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T
2. G.O.A.T.
1. 염소의 영어명칭
염소 문서로.
2. G.O.A.T.
폴아웃3에서 나오는 개념. G.O.A.T.문서로.
3. 스포츠 계에서의 개념
'''G'''reatest '''O'''f '''A'''ll '''T'''ime.
용어의 유래를 설명한 글.
주로 스포츠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어느 한 종목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를 의미한다. 복싱 황제 '''무하마드 알리'''가 기자회견 및 경기 전에 앞서 자신을 G.O.A.T(Greatest of all time)이라고 지칭하는 밈이 있었는데, 나중에 결국 역대 최고의 복싱 선수로 안착하면서 GOAT의 단어의 사용이 대두되었다. 한국에서는 위의 GOAT의 뜻에 따라 해당 인물을 염소라고 부르기도 하며, 미국에서도 염소 이모티콘이나 가면 등으로 리스펙트를 보내는 등 같은 언어유희를 사용한다.
3.1. 농구
GOAT의 의미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선수이다. 농구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메이저 종목이라 뛰어난 슈퍼스타가 수두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견이 없는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1] 한 종목과 한 브랜드의 세계화를 이끈 불세출의 선수[2]
조던 세대 이전에도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 자바 와 같은 선수들을 두고 최고의 선수 논쟁이 있었지만 압도적인 개인기량에 비해 우승 횟수나 수상실적이 아쉬웠던 체임벌린, 반대로 압도적인 우승횟수를 자랑하지만 개인기량은 체임벌린에 비해 밀렸던 빌 러셀[3] , 우승횟수나 개인기량 모두 종합적으로 뛰어났지만 리그가 NBA와 ABA로 양분되었던 시기에 선수생활을 했었다는 점과 우승횟수에 비해 파이널 MVP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실적이 저평가되었던 카림 등 3명 모두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개인 기량적으로도 완벽한데 2번의 쓰리핏으로 커리어를 완성하였던 마이클 조던이 2차 은퇴 이후부터는 확고한 농구계의 GOAT로 자리잡게 되었다.[4] 물론 조던 vs 르브론과 같이 은퇴 이후에도 조던과 비교되는 선수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확실하게 조던을 능가했다고 볼 수 있는 선수가 나오지는 않고 있는 상태이다.
조던 이전에 The Greatest of All Time의 의미보단 별명적으로 GOAT라 불리웠던 선수도 있긴 하였다. 얼 매니고라는 선수인데 선수 개인기량에 대해선 윌트나 카림 압둘 자바가 인정했다고할 정도였지만 프로선수 데뷔를 하지 않은 길거리 농구 선수로만 남았다고 한다.
3.2. 축구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축구 대회인 FIFA 월드컵을 3회 우승한 최다 우승 선수이자 축구라는 스포츠를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월드컵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단일 종목 스포츠 대회로 만든 축구의 아이콘[5] 이다.
다만 펠레가 축구계의 가장 '위대한' 선수로는 펠레가 이견 없이 뽑히지만 가장 '뛰어났던' 선수라고도 말할 수 있냐는 태클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 이유는 선수 시절의 영상이나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점[6] , 유럽에서의 커리어가 전무[7] 했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고 있다. 20세기 말~2000년대 초까지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은퇴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축구팬들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마라도나의 우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기도 했다.[8][9]
이후 2004년의 펠레 에테르노를 시작으로 펠레의 영상 자료가 과거에 비해 많이 발굴되었고, 적은 표본이긴 하지만 옵타 등 스포츠 통계 사이트에서 골 기록 외에도 키패스 등 다른 스탯에서도 현재의 슈퍼스타들에 모자를 것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골 기록만 있고 영상 자료는 없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축구팬들에게도 펠레가 단순히 골만 많이 삽입하던 전형적인 스트라이커가 아닌 축구 전반에 뛰어난 컴플리트 포워드로서의 모습으로 각인될 수 있었으며, 도핑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마라도나 우위론이 그전에 비해서 적어지고 반대로 펠레의 평가가 올라가면서 역대 최고라는 위상이 더욱 드높아졌다. 다만 2017년에 포포투와 부트발에서 선정한 역대 TOP 100에서는 펠레가 포포투에서 3위, 심지어 부트발에서는 고작 4위로 선정되었으며 마라도나는 포포투에서 1위, 부트발에서는 2위로 선정되었고, 2020년에도 포포투는 1위에 메시, 마라도나를 2위, 펠레를 3위로 선정했음을 보았을 때 아직까지도 유럽 쪽에서는 펠레가 뛰지 않았다는 이유로 폄하되는 경향이 남아있다는 점, 그리고 현재까지도 마라도나의 위상이 건재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축구 선수 순위가 아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포츠 선수"라고 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는데, 축구라는 종목의 1인자로는 거의 압도적으로 펠레가 뽑힌다.[10] 농구에서 마이클 조던, 아이스하키에서 웨인 그레츠키가 있다면 축구에선 펠레인 식이다. 또한 마라도나와 메시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조차 본국의 레전드뽕에 취할 법도 하고 마라도나나 메시 정도면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선수들이지만 정작 펠레와 마라도나를 모두 체험해 본 아르헨티나의 축구계 원로들이 오히려 본인들의 현역 시절 가장 강력한 맞수이자 최대 라이벌 브라질의 에이스 펠레를 우위로 두는 경우가 대다수인 점은 다소 의외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만큼 펠레를 직접 본 세대와 현 세대 간의 축구를 보는 시각 차이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
3.3. 야구
말이 필요 없는 야구의 신. 루스의 인기로 인해 야구는 미국의 국기가 되었고[12] 루스의 등장으로 라이브볼 시대가 열렸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루스의 기록 중 깨진 기록도 많지만 2등과 비교했을 때 한 시즌에 홈런 3배 치기, 통산 장타율 .690, 단일 시즌 WAR 15, 타자로서 700+ 홈런과 투수로서 90+ 승을 모두 달성 등 아직도 범접 불가의 기록들이 남아 있다. 한때 투수 부문에선 로저 클레멘스, 타자 부문에선 배리 본즈가 엄청난 기록을 쌓으며 아성을 넘봤으나 모두 약물 복용이 드러나 몰락하며 베이브 루스의 가치는 더 올라가 현재는 가히 신성불가침 수준이다.[13]
그러던 2018년, 루스 이후 정말 오랜만에 이도류[14] 에 도전하는 한 일본인 선수가 있었는데, 2020시즌이 끝나고 봤을때 그의 이도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15]
여담으로, 루스가 소속되어 있던 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엔 무려 86년이나 이어진 저주가 있었는데, 루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
3.4. 미식축구
역대 슈퍼볼 최다(7회)[16] 우승 선수[17] 이자 역대 슈퍼볼 MVP 최다 수상자[18] 로 NFL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선수이다.
2000년대 드래프트에서 막차로 아슬아슬하게 뽑힌터라 기대치는 0에 가까운 선수였지만 2년차에 부상으로 빠진 주전 쿼터백 드류 블래드소를 밀어내고 슈퍼볼 우승을 달성하는 파란을 일으키더니 이후로 2005년까지 2번의 슈퍼볼 우승을 더 달성하면서 패트리어츠 팬들은 당시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 받던 조 몬태나를 넘는거 아니냐는 설레발을 쳤고 이에 많은 미식축구 팬들도 "4년만에 슈퍼볼 우승 3번에 슈퍼볼 MVP 2번이면 진짜 이러다가 브래디가 몬태나를 넘는거 아니야...?"라는 식의 진지한 비교를 시작했지만 이후 브래디는 슈퍼볼 XLII에서 일라이 매닝이 이끄는 뉴욕 자이언츠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전승준으로 쳐박히는 등 이후 10년간 더 이상 슈퍼볼 우승을 이력서에 추가하지 못하였다. 결국 이 논쟁은 설레발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절치부심한 브래디는 10년만인 2015년 슈퍼볼 XLIX을 우승하면서 본인의 어린 시절 영웅 조 몬태나와 함께 슈퍼볼 4회 우승의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 쿼터백과 슈퍼볼 MVP 3회의 최다 수상 타이 기록에 도달했다. 그 뿐만 아니라 2017년 슈퍼볼 LI[19] 에서 5회 우승을 함으로써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 선수이자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 쿼터백이라는 타이틀과 역대 슈퍼볼 MVP 최다 수상 기록인 4번째 슈퍼볼 MVP를 수상하며 타이 수상 기록인 조 몬태나의 기록을 넘어섰고, 마침내 2019년 슈퍼볼 LIII에서 한번 더 우승하여 슈퍼볼 통산 6회 우승이라는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 타이틀을 얻어내었다.
그것도 모자라, 2021년에는 새로운 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해서 20년간 플레이오프 근처도 못가본 팀을 이끌고, 당대 최고의 쿼터백들[20] 을 차례로 격파하며 팀을 사상 최초로 홈에서 열린 슈퍼볼 LV에 진출시키며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고 본인은 슈퍼볼 MVP까지 등극, 슈퍼볼 통산 7회 우승 및 5번째 슈퍼볼 MVP라는 업적을 이력서에 추가하며 GOAT 논쟁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었다. 결국 브래디는 커리어 중반의 10년이라는 긴 슬럼프(?)를[21] 이겨내며 역사상 최고의 선수에 등극한 것이다.
톰 브래디가 리빙 레전드로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20여년에 걸쳐 쌓아온 업적도 있지만, 20-21년 시즌에 43살의 나이로 현역 최고령 NFL 선수가 되었음에도[22] 자신보다 20살 가까이 젊고 앞날이 창창한 쿼터백들에게 밀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23] 물론 전성기에 비하면 노쇠한 몸이지만 에이징 커브를 모르는 그의 도전은 브래디의 안티팬들조차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여담으로 브래디의 우승 7번 중 6번은 모두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감독 겸 단장 빌 벨리칙과 함께 이뤄냈으며, 벨리칙은 NFL 감독으로서 최다 우승을 차지하며 감독계의 GOAT 후보로 올라 있다.[24]
3.5. 골프
골프의 황제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골프계의 아이콘. 전성기 시절의 우즈는 골프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우즈의 이름은 알 정도로 그 대중적 임팩트가 대단했다. 다만 선수로서의 전체적인 커리어는 잭 니클라우스가 더 좋아 논란이 다소 있는 편이다. 그러나 커리어 상의 비교로는 우즈가 다소 밀려도 우즈가 가져온 임팩트는 골프라는 스포츠 자체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렸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와 업계의 미친 영향력을 따진다면 우즈가 단연 우위이다. 흠이 있다면 스캔들과 슬럼프로 자기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에 전성기의 위상을 끝까지 이어나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복귀 후 우승을 추가하며 다시 잭의 커리어에 도전하는 중이다.
3.6. 테니스
일명 테니스 빅3라고 불리우는 치열한 3강을 형성중이다. 현재까지는 페더러와 나달이 앞서가는 중이지만 유의미한 차이를 벌리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나달과 조코비치가 34세, 33세인데 반해 페더러는 어느덧 39세에 부상으로 1년을 쉬고 있는 중이라 나달과 조코비치의 2파전이 될 것이라고 보는 예측이 많다.
2020년까지 세 선수의 커리어를 나열해보면 이런식으로 나온다.
결국 세 선수 다 커리어가 끝날때까지 누가 왕좌의 주인공이 될 지 알 수가 없다...
3.7. 아이스하키
아이스하키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미국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도 MLB의 재키 로빈슨과 함께 단 2명뿐인 NHL 전구단 영구결번의 주인공. 이전부터 농구에 조던이 있다면 아이스하키에는 그레츠키가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25] 아이스하키에서의 그레츠키의 위상은 말이 필요없을 수준이다. 커리어로만 봐도 4번의 스탠리 컵 우승과 2번의 플레이오프 MVP, 9번의 정규시즌 MVP라는 압도적인 커리어를 자랑한다. 그 중에 더욱 놀라운 커리어는 바로 미국 프로 스포츠 리그 최초이자 유일한 8년 연속 정규시즌 MVP.[26] 심지어 88년에 마리오 르미외의 대활약이 없었다면 10년 연속 MVP라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달성할 뻔했다. 이외에도 최다 득점, 최다 어시스트에 관한 모든 기록은 그레츠키가 다 가지고 있고 2위 선수와는 천 단위 자리부터 다른 위용을 자랑한다. 기록까지 압도적이다보니 논란이 생기는 마이클 조던과는 달리 논란조차도 없다.
3.8. 복싱
알리가 인정한 현대 복싱의 초석이자 복싱 P4P[27] 의 제왕[28] 이라는 점에서 슈거 레이 로빈슨은 개척의 물꼬를 텄다면, 현대 복싱의 선구자이면서도 복싱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서 복싱계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스포츠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한 줄을 그은 무하마드 알리는 현대 복싱의 개척을 완료한 동시에 복싱을 내외적으로 완성시킨 복싱 황제로 평가받는다. 또한 알리는 GOAT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고착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이후 그 단어를 조던이 최초로 쓴 것.
3.9. 레슬링
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13년동안 경기에서 단 한번도 패배와 실점을 하지 않은 선수이며 올림픽 3연패와 세계선수권 9회 우승등의 엄청난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레슬러이다.
3.10. 종합격투기
각각 UFC의 플라이급, 웰터급, 미들급, 라이트헤비급 체급의 GOAT들로, 종합격투기 최강자들을 논할 때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엄청난 실력과 전적에 더불어 한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적인 선수로 기억된다.다만 앤더슨 실바와 존 존스는 약물이 적발되어서 커리어의 명성에 흠집이 났다.
이 4명의 업적에 미치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체급에서 GOAT로써 인정 받는 선수들이 있다. 페더급의 폭군 조제 알도, 밴텀급의 전략가 도미닉 크루즈, 헤비급의 UFC 헤비급 최초 3차 방어 스티페 미오치치와 10년 무패 표도르 예밀리아넨코 등이 속한다.
3.11. 수영
우사인 볼트와 함께 21세기 초 올림픽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수영계의 압도적인 GOAT이자,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 및 총 메달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 또한 한 대회에서 금메달 8개를 획득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펠프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2위, 3위, 4위 선수의 금메달을 모두 합쳐야 펠프스와 간신히 동률을 이룬다. 마크 스피츠 9개+매트 비욘디 8개+라이언 록티 6개=마이클 펠프스 23개.
3.12. 육상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사나이이자 육상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으로 마이클 펠프스와 함께 21세기 초반 올림픽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100m 세계신기록을 혼자서 0.19초 단축해버렸으며, 그와 경쟁했던 선수들은 전부 도핑에 적발된 전력이 있는데 볼트는 수많은 도핑 테스트에서 단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다. 심지어 100m가 압도적으로 주목을 받는 종목이라 상대적으로 덜 다뤄지는 편이지만, 200m에서도 범접 불가능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3.13. 탁구
메이저대회(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이자 탁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국의 탁구 선수이며 역대 5번째[29] 로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역대 2번째[30] 로 커리어 슈퍼슬램 달성, 역대 3번째[31] 로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식 3연패, 역대 최다 ITTF 월드투어 우승[32] , 역대 최장 1위기간[33] , 역대 최다 연말1위[34] 등의 미친 기록을 보유 중이다. 이로 인해 항상 남자 탁구 올타임 레전드 No.1이라 평가받는다.[35]
3.14. 배드민턴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단식 2연패와 세계선수권[36] 5연패를 달성한 배드민턴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국의 남자 배드민턴 선수이다. 하카족 출신이며, ‘슈퍼 단’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2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단식 결승에서 두 대회 연속 리총웨이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역대 선수들 중 유일하게 세계선수권 남자 단식 5연패를 달성한 전대미문의 기록을 갖고 있다. 상기한 대회에 더하여 월드컵, 토마스 컵, 수디르만 컵, 슈퍼시리즈 파이널스, 전영오픈, 아시안 게임, 아시아선수권까지 총 9개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슈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유일무이한 선수이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배드민턴 역사상 최고의 선수.
3.15. 바둑
역대 인류 최고의 기사는 ‘돌부처’ 이창호
이세돌에게 이창호라는 존재란?
1990년 11월 초순부터 2006년 3월 중순까지 16년간 세계 랭킹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런 가공할 지배력은 바둑 역사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다. 전세계의 모든 바둑기사가 그의 기보를 붙잡고 파해법을 찾아 헤맸지만 그렇게 그는 16년간 세계 정상을 지킨 것이다.
30세 이후의 이창호는 세계 최강의 기사가 아니지만 바둑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끝내기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며 현대바둑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꾼 업적으로는 오청원에 비견되는 선지자였으며, 뛰어난 천재가 쏟아져 나오면서 무수한 연구와 새로운 정석이 난무하던 현대 바둑의 백가쟁명 속에서 오로지 그 홀로 최정상에 우뚝 서 있던 십수년간의 전적으로는 사상 최강의 기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참고로 바둑에서는 전성기에 해당하는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로 본다. 이것도 길게 본 것이고,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를 최고 전성기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예전에는 30~40대에도 정상급 기량을 보유한 기사가 꽤 많았으나, 연구생 제도가 확립된 이후로는 30대 초반만 되어도 한풀 꺾이는 경우가 많다. 기보 획득과 관리가 쉬워져 예전처럼 경험을 시간을 두고 쌓아야만 했던 시대가 아닌 것이 이유다. 바둑기사 이세돌은 이에 대해 자서전에서 이르길 "과거엔 기보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또 정보의 유통이 늦어 '비장의 수' 몇 가지만 준비해 가면 한참을 써먹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제아무리 묘수라 해도 기보가 뜨면 한 시간도 안 돼 바둑 사이트에서 파훼가 된다. 거기다 젊은 기사들 사이 연구회도 전보다 활발하다. 녹록지 않은 여건인 셈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런 평가는 그의 전성기만 국한해서 내린 것은 아니다. 이창호를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당대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둑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고 그의 실력과 업적을 견주어봐야만 한다.
이렇게 바둑 역사의 통시적 업적과 당대의 경기력 양면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기사로는 4대 혼인보 도사쿠, 오청원, 이창호를 들 수 있고, 현대 바둑에 한정한다면 오청원과 이창호를 든다. 물론 오청원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세계기전이란 개념 자체도 없었고, 일본과 비교해 다른 국가들의 바둑의 수준이 너무나 차이 났기에 국외 활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오청원은 포석과 정석 분야를 개척했고, 이창호는 중반과 끝내기 분야를 개척했다. 그 이전까지 중국 바둑은 묘수풀이를 이용한 전투 일변도였고, 일본바둑 역시 포석의 연구를 하긴 했지만 덤이 없었기 때문에, 18세기~19세기에 발명된 포석 형식에 갇혀 있었다. 오청원은 신포석과 화점 발견으로 바둑계를 한번 갈아 엎었고, 한참 후에 나온 이창호는 중반전에서 두터움과 끝내기 분야를 개척하여 바둑기사들의 수명을 줄여버렸다. 계산바둑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 오청원과 이창호를 두고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비유를 든 것이 가장 유사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말하면 이창호는 단순히 실력이 좋은 게 아니라 바둑의 메타를 바꾼 것이다. 오청원이 신포석을 개발하여 메타를 바꾸자 오청원 체제가 1990년대까지 오는데, 이창호는 끝내기 메타를 창안한 것이다. 이창호의 메타를 깨기 위해 수많은 바둑기사들이 도전했지만 결국 이창호를 깨기 위한 공격적인 메타가 나왔을 뿐이지 결국 2010년대까지 바둑기사들은 이창호의 메타를 의식하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창호가 보여준 '끊임없는 형세판단'은 그 이후로, 모든 기사들에게는 기본이 되었다.
3.16. F1
앞으로도 F1에서 슈마허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넘기는 드라이버는 나오기 힘들겠지만, 커리어로만 본다면 루이스 해밀턴이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2020시즌 기준으로 보면 해밀턴이 월드 챔피언 기록도 타이를 만들었고, 그랑프리 우승 기록, 폴포지션, 포디움 기록 모두 해밀턴이 슈마허를 넘어섰다.
3.17. e스포츠
3.17.1. 워크래프트 3
e스포츠 계에서 가장 먼저 나온 GOAT. 역대 최고, 최강의 워크래프트 3 플레이어. 전성기의 포스는 압도적으로 외계인, 제5종족, 안드로장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동시기 다른 프로게이머들과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2020년에도 전성기만큼은 아니라도 최정상급 플레이어로 활동 중이다. 국내에서 워3가 묻힌 감이 있어서 실력에 비해 유명세는 낮지만, 워3가 엄청난 인기를 끈 중국에서는 정말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에 참여함으로써 그 인기를 증명했다.
3.17.2. 리그 오브 레전드
역대 최고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이자 세계 최고의 글로벌 이스포츠 스타이기도 하다. 현역과 은퇴한 프로게이머를 합쳐도 리그 오브 레전드 최고의 대회인 롤드컵 우승을 세번 기록한 선수는 이상혁과 배성웅 뿐[37] 이고, 롤드컵 뿐만 아니라 MSI 2회 우승과 함께 메이저 국제대회 최다 우승자(5회)이며 지역리그(9회)조차도 이상혁보다 우승횟수가 많은 선수는 4대 메이저리그에 단 한명도 없다.[38][39] 좀 더 확 와닿게 설명하자면, 2020 롤드컵까지를 기준으로, 그의 커리어를 절반으로 접어도 롤드컵 우승 1.5회, MSI 우승 1회, 지역리그 우승 4.5회인데, 이렇게 해도 전세계 미드라이너들 중 커리어가 1등이다.[40]
3.17.3. 카트라이더
역대 최고의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이자 다른 누군가가 위상을 깰 기미도 보이지 않는 영원한 카트 황제. 무려 15년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정규 리그 우승만 14회에[41][42][43] 달하고, 심지어 양대 리그 우승을 무려 2회나 달성했다! 최초로 프로게이머 헌정 카트바디를 카트라이더 측에서 만들 정도이며, 15년 동안 정상으로 군림하고 있고 카트 개인리그 유일한 3-peat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44] 물론 역대 최고는 맞는 말이나 역대 가장 강렬했던 카리스마는 가진 선수는 김택환이다. 개인전은 2020년 시즌 1 우승을 마지막으로, 팀전에서는 2020년 시즌 2 우승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3.17.4. 철권 시리즈
전 세계 철권 프로게이머들 중 가장 압도적인 커리어와 꾸준함을 보유하고 있다. 무릎을 이긴 프로게이머들은 몇 명 있지만,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그의 꾸준함은 독보적으로, 역대 최고의 철권 프로게이머로 인정받고 있다.
3.17.5.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대전 액션 게임 분야에 있어서 전설 그 자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전액션게임 프로게이머로 20여년동안 각종 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막강하다. Capcom Cup 2017에서 선수들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했을 때 다이고는 Legend라는 칭호를 받았다.
3.17.6.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현재는 히오스 공식리그 폐지로 인해 리그 오브 레전드로 종목을 전향하였지만, 히오스 내에서의 명성은 히오스계의 페이커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 최고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프로게이머로 평가받았으며, HGC 폐지 전까지 2연속 글로벌 파이널 우승, HGC 글로벌 파이널 3회 우승, 국내 리그 쓰리핏, 2018년 시즌 통합 우승 등의 업적에 빛나는, 이제는 사라진 히오스 e스포츠계의 전설이었다.
3.17.7. 모탈 컴뱃 시리즈
모탈 컴뱃이나 인저스티스를 필두로 한 대전 액션 게임의 천재이자 최강자. 특히 모탈 컴뱃 X에서는 ESL 1,2,3 시즌 EVO 2015, 2016 우승자로. 모탈 컴뱃 X 프로 중 독보적인 존재이다. EVO에서도 여러차례 입상을 하여 EVO 상금 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3.17.8. 스매시브라더스 시리즈
세계 최강의 스매시 얼티밋 유저이자 ZeRo가 은퇴한 현재, 사실상 GOAT로 평가받는다.
[1] 당장 아무나 붙잡고 아는 농구선수 이름을 대보라 하자. 조던은 그 어느 국가에서든 호명되는 농구의 아이콘이자 운동선수이다.[2] 종목의 세계화로 그에 비견될만한 선수는 축구의 펠레 정도가 있겠으나 그 펠레도 은퇴할 때가 다 되어서 TV 중계가 활성화 된 탓에 푸마 브랜드의 세계화는 이끌지 못했다. 조던은 자신의 이름으로도 만들어진 네이밍 브랜드까지 있으니 말 그대로 셀럽으로서도 정점에 오른 인물이다.[3] 물론 윌트에 비해서 부족했던거지 빌 러셀 개인의 기량에 대해 의문부호를 품는 사람은 없다.[4] 사실 1차 은퇴 당시부터 조던이 이미 GOAT라는 의견이 우세이긴 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선수 평가에 대한 관점 차이 때문이기도 한데, 자세한 건 항목 참조.[5] 실제로 펠레는 타임지에서 선정한 20세기 인물 100인 안에 들어간 유일한 축구 선수이다. 축구 선수로서 선수 시절에는 당시 거의 모든 나라의 대통령보다도 더 유명했고 브라질 정부에서 이적을 막기 위해 그를 국보로 지정할만큼 축구 내외적인 부분들을 통틀어 그의 영향력을 따라잡을 축구선수는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6] 당시 브라질의 중계 기술도 미비했고 브라질 축구계에서 영상으로 축구 경기를 많이 남겨놓지 않아 펠레가 남긴 최고의 골들은 영상으로 남지 못했다.[7] 유럽 구단들은 펠레를 영입하고 싶어했지만 국가 자체적으로 펠레 영입을 막기 위해 공식적으로 브라질의 국보로 지정했으므로 이적할 수가 없었다. 물론 펠레가 산투스 FC에서 뛰던 시절에 유럽 팀들과 경기를 하면 오히려 거의 모든 유럽 팀들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줬기에 이적할 명분도 딱히 없었다. 소속팀한테 지는 팀과 리그로 굳이 이적할 필요가 있을까?[8] 전문가들조차 펠레의 편을 들면 마라도나의 팬들에 의해 과거의 뽕에 취했다는 식의 폄하를 당했고, FIFA에서 20세기 최고의 선수를 선발할 때 온라인 투표에서 마라도나가 무려 7만 8000표로 2만 6000표을 얻은 펠레를 3배 차이로 따돌렸으며 이에 당황한 FIFA가 펠레와 마라도나를 공동수상자로 정했을 때 마라도나가 이에 반발하여 퇴장하자 사람들은 마라도나를 이해한다는 반응부터 FIFA와 펠레의 커넥션에 대한 음모도 공공연하게 돌았었다.[9] 1986, 1990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원맨 캐리로 팀을 결승에 진출시켰고, 1986년에는 아예 우승시킨데다 1982, 1994년도에는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던 팀이 그가 빠지자마자 탈락한 반면 펠레의 경우 같이 뛰던 동료들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떨어져 보이는 탓도 있다. 실제로 1962년 월드컵에서는 펠레가 조별 리그 두번째 경기 이후 사실상 부상으로 전 경기 결장을 했음에도 브라질이 기어코 우승을 했다는 점에서 심하게는 펠레는 어차피 우승할 당대 최강국 브라질 국대에 숟가락만 얹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물론 그 기라성같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펠레가 최고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 펠레=숟가락의 의견은 너무 나간 헛소리.[10] https://www.fmkorea.com/3018591513 [11] https://www.fmkorea.com/3130846073 [12] 1920년대 루스의 활약 이후 미국의 제1의 스포츠가 된 야구는 1980년대 NFL의 대두 이전까지 말 그대로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13] 그 외 청정 타자 중에서도 1990년대부터 21세기에 이르러 많은 괴물들이 등장하긴 했으나 루스를 앞선다고 하긴 어렵다.[14] 다른 말로는 투타겸업[15] 루스도 나중에 가선 투수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었고, 타자에만 전념하게 되었다.[16] NFL에 슈퍼볼이 생긴 이후 역대 최다 우승팀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총 6회인데 무려 한 선수의 슈퍼볼 우승 횟수가 최다 우승팀의 우승 횟수보다 많은 것이다! 특히 패트리어츠 시절은 후술하겠지만 팀의 우승의 순간엔 언제나 브래디가 있었다.[17] 2위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 댈러스 카우보이스에서 라인배커와 디펜시브 엔드로 활약한 찰스 헤일리로 총 5회의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였다.[18] AFC4회,NFC 1회 총 5회 수상[19] 슈퍼볼 최다 점수차 역전승. 3-28로 뒤지다가 34-28로 역전승.[20] 드류 브리스, 애런 로저스, 패트릭 마홈스[21] 사실 슬럼프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세번째 슈퍼볼을 우승한 2005년부터 네번째 슈퍼볼을 차지한 2015년 사이의 10년동안 브래디는 본인이 부상으로 결장한 2008 시즌을 제외하고는 매년 패트리어츠를 AFC 동부 지구 우승을 시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고, NFL 최상급의 쿼터백으로 늘 군림하였다. 2007년과 2010년에는 정규 시즌 MVP과 올해의 공격수 상을 거머쥐었고, 2008년을 제외하고 매해 프로볼에 선발되었으며, 부상 후 돌아온 2009년에는 올해의 재기상, 더불어 ~~, 2007년 시즌에는 정규 시즌 16전 전승 및 50 터치다운 패스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비록 준우승하기는 했지만 두 번의 슈퍼볼을 진출한 것이다. 현 시대 최고의 쿼터백이라고 평가받는 선수들또한 10년 동안 슈퍼볼을 두 번 이상 진출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역대 최고의 쿼터백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애런 로저스는 2005년 데뷔 후 15년 이상의 커리어 중 딱 한 번의 슈퍼볼 진출 및 우승만이 이력서에 있을 뿐이며, 2004년에 데뷔한 벤 로슬리스버거도 세 번 밖에 슈퍼볼에 올라오지 못했다 (슈퍼볼 전적: 2승 1패). 2012년 데뷔한 러셀 윌슨도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딱 두 번 슈퍼볼에 진출했으며 (슈퍼볼 전적: 1승 1패), 은퇴한 페이튼 매닝 역시 17년 간의 커리어 동안 딱 네 번 슈퍼볼에 진출했다. (슈퍼볼 전적: 2승 2패) 더 나아가 엘리트 쿼터백으로 여겨지는 필립 리버스는 17년의 커리어 동안 단 한 번의 슈퍼볼 진출도 이뤄내지 못했다. 즉, 소위 상대적으로 "슬럼프"라고 여겨지는 그 10여년 동안에도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슈퍼볼 우승만이 없었을 뿐이다.[22] 이전 시즌 현역 최고령 선수였던 애덤 비너티어리가 20-21년 시즌에 새 팀을 구하지 못했다.[23] 심지어 새로운 팀에서 첫 해만에 슈퍼볼 55을 우승하면서 슈퍼볼 MVP에 선정되었다.[24] 5회 우승으로 2위인 빈스 롬바르디는 슈퍼볼 우승 트로피의 이름으로 쓰일 정도로 상징성 면에서는 벨리칙이 따라오기 어렵지만, 커리어로는 롬바르디의 기록을 넘어섰다.[25] 그레츠키가 캐나다인이고 전성기 시절 소속팀도 캐나다 팀이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조던을 농구계의 그레츠키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26] 잘못 본게 아니다. 8회가 아니라 8년 연속이다.[27] pound for pound. 플라이급부터 헤비급까지 모든 선수들의 체급이 같다고 가정할 때 최고의 선수를 매긴 순위.[28] ESPN이나 블리처 리포트같은 유명 스포츠 사이트에서도 복싱 역대 P4P 순위를 매기면 항상 로빈슨이 1위를 차지한다.[29] 1번째는 얀-오베 발드네르, 2번째는 류궈량, 3번째는 공링후이, 4번째는 장지커[30] 1번째는 공링후이[31] 1번째는 바르나 빅토르, 2번째는 주앙저둥[32] 종전 1위는 27회의 블라디미르 삼소노프였으나 마룽이 28회를 기록하면서 넘어섰다[33] 종전 1위는 278주의 주앙저둥이었으나 마룽이 278주로 동률을 기록하고 일수에서 추월하며 넘어섰다.[34] 종전 1위는 5회를 기록한 바르나 빅토르였으나 마룽이 6회를 기록하면서 넘어섰다[35] 이견이 있던 적도 있으나 리우 올림픽 우승으로 완성된 커리어 그랜드슬램 경력, 역대 2명밖에 없는 커리어 슈퍼슬램 경력, ITTF 월드투어 역대 최다 우승, 역대 최장 1위기간, 역대 최다 연말1위 등과 큰 기복없는 압도적인 퍼포먼스, 지고 있는 경기를 따라잡는 멘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당연하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2015년까지만 해도 장지커가 세계선수권을 2회 석권한 반면 마룽은 1회 우승에 그쳤기 때문에 향후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마룽이 리우 올림픽 결승에서 숙명의 맞수 장지커를 완파하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묻히게 되었고 2017년 세계선수권에서 백투백 챔피언에 등극함으로써 멀찍이 추월했으며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쓰리핏을 달성함으로써 넘사벽을 쌓아버렸다. 상대전적과 커리어면에서 장지커와 세부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상대전적은 장지커가 마룽을 상대로 2017년 6월까지 통산 53전 14승 39패로 절대적 열세에 가깝다. 국제대회 기준으로도 마룽이 13승 6패로 우위이다. 커리어는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세계선수권 및 올림픽과 월드컵 우승 횟수는 마룽이 도합 6회로 도합 5회의 장지커를 앞서고 그랜드파이널스 우승 횟수는 마룽이 5번으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장지커를 압도한다. 즉, 상대전적과 커리어 면에서 장지커는 사실상 마룽이 2016년 리우 올림픽과 2017년 세계선수권을 석권한 이후로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2019년 마룽의 세계선수권 3연패 달성으로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36] 이칭 BWF 월드 챔피언십. 여담이지만 라이벌 리총웨이가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그 대회가 맞다.[37] 이 둘은 배성웅의 SKT T1 커리어 내내 같은 팀이였다.[38] 북미의 더블리프트와 유럽의 퍽즈도 지역리그 우승이 8회, 중국의 클리어러브도 지역리그 우승이 5회다.[39] 마이너지역까지 둘러보면 10회 우승의 DFM의 세로스가 있지만, 4대 메이저리그와 나머지 리그의 위상 차이는 넘사벽이라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40]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서도 롤은 특히 국제 대회 커리어가 중요시되는데, 반절 접은 성적인 롤드컵 우승 1회와 MSI 우승 1회를 만족하는 선수가 라이벌로 불렸던 폰 하나 뿐이고 이마저도 롤드컵이든 MSI든 조건을 2회로 올리면 만족하는 선수가 없어진다.[41] 우승횟수 7회로 2위인 유영혁과 2배나 차이가 나며 그리고 또 대단한 건 개인전 우승 10회인데 2위인 유영혁과 강진우, 이재혁이 고작 2회 우승으로 '''5배'''가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또한 e스포츠에서 인정하는 공식대회인 케스파컵에서도 2회 우승을 해서 공식대회 우승이 16회로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여담으로 이 문서의 E스포츠 부분에서 세번째로 우승이 빠르다. (첫번째는 2003년의 장재호 두번째는 04년의 다이고) [42] 문호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넥슨 측에서 16차 리그, 17차 리그를 2인제로 변경하였는데, 오존 게이밍의 규칙 악용으로 문호준은 17차 리그 후 잠정 은퇴를 선언하였고, 16차, 17차 리그는 카트리그의 암흑기로 평가되며 공인리그에서 제외되었던 수모를 겪는다.(실제로 17차 리그 이후 시즌 제로 개최까지 거의 1년 간 리그 공백기가 있었다.) 이후로는 팀전이 카트리그의 메인 스트림이 되기는 했으나 개인전 리그 역시 듀얼레이스 때부터 정식으로 추가되어 이후로는 개인전-팀전의 양대리그화가 되었다.[43] 3차리그(오프예선에 참가한 경력이 있음) ~ 2020 시즌 1까지 개인전이 총 19회가 열렸는데 문호준의 개인전 우승은 10회이다. 즉 우승률(우승 수/출전 수)이 50%가 넘는다. 카트라이더라는 종목자체가 GOAT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종목들에 비해 인기가 많이 적어서 그렇지 커리어로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44] 9차 ~ 11차, 13차 ~ 15차 우승으로 3-peat 2회 달성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