사는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게임규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에게 말이 아니라 직접 실질적인 지원을 하라고 압박할 필요가 있고, 그런 면에서 이런 제도 기관은 한국 정부가 자국 게임 산업을 중요시 여긴다는 점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제도화는 필연적으로 부패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인맥이나 지연에 따른 '코드 인사'가 게임자료원 기관장 선임에 영향을 준다든지, 왜 이 게임은 지원해 주면서 저 게임은 안 된다고 하는지, 위에 서술한 목적이 아닌 게임에 대한 인식을 왜곡한다든지, 기타 게임이 아닌 사회적인 부분에서 실수(ex. 페미니즘 관련)가 생긴다든지 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 기관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5. 게임계의 문제 해결 및 다양성 확보


그러나 사회 인식을 바꾸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게임 업계에서도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우선 규제론의 지적을 무작정 배척하지 않고 합리적인 부분은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게임시장이 과도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게임들 위주로 되어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 영화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게임은 '''5시간 이상''' 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는 경우도 건강에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긴 하지만, 시스템적으로 피로도 시스템 외에도 플레이 타임을 끊어서 할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계속 해야 하는 하드코어 게임보다, 짬짬이 할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을 어떻게 재밌게 만들지 고려해 볼 필요성은 분명 있다. 특히 잠깐 피곤하거나 질리면 바로 정지하거나 끌 수 있는 오프라인 게임에 비해, 온라인 게임은 시시각각 변하는 특성 때문에 벗어나기 힘들다. 게이머들은 게이머들대로 휴식하고, 게임사는 게임사대로 언제 어디서든 "안전하게" 멈출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과도한 캐시템과 사행성 조장도 '''적당히 할 필요가 있다.'''[7] 이거는 평범한 게이머라도 짜증이 나는 일이다. 아무리 게임사도 이익을 노리는 조직이지만, '''어째서 게임사가 망가뜨린 밸런스를 게이머가 현금을 들여서 맞춰줘야 하는가?''' 수익에 눈이 멀어 게이머를 등쳐먹을 것이 아니라, 원 소스 멀티 유즈2차 창작 등을 활용하여 수익을 내는 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계속해서 개발해가야 할 것이다.
선정성의 경우 서든어택 2 등을 사례로 삼아 무조건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약간 과장된 감이 크다. 서든어택 2의 경우 괴랄한 과금유도(캐릭을 성능별로 가격에 팔아치운 행위)와 괴랄한 게임성으로 말아먹은거지 선정성이 주된 이유는 아니다. 여론에서 이해하기 쉬운 선정성 논란으로 몰아가서 그렇지 기자들은 게임을 해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눈에 띄었으면 띄었지 여캐 디자인은 호평을 받았고 애초에 수위 논란이 일 정도로 선정성을 해치지도 않았다. 서든어택 2의 서비스 종료는 당시 넥슨 회장인 김정주가 조사를 받아서 경황이 없었던 것과 오버워치 출시로 인해 급해진 넥슨의 과금유도 기반의 막장 운영이 결합된 결과다.
설령 선정성이 문제가 되더라도 등급에 잘 맞추면 해결된다. 왜 전체 연령가가 있고 15세, 18세 이용가가 있겠는가? 수요자 연령층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흔히 지적되는 선정성(과 폭력성 및 기타 자극적 표현) 문제는 '''등급에 맞지 않는 표현'''이 원인이다. 이것도 제작자가 의도한 연령층이 '''아닌''' 사용자들이 접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그 책임을 제작자에게 묻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렇게 선정성의 수위를 잘 지켰을 경우 엘린 스쿨미즈 코스튬처럼 국내 전 수영복 판매 매출보다 더 벌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테라는 '''청소년 이용불가'''다.
폭력성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나 전투, 싸움 등이 게임에서 많이 나오는 건 '주제'라는 측면에서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현실에서 그렇게 많이 싸우지 않으므로 폭력적인 게임이 현실의 폭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크든 작든 당연히 존재한다. 모든 게임 장르가 전쟁과 전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게이머들의 취향도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갈리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비판, 디스토피아, 피카레스크, 전쟁 등 폭력이 불가피한 소재가 아닐 경우 불필요한 폭력성을 줄이는 한편 동물의 숲과 같이 비폭력주의이면서도 즐길 수 있는 게임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때리거나 휘두르는 큰 동작이 유저에게 크게 어필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더 작고 소소한 동작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비슷한 이유에서, 생활형 콘텐츠는 정말 소수 매니아만 재미를 느끼기에 경제성 없는 콘텐츠일까? 심즈 등의 예를 봐도 그렇듯, 먼저 말한 대로 신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 여성층이나 장년층을 타겟으로 한다면 차라리 이쪽이 더 옳은 방향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예로 플래시 게임에서 흥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 소위 "식당 경영" 같은 계열은 개발하기에 따라서 난이도와 고객층이 다양해진다. 장년층이라 해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자영업' 컨셉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이를 통해 보면, 기능성 및 교육용 게임은 현재로선 그나마 게임 시장 중에서도 부작용이 거의 없는 분야이고, 실제 게임 구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학부모를 비롯한 성인층'''이기 때문이다. 10대 이하의 계층은 게임을 잘 즐기는 계층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에 대한 지불 능력이 없는 계층이기도 하기 때문에, 결국 학부모가 게임 시장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는 ESRB의 탄생 배경에도 잘 드러난다. 게임, 폭력, 문화... 그리고 한 남자의 도전 실제로 드류 크레센티 같은 사람의 시도는 의미도 있고, 게임 인식 재고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게임이라면 여성이나 학부모라도 권할 만하고, 이런 게임이 널리 퍼진다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밖에 캐릭터의 행동이나 행위, 유저-캐릭터 간의 상호작용 등의 AI 문제는 딱히 건드릴 게 없으나, 대부분의 국내 온라인 게임 특성상 게이머와 게임 내 세계관이 괴리되어 있다. 게이머의 닉네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끝날 게 아니라 선택지, 특정 단어에 반응하는 식으로 게임의 질과 게이머의 참여를 유도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기능성 게임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 예로 국내에서 닌텐도 DS가 '기능성' 게임기임을 강조하면서 다수의 기능성 게임을 앞세워 보급에 성공했지만, 정작 3DS로 넘어가자 그냥 게임기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학부모들은 지갑을 굳게 닫아버렸다. 닌텐도 3DS/한국 시장 상황 문서 참조.
여기에 기능성 게임 시장은 의도했던 문제를 너무 엉뚱한 방식으로 다루는 괴작 때문에 인지도 자체가 바닥을 긁고 있는 데다가, 기능성 게임 자체만으로는 돈이 안 되니 공급도 딸리는 게 현실이다. 과거 닌텐도가 아타리 쇼크를 해결할 때 '기능성'을 유난히 강조한 것과는 대비적이다. 국내의 교육열이 높은 것까지 감안하면, 기능성 게임, 그 상위라 할 수 있는 시리어스 게임같은 여러 게임들의 부재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부분.
나아가 기능성 게임, 교육용 게임 뿐 아니라 인디 게임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디 게임은 게임 같지 않아서 경제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저니 같은 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실 순수예술은 실제로는 효용이 큰 분야 중 하나다. 순수예술에서 시도된 새로운 것들을 상업예술 분야의 디자이너나 공학자들이 활용하는 등의 사례도 많기 때문.
대표적으로 MTV의 사례가 있다. 예술은 감각을 다루고 연구하면서 계속 새로운 '느낌'을 찾아내려 애쓰는 분야이기 때문에, 여기서 찾아낸 새로운 느낌은 말 그대로 소비자에게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게임도 마찬가지. 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야 게임업계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영화의 예를 보면, 할리우드 같은 경우 독립영화계에서 자기만의 실험을 하면서 활동하던 감독들이 메이저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다크 나이트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표적이다. 마치 야구의 1부 리그, 2부 리그 같은 구분이라 보면 되겠다. 넥슨이나 NC 같은 대형 게임업체가 인디 게임 개발자 등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NHN 같은 경우 개발자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네오위즈는 게임 공모전을 열기도 한다. 다만 아직까지 성과는 그리 크지 않은 편. 게다가 이런 대회는 비업계인이나 게임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참가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 '''게임사들이 게임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려면, 자신들이 먼저 문턱을 낮추고 다가서야 한다.'''

6. 다른 분야와 비교, 분석, 협력


중요한 건 게임이 경제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문화이자 삶의 경험으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예술계나 영화계처럼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게임계가 무시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장 큰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해당된다.
이는 현재 게임계가 영화계나 만화계와 비교해 상당히 뒤처지는 부분이다. 영화감독들 중에는 철학자 뺨치게 유식하고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 만화가 중에서도 자기 생각이나 철학을 만화에 담아낼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영화계는 사실상 현대 대중문화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만화도 은근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정 영화나 만화가 정치적 논리를 담기만 하면 금세 국제관계로 발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온라인 게임 2시간과 디즈니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2시간을 비교하면 아직은 영화의 만족감이 높다. 온라인 게임의 역사는 고작 20~30년일 뿐이고, 영화는 10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쉽게 경쟁할 수 없겠지만, 온라인 게임은 앞으로도 도전해야 한다. (출처)

하지만 게임의 문화적 영향력은 그 경제적 성장과는 별개로 아직 한참 미숙하기 짝이 없다. 전길남 교수의 말대로 사람들은 게임보다 영화에서 더 높은 만족감을 얻는다.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엄연히 영화 > 게임이다. 심지어 워크래프트 등의 게임조차 스스로를 영화화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더 많은 대중들에게 콘텐츠를 알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게임을 영화화했을 때에는 대다수가 저연령층 중심을 노리거나 괴작이 되는 걸 보면 영화 관계자들이 게임을 어떻게 보는지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현재 영화가 게임보다 더 핵심의, 상위의 콘텐츠로 받아들여지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역사가 비교적 짧은 게임과는 달리 오랜 시간을 통해 대중들의 인식도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감각의 여운은 오감을 동원하는 게임도 못지 않지만, 중요한 건 사회적 인식의 상승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영화 역시 현재의 게임과 비슷하게 저질 오락 취급을 받았고, 대중들은 영화를 유해매체 취급했다.
20세기 초의 영화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프랑스에서 탄생 초기의 영화는 전용 상영관 없이 장터극장(fête forain)을 떠돌며 상영되었고, 1896년에야 겨우 파리와 리용에 전용 상영관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는 영화업자들이 일정 기간을 임대로 상영관을 확보하여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1897년 5월 4일의 파리 자선 바자회 화재로 부유층 인사 128명이 죽는 사고가 일어나자 영화는 위험한 오락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본격적인 영화 상영관 건립이 불가능하게 된 적도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신기하기 짝이 없던 활동사진이 그 길이가 너무 짧고 천편일률적인 내용 때문에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과 대다수 지식인들은 영화를 경멸하는 풍조까지 나타났다.'''

당시의 장터를 중심으로 한 극장에서는 영화 1편당 한 쇼트로 구성된, 대략 1분 정도의 상영시간을 가진 필름을 10여 편 정도 보여주고 1프랑 내지 50 상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상영 중에는 변사의 해설이나 손풍금 따위의 음향효과가 뒤따랐고, 초기의 뤼미에르 식의 기록영화 위주에서 차츰 벗어나 희극적이거나 남녀관계에 관한 내용이 가미되면서 서민들이 즐기는[8]

오락으로 자리 잡게 된다.[9]

참고로 한국 영화계나 만화계도 B급 영화나 저질 만화 같은 걸 뽑으며 연명하던 시기가 있었다. 영화계와 만화계는 그걸 만회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영화는 서편제쉬리 등이 나오던 이후부터(대략 1990년대) 불건전 딱지를 뗄 수 있었고, 만화는 최근에 웹툰 등에서 여러 취향을 가진 작가들이 다채로운 작품들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영화계는 각종 스캔들과 배급사의 이윤착취 등의 문제가, 만화계는 일부 기본 역량도 갖추지 못한 웹툰 작가들의 난립과 이를 관리해야 할 전문 편집자들의 부족이 일으키는 문제들, 그리고 출판만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적극적인 이윤 창출을 내기 어려운 기형적인 산업구조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부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려고 한다는 점과 문화적 다양성 문제를 따졌을 때 게임계만큼 무책임적인 수준으로 방관적이지도, 천편일률적이지도 않다.
반면 게임은 경제적으론 성공했을지 몰라도, 소비계층이 젊은 남성층으로 매우 한정되어 있다. 젊은 남성층 외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게임은 애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게임을 즐겼던 젊은 남성층도 나이가 들어 직장에 다니게 되면 자기가 예전에 그런 게임을 했다는 걸 부끄러워하고 숨기거나 끊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10]
이는 물론 게임 개발사가 천편일률적으로 젊은 남성층에만 어필하는 게임을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단 취업을 하게 되면 게임을 할 시간과 여력이 부족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 게임 외의 다른 즐길 거리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여러가지 사회상이나 세상사를 알게 되면 게임 내에 묘사된 것들을 '유치'하게 여기게 될 가능성도 높다.
결국 게임으로도 시민 케인 같은 영화나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 못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현재 게임 유저층이 아닌 사람들도 게임을 친근하게 대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당장 PS3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한 명작 더 라스트 오브 어스가 '''영국의 영화 잡지 엠파이어'''로부터 들었던 평이 바로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 시민 케인에 비견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였다. 그야말로 최고의 찬사라 봐도 무방한 평이다.
나아가 여러 다른 분야와의 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 법조계 인사들과 협력해야 게임규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에 대처할 수 있고, 정치계 인사들과 협력해야 정부나 게이머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이로운 정책을 세울 수 있으며, 경제계 인사들과 협력해야 보다 효과적인 시장분석과 마케팅이 가능하며, 예술계 인사들과 협력해야 특히 기존 게이머가 아닌 새로운 소비자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어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다행히 일부 개발자들은 게임이론이나 심리학 이론을 게임 개발에 접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특히 예술계, 영화계, 만화계. 특히 영화나 웹툰 등은 종종 게임과 협업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분야를 게임에 녹여내는 단순 마케팅이 아니라, 그들이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했는지 등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기성 문화매체 인사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남들이 안해본 짓을 해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 것은 이 사람들이 전문가일 테니.
현재 게임계와 예술계 사이에서 논의되는 내용에 대해 확인하고 싶다면 게임과 예술 문서를 참고.

[1] 모든 게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게이머가 높게 평가하는 게임은 오타쿠적 요소가 들어가 있거나 컨트롤이나 기본적인 게임 센스 요구 등 일반인이 접하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은 게임이 많다.[2]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열차의 도착'''[3] 학부모 계층의 단골 멘트인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게임에 빠져서 공부를 안 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등등만 봐도 게임에 대한 적대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4] 사실 이런 식의 반박은 결국 세대갈등 특유의 선민사상 비슷한 논리에 막히기 쉽다. '니네 세대는 저급하고 우리 세대는 고등하다. 고로, 우리 세대 문화는 고등하고 니네 세대 문화는 저급하다. 게임은 니네 세대 문화니까 저급하다.' 전제부터 잘못됐지만, 그 전제를 머릿속에서 바꿀 생각이 없는 이가 생각보다 많다. 휴식 이야기의 경우, 결국 노동 문제 특유의 비논리적인 주장이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인은 노동권 같은 거 필요없다.' 같은 단체행동권을 혐오할 때 자주 나오는 그 주장들 말이다.[5] 쓸데없이 돈만 낭비하고 대중 소비 행태와 유리되어 있다는 식의 비난이 이런 생각에서 나온다.[6] 과거에는 오락실, 오늘날에는 PC방이 아무리 서비스가 좋아졌음에도 은근히 '폐인들이나 가는 곳'이란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7] 물론 대한민국 게임을 옹호하는 몇몇 사람이 말하는 대로, 게임 회사는 영리를 노리는 조직이다. 게다가 넥슨은 2005년부터 모든 게임을 부분 유료화로 바꾸면서, 할 수 없이 캐시 샵을 만들었다. 다만 아무리 현실이 그래도 게임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캐시 아이템을 만들면 Pay to Win 게임이라고 온갖 욕을 먹으며 버려지기 일수다. 만약 그래도 인기가 여전하다면 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대부분의 정신상태가 도박 중독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보면 된다.(...)[8] 중요한 것은 "희극적이거나 남녀관계", "서민들이 즐기는"이다. 즉 고객들의 입맛에 맞았다는 소리. 열에 아홉은 판타지FPS만 가득한 온라인 게임 시장의 현실을 보면 크게 생각해야 될 부분이다.[9] 최춘식, 프랑스 영화의 대중성 - 영화 <탕기Tanguy (Etienne Chatiliez : 2001)>를 중심으로, 한국프랑스학논집 제 57 집 (2007) pp. 415~434.[10] 다만 키덜트란 단어가 생겨난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완구와 게임을 동일시하는가의 문제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