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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釜山電車 / Pusan Tram
1. 개요
1915년[2] 부터 1968년까지 (정부 직할) 부산시[3] 에서 운행했던 옛 노면전차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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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부산의 전차 노선도. 지금의 송공삼거리~교대역 구간의 거제대로를 제외하면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의 온천장역~서대신역 구간과 역 위치까지 거의 일치하며 영도대교를 지나 영도구로 들어가는 지선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90도 회전하면 쉽게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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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지도 위에 표시한 1962년 노선도.
2. 역사
2.1. 부산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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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궤도를 달리던 기관차.
1909년, 아직 경술국치 이전이었지만 부산을 비롯한 대한제국 땅에는 이미 일본인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일본인들은 자주 목욕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기 때문에 부산 시가지 인근 동래온천을 자주 찾아 수요가 꽤 있었다. 하지만 교통은 불편하다보니 경부선 철도 연선의 부산 시가지에서 동래온천까지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도요타 후쿠타로 등 일본인 유지 몇 명이 모여 궤도를 깔기로 결정했다. 1909년에 건설과 운영을 위한 '''부산경편궤도주식회사'''를 세우고 같은 해 11월에 부산진~동래남문, 12월에 동래남문~온천장 구간에 부산궤도 노선이 개통되었다. 그리고 1911년에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가 이를 인수해 4만5천엔이라는 거금을 들여 1915년 10월에 선로를 전철화하고 궤간을 610mm에서 762mm로 개궤했으며 노선을 부산진역에서 초량, 우편국까지 연장해 본격적으로 노면전차 운행을 시작했다. 몇 달 동안은 궤도와 노면전차가 같은 선로를 달리다가 1916년 3월부터는 기관차 운행을 중단하고 노면전차 전용선으로 바꾸게 되었다.
2.2. 일제강점기
1917년에는 나가테(長手, 현 광복로 일대) 선을 연장 개통해 당시의 부산 시가지(지금의 중구, 동구, 서구 일대)를 도는 순환선이 완성되었다.
지금은 부산 자체가 연담화되어 남포동부터 동래까지 시가지로 쭉 이어진 하나의 도시가 됐지만 당시에는 가운데 서면은 말 그대로 면, 시골이었고 동래는 지금의 남포동 일대의 부산과 따로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또다른 도시였다. 그렇기에 부산전차는 부산 내에서는 도시철도 역할을 하지만 동래와 부산을 잇는 광역철도 역할도 했는데 부산 시가지 안에서는 쓸 수 없는 대형 차량을 온천장~부산진 구간에 투입해 폭증하는 수요를 겨우 감당했을 정도로 흥했다고 한다. 복선화도 일부 구간에 한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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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는 종점을 대신동 구덕운동장까지 연장하여 비로소 현재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의 온천장역부터 서대신역의 전신에 해당하는 구간이 완성되었고 이 노선으로 1968년 폐선될 때까지 운행한다.
1934년에는 영도대교가 개통, 영도로 가는 지선도 같은 해 운행을 시작했다.[4]
1937년에는 대흥전기주식회사 등 한반도 남부의 6대 전기회사가 합병해 '''남선합동전기주식회사'''가 되었고 조선와사전기의 노면전차와 버스는 이 쪽으로 넘어갔다.
2.3. 미군정, 대한민국
태평양 전쟁을 거쳐 일제가 패망한 뒤 비로소 부산전차는 한국인의 손으로 돌아왔지만 자재 부족, 정비 불량이 겹쳐 초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관리하던 일본인들은 노하우를 전수하지 않고 다 도망가버렸다보니... 해방 당시에는 61대의 일제 차량이 있었는데 실제로 굴릴 수 있었던 건 38대뿐이었다고... 1946년에는 13대, 1947년에는 8대밖에 굴러가는 놈이 없었다.
당시 미국은 마침 LA의 노면전차 노선이 미국 전차 스캔들로 인해 대거 폐선되어 남는 잉여 차량을 대한민국, 칠레, 이집트 등에 공짜로 보내주었다. 한국에는 100대를 보냈는데 부산에는 32대가 왔다.[5] 이후에도 애틀랜타 등지에서 원조 차량을 보내주어 미제 전차의 비율이 대폭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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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크가 옆에 찍힌 원조차량.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은 전력회사들을 정리하면서 부산전차도 남선합동전기에서 한국전력주식회사로 경영권이 넘어갔다.[6]
1963년에는 일본의 후지사료에서 만든 신차 10대를 사서 8대는 서울에 2대는 부산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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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년대가 되자 노후화도 많이 됐고 슬슬 늘어나는 자동차에 치이면서 사고도 부쩍 늘기 시작했고 장사가 안 되는 일부 노선이 폐지되었다.
이후 도로교통의 발달로 전차는 자동차 앞에서 길막이나 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가 결국 1968년 5월 20일에 완전히 폐선되었다. 같은 해 서울에서도 전차가 폐선되어 북한을 제외한 대한민국에 노면전차 노선은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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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에 실렸던 ''''마지막 영업을 마치고 서면 차고지에 돌아오는 차량을 맞아주는 직원들''''
서울전차는 같은 해 1968년 폐선 직후 바로 거의 같은 노선을 따라 서울 지하철 착공에 들어가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으나 중앙부처의 관심을 받지 못한 부산은 1985년이 되어서야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 20년 가까이 궤도교통이 없는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 동안 부산의 도로상태는... 그러나 이후 전액 국비[7] 로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건설되었고 이후에도 매우 순조롭게 도시철도 건설이 진행되고 있고 현재 도시철도망이 늘어나는 속도가 제일 빠른 곳이 다름아닌 부산이다. 2030년 예정 노선도를 보면 이게 수도권 전철 노선도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문제는,도시철도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부산시가 간선 노선은 다 깔아놓고 동네마다 지하철을 깔으려고 한다는 것이다.[8]
2.4. 폐선 이후의 행보
1968년 폐선된 이후 352호 전차는 다시 미국 라스베가스로 보내져 거기서 스파게티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 오렌지 엠파이어 철도박물관에 기증되었고 현재 메인 주 Kennebunkport에 있는 '''Seashore Trolley Museum'''에 전시되어있다.
1952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운행되던 중고 전차를 무상원조받은 차량 가운데 1량[9] 을 고 석당 정재환 박사의 요청으로 학습용으로 기증받아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에 보관하고 있었으나 40여년간 일반인들에게 관람용으로 공개되지는 않았다.[10] 별다른 관람 시설 없이 옛 법대 건물 뒤 쪽 간이보관소에 보관되던 이 전차는 관리 소홀로 인한 부식과 훼손 등으로 1980년에 전후면부 철판 완전교체, 지붕과 내부 목재 완전교체와 도색작업 등 대대적인 수리작업을 받았고 2009년 3월 동아대부민캠퍼스 완공과 서구청의 임시수도기념거리 조성에 맞춰 2010년 12월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2011년 7월부터 일반시민에게 공개중이다. 2012년 4월 18일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제494호로 지정되었다. 문서 참고. 내부관람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경비실에서 무료로 배부하는 티켓을 받아서 가능하다.[11]
2016년부터 6월과 10월 경에 서구 부민동에서 열리는 '''피란수도 부산야행''' 행사 시즌 때는 티켓 발부 없이 방문객들에게 전면 무료로 개방되며 해설사가 해설 및 안내를 해 준다.
2017년 11월 20일부터 전차 내 바닥 안정성문제와 흔들림이 증가하여, 안전진단과 보전계획 수립을 위해 잠정적으로 내부관람이 중단된 상태이다. 밖에서 들여다보는 관람은 가능하다.
3. 요금제
1929년 기준. 부산역에서 시내순환선 내는 1구간, 구내는 5전 단일요금이었다. 부산역에서 초량고관까지 1구간, 초량고관에서 부산진까지 1구간, 부산역에서 동래온천까지 5구간으로 나눠져 있었다.
4. 연도별 연간승객수
5. 노선
크게 5개의 기종점[12] 을 두고 이 구간들을 연결하는 식으로 운행되었다. 일제강점기 중반에는 시내 순환선이 있었으나 노선을 조금씩 바꾸면서 없어졌다.
노선 계통 및 연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기준 다음과 같다.
- 범일정선[13] (凡一町線, 3.979km)
- 목도선[14] (牧ノ島線, 1.966km)
- 장수선[15] (長手線, 3.376km)
- 대청정선[16] (大庁町線, 1.488km)
- 동래선(東莱線, 10.906km)
6. 역 목록
7. 역명과 오늘날
- 위 노선표의 '동래역'은 현 동래역(도시철도)이 아니라 수안역 부지에 더 가까이 있었다.
- '사대앞역'의 '사대'는 해당 지역에서 현재까지 부산교육대학교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사대앞역'이라는 곳이 '교대역'이 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부산교육대학교는 1946년에 설립된 부산사범학교와 1955년 설립된 부산사범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사범학교는 현재의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중등교육 기관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사범'대학'과는 개념이 약간 달랐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범대학보다 한 단계 아래였다.[18] 당시 부산사범학교는 초등교사, 부산사범대학은 중등교사를 양성하였는데, 1961년에 두 학교를 통합하여 중등교사 양성 기능은 없애고 초등교사 양성 기능만 남은 2년제의 신제 부산사범대학으로 개편하였다. (그래서 1969년 부산대학교에 사범대학이 신설될 때까지 부산시에는 8년간 중등교사 양성 기관이 없었다.) '사대앞역'이 된 이유가 바로 이 부산사범대학 때문이었다. 부산사범대학은 1962년에 부산대학교 병설(부산대학교에 완전히 흡수된 것이 아니다.)로 전환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19] 도로 독립하면서 부산교육대학이 되었다. 그래서 전차 폐선 전의 이 역은 '교대(앞)역'이 되었어야 하나 사범대학 시절의 잔재 때문에 계속 이름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산교육대학은 1981년 3월 1일부로 4년제로 승격하였고, 1985년에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면서 드디어 교대역이 역사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3년에 현재의 이름인 '부산교육대학교'로 개칭되었다.
- '서면차고지'의 부지에는 현재 한국전력공사 부산울산본부가 자리잡고 있고,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의 상행선 1단계 구간 종점이었던 범내골역과 서면차고지의 중간 지점에 부산교통공사 사옥이 있다. [20]
- '시장앞역'의 '시장'은 부산진시장을 일컫는다.
- '시청앞역'에는 말 그대로 부산광역시청 광복동청사가 있었다. 구 시청 부지에 지금은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입점해 있다. 부산시청은 1998년에 연제구 연산동으로 이전하였다.
- '시립병원앞역'의 '시립병원'은 현재 부산대학교병원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향토대백과와 부산대학교병원 홈페이지에서는 부산시립병원을 부산대학교병원의 전신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부산대학교병원은 시립이 아니라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부속의 국립 병원이기 때문에 사실은 직계 후신으로 보기 어려우며 부산시립병원의 실질적인 직계 후신에는 같은 시립(병원장을 부산시장이 임명)인 부산의료원이 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부산의료원은 현재 연제구 거제동에 있다.
- '재판소앞역'의 '재판소'는 부산지방법원을 말하며 부산지법이 연제구 거제동의 법조타운으로 이전한 후 빈 건물을 동아대학교에서 인수, 지금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바뀌었다.
- '운동장역'의 '운동장'은 구덕운동장을 일컫는다. 사직운동장 개장 전까지만 해도 부산의 유일한 종합운동장이었다. 현재는 구덕종합경기장만 남아있고 노후된 실내체육관은 헐어내어 주차장을 만들었으며 야구장을 헐어내고 부산시민체육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도록 하였다.
- '대신차고지'는 현재의 구덕운동장 내의 부산시민체육공원(구 구덕야구장)맞은 편에 있는 문화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8.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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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이후 부산에서 노면전차는 사라졌지만 50여년이 지난 2014년 1월 7일 북항 트램 노선 계획이 발표되었다. 게다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오십 년 전 사라졌던 부산 전차와 비슷한 경로를 따라가는 구간이 꽤 있다.[21] 물론 부산전차의 직계 후신은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부산 경전철 문서 및 북항 트램 문서를 참조.
그러나 먼저 시행하는 곳은 이기대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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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부산 도시철도 오륙도선 참조.
[1] 부산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 인근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보존전시된 부산전차 차량. 1927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제조된 GP&L 860-899 시리즈 중 893호이며, 전쟁 중 부산에 무상원조로 들어오기 전에 미국 애틀랜타에서 먼저 뛰었던 중고 차량이다. 이 차량의 경우 두 명씩 앉을 수 있는 24개의 의자와 입석을 포함해 약 100명 정도 탈 수 있었으며, 일본 전차나 오늘날의 지하철 좌석처럼 옆으로 긴 롱시트가 아니라, 미국 전차의 영향을 받아 두 명씩 앉는 의자였다. 전차 외부는 앞뒤 모양이 서로 같고, 양쪽에 미닫이문이 2개씩 있었다. 2017년 현재 한국에는 3대의 근대 전차가 보존되고 있는데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서울과학관에 일본제 서울전차가 남아있으며, 미국 전차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2] 직접적인 전신이었던 부산궤도 노선은 1909년부터 1916년까지.[3] 현 부산광역시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직할시이기는 하였으나 정식으로 부산직할시 명칭이 부여된 시기는 아니어서 임시 방편으로 근래에는 이 시기(1963년~1981년)를 '정부 직할'을 괄호 병기하여 나타내며 (정부 직할)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정식 개칭된 것은 1981년 4월 4일로, 인천시와 대구시의 직할시 승격 3개월 전이다.[4] 정작 지금은 부산의 16개 자치구군 중 유일하게 영도구만 도시철도 노선이 없다. 안습.[5] 남북분단으로 넘어간 평양을 제외하면 남한 땅에 노면전차는 서울과 부산밖에 없었으니 나머지 68대는 당연히 서울로 갔는데 그 해 한국전쟁이 터져(...) 대부분 날려먹었다.[6] 당시 한국전력공사는 사기업이었다. 공기업으로 전환된 것은 전두환 시절.[7] 타 지역 도시철도는 건설 당시 지방비를 부담하였다... [8] 타 도시 도시철도를 보자. 충실하게 주요 도로나 중심지-지역 중심만을 연결하고 지역 중심-주거지 노선은 시내버스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9] 차량 번호는 불명.[10] 이 대학의 법대 건물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1층 복도 창문 너머로 흔히 보던 전차였다. 다만 들어가서 만지거나 타 볼 수는 없었다.[11] 단 이 티켓은 일일 수량이 정해져있어 선착순으로 배부하므로 티켓이 모두 매진되면 탑승이 불가능하며 탑승 가능시간이 정해져 있다.[12] 온천장역, 서면역, 영도종점, 시청앞역, 운동장역.[13] 범일동.[14] 해방 이후 영도선.[15] 해방 이후 광복선.[16] 대청동.[17] 수안역으로 연결되는 이유는 당시 동래역 정거장이 현 수안역 위치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18] 이 사범학교라는 개념은 무려 구한말, 한성사범학교에서 시작하여 1960년대 초반까지 존속하였다.[19] 공교롭게도 이날은 경상남도 부산시의 직할시 승격일자이기도 하다.[20] 2단계 종점은 중앙역(부산), 3단계 종점 서대신역, 4단계 종점 신평역, 그리고 5단계 종점이 다대포해수욕장역이다.[21] 북항~영도입구 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