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목록/축구
1. 등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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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내
2.1. 국가대표
-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헝가리에 0-9로 패한 기록은 지금까지도 월드컵 최다 점수차 경기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터키에도 0-7로 패배. 다만 선수들의 정신력과 투지만은 이때가 최대 리즈시절이었다. 반대로 이긴 헝가리가 고작 9골 밖에 못 넣었다고 흑역사 취급한다.[1][2]
-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축구협회 직원이 FIFA에서 온 월드컵 참가신청 서류를 분실하는 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예선 참가조차 못 했다. 사실상 한국 축구국대의 진짜 첫 흑역사(축구)인 셈이다.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호전했지만 3경기 합쳐서 겨우 1골밖에 못 넣고 3전 전패. [3]
- 1992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대표팀을 전부 실업/대학선수 위주로 짜서 보냈다가[4] 태국한테도 져서 예선광탈을 당하는 바람에 당시 김우중 축구협회장이 사임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더군다나 이 대회에는 한국 최대의 라이벌 일본을 비롯하여 중국, 사우디, 이란 등 아시아 축구의 별들이 한자리에 모인 데다가 대립 관계에 있는 북한까지 한마디로 라이벌이란 라이벌은 다 나갔으니 박탈감과 소외감, 굴욕감은 말 다했다. 덕분에 언론들한테도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5]
-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8강전에서 수적 일본을 가신히 3:2으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 대한민국은 우즈베키스탄을 만나게되었다. 슈팅수 28:2로 매우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골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근데 후반 8분 상대 선수인 압두라이모프가 날린 슛이 차상광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지만 그걸 막아내지 못해 선제 실점을 당하는데 그 이후로도 골이 전혀 터지지않아 0:1로 패배. 결승 진출이 무산되었다.
- 1996년 AFC 아시안컵 이란전 2:6 패 [6]
- 쿠칭 참사: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1997년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 조별리그 브라질전에서 아다일톤에게 6골을 먹고 3-10으로 패배.[7] 하프타임에 해설자가 '사기를 위해 휴식시간에 체벌을 가하는 것도 방법이다'라고 말한 것도 논란이 되었다.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의 차범근 감독: 대회 도중에 경질되었다. 차범근호 및 마르세유의 비극 참조.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예선 첫 경기부터 투르크메니스탄에 패배하면서 흔들리더니 8강전에서 홈팀 태국에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연장 골든골을 허용하며 1:2로 패배. 아무리 태국 홈에선 브라질도 쩔쩔맨다지만...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터키와의 3,4위전에서 홍명보의 볼 컨트롤 실수로 하칸 쉬퀴르에게 경기시작 11초만에 실점.[8]
- 움베르토 코엘류
- 오만 쇼크
- 몰디브 쇼크: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한국 대 몰디브 전에서 한국팀이 보여준 엉망인 수준의 축구. 코엘류 감독은 이 경기 이후 경질된다. 결과는 허무하게 경기가 무득점으로 끝. 공격을 30번 넘게 했는데 최약체 몰디브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비겼다. 덕분에 몰디브는 경기 후로 일주일간은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의 목메달
- 바레인 쇼크
- 2010년 EAFF 동아시안컵의 중국 쇼크: 한중전 역사상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준 사례. 0-3으로 패배, 공한증이란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경기에서 맹활약한 덩줘샹은 짜장메시 라는 별명을 획득했다.
- 삿포로 참사: 한일전 역사상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0도 아니고 3-0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일본한테 떡실신 당해버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본한테는 이겨야 한다든가 거의 무패일 정도로 한국이 우세했으나 이 경기 이후에는 일본 축구가 한국을 초월했다는 인식까지 들 정도로 졸전이었다. 그 후폭풍이 막강한지 선수들과 조광래 감독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또한 이 사건 이후 국민들은 이와 같은 사건이 또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랬으나 5년 후 삿포로 참극을 뛰어넘는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한중전과 마찬가지로 0-3으로 져 흑역사를 남기게 되었다.
- 레바논 쇼크
-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 10차전 이란과의 울산 홈경기 - 홈 경기인데다 압도적인 점유율에 15개의 슈팅을 퍼붓는 일방적인 공격을 펼치고도 단 한 골도 뽑아내지 못했다. 반면에 상대팀인 이란은 단 한 번의 슈팅[9] 을 골로 연결시켜 1:0 승리를 낚았다. 경기 후 한국 국대는 이란 감독과 선수들의 조롱을 받는 등 최악의 분위기 속에서 2014 월드컵 본선 출정식을 거행해야 했다.[10] 경기 전부터 언론전을 시작한 최강희 감독으로 인해 전국민의 관심이 집결되었었기 때문에 한국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평소 축구에는 별 관심 없었던 한국인들도 한꺼번에 엄청난 굴욕을 느껴야 했다.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여기 참고.[11]
- 도하 쇼크: 2016년 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초반에는 적절한 압박으로 전후반에 1골씩 넣어 좋은 분위기였으나, 일본의 역습으로 처절하게 무너진 사례. 불과 14분 만에 3골을 허용한 대한민국은 거짓말처럼 우승을 일본에게 넘겨줬다.
- 슈틸리케호: 특히 2016년 레바논전 이후. 그 전까지는 대표팀을 잘 이끌어 가는 듯했으나 2017년 이후에는 점점 성적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 창사 대참사: 대한민국의 월드컵 지역예선 역사상 첫 한중전 패배다. 안그래도 사드 보복과 미세먼지 문제로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 반중(反中) 감정이 격화된 가운데 당한 패배라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여기에 앞으로의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일정이 가시밭길이 된 것은 덤이다.
- 도하 대참사: 33년만에 카타르에 패배. 그 결과 슈틸리케는 감독에서 경질되었다.
- 김봉길과 U-23 대표팀: 감독 선임 자체부터 많은 축구 팬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2018년 AFC U-23 챔피언십을 앞두고는 리그에서 폼이 좋은 선수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대학 축구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리면서 다시금 우려를 자아냈다. 실전에서는 베트남에게 선제골까지 먹히는 등, 눈에게 미안한 경기를 선보이며 어찌어찌 4강까지 갔으나, 4강전에서 그 동안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상대인 우즈베키스탄 U-23 대표팀에게 1:4라는 경이적인 패배를 당한 뒤 3위 결정전 상대인 카타르에게도 0:1로 참패를 당했다. 게다가 다른 한국 국적의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을 잘 이끌어 나가 준결승을 이끌어서 극과 극으로 비교되었다. 그야 말로 완전한 흑역사. 결국 김봉길은 경질되고 후임인 김학범이 취임했다. 그리고 연달아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20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우승 등 2관왕을 차지해버리며, 김봉길은 김학범에게 비교까지 당하며 더더욱 비난을 받아야 했다.
- 김학범호: 반둥 쇼크[12]
-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축협의 내부 문제가 터져나오며 메디컬 스태프가 대회 도중 귀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방적 계약해지를 통보함과 동시에 의료관련 스탭이 빠지자 부상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않았다. 특히 기성용의 햄스트링 부상은 대회도중 완치될것처럼 이야기해놓고 8강 들어가기 전에 부상이 생각보다 길어져 소속팀으로 복귀하는등 내부문제가 여전히 나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결국 8강에서 카타르에게 패해 탈락했다.
- 대한민국 U-18 축구 국가대표팀 판다컵 비매너 논란: 중국 청두에서 개최국인 중국을 포함해 대한민국, 태국, 뉴질랜드까지 4개국이 초청받아 치른 U-18 대회에서 김정수 감독이 이끄는 U-18 대표팀이 전승으로 우승을 했으나, 일부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밟는 세레머니를 펼쳐 대회 그 자체와 타 참가팀들은 물론, 우승팀인 본인들의 명예도 실추시켰다. 중국 현지 여론은 말할 필요도 없고 국내 축구팬들도 도저히 실드를 칠 수 없는 수준의 비매너 행동을 보인 U-18대표팀에 맹비난을 하고 있으며, 선수단 전원과 코치진은 물론 대한축구협회도 공식 사과를 했지만 판다컵 조직위원회에서는 "한국은 스포츠 정신을 잃었다. 판다컵을 가질 자격이 없다"라며 우승 트로피를 박탈했다. 다만 트로피를 밟는 세리모니는 유럽의 메이저 대회에서도 허용되는 별 문제아닌 것이었고, 이후 중국이 심하게 찌질한 모습을 보이며 추한 비난만 연속하자 국내 여론도 바뀌었다.
- 윤덕여호: 2019 FIFA 여자 월드컵 프랑스 - 윤덕여호 10년 여정의 종말을 맞이한 프랑스 대참사. 그냥 이 대회 자체가 흑역사인 대회. 첫 출전했던 2003년보다도 더 최악의 성적.
2.2. 프로축구
- 1987년 시즌 : 프로팀들로만 리그를 치른 첫 번째 시즌이었으며 프로야구가 그랬던 것처럼 홈팀은 흰색, 원정팀은 유색 유니폼을 입었고 주말 2연전이 새롭게 도입됐으나 선수 부상 등의 문제점이 생기자 1년 만에 폐지됐으며 다음 해부터 홈팀은 유색, 원정팀은 흰색 유니폼을 입는 것으로 변경됐다.
- 1999년 챔피언결정전 샤샤의 신의 손 사건[13]
- 2003년 시즌 부천 SK: K리그 역사상 최고기록인 22경기 연속무승 기록 달성.
- 2006년 포항 스틸야드 관중난입 및 김성호 주심의 관중폭행 사건: 이런 전적에도 불구하고 김성호는 이후에도 심판활동을 계속하면서 포항 경기에 배정되면 병맛 판정을 일삼으면서 포항의 주적이 된다.
- 2008년 경남 FC vs FC 서울 주심 판정 항의 사건: 경기 중 주심이 판정 번복으로 서울의 득점을 인정하자 당시 경남의 감독인 조광래를 필두로 팀 자체가 항의 차원에서 35분동안 경기 진행을 거부하면서 추가시간이 무려 28분이나 주어진 희대의 사건.
- 2010년 하반기 성남의 홈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잔디 상태
-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 경기 후 마스코트 폭행 사건: 대전 시티즌 문서 참조.
- 베트남 U22 vs K리그 올스타 경기
- FC 바르셀로나 vs K리그 올스타 친선경기 -
- FC 안양의 심우연의 영입 및 11일만의 방출: 안양에게는 원수, 죽일놈들인 그 팀에서 가정 폭력 혐의가 있는 선수를 다이렉트로 영입하고 등번호 3번을 배번한 뒤, 영입 11일만에 방출해버린 사건.
- Here is another Old Trafford
- K리그 승부조작 사건 중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역대 K리그 최악의 흑역사.
- K리그 통산 10000번째 골: 김태영 선수가 넣은 자책골이었다. 다만 이 기록은 K리그 순수기록이 아니라 리그컵을 포함하여 집계한 기록이기에 김태영으로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 강수일의 도핑 파문.
- 경남 FC 심판매수 사건
- 고양 자이크로 FC: K리그1, K리그2 통틀어 최악의 인기와 행보를 자랑했던 팀. 종교색도 심했고 인기도 없어서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다가 결국 해체되었다.
- 이영무 : 고양 자이크로의 흑역사화 장본인
- 광주 FC의 팀명 선정 과정 - 광주 레이어스
- 김종부 이중계약 파동: 이 사건으로 모 팀은 팀 해체까지 고려했고, 프로축구에 최초로 드래프트제가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수 본인도 심적인 불안정 끝에 프로무대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묻혀 버렸으니 선수에게나 구단에게나 축구계 전체에게나 흑역사.
- 대전 시티즌 최은성 방출 사건: 대전 시티즌, 김광희, 최은식 항목 참고.
- 박병모 단장 시절의 광주 FC: 말 그대로 낙하산 인사. 채용 비리 등 여러 악행을 저지르고 서포터들은 퇴진 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2012년 첫 승강제 시즌때 강제 강등된 상주와 함께 첫 강등의 희생양이 되었다.
- 박성화: 2007년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불과 2주 뒤 부산 감독직을 그만두고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사건으로 K리그가 대표팀 앞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보여준 사건.
- 박주영 우선협상 위반파동: 대체로 바로 위 김종부 파동이 비슷하게 재연. 드래프트가 도입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도 똑같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박주영 월드컵 데뷔골: 2010 FIFA 월드컵 에서 넣은 자책골(상대가 아르헨티나)이었다. 이 골과 곤살로 이과인의 해트트릭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사실상 자력 진출이 어려워졌고 결국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2-0으로 이겼고 박주영도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진짜 데뷔골이자 월드컵 통산 마지막골을 넣으며 16강에 진출했다.
- 변병주: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과정에서 에이전트에게 검은 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 시즌 중 전격 구속.
- 부산 아이파크의 송종국 등번호 영구결번 사건: 송종국이 페예노르트로 이적하자 부산 프런트들이 송종국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 효과만을 노린 졸속행정이라는 비판만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송종국이 부산이 아닌 수원으로 이적해 K리그에 복귀하자 비난이 더욱 거세어져서 결국 영구결번을 스리슬쩍 백지화했다.
- 부산 아이파크의 2015년: K리그 우승팀이자 기업구단 첫 강등의 불명예를 기록하였고, 이에 서포터들은 부산 선수들에게 욕설과 물병투척, 유니폼 화형까지 할 정도로 분노게이지가 올라갔다.
- 부산 아이파크의 연고이전 시도: 사실 이때 서울을 탐낸 구단은 꽤나 있었으나 막 LG에서 갈라져 나온 GS그룹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돈주고 들어갈 생각을 안하고 어떻게든 공짜로 먹어보려 했고 부산도 다를게 없었다. 결국 마케팅 비용이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투자한 안양 LG에 밀려 좌절.
-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 오늘날까지 이어저오는 K리그의 고질적인 문제점의 사실상 시발점이나 다름없는 비극적인 사례.
- 설기현의 통수 - 포항 시절 뒷통수에 이어 인천에서도 전지훈련 다 뛰어놓고 시즌 개막 직전 은퇴하는 뒷통수로 화려하게 커리어를 마무리하며 K리그에서의 설기현을 거의 금지어급으로 만들어버렸다.
- 성남 FC의 일화 시절 상징색인 노란색: 팬들이 매우 싫어해서 시민구단 전환 때부터 노란색 쓰지 말자고 했다. 위키에서도 유니폼에서 노란색이 완전히 빠지자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할 정도였으니 흑역사 확정.
- 성남 FC의 이재명 및 이재명의 낙하산 프런트: 희대의 개막장 감독의 대행의 대행을 2번이나 하는 막장 운영에도 분당신도시의 재정적 기반으로 거액의 예산빨로 성적 을 낸 주제에 적절한 언플로 언론이 밀어준 결과 K리그에서 노리타에 준하는 허황된 팬덤을 얻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이용할 단물이 빠지자마자 팀을 버렸고 K리그 최다 우승팀 성남은 강등당했다.
- 수없이 많은 각 팀 서포터스 간의 경기장 충돌사건
- 2016년 6월 29일 대전 시티즌전 집단 난투극 사건:대전 시티즌 대 부천 FC 함목 참고
- 2017년 부천 FC 헤르메스 경남 FC 버스 가로막기 사건
-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 알 사드 - 페어플레이 정신이 완전히 실종되어버린 스포츠를 보여준다.
- FC 서울 팬의 안정환 욕설 사건: 서울과 수원 간의 2군 리그 경기[15] 에서 한 서울 팬이 안정환에게 다 들리도록 심한 수위의 폭언과 욕설을 반복했고 결국 해서는 안 될 드립까지 일삼자 안정환이 참지 못하고 관중석으로 난입하려 한 사건. 결국 안정환은 제지당하고 제 발로 퇴장당했으며 안정환이 걸어나가는 와중에도 그 서울 팬은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들 때문에 축구가 발전이 안되는 거야. 알아?"라는 안정환의 일갈이 유명하다. 영상
- 포항 스틸러스의 송암 쇼크: 70분까지 4-0으로 앞서있다가 5골을 먹고 졌다.
- 연고이전: 북패, 중패, 남패 참고.
- 울산 현대의 12월 1일 일요일: 2013년과 2019년 최종 라운드에서 비겨도 우승인데 홈에서 포항에게 패배하면서 우승을 놓치게 된다.
- 윤상철: 한때 K리그 역대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있을 정도로 K리그의 레전드이며 럭키금성부터 LG 치타스, 안양 LG를 모두 거치며 FC 서울 역대 최다출전 기록을 가진 레전드였으나 1997 시즌이 끝난 후 자신이 헌신한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유인즉슨 구단과의 연봉협상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자, 윤상철이 타구단의 더 좋은 조건의 제의를 받고 이적해서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까봐 우려한 LG가 국내 어느 타구단에서도 뛰지 못하도록 임의탈퇴를 걸어버린 것. 결국 윤상철은 오스트레일리아 세미프로 리그로 이적해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은퇴해야 했다.
- 이창민: 자신이 운전하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자유한국당 경남 FC 경기 난입사태: 문민정부 이후 당대표가 경기장에서 선거유세를 강행하는 희대의 병크를 저질렀으나 모두 무혐의나 무죄가 되었고 심지어 자유한국당엔 고발인 수사마저 진행되지 않았다. 되려 저지에 실패한 경남 FC만 피해를 입었으며, 검찰은 경기장이 선거법상 선거유세를 할 수 있는 장소란 판결을 내려버렸다.
- 장학영: 은퇴 이후 후배 선수인 이한샘에게 승부조작을 권유했다가 되려 신고당하는 바람에 구속된 조작범. 평소에도 도박에 빠져 후배들에게 돈을 빌리고 다니거나 아내하고도 이혼하는 등 사생활이 방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전남 드래곤즈의 2018년 : 구단 첫 강등 및 스플릿 5전 전패, 기업구단 최초 다이렉트 강등의 기록을 세웠다.
-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 전북 현대 모터스의 베트남 쇼크: 빈즈엉과의 원정 경기에서 그야말로 극악의 경기력을 선보인데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주심의 기가 찰 오심 퍼레이드 끝에 수비수만 2명이나 퇴장을 당하면서 2:3으로 역전패했다. 전북이 워낙 못하기도 했지만 주심은 매수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편파 판정을 남발했으며 특히 세번째 실점으로 이어진 페널티킥 반칙은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쪽이었다. 김창수는 상대 선수에게 발을 밟혔음에도 오히려 경고 누적으로 퇴장. 전북의 얼 빠진 듯한 경기력과 주심의 막장 판정이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것. 이 날 패배는 47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구단이 베트남 구단에게 패한 것으로, 베트남 쇼크가 국가대표에 이어 클럽 대항전에서도 탄생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흑역사.
- 최윤겸 감독 이영익 코치 폭행 사건
-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 경기 내용은 준수했고 특정 선수를 제외한 양 팀 선수들은 모두 최선을 다했으나 유벤투스 지각사태 및 경기시간 연기, 호날두의 계약 위반, 태도 논란, 주최사에 대한 각종 논란과 부실한 서비스(40만원짜리 뷔페가 매우 낮은 퀼리티)그리고 공영방송에서의 사설토토 광고 노출등 경기외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K리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문제가 된 사례.
- 황선홍 홍명보 드래프트 거부 파동
- 홍준표 구단주 시절과 안종복 단장 시절의 경남 FC: 2013~2014년 용병 비리 사건과 심판 뇌물 수수혐의로 안종복 단장이 구속되었고, 홍준표 구단주는 2014년에 여러 망언을 일삼다가 강등 후 급기야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박치근 단장을 앉혔는데 박성화 감독에게 스토야노비치 선수를 9골 넣고 출전시키지 말라고 지시했으며 결국 스토야노비치는 경남과 계약이 해지되었다.
3. 해외
3.1. FIFA 월드컵
-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역대 최악의 월드컵으로 평가받는 대회. 이 월드컵 자체가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선전하는데 이용당했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우승을 위해 심판들을 매수한 것은 기본이요, 아르헨티나에서 루이스 몬티, 엔리케 구아이타, 라이문도 오르시 등을 뭉텅이로 빼오는가 하면 이탈리아인들의 불만을 축구 선수들에게 풀도록 선동하는 등 그야말로 온갖 더러운 수단을 다 동원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들어올리게 되지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함께 스포츠의 순수한 가치를 퇴색시킨 최악의 월드컵으로 평가된다.
- 1938년 프랑스 월드컵: 보르도의 전투
-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전 (우루과이 2 : 1 브라질): 축구 열기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서 안방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브라질 대표팀을 보고 대회가 끝나기 전부터 브라질 축구 협회를 비롯한 각계에서 우승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겨도 되는 우루과이전에서 역전패하면서 준우승했으며, 결국 미리 터뜨려 놓은 샴페인들은 김칫국이 되어 우승 기념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조기가 걸렸으며 우승을 눈 앞에서 놓쳐버렸다는 것에 분노한 브라질 축구 팬들이 훌리건으로 돌변하여 폭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곳곳에서 권총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등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다. 이 험악한 분위기 때문에 우루과이 선수단도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귀국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당시 경기가 열렸던 구장의 이름을 따서 마라카낭의 비극이라고도 불린다. 그 이후로 우루과이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4강을 기록했을 뿐 단 한번도 월드컵 우승을 못하고 있다. 브라질은 안 그래도 자국에서 멋대로 독립해 나간 우루과이를 싫어하는 나라였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브라질은 우루과이를 증오하는 마음에 날개를 달았다. 또한 이 때까지 브라질의 유니폼은 흰색이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익숙한 상의 노란색, 하의 파란색의 카나리아로 바뀌게 되었다.
- 1954년 스위스 월드컵
- 베른의 난투극: 1954년 월드컵 브라질과 헝가리의 경기 후 양 팀 선수가 충돌한 사건.
- 헝가리 vs 서독의 결승전: 하프타임때 서독 선수들이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했다. 물론 이 때는 금지약물제도가 없었으므로 규정 위반은 아니다.
- 1962년 칠레 월드컵: 산티아고의 전투
-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서 아르헨티나를 맞아 경기시작과 동시에 아르헨티나 주장인 안토니오 라틴을 퇴장크리... 그리고 결승에서는 크로스바를 맞고 나간 공을 골이라 판정. 열받은 서독 축구팀은 이 골이 노골이라는 증거사진까지 찍어서 제출했는데도 골인으로 판정받았다. 물론 하늘은 공평했는지 2010년 월드컵 16강에서 두 팀이 만났을 때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의 정치 선전수단으로 이용당한 대회다. 특히 1차 조별리그부터 아르헨티나의 첫 경기 상대인 헝가리 선수들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두 명이나 퇴장시키고, 서독을 피하기 위해 이탈리아에게 고의로 패배했다는 의혹도 있다. 특히 2차 조별리그 페루전에서 아르헨티나가 무려 6:0의 대승을 거두는데 이 경기는 승부조작이라는 말이 많다.여기에 혹한까지 한 몫했다.[16]
- 히혼의 수치
- 로베르토 로하스 스캔들: 1990년 월드컵 예선 브라질과 칠레의 경기에서 브라질의 관객이 던진 폭죽을 당시 칠레 골키퍼였던 로베르트 로하스가 맞은 것처럼 속여 연기를 했고 칠레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온 사건이다. 추후 조사 결과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고 이 경기는 칠레의 0:2 몰수패에 1994년 월드컵 예선 출장 금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고 로베르트 로하스는 영구 제명 당했다.서프라이즈의 관련 동영상서프라이즈에서 알려주지 않은 내용이 있는데 로베르토 로하스는 12년후인 2001년에 사면되었고 당시에 폭죽을 던진 호세네리 지 멜루는 오히려 브라질에서 손쉽게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게 도와준 '행운의 소녀'라는 칭송을 들으며 브라질의 영웅으로 떠올랐다는것이다.
- 1994년 미국 월드컵
- 잠비아의 비행기 사고: 세네갈과의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하다가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한 선수 전원이 사망했다. 또, 이 사고의 여파가 너무 컸던지 FIFA가 예선 일정을 연기하는 배려를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선 진출의 기회도 놓쳐 버렸다.
- 일본의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마지막 이라크전에서 2:1로 앞서다가 30초를 못 버티고 동점골을 허용함으로써 첫 본선 진출을 4년 뒤로 미루게 되고 결국 일본 입장에서는 도하의 비극이라 불리며 흑역사로 남는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한국은 극적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니 이름하여 도하의 기적이다. 당연히 한국 입장에서는 흑역사가 아니다.
- 유럽 예선의 프랑스: 2경기를 남겨 놓은 상황이었는데 남은 상대는 이스라엘과 불가리아(그것도 둘 다 프랑스가 홈)였다. 이기면 불가리아전과 상관없이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던 이스라엘에 패하고도, 마지막 경기였던 불가리아 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본선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비드 지놀라가 그 마지막 경기 막판에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3:2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여 프랑스는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불가리아전의 실수 이로 인해 지놀라는 프랑스 축구 팬들로부터 역적으로 낙인 찍혔으며 1998년 자국 월드컵에서는 아예 자국 국대의 우승을 가만히 앉아서 응원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참고로 이 당시 이스라엘은 조 꼴찌로 광탈했으며 이스라엘이 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의 전적이 1승 3무 6패였는데 그런 이스라엘의 유일한 승리가 바로 프랑스전.
-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의 결승전(대 브라질) 승부차기: 120분 동안 양쪽 다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2:3으로 뒤져 있는 상황(이탈리아 2명, 브라질 1명 실축)에 마지막 5번째 키커로 나왔는데 바조가 성공하고 브라질의 5번째 키커가 실패하기를 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바조의 슛은 크로스바 위로 붕 떠 버리며 그대로 브라질의 우승으로 경기 종료. 결국 팀을 힘겹게 결승까지 이끌어 영웅으로 대접받았던 바조는 승부차기 실축 한 방에 그만 역적으로 추락해 버렸다. 더구나 이는 바조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었기에 더욱 안습할 따름이다.
- 콜롬비아팀 에스코바르의 자살골: 에스코바르는 이 자살골을 넣고 귀국 후 괴한에게 사살당했으니 말 그대로 자살골이 되어 버린 것이다. [17]
- 경기장 전체의 날씨: 40도가 넘는 더위 때문에 관중도 선수도 굉장히 힘들어 한 데다가 유럽 시간대에 맞춰주기 위해 대부분의 경기는 가장 더울 시간대인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 시작했다.[18]
- 디에고 마라도나의 금지약물 복용: 본선 두 경기를 치른 직후 받은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에페드린 양성 반응이 나와 출전금지를 당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16강에 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었으나 결국 16강에서 루마니아에게 2:3으로 패배해 탈락한다.
- 슈테판 에펜베르크의 손가락 욕 사건: 조별예선 한국전에서 독일은 초반에 3:0으로 앞서다가 후반전에 한국팀이 3:2까지 맹렬히 추격하자 관중들이 수비에만 급급한 독일에게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고 에펜베르크는 관중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리는 물의를 일으킨 뒤 그대로 교체당하고 강제로 귀국당했다.
- 2002년 한일 월드컵
- 세네갈 쇼크
-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첫 경기에서 독일한테 0 : 8로 떡실신당하더니 카메룬에 0 : 1로 당하며 시망. 마지막 경기인 아일랜드에는 0 : 3. 3전 전패에 합계 0득점 12실점. 말 그대로 승점자판기.[19] 여담이지만 그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2006년에 한번 본선에 올라 스페인과 우크라이나에게 신나게 썰린 뒤 12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이후 2018년에 다시 월드컵 본선에 나와 개최국 러시아한테 0 : 5로 또다시 떡실신당하고 우루과이한테도 0 : 1로 져서 역시 조기 탈락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이집트와의 경기에서 2 : 1로 역전승하여 1승을 챙기는데는 성공했다.
- 2006년 독일 월드컵
- 아시아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의 오심 사건 : 우즈베키스탄과 바레인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은 1-0으로 앞서던 전반 39분 페널티킥을 얻어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키커가 슛을 하기 전 동료 선수가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유로 주심은 이 골을 무효 처리하였고 바레인에게 간접 프리킥을 줬다. 하지만 이는 규정상 명백한 오심이었으며, 경기는 그대로 1-0으로 끝났다. 우즈베키스탄이 이 부분에 대해 몰수승으로 처리해달라고 제소하자 FIFA는 나중에 오심을 인정하였고 해당 경기에 대해서는 재경기를 선언하였다. 한 달뒤 다시 열린 경기에서 두 팀은 1-1로 비겼고 나흘 뒤 열린 2차전에서도 0-0으로 끝나 최종적으로 1-1로 끝났다. 결과는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바레인이 올라갔으며, 우즈베키스탄은 오심으로 인해 억울하게 탈락하고 말았다.[20]
- 일본 대표팀: 첫 경기에서 당시 오세아니아 팀이던 호주를 상대로 1대3 역전패를 당하면서 현재까지 오세아니아에게 패배를 기록한 유일한 팀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기록했다.[21] 이후 당시 해 볼 만했던 크로아티아와 0대0 무승부를 기록하고 브라질에게 1대4로 깨지면서 1무 2패로 광탈했다.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대표팀: 아르헨티나전이 화근이었다. 지역예선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으로 양호한 경기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괜찮아도 이런 꼴을 당했으니 더더욱 안습. 실제로 아르헨티나 전이 끝난 직후 세르비아 축구팬이 경기장 바닥에 주저앉아서 아주 서럽게 펑펑 울었다. 세르비아 깃발로 눈물을 닦아가며... 참고로 이 대표팀은 이 월드컵을 끝으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분리되면서 해체된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몬테네그로 선수는 단 1명. 사실상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 16강전 포르투갈 대 네덜란드: 16장의 옐로카드와 4장의 레드카드가 쏟아져나온 막장 오브 막장 경기. 뉘른베르크의 전투로 불리기도 한다. 이 경기에서 양 팀은 역대 월드컵 한 경기 최다 경고, 최다 퇴장의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으니 말 다한 셈.
- 16강전 스위스 대 우크라이나: 승부차기에서 스위스가 삼연뻥을 시전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에게 8강 진출권을 빼앗겼다.
-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 도중 일어난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22]
- 2010년 남아공 월드컵
- 일본과 잉글랜드의 2010 남아공 월드컵 평가전: 전반전에 일본이 선취골을 넣었으나 후반전에 자책골을 내리 두 골 넣으며 1:2로 역전패했다(...). 잉글랜드는 결과적으로 한 골도 못 넣고 거의 승리를 날로 먹은 셈.
- 스위스: 대회 우승국인 스페인을 1:0으로 잡고도 칠레에게 0:1로 지고, 약체 온두라스에게 비기면서 조 3위로 떨어졌다. 현재까지 우승국을 잡고도 조별리그에서 광탈한 팀은 이 팀이 유일하다.
- 프랑스 대표팀: 평가전에서 아시아에서도 중간밖에 못 하는 중국에게 0대1로 패배하면서 불안함을 보이더니 결국 우려대로 본선에서 조별리그 3경기를 졸전만 펼치다가 결국 조 최하위로 무승광탈해 버린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 아시아 팀들: 한국, 일본, 이란, 호주가 출전했는데, 4팀 모두 1승도 못하고 조 4위로 광탈했다.
- 카메룬 대표팀: 경기 도중에 선수들끼리 내분을 일으키는 추태를 부리면서 결국 3전 전패 조 최하위로 탈락하고 최종 순위도 뒤에서 1위를 기록했다.
- 포르투갈 대표팀: 첫 경기에서 페페가 박치기를 하는 더러운 플레이를 한 끝에 결국 퇴장당해서 수적열세 때문에 독일에게 0대4로 대패하고 조별리그를 3위로 탈락했으며 박치기 하나 때문에 전 세계인들에게 망신만 당했다.
- 스페인 대표팀: 첫 경기부터 네덜란드에게 1대5로 대역전패 당하면서 망신을 당했으며 이후 칠레에게도 어설픈 티키타카 전술을 쓰다가 결국 네덜란드전 때처럼 꿰뚫려서 패배했기 때문에 2경기 만에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경기에서 호주를 이겼기 때문에 꼴찌는 면했다.
- 미네이랑의 비극
- 2018년 러시아 월드컵
- 프랑스 대 덴마크: 모스크바의 수치. 다만 프랑스는 이 수치 플레이를 시전하고도 우승했다.
- 아르헨티나 대표팀: 첫 경기에서 처음으로 본선진출한 아이슬란드에게 빌빌거리다가 1대1 무승부를 기록하고 두 번째 경기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대0으로 대패했다. 이후 나이지리아를 잡아서 겨우 16강에 올라갔지만 16강에서 프랑스에게 3대4로 졌다.
- 일본 대 폴란드: 볼고그라드의 수치. 특히 바로 전날 벌어진 역대급 경기와 비교되어 더더욱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 한국 대 독일: 카잔의 기적. 독일 대표팀이 약체팀 상대로 무득점 패배+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 마라카낭+미네이랑 비극까지도 훨씬 능가하는 흑역사이다. 2020년에는 2배로 놀림을 당했다 2022년과 2026년엔 3배로 놀릴수 있다 당연하지만 아래에서 언급됐듯이 한국 입장에서는 흑역사가 아니고 감동이었다.
- 바로 전 대회 4강 팀의 사상 첫 4강 이전에 전멸: 우승 팀인 독일은 멕시코와 대한민국에게 져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준우승 팀인 아르헨티나는 16강에서 프랑스와 접전 끝에 3:4로 져서 16년 만에 8강에 못 올랐다. 3위인 네덜란드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도 못했고, 4위인 브라질은 8강에서 벨기에에 1:2로 졌다.
- 우승 후보의 흑역사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1966년 북한 쇼크 :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1승 1패 상태에서 북한의 박두익에게 결승골을 허용하고 패배하는 바람에 조 3위로 밀려나면서 광탈. 그 후 선수단은 몰래 입국했다가 성난 팬들에게 썩은 토마토 및 날계란 세례를 받았다.
- 2002년 한국 쇼크: 2002년에 한국 상대로 16강에서 선취골을 넣었지만 87분에 설기현의 동점골로 연장전까지 갔고, 한국의 안정환 한테 골든골을 내주면서 떨어졌으며 당연히 한국 입장에서는 기적이었다.
- 2010년 2무 1패 광탈(뉴질랜드 쇼크, 남아공 참사): 파라과이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시작부터 영 좋지 않았고, 최약체로 꼽혔던 뉴질랜드를 상대로도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에게 2:3으로 패하며 16강 진출이 완전히 좌절됐다. 게다가 이건 이탈리아가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고 또한 당시 팀은 디펜딩 챔피언에 걸맞지 않게 꼴찌로 광탈하는 수모를 당했다.
- 2014년 1승 2패 광탈: 첫 상대였던 잉글랜드를 상대로 1:2 승리를 거두며 기분좋게 출발. 하지만 2차전에서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0:1 패배, 그리고 3차전에서도 우루과이를 상대로 역시 0:1로 패배하면서 경기 결과 1승 2패로 남아공 대회에 이어 2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당시 D조에는 두 우승후보 이탈리아와 잉글랜드가 한 조에 있었는데, 경기 결과 이 두 팀이 광탈을 한 것이다.
- 2018년 예선 탈락: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유럽)/G조에서 하필 스페인과 만나는 바람에 7승 2무 1패를 기록하고도 플레이오프로 가야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스웨덴을 만나 솔나에서 치른 1차전에서 0:1로 패배하여 반드시 밀라노에서 설욕을 다짐했으나 0:0으로 비기면서 60년 만에 예선 광탈의 고배를 마셨다.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1994년 불가리아 쇼크: #유럽 예선의 프랑스 문단 참고.
- 2002년 세네갈 쇼크: 지네딘 지단의 부상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개막전부터 월드컵에 처음 나온 세네갈에 뜻밖의 패배를 당한 뒤, 그 후유증을 못이기고 결국 1무 2패, 그것도 무득점으로 광탈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직전 대회의 우승과 당시 피파 랭킹 1위로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프랑스가 단 1골도 못 넣고 조기 탈락을 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탈락은 팬들에게 있어서 가히 충격과 공포 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전 대회 우승국이 거둔 최악의 성적 기록도 갈아 치우는 굴욕을 당했다.[23] 현재까지도 디펜딩 챔피언이 무득점으로 조기 탈락을 한 사례는 이것이 유일하다.[24]
- 2010년 남아공 쇼크: A조에 개최국 남아공, 멕시코, 우루과이와 같이 싸우게 된 프랑스는 첫 경기에서 결정적 기회를 많이 놓치는 현상을 보여주며 우루과이와 0:0 무승부를 했고, 멕시코전에서는 정말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0:2로 패배했다. 1무 1패가 되면서 남아공한테 승리는 해야 하고, 승리를 하여도 멕시코와 우루과이가 무재배를 하면 탈락인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이기기는 커녕 남아공한테 오히려 1:2로 패배하면서 결국 1무 2패라는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비참하게 광탈당하는 굴욕을 겪고 말았다.
- 2018년 모스크바의 수치: 아래의 히혼의 수치 마이너 버전. 그런데 위에서 언급됐듯이 프랑스는 이 수치 플레이를 시전하고도 우승했다.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1982년 히혼의 수치: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조별예선에서 알제리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한 서독은 12강에 진출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와 짝짜꿍을 하고 승부조작을 했다. 경기 내용도 전반 10분에 흐루베쉬가 선제골을 넣고 80분 동안이나 백패스로 공만 돌리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유로 1984를 시작으로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는 모든 팀이 동시간에 경기를 치르도록 바뀌었다.
- 1998년 충격패: 크로아티아가 첫 출전국이라고 깔보고 있던 독일은 크로아티아에게 오히려 0:3으로 대패하여 준결승 진출을 못하고 만다.
- 2002 월드컵 지역 예선: 잉글랜드와의 홈 경기를 이기기만 해도 본선 진출 확정인데 1:5로 대패했고, 이후 삽질까지 합쳐서 본선 진출을 잉글랜드한테 빼앗겨 버렸다. 다행히 플레이오프에서 우크라이나를 잡고 간신히 본선에 진출한 뒤 준우승했다.
- 2018년 카잔의 치욕: 상술된 모든 사건들을 뛰어넘는 명실상부 독일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멕시코에게 0:1로 1차전을 패한 다음 스웨덴을 2:1로 간신히 이기며 16강의 희망을 되살렸지만, 대한민국에게 0:2로 무너지면서 조별리그 도입 후 사상 최초인 최하위로 광탈하는 굴욕을 맛봤다. 물론 한국 입장에서는 스웨덴, 멕시코에게 2패로 끌려다니다가 막판에 여러가지 유종의 미를 거뒀으며 동시에 월드컵 최대의 이변을 연출한 희대의 명경기, 멕시코 입장에서는 16강 진출의 기적.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1950 브라질 월드컵 미국 쇼크 : 당시 잉글랜드는 월드컵은 '수준 낮은 대회'라서 출전을 안 할 정도로 세계 최강 팀 중 하나였고 별명이 '비공식 챔피언'이었던 팀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청년들이 한국으로 파병을 간 상황이라 선수단도 제대로 구성을 못해 유학생, 불법 체류자들까지도 긁어모아 팀을 급조한 상태였다. 경기 전 예상은 당연히 잉글랜드의 압승이었고 경기 양상도 90분 내내 잉글랜드 선수들이 미국 진영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무려 38개나 되는 소나기 슈팅을 날리며 공격했다. 그러나 미국 골키퍼 프랭크 보기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며 38개나 되는 슈팅을 날리고도 단 1골을 넣지 못했고 오히려 전반 38분에 미국의 역습 상황에서 조 게이텐스가 결승골을 터뜨리고 말았다.[25] 그리하여 미국이 잉글랜드를 1 : 0으로 잡아내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 패배의 충격으로 잉글랜드는 3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패배하며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 1994 미국 월드컵 예선 탈락
- 2014 브라질 월드컵: 우루과이, 이탈리아, 코스타리카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는데 1차전에서 이탈리아에 1 : 2로 패배하고 2차전에서도 루이스 수아레스의 원맨쇼에 농락당하며 우루과이에 1 : 2로 패배해 일찌감치 광탈이 확정되었다. 3차전 코스타리카를 상대로도 0 : 0 무재배에 그치며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64년 만의 조별 리그 탈락.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2002 한일 월드컵 지역 예선 탈락: 포르투갈, 아일랜드에 밀려서 탈락.[29] 결국 네덜란드 축구 팬들은 자국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4위로 올려 놓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 예선 탈락: 프랑스, 스웨덴 등과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홈, 원정 경기에서 모두 지고, 불가리아 원정에서도 0:2로 졌다. 게다가 스웨덴이 룩셈부르크를 8:0으로 이기는 바람에 네덜란드가 골득실차에 크게 밀려서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잉글랜드에게 지고 스웨덴에게 비겨서 조 3위로 광탈.
- 2018 러시아 월드컵: 집중력 부진으로 조별리그에서 아이슬란드에게 비기고, 크로아티아에 20년전 독일이 당한 스코어로 대패해 탈락 위기에까지 놓였으나 나이지리아에 승리해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하게 되었지만 우승 후보인 프랑스를 만나 치열한 접전 끝에 3:4로 패배.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5골 차 이상의 참패 기록들(굵은 글씨는 대회 최다 골차 패배)
- 9골 차
- 대한민국 0:9 헝가리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자이르 0:9 유고슬라비아 (1974 FIFA 월드컵 서독)
- 엘살바도르 1:10 헝가리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30]
- 8골 차
- 쿠바 0:8 스웨덴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볼리비아 0:8 우루과이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 사우디아라비아 0:8 독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7골 차
- 대한민국 0:7 터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아이티 0:7 폴란드 (1974 FIFA 월드컵 서독)
- 북한 0:7 포르투갈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 6골 차
- 미국 1:7 이탈리아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네덜란드령 동인도[31] 0:6 헝가리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스웨덴 1:7 브라질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 멕시코 0:6 서독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 페루 0:6 아르헨티나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32]
- 헝가리 0:6 소련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 세르비아-몬테네그로 0:6 아르헨티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 브라질 1:7 독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33]
- 5골 차
- 미국 1:6 아르헨티나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 유고슬라비아 1:6 우루과이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 스페인 1:6 브라질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 멕시코 0:5 브라질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터키 2:7 서독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체코슬로바키아 0:5 오스트리아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오스트리아 1:6 서독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아르헨티나 1:6 체코슬로바키아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 콜롬비아 0:5 유고슬라비아 (1962 FIFA 월드컵 칠레)
- 스위스 0:5 서독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 우루과이 1:6 덴마크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 카메룬 1:6 러시아 (1994 FIFA 월드컵 미국)
- 불가리아 1:6 스페인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34][35]
- 대한민국 0:5 네덜란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36]
- 자메이카 0:5 아르헨티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 사우디아라비아 0:5 러시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 파나마 1:6 잉글랜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 9골 차
3.2. 기타 국가대항전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의 일본 대표팀(남자부): 각 조 1위 팀 6팀과 2위 팀 중 가장 성적이 좋은 2팀(도합 8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조별 라운드에서 일본은 북한, 시리아, 파키스탄과 같은 조가 되었고, 파키스탄과 시리아에 승리하며 북한과 비기만 해도 8강에 갈 수 있었으나 지는 바람에 2위로 밀려났고 추가 직행권조차 얻지 못해 광탈했다.
- 카디프의 비극 : 명실상부 일본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 201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토고 대표팀: 개최국인 앙골라로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콩고민주공화국의 카빈다에서 무장괴한 3명에게 총격을 당하여 5명이 사망하였고, 결국 대회에서 기권하였다.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아데바요르는 이 충격으로 대표팀에 은퇴 선언을 하였지만, 후에 다시 복귀하였다.
- 1983년 FIFA U-20 월드컵에서의 북한 대표팀: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 1위로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으나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의 심판 구타 사건으로 2년간 국제대회 출전정지 크리를 먹으며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북한 대신 본선에 나간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르며 붉은 악마로 최초로 불리는 계기가 된다.
- 유로 1992에서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지역 예선에서 조 1위로 본선 진출권을 따냈으나 유고 내전 크리로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 대신 본선에 나간 덴마크가 우승을 차지했다.
- 유로 2004에서의 프란체스코 토티: 1차전인 덴마크전에서 상대편 선수인 크리스티안 폴센에게 몰래 침을 뱉는 바람에 3경기 연속 출장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이탈리아도 1승 2무의 성적을 거두고도 스웨덴과 덴마크에게 밀려 탈락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되는 바람에 이미지를 회복할 기회마저도 박탈되고 말았다.
- 축구전쟁: 1969년 7월 축구경기가 계기가 되어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일어난 전쟁.
- 독일 대표팀의 흑역사
- 유로 2012의 네덜란드: 감독이 자기 사위만 열심히 귀여워한 덕에 팀 자체가 멘탈붕괴되었고 독일전에서는 승부조작을 의심할 정도로 성의없게 뛰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 대해서 네덜란드 선수들은 아예 그가 뭔짓을 하든 그냥 내버려뒀다. 결국 네덜란드는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마지막 상대인 포르투갈에게도 선취득점을 했으나 역전패를 당해해 3전전패로 1승도 거두지못하고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
- 믿기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 유로 2016 예선전 세르비아 대 알바니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파르티잔 스타디움에서 전반 41분 알바니아의 한 관중이 알바니아 정치 관련 깃발을 미니헬기에 띄워 그라운드에 내려보냈는데 이를 본 세르비아 선수들은 깃발을 치우는 중에 알바니아 선수와의 충돌이 일어났고 흥분한 세르비아 관중은 오물투척 및 그라운드 난입으로 경기가 중단되었고 경기 결과는 세르비아의 3대0 승리로 처리되었지만 세르비아는 관중 난입을 막지 못해 승점 3점 삭감에 2경기 무관중 경기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알바니아가 이에 대해 항소하였고, 재판부가 관중 난입을 제대로 막지 못한 세르비아의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하여 알바니아의 손을 들어 알바니아가 3대0으로 승리한 것으로 반전되었으며, 이에 따라 세르비아는 승점 -2점으로 대회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였다.
- 유로 2016에서의 잉글랜드: 조별리그 1차전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어이없게 비긴후 2차전에서 웨일스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다음 마지막 슬로바키아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바람에 웨일스에 밀려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된다. 16강에서는 사상첫번째 유로출전인 아이슬란드와 만났는데 루니의 pk골로 앞서나가기 시작하였으나 아이슬란드에게 연달아 두골을 실점하면서 어이없게 패하고 만다. 특히 로이 호지슨이 코너킥 키커로 해리 케인을 지정한건 이해 할수 없었다. 결국 이 여파로 호지슨은 자진 사임하였다.
- 캐리비안 컵의 2점짜리 골든골 제도 - 바베이도스 vs. 그레나다의 황당한 경기로 인해 폐지되었다. 져주기 게임#s-6.2 참고
-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의 멕시코 대표팀 : 8강전에서 멕시코는 칠레와 만났으나 무려 7:0이라는 경악적인 스코어 차이로 참패한 경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미네이랑의 비극은 브라질이 만회골이라도 득점했으나 이 경기는 그런 것 없이 참패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한 골 차이로 승부가 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경기 내용은 압도적인 패배로 끝이 났으며 이 경기의 여파로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은 사임할 뻔 하였다.
- 1948 런던 올림픽에서의 멕시코 대표팀 : 멕시코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차라리 칠레는 코파아메리카에서 우승을 몇 번 정도 했던 강팀이기라도 했지 이 당시에는 선수촌 임대료 미납을 이유로 한때 선수들 전원이 선수촌에서 강제로 퇴거당할 뻔한 슬픈 사연을 가진 팀한테 무려 5:3이라는 기가 차는 스코어로 박살이 났다. 게다가 더 굴욕적인 건 이 당시 한국팀은 스웨덴한테 12:0으로 패했다는 것이다.[37] 결국 이 경기의 여파로 66년 당시 이탈리아팀처럼 귀국날 토마토 세례를 받았고 감독은 사임 당했다.[38] 당연하지만 외신의 조롱과 비난을 한 몸으로 받고 말이다.
- 1998년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A조 태국 대 인도네시아의 경기: 개최국 베트남의 홈 어드밴티지를 부담스럽게 느껴서 서로 2위로 준결승에 가려고 기를 쓰는 바람에 경기가 매우 지저분해졌다. 인도네시아가 후반 45분 고의 자책골로 2:3으로 패배하면서 베트남을 피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싱가포르한테 1:2로 져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그 싱가포르가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가 끝난 뒤 두 팀은 징계를 받았고 특히 고의로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국가대표 자격이 영구적으로 박탈되었다.
3.3. 클럽 축구
3.3.1. 프리미어 리그
3.3.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뮌헨 비행기 참사 - 그 당시 맨유는 레알 마드리드 CF에 부족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들었던 팀이었는데, 던컨 에드워즈 등의 선수들이 희생되면서 이 사고 하나로 맨유의 전력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재정비에만 10여년이 걸렸다.
- 10/11 시즌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파이널 참패 - 2년만의 리턴매치 였지만 08/09때와 마찬가지로 리오넬 메시와 바르사 미드진에게 시종일관 압도적으로 털렸다. 일명 퍼거슨 부들부들 짤이 탄생한 경기.
- 11/12시즌 9R 맨체스터 시티 전 - 맨시티에게 1:6으로 관광당하며, 과거 맨체스터 시티를 "시끄러운 이웃"이라 조롱하던 알렉스 퍼거슨은 대굴욕을 겪는다.
- 모반무 시대 - 우드워드 때문에 AC 밀란과 함께 망해가는 클럽이라 조롱받는다. 일명 망란과 망유.
- 데이비드 모예스 : 에버튼 시절 모예수였던 사람이 1년만에 모했으, 모했수로 별명이 바뀌었다. 성적은 2순위라 쳐도 팀 자체를 망쳐버린 것은 덤. 결국 본인 감독 커리어사상 처음으로 경질을 겪게된다. 그나마 루이 판할의 삽질덕에 재평가를 어느정도는 받고 있지만...
- 루이 반할 : 모예스의 경질 이후 월드컵이 끝난 뒤 호기롭게 부임했으나, 3백을 억지로 적용시키려다 실패하고, 천문학적 이적료를 쓰고도 챔스권에 턱걸이하고, 답이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는 등 어째 가면 갈수록 모예스보다 더하다는 평까지 듣고 있다. 그나마 애슐리 영같이 퇴물이던 선수를 갱생시키거나, 마커스 래시포드같은 특급 유스를 발굴해내는 능력은 살아있지만, 전술적인 측면과 선수 기용면에서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는게 문제. 앙헬 디마리아를 억지로 중앙에 배치했다가 폼 다 죽이고, 웨인 루니를 원톱으로 기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 부임 첫해에는 그래도 후반기에 선전하며 리그 4위를 기록했지만, 15-16시즌 현재, 챔스에 이어 유로파에서도 광탈했으며 리그에서는 챔스권 진입이 힘들어보이는 상태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적료 4500억을 쓰고 이 성적이라는거. 다비드 데헤아를 비롯한 몇몇선수들의 맹활약 아니었으면 유로파도 힘들었을거라는게 중론이다.
- 조제 모리뉴 : 1년차인 16-17시즌에 유로파, 커뮤니티 실드, 리그컵 우승했음에도 그 유명한 무리뉴 2년차에도 무관이었고 경기력은 개판이었다. 결국 첼시에서 경질된 지 정확히 3년만에 맨유에서도 경질당했다.
- 알렉시스 산체스와 헨리크 미키타리안 트레이드 - 아스날 FC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보이던 산체스와 미키타리안과의 트레이드 성사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주급 7억원이라는 초특급 계약으로 합류한 산체스는 주급이 무색하듯 극악의 폼을 보이며 타팀팬들에게 맹구화는 과학이라는 조롱과 함께 일명 77ㅓ억 드립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여 폼이 나아졌다는 설이 있긴 했으나 유리몸이 돼서 있으나 마나 수준이다.
- 어나더오티 - 국내 악성 맨유 팬덤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인 만행이다. 여담으로 이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좋은 팬서비스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정작 그로부터 12년 후의 유벤투스 방한은 오히려 팬들이 좋은 모습을 보였고[39] 정작 호날두는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만을 보이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욱일기 관련 논란
- 20/21 시즌 4R 토트넘 홋스퍼 전 1-6 대패 - 식스 앤더 시티의 굴욕을 토트넘에 다시 당한 경기로 유명하다. 맨시티는 이 경기에서 맹활약한 손흥민을 마리오 발로텔리의 'why always me?' 티셔츠 세레모니와 합성해 올려 조롱했다. 2011년 식스앤더시티 때는 에딘 제코와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2골씩, 다비드 실바와 세르히오 아궤로에게 1골씩 먹혔다면 이번엔 손흥민과 해리 케인에게 2골씩, 세르주 오리에와 탕기 은돔벨레에게 1골씩 먹히게 되었다. 그리고 맨유의 마커스 래시포드는 인스타그램에 팬들에게 보내는 사과문을 게시했다. 다만 9년 전 식스앤더시티 참사 때는 우승 직전까지 갈 정도로 전후 경기력이 우수했으나 이때의 맨유는 개막 이후 부진의 연속이었다. 대패 후 맞이한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는 급히 에딘손 카바니, 알렉스 텔리스, 파쿤도 펠리스트리, 아마드 디알로를 영입했다. 이 중에서 그렇게 영입했던 카바니는 팬들의 기대치가 낮았으나 현재까지는 앙토니 마시알과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3.3.1.2. 첼시 FC
- 첼시 FC/2015-16 시즌 -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첼시 사상 최악의 시즌. 감독 경질은 물론이고 태업 논란, 팀 닥터 논란으로 엉망이 되버린 시즌. 첼시 FC/2015-16 시즌/문제점 문서 참고.
- 조제 보싱와의 빅 이어 사건 - 2011-12 챔스에서 구단 사상 첫 우승을 거둬 고대하던 빅 이어를 들어올리기 직전, 트로피 욕심을 엄청나게 낸 보싱와가 주장 존 테리와 부주장 프랭크 램파드, 팀의 고참인 디디에 드록바까지 완전히 가리고 센터에서 주인공을 차지하면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 첼시 역사에 남을 사진에 영원한 첼전드로 기록되고 말았다.
3.3.1.3. 아스날 FC
- 아스날 9번의 저주 - 문서 참조.
- 1995년 조지 그레이엄 감독의 뇌물 수수 사건
- 11/12시즌 3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 가르마 대첩으로 잘 알려진 경기이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팀의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고 나스리마저 맨시티로 떠났으나 이에 대한 보강은 시원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1R 뉴캐슬전에서 기가 막힌 공격력을 선보이다 무승부, 2R 리버풀전에서는 기가 막힌 수비력을 선보이다 2:0 패배를 당했다. 그래도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우디네세를 꺾으며 본선에 진출해 분위기가 좀 나아졌다. 그렇게 맞이한 3R 맨유전이었는데... 그야말로 2부리그만도 못 한 경기력, 아니, 경기력이란 게 있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의 공놀이를 하다가 무려 2:8로 패배했다. 이후로도 아스날은 블랙번에게 자책골만 두개를 헌납하면서 4:3으로 패배하는 등 막장행보를 보여 한때 강등권까지 떨어졌으나, 특유의 괴상한 뒷심을 발휘해 시즌 종료시엔 결국 챔스권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2:8 대패 후 구단 전체가 패닉에 빠져 급하게 선수를 사들였다.
- 11/12시즌 패닉 바이 속 박주영과 안드레 산토스 영입[41]
- 16/17시즌~현재 - 아르센 벵거의 4/16 과학이 마침내 막을 내린 시즌. 리그에서는 5위에 그쳐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고,[43] 마지막으로 나간 그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까지는 갔으나, 16강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홈, 어웨이 모두 1대5 대패, 도합 2대10이라는 정신 나간 스코어로 탈락하며 제대로 체면을 구겼다.[44] 그나마 시즌 막판에 FA컵이라도 우승하며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살렸지만, 보드진은 벵거와의 2년 재계약에 합의하면서 다음 시즌에 제대로 폭망하게 된다.[45] 리그는 지난 시즌보다 한 단계 낮은 6위에 그쳤고, 유로파리그는 4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유린당하며 탈락, FA컵은 첫 경기(!)에서 노팅엄에게 지며 광탈, 기껏 결승까지 간 카라바오 컵은 맨시티에게 0대3으로 대패하며[46] 시즌을 말아먹었다. 18-19 시즌은 벵거가 사임하고 우나이 에메리가 부임했지만, 여전히 구단주가 부족한 투자를 하며 또 리그 4위권 진입에 실패했다. 시즌 초반에는 22경기 무패행진을 달렸으나 막판에 일정이 경쟁팀들에 비해 가장 쉬웠음에도 승점을 계속 떨어뜨리며 챔스 진출권을 스스로 차버렸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유로파리그 결승 역시 첼시에게 1대4로 탈탈 털리고 말았다.[47] 그리고 구단주의 투자가 여전히 부족한 현재 이러한 고난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16-17 시즌 여름 이적시장 : 아스날의 암흑기가 시작된 원인으로 평가된다. 위의 11-12 시즌 패닉 바이 이상의 뻘짓으로 평가되며[42] , 100만 파운드 가량을 썼음에도 이 중 살아남은 선수는 2명에 불과하다. 이 시즌 아스날은 묀헨글라드바흐의 에이스 그라니트 자카, 도하 참사의 주역 아사노 타쿠마, 수비 유망주이자 챔피언쉽 베스트 수비수 롭 홀딩, 나이지리아 유소년 팀 기대주 켈레치 은와칼리를 영입하고 마지막 날 데포르티보의 주포였던 루카스 페레스와 발렌시아 수비의 핵 슈코드란 무스타피를 영입하며 무려 6명을 수혈했다. 그러나 홀딩을 제외한 대부분이 PL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고 특히 널뛰기 같은 폼을 보여준 코어 멤버 자카와 무스타피는 팀의 챔스 진출 실패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자카는 그나마 에메리 체제에 들어서야 밥값을 하다가 아르테타 체제에서 빛을 보고 있고, 홀딩 역시 아스날의 코어로 성장했으나, 타쿠마, 은와칼리, 페레스, 무스타피는 각각 파르티잔, 우에스카, 웨스트햄, 샬케로 방출되었다. 심지어 페레스는 17m에 사와서 4m에 보냈고, 무스타피는 36m에 사와서 FA로 보내는 등 장사 면에서도 최악의 자원들로 남게 되었다.
- 아스날 FC/2019-20 시즌, 우나이 에메리 집권기 후반 - 아스날 역사상 최악의 시즌. 감독 경질, 주장의 팬 향한 욕설과 이로 인한 주장직 박탈, 신임 감독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과 재정 악화 등 내외부적으로 처참했던 시즌. 팀 레전드인 미켈 아르테타 감독의 중도 부임 이후 리그에서 단 1패(3승 4무 1패)를 기록하는 등 상황이 나아지고 있으며 전임 감독 에메리 체제에서 폐급 소리를 듣던 그라니트 자카와 슈코드란 무스타피가 차례로 축신이 되면서 에메리는 매 경기 까이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터지며 아르테타 감독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외부적인 요인도 최악인 시즌이다. 결국 94/95 시즌 이후 최악의 성적인 8위로 리그를 마쳤고, 유로파리그는 32강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FA컵은 우승해서 맨시티, 첼시 등을 꺾고 FA컵 최다 우승 클럽의 자리를 더 굳건히 지키게 되었다.
- 2020-21 시즌 초~중반 - 커뮤니티 쉴드 우승으로 좋게 시작한 시즌이었지만 리그는 7R 맨유전 승리 이후로 15R 첼시전 전까지 무승행진을 이어갔으며 EFL 컵에서는 16강에서 리버풀을 잡고도 8강에서 맨시티에 4-1로 대패하여 탈락했다. FA컵에서는 사우스햄튼에 패해 32강에서 광탈했다.
3.3.1.4. 리버풀 FC
- 헤이젤 참사 - 리버풀 뿐만이 아닌,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에도 길이 남을 흑역사이다. 이로 인해 리버풀은 7년간, 그리고 여타 잉글랜드 클럽들은 5년간 유럽대항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 힐스버러 참사
- 톰 힉스 & 조지 질레트 前 구단주
- 로이 호지슨
- 리버풀 FC/2011-12 시즌 - 후반기 강등권 성적에 팀 득점은 리오넬 메시보다 적었다. 결국 에버튼 FC보다 낮은 순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고 케니 달글리시는 경질되었다. 그래도 칼링컵은 우승했다.
- 리버풀 FC/2014-15 시즌 - 직전 시즌 준우승 바로 고전하면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으며, 팀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의 고별전인 리그 38R 스토크 시티전에서는 1-6으로 대패하였다.
- 리버풀 FC/욱일기 관련 논란[48]
- 리버풀 FC/2020-21 시즌/리그 - 4R 아스톤 빌라전 7-2 대패[49] , 안필드에서의 4연패[50]
3.3.1.5. 토트넘 홋스퍼 FC
- 1919년 강등 : 북런던 더비가 치열해진 가장 큰 원인. 1914-15 시즌 20팀 중 20위였던 토트넘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리그 중단 후 1부리그팀이 20개에서 22개팀으로 확대되며 잔류 가능성이 생겼으나 디비전2 5위 팀이던 아스날 FC 회장 헨리 노리스가 잉글랜드 축구협회에 로비를 하여 투표 끝에 아스날이 당선되는 방식으로 승격하고 토트넘은 강등당했다. 게다가 그 이후 아스날은 지금까지 강등을 당하지 않고 있다.
- 앨런 슈가 회장 시절(1991-2001) : 돈은 돈대로 많이 쓰고 감독도 자주 바뀌면서 성적은 성적대로 못 내던 시절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테디 셰링엄, 다비드 지놀라, 솔 캠벨과 같이 클래스 있는 선수들도 활동했었지만 이 기간에 기록한 성과는 1999년 리그컵 우승이 전부이며 리그 순위는 6위 안에 든 적이 없었다. 유럽대항전 진출도 리그컵 우승으로 얻은 98-99 시즌이 유일하며 리그 순위로는 한번도 유럽대항전에 나가지 못했다.
- 2001년 주장 솔 캠벨의 아스날 이적 - 토트넘 유스출신의 간판 센터백이자 주장이었던 솔 캠벨은 계약이 만료되던 2001년 재계약을 미루더니 계약이 종료되자마자 라이벌인 아스날로 이적했다.
- 자크 상티니 감독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자크 상티니는 유로 2004를 마친 뒤 토트넘에 부임했으나 수비적이고 지루한 축구로도 지지부진한 성적 때문에 원성을 사던 중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단 13경기만 치르고 사퇴했다.
- 2005-06 시즌 최종전 - 최종전 전까지 아스날에 승점 1점이 앞선 4위였으나 경기 직전 선수단의 단체 식중독 사태가 있었고 결국 웨스트햄에 1-2로 지면서 5위가 되어 UEFA컵으로 밀려났다.
- 2007-08 시즌 초반 강등권 추락 - 로비 킨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듀오의 공격진은 위력적이었지만 레들리 킹의 부상 등으로 수비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더 많은 실점을 기록하며 강등권으로 추락했고 결국 마틴 욜이 경질됐다.
- 2008-09 시즌 초반 강등권 추락 - 루카 모드리치, 에우렐류 고메스, 데이비드 벤틀리 등 폭풍 영입을 강행했지만 로비 킨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떠나보낸 공격력의 극심한 공백으로 개막 후 2무6패로 꼴찌를 기록했다. 결국 1년 전처럼 후안데 라모스가 경질됐다.
- 2011-12 시즌 - 2012년 1월 기준으로 아스날에 승점 12점이 앞선 3위였으나 갑자기 연패에 빠지는 부진으로 최종전 끝에 아스날에 1점차 4위로 마쳤다. 그러나 6위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유로파리그로 떨어졌다. 결국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 2013-14 시즌 - 파울리뉴, 에릭센, 카푸, 솔다도 등 빅4 진입을 위해 분노의 영입을 강행했으나 레알로 떠난 베일의 공백을 메우지 못해 경기력은 오히려 떨어졌고 강팀들을 상대로 연거푸 대패를 당했다. 결국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은 경질됐다.
- 2015-16 시즌 최종전 5:1 패배 - 6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한 시즌이지만 최종전 전까지 아스날보다 승점 2점이 앞선 2위였으나 강등이 확정된 뉴캐슬에 5-1 참패를 당하며 3위로 마쳤고 21년 만에 아스날보다 높은 순위로 마치는데 실패했다.
- 2019-20 시즌 - 프리시즌 아우디 컵 우승으로 기분 좋게 시작했으나 리그 6위를 기록하며 5시즌 만에 유로파리그로 떨어졌으며, 그나마 라이벌인 아스날(8위)보다 높은 순위로 시즌을 마치긴 했으나 아스날은 FA컵을 우승하며 유로파 본선으로 직행한 데 비해 토트넘은 2차 예선부터 치뤄야 했다. 이외에도 이 시즌은 초반의 성적 부진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의 경질 등 어려움이 많았던 시즌이었다. FA컵과 챔스에서는 각각 노리치 시티 FC, RB 라이프치히에 패하여 16강에서 탈락했으며[51] EFL 컵에서는 4부 리그 소속 콜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졸전을 벌이다가 승부차기 끝에 광탈했다.
-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바이에른 뮌헨전 대패 - 이 날 토트넘은 한지 플리크도 아닌 니코 코바치의 뮌헨에 홈에서 무려 2-7로 대패했다. 거기다가 아스날 유스 출신인 세르주 그나브리에게 무려 4골을 허용하였다.
3.3.1.6. 에버튼 FC
- 피터 존슨 前 회장
3.3.1.7. 리즈 유나이티드
- 피터 리즈데일
- 세스 존슨
- 에릭 칸토나 - 1991-92 시즌 풋볼리그 디비전 1(프리미어리그 전신)의 마지막 우승을 이끌었으나 다음 시즌 감독과의 불화 끝에 로즈 더비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헐값에 이적, 맨유 왕조를 세우는데 공헌했다.
- 03-04 시즌 - 재정난으로 주축 선수들을 헐값으로 내보낸 끝에 결국 전력이 급격히 약화되며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했다.
- 풋볼 리그 챔피언쉽 06-07 시즌[52]
- 마시모 첼리노[53]
3.3.1.8. 블랙번 로버스
- 1995-96 시즌 - 프리미어리그 우승 이후 다음 시즌으로 리그는 7위, 챔피언스리그는 조별리그 꼴찌 광탈의 굴욕을 겪었고, 시즌 후 앨런 시어러가 뉴캐슬로 이적한 뒤 나락의 길을 걷는다.
- 1998-99 시즌 - 4년 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음에도 19위로 강등당했다. 현재까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한 팀 중 유일한 2부리그 강등 사례이다.[54]
- 폴 인스 - 전술 없이 초보 감독의 한계만을 드러내며 전 시즌 7위팀을 강등권까지 떨어뜨렸다.
- 벤키 그룹: 2010년 인수 이후 잘못된 운영으로 팀을 2017년에 3부 리그까지 떨어뜨렸다.
- 스티브 킨 - 벤키 그룹의 낙하산 인사로 대책 없이 샘 앨러다이스를 경질한 뒤 감독이 되어 팀을 2부리그 나락에 빠뜨렸다. 홈팬들에게 매 경기 야유를 듣고 사퇴 압박을 받았다.
- 2016-17 시즌 - 프리미어리그 우승 팀의 유일한 3부리그 강등 사례.
3.3.1.9. 아스톤 빌라 FC
- 2015-16 시즌 - 프리미어 리그에서 사족도 못쓰고 20위로 강등된 시즌. 이전까지 빌라는 맨유, 리버풀, 첼시, 아스날, 에버튼, 토트넘과 함께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지 않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구단이었으나, 15-16 시즌 1라운드 본머스전 승리 이후 무려 리그 20경기 연속 무승에 그치는 등의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 단 3승, 승점 단 17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강등이 된다. 당시 강등에 대해 상당한 충격이 컸기 때문에 구단 내 올해의 선수상까지 취소했을 정도. 이후 3년이 지난 19-20 시즌에야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할 정도로 빌라에게는 뼈아픈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3.3.1.10. 더비 카운티 FC
- 2007-08 시즌 -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FC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왔으나 6라운드 뉴캐슬전 승리를 제외하고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 아래의 주옥 같은 기록을 남기고 단 한 시즌 만에 챔피언십으로 떨어졌다. 여담으로 팀 내 올해의 선수로 선수가 아닌, '더비 카운티 팬들(...)'이 선정되기도 했다. 참고
> 최종 성적 1승 8무 29패, 승점 11점, 20득점 89실점, 득실차는 -69
> 원정 무승, 홈 및 원정 최다 패배, 홈 및 원정 최소 득점과 최다 실점
> 시즌 첫 번째 해트트릭 허용팀(VS 아스날 FC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 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선수에게 한 시즌 동안 해트트릭을 두 번 허용한 팀(VS 아스날 FC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 해당 시즌 한 경기에서 한 선수에게 시즌 최다골 허용팀(VS 첼시 FC의 프랭크 램파드, 4골 허용)
> 시즌 두 번째로 빠른 골 허용팀(버밍엄 시티 FC의 캐머런 제롬, 32초)
> 리그 최저 클린시트(버밍엄 시티 FC와 동률, 3회)
> 원정 무승, 홈 및 원정 최다 패배, 홈 및 원정 최소 득점과 최다 실점
> 시즌 첫 번째 해트트릭 허용팀(VS 아스날 FC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 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선수에게 한 시즌 동안 해트트릭을 두 번 허용한 팀(VS 아스날 FC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 해당 시즌 한 경기에서 한 선수에게 시즌 최다골 허용팀(VS 첼시 FC의 프랭크 램파드, 4골 허용)
> 시즌 두 번째로 빠른 골 허용팀(버밍엄 시티 FC의 캐머런 제롬, 32초)
> 리그 최저 클린시트(버밍엄 시티 FC와 동률, 3회)
3.3.2. 라리가
3.3.2.1. FC 바르셀로나
- 1993/94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55]
- 주젭 사미티에르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 루이스 피구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 2006/07 시즌 무관 - 리그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에 승점이 같고 골득실이 앞서고도 승자승에서 준우승, 우승팀 자격이었던 챔피언스리그는 리버풀에 원정다득점으로 16강 탈락, 코파델레이는 준결승 헤타페전에서 메시의 엄청난 득점으로 1차전 5:2 대승을 거두고도 2차전 4:0으로 대패하며 탈락했다. 한술 더 떠 UEFA 슈퍼컵에서는 세비야에 3:0 참패를 당했고, 클럽월드컵도 준우승에 그쳤다.[56]
- 2007/08 시즌 무관 - 티에리 앙리의 영입으로 판타스틱 4라는 설레발과 함께 시작한 시즌이지만 리그, 챔스, 코파 뭐 하나 들어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리그는 비야레알에도 밀리며 3위로 마쳤고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 2전 전패였다. 코파델레이는 로날드 쿠만의 발렌시아에 탈락했다. 거기다가 데쿠 검은양 발언부터 불화설이 많이 나오는 등 레이카르트 감독의 선수단 장악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결국 레이카르트는 엘클라시코 참패 이후 경질됐다.
-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 어찌어찌해서 리그우승컵은 들어올렸으나 그때는 레알마드리드가 부진한 때였고 경기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57] 다만 로마의 비극과 안필드의 비극을 당했어도 리스본의 악몽만큼의 참사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발베르데는 보드진만 제대로 된 인간들이었으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전망도 나왔다.
- 키케 세티엔 - 세티엔과 발베르데 모두 전술능력은 떨어졌으나 발베르데는 적어도 통솔력은 좋았고 여러 1군 중위권팀들의 감독을 맡아 온 어느정도는 수준이 있던 감독이었으며, 경질된 시즌에도 1위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세티엔은 1군 팀이라곤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단 한 팀의 감독을 맡아온 수준 미달의 감독인데다가 아르투르 멜루를 대놓고 저격하는 등 선수단과의 불화가 심화되었고, 리그는 후반에 레알 마드리드에 역전당해서 리그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리스본 쇼크의 원흉이 되어 얼마 못 가 경질되었다. 이 때문에 이전에 자주 까이던 에르네스토 발베르데가 세티엔보다 나았다는 재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 - 바르셀로나의 흑역사였다. 바르셀로나 역대 최악의 회장이자 우드워드보다도 못한, 그야말로 최악 중 최악인 회장이었다.
3.3.3. 세리에 A
3.3.3.1. AC 페루자 칼치오
- 루치아노 가우치 前 구단주
3.3.3.2. ACF 피오렌티나
- 플라비오 폰텔로 前 구단주
- 비토리오 체키 고리 前 구단주
3.3.3.3. AS 로마
- 엔리케 구아이타, 알레한드로 스코펠리, 안드레스 스타냐로: AS 로마는 이전 시즌에 4위를 차지했는데 구아이타의 득점왕 기록에 자극을 받았다. 그 증거로 월드컵 우승 당시 풀백 라인인 루이지 알레만디와 에랄도 몬첼리오를 모두 사올 정도로 의지를 불태웠는데... 구아이타의 주동으로 스코펠리, 스타냐로가 1935-36 시즌 개막 전날이던 9월 19일에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원인은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으로 인한 징병의 두려움. 전쟁은 실제로 일어났지만 축구 선수들에게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로마 팬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찍혀버렸다. 덕분에 공격적인 투자로 1935-36 시즌 우승을 노리던 AS 로마는 볼로냐에게 승점 단 1점차로 밀리며 첫 스쿠데토도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그 여파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탈리아에서는 그들의 입국을 받아주지 않았다.
3.3.3.4. 토리노 FC
- 수페르가의 비극: 1949년 5월, 토리노 인근 수페르가 언덕에 비행기가 추락해 비행기에 탔던 토리노 FC의 선수와 스탭이 전원 사망했다. 당시 토리노 FC는 세리에 A의 대표적인 클럽이었으며 지역 라이벌 유벤투스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강팀이었다. 하지만 이후 선수와 스탭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구단 운영진만 남아서 팀을 꾸려나가야 했고 결국 유벤투스에게 이탈리아 대표 클럽이라는 명칭을 넘겨주고 쇠퇴해 갔다. 그나마 소수라도 살아남은 뮌헨 참사보다 더한 흑역사.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 소수의 생존자들이나마 있어서 팀이 재건될 수 있었으니...안습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들도 많이 죽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대표팀에게도 흑역사.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알레만디 스캔들: 1926-27시즌에 있었던 토리노의 스쿠데토 박탈.
3.3.3.5. 유벤투스 FC
- 칼치오폴리: 위에도 있지만 주범인 루치아노 모지가 유벤투스 FC의 전 단장이므로 다시 서술한다. 세리에 A 그 자체를 조작한 사건으로, 이로 인하여 유벤투스는 스쿠데토 2개가 박탈되었고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세리에 A로 다시 승격되고, 최근 몇년간 연속 우승을 계속 차지하니깐 이 당시 박탈된 스쿠데토 2개를 슬그머니 자신들의 우승 횟수에 포함시키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 페짜델 : 치로 페라라, 알베르토 자케로니, 루이지 델 네리의 이름을 본따 만들어진 명칭이다. 2009/10 시즌과 2010/11 시즌 돈을 많이 쓰고도 리그 순위 7위에 그치며 망신을 당했다.
-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항목 참고.
3.3.4. 기타
- 우한 광구: 중국의 프로 축구 클럽. 2008년 중국 슈퍼 리그에서 편파적인 징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중도 기권을 선언. 모든 경기가 0 : 3 몰수패로 처리된 뒤 중국 축협으로부터 구단 등록 취소와 참가 자격 박탈 처분을 받으면서 해체되었다. 해체 후 우한 줘얼로 재창단.
- 2002년 마다가스카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149-0 사건: AS 아데마와 디펜딩 챔피언인 SOE의 경기였는데, 당시 원정 팀이었던 SOE측 감독이 심판 판정에 크게 분노하자 선수들이 고의로 자책골을 끊임없이 넣어 AS 아데마가 가만히 앉아서 149-0으로 승리한 사건이었다. 이에 AS 아데마 선수단과 팬들은 어이없어서 웃기만 하고 관중들은 너도나도 입장료 환불을 요구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결국 경기는 취소되고 아데마의 3-0 몰수승으로 끝났으며 SOE 감독 및 선수들은 출전 금지 및 구단은 벌금형 및 무관중 경기 징계로 강력하게 처벌당했다. 149 : 0이라는 황당한 스코어는 결국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점수가 되었다.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인 트리비아의 샘에서도 방영되었다.
3.3.5. 대륙간 클럽대항전
- UEFA 챔피언스리그 04-05 시즌의 오심:
- UEFA 챔피언스리그 08-09 시즌의 각종 오심:
- 리버풀 FC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조별리그 페널티킥 논란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6강 1차전의 편파판정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FC 포르투 16강전 오심
- 첼시 FC - FC 바르셀로나 4강 2차전. 전체 하이라이트, 드록신의 폭발, 발락의 분노의 질주 참고로 이때 주심을 맡은 사람은 노르웨이 출신 톰 헤닝 외브레뵈(Tom Henning Øvrebø)' 심판이었고, 드록신의 분노를 자제시켰던 첼시 FC의 감독은 거스 히딩크였다.
- 2013 유럽축구 승부조작 스캔들: 현재진행형.[60]
3.4. 개인
- (발렌시아 감독으로서의) 로날드 쿠만: 07-08시즌 키케감독의 매너리즘등으로 부진을 겪던 발렌시아 C.F.를 그야말로 똥통으로 빠트린 감독. 그나마 에베르 바네가의 발견, 마지막 우승컵인 국왕컵을 선사했으나 이 업적을 전부 뒤엎을 전설의 호아킨 산체스 원톱과 아리즈멘디 윙백기용 등 끝없는 기행이 이를 전부 무마시켜버렸다.
- (발렌시아 감독으로서의) 게리 네빌: 15-16시즌 성적부진으로 중도경질된 누누 이스피리투 산투 감독의 대타로 부임했으나, 부임 과정부터 구단주 피터 림과의 인맥 논란 등으로 인해 순탄치 않았고, 경기력은 제2의 쿠만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수준이었다. 그나마 8~9위 정도에서 버티던 팀을 리그에서 17%라는 극악의 승률을 시전하며 10위권 밑으로 추락시켜버렸으니 설명이 필요없다. 결국 부임 4개월 만에 경질. 박쥐군단 레전드 중 한 명인 다비드 알벨다는 네빌에 대해 쿠만보다 더하다라는 평을 했을 정도.
- 야나기사와 아쓰시의 실축들
- 신칸센 대탈선슛
- 후지산 대폭발슛
- 아담 존슨: 아동 성범죄로 징역형을 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 알렉산드르 코코린, 파벨 마마예프: 고려인 정치인을 폭행하는 심각한 인종차별을 저질러 선수 자격을 영구히 박탈당했다...가 코코린은 복귀했다.[61]
- 알렉상드르 빌라플란: 온갗 흉악 범죄를 저지른 축구계 역사상 최악의 인간 쓰레기
- 라이언 긱스의 월드컵 도전사.[62]
- 이동국의 월드컵 도전사.[63]
- 칼리드 아스크리: 실력 자체는 리그 탑급이었지만, 종종 나온 황당한 실수의 임팩트가 너무나도 거대해서...
- 박지성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이적
- 기성용의 페이스북 최강희 감독 조롱 사건
- 먹튀
- 저메인 데포와 루이스 수아레스: 마이클 타이슨에 이은 핵이빨의 전설을 써나가고 있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의 하비에르 아기레: 에스파뇰 감독 시절 때의 승부조작 의혹에 연루되어 이미지가 날아가버렸고 덩달아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8강에서 탈락하는 등의 수모를 겪다가 스페인 측에서 고소장이 접수 된 이후 경질되었다.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의 잔피에로 벤투라: 유로 2016을 성공적으로 마친후 첼시 FC 감독이된 안토니오 콘테의 후임으로 감독 선임 과정에서부터 이탈리아 축구협회장인 카를로 타베키오의 인맥으로 선임된 사실로 말이 말았는데, 그 결과 밀라노 참사로 인해 이탈리아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하면서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이후 60년만에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의 홍명보호: 2012 런던 올림픽/축구 에서 동메달을 딴것을 계기로 국대감독이 되었으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에서는 소속팀에서 부진했던 박주영, 정성룡, 윤석영 등 대부분의 2012 런던 올림픽 동매달 맴버들을 발탁하면서 으리 축구 라는 논란을 일으키더니 월드컵 개막 직전 분당에 땅을 보러 갔다는게 드러났고 결국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 러시아와 무승부, 2차전 알제리에게 4대2 대패를 당하였고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마지막 경기에서는 대부분의 주전을 뺀 벨기에에게도 결국 패하여 조 최하위로 탈락하는 굴욕을 당한다.
- 장현수의 병역 대체 봉사활동 서류 허위 제출 사건: 축구판 스티브 유 사건. 이 사건으로 장현수는 국가대표자격을 영구박탈 당했다.
- 헤유스 판데르묄런: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였지만 나치 부역 행보로 모든 것이 덧없게 되었다.
3.5. 기타
- 고쿠시칸대학 축구부 성추문 사건: 일본 풋볼 리그에 참가하고 있던 2004년 12월에 부원 15명이 15세 소녀를 상대로 성추행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고쿠시칸대학 축구부의 JFL 마지막 경기는 0:3 몰수패로 처리되었고 그 시즌을 끝으로 JFL에서도 퇴출되었다. 또한 성추문에 연루된 부원 15명은 모두 출학 처분. 당시 고쿠시칸대학 총장이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사죄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축구부가 잠시 해체됐다가 불행 중 다행으로 이듬해 4월에 활동을 재개하긴 했다.
- 브라질의 선수-심판 살해사건: 2013년 6월 30일, 브라질의 아마추어 축구 경기 중에 심판인 오타비오 다 시우바(Otavio da Silva)가 선수인 주지뉴(Josenir Abreu)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는데, 이에 주지뉴가 거칠게 항의하자 오타비오가 날카로운 흉기로 주지뉴를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 결국 주지뉴는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에 사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이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에 분노한 피해자의 친구들과 일부 관중들이 그 자리에서 오타비오를 에워싸 돌로 내리친 뒤 참수하고 다리를 잘라 버린 것이다. 이들은 오타비오의 잘린 머리를 장대에 꽂아 그라운드 한 가운데에 세워놓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후에 도주하다가 체포되었다. 남미의 훌리건들이 저지른 막장 사고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힌다.
[1] 사실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도 않은 절대적으로 빈곤한 여건에서도 지역예선에서 일본에 압승을 거두었고 본선 상대팀들이 당시 세계최강 헝가리와 강호 터키였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선전이었다. 해외 언론에서도 20-0 수준의 결과를 예측했지만 고작 9-0으로 끝난 것에 경악했다. 오히려 키퍼에게 대단하다며 사인을 받아간 관중도 있었다.[2] 당시 세계최강으로 불렸던 헝가리 대표팀과 지역예선에서 전통의 강호 스페인을 물먹이고 본선에 올라왔던 터키 대표팀을 상대로 제대로 준비조차못하고 전쟁으로 인해 대회 개막일에 겨우 도착했던 대표팀이었기에 (지금은 생각할수도 없는 배와 경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 거쳐서 겨우겨우가고 여정중에 일부 경비는 인심좋은 외국분들이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들임을 알고서는 기부를 해줘서 그나마 당일에라도 도착이 가능했다.) 비록 큰 점수차로 패하긴 했어도 지금같은 기준으로 졸전이라고 성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조금만 더 잘 준비가 되었다면 터키전에서는 그래도 그나마 해볼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들도 있었다. 여담으로 불과 7년후인 1961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던 친선전에서는 접전 끝에 0대1로 석패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3] 그래도 마지막 우루과이전에서는 선전했다고 볼 수 있으며, 막판에 나온 다니엘 폰세카의 결승골도 사실은 오프사이드였다. 그래서 규정대로라면 남은 시간동안에 추가로 골이 나오지 않는 이상 0-0으로 끝나는게 정상인데, 주심과 부심이 그 골을 그대로 득점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억울하게 0-1로 진 것이다.[4] 지금으로 치면 내셔널리그 선수 위주로 짜서 보낸 것. 참고로 당시에는 B팀이라고 불렀다.[5] 여담으로 당시 이 사태에 AFC에서 화들짝 놀라 모든 대회(아시안컵 예선, 본선, 월드컵 예선 등)에 무조건 A대표팀을 구성해 참여하도록 강제규정했다고 한다.[6] 이는 선수들이 일부러 8강 상대가 이란인점을 감안해서 자신들을 들들볶던 박종환감독을 내쫓으려고 고의로 태업을 했다는 소리가 있다. 전반전에 2:1로 앞서가다 후반에 갑자기 5골을 먹히는게 말이 안되는 일이라 거의 태업 의혹이 있지만, 여전히 말로만 나타날 뿐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태업이다, 아니다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7] 그런데 16강전에서 브라질이 벨기에를 0:10으로 바르면서 묻히긴 했다.[8] 2024-11-03 00:26:34 현재까지도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월드컵이 없어질 때까지, 아니, 지구에 종말이 올 때까지 깨지기 힘들 월드컵 본선 최단시간 실점 신기록이다. 그리고 당시 선수로서 발로 흑역사를 만든 홍명보는 12년 후 감독으로서 총제적인 난국으로 팀을 운영하다 결국 월드컵에서 큰 참사를 겪고 만다.[9] 그것도 김영권의 어이없는 볼 컨트롤 실수를 레자 구차네자드가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킨 것이다. 이 실수로 김영권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의 장현수 이상으로 대한민국 축구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씹히고 뜯기고 까였다가 그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선취골을 성공시켜 평생까임권에서 벗어났다.[10] 여기에 출정식 초대가수로 하필이면 당시에 일베 관련 문제로 말이 많았던 전효성이 포함된 시크릿이 아주 상큼발랄한 곡을 부르는 바람에 안그래도 험악한 분위기에 제대로 얼음을 들이부었다. 당시 분위기를 보면 이란한테 그렇게 셧아웃 당하고 우즈벡은 마지막까지 계속 득점하면서 겨우겨우 골득실 1 차이로 진출하여 경기 후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으로 축제분위기 였어야 할 경기장의 분위기는 축제는 커녕 아주 초상집이 따로 없었는데, 경기 후 출정식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온 대표팀 선수, 코칭 스태프는 물론 축협 회장까지 누구하나 기쁨의 제스쳐는 커녕 웃는사람 한명 없었으며 특히나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한명한명 호명될때마다 다시 나오는데, 여기서 푸른심장이니 철벽 수문장이니 새로운 바람이니 하는 게임에서도 쪽팔린다고 안 쓰는 거창하고 오글거리는 미사여구를 붙여서 선수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탓에 공개처형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관중들도 기쁨의 함성은 커녕 자신들이 현장에서 이란한테 굴욕적 패배를 한 결과에 대한 분노와 이런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도 월드컵에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건지에 대한 걱정등으로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초대가수랍시고 축구랑 별 관련도 없는 시크릿이 나와서 유후 같은 곡을 불러대는데 흥이 날 리가...[11] 참고로 일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과거의 참패와 같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적어도 과거의 선배들은 이 당시의 선수들과 비교하는 것 초자 큰 실례일 정도의 투지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싸웠다. 비록 대량 실점으로 패배했지만 일제감정기와 전쟁의 상처가 전혀 아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였던 헝가리를 상대로 멍투성이가 되어도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웠던 1954년 월드컵,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약체였지만 그래도 강팀이 포함된 조에서 그나마의 최선의 모습을 보였던 1990년 월드컵, 강팀에게 처참하게 짓밟히면서도 이마가 깨져도 붕대를 감고 몸을 날리면서까지 상대의 슈팅을 막아낼 정도의 투지와 강한 의지를 보여준 1998년 월드컵과 비교하는 건 선배들의 대한 모욕이자 큰 실례이다.[12] 다만 이 패배 이후 연전연승하면서 결국 금메달을 거머쥐어 쓰지만 좋았던 약으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13]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샤샤는 K리그 MVP가 유력했음에도 그 자격을 사실상 박탈당했고, 결국 K리그 MVP 준우승팀인 부산의 안정환에게 돌아갔다.[14] 장현규는 자살이 아닌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로 사망하였다. 기사 링크 [15] 하필 관중석에서 내는 소리가 선수들에게 잘 들릴 수밖에 없는 2군 경기였다(...).[16] 아르헨티나는 같은 남반구 국가인 브라질과 달리 열대 기후가 아니기에 개최 기간에는 당연히 겨울 날씨를 느낄 수 있다.[17] 참고로 이 사건 이후 "자살골"이라는 용어가 "자책골"로 바뀌었다. 물론, 이는 대한민국 한정이며, 영어로는 현재도 "Own Goal"이다.[18] 대부분의 월드컵 경기는 현지시각 기준으로 오후 6시 이후에 열린다.[19] 같은 아시아팀인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승점자판기였지만 이쪽은 약체인데다가 우승국인 브라질과 다크호스 터키를 만나서 그나마 변명거리는 있다.[20] 근데 우즈베키스탄은 오심을 항의하면 1대0인거 3대0 몰수승으로 올라갈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싹 다 비겨서 밀렸으니 할말도 없다. 그런데 바레인도 플레이오프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만나 패해서 월드컵에 못갔다.[21] 바로 다음 대회에서 졸전만 펼치다가 처참하게 탈락한 이탈리아도 오세아니아 팀인 뉴질랜드를 상대로 패배를 기록하지는 않았다.[22] 이것은 마테라치가 지단의 여동생을 들먹이는 패드립발언 때문이다.[23] 그 전까지는 196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이 1966년 월드컵에서 1승 2패에 4득 6실로 탈락한 것이 디펜딩 챔피언이 거둔 최악의 기록이었다.[24] 1966년의 브라질 - 4득점 6실점
2002년의 프랑스 - 무득점 3실점
2010년의 이탈리아 - 4득점 5실점
2014년의 스페인 - 4득점 7실점
2018년의 독일 - 2득점 4실점[25] 참고로 이것이 미국의 경기 중 유일한 슈팅이었다.[26] 이전 대회의 결과는 1:0 연장승으로 우승.[27] 이전 대회의 결과는 2:1 승.[28] 2002년 핀투,베투, 2006년 코스티냐, 데쿠, 2010년 히카르두 코스타, 2014년 페페.[29] 당시 대표팀 감독은 루이 판 할이었는데, 12년 후 대표팀에 돌아와서는 네덜란드를 전체 3위로 올려 놓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30] 다만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에게 밀려 조 3위로 예선 광탈했다.[31] 現 인도네시아. 1949년에 독립했다.[32] 2차 라운드(현 16강~8강 정도)에서 나온 결과, 승부조작 의혹이 있다.[33] 심지어 이 기록은 조별리그도 아니고 무려 월드컵 4강전(준결승)에서 나온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독일이 터뜨린 7골 중 4골이 불과 6분 사이에 한꺼번에 터졌다는 것이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가히 미네이랑의 비극이라고 불릴 만했다![34] 그러나 스페인은 이 대승을 거두고도 조별리그에서 떨어졌다. 게다가 그 경기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고 그 경기를 치르기 직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의 탈락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35]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지리아가 파라과이와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두었어도 16강 진출이 가능했다.[36] 이 대패 때문에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도중 경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37] 다만 스웨덴도 멕시코만큼은 아닐지언정 외신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한 몸으로 받았다.[38] 오죽했으면 분노한 자국 팬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고국에 들어가는 꺼려했다고.[39] 후반 40분경 유벤투스 팬들은 자신들의 응원걸개를 걷고 "K리그에서 다시 만나요!" 라는 문구가 새겨진 걸개를 걸었다.[40] 아스날은 특히 챔스권 팀 중에서 주급이 짠 것으로 유명하다.[41] 에버튼의 핵심 미드필더 미켈 아르테타, 브레멘의 간판 수비수 페어 메르테자커, 이스라엘의 미드필더 요시 베나윤, 브라질의 풀백 안드레 산토스 등이 2:8 패배 이후 곧바로 영입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영입된 선수 중에는 대한민국 출신의 스트라이커 박주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주영은 아스날에서 그야말로 왜 아스날에 있는지 의심스러운 활약을 펼치다 셀타 비고, 왓포드로 임대되었으며, 임대된 곳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 했다. 그대로 계약 만료로 아스날을 떠났다. 이것만이라면 그저 그런 먹튀의 사례로 남았겠지만... 문제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고 박주영의 군역이 면제되며 시작되었다. 언론을 통해 박주영의 이적료에 군 문제 해결시 추가금을 지급하는 옵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 한국 언론에 이 기사가 소개되자 인터넷은 IQ 150의 천재와 경제학 석사의 수싸움에서 경제학 석사가 졌다며 드립판이 벌어졌다. 실제 박주영의 이적료는 옵션을 모두 포함해도 썩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아스날 내에선 고액에 해당하는 주급[40] 을 수령하는데다 활약은 전무했다. 즉 통수+주급도둑+실력부족의 삼위일체. 더욱 문제였던 것은, 같이 영입된 안드레 산토스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나마 산토스는 팀을 일찍 떠나기라도 했다. 다만 이 시즌의 영입은 박주영과 산토스를 제외하면 상당히 좋은 영입으로 평가받는다. 아르테타, 메르테사커는 장기간 좋은 활약을 하다 현재는 아스날의 감독과 유소년팀 총괄자로 근무중이고, 베나윤 역시 쏠쏠한 활약을 했다.[42] 그나마 이 시즌은 박주영과 산토스, 제르비뉴 정도만 망했지, 아르테타, 메르테사커, 베나윤, 체임벌린 등은 나른대로 활약했다. [43] 게다가 22년만에 최악의 라이벌 토트넘보다 최종 리그 순위가 낮아졌다.[44] 특히 아스널이 떨어진 바로 다음 날 FC 바르셀로나가 1차전에서 원정골도 못 넣고 0대4로 패한 걸 뒤집는 미친 경기를 보여줘서 더더욱 안습하게 되었다.[45] 당초에 벵거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떠나려고 했으나 벵거 사임 이후 대비가 전혀 안된 보드진이 2년 재계약을 요청했다. [46] 공교롭게도 일정상 카라바오컵 결승 며칠 후 또 맨시티와 리그에서 붙었는데, 그 경기도 0대3으로 졌다(...).[47] 심지어 이 당시 첼시는 이미 챔스 진출이 확정되어 있었다. 동기부여는 당연히 이겨야만 챔스에 나가는 아스날이 더 높았을텐데 결과는...[48] 한국에서는 '전범풀'이라고 멸시당하지만, 사실 리버풀이 비난받기는 애매한 경우이다. 해당 문서의 3번 문단 참조.[49] 공교롭게도 같은 날, 라이벌 맨유 역시 토트넘에게 1-6으로 대패하였다.[50] 1923년 이후 처음으로 홈에서 4연패를 기록했다.[51] 노리치와의 FA컵 16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고 라이프치히와의 챔스 16강에서는 1, 2차전 모두 패배, 합산 4:0으로 탈락했다.[52] 팀내외의 내홍이 심하여 최종순위 22위를 찍으며 3부리그로 강등당했다.[53] 전 구단주. 1년에 6명씩 감독 목을 심심하면 잘라대서 팀을 흔들리게 했고, 자신의 전 구단이던 카타니아 출신 잉여들을 영입했고, 조세포탈 등으로 징계를 먹고, 그 외에도 다양한 막장행각 때문에 FA가 구단주와 관련한 새로운 규정들을 추가할 정도로 심각한 인물이었다.[54] 맨시티는 2번의 강등을 겪은 이후에 우승했고, 레스터 역시 3번의 강등을 겪은 이후 우승했다.[55] AC 밀란이 상대였는데, 그 당시 감독이던 요한 크루이프가 입을 잘못 털다가 4:0으로 패하는 추태가 벌어졌다. 특히 크루이프가 조롱했던 마르셀 드사이에게 골을 먹힌 것은 덤.[56] 브라질의 SC 인테르나시오나우에 0대1로 패배.[57] 이전의 3점차 이상 압도적인 승리보다는 '오늘도 무사히' 식의 승리가 더 많았다.[58] 위의 칼치오폴리와는 달리 단장이 아닌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행한 승부조작 사건이다.[59] 이 판정으로 인해 당시 주심이었던 루보스 미첼은 경기 후 첼시 팬들의 잇단 협박성 항의를 받고 축구계에서 은퇴했다.[60] 그 중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하비에르 아기레가 연루되어있다.[61] 다만 폭행한 정치인이 푸틴의 남자라고 알려진 만큼 측근 오브 측근이라 국가대표 커리어는 끝장난 상태.[62] 그가 듣보잡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애초부터 그는 웨일스 대표팀 소속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항목 참조.[63]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활약하여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으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거스 히딩크의 마음에 들지 않고 팀의 색깔과 다르게 행동하여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는데 하필이면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며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월드컵 개최 직전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해 또 제외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러서야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으나 주전이 아닌 후보였고 실제 뛴 경기시간이 몇분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짧은 몇 분 조차도 본인이 이른바 물회오리슛, 카페베네슛으로 비아냥당할 역대급 실책으로 말아먹었다.
2002년의 프랑스 - 무득점 3실점
2010년의 이탈리아 - 4득점 5실점
2014년의 스페인 - 4득점 7실점
2018년의 독일 - 2득점 4실점[25] 참고로 이것이 미국의 경기 중 유일한 슈팅이었다.[26] 이전 대회의 결과는 1:0 연장승으로 우승.[27] 이전 대회의 결과는 2:1 승.[28] 2002년 핀투,베투, 2006년 코스티냐, 데쿠, 2010년 히카르두 코스타, 2014년 페페.[29] 당시 대표팀 감독은 루이 판 할이었는데, 12년 후 대표팀에 돌아와서는 네덜란드를 전체 3위로 올려 놓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30] 다만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에게 밀려 조 3위로 예선 광탈했다.[31] 現 인도네시아. 1949년에 독립했다.[32] 2차 라운드(현 16강~8강 정도)에서 나온 결과, 승부조작 의혹이 있다.[33] 심지어 이 기록은 조별리그도 아니고 무려 월드컵 4강전(준결승)에서 나온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독일이 터뜨린 7골 중 4골이 불과 6분 사이에 한꺼번에 터졌다는 것이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가히 미네이랑의 비극이라고 불릴 만했다![34] 그러나 스페인은 이 대승을 거두고도 조별리그에서 떨어졌다. 게다가 그 경기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고 그 경기를 치르기 직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의 탈락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35]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지리아가 파라과이와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두었어도 16강 진출이 가능했다.[36] 이 대패 때문에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도중 경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37] 다만 스웨덴도 멕시코만큼은 아닐지언정 외신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한 몸으로 받았다.[38] 오죽했으면 분노한 자국 팬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고국에 들어가는 꺼려했다고.[39] 후반 40분경 유벤투스 팬들은 자신들의 응원걸개를 걷고 "K리그에서 다시 만나요!" 라는 문구가 새겨진 걸개를 걸었다.[40] 아스날은 특히 챔스권 팀 중에서 주급이 짠 것으로 유명하다.[41] 에버튼의 핵심 미드필더 미켈 아르테타, 브레멘의 간판 수비수 페어 메르테자커, 이스라엘의 미드필더 요시 베나윤, 브라질의 풀백 안드레 산토스 등이 2:8 패배 이후 곧바로 영입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영입된 선수 중에는 대한민국 출신의 스트라이커 박주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주영은 아스날에서 그야말로 왜 아스날에 있는지 의심스러운 활약을 펼치다 셀타 비고, 왓포드로 임대되었으며, 임대된 곳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 했다. 그대로 계약 만료로 아스날을 떠났다. 이것만이라면 그저 그런 먹튀의 사례로 남았겠지만... 문제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고 박주영의 군역이 면제되며 시작되었다. 언론을 통해 박주영의 이적료에 군 문제 해결시 추가금을 지급하는 옵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 한국 언론에 이 기사가 소개되자 인터넷은 IQ 150의 천재와 경제학 석사의 수싸움에서 경제학 석사가 졌다며 드립판이 벌어졌다. 실제 박주영의 이적료는 옵션을 모두 포함해도 썩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아스날 내에선 고액에 해당하는 주급[40] 을 수령하는데다 활약은 전무했다. 즉 통수+주급도둑+실력부족의 삼위일체. 더욱 문제였던 것은, 같이 영입된 안드레 산토스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나마 산토스는 팀을 일찍 떠나기라도 했다. 다만 이 시즌의 영입은 박주영과 산토스를 제외하면 상당히 좋은 영입으로 평가받는다. 아르테타, 메르테사커는 장기간 좋은 활약을 하다 현재는 아스날의 감독과 유소년팀 총괄자로 근무중이고, 베나윤 역시 쏠쏠한 활약을 했다.[42] 그나마 이 시즌은 박주영과 산토스, 제르비뉴 정도만 망했지, 아르테타, 메르테사커, 베나윤, 체임벌린 등은 나른대로 활약했다. [43] 게다가 22년만에 최악의 라이벌 토트넘보다 최종 리그 순위가 낮아졌다.[44] 특히 아스널이 떨어진 바로 다음 날 FC 바르셀로나가 1차전에서 원정골도 못 넣고 0대4로 패한 걸 뒤집는 미친 경기를 보여줘서 더더욱 안습하게 되었다.[45] 당초에 벵거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떠나려고 했으나 벵거 사임 이후 대비가 전혀 안된 보드진이 2년 재계약을 요청했다. [46] 공교롭게도 일정상 카라바오컵 결승 며칠 후 또 맨시티와 리그에서 붙었는데, 그 경기도 0대3으로 졌다(...).[47] 심지어 이 당시 첼시는 이미 챔스 진출이 확정되어 있었다. 동기부여는 당연히 이겨야만 챔스에 나가는 아스날이 더 높았을텐데 결과는...[48] 한국에서는 '전범풀'이라고 멸시당하지만, 사실 리버풀이 비난받기는 애매한 경우이다. 해당 문서의 3번 문단 참조.[49] 공교롭게도 같은 날, 라이벌 맨유 역시 토트넘에게 1-6으로 대패하였다.[50] 1923년 이후 처음으로 홈에서 4연패를 기록했다.[51] 노리치와의 FA컵 16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고 라이프치히와의 챔스 16강에서는 1, 2차전 모두 패배, 합산 4:0으로 탈락했다.[52] 팀내외의 내홍이 심하여 최종순위 22위를 찍으며 3부리그로 강등당했다.[53] 전 구단주. 1년에 6명씩 감독 목을 심심하면 잘라대서 팀을 흔들리게 했고, 자신의 전 구단이던 카타니아 출신 잉여들을 영입했고, 조세포탈 등으로 징계를 먹고, 그 외에도 다양한 막장행각 때문에 FA가 구단주와 관련한 새로운 규정들을 추가할 정도로 심각한 인물이었다.[54] 맨시티는 2번의 강등을 겪은 이후에 우승했고, 레스터 역시 3번의 강등을 겪은 이후 우승했다.[55] AC 밀란이 상대였는데, 그 당시 감독이던 요한 크루이프가 입을 잘못 털다가 4:0으로 패하는 추태가 벌어졌다. 특히 크루이프가 조롱했던 마르셀 드사이에게 골을 먹힌 것은 덤.[56] 브라질의 SC 인테르나시오나우에 0대1로 패배.[57] 이전의 3점차 이상 압도적인 승리보다는 '오늘도 무사히' 식의 승리가 더 많았다.[58] 위의 칼치오폴리와는 달리 단장이 아닌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행한 승부조작 사건이다.[59] 이 판정으로 인해 당시 주심이었던 루보스 미첼은 경기 후 첼시 팬들의 잇단 협박성 항의를 받고 축구계에서 은퇴했다.[60] 그 중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하비에르 아기레가 연루되어있다.[61] 다만 폭행한 정치인이 푸틴의 남자라고 알려진 만큼 측근 오브 측근이라 국가대표 커리어는 끝장난 상태.[62] 그가 듣보잡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애초부터 그는 웨일스 대표팀 소속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항목 참조.[63]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활약하여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으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거스 히딩크의 마음에 들지 않고 팀의 색깔과 다르게 행동하여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는데 하필이면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며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월드컵 개최 직전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해 또 제외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러서야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으나 주전이 아닌 후보였고 실제 뛴 경기시간이 몇분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짧은 몇 분 조차도 본인이 이른바 물회오리슛, 카페베네슛으로 비아냥당할 역대급 실책으로 말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