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통제/대한민국

 


1. 개요
2. 역사
2.1. 국방부 장관
2.2. 국방부 차관
2.3. 기타 인원
3. 원인
3.1. 민간
3.2. 군
4. 필요성
5. 절충 방안
6. 현황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문민통제(文民統制) 실정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국군은 공식적으로 정치 개입이 금지되어있다(군인복무기본법 제33조(정치운동의 금지), 군형법 제94조(정치 관여)).[1]
그러나 '''현재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문민통제가 좀 취약하다.'''
민간인들 중에서도 문민통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당장 한국의 예비역 남성들 일부도 문민통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해 군대에 민간인이 간섭해서 군대가 이 모양이라는 이야기를 포탈의 군대 관련 기사의 댓글창에 수두룩하게 볼 수 있다.[2] 이는 한국군은 소위 '짬'이라고 불리는 군 경력을 중요시하며, 이런 인식이 전역 후에도 그대로 남기 때문에 그렇다. 즉, 군대를 정치 세력이라기보다 일종의 전문가 집단으로 인식을 하기 때문에, 오랜기간 군경력을 쌓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서이다.[3]
군대뿐만 아니라, 다른 행정부처 역시 이러한 정서가 있어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장관후보자가 전문분야에 대한 경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부족하다면 네티즌들이 문제를 삼는 경우는 흔히 있다. 행정부 내 각부처를 전문가집단, 전문기관으로 파악을 하기 때문에, 쌩판 경력이 없는 사람이 장관이 되는 것을 일종의 낙하산인사, 자리돌려먹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좀 비뚤어지게 보자면 원래 장관같은 '정무직'이라는게, 전문성은 요구되지 않는 지극히 정치적인 자리다. 왜 다른 나라들도 정무직 공무원의 당적 유지를 허용해주는지 잘 생각해보자.[4] 다만 조직의 수장으로써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방향성을 읽지 못하거나 부처공무원들의 보고를 이해하지 못할 수준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결국 정무직이라도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전문성은 어느정도 갖추는게 좋다.
그나마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이나 미국은 어느 정도 전문성을 보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내각제 국가에서는 그냥 관련 하나도 없는 국회의원이 맡는다.[5] 사실 일반 노동자와 CEO의 업무 내용이 다르듯, 장관과 소속 공무원의 업무 내용이나 요구하는 능력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라고 크게 다른 것은 아니자만 대한민국에서 낙선하거나 공천에 탈락하여도 도움을 준 사람들을 위주로 정무 기관장 자리에 앉히는 경우가 많다. 능력이나 다른 이유보다도 '추구하는 바가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엽관제 항목 참조.
물론 군대는 분명 전문성이 필요한 조직이고, 이를 군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가 맡는다면 효율성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6][7] 그리고 그 전문가는 군대와 별 관련없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은 민간인보다 오랜 기간 군에 몸담아온 전직 군인 중에서 나올 확률이 훨씬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민통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군대의 전투력 및 효율성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서다. 즉, '''군부의 정치세력화 방지'''에 그 목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으로 돌아간다. 여러 집단 중, 어느 한 집단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하다면, 사회는 곧 균형을 잃고 만다. 그중에서 특히 군대는 직접적으로 무력(힘)을 담당하는 집단으로, 권력의 본질에 가장 맞닿아 있는 단체이며,[8] 존재 목적인 국토방위의 임무 외에, 다른 분야에까지 통제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와 균형 측면에서도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당장 대한민국만 해도 100년도 안된 시기 동안 5.16 군사정변, 12.12 군사반란이라는 두 번의 쿠데타가 발생하여 독재가가 집권했고,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흐른 2010년대에도 그 비극이 재현될 뻔했던 국가다.''' 몇십년 전까지 대한민국이 독재를 겪었고, 그러한 체제 하에서 수많은 인권 유린과 통제가 이루어진 이유는 바로 문민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태어났거나 군부독재를 그다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일 예비역 남성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할 수 있지만, 이처럼 몰이해에서 비롯된 생각이 바로 그 민주주의를 다시금 위협할 수도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까놓고 말해서 북한이나 일본제국 꼴 안 되려고 하는 것이다. 민주정의 관점 뿐만 아니라 군사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게 훨씬 이득이다. 선군정치라는게 당장은 군사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도 저 둘이 어떤 꼴을 겪었는지 떠올려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현대의 군사력은 경제력과 거의 비례하기 때문이다. 경제와 민주주의가 뭔 상관이냐 싶겠지만 경제 강대국들은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이다. 물론 세계2위인 중국이라는 어마무시한 예외가 있긴 하지만[9] 이쪽도 독재국가 특성상 통계나 정보의 신뢰도가 낮아서 언제 어떤 문제로 터질지 바깥에서는 알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2. 역사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경우 귀족 = 전사라는 경향이 강했으나, 11세기 고려의 안정화 이후 문신과 무신의 분화가 진행되면서, 소위 문민통제에 대한 논의가 문벌귀족 문신의 입장에서 무신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전시과 제도 개편과 관직의 등급 개편에서 무신에 대한 차별과 격하를 였볼 수 있다. 이러한 무신에 대한 차별과 격하, 통제권의 오남용으로 군사적 작전 실패 문제 등으로 전술적으로 승리하고 전략적으로 패배한 동북 9성 정벌의 실패가 초래되기도 했다. 이러한 반발과 이자겸의 난 이후 중앙권력 혼란기를 틈타 무신정권이 이어졌고, 이 시기를 통해 고려의 문민통제는 붕괴되버렸고 이는 표면적으로 원에게 복속하면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고려의 멸망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조선의 경우, 군사력을 갖춘 지방 호족이 쿠데타로 왕조를 교체한 케이스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었다. 그 결과 태종[10] 이 사병을 혁파한 이후, 망하기 전까지 모든 군권을 조정에서 장악했다. 지방의 군사력은 중앙정부가 파견한 행정관이 차지했다. 병조판서 또한 거의 대부분 문관이 기용되었으며 유명한 장수들이 대부분 문관 출신이거나 무관들이 대부분 문관의 통제를 받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문민통제가 이루어졌었다. 특히 서얼의 문과 금지 및 무과 응시 가능조치나, 무관의 최고 품계가 한동안 종 2품이었다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업으로 가자는 생전 종 1품까지, 직책 품계는 정 2품까지 간신히 올라갔다.[11]
이러한 문민통제도 삼군부의 무실화되고 비변사가 권력을 차지하는 동시에 5군영이 생기면서 점차 상층부와 중하층부 간의 균열, 상층부 문신들의 무신들에 대한 청탁과 인사 결탁 등으로 실질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케이스를 볼 때, 군사력이 정파에 의해 언제든지 쿠데타로 동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관료조직화에도 불구하고 개인 인사의 권한 문제에 있어 완벽한 문민통제라 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문민통제는 시대적으로나 비교사적으로 볼때 매우 수준 높은 편이었다. 심지어 일종의 민병대의병조차 그 지휘관은 향촌, 향림 등의 유림인 경우가 많았다.
초기 대한민국은 문민통제인 듯 문민통제 아닌 문민통제로 시작했다. 초대 총리 겸 국방장관 이범석은 광복군 출신이었고, 제2대 국방장관 신성모는 상선사관 출신으로서 중화민국 해군과 한국 해군에 몸 담은 적이 있어 해군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이었되, 일단 형식상으로는 민간인이었다. 그러나 6.25 당시 신성모는 국군의 능력을 과장하고 북의 군사력을 오판하고 남침 예측이나 실제 상황도 무시하고 장병들을 농번기 휴가를 보내고 장성은 파티나 여는 대응으로 나라를 거의 말아먹게 했고 문민통제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만들었다. 게다가 그가 완전한 민간인도 아니고 해군 대접을 받는 준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신성모만 문제가 아니라 무능하거나 직위에 안 맞는 똥별들이 많았던 것도 문제였지만.[12]
이후 박정희로 시작되는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문민통제는 완전히 무시되고 국방부 장관은 육사 출신(중간에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해병대 출신이었던 김성은 장관도 있긴 했다.)의 최종 단계나 다름없게 되었고 10.26으로 이를 끝내는가 싶었으나 전두환과 하나회가 또 반란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고 군사정권을 다시 세워서 박정희 시절과 다를게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숙청하는 등 군부의 힘을 빼는데 성공하여 상황이 호전되었고 노무현 시절에는 비육사+중장인 윤광웅 제독이 국방부 장관을 맡기도 하는등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때 기무사가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모의하는 등 여전히 군부가 문민통제와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문재인은 국방부 장관으로 민간인 출신을 임명하겠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예편한지 10년 가까이 지난 해군 출신의 송영무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가 경질되고 후임으로 공군 출신의 합참의장인 정경두가 임명되는 등 비육사 출신의 장관들이 임명되는 변화는 있으나 아직 완전한 문민통제까지는 갈 길이 멀다.

2.1. 국방부 장관


현재 대한민국은 제헌헌법 이래 헌법에서 명문으로 현역 군인은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을 겸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등 문민통제를 규정하고 있으며, 하나회 등 정치군인들에게 데일대로 데였던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군 내 사조직이 숙청되면서 민간인에 의한 군 통제가 강화되었다. 적어도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로는 현역 군인 내지 장성 출신이 국정에 개입하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남북간 군사적 대치상황으로 인해 국가안보실장이나 국방부 장관 등을 비롯한 안보 라인은 군인 출신이 군복 벗고 전역직후 혹은 전역 얼마후 들어가고 있고 1961년 5.16 군사정변 이래로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없어서 '''사실상 무늬만 문민통제'''가 지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김태영은 오전 8시에 전역식을 하고 민간인이 된 뒤, 한 시간 후 9시에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적도 있었다. 물론 군인이 아닌 만큼 일단 이것도 문민통제이긴 하지만.[13]이 일은 문재인 정부 때도 반복되었다.[14]
해방 전후 혼란기에서 제주도 4.3 사건의 진압이 경우 문민통제의 부정적 요소의 맹아가 보이는데, 김익렬 연대장처럼 문제점을 파악하여 희생을 최소화해보록 한 노력을 조병옥같은 민간인이 깬 것이다. 이는 문민통제의 가장 부정적인 현상으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인 지휘관의 옳은 판단을 정무직 민간인이 엎는 경우이다. 물론 이 경우 미군정이 조병옥 편을 거든 것이 문제였고, 안재홍처럼 문민관료여도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해주었으니 문민통제의 실패라 보기에는 조금 부당할 지도 모른다.
제1공화국 시절에는 미국과 같은 서구의 영향으로 문민통제의 논의가 논의되기도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시절 신성모[15]이기붕이 국방장관을 역임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경우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과 국민방위군 사건같은 건이 연달아 터지는 바람에 "경험도 자격도 없는 어설픈 예비역을 국방부 장관으로 앉히면 나라 말아먹는다."라는 인식이 생겨버리게 되었다. 즉, 군의 일은 '따끈따끈한 현역 전문가가 해야 제 맛'이라는 점이 1) 전시라는 급박한 상황, 2) 초기의 패전 피드백, 3) 국민방위군 사건 이라는 요인으로 인해 국가적 인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3대 국방부 장관인 이기붕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문민통제 원칙을 어느 정도 지키고, 국방부 장관 재임 당시 호평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취임한 신태영 국방장관이 부산정치파동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의 권력 연장 도구로써 군을 기능하게 했다는 오점을 남긴다.
6대 국방장관 김용우의 경우, 민간인 출신으로 차관 → 장관 승진 케이스여서 이 당시에 문민통제 원칙을 수립할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4.19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 11~13대 국방부 장관의 경우 그 수명이 지극히 짧았고, 이 시기 번갈아 역임했던 현석호-권중돈 장관의 경우 5.16 쿠데타를 막지 못한 실책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문민통제에서 ""과연 민간인이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느냐""는 식의 회의론이 대두되었다.[16]
군사정권 시기에 이르면서, 정권의 성격상 당연히 국방장관은 고위 장성이 전역 후 가는 자리란 이미지가 강해졌다. 그리고 군사정권 시기는 군인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문민통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정 전 분야를 군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는 일이 생겼다. 심지어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의무복무기간을 마치고 대위로 전역하는 유신사무관은 행정고시 합격자와 동등하게 취급해줬다! 특히 군이 부족한 점을 민간이 보좌하는 기능으로 역할하게 하여 민군 접촉을 통해 민이 군을 알아갈 수 있었던 박정희 정권에 비해 전두환 정권부터는 군 관련 인사는 군 출신, 주로 육군 출신이 독식하는 사태가 만연하게 벌어졌다. 이를 1980년대를 거치면 군을 이해할 수 있는 민간 인력 자체의 저변이 씨가 말라버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군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 등이 이뤄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감히 민간인을 국방부 장관에 앉힐 시도를 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군사정권을 이끌었던 대한민국 육군을 견제하기 위해 대한민국 공군 출신 이양호 대장이 사상 최초의 비육군 합동참모의장에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 육군 세력과의 알력과 소위 산타 바바라 편지 사건 등으로 인해 커다란 스캔들로 퇴임하고 만다.
결국, 1961년 이래로 굳어진 경로의존성으로 인하여 국방장관에 직업군인 출신이 아닌 사람이 앉는 일은 없었고 이는 이후 정권을 가리지 않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17] 군을 전역한지 얼마 안 된 대장, 그 가운데서도 육군 출신들이 주로 임명됐다.
역대 46명의 장관 중 해군 4명(손원일, 윤광웅, 송영무, 김성은(해병대)), 공군 4명(김정열, 주영복, 이양호, 정경두) 이외 모두 육군 출신으로써 최근에 임명된 윤광웅, 송영무, 이양호를 제외한다면 문민정부 이전 31명의 국방부 장관 중 단 4명만이 비 육군 출신 군인사고 단 3명만이 민간 출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육군 대장 출신의 국방부 장관의 기인 요인은 크게 2가지 측면이 있다.
첫번째로 합리적인 능력에 따른 적재적소 기용 측면인데, 3군 합동 작전에서 가장 밝은 군이 육군이란 점(독식을 위해서 최소한의 능력을 갖춰야 하니까), 인재풀과 경쟁력 그리고 군사정권 시기를 거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이고 정치력을 흡수할 수 있었던 군이 육군이란 점에서 정무 능력과 국방 분야의 전문 식견을 갖출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 육군이고, 그 중에서도 비교적 수재인 육사 출신들이 많다는 점이다. 두번째로, 앞선 첫 번째 사항은 다음을 함의하고 있다. 육군의 대한민국 군부와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지는 비중이 매우 막강했다는 점과 아직도 잠재적으로 상당하다는 점이다. 즉, 많이 가지고 있으니 많이 보고 많이 알고, 더 능수능란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육군 편중현상은 단순 병력과 무기, 예산의 편중보다는 인사나 조직 역학 측면에서 육군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행사한다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증거가 국방 장차관 임용의 역사일 것이다.

2.2. 국방부 차관


국방차관의 경우엔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민간인이 임명되었다. 1950년에 임명된 친일 법조인 출신의 장경근 2대 차관이 대표적이다. 즉, 문민통제라도 그 출발은 정권 차원에서 중견급 인사를 보내 군을 정권이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강했던 것이다. 다만 특이한 사례로는 1955년 이승만 정권 때 6대 국방부차관으로 김용우 국회사무총장을 임명된 바가 있다.(앞서 언급한 김용우 장관과 동일인물) 김용우 차관의 경우 당적이 주로 야당-무소속이었다 잠시 자유당에 입당했던 인사로써, 아무래도 미국 유학 출신이란 점에서 정권 주요 인사들과 동질성을 바탕으로 임명된 경향이 있다.
이승만 정권의 국방부 차관을 본다면 군인 출신 장관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민간관료를 많이 발탁했는데, 2대 장경근, 3대 김일환, 4대 강영훈, 5대 이호, 6대 김용우, 8대 최세황, 9대 이희봉이 있다. 주로 법조-치안계가 5명, 앞선 부류 전원이 정치계 경력을 거치고 후에 다른 부처 장관과 국무총리를 하는 등, 민간 인사 명사인사들의 경력 거쳐가기 내지 민간의 갓 실력 있는 신진인사들의 경력을 쌓는 자리로 임명된 경향이 강했다.
4.19 이후 민주당 정권 하에서는 정무/사무차관에 학자, 정치인, 관료, 비전투병과 출신 인사들이 고루 기용되어 문민인사 가용 폭이 비교적 넓어졌다. 이상 양대 정권에서 국방부 차관의 특징은 정말 1년 내외의 잦은 인사이동이 특징이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차관 인사가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대개 2년 이상의 장기 근속이 특징이다. 특히 정권 초인 1961년 12대 이흥배 차관의 경우, 2년 이상 간 차관의 스타팅을 찍고, 공기업, 방송사 사장 등을 역임하여 두루 경력을 갖춘 민간 인사로 활동한다. 이후 관료 출신의 차관들이 꾸준히 임명되는데, 전부 장관급 인사 이상으로 승진하는 면모를 보인다.
박정희 정권은 1978년도까지 민간, 관료 출신의 차관을 기용을 많이 했는데, 이는 단순 재무 뿐만 아닌 외무, 법무 관료도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는데, 군의 조직과 체계를 세우는데 있어 민간의 재무, 법무, 그리고 외교적 지식 내지 관료조직의 효율성을 편취하고자 한 의도가 있다. 또한 이 시기에 관료 조직이 부서에 따른 전문화가 2010년대에 비하면 뒤떨어지던 시기라 일반적 전문 관료가 전성기인 시대였다. 따라서 박정희 정권의 1978년 18대 김용휴 차관의 임명 전까지는, 민간의 일반적 전문 관료가 범용 행정적(재무, 법무, 대외정보 등) 전문성을 토대로 군을 보좌한 측면이 강하다고 봐야 한다.
1978년 18대 김용휴 차관의 임명은 그간 차관 임명 관례를 깼는데, 이는 박정희 정권의 불안과 군 내부 인사 승진 소요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즉, 이때부터 군부의 사조직 세력 등의 활개가 장 차관 인사에서도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향은 박정희 정권이 더 이상 선진국 등의 모범적 사례를 통한 범용적 합리성을 추구하기 보단, 정권 보위적이고 극히 1인 이기적인 독재체제로 들어가는 면모를 보이는 사례이다.
이후 김영삼 정권의 26대 이수휴 차관의 임명 전까지 군 장성 출신이 차관을 독식하는 행태가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1993년 이수휴 차관의 임명은 하나회 숙군의 분위기와 아울러 진행된 것이며, 당시에 상당한 파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회 숙청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군의 불만을 달래줄 요건으로 28대 차관부터는 장성 출신이 재 임용되기 시작했고, YS보다 군 장악력이 약하다고 평가되는 DJ 시기에도 군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군 장성 출신 차관이 임명되어왔다.
특이한 점은 1978년 18대 김용휴 차관부터 중간에 26, 27대 차관을 제외한 35대 황규식 차관까지 모두 육군장성 출신이다. 4명을 제외하고는 육사출신이다. 육군이란 한 군종에서, 그 중에서 한 출신이 15명의 차관을 2006년도까지 28년 간 독식했다는 건, 국방부 장관을 그간 육군이 독식했다는 점을 볼 때, 육군 중에서도 육사 출신이 혼자서 다 처먹는 진성 독식의 폐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능력의 문제도 있을 수 있지만, 장관 자리도 한번은 내줬는데, 차관 자리 두 세번 정도는 해공군 출신을 해줄 수도 있는데 (일례로 이승만 정권에서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출신 이외에 군 출신에서 오로지 육군이란 점은 문제가 있다.
이후 노무현 정부의 말기에 와서야 2006년도 36대 김영룡 차관부터 경제관료 출신의 민간 국방부 차관의 시기가 열린다. 이는 주로 군 예산의 효율성, 절약을 제고하기 위한 취지에서 재정 부문 관료가 차관에 발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국방개혁 2020의 대폭적이 지원과 율곡 사업 이후 팽창하는 군 사업의 관리를 위한 취지에다가, 군에 대한 지원과 인사를 맞교환한 방식이다. 즉, 차관 자리 쯤 돼서야 1978년 18대 김용휴 차관 이후 이루어진 군의 (육군, 육사) 독식이 2006년에서야 민간 경제 관료를 앉히는 자리로 교환이 간신히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되자마자 다시 육군 장성 출신의 차관이 취임한다. 이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로 경제관료가 차관에 취임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도 초반기에는 민간관료 출신이 차관이 되었으나 후반기에 들어서서 다시 예비역 장성 출신이 취임한다.다만 이 점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경제관료 출신의 민간 차관들의 부패와 무능이 작용했다. 대표적 사례로 이명박 정부 시절의 장수만 차관인데, 장 차관은 상당수의 전력증강 사업을 축소하면서 2009년 국방장관과의 마찰을 빚었다. 여기까진 비리라고 볼 수는 없으나 이후에도 장 차관은 실세 차관이라 불릴 정도로 권한을 남용하기도 하였고, 그 결과 함바집 사건이라 불리는 비리로 결국 구속되면서 비리의 정점을 찍었다. 이후 이용걸 차관의 경우에도 방산비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시기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바 있다. 국방부 입장에서는 문민통제가 들어와 국방비로 한몫 할 타이밍을 방해받아 기분이 언짢은데, 마침 무능한 차관들이 실권을 남용해 쫓겨나 주었으니 '문민통제하면 이렇게 된다!' 라는 적절한 핑곗거리까지 생겨버린 것이다. 이러다보니 박근혜 정부도 이러한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외교안보 부문의 컨트롤 타워로 신설한 국가안보실의 실장으로 전임 국방장관, 그것도 육군 대장 출신을 차례로 임명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러한 배경과 관계없이 군에 힘을 싣어준 게 사실이다보니 문민통제 측면에서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2.3. 기타 인원


2014년 3월 기준으로 국방부의 국/실장급 직위는 21개인데 이중에 13개를 현역 군인이나 장기복무 직업군인 출신 전역자가 맡고 있다. 민간인[18]은 8명으로 국방부 전체의 문민화율(약 65% 이상)보다 현저히 낮다. 이 문민화율 조차도 직업군인 출신 전역자가 허수로 섞여든 숫자이다.

3. 원인


민군 양측 모두 근본적인 원인은 문민통제와 그 필요성에 대한 절실함의 차이가 있으며, 초기 문민통제의 실패에서 기인한 강고하게 구축된 역사적 제도적 경로의존성에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문민통제의 상징인 민간인 국방부 장관을 임명할 시 초래할, 군부의 정치적 반발 우려로 위험부담을 진다. 그 다음으로, 민간 차원에서 군사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있는 해외의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 군대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민간 출신의 인사가 아예 없다. 심지어 그럴 역량을 갖출 기반도 없으니 문제다. 당장 국방대학교에 민간인이 입학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수두룩한 상황. 마지막으로 앞선 문제로 우선순위는 계속 미뤄지고, 결국 문민통제도 전략적, 전반적 특징에서 민군관계와 민군협력 차원 문제다. 민군이 협력부터가 제대로 안되니 생기는 문제다.
또한 한국전쟁을 비롯한 초기 문민통제 실패의 트라우마는 국방은 무조건 군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인식의 강고한 저변을 마련한것이 크다. 게다가 장기적 남북대치상황과 긴장유발의 연속이란 환경은 문민통제 인식을 한쪽으로 굳히는 프레임 역할을 했다. 이 양자는 매우 강력하고 실질적인 문민통제 해결을 위해 해소해야 할 문제다.

3.1. 민간


한국에서 문민통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박힌 원인을 꼽자면
1) 한국전쟁의 충격
2) 이승만 정권의 문민통제를 악용한 군부 길들이기 작업 및 정치 음모에 군을 동원하는 논리로 활용한 점
3) 군부 쿠데타를 막지 못한 점
4) 장기간 군부독재로 군에 대한 민간 전문가 양성이 없었고
5) 그 여파로 인해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민간 군사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6) 또한 '''정치인들의 병역비리 사례가 너무나도 많고 민간 정치인들이 군에 대한 무지로 인해 벌이는 논란이 잦기 때문에 국민적 여론이 안 좋아서''' 문민통제 전환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국방의 의무조차 부정한 방법'''으로 이행하지 않은 정치인을 국방부 장관으로 앉히면 과연 이를 납득할 사람이 있을까? 더욱이 군의 사정 및 고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민간 정치인들이 애먼 삽질을 하는 경우가 잦다.
'''신성모가 그 원조'''라 볼 수 없지만, 당시 국군 재창설에 있어서 예비역 장교로 취급받는 해기사가 각종 실전 경험이 있는 독립군과 기타 군 출신을 밀어내고 이승만의 총애로 국방부장관까지 올랐다가, 한국전쟁에서 거하게 몇번 말아잡수시고 나서는 군은 현직 출신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는 인상이 국가적으로 뇌리에 박혔다.
문민정부 이후, 민간 정치인들의 수준도 문제인데. 어느 미필 대한민국 국회의원대한민국 대통령사열을 안 나가면 국군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헛소리를 한 바 있었다. 또한 어느 여성 정치인이 군대를 '''집 지키는 개'''라고 비하해 빈축을 산 바 있었다.
가뜩이나 민간의 역량부족 + 역사적, 제도적 경로의존성으로 문민통제가 부정적인 마당에, 대한민국의 사회적 자본 중 하나인 공적 신뢰의 붕괴가 문민통제 확립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특히 병으로 국민개병제 군생활을 먼저 겪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민통제는 무지의 영역이거니와 군 간부를 통해 들은 왜곡까지 껴있다. 특히 군생활을 먼저 한 장병들 모두 문민통제를 "군대에 대한 민간인의 간섭 = 빽 써서 땡보직 = 금수저 물고 편한 군생활"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여기에 나만 당할 수 없지라는 피해의식까지 겹치다보니 문민통제에 대한 인식도 전무하고 되려 더 가혹한 통제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문민통제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것이다.
즉 정치인의 병역기피 및 국민 대다수의 군대에 대한 무지라는 요소로 인해, 민간 정치인을 군을 통제할 중책에 임명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 이러한 인식의 한계상, 하루아침에 민간 출신 인물을 국방장관을 비롯한 고위직에 임명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19] 따라서 문민통제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민간 출신의 군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의 해결책이 필요할 것이다.

3.2. 군


윤광웅 前 장관의 경우 해군참모차장으로 예편한 중장 출신이었는데 장군들, 특히 육군, 특히 그 중에서도 민병돈에게는 떨떠름한 반응을 얻었음에도 문민 관료들에게 크나큰 지지를 받았다. 물론 당시 참여정부의 성향을 고려한 인사이긴 했지만 '''별 개수 하나만 줄었음에도''' 문민 관료들이 크게 좋아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20]
군인들의 착각과는 달리 신성모가 국방장관이던 시절은 '''민간이라서가 아니라 이승만이 자기 친구들을 대거 앉혀놔서 생긴 병폐일 뿐'''이다. 사실 신성모는 전시에 준군인 대우를 받는 상선사관 출신이었기 때문에 온전한 문민통제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아니, 애초에 '''신성모는 중화민국 해군에서 복무한 적이 있으며 한국 해군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신성모만 꼴통이 아니라 최인규 역시 신성모 못지 않은 꼴통이었지만 분야가 내무부전쟁과 하등 상관없는 분야였기에 자리유지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많은 군인들은 이게 민간이라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장성 출신 국방장관을 고집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대한민국 역사상 타 부처 장관 출신 국방장관은 '''단 한 명도 없는 상태'''이다. 다만 현역/예비역 장성들이 '''모두''' 고강도 문민통제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은 편견이므로 주의하자.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장성들 사이에서도 현재의 유명무실한 문민통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이 쪽에서 강한 목소리를 내는 장성 출신 인물로는 해군교육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해군준장 강영오 제독 등이 있다.

4. 필요성


일각에서는 국방위에서 현직 군인들을 불러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두고 정치인이 군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문민통제란 개념이 애초에 정치인과 관료가 군을 통제하는 걸 뜻하고 한국 헌법에서도 현직 군인이 국무위원을 겸할 수 없다고 하여 문민통제를 명시해두고 있다.
특히 정치인이 군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은 군국주의 국가에서 군 통수권자인 국가원수가 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군대를 통제하는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독재국가들이랑 구 독일제국이나 일본제국 같은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논리이니 주의하도록 하자. 이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이런 걸 시키는 사례가 이미 과거에 존재했기 때문. 따라서 '''민간인이 군에 간섭하면 안된다 = 옛 군사정권으로 돌아가자'''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마인드는 꼭 문민 통제, 국군과 병역의무의 문제점같은 뿌리 깊은 부조리의 피해자들인 군필자들, 잠재적 해자들인 미필자들을 넘어서 과거 수많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민주화에 기여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신 수많은 분들을 모욕하는 행위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국가원수가 군을 통제하는 것은 한계가 극명하기 때문에 사실상 군이 자기 마음대로 놀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인사권에서 각 군 본부는 청와대와 자주 갈등을 빚는 편이다. 특히 대한민국 육군이 그런데 장기적인 군 감축 계획에서 해군과 공군은 상비전력을 줄이면 전투력이 급감한다는 이유로 제외된 반면에 육군이 주 대상이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 재직 당시부터 청와대와 계속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권교체가 되면서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 생각했지만[21] 청와대의 대통령실장이나 민정수석 쪽에서 확실히 문민통제를 위해 인사권을 장악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군을 두둔하는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청와대 고위관료들이 갈등을 빚었다.
다만 정치인이 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우리나라 역사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떡밥이라는 행정학적 맥락에 따라서는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군의 정치화라는 것은 군 내의 일부 정치군인들이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정치인들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군대를 끌어들이면서 촉진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인 제1공화국 당시 이승만 정부가 발췌개헌이나 4.19당시 군대를 끌어들이고(이 경우는 친위 쿠데타로도 볼 수 있다.) 군 내 특무대를 이용해 용공사건을 만들어낸 경우를 들 수 있다. 오히려 이 시절에는 훨씬 군대가 그나마 선을 지킨 축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군인이건 민간 관료건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과 관해서는 두 가지 딜레마에 놓여 있다. 하나는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대통령의 민주적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면과 다른 하나는 공무원의 전문성, 공직관, 양심 등에 근거해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No라고 할 것은 No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문제다. 그런데 민주적 통제를 지나치게 중시하면 오히려 공무원 조직이 정치꾼의 도구가 될 수 있다.[22] 반대로 공무원이 전문가의 소신이라는 이유로 정치권의 통제를 거부하면 그것 역시 민주주의 관점에서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결국에는 둘의 조화를 상황에 따라 적절히 이뤄내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 일률적인 정답을 도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5. 절충 방안


절충 방안으로는 1. 미국식 방안, 2. 유럽식 방안, 3. 일본식 방안이 있다. 간략히 미국식 방안은 민간 청장 밑으로 군 최고 지휘관을 배속시키거나 동급으로 임명하는 방안이다. 특히 미국은 국방부 창설이전 전쟁부 장관, 육군부 장관, 해군부 장관이 민간인으로 역임한 바 있다. 유럽식 방안은 군도 사회이므로 사회의 민간인이 수장이 되는데 어려움이 없으며, 군은 이에 협조하고 민간도 같이 협력한다는 모델이다. 일본식은 소위 사복조와 제복조 간의 균형으로 이루는 방식으로 방위성 대신 밑에 정무차관은 사복조가 사무차관은 제복조가 맡는 방식이다.
일단 미국식을 검토한다면 국방부에 일단 군 출신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되 전역한지 5년 이상 경과한 사람을 임명하도록 하고 국방부 차관은 무조건 민간인으로 임명한다. 또한 각 군 청을 신설하여 각 군은 이 청에 배속시킨다. 그런즉 육군 최고사령관은 육군청장, 해군 최고사령관은 해군청장, 공군 최고사령관은 공군청장을 임명하여 미국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조를 개편한다.
이 각 군 청장에는 군 출신이 아닌 민간인을 임명한다. 이게 잘 정착되면 이제 국방부 장관을 타부서에서 장관을 역임한 사람에게 임명시킬 수 있는데 노동부 장관 → 내무부 장관 → 국방부 장관의 테크를 타면 된다. 사실 규모가 넘사벽으로 큰 미군을 제외하면 문민통제가 제대로 시행되는 일본, 서방 선진국들도 민간인 출신의 각군 청장이 따로 없고 각군의 최고 선임은 한국과 동일하게 현직 군인인 각군 참모총장이므로, 제대로 된 민간 국방전문가를 국방장관과 차관에 임명해도 한국군 규모에서는 민간통제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다만 이 때에는 국방차관이 제대로 권한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장급 장교의 의전을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재조정하고 국방차관이 합참의장보다 의전순서에서 우선할 수 있도록 조정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미국식 개편의 문제점은 옥상옥 문제와 칸막이 행정으로 인한 3군간 소통이 되레 칸막이를 나눔으로써 더 행사가 안되는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장관자리도 아닌 청장자리를 늘리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 상 국회 견제 없이 군을 장악할 여지로 보이기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식의 요건 강화가 필요하고, 국방부의 규모 비대화 우려를 불식시킬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현재 국방부가 각 군에 위임한 경우가 많아서 그 조직이 어찌 돌아가지, 문민통제를 위해서는 통제조직을 설치하고 감시 감독할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방부 조직 확장은 필연적이다.
유럽식의 경우 그 저변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고, 군의 규모가 과거 만큼 크지 않아 1990년대 이래로 각종 파격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장 한국의 현실에서 검토하기 힘들다.
일본식은 앞서 언급한 국방차관의 의전서열을 높이고 민간인을 임명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비교적 현실적으로 보이나, 민간분야의 역량이 뒷바침 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실세차관 논란에 있어서 부패방지를 위한 견제가 필요하다.
한국에 맞는 제도를 찾는다면, 당장 대장 및 중장에 대한 장관급 및 차관급 예우를 일제히 격하하긴 힘들다. 그러므로 국방부 장관 밑에 복수의 국방차관을 두어 정무차관 사무차관을 두는 방식 (일본식) 혹은 국방부 장관 밑에 복수의 정무차관과 육군차관, 공군차관, 해군차관 각 1명을 두어 미국식 제도를 한국 관료 조직에 맞게 이식하고, 육해공 차관은 육해공 참모총장과 동일서열로 하면서 국방부 장관 이하 서열을 1. 합동참모의장 2. 국방부 정무차관, 3. 3군 총장, 4. 3군 차관, 5. 1~3군, 한미연합 부사령관 식으로 바꾸는 방법은 있다. 무엇보다 점진적으로 장성의 의전 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예포

6. 현황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자 국방장관을 민간 출신 중에서 임명하겠다고 선언했다.[23] 물론 성우회에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이 와중에 사드 반입에 대한 보고 누락엔 이런 문민통제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결국, 순수 민간 출신은 아니지만 전역한 지 9년이 지난 해군 출신인 송영무 前 해군참모총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사실 미군도 전역 후 10년 이후에는 국방장관에 앉을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간의 국방부 장관 관례에 비추어보면 민간인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2018년 7월 5일 불거진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으로 국민들에게서 군사조직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높아져 문민통제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2018년 8월 30일 송영무가 경질되고 후임으로 합참의장에 부임한 지 고작 1년이 넘은 현역 4성장군인 정경두 공군 대장이 하마평에 오르면서 순수한 의미의 문민통제로 가는 길은 다시 멀어져 버렸다.
다만 외국처럼 국방장관직에 단기복무자 내지 순수 민간인 출신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육군이 아닌 해, 공군 예비역 장성을 임명하는 것만으로도 문민통제의 의의를 실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시선도 있다. 제6공화국 성립 이후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다 기무사의 계엄령 모의 사건까지 반세기를 넘는 군사 쿠데타의 상흔에서도 알 수 있듯,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측은 육해공군 중에서도 육군이 가장 심하며 그 중에서 육군사관학교 카르텔에 대해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때문에 육사 카르텔을 깨트리는 것만으로도 일정부분 문민통제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온건책'을 견지하는 시선에서는 아직 장성 출신 장관에 익숙한 국방부의 업무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일부러 문민 장관만 고집하기보다는 전역한지 오래된 타군 장성 출신 인사를 보임하는 것이 점진적이지만 더 안전한 쇄신이라 여긴다. 실제로 참여정부에서는 해군 3성제독 출신 윤광웅 장관의 임명으로 쇄신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의 첫 인선인 송영무 장관 역시 해군 출신이다. 비슷한 이유로 합참의장 등 제복군인 인사도 공군 출신인 정경두 대장을 합참의장에 임명했고, 그 후임인 박한기 대장 역시 비육사 출신(학생군사교육단)이며 기무사-군사안보지원사령관에도 마찬가지로 학군사관 출신인 남영신을 임명하는 등 비육군-비육사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2019년 5월, 박재민 신임 국방부 차관을 임명했는데 눈에 띄는 것이 그 '''국방부''' 차관임에도 불구하고 '''병역면제'''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이를 문재인 정부의 문민통제에 대한 의지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7. 기타


  • 국민의 기본권 따위 개무시하는 대한민국의 시궁창스러운 병역의무 개선에서 특효약은 국방안보분야, 특히 국방장관직의 강력한 문민화라는 의견이 지금도 작은 목소리로나마 들려올만큼 국군의 문민통제에 대한 떡밥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로 독일의 여성 국방장관은 캐치프레이즈가 "독일연방군을 국내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대놓고 군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참고로 이 사람은 군대 문턱에도 가지 않은 사람이며, 이전에 담당한 직책도 여성가족부 장관노동부 장관이었다.

8. 관련 문서


[1] 다만 국내정치 한정인지 해외정치나 외교, (사회주의를 제외한)정치사상까지 포함하는지 명시한 판례는 현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2] 일반인들도 아니고 무려 '''대선 주자'''였던 사람이 이를 문제삼으며 대통령이 되면 군 인사권을 국방부에 반환시키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게다가 이 점에 대해서는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는데 이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문민통제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심지어 부정하기까지 하는가를 알 수 있다.[3] 예비역들 중 일부는 군인권센터에 부정적이다. 소장이 병역 거부를 한 사람이라는 이유. 하지만, 이 건 나이 좀 있는 사람들. 민방위쯤 되는 사람의 얘기고, 대부분의 예비역들은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인식이 팽배해서,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을 계기로, 군 경력자가 군대에 대한 요직을 맡는 것을 2024-11-05 03:37:54 현재까지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저 의무병 살인사건은 '''국방부에서 덮어버리려고 했었으며''' 한민구의 '''생계형 방산비리''' 발언 때문에 점차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4] 일반인들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인 출신 장관이 조직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겠지만, 유력 정치인 출신 장관이라면, 부처의 안건이 우선순위로 국무회의 의제로 오를 수도 있고, 대통령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 즉, 조직의 목소리가 보다 더 커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산을 타내는데 굉장히 유리해진다. 세상은 예산으로, 즉, 돈으로 움직이지 않던가.[5] 일본 같은 경우는 실질적인 업무는 관료 출신인 사무차관이 대부분 한다. 그래서 해당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장관으로 와도 큰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6] 다만 병영부조리나 군납비리 같은 것은 군에 민간이 간섭하지 않으면 절대로 못 잡는다.[7] 다만 아이젠하워처럼 오히려 군 장성이었기에 군납비리, 군과 군납기업이 예산을 타내는 꼼수를 속속들이 잘 알고 차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아이젠하워에게 통제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8] 고대 시절부터 군사력은 권력을 잡고 통치를 하는데 있어 1순위로 필요한 능력이었다. 당장 타국의 정권을 쫓아내고 자신이 통치하기 위해서는 무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자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단 무력이 있다면 통치가 오래가진 못할지라도 최소한 현존하는 정권을 뒤엎을 힘은 확보할 수 있다.[9] 사실 중국도 어마어마한 인구 덕에 강대국 지위를 누리는 거지, 국가 자체는 아직 개도국 수준이다.[10] 정작 본인은 아버지 집권 시절, 사병 혁파의 요구를 거부했다. [11] 다만 무관인 서반직의 최고 아문인 중추부는 종1품관을 수장으로 하는 곳이며 , 당장에 임진왜란 직전에 신립은 정2품 한성부판윤을 맡은 적이 있고, 국초이기는 하지만 태종대에 조영무, 세종대에 최윤덕, 세조대에 홍달손은 정1품 정승자리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12] 군수, 행정에는 유능하나 야전지휘관으로는 영 아니었던 채병덕 등.[13]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민간인 신분이 아닌 합동참모의장 보직의 군인 신분으로 육군 정복을 입고 청문회를 치렀다. 통과하면 바로 군복 벗을 예정이었던 것.[14]정경두는 지명 당시 합참의장 임기를 절반가량 남겨두고 있어서 그랬는지,원래 문재인이 부를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원래 부르려고 했던 사람은 퇴역한지 꽤 되었던 전직 합참의장 이순진이었는데,그가 거절하여 어쩔 수 없이 부른 것이었다고.[15] 대전 직후까지 일본과 영국의 해기사는 예비역 해군장교로 간주되므로 문민이라고 보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16] 하지만 육군 대장 출신의 국방장관 노재현도 12.12 반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도망다니다가 반란을 진압할 기회를 전부 날려버렸다.[17] 노무현 정부 말기에 청와대가 해군 중장 출신인 윤광웅 후임으로 국회 국방상임위원장 경력이 있는 유재건, 장영달 열린우리당 의원을 군 출신이 아닌 문민 국방장관으로 검토한 적은 있다. 당시 청와대에서도 심도있게 고민을 했으나, 결국은 육군 대장 출신이었던 김장수가 임명되었다.[18] 남성 사병 전역자나 단기복무 장교, 면제자 출신. 국방부에서 여성 고위공무원은 2015년에 처음 배출되었다.[19] 수십 년간 군 출신 국방장관이 보임하던 자리에 갑자기 민간 출신 인물이 들어오면 조직 장악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분야가 다르지만 참여정부 시절 기수나 서열을 무시하고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을 때 비슷한 문제가 생겼던 적이 있다.[20] 별 개수 하나만 줄이는걸 떠나 5년이 지났기 때문에 문민이 될수 있으며 또 다른 사례는 전역한 지 5년이 넘은 권영해 전 장관과 7년이 넘은 이준 전 장관이다.[21] 아무래도 보수 정권이 민주당 정권에 비해 군부와 훨씬 친한 것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22]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교과서 제작 당시 위에서 시킨대로 한 교육계 공무원들이 정권이 바뀌니 적폐로 몰린 것을 들 수 있다.[23] 참고로 문재인은 특전병 병장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