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역대 왕비
1. 개요
신라의 역대 왕비 목록을 서술하는 문서.
한국사에서 유일하게 여왕이 있었던 나라인데, 이 경우 추존된 국서(남편)를 국왕 명단에 올리고 그 배우자로 간주한다.
2. 목록
2.1. 상고 박씨
2.2. 상고 석씨
2.3. 상고 김씨
2.4. 중고
2.5. 중대
2.6. 하대
2.7. 후삼국시대
3. 여담
신라 초기 왕실 여성들의 명칭에 알(ar) 발음이 들어있는 경우를 여럿 확인할 수 있다.
- 알영부인
- 아로공주
- 운제부인의 별칭인 아루부인(阿婁夫人).
- 아효부인의 별칭인 아로부인(阿老夫人) 및 아니부인(阿尼夫人).
- 아이혜부인
- 아류부인
- 차로부인의 별칭인 아로부인(阿老夫人).
- 월명부인의 별칭인 아니부인(阿尼夫人).
[1] 아로부인(阿老夫人), 아니부인(阿尼夫人)이라고도 불린다.[2] 아로부인(阿老夫人)이라고도 불린다.[3] 삼국유사 원문에는 기보 갈문왕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습보의 다른 표기인 사보의 오기로 본다.[4] 거칠부의 할아버지 잉숙과 동일인으로 여겨진다.[5] 이사부는 내물 마립간의 4세손 또는 5세손인데, 처음으로 발령받은 곳이 현재의 울진군에 해당하는 실직주이다. 벽화부인이 현재의 영주시에 해당하는 날이군 출신이기 때문에 1세대의 항렬차가 확실시되는 이상 가장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6] 삼국유사에는 사축부인(巳丑夫人)이라고도 적혀 있는데 파도부인(巴刀夫人)의 오기로 보인다.[7] 김서현과 만명부인, 김춘추와 문희의 일화에서 나오듯 같은 진골끼리도 가문의 격이 차이가 나면 역사기록에 남을 에피소드를 만들 정도가 아닌 이상 혼인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성골과 하위 골품간의 혼인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8] 어머니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승만부인은 삼국유사에서만 나오는 인물이기에 삼국사기 기준으로 작성했다.[9] 알천의 후손으로 보인다.[10] 점물왕후(占勿王后)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순우리말 참의 음차이다.[11] 사로 6부 중 하나인 사량부에서 이름을 땄다. 삼모부인(三毛夫人)이라고도 불린다.[12] 금관가야계로 보인다.[13] 경수왕후(景垂王后)나 경수태후, 경목왕후(景穆王后)라고도 불린다.[14] 바로 위에 나오는 김순정의 아들이다.[15] 아버지인 김장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16] 소덕왕후는 입궁한 지 4년만에 사망하므로 세 명을 낳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반대로 성정왕후는 입궁한 지 11년 뒤에 폐출되므로 한 명만 낳기에는 시간차가 크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태자 책봉은 꽤 어린 나이(약 3~5세 경)에 진행되므로 김중경의 출생은 입궁 후 7년차 정도로 예측되고, 따라서 앞에 추가적인 자식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남편인 김효방이 734년 사망하기 때문에 그녀가 그 당시에 기혼녀였다면 적어도 719년 이전에는 태어났을 것이다.[17] 삼국유사에는 각간 낭품으로 기록되어 있다.[18] 파진찬 김원량의 누이[19] 파진찬 김원량의 딸[20] 혜충태자의 자식들인 김충공과 귀보부인이 서로 결혼하므로, 둘은 어머니가 달랐음이 확실시된다. 희강왕이 혜충태자의 아들로도 언급된 기록이 있는 점을 봐서는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추정된다.[21] 정목왕후(定穆王后)라고도 불린다.[22] 명(明) 돌림자는 혜충태자들의 손자들이 공통적으로 쓰던 항렬자인데, 만약 이 김○명이 헌덕왕의 태자와 동일인이라면 정계부인의 어머니는 정교부인이 된다. 이부남매끼리 혼인한 것.[23] 왕비 박씨와 왕비 김씨 중 한 명의 이름은 소명왕후(炤明王后)이다.[24] 의명왕후(義明王后)라고도 불린다.[25] 장사택(長沙宅)은 금입택 중 하나로, 집안이 금입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유력한 진골귀족었던 것으로 보인다.[26] 경애왕 시해 후 견훤에게 강간당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존재는 확실하다.[27] 흔히 경순왕의 아내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고려사 원문에 분명히 (931년 기준) '''신라왕태후 죽방부인'''(羅王太后竹房夫人)이라고 나와있다. 다만 실제 경순왕의 어머니 이름은 "계아"이고, 태황태후 역시 황태후의 일종임을 감안하면 그녀는 김인경의 아내로서 경순왕의 할머니라는 신분으로 태후 직위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28] '부인 왕씨'으로도 불린다. 작호도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