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 오사
1. 개요
我軍誤射, friendly fire[1]
착각 또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적군이 아닌 아군에게 사격하는 행위.
2. 상세
서방 연합군의 모든 무기가 우리를 적기로 간주하고 있었죠. 불빛이 비치고 무장 시스템에게 조준당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헬기에 아군이라는 걸 알려주는 센서같은 IFF 장비가 붙어있긴 하지만... '''그게 제대로 작동한다는 보장이 있어야 말이죠'''.
- 제임스 '스쿠비' 뉴턴 영국 해군 항공대 중령 - NGC '에어파이터' <헬리콥터 VS 탱크> 편
사상자 종합조사에 의하면 (치명상과 비치명상 둘 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 '''21%'''는 오사 사고였고, 베트남전의 사상자는 '''39%''', 걸프전에는 '''52%'''까지 올라갔다.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전와 아프간전에선 각자 비율이 '''41%'''와 '''13%'''라고 한다.[2]
- 존 크라카우어, 서적 Where Men Win Glory: The Odyssey of Pat Tillman에서
잘 훈련된 적보다 더 위험한 것은 훈련되지 않는 아군이다.
-영화 7급 공무원(영화)에서
전장에서 아군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군대에서는 이론상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나 고대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이는 보병끼리의 사격에서부터 전투기, 함포, 미사일 등 온갖 무기에서 자주 발생하는 경우다. 전자적으로 아군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각종 센서나 전자장비를 붙여놔도 꼭 발생하는 문제.[3]적의 사격 보다 '''더 정확한 건''' 아군의 오인 사격이다.
-군인들의 충고.
이건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된 문제인데 치열한 혈전 와중에서는 ''''아군을 쏘지 않게 조심해야지'''' 보다는 ''''난 살고 싶다!'''' 가 엄청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병사들은 불확실한 표적이라도 일단 모든 화력을 동원해 처리하고 나서 상황을 본다.
그래서 아군시체들을 잘보니 피격부분이 아군이 있던 방향에 쏠려있다거나, 지상군끼리 안개 속에서 실컷 치고박고 싸우다가 안개 개고 나서 보니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더라... 라는 이야기는 창칼 맞대고 싸우는 시절부터 있던일이고 교전 거리가 늘어난 이후 전투는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 태평양 전쟁에서 키스카섬 상륙작전 시 실제 발생하기도 했을 정도니 말 다한 셈. 심지어 당시 키스카섬에 있던 일본군은 이전에 다 철수한지라 한 명도 없었다고.
심지어 전투기끼리도 정신 없이 공중전을 벌이다가 쏘고 보니 아군인 경우도 제법 많다. 이때문에 전투기에 크게 국적 마크를 그려놓고 독특한 무늬를 그려넣기도 했으며 심지어 위장색을 포기하고 아니면 최소한 기체 밑면이라도 빨갛거나 노란 무늬를 그려넣기도 했다.
레이더와 각종 전자장비가 발전한 현대에 와서는 직접 눈으로 보고 적기를 쏘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장비에 의존하다 보니 아군 오사 확률이 더욱 늘었다. 스크린/디스플레이 상에 찍혀있는 점만 보고 이것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쉽게 알아낼 수 없기 때문. 보통은 "그 위치에는 아군이 없는 것이 확실" 이라든지 전자적인 피아식별장치 등으로 확인하지만 급박한 전장에서 아무리 조심을 해도 꼭 아군 오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F-4 전투기들은 아군 오사가 여러번 나서 AIM-7 스패로우 중거리 대공 미사일을 탑재하고도 "반드시 눈으로 적기를 확인한 후 발사할 것" 이란 명령을 받는 통에 전혀 AIM-7을 사용하는 이점을 누리지 못한 경우도 있다. 사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명령이 나온 것이다. 전쟁시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행기의 경우 IFF 달고 별짓을 다 한다. 현재 대부분의 교전은 BVR교전인데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 아군 전투기를 오인하여 격추하는 사고는 줄어든 편이다.
하지만 조기경보기의 통제와 정보를 정확히 받아서 지시대로 정확하게 날린 미사일이 IFF가 정상적으로 달리고 제대로 동작하는 아군 헬리콥터에 정확하게 명중하는 등 현재도 아군 오사를 100% 막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투기, 폭격기들이 지상공격 중 아군 오사를 하는 경우도 물론 적지 않다. 이런 것은 눈으로 확인해도 항공기들이 워낙 빠르다보니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선통제기 같은 별도의 항공기들이 지상의 아군, 적군을 확실히 구별해주고 특히 어느 적군부터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 동료 아군기들에게 기관포나 연막로켓 같은 것으로 지시해주기도 한다.
이때문에 40mm 고사포급은 전시에 125m 평시에 500m 안에, 105mm야포는 전시 200m에 평시 650m 안에 아군이 없을시 사격하라고 한다. 실전에서도 이렇게 자주 일어나다보니 실전과 유사한 군사 훈련에서도 흔히 일어난다고 한다.
파손 혹은 보급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장비나 운용인원을 초과하는 잉여장비를 가지고 갈 수 없을 때 적에게 넘겨주느니 스스로 파괴하는 경우는 본문에서 설명하는 '팀킬'이나 '아군 오사'라고는 볼 수 없다.[4]
또한 적군이 아군 거점을 포위하거나 돌파해 진내가 위태로울 경우 데인저 클로즈 신경쓰지 말고 쏟아부으라고 요청하는 '진내사격(브로큰 애로우)'도 있다. 물론 이것도 현장에서 요청하면 숭고한 희생으로 평가받지만, 상부가 멋대로 해버리면 결과를 떠나서 상당히 잔혹한 행동으로 평가받는다.[5]
한국 남성 대부분이 가게되는 군대에서도 마일즈 훈련[6] 을 할때 시야가 차단되는 야간전 상황이면 아군오사를 심심찮게 겪을 수 있다. 피아 식별을 위한 암구호를 빠르게 말하지 못해 사살당하는 경우부터 정말 다양한 아군오사 상황을 겪거나 목격할 수 있다.
3. 분류
- Broken Arrow: 적들의 공격에 기지가 돌파당할 위험이 있는 경우 아군 오사를 감수한 지원 폭격, 포격을 요청할때 사용한다.
- Blue on blue: 아군의 공격에 의해 발생한 상황.
- Friendly fire: 아군오사라고 부르는게 정확한 표현이며 의미상 엄청나게 완곡한 표현이다.
- Fratricide: 문자적으로 동족살해라는 뜻이며 군사학에서 격식 갖춘 표현으로 나오기도 한다.(라틴제 Fratri 형제 + cide 살해하다다
- Fragging: 고의적인 아군 살해/암살. 상관살해로 한정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은 상관, 동료 상관없이 아군을 증거를 안 남기는 수법을 써서 주로 수류탄이나 뒤통수 사격으로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4. 사례
아래 언급된 사건 이외에도 아군 오사 사건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애초에 현대전 이전 시대의 전투 방식은 대부분 백병전이였기 때문에 악에 받쳐 싸우다가 앞에 있던 전우를 찌르는 일은 모든 전투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특히 난전의 경우에는 더더욱 아군을 판별하기 어렵다. 그나마 현대전에서나 사고율이 줄어든 것.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지 모른다'''.
4.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 장미전쟁 시절 바람 방향이 급격히 바뀌는 바람에 아군이 쏜 화살에 적군 뿐만 아니라 아군까지 맞아 숨지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 스페인의 전설적인 아나키스트 혁명가였던 부에나벤투라 두루티는 1936년 11월, 마드리드 꼼플루텐세 대학 공방전에서 건물을 점령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도중 아군 총기에서 오발 된 총탄을 맞고 숨졌다. 그가 속했던 전국 노동 연맹 측에서는 프란시스코 프랑코군의 저격으로 사망했다고 하나, 후일의 수기, 인터뷰, 정황을 봐도 아군의 오발로 숨진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4.2. 제2차 세계 대전
- 오토 카리우스 휘하의 야크트티거 구축전차 4대가 작전을 수행했다.[8] 진격하던 도중에 갑자기 앞에가던 1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승무원들이 대피하는 결과가 나왔다. 화재의 원인은 야크트티거를 미군전차로 오인한 국민돌격대 소속 판처파우스트사수의 오인사격이였다.
- 괌에 주둔중이던 미군 부대 한 곳에서 박격포 영점을 잡으려고 시험 사격을 했다. 이때 반대측에 있던 부대에서는 이것이 일본군의 공격인 줄 알고 곧 해당 방향으로 사격을 퍼부었고 이내 양측간의 치열한 교전이 이뤄졌다. 결국 이 두 부대가 서로 팀킬 중이란 것을 안 것은 두 부대 모두 똑같은 아군 포병 부대에게 서로의 위치로 지원 사격을 날려달라고 요청했기 때문.
-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셰필드가 앞장서서 정찰하고 뒤이어 아크로열에서 소드피시 뇌격기들이 출동했는데, 셰필드에게 내려진 명령이 아크로열과 상관없다며 무시한 소드피시들이 셰필드를 비스마르크로 착각하고 그대로 뇌격을 가했으나 어뢰의 성능 불량과 셰필드의 회피기동으로 간신히 팀킬은 피하게 되었다. 만약 뇌격이 성공했다면 후드가 격침되고 이후 과정에서 아군 팀킬로 경순양함 하나를 또 날렸을 테니 영국 해군 입장에서는 이미 구겨진 자존심이 더 완벽히 무너질 뻔했다.
- 노르망디에서 미군 폭격기 부대가 2번에 걸쳐서 아군 지상군을 오폭, 미국의 대전차자주포를 참 싫어하시는 육군 장군을 포함한 241명이 사망했고 620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2차대전 중 일어난 팀킬 중 최대 피해기록.
- 미국의 A-36 공격기 편대가 아군 전차부대를 계속 공격해댔다. 전차부대는 아군임을 알리는 노란색 연막탄을 황급히 뿌렸지만 A-36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공격해왔다. 별 수 없이 전차부대는 대공포로 반격하여 A-36을 격추시켰다. A-36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타고 내려와 아군에게 잡혔고 왜 연막탄을 보고도 계속 쐈냐고 추궁하자 "어라? 그게 그거였어?"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일 때문에 미 육군 지휘관인 오마 브래들리가 소환되기도 했다.
- 미국의 신형전투기 P-51 머스탱의 초기형은 독일군의 Bf109와 닮은 형태 때문에 전쟁 초반에 아군 대공포에게 팀킬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심지어는 아군 폭격기 기관총 사수가 오사를 한 걸 알고서 허위보고를 했는데 그게 전과로 기록된 사례까지 있다. 이 때문에 P-51은 기체에 도장을 하지 않았고, 은빛날개 머스탱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이 때문에 독일 대공포병들 사이에 유행하던 농담 '위장색 전투기는 영국 공군 전투기고, 은빛 전투기는 미군 전투기고, 투명색(...) 전투기는 독일 전투기이다'라는 농담이 생겼다.
- 미군 폭격기들은 상하로 고도차이를 두고 밀집대형을 했는데 폭격 중에 대형을 잘못 맞추면[9] 위쪽 폭격기에서 떨어진 폭탄이 아랫쪽 폭격기를 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보통 폭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폭탄은 폭격기로부터 일정거리 이상 떨어져야 신관이 활성화된다) 100kg 넘는 쇳덩이에 부딪히는 셈이기 때문에 맞은 부위가 부러져 나가거나 해서 추락하는 경우도.
- 영국의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는 자기들끼리 격추시키기도 했다. 그러니깐 스핏파이어가 스핏파이어를 오인 사격한 것. 물론 타 전투기와 대공포에게도 열심히 팀킬당했다. 그리고 스핏파이어의 첫 격추는 적기로 오인한 아군 허리케인 2대를 격추시킨것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날 아군 대공포에 의해 스핏파이어도 첫 격추를 당했다.
-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군 사령관이었던 이탈로 발보는 폭격기를 개조한 정찰기에 타고 아군의 진영(리비아 상공)을 순찰하던 중 이것을 적의 정찰기로 오인한 이탈리아 순양함의 대공포의 사격에 맞아 격추당해서 사망. 팀킬의 대상이 하필이면 최고 사령관이라니 흠좀무... 당시 이탈로 발보와 무솔리니의 사이가 안 좋았던 때라 무솔리니의 지시에 의한 암살이라는 음모설이 돌기도 했었다.
- 2차대전 후반의 영국의 글로스터 미티어전투기도 많이 당했다. 이는 당시 제트 전투기가 매우 희귀한 존재인데다 그나마도 독일의 Me262가 더 많았기에 자주 팀킬을 당하자 이걸 방지하고자 도색을 다르게 하는 노력도 했다.
- 과달카날 해전에서는 야간에 전투가 벌어진 탓에 팀킬이 발생했다. 캘러헌 제독이 탑승한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는 어둠 속에서 적이라고 생각되는 대형 구축함이 흐릿하게 포착되자 포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 대형 구축함은 미군 경순양함 애틀랜타였고, 하필 포탄이 함교에 명중하는 바람에 애틀랜타에 탑승했던 스코트 제독이 사망했다.
- 독일 공군은 전쟁 말기인 1944년 겨울 아르덴 대공세 지원을 위하여 동시에 수백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날려서 연합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들 중 적잖은 수가 같은 독일군 대공포에 맞아 떨어졌다. 당시 독일군은 막장테크를 타고 있던 중이라 제공권을 완전히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공포 사수들은 "하늘에 떠있는 은색 전투기는 미군 것, 얼룩무늬 전투기는 영국 것, 안 보이는 전투기는 우리 것" 이란 농담을 할 정도였고 "하늘에 우리편 전투기가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저건 적군" 이란 심정으로 팀킬을 자행한 것. 물론 지휘부에선 사전에 대공포 진지들에게 '정해진 시간에 아군 항공기가 이동하므로 사격하지 말것'이라고 통보를 했지만, 날씨나 보급 등의 문제로 인해서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한 독일 공군 항공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앞서 말한 막장 테크 때문에 대공포 부대가 겁에 질려서 무턱대고 사격한 사례도 많았다.
이 당시 900대의 전투기가 이륙해서 그중 300대가 아군 대공포에 팀킬당했다. 독일 공군 역사상 하루 동안 발생한 항공기 손실 중 최고기록.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을 때도 이렇게 한 번에 많은 항공기가 격추당한 적은 없었다. 독일 공군은 결국 이 팀킬과 작전 자체의 피해로 인해 사실상 회복 불능이 되었고, 이후 다시는 정규 작전을 시행하지 못했다.
- 아이오와급 전함 1번함 아이오와는 어뢰사격 훈련을 하던 플레처급 구축함 윌리엄 D. 포터가 발사한 실탄 어뢰에 맞을 뻔했다. 항해 중 이루어진 모의 발사 훈련인데, 어뢰 담당자가 발사관을 비워두지 않은 것. 당시 훈련을 위해 무선침묵이 시행중이라 윌리엄 D. 포터는 발광신호를 보냈는데, '어뢰가 아이오와 반대편으로 발사됨' , '어뢰가 전속으로 후진중' 으로 잘못된 신호를 보내서 결국 무선침묵을 해제하고 무전으로 어뢰 발사 사실을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아이오와에는 대서양을 건너 테헤란 회담에 참석하려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탑승 중이었다.[10] 일단 어뢰를 회피한 아이오와는 윌리엄 D. 포터를 향해 16인치 주포 9문을 모두 조준한 채 방금 발생한 사태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윌리엄 D. 포터는 즉시 함대에서 쫒겨나 버뮤다의 해군 기지로 귀환해야 했고,[11] 시국이 시국인지라 기지에 도착하자 마자 승무원 전원이 대통령 암살미수 혐의로 전부 체포당했다. 결국 암살미수 혐의는 벗었지만 어뢰 담당자가 노역형 14년을 선고받는 것을 비롯해 관련자 여럿이 중형을 받았다. 루즈벨트가 실수로 그런 것이니 사면해 주자고 해서 실제 실형을 산 사람은 없었지만, 이후 윌리엄 D. 포터를 만나는 미군 함선들은 '쏘지 마라! 우리는 공화당원이야!'(루즈벨트는 민주당 출신)라는 드립을 쳐댔다. 윌리엄 D. 포터는 이 항해를 떠나던 날에도 닻을 다 올리지 않고 출항해서 옆에 있던 배가 닻에 걸려 파손되었고, 어뢰사건 전날에는 실수로 대잠 폭뢰를 터트려서 유보트의 습격이라고 여긴 함대 전체가 포터가 자백할 때까지 회피 기동을 하게 했으며, 이 때 터진 폭뢰로 인한 물살에 수병 하나가 휩쓸려 실종되고 엔진실 일부 침수로 속도가 저하되며 함대에서 뒤쳐지는 등, 킹 제독의 혈압을 지속적으로 올려주고 있었다. 어뢰사건 이후에 좌천된 알류산 열도에서는 술 취한 수병이 실수로 5인치 포를 쐈는데, 그게 하필이면 한창 파티중이던 기지 사령관 자택 앞마당에 떨어졌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고. 필리핀 공격때는 다시 전선에 나서 일본 전투기들을 열심히 격추시켰는데 그 중 3기가 미군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며, 또 아군 구축함 USS 루스를 대공포로 긁어 주기도 했다.
- 연합군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상륙할 때 근처에 있던 연합군 지상군과 전투함들에게 독일군 전투기들과 폭격기들이 공격을 퍼붓고 사라졌다. 이후 연합군의 수송기들이 추가병력을 태우고 그 근처를 지나갔는데 "아까 그놈들인가보다!" 하고 지상과 해상에 있던 연합군은 증원된 대공포들을 아군 수송기들을 향해 발포했다. 그 결과 144대의 수송기 중 33대가 추락하고 37대가 파손되었으며 318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대참사가 발생. 이 상황은 게임 메달 오브 아너: 에어본의 첫번째 미션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 타란토 공습에서 이탈리아군은 영국군의 페어리 소드피시 뇌격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대공포를 쐈는데, 그 포탄이 이탈리아군 군함과 시설들에 떨어져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덤으로 이탈리아군이 격추시킨 소드피시는 딱 2대 뿐이었다.
- 팀킬이라고 보기에는 미묘하지만 과거 2차대전 때 소련은 형벌 부대라 하여 형무소나 기타 갖은 이유의 죄명으로 끌려온 인원들, 심지어 적에게 포로로 잡혀있다가 탈출한 병사까지 조국을 배신했다는 명목으로 끌려가서 형벌 부대로 편성하고 가장 위험한 곳의 총알받이로 사용했으며 만약 이 형벌부대가 전장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면 뒤에서 대기 중인 소련군의 독전대가 형벌부대에게 자비없이 기관총을 사격해댔다. 이로 인해 형벌부대의 6만명 정도가 아군, 즉 독전대의 손에 죽어나갔다고.
- 태평양 전쟁 당시 알류산 열도의 키스카 섬을 일본군이 점령하였는데, 이후 1943년 미군이 이를 탈환하기 위해 상륙작전을 펼쳤다.이 때 미군은 313명이 사망하고 2500여명이 부상당하는 제법 큰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이 사상자들은 사실상 전부가 팀킬이었다는 것. 미군이 상륙하기 전에 일본군은 이미 기무라 마사토미가 이끄는 구출 함대를 타고 완전히 철수한 상태였다. 섬에 남은 것이라곤 일본군이 매설했던 지뢰와 기뢰 약간, 그리고 개 3마리 뿐이었다.
- 진주만 공습 당시 뒤늦게 대응에 나선 미군 항공대 전투기들 중 일부는 공습으로 혼란에 빠진 대공포들이 마구잡이로 쏜 포화에 맞아서 격추당하기도 했다. 이중에는 하와이 지상기지의 항공대 뿐만 아니라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의 함재기들도 일부 포함되었다. 당시 엔터프라이즈는 웨이크 섬에서 진주만으로 복귀하다가 공습 소식을 듣고 함재기를 띄워서 일본 함대를 수색하고 있었다. 이 함재기 중 일부는 엔터프라이즈로 복귀하지 않고 하와이 지상기지로 복귀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공포에 맞아 격추당한 것.
4.3. 6.25 전쟁
- 6.25 전쟁 초반 춘천-홍천 전투 중 춘천을 점령한 북한군 2, 7사단 병력들끼리 교전한 일이 있다. 이는 서로의 총기가 달라[12] 야음 속에서 난 오발을 국군 특작조가 낸 것으로 오인해 벌어진 일이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조.
- 평택-안성 전투 바로 전날인 7월 4일, 호주군으로 추정되는 유엔 공군기가 평택 성동초등학교를 향해 기총사격을 가한 뒤 시내 간선도로와 군수물자가 산적해 있는 평택역에도 집중 폭격을 가했고, 이 과정에서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폭발해 폭심지 1km 이내에 있던 사람들이 사상당했다. 심지어 수원 신병훈련소에 입대해 후송 중이던 장병들도 여기에 휘말렸으며 10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청주 전투에서도 미 전투기들은 공산군을 한바탕 쓸어버린 뒤 국군 진지에도 날아와 공평하게 공격을 가했다. 그것도 한두번도 아니고 수차례나.
- 인천상륙작전 당시 압도적인 화력 속에 노출된 북한군들의 실적은 팀킬 1명(...)이 전부였다.
- 백석산 전투 당시 7사단 3연대를 화력지원하던 미군 전차의 전차포가 백석산 정상부를 공략하던 8연대 2대대 행렬을 덮쳐 폭심지에 있던 7중대를 포함해 많은 사상자가 났다.
- 1951년 6월 한국계 미군인 김영옥의 부대는 진격 도중 같은 미군 포병대대의 포격을 받고 김영옥 자신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데, 너무 북쪽에 있어서 아군으로 위장한 적군인 줄 알았다나 뭐라나.
- 이것 말고도 한국군과 미군(+유엔군) 사이에선 팀킬이 빈번했다. 전쟁 초기 국군은 주간 뿐만 아니라 야음을 틈타 이동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군의 오인 사격을 당하곤 하였다.[15] 게다가 영어에 능숙한 장교도 적었고, 설령 그런 이들은 통역을 위해 상급 부대에 배속되었기에 일선 부대들은 윗선으로부터 지시받거나 문의해 타군과 협동 작전을 해야 했다.
4.4. 그 이후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VS 계엄군 간의 오인 교전이 두 차례 발생하였다. 당시 광주에 있던 여러 진압 부대들 간의 지휘체계가 일원화되어 있지 않았던데다가 이들 부대의 통신 주파수도 서로 달랐기 때문에 여러 부대들이 서로의 존재 및 다른 부대들의 현재 위치와 작전상황 등을 파악하지 못하여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두 사건 다 전투부대가 아닌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16] 소속의 미숙한 인원들이 당황하여 저질러버린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첫번째는 1980년 5월 24일 토요일 오전 09시 55분 호남고속도로 광주인터체인지 부근에서 부대로 복귀하던 육군 31사단 96연대 3대대 병력이 무장시위대의 사격을 받자 이제 대항하여 응사하면서 고속도로로 진행하던 중 이들 31사단 병력을 시위대로 오인한 전교사 예하 기갑학교 병력이 오인사격을 가하여 사병 3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2명과 군인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 두번째는 같은 날인 5월 24일 오후 1시 55분, 남평 효천역으로(현재는 나주시로 편입) 이동하던 11공수여단 63대대 병력을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전교사 보병학교 소속 교도대 병력이 군 차량을 탈취한 시위대로 오인하여 대전차 파괴무기인 90mm 무반동총 4발을 포격하여 선두 장갑차와 후속 트럭에 명중시켰고 곧바로 소총과 수류탄에 의한 기습공격도 가했다. 이로 인해 장갑차와 트럭이 폭발하면서 거기에 탑승하고 있던 병력 중 9명이 즉사하고 33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를 무장시위대의 공격으로 생각한 생존 대원들이 포격이 날아온 매복지로 쳐들어가 1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했으나 이들을 신문해보니 시위대가 아니라 국군 전교사 예하 교도대였다. 결론적으로 같은 국군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오인사격이 되어버렸지만, 원래 의도는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소속의 군인들도 시민 시위대들을 포격과 수류탄 등으로 공격하려 했었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다. 광주 서방시장 부근에서도 오인교전이 있었다는 목격담이 있으나, 사실 여부와 사상자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 여수·순천 10.19 사건 진압 당시에도 김종원의 5연대 1대대가 박격포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같은 진압군인 12연대 수색대를 팀킬했다.
- F-15 전투기는 공중전에서 딱 1번 격추당한 적이 있다. 바로 팀킬에 의해. 자위대 소속 F-15J 전투기 1대가 아군 F-15J가 발사한 AIM-9에 맞아 격추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다행히 조종사는 비상탈출에 성공). 처음에는 안전장치의 전기적 결함으로 의심되었으나 미사일을 발사한 전투기의 조종사를 계속 추궁한 끝에 이 조종사가 규정대로 하지 않고 안전장치를 푼 상태로 미사일을 조작하다가 실수로 발사버튼을 눌러버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베트남 전쟁 당시 대략 8000명이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터키는 1974년 키프로스를 침공할 당시 구축함 한 대를 아군 항공기의 팀킬로 잃었다. 그런데 적군이던 그리스군도 아군이던 남키프로스군의 오발로 수송기 2대가 격추되었다. 당황해서 적군인지 알고 확인도 안하고 쏴서 격추했더니 그리스군이었다고.
- 포클랜드 전쟁 중 아르헨티나 소속 A-4 공격기 1대와 미라지3 전투기 1대가 동시에 격추당했는데 둘 다 아군 대공포에 의한 것이었다. 게다가 미라지3 전투기는 영국군의 전투기와 교전 중 심각한 손상을 입은 채로 겨우겨우 도망오던 중이었다.[17]
- 아르헨티나 소속 A-4 공격기 1대가 같은 아르헨티나 소속 함정에게 폭격을 가했다. 다행히 폭탄은 불발되어 사상자는 없었는데 사실 아르헨티나 함정의 대부분은 전쟁 상대인 영국 해군 소속 함정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며 아마 전쟁 전에 AV-8까지 도입되었다면 공중에서의 오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 걸프 전쟁 당시 사막의 폭풍 작전기간 동안 M1A1 에이브람스가 적 기갑부대를 보이는 즉즉 고철로 만들어버렸는데 이 '적 전차'중엔 에이브람스를 지원하기위해 온 M2 브래들리도 상당했다. 브래들리 IFV들은 졸지에 고래 싸움에 등터진 돌고래가 되어버린 꼴.
- 1994년 4월 14일 이라크에서는 E-3의 관제를 받으면서 비행금지구역을 초계비행하던 미군 F-15C 전투기가 암람으로 이라크군의 러시아제 Mi-8 헬기가 아니라 UN 직원들과 쿠르드족 지도자 일행을 태운 UH-60 블랙호크 헬기를 격추시켜 버렸다. 당연히 F-15C는 E-3의 명령에 따라서 암람을 발사했을 뿐이다. 이 관제를 맡은 E-3는 다음 해인 1995년 캐나다기러기와의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추락해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약 오십일간의 작전기간 동안 다수의 장교, 병사, 예비군이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희생된 사례가 있다.
- 2000년 체첸에서는 러시아군이 임무 교대를 위해 온 아군 부대를 적으로 오인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체첸 반군의 소행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나중에 발각됐다.
- 2003년 3월 23일 영국 공군 소속 파나비아 토네이도 전폭기가 미군 패트리어트 미사일 포대에서 발사한 미사일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다음날 미공군 F-16 전투기가 패트리어트 포대를 향해 對레이더 미사일을 발사, 파괴해버렸다. 열흘 후 또 다른 패트리어트 포대가 미국의 F/A-18을 격추해버렸다.
- 2003년 이라크 침공이 한창일 때 주 방위군 소속 A-10이 영국군을 오폭한 것이 영국 언론지를 통해 유출된 적이 있었다. 다음 동영상 참고. 참고로 이건 각성제가 문제라기보다는 작전 사령부와 조종사들의 미숙함(저게 첫 실전 출격이었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 군사 작전의 오발 사고보다는 방범 활동에서 가끔 벌어지는 실수로 경찰견이 다른 경찰을 무는 일이 있다. 성격이 다급한 경찰견의 경우 급박한 상황에서 흥분하면 공격성이 발동되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물어버리기 때문. 다행히 (흥분했기 때문에) 목을 노리고 제대로 무는 게 아니고 방범 활동을 하는 경찰은 방호구를 착용하기 때문에 사망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해외 토픽을 보면 이런 사례가 드물게 올라온다. 오발보다는 과실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팀킬의 한 종류로 간주하는 듯. 동물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고 피해가 크지 않아서 농담거리로 많이 쓰인다.
- 대체적으로 미 공군에서 오폭사고가 잦은 이유가 각성제 복용, 즉 마약 복용 때문이란 이야기가 있다. 실제 걸프 전쟁 당시 미군과 연합군의 사망자 가운데 1/4이 오폭사고였으며 이때 절반이 넘는 미군 조종사들은 과도한 약물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렸다고. 규정보다 많은 비행 이유도 있고 군의관들은 알면서도 각성제를 처방. 아예 #, 군의 윗분들이 요구하기도 했다.
- 또 이라크 침공 때의 사건. 이번에도 가해자는 공군 A-10 공격기. 이번의 희생자는 미 해병대로, 길을 잘못들어서 습격당했던 육군 정비중대를 구출하고 원래 작전 목표인 나시리아 점령을 위해 반군과 교전을 벌이다가 3개 중대로 갈라져서 시가전에 말려들었다. 그러다가 B중대 항공통제관이 공군 A-10 공격기를 호출했는데, 중대간의 통신상황이 좋지 못하여 A-10은 해병대 C중대를 반군으로 판단했고, 역시 C중대가 그 지점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B중대 항공통제관이 공격 허가를 내리고 말았다. GAU-8의 공격을 받은 C중대는 순식간에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겨우 통신상황이 호전되어 A-10의 마무리 공격은 피할 수 있었다.
- 미국은 1992년 터키와 합동 군사 훈련 중 실수로 항공모함 새러토가에서 시스패로우 미사일을 발사하여 터키측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무아베네트의 함교를 직격, 함장을 포함한 사망자 5명을 내는 피해를 입혔다. 미군은 곧 사과하고 개별 보상금과 별도로 터키에게 당시 퇴역하고 있었던 녹스급 호위함(그래도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2차대전 때 만들어진 구형 무아베네트보단 훨씬 좋았기에 이 호위함이 무아베네트 이름을 이어받았다)을 무상으로 건네주었다.[18]
- 별의별 곳에서 미군이 하도 많은 아군 오사를 일으킨 탓에 오죽하면 같은 동맹인 영국에서조차 '미군기는 우리가 동맹군임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기 전까지는 미친 카우보이처럼 우리를 공격한다' 라는 소리까지 했다. 하지만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사고는 많다. 사실 이는 미군의 화력이 압도적이라 한번 발생하면 피해도 많고, 또 세계급으로 전쟁도 여기저기 많이 하다보니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뿐.
- 매우 당연하게도 상기 사례들과 같이 오인사격은 정형화되고 잘 조직된 전문적인 군대일지라도 충분히 발생 할 수 있는 문제임을 알려주고 있다. 즉, 바꿔 말하면 상호연계 체계도 부실하거나 없다시피한 급조 무장 세력들 간에 발생하는 오인사격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백 번의 전투 중에 열 번의 오인 사격이 발생하는 쪽과, 열 번 중에 예닐곱 번을 발생시키는 쪽을 비교할 때, 단순한 횟수 차이가 아닌 비율적 차이를 기준으로 삼고 판단해야 한다.
- 아직 미국이 이라크와 친하던 시절인 1987년 이라크의 미라지F1 전투기 1대가 미국의 전투함에게 엑조세 대함미사일 두 발을 날렸다. 미 해군 호위함을 이란의 배로 잘못 알았던 것. 다만 해당 조종사에게 징계는 커녕 잘했다면서 훈장과 같이 1계급 진급까지 준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계획된 일이 아니었냐는 의견도 있다. 이 미군 전투함인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은 미사일 접근 사실을 알고 요격하려 했으나 하필 이 배가 저가형으로 만든 것이라 CIWS로 사용하는 팔랑스의 사각지대에 미사일이 접근한 것. 이 사고로 37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당했으나 당시 미국으로선 이라크가 주요 우방이었기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이라크는 어머 미안해라면서 6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보상금으로 주었지만 1989년 미 해군 순양함이 이란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해하고 격추시킨 USS 빈센스 함 사건에 그 돈을 덧붙여서 6180만 달러를 이란에게 보상금으로 내줘야 했다. 뭐 나중에 미국은 이라크와 4년 뒤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되지만...
- 지상전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해상에서도 발생했다. 야간에 소속불명 선박이라고 해서 공격했는데 해가 뜨니 한국기를 단 한국 군함(6.25 전쟁 이전 고생고생해서 사온 백두산함 3척 가운데 1척)이었다. 미국은 나중에 사과하면서 훨씬 좋은 군함을 무상제공하여 보상하긴 했다.
- 환태평양 국가들간의 공동훈련인 림팩96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구축함이었던 유우기리함은 표적기 대신 표적기를 예인하던 A-6 인트루더를 팰렁스 CIWS로 격추시켰다(승무원 4명은 모두 무사히 탈출했다). 일본이 기록한 태평양 전쟁 이후 최초의 미군기 격추 전과. 나중에 이 사실을 조사해보니 포술장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함장이 무시하고 발포명령을 내려서 벌어진 사고였다.
- 시리아 내전 공중전에서도 전후무후한 팀킬이 벌어졌는데 2018년 9월 20일 시리아 반군을 압박하던 러시아 공군소속 IL-20 전자전기가 시리아 정부군의 S-200에 격추 당했다. 원인은 다름아닌 이스라엘 공군F-16 4기 편대가 시리아의 라타키아 지역을 공습 중이었고 이에 대응하던 시리아의 방공 시스템에 애꿏은 러시아 정찰기가 격추된 것. 뭔가 말이 안 맞는다 싶지만 그 원인은 이스라엘 F-16 전투기가 S-200의 레이더에 포착 당했으나 전투기 편대는 재빨리 옆에 있었던 러시아 공군의 IL-20 근처로 이동하여 프렌드 실드 삼아(...) S-200의 사격통제 레이더에 더 크게 나타난 IL-20이 락온되게 냅둔 후 자국 공군기지로 재빠르게 도망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리아 방공군은 F-16이 도망간 걸 파악 못한 채 애꿏은 동맹군의 IL-20만 격추시켜(...) 15명의 사망자를 냈다. [19] 격추 이후 푸틴은 매우 격노했으나 즉시 이스라엘 총리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했다.
- 필리핀군이 반군 토벌 과정에서 마라위에서 공습을 가했는데 구형 공격기로 공습을 가했으나 오폭으로 아군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결국 FA-50을 동원해 재공습에 나섰다.
[1] 아군을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끼리 공격한다고 해서 'blue on blue'라고 부르기도 한다.[2] 통계적 오류에 빠질 염려에 첨가하자면, 군인들이 오인사격을 점점 더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미군사의 입장에서 보면 향상된 방탄장구 및 의료체계의 보편화(이전에는 100% 죽을 상황의 환자를 팔다리 잘라 놓는 선에서 살려놓는다던가)로 인해 적의 사격에 의한 피해는 줄어들고 있어서 전시 사상자 중 오인 사격에 의한 비율이 올라가는 것 뿐이다.[3] 오히려 이런 전자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표적 근처에 아군이 없을 것을 확신, 아군 오사가 벌어지기도 한다.[4] 이는 해당 교범에도 나와있는 내용이다.[5] 사실 창작물 뿐만 아니라 실제 전쟁사에서도 있었고 여론도 비슷했다.[6] 총과 몸에 레이저 센서를 달아 공포탄을 장착하고 실제로 교전을 해보는 훈련.[7] 다소 콩글리쉬스럽지만 외국에서도 통용되는 은어이다. 배틀필드 3에서 아군을 죽였을 때, 외국계 워크래프트 유즈맵 ET(Elimination Tournament)에서 아군이 죽으면 teamkill이라고 뜬다.[8] 이중 1대는 포탄이 터진 구덩이에 빠져 기동불능되었다.[9] 더구다가 초기에는 호위기없이 독일본토로 들어가야하는 탓에 컴뱃박스와 윙박스의 간격이 머스탱 등장 이후 보다 빽빽하게 편대를 이루었다.[10] 루즈벨트는 태평하게도 어뢰를 보고 싶으니 그 쪽 갑판으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또 루즈벨트의 일기에 따르면 아이오와 2.7km쯤 뒤에서 어뢰가 터졌다고.[11] 여담으로 킹 제독은 윌리엄 D. 포터의 함장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어뢰를 쏘고도 맞추지 못한것도 질책했다고 한다.[12] 북한 2사단은 모신나강, 7사단 조선족 부대는 국공내전 때 쓰던 99식 소총을 그대로 들고 왔다.[13] 이 이유는 해당 항목 참조.[14] 물론 이런 일 뿐만 아니라 이게 발생한 경위도 불미스러운 일이기에 대다수는 이를 생략한다.[15] 어느 정도였냐면 중대가 이동하는데 미군에게 포격을 그만두라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죽을 위험 무릅쓰고 'Korean soldier, You Amerian soldier, No BBang BBang No No!' 라는 세 마디로 간신히 포격을 멈추기도 했다 한다. 그나마 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자칫 몰살당할 뻔했다 한다. 더불어 미군은 미안하다면서 레이션과 장비를 잔뜩 건네줬다고.[16] 나중에 '육군교육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위치도 광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갔다.[17] 해리어가 쏜 미사일이 근접폭발 했었다.[18] 흔히들 이 경험을 통해 미군이 대공미사일의 대함공격 가능성을 알아챘다고들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군은 이미 1988년 이란 해군을 상대로 한 '프레잉 맨티스' 작전에서 기동부대를 향해 달려드는 이란의 고속정을 SM-2 대공미사일로 해치운 적이 있다(일단 3발을 쏘아 무력화시킨 뒤 하푼 및 5인치 함포로 마무리). 대공미사일은 발사 반응 시간도 빠르고 탄두가 작은 대신 운동 에너지가 높아 일루미네이터로 표적을 비춰줄 수 있는 가시거리 내에서는 심지어 함포보다도 즉응성이 높고 효율 역시 매우 높다. 이 점은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인식되어 있어서 스탠더드를 대함 목적으로 사용하는 고속정이 개발되어있었으며 한국 해군 역시 하푼 도입 이전에 이를 운용했다. 한국군 최초의 미사일 고속정인 백구급 초기형 3척이 바로 그것.[19] 원래 시리아 내전당시 미군과 러시아군이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군사적 핫라인을 개설 했었고 이스라엘과 러시아 간에도 핫라인을 구축한 상태였었다. 이스라엘 측은 핫라인으로 미리 통보를 했으나 몆분 전 기습 통보였기 때문에 실 전장에 전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