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드라마)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
(2005년 4월 23일 ~ 2005년 9월 11일 / 재편성)

신돈
(2005년 9월 24일 ~ 2006년 5월 7일)

불꽃놀이
(2006년 5월 13일 ~ 2006년 7월 9일)
MBC 주말 특별기획
신돈 (2005~2006)
Shin Don

시청 등급
15세 이상 시청가
방송 시간
토요일, 일요일 밤 9시 40분 ~
방송 기간
2005년 9월 24일 ~ 2006년 5월 7일
방송 횟수
61부작
장르
한국 사극
제작
삼화네트웍스
채널

제작진
제작
안제현, 신상윤
연출
김진민[1]
극본
정하연[2]
원작
박종화, 소설 《다정불심》
출연
손창민, 정보석, 서지혜
링크
공식 홈페이지
HD 제작 여부
SD 제작 · 방송
1. 개요
2. 비운의 작품
2.1. 안습의 시청률
3. 등장인물
3.1. 주연
3.2. 신돈 주변 인물
3.2.1. 월선
3.2.2. 덕운
3.2.3. 원현
3.2.4. 초선
3.3. 조정 인물
3.4. 왕실 주변 인물
3.5. 원나라 측 인물
3.6. 유림 및 신흥 무인 세력
4. OST
5. 연기력
6. 명대사
7. 기타


1. 개요


조광조, 장녹수, 왕과 비, 명성황후 등을 집필한 정하연 작가와 후에 개와 늑대의 시간을 연출한 김진민 PD[3]의 합작으로 MBC의 야심찬 기획 의도에 따라 제작되었다.[4] 총 61부작으로 2005년 9월 24일부터 2006년 5월 7일까지 토/일요일 9시 40분에 방영되었다. MBC 사극이지만 정통파 사극에 가깝게 연출되었다. 원작은 박종화의 소설 다정불심.
대한민국 사극에서 마지막으로 제작된 4:3 비율 SD 드라마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전설이 된 작품. 지금은 특히 한물 간 짤방으로 유명하다.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 대부분은 재미는 있는데 작품성이 떨어진다든가 작품성은 좋은데 대중적인 재미가 떨어지는 등 판단의 중요한 부분이 다른 경우인데, 신돈은 같은 부분에서도 극과 극으로 평이 갈린다. 아래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작품성만 봐도 극찬하는 사람과 악평하는 사람의 극과 극으로 나뉜다.

2. 비운의 작품



2.1. 안습의 시청률


자체 시청률 최고 16.9%를 기록해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당시 경쟁 드라마였던 SBS사랑과 야망에 밀려 11.8%로 막을 내렸다.[5] 특히 회를 더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줄거리와 캐릭터의 기행[6] 이 더해져 희대의 괴작이 되고 말았다.
깊게 들여다보면 제법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상과 개혁이 어떻게 실패하고, 젊고 패기넘쳤던 사람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좌절하고 타락해 어떻게 변절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극으로서는 제법 획기적인[7] 내용이었다. 이에 더해서 주조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명품 OST가 어우러져 빛을 발했다. 그러나 이상함을 넘어 기괴함에 치닫는 형편없는 스토리는 드라마의 장점들을 모두 망가뜨려버렸고, 결국 희대의 괴작으로서 기괴한 짤방 몇개만 남긴 채 폭락한 시청률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에게 괴작으로 비치게 된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주인공 신돈의 기상천외한 도력인데 첫화부터 안광으로 바닥 타일을 가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무협지에 나올 법한 기공술을 선보이지 않나 축지법, 분신술 같은 요행을 부리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지금봐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영 좋지 않은(...) CG 탓에 더욱이 괴기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신돈의 이러한 초능력들은 작중 신돈이 직접 요술이 아닌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려하는 환상이라 짚어주기도 하고, 막강한 능력을 지닌 초월자조차 결국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어찌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져버리는 허무주의적 색채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된 듯 하나, 형편없는 연출력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전혀' 그렇게 느껴주지 않았고(...), 이러한 점들은 이 드라마의 매니아가 아닌 라이트한 시청자들에겐 그저 촌티나는 싸구려 능력자물 정도로만 여겨졌다.
특히 신돈의 역할을 맡은 주인공 손창민은 그야말로 '발연기란 무엇인가'를 모골이 송연하게 증명해보였으며, 저 사람 배우는 맞나 싶을 정도의 최악의 불안정한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이며 드라마를 망가뜨리는 앞잡이 역할을 다 하였다. 제목이 '신돈'인 드라마에 '신돈'의 연기력이 개판이니 드라마가 망하는것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 드라마는 놀라울 정도로 연출력이 미흡한데, 연출감독과 카메라감독들, 편집부가 모두 아마추어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이 될 정도로 조잡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엉성하기 짝이 없는 연출능력이 신돈의 초능력과 맞물려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수 많은 구린 장면들을 대거 양산했고, 드라마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터넷 상에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언제까지 그따위로 살텐가라는 짤방을 낳은 공로가 있다.[8]
사실 이 작은 원래 KBS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고려왕조 사극으로 제작될 예정이었다. KBS에서 태조 왕건제국의 아침무인시대삼별초공민왕의 순이었고 제국의 아침과 무인시대 사이에 거란 침공을 다룬 작을 하나 넣는 것이었다.[9] 그렇지만 <제국의 아침>이 기대에 못미치는 시청률을 기록하자 거란족의 침공 부분을 생략하고 <무인시대>를 방영하다가 이마저도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완전히 취소되어버렸고, KBS는 불멸의 이순신을 제작했다. 당시 구두로 계약을 맺은 정하연 작가는 결국 MBC와 손잡고 자신이 구상한 "공민왕"의 내용을 이 작에서 펼친 셈이다.
배경이나 소품 면에서는, MBC가 신돈을 위해 110억을 투자하여 용인시에 새로 지은 전용 세트장[10]티베트 로케 촬영 덕분에 당시 경쟁작인 서동요를 압도했다.[11] '학예회'라는 비웃음을 사던 서동요에 비해 롱테이크로 넓은 배경을 자신감있게 뿌려내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영화음악으로 알려진 황상준이 OST를 맡아 음악도 스케일 있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HD 방송이 아니었다는 아쉬움이 남았고, 또한 특수효과 면에선 드라마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 다소 빈약한 편. HD의 경우는 당시에 극소수로 제작하였기 때문에 그다지 아쉽다고 보기는 어렵다.
MBC는 이 작품을 시청률을 확실히 견인할 수 있는 대형 사극으로 설정하고 상당한 투자와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나름 '주제의식'이 투철한 편인 정하연 작가의 의도는 그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던지라, 1자릿대를 벗어나기 힘든 시청률 속에 시청자가 이해하기 힘든 전개와 결말을 보이며 끝나 '괴작'의 오명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마지막에 패배하는 주인공을 다룬 사극이라면 그 이전의 무인시대라던가 먼 훗날 나온 정도전 같은 것도 있는데 왜 유독 이 드라마만은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지 이유를 뽑자면, 이 드라마가 희곡적이고 불교적인 면(선문답)이 강하다는 것이다.[12] 덕분에 의미의 함축성과 추상화가 너무 심했던 것. 밑의 명대사들을 보면 알겠지만 선문답이 상당히 많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다수의 시청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소수의 팬들만 낳는 결과를 내놓았다. 뒤의 평에서 나온 '괴작이자 기작이자 걸작'은 이를 반영하면 적절한 평이다.
비록 괴작이란 평을 받지만 작중 캐릭터 묘사는 상당히 괜찮다. 훌륭한 인간관계 묘사, 입체적인 인물상[13], 적절한 연출과 ost를 보여준다.
페이퍼하우스에서 발간하던 드라마 전문지 '드라마틱'[14]의 창간 초기 비중있게 다루었던 작품 중 하나로서, 특히 창간 준비호에서는 아예 정보석을 표지로 하고 주요 스탭 9명의 인터뷰와 심층 리뷰를 실은 신돈 특집 별책부록 책자를 따로 만들어 주었을 정도로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여기서의 평가에 따르면 '괴작이자 기작이자 걸작. 세간의 반응과는 달리 평론가들에게서는 어느 정도 호평을 얻어낸 셈. 물론 '괴작'이란 표현이 빠지진 않았다는 부분이 참으로 미묘하기 그지없다. 사실 해당 잡지의 평론 자체는 그야말로 칭찬 일색이라 괴작이란 표현이 무색하긴 했다.

3. 등장인물



3.1. 주연



3.1.1. 신돈


배우는 손창민[15]. 법명은 편조. 개태사 여자 노비와 귀족 남자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로[17],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천한 것이 니놈이다"라는 세뇌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에 딸린 사노가 노비 중에서도 제일 험하고 천하다"는 내용이 드라마에도 몇번이나 나온다.
모친의 사후에 편조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긴 개태사의 고승인 월선의 손에 '중은 중이되 머리 기른 중'으로 키워진다.[18]
우연히 장터에서 낙타를 보고 그 큰 눈 속에 담긴 뭔가에 홀려 언젠가 서역에 가서 불도를 닦아야겠다고 생각만 하는데, 개경 구경을 나갔다가 공녀로 끌려갈 뻔 한 양갓집 여자를 구하려다[19]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결국 원나라로 도피하게 된다.
원나라로 도피한 이후 바다에서 배가 난파되어[20] 원현, 지효와도 헤어지고 죽을 고생을 하다가 우연히 대도의 강릉대군부로 숨어들게 된다. 처음에는 충정왕 측 사람들이 강릉대군[21]을 죽이려 보낸 암살자라고 의심받지만, 이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고 강릉대군과 엽색 행각(을 위장한 고려인 구출)을 벌이며 신분을 넘어서는 친구가 된다.
이 때 6화 마지막 신에서 나오는 "나는 굶주린 개를 잡아먹는 것이 자비라고 생각한다"는 대사는 그의 급진개혁 성향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대사.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굶주리며 고통스럽게 살 버려진 개한테는 차라리 생을 끝내주는 것이 자비라는 소리다. 이 대사는 고려라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유지하기 보다는 뒤집어 엎는 것이 낫다는 의미도 된다. 신돈은 극중에서 자주 "뒤집어 엎어야지, 이놈의 세상"이라는 위험천만한 말을 한다. 세상이 잘못됐다면 그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려야 한다는 신돈의 극단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사인 셈이다. 한편으로 신돈이 정신적으로 성장한 후에는 이런 말을 입에 담지 않는데, 사춘기적이고 반항적인 세계관이 좀 더 성숙해지고 진일보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
한편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와 혼인한 이후 공주와 몇 번 만나기도 하는데 고려의 왕비로서 고려인들에게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고려의 풍속과 역사를 배우라고 조언하며, 이는 공주가 '몽골의 것을 모두 버리고 고려로 가겠다' 라고 다짐하고 고려에 와서도 고려의 풍속을 열심히 배우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22]. 한편 신돈은 이 때 노국대장공주를 연모하기 시작한 것으로 묘사되나, 훗날 초선에게서 누군가를 사모해 본 적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그저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이 스치고 지나간 적은 있다고 대답하며 부정해 버린다[23].
이후 배가 난파되면서 헤어졌던 원현, 지효 등과 재회하여 티베트로 고행을 떠난다. 사막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등 여러 겅험을 쌓으며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은 듯 하다.[24][25]
원나라 대도에서 친구가 되었던 강릉대군이 공민왕으로 즉위했다는 사실을 알고 공민왕 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과정에서, 지효의 속가 누이이자 대상인인 초선과 가까워진다. 공민왕과 재회하면서부터는 왕궁에서 무기력과 고독에 갇힌 공민왕에게 새로운 원동력으로 작용했으나, 야심차게 시작했던 전민변정도감이 이제현, 이인복 이하 관료 전원의 사직으로 무력화되고, 결정적으로 월선이 유언처럼 남긴 구족계로 인해 승려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보우에게서 정식으로 계를 받고 내려오지만 월선은 이미 좌탈입망한 상태였다.[26] 허물어지는 월선의 시신을 향해 "세상을 바꿀까요, 저를 바꿀까요?"라고 절규한다. 이후 월선의 다비식을 마치고 무문암[27]에서 홀로 참선수행에 정진한다. 그러다 홍건적이 쳐들어와 자신의 식사 문제를 해결해주던 초선이 강간당할 위기에 처하자 참선을 폐하고 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월선의 영혼이 나타나 "초선이 죽고 사는 것은 부처님의 뜻이고, 부처님이 너를 어여삐 여기셔서 마귀들을 보내신 것이다. '네 마음 속 가장 큰 업을 끊으라'는 부처님의 당부"라고 말하며 신돈의 뒤를 막으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28] 그러나 초선의 안위를 무시해가며 강행한 수행은, 신돈의 도움이 필요했던 노국대장공주의 손에 억지로 중단된다.[29]
참선이 강제 중단된 이후 한동안 개태사의 주지 노릇을 하다가 정계로 복귀하게 된다. 임금의 사부로 영도첨의 자리에까지 오르는데 노국대장공주가 사망하는 것과 동시에 공민왕과의 사이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것은 노국공주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는 명분으로 공민왕을 설득하려 하지만, 공민왕은 신돈에게 '개혁의 동반자'나 '정치적 대리인'이 아닌 '감정적 지지자' 겸 '복종하는 신하'의 모습을 요구했다.[30] 공민왕은 신돈이 자신의 기대에 따르지 않자 점차 분노를 느끼게 된다. 공민왕은 신돈을 압박하여 굴복시키려고 하지만 신돈은 끝까지 그에게 굽혀주지 않았고, 결국 공민왕의 명으로 처형당한다.
'안광으로 바위를 쪼갠다' 따위의 요술의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31] 계율을 지키지 않는 것 모두 자신의 출생에 대한 컴플렉스로 인한 사춘기적 행동에 가까운 듯 하다. 절에 딸린 노비 신분으로 귀족의 유혹에 넘어가 신돈을 임신하고 버림받았던 그의 어머니는, 어린 그에게 "너의 반쪽은 귀족이다"라며 자주 윽박질렀다. 이로 인해 자신의 천한 반쪽과 귀한 반쪽 사이에서 컴플렉스와 정체성 혼란을 느끼며 자랐다. 성장한 후 정체를 숨기고 친아버지와 대면하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자기네 모자를 외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인들을 시켜 몽둥이찜질을 했던 아버지가 자식을 외면한 일에 죄책감을 보이는 것을 본다.[32]
사실 결말부에서 신돈공민왕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었고, 또 원현이 강하게 반란을 종용했으나 이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그가 공민왕의 슬픔과 절망을 충분히 이해했고 연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세상에 대한 증오에 빠진 괴물이었던 자신을 그 어둠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사람이 바로 공민왕과 노국공주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돈이 죽은 후, 이인복공민왕에게 "편조가 바꾸려던 것은 '이 세상'이었기 때문에, 전하와 같은 길을 갈 수 없었다"면서, "편조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3.1.2. 공민왕(강릉대군)


"공민왕은 영웅의 모습을 갖춘 왕인 동시에 로맨티스트이자 최고의 예술가였다. 모든 것을 지닌 사람이여서 매력을 느꼈다."

"궁안에 갇혀 있지 않고 역동적인 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백성의 소리를 듣고 기득권층의 부패를 혁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자 했던 이상적인 개혁가였다고 생각해요. 가능만 하다면 개성에 있는 공민왕의 능에 가서 참배하고 싶은 심정입니다."출처

배우는 정보석.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 이 드라마는 공민왕의 죽음으로 끝난다.
충숙왕의 차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성장한다. 극중 대사를 보면 김용이 오면서 궁핍한 생활을 겨우 면하고,[33] 조일신[34]이 오면서 고려인으로 자각한 듯하다.[35][36] 왕족은 왕족이나 굴곡이 많아서 그런지 신돈만큼이나 한이 많은 인물.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보우가 찾아왔을 때 이목구비가 빠진 어머니의 초상을 그려놓고 "어머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원나라 시절엔 일탈을 반복하며[37] 허허실실 자신을 숨기고 살았고, 권력을 위해 자기 주변에 모여든 세력에 어느 정도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충숙왕과 형 충혜왕이 죽고 형의 두 아들들이 차례로 왕을 하는 동안 고려로 돌아갈 꿈은 포기하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위왕의 딸 노국대장공주를 타국 왕비로 시집보내 사실상 멀리 귀양 보내버리려는 기황후의 계략에 의해 원 황실의 사위가 된다.
그런데 강릉대군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려고 일부러 일탈행동을 반복하는 모습만 보았던 노국공주는 강릉대군을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수준이었다. 그러자 강릉대군은 혼인 결정에 반발하는 노국공주를 설득하기 위해, 독이 든 술잔과 독이 들지 않은 술잔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당신이 골라주는 대로 마시겠다"고 제안한다. 노국공주가 고른 술잔은 독이 들지 않은 술잔이었고, 노국공주는 "원래 양쪽에 다 독을 안 넣었던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몸싸움 도중 나머지 술잔이 날아가고, 그 술잔에서 쏟아진 술을 핥아마신 고양이가 죽어버리며 독 인증(...). 결국 노국공주와 혼인하는데 성공하고, 덕분에 고려의 왕으로 봉해져 망해가는 고려로 돌아가게 된다.

1. 가자마자 기철을 중심으로 한 친원세력과 기싸움을 하다가 '조일신의 난' 발생: 조일신은 고려의 기상을 다시 세워 자신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싶어했고, 그러려면 원과의 일전은 불가피했다. 공민왕은 조일신이 탐욕스러운 인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버리지 못해 끝까지 괴로워했다. 조일신 암살을 명령한 것이 본인이면서도 "조일신을 죽이지 마라, 조일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수치를 배웠겠느냐"[38]

고 울며 절규한다.

2. 조일신을 잡고 난 뒤에 친원세력과의 정면승부: 원의 허수아비였던 공민왕이 왕다운 왕이 되기 위해서 원의 간섭을 끊으려는 전쟁. "노국대장공주의 부친상을 조문하러 오라"는 명분으로 기철을 대전으로 오게 해 기습적으로 죽인 뒤, 응양군 및 용호군·불교·초선이 주도하는 상단 조직·일반 백성들까지 총동원하고서야 친원파들과 그 사병들을 힘겹게 진압할 수 있었다. 친원파들은 사병들에게 공성병기까지 중무장시켜 대궐을 공격했고, 정세운은 화공으로 반격해 간신히 물리쳤다.

3. 친원세력을 잡고 난 뒤에는 원나라에 저항하는 세력이 쳐들어와 홍건적의 난 발생, 개경을 버리고 도망: 홍건적은 원의 지방소국에 해당되는 고려를 자신들의 세력에 넣어 원-고려 사이에 자신들이 포위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이성계의 동북면 군사들·원현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승병 및 일반 백성들의 의병까지 정세운의 군대에 가담해 치열하게 싸운 끝에 힘겹게 개경을 수복했다. 공민왕노국대장공주에게 "내가 이번에도 백성들의 신세를 진다"면서 뭉클해 했지만….

4.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김용의 난' 발생: 김용은 고려나 왕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공민왕 등은 흥왕사에서, 이인복·김원명 등 소수의 대신들 외에는 모두 도망쳤고, 악조건 속에서도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으려던 문하시중 홍언박은 김용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하는 등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한다. 명덕태후·덕녕공주 등 왕실의 여인들까지 공민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상황에서, 노국대장공주는 스스로 무장한 환관들을 이끌면서 김용의 부하들과 맞서 싸우고, 신돈이 파계까지 하면서 달려온 데에 이어 안도치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과정을 거쳐 어렵게 난을 진압한다.

개혁을 하려고 애쓰지만 반대 때문에 좌절하고 전란만 계속 일어나다가, 노국대장공주가 죽고서야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신돈을 전폭적으로 기용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의 가혹함, 외세의 횡포[39]와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봉착한 공민왕은 왕권에 집착하게 된다. 강력한 권력을 지니게 된 자신 주변에 남게 된 유일한 이해자이자 친구인 신돈을 압박하지만, 끝내 신돈이 굴하지 않자 신돈을 죽여버리고 만다. 그리고 공민왕은 궁궐에서 완벽한 외톨이가 되어 버린다.[40]
이후 편조를 죽인 사실에 후회하다가 무기력해져 권문세족들에게 권력을 빼앗기다시피 하여 최영에게 군권을 내주게 되고, 본인은 폐인이 되어 난잡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역사대로 홍륜과 최만생에게 시해당한다. 죽기 얼마 전 "나는 죽은 자들만도 못하다"고 자조하며 자신의 백골 그림을 그렸는데, 홍륜의 칼에 비명도 못지르고 시해당한[41] 공민왕의 시신을 그가 그렸던 백골 그림이 지켜보는 장면은 상당한 명장면.[42]
극중 취급을 보면 그야말로 고려의 아웃사이더이자 비극의 임금. 어려서 연경으로 끌려간 관계로 고려는 그에게 있어 외지나 다름없다. 심지어 공민왕의 친어머니인 명덕태후조차 아들을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한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믿을 만한 사람은 연경 시절부터 자신을 보살펴 준 조일신, 김용, 정세운, 안도치, 그리고 정신적 이해자이자 같은 고려의 아웃사이더인 아내 노국대장공주와 편조(신돈) 정도. 허나 그 얼마 안 되는 사람조차 이런저런 이유로 차례로 잃게 된다.
우선 조일신은 권력에 눈이 멀어 폭주하다가 자신의 주군인 공민왕에 의해 죽었다. 그리고 김용은 그 무능함 때문에 공민왕이 걸핏하면 좇아내야 했다고 말하면서도 연경 시절 함께 고생하며 쌓은 미운 정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고 곁에 두었건만, 결국 공민왕의 뒤에 비수를 꽂으려다 조일신처럼 공민왕의 손에 죽었다. 정세운은 충직했으나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어서, 연경 시절 동료인 김용이 공민왕의 필적을 흉내내 만든 거짓 밀명으로 인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이 결과만 놓고 생각하면, 공민왕에게 충성을 다하던 정세운이 공민왕에게 배신당해 살해된 걸로 보인다.[43] 안도치는 어린시절부터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자신을 돌봐준 부모와 같은 존재지만, 김용의 난 당시 공민왕의 대역이 되어 칼에 난자되어 비참히 죽었다. 사랑하던 아내 노국대장공주는 공민왕의 아이를 낳으려다 난산 끝에 사망. 그리고 그나마 마지막으로 남은 편조는 왕권강화에 집착하게 된 공민왕 자신이 죽여버리고 만다.
이러다보니 결과적으로 공민왕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고려의 아웃사이더인 그가 잔혹한 정치권력과 격동의 역사에 휩쓸려 자신 주변의 몇 안 되는 자들이 하나하나 죽는 원인을 제공하거나 아예 스스로 죽이고 끝내 고독하고 잔혹하게 시해당하는 결말은 그야말로 한편의 비극이다.
시해되기 직전 공민왕은 아들 모니노를 데리고 정전으로 나와 편조, 노국공주, 안도치, 정세운, 김용, 조일신의 환영을 보며 신명나게 춤을 추기도 한다.[44] 이들은 모두 공민왕을 연경 시절부터 잘 알고 있던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은 일종의 친구들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자기 때문에 죽거나, 또는 자신이 죽인 자들이다. 심지어 김용은 죽으면서 공민왕을 저주하기도 한 인물. 그런 사람들과 지금까지의 앙금을 모두 잊은 듯 웃으면서 같이 춤을 추는 공민왕을 보면, 공민왕의 외로웠던 삶과 소박했던 꿈을 엿볼 수 있다.[45]
신돈이 공민왕에게 감사하는 대목에서 '드라마 신돈' 에 있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나온다. 연경에서 잠시 공민왕과 같이 지내다가 티벳으로 떠나던 신돈은, 공민왕에게 "대군마님께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다"면서, "천해야 세상이 바로 보이지만, 귀한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는 말을 했다.[46] 팬들은 공민왕-신돈-노국공주 세 사람을 '삼존불'이라고 부르며 셋이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정보석이 전부터 무릎 꿇고 빌면서라도 꼭 연기하고 싶었던 왕이었다고 한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몇년 전부터 정하연 작가에게 정보석이 공민왕으로 내정되어 있었고 스케줄 또한 그를 위해 방향을 잡아왔다고 한다. 관련 기사

여담으로 공민왕의 테마곡인 '공민왕'은 상당한 명곡이다.
재미있게도 정보석은 이후 같은 MBC 사극인 왕은 사랑한다에서는 공민왕의 증조부인 충렬왕으로 출연하게 된다.

3.1.3. 노국대장공주


배우는 서지혜, 기황후의 계략에 의해 공민왕과 억지로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 뚜렷한 야망도 의지도 없이 그저 술독에 빠져사는 듯한 공민왕을 몇 번이나 봤기에 혐오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보탑실리 주위 사람들의 안위를 두고 협박하는 기황후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했는데, 그 후 공민왕의 처지와 속마음을 알게 되면서 점점 감정이 바뀐다.
원나라 공주답게 승마도 잘 하고 무예에도 뛰어나며 남자 뺨치는 호전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고려에 돌아가자마자, 공민왕을 우습게 알며 은근히 조롱하는 기철에게 칼을 들이대며 혼을 빼놓는다. 자기딴에는 공민왕을 위해 한 행동인데 결과적으로는 공민왕의 처지를 더 깎아내린 셈이 되어, 공민왕믜 분노와 오해를 산다. 그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어 남편과는 점점 멀어지고 시어머니 명덕태후에게도 미움을 받은데다가 몽골풍을 일소하는 개혁의 바람까지 불면서, 정치적 입지가 곤란해져 노국공주를 왕비 자리에서 폐위하네 마네하는 논란까지 나오게 된다.
그러나 폐위 논란 과정에서 '저를 버리셔야 한다'며 공민왕을 위해 희생할 것을 자청하며, 남편에게 자신의 진심을 알리게 된다. 이 일로 내내 엇나갔던 공민왕과의 사이가 돈독해진다. 나중에 원나라에 있던 아버지 위왕이 사망하자 딸로서 고려 궁궐 안에 빈소를 마련하고 신하들의 조문을 받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기철을 숙청하는데 성공한다. 기철 숙청을 전후로 하여 공민왕과 부부로서도, 정치적 동지로서도 완전히 굳건한 사이가 된다. 그러나 감정적인 소모가 극심한 상황에서 위왕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아이를 유산하고, 이로 인해 불임이 된다.
공민왕을 왕으로 만든 것도 그녀였고, 수차례의 반란 등 위기 속에서도 항상 든든하게 공민왕의 곁을 지켜준다. 정치적 위기를 함께 넘기는 동안 고려의 신하들은 물론이고 친어머니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공민왕에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지지자로 자리매김한다. 숱한 정치적 위기에서 항상 공민왕의 편이 되어주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항상 외롭고 예민한 공민왕에게 유일하게 안식처가 되어준 것.
하지만 공민왕의 왕권 강화를 위해 안 좋은 몸으로 무리해서 임신출산을 시도하다가 결국 죽게 된다. 공민왕은 즉위한 이래 정치쇄신을 위해 애썼지만, 엉망진창인 고려 내부 사정이나 원나라의 간섭 및 홍건적의 침략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지쳐있었다. 이런 판국에 사랑하는 아내이며 정치적 지지자인 노국대장공주를 잃게되자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된다.
그래도 노국공주의 유언에 따라 신돈에게 힘을 실어주며 개혁을 계속하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죽음이 공민왕과 신돈이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공민왕은 개혁의 뜻이 있고 신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의지가 약한 편이라 생전의 노국공주만큼 신돈의 개혁을 끝까지 믿어주지 못했고, 노국공주의 능과 영전 공사를 무리하게 밀어부치는 일을 두고 신돈과 의견이 갈려 대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노국공주를 포함해 주연 셋을 '삼존불'이라고 불렀고, 노국공주가 어긋나는 양쪽의 톱니바퀴를 맞춰줄 수 있는 중재자이기 때문에 노국공주가 있어야만 양쪽의 관계가 완전해진다고 해석했다.
여담으로 서지혜가 노국공주 역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주연과 조연 상당수가 탄탄한 연기력 갖춘 이들인데 정작 여주인공이 신인이라 연기력이 많이 쳐진다는 평이었다. 실제로 드라마 초기에는 대사 처리에 미흡함이 많았다. 그러나 중반부쯤에는 한결 나아진 연기력을 보였고,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신돈(드라마) 위키항목에 서지혜에 대한 평과 잡설이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함께 출연한 다른 배우들이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워낙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드라마의 중심인물인 여주인공 연기력이 조연들보다 못하다는게 비교가 된 것이다. 원래 사극이라는 분야가 현대극에서는 평타 이상 치는 배우들이라도 쉽게 발연기 소리 듣는 어려운 바닥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신인배우로서 그 정도했으면 제몫을 했다고 봐도 된다.
게다가 연기가 어색했던 건 초반부 한정이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연기력 향상이 눈에 띈다. 서지혜는 이 드라마 출연 당시 20대 초반으로 출산 경험이 없었는데도, 애 낳다 죽는 장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비명을 지르다가 궁녀들에게 "내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라"고 처절하게 외치는 장면을 소름 돋을 정도로 연기해냈다.[47]
이후 서지혜는 13년 뒤에 SBS에서 방송한 흉부외과 - 심장을 훔친 의사들에서 당시 남편으로 출연했던 정보석과 숙부와 조카 사이로 재회하게 된다.

3.2. 신돈 주변 인물



3.2.1. 월선


온화하면서도 사찰 소유의 땅을 인근 농민들에게 모두 나눠줄 정도로 개혁적인 면모를 보이는 개태사 스님이자 국사. "절간에는 재물이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채우라"는 진정한 불심포스, "일하느라 바쁜 백성의 고됨은 모르고 부처님 염불만 알아서는 중이 아니다"라는 진정한 승려 마인드.
배우 오현경이 오랫동안 암으로 투병하다 이 작품으로 복귀했는데, TV 손자병법 등 그의 작품을 전혀 모르는 젊은 시청자층에게는 "어디서 진짜 스님을 데려오셨나?!"라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육포를 오물오물하고, 아랫사람들과 격의 없이 티격태격 투닥투닥하는 모습이 흡사 조선 말 경허 선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물. 그러나 초반부터 개경을 구경하고 돌아온 편조에게 "무엇을 보았느냐?"라는 선문답을 던지는 등 비범한 포스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신돈에게는 부모이면서 스승같은 인물로, 이 드라마에서는 월선을 빼놓고 신돈이라는 인물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람을 죽이고 원나라로 도피하는 신돈에게 자신의 발우와 가사를 물려준다. 아직 입적할 때도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의발을 물려주며 "얼어죽고 굶어죽지 말라고 주는 것"이라고 일갈 하는 장면은 꽤나 명장면. 그러나 그 월선도 편조에게 구족계는 내렸지만, 편조는 노비의 자식이라서 승적에 이름을 올릴 수는 없었다. 따라서 편조는 정식 승적이 없는 땡중.[48]
"부처님도 못 바꾼 세상을 사람이 바꿀 수 있느냐"고 신돈에게 일갈하기도 하지만, 신돈이 공민왕에게 죽으러 가기 전 보는 환상 속 월선은 '네가 한 일 때문에 백성들이 하루라도 좋은 꿈을 꿨으니 그것이 어찌 헛된 일이겠느냐'라고 말하는, 개혁적 사상은 있으되 인위적이거나 급진적이기보다는 온건한 위치를 가진 '신돈의 정신적 스승' 역할이다. 고승답게 앉아서 입적하는 좌탈입망을 했다.

3.2.2. 덕운


월선의 제자로 배우 유종근[49]가 분했다. 잔정이 많고 덕이 있지만 둔한 몸에 식탐이 많아[50] 월선에게 종종 꾸지람을 듣곤 한다. 신돈에게 월선이 아버지라면 덕운스님은 형과 같은 존재.
딱 한번 덕운이 신돈과 월선에게 아쉬움을 표했던 적이 있었는데, 원나라로 원현과 지효와 함께 떠나기 전 월선이 발우와 가사를 물려주는 것을 보고 "머리도 깎지 않은 편조에게 가사를 물려준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한 것. 그 이후론 신돈의 일을 이러저러하게 도와주다가, 최종화에서 초선과 함께 살해당한다.

3.2.3. 원현


노비만큼 대우 못 받는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그 아비가 아들에게 줄 돼지 간을 훔치다 걸려 맞아 죽고, "아비처럼 사느니 죽겠다."라고 물에 뛰어 들었다가 신돈에게 구해진 뒤에 불가에 귀의해 승려로 살았는데, 본인이 원했다기보다 구해준 신돈이 절에 있으니 스님이 된 것. 다만 이쪽은 편조와 다르게 정식 승적이 있는 듯 하다.[51]
신돈을 어디든 따라가며 항상 함께 하고 신돈이 잘 되길 바란다.[52] 문무에 능한 신돈을 현신한 부처님 쯤으로 생각하는 인물. 신돈에 대해서는 헌신적이고 순종적이지만 그 역시 출신과 관해서 세상에 쌓인 게 많기 때문에 권력이 주어지면서부터는 신돈보다 더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53]
신돈이라는 인물을 둘로 쪼개면 한쪽엔 월선, 반대쪽엔 원현이 들어있다고 봐도 된다. 그만큼 아픔과 한이라는 면에서는 신돈 못지않은 불쌍한 캐릭터. 신돈이 권력을 얻은 후에는 신돈이 부패한 자들도 이용하고 유림과도 손을 잡는 폭 넓은 행보를 보이자 못마땅해하고, 계속 강경 노선을 주장하며 신돈과 대립한다.
오만석이란 배우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그의 공중파 출연에 디딤돌이 된 캐릭터로, 극초반의 순수한 모습에서 후반의 상류층에 대한 증오로 변모하는 과정을 절실히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초반부엔 팬들이 다들 원현 보고 생불이라고 했을 정도.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털어놓는 신에서 울면서 웃는 연기와 흥왕사 마당 흙바닥에서 보우에게 "왜 부처님은 가난한 백성들을 구하고 귀족들의 머리에 벼락을 내려치지 않는 거냐"며 몸부림치며 발악하는 신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여담으로 오만석은 이 드라마에서 대학동기 문정희[54]와 함께 출연했는데, 둘은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더불어 출연 당시 오만석은 무대 연기를 위주로 작업하다가 드라마 연기를 막 시작하던 때. 당시에는 (감정과잉 등) 연기가 어색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드라마 중반 흑화(...) 이후 그런 이야기는 게시판에서 쏙 사라졌던 바 있다.
작품 외적으로는 기독교적 해석이 가능하기도 한 흥미로운 캐릭터다. 신돈이 죽으면 백성들이 봉기할 것이라 생각하고 신돈을 죽음의 길로 팔아넘기는 모습은, 마치 열심당원이스카리옷 유다를 섞어놓은 것과 같다. 어쩌면 원현은 정하연의 유다에 대한 일종의 재해석이 투영된 캐릭터일 수도 있다[55].

3.2.4. 초선


배우강문영[56]. 상단을 운영하는 여장부. 부친이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인해 고려를 망해야 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면서, 주먹패들도 모아놓고 상인들의 회합도 주재하며 준비를 많이 해놓은 안 보이는 실력자. 신돈이 백성들의 여론이나 세력을 모으는 힘의 원천인데, 자연스러운 여론 규합보다는 여론몰이, 선동, 조작에 가까운 연출과 퍼포먼스를 보인다. 월선의 부탁으로 신돈을 구해주면서, 신돈-공민왕 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바꿀 희망을 보며 신돈에게 힘과 지략을 보탠다.
신돈의 정치척 동지이자 후원자이면서, 신돈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다. 신돈이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고 출가하는 것이 결정되자 무너지며 "한 번만 안아주고 가세요. 지금 가면 다시는 못 보십니다."라고 애원할 정도.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려는 신돈이 노국대장공주에게는 약한 모습[57][58][59]을 보이자, 노국공주를 질투하여 노국공주가 임신하면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왕자 생산을 종용하기도 한다.[60] 노국공주 사후 신돈이 공민왕에게 '신돈' 이라는 이름을 받은 뒤에야 서로 맺어졌다. 그리고 노국공주가 죽은 뒤 반야가 공민왕의 아이를 갖는 시점과 거의 같게 초선은 신돈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61] 군사들에게 살해당한다.
초선이 살해당한 뒤 그녀의 아이는 이성계의 부하들이 어딘가로 데려가는데, 경복흥이인임에게 "신돈의 씨를 찾아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묻자, 이인임은 "지금쯤 그 씨를 말리고 있을 것"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성계가 신돈의 아이를 없애라는 최영의 지시를 받았으며 이인임은 역사적으로 최영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함께 논의했거나 전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복흥이인임의 대화 직후, 실성한 원현은 밥풀로 만든 불가사리를 대궐 정문 앞에 놓은 뒤 사라지고, 살해당한 초선 일행의 모습이 등장하며, 군사들이 아기를 데리고 가면서 말을 달린다.

3.3. 조정 인물



3.3.1. 정세운


배우는 김명국[62]
공민왕이 강릉대군이던 시절, 원의 볼모로 있던 그를 보좌한 3인의 공신 중 1명. 다른 공신들인 조일신이나 김용과는 달리 충신 중의 충신으로 묘사된다.
할 일을 다 하는 무장이었고, 권력을 잡은 후에도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는 충신. 하지만 그런 그도 한 가지 흠이 있는데 그것은 김용을 너무 두둔해 준다는 것.[63] 공민왕을 연경 시절부터 모셨다는 정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홍건적의 난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그렇게 자신이 그렇게 두둔해준 김용의 계략으로 거짓 밀명을 받은 휘하 장군들에게 암살당한다.
정세운이 죽음을 예견하지 못한 채 죽기 전 공민왕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은 "홍건적을 물리치기 위해 참여한 백성들을 보면서 부끄러웠고, 편조를 돕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세워 억울하게 노비가 된 백성들을 양민으로 풀어주시고, 억울하게 뺏긴 땅을 돌려주시라"는 것이었다.[64] 공민왕은 정세운이 죽은 뒤에야 뒤늦게 정세운의 서신을 보고 대성통곡했지만, 그렇게 충직하던 사람까지 죽고 보니 "공민왕 밑에서 한 권력 잡으면 죄다 죽는다"는 불신의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65]

3.3.2. 조일신


배우는 정명환. 공민왕의 볼모시절 3공신 중 한명. 그러나 볼모 시절에도 강릉대군이 언젠가 왕이 될 거라 믿고 기다리며 버텼던 것으로 묘사된다. 강릉대군이 탕아 행세를 하며 기황후의 호출에도 술에서 깨지 못하자 감히, 왕자의 몸에 찬물바가지를 끼얹는(...) 짓을 감행했을 정도.
성질이 불같은 무신이라 고려로 돌아가자 "노국대장공주를 폐하자" "친원세력을 죽이자" "자리만 차지하던 노신들을 내쫓자" 하며 반원 정국을 만들다가 공민왕의 눈에 거스를 정도가 되자 '조일신의 난'을 일으켜 친원세력을 척살하지만, 정작 기철과 김용 등을 놓치면서 반쪽 성공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강릉대군으로는 안 되겠다 이거야!" 더욱 극단적으로 정국을 몰아붙이다가 결국 공민왕의 밀명을 받은 이인복의 계획하에 죽게 된다.
공민왕은 그의 배신에도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조일신이 처단되는 그 순간에도 "조일신을 죽이지 마라. 내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라고 절규한다. 하지만 그런 공민왕의 발버둥과 별개로 조일신은 최영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만다.

3.3.3. 김용


배우는 윤철형. 공민왕의 볼모시절 3공신 중 한명. 간사하고 사익을 위해 남을 모략하는 전형적인 간신. 공민왕에게 총애받는 정세운에게 열폭하는 인물로 공민왕 앞에서 이를 대놓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공민왕과 고려로 돌아가자 친원세력과 손을 잡고 권세를 누리려고 하다가, '조일신의 난' 중에 왕궁수호라는 본임을 저버리고 도망치고, 난이 평정되자 정세운이 공민왕에게 애원하여 겨우 관직에 오른다.[66] 상당히 무능하고 욕심많고 겁쟁이라 공민왕의 미움을 받아 걸핏하면 "그를 내쳐야 했다"는 후회가 공민왕 입에서 나올 정도. 하지만 정세운의 옹호와 공민왕이 김용과 보낸 연경 시절의 정때문에 공민왕은 그를 끝내 내치지 못한다.
홍건적의 난에서는 중앙군을 진솔하지만 대패. 그의 정치적 생명에 위기가 온다. 거기다가 자신의 후임인 정세운이 개경 탈환에 성공하자 궁지에 몰려 정세운을 거짓 밀명을 안우, 김득배, 이방실에게 보내어 그를 죽인다.[67] 뒤이어 공민왕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최영, 노국공주의 활약과 안도치의 희생으로 실패하고 최영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3.3.4. 이인복


배우는 정성모. 주로 악역이나 권신 역을 많이 맡는 배우지만 이 작품에서는 균형잡힌 사고를 하는 식견 있는 정치인 역을 맡았다.
본래 귀족이지만 몇 되지 않는 개념인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왕권과 나라가 바로서야 하고, 그러려면 지배계층인 왕과 귀족의 유대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는 인물. 신돈에 의해 새롭게 떠오르는 지배계층인 유학자들과 유가가 꿈꾸는 '배워서 더 나아지는 세상' 역시도 '배울 수 있는' 계층들을 위한 세상이라고 비난한다.[68] 유교 사상만을 답습하다 못해 미쳐버린 나라들의 모습을 예견하지만,[69] 신돈은 "그것이 지금보다 더하겠냐"고 되묻는다.
이제현 못지 않은 깊은 식견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암살을 계획하거나 사신으로 죽으러 가는 결단력 +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바로 선 마음을 가졌다. 공민왕 즉위 직후 무렵에는 굉장히 시니컬한 말투가 특징이었는데, 점차로 나이를 먹고 정치적 비중이 상승하고 본인도 경륜이 쌓이면서 시니컬한 태도는 많이 줄어든다.
홍건적의 난 당시 도망치기 위해 대궐을 빠져나가는 조정 대신들을 붙잡고 "노비라도 내놓고 가라"고 처절하게 외치는 장면[70], 흥왕사의 변 당시 대궐의 여인들이 공민왕을 둘러싸고 있는 방을 문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그곳을 쳐들어가려는 김용의 부하들에게 "불쌍한 대궐의 아녀자들까지 범하려 하느냐"고 호통치는 장면은 이인복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또한 기철을 죽인 후 기황후를 만나러 갔을 때에는 아예 "노모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왔다"고 말하면서 기철의 죄상을 줄줄이 읊는 등 배째라 식으로 대처하자, 기황후도 "죽으려고 작정하고 온 자를 어찌 하겠느냐"면서 죽이지 못했을 정도로 배포와 담력도 남다르다. 결국 이인복은 원나라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불사했고[71], 기황후도 "압록강을 넘지 말고, 원나라의 연호를 계속 사용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공민왕이 기철을 죽인 사건과 고려의 쌍성총관부 탈환을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72]
특히 "신이 요즘 꿈에서 신의 죽은 모습을 보옵나이다."로 시작하는 사직 장면의 이인복의 대사는 나이 든 신하가 바치는 최후의 충언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다칠대로 다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공민왕은 면전에서는 말문이 막혔고 그가 떠난 후에는 "날더러 '중전편조 덕분에 이 자리를 지켰다'고 비꼬는 것이 아니냐"면서 비아냥거렸다. 한때 그를 관료들 중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친위세력으로 여겼던 것과 비교하면 씁쓸한 대목.[73]
하지만 이후 신돈을 죽인 후회를 이인복에게 토해낸 것을 보면 그래도 그를 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헌데 이 마지막 장면은 공민왕이 본 환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서 이인복이 사직하기 전 사망 플래그를 마구 깔아놓는데다가 시기적으로도 사망했을 쯤이기 때문이다. 즉 공민왕은 이인복의 환영을 볼 정도로 그를 신뢰했던 것이다.[74]
원래 이인복도 신돈에 대해서는 "일단 변방에 귀양을 보내자"고 하는 등 신돈을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흥왕사의 변 당시 무문암을 박차고 나와 공민왕을 도우러 온 신돈에게도 "미안하다"[75]면서, "앞으로 자네에게 협조할 것'이라고 하는 등 신돈에게 협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꿔 신돈을 몰아내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신돈이 옥좌 옆 의자에 앉아 "덕흥군을 데리고 오라"는 등 원나라 사신을 갈군 사건이었다.
이인복은 "그 자리가 어디라고 거기에 앉았느냐"고 신돈에게 사자후를 토했고, 신돈은 "노비의 자식이 그 자리에 앉아서 불만들을 품은 것이 아니냐. 그 자리에 성산군이 앉았어도 불만들을 품었겠느냐"고 응수했다. 이후 이인복은 신돈의 정적 포지션을 확고히 한다.
그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대사로 아래의 것이 있다.

"전하께서 새로운 길을 한걸음 나가시면 개혁이 되옵니다.

새롭게 하자는 것이니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옵니다.

허나 전하께서 두걸음을 나가시면, 모든 것이 급한 것이 되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니, 사람들이 불안하여 선뜻 따라나서지 못할 것이옵나이다.

하온데 전하께서 세걸음을 나가시면 그것은 천지개벽이 되는 것이옵니다.

전하.. 천천히 가셔야 합니다.[76]

천천히 가셔야 전하의 백성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실 수가 있사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급진파인 신돈에 대비되는 온건파 개혁가이며, 양심적인 동시에 관료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이런 인물들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진정한 충신이자 등장인물 중에도 첫손에 꼽히는 유능한 인물이지만, 결국 그도 신돈의 반대파로 신돈을 죽이는 편에 섰고, 그 후에 고려가 최후를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신돈의 개혁 정책이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과격하다고 생각했기에 반대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개혁하기에 고려는 이미 너무 망가져 있었다.[77] 결국 신돈의 방안보다도 과격한 개혁으로 문제가 해결되고야 말았다.
여담으로 나이 고증이 조금 잘못 된 인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인복 보다 4살이 많은 염제신은 원로배우 김상순이 맡는 바람에 이제현과 동년배가 되었고, 실제 이인복 보다 1살 어린 혼언박 역시 박종관이 맡고, 3살 어린 유탁 마저 원로배우가 연기 하는 바람에 극 중의 이인복은 실제 나이보다 조금 젊거나 염제신, 홍언박, 유탁 등의 인물의 실제나이가 많게 표현된 셈이다.

3.3.5. 이제현


배우는 송재호. 나이 지긋한 문관으로 유학자 이색의 스승. 유학자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제자들과 달리 '백성이 왕이 되는 세상, 백성 위에는 왕 한명이어야 한다' 를 말하는 신돈에게도 공감을 할 정도로 태평성대 그 자체가 목적인 인물.
공민왕이 대도에 있을 때 사신으로 왔다가 그의 일탈을 지켜보며 민망해 했었고, 공민왕 즉위 초 조일신의 난 때는 강안전에 갇힌 공민왕을 만나기 위해 유자이자 대신으로서 담을 넘는 짓까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월선이 불가에서 조용한 개혁을 대표한다면, 이제현은 유가에서 조용한 개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78]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자신이 유학자인지라, 정작 자신의 딸 혜비가 공민왕에게 총애받지 못하고 생과부 신세로 살아도 '도리를 지킨다'고 말하는 '유학으로 바로 선 백성의 나라'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면서 방향은 다르다고 봤으나 신돈의 설득에 협력하다가, 나중에는 이인복의 설득에 신돈에 반대하는 행동의 하나로 관직을 내놓고 물러나서 후학을 양성한다. 그러다가 조정 중신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전민변정도감이 좌초한 데에 이어, 월선이 죽기 전 보우에게 간절히 부탁한 덕분에 신돈이 보우로부터 다시 구족계를 받고 승적에 이름을 올린 뒤 일시적으로 정계를 떠난 상황에서 제자 이색으로부터 "전하께서 불안감에 실성한 상태로 지내고 있고, 스승님편조를 그리워 한다"는 취지의 소식을 듣는다. 그러자 이제현은 "전하께서 전민변정도감을 세우셨을 때, 내가 편조를 도왔으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섰을 것"이라고 후회한다.[79]

3.3.6. 김원명


배우는 김병춘. 공민왕의 외사촌이자, 명덕태후의 정치적 측근이다. 조정 대신들 중 경복흥과 함께 신돈을 가장 격렬하게 싫어하는 사람으로 꼽힌다. 공민왕은 김원명의 집에서 신돈을 다시 만났고, 노국대장공주도 김원명을 통해 신돈을 입궐시켜 다시 만났다. 공민왕에게 "편조에게 작은 벼슬이라도 줘서 곁에 두면 될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던 적도 있지만, 떠보는 말에 불과했다. 신돈에게 "분수를 알아야지, 천한 것이"라는 말을 한 것이 그의 본심이다.[80]
공민왕도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흥왕사에서 도망치지 않은 김원명에게 "왜 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원명이 "전하의 정책에 반대할 뿐, 역신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경복흥까지 꼬드겨 함께 도망치는 등 공민왕이 외사촌임에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잘 암시된다. 신돈과 그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러다 소똥이·말똥이 하는 놈들이 조정 대신 자리를 차지하는 꼴을 볼지도 모른다"면서 격렬히 반발했다. 이후 경복흥과 함께 영도첨의가 된 신돈을 암살하려다가 적발돼 곤장을 맞고 노비 신분이 돼 귀양을 갔다. 곤장을 맞을 당시 "나는 매가 약하니 살살 쳐 달라"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압권이다.
아내도 노비가 됐고, 이를 피하기 위해 노비로 변장했지만 김원명의 집을 습격한 원현에게 적발돼 "노비 주제에 손이 참 곱다"는 조롱을 당한다. 노비가 된 후, 오물을 퍼나르는 일을 하다가 군졸들에게 매를 맞는 처지가 됐고, 동생 김속명에게 보낼 목적으로 재기를 꿈꾸는 취지의 서신을 작성했지만, 미처 보내지 못한 채 암살당한다.
신돈은 원현의 소행이라고 의심했지만, 실제로 김원명 살해를 지시한 사람은 공민왕이었다. 조정 대신들에게 "신돈을 거역하면 이 꼴이 된다"는 경고를 하기 위한 암살이었다. 공민왕경복흥도 죽이려고 했지만, 경복흥신돈을 싫어하던 귀양지 수령의 호의로 노비 생활은 면했고, 덕분에 암살도 피했던 상황이었다.

3.4. 왕실 주변 인물



3.4.1. 안도치 (안환관)


배우는 이정섭. 공민왕을 따라 원나라로 가서 내내 수발을 든 수족 중의 수족이며,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극중에서는 신돈과 공민왕, 노국공주 세 사람을 서로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어릴 때부터 공민왕을 수발 들며 공민왕이 강릉대군 시절 원에 온 김에 자신을 찾아온 보우에게 '내 어머니는 태후가 되고 싶어서 나를 찾는 것이다' 라고 한탄하면서 '나를 위해 눈물 흘려주는 이는 이제 안도치 뿐이다' 라는 신뢰의 말을 할말큼 공민왕의 신하라기보다는 그냥 몸의 일부. 성향적으로도 아주 순수하고 선한 인물로 연경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한낱 땡중이나 다름없는 편조를 잘 대해주기도 하고 흥왕사에서 공민왕의 대역을 맡게 되자 이를 편조가 걱정하자 자신이 위험하면 대사(편조)가 도술을 서서 지켜주지 않겠냐며 신돈을 농으로 위로해주기도 했다.
나중에 흥왕사의 변에서 가짜 수염을 달고 용포를 입은 채 공민왕인 척 위장하여 공민왕의 목숨을 구하고 죽는다. 죽기 전에도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노국공주를 오히려 위로해 주며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는다.
안도치 사후에는 2인자 같은 느낌이던 최만생이 공민왕의 최측근 환관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충신이었던 안도치와는 달리 이 쪽은 국왕에 대한 충성보다 사적인 이득을 먼저 챙기는 인물이라 공민왕과 신돈을 이간질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게 된다.

3.4.2. 반야


배우는 노국대장공주와 동일한 서지혜.[81]
드라마 상 가장 불쌍한 인물...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원나라공녀로 끌려가는 걸 말리다가 아버지를 잃고 끝내 신돈과 원현의 도움으로 어머니가 끌려가는 것은 저지되지만, 마음고생한 어머니는 반야를 낳고 죽는다.
이후 절에서 월선의 손에 키워져 신돈을 따랐고, 노국대장공주를 잃은 공민왕의 눈에 들어 모니노를 낳는다.[82] 그러나 곧 모니노마저 빼앗기고 후환을 없애려는 공민왕의 명으로 홍륜을 포함한 자제위들이 가마에 태워 궁으로 가는 척 속인 뒤 임진강으로 끌고 와 천으로 입을 막고 움직이지 못하게 밧줄로 결박한 뒤, 두 발을 돌이 매달린 밧줄로 묶어서 강물에 던져 익사시킨다.[83] 61회, 해당 장면1 2 그리고 공민왕이 광기부리던 밤에 재갈과 밧줄이 모두 풀려진(!?) 반야의 시신이 떠올라 강을 따라 바다로 흘려간다.
여담으로 서지혜는 1인 2역을 담당하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서지혜는 물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어서, 수장씬을 3시간여에 걸쳐 간신히 촬영했다고 한다.#

3.4.3. 명덕태후


신돈 방영 당시 신돈 갤러리에서는 뺑덕태후, 명태(...)라고 불렸다.
배우는 엄유신. 고려 여인으로 충혜왕공민왕의 어머니. 그런데 남편 충숙왕에게는 복국장공주라는 원나라 공주 출신 정비가 있었다.[84] 그래서 남편에게 총애를 받았음에도 평생 그늘에 가린 삶을 살아야 했던 여자.
그러다보니 원나라 여자를 싫어하고, 역시 원나라 공주로서 고려 왕비가 된 두 며느리(덕녕공주노국공주)를 싫어한다. 둘째아들 강릉대군마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도록 결정되었을 때 펄쩍 뛰고, 따로 이제현의 딸을 왕비로 들이려 준비했을 정도. 평생 그늘에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아들이란 그늘에 가린 자기 삶에 광명을 되찾아줄 존재다. 충목왕이 요절하고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 강릉대군이 왕위에 올라 자신의 한을 풀어주나 했더니, 충혜왕의 서자인 충정왕이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결정나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만월대가 떠내려가라고 한을 토하는 장면이 압권.
아들이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르고 자신을 높여주며 권력과 권위와 지위를 정당화해주는 존재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신돈을 앞세워 개혁을 시도하다가 권문세족들과 갈등을 겪는 공민왕과 대립하게 되었는데, 썩을대로 썩은 고려를 개혁하기보다는 그저 아들이 옥좌나 지키면서 자신의 권위를 세워주기를 바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민왕은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의지하지 못했으며, 이 상황에서 노국대장공주가 사망하자 그녀를 위한 영전 공사에 매달리게 되었고 마지막 남은 기둥인 신돈마저 죽자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
며느리인 노국대장공주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도 이 때문으로, 며느리가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려 했기 때문. 그러나 노국대장공주에게 이 말은 Welcome to Hell이나 다름없었으며, 그녀가 출산 도중에 죽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들의 대를 이을 손자를 원했던 명덕태후의 압박이었다.

3.4.4. 덕녕공주


배우는 김여진.[85] 충혜왕의 정비, 충목왕의 어머니로 충목왕 재위기에는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병약한 충목왕을 할머니 집인 명덕태후저에 피접보내는 등 과단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아들 충목왕은 어린아이인데도 자신이 죽으면 어머니의 정치적 입지가 아주 곤란해질 것을 잘 아는 영특한 아이로 그려진다.
충목왕이 끝내 사망하자 원나라로 일시귀국했다가 이후 공민왕 3년에 다시 고려로 돌아온다. 극중에서는 고려로 돌아온 것이 공민왕을 감시하려는 기황후의 술수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공민왕의 동태를 감시하라는 기황후의 명령은 쿨하게 씹었으며, 한편으로는 같은 몽골 여인인 노국대장공주와 자매처럼 정을 나누고 충고를 해주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고려 왕실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 부드럽게 중재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덕녕공주를 형수로 정중하고 부드럽게 대하던 공민왕노국공주와 신돈이 죽고 실성해서, 노국공주를 생각해서라도 자제위와 후궁들의 문란한 행각을 금하고 정사를 돌보라며 충고하는 덕녕공주에게 "진작에 몽골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면서 "대비를 보면 원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한 것이 떠올라서, 대비의 기침소리도 듣기 싫다"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노비의 자식을 만족시키려면 세상을 다 줘도 부족할 것"이라고 반응[86]하는 등 공민왕·노국대장공주신돈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국대장공주가 죽은 후 실성한 공민왕신돈을 죽이려 하자 "신돈이 없으면 누가 전하를 지켜주겠느냐"고 반대하거나, 신돈이 죽은 뒤 술에 찌들어 지내는 공민왕에게 "전민변정도감을 하루아침에 없애서야 되겠느냐"는 직언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등 신돈의 개혁 취지에는 동의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충목왕은 미완의 명군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총명했고 그에 따른 업적을 제법 남겼다.

3.4.5. 보우


배우는 임혁.[87] 흥륜사의 주지이며 고려의 왕사이다. "중은 불법에 정진하면 된다"고 믿고 백성들을 돕는다. 언제나 편조 앞에 완고했고, 편조의 일탈적 행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나중에 '편조가 꿈꾸던 나라는 부처님의 나라니라'하면서 그의 사상을 지지하긴 하지만, 편조의 방식에는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었던 인물. 세월이 흐르고 오랜 뒤에는 부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사람의 힘으로 당기는 개혁은 거부했던 인물이다. 다만 편조의 요구에 따라 왕사 자리를 내놓고 길을 떠날 때, 전민변정도감의 운영으로 사찰의 노비가 대거 해방되어 승려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내가 보기에도 노비가 너무 많다'며 불만을 일축하고 법왕사를 나가는 것을 보면 문제 상황은 인식하고 있었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신돈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무엇이든 끌어 쓸 수 있고 자신의 뿌리인 불교를 약화시키려고까지 했지만, 보우는 모든 것을 불교를 기반으로 하려 했고 이 안에서만 행동하려 했다는 것이다. 국가의 흥망은 부처님의 뜻에 비해 티끌같다는 말이나, 필요할 때만 불가를 찾는 조정에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반응 등에서 보이는 부분.

3.4.6. 지효


배우는 전태성. 초선의 남동생이다. 아버지가 권문세족에 의해 재산을 빼앗기고 자살한 뒤, 초선은 복수의 길을 선택했지만, 지효는 불가에 입문해 속세와의 연을 끊었다. 그래서 복수심에 불타는 누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신돈, 원현과 고행을 함께 하기도 했지만, "부처님을 모시는 방법이 다르다"고 하는 등 신돈과 생각이 다른 것으로 묘사된다. 신돈도 고행을 가기 전 지효에게는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근본적으로 선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불교의 영역을 거리낌 없이 침범하는 신돈의 과격한 개혁을 좋아하지 않아 이따금씩 불만을 품었다. 신돈보우에게 "왕사에서 물러나라"고 할 때에는 아예 "왕사님 말씀 한 마디면, 편조를 몰아낼 수 있다"고 권했을 정도.
하지만 신돈이 죽은 뒤에는, 넋이 나간 채 감옥에서 풀려난 원현에게 "법왕사로 함께 가자"고 말하면서 위로했고, 신돈이 죽은 것에 대해 "누이의 복수심이 편조 스님을 부추겼다"고 하는 등 신돈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3.5. 원나라 측 인물



3.5.1. 기철


배우는 이대연. 기황후의 오빠이자 기황후 덕에 권세를 부리는 친원세력의 핵심. 노국대장공주의 부친상 소식으로 준비된 계략에 걸려 왕비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죽게 된다.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다가 안 통하자 공민왕에게 저주를 퍼붓는데, 막상 칼을 맞자 이렇게 죽기는 싫다며 또 살려달라 애원하고, 이것도 안 통하자 다시 공민왕을 저주하는 등 순식간에 감정이 표변하는 이대연의 연기가 압권.

3.5.2. 기황후


배우는 김혜리. 일개 공녀에서 시작해 마침내 원나라 황후까지 된 인물. 모국인 고려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강릉대군을 만나 차기 국왕으로 밀어주겠다는 뜻을 밝히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공녀로 보내 부모형제와 생이별시킨 힘없는 고려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동시에 고려가 제대로 서야 황태자인 자기 아들이 고려 핏줄이란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을 것 아니냐며 고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은근히 드러낸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사가 고려로 돌아가는 강릉대군에게 하는 대사.

"나는 고려가 싫었다. 나는 고려가 미웠다. 그런데 어쩌겠느냐 , 내 몸에 고려의 피가 흐르거늘... 돌아가거든 고려를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나라로 만들거라."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과 친정을 최우선시해서 고려의 친원 세력을 제거한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여러모로 위협한다.
초반에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대제국의 최고 권력자로써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이후 원나라가 안팎으로 여러 위기를 겪고 개인적으로도 몇가지 통제 수단을 잃으면서 함께 포스도 잃었다. 중반부 고려가 독립을 선언할 때, 몇가지 조건을 걸면서 그 조건을 어길시 고려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을 보면 이빨과 발톱이 빠진 늙은 호랑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3.6. 유림 및 신흥 무인 세력



3.6.1. 이색


배우는 전인택. 유림의 실질적 수장격으로 정치적인 목적은 '유교사상에 기반한 신분사회 추구' 지만, 신돈의 유교장려에 일단 신돈에 힘을 보탠다. 이인복이 신돈에게 말하는 '배울 수 있는 자들만의 또 다른 계급사회' 를 추구하는 사람.
고려 말 유학자들로 꼽히는 정몽주, 정도전, 김구용 등이 모두 그의 문하. 신돈이 성균관을 재건하는 등 유림에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하자 장차 유학자들을 정치 전면에 세우기 위해 신돈의 개혁에 편승한다. 그러나 신돈이 공민왕과 대립하는 시점에서부터는... 갓 일어서기 시작한 유림이 정치대립에 휩쓸릴 것을 우려하며, 기존의 관료와 계층 시스템을 무너트리는 급진적인 개혁을 진행하는 신돈에게 거리를 둔다.
후일 신돈 사후 모든 개혁정책이 되돌려 지는 것을 보며 유림의 주도 세력들은 "우리가 큰 인물을 잃었다" 라고 후회한다.

3.6.2. 이성계


배우는 정하연 사단 레귤러 급으로 꼽히는 이진우. 귀족들에 합세한 최영을 대신해 실질적인 군의 수장이 되지만, '최영에 충성하는 것이 고려에 충성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신돈의 일갈에 '오로지 왕명을 받들 뿐이다' 하고 정치중심에서 빠져 전쟁지역으로 가 버린다.
왕명에 의해 신돈이 죽는 과정에서 "신돈을 죽이라는 왕명은 없었다"라며 원현이 신돈의 시신을 수습해 궁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한다. 이후 조정 회의에서 "이성계탐라 정벌에 보내는 것이 어떠냐"는 공론이 나오면서, 최영이 "앞으로 큰 전투는 내가 직접 지휘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군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자, 불쾌해하는 모습이 나온다. 훗날을 암시하는 장면인 듯하다.

3.6.3. 최영


배우는 최상훈. 충신이라는 이미지 대신에 권력을 탐하는 정치군인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꽤나 흥미있는 전개를 보였다. "왕이 조일신·정세운·김용을 죽였다"고 믿는 등 공민왕을 불신하는 것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원인으로 암시된다. 특히 신돈이 죽은 후 공민왕과의 독대에서 공민왕을 반 협박하여 군권을 얻어내는 장면은 흥미롭다. 고려 군부의 장수 대부분이 최영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기 때문에, 무신정권이 다시 수립되는 것을 우려한 공민왕과 신돈의 경계를 받기도 했다.
배우가 사극에서 사망전대로 유명한데다 실존인물 역시 참수를 당했지만, 드라마가 공민왕의 죽음에서 끝나다 보니 죽음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 보기 드문 사례가 되었다.

4. OST


그나마 제작진이 음악에는 정말로 공을 많이 들였기에 작중 쇠락해가는 고려 왕실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담아내었으며, 슬프고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의 호불호와는 OST만은 별개로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할 정도로 극찬 받았다.

신돈 Original Sound Track
[image]
발매일
2006년 1월 19일
재생시간
46분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형식
Soundtrack
장르
드라마 OST
품번
CMDC-0605 (DISC 1)
미디어
Compact Disc
발매 회사
삼화프로덕션
판매 회사
수록곡
16 (DISC 1)
DISC 1
트랙
곡명
길이
01
신돈
04:47
02
신돈 main title
03:39
03
공민왕
02:57
04
자장가 (voice ver.)
03:21
05
염화미소
02:45
06
어린신돈 (vn ver.)
02:33
07
부다
02:23
08
몽골의 여인 (도탑 실리)
02:23
09
용상의 그림자
02:29
10
신돈 main title2
02:16
11
노국공주
03:12
12
For 民樂
02:04
13
어린신돈 (voice ver.)
02:32
14
가담(街談)
01:45
15
자장가 (inst ver.)
03:21
16
온새미로
04:19

5. 연기력


공민왕 역을 맡은 정보석의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88] 드라마가 크게 흥하지 못해서 그렇지 2010년 드라마 자이언트에서의 조필연 이전까지의 역할 중에서 정보석의 인생 연기로 꼽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비운의 왕자부터 개혁에 실패하고 사랑마저 잃어버린 비극적인 왕의 광기를 정보석 특유의 섬세한 연기로 풀어내었다.
반면 주인공 신돈 역을 맡은 손창민의 경우 충격과 공포를 느낄 정도의 개판의 연기력을 보이며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는데, 특히 사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뮤지컬에서나 보일법한 발성과 불안정한 목소리톤 덕분에 극 전체가 붕 떠버리는 현상을 가져왔다. 요승 이미지를 위해 그리했다고들 하지만 이게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게, 이 드라마 주제 자체가 개혁가들의 실패라는 점에서 요승 어쩌고 저쩌고는 성립이 안 된다. 극 초반의 땡중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캐릭터 묘사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데 이런 종류의 캐릭터가 사극에서 없었던 것도 아님을 감안한다면 그냥 손창민 자체가 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라는 것이 맞다.
노국공주 역의 서지혜의 연기 역시 발성을 비롯한 국어책 읽기가 문제가 되긴 했지만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며[89] 대체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특히 노국공주의 난산 장면에서 출산도 해보지 않은 서지혜가 보여준 혼신의 연기가 백미.
이들 외에도 조연들 중 대다수는 명성황후, 조광조, 왕과 비 등에서 이미 여러 번 정하연 작가와 함께했던 소위 '정하연 사단'이 주축을 이룬다. 작가의 전작들이 모두 진지한 정통파 사극이었기에 전반적인 연기력은 충분히 보장이 되어 있었던 셈이다. 특히 '이'[90]의 공길 역이나 '헤드윅'으로 연극/뮤지컬계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오만석을 비중 있는 조연인 원현 역으로 기용하였던 것도 주목할 부분.[91]
그래서인지 몰라도 연출 면에서도 연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이 많았다. 김진민 PD는 재학시절 연극을 했었다고 하고, 실제로 오만석 본인도 '<신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연극적인 감수성이 너무 좋았다'고 언급했었다. 시청자들에게 어색하다고 지적되었던 부분들 중 일정 부분은 이런 연출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시청률 문제로 전개의 일부를 다소 수정했었는데, 연장 방영으로 그 세부적인 구석을 메우려 했지만 기각된 탓에 전개가 흐려진 탓도 있다. 여러모로 단순히 괴작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독특한 구석이 많았던 작품.

6. 명대사


신돈: 올바른 길이 아니면 본래 하늘 아래 숨을 곳이 없는 법이다. 내가 너와 함께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터득한 것이 그것이었다. 잊었느냐?

원현: 형님의 소원이 무엇이었습니까? 귀천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부처님의 법대로 귀한 것이 천한 것이 되고 천한 것이 귀한 것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게 형님의 소원이셨습니다.

공민왕: 경은 항상 어려운 일을 당할 때면,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기를 '이것이 천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곤경보다 더 하겠느냐' 고 하였소. 내가 12살의 어린 나이에 부왕을 떠나 원에 볼모로 끌려간 신세라 경보다 나을 것이 없었기에 우리가 의기투합하여 고려를 다시 일으켜 세웠소이다. 내가 누구보다 경을 이해하고 경은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소! 이런 우리가 우리 두 사람을 맺어준 노국공주의 영전을 짓는 문제로 갈라서서야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공민왕: 그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야!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애걸복걸하는 네 모습이 보고 싶었느니라!

(1화, 59화)

노국대장공주: 고려에서 굶어 죽은 백성의 숫자가 수천, 수만은 넘는다지요. 매년 한 해에 14살에서 16살 사이의 처녀 150인을 뽑아 연경으로 보내되 필요할 때는 1년에 2번 징발할 수 있고... 이러고도 어떻게 고려가 살아 남았습니까. 원나라가 요구하는 조공을 다 바치고 나면 고려에는 성한 풀 한 포기 남아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고도 부족해 고려의 처녀들을 조공으로 바치다니요. 도처에 이런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역대 군왕의 실록이 조공사로 얼룩져 있어요. 이러고도 고려가 살아 남아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나라가 아닙니까. 이렇게 수탈을 당하고도 이만큼 살아 남았으니...

안됩니다. 우리 국왕께서 사후에서라도 그런 수모 당하시게 해드릴 수는 없지요. 충렬, 충선, 충숙이라니요. 나는 몽골의 여자입니다. 내 아버님께선 "굴종을 당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해 명예를 지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국왕께서는 당연히 황제의 자리에 오르셔야합니다. 원제국이 멸망하기 전에 조공의 수치를 벗어 던져야지요.

(1화)

원현: 아버지가 소나 돼지를 잡고 오신 날엔 잠든 날 깨워서 개천가로 데리고 가곤 하셨죠. 주인 몰래 이나 돼지간을 한조각씩 훔쳐가지고 절 먹여주곤 했어요. 근데 어느날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질 않는 겁니다. 한밤중이 돼서야 주인 집 하인 놈들이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를 끌고와선 내동댕이 치고 돌아갔죠. 아버진 벌써 숨이 끊어진지 오래셨어요. 헌데 가만보니 아버지가 한쪽 손을 움켜쥐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아무리 움켜쥔 손을 펴려고 해도 펴지지가 않았어요. 겨우 손을 펴보니... 돼지 한조각이 손바닥에 붙어 있었지요. 근데 그 생각만 하면 왜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자꾸만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겁니다. 아버지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야 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와요, 편조 스님.

(노비 해방 개혁 이후 기둥에 묶여 죽어 있는 사람들)

- 이들은 내 재산인데, 너희 놈들이 주인이라고 우기니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이놈들을 돌려준다. -

원현: 왕사님께선 고승이시니 부처님과 서로 마음이 통하시겠지요. 허면 부처님께 부탁을 좀 드려주십시오. 이 놈의 세상에 벼락을 치시라고요. 짐승보다도 못한 놈들의 머리에 불벼락을 내려주시라고요! 그러면 제가 부처님을 다시 믿고 열심히 도를 닦겠다고요. 제발 말씀 좀 드려주십시오. 보우 선사님. 왜 부처님께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 억울하게 죽도록 그냥 내버려두시는 겁니까. 왜요, 왜, 왜, 왜!

(12화) 영상

(공민왕이 기철 일파를 타도하나 형세가 뒤집혀 기철 일파가 세력을 회복하고, 공민왕은 영안왕대부인(기철과 기황후의 모친)에게 굴욕적으로 사과하러 가게 된다. 그러자 신돈이 백성을 이끌고 길을 막아선다.)

보우: 승복을 입은 자가 어리석은 백성들을 선동해서 국왕 전하의 행차를 막았습니다! (못 들은척하는 월선) 편조는 백성들의 마음속에 부처님의 자비심 대신 미움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월선: 아, 거 편조는 중이 아니래두 그러신다 참.

보우: 몇번이나 말씀을 올렸습니까. 스님께서 편조를 거두어 들이시라구요!

덕운: (승방 밖에서 변명하며) 아, 저, 저, 스님께서 편조를 아무리 잡아두려구 하셔도 아 제발로 도망을 치는 걸 어떻게 합니까?!)

보우: (바깥을 향해) 먹고 싸는 일밖에 못하는 중놈이 어딜 나서는 게야! 어쩌시겠습니까. 오늘은 내가 월선 스님과 담판을 지어야겠습니다! (묵묵부답인 월선에게) 어째서 말씀이 없으십니까?! 아무리 승복을 벗고 환속을 했다고 우겨도 편조는 중입니다! 중이 백성을 선동해서 난동을 부려서야 되겠습니까!

월선: 지 뱃속만 채우는 중놈들보다야 낫지 않소이까.

보우: 스님. (보우의 표정을 보고 주춤하는 월선) 불교가 기울고 있습니다. 권문세도가들의 비위나 맞춰주는 불교를 누가 믿겠습니까!

월선: 그러니 중놈들부터 욕심을 버려야지.

보우: 편조는 큰일을 저지를 위인입니다. 스님께서 개태사에 가둬 놓으셔야지요!

월선: ...난 그렇게 못합니다.

보우: 편조는 스님의 자식이지요?

월선: (펄쩍 뛰며) 응? 아니, 그게 무슨 해괴망칙한 말씀이시오?!

보우: 편조를 저렇게 만든 사람이 스님이시니 자식이나 다를 바 없다, 이 말씀입니다.

월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잔뜩 굳은 얼굴로 호통을 치며) 부처님께서 이런 세상을 원하셨겠느냐! (놀라는 보우) 곧게 자라지 않는 대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야. 휘어진 대나무를 보고도 부처님의 자비심이라고 한다면은 이 땅에 정의가 언제 바로 서겠는가? (밖에서 듣고 있던 덕운은 깔깔거리고, 지효는 방안을 향해 합장한다) 편조가 요승이면, 이 세상은 지옥인 게야!

(20화)

경복흥을 포함한 신하들:전하... 중전마마를 폐하시옵소서. 고려인을 왕비로 세우셔야 하옵니다.

노국공주:참으로 가상한 일이 아닙니까?

(경복흥을 비롯한 신하들은 깜짝 놀란다.)

노국공주: 예. 원과의 인연을 끊으려면 다 끊어야지요. 국모의 자리에 나 같은 원의 여자가 자리에 앉아서야 말이야 되겠습니까. 예. 참으로 가상한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왕의 눈밖에 나서 패가망신할 지도 모르고, 경우에 따라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데도 중전을 폐하라고 간언을 드리는 용기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허나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이만한 패기와 용기면 진즉에 원의 지배를 물리치고도 남았을 것인데,80년 넘게 원나라로부터 온갖 수모와 굴욕을 받으며 살아왔다니 말입니다. 나를 가리켜 몽골의 공주라 했습니까? 몽골의 공주를 모시고 사는 것이 그렇게 수치스럽습니까? 내가 중전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그 수치심이 다 사라진다고 하면 물러나겠습니다.

노국공주:(정전에서 나오는 이제현과 만나며)노정승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노국공주는 정전으로 들어가고, 이제현이 경복흥을 비롯한 무리와 마주친다.

이제현: 물러들 나시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신료들은 모두 물러나고 경복흥만 홀로 남는다.)

(36화)

이인복: 전하. 소신 이인복, 전하께 하직인사를 드리려고 들었나이다. (문 밖에서 절을 하며) 전하, 소신의 불충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공민왕: 방문을 열라! 내가 12살의 어린 나이로 연경에 끌려갔느니라. 내가 당한 수모를 짐작이나 하겠느냐? 저들에게 당한 굴욕을 참느라고 뼈가 시렸느니라.. 그때마다 내가 맹세하기를 하늘이 나를 도와 고려에 돌아가 왕이되면,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설움을 당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것이 내가 꿈꾸던 나라냐? 내가 너희같은 권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임금이 된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나처럼 나라잃은 설움에 목이 메이고 나라 잃은 굴욕이 뼈에 사무칠 것이라고 믿었기에 편조와 함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건한 나라를 세우려 한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편조를 시기하고 임금인 나를 핍박하고 그래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이냐? 입이 있다면 너희들이 바라는 것이 부귀영화가 아니라고 말을 해보아라!

이인복: 전하...(오열하며) 전하..!

(중략)

공민왕: (오열하는 이인복에게 다가가며) 어째서 성산군의 생각이 편조와 다릅니까?

이인복: 다르지 않사옵니다, 전하...

공민왕: 그런데 어째서 함께 가지 못하는 겁니까? 편조가... 노비의 자식이라서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 차라리 내가 노비의 자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37화) 영상

(신돈과 보우의 첫 대면)

신돈: 어찌하면 저같이 미천한 천승이 세상을 구할 수 있겠나이까?

보우: 세상을 구하겠다고 했느냐? 세상을 구하겠다고 했느냐! 부처님께서도 구하지 못한 세상을 네놈이 구하겠다는 것이냐?

(3화) 대본

(월선 입적시 회상)

월선: 편조야. 세상을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네 근본은 이니라. 세상을 바꾼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그랬다면 부처님께서 오래 전에 세상에 불벼락을 내렸을 게다. 이 세상은 지옥이야.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부처님 품 밖엔 없어.

신돈: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다 보았는데 어찌 못 보았다 하겠습니까, 스님.

월선: 설마 하니 부처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이 그리 쉽게 올 거라 여기셨을까? 부처님께서도 꿈을 꾸신 게야. 그 꿈이 아름다우니 사람들도 그 꿈을 믿고 의지하는 게 아니겠느냐.

(37화)[92]

(월선의 시신 앞에서)

신돈: 저는 한번도 세상을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을 믿지 못하니 부처님의 자비심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까? 제 마음 속에 가득찬 미움을 바로 보신 때문이 아닙니까, 스님. 밤새도록 어느 집 처마 밑에서 고달픈 삶을 통탄하는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이 놈의 세상을 통째로 다 태워버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가엾은 중생을 위한 분노였겠습니까. 아닙니다, 스님. 제 마음 속에 가득 찬 미움이었습니다. 대답을 주십시오...! 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지귀의 원한을 무엇으로 씻어버릴까요. 세상을 바꿀까요, 저를 바꿀까요?

(좌탈입망한 월선의 시신이 신돈을 향해 기울어 넘어진다)

(37화) 대본

(곤성전 내부. 노국공주출산씬)

김 상궁: 마마...

노국공주: 뭘 하고 있느냐? 힘을 더 주게 내 손을 잡아달라고 하질 않느냐!

초선: 마마...

노국공주: 내 다리를 잡아다오. 시간을 더 끌면, 아기가 숨이 막혀 죽을 것이야. (줄을 잡고 계속 힘을 주며 신음한다)

김 상궁: 마마...

초선: 마마, 그만 줄을 놓으시옵소서.

노국공주: 네 이년. 줄을 놓으라니. 내 아이의 명줄을 놓으란 말이냐?

초선: 마마, 이러시면 마마께서 변을 당하시옵니다.

덕녕공주: 중전, 어의를 불러 아이를 꺼내겠습니다.

노국공주: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덕녕공주: 초선의 말이 옳습니다. 중전의 목숨부터 구해야지요!

노국공주: 난 죽어도 좋습니다. 나는 죽어도 좋으니 전하의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날 잡아다오. 뭘 하고 있느냐, 김 상궁! 날 잡아달라니까!

김 상궁: 마마...

노국공주: 뭘 하고 있느냐, 아가야. 어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초선: 마마... 마마, 태중의 아이가 숨을 쉬지 않은 지 오래됐나이다...

노국공주: 이런 못된 년, 내 아이가 죽었다고 하는 것이냐!

궁녀들: (엎드려 울면서) 마마...

노국공주: (힘이 빠진 목소리로) 그럴 리가 없다. 숨을 쉬지 않는다니... (그러다가 다시 몸에 힘을 주며 다급하게) 칼을 다오.

초선: 칼이라니요?

노국공주: 내 아이를 꺼내야겠다.

초선: 마마...!

노국공주: 내 아이를 밖으로 꺼내야 숨을 쉴 것이 아니냐? 그러니 어서 칼을 다오.

덕녕공주: 중전!

궁녀들: 마마...

노국공주: 어서 칼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느냐!

(곤성전 바깥)

공민왕: 무슨 일이냐?

노국공주: (어서 칼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느냐!)

공민왕: 중전께서 무슨 일로 칼을 달라고 하시는 거냐!

(곤성전 내부)

초선: 마마...!

노국공주: 모두 귀들이 먹은 모양이니, 내 손으로 칼을 가져와야겠다.

덕녕공주: 칼은 어디다 쓰시려구요?

노국공주: 내 배를 갈라야지요. 그래야 내 아이가 숨을 쉴 것이 아닙니까!

덕녕공주: 중전!

노국공주: 시간이 없습니다. 내 아이가 뱃속에서 숨이 막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서 칼을 가져오너라, 시간이 없다고 하질 않느냐!

덕녕공주: 중전...!

공민왕 : (방 안으로 달려들어와 노국공주를 끌어 안는다) 중전! 중전!

노국공주 : (공민왕에게 애원하며) 잘 오셨습니다, 전하. 저들이 제 말을 듣질 않습니다.

공민왕: 어의들을 들어오라고 해라. 중전의 목숨부터 구해야겠다!

노국공주: (공민왕마저 아이를 포기하자 순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절규하며) 칼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하! 이 아이만 살릴 수만 있다면... 저는 백 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공민왕: 그까짓 아이가 문젭니까! 세상 천지를 다 잃어도 나는, 부인을 잃을 순 없습니다. 뭘하고 있느냐! 어의들을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질 않고! 부인! 부인...!

(48화)

(노국공주의 초상화 앞에 앉은 공민왕)

공민왕: 김 상궁.

김 상궁: 예, 전하.

공민왕: 공주의 모습이... 너무 젊지 않으냐? 가까이 와서 보거라. 어떠냐?

김 상궁: 처음 대궐로 들어오셨을 때의 모습이옵나이다.

공민왕: 그렇지?

김 상궁: 예, 전하. (공민왕을 바라보며) 전하...

공민왕: 믿을 수가 없구나. 이 사람이... 세상에 없다니...

김 상궁: 황공하오나, 마마께서는 전하 곁에 계시옵니다.

공민왕: 그렇지? 내가 이렇게 이 사람을 사모하고 있는데... 날 떠날리가 없지. 보거라. 내가, 여기에 입김을 후 하고 불어넣으면 당장이라도 웃으며 손을 내미실 것 같지 않으냐? (공주의 초상화에 입김을 불어넣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웃어보세요. 어째서 가만히 계십니까...

(49화)

원현: 그게 어떤 세상입니까?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땅을 찾아준다고 새로운 세상이 올 줄 아십니까? 고려 왕실을 에워싸고 있는 권문세도가들이 다 사라지지 않는 한 십년도 못 가 양민이 노비로 전락하고 땅은 권문세도가의 수중으로 되돌아갈 겁니다. 천민도 화척도 과거만 잘 보면 입신양명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대체 천민과 화척이 언제 글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를 한단 말입니까? 과거제도를 아무리 뜯어 고쳐도 과거제도가 있는 한 천민은 평생 천민이고 화척은 평생 개돼지나 잡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임금을 죽이고 사부님이 임금이 되지 않는 한 그런 세상은 천년 만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이 올 리가 없지요. 이 놈의 세상이 뒤집히고 또 뒤집히기 전엔.

(57화)

월선: 부처님께선 천년을 기다리셨느니라. 편조야. 기다리거라. 천년을 기다렸는데 천년을 더 기다리지 못할 것이 무엇 있겠느냐.

신돈: 제가 꿈을 꾼 겁니까, 큰스님? 있지도 않은 세상을 그린 겁니까? 그저 꿈입니까. 그저 꿈을 꾼 겁니까!

(57화)

(입궐하면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궁궐로 향하는 신돈의 눈앞에 열반한 월선이 나타나 신돈을 만류한다)

월선: (슬그머니 다가와 신돈의 등에 업히며 달랜다) 편조야, 가지 말거라. 이 밤중에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임금이 너를 부르겠느냐? 나하고 지금 당장 개태사로 내려가서-

신돈: 스님. 그만 내리십시오.

월선: 싫다, 이놈. 오늘 죽으면 네놈은 다시 땅속에 묻혀 천 년을 기다려야 다시 환생할 것이야.

신돈: 그래도 가야합니다, 스님. 그만 내리세요.

월선: (순식간에 신돈의 앞에 나타나 가로막으며 성난 목소리로) 못간다, 이놈!

신돈: 가야합니다, 스님.

월선: 네놈의 업을 끊으려고 무문암에 가둬놨거늘, 어째서 그 문을 열고 나왔느냐? 세상이 네 뜻대로 바뀔 줄 알았느냐?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중생의 고통 역시 사라질 수 없는 것이야! (석장을 소환해 오른손으로 땅을 내려치며) 돌아가거라, 이놈! 임금을 만나러 가는 것 역시 미련인 게야! 네놈이 마음의 문을 연다고 임금 역시 마음의 문을 열겠느냐? 교만인게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신돈: (잠시 침묵하다가) 스님, 가야합니다. 어리석은 이놈의 미련을 다 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가야합니다. 천 년이 아니라 만 년을 땅속에 묻혀 있어야 한대도 가야합니다. 전하의 어리석음을 제가 깨우쳐드리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이 일을 대신하겠습니까? (약간 놀란 월선) 가게 해주십시오, 스님! (월선 앞에 무릎을 꿇으며) 전하께서 저를 죽이신다고, 지금까지 이룬 일들이 다 수포로 돌아가겠습니까. 설령 권문세도가들이 다시 발호하고 양민이 다시 노비가 되고 백성들의 땅을 권문세도가들이 다시 차지한다고 해도, 그렇다고 지금까지 이룬 일들이 다 허망한 것이겠습니까. 스님, 저를 땅속에 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백성들의 마음까지 땅 속에 묻을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월선이 고개를 끄덕이고, 신돈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다가 다시 고개를 들자 월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고맙습니다, 큰스님.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신돈의 뒤에서 월선이 부른다)

월선: 편조야. (신돈이 걸음을 멈춘다) 네 덕분에 백성들이 꿈을 꾸었으니, 어찌 부처님의 꿈보다 못하다고 하겠느냐?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걸어가면서 염주를 쥔 손을 흔들어 신돈을 보내준다)

(59화)

원현: 노비의 자식이 임금과 친구가 되었다고요. 그게 그렇게 기쁘셨습니까. 그래서 전하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칼을 맞고 서 계셨습니까. 친구라니오. 전하께서 진심으로 사부님을 친구로 여기셨겠습니까. 전하께선 천한 노비의 자식을 영도첨의로 삼아 권문세도가들의 기세를 꺾어놓으려고 한 겁니다.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자손들이 사부님한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수치가 오죽했겠습니까. 혀를 깨물고 죽어도 시원치 않았겠지요. 예, 전하께선 그걸 즐기신 겁니다. 원의 볼모로 끌려가 당한 수모를 그것으로 갚은 겁니다. 임금을 업수히 여기던 권문세도가의 못된 버릇을 그것으로 갚아준 거지요. 예, 전하께선 사부님을 이용한 겁니다. 그런데도 그런 전하를 하늘처럼 떠받들다니. 혼이 있다면 어디 수많은 칼을 맞고 죽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세요. 배반의 흔적들입니다. 전하께서 사부님의 육신 위에 찍어놓은 낙인들입니다. 위선과 권력자의 오만과 냉혹함이 사부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이래도 전하를 친구로 여기십니까. 이젠 다 글렀습니다. 대체 죽어서 무슨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겁니까.

(60화)

죄인: 남들은 먹을 것도 없구만 밥풀 가지고 뭘 만들고 계시우.

원현: 불가사립니다.

죄인: 불가사리라니?

원현: 신돈 사부님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셨을 때 만드셨다는 불가사리 얘기도 못 들으셨소? 신돈 사부님께서 밥풀로 불가사리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냈더니, 그 놈이 세상의 란 쇠는 닥치는 대로 다 집어삼켜 집채 만한 크기의 괴물로 변하지 않았소이까. 그 괴물이 백성들을 괴롭히는 권문세도가들을 다 잡아먹고, 이 철창을 부순 뒤에 신돈 사부님을 구해주었지요.

(미쳤다고 비웃음을 당한 후 죄수들과 다구리를 맞는다. 이 불가사리는 출소 이후 원현이 궁문 앞에 놓는데, 이를 마지막으로 원현은 극에서 완전히 퇴장한다.)

원현: 신돈 사부님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다고 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백성들의 봉기가 불길처럼 치솟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뒤집어엎을 줄 알았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신돈 사부님이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름조차 기억을 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이래서야 어찌 사부님께서 환생하신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지효: 그러니 어리석은 중생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원현: 편조 스님. 이 놈이 어리석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을 믿고 이 놈이 사부님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61화)

(강안전 내부)

공민왕: 나는 다시는... 성산군의 모습을 못보는 줄 알았습니다.

이인복: 소신이 어찌 전하께 하직인사를 고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겠습니까? 전하...

공민왕: 좀 더 오래 사세요. 성산군마저 없으면...

이인복: 전하. 소신이 전하께 석고대죄를 드리려고 입궐을 하였나이다.

공민왕: 석고대죄라니오?

이인복: 소신이 미련하고 옹졸하여 편조와 전하의 큰 뜻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고...

공민왕: 미련하고 옹졸한 것은, 접니다.

이인복: 전하...

공민왕: 세월이 지날수록... 편조가 보고 싶습니다. 내가 어쩌다 그 사람을 내쳤는지... 참으로... 이 나라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나랍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나 같이 어리석은 군주를 만났으니...

이인복: (흐느끼며) 전하... 전하...

(61화)

월선: 그래, 뭘 보고 왔느냐. 지옥이더냐?[93]

신돈: 아닙니다, 큰스님.

월선: 그럼,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도 보고 싶다고 조르더니 뭘 보고 온 게야.

신돈: ...

(3화, 61화)


7. 기타


정하연의 사극은 대체로 역사에서 패배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경우가 많았는데, 신돈의 결말은 개중에서도 가장 뒷맛이 씁쓸한 편이다. 왕과 비는 '역사는 연산군폭군이라고 기록했다.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내레이션을 냈으며, 조광조 역시 '조광조가 추진했던 수많은 개혁의 정책들은 수포로 돌아갔으나 그의 아름다운 정신의 세계는 조선왕조의 명맥을 이어주는 단단하기 그지없는 대들보였다.'라는 해설로 끝난다. 하지만 신돈은 그런 거 없다. 잔인한 권력자와 어리석은 민중 양쪽 모두에게 버려지는 걸로 끝이다. 그것도 신돈은 여타 현실적인 인물들과 달리 허공을 날고 안광으로 바위를 가르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어 더욱 암울하다.
[1] 단막극을 제외하고 이 드라마가 첫 연출작이었다. 후에 개와 늑대의 시간, 달콤한 인생, 로드 넘버 원, 무신, 오만과 편견, 결혼계약, 무법 변호사 등을 연출.[2] 차기작 달콤한 인생으로 김진민 PD와 또 한번 함께 작업했다. 정보석도 여기에 출연했다.[3] 본작에서 덕녕공주 역을 맡은 탤런트 김여진의 남편이다![4] 정통으로 신돈을 다룬 작은 최초이지만 이전 KBS에서 이성계 미화 드라마(라고 쓰고 전두환 만세라 읽는다.)인 "개국"이나 당대에도 역사왜곡으로 욕을 드럼통으로 먹은 MBC 방영작 "대도전"에서도 신돈이 등장한다. 전자는 백찬기 가 신돈을, 후자는 MBC 모 원로 피디가 신돈으로 아주 잠깐 나온다.[5] 마지막회 당시 사랑과 야망은 17.1%,서울 1945는 11.1%의 시청률을 올렸다.[6] 여담으로 실제 기록된 말년의 공민왕과 신돈의 행적부터가 기이하고 막장스럽다.[7] 당시는 물론 2020년을 눈앞에 둔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사극에서 주인공은 지극히 선하거나 이상주의자, 거기 대항하는 악당식의 평면적인 캐릭터 드라마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예외를 들자면 용의 눈물, 무인시대, 정도전 정도.[8] 실제 작중에서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온 적은 없다. 그것도 환상에 시달리는 원현의 의식 속이라고 보아야 맞을 듯. 다만 해피타임!에 올라온 NG 장면 중 배우 2명이 대사가 생각나지 않아서 1분간 서로 마주보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고 웃는 장면은 있다(...)[9] 이 부분은 나중에 천추태후(드라마)로 제대로 말아먹었다. 정작 반지의 제왕을 찍었어야 할 귀주대첩이 마지막 회에서 망가진 걸 봐라...[10] 고려시대 궁궐을 재현해놨는데 정작 MBC에서는 신돈 이후의 조선시대 사극을 찍을 때마다 조선시대 궁궐로 여길 쓰고 있다.(...) 고려시대 사극을 더 찍을 일 없다고 이미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걸 기껏 부수기도 그렇고 본전이라도 뽑으려고 재활용하는 모양.[11] 하지만 사실 총 제작비를 보면 서동요도 180억원이라 총 제작비는 신돈과 같거나 오히려 살짝 웃도는 수준이었음에도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는지는 의문.[12] 신돈의 개혁을 부처님의 꿈으로 비유한 점이 대표적인 예.[13] 공민왕신돈의 개혁정책의 반대파라고 무조건 악역이 아니며 드라마상 개혁정책을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는다. 보통 사극에서 언제나 절대 선처럼 여겨지는 백성들도 철저히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자신을 위해 사는 신돈을 버리는 존재로 그려진다.[14] 판타스틱의 자매지. 주간지와 격주간지를 오가며 발간하다가 2008년 2월에 31호로 사실상 폐간했다.[15] 이 배역에는 유동근 최민식 등이 거론됐다[16]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17] 실제 신돈의 어머니는 계성현[16]의 옥천사라는 절에 딸린 노비였다.[18] 겉으로 쾌활해 보이는 것이나 항상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것을 뜯어 고치려는 야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월선으로부터 "세상을 미워하지 마라, 편조야"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19] 극중 이 여자가 반야의 어머니로 설정된다.[20] 이것도 중요한 경험이 된다. 강력한 악천후를 만나서 배가 난파되게 생겨서 겼는데 승려들은 염불만 하고 있던 것. 선원들이 도와달라고 사정사정을 해도 그러고 있었고 신돈이 도우러 가자 "부처를 버리고 어디를 가느냐? 니놈이 부처를 구하는 게 아니라 부처께서 너를 구해주실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고, 결국 배는 침몰했다. 입으로만 부처님을 섬긴 결과를 뼈저리게 겪은 것. 티베트에서의 고행과 연결되는 부분이다.[21] 후일의 공민왕[22] 몽골의 것을 모두 버리는 장면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옷과 애용하던 활과 화살통을 불 속에 던져 버리며, 이전까지 거의 친구처럼 지내던 하녀가 자신도 버릴 거냐고 오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끝으로 그 하녀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조차 버린 듯.[23] 그러나 45화 마지막 장면에서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아이를 낳기 위해 동침하려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씁쓸해하는 장면이 있는 등, 공주를 계속 연모하는 것으로 보인다.[24] ...는 페이크고(...) 서역의 고승에게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불법으로 구원될 세상이었다면, 이곳 서역에 왜 굶어죽는 이가 있겠냐??"는 말을 듣고 행동하지 않는 종교로는 이상과 현실을 극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25] 귀국 후에는 불가를 벗어나게 되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오히려 유교가 왕권강화와 개혁에 어울린다고 판단해 유림을 키우게 된다.[26] 보우도 월선과 편조의 특별한 관계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머지 머리는 월선더러 깎아달라고 하라"면서 머리카락을 잘라주기만 했다.[27] 문을 봉쇄해버린 암자. 요즘도 템플스테이에서 가끔 쓰인다. 물론 하루나 이틀짜리. 밥은 밖에서 봉창을 통해 넣어준다.[28] 그가 참선수행하는 승려라는 점을 양쪽이 잘 이해하고 있어서 따로 화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일반적인 인간관계라면 친한 이가 강간의 위기에 처했는데도 수행을 깰지 말지 망설이느라 도워주지 않았다면 바로 절교다. 지효를 비롯한 몇몇 스님이 나타나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 뒤, 초선의 집사 박 서방은 "이런 게 부처님의 뜻이냐"면서 신돈을 크게 원망한다.[29] 노국공주가 강제로 문을 열고 끌어내다시피 한다. 신돈은 할 수 없이 참선을 중단하는데, 이를 곁에서 본 초선은 그 이후 노국공주를 더욱 질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전에도 신돈이 사모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라이벌 의식 비슷한 것을 느끼는 모습은 보였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는데, 이 시점 이후로는 공주가 출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대단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은근히 임신할 것을 종용하기까지 한다.[30] 그러나 사실 공민왕의 기대대로 행동한다면 신돈은 간신이 되어 버린다.[31] 신돈은 "내가 요술을 부린 게 아니라, 요술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헛것이 보인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어쨌든 헛것을 보는 상대를 즐긴다.[32] 신돈의 아버지는 신돈이 자기 자식인 줄 모르고 그냥 수행을 위해 떠도는 승려라고만 생각하며 예를 갖추어 대접한 후, "옛날에 자식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 명복을 빌어주십시오."라고 부탁함.[33] 김용이 권력 잡고 비리도 많은 모습으로 나온다.[34] 극중 조일신은 반원세력의 핵심이기도 하다.[35] 공민왕원나라에 있던 아주 어린 시절에 변발을 했었다고.[36] 정세운이 빠진 것은 정세운은 우직한 인물이라 믿고 의지했다고... 어떤 성향이 없이 호위에 충실했던 듯하다.[37] 편조와 함께 엽색행각에 나선 적까지 있다.[38] 조일신은 대도에 있을 당시 당장 기황후에게 선보러 가야 하는 상황에서 공민왕이 술에 취해 헤롱거리자 찬물바가지를 퍼부은 적이 있다. 이때의 수모를 두고 이야기한 것.[39] 원나라를 내쫓았더니 이번에는 명나라가 횡포를 부리자, 공민왕은 이래도 시궁창 저래도 시궁창인 현실에 좌절한다.[40] 그나마 남아있던 충신 이인복은 노국공주, 편조, 조일신, 김용, 정세운, 안도치(이 6명은 공민왕의 연경 시절부터 인연이 있는 오래된 사이)만큼 공민왕과 인연이 깊지 않아 둘의 관계는 단순한 군신관계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나이 때문에 얼마 안가 사퇴한다.(그래도 이인복은 공민왕이 조정 대신들 중 이제현과 함께 가장 신뢰하고 믿던 인물이었다.) 충신의 대명사인 최영의 경우, 본 드라마 속 최영은 충신보다는 정치군인의 면모가 더 강하다.[41] 백골 그림을 그려놓고 그 앞에서 공민왕이 잠든 상태였는데 홍륜과 최만생 등 공민왕을 시해하려는 이들이 들어와 자던 도중에 시해당한 것으로 묘사된다. 처음 공민왕을 살해하러 갔던 청년들은 사람 죽이는게 처음이었는지 공민왕을 눈앞에 두고도 찌르지 못해 쩔쩔매고 보다못한 다른 사람이 나서서 직접 찌르는데, 그 순간 공민왕이 자던 도중 눈을 흡 뜨고 일어나 그들을 쳐다보다가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누워버린다. 이후 사람들이 연신 그를 찔러댔고 이 때 그는 잠자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비명도 못 지르고 시해된다.[42] 죽는 그날 밤 아들 모니노를 데려와 "나는 실패한 왕이다. 너는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훌륭한 왕이 되어야 한다."고 이른다. 모니노가 "예"라고 대답하자 공민왕이 엄청 기뻐하는데, 역사를 아는 사람 입장에선 후새드.....[43] 극 중 인물 대부분, 특히 최영은 공민왕이 김용을 이용해 정세운을 숙청한게 분명하다고 여긴다.[44] 정전 앞 마당이 연등 불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흡사 극락을 연상케 한다. 허나 이 드라마가 진지한 사극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좀 깨는 장면이다. 그래서 한 때 시청자들에게 신돈 나이트(...)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45] 정작 공민왕을 암살하려던 이들의 눈에 비친 공민왕은 아무도 없는 정전 앞 마당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었는데 고독한 듯 하면서도 어딘지 미쳐버린 듯한 모습으로 연출된다.[46] 신돈 자신만 반쪽이었던게 아니라, '공민왕 너도 반쪽이었느나 날 만나 완성 됐다' 라는 식의 대사이다. 상호간의 상승효과인 셈.[47] 이 장면 메이킹 필름을 보면, 서지혜가 장시간 진통을 겪으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연기를 하느라 완전히 진이 빠져 '물 좀 마시고 할게요' 라며 땀에 절어 흐트러진 머리와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로 생수병을 힘들게 들고 마시는데, 얼마나 애써서 연기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함께 그 장면을 연기하던 공민왕 역의 정보석을 비롯한 덕녕공주 역의 김여진과 초선 역의 강문영 등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이, 후배의 노력에 칭찬과 격려의 뜻으로 박수를 쳐준다.[48] 그래서 같은 개태사 출신의 원현이 그를 '편조 스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법왕사의 보우를 스승으로 모시는 지효는 그를 '편조 거사'라고 부른다.[49] 무인시대에서 생선장수 출신 무장 이영진으로 출연했다. 원현으로 출연하는 오만석은 당시 경대승의 사병조직 '도방'의 장사 중 1명인 양표로 출연했는데, 이영진의 집을 털러 갔다가 이영진에게 죽었다. 그 외의 대표 사극출연작은 명성황후의 장순규, 명동백작정팔이 있다.[50] 개밥그릇에 담긴 고기를 탐내다가 신돈에게 걸려 놀림을 당했던 적이 있다.[51] 지효는 편조에게는 거사라고 불러도, 원현에게는 원현 스님이라고 부른다.[52] 속으로는 신돈이 세상을 바꿀 사람이라고 믿고, 바꾸기를 원하기도 한다.[53] 권력을 잡기 전에도 '그래 가지고 언제 세상을 바꿀 거냐'고 농담한다.[54] 둘 다 한예종 연극원 1기(94학번)인데, 문정희는 이 드라마에서 공민왕후궁이며 이제현의 딸인 혜비 역할을 맡았다.[55]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스승에 해당하는 인물을 판다거나 팔고 나서 후회하는 등의 모습이 창작물 중에서는 팀 라이스가 작사하고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와 거의 겹친다.[56] <신돈> 집필자 정하연 작가가 집필자로 낙점됐으나, KBS 2TV 조광조를 끝낸 지 얼마 안 돼 사극을 쓰는 건 무리가 있다며 고사한 KBS 1TV 용의 눈물 연출자 김재형 PD의 전작인 KBS 1TV <왕도>에서 홍국영(김영철 분)의 여동생으로 출연했다[57] 신돈이 면벽수행을 할 때 초선이 적군에게 강간 또는 살해될 뻔했는데도 맹세 때문에 안 나왔다. 하지만 노국대장공주공민왕을 위해 다짜고짜 신돈이 면벽수행하는 문을 열어젖히자, 노국대장공주의 뜻대로 면벽수행을 포기하고 정계로 복귀했다.[58] 김용이 보낸 자객으로부터 독이 스며든 표창을 맞아 사경을 헤매던 신돈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무의식적으로 '마마'를 언급한 적이 있었고, 신돈을 간호하던 초선은 이 소리를 듣고 신돈이 노국대장공주를 연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훗날, 초선은 신돈에게 "섬광처럼 마음 속을 스쳐간 사람이 중전마마냐"고 물었고, 신돈은 반 농담처럼 "보살님을 말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초선의 말을 부인하지는 않았다.[59] 공민왕도 "신돈노국대장공주를 연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국대장공주가 죽은 뒤, 공민왕은 영전 공사 때문에 신돈과 다투던 중 신돈에게 "자네도 나 못지않게 그 사람을 좋아했고, 그 사람를 끔찍이도 아꼈다"고 말했다.[60] 이 때만큼 초선이 매몰찬 경우는 전에도 이후로도 없었다.[61] 우왕의 '신돈 사생아' 설과 연결되는 고리라고 할 수 있다.[62] 태조 왕건에서 청주 출신 반란군 장수 선장과 후백제 수군 장수 상귀, 무인시대에선 채원을 연기한 배우.[63] 부정축재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 위기에 몰린 김용을 구하기 위해, 전민변정도감을 주도하던 신돈을 찾아가 "김용을 한 번만 눈 감아달라"면서 무릎까지 꿇었다.[64] 실제 역사와 사뭇 다른데 신돈을 요사스러운 중으로 간주하고 그를 죽이려 했다. 신돈은 정세운이 암살된 이후에야 조정에 출사하게 된다.[65] 실제 역사에서도 공민왕이 김용에게 밀명을 내렸다는 의혹이 있다.. [66] 원래 무장인데 겁이 많은 설정인지 친원세력의 척살시에도 궁을 안 지키고 도망쳤다.[67] 정세운이 죽는 그 때 김용은 안도감에 간사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꼭 그의 양심인 양. 꽤 의미 심장한 장면.[68] 이 당시는 국민교육, 의무교육의 개념이 없었던 만큼, 배움 역시도 기득권의 소유물이었다. 양반과 중인을 제외한 노비들은 글 자체도 몰랐고, 양민들 역시 나라에서 붙는 방을 읽기 위한 천자문과 소학 정도만 배우는 것이 다였다.[69] 현실의 조선은 16세기 이후로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70] 당시 고려는 오랜 재정부족으로 관군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였고 권문세족들의 사병으로 국방을 하던 상황이었기 때문.[71] 이 때도 이인복을 구슬리기 위해 온 박불화에게 고려의 요구사항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덕흥군의 목을 가져갈 때 자정원사(박불화)의 목도 같이 달라.' 고 배짱을 부린다.[72] 사실 이인복의 패기보다는 원 말기에 여기저기서 벌어진 민란과 지방의 분열, 그리고 홍건적 문제가 컸기 때문이다. 이때는 원의 군대 역시 허수아비가 된 건 마찬가지였고, 고려를 치려고 군사를 내면 홍건적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73] 실제로 조정 대신 중에서 공민왕이 정말로 믿었던 사람은 정세운, 이제현, 이인복 뿐이었다. 연경에서 자신을 보필하던 조일신조차도 끝까지 믿지 못했고, 김용은 아예 대놓고 믿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낼 정도였다. 대신들이 신돈과 전민변정도감에 반감을 가지고 집단 사직서를 내고 인척인 김원명이 사직서를 낼 때조차도 모조리 받아주겠다며 꿈쩍않던 공민왕이 이제현에 이어서 이인복이 사직서와 함께 하직인사를 하러 오자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것이 그 증거.[74] 다만 이인복은 1374년, 그러니까 공민왕과 같은 해에 죽었는데 그가 공민왕 사후에 죽었는지 그 이전에 죽었는지는 확실치 않다.[75] 신돈이 주도하던 전민변정도감이 좌초했던 이유는 "조정 대신들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했기 때문"이었다. 그 계책을 낸 당사자가 바로 이인복이었다. 이인복은 이때의 일을 두고 "미안하다"고 한 것이다. 물론, 악의를 가지고 계책을 낸 것은 아니었다. 이인복이 우려했던 것은 "조정 대신들이 원나라와 짜고 공민왕을 폐위한 뒤, 덕흥군을 옹립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정세운이 이 계책을 낸 이인복을 책망하자 예의가 문제가 아니라며 '전하께서 보위를 잃으실지도 모르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냐' 며 정세운에게 큰소리를 낸다. 이인복이 충신임을 알 수 있는 부분.[76] 이 발언은 이인복 이전에 이제현 역시 공민왕에게 했다.[77] 이미 권문세족들은 원나라를 등에 업은 채 임금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권문세족들은 몇대에 걸쳐 세습이 이루어지면서 왕은 국방과 같은 기본적인 능력조차 권문세족들의 협조를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공민왕에게는 고개를 뻗대고 불만을 표하면서도 원순제에게는 최유를 잡아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사은숙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원명이 대표적인 사례. 게다가 공민왕노국대장공주를 제외한 왕실 역시 권위 지키기에만 급급할 뿐, 진정으로 고려를 개혁할 생각 따위는 없는 상황이었다. 간신 김원명을 옹호하고, 공민왕이 개혁을 주장할 때마다 대전에 와서 공민왕을 책망하는 명덕태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장 임금을 지지해줘야 할 임금의 생모부터가 권력과 권위 지키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이니, 온건한 개혁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상황이다.[78] 반대로 이색은 유가가 귀족을 대신해 지배세력이 되면 나라가 안정된다고 믿는 인물.[79] 실제 역사에서는 신돈의 골상이 흉악하여 가까이하지 말라고 공민왕에게 충언을 올렸으며, 이에 빡친 신돈이 이제현을 헐뜯었지만 노년이었기에 별다른 불이익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나중에 신돈이 반역 혐의로 처형된 뒤 공민왕이 앞을 내다본 이제현의 식견에 감탄해했다고 전해진다.[80] 훗날 신돈공민왕의 사부가 된 후 김원명에게 "분수를 아시라고 했네"라고 되돌려준다.[81] 아이러니하게도 한 배우가 맡은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 중 처지의 대조가 가장 심한 케이스가 노국대장공주와 반야이다. 공민왕의 아내라는 것만 빼면 출생신분, 처지, 취급까지 모두 차이가 난다.[82] 두 인물을 담당한 배우가 서지혜로 동일한 점, 노국대장공주가 난산 끝에 사망한 반면 반야는 무사히 공민왕의 아이를 낳은 걸 다 고려해보면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정작 공민왕에게 사랑받았던 노국대장공주와 달리, 반야는 공민왕의 아이를 낳았음에도 그 공민왕에 의해 익사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83] 이 때 반야가 '내가 누구인줄 아느냐!!' 하고 자기를 붙들고 던지려는 이들에게 처절하게 발악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안타깝고도 비참한 장면이다. 비참한 시대적 배경으로 부모를 다 잃은 것도 서러운데 겨우 왕의 여자가 되어 신세 피는 줄 알았더니 남편은 아들만 채가고 자기를 익사시키는 방식으로 암살하는 걸 택해버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저 장면과 그 뒤에 이어지는 반야의 수장 씬은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도 기구하다는 걸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 응보인지는 몰라도 그녀를 비참하게 죽게 만든 공민왕 역시 끝내 궁에서 고립된 처지가 되던 끝에 잠자던 도중 암살당하느라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갔다는, 반야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만...[84] 고려로 돌아온 후 복국장공주가 갑자기 죽었는데, 이게 충숙왕이 복국장공주를 피흘릴 정도로 두들겨 패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원나라에서 문제삼은 적도 있었다. 그때문에 충숙왕은 재위 내내 고려왕위를 노리는 심양왕 왕고의 모략까지 합쳐서 수시로 원나라에 불려가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사실 복국장공주는 고려에 올 때부터 몸이 이미 좋지 않은 상태였으며, 애당초 두 부부의 사이는 좋지 않아서 허구한 날 부부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반대로 명덕태후는 예의바르고 얌전해 충숙왕이 생전에 엄청 총애했다.[85] 연출 김진민의 부인. 그것도 신혼일 때였다. [86] 노국대장공주는 "그렇다면 신돈에게 세상을 다 줘야 한다"고 답변했다.[87] 신돈 드라마로부터 23년 전에 방영했던 kbs 개국에서 공민왕을 연기했었다.[88] 사실 정보석과 정하연 작가는 KBS2의 '아내', EBS의 '명동백작', '지금도 마로니에는'을 통해 이전부터 많은 인연이 있었던 친밀한 관계이며 이후에도 이들은 '달콤한 인생'에서 다시 호흡을 맞춘다.[89] 1화에서의 모습과 중후반부의 모습을 보면 서지혜의 연기력이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90]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91] 오만석은 무인시대에서 단역으로 공중파에 이미 출연하기는 했지만 기껏해야 "예이"나 외치는 수준의 비중이라, 실질적으론 이 작품이 사실상 방송 데뷔작이라고 해도 좋다. 이후에는 '포도밭 그 사나이', '왕과 나' 등으로 방송계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지만.[92] 37화 실제 영상에서는 뒷부분 대사만 편집돼서 등장한다.[93] 61화에서는 이때 신돈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