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호주 관계
1. 개요
CANZUK이라고 불리는 앵글로 색슨 영연방 왕국의 일원들이자, 다섯 개의 눈의 일원인 캐나다와 호주는 전통적이고 가장 강력한 상호 우방관계이자 혈연관계로 묶인 종족 동맹 관계이다.
하지만 언제나 두 국가의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니어서, 20세기 초중반의 관계는 "어색한 동맹(Awkward allies)" 관계라고 부르기도 하며, 현재는 상당히 많이 희석되어 유머에 사용될 때 빼고는 사실상 별 의미 없는 서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이 시기 생겨났다.
2. 역사적 관계
개괄적인 내용들은 영문 위키의 Australia-Canada Realations 항목에서 따왔다.
2.1. 식민지와 자치령 시대
마지못해 맺은 관계(Reluctant relations):1886–1939
영국의 식민지배 치하에서 자치령이 된 호주와 캐나다의 첫 관계는 캐나다에서 상캐나다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킨 캐나다인 죄수 154명을 호주로 유배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태즈메이니아 섬으로 보내졌다.[1]
2.2. 독립 이후
불편한 동맹 관계(Awkward allies): 1939–1968
제 2차 세계대전 때 호주 본토가 공습당하고 동남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호주군이 일본군과 혈전을 벌이는 동안 캐나다는 태평양 전선에 무관심하여 호주에 대한 지원 제공에 미온적이었다는 것이 호주인들과 호주 정부에게 배신감을 주었고, 전쟁이 끝날 때 쯤에야 캐나다에서 호주에 대한 지원을 승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국 관계는 좋지 못했다.[2]
2.3. 21세기
호주인들의 캐나다에 대한 감정은 거의 둘도 없는 친형제를 대하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2014년 BBC에서 발표한 심층 조사에 따르면 호주인들의 캐나다에 대한 긍정 응답률은 83%, 부정 응답률은 6%로, 캐나다인들이 자국인 캐나다를 평가한 것보다 호주인들이 캐나다를 평가한 점수가 더 좋았다.
캐나다인들의 호주에 대한 직접적 인식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는 집계가 되지 않고, 여러 가지 간접적 방법을 통해 파악 할 수 있는데, 호주인들이 캐나다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처럼, 캐나다에서도 호주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캐나다인들은 호주인들이 무비자로 캐나다에 놀러오거나 일하러 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한다는 통계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일단 캐나다와 호주는 같은 영연방 왕국에 속하고 캐나다의 국왕과 호주의 국왕은 동일한 인물이다. 게다가 문화도 비슷한 편이고, 두 국가 모두 미국, 영국의 영향력을 많이 받으며 캐나다인이나 호주인이나 미국, 영국으로 취업하는 사례가 많은 편이다. 게다가 CANZUK, 5개의 눈 소속 국가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엮이는 편이 많다.
그러나 이들이 엮이는 경우는 간접적인 경우가 많고 간접적인 관계에서는 미국과 영국과 엮이는 편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태평양을 두고 거리가 먼 편이라 교류가 제한적인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미국-캐나다 관계, 호주-뉴질랜드 관계와 같이 공동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밀접한 교류를 한 사례는 거의 없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한 이후 영연방의 결속력이 약해짐에 따라 캐나다와 호주의 관계 사이에서도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현재 우호적인 관계라고 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멀어진 측면도 존재한다. 국제사회에서 캐나다가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호주는 미국, 영국, 뉴질랜드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 캐나다가 미국과 가까워지면서 북아메리카 내에서 중견국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 호주는 오세아니아 내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갖추는 데 중점을 맞추고 있는 편이다.
민간 교류에 있어서도 호주 정부가 캐나다인에게 제공하는 혜택이나 캐나다 정부가 호주인인들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어휘 능력 증명 시험 면제와 자격증 시험 일부 면제 외에는 거의 없는 편이고 호주인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거나 취업을 할 때나 캐나다인이 호주로 이민을 가거나 취업을 할 때 모두 외국인으로써 취급을 받으며 자국민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호주-뉴질랜드 관계와 달리 캐나다-호주 관계는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가 아닌 타국 간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해 태평양을 접하는 이들 간의 관계는 가까워진 측면이 존재한다. 중국 본토의 자본유입으로 인해 캐나다의 토론토, 밴쿠버 부동산 시장은 폭등을 겪은 적이 있으며 호주의 시드니, 멜버른 또한 중국인들로 인한 부동산 버블로 신음하는 동병상련을 똑같이 겪었다. 캐나다의 경우 화웨이 부회장 체포 건으로 미국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역보복을 당했고, 호주는 미국의 남중국해 통항의 자유 정책 지지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해 중국에 원인 규명 및 조사를 요구한 댓가로 통상보복을 당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동맹국인 호주와 캐나다가 새로 급부상한 중국 간의 패권경쟁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에는 이들 간 협력도 증가하고 있는 편이다.
캐나다와 호주 양국 모두 국토가 태평양과 접하는 만큼 역내에서 팽창하기 시작한 신흥 패권국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해양 안보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고, 이에 발맞춰 캐나다 해군과 호주 해군 양국 해군이 영국 BAE사가 설계한 영국 해군 신형 호위함인 26형 호위함 도입사업에 참가하는 등 통합 해군력 강화에 나서며 군사적 유대감도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 해군은 최대 15척을 도입 할 예정이며 호주 해군은 9척을 도입 할 예정이다. 냉전시대의 종료 이후 서구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위협하던 소련이 몰락함에 따라 잠잠해진 대서양의 안보 환경을 생각해보면, 이번 캐나다와 호주의 26형 호위함의 도입이 잠재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적성국이 어디인지는 매우 명확해진 상황이다.
즉, 최근 중국의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강경한 탄압과 인권 유린과 관련하여 파이브 아이즈 5개국들이 중국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는데, 이렇듯 캐나다와 호주는 다른 구심점이 될 만한 동맹국들인 미국과 영국이 행동할 때는 방향을 같이함으로써 '''가깝지만 멀고, 멀지만 가까운''' 동맹 관계에 있다.
2.3.1. 2020년
2020년에 접어들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주도하던 경제협정인 RCEP가 타결됨에 따라 캐나다와 호주가 상호 소속한 경제블록도 명확하게 엇갈리기 시작하였는데, 90년대 NAFTA 체결 이후로 미국과 멕시코 등 북미 블록에 고착된 캐나다와 21세기 중국, 일본 주도의 아시아 시장 접근권에 집중하는 호주의 경제적 노선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이는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추진했던 미국 우방국들과 태평양 지역의 역내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 경제 협정이었던 TPP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좌절됨에 따라, 호주는 RCEP라도 택해서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는 미국 고립주의의 후폭풍에 놓였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구상대로라면 원래는 대중국 포위망 구축 차원에서 캐나다와 호주는 미국 주도의 단일시장인 TPP에 같이 묶일 예정이었다.
민주당(미국)의 조 바이든 후보가 미국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제46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당선인이 오바마의 유지를 이어받아 TPP를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고, 미국을 중심으로 TPP가 부활할 경우 캐나다와 호주는 경제적 운명 공동체로서 같은 배에 탈지도 모르기 때문에 바이든 시대의 행보에 따라 양국의 이해관계는 더욱더 밀접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다.
3. 경제 교류
국민적 차원의 감정과 연결되어 호주와 캐나다의 국가적 차원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 현재는 환태평양에서 가장 끈끈하고 중요한 동맹 관계이자, TPP 협정이나 서태평양과 동아시아 안보 문제에 함께 협력하는 관계이다.
더불어 아무래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국가들이기도 하고, 국가가 형성-발전된 과정도 비슷하며 산업 구조에서 충돌하는 부분들도 있어서 스포츠 분야, 문화 분야에서는 상호 간에 경쟁하며 애정 어린 질투를 주고 받는 관계이기도 하다.
호주와 캐나다 모두 철, 알루미늄, 금, 석탄, 우라늄, 몰리브덴과 같은 광물 제품, 밀, 보리, 귀리, 겨자, 카놀라, 포도주, 사과, 배와 같은 농산품, 육우, 쇠고기와 같은 축산물, 우유, 치즈, 버터, 크림과 같은 유제품, 연어와 같은 어패류를 주로 수출하는 국가들이고 최종 소비지가 겹치기 때문에 산업 구조상 비슷한 면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하는 관계이다.[3]
양국은 경제 구조와 미래 전략도 거의 일치하고 있는데, 1차산업에서의 수익금을 바탕으로 3차 산업군인 금융 업종 및 IT 산업에 대규모로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점이 매우 유사하다. 심지어 캐나다와 호주 양국은 이에 맞춘 국경 정책 기조도 비슷해서 기술이민에 있어 IT테크 분야와 관련된 직업군의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영주권을 대규모로 발급해 온 전례가 있다. 양국은 자국의 미래전략에 필요한 인적자원 획득에 있어서도 상호 경쟁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4. 양 국의 정치적 차이성
다만 국경 정책이나 영주권 발급에 있어서 큰 제한을 두지 않으려는 캐나다의 집권 여당 캐나다 자유당과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정책 노선과 다르게[4] 호주는 집권 여당인 호주 자유당과 스콧 모리슨 총리의 노선이 이민축소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5] 캐나다에 비해서는 호주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민쿼터가 훨씬 축소되어 제한적인 경향을 띄고 있다.
현행 양국의 정치적 지형도에선 상당히 상극을 보이고 있는 편이다. 집권 여당부터가 보수 정당인 호주 자유당인 반면 캐나다는 진보 정당인 캐나다 자유당이다. 과거 백호주의라는 전과가 있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정치 성향이 상당히 세력이 강했던 호주와 달리 캐나다는 중도 사민주의를 품은 진보주의 세력이 꾸준히 강세를 보이는 등 양국간의 차이점을 매우 극명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러나 양국 모두 국제적인 사상 전파에 큰 영향력을 지닌 헤게모니 다툼을 논하는 패권국이 아닌 지역 국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치 성향차이로 인한 분쟁은 당연히 없다. 캐나다 호주 양국 모두 독재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선진국인지라 호주 내에도 자유당 말고도 호주 노동당이라는 진보 정당의 세력이 대도시에서 무시 못 할 수준이고, 캐나다도 마찬가지로 자유당 이전에 집권했던 캐나다 보수당이 버젓이 있다.
5. 여담
그러나 늘 죽이 맞는 것은 아니라서, 과거 역사에서 볼 때 캐나다와 호주 양국 모두 한국전쟁에 영연방군 편제로 참전하여 한국을 구원한 전례가 있으나 베트남전의 경우에는 당시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반대로 캐나다군은 참전하지 않았고 호주는 아시아와 가까운 오세아니아의 지정학적 판도상 아시아의 공산화는 자국 안보 위협으로 직결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얽힌 미국을 도와 호주군을 베트남에 전투파병을 결행했다. 이렇듯 베트남전에 관련해 캐나다와 호주의 참전 여부가 엇갈린 역사는 캐나다-호주 관계를 넘어서서 파이브 아이즈로 불리는 영어권 5개 국가들 간의 결속력이 늘 끈끈하고 변치 않는 것은 아니라는 예시로 꼽히기도 한다.
여담으로 양국 모두 제1도시와 제2도시간의 수도 지위 경쟁으로 집안 싸움을 겪다가 완충지대를 마련하기 위해 새로 행정수도를 건설해 천도한 역사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데, 그에 걸맞게 캐나다의 연방수도 오타와나 호주의 연방수도 캔버라 양자 모두 '''아무도 수도인줄 몰라서 존재감 없는 수도로 유명한 도시'''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다.[6][7]
6. 관련 문서
- 호주/외교
- 캐나다/외교
- 영연방
- 주요 7개국 정상회담
- CANZUK
- 호주-뉴질랜드 관계
- 뉴질랜드-캐나다 관계
- 캐나다/역사
- 호주/역사
- 호주/경제
- 뉴질랜드/경제
- 캐나다인 / 호주인 / 영어
- 대국관계일람/오세아니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1] 오늘날에도 캐나다-호주 관계의 첫 시작을 알리는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두 개의 조형물이 테즈매니아 섬에 설치되어 있다. 하나는 센디 만(Sandy Bay)에 캐나다 국방장관이었던 더글라스 하크니스 경(Douglas Harkness)이 1970년에 세웠고, 다른 하나는 배터리 포인트(Battery Point)에 있는 프린시스 파크(Prince's Park)에 브라이언 슈마허 주호 캐나다 고등판무관이 1995년에 세웠다.[2] 캐나다가 당시 유럽과 북아프리카에 집중하는 상황이라 호주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었긴 하지만, 그 당시 캐나다 정부가 호주 정부와 국민들의 절박한 지원 요청에 대해 너무 안일하고 냉정하게 대처한 것도 없지는 않다.[3] 호주에서는 쌀, 양고기, 양가죽, 양모를 생산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생산량이 적거나 아예 없지만, 반대로 캐나다에서는 메이플 시럽, 호밀, 목재를 생산하지만, 호주에서는 생산량이 적거나 아예 없다.[4] 심지어 캐나다는 과거 집권여당이었던 캐나다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 총리 재임시절에도 딱히 반이민 정책이 들어선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꾸준히 호주보다 1000만~1200명 이상 앞서는 인구를 유지한 캐나다의 인구 추이가 증명하듯이 캐나다는 전통적으로 반이민 노선이 그다지 인기를 얻은 전례가 없다.[5] 자유당 스콧 모리슨 내각뿐만 아니라 그 이전 시점인 호주 노동당의 케빈 러드 총리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친이민 정책 '''빅 오스트레일리아 정책(Big Australia policy)'''이 같은 노동당의 후속 내각에 접어들며 줄리아 길라드 총리에 의해 폐기됨에 따라 호주 국내엔 진보-보수 양당을 초월한 초당적인 반이민 정서가 전국적으로 깔려있는 정치적 환경에 놓여있다.[6] 외국인들에게 캐나다 수도는 토론토 혹은 몬트리올 이며 호주 수도는 시드니 혹은 멜버른으로 꼽히는 밈으로 매우 유명하다. 아예 이걸 소재로 폴란드볼로도 제작될 정도로 인기 있는 농담인지라, 인지도 낮은 수도 밈 마저 공유하는 거 보면 진짜 형제 국가 맞긴 맞다(...)[7] 사실 그나마 밈으로 소비되어서라도 세계에 알려지는 오타와랑 캔버라는 양반이다. 진짜 안습한 사례는 뉴질랜드의 신수도 웰링턴이다. 이쪽은 세계적으로도 듣보잡 취급이라 밈으로도 소비되지 않고 묻혀있고, 그나마 유럽사 좀 공부했다는 사람들에게서 "웰링턴? 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꺾은 그 영국 장군?" 답변이나 들으면 다행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