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폰 로이엔탈/작중 행적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2. 유년기 ~ 사관학교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우주력 767년 제국기사 작위를 가지던 로이엔탈 가문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재무성에서 일했으나, 폐쇄성과 계급성이 강한 관계,官界,에는 미래가 없다고 여기고 천연자원 광산에 투자하여 5년 만에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다.
먹고살 걱정을 덜자 폰 로이엔탈은 40대가 넘어 어느 정도 명문가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다. 이때 지인이 마르바흐 백작가의 셋쩨 딸 레오노라 폰 마르바흐를 소개해 주었는데, 마르바흐 백작가는 명문귀족이었지만 당주의 2대에 걸친 과소비 탓에 재산을 탕진해서 황실에서 생활안정을 위해[1] 내려준 고금리 채권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폰 로이엔탈은 레오노라의 빼어난 외모와 명문귀족 출신이라는 것에 반해 마르바흐 백작가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레오노라와 결혼했다.
그러나 둘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폰 로이엔탈은 자신의 나이와 신분에 열등감을 느끼고 물질로 이를 메우고자 했으며, 레오노라는 끊임없이 과소비를 일삼았다. 심자어 레오노라는 남편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태어났다. 오스카는 선천적으로 검은 눈과 푸른 눈을 가진 오드아이로 태어났는데, 이걸 본 레오노라는 자신이 불륜한 증거라고 생각한 나머지[2] 아직 어린 아기였던 오스카의 검은 눈을 칼로 도려내려고 했다가 하녀에게 발각되어 실패했다. 결국 자신의 부정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절망한 레오노라는 자살했으며 이 일은 오스카에게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되어 그가 여성혐오에 빠진 원인이 된다.
심지어 레오노라의 남편 폰 로이엔탈은 아내의 불륜과 연이은 자살로 실의에 빠져 술독에 빠져 지내며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아무런 죄도 없는 아들 오스카에게 모조리 쏟아냈다. 오스카에게 매일같이 "넌 우리 부부를 불행하게 하려고 태어났다. 너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라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퍼부으며, 자식은 커녕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것. 이런 아버지의 발언은 어린 로이엔탈에게 큰 충격과 정신적 상처를 안겨줬다.
나이가 되자 사관학교에 입학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했다.
3. 미터마이어와의 만남
오스카 폰 로이엔탈과 볼프강 미터마이어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우주력 789년, 이제르론 요새에서였다. 당시 미터마이어는 중위로 승진했지만 로이엔탈은 대위에서 중위로 강등되어 있었다.
그 전말은 전함 크로센의 함장 단네만 중령의 딸을 두고 세 구혼자가 경쟁을 벌였으나 중령의 딸은 그들을 무시하고 로이엔탈에 끌려버리고 급기야 로이엔탈에게 목을 매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로이엔탈은 성격답게 그 여자와 잠자리를 한번 가지고 바로 헤어지면서 버림받은 중령의 딸은 울고불고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로이엔탈이 이 여성을 차갑게 내버리다시피 하자 격분한 경쟁자들이 로이엔탈에게 결투를 신청, 로이엔탈은 연달아 3번 결투하여 3번 전승하였다. 그리고 군사법원에서는 장교 신분으로 사적인 결투를 벌인 죄로 '''관련자 모두가 강등처분되었다.''' 당시 로이엔탈은 대위에서 중위로 강등, 다른 장교들도 사이좋게 1계급 강등되었다.[3]
로이엔탈은 이 일로 본래의 임지를 떠나 이제르론 요새로 부임했는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미터마이어도 이제르론 요새에 부임했다. 당시 이제르론에는 힌터 페잔이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이 술집에 일하는 여성을 한 손님이 사살하여 요새 전체가 들끓는 사건이 있었다. 로이엔탈은 이 사건에서 미터마이어를 만났고, 둘은 흉금을 터놓는 친구 사이가 된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싸워 수많은 무훈을 올렸다. 군부에서도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면 능률이 오른다는 사실을 깨달아 의도적으로 둘을 같은 작전에 배치했다.
4. 황금사자를 만나다
끊임없는 무훈을 올린 로이엔탈은 20대에 소장까지 올랐다. 이때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의 테러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주최한 연회장에서 다수의 문벌귀족 사상자가 나왔고, 대귀족들은 복수전을 부르짖으며 클롭슈톡 후작령 토벌에 나섰다. 이때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는 대귀족들의 지휘를 돕는 전투기술고문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대귀족들이 하도 말을 들어먹지 않아 후작령 토벌에 1달이나 걸릴 정도로 토벌군을 고전했다. 겨우 후작령은 토벌군에게 점령당했으며, 점령한 토벌군 청년귀족들은 후작령 주민들을 상대로 약탈과 폭행을 일삼았다. 이 사실에 분개한 미터마이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들을 말리는데 주력했으나, 결국 일이 터지고 만다.
사건의 발단은 한 청년귀족이 노부인을 폭행하고 사파이어 반지를 빼앗으려고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노부인이 사파이어 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반지를 삼키자 그 대위는 크게 웃고는 노부인을 살해하고 반지를 꺼냈다. 그걸 목격한 미터마이어가 분노해서 대위를 즉결처형했고, 대위와 연줄이 있던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바로 미터마이어를 수감했다.
위기에 놓인 미터마이어를 구명하기 위해 로이엔탈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대항하여 미터마이어를 구해 줄 인물을 찾았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라인하르트 폰 뮈젤 대장이었다.
우주력 795년 5월 2일, 로이엔탈은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라인하르트 폰 뮈젤이 살던 하숙집에 찾아와 미터마이어와 자신의 충성과 하급귀족 및 평민 장교들의 명망을 걸고 도움을 청했다. 골덴바움 왕조를 뒤엎을 생각이었던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이 동지로 믿을 수 있는지 은근슬쩍 떠보았고, 로이엔탈은 골덴바움 왕조는 노쇠해 고름이 찌들었으며, 외과수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은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을 믿고 미터마이어의 구명에 힘을 쏟았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라인하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이때 라인하르트는 주산나 폰 베네뮌데 후작부인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로이엔탈은 여성 경험이 없는 나머지 세 사람을 대신해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몰아붙일 책략을 고안하기도 했다.
5. 제국령 침공작전 - 립슈타트 전역
우주력 796년, 자유행성동맹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제국령을 침공하자 제국정부의 명에 따라 라인하르트 원수부가 요격 임무를 맡게 되었다.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 휘하 장수로 알렉산드르 뷰코크 제독이 지휘하는 동맹군 제5함대를 패퇴시켰으며, 암릿처 회전에서도 참전하였다. 이 때의 공으로 대장으로 승진한다.
립슈타트 전역이 터지자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 파에 속하여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는 미터마이어와 함께 함정을 파 제국군 장갑척탄병 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을 사로잡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으나,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는 상대가 제국군의 숙장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이라서 고전하다가 결국 성역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그러나 무능한 문벌귀족들은 자신에 군재가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멋대로 출격하다가 끊임없이 패배했고, 귀족연합군은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을 끝으로 와해된다. 그렇게 라인하르트군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점령하고 내전의 승리자가 되었지만, 승전축하식에서 안스바흐 준장의 라인하르트 암살기도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사망한다.
둘도 없는 친구였던 키르히아이스를 잃은 라인하르트는 폐인이 되었고, 다른 장성들은 요새를 공동관리하며 함구령을 내렸지만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황. 그러나 어느 제독도 이 사태를 타개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때 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중장이 와서 이걸 기회로 우리들을 숙청할 궁리를 하고 있는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을 먼저 숙청해야 한다고 다른 제독들을 설득하자 수긍하고 남은 제독들과 함께 제도 오딘으로 달려가 리히텐라데 공작을 몰아내고 국정을 장악했다. 이때 로이엔탈은 리히텐라데 공작 저택으로 달려가 그의 일족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역할을 맡았다.
오딘 제압이 끝나자 제독들은 라인하르트에게 결과를 보고해야 했는데,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아서 결국 제비뽑기를 했고 로이엔탈이 당첨되었다.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에게 리히텐라데 일족에 대한 처분을 묻자 라인하르트는 여자와 아이들은 변경에 유배를 보내고 10세 이상의 남성은 모두 처형하라는 극단적인 처분을 내린다. 여기에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의 야심에 불을 지피는 발언을 한다.[4]
립슈타트 전역이 끝나자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와 오베르슈타인과 함께 상급대장으로 승진하여 라인하르트 체제의 3인자가 되었다.『내가 유년학교에 들어간 것이 열 살 때였다.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아직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으니, 목숨은 살려주겠다. 만약 성장해 나를 치려 한다면, 그것도 좋겠지. 실력이 없는 패자가 타도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니.』
라인하르트는 웃었다. 화려한 웃음소리였으나 그것은 이전과는 어딘가 살짝 다른 울림을 내포한 것 같았다.
『경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쓰러뜨릴 만한 자신과 각오가 있다면 언제든 도전해도 상관없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356
6.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재국재상 겸 제국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사, 정치 양면에서 전권을 장악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과학기술총감 안톤 힐머 폰 샤프트 대장이 제안한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워프작전을 듣고 양 웬리가 점거한 이제르론 요새 공략작전을 실행한다. 이 작전에서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와 함께 제외되었는데, 두 제독이 공을 세우면 라인하르트와 동급의 자리가 될 것을 우려한 오베르슈타인이 둘을 제외하고 대장급 제독 중에서 결정하라고 라인하르트에게 충고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장급인 칼 구스타프 켐프와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이제르론 요새 공략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켐프는 양 웬리 함대의 선전으로 요새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전황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만다. 뒤늦게 켐프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 라인하르트는 즉각 켐프를 돕도록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을 출격시켰다. 그러나 로이엔탈이 전장에 도착했을 땐 켐프는 죽고 뮐러가 남은 패잔병을 이끌고 도망치던 중이었으며, 두 제독은 패잔병을 수용하고 무질서하게 쫓고 있던 응웬 반 티우 소장과 산도르 알라르콘 소장의 분함대에 일격을 가해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
7.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에서 로이엔탈은 이제르론 회랑 방면군의 총사령관을 맡아 이제르론 요새 공략작전에 나서게 되었다. 서전에서 양 함대를 끌어내 양 웬리에게 한방 먹이지만 이걸 역이용한 양 웬리의 궤계에 낚여 기함 '트리스탄'에 동맹군 최정예 육전부대 로젠리터 연대의 침입을 허용하고 만다.
장갑척탄병이 기함 내를 휘젓고 다니자 로이엔탈은 급히 장갑복으로 갈아입으려 했으나 갈아입기도 전에 이제르론 요새 방어사령관 발터 폰 쇤코프 소장과 조우에 불리한 상태로 백병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불리한 상황에도 쇤코프와 호각의 승부를 보이며, 제국군이 구원하러 올 때까지 버텼다.
이후 로이엔탈은 토르 하머의 사정권 내로 500척 정도의 그룹을 형성해 일격이탈 방식으로 요새를 공략한다. 그러나 요새는 건재했고, 2000척의 함정을 잃은 로이엔탈은 계획대로 오딘에 공략 실패를 보고했다.
계획대로 라인하르트는 이제르론에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떠들썩하게 한 다음 비밀리에 군대를 반전시켜 페잔 회랑을 점령하고, 뒤이어 동맹령 내로 침입한다. 그러자 양 웬리는 요새를 버리고 동맹령으로 후퇴하자 로이엔탈은 요새에 무혈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로이엔탈은 요새는 코르넬리우스 루츠 대장에게 맡기고 자신은 간다르바 항성계 행성 우르바시에 주둔한 제국군과 합류한다.
그러나 양 웬리는 과감히 수도 하이네센의 방위를 포기하고 광대한 동맹령 내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제국군의 내로라하는 제독들을 패퇴시켰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미끼가 되어 양 웬리와 싸우는 동안 동맹령을 점령하러 간 다른 제독들이 반전하여 양 함대를 포위섬멸하는 계획을 내놓는다. 로이엔탈은 이에 따라 리오베르데 성역을 점령하기 위해 출진했다.
그러나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는 뮐러의 난입에도 불구하고 패배하여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고, 이걸 본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는 미터마이어에게 달려가 즉각 하이네센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미터마이어는 인근 성계에 있던 로이엔탈과 연락해 하이네센으로 진공한다.
이때 해프닝이 있었는데, 미터마이어 부하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은 로이엔탈을 나쁘게 보고 있었던 터라 로이엔탈 함대를 상대로 제1급 임전태세를 걸었다. 사실 로이엔탈도 자신의 야심 때문에 어느 정도 고민하기는 했으나, 결국 하이네센으로 진공하기로 결정했다. 어쨌든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와 함께 바라트 성계로 진공하여 동맹정부의 항복을 받는 데 성공한다.
8. 황금사자기 아래에서
로엔그람 왕조 창건 이후 로이엔탈은 제국원수로 승진하여 통수본부총장에 임명된다. 이 때 스스로를 리히텐라데 공작 일족이라고 주장하는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에게 암살당할 뻔하는데, 도리어 엘프리데를 제압하고 강간해버렸다.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제국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 대장이 자살하자 상급대장 이상의 고관들로 회의가 열렸는데, 로이엔탈도 이 회의에 참석했다. 양 웬리의 처벌을 두고 오베르슈타인과 다른 제독들간의 논쟁이 격렬해지자 내무성 내국안전보장국장 하이드리히 랑이 미터마이어를 두고 렌넨캄프를 비판하는 것은 황제를 비판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자 로이엔탈은 바로 랑을 질타했다.
이 말을 들은 랑은 그대로 사색이 되어 제독들의 조소를 받으며 퇴실해야 했다. 이 일 이후로 랑은 로이엔탈을 증오하게 된다."닥쳐라, 이 상것!"
채찍을 내려치는 듯한 질타는 당사자인 미터마이어가 아니라 로이엔탈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사령장관의 정론을 가로막으려고 자신의 견식이 아니라 감히 폐하의 어명,御名,을 들먹이느냐!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려는 약삭빠른 여우같으니! 애초에 네놈은 내무성의 일개 국장에 불과한 몸이 아니더냐. 무슨 까닭으로 상급대장 이상만이 출석할 수 있는 이 회의에 낯짝을 들이댄 것이냐. 하물며 원수들의 토론에 끼어들다니,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당장 나가지 못할까! 아니면 제 발로 걸어서 나가기 싫은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6권 <비상편>, 김완, 이타카(2011), p.306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이 발발하자 로이엔탈은 통수본부총장으로서 황제 바로 옆에서 황제를 보좌했다.
9. 축제 전야
하이네센 제압으로 자유행성동맹이 멸망한지 얼마 안 된 우주력 800년 2월 쯤 페잔에 있던 사법상서 브룩도르프는 로이엔탈 원수에게 불온한 기척이 있다는 보고서를 하이네센의 제국군 총본영에 올렸다. 이 보고서가 도착하자 라인하르트는 이제르론 회랑 친정을 중단하고, 로이엔탈을 구금했다.
이 보고서가 만들어진 경위는 이렇다. 구 동맹의 특사로 미터마이어 원수와 회담을 했던 윌리엄 오데츠는 회담이 결렬된 이후 황제를 만나러 페잔으로 향했지만 황제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러자 오데츠는 페잔을 돌아다니며 로이엔탈 원수에 역모의 의도가 있다는 소문을 유포했고, 로이엔탈을 끌어내리고 벼르고 있던 랑과 군부에 대한 사법성의 우위를 확립하고 싶어한 브룩도르프가 달려들어 로이엔탈의 사저에 있던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의 신분과 그녀의 증언을 청취하여[5] 로이엔탈을 탄핵한 것이다.[6]
다만 브룩도르프에 의해 로이엔탈이 탄핵되었어도, 국가의 중신인 만큼 가혹한 심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이엔탈을 심문할 사람인 나이트하르트 뮐러는 로이엔탈에 깍듯히 예의를 지켰으며, 로이엔탈의 심복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의 배석을 허가했다. 이 자리에서 로이엔탈은 자신의 의혹에 대해 해명한 후 뮐러에게 황제 알현을 부탁했다,
알현 장소는 겨울장미원이 보이는 구 동맹 국립미술관의 대형 홀이었다. 이 자리에서 로이엔탈은 엘프리데를 사저에 둔 것에 대해 뉘우치고 있으나 역모와는 전혀 관계도 없으며, 엘프리데가 증언한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고 아이를 가진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 장소에서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과의 우의를 믿어 당장 별다른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10. 영광의 절정, 몰락의 시작
라인하르트 황제의 자유행성동맹 정복 후,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는 로이엔탈에 대한 중상모략에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에 대한 자신의 막대한 신뢰를 표현하기 위해 구 동맹령 전체를 노이에란트,Neueland, 신영토,,로 구성하고 노이에란트 전부를 총괄하는 총독직으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을 임명한다.
로이엔탈은 통수본부총장 시절 자신이 지휘하던 함대를 그대로 지휘하게 되었고, 거기에 더해 크납슈타인과 그릴파르처의 함대도 휘하에 두었다. 그 결과 탄생한 노이에란트 치안군 '''함선 3만 5800척, 총병력 522만 6400명'''의 대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카이저 라인하르트에 이어 이것은 은하제국에 있어 2번째로 강력한 무력집단이 되었다.[9]"로이엔탈 원수. 경을 통수본부총장에서 해임한다."
말없는 술렁임이 급격히 가청영역까지 높아지려 했으나, 첫 선고에 이은 라인하르트의 목소리는 겨울장미원 전역에서 사람들의 분안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아울러 경에게 명령한다. 제국 노이에란트,Neueland, 새 영토. 여기서는 구동맹령,의 총독으로서 행성 하이네센에 주재하며 구동맹령 전역의 정치 및 군사를 총괄하라. 노이에란트 총독은 각 행정성의 상서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며, 대우도 이에 따를 것이다. 또한 오로지 황제에게만 책임을 진다."[7]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7권 <노도편>, 김완, 이타카(2011), p.321[8]
이후 하이네센에 총독부를 두고, 제국 노이에란트 총독으로서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로이엔탈은 군사적인 재능뿐 아니라 행정, 정치적인 재능도 매우 뛰어나 구 동맹에 산적해 있던 부정부패를 바로잡아 노이에란트를 안정시킨다.[10]
그러나 계속된 지구교 잔당의 모략에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이 발생하여[11] 어렵사리 끌어모은 구 동맹시민들의 민심이 악화되는 등 닥쳐오는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였지만 지구교 잔당이 준비한 엄청난 음모를 예측하지 못하였고, 결국 우르바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카이저께 고개를 숙이는 것은 상관없다. 아니, 신하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로이엔탈은 입을 다물었으나 베르겐그륀은 그의 흉중에 담긴 주장을 상상할 수 있었다.
'오베르슈타인이나 랑 따위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겠는가.'
(중략)
"반역자가 되는 것은 언제든 상관없네, 그러나 남 손에 의해 반역자가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군."
오스카 폰 로이엔탈, 우르바시 사건으로 코르넬리우스 루츠 상급대장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란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며./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 173
우르바시 사건으로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노이에란트에서 '''행방불명'''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을 급히 우르바시에 파견하여 상세한 조사를 명한다. 그러나 평소 로이엔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그릴파르처는 '''마음에 안드는 로이엔탈도 날려버리고, 자신의 군공을 세울 기회를 만들겠다는 욕심'''에 '''사건과 지구교와 연관이 있다는 관련증거들을 모조리 은폐'''하고 진상을 숨겨 로이엔탈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결국 황제가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행방불명되고, 동료이자 카이저의 신임받는 장군인 코르넬리우스 루츠가 전사하기까지 했는데 사건의 원인도 모르게 되어 결국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자신이 통솔하는 노이에란트 치안군을 이끌고 원하지도 않은 반란을 일으켜 '''로엔그람 왕조 최초의 반역자'''가 되었다.[12]
로이엔탈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정말 복합적이다. 로이엔탈 스스로의 야심, 언제나 완벽했고 언제까지나 완벽해야만 했던 황제가 보이는 양 웬리에 대한 집착감과 병세가 생기며 금이 가기 시작한 완벽한 군주상의 모습, 자신을 끌어내려는 하이드리히 랑과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던 오베르슈타인에 대한 반감, 한번 반역자로 의심받은 처지에서 벗어났다 싶었더니 또다시 반역자로 내몰렸다는 절망감,[13] 무엇보다 우르바시에서 황제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공격당해 도망치듯 행성을 빠져나가 실종되었고 루츠 상급대장이 살해당했다는 초유의 사태, 이에 대해 변명할 어떠할 증거도 없다는 점까지 겹치며 자포자기적 심경이 완성된 것이다.
이후 몰려오는 제국 토벌군에 대한 작전을 세우지만 예상밖의 미터마이어의 진공속도로 방어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었고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협력을 얻어 이제르론 회랑을 틀어막아 페잔 회랑에서 오는 토벌군을 요격하려 했으나 이제르론 측이 협력을 거부하는 등[14] 제2차 란테마리오 회전에서 패배, 여기에 우르바시 사건때부터 음모의 칼을 갈아오던 그릴파르처의 배신으로 함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기함 트리스탄이 피격되어 로이엔탈 자신도 치명상을 입는다.
11. 검으로 흥하고 검으로 쓰러지다
그릴파르처의 배신으로 일시적으로 붕괴위기에 몰린[15] 로이엔탈군은 빠르게 함대를 재편성하여 배신자 그릴파르처 함대에게 분노의 반격을 퍼부어 '역겨운' 배신행위는 진압되었으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몰려오는 미터마이어 함대를 이겨낼 수 없었다.
그렇게 노이에란트 전역은 실질적으로 여기서 종결되었다. 휘하 함대를 잃어버린 로이엔탈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다. 자신이 반란을 성공시키기는 커녕 반란을 이어나갈 힘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로이엔탈은 중상을 입었음에도 군의관의 수술 권고도 거절하고 기초적인 응급처치만을 받는다.
로이엔탈은 진통제와 조혈제,造血劑,만 주기적으로 맞을 뿐 그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았으며, 상상도 못 할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게 분명함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지휘석에 앉아 정확한 판단과 지시로 부대를 지휘했다. 게다가 중간에 로이엔탈이 뇌빈혈로 의식을 잃는 바람에 병상으로 옮기려 했으나, 부하들이 로이엔탈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마치 자신이 언제 의식을 잃었냐는 듯 정신을 차리고 부하들을 호통쳐서 돌려보내면서 지휘석을 떠나는 것을 거부했다.[16] 게다가 기함 트리스탄이 워프를 하면서 발생한 진동으로 상처가 터지는 바람에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을 때도, 수혈을 받고 의식을 되찾은 후에 트리스탄의 지휘석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즉 로이엔탈은 '''이 시점에서 이미 살 생각을 포기했다.'''"심장과 폐를 잇는 혈관 일부가 손상되었습니다. 일단 냉동해 지혈했으며 상처도 접착했습니다만, 속히 본격적인 수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술은 좋아하지 않는데."
"호오를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각하.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아니, 호오 이상의 문제일세. 군의관, 나에게 잠옷 차림으로 병원 침대에서 죽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그리 생각하지 않는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280~281
상념에 빠져있던 로이엔탈은 디터스도르프의 설득, 그리고 필사적인 방어 지휘로 남은 함대 일부를 지휘하여 자신의 집무실, 노이에란트 총독부 소재지 하이네센으로 복귀한다. 로이엔탈이 전장을 떠난 이후 디터스도르프도 부상을 입고 항복, 남은 치안군은 전원 투항한다.
'''행성 하이네센에 귀환한 로이엔탈 군 병력은 발진했을 때의 1할이 조금 넘는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함정 4580척, 장병 65만 8900명. 돌아오지 못한 자들 중 반수는 전사했으며 반수는 포로 내지 투항자가 되었다. 소수지만 행방불명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참패였다. 그래도 돌아온 부대가 질서를 유지하며 질서정연하게 행동 한 것은 로이엔탈의 강한 통솔력을 증명해준 것이리라. 물론 이는 저무는 태양의 마지막 전조였으며, 단애절벽 끄트머리를 빛내줄 만한 광량 밖에는 남지 않았지만.'''[17]
싸우다 죽거나, 싸우다 항복하긴 했어도 그릴파르처를 제외한 로이엔탈의 부하들은 그 누구도 도망치거나 배반하지 않았다. 몇몇 부하들은 자신들이 반역으로 처형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반란이 실패했다는 사실도 잘 알았으나 로이엔탈을 향한 충성심이 사라지기는 커녕 무려 '''약 4천 명의 장병이 로이엔탈과 최후를 함께 하겠다'''라 하며 총독부에 집결하였다. 그 말을 들은 로이엔탈은, "그래? 의외로 세상에는 '''바보'''가 많군."이라 평했다.[18]
'''로이엔탈의 냉철한 이성은 '자신의 행동에 의해 충실한 부하들이 상처입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12월 16일.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남아 있는 마지막 일을 매듭짓기 위해 노이에란트 총독부로 복귀하였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긴 하루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총독부로 돌아온 로이엔탈은 연금에서 풀려난 민정장관 엘스하이머에게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정무와 사무의 전권을 맡기고 마지막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욥 트뤼니히트를 불러온다. 불려오자마자 욥 트뤼니히트는 궤변가답게 자신만만하게 말을 쏟아내지만, 내뱉은 말 중에 라인하르트를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애송이'라고 부른 게 화근이 되어 로이엔탈에게 블래스터로 처형당한다. 트뤼니히트를 쏜 뒤, 로이엔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뤼니히트가 죽자, 로이엔탈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네놈이 민주공화정치를 우롱하건, 국가를 잡아먹건, 시민을 현혹하건, 그런 것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로이엔탈의 색이 다른 두 눈이 냉혹한 빛으로 트뤼니히트의 얼굴을 쏘아보고, 자유행성동맹 전 국가원수의 장신을 떨게 했다.
"그러나, 그러나 그 지저분한 혀로 카이저의 존엄에 오물을 처바르는 행위는 용서하지 못한다. 나는 네놈 따위에게 모욕당할 분을 섬기거나 저버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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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298~299
죽은 트뤼니히트의 시체를 치워버리고, 죽음에 점차 가까워진 로이엔탈 앞에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가 나타나 로이엔탈에게 자신이 낳은 아이를 보여준다. 그는 이전부터 아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끝끝내 불쾌한 놈이로군. 내가 생애 최후에 죽인 자가 무기도 들지 않았다니....... 내게 불명예를 남겼구나"[19]
자신의 아이를 친우 미터마이어에게 맡기라는 말을 남기고 로이엔탈은 엘프리데에게 자신을 죽일 테면 죽이라고 한다."고대에 어떤 잘난 인간이 그런 말을 했다지. 죽을 때 어린 자식을 맡길 만한 벗을 가진 것은 인생 최고 행복이라고......"
식은땀 한 방울이 책상 위에 떨어졌다. 목숨 한 방울이 또 몸 밖으로 새어나온 것이다.
"볼프강 미터마이어를 만나서, 그 아이의 장래를 맡겨라. 그것이 그 아이에게 최선의 인생을 보장해 줄 테니."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303
그러나 엘프리데는 로이엔탈을 죽이지 않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준 후 당번병에게 아이를 미터마이어에게 맡겨 달라는 말을 남기고 총독부를 떠난다. 당번병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묻자 로이엔탈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죽일 거라면 지금 죽이는 게 좋을걸. 안 그러면 영원히 기회를 잃을 테니, 무기가 없다면 내 블래스터를 써라......."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304]
술을 준비하고 친구 미터마이어를 기다리던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가 행성 하이네센의 총독부에 도착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숨을 거둔다.'''"미안하다만 미터마이어가 올 때까지만 올 때까지 안아다오. 아, 그리고 그쪽 찬장에는 위스키가 있을 테니 부탁하마. 잔도 두개 가져오고."'''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304
[image]
"너무 늦는 것 아닌가, 미터마이어......."
미주의 향이 색채를 잃어가는 시각을 조용히 침범하기 시작했다.
"경이 올 때까지 살아있을 생각이었건만, 왜 이리 늦는단 말인가. 질풍 볼프라는 현란한 별명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305
그의 마지막 말을 기록한 당번병 하인리히 람베르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마인 카이저. 미터마이어, 지크, 죽음.』[20]
'''12월 16일 16시 51분.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서른 세 살, 항상 그와 반대 진영에 있던 양 웬리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죽었다.'''[21]"......원수님. 로이엔탈 각하......."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306
죽은 후 몇시간 뒤 미터마이어가 들어왔다.[22]
사후 원수 호칭은 회복되었다. 라인하르트는 총독 자리는 몰라도 원수 자리에 앉힌건 실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기에 사실상 명예회복일지도.
그의 부하 베르겐그륀은 상관의 죽음에 비관한 나머지 자살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한 한이 얼마나 깊었는지 라인하르트를 향해 뼈 있는 독설을 날렸다. 그가 모신 상관들이 한 명 때문에 죽었으니 그럴만 하다. OVA에선 바로 미터마이어와 참모진이 있던 자리에서 문잠그고 안에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자살하여 미터마이어가 착잡한 얼굴을 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