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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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서 짙은 초록색이 UN에서 정의한 북아프리카 권역이다. 연두색은 넓은 의미의 북아프리카 지역.
1. 개요
North Africa / Northern Africa
'''북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지역을 말한다. 서쪽에 대서양, 동쪽에는 지중해와 홍해, 남쪽에는 사하라가 있고, 사하라의 건너편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있다. 이집트와 서북아프리카를 가리키는 단어이며, 때로는 모리타니와 수단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남유럽과 이웃하고 있고,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건너편으로는 유라시아와 연결된다. 이 지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는 다르게 이슬람이 주류인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의 세계다. 아랍인은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인 만큼 모로코의 백인 아랍인, 수단의 흑인 아랍인이 공존하며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는 흑인도 공존하여 종족 갈등이 심한 편이다.
이 지역의 서쪽(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북서쪽)은 마그레브라고 불리며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때론 리비아가 포함된다. 리비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모두 프랑스 식민지였으며, 때로는 리비아 대신 같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리타니를 포함시킨다.
이집트, 수단의 경우는 때때로 동아프리카로도 분류되며 소말리아, 지부티, 에리트레아 등을 포함해 동북아프리카(북동아프리카)로도 본다.
2. 자연
북아프리카의 북부는 산악지대, 동남쪽은 스텝 구릉지대, 남쪽은 사하라 사막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산맥인 아틀라스 산맥은 서쪽에 있는 국가인 모로코 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알제리의 북쪽을 따라 동쪽의 튀니지 서북부 또는 서부로 이어진다. 북아프리카의 동남쪽 끝은 기복이 적고 나지막한 리비아 고원 지대다. 북아프리카 남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더운 사막이면서 남극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사막인 사하라가 버티고 있다. 북아프리카는 건조 지역으로서 나일강을 제외하고는 큰 강이 없다. 아틀라스 산맥의 계곡에 흐르는 강들 주변과 나일 계곡 및 나일 삼각주, 그리고 지중해 연안이 농업 지대다. 이 곳에서 쌀이나 면화가 재배되고, 삼나무와 코르크 같은 삼림자원이 재배된다. 아울러 지중해 작물인 올리브, 무화과, 대추야자들도 재배된다. 나일 계곡은 특히나 비옥해서 이집트 인구의 대부분이 이 근처에 살고 있다. 이들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북아프리카 지역은 관개를 해주어야 제대로 식물이 자란다.
기후는 대부분 지역이 사막인 건조기후라 미세먼지가 정말 심한데, 지중해에 인접한 북부 해안 지역은 온대 지중해성 기후를 띄고 있어서인지 미세먼지가 적은 편이다.
3. 인종과 문화
이 지역의 언어는 아랍어이고 주민은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아랍인이다. 같은 북아프리카의 아랍인이라도 수단 아랍인과 모로코 아랍인, 알제리 아랍인과 모리타니 아랍인은 다르다. 아랍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중동에 넣기도 한다. 실제로 모리타니, 수단의 경우 1993년 대전 엑스포 중동공동관에 코너가 마련된 전력이 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이슬람이 주된 종교며, 중동과 함께 아랍 세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북부 해안지대인 모로코 등의 주민들은 겉모습으로 볼 때 남유럽인과도 흡사하다.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 자멜 지단 등을 떠올리면 된다. 참고로 그들은 북아프리카의 주요 민족인 베르베르족 출신이다. 사실 이슬람의 정복 이전에는 남유럽과 하나의 문화권이었고, 라틴어에서 분파한 아프리카 로망스어가 사용되기도 했었다. 또한, 로마 제국 당시 북아프리카에도 라틴어를 쓰는 주민들도 거주하고 있었다.
참고로 나폴레옹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아랍이나 똑같은 곳으로 인식되었다. 다만 "피레네 산맥 이남은 아프리카다" 라는 말은 흔히 나폴레옹이 한 말로 알려져 있는데, 피레네 산맥 항목에서 보듯 옛날부터 유럽에서 회자되던 말이지만 누가 처음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아프리카의 각 나라마다 공식 언어가 다르지만, 대개의 국가가 아랍어를 공식 언어로 쓰든가 아니면 최소한 공식 언어 중 하나로 아랍어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남수단은 예외.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민족은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이다. 북아프리카의 서쪽은 아주 오래전부터 베르베르인들이 살았으리라 추정되고, 동쪽은 이집트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랍에 정복된 이후로는 점차적으로 아랍인에게 동화되어나갔다. 베르베르인들과 모로코, 알제리 아랍인들간의 차이는 언어적이나 습관적인 것이고 유전적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종교 면에서도 북아프리카의 모든 국가들은 이슬람이 대세다. 예전에는 60~70만 명의 유대인들도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었지만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이스라엘로 이주해 나갔고, 1962년 알제리가 독립하면서 13만 명이 프랑스로 이주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1만 5천명이 채 안 되는 유태인만이 모로코와 튀니지에 남아있다.
마그레브와 사하라의 주민들은 베르베르어와 아랍어의 다양한 방언들을 사용한다. 베르베르인은 그리스, 이집트, 로마 등의 다른 문화에 영향을 받아왔다. 따라서 마그레브와 사하라의 문화는 토착민인 베르베르인의 문화에 아랍 및 이웃 아시아/유럽의 요소가 가미된 것이다. 사하라 지역의 경우, 오아시스의 정착민과 베두인 혹은 투아레그족 같은 유목민과의 차이점이 뚜렷하다. 그러나 마그레브의 경우는 민족간 구분이 모호해서, 마그레브의 주요 민족인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의 구분이 덜한 편이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북서부 아프리카인은 출신 민족에 상관 없이 아랍 역사와 문화에 동질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베르베르인이 아랍화되어서다. 그러나 많은 수의 베르베르인들은 고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문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스스로를 '자유인'이라는 의미의 "이마지겐(Imazighen)"이라 칭한다.
같은 아프리카기는 하지만, 다른 아프리카 지역들에 비해서는 평균 수명이 모두 70대를 넘는 등 긴 편에 속한다.
4. 역사
북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은 역사나 문화면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데, 사하라가 거대한 장벽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하라로 인해 북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남쪽으로부터 단절되어 왔고, 오히려 지중해 너머의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등의 해양 세력이 있는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왔다. 따라서 북아프리카의 문화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보다 중동과 유럽과 관계가 깊다.
4.1. 고대
북아프리카 지역은 역사책에 종종 등장하는 유서 깊은 지역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북아프리카 서부의 주요 국가로는 카르타고와 누미디아가 있다. 페니키아는 북아프리카의 [1] 많은 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이 중 현대 튀니지에 위치해 있던 식민지가 발전하여 된 도시가 카르타고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이지만 점차 로마에 의해 정복당해서,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의 북아프리카 영토가 로마의 아프리카 속주가 되었다. 카르타고 서쪽에는 누미디아가 있었는데, 로마와의 갈등이 심해지다가 결국 전쟁 끝에 역시 로마의 속주로 전락했다.
북아프리카는 오랜 기간 동안 로마 제국의 일부로 남았는데, 5세기 초반에 이르러 게르만의 일족인 반달족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가 누미디아를 점령해버렸다. 이러한 북아프리카의 상실은 서로마 제국 몰락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북아프리카는 중요한 곡물 산지였고, 이로 인해 외부 민족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번영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를 수복하는 것은 서로마 제국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468년 로마의 마지막 공격도 실패로 돌아간다. 이는 서로마 제국 몰락에 종지부를 찍는 징후였고, 서로마 제국은 476년에 멸망했다.
4.2. 중세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에도 유럽과 북아프리카 간의 통상로는 유지되었고, 원주민인 베르베르인들은 일부는 기독교, 일부는 유대교, 일부는 토속 신앙을 믿는 구성이었다. 500년대 중반 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벌인 고토 회복 전쟁을 통해 북아프리카는 다시금 로마(동로마)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7세기 헤라클리우스 황제 시대에는 북아프리카로 천도를 고려했을 정도로 알짜배기 땅이었다.
640년에 북아프리카에서도 무슬림의 "이슬람 정복"이 시작된다. 동로마는 이슬람의 침략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겨 670년에는 대부분의 북아프리카가 무슬림들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이후 북아프리카의 번성했던 문명은 농업을 경시한 아랍인들로 인해 기존의 경작지들과 관개 시설이 방치되 사막화로 쇠퇴했다는 오해가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아랍인의 대정복시대의 아랍측의 인적 자원의 중심 핵이던 헤자즈 지방[2] 은 농업 따윈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아시스 농업으로 아득바득 생계를 이어 오아시스 도시들을 건설했던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오히려 아랍인들은 방치되었던 비잔틴-페르시아의 낙후된 관개 시설을 보수하고, 기존의 원시적인 기술로 기후나 중력에나 의존하던 비잔틴의 관개 시설을 신기술로 만든 새로 발명된 기계 장치들로 광활한 이슬람 신문명권 지역의 농업에 혁신을 불러왔다. 기존에 방치되었던 강, 시내, 오아시스, 하천, 지하 깊숙이 자리 잡은 지하수 등등 이용되지 않던 수원이 없어질 정도였다. 더군다나 기존에 재배되지 않거나 일부 지역에서나 재배되던 쌀, 수수, 경질소맥, 사탕수수, 수박, 시금치, 겅퀴, 토란, 광귤, 레몬, 목화, 가지, 코코스 야자, 망고, 플랜테인, 바나나, 라임에 더불어서 섬유식물, 약초, 조미료, 미용, 의약, 염료, 조경 작물들이 아랍인들의 통합한 대서양부터 인더스강까지 널리 퍼졌다. 이와 같은 농업적 혁명은 수원 부족으로 방치된 농업 가능 토지들을 개간해 빼곡히 경작지가 들어섰으며, 심지어 기존에 농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황무지 사막들조차 개간해 신 작물을 재배해서 놀랄 정도의 수확량을 기록했다.
애초에 로마인들은 농업에서는 정복지의 기존의 기술을 섞어서 이용해 대규모의 인프라를 건설했을 뿐, 딱히 농업에 위업을 떨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반 사막지대의 농업에 대한 이해와 기술의 혁신 없이 과거와 똑같이 그대로 농업을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북아프리카 -이집트-레반트 지역은 토지 염화와 지력 쇠퇴로 나날이 수확량이 감소해 나가, 버려지고 방치되어 유적으로 밖에 남지 않은 도시 폐허들이 속속히 생기던 때가 로마 지배하의 시기였다.[3]
아랍인들은 이를 역전시켜 수확량 폭등을 바탕으로 영광이 빛에 바란 기존의 로마 도시들을 능가하는 번영을 가구하는 도시들이 속속들이 생겨났다. 튀니스, 졔르바, 알제, 트리폴리 등 지금까지 각 나라의 수도나 주요 도시들도 이 때를 기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카이르완, 마라케시, 페즈 같은 도시들의 옛 영화의 흔적을 보면 농사 지을 줄 모르는 아랍인들이 로마 시대의 관개 시설을 박살내어 사막화가 되었다는 주장이 당장 역사적 사실과 어긋남을 볼 수 있다. 애초에 따지고 보면 중세 최대의 도시 중 하나인 코르도바를 비롯하여 세비야, 그라나다 등 도시에서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구가했던 알 안달루스만 하더라도 그 문화적, 기술적 기반은 마그레브에서 온 같은 문명인데, 한쪽은 번영했고 한쪽은 몰락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굳이 이슬람권과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기존에 암흑기로 여겨졌던 시기로 수도원을 기반으로 한 농업적 혁명으로 로마 시대에 비교해서 몇 배 이상으로 인구가 폭증했던 고중세(high-middle ages) 유럽과 비교하면 매우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북아프리카의 농업의 쇠퇴와 사막화의 원인은 후에 11세기 파티마 왕조 시기이다. 수니파 반란으로 이탈한 북아프리카 지역에 종교적인 광신으로 인해 분노한 파티마 왕조가 매우 극단적인 이스마일 시아파 광신도로 악명이 높았던 베두인인 바누 하이랄, 바누 수랍 부족을 반란지인 북아프리카 동부로 이주시켜서 보복으로 마그레브의 거주지와 농경지를 철저하게 파괴하라고 명령했고, 이들은 심지어 마그레브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카이르완까지 점령했다. 이들 베두인으로 인해 아포칼립스가 펼쳐지게 된다. 철저하게 농경지와 관개 시설을 황폐화 시키고 박살내고 지나가다 보이는 족족 대학살을 해 기층민 교체마저 이루었다. 그들이야말로 순수 유목민으로, 농업을 멸시해서 황폐화 시킨 도심과 농경지들은 목축지로 사용하고, 뒤이어 다른 베두인 부족들이 물 밀려오듯이 들어왔다. 북아프리카 동부 지역인 리비아와 튀니지의 살아남은 베르베르인들은 서쪽과 남쪽의 산지로 도망쳐 베두인에게 물갈이 돼서 오지에서나 볼 수가 있게 되었고, 이제부터 이들 지역은 베두인이 물려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이후로 근세로 넘어가며 북아프리카는 스페인을 필두로 하는 지중해 가톨릭 세계와 오스만 제국의 각축장이 되면서 고대, 중세 초기의 영화를 재건하며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할 여건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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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의 우크바 모스크. 670년 아랍에 의해 건설된 모스크로서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모스크다. 출처: 위키백과.
4.3. 근현대
중세 이후에는 모로코를 제외한 전 지역이 오스만 제국의 세력권에 들어갔다가, 19세기 이후에는 유럽의 지배하에 놓여서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아직도 북아프리카의 동부(이집트, 수단, 남수단)에서는 영국, 서부(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모리타니, 페잔)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은 추축국[4] 의 영향력 하에 놓였다. 이후 이탈리아 왕국과 나치 독일이 이집트 왕국을 침공하면서 이 지역은 북아프리카 전투의 무대가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북아프리카의 모든 나라가 독립을 이루었다.
5. 경제
북아프리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전반적으로 공업 발달이 세계적 기준에서 보면 낙후된 편이며, 농산물 가공과 건축 재료와 금속 제품 생산이 주 산업이다. 모로코와 튀니지, 이집트는 서구권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아름다운 자연과 로마 제국, 고대 이집트 등 풍부한 문화 유산 덕택에 관광 산업이 발달했다. 낙후된 산업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뒤쳐진 지역이지만 알제리와 튀니지, 그리고 리비아는 산유국(석유 생산국)이다. 특히 리비아에서 나는 원유는 황의 함량이 낮은 고품질 원유다. 그 덕에 리비아는 2010년 기준으로 1인당 GDP $13,800를 기록하는 등 북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 리비아는 내전으로 인해 시설, 건물까지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그 이전의 경제를 되살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 뒤를 이어 튀니지가 1인당 GDP $9,500로 2위, 알제리가 1인당 $7,400로서 3위다. 나머지 국가들은 석유가 잘 안 나는 바람에 시망. 이집트 $6,200 ~ 남수단 $1,546(2011 추정)의 소득수준을 보인다. 단, 남수단에는 유전이 많아 앞으로 어찌 될 지 모르는 상황.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2011년 7월) 수단과의 정산(?)이 아직 안 끝난 듯. 물론 수단도 서 다르푸르 주 및 남코르도판을 중심으로 유전지대가 많이 남아 있는데, 남수단의 그것에 가려져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이 이 지역에도 번져서, 리비아 내전과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의 정권 교체의 원인이 되었다. 알제리와 모로코에서도 대규모의 시위가 있었다. 2019년 최근에는 수단과 알제리에서도 정권이 교체되었다.
6. 북아프리카 국가 목록
좁게는 리비아,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만을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유엔의 정의로는 남수단, 모로코, 리비아, 서사하라(분쟁 중), 수단, 알제리, 이집트, 튀니지의 8개국이 북아프리카에 포함된다. 이 중 알제리, 모로코, 서사하라, 튀니지, 리비아는 서아프리카의 모리타니와 묶어서 마그레브라고 부른다. 그리고 과거 북아프리카에 있던 스페인 영토 중의 일부가 아직도 스페인령으로 남아있고, 이는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라 불린다.
6.1. UN에서 정의한 북아프리카 국가
다음은 UN에서 정의한 북아프리카 권역이다.
6.2. 때때로 포함되는 국가와 지역
- 남수단: 실제로 북아프리카보다 동아프리카 또는 중앙아프리카에 더 가깝다.
- 니제르
- 마데이라 제도, 아조레스 제도: 포르투갈령.
- 말리
- 모리타니◇
- 에리트레아
- 에티오피아
- 지부티
- 차드
- 중아공
- 카나리아 제도, 세우타, 멜리야,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 스페인령.
- 소말리아
- 아프리카는 아니지만 아프리카와 가까이 있는 예멘도 동아프리카와 더불어 간혹 언급되기도 하며, 문화적 이유로 북아프리카로 보기도 한다.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이집트 영토인 적도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북아프리카로도 표시된 적이 있었다. 여기도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이유 등으로 북아프리카로도 보았다. 지금도 간혹 북아프리카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보기도 한다.
7. 관련 문서
- 아프리카
- 마그레브
- 안달루스
- 카르타고
- 로마 제국
- 우마이야 왕조
- 아바스 왕조
- 파티마 왕조
- 무라비트 왕조
- 무와히드 왕조
- 맘루크 왕조
- 마린 왕조
- 오스만 제국
- 리비아
- 이집트
- 튀니지
- 알제리
- 모로코
[1] 남수단: 실제로 북아프리카보다 동아프리카 또는 중앙아프리카에 더 가깝다.[2] 메카, 메디나가 위치한 곳.[3] 특히 리비아의 도시들과 시리아 내륙 도시들이 유달리 심했다. 덕분에 로마 시대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4] 이탈리아 왕국, 비시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