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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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1. 불심으로 대동단결
2.2. 선거 결과, 그리고 그 후...
3. 비슷한 정치 기행
4. 그 외
5. 선거 이력


1. 개요


김길수(金吉洙)는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후보들 중 하나이다. 출생일은 1948년 8월 8일. 76세. 서울특별시 출신. 법명은 법륜(法崙)이며,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인 법륜사의 주지를 역임했다. 육군 하사 출신으로, 필리핀 콘티넨탈대 경영학과졸업#s-1했다.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에 종립 국보대학교 교장, 대한격투기협회 총재, 학술단체 지방문학회 총재 등도 지냈다고 하나,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1]

2. 제16대 대통령 선거



2.1. 불심으로 대동단결


슬로건이 큰 이목을 끌어 모았다. 보통 '불심으로 대동단결!' 내지는 '불심으로 대동단결' 같이 사용하지만, 원문의 포스터에도 나오듯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라고 느낌표를 앞뒤 모두 넣어야 맞는다.
흔치 않은 '''승려'''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특이점이었다. 그리고 포스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색 가사와 어딘가 피곤하면서도 몽롱한 표정을 동반한 포스#s-3 때문에 여러가지 패러디 짤방들이 많이 양산되었다. 대표적으로 옥동자#s-2 버전[* 이 쪽은 아예 개그콘서트봉숭아 학당에 나오기도 했다.]과 궁예 버전이 있다. 이 때가 디시인사이드에서 한창 아햏햏이 나돌던 때라 필수요소 중 하나인 초난강을 합성하고 '''햏심으로 폐인 단결'''이라는 문구를 넣은 포스터도 있었고, 심지어 당시 안티의 제왕으로 등극했던 문희준 역시 합성 대상이 되었다. 후에는 또 '김'''길'''수'라고 해서 을 가지고 길드립을 치기도 했다. 이 외에도 GTA 2러시아 마피아닮은꼴로도 유명했다. 그 외에도 이 곳에서 당시 여러 합성물들을 볼 수가 있다.
마침 시기상으로 전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이 종영된 직후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궁예 아니냐는 얘기가 제일 많이 나왔다. 실제로 몇몇 포스터에서는 (당시의) 초딩[2]매직 펜으로 안대를 그리는 사태도 발생했다. 하필 그 시기에는 태조 왕건 광풍이 더 불던 시기라서 궁예를 더 연상시키니 초딩들의 입장에서 애꾸 안대를 그리고 싶은 충동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욕구였다. 그 외에도 궁예가 아니라면 소림사 승려 스타일로 머리에 계인을 찍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훼손#s-1되었다. 비록 선거에선 참패했지만, 당시 초딩들 사이에서의 낙서 인기는 후보들 중에선 단연 No.1. 다른 후보들도 물론 수모를 아예 당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김길수의 경우에는 스님 특유의 스킨헤드가 유독 초딩들의 낙서 흥미를 자극한 듯 하다.
참고로, 길거리에 부착된 선거 포스터를 훼손하는 행위는 '''선거법에서 규정하는 범죄'''로, 훼손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s-1'''에 처해진다. 또한 선관위 직원 등 선거 사무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나 경찰 공무원이 선거 포스터를 훼손했을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 처벌이 적용된다. 다만, 실제로 이로 인한 사례로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는데, 범인을 못 잡아서 넘어간 건지, 아니면 알고도 그냥 넘어간 건지는 몰라도 이렇게 안대를 그려주는 식으로 선거 벽보가 훼손된 경우는 대개 저연령층의 아동들이 호기심에 저지른 경우가 많아 대부분 기소를 할 수 없어서 놔둔 것 같다. 형사미성년자의 경우는 형사상 처벌이 불가능하다. 보호자에게 민사상 보상 의무를 지우는 것은 되지만, 몇 푼도 안 하는 거 가지고 선거 공보 훼손까지 민사로 걸 수도 없는 일이니... 게다가 해당 후보가 당선권이었다면 모를까 어차피 군소후보라서 하위권 낙선은 안 봐도 비디오였기 때문에 이 낙서가 선거에 별 영향이 없어서 신경조차 안 쓴다.
참고로, 당시 불교계에선 김길수를 "출마를 통해 교세를 확장하려는 이단#s-1.1"이라고 규정하면서 철저하게 외면하였고, "이 사람은 불교와 연관 없으니 크게 연관 짓지 말라!"라며 부정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또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상임이사인 미산 스님은 "김길수씨는 한국 종단협의회 소속이 아닐 뿐더러, 한국 전통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라며 선을 긋기도 하였다. 세계불교법왕청이라는 단체 소속이었다고 한다. 후일 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해당 교단 소속의 사찰이 공원부지 무단 점유 논란이 있었다는 글들도 있다. 또한, 가정으로 발송된 후보 공보물에도 김길수만이 빠져 있었고[3], 선거 운동 기간에도 6일간 동안거에 들어가는 등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행보를 보였다. 동안거를 한 이유#s-1는 '''"큰 일을 앞두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덧붙여 군소 후보 TV 토론에서는 수도 없이 "제가 당선될 리가 없겠습니다만..."을 붙인 것만 봐도, 처음부터 본인한계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게 임팩트#s-1가 컸는지 이후로 뭔가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는 ~으로 대동단결 드립이 흥하게 됐다.

2.2. 선거 결과, 그리고 그 후...


결과적으로 김길수 후보는 고작 51,104표(0.2%)를 득표해 전체 5위에 그쳤다. 그래도 흔히 '거품후보'라고 조롱당하는 군소후보들의 평균적인 득표력을 생각한다면 5만표 이상의 득표는 생각보다 훨씬 선전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16대 대선에 출마한 김영규 후보 같은 경우 당세야 어찌됐건 일단 역사만은 19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당인 사회당 후보로써 약간의 조직력[4]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2만 2천여 표 득표에 그쳤고, 17대 대선의 경우까지 보면 일단은 장관#s-1 경력까지 있는 정근모 후보가 만5천여표 득표, 최소한 군인으로써 장군 경력이 있던 전관 후보가 7천여표로 당시기준으로는 역대 대통령선거 사상 최저 득표에 그쳤음을 생각한다면, 장관이나 대한민국 국회의원은커녕 사실상 아무런 공직 경험도 없고 제대로 된 정치세력의 지원도 없는데다가 특정 종교 집단의 정치세력화에 반감이 매우 큰 대한민국에서 종교인이라는 핸디캡까지 가진 상태로 그나마 5만표 이상 득표했다는 것은 거의 쾌거로 봐야 할 정도로 기대 이상의 고득표인 것. 다음 17대 대선에서 허경영이 9만 8천여 표 이상 득표하여 0.4%라는 군소후보로써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보인 것까지 생각하면, 제대로 된 노선과 정책, 정치적 기반 세력도 없이 출마에만 의의를 둔 거품급 군소후보는 차라리 엽기코드로 사람들을 웃겨주는 쪽이 가장 효과적인 선거운동 전략인 듯하다.
이후 선거 후 불과 1년 만인 2003년 8월 2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되면서 완전히 잊혀졌다. 요약하자면 '''"부처님 뜻으로 대통령 100% 된다."'''라고 대선 출마/당선을 미끼로 총리 시켜주겠다며 주변인을 상대로 6억원, 이전에도 복지 사업한다며 세계법왕청 건립 명목으로 74억원을 뜯어낸 것을 포함해서 모두 '''88억원''' 상당의 돈을 챙기는 등 사기 행각을 벌였던 것. 기사 바로가기. 선술했듯이, 불교계에서까지도 철저히 외면받고 있었으니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를 챘어야 했다. 결국 구속 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는데, 이후 별다른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가 대표로 있던 국태민안호국당도 이후로는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최종적으로 2004년 9월 13일을 기해 해산되었다.[5]

3. 비슷한 정치 기행


원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김길수, 허경영 이전에도 이러한 황당 공약을 내걸었던 후보가 제법 있었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진복기는 허경영보다 더한 공약으로 3위로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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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남장여자 정치인으로 유명한 '''김옥선'''[6]은 지키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것이 낫다는 취지를 내세워 '''무공약이 공약'''이라는 공약을 내걸며 86,292표(0.4%)를 득표해 전체 6위로 낙선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봤자 낙선될 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대선에 출마했던 3인방을 모아서 '''허전길'''이라 부르기도 했다. 허전길의 구성원은 그 허경영,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학생중앙군사학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전관, 그리고 이 항목의 김길수이다. 이 삼인 모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서 죄다 하위권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특히 전관은 이명박이 당선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작 7,161표(0.03%)에 그쳤으며, 이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오영국이 6,040표(0.01%)로 기록을 갱신하기까지 해당 대선은 물론 직선제 한정, 중도 사퇴 후보 제외한 '''역대 대선 후보 득표율 전체 꼴찌'''라는 기록이기도 했다. 여튼 이러한 유명세(?)로 인해 관련 만화도 존재한다.
김길수 외에도 당시 대선에 출마한 뒷번호 군소후보였던 사회당 김영규 후보의 구호인 '''돈세상을 뒤엎어라!''', 12.12 군사반란5.17 내란 등의 주역인 무소속#s-1 장세동의 구호인 '''가자 으뜸의 나라로'''를 전부 합쳐서 '''"돈 세상을 뒤엎고 불심으로 대동단결해 으뜸의 나라로 가자."'''라는 드립도 있었다고 한다. 장세동은 중도사퇴했고, 김영규는 김길수만도 못한 2만 2천표를 얻었다는 게 안습.
개신교제17대 국회의원 선거한국기독당,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기독사랑실천당,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기독자유민주당, 한국기독당이 참가한 적이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기독자유당[7], 기독민주당 2개 정당을 창당해 출마했지만 실패했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기독자유당만이 기독자유통일당[8]으로 이름을 바꿔 참가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한편 통일교에서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하여 꽤 많은 후보가 출마하였으나, 후보자 전원이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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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국민의당 소속[9]으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속명 주종근, 일명 진아스님 또한 화제가 되었다.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범죄경력에 집어넣은 '''분묘도굴'''이었단 건데, 이에 대한 소명도 하지 않았단 거다. 공약 또한 괴이해서, 제주도에 원한 있는 영혼들이 한라산에 많이 모여 있다면서 한라산 개발 최소화와 '''자신이 직접 거행하는 7일간의 초대형 천도제''', 풍수지리적으로 바람직한 건설+문화 사업인 연꽃모리방에 8조원을 투자해서 4만명의 일자리를 늘리고, 제주도에 '''관광객 2,000만 거주인구 100만'''을 달성하겠다, 도민대상 항공료인하 공약 등이 있었다. 일명 지상낙원 공약. 결과는 이 분을 포함하여 새정치국민의당 소속 후보 전원이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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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간만에 불교계에서 '그린불교연합당(약칭 불교당)'을 창당해서 출마했는데, 대표인 장주 스님(속명 이대마)이 김길수를 연상케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10] 장주 스님 본인이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며, 이쪽 역시 단 1석도 얻지 못하고 낙선.
한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상술한 허경영이 국가혁명배당금당을 창당하여 제법 많은 후보를 냈고 본인 역시 비례대표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중에는 스님 출신 후보도 있었다.[11]
일본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2015년도쿄 다이토구 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한 것. 이름은 시모무라 텐코라고 한다.[12]

4. 그 외


어찌 되었든, 포스터 슬로건은 필수요소로도 쓰였으니 어찌 보면 원조 허경영급[13]이라고 볼 수 있으며, 현재는 워낙 오래된 터라 필수요소로서도 사실상 사장된 소재. 하지만 잊어버릴 때 쯤 되면 "~~으로 대동단결"은 가끔씩 튀어나오기도 하며,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에서 추가된 화염기갑병의 온갖 개그 패러디 대사들 중 이것을 패러디한 드립이 나온다. 이후 오버워치에서 젠야타업적명으로도 써먹었다. 과거 게이머즈에서도 김박사가 '게임으로 대충단결'이라는 표어를 쓰기도 했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02
제16대 대통령 선거

51,104(0.2%)
낙선(5위)


[1] [대선 D-30] “불심으로! 대동단결!” 역대 이색 대선 후보들, 서울신문, 2017. 4. 9.[2] 현재 28~34세[3] 가끔 특정 후보의 공보물이 투표 안내문 등에 동봉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해당 후보자가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보물을 제출하지 않으면 후보 등록 무효가 된다.[4] 진보정당 내에서도 민주노동당에 크게 밀린 사회당이었지만, 어쨌건 당을 13년간 유지할 정도의 조직력은 있었다.[5]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무렵에 지구당 제도가 시도당 제도로 개편되면서 일정한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데, 이를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유로 해체된 대표적인 정당은 개혁국민정당국민통합21 등이 있다.[6] 이 사람은 비슷한 기행을 벌였던 정치인과 달리 3선 국회의원 출신이었다.[7] 이 쪽은 선거 직전 이윤석이 잠시 이 당에 들어가 원내정당이 되었으나, 이후 실패하면서 탈당하였다.[8] 이때는 선거 직전에 이은재가 잠시 이 당에 들어가 원내정당이 되었으나, 종교 논란으로 인해 탈당하여 한국경제당으로 가는 바람에 원외정당으로 참가했다.[9] 원래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으나, 컷오프#s-1되면서 탈당해서 새정치국민의당으로 입당했다. 참고로, 새정치국민의당의 이전 예비후보도 2개월 동안 타 정당 컷오프, 새정치국민의당 입당, 다시 재탈당해서 공화당에 입당한 괴랄한 전력이 있다.[10] 참고로 이 스님은 이전에도 1991년 지방선거에서 꼬마민주당 소속으로 경상북도의원 영일군 선거구,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정치개혁당 소속으로 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 이전 총선에서도 불교정도화합통일연합당을 창당하여 비례대표로 출마한 적이 있다. 그린불교연합당은 이 정당이 해산되면서 다시 만든 것이다.[11] 여담이지만 위의 장주 스님 페이스북에는 허경영과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12] 【台東区、お前もか】草食ならぬ「僧職系男子」が選挙に出馬!(【다이토구, 너도?】초식하는 '승려계 남자'가 선거에 출마!), virates, 2015. 4. 21.[13] 근데 사실 허경영1997년 대선에도 출마한 적이 있다. 다만, 그때는 부족한 똘끼로 인해 묻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