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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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박근혜 (부친 박정희) 영부인대행
4. 홍기 (남편 최규하)


1. 프란체스카 도너 (남편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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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sca Donner Rhee[1]
1900년 6월 15일 ~ 1992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 출신. '''25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후처이며[2], 도너 역시 이혼녀였다가 역시 이혼남이었던 이승만을 만나 재혼하였다. 미국에서 살다가, 광복 후 대한민국으로 와서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첫 번째 대통령 부인이 되었다. 초대 영부인이자 현재 기준으로 유일한 외국인 영부인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을 경험한 노인들은 흔히 '호주댁'이라고 부른다. 당시에도 영부인의 별명이기도 했는데 사실 이는 영부인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호주)를 혼동해서 나온 별명이다. 한국전쟁 당시 일명 '쌕쌕이'라고 부른 제트 전투기들을 호주 비행기라는 의미의 '호주기'라고도 불렀는데, 이 호주기를 보고 사위 도와주려고 날아온 전투기라고들 착각했다고 한다.
참고로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실제로 남한을 돕기 위해 파병한 파병국들 중 하나지만, 영부인의 진짜 모국인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개국의 분할 군정 통치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때문에 6.25에는 당연히 군대를 파병할 수 없었다.
슬하에는 혈연 관계가 없는 이봉수와 이강석, 이인수 세 명의 아들이 있으며, 도너 본인은 자녀를 낳지 못했다[3].

2. 공덕귀 (남편 윤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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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4월 21일 ~ 1997년 11월 24일
경상남도 통영군 출신. 윤보선 전 대통령과는 15살 차이이며, 윤보선에게는 재혼이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늦은 나이인 39살에 결혼했다. 공덕귀는 5.16 군사정변으로 1년 6개월만에 영부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영부인에서 물러난 뒤로도 구속자 석방 운동, 기생관광 반대 운동, 원폭 피해자 돕기 운동 등을 전개하며 사회운동가로 적극 활동했다.
슬하에는 혈연 관계가 없는 딸 2명[4]과 본인이 직접 낳은 친아들 2명이 있다.

3. 육영수 (남편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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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1월 29일 ~ 1974년 8월 15일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 170cm에 육박하는, 당시로서는 거인이고 현재로서도 매우 장신으로 역대 영부인들 중 가장 키가 크다. 지금 기준으로도 여자로서는 엄청난 장신이다. 박정희의 2번째 부인이다. 박정희의 첫번째 부인은 김호남이며, 이현란이라는 여성이 2번째 부인이 될 뻔했으나 파경을 맞았다. 육영수는 6.25 전쟁 당시 일가족이 대구광역시로 피난을 내려왔다가, 박정희 소령을 소개받아 결혼했다. 이후 박정희가 집권하며 영부인이 되었다.
슬하에는 장녀[5]인 전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1952~), 차녀[6] 박근령(1954~), 장남[7] 박지만(1958~)이 있다. 김호남이 낳은 의붓딸인 박재옥(1937~2020)과는 같이 생활한 기간은 몇 년 되지 않지만, 중매를 시켜주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영부인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전현직 대통령의 영부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 조사 결과, 육영수가 과반수를 넘는 65.4%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박정희 본인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다 "여기 야당 총재께서 계시니 다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농담을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여기서 비롯된 별명이 '청와대 안의 야당'. 체계가 하나도 잡혀 있지 않던 청와대 내의 의전 체계를 처음으로 정립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외국 국빈 방문시에도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의전하는 식이었다.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때 살해당했다.

3.1. 박근혜 (부친 박정희) 영부인대행


모친 육영수가 문세광에게 살해당한 1974년부터 이후 박정희가 1979년 10.26 사건으로 암살당하기 전까지 5년간(1974년 8월 15일 ~ 1979년 10월 26일) 장녀 박근혜가 외국 정상 접견 등 통상 영부인이 담당하는 역할을 대행했다.

4. 홍기 (남편 최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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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3월 3일 ~ 2004년 7월 20일
충청북도 충주시 출신. 만 8개월 10일간 재임하여 역대 영부인들 중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다. 부군인 대통령이 최단기간 재임이니 당연한 거지만. 대외활동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영부인으로,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부덕을 지녔다는 평을 들었다.[8]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5. 이순자 (남편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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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3월 24일 ~ (85세)
만주 출신. 경기여자중학교와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의사를 꿈꾸어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재학 중 전두환과 결혼하려고 중퇴, 1958년에 결혼했다.[9] 친인척의 비리 등 영부인 재임 시절에도 구설수에 올랐다.

6. 김옥숙 (남편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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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8월 11일 ~ (89세)
물태우로 유명한 남편과는 달리, 매우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활동은 본인이 알아서 마다했다. 전임자인 이순자가 워낙에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청송군 출신.

7. 손명순 (남편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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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월 16일 ~ (95세)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재학 중이던 1951년 동갑내기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10]

8. 이희호 (남편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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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9월 21일 ~ 2019년 6월 10일
서울특별시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2번째 부인이다. 첫 번째 부인이었던 차용애는 1959년 사망했다.[11][12] 김대중보다 2살 연상[13]으로,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였다. 영부인 자리에서 물러난 뒤로도, 김정일 사망시 방북하여 조의를 표하는 등[14] 민주당 계열 내에서는 강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슬하에는 김대중을 기준으로는 셋째인 김홍걸이 있으며 김대중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김홍일김홍업에 대해서도 새어머니 역할을 수행하였다.

9. 권양숙 (남편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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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2월 2일 ~ (76세)
경상남도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국민학교 동기동창이며, 손명순 여사의 국민학교 후배가 된다. 노무현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전에 결혼하여, 뒷바라지를 했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며 영부인이 되었다.

10. 김윤옥 (남편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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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 26일 ~ (77세)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3살 때 대구로 이사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보건교육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1970년 결혼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77년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했으며 1988년 현대건설 회장이 되었는데 이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뒷바라지를 했다. 슬하에는 1남 3녀를 낳았는데, 이시형(1978~)은 막내아들이고, 이시형은 2014년 10월 9일 결혼했다.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의 막내사위이다.

11. - (박근혜)


박근혜가 여성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한 호칭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를 칭하는 말은 부군(夫君)이라고 하며[15] 영어로는 First Gentleman라 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미혼.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 결혼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18대 대통령의 배우자 자리는 공석이다.
때문에 외국 정상 방문시 의전으로서의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누가 할 것인가로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 부인이 맡을 확률이 거론되었으며, 정홍원 총리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왔다. 또는 외교부 장관 부인이나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맡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
결국은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 # 외국 정상이 방문하더라도 정상과 배우자의 짝을 꼭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고, 배우자의 일정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따로 조정할 수 있으니 꼭 퍼스트 레이디를 대행할 인물을 내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2014년 7월 3일 중국시진핑 주석 방한 때에는, 조윤선 정무수석비서관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영부인을 전담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이 최순실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관련 기사.
결국 박근혜가 파면되면서 박근혜의 부군은 영원히 나올 일이 없게 되었다. 거기다 최소 20년 이상 교도소에서 수감되어 있어야 해서 수감생활 중 옥사할 가능성이 더 높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국무총리의 부인 최지영 여사가 영부인 대행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최지영 여사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만약 박근혜가 결혼했다면 헌정 사상 최초로 퍼스트 젠틀맨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12. 김정숙 (남편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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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1월 15일 ~ (70세)
서울특별시 출생. 경희대학교 성악과 재학 중, 당시 법학과에 재학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7년 연애 끝에 1981년 결혼.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평소에 진지하고 무뚝뚝한 편인 문재인 대통령과는 달리 반대로 활발하고 명랑한 성격이라, 일부 지지자들은 '유쾌한 정숙씨'라는 애칭을 한다. 과거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

[1] 본명은 Franziska Donner이다.[2] 전처 박승선과는 이혼하였다.[3] 이 중에 이봉수만 이승만의 전처 박승선 사이에서 태어난 친자식이며, 이강석과 이인수는 입양한 자식들이다. 이강석과 이인수를 들이기 전에 입양한 이은수라는 또다른 양자도 있었지만, 이은수와는 파양하였다. 참고로, 이봉수는 이승만이 재혼하기 한참 전에 요절해서 당연한 말이지만 도너와 이봉수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4] 딸들은 윤보선과 사별한 전처가 낳은 자식들이다.[5] 박정희를 기준으로는 차녀이다.[6] 박정희에게는 3녀.[7] 박정희육영수와 재혼하기 전, 동거했던 이현란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말이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고 전해진다.[8] 영부인이 되어서 청와대에 가야 한다는 기자의 말에 "김장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라고 했다고.[9] 이는 이화여자대학교의 특수한 학칙 때문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대에는 2003년까지 '''재학생이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금혼 학칙이 존재'''했다. 이화학당을 설립한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강제 조혼의 악습으로부터 신체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여학생들을 보호하고 그녀들의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었다. (오늘날 중동 등에서 강제 조혼을 당하는 여아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금혼 학칙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되었고, 결국 2003년 폐지되었다.[10] 당시 이화여자대학교에는 금혼 학칙이 있었으나, 손명순은 결혼과 임신을 숨기고 학교를 끝까지 다녀 졸업했다.[11] 자살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지병을 앓다가 약물쇼크로 사망하였다. 김대중의 자서전에 따르면 사망 직후부터 이런 소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시 연이은 낙선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이런 소문이 퍼지게 된 듯하다.[12] 흥미로운 점은 전두환의 부인인 이순자와 차용애는 친인척 관계란 거다.[13] 이희호 1922년생, 김대중 1924년생.[14] 전 영부인이나 정부 특사 자격은 아니었다. 김정일 사망 직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탓에 개인자격 방북이었다.[15] 보통 '영부군(令夫君)'이라는 명칭이 퍼져있으나, 부인과 달리 부군은 그 자체로 높이는 의미(君)가 있기 때문에 영(令)자를 붙인 영부군은 이중 높임에 해당하는 오류를 내포한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