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관련기록
1. 역대 성적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2.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 KBO 리그 팀 중에서 유일하게 LG 트윈스와는 아직까지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한 바가 없다. SK 와이번스와 LG 트윈스가 동시에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세운 것은 2019년이 유일하다.
3. 역대 구단주
- 대다수의 다른 구단들과 달리[1] 그룹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직접 구단주를 맡은 적이 없다. 다만 한국시리즈처럼 큰 경기에는 구단 점퍼와 모자를 쓰고 관중석에서 직접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줬고[2]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을 선언하자 직접 격려해주는 등 야구단에 대한 관심은 많은 편이다.[3]
4. 역대 사장
- 초대 안용태 사장은 구단의 초기 기반을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다만 의사결정 과정이 다소 과격해[4] 야구계 내에서는 깡패 사장(...)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 3대 신영철 사장은 구단의 역대 사장 중 가장 오래 일했고 족적이 뚜렷한 사람이다. 재임 중 세 차례 우승의 조력자 역할을 했지만 김성근 감독의 중도 경질 문제와 이른바 '막걸리 야구' 드립을 두고서 당시 많은 논란이 있기도 했다.
- 6대 민경삼 사장은 역대 KBO 리그 구단 사장 중 최초로 KBO 리그 현역 선수 출신이며 같은 팀에서 사장과 단장을 동시에 역임한 경력을 지닌 최초의 사장이다. 또한 SK그룹에 입사해서 계열사 임원까지 올랐다가 야구단으로 온 역대 사장들과 달리 SK그룹 임원 출신도 아니다. 물론 과거 SK에서 단장을 역임했던 만큼 SK그룹에서 임원급 대우를 받은 적은 있다.
5. 역대 단장
- 2008년부터 2년간 단장직이 없어졌던 적이 있다. 실무적 의사결정 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본부장들의 힘을 더 실어주는 차원의 조직 운영이었지만 이득보다 손해가 많아서 결국 2010년부터 다시 단장직이 부활했다.
- 초대와 3대 단장을 지낸 명영철 단장은 SK그룹에서 상사맨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인물이고 최종준 단장은 선수 출신이 아니지만 프로 스포츠팀에서 일한 경력이 길었던 체육행정가로 유명했다.
- 4대 민경삼 단장부터는 6대 손차훈 단장까지 KBO 리그 선수 출신 인사가 팀을 운영했었으며 손차훈 단장은 구단 역사상 최초의 SK 선수 출신 단장이기도 하다.
6. 역대 감독
- 약 3년에 한 번 꼴로 감독이 바뀌었지만 중도 경질된 김성근 감독과 중도 사퇴한 염경엽 감독을 제외하면 나머지 감독이 모두 계약 기간을 채우고 물러났다. 최초 계약 기간 만료 후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은 2004년 시즌 후 2년 재계약을 맺은 조범현 2대 감독이 유일하다. 당초 트레이 힐만 6대 감독도 2018년 시즌 이후 재계약 가능성이 높았지만 미국에 있는 가족의 사정 때문에 본인이 재계약을 포기했다.
- 강병철 초대 감독을 제외하면 모두 SK 감독 재임 중 1회 이상 KBO 포스트시즌 진출 경험이 있다.
7. 역대 주장
- 창단 초기에는 옛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이 주축을 이룬 탓에 최태원, 양용모, 김기태, 조원우 등 쌍방울 출신 고참 선수들이 주장을 맡았다. 그러나 구단의 역사가 쌓이고 선수단 세대교체도 조금씩 이뤄지면서 2010년대부터는 박정권, 정근우, 조동화, 김강민, 이재원, 최정 등 SK 창단 이후에 입단하고 소위 왕조 시절을 경험한 선수들이 주장을 맡고 있다.
8.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
9. 역대 한국시리즈 헹가래 투수
10. 유니폼 변천사
11. 선수단 일람
12. 등번호 일람
13. 캐치프레이즈
[1] 네이밍 스폰서 제도를 도입한 키움 히어로즈를 제외한 KBO 리그 각 구단의 구단주는 대부분 모그룹의 회장이나 사장(박정원(두산), 구광모(LG), 김택진(NC), 구현모(kt), 김승연(한화), 신동빈(롯데), 정의선(KIA))이 맡고 있다. SK와 비슷한 경우를 찾자면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 1명이 구단주를 맡는 삼성 라이온즈가 유일하다. 물론 삼성도 2001년까지는 이건희 회장이 구단주였다.[2] 다른 구단주들은 스카이박스석이나 VIP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는데 유독 최태원 회장은 본인이 직관을 할 때면 응원석에서 직관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시카고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농구를 보며 지낸 덕에 상당한 농구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그룹 농구단에 막대한 투자를 할 수 있던 것도 최태원 회장이 농구팬이어서 그렇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4] 구단 창단 과정에서 연고지 문제를 두고 박용오 당시 KBO 총재에게 득달같이 전화해서는 "나 SK 사장인데 우리 팀 연고지로 서울을 주시오!"라고 대뜸 말한 것이 유명한 일화다. 당시 박 총재와 안 사장은 일면식도 없었던 남남(...)이었다. 2001년 신인 지명과 2002년 신인 지명 때 신생팀 지원 혜택으로 1라운드 1~3번 신인 지명권을 요구한 것도 안 사장의 성과인데 이 당시 KBO 이사회에서 다른 구단 사장들을 향해 생떼를 부렸다(...)는 이야기가 있다.[5]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최초의 감독대행[6] 원래 2008년 주장은 이호준이었으나 무릎 부상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시즌 소화가 어려워지자 김원형을 주장으로 재선임했다.[7] 구단 역사상 최초의 2년 연속 주장[8] 이후 구단의 공식 슬로건이 됐다. '패기'는 SK그룹의 인재상이기도 하다.[9] 캐치프레이즈에 지역명을 직접 표기한 흔치 않은 사례. 인천 팬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SK가 인천 연고 팀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결국 이 해 SK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적잖은 성공을 거뒀다.[10] 球都. 야구도시라는 뜻으로 인천에서 처음 야구가 시작됐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11] SK그룹의 CI에 행복 날개가 추가된 점을 감안해 제정됐다.[12] "'스포테인먼트' 시대를 열겠다"는 취지로 "팬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면서 마련한 캐치프레이즈이다.[13] 연두색 유니폼을 입는 이마트 그린데이 시리즈가 이 해부터 시작됐다.[14] 원래는 팬 공모를 통해 선정된 'Do Dream! SK Wyverns! Let's go V4!'라는 캐치프레이즈였다. 발표 이후 당시 부천 FC 1995 축구단의 캐치프레이즈와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재선정됐다.[15] 김용희 감독이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