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정당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정당'''
'''주요 정당'''

'''이념'''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일제강점기미군정 시기에 활동했던 정당들의 통칭.
1. 개요
2.1. 임정수호파
2.2. 개조파
2.3. 창조파
3. 군정부
3.1. 참의부
3.2. 정의부
3.3. 신민부
3.4. 국민부
3.5. 혁신의회
4.1. 대한인국민회
4.1.1. 대한인동지회/흥업구락부
4.1.2. 흥사단/수양동우회
5.1.1. 상해파
5.1.2. 이르쿠츠크파(노령파)
5.2.1. 제1차 조선공산당
5.2.2. 제2차 조선공산당
5.2.3. 제3차 조선공산당
5.2.4. 춘경원당
5.2.5. 제4차 조선공산당
6.1. 조선민족혁명당
6.2. 조선혁명당(국민부)
6.3. 한국독립당(임시정부)
6.4. 신한독립당
6.4.1. 한국독립당(혁신의회)
6.4.2. 한국혁명당
6.6. 한국국민당
6.8. 조선혁명당(재건)
6.10. 한국독립당(재건임시정부)
11. 민족통일총본부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틀


1. 개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부터 제1공화국 수립 전까지 등장한 정당들을 다룬다.
크게 '''국내우파(신간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국내좌파(코민테른)'''로 분류할 수 있다.

2. 국민대표회의



2.1. 임정수호파



2.2. 개조파


만주 지역의 한인정착촌을 다스리던 군사정권(훗날 국민부로 통합)이 주축이 되었다.

2.3. 창조파


시베리아 지역 한인정착촌을 다스리던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훗날 화요파 조선공산당으로 승계)이 주축이 되었다.

3. 군정부


랴오닝성, 지린성(남만주)
헤이룽장성(북만주)
서로군정서
(신민회)
북로군정서
(대종교)
의군부
복벽파
의용군
통의부
공화파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민정위
군정위
혁신의회
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
촉성회
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협의회
(혁신의회)

3.1. 참의부


대한통군부에서 갈라져나온 통의부와 의군부의 격한 대립을 비판하면서 통의부를 탈퇴한 의용군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조직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할대로서 주로 압록강 인근의 남만주 지역을 대상으로 무력 활동을 전개하였다. 3부 통합 시 다수가 혁신의회에 참여하였다.
일단은 군부로 묶여 있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독립군 단체이다.

3.2. 정의부



3.3. 신민부



3.4. 국민부


만주의 민정 세력이 모여져 만들어진 협의체 군정부. 국민대표회의에서 개조파를 담당했다.

3.5. 혁신의회


만주의 군정 세력이 모여 만든 군단. 민족유일당 촉성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흡수된다.

4. 신간회


한성정부 세력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이다. 국내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 세력인 제2차 조선공산당정우회를 통해 신간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신민회 계열이 우익을 담당했다.

4.1. 대한인국민회



4.1.1. 대한인동지회/흥업구락부


주로 기호지방을 거점으로 하는 감리회, 삼남지방을 거점으로 하던 천도교 구파, 조선일보 측을 대표했다. '''이승만'''이 바로 여기 출신.

4.1.2. 흥사단/수양동우회


주로 서북지방을 거점으로 하는 장로회, 역시 서북지방을 거점으로 하는 천도교 신파, 그리고 동아일보를 대변했다. 수양동우회 사건의 후유증으로 안창호가 사망한 후 민족개조론을 계승했다고 자처하는 이광수 등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장악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온상이 된 흑역사가 있다.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으로 계승되었다.

5. 코민테른



5.1. 고려공산당


크게 두 가지 파벌(이라기엔 이름만 같은 정당들)이 있었는데 이 둘 간의 알력다툼으로 인해 한국독립운동 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꼽히는 자유시 참변이 발생한다.

5.1.1. 상해파


극동 공화국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지를 받은 공산당 지파.

5.1.2. 이르쿠츠크파(노령파)


시베리아의 한인 세력이 코민테른의 지지를 받아 만든 정당. 대한국민의회 세력이 주축이 되어 시베리아 지역 한인정착촌의 지도자를 자임했으며 초창기에는 상해파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속해 있었지만 이후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의 중심이 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탈퇴한다.

5.2. 조선공산당



5.2.1. 제1차 조선공산당



통칭 화요파당이라고 불리는데 화요파조선공산당을 창당하고 운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국내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파벌로 신사상연구회, 신흥청년동맹, 화요회 등의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5.2.2. 제2차 조선공산당


통칭 강달영당. 정우회의 설립과 맞물려 창설되었으며 신간회에 참여하였다. 초창기에는 화요파가 주도했으나 6.10 만세 운동 직전 검거되어 지도부가 와해된다.

제2차 조선공산당이 와해된 이후 북풍파의 일부인 일월회가 정우회를 장악했는데 북풍파는 좌익 사상에 관심을 가진 일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주의 운동 파벌이었다. 북성회, 북풍회 등 단체에서 활동했고 국내에서 형성된 서울파와 극심하게 대립했다.
  • 김약수
  • 정운해
  • 이정윤
  • 신철
  • 송봉우
  • 김종범
  • 이종윤

5.2.3. 제3차 조선공산당



통칭 ML파당. ML파북풍파에서 갈라져나온 '일월회'(정우회를 장악한 그룹)와 서울파의 소장파인 '레닌주의동맹'(김철수가 속한 그룹)이 주축이 된 공산주의, 사회주의 운동 파벌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사상적으로 표방했다.
  • 안광천
  • 고광수
  • 박낙종
  • 김천해
  • 하필원
  • 만주총국과 일본총국

5.2.4. 춘경원당



서울파가 제3차 조선공산당에 대항해 만든 정당으로, 서울파는 일제강점기 경성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국내파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파벌이다. 조선공산당 성립 전후로 다른 파벌들과 경쟁하였다. 여러 파벌 중 조선공산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활동한 화요파와의 갈등이 특히 심했다. 한편 국내에서 활동한 고려공산당 상해파 인물들과 엮어서 '서상파'(서울상해파)라 부르기도 한다. 서울청년회, 고려공산동맹 등 단체에서 활동했다.
[image]
주요 지도자 김사국[1]
  • 김사국
  • 김영만
  • 이영
  • 이정윤

5.2.5. 제4차 조선공산당


대부분의 인사가 검거된 후폭풍으로 기존 파벌과는 관련이 없는 인사가 대거 지도부에 포진되었다.

6. 대한민국 임시정부



6.1. 조선민족혁명당



1926년으로 김원봉김성숙이 주축이 되어 사회주의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단체였다. '혁명행동'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이 조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된 것으로 보인다. 민족 유일당 운동의 결과물인 1935년의 민족혁명당과는 우연히 이름이 비슷할 뿐 다른 단체였다.
1926년 창당된 조선민족혁명당과 1935년 창당된 민족혁명당은 모두 김원봉, 김성숙이 참여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배경에서 창당된 별개의 단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단체 모두 김원봉이 주도하게 되었고, 나중(1937년)에는 당명이 정확히 동일해졌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같은 단체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6.2. 조선혁명당(국민부)



'''한국독립운동 정당'''
(국민부)

'''조선혁명당'''

민족혁명당
1929년 남만주 국민부의 민족유일당. 당군으로 조선혁명군을 두어 만주 지역 무장 독립 운동에 참여하였다.

6.3. 한국독립당(임시정부)



6.4. 신한독립당



'''한국독립운동 정당'''
한국독립당
(혁신의회)

'''신한독립당'''

민족혁명당
한국혁명당
만주에 있던 한국독립당중국 난징에 있던 한국혁명당이 합당하여 1933년 2월 난징에서 만들어진 정당.
이후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하면서 해체하였다.

6.4.1. 한국독립당(혁신의회)



6.4.2. 한국혁명당



'''한국독립운동 정당'''
한국독립당
(임시정부)

'''한국혁명당'''

신한독립당
1932년 모종의 사유로 한국독립당(임정)을 탈당한 윤기섭, 민병길, 성주식, '''신익희''' 등이 중국 난징에서 창당한 정당. 이후 한국독립당(혁신의회)과 합당하여 신한독립당을 만들었다.
한국독립당으로부터 탈당한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의열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보아 민족유일당을 두고 벌어진 갈등이 촉매가 되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6.5. 민족혁명당



6.6. 한국국민당


'''한국독립운동 정당'''
한국독립당
(임시정부)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재건임시정부)
1935년 김구를 중심으로 한국독립당 탈당파가 민족혁명당에 대립해 만든 상하이 임시정부의 여당으로 1940년 한국독립당에 다시 흡수됐다. 이 40년 한국독립당은 기존 조소앙의 한국독립당과 이름은 같되 정체성이 다르다. 40년 한국독립당은 한반도 밖의 우익계열 독립운동정당들이 유일정당화에 성공한 통합정당이다.


6.7. 한국독립당(재건)



6.8. 조선혁명당(재건)


지청천이 민족혁명당을 탈당하고 1937년 4월 난징에서 만든 정당. 1940년에 민족유일당인 한국독립당에 합류한다.


6.9. 조선민족혁명당(재건)



6.10. 한국독립당(재건임시정부)



7.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통합하여 만들어진 정당.

7.1.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



7.1.1.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大韓獨立促成全國勞動總同盟)'''은 1946년 3월에 창당되어 1960년에 4·19혁명 후 해체된 노동조합의 총연합단체인 대한민국의 정당이다. 소속 유명 정치인으로는 우촌 전진한 등이 있다.

7.1.2.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7.2. 대한독립촉성애국부인회



8. 좌우합작운동


정당
대표인사
성향
신탁통치
미소공동위원회
좌우합작운동
희망 정부형태
정부수립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이승만
우파
부정
부정
부정
남한 단독정부
대한민국
대한민국 보수정당
한국민주당
김성수
민주당계 정당
한국독립당
김구
긍정
민족유일당 통일정부
대한민국 보수정당
조선민주당
조만식
긍정
민중동맹
민족자주연맹
김규식
중도
유보
소멸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당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
여운형
대한민국 진보정당
조선민족혁명당
인민공화당
김원봉
좌파
긍정
북한
조선인민공화당
연안파
조선독립동맹
조선신민당
김두봉
부정
공산유일당 통일정부
조선로동당
조선공산당
남조선로동당
박헌영
남로당
북조선공산당
북조선로동당
김일성
북한 단독정부
갑산파

8.1. 여운형계 정당



8.1.1. 조선건국동맹



8.1.2. 조선건국준비위원회



8.1.2.1. 조선인민당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좌파를 담당한 정당.

8.1.2.2. 조선국민당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우파를 담당한 정당.

8.1.3. 사회노동당



8.1.4. 근로인민당



8.2. 조선공산당



8.3. 민족자주연맹


1947년 12월 20일 광복 후의 혼란기에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발족시켰던 중도적 정치조직. 여운형의 암살 이후 김규식을 위원장으로 해서 발족하였다.

9. 한국민주당


동아일보 간부진인 김성수송진우와 수양동우회 회원이 대거 합류해 창당한 정당.

10. 대한청년단


이후 청년방위대로 재편된다.

10.1. 대동청년단


한국 광복군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조선혁명당(재건)계 군사조직.

10.2. 서북청년회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선민주당계 군사조직.

10.3. 백의사


한국독립당(재건)계 군사조직. 비밀조직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대한민주청년동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10.4. 조선민족청년단


신민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는 했지만 위의 셋과 달리 제3의 위치적 성향을 띠었다. 또한 이들의 사상은 일민주의 노선 정립에 큰 영향을 끼친다.

11. 민족통일총본부


1946년 6월 29일 이승만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만든 조직이다. 제헌국회 때 민족통일본부라는 당명으로 민족통일총본부 총무부장이었던 김상덕이 당선되었다.

12. 조선민주당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틀


[1] 김사국(1892~1926)은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서울청년회를 창립하여 국내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 서울청년회와 가까운 관계였던 조선청년연합회에서도 활동했는데, 이 단체를 사회주의 운동단체로 만들어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던 장덕수와 그의 일파를 축출했다. 이후 공산주의 분파 중에서 '서울파'의 리더로서 활약하며 화요파, 조선노동당, 북풍회파 등과 대립했다. 1926년 폐결핵으로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