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문화

 



1. 언어
2. 음악
3. 문학
4. 종교
5. 음식과 음료
6. 전통 의상
7. 스포츠
7.1. 축구
8. 영화
9. 성문화
10. 오스트레일리아?


1. 언어


오스트로바이에른어 인사: Griaß Gott (그리아스 고뜨)

표준 독일어 인사: Guten Tag(구튼 타크)

공용어는 독일어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되는 독일어는 문어체에서 기본적으로 독일 본토의 독일어와 차이가 없지만, 구어는 억양과 어휘에서 몇몇 차이를 보인다.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의 말과 거의 같기 때문에 오스트로바이에른어로 묶이기도 한다. 실제로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는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편이라, 바이에른 사람과 오스트리아 사람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어디 사람인지 말하기 전에는 겉모습이나 말투로 자기들끼리도 구별을 잘 못한다. [1]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2], 슬로베니아어는 지역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고, 주요 외국어는 영어가 널리 쓰인다. EF 영어 능력 지수에 따르면 높은 교육 수준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와 함께 비영어권 국가 가운데, 영어를 가장 잘하는(매우 높음) 것으로 나타났다.#[3] 프랑스어를 배우는 비율도 10%이고 오스트리아는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 있다. 최근에는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터키어, 보스니아어, 알바니아어, 세르비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중국어(표준중국어), 러시아어를 쓰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2.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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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독일과 함께 서양음악의 본고장이라 불린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루크너, 말러, 슈트라우스 부자, 몇 없는 여성 고전주의 작곡가인 마리아나 마르티네스(Marianna Martines) 등 위대한 작곡가들이 오스트리아 출신이며, 독일에서 태어난 베토벤, 브람스 등도 빈에 정착하여 활동했다. 오스트리아 궁정예배단 소속으로 출발한 세계적인 합창단인 빈 소년 합창단 또한 유명하다.
수도 은 음악의 도시라 불리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 오페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세계 양대 오케스트라로 꼽히고 있다.
모차르트와 지휘자 카라얀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는 매년 여름 유럽 양대 음악 페스티벌로 꼽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호스트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이 공연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클리셰급인 설정으로, 음악 좀 한다 싶으면 죄다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정작 전공생들에게 유학지로 가장 선호되는 곳은 독일이다.

3.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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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이다 보니 독일 문학과 묶여 독문학의 하위 범주를 구성한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독일의 중심으로 기능했으면서도 근대 이후에는 독일에 강제적으로 분리되었던 경험, 그리고 한편으로 수많은 민족들을 아울렀던 역사로 인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다민족 제국 시절에는 독일어권의 대문호이자 실존주의와 현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란츠 카프카[4]아르투어 슈니츨러를 배출했고, 30년대에는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및 모더니즘 문학의 거장 로베르트 무질헤르만 브로흐가 주목을 받았다. 현대에 와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했는데, 2004년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2019년 수상자 페터 한트케가 바로 그들이다. 그 외 토마스 베른하르트나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등이 유명하다.

4.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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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향이 강한 국가이다. 인접국이자 같은 독일문화권인 스위스나 독일이 개신교와 가톨릭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오랫동안 오스트리아를 통치한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향에서 기인하는데, 합스부르크 왕조는 역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직을 겸직하고 오스만 제국과 대립하며 스스로 유럽 가톨릭의 수호자임을 주장하였고 당연히 강한 친가톨릭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는 가톨릭 신자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통계에 의하면 젊은층이[5]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지하는 비율에서도 오스트리아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와 함께 유럽에서 비교적 높은 편으로 나온다. 다만 가톨릭 신자가 많아도 프랑스처럼 라이시테 성항을 어느 정도 띄는 편이라 그런지 무신론자가 50%를 넘는다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일단 대도시 지역은 세속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아직 시골 등지에 가면 사람들이 가톨릭 행사나 의식을 중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6] 의외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 외에도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의 다양한 종교를 믿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슬람교는 터키인, 보스니아인, 알바니아인, 페르시아인, 아랍인들의 증가로 믿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고 일부는 개종하는 경우도 있다.

5. 음식과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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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요리는 인접한 국가인 독일이탈리아 요리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영향으로 헝가리 음식도 많이 도입되었다. 헝가리 대표 음식인 굴라쉬가 그 예. 독일 요리로도 분류되는 슈니첼은 본래 오스트리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오스트리아 및 바이에른 지방에서 주로 먹는다.
디저트 종류가 다양하고 맛있기로 잘 알려져 있고 그 중 자허토르테라는 초콜릿 케이크와 페이스트리인 슈트루델이 유명하다. 페즈라는 브랜드의 사탕도 잘 알려져 있다. 일반품은 폴로나 호울스, 멘토스같은 기둥형 사탕 포장이지만, 가끔 한정으로 유명 캐릭터를 라이센스해서 캐릭터의 얼굴이 위에 조형되고 아래에 플라스틱으로 된 사탕 포장막대가 있는 한정상품을 내놓는다.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어서 낙농업이 발전한 덕분에 양질의 우유와 크림이 생산되며, 살구 명산지인 바하우(Wachau) 계곡 부근에서 재배된 살구를 가공해 만든 잼인 Wachauer Marillen marmelade (마릴렌 마멀레이드)가 유명하다.[7]
음료 부문에서는 이탈리아, 프랑스와 함께 유럽에서 커피가 유명한 대표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1683년 수도 을 침공했던 오스만투르크 군대가 철수하면서 버린 물품 중에는 커피원두 자루가 있었고, 콜쉬츠키(G.F. Kolschitzky)라는 통역사가 왕의 허락을 받아 빈 최초의 카페를 열게 되었다. 이후 '아인슈패너 커피(일명 비엔나 커피)’를 비롯, 30여 종의 커피가 개발됐으며, 1910년에는 1,200곳의 카페가 영업을 할 정도로 카페가 많아졌다.[8] 현재도 빈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카페(커피숍)가 굉장히 많고, 빈 시민들은 카페를 거의 집안 거실처럼 친숙하게 드나들곤 한다. 덕분에 2011년에는 빈 카페하우스 문화(Wiener Kaffeehauskultur)가 유네스코(UNESCO)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9]
'''비엔나산 와인''' 또한 다뉴브강과 수많은 나무로 우거진 비엔나 숲이 최고의 포도와 와인이 생산되기에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어 뛰어난 품질과 맛으로 정평이 나있다.[10][11]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에 팔리는 레드불이 오스트리아 회사의 상품이다.
그외 유럽연합의 지리적 표시와 전통 특산품 제도에 등록된 식재료는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s-7.7 문서 참조.

6. 전통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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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전통의 의상은 남성용은 '''레더호젠(Lederhosen)''', 여성용은 '''디른들(Dirndl)'''이라고 하며,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연상되는 의상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의상이 바로 오스트리아 전통 의상이다. 이 옷은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 전반적인 알프스 산악 지방의 전통적인 의상이다.
디른들은 가슴 부분이 사각형이나 둥글게 깊게 파인 웃옷과 높은 허리를 한 치마, 그리고 앞치마로 구성이 되어 있다. 옛날에는 시녀들이 입다가 1870/80년대부터 전원적인 옷으로 사용되다가 점차 비싼 의복 취급을 받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는 싸게 보급됨에 따라 판매가 호황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디른들과 레더호젠은 나치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처럼 받아들여졌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나치 정권은 게르만 민족주의를 강조해 오스트리아에서도 지역의 특성이 강조된 던들과 레더호젠을 극우 세력들이 즐겨 입었다. 이런 영향 탓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한때 디른들과 레더호젠 차림이 외면 받았다.[12] 그런 던들이 영국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의 시선에 들어왔다. 웨스트우드는 다양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적 요소를 도입하며 독창적인 패션을 창조해냈던 인물이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여성들이 디른들을 입으면 더욱 예쁘게 보일 텐데 말이에요."

그녀가 2001년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디른들에 보낸 찬사였다. 그리고 디른들을 외면하는 풍토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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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우드의 언급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2000년대 이후 디른들은 오스트리아에서도 서서히 대중적인 인기를 회복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마치 모래시계처럼 여성들의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게 하고 몸의 볼륨을 살리는 매력을 가진 디른들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7. 스포츠


그 외에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의 결승 상대로서 최민호가 감격의 눈물을 흘릴 당시 함께 격려를 해주어서 주목을 받았던 루드비히 파이셔 역시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참고로 이 분은 대부분의 올림픽 선수들이 그렇듯 전문 프로선수는 아니고 본업은 경찰관이다.
모터스포츠 역시 상당한 위상을 갖춘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국적의 포뮬러 1 드라이버가 없어서 인기가 조금 밀리긴 하지만, 그래도 한때 게르하르트 베르거라는 뛰어난 드라이버가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시즌에 활동한 크리스티안 클라인을 끝으로 오스트리아 국적의 드라이버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오스트리아에 국적을 둔 레드불 레이싱 팀이 꾸준히 포뮬러 1에서 활동하고 있다.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만큼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유명하며, 특히 알파인 스키에서는 세계최강급이다.
보디빌딩 선수로 미국으로 건너 가서 눌러 살며 영화배우로 정치인으로 성공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신이다.[13]
테니스 선수로는 대표적으로 2020 US 오픈 우승자인 도미니크 팀이 있다.

7.1.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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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축구 강호는 아니지만 그래도 축구의 인기가 많다. 사실 1930년대까지는 유럽에서 강호 중에 강호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몰락한 상태다.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로는 헝가리, 러시아, 체코 등이 있다.
리그 명칭이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라서 해외 사람들에겐 독일 분데스리가와 혼동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분데스리가(Bundesliga)'라는 단어가 독일어로 '연방 리그'라는 의미라서, 같은 연방제 국가인데다 같은 언어(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가 사용해도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역시 분데스리가가 세계적으로 독일 리그로서 알려졌고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는 유러피언 클럽 대회에서 그다지 성적을 좋게 낸 기록이 거의 없기에 더더욱 묻히는 면이 많다.
리그에서는 32번 우승하여 최다 우승을 기록중인 SK 라피트 빈이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기팀이지만 2010년대 와서는 레드불에게 팔리며 이름도 FC 레드불 잘츠부르크가 된 이팀이 최강급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2010년대와서 리그 우승 3번,FA컵 우승 3번(모두 더블 우승)으로 2010년대 최다 우승을 기록 중(통합 8번 리그 우승)이다.
국내에 이 리그가 좀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서정원이 나이 34살 늦깎이로 여기로 진출하여 최우수 외국인선수상을 받은 것이 크며, 이외에 최성용강철이 2000년대 초반에, 홍순학노병준이 2000년대 중반에 잠시 몸담은 바 있다. 그밖에 2014년 황희찬이 포항 스틸러스 유스팀을 내치고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으로 이적하여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리그팀 가운데 SK 슈투름 그라츠(SK Sturm Graz)라는 팀(3부리그 팀이자 이 구단의 라이벌인 그라츠 AK 랑 경기장을 같이 쓴다) 경기장 이름이 바로 '''아놀드 슈워제네거 경기장'''(Arnold Schwarzenegger Stadium)이었으나 2006년부터 경기장 이름이 UPC-Arena으로 달라졌다. 사실 경기장도 15,000석 정도로 작고 리그 우승을 3번 거두긴 했어도 오스트리아 바깥에서는 인지도가 없는 팀이라 경기장에 대해서도 그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한국인 선수로는 2017년까지 황희찬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김재우가 SV 호른에서, 이진현FK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뛰고 있었지만 이진현과 김재우는 국내 복귀, 황희찬은 독일 함부르크 SV로 임대이적했다 복귀, 잘츠부르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후 2020년 7월 독일 분데스리가의 라이프치히 구단으로 이적했다.
과거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마티아스 진델라(Matthias Sindelar/1903~1939)가 이끌었던 팀은 세계 5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강호였지만, 이 분은 애인과 함께 침대위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모 국가의 대표팀 선수로 뛰라는 제의를 거절했기 때문에 나치가 저지른 짓이라고 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BBC 보도에서는 당시 나이 37세로서 전성기가 지났으며 무엇보다 조국 오스트리아를 강제합병한 나치에 대하여 거부감을 보였기에 이것때문에 나치가 죽였다는 분석도 있다.
축구 국대에 대한건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7.2.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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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유럽야구선수권대회의 디비전 B에 있어 중하위권에 속한 실력인지라 상대적으로 유럽 야구 강국에 비하면 경쟁력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꾸준히 실력 향상을 보이고 있다. 2018년 유럽야구선수권 대회 디비전 B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리투아니아를 꺾고 디비전 A로 승격한다. ABL이라는 자국리그가 있고 6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다이빙 덕스라는 구단에 2015년부터 선수로 뛰기 시작한 최향남이나 SK 출신 황건주, 롯데 트레이너 출신이자 이 구단의 감독겸 선수로 역임 중인 하승준 이렇게 한국인 3명이 오스트리아 야구리그에서 선수경력을 이어 나갔다. 이 다이빙 덕스 팀은 2015년 파이널 시리즈에 진출해 일본인 선수들이 있는 비엔나 원더러스와 맞붙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렸다.

8. 영화


아일랜드캐나다랑 비슷하다. 심지어 독일 영화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인재가 나와도 독일로 가지 않고 프랑스로 가버리는 케이스도 자주 볼 수 있다. 미카엘 하네케가 대표적이다.

8.1. 사운드 오브 뮤직


자전적 소설에서 시작하여 영화,연극,뮤지컬 등 다방면으로 재창조된 작품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안주인이 죽은 이후 일곱 자녀(!!)를 군대식으로 훈육하고 있는 본 트랩 대령[14]의 집에 견습수녀인 마리아가 가정교사로 파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대령이 독일군의 징집 명령을 거부하고 가족과 함께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망명하면서 마무리된다.
이를 바탕으로 1965년에 제작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당시 아카데미상을 휩쓴 명작으로, 5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는 영화다. 이와 관련된 관광상품으로 Felsenreitschule이라는 공연장(극장)의 가이드 투어가 있는데, 가이드하는 직원이 말하기를 사운드 오브 뮤직이 무슨 영화인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즉, 정작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이 작품을 잘 모른다! 오히려 관광 붐이 일어서 알게 됐다는 듯. 작중에서 국가마냥 사용되는 곡인 '에델바이스' 역시 뮤지컬용으로 창작된 노래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당연히 잘 모른다.
해당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인 관광객[15] 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 열심히 얘기하다 이내 실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영화를 찾아봤지만 5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영화 시작하고 20분 안으로 잠들었다고. 결국 포기하고 영화를 아는 것처럼 연기하며 장소를 안내해 준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옛날 얘기고, 오래된 영화인 만큼 사운드 오브 뮤직 때문에 오스트리아 관광을 가는 사람은 최근에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일화도 요즘엔 잘 일어나질 않는다.

9. 성문화


다른 나라랑 비슷하게 시골이나 지방은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이기도 하고, 대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난 변두리만 가도 성 관념에 관하여 상당히 보수적이지만, 적어도 수도 비엔나 일대는 수세기동안 문화적 모더니즘의 첨단을 달렸던 만큼 성적으로 개방적이다. 특히 예술적으로 매우 관대하여 성적으로 파격적인 작품이 전시되거나 출판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사우나는 대부분 남녀혼탕이다. 체험담[16]
그러나 예술적 혹은 일상적(성행위와 관련이 없는 나체 등)으로 개방적이라 해서 실제 성생활까지 엄청나게 개방적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68혁명의 영향이 적은 것도 있고 해서 프랑스나 독일처럼 무제한적으로 자유로운 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낙태율 역시 폴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다만 이혼율은 45% 정도로 높은 편이다.
또한 섹스를 가르치는 학교가 등장했다. 이름은 Austrian International Sex School이다.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학생들은 혼성 기숙사에서 밤마다 '숙제'를 하게 된다고 한다...라는 밈이 있었지만 이는 저출산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한 단체의 장난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이런 장난이 나올 만큼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국가이다.

10.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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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엔 캥거루가 없다.''' 당연히 코알라도 없다. 바다도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즉 호주와 헷갈리는 사례가 '''매우 많다'''. 대표적인 예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의 고향이 오스트리아인데, 발음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비슷해서 '''호주댁'''이라고 불렀으며[17], 6.25 전쟁 당시 호주군이 연합군으로 참전한 것을 보고, 호주댁 친정에서 원군을 보냈다고 했었다. 같은 이유로 당시 날아다니던 제트 전투기들을 '호주기' 혹은 '이승만 처가집기'라 부르기도 했다. [18]
외국어와 해외정보가 부족했던 과거도 아닌 2010년 G20 정상회의에서도 서울시가 호주 총리 캐리커쳐 인형에 오스트리아 전통 의상을 입혀놓는 병크를 터트려 호주 당국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명은 "같은 유럽권(...) 국가이니 이해해 줄 줄 알았다." 였다. 헷갈리는 건 방송사도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그냥 방송사고가 아니라 또 다시 방송사고다.
특별히 한국인들만 헷갈려 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들은 오히려 더 헷갈려한다. 한국에서는 혼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호주'라는 한자식 표현을 쓰지만, 알파벳 표기는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와 오스트리아(Austria)로 비슷하고 Austria에서 Austr와 ia 사이에 al만 붙이면 호주가 되니 몹시 헷갈릴 수밖에.[19]
오스트리아 관광지에서는 영어로 "오스트리아엔 캥거루가 없어요"라고 써진 티셔츠를 팔기도 한다. 심지어 캥거루 인형을 만들어서 "오스트리아엔 캥거루가 없습니다(No Kangaroos in Austria)" 티셔츠를 입혀놓는 경우도 있다. 혼동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하나의 밈이 되었는지 이런 티셔츠까지 팔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주와는 달리 내륙국인데도 해변가나 항구를 찾는 경우도 있다고.
역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빈 소년 합창단이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모차르트슈베르트 생가가 어딨냐고도... 이에 관한 대답은 호주 관광청의 답변을 참고하자
비록 캥거루가 자생하진 않지만 동물원에서 탈출한 캥거루가 돌아다닌 적은 있다. 2006년 알프스 근처에 있는 한 동네에서 캥거루가 발견되어 경찰이 포획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알프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 2015년에도 다른 캥거루가 탈출하여 사진이 찍혔다가 이후 잡혔다고 한다.
타조와의 연관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Österreich)와 타조(ostrich)의 스펠링이 비슷하기 때문. 물론 실제로는 전혀 관련 없다. Österreich는 '동쪽 지역'을 의미하는 고대 독일어인 'Ostarrîchi'에서 기원한 단어이고, ostrich는 라틴어로 새를 의미하는 'avis'와 후기 라틴어로 타조를 의미하는 'struthio'가 합쳐진 고대 프랑스어 단어인 'ostriche'로부터 기원한 단어이다.

[1]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쭉 살았던 아돌프 히틀러(오스트리아에서는 서부와 동부를 오갔다)는 프랑스로 가서 몇 해 살다가 독일로 이민가기로 했을 때, 바이에른으로 이민을 갔고, 거기서 군대도 가고 정치도 하며 자기 정치 인생의 기반으로 삼았다. 게다가 고향이 오스트리아에서도 바이에른 접경 지역이어서, 그가 바이에른 정계에 입문할 때도 언어적인 곤란이 없었고,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것처럼 해서 오스트리아 출신임을 쉽게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바이에른 뿐만이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활동하는 유명 정치인이 되어 베를린에서 많이 활동하게 되자, 오스트리아-바이에른 사투리 때문에 평생 놀림을 받아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2] 부르겐란트 주에서 쓰이는 크로아티아어는 부르겐란트 크로아티아어라고 불리며 크로아티아 본토와는 차이가 있는 편이다.[3] 그래도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을 때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헤맸다는 증언도 더러 존재한다. EF 영어 능력 지수 통계도 개인 간의 편차 등을 모두 반영한 정확한 통계라 볼 수 없으며, 비영어권 국가에 여행을 가서 영어로만 의사 소통이 되지는 않는다. 그나마 외국인이 영어로만 의사 소통이 잘되는 유럽 국가는 저지대나 스칸디나비아계(북유럽) 쪽. 당장, 1위를 다투는 네덜란드덴마크 등지를 가도 대도시변을 제외한 변두리로 가면 영어를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4] 카프카의 민족정체성은 상당한 논란거리이다. 그는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 왕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유대계였고, 체코어도 잘했지만 제1언어는 당대 공용어이자 지식인들의 언어였던 독일어였다. 작품 활동도 물론 독일어로 했다. 그리고 국적은 독일과 헝가리계 중심의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다가 제국 멸망 이후에는 체코계 주도의 다민족 국가인 체코슬로바키아로 변경되었다. 그의 이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복잡한 국적과 혈통은 그의 정신세계와 작품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을 넘어서 오늘날 오스트리아, 체코, 이스라엘이 서로 자국 작가라며 싸우는 원인이 되었다. 이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체코슬로바키아가 분열되고 독일계 체코인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이동하고 체코가 체코인들만의 국가가 되었기에 불거지는 것. 여기서는 카프카가 나고 자란 제국 시절과 그의 사용 언어에 초점을 맞춰 그를 오스트리아 작가로 소개했다. 유사한 사례로, 한국 작가인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역시 마찬가지로 독일어로 쓰였기에 국문학이 아닌 독문학으로 분류된다.[5] 16- to 29-year-olds[6] 이는 네덜란드도 비슷한편이다 이곳도 대도시는 매우 세속적이지만 시골 지역에는 종교적 보수주의 성항이 있다.[7] https://bucketlist.austria.info/kr/bucketlist/72/[8] https://www.natgeotraveler.co.kr/article.php?type=h&idx=28[9] https://ko.wikipedia.org/wiki/%EB%B9%88_%EC%B9%B4%ED%8E%98%ED%95%98%EC%9A%B0%EC%8A%A4[10]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2/2017080200995.html[11] https://www.wien.info/en/shopping-wining-dining/wine[12] 정작 독일 민족주의 및 군국주의의 대표 이미지로 지목받았던 북부지방, 특히 옛 프로이센에서는 저런 게 아니고 아예 다른 형태의 의상을 입었다는 게 함정.[13] 현재도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를 종종 방문한다.[14] 작중 예비역(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해체되면서 해군도 해체)해군 대령이다. 그러나 원래는 소령인데 번역 오류로 대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최종계급은 콜벳텐 카피텐(Korvettenkapitän(Corvette Captain)-호위함 지휘관/소령)인데 앞의 구분호칭을 빼고 번역해버려서 대령(영어로 해군 대령은 Captain)이 되었다고 한다.[15] 재밌고 교훈적인 영화이면서 음계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일본의 초등 음악 수업에서 교육자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16] 사실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에 있는 사우나는 남녀혼탕인 경우가 많다.[17] 참고로 오스트리아의 한자 음차는 오지리이다. 근대 문학을 많이 읽었거나 한국외대생이라면 익숙한 명칭이다.[18] 참고로 호주는 UN 연합군으로서 6.25 전쟁에 참전하고 정말 전투기도 보냈지만, 오스트리아는 1945년에서 1955년까지 독일과 함께 2차대전 승전 연합국에 의해 점령,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에 파병할 수 없었다. 1955년 체결된 국가조약에 의해 오스트리아는 연합국의 관리에서 벗어나 영세중립국으로 거듭난다.[19] 우리나라의 세계여행 영어 만화인 <월드트래블> 프랑스 편에 나오는 지도에는 오스트리아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