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역사
1. 창단
1946년도에 NBL팀인 '''디트로이트 젬즈(Detroit Gems)'''로 창단했지만, 44경기 중 4승이라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참조 상황이 지지부진해지자 당시 구단주였던 모리 윈스턴이 팀을 매각하고자 원해서 1947년 여름에 《미네소타 데일리 타임즈》지 스포츠 기자인 시드 하트먼(1920~2020)이 아이스쇼 사업가인 모리스 찰펜(1907~1979)과 극장사업가 벤 버거(1897~1988) 두 사람을 설득하여 팀 인수를 이끌어내어 미니애폴리스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2. 미네소타에서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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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레이커스의 중심이었던 조지 마이칸
1947년에 미네소타주의 주도 미니애폴리스로 연고이전해서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로 리그에 참가(1948-49 시즌부터 NBA에 합류). 미네소타주에 호수가 많아서 팀명도 Lakers로 정했다. 1960년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에도 계속 사용중이다. 당시 구단주는 벤 버거와 모리스 찰펜, 단장은 맥스 윈터[1] (1904~1996)였지만 실질적으로 단장 역할을 한 분은 <미네소타 데일리 타임즈> 스포츠기자 시드 하트먼이었다.[2]
하트먼은 특유의 우수한 안목으로 존 쿤들라 감독을 부르고 조지 마이칸과 짐 폴라드라는 우수한 선수들을 영입하여 창단 첫해부터 우승을 차지하면서 화려한 역사의 서막을 올렸다. '거인' 마이칸을 앞세운 레이커스는 말 그대로 무적함대였다. 당시 마이칸의 신장은 6피트 10인치. 지금으로서는 포인트 가드의 신장인 6피트 4인치의 선수가 인사이더였고 6피트 7인치도 장신이었던 시대에 마이칸을 완전히 막는다는건 불가능에 가까웠다.[3] 창단 첫해부터 1953-54 시즌까지 6시즌동안 5번의 우승, 1951-52 시즌부터 3연패를 달성하는 등 조지 마이칸을 앞세워 리그를 정복해나갔다.
하지만 마이칸이 1955-56 시즌을 끝으로 32세의 나이에 은퇴하고, 이 와중에 구단주인 벤 버거가 팀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하여 하트먼과 충돌이 계속되었으며, 특히 1956년 드래프트에서 하트먼이 빌 러셀을 영입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제안하자 이에 구단주가 이를 가로막자 하트먼은 단장 역할을 그만두고 본업으로 돌악갔고, 버거 구단주도 사업가 밥 쇼트와 프랭크 라이언에게 팀을 팔았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으로 인해 1957-58 시즌에는 팀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등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들의 눈물 없인 절대로 볼 수 없는 안습전설이 시작되는데...
3. 눈물의 2인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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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1958-59 시즌 합류한 루키 엘진 베일러의 활약으로 33-39패라는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파이널까지 진출.
그리고 시작된다, '''콩라인 신의 전설이'''. 일단 1958-59 시즌 파이널은 '''준우승'''.
1959-60 시즌에도 25승 50패라는 매우 저조한 성적이지만 8팀중 6팀이 나가는 널널한 플레이오프 기준점에는 간당간당하게 6등에 걸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 플레이오프에서는 엘진 베일러가 맹활약하며 디트로이트를 꺾었지만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패한다.
이 시즌을 끝으로 팀은 미니애폴리스 시대를 마감하고 현재의 연고지인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한다.[4][5]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첫 시즌인 1960-61 시즌, 현 NBA로고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가드 제리 웨스트가 데뷔한다. LA에서의 첫시즌에도 2년연속 서부 결승에서 탈락.
이듬해인 1961-62 시즌에 베일러 - 웨스트가 평균 '''69.1'''점을 합작하는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파이널에 진출하지만, 빌 러셀을 앞세운 보스턴 셀틱스와 혈투끝에 3승 4패로 '''준우승'''. 보스턴 셀틱스와의 라이벌리는 이미 60년대에 시작되었다. 다음시즌인 1962-63 시즌에도 파이널에 올라가지만 또 보스턴 셀틱스에게 2승 4패로 '''준우승'''. 1963-64 시즌 현 애틀랜타 호크스의 전신인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게 서부 세미파이널에서 패하면서 3년연속 파이널 진출은 실패하지만 다음시즌인 1964-65 시즌 다시 파이널에 복귀해 또 보스턴 셀틱스에게 1승 4패 '''준우승''',
1965년에 캐나다계 미국인 방송사업가 잭 켄트 쿠크가 팀을 산 후 1965-66 시즌 또 파이널 올라가 또 보스턴 셀틱스에게 또 3승 4패로 또 '''준우승'''. 이듬해인 1966-67 시즌 서부 세미파이널에서 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전신인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에게 스윕 탈락하자 감독을 프레드 샤우스에서 벗치 반 브레다 콜프로 교체하고 1967-68 시즌 다시 파이널에 올라가지만 또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해 '''준우승'''... 이쯤되면 아마 구단주나 프런트나 선수단이나 팬이나 셀틱스라면 학을 뗄 수준일것 같다. 아무튼 이제 더이상 준우승을 보고 싶지 않았던 수뇌부는 리그 최고의 센터이자 역사상 최고의 센터 중 하나인 윌트 체임벌린을 필라델피아에서 영입, 대권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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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센터 윌트 체임벌린, 최고의 포워드 엘진 베일러, 최고의 가드 제리 웨스트를 축으로 한 레이커스는 이번에야말로 우승에 가까워 보였고 1968-69 시즌 당연한듯이 파이널에 올라가 역시 당연히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지만 또 '''준우승'''.[6] 레이커스 콩라인전설 끝나려면 멀었다.
1969-70 시즌에 감독을 또 조 멀라니로 바꾸고 다시 정규시즌 내내 고생해서 다시 파이널 진출. 또 역시나 보스턴이... 아니다!! 망할 엿먹을 빌 러셀 영감탱이가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우승이다!! 뉴욕 닉스따위 이길 수 있어!! 게다가 닉스의 혼이자 중심이자 모든것 센터 윌리스 리드가 5차전에 당한 장딴지 파열로 6, 7차전엔 못나온다!! 축배를 들자!!
그러나 월리스 리드는 나왔고 레이커스는 3승 4패로 '''준우승'''. '''콩라인 전설 아직 안끝났다.'''
1970-71 시즌에는 서부 파이널에서 밀워키 벅스에게 1승 4패 탈락. 이 시즌에 여러모로 팀의 상징인 엘진 베일러도 부상으로 2경기 밖에 못나오고, 1971-72 시즌을 앞두고 라이벌인 보스턴의 레전드 선수이던 빌 셔먼이 감독으로 취임하고[7] 이때 베일러가 복귀하지만 9경기만 뛰고 시즌 도중 은퇴 선언. 최고의 포워드를 잃은 레이커스에게 우승이란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우승했다.''' 그것도 69승이라는 이후 1995-96 시즌에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가 72승으로 기록 경신하기전까지 최다승 기록을 세우면서 말이다 파이널 상대는 2년 전에 맞붙었던 뉴욕 닉스.[8]
이듬해인 1972-73 시즌에 또다시 뉴욕 닉스와 맞붙지만 이번에는 '''준우승'''. 이 시즌을 끝으로 윌트 체임벌린이 은퇴하고, 제리 웨스트도 1973-74 시즌을 끝으로 은퇴. 레이커스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4. Show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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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과 웨스트라는 위대한 선수들의 공백을 메꾸지 못하고 1974-75 시즌과 1975-76 시즌 두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하지만 레이커스는 윌트 체임벌린의 공백을 그에 필적하는 센터로 메꾼다.[9] 바로 카림 압둘자바. 압둘자바가 합류한 첫시즌인 1975-76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 다음시즌부터 압둘자바가 은퇴하는 1988-89 시즌까지 레이커스는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으며 팀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누린다.
1979년까지는 파이널 복귀에 실패하지만, 그 해에 팀이 유타 주 출신 사업가 제리 버스(1933~2013)에게 인수된 뒤 드래프트에서 미시건 주립대를 NCAA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끈 유망주 '''매직 존슨'''을 뽑았다. 1979/80 시즌에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상대한 파이널에서 카림 압둘자바의 발목부상에도 불구하고 6차전 역사에 남을 퍼포먼스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매직은 파이널 MVP를 수상한다.
이듬해에는 휴스턴 로키츠에게 충격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을 맛보지만, 1981-82 시즌에는 다시 정신줄을 수습하고 다시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만나 또다시 우승을 차지한다. 1981-82 시즌 초반 감독이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꼽힐[10] 팻 라일리로 교체된다.
1982-83 시즌에는 제리 웨스트가 단장직에 돌아왔고, 팀은 또다시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를 만나지만 필라델피아가 4승 무패 스윕으로 설욕한다.
1983-84 시즌, 모든 농구팬들이 바라왔고 현재까지도 최고의 매치업으로 꼽히는 대진이 드디어 파이널에서 성사된다. 바로 보스턴 셀틱스와의 조우. 60년대 보스턴에게 지긋지긋하게 당했던 레이커스의 입장에서도 우승을 해야했고 대학시절부터 래리 버드와 라이벌이었던 매직 존슨의 입장에서도 우승이 필요했으나.....'''졌다'''.[11] 이쯤 되자 레이커스 팬들은 보스턴을 이기려면 진짜 잘해야 할 것같애. 근데 우린 보스턴보다 못하잖아. 우린 아마 안될거야. 싶은 생각을 품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음시즌인 1984-85 시즌, 드디어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리즈에서 카림 압둘 자바는 말그대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1차전에서 압둘자바는 12득점 3리바운드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보스턴에게 34점차 대패를 당한다. "Memorial Day Massacre"라고 회자되는 이 경기 이후, 압둘자바는 2차전에서 30득점 17리바 3어시 3블록이라는 말도 안되는 스탯을 기록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결국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파이널 MVP에도 선정되었다.
다음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트윈 타워'를 앞세운 휴스턴 로키츠에게 서부 결승에서 탈락하지만 86-87시즌[12] 다시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4차전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승부다. 종료 12초를 남기고 래리 버드가 코너에서 3점슛을 성공시켜 104-106로 보스턴이 리드하게 되었다. 직후 압둘자바가 자유투를 얻어 1구는 성공, 2구는 실패한다. 리바운드 다툼끝에 공이 아웃되고, LA가 소유권을 갖게 된다. 현재 105-106. 7초가 남은 상황에서 긍을 잡은 매직이 안으로 돌파해 오른손 러닝 훅슛을 성공시키며 107-106으로 역전하여 결국 승리한다. 우승 후 축하행사 자리에서 팻 라일리 감독은 트로피를 들고 '내년에 이거 다시 갖고옴'이라는 간지 쩌는 멘트를 날렸고 그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87-88시즌 '배드보이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꺾고 50년대 이후 팀의 첫 2연패.
하지만 1988-89 시즌에는 배드보이스에게 스윕당했고, 89-90시즌에는 유고슬라비아 선수 블라디 디박을 사들여 전력 보강을 했으나 서부 세미파이널에서 피닉스 선즈에게 탈락했다.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의 센터 카림 압둘 자바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라일리 감독도 사임했다.
후임 마이크 던리비 감독의 지휘 하에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 바이런 스캇, 디박 등이 악전고투하여 1990-91 시즌에는 댈러스 매버릭스로부터 샘 퍼킨스를 사들여 다시금 파이널에 복귀하여 시카고 불스와 맞대결한다. '''MJ vs MJ'''로 불리우는 이 대결에서 오래된 MJ가 새로운 MJ에게 패하면서 한 시대의 끝을 고했다.[13] 90-91시즌 직후 매직 존슨은 익히 알고 있는대로 HIV 바이러스 보균 사실을 밝히면서 31세의 나이로 은퇴.
5. 샤크-코비의 시대
1991년 매직이 떠난 후 워디와 스캇, 그린 등 남은 쇼타임 때 멤버들이 노쇠해졌고, 1992년에 감독으로 승진한 랜디 펀드의 '숏 타임 오펜스'도 힘을 못 써 부침에 시달리다가 1993/94 시즌에 플옵에 못 갔다. 그 이후 엘든 캠벨을 비롯해 세드릭 세발로스, 닉 반 엑셀, 에디 존스, 블라디 디박 등 젊은 선수들이 패기 넘치는 플레이를 펼쳐 서부의 강호로서 플옵엔 꾸준히 나가지만 파이널은 한번도 못밟아보고, 인기와 언론의 관심도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에게 완전히 뺏겨 라이벌 보스턴 셀틱스 만큼은 아니지만 좀 우울한 시대를 보내야 했다.
1994년에 제리 웨스트 단장이 운영부사장으로, 미치 컵책 부단장이 단장으로 각각 승진했으며, 1996-97 시즌을 앞두고 디박을 샬럿 호네츠에 팔며 올랜도 매직에서 '공룡' 샤킬 오닐을 영입하여 다시금 천하를 호령할 기세였지만 2%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며 유타 재즈,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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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킬 오닐은 '우승하고 싶다'며 팀에 전력보강을 요구했고, 팀은 1999년에 시카고 불스에서 6번의 우승을 일궈낸 명장 필 잭슨을 모셔와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팀에 이식시켰다. 거기에 '''샤킬 오닐의 MVP급 활약'''[14] , 96 드래프티인 코비 브라이언트의 성장으로 레이커스는 초강팀으로 군림했고 새천년이 시작된 1999-00 시즌 래리 버드가 감독으로 있던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꺾고 우승. 이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뉴저지 네츠를 연거푸 꺾고 3-peat을 달성. 말 그대로 레이커스의 시대가 열렸다. 레이커스가 원정만 갔다하면, 특히 라이벌이었던 새크라멘토 킹스의 홈인 아르코 아레나에만 갔다하면 온 관중이 "Beat LA"를 외치던 그런 시절이었다.
3연패 이후 2002-03 시즌에 샤킬 오닐의 부상과 샤크-코비의 주도권 다툼등이 겹쳐 서부 세미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탈락. 팀은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우승에 목마른 노장들인 칼 말론, 게리 페이튼을 영입하여 팀 내 '''명예의 전당 예약 선수만 4명'''이라는 무시무시한 라인업을 구축하였다. 한국에서는 일명 전당포 라인업으로 명명. 하지만 시즌내내 생각보다는 위력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쨌든 파이널 진출. 상대는 수비는 강력하지만 공격력이 영...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였고 대부분 전당포의 우세를 점치지만 2차전 코비 브라이언트의 3점 클러치샷을 제외하면 5경기 내내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1승 4패로 트로피를 다시 따내지 못했다.
이후 근 5년 가까이 팀내 주도권을 놓고 삐걱댔던 샤크-코비[15] 중 팀은 코비 브라이언트를 택하면서 샤킬 오닐은 마이애미 히트로 향하고, 칼 말론은 은퇴, 게리 페이튼도 이적했으며, 제리 버스 구단주의 간섭도 더해져 필 잭슨 감독마저 은퇴를 선언하면서 라인업이 완전 해체됐다. 필 잭슨 퇴진 이후 휴스턴 로키츠를 2년 연속 NBA 우승으로 이끈 루디 톰자노비치를 감독으로 데려왔으나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2003년에 이미 방광암으로 휴스턴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톰자노비치는 이때 들어서 심장이 좋지 않은 나머지 쌓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시즌 도중 퇴진했다. 결국 2004-05 시즌에는 11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6. 코비-가솔의 시대
2005-06 시즌을 앞두고 명장 필 잭슨이 돌아오고 코비 브라이언트가 한경기 81득점을 하는 등 별 짓을 다하지만 선수단 자체가 별 경쟁력이 없어서 2006-07 시즌까지 플레이오프는 진출하지만 두번 모두 1라운드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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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커스 팬들은 다시 90년대 초반처럼 되는가보다...하고 마음을 비우고 2007-08 시즌을 맞이 하는데 의외로 시즌 초반 유망주 센터 앤드류 바이넘이 갑툭튀하면서 중반 넘어갈때까지 순항한다. 하지만 시즌 중반 바이넘이 부상으로 시즌을 접으면서 역시 안되는건가...싶었는데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서 '''파우 가솔'''을 트레이드 해온다. 이게 가능한가? 싶을정도의 엄청난 트레이드로[16] 레이커스는 순식간에 서부 최강으로 떠오르고 플레이오프는 가뿐히 진출, 플레이오프에서도 승승장구하여 오랫만에 파이널에 복귀한다. 게다가 파이널 상대는 시즌 전 빅3의 결성으로 1년 내내 화제를 뿌린 보스턴 셀틱스. NBA 사무국은 쾌재를 불렀고 모두의 관심 속에 격돌하지만 레이커스는 2승 4패로 준우승했다.
2008-09 시즌에는 기존의 전력이 고스란히 보존된 데다가 우승을 향한 동기부여까지 완벽히 되면서 시즌내내 순항, 파이널에서 만난 올랜도 매직을 4승 1패로 제압하고 15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필 잭슨은 이 우승으로 열손가락 모두에 우승반지를 끼우게 되었다. 코비 브라이언트 입장에서도 드디어 샤킬 오닐 없이 자신이 리더가 되어 이룬 첫 우승. 그리고 이어진 2009-10 시즌에도 레이커스는 우승후보 1순위로 무리없이 순항할 수 있었다.
결국 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009-10 시즌 역시 우승트로피를 움켜쥐게 되었다. 그동안 보스턴과 7차전만 갔다하면 졌었다. 4전 전패... 하지만 이번에는 이겼으니 실로 다행... 7차전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하고 양팀 팬들의 피를 말리는 난전이었다.
2010년 오프시즌에서는 안 그래도 빈틈 없는 로스터에 스티브 블레이크, 맷 반스 등의 알짜배기 자원들을 영입하면서 실로 무시무시한 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마침 마이애미 히트가 드웨인 웨이드에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를 끌어들인 상황이라 팬들은 이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나 괴수급 대결을 펼치기를 바랐다.
서부 플레이오프 2번째 라운드에서 댈러스 매버릭스와 격돌, 팬이나 전문가나 모두 레이커스의 절대 우세를 예상했지만, 더크 노비츠키에게 발리고 발리다 뼛속까지 쳐발리며 4-0으로 스윕당했다.[17] 접전끝에 진 것도 아니고 시리즈 내내 무기력한 경기를 반복, 레이커스의 승리를 예상했던 전문가들을 물먹임과 동시에 수많은 레이커스 팬들에게 가루가 될 때까지 까였다. 설상가상으로 2차전에는 론 아테스트가 상대팀 포인트 가드 J.J. 바레아에게 클로스라인을 먹여 3차전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고, 마지막 4차전에서는 라마 오돔이 거친 반칙으로 직빵 퇴장당한지 10분도 안돼서 센터 앤드류 바이넘이 J.J. 바레아에게 공중 펀치를 먹이는 전대미문의 파울을 범하면서 엄청난 비난과 실망을 자아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바이넘은 "쬐끄만 녀석이 우릴 자꾸 엿먹이니까 열받아서 그랬다."는 벙찌는 답변을 날려서 또 까였다.
4차전은 필 잭슨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더 큰 아쉬움을 자아냈다. 위대한 감독의 마지막 경기가 스윕패라는 굴욕과 비매너 플레이로 점철되어 농구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후 필 잭슨 은퇴와 더불어 커트 램비스, 짐 클레몬스, 프랭크 햄블던 등 수하급 코치 3명까지 떠나 코치진의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전 캐브스 감독 마이크 브라운이 부임한 2011-12 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1라운드때 덴버 너기츠를 4:3으로 간신히 꺾었으나 세미파이널에서 러셀 웨스트브룩, 케빈 듀란트, 세르지 이바카가 이끄는 젊은 패기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게 1:4로 참패했다.
7. 전당포 2탄
2012-13 시즌에 스티브 내쉬와 드와이트 하워드를 영입하며 다시 반지원정대를 결성해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상한줄 알았는데...'''아주 거하게 망했다.'''
이 판타스틱 4들이 부상으로 골골대고 전혀 조화가 안되는 모습을 보여줘 심각한 부진을 겪어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 진출이나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듯했으나, 마이크 브라운 감독이 사퇴 후 버니 비커스태프 임시감독 체제를 거쳐 마이크 댄토니를 긴급수혈해 오고, 코비가 시즌 막판에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뻗어버리는 악재까지 겪었으나 정규시즌 마지막 날 유타 재즈가 멤피스 그리즐리스에게 패배하고 본인들은 휴스턴 로키츠에게 승리하며 서부 7위로 리그를 마무리, 플옵 탈락이라는 굴욕은 간신히 면했다. 그 와중인 2월 18일(현지시간 기준)에 제리 버스 구단주가 세상을 떠났다.
1라운드 상대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후반 샌안이 좀 부진했기 때문에 몇승은 챙길 수 있을 줄 알았으나 현실은 시궁창, 스윕당하며 시즌을 마쳤다. 4경기 중 10점차 이내의 경기는 한경기도 없었다. 안습. 코비가 기량 회복에 성공한 채 복귀할지도 의문이고 하워드도 결국 휴스턴으로 떠났기 때문에 곧 닥칠 암흑기의 단초가 마련됐다.
8. 창단 67년만에 첫 암흑기의 시작
8.1. 2013-14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도 힘들거라고 예상되는 2013-14 시즌이 시작되었는데 첫경기에서 뜻밖에도 벤치멤버들이 대폭발해 LA 더비에서 클리퍼스를 이겨버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다음 LA 더비에서는 3쿼터에서 8점만 넣는 등 부진으로 한때 41점차까지 뒤지다가 결국 36점차 대패를 당했다. 허나 가드 위주의 농구, 특히 포인트 가드가 전술의 핵인 마이크 댄토니의 시스템에서 포인트 가드들이 하나도 예외 없이 전부 뻗어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했고, 부상 복귀한 코노인을 포인트 가드로 기용 하는 등 노인 학대를 시키다가 다시 6주짜리 부상을 당해버리면서 팬들은 모두 멘붕(...). 그러나 남은 멤버들이 잘해주면서 5할에 간당간당한 정도의 성적은 찍어주고 있다.[18]
스티브 내쉬는 시즌을 부상에서 시작해서 나중에야 복귀했으나 나왔다 말았다 하는 들쑥날쑥한 컨디션을 보이면서 15게임 출장에 그쳤고 그나마도 예전의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코비 브라이언트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채 무리해서 경기 출장을 감행하다가 고작 6게임만에 시즌아웃 선언되는 등 점점 댄토니 농구가 레이커스에서 삐그덕거리고 있다.
거기에 새로 들어온 크리스 케이먼과 가솔은 출장문제 및 감독의 전술로 인해 계속해서 댄토니 감독과 불화설이 나오는 등, 분위기 자체도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 와중에 코비는 2년간 4800만 5000불을 받기로 한 조건에 레이커스에 더 잔류할 것을 선언, NBA 최초로 20년간 한 팀에서 뛴 프랜차이즈 선수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샐러리 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코비의 남은 2년동안 우승을 위해 뉴욕 닉스처럼 무리하게 팀 운영을 하다가 암흑기로 빠져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팬들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서 그나마 레이커스 팬들을 웃게 해준 것은 조디 믹스와 닉 영의 발견. 조디 믹스와 닉 영 둘다 슛팅 능력이 많이 향상되고 열정적인 플레이를 펼쳐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우며 레이커스를 이끌었다.
결국에는 한 시즌만에 피닉스 선즈에서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 되자마자 방출되고 D-리그에서 뛰고 있던 켄달 마샬까지 영입. 마샬은 처음에는 상당히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어 UNC시절에 그에게 기대했던 모습의 완전체를 보여주나 했으나 그 이후에는 점점 하락세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NBA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준만큼 성공적인 영입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가솔은 결국에는 트레이드 블럭에까지 올랐으나 컵책 단장은 1라운드 상위픽을 원하는 바람에 결국 교섭이 결렬되어 레이커스에 잔류했으나, 시즌 후 FA인지라, 현 레이커스의 성적에 댄토니 감독과 불화가 있는 가솔을 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부호다. 대신 내쉬가 부상일때 주전 포인트 가드였던 스티브 블레이크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두 명의 젊은 선수와 트레이드 되면서 시즌을 포기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6연패-1승-6연패의 여파로 대차게 순위가 내려가더니 결국 2월 22일, 보스턴을 이겼지만 새크라멘토도 다음날에 보스턴을 이기고, 24일 브루클린에 패배하고 새크라멘토가 덴버를 이기면서 드디어 '''유타와 새크라멘토를 밀어내고 당당히 서부 컨퍼런스 단독꼴찌를 차지했다.''' 급기야 3월 7일 열린 세번째 LA 더비에서는 클리퍼스에게 탈탈 털린 끝에 142:94로 지면서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 점수차 패배라는 대굴욕을 당했다.
댄토니 특유의 엄청난 운동량을 필요로 하는 공격은 나이 많고 몸집이 큰 레이커스 선수들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현지에서나 국내 레이커스 팬들 사이에서나 댄토니 감독에 대한 의문부호로 매일매일 의견이 갈리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의견은 댄토니가 좋고 나쁜 감독인것을 떠나서 레이커스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 그러나 2014-15 시즌까지 계약되어 있어서 결국 한 시즌을 더 댄토니랑 해야 하는데, 레이커스 수뇌부는 올 시즌을 끝으로 360만불을 버리는 샘 치고 댄토니를 해임할지에 대한 여부에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내쉬까지 결국에는 은퇴할지 한 시즌을 더 뛸지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다고 한다. 참고로 내쉬의 계약 역시 다음시즌까지이다.
최종 성적은 27승 55패(.329), 순위대로라면 레이커스는 전체 6번째 픽을 받게 되며, 승률은 레이커스가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레이커스 특성상 이러한 성적은 상당한 치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댄토니의 해임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
8.2.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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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댄토니는 결국 사임하고 코비와 내쉬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FA로 풀려났으니 판을 새로 짜야만 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행운의 1픽을 거머쥐면서 레이커스는 7픽이 되었고, 오랜만에 손에 넣은 로터리 픽으로는 언더사이즈지만 인사이드 득점과 리바운드에 능한 켄터키 대학 출신 파워 포워드 줄리어스 랜들을 선택했다. 또한 파우 가솔이 시카고 불스로 떠난 가운데 쓸만한 빅맨 조던 힐과 스윙맨 닉 영을 붙잡고 휴스턴에 있던 제레미 린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그리고 기량이 감쇠해 시카고에서 사면당했지만 아직까지 공격에서는 제몫을 해줄거라고 기대받은 파워 포워드 카를로스 부저 입찰에도 성공하며 구색은 대충 갖춰가고 있었다.
비시즌 오랫동안 감독 선임이 되지 않아서 영입된 선수를 짜맞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었다. 특히 노장 코비 브라이언트의 관리문제, 포지션이 겹치는 부저와 랜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신임 감독의 과제였다. 결국 7월 28일, 이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직을 맡았던 바이런 스캇이 차기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스티브 내쉬는 정규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등 부상으로 아웃되어 아무것도 못한 채 3월 21일에 은퇴를 선언으며,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원정 온 휴스턴에게 완패한 것도 모자라 줄리어스 랜들이 데뷔전에서 정강이뼈 골절을 당하고 실려나가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11월 16일에 열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홈경기에서 115-136으로 완패하면서 1승 9패를 기록, 같은 날 9전 전패를 기록 중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NBA 전체 꼴찌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내용을 보면 더 심각했는데, 코비 브라이언트가 커리어 두번째로 많은 경기당 슈팅 시도로 커리어 최악의 야투 성공율을 기록하였다. 즉, 난사를 했다는 것이었다.[19] 11월 18일 현재 37.7%의 성공율. 평균득점은 27.3득점으로 초반 전체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이게 겨우 개막 10경기에 불과하고 매경기 초반에 좀 안정되다가도 후반되면 다시 40%대 이하로 DTD하는 상황. 거기다 팀은 답이 없는 픽앤롤 수비로 리그 최악. 매 경기 끝날때마다 전세계의 레이커스팬들 vs 안티, 코비팬들 vs 안티들간의 키보드 전쟁이 격화되고[20] 개막 한달도 되지 않아 감독과 다른 멤버와 코비가 각각 따로놀고 있고 내쉬는 연락두절 상태라는 사상 최악의 콩가루 집안스런 모양을 보이고 있다. 팬들도 어차피 망한 시즌 코비가 그냥 난사질이라도 해서 득점왕이나 시즌 MVP나 타라고 코비에게 MVP! 챈트를 날리며 응원하는 막장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그런 코비마저 부상으로 시즌아웃됐다. 사실 코비가 그렇게 난사를 했는데도 득점 1위를 못한 걸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런 막장 경기력[21] 으로는 아무리 난사를 해봤자 득점왕도 불가능하고 (노장이니 갈수록 스탯이 떨어지기 마련이므로) '''난사만 해서 득점스탯만 좋은 선수에게 MVP를 줄 정도로 NBA가 허접한 리그가 아니다.''' 코비가 커리어 내내 '''단 한'''번 MVP를 탄 걸 생각하면 MVP운운은 말도 안되는 상황. 이대로라면 한두해 탱킹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면 팀 스피릿이나 컬러가 망가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우려될 정도로 레이커스의 내홍과 외환은 심각하다.
최종 성적은 21승 61패. LA에 온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2라운더 루키 슈팅 가드인 조던 클락슨이 후반기에 제법 활약을 한게 위안이었다.
그리고 레이커스는 시즌내내 덕분에 2015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8.3. 2015-16 시즌
드래프트에서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스킬풀한 가드 디안젤로 러셀을 선택했다. 동시에 라마커스 알드리지같은 FA 시장에 나오는 올스타 빅맨과 드마커스 커즌스의 트레이드를 노렸으나 모두 실패하고 인디애나의 계륵으로 전락한 로이 히버트만 데려오게 되었다.
그후 조용히 있다 싶더니 뜬금없이 메타 월드 피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나왔다.
수많은 레이커스팬들이 그래도 지난시즌보단 낫겠지...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으나 그 내용물은 지난 시즌보다도 더 형편이 없다.(...) 감독은 전술이 없고, 코비는 말로만 유망주들 지원하겠다더니 현실은 예년보다 탐욕이 더 심해졌다. 그리하여 개막후 13경기에서 2승 11패라는 아름다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참고로 레이커스는 이번시즌 드래프트 3픽 안에 못 들 경우 픽을 그대로 이 팀에게 넘겨줘야 한다...
엄청난 역사와 여러번의 왕조, 스타 선수들이 거쳐갔던 레이커스지만 코비 한 명을 제어하지못해서 팀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코비를 쉴드치는 코빠들과 코비를 까는 코까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코비가 언급되는 순간 전쟁이 벌어진다. 다만, 코비가 골든스테이트전에 앞서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고 입을 털었다가 말그대로 개박살이 난 후로는 코빠들도 도저히 코비를 쉴드를 못치는 모양새.
지난 시즌 함께 서부의 밑바닥을 책임졌던 미네소타의 젊은 선수들이 가넷의 지도 아래 똘똘 뭉쳐 성장해나가고 있는데 반해 레이커스는 베테랑 단 한 명의 탐욕으로 여전히 밑바닥을 수성 중이다. 이번 시즌 명실공히 '''서부 최악의 팀.'''[22]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알아준다고, 개막 후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게 첫 승을 선물했다.
이런 막장 상황 속에서 코비가 은퇴발표를 했다. 레전드의 은퇴라며 많은 관객들이 레이커스의 홈, 원정 경기를 찾고 있고, 코비도 이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이렇게 보면 참 아름답지만''', 그런다고 경기력이 좋아지는 것도, 팀이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레전드라 할 지라도 팀에 있어서는 한 명의 선수. 한 시즌 전체가 선수의 은퇴고별행사로 치뤄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표하는 레이커스팬들도 많다. '''팀 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NBA의 오랜 역사 동안 한 선수가 은퇴시즌을 보내는 데 대하여 환호와 감사가 전해진 적은 많지만, 팀의 시즌 하나를 홀라당 말아먹으면서까지 이런 대우를 받은 선수는 심지어 코비 이전의 레이커스의 레전드들 조차도 없으며, 이 은퇴투어드립의 원조였던 2014년 데릭 지터보다도 질이 나쁜 수준이다.[23]
국내의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레이커스 경기 후에는 늘 농구 관련 게시판에서 코비 관련으로 싸움이 나곤 한다. 사실상 코비가 은퇴할 때까지, 은퇴한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질 논쟁.
코비도 코비지만 다른 팀원들도 심각한 상황이다. 수비력 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며 베테랑 닉 영, 로이 히버트, 브랜든 배스 등은 존재감이 없고, 신인인 디안젤로 러셀은 기대치에 못미쳐 식스맨으로 돌리고 난뒤에야 개선된 모습이며, 섬머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주축 유망주로 꼽히던 줄리어스 랜들은 리바운드를 잘 잡는거 외에는 수비나 공격이나 엉망인 모습으로 차라리 래리 낸스 JR가 더 낫다는 의견이 있을정도이다.
2015-16시즌 전반기가 끝난 상황에서의 성적은 11승 44패 승률 0.200으로 전체 팀 중 뒤에서 2위. 이대로라면 레이커스 역사상 최악의 시즌은 사실상 확정적이다.
후반기도 좋지 않은 성적이 이어지며 12승 51패를 기록하던중 뜬금없이 55승 5패의 괴물같은 성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홈에서 112-95로 잡아버렸다. 승률 1할대의 팀이 9할대의 팀을 잡아버린것은 NBA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후 4월 클리퍼스와의 2연전에 모두 패배하면서 '''팀 역사상 최악의 승률을 확정'''한 것은 물론 '''사상 최초로 2시즌 연속 클리퍼스에 스윕패'''당했다. 그리고 '''클리퍼스에 도합 11연패를 당하면서 특정 팀 최다 연패 3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최종성적은 17승 65패 서부 15위, 전체 29위로 처참했지만 그나마 코비 브라이언트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서 60득점을 뽑아내면서 유타 재즈를 홈에서 물리쳐 유종의 미를 거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할듯하다.
9. 맘바 아웃, 그러나 계속되는 암흑기
9.1. 2016-17 시즌
시즌 종료 후 바이런 스캇 감독과 결별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레이커스에서 뛰었던 골든스테이트 수석코치 루크 월튼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2픽을 얻는데 성공하며 레이커스 구단과 팬들은 크게 한숨 돌렸다.[24] 1픽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현재 2016 드래프트 탑 2로 꼽히고 있는 브랜든 잉그램과 벤 시몬스중 남은 한 선수를 뽑을것이 확실시 되고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필리가 시몬스를 지명하자 레이커스는 잉그램을 2픽으로 지명했다. 2라운드에서는 크로아티아의 빅맨 이비차 주바치를 지명했다.
FA시장에서 부상으로 기량이 감퇴한 티모페이 모즈코프에게 4년 640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사람들은 무슨짓이냐는 반응이 대다수. 우리나이로 31살에 팀플랜에서 밀려났고, 큰 부상이 있었으며 커리어 내내 평균 30분 출장을 못한 선수이다. 참고로 모즈고프의 작년 성적은 17.4분 6.3득점 4.4리바 0.8블락. 늘어나는 샐러리캡의 영향으로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연봉 상승기조가 있다고는 하지만...굳이 역할을 대변해주자면 레이커스의 부실한 수비력과 부족한 스크리너 롤맨 역할을 바라고 영입한듯 싶으나 그를 염두에 두어도 오버페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조던 클락슨과는 4년 500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루올 뎅과도 4년 72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좋은 수비와 스몰라인업에서 활용등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팀내 기대주인 2순위 잉그램과 포지션이 대체로 겹치는지라 역시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이후 마르셀로 후에르타스와 2년 300만 달러, 타릭 블랙과 2년 1285만 달러, 이젠롄과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단년 800만 달러 계약까지 맺었다.
잠시 KCC에서 뛰었던 식물용병(...) 2라운더 아터 마족의 권리를 넘겨주고 2개의 2라운드 픽과 베테랑 가드 호세 칼데론을 영입했으며, 시즌 전 이젠롄은 프리시즌 부진한 활약과 역할 불만등으로 웨이브 되었다.
홈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휴스턴 로키츠와 치열한 난타전을 벌여 역전승을 거둬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원정 4연전에서 3연패했지만, 애틀랜타에 123-116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홈으로 돌아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117-97로 대파했다! 지난 시즌 1할의 성적으로 9할의 워리어스를 잡아낸 데 이어 또다시 악몽을 선사한 셈. 또 이 경기에서 골든스테이트의 에이스 스테판 커리는 3점슛 10개 시도해 모두 실패하면서, 레이커스는 커리의 연속 3점슛 성공 경기수를 157경기에서 막아낸 팀이 됐다.
11월 7일(한국시간)에 열린 피닉스 선즈마저 잡아내면서 시즌 초반 홈경기 전승, 승률 5할 이상을 달성했다.
문제는 그 이후. 디안젤로 러셀, 줄리어스 랜들, 닉 영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면서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고, 최근 13경기에서는 고작 1승만 거두는 등 단언코 12월 전체 승률 꼴찌를 기록하였다. 심지어 탱킹의 대명사인 필라델피아가 12월 들어 3승 8패, 랭킹조차 불가능한 브루클린 네츠마저도 2승 10패를 기록했다. 성적은 어느덧 1월 22일 16승 31패로 서부 컨퍼런스 13위까지 추락했다. 그럼에도 시즌 60%가 지난 1월 22일 현재 서부 컨퍼런스에서 역대급 탈꼴찌싸움 겸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 1장을 두고 무려 8팀이 경쟁했다. 8위 덴버와 14위 댈러스&피닉스의 경기차이가 겨우 '''4.5경기'''에 불과했다.
결국 2월 21일 미치 컵첵이 23년을 몸담아 온 단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는 매직 존슨이 단장에 부임하였다. 직책명은 다르지만 사실상 단장이라봐도 될 자리였다. 과연 매직 존슨은 뛰어난 단장이 될 수 있을까?
3월 5일 현재 성적은 19승 43패. 동네북으로 여겨지는 브루클린 네츠에 이어 리그 꼴찌에서 두 번째인데다, 최근에는 6연패를 기록중이었다. 특히 지난 3월 4일 보스턴 셀틱스와의 경기에서는 95-115로 대패, 전통의 라이벌이라는 명성도 옛말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실감해야 했다. 설상가상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려주던 식스맨 루 윌리엄스가 올스타전이 끝난 이후 휴스턴 로키츠로 이적하며 믿고갈 득점원이 전무한 상황. 디'안젤로 러셀은 2년차가 된 지금까지도 완전한 실패작이며, 브랜든 잉그램 역시 현재까지는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4년간 6,400만 달러를 쏟아부었던 티모페이 모즈고프는 평균 7.4득점 4.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존재감 자체가 없는 X맨을 시전중이시다... 올해도 레이커스의 리빌딩은 그른듯...
4월 6일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원정경기에서 102:95로 승리하였는데, 이는 특정 팀 연패탈출에 성공한 것임과 동시에 무려 3년만에 이긴 것이었다. 시즌 말 피닉스 선즈와의 뒤에서 2등 싸움이 격렬했는데, 3픽 내에 들지 않으면 픽이 필라델피아로 넘어가 버리는 상황이라 마냥 기뻐하기도 힘들었다. 최종성적은 26승 56패로 결국 피닉스보다 높은 승률을 찍게 되었다.
정규시즌 종료 후 벌어진 2017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2픽을 가져가며 다행히 한숨 돌렸다.
9.2. 2017-18 시즌
매직 존슨 사장이 브랜든 잉그램을 제외하면 모두가 트레이드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고, 결국 디안젤로 러셀과 티모페이 모즈고프를 브루클린 네츠로 보내고 브룩 로페즈와 1라운드 27픽을 가져왔다. 또 다른 이슈로는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얻은 2픽으로 론조 볼을 지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있었는데, 예상대로 론조 볼을 지명했다.
초반에는 27픽인 카일 쿠즈마의 활약으로 나름 중위권으로 출발했다. 론조 볼이 기복이 있긴 하지만 팀내 리바운드와 어시스트에 1위에 오를 정도로 어느 정도 성장하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골든스테이트에 2경기 모두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했고 휴스턴 원정에서는 휴스턴의 연승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이후 부상 선수들이 나오고 부진에 빠져 슬슬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포틀랜드에는 접전 끝에 역전패로 상대전적 14연패를 허용하고 현지시각 기준 12월 29일에는 지역 라이벌 LA 클리퍼스에 이번 시즌 3번 모두 패배하고 5연패에 빠지면서 새크라멘토와 피닉스를 제치고 디비전 꼴찌가 되었다.(...)
줄리어스 랜들, 조던 클락슨, 래리 낸스 주니어 등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트레이드 대상 선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르브론, 폴 조지등 대형 FA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한 준비인데 이 것이 선수단으로 하여금 불만을 초래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젊은 선수들로 구성되어있는 상황에서 팀의 어설픈 정책이 불안감을 조성했으니 성적이 제대로 나올리 없다. 베테랑 앤드류 보거트[25] 만이 이런 팀 사정을 이해했고 그러면서 코트밖으로는 라바 볼 입단속 조차 제대로 못하는 등 어이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결국 래리 낸스 주니어와 조던 클락슨을 클리블랜드로 보내고, 아이재아 토마스와 채닝 프라이, 그리고 클리블랜드 2018년 1라운드 픽 (보호) 를 받았다. 부상에서 돌아온 론조 볼이 각성하면서 경기력이 제법 나쁘지 않다. 승수도 30승에 다다르면서 서부 탱킹 4총사와는 10경기차 정도를 벌려놓았다. 이쪽은 어차피 이번 드래프트에서는 본인 픽을 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에 내줘야 하고 클블 픽의 경우는 클리블랜드가 어쨌든 플옵권 팀이라 가치가 크지 않아서 노골적인 탱킹을 할 이유가 없기는 하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35승 47패.
10. 르브론의 시대
코비의 은퇴 이후 또다른 슈퍼스타를 영입했다.
18-19 시즌을 앞두고 레이커스는 그 전부터 빅네임 영입을 노리고 있었고, 결국 매직 존슨과 프런트의 수완에 힘입어 '''르브론과 계약하는데 성공했다.'''[26]
10.1. 2018-19 시즌
르브론을 영입하고 기존의 유망주들 그리고 시즌 중 합류한 타이슨 챈들러와 함께 점차 호흡이 맞아 나가면서 크리스마스 전까지 좋은 팀 분위기로 승승장구했으나, 부상이 발목을 잡은 아쉬운 시즌이였다. 물론 로스터의 빈약함과 복귀 선수들의 길어지는 부진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의 기본적 원인은 바로 부상이였다는 점.
결과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다.'''
10.2. 2019-20 시즌
르브론 제임스와 앤서니 데이비스의 등장으로 오프시즌에 소문만 무성했던 '''앤서니 데이비스 트레이드'''에 성공했고, 비록 또다른 빅네임 영입은 무산되었지만 남은 자원들로 보강을 착실히 해 나갔다. 과정이 어쨌든 로스터를 보면 작년과 완전 다른 팀이 되었고, 시즌 전 예상에서 '''우승'''도 가능하다는 전력[27] 이라고도 평가를 받은 만큼 오랜만에 팬들의 기대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국 정규리그에서 서부 1위를 질주하며 '''7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2020 NBA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0.3. 2020-21 시즌
내용이 길어져서 하위 문서로 분류하였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20-21 시즌 문서 참고.
위 시즌처럼 내용 정리 부탁드립니다.
11. 관련 자료
- The Laker Dynasty - NBA Entertainment. 2002.
[1] 훗날 그는 1973년부터 15년간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구단주를 지내게 된다.[2] 당시 하트먼이 근무하던 신문사 편집국장이 미네소타로 스포츠 팀만 데려오면 팀과 관련된 사업을 해 주겠다고 했는데, 대신 팀과 관련된 기사는 쓰지 않도록 조건을 내밀었다.[3] 게다가 주무기가 훅슛이었다. 마이칸의 "Mikan Drill"은 지금도 빅맨에게 필수적인 훈련기술이다.[4] LA로의 이전이 확정되었던 이유가 NBA의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가 흥행에 실패했다는게 중론이다. 바로 옆에 붙은 세인트 폴을 배려하지 않고 미니애폴리스의 도시명만 썼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주명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보통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 폴은 쌍둥이 도시라고 하는데 행정상 서로 다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둘이 한꺼번에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였는지 이 이후 미네소타 프로 스포츠팀들은 팀명 앞에 도시 이름 대신에 주 이름을 쓰게 된다.[5] 레이커스가 LA 이전하고 나서 1989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창단되기 전까지 30년동안 미네소타에는 NBA 팀이 하나도 없었다.[6] 여담이지만 이때 보스턴이 레이커스를 꺾을거라고는 정말 누구도 예상못했다. 당시 보스턴은 겨우 플옵에 진출했고, 러셀을 포함한 주축선수들이 모두 노쇠한 상태. 반면 레이커스엔 제리 웨스트-윌트 챔벌린-엘진 베일러라는 리그내에서 손꼽힐 선수가 세명이나 버티고 있었고 7차전을 홈에서 치르는 이점까지 있었다. 이에 레이커스 구단주는 경기장 천장에 풍선을 세팅하고 아나운서 칙 헌이 수훈선수를 인터뷰할 순서까지 정해놓는 궁극의 설레발을 친다. 심지어 우승 직후 밴드가 "The happy days are here(좋은 날이 왔네)"란 곡을 연주하도록 대기시켜놨다고...근데 졌다. 러셀은 훗날 인터뷰에서 "그들이 천장에서 풍선을 하나하나 꺼내는 꼴을 보고싶었죠"라고 회고했다. 또한 러셀은 이 힘든 여정을 끝낸후 소감이 어떻냐는 질문에 감정이 북받혀 한동안 말을 못 이었다.[7] 취임 당시엔 LA와 보스턴 두 곳에서 파장이 엄청났다. 그러나 셔먼 감독은 텍사스 출신이지만 대학은 LA에 있는 USC를 다녔기 때문에 LA와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다.[8] 참고로 엘진 베일러는 자신이 은퇴한 시즌에 우승하자 자신의 선택이 팀의 우승에 도움이 되었다면서 '''진실로 기뻐했다.'''[9] 오히려 윌트시절에 비해 골밑은 보강된 셈이다. 윌트와 카림 중 누가 뛰어나냐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말년의 윌트와 당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카림이라면 당연히 후자가 더 뛰어나다.[10] 나머지 하나는 필 잭슨[11] 2011년 결승전때 해설을 하던 매직의 회고에 따르면, 이때 팬들로부터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까였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Tragic Magic"이란 제목 등으로 조롱을...[12] 여담으로 이시즌엔 킹스를 상대로 1쿼터 40-4 라는 엄청난 경기를 펼친 적도 있다. [13] 근데 정작 매직과 조던은 데뷔연도도 5년정도밖에 차이 안나고 나이도 네살차이밖에 안난다. 사실 보통 세대교체는 몇년에 걸쳐 몇번 맞붙으면서 일어난다는 걸 생각하면 마치 왕좌를 물려주듯 딱 한번 붙고 바로 은퇴한 매직이 특이한 케이스다. 실제로 매직은 90년에 MVP, 91년에 퍼스트팀 멤버로서 실력 자체는 건재했기 때문에 HIV 투병만 아니었으면 실제로 그렇게 됐을 것이다. 게다가 라이벌 래리 버드 역시 몇년동안 그를 괴롭혀온 심한 부상으로 그가 은퇴한지 1년만에 은퇴하면서 80년대의 지배자들과 90년대의 지배자 간의 바통터치가 딱 맞게 이뤄진 것이다.[14] 실제로 MVP를 수상했다. 윌리스 리드와 마이클 조던과 더불어 유일하게 MVP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평생 괴물 소리를 들어오던 샤킬 오닐이지만 이해의 활약은 특히나 무시무시했다. 2000년 3월 6일 클리퍼스와의 경기에서 '''61득점 2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윌트 챔벌레인 이후 최초로 60-20을 기록했다. 팀은 시즌 67승이나 거두고 본인은 득점왕도 차지하고, MVP 투표에서도 121표 중 120표를 쓸어가는 유래없는 사태를 일으켰다(…). 결승전에서는 인디애나를 상대로 평균 38득점 16.7리바 2.3어시 2.7블록 필드골 성공률 61.1%라는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참고로 이해 오닐이 기록한 결승전 평균 득점은 93년 조던의 평균 41득점에 이어 역대 2위.[15] 샤크가 올랜도와의 계약이 끝나고 레이커스로 이적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LA에 할리우드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구 외에 끼도 많고 관심도 많은 사람인 반면, 코비는 여자친구랑 데이트 할 때도 마이클 조던의 비디오를 보면서 데이트 할 정도로 농덕후라서 코비는 농구에 집중하지 않는 샤크가 못마땅하고 샤크는 자기보다 실력도 경력도 못한 애송이 주제에 자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게 아니꼬와서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16] 실제로 워싱턴 위자즈의 에이스 길버트 아레나스는 "이 트레이드는 범죄행위다"라 할 정도였다. 그래도 멤피스는 형 가솔을 넘겨주면서 받아온 동생 마크 가솔이 잘 성장해줘서 다행.[17] '''필 잭슨 감독 생애 최초의 스윕 패배'''이다.[18] 아예 이번 시즌은 포기하고 탱킹하는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지만 레이커스같은 팀은 아무리 대형신인이 눈에 보여도 무조건 성적이 좋아야 한다. 팬들의 비난도 문제고 무엇보다도 수익과 직결된다. 해도 안돼서 어쩔 수 없이 로터리를 노릴 상황이면 몰라도...[19] 뒤집어 얘기하면 코비를 받춰줄 만한 플레이어의 부재란 의미도 된다.[20] 다만 예전과 다르게 많은 코비팬들이나 레이커스팬들도 코비의 플레이가 엉망이라는 건 인정하고 있다. (초반에는 "코비답다", "이 정도만 해도 어디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런 옹호의 목소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린이나 부저같은 동료가 대놓고 "공이 안 돌고 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야투율은 올라갈 기미는 커녕 더 떨어지고 턴오버까지 많기 때문. 실제 경기를 보면 더 심한데, 아무리 동료 수준이 떨어져도 오픈된 동료를 무시한채 수비달고 난사를 하다 말아먹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21] 이번 시즌 코비는 스탯상으로는 좋아보이나 자세히 보면 필드골 성공률 및 삼점슛 성공률이 형편없고 (필드골의 경우 평득 20점 이상을 찍은 선수중 역대 최저 수치) 2차스탯으로 보면 비효율의 상징인 조쉬 스미스보다도 더욱 비효율적이다.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는 코비 브라이언트항목의 2014-15시즌 부분 참고[22] 하든의 부진으로 붕괴한 휴스턴과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운영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클리퍼스조차 레이커스보다 형편이 낫다.[23] 최소한 지터는 2014년 뉴욕 양키스 라인업의 구멍정도로만 못했지 최소한 팀은 84승 78패의 성적으로 망하진 않았다. 게다가 지터는 자신의 홈 은퇴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홈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제대로 건넸다.[24] Top3 보호픽, 다시말해 1,2,3번이 걸렸을때만 레이커스가 행사할 수 있는 픽이고 4픽 이하로 뽑히면 필라델피아로 넘어가는 조건의 픽이었기 때문에 레이커스로서는 한숨 돌렸다.[25] 1월 초 레이커스는 보거트를 웨이브 시켰다. 여전히 좋은 센터이기에 우승을 노리는 팀들에게는 효과적인 영입 대상이다.[26] 4년 $154M. 계약 마지막 해(2021-2022) 플레이어 옵션[27] 1순위까진 아니었고 우승권 팀으로 분류하는 시각이 많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