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 관계
1. 개요
미합중국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가리킨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서는 2020년 2월 3~16일 동안 여러국가들의 호감도 조사를 실시했는데 미국인들은 이스라엘을 74%가 긍정적으로 보고 25%만이 부정적으로 본다는 다소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1]
참고로 미국인들의 한국 호감도 조사에서는 77%의 긍정, 22%의 부정으로 이스라엘보다 한국을 약간 더 긍정적으로 본다는 결과가 나왔다.[2][3]
2. 관계의 배경
2.1. 표면상의 배경: 아랍의 반미 정책에 대한 미국-이스라엘의 공조
한마디로 아랍 세계에서 발생한 반미(反美)에 대항해서 미국-이스라엘의 공조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7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을 묶어주었던 이해 관계는 분명하고도 실질적이었다. 따라서 1991년 소련의 해체 이래로 양국 관계의 기초가 상당히 불확실해졌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1948년 미국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승인했다. 하지만 그 당시만하더라도 두 나라는 어떤 측면에서도 '''결코 동맹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미국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정책이 실제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1948년에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었으며, 주로 터키와 그리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 반란이 일어났다. 또한 그리스와 터키 모두 외부적으로 소련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국이 볼 때 이 지역의 요충지는 터키였다. 소련의 흑해 함대가 지중해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방법은 이스탄불의 좁은 해협, 즉 보스포루스 해협 뿐이었다. 만약 소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얻게된다면, 소련은 미국의 힘에 도전하며 남유럽까지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중동에서의 미국의 봉쇄 전략에 대한 주요 장애물은 영국과 프랑스가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 지역에서 누렸던 영향력을 재구축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소련은 아랍 세계와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유럽의 책략에 대한 아랍 세계의 적대감을 이용하고자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나세르가 정권을 잡고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1956년에 사태가 악화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통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반(反) 식민주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전투 중이었고, 레바논과 시리아에서는 자신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스라엘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통제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1956년 이들 세 나라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침공을 위한 음모를 꾸몄다. 일단 이스라엘 군대가 운하에 도달하면,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개입하여 이스라엘의 침입 및 이집트와의 잠재적인 충돌로부터 운하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그곳을 장악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 냅킨에 그렸을 때나 그럴듯해 보이는 발상이었다.
미국이 볼 때 그 모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를 소련 진영으로 떠밀어 그들이 강력한 전략 동맹을 맺게 할 수 있었다. 소련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허용할 수 없었던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결국 수에즈 음모를 중단시키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를 철수시키고 이스라엘을 1948년 당시의 전선으로 후퇴시켰다. '''이처럼 1950년대 말 까지만 해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다지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전략적 문제는 자국의 산업적, 군사적 기반으로는 국가 안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이집트와 시리아,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요르단 같은 국가들의 위협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국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무기를 생산할 수 없었다. '''지속적으로 무기 공급을 받기 위해''' 이스라엘은 강력한 후원국이 필요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후원국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이스라엘이 영국에 반대하며, 나아가 자신들과 동맹을 맺을 수도 있는 국가라고 보았다.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했지만 이 관계는 곧 무너졌다. 이어서 알제리에서 여전히 전투를 수행하고 있던 프랑스가 소련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원조국으로 나섰다. 아랍 국가들이 알제리 반군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관심사는 반대편에 서 있는 이스라엘을 강력한 우방으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항공기와 전차, 그리고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초 기술을 제공했다.
이 때까지도 미국은 중동 지역에 대한 폭넓은 전략 목표에서 이스라엘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 문제가 발생한 뒤 자신의 전략적 관계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집트를 대신해 수에즈 문제에 개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 사회주의''' 노선을 내걸고 있던 이집트의 나세르 정권은 친소 노선을 취했다. 특히 나세르 정권이 오랫동안 중동을 좌지우지하던 영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압력을 견뎌내고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성공하자, 아랍민족주의, 아랍사회주의를 내건 나세르 노선이 아랍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열풍을 불러왔다. 프랑스와 영국이 남겨둔 시리아와 이라크의 정권들은 정통성이 취약했으며, 대중과 지식인들은 군사력에 의한 '''아랍민족주의'''를 추구하는 나세르 독트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시리아는 이미 1956년부터 소련 진영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1958년에는 이집트와 아랍 연합 공화국이라는 국가연합을 형성하였다. 1963년에 나세르 노선을 추종하는 바트당의 쿠데타가 일어난 뒤로는 그와 같은 노선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이라크에서도 역시 바트당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아랍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점점 더 회의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식량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세계는 단호하게 반미(反美)로 돌아섰다.''' 반천년(半千年) 내내 외세의 지배로 지샌 아랍인들은 미국을 영국과 프랑스를 대신하여 등장한 새로운 외세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소련은 미국과는 달리 여러가지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랍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이라는 모델을 매력적인 것으로 보았다. 미국은 한동안 거리를 유지하면서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수준에서만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중동의 반(反) 소련 정권들에게 방공 무기 체계를 공급하기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도 그 명단에 포함되었다.
1967년에 샤를 드골은 알제리 전쟁을 종결하고 프랑스와 아랍 세계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안을 추구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을 공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의 요구를 무시하고 6일 전쟁을 개시하자 프랑스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했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웃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수렁에 빠진 채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여서 이스라엘이 미국인들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의 모델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스라엘은 그런 정서를 활용하여 미국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월남 전쟁과 날로 악화되는 여론에 시달리던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승리에 대한 미국 대중들의 열광이 두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첫째, 어떤 전쟁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세대는 월남 전쟁에 대한 지지를 강화시켜줄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의 승리는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켰고, 이는 이스라엘을 미국의 유용한 동맹국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관계를 위한 전략적 기초가 출현한 것이다. 소련은 1960년대 중반에 시리아와 이라크에 진출했으며, 이미 양 국(兩 國)의 군대를 양성하고 있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소련을 포위하자 이에 대응하는 소련의 전략은 그들의 배후에 있는 나라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인 뒤 그들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압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서 언제나 중심에 서있던 터키는 소련에게도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1967년 이전에 일어난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데타는 미국의 전략적 문제를 심화시켰다. 터키는 북쪽으로는 강력한 소련과 남쪽으로는 소련에 의지하는 두 국가들 사이에 끼어있는 상태가 되었다. 소련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군대를 배치했다면 터키는 곤경에 처했을 것이며, 동시에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전반적인 전략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미국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해 팔레비 왕조가 통치하고 있던 친미 국가 이란을 무장시켰다. 게다가 이란은 소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중요했다. 이스라엘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았지만, 시리아와 접해있다. 친미 성향의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억제하는 한편, 시리아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전개를 더욱 복잡하고 위험하게 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도 대립하고 있었다. 소련은 이집트군을 무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해군 기지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는 지중해에 있는 미군 6함대에 대한 위협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일단 이집트와 시리아가 소련 쪽으로 돌아서자 이스라엘을 무장시키는 것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억제함과 동시에 이들 국가에서 소련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저비용 해법'''으로 등장했다. 이것은 미국이 지중해를 장악하고 터키가 받는 압박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바로 이 시점부터 전략적인 이유로 미국은 이스라엘에 많은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전략은 효과를 발휘했다. 나세르의 사망 이후 권력을 승계한 이집트의 사다트 정권은 시리아와 함께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한때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소련의 군수지원은 대단히 미흡했고, 결국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군의 반격으로 다시 후퇴해야 했다. 전쟁이 사실상 무승부로 종결된 뒤에 어정쩡한 소련의 태도로 절호의 기회를 날린 것에 실망한 사다트 정권은 전격적으로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친미 노선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1978년에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중재하에 이스라엘과의 평화 조약에 서명했다.[4] 비록 시리아가 친소(親蘇) 진영으로 남아있기는 했지만, 이집트가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한 것만으로도 지중해에서의 소련의 위협은 둔화되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위협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이었다.
PLO는 나세르에 의해 아라비아 반도의 군주국들과의 투쟁을 확장하기 위한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각국의 왕족들을 쓰러뜨리고 그 국가들을 자신의 통일 아랍 공화국으로 통합시키고자 했다. 아라비아 반도의 불안정을 가중시켜 미국을 약화시키길 원했던 소련 정보 당국자들이 PLO 요원을 훈련시키고 실전에 투입시켰다. 1970년 9월 PLO의 야세르 아라파트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이스라엘의 비밀 동맹국인 요르단의 지배 세력인 하심 가문에 대한 봉기를 시도하자 상황은 위기로 치달았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시리아는 기갑 부대를 남쪽으로 이동시켜 요르단에 진입했다. 이것은 분명 요르단의 혼란을 이용해 요르단에 대한 시리아의 권리를 주장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공군이 개입하여 시리아를 저지했고, 미국은 파키스탄 병력을 공수해 요르단을 지원했다. 이 전투에서 약 100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했고, 아라파트는 결국 레바논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 분쟁은 검은 9월단으로 알려진 테러 집단의 기원이 되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다. 검은 9월단은 아라파트의 파타(Fatah)에 속한 비밀 무장 단체였지만, 유럽에서 소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함으로써 특별히 더 중요해졌다. 1970년대 동안 소련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 극좌 테러리스트 집단[5] 을 지원하고, 아일랜드공화국군(IRA) 같은 조직을 지원하면서 불안정화 전략을 추진해왔다.
팔레스타인은 이 '테러리스트 인터내셔널'에서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나토의 불안정화를 막기 위해 미국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테러 조직들을 분쇄하려고 했다. 이스라엘도 나름대로 팔레스타인의 비밀 작전 능력을 파괴하고 싶어했다. CIA와 이스라엘의 정보 기관 모사드는 이후 20년 동안 테러리스트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소련이 서구에 대해 유화 정책을 펼치게 되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약화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CIA와 모사드는 또한 소련과 PLO의 공작으로부터 아라비아 반도를 지키기 위해 협력했다.
1990년대 소련의 붕괴는 이런 역학 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터키는 더 이상 소련, 러시아의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 이집트는 힘없이 쇠퇴하는 국가로 전락해서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 상황은 하마스에게도 꽤나 불리했다. 1987년에 창설된 하마스는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의 정권을 위협하던 무슬림 형제단에서 파생된 단체였다. 시리아는 고립된 채 레바논에만 집중했다. 여러 측면에서 요르단은 이제 이스라엘의 보호국이라 할 수 있다.
PLO를 구성하고, 유럽에서의 테러리스트 활동을 지원해왔던 세속적인 사회주의 팔레스타인 운동의 위협은 크게 감소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원조가 꾸준히 지속되는 동안 이스라엘의 경제는 팽창했다. 이스라엘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막대한 미국의 원조는 1974년 당시 이스라엘 GDP(국내 총생산)의 21퍼센트에 이르렀다. 미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오늘날은 약 1.4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2.2. 혜택의 진짜 배경: 이스라엘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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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에서 서술한 대 아랍 정책의 공조는 표면적인 이유였다. 실제 미국-이스라엘 관계에 배경에는 유대계 자본가들의 로비가 존재하였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현재 650만 정도로 전체의 2% 수준이지만 유대인들이 창업했거나 경영하는 세계적인 대기업은 부지기수다. 페이스북, 구글, 제너럴 일렉트릭, 엑손모빌,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스타벅스 등등, 인물은 스티븐 스필버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전의장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 오바마 정권의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등이 유명한 유대인이며 보통 상원에서 10명(정원 100명), 하원에서 30명(정원 435명) 정도의 유대계 의원을 배출한다. 세계 4대 통신사인 AP, AFP, 로이터, UPI와 신문사인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방송사인 NBC, ABC, CBS 등이 모두 유대인들이 세웠거나 유대인들과 유대 자본이 소유한 언론사다. 여기에 할리우드의 6대 메이저 영화사는 모두 유대계 자본이 세웠으며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전세계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매체의 상당수가 유대계 자본과 연관되있다. 물론 이들이 무작정 이스라엘만을 편든다고는 하기는 뭐하지만 과거 오랜 세월 유대계가 당해왔던 박해를 계속 강조하면서 현재 이스라엘의 어두운 점에서는 침묵하는 방식으로 친이스라엘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6] 현실적으로 미국의 교육, 의료, 금융, 그리고 문화계에 까지 유대인의 영향이 끼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즉 미국의 핵심동력에 유대인들이 존재하는 셈.
거기다 이런 유대인들의 지원을 받는 '''AIPAC(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는 회원만 10만 명에 막강한 자금력으로 미국 정치판을 좌지우지하여 '''신(神)의 조직'''이라 불리는 미국 최대의 로비 단체다. 미국 선거자금의 60%가 유대인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이 된지가 오래다. 매년 5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AIPAC 연례총회 행사에서는 '''대통령이 개막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이며 여야의 거물급 정치가들이 대거 참석해 비위를 맞추느라 여념이 없다. 심지어 대통령 출마 선언하면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양쪽 후보들은 다 총회에 들러서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비위를 맞추는 연설을 한다. 하지만 AIPAC은 큰 영향력을 지닌 단체라해도 워낙에 의견이 맞지않아 지들끼리도 안에서 치고받고 싸운다.
유대인이 미국의 자본과 언론을 장악하고 미국 최대의 로비 단체까지 가지고 있으니 미국 재계 정계 인사들은 물론 대통령이라도 유대인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심지어 뉴욕 같은 지역은 주지사나 시장 당선이 되기 위해서는 유대인의 표심을 얻지 않으면 언감생심이다. 실제로도 주지사 또는 시장으로 출마한 후보들이 가장 먼저 챙기는 게 바로 지역구의 유대계 유권자들이다. 실제로 공화당 하원의원 폴 핀들리와 찰스 퍼시, 민주당 조지 맥거번과 얼 힐리아드 의원 등은 반(反)이스라엘 발언을 했다가 선거에서 패해 의정활동을 접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 세계에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정치인은 이스라엘 의원뿐'''" 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멜 깁슨'''의 경우[7] 와 팀 로빈스의 경우[8] 에서 보듯 정치인이 아니라도 예외는 없다. 심지어는 먼나라 이웃나라조차도.[9]
2013년 11월 25일 이스라엘 방송 우브다에 나온 전설적인 유대계 미국인 영화 제작자 아넌 밀천(Arnon Milchan)[10] 은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이스라엘과 긴밀한 교류를 맺고 친이스라엘 정책을 취하며 반이스라엘적인 인물을 할리우드에서 축출하는 등 온갖 더러운 일이 벌어졌다는 고백을 할 정도이다. 밀천의 고백에 의하면 심지어 70년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취하던 남아공에서 이스라엘인 이민도 받아들이고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을 취하면 할리우드 영화를 통하여 남아공을 좋게 꾸며주겠다는 더러운 거래가 시도되었다고 한다! 뭐 남아공 기득권을 가진 보어 및 백인계들이 거부한 탓에 빡돈 할리우드에서 남아공 백인층과 아파르트헤이트를 까는 영화를 마구 제작하며 복수했지만.[11]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에선 밀천이 제작한 최신작인 노예 12년을 홍보하고자 저런 것이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존 미어샤이머와 스티븐 월트가 2006년 출간한 '''이스라엘 로비'''(원제 :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에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로비스트에게 가장 잘 휘둘린 게 '''조지 W. 부시'''고 그에 반대되는 게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 나온다. 실제로도 오바마는 집권 초반 이스라엘의 양보를 촉구하는 발언을 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경색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오바마조차도 재선을 앞두고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미국은 안보에 관한 한 언제나 이스라엘을 지지할 것이다'''" 라고 말했고 이란 핵문제에 대해 외교적 해법만 주장해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던 이전과 달리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AIPAC 연례총회 첫날 연설에서는 "'''이스라엘 안보는 너무나 신성해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고 했다. 영향을 덜 받는데 이 정도면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참고로 클린턴이나 부시도 비슷한 연설을 했었다. 그때마다 언론은 "'''대통령의 충성서약'''" 이라 비꼬았다. 물론 오바마는 저렇게 립서비스 해놓고 이스라엘이 가장 불편해 하던 이란 핵협상을 타결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미국 내 유대인의 로비력은 정말 넘사벽이므로 앞으로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다만 아랍에 불고 있는 민주화 열풍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랍권 독재자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미국, 이스라엘은 안정을 얻고 독재자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윈윈 게임을 했었다.
3.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원
절대적인 액수 자체도 크지만 똑같은 무기라도 이스라엘에게는 더 빨리,더 싸게 판매해준다. 다른 나라들은 돈이 있어도 미국이 팔지 않겠다고 해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이스라엘은 미국이 준 돈으로, 그것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싼 값에 사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미국 무기를 살 때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다운그레이드''' 논란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전략자산이 아닌 이상 '''그런 거 없다'''.[12][13] 이스라엘이 필요가 없거나 돈을 아끼려거나 자국 기술 활용 목적으로 구입 안하면 모를까 사고 싶은 데 안 파는 군사 관련 장비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예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핵무기라든가 랩터라든가 항공모함 같은 거. 미군의 강력한 무기들은 이스라엘이 팔아달라고 사정해도 절대 팔지않는다.
글로벌 호크 등의 예를 들어 '''정찰 자산들도 안 팔았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이스라엘은 현재도 사실상 전쟁 중인 국가인 만큼 독자적인 정보 전력 확보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어 그 기술력은 미국 다음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높다. 또 이스라엘 경제에서 방산 업체들의 무기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이는 자신들이 만들기에 경제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분야가 아니면 대개는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이를 세계에 팔기 때문이다.[14] 즉, 미국이 안 팔았다기 보다는 축적된 독자 기술 활용과 세계 시장 판매를 위해 스스로 만들었다고 보는 쪽이 맞다.[15] 이스라엘은 자체 제작한 위성발사체로 자체 제작한 첩보위성을 날린다. 단 외국과 같이 할 때가 있는데, 그건 물주가 외국일 때 또는 물물교환성격이 있을 때.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
2016년에 와서는 한국도 사고자 하면 웬만한 건 다 살 수 있다. 글로벌 호크도 원래는 구입을 요청했는데 그때는 난색을 표했음에도 지금에 와서는 팔 수 있다고 나온 것이 이 때문이다. 어떻게 봐도 이스라엘은 한국이 부러움을 느낄 만큼 미국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이스라엘의 힘은 다른 나라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원유 공급 문제까지 들먹여가면서 판매를 요구해 겨우 F-15 전투기를 구입했는데 레이더와 전자전 기능이 다운그레이드되었고 추가 연료를 담을 CFT(Conformal Fuel Tank)도 영공방어용으로만 쓰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겨우 받았다. 이 모든 조치가 오로지 이스라엘을 위협할까봐 이루어진 것이었고 이후로도 사우디는 F-15를 몇 번 추가 구매했는데 그때마다 이스라엘 눈치보기는 계속되었다. 딱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않겠다 싶은 정도의 성능으로만 판매를 했던 것이다. 가장 최신 도입분인 F-15SA의 경우도 하드웨어 자체는 F-15들 중에서 제일 최신사양이지만, 사용 무장들이 최신사양보다 한단계 낮거나 공대지 순항미사일 같은 전략적 성격이 짙은 무장은 아예 장착이 불가능한 상태로 판매되었다.[16]
사우디말고도 중동권내 친미 국가로 거론되는 카타르와 쿠웨이트의 경우도 있다. 2014~15년 경에 이들이 각기 F-15SE와 F/A-18E/F 슈퍼호넷을 구입하려하자, 이스라엘은 미국에 우려 를 표했고, 2016년 4월 시점에서 미국 정부는 이 판매건에 대한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이들 국가들은 각기 라팔과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17]
이스라엘이 우방국인 미국의 경쟁 상대인 중국에 군사 기술들, 그것도 미국의 지원으로 얻은 기술들을 '''기술 협력'''이라는 이름하에 중국에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주 유명하다. 천안문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의 무기 금수 조치로 서방 첨단 군사 기술에 목말라하는 중국에 있어 이스라엘은 중국 '''인민해방군 천빙더'''(陳炳德) '''총참모장이 직접 방문'''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파트너인 것이다. 중국이 최초의 자국산 전투기라 자랑하는 J-10에 이스라엘이 완성 직전 중단한 라비#s-4 전투기의 기술이 들어갔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할 정도다. 물론 미국도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압력을 가해 팔기로 계약한 물건을 못 팔게 한다.[18]
외교적으로도 미국은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 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UN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이나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 행위에 대한 제재안에 대해 언제나 반대표만 던져서 '미국이야말로 현재 세계 평화의 적' 이라는 비난, 비아냥, 욕까지 듣고 있는 판국이다. 실제로 미국이 중동문제와 관련해 UN 안보리 회의에서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행사한 거부권은 2012년 3월까지 무려 '''32회'''에 달한다. 특히 이스라엘이 UN을 공격한것도 항상 감싸준다. 이렇다 보니 미국의 외교전문 사이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이언 윌리엄스는 양국 관계를 두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위성국가'''" 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사안이면 거의 이스라엘 편만 들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려 드니 국제 사회가 미국의 공정성을 불신하게 되고 이는 미국의 위상마저 크게 흔들고 있다.
아랍 내 이슬람인들의 반미 여론은 대단히 높은데 그 원인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적용되는 '''이중잣대''' 문제다. 이스라엘은 선수방어라는 논리로 주변 아랍국을 침공하고 팔레스타인 이슬람을 쥐 잡듯이 몰아붙인다. 근데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사방팔방 안 끼는 데가 없던 미국이 이스라엘과 관련된 일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돕기까지 하는 모습을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아랍인들은 당연히 미국에 극도의 불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미국을 서구 기독교 문명이 아랍 이슬람에 가하는 억압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어버렸다. 미국의 이스라엘 편애가 아랍 이슬람인들에게 미국이 '''알라의 적'''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어 기꺼이 '''지하드'''를 외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알 카에다의 9.11 테러는 그것을 보다 분명하고 과격하게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미국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데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가 유지되며 오히려 대통령까지 나서서 더 잘해주려 드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렇다보니 미국의 대이스라엘 외교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했었다. 대학의 정치외교학 수업에서 이스라엘이 미국의 '''아랍 진출 교두보'''라든지 '''중동을 억제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이니 하고 가르친 적도 있었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미국 내 유대인 파워와 그들의 막강한 로비력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쑥 들어갔지만.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해서 양국이 같이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
4.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붕괴 위기
4.1. 중동의 반미 감정 심화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몰락 이후[19] 집권한 세력은 반미-반유대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어 미국과 이스라엘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시리아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 역시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될 경우 독재자들과 손을 잡고 쉽게 목표를 달성했던 기존의 방법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가 집권 초기 이스라엘에 쓴소리를 쏟아낸 것도 지금까지의 중동 정책으로는 안되겠다는 정략적 판단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비타협성, 폭력성은 미국이 봐도 심해서 원인제공을 한다는것을 알기에 양보 좀 하며 조용히 지내라고 한것이다. 특히 팔레스타인한테 최소한 자치라도 보장해주었다면 팔레스타인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만들지 않는데 자치도 허용하지 않다보니 문제를 더 키운다.
이대로 간다면 미국은 아랍권 내의 영향력을 빠르게 상실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각종 내부 문제가 터져나와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집트를 비롯한 이스라엘 주변국들이 모두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면 설사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이스라엘의 국력으로 이를 극복하기는 대단히 힘들고 설사 가능하다 해도 막대한 희생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1978년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의 국방비 지출은 GDP 대비 '''22~25%'''에 달했으나 협정 이후 '''7~9%'''까지 낮출 수 있었으며 군에 매여있던 젊은 노동 가능 인력도 대거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스스로가 초래한 인종차별과 식민통치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쟁, 갈수록 증가하는 테러로 인해 국방비가 더늘어나기만 하여 이는 이스라엘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것이 협정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이스라엘의 '''성장 동력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더 많이 퍼주겠다고는 하지만 뭐 미국이 계속 지원해줄수 있는것도 아니고. 당장에 한국만 해도 지원해주다 나중엔 알아서 하라고 하듯이 이스라엘도 똑같이 할거 뻔하다... 이미 하레디와 국방비만으로도 이스라엘의 부담은 심각하게 과중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레디 참조. 이미 하레디만으로 암울한데 국방비마저 더 늘어난다면 미국이 퍼줘도 성장동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인구포화와 수자원고갈로 인한 문제가 하레디만큼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도 반이스라엘 여론이 커지는데다 불경기와 자국의 군사비 부담 때문에 이젠 퍼주기도 자기 코가 석자다. ''' 까딱하다 소탐대실 꼴이 날수 있기 때문이다. '''
4.2. 미국 내 반 이스라엘 감정의 심화
여기다 미국 내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반이스라엘 여론도 변수다. 미어샤이머와 월트는 이스라엘 로비에서 '''유대인의 로비가 미국의 국익을 훼손한다''' 주장하였고 최근엔 유력 신문, 금융계 큰손, 명문대 석학, 유명 칼럼니스트가 잇따라 '''이스라엘 로비의 역효과'''를 경고하며 "미국이여, 유대인 로비에서 벗어나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이 절대 패권을 구가하며 세계를 이끌던 시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랍권 이슬람의 미국에 대한 반감과 그로 인한 테러 위협에 시달리면서 더 이상 이스라엘 때문에 발목 잡혀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대인 로비에 대한 반발은 아직까지는 미국 내 유대인 파워에 비해 미약한 목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 비슷한 시늉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볍게 여길 일이 결코 아니다. 게다가 이 반이스라엘 여론에는 미국의 젊은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미국 친 이스라엘계 유대인 파워의 미래가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미국 내에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문제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이슈'''에서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의 표밭이었다. 이런 성향이 이라크 전쟁 이후 반전이 베트남 전쟁 이후 다시 미국 진보 진영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동시에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해놓은 짓이 더욱 더 세상에 알려지며, 게다가 부모 세대처럼 맹목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심 또한 약화되니 적지 않은 수가 이스라엘과 미국 내 진보주의라는 양자를 두고 후자로 넘어가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지식인들로 치면 노먼 핑컬스타인, 하워드 진, 놈 촘스키 등 냉전 시기부터 꾸준히 친팔레스타인 진영의 몇 안 되는 미국 내 옹호의 목소리 역할을 했던 반시온주의 지식인들 중 다수가 본인들이 유대인들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란 자신의 혈통적 정체성보다 매카시즘 이후 전멸했던 미국 내의 마지막 남은 진보 좌파의 목소리로서 사회적 정체성을 택한 경우였다. 유대인 청년층의 이탈은 이들의 행보를 뒤늦게 따라가는 셈이다.
전직 중앙정보국장 마이클 F. 슈어(Michael F. Scheuer)[20] 는 아예 대놓고 "미국-이스라엘 관계는 미국에게 '''독'''(Toxic)이다."라고 거리낌없이 깠다. 그것도 미주류방송 CNN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의 중동 외교가 이스라엘 편애 외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다만 중동 국가들이 서로 대립을 하거나 내부 문제때문에 이런저런 골칫덩어리를 앓아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되었기 때문에 그 시기가 좀 더 늦춰졌을 뿐.
이스라엘은 중국 또한 친이스라엘로 만들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게 통할 게 아니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조상이 중국에 살던 유대인이라고 자랑(?)하며 중국가서 중국에도 유대인이 많다고 우호관계를 다지자고 하던 일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아랍과 이스라엘 중재자를 자처하며 이득을 취하면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관계를 비아냥거리며 아랍권에 자신이 친아랍을 자처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 아랍권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허구한 날 러시아와 반대하는 게 중국이다.
5.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 변경
과거에는 친이스라엘 노선에서 아랍국가들을 견제했다면 이젠 현실적 문제인 핵개발, ISIL에서 아랍의 지역강국들과의 협상을 통한 협조를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 이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더불어 미국의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 대변해 왔던 이집트 군부 정권이 아랍의 봄’으로 무너지면서 미국의 대 아랍 전략이 크게 선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ISIL이 점점 세력이 확산되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새로운 세력과의 공동 협조가 절실해진 상황.중동 상황의 대 반전 - 이집트 군부정권의 붕괴, ISIL의 발호, 이란의 미국에 대한 협조적 태도에 따른 미국의 대 아랍정책 변경으로 인한 위기
현재 미국은 여기서 이스라엘을 배제하고 서아시아의 손꼽히는 강국 이란[21] 과의 관계개선을 물색하기 시작함으로써 이스라엘 현 총리 네타냐후의 뒷목을 잡게했고 미국내 3대 로비단체 중 하나인 이스라엘 로비 단체의 열폭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미국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반발을 무시하는 중이다. 이스라엘이 ISIL을 확실하게 저지할 수 있는것도 아닌 만큼 사실상 미국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ISIL에 대해 미국은 지상군 파병을 꺼리는 만큼.... 사실상 그나마 협상이라도 가능한 이란과 공동협조 말고는 ISIL의 확장을 저지할 수 있는 세력이 전무한 것이 미국의 외교 노선 전환의 주요 원인이다.
현재 이스라엘 총리인 네타냐후는 총선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생긴 유권자들의 위기의식을 오히려 자극, 보수표를 끌어내 승리하였는데 선거 유세 도중 “팔레스타인 독립국은 없을 것”, “아랍인들이 떼거지로 투표를 하러 나온다”라고 선동함으로써 보수측의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해당 발언들은 미국의 반발에 직면하게 됐는데 이후 '''협상에서 체결한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며 발언을 번복'''했고, 23일에는 아랍계 이스라엘 유권자들을 비하한 발언에 대해서도 사과하는 등 굴욕의 나날을 겪게 된다.
게다가 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퍼주기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도 극심한 것이 딜레마. 물론 미국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경제 대호황 시기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현재 미국도 극심한 재정 적자와 경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누구를 퍼줄 입장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미국의 파산을 참조하면 된다. 우리 보기에는 순 막장 극단주의적 발언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만 하더라도 자세히 그 발언을 보면 정작 미국의 서민들은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미국의 대외 개입에 지칠 만큼 지친 고립주의적 여론을 살살 긁어주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변화 그 자체는 필연적이라 볼 수밖에 없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을 정당하다고 말했다. # 다만 그렇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원치 않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중재하겠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보고 조용히 살라고 했다.# 그리고 2017년 12월 7일에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19년 8월에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인 라시다 탈리브과 일한 오마 등 2명의 입국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보이콧 했다는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의 전략에만 농락당했다는 평이 많다.#
2020년 6월에 미국에서 국제형사재판소를 제재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이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2021년 1월에 네타냐후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이란에 맞서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간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6. 관련 문서
- 미국/외교
- 이스라엘/외교
- 중동전쟁
- 가자 전쟁
- 미국/역사
- 이스라엘/역사
- 팔레스타인/역사
- 밸푸어 선언
- 예루살렘 선언
- 미국/경제
- 이스라엘/경제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1] 출처[2] 조사결과[3] 조사결과[4] 하지만 사다트는 이 때문에 아랍권내에서 배신자로 규정되었고, 결국 이슬람 근본주의자한테 암살당했다. 하지만 권력을 승계한 무바라크도 친미노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강경하게 탄압했다.[5] 서독의 바더 마인호프,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 등이 대표적이다. 그외에 보통 자칼로 알려진 전설적인 테러리스트 카를로스(테러리스트)도 KGB의 보호를 받았다.[6] 당장 헐리우드만 해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권 탄압을 비판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B급영화나 전전하는 신세가 되버린 팀 로빈스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7] 2006년, 깁슨이 음주 운전으로 체포된 뒤 "모든 전쟁은 유대인 때문" 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할리우드에서 매장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딱히 반유대주의 성향만이 문제였다기보단 아랍인들의 죽음을 옹호하는걸 포함한 갖가지 인종차별적인 태도와 동성애혐오발언, 결정적으로 사생활문제가 터진 게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8] 이 사람은 반 이스라엘주의자로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대외정책에 반대하는 경우라서 많은 공감을 얻었지만 그 이후에 배역이 잘 안 들어오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외면하는 사실이다.[9] 2007년, 이원복 교수가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에 "재미 한인들은 유대인의 장벽에 번번이 부딪힌다" 고 썼다가 미국 유대단체가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본 뜻이 아니다"라고 해명했고 출판사는 책 재고를 폐기해야만 했다. 다만 유대계 자본에 대한 대목에는 정확한 사실보다는 유대인 음모론에 치우친 대목이 많았다.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확실히 항의할 만했다.[10] 1944년생으로 귀여운 여인, 히트, 언더 시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 12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 기획한 할리우드 거물이다.[11] 참고로 이 인간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보면 나치스의 대전 이후 직계 후손격인 인간들이다. 자국 내 유대인들도 탄압하고 소외시켜 결국 반아파르트헤이트 진영 ANC 쪽으로 몰아 넣은 인간들이 '유대인 따위' 의 국가를 달갑게 보았을 리가 없다.[12] 최근에는 한국, 일본 등 외교에 중요한 동북아 국가도 이런 거래로 가고 있는 추세다.[13] 미국의 다운그레이드가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소련처럼 '''다운그레이드 사실 자체를 속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몇몇 기능은 아무리 돈을 줘도 못 팔겠다(기술 유출 가능성, 정치적 이유 등). 그래도 좋으면 사가라" 라고 분명하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 미국의 다운그레이드 정책이다. 그 외에는 대개 구매 측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이런 기능은 필요 없으니까 가격 좀 깎아줘" 라고 요구해서 다운그레이드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핵투발기능이나 조인트스타즈 연동이나 미국 위성연동이나..[14] 이스라엘 방산업체들은 심지어 중국과도 거래를 해서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15] 미국의 글로벌 호크 판매 정책은 껍데기를 사서 알맹이는 알아서 채워넣던가 아니면 운용을 미군이 하던가 둘 중 하나인데 전략적 핵심기술이라면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이스라엘이 글로벌 호크를 구입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자체 개발 노력은 정찰 자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F-16I 같은 경우 이스라엘이 F-16 Block 60을 구매할 때 딱히 판매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자체 개발한 전자 장비를 채택했다.[16] 단 사우디의 경우 앞에서는 친미를 말하고 뒤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지원한 경력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선 소위 믿을 수 없는 국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17] 사우디도 미국의 다운그레이드에 질려서 타이푼을 다량 도입해 운용중이다. 다만 사우디가 도입한 유파는 사우디가 발주한 것이 아니라 영국군이 도입 예정분인 트렌치 3 계열기들을 떠넘긴, 즉 폭탄돌리기의 결과물에 가깝다. [18] 1990년대 후반 이스라엘이 중국과 EL/M-2075 팔콘 레이더를 장착한 조기경보기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후 중국은 KJ-2000을 독자개발했다.[19] 오바마가 허가하다시피 하며 스스로 초래한 중동의 위기[20] 1952년 뉴욕주 버펄로시 출신. 두 대학교에서(매니토바 대학교, 칼턴 대학교) 두개의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이다. CIA 시절엔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을 추적하는 대테러지부 '빈 라덴 문제 유닛(Bin Laden Issue Unit)'에 8년 동안 몸을 담았다. 빈 라덴의 대 미국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지하디스트들이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한 이유중 하나가 미국-이스라엘의 현재 관계라고 주장한다. 미국을 상대로 지하드를 벌이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 '우리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이라며 이 사람이 한 말들을 자기들의 선전에 인용문으로 줄곧 이용한다. 최근에는 이슬람 국가가 이 양반의 인용문을 자신들의 선전물에 사용했다고 한다.[21] 인구 8천만, 상비군 50만 예비군 60만 규모의 군사력 21위를 자랑하는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순위권에 반드시 뽑히는 대표지역강국이다. 경제가 부실하지만 이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것임을 생각하면.... 하지만 이란은 최근 물부족과 불안한 정치사정 때문에 이스라엘한테 신경을 많이 못쓰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