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

 

<colbgcolor=#fefefe><colcolor=#000> '''홍석천
洪錫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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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1년 2월 3일 (53세)
[image] 충청남도 청양군
'''거주지'''
[image]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
'''본관'''
남양 홍씨[1]
'''신체'''
176cm, 66kg[2]
'''종교'''
개신교(예장통합)[3]
'''학력'''
남대전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데뷔'''
1995년 KBS 대학개그제
'''가족'''
2남 2녀 중 막내[4], 슬하 1남 1녀[5]
'''소속사'''
포레스타엔터테인먼트
'''정당'''
'''무소속'''[6]
'''별명'''
탑게이, 매느님, 석천이 형, 홍 중위, 소대장,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
'''링크'''

1. 개요
2. 방송 활동
4. 사업 활동
5. 사건사고/논란
5.1. 유부남과의 불륜 와전
5.2. 300명 섹스 발언 와전
5.3. 2002년 월드컵 발언 논란
6. 여담
7. 출연 TV 프로그램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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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 방송인, 요식업 사업가이다. 대한민국 연예인 중 최초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 대한민국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앞장섰던 것으로 유명하다. 민머리 헤어스타일로 유명하다. 머리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이라기보다, 젊을 때부터 탈모가 와서 아예 밀어버렸다고 한다.

2. 방송 활동


1994년 《생방송 TV정보센터》 리포터가 되었으며, 1995년 KBS 대학개그제로 공식 데뷔, 드라마와 시트콤 등에 출연하였고, 방송 활동 외에도 연극, 뮤지컬에도 출연하였으며 1996년부터는 M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image]
'뽀뽀뽀'와 '남자셋 여자셋' 출연 당시 모습. 자칭 '''압구정 피문어'''(...).
남자셋 여자셋》에서 여성스러운 성격의 패션 디자이너 "쁘아송" 역할을 맡아 주가를 날렸고, 그 인기에 힘입어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모델로도 활약했으며, 2000년에는 뽀뽀뽀 진행자도 맡았다. 그러나 "쁘아송"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에 "게이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고 결국 2000년 9월 26일 커밍아웃했다. 관련 내용은 아래 별도의 목차 참조.
커밍아웃 후 한동안 모든 방송 활동을 접어야 했다. 그러다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로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고, 김수현의 《완전한 사랑》으로 시트콤이 아닌 정극에 무사컴백했다. 이후 한동안 정극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다, 인식이 많이 나아진 2000년대 후반부터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2007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하여 예능감을 드러내자, 지상파 방송금지가 풀리게 된 것이다. 2008년에는 "홍석천의 커밍아웃"이라는 제목으로 게이 청년들의 커밍아웃을 방송소재로 삼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각종 토크쇼에 많이 출연하면서 다시 인지도를 높여갔다.
2011년 7월 3일, 이분께서 개그콘서트 600회 특집 두분토론에 출연했다. 소속당은 중립당(...).[7] 등장해서 김기열에게 "귀여워서 봐주려고 했는데"라든가, 마지막에 박영진이 그에게 "대한민국 중립당들 중에 출연할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야!"라든가, 15년 만에 쳤다는 자신의 유행어인 '''"미워 죽겠엉!!"''' 이라든가 여러모로 강공세를 펼쳤다.
아무리 그가 게이지만 역할이 확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래봬도 본업이 연기자인지라 감정 연기도 뛰어난 편이다. 일례로 2006년에 개봉한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에서는 '''여자를 강간하는 역'''[8]을 아주 리얼하게 소화해냈다. 97년에 개봉한 영화 《넘버 3》에서도 모텔에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즉, 어떠한 거부감 없이 연기도 펼칠 줄 아는 연기자다. 사실 이성애자 배우들도 동성애 연기를 잘만 소화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배우로서는 당연한 소임일 뿐이다.
2012년 tvNSNL 코리아 5회에서 특별 출연했다. 참고로 5회의 주연 게스트는 '''신동엽'''이었다.
2013년 1월 19일 코미디빅리그리마리오변기수와 함께 신규 출연한다고 밝혔다. 결국 16라운드부터 코빅에 리마리오와 함께 '레드버터' 팀을 결성, 리마리오와 남남커플로 등장하였다.
2013년 2월 4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정체성 각성부터 커밍아웃 전후의 사정, 네덜란드 남성과의 연애사 등등. 프로그램에서 밝히길, 이경규는 홍석천의 출연을 강하게 반대했었다고 한다. 이전 서술에선 이경규 본인의 보수성도 있고 홍석천 출연으로 인해 프로그램에 타격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실제 방송분을 보면 이경규 본인의 가치관이나 프로그램의 손익을 따진 게 아니라 워낙 민감한 사항이다 보니 홍석천을 더 상처입힐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반대였다. 이경규가 이날 회상하길, 과거 한 프로그램에서 대충 뭔가 눈치를 채고 물어봤지만, 본인이 완강하게 부인하자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아 그냥 묻어두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 뒤 보니 커밍아웃을 하더라고.
그리고 이날 방송을 통해 핵심이 됐던 사건 자체와는 이제 직접적인 관련없게 됐지만 이날 MC를 하고있던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한혜진을 통해 어느 정도 해당 종교나 한혜진의 연인이었던 유명 연예인 신자 나얼의 과격발언에 대한 '심적 화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있었던 한혜진의 그분 관련 정리 멘트는, 직접적인 종교 성향 노출로 인해 비판 받을 만한 부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종교 관련으로 신자이기도 한 홍석천 스스로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보낸 사실이 밝혀졌고, 힐링캠프 자체가 게스트 개인의 사연에 주목하는 토크쇼이니,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는 의견이 더 많다. 사건 자체를 알고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홍석천 개인을 향한 위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문제시되지 않고 넘어갔다.
같은 방송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심적으로 고생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은 물론이고 섣불리 자신의 정체성을 판단하기 쉬운 나이의 청소년들, 그리고 동성애자들의 부모까지 넓은 범위의 상담에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4월 24일 《푸른거탑》 시즌2 14화에서 새로 전입온 소대장 홍 중위로 열연하였다. 성격은 말 그대로 "상남자", 입버릇은 "남자답게". 육군사관학교 수석졸업에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평소 방송에서 주로 보여줬던 섬세한 모습이 아닌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한 군인 양성을 목표로 소대원들을 혹독하게 굴리자, 지친 소대원들은 '여자를 소개시켜 주면 잠잠하겠지' 싶어서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홍 중위는 "내가 가는 길에 여자는 필요없다.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나라에 몸 바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 하였다. 그런데 귀신을 엄청나게 무서워해서, 그걸 알아챈 소대원들 중 한 명이 귀신으로 분장하여 공작을 펼치자, 견디지 못하고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된다.[스포일러]
OCN의 《뱀파이어 검사》에서 디자이너 '가브리엘 장'으로 출연하였다. '쁘아송'을 연상시키는 역이다.
세바퀴에서는 '''군대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선임'''으로 꼽혔다. 알아둘 점이 이 앙케트는 세바퀴 출연진들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앙케트이다. 참고로 홍석천 본인은 방위로 군 복무를 하였다. 홍석천의 고향이 충남 청양군인데, 청양군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 인구 감소로 인하여 1980년대 이후에 입영하는 사람은 방위로 복무해야 했다. 2위가 박명수인데, 이에 홍석천은 박명수를 까기도 했다. 박명수는 시력 문제로 면제를 받았다.
2015년 4월 25일 tvN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시즌6 11회 셰프 특집에서 호스트로 출연하여 위플래시 패러디 등 여러 개그를 선보였다.

3. '''커밍아웃'''


2000년에 자신이 게이라며 커밍아웃했다. 아웃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신이 직접 "그래서 아직도 인터넷을 보면 ‘아웃팅’이라는 분들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발언했다.

홍석천 씨는 커밍아웃을 KBS의 방송 녹화 중 했다고 기억했다. 홍 씨는 “해당 녹화분이 방영되어도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담당 PD는 그의 미래를 걱정해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방송으로 인해 알음알음 기자들 사이로 퍼져 나갔고, 결국 모든 매체의 관심이 집중됐다.

<여성중앙>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연락이 왔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왔는데, 말을 빙빙 돌리시기에 먼저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터뷰를 다시 시작했고 4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살았던 일들과 생각, 왜 방송에서 커밍아웃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면에 내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당시 일을 봐 주시던 변호사와 매니저 등 사람들과 가족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부모님에게 말씀 드린 때에도 그때였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손가락질 받는 연예인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저를 믿어주셨고, <여성중앙>에도 기사를 내도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잡지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 즈음 2000 시드니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으로 합류하게 돼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친했던 일간스포츠 기자가 전화를 해서 ‘무슨 인터뷰를 한 것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올림픽 응원 가니 기다리면 돌아와서 이야기하자’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음 날 <홍석천, 나는 호모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확인되지 않은 팩트로 1면 기사였지만, 데스크에서 ‘빨리 쓰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 같다.

출처

[image]
(현재는 삭제됨)
그러나 일간스포츠 편집장이 특종만을 생각하여 신문 1면에 '''홍석천 "난 호모다"'''라는 자극적인 표제로 올려버리는 바람에, 욕은 일간스포츠 기자가 떠안아야 했으며, 일간스포츠의 보도 행태를 문제삼은 한겨레21 기자까지 이 싸움에 휘말렸다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홍석천과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으며, 결혼식 때도 왔다고 한다! 참고로 이 일간스포츠 기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인물로, 일간스포차 기자를 지내면서는 간단한 영어 문장을 소개하는 칼럼도 썼으며 학력과 경력을 살려 2005년부터 강남대성학원에서 영어 영역 강사로 근무 중이다.[9]
사실 다들 어느 정도 홍석천이 게이라는 의심은 했지만, 막상 사건이 터지니까 일이 크게 벌어졌다. 대한민국 연예계 사상 최초의 커밍아웃이자 동성애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이라 그야말로 여론이 들끓었다. 사실, 동성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암묵적으로 존재하던 것이었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퀴어 스터디"라는 이름으로 학술화되고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오래였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해외토픽으로 주로 다루워졌고, 국내 동성애에 대해서 황색언론이나 일부 드라마, 일부 소설 등에서 소재로 다뤄진적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단기간의 화제거리 정도로 다룬 정도에 불과했고, 또한 유명인이 공개적으로 게이와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 여파가 비교적 적었다. 그렇기에 해외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서 주목했다. 타임지에서는 '아시아의 영웅'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사실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전은 게이냐는 의심도 받았지만, "원래 저 사람은 방송컨셉만 그런 것이고, 실상은 마초적이고 열혈인 상남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특히 90년대 말 예능프로에 남성 연예인들이 매주 팀을 짜서 각종 경기와 거친 장애물에 도전하는 모험형 쇼프로그램인 출발 드림팀 1기서 홍석천이 활동했는데, 여기서 극강의 운동실력으로 남성스럽게 날고 뛰며 각종 장애물을 돌파하는 홍석천의 맹활약을 본 사람들은 '''게이일 수 있다는 소문'''은 들으나 마나한 유언비어 내지는 개소리로 취급하고 거의 믿질 않았다.[10] 그래서 커밍아웃 이전의 홍석천의 팬 중에 여성도 많았지만 남성들이 적었던 것도 아니었다. 후술될 박수홍과의 일화를 봐도, 방송국 내에서 "실제 성격은 과묵하고 남성스러운 형"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에 대해 소수의 사람들은 그의 용기있는 행동에 격려를 보냈지만, 동성애에 무지하고 심지어 혐오스럽게 보는 것이 주류 시각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그는 더 이상 TV에 나오기가 힘들게 되었다. 결국 몇달간 방송출연이 꽉 막히게 되었고 이후로도 방송에 간간히 나오기는 했지만 혐오의 대상이 된것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절친 홍록기는 TV에서 "홍석천과 친하냐"는 모 토크쇼 프로그램 질문에 화들짝 놀라면서 "절대 안 그렇다"고 극하게 부정했을 정도였다 . 홍록기가 홍석천이나 동성애를 혐오한다기보다는, 당시 홍록기가 특유의 패션 센스나 노는 성향으로 인해 연예계에서 게이로 오해받는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이었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홍록기는 홍석천에게 "그때 당시 먼저 손을 내밀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라고 사과했다. 사실 홍록기는 홍석천이 커밍아웃하기 전에 이미 홍석천이 게이라는걸 알고 있었는데 홍석천은 홍록기가 그 비밀을 끝까지 지켜줘서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홍석천 커밍아웃 1년뒤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하리수는 의외로 꽤 좋은 반응을 얻으며 연예계에서 활동했고, 이 때문에 홍석천이 빡빡머리에 그렇게 미남이 아니라서 반응이 나쁜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던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이 때문에 하리수와 많이 비교되었기도 했다. 사실 이런 말이 나오는게 당연했던것이 홍석천이 한창 욕을 쳐먹었을때는 막상 HOT나 젝스키스틀 소재로 한 동성애 팬픽이 온라인 상에서 돌아다니고 있던데다가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동성애에 대해 다룬(물론 줄거리를 따지고보면 단순 동성애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영화가 나쁘지 않은 평을 얻으며 상당한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2003년도까지는 방송출연이 뜸해져서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작살날 우려가 있었을 정도. 그 기간에도 세친구나 아침방송에 출연하기도 했고, 《주글래 살래》에 나오긴 했지만, 이 영화는 차라리 출연 안 하는 게 나을 정도의 쓰레기 영화라... 그래도 그해 드라마 《완전한 사랑》에 동성애자인 홍승조 역으로 출연하여 방송활동은 희미하게나마 이어갈 수 있었다. 이때 홍석천의 출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이 드라마의 작가인 김수현이었다. 제작진에게는 '이 역은 홍석천만이 할 수 있는 역'이라고 강력히 주장했으며, 2013년 2월 4일《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의 회고로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된다.'라고 격려해 줬다고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동성애를 다룬 것을 보면, 김수현 작가의 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게이) 동생들이 불러서 조그마한 바에 가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제가 집으로 가다가 계산을 제가 해야 되겠다 싶어서 다시 돌아갔는데요. 그전까지 저하고 "형, 힘내", "대한민국에는 형밖에 없어", "최고로 용감해" 저를 치켜 올려줬던 동생들이, 제가 문을 딱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제 뒷담화를 하고 있는 거에요. "지가 뭔데 커밍아웃을 해." 우리가 원하는 건 장동건이나 원빈 같은 잘생긴 최고의 멋진 배우들이나, 아니면 조금 더 유명하고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대표 얼굴이 됐으면 하는 바람인데, 자기가 뭔데 나서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하면서 제 뒷담화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순간 제가 몸이 얼음이 되고, 대단히 슬펐습니다. 세상에 정말 내 편은 없구나... - 강연 100℃

그러나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때, 일부 동성애자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게이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여성스러운 행동 등)을 보이는 태도를 홍석천이 지녔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고정관념이 더 커질까봐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기도 했다.
그러다 시청자들의 시선이 변해갔다. 한번 동성애가 이슈화되자 그 충격에 둔감해진 것도 있고, 해외에서는 동성애란 것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한국에 어필된 측면도 있다. 2005년 이후로 《브로크백 마운틴》이 대한민국에서 개봉하고, 《퀴어 애즈 포크》가 대한민국 케이블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2007년쯤에는 케이블방송에 얼굴을 비추면서, 오히려 '''유쾌한 게이''' 컨셉으로 서서히 TV에 복귀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덕분인지, 2010년을 전후하여 이제는 지상파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출연하고 있다. 그것도 듣보잡 프로그램들도 아니고 지상파들의 간판 프로그램들에서, 카메오 수준도 아닌 당당한 메이저급으로 나오고 있으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본인도 방송에서 비교적 편한 입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게이 개그 쪽으로 가는 등, 자신이 게이인 걸 이용하여 분량을 만드는 입장이다. 강심장에서 한때 반고정으로 있으면서 이런 개그로 분량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역시 최초는 한가인연정훈의 결혼식에서 빵빵 터트린 '정훈아 가지 마~!' 드립. 하지만 아직도 몇몇 호모포비아들은 그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방송사 게시판에 "홍석천의 출연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글을 쓰곤한다.
tvN의 동성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홍석천의 커밍아웃》에서 MC를 보기도 했다. 여기서 ''''게이는 당신의 가족, 형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해서 또 다시 화제가 되었다. 상기 문장을 가지고 웃음거리로 사용하는 것은 게이들의 입장에선 기분 나쁘거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허투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니 함부로 쓰지 말자. 위의 말은 오히려 "당신 주변에 있는 (있을 수 있는) 동성애자들이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마시오."라는 의미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호모포비아들은 이 사실 때문에 더 적극적인 증오를 일으키게 되는 듯 하다. "가만 있다가는 내 친지들 중에 있을 지도 모르는 동성애자들이 나나 내 가족들에게 접근 할지도 모르니, 적극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해야 한다." 같은 느낌.
어쨌든 하리수와 더불어 홍석천 나름대로의 긍정적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리고 대인배적인 모습 덕에 '''보수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희석시키는 데 크게 일조한 인물 중 하나다.''' 대중적인 호감도도 꽤 높은편.[11]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의 성 지향성을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사춘기가 시작되면서이며,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처음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대학교때는 일부러 이성친구와 교제도 해 보는 등 이를 부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곧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 학교에 커밍아웃을 할때 자신을 받아준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2013년 10월 아이유에게 쓴 트윗이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트윗 자체는 그녀를 응원하는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하필 맨 마지막에 '''"오빠가 지켜 줄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니까"'''라고 쓴 것. 이를 본 네티즌들은 "과연 홍석천답다"며 대폭소. 홍석천이 운영하는 식당 중 한 곳에도 입구에 '가장 안전한 오빠, '''가장 위험한 형(...)''''이란 문구를 붙여놨다.
지방선거 출마 계획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성 지향성에 큰 혼란이 왔었다고. 범인은 패리스 힐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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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론 게이가 아니고, 이게 다 여성에게 정말 안전한 오빠처럼 다가가기 위한 위장전술"'''이라는 드립도 있다. 이성과의 스스럼없는 자연스런 스킨십을 위해 인생을 내던졌다고. 물론 이 말의 주된 유포자는 신동엽. 마녀사냥 2013년 12월 6일 방송에선 "가증스러운 (게이) 연기 집어치워!"라고 비난(?)했고, 2014년 9월분 방송에선 아예 (장난조지만) '''저 새X 게이 아닐지도 몰라''' 라고도 했다[12]. 당시 출연했던 한혜진(모델)은 자신의 체형 관리를 위해 매일 몸을 촬영해서 저장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때 홍석천이 '나 좀 보여줘. 나는 괜찮잖아'라고 말하자 신동엽이 저 말을 꺼낸 것. 아예 네이버 자동 완성으로 뜬다. 그리고 이 말은 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여성 방송인이 "다른 남자는 몰라도 홍석천은 괜찮다"는 식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줄기차게 쓰이고있다.
사실 이건 커밍아웃한 전 세계 유명인들이 자주 쓰는 드립이다. 닐 패트릭 해리스도 자기 자신 역으로 출연한 《해롤드와 쿠마》에서 '커밍아웃한 거 여자 만나려고 친 구라임'이라는 대사를 한 적이 있고, 맷 데이먼도 《윌 앤 그레이스》에 카메오 출연했을 때 이런 컨셉인 캐릭터를 맡았다.

4. 사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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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이후 방송 일이 끊겨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홍석천은 생계를 위해 이태원동이탈리아 요리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Our Place)"를 차렸다. 그 후 이태원 지역에만 자신의 레스토랑을 연달아 차려 성공시키면서 "이태원 재벌", "이태원 지주"의 자리에 오른다. 처음 차렸던 아워플레이스는 이후 접었고, 현재는 My Hong(아시아퓨전- 일본 요리+태국 요리), My Chi Chi's (아시아퓨전)[폐업]. My Thai(태국 요리)[폐업], My Thai China(아시아퓨전-중국 요리+태국 요리)[폐업], My X(와인바), My Chelsea(), My Noodle(면류), My Sweet(디저트 카페) 등 6개의 가게를 하고 있다. 2015년 7월 토크쇼 <택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연 매출이 50~70억에 달한다고 한다.
홍석천이 처음 가게를 차렸던 2000년대 초반의 이태원동은 어둡고 지저분한 동네였고, 주로 외국인들만 찾는 동네였다. 하지만 그의 사업이 성공하고 2005년부터 집중적으로 자신의 가게들을 늘려가면서 해밀턴 호텔 뒷골목이 그의 가게들로 가득 찼고, 그 분위기를 이어가듯 점점 개성 있는 레스토랑, 펍, 카페들이 늘어갔다. 오늘날 "뜨는 동네"가 된 이태원이 있기까지 그의 기여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용산구청장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으며, 2017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용산구 주민들을 위해 출마한다기보다는 성소수자들에게 삶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출마를 준비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원래 어두운 동네였던 이태원동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홍석천의 식당 사업이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출마에 정당성이 없지는 않다. 또한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다른 정당 후보들의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아, 출마한다면 무소속으로 나올 것"이라 밝혔다.
2009년 식당 한 곳이 화재사건으로 전소되었다. 주한미군 상병이 취한 상태로 불을 피우고 잠들어 버린 것인데, 홍석천은 '''화재 속에서 그를 직접 구하고 선처까지 해주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라디오 스타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피해액이 대략 3000만 원 정도였지만, 화재를 낸 군인이 젊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미래를 생각해서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다.''' 앞으로 게이에 대한 욕을 하지 말고, 게이에게 선처를 받은 사실을 평생 간직하면 용서해 주겠다" 라고 약속을 받은 뒤 한 푼도 받지 않고 용서해 줬다고 한다. 이후에 식당은 다시 개업한 듯 하며 프랜차이즈화도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다녀온 사람들의 평에 따르면, 위치도 좋고 인테리어나 음식 맛도 훌륭하다고. 앉을 자리가 부족할 만큼의 인기이며, 장동건 등 친분 있는 연예인들이 자주 들른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태국 요리를 소개한 것도 바로 홍석천이다. 현지에서 먹힐까에 출연하며 밝힌 바에 의하면 처음에 요식업에 입문할 시점엔 태국 요리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으나 전라도 이모들의 맛(...)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좌절하던 차에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태국 요리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라고.
다만, 서태화의 누들샵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100% 정통 태국 요리 맛은 아니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약간 개량한 형태라고. 처음에 정통 태국 요리를 시도했다가, 익숙하지 않은 향과 맛에 손님들이 거부감을 나타내자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13]
서태화의 누들샵, 라디오 스타에서 밝히기를 계속된 축농증 치료와 재발의 반복으로 후각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14] 그래서 이제는 어떤 요리의 향도 느낄 수가 없다고. 그 영향인지,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 짜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입맛보다 조금 싱겁게 요리한다고.
"후각이 마비된 건데 왜 음식 맛이 짜게 되냐"고 의문을 가진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체가 맛을 느끼는 건 혀 뿐만 아니라 후각으로도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를 막고 먹으면 사과와 양파가 똑같은 맛으로 느껴진다(물론 시각을 통해 생기는 선입견을 막기 위해 눈을 가리면 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홍석천이 특이 케이스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음식 맛이 예전과 다르게 변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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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GS25와 계약하면서 라면을 만들었다. 이름은 "홍석천의 홍라면"으로, '''이태원동의 정열'''이라는 캐치프라이즈로 판매 중이다. 해물맛과 치즈맛 2가지가 있으며, 불닭볶음면보다 조금 덜 매우며 맛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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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엔 역시 GS25에서 홍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도시락 프랜차이즈를 만들었다. GS25의 기존 도시락 프랜차이즈였던 '''김혜자 도시락'''과 비교되었으며, 가격대비 양이나 맛이 괜찮다고 한다. 편의점 도시락이지만, 홍석천 본인이 외식업에 10년이상 종사했다보니 메뉴 구성이나 품질에도 신경쓰는 편이라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보여주듯, 홍석천 본인도 상당한 요리 실력을 갖고 있다. 이미 여러 식당들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주 분야인 외식업 외에도 유명한 누드 퍼포먼스와 패션이라든가 인테리어, 디자인 등에도 관심이 있고 평가도 좋은 편이다.
구라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식당 등의 사업은 여건이 맞지않아 1개를 제외하고 모두 접었다고 밝혔다. 사유로는 코로나 19로 인해 발길이 끊기게 된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로는 이태원동의 상권이 낮 시간을 중심으로하는 홍석천의 가게와는 맞지않게 밤 시간을 중심으로하는 상권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8월 29일, 결국 마지막 남은 가게 하나마저 정리했다.

5. 사건사고/논란



5.1. 유부남과의 불륜 와전


네덜란드에서 '''유부남'''과 3년간 교제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비난받는 일도 있었다. 성소수자의 이야기 이전에 '''불륜'''이기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 이야기 이후 대인배로 칭송되었던 홍석천의 이미지가 완전 나락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으나 흐지부지됐다. 이후 힐링캠프 출연에서 이야기하길, "만날 '''당시에는 유부남인 걸 몰랐고''' 알고난 후 갈등이 있었지만 상대가 정식으로 가정을 정리한 선으로 불륜은 아니게 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상대 남자가 자신의 성 지향성을 홍석천을 만나고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홍석천을 만나기 전까지는 표면적으로 이성애자로 살았던 것이다. 홍석천은 상대 남자의 전부인[15]과도 얼굴을 대면했고 셋은 사이좋게 춤도 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네덜란드 남성은, 홍석천이 돈을 모아서 뒤따라가기로 한 뉴욕에 먼저 가 있다가 흑인 남자와 눈이 맞아 홍석천의 곁을 떠났다고 한다. 힐링캠프 출연 관련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항목 참조.

5.2. 300명 섹스 발언 와전


그가 학창시절 때 섹스를 300명이랑 했다는 기사가 예전부터 인터넷에서 주기적으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에서 "생각해봐. 중학생이 300명이랑 섹스를 할 수 있겠냐. 그게 말이 돼? 충남 시골 전교 200명이 안 되는데."라며 그 발언은 그저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강연을 하던 중 지금까지 성관계를 한 사람이 몇이냐는 질문이 들어왔는데, 당시 유행했던 영화가 300이자 본인의 이상형이 300에 나오는 남자들이기 때문에 이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이 자주 듣고 황당하게 여기는 편견 중에, 파트너 수가 기본 수백 수천 명이라는 둥 동성애를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발언들이 있다. 이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런 인식을 비꼬기 위해 발언한 듯 하다.
이 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는지 2020년 10월 12일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해서 당시의 심정을 밝히기도 했었다.

5.3. 2002년 월드컵 발언 논란


2002 한일 월드컵포르투갈 전 이틀 전에 포르투갈 선수 4명(세르지우 콘세이상, 페르난도 쿠투, 후이 코스타, 비토르 바이아)을 데려다가 아침 7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강심장에서 말했다.
사건의 내용은 이러하다.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조별리그 3차전 경기가 펼쳐지기 이틀 전. 홍석천은 아는 여동생과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 중이었는데 때마침 외국인 4명이 단체로 레스토랑에 들어왔다고 한다. 근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들은 다름 아닌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들이었던 것. 이들을 단번에 알아본 홍석천은 테이블로 다가가 싸인요청과 함께 '''"내일 모레가 경기인데 이렇게 밖에 나와있어도 되느냐"'''고 넌지시 물었고 포르투갈 4인은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거니까 상관 없다"'''라며 허세를 부렸다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도발에 살짝 당황한 홍석천이 식사를 마친 이들에게 "근데 너희들 갈데는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이라는 나라를 난생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 정보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했고 이에 홍석천은 본인이 직접 현지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포르투갈 4인은 흔쾌히(...) 이 제안을 수락했다고 한다.[16] 잠시 후 6명이서 술을 마시러 갔는데 운동선수들이다보니 아무리 먹여도 취하질 않자 홍석천은 '''"어쭈, 이것들 봐라? 그래 좋아! 니들 아까 우리나라 무시했지? 내 오늘 논개의 정신으로 네놈들과 함께 끝장을 볼테다!!!"''' 하는 마음을 먹고 아예 포르투갈 4인이 머물고 있던 같은 호텔에 방을 하나 잡고 술도 본인 사비로 몇 병을 더 추가한뒤 "니네 12시에 우리방으로 와라" 라고 제안 했고 이후 12시에 홍석천이 머물고 있던 방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과 '''아침 7시'''까지 신나게 술을 빨아 제낀 뒤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4강 신화의 숨은 공로자 당시 축빠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그에게 욕을 할 만큼 상당히 논란이 되었다. 뉘앙스가 포르투갈 선수들이 아침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에 이긴 것이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 게다가 증거자료도 제시하지 않아 모두 헛소리 취급했다. 하지만 2013년 맨발의 친구들에 출연했을 당시 '''명백한 증거자료를 제시하면서, 헛소리가 아니란 것을 증명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선수들의 승리를 폄훼했다고 비판하긴 했지만, 홍석천이 한 행동이 실제로 있는 행동이라면 폄훼라고 볼 수 없다. 홍석천은 강심장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아닌 나 덕분에 한국이 이긴 것 같은 발언을 한 적은 없고 오직 저 얘기만 했기 때문. 저 얘기가 사실로 입증된 이상 그것이 폄훼라고 보는 건 말이 안된다.

6. 여담


  • 2019년 그 유명한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 한국판에서 굉장히 용감한 화보를 진행했다. 좋아하는 스킨십에 대해서 "같이 영화보다가 '침대가서 자야지'라며 깨워주는 것" 등등 달달한 연애 고수 멘트를 이야기했다.
  • 자신의 책 <나만의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라>에서 중학생 시절 동급 남학생 3명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고백했다. JTBC박경림의 오! 해피데이》에 출연하여 가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사과는커녕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홍석천 스스로만 그들을 용서했다고 했다. 대인배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폭행이 홍석천 자신의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하는걸 보니 당시 어린나이에 받은 상처는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1995년KBS(12기)와 SBS(4기) 공채 개그맨 시험에 둘 다 합격하여 하나를 포기해야 했었다. 그래서 SBS에 거절 의사를 전하려고 방송국에 갔는데, 이게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방송을 타게 되어 버리는 바람에 당시 군기반장이었던 남희석에게 얼차려와 질타를 받아, 그 충격으로 홍석천은 2달 만에 개그맨을 그만두었다. 이듬해 남희석이 SBS로 이적하게 되자, 홍석천이 운영하는 점포에 찾아와 사과를 하였다고 한다. 이후 서로 오해와 서운한 감정을 풀고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홍석천은 이것 때문에 공채 개그맨이 아니라서 코미디언/목록 항목에 이름이 없다. 코미디언/목록 항목의 등록 중에 4가지 규칙 중 하나가, 공채특채 출신만 등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김숙과는 서로 동기라고 부르는 모양. 왕비호도 개콘을 보러 온 홍석천을 소개하며 KBS 선배라고 소개한다. 홍석천이 계속 개그계에 남아 있었다면 윤성호의 밥줄은 없었을 거라며 탈모드립을 쳤다. 옆에서 윤성호가 홍석천 버전의 빡구를 보여준 건 덤.[17]
  • 위 사건이 남희석과 관련된 사건임에도, 당시 남희석의 동기 박수홍은 감자골 사건으로 군복무를 시작했을때라 이 사건을 전혀 몰랐고, 홍석천 자체를 모르는 상태로 복무를 하다가 제대를 하였다. 이때 홍석천이 다시 방송활동을 하기 위해 개그작가가 되어 방송국에 들어왔고, 홍석천이 나이먹고 개그작가가 된 사람이라고 생각한 박수홍은 그를 형으로 보았고[18], 제대 후 방송활동에 잘 적응하기 위해 홍석천에게 잘 보이려고 초면에 그냥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홍석천도 박수홍을 알기만 했지 정확한 나이를 몰라 그냥 동생으로 대했고, 박수홍은 단순히 형이라고 부른 게 아니라 잘보이려고 홍석천이 시키는 일들, 예를 들어 커피 심부름 등까지 도맡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박수홍이 하도 따라다니자, (커밍아웃 전에) 한번은 여성을 꼬실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보통 바라고 속이고 이태원 게이바를 데려가서 피아노를 치면 여자들이 좋아한다며 재즈피아노를 터프한 스타일로 치기까지 했다고 한다.[19] 이것이 6~7년이 이어졌다가 2천년대 초반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홍석천이 데뷔초에 이병헌과 같은 한양대학교 출신[20]이라는 것 때문에 방송국에서 조금 대화하다가 쉽게 친구가 되었다고 하는데, 역시 이병헌과 같이 같은해 KBS 공채 연예인이었던 박수홍도 공채가 된 직후 이미 알았어서 친구가 되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박수홍과 홍석천이 대화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병헌이 지나가다가 만나게 되었고, 홍석천은 일이 있어 이병헌이 오자 인사만 하고 갔다는데, 둘이 대화를 잠깐하던 중 박수홍이 홍석천을 형이라고 칭하는 걸 들은 이병헌이 "수홍아, 석천이도 동갑인 우리 친구인데 왜 그래? 친하게 지내"라고 하고 가면서 알 게 된 것이다. 그 날 욕을 잘 안한다는 박수홍이 직전에 가버린 홍석천을 수소문해 방송국 화장실로 찾아가 쌍욕을 한 건 덤.
  • 위의 2사진 중 아래에 등장하는 이의정과는 친한 친구 사이다. 이 둘은 <남자셋 여자셋>에 같이 출연하면서 맺어진 인연이고 2000년 커밍아웃 기자회견 당시 이의정이 인터뷰어를 맡기도 했었다. 홍석천이 힘든 시절 곁을 지켜줬던 것이 큰 인연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이후 이의정이 뇌종양 투병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하던 시절 옆에서 투병생활을 돕기도 했고, 지금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 거의 자타공인 친남매 수준으로 인연이 맺어진 모양.
  • 합성이 될 경우 내가 고자라니심영과 엮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경우에는 무조건 홍석천이 공이고 심영이 수. 그 외 빌리 헤링턴과 커플로 엮이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디시인사이드에서 은근히 대접이 좋다. 홍석천의 디씨 인터뷰는 구준엽과 더불어 가장 훈훈한 댓글이 달렸던 인터뷰 중 하나고 그 후 필수요소로 자주 쓰이면서 디씨의 친구가 된 듯. 물론 몹쓸 리플도 많이 달리는 편이지만.
  • 예능에서는 여성스러운 리액션 등 수다스러운 모습을 밀고 있으나, 오프라인에서는 과묵하고 상남자스러운 모습이라고 한다. 특히 사업과 관련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 촬영 때문에 아프리카에 갔다가 치타에 할퀴이는 봉변을 당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이 사건 보상 겸 해당 PD의 작품에 계속 고정 출연하기로 계약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매가 치타에게 사냥을 당했다"는 애드리브가 출몰하기도...
  • 알게 모르게 문보살 뺨치는 대인배. 악플에 시달려서 명예훼손죄로 피의자들을 고소하였으나, 만나보고 나서 고소를 취하했던 일도 있었다. 악플에 만성적으로 시달려서, 자신의 말로는 거의 열반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인터넷의 악플과 같은 것들에 대해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관련 주제를 위한 토론회나 좌담회에 꽤 자주 출현한다.
  • 2009년부터 자신을 3인칭화하여 '석천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석천이는요~ 치타에게 물린 적이 있어요~" 같은 식. 이것 때문에 주변에서 "기분 나쁘다" 등의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공중파 방송을 오래 쉬었더니 젊은 애들이 나의 이름을 모르는 것 같아서, 자기 어필 겸 이렇게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후로도 계속 이렇게 말할 생각인 듯.
  • 극중에서 원래 맡았던 쁘아송과 똑같이 생긴 조폭 두목까지 1인 2역을 맡았다.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둘 다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쁘아종이 "어머, 별꼴이야 진짜!"라고 말하자, 두목이 "아, 거 되게 시끄럽네. 조용히 안 해?!"라고 일갈하는 장면. 이 외에도 주진모, 문성근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 '퍼즐'에서 험악한 인상에 시종일관 입에서 욕을 달고사는 조폭 역으로 분했는데 형편없는 영화 퀄리티와는 별개로 배역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 외모와 성향이 일치할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편견과 달리, 근육질에 남성다운 바텀도 있고 여성스러운 도 있는 등 외모와 성향은 거의 상관이 없다. 홍석천의 경우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올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김구라가 홍석천한테 "어떤 성향이냐"고 물어봤더니 "둘 다"라고 답했다는 내용을 시사대담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다만 본인은 탑이라고 하기도 했다. 한 대학 강연회에서 직접 밝혔다고 한다. 이 글의 리플 참조. 많은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과[21] 편견과는 달리, 상당히 남자다운 성격에 가깝다고. 다만 성격이 '섬세'한 것은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게이들의 '탑'과 '바텀'은 성관계 시의 포지션을 뜻하는 말이지, 성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그런데 이 항목도 웃긴게, 주로 기승위를 하시나요 정상위를 하시나요 같은 질문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본다는 것이...
  • 최근에는 명계남 감독이 원장으로 있는 연기학원 본 아카데미의 연기전담강사로 취임했다. 배우 권해효도 같은 학원의 강사. 그렇지만 광고에는 홍석천만 출연한다.
  • 게이들에게도 다양한 상담이라든가 조언들을 많이 해주는데, 한 메신저에서 "정말로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메세지가 들어와, 나도 사람이라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프로필이 올라온 적이 있다. 당시 올라왔던 하소연의 내용을 보면, 평소 가출(특히 청소년)한 게이나 자살을 생각하는 게이들을 설득하고 달래주는 일을 자주 했던 모양.
  •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진보성향일 거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의외로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한다. 리버럴 성향인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대선 출마선언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주장을 많이 하고, 2004년에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는 것이나 진보신당 지지, 공동 인터뷰를 하는 점 등, 소수자 치고 보수적인 것이지 성소수자 보수파는 아니며, 범진보적 성향을 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마 경제적으로 리버럴, 문화적으로 신좌파인 듯하다. 안희정과는 남대전고등학교 동문이라고 하는데,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좀 복잡한 사연이 있다. 이건 안희정 문서에 나와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용산구청장에 출마하고 싶다는 마음을 밝혔으며, 이에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마하지는 않았다.
  • 이복 형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선 좀 슬픈 사연이 있는데 홍석천이 태어나기 전 그의 어머니가 딸을 연달아 3명을 낳자 아예 씨받이[22] 를 들여 홍석천의 형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 뒤 본처 사이에서 홍석천이 태어나자 홍석천의 형은 다시 생모(홍석천한테는 서모) 슬하에서 자랐지만 그 생모가 바로 재혼을 하는 바람에 다시 홍석천의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 2017년 5월 9일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해 최근 <찬란하게 47년>이란 책을 출간했다며 "빚 갚기 위해 책 잘 되어야 한다. 많이 읽어 달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 네이버 웹툰 원주민 공포만화 24화에서 패러디되었다. 주인공이 모솔인 데다 주변에 남자들만 있는 이유가 총각귀신이 붙어있기 때문이었고, 주인공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결식을 치르고자 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총각귀신이 홍석천이여서 영결식은 실패한 듯 하다. 작가인 원주민은 홍석천에게 패러디 허락을 받았고, 홍석천은 쿨하게 허락해줬다고 한다.
  • 사촌 누나의 아들(5촌당조카)의 4촌이 NCT 태용이라고 한다. 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사촌매형의 친조카가 되니 촌수는 없고 손아래사돈(총각)정도 되는데, 친형제도 아니고 사촌끼리 넘어가는 사돈지간이면 사실상 남으로 봐도 무방하기는 하지만 2018년 1월 풍문으로 들었쇼에서 이 사실을 밝히면서 본인도 알게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 2019년 한 언론사를 통해 현재 사업을 하고 있는 이태원 가게를 문닫은것에 대해 최저임금 때문에 문닫은것은 아니라며 속상함을 표했다. 2019년 1월 18일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임대료 폭등 △사라지는 거리 특색 △최저임금제 급격한 상승을 꼽았다. 이데일리는 이 기사의 제목을 "홍석천, ‘저도 가게 문닫아...사람 모이게 임대료 내려야 상권 살아요"라고 뽑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조중동 매체는 중앙일보에서는 제목을 약간 수정해서 "홍석천, 이태원 가게 2곳 문 닫아...최저임금 여파"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에 홍석천은 "중앙일보 기자님, 저하고 인터뷰 하신거 아니고 퍼나르신 거 괜찮은데, 제목이 제 의도하고는 많이 다르네요"라고 비판했다.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홍석천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이태원 가게 2곳 폐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노출했고 동아일보 역시 "연매출 70억 홍석천 레스토랑 중 두곳 폐업, 최저임금 인상 감당 못해"라고 기사를 썼다. 홍석천 “‘최저임금 때문에 문 닫았다’고 쓰지 말라했는데” 당연히 이태원에서 홍석천 식당의 네임벨류와 이태원 식당의 회전율을 감안하면 알바를 최저임금에 고용할 턱이 없다. 최소 최저임금대비 2~30% 높았을 터인데 기레기에 피해본셈.
  • 2019년 5월 5일 수원 삼성FC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 홍철박동진중요 부위를 잡는 파울을 범해 홍석철이라는 별명을 얻자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홍철이라는 선수는 알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입장에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은 상관없다”면서 “기왕에 홍철이 그런 별명이 생겼으니 팬들을 위해서 자주 그런 실수를 해도 될 것 같다. 팬들이 볼 때는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였다.#
  • 정치와는 상관없어보이지만 아직 의석이 없었던 민주노동당 때부터 당원이었다. 성소수자 의제에 적극적이여서 가입했다고 한다. 지금은 정의당계의 마포구 지역풀뿌리정치에 함께한다고.

  • 2020년에 코로나19 유행으로 자영업자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그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이태원에서 집단감염사건까지 터지면서 본인을 비롯한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지며 홍석천의 SNS에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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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홍석천은 '아웃팅이 두려운 것은 이해하나 용기를 가지고 검진을 받아달라'며 당사자들을 독려했다.
https://www.mediapia.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281

7. 출연 TV 프로그램 목록



[1] 남양 홍씨 당홍계 37세손 '錫'자 항렬이다. 홍록기의 조카뻘, 홍경민(본명 홍성민), 홍성흔의 손자뻘이다.[2] 프로필 기준이지만 실제로 178인 유재석 보다도 조금 컷고 샘 해밍턴과 비슷하다. 실제로는 179에 가까운듯 하다.[3] 모태신앙이며, 온누리교회에 출석 중이다. [4] 큰누나는 어릴 적 병치레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5] 당연히 홍석천 본인의 친자식들은 아니고, 누나가 이혼해서 조카들을 입양했다. 2018년에 "조카들이 주변의 소수자나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주었다"며 감사해했다. #[6] 성소수자 운동을 첫번째로 다룬 정당이어서 민주노동당에 가입했었다. 19대 대선 당시를 제외하고 2013년 이후에는 당적은 없어도 정의당과 함께 활동한다.[7] 실제로는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자 지지자였다.[8] 정확히는 강간미수다. 당시가 이미 주인공들에게 위기상황인데, 시끄럽게 하는 게 열받았던 주진모에게 두들겨 맞아서 못한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주연이자 조직폭력배 역. 두목은 아니고 독고다이 건달이다. 단, 다른 조직 간부급과 동기친구라고 묘사되어있다.[스포일러] 사실 알고 보니 진짜 귀신이었다.[9] 사실 해당 기자 또한 억울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저 기레기스러운 제목은 기자가 아닌 '''데스크'''가 올렸을 확률이 높기 때문. 신문 제작 프로세스에서 기자는 취재를 해 기사를 쓰지만, 일단 기사를 써서 올린 이후엔 그 기사는 기자의 손을 떠나고 이후 업무는 데스크가 맡게 된다. (대기자나 논설위원이 아닌 평기자의 경우) 데스크란 각 부서의 책임자로 보통 부장, 부재시 차장이나 팀장 등이 일을 맡는데, 기자가 기사를 올리면 제목을 포함한 거의 모든 내용을 편집/수정할 권한이 있다. 물론 이후 오탈자나 문법적 오류를 손보는 교열과정이 있고, 최종적으로 신문에 어떤 식으로 기사가 나가는지는 편집국장이 결정하지만, 기사 제목 같은 경우 대부분 저 데스크가 결정한다. 이 때문에 각 기자들마다 정치 성향이나 신조, 생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특정 논조가 확고한 신문에서는 해당 성향의 기사가 일관적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자들 개인의 의견은 각각 다를지라도 어떤 기사를 배정할지, 어떤 기사가 나갈지, 어떤 제목을 실을지를 결정하는 "데스크"는 같으니까. 즉, 홍석천은 저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고, 기자는 제목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기에 (위의 인터뷰에서도 데스크의 지시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해당 기자에 대한 악감정은 크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10] 그러나 게이는 여성스러우며, 마초적이면 게이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게이에 대한 편견이다. 이에 대한 훌륭한 반론의 예시가 있다.[11] 다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이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과 인식이 곱지 않은 건 사실이라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20년이 지나가는데도 커밍아웃하여 활동하는 성소수자 연예인들은 없다시피 하다. TV 방송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 연예인은 지금도 하리수나 홍석천 밖에 없다. 2015년에 아우팅백재현이 있지만 동성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범죄 경력이 생겼기 때문에 TV 방송에서는 활동하고 있지 않다.[12] 신동엽의 이 발언은 유명세를 타서, 패러디도 등장했다. 이를테면 저 새X 포켓몬 아닐지도 몰라 [폐업] A B C [13] 어느 나라의 것이건 식문화는 각 나라의 문화에 걸맞게 현지화가 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태국 요리는 우리나라에서 잘 먹지 않거나 간식류에나 사용하는 고수, 민트, 라임, 바질, 레몬그라스 같은 향신료가 중요한 맛의 포인트다. 그중에서도 민트와 고수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려서, 이것 들어간 음식을 못 먹겠다는 사람들도 꽤 많다. 때문에 레시피를 100% 그대로 반영했다간 손님들이 불만을 가져 대부분의 한국 내 태국 식당은 레시피가 바뀐다. 참고로 우리가 즐겨먹는 중국 요리, 일본 요리 등도 정작 본국에서는 꽤 다르게 생겼다. 심지어 같은 중국 요리인데 미국식 중식일본식 중식은 180도 다르다. 한국 요리도 외국에서 파는 것을 보면, 이게 우리가 늘상 밥상에서 보던 그게 맞나 싶을 정도의 독특한 물건들이 가득하다.[14] 이연복도 축농증 치료의 후유증으로 후각을 잃었다.[15] 충격을 받아 자살시도까지 했었다고 한다...[16] 알고보니 홍석천과 같이 있던 '''아는 여동생이 굉장한 미인'''이라서 따라왔다고 한다. 키 176에 글래머였다고.[17] 홍석천을 의도한 건지는 몰라도 2003년 9월 28일 방영된 도레미 트리오에서 윤성호는 또 다른 대머리 개그맨인 윤석주와 함께 립스틱까지 바르면서 개그 이재훈에게 뽀뽀하는 장면을 연출했다.[18] 박수홍의 말에 의하면 홍석천이 당시에는 쁘아송 이미지가 전혀 없었고 매우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의 조용하고 남성스러운 말투를 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나이가 좀 있는 형님으로 보였다고. 그것도 커밍아웃 전까지 홍석천을 남자다운 이미지의 형님으로 오랜 기간 생각했다고 한다.[19] 당시 남성은 어느정도 있는데, 여성이 상당히 적은 것을 본 박수홍은 의아했으나 그냥 그날따라 사람이 적은 걸로 오해했다고 한다. [20] 단, 이병헌은 홍석천처럼 연극영화 전공이 아니라 대학시절에 알던 사이는 아닌 듯 하다. [21] 특히 그를 스타덤에 올렸던 남자셋 여자셋의 쁘아송 역할[22] 그렇다고 해도 1960~70년대에도 남아 선호 사상이 매우 강한 집안이 아닌 이상 씨받이를 들인 집안은 극히 드물었다. 그가 태어난 지역이 지역인지라(청양군은 남아선호 지역이 강한 지역중 하나다.) 아마 그러한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있었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