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Volkswagen'''
[image]
<colbgcolor=#00184F><colcolor=#FFF> '''정식 명칭'''
Volkswagen AG
'''한국어 명칭'''
폭스바겐
'''설립일'''
1937년 5월 28일 (87주년)
'''설립단체'''
독일노동전선
'''본사 소재지'''
독일 니더작센볼프스부르크
'''핵심인물'''
헤어베르트 디스 (회장)
'''업종'''
자동차 제조업
'''모기업'''
폭스바겐 그룹
'''홈페이지'''
한국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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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로고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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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스부르크 아우토슈타트(Autostadt)[1]에 있는 폭스바겐 그룹 본사.
폭스바겐의 자동차 테마 공원이기도 하다.
1. 개요
2. 역사
3. 특징
3.1. 포르쉐와의 미운 정 고운 정
3.2. (과거형) 모터스포츠의 무한도전
3.3. 중국에서 사랑받는 차
3.4. 그 외 기술 관련
4. 평가
5. 미디어에서의 폭스바겐
6. 논란
6.1. 폭스바겐 광고 논란
6.2. 디젤게이트 (Diesel-gate)
6.3. 오일 펌프의 근본적 문제
6.4. 인체 및 동물 실험
7. 차량 목록
7.1. 스포츠카/세단/해치백/패스트백/왜건
7.2. SUV / CUV
7.3. MPV
7.4. LCV
7.5. 트럭
7.6. ID 시리즈
8. 기타


1. 개요


독일 니더작센볼프스부르크(Wolfsburg)에 본사를 둔 자동차 제조 회사이다.
Volkswagen은 독일어로 '''국민차'''라는 뜻이다. 알파벳 '''W'''(영어 발음: '''더블유''')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웨덴''', '''포르투갈''', '''네덜란드''', '''폴란드''' 등에서는 ''''/v/'''' 발음으로 읽힌다. 따라서 폭스와겐이 아니라 '''폭스바겐'''이라고 부른다.[2] Volk (인민)[3] + -s- (합성어 중간에 삽입되는 연결 요소)[4] + Wagen (자동차).[5] 원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독일어 발음 /ˈfɔlksˌvaːɡn̩/에 근거하여 '''폴크스바겐'''이라고 써야 하지만, 폭스바겐사의 대한민국 공식 법인명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주식회사'이며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기 때문에 폭스바겐으로 통칭한다. 중국명도 이에 맞게 다중(大众/大衆, 대중) 이다. 하지만 대중이라는 차의 이름과 달리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제작이 시작되었기에, 전범기업이라는 주홍글씨를 씻기는 어렵다.

2. 역사


포르쉐를 만든 공학박사 페르디난트 포르셰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포르쉐의 기반을 닦은 사람이었고, 실제로 회사는 페르디난트의 아들 페리 포르셰가 창업했다. 그래서 폭스바겐과 포르쉐는 사실상 한 몸이다. 시간 순서를 따지고 보면 포르쉐 쪽이 형이다.
나치당은 1933년 집권 후에, 중요 지지기반이던 노동자 계층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한다. 대공황의 여파로 발생한 대규모 실업자를 흡수할 공공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이들이 저렴한 비용에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공공 복지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나치당의 노동자 기관[6]인 독일노동전선(Deutsche Arbeitsfront, 약칭 DAF) 산하에 공공 레저기관으로 1933년에 "Kraft durch Freude (환희를 통한 활력, 약칭 KdF)"를 설립한다. KdF는 저소득 노동자 가정들도 소정의 적립금만 내면 국가의 보조금을 더해 각종 공연 및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가난으로 레저 활동을 꿈꿀 수 없던 노동자 계층에서 이러한 정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34년에 벌써 230만 명이 가입하여 KdF가 제공하는 휴가 프로그램을 즐겼다.[7] KdF는 이에 각종 리조트를 확보하고 여객선을 건조해서 다양한 레저 패키지를 구성하는 등, 사업을 확장한다.
히틀러는 한편으로 독일 노동자들이 독일에서 만든 저렴한 자가용 승용차을 소유하여 유럽을 자유롭게 오가게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했다. 이를 위해 집권하자마자 공공 토목사업으로 아우토반 건설에 착수했고, 이어 1934년에는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에게 노동자도 돈을 모아 충분히 살 수 있는 1,000라이히스마르크[8] 짜리 국민차를 만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민간 자동차 업체들은 고급 차량 중심의 라인업만을 갖고 있어서, 이 가격에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업체가 없었다. 이에 이 프로젝트는 독일노동전선이 떠맡아 거액의 공공 보조금을 투입한 별도의 기업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폭스바겐 사 태동의 계기이며, 오늘날 폭스바겐 사에서도 1934년을 회사 창립의 기점으로 잡고 있다. # 포르셰 박사는 결국 히틀러의 요구 조건인 어른 2명과 어린이 3명이 탑승 가능하며, 최고속도 시속 100㎞ 이상에 연비도 7L/100㎞[9]를 만족하면서도 구조도 최대한 단순화한 Typ 60 프로토타입 모델을 1935년에 설계해낸다. 이 설계에 의한 시험차량은 1936년에 제작되어 1937년까지 약 3백만㎞의 주행 시험을 거치며 계속 수정되었다.
히틀러와 독일노동자전선은 이를 양산하기로 확정하고, 1938년 5월에 니더작센 주의 팔러스레벤에 대규모 부지를 마련하여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이것이 폭스바겐 사의 실질적인 시작이라 볼 수 있다.[10] 이때 기공식에서 히틀러는 이 신차의 이름을 "KdF-Wagen"으로 명명하고, 이듬해부터 차량을 양산해 KdF 가입 노동자들에게 공급하겠다고 선언한다. 동시에 KdF는 독일 노동자들에게 차량 공급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이를 구입할 수 있는 적립통장을 만들도록 권유했다. 이 KdF-Wagen은 차량 가격이 990라이히스마르크(취등록비, 보험료 등 부대비용 제외)로 책정되었으며, 적립통장 1권은 5라이히스마르크 짜리 쿠폰 50장(총 250라이히스마르크 어치)을 붙이게 구성되어 있었다. 노동자는 매달 여력이 되는만큼 쿠폰을 구입해 적립통장 4권에 쿠폰을 모두 붙여 제출하면 KdF-Wagen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장이 완공되기 시작한 1939년에 곧바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실제 노동자들에게 공급된 차량은 210대 남짓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이 그간 적립한 돈도 사실상 독일의 전쟁비용으로 흡수되었다. 개전 이후 폭스바겐 공장은 즉시 군수공장으로 전용되어 퀴벨바겐, 슈빔바겐과 같은 군용차를 생산한다. 대전 기간 동안 퀴벨바겐은 약 52,000대, 슈빔바겐은 약 14,000대가 양산된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후 연합군 산하의 관리에 들어가면서, 폭스바겐은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포르셰 박사는 포드에 회사를 매각하려 했으나, 포드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포르셰 박사는 종전 후 전범으로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아들 페리가 회사를 지켜야 했다. 이 와중에 공장 관할은 미국에서 영국으로 넘어갔고, 공장 설비의 처분권도 영국이 갖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소련이 그랬듯이 공장 설비를 다 뜯어내어 영국으로 가져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독일로서는 천만 다행으로 당시 영국 자동차 업체들은 폭스바겐 생산 설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영국 육군 장교였던 이반 허스트(Ivan Hirst) 대령은 전후 폐허 위에서 생계가 막막해진 독일인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남아 있는 생산 설비에 독일 노동자들을 다시 모아 독일 주둔 영국군에게 납품할 차량 생산을 재개하도록 한다. 이로 인해 당초 민수용 차량 설계대로 폭스바겐 1형(Volkswagen Typ 1) 생산이 재개되었다. 1945년에는 1,785대가 생산되었고, 점차 부품 공급망이 정상화되면서 1946년 3월에는 월간 1,000대 생산이 가능한 수준으로 복구되었다. 이들은 1946년까지는 거의 전량 영국군에게 납품되었으며, 독일의 민간 경제가 서서히 복구되면서 일반 독일 시민들에게도 공급되기 시작해 1947년에는 9,000대 이상이 민간 시장에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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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스바겐 1형은 점점 개량되며 해외시장에도 진출했고, 폭스바겐 비틀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어 미국 등에서 대 히트를 치게 된다. 1971년에 연간 130만대가 생산된 것을 정점으로, 2003년 7월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에서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무려 2,153만대가 출고되었다. 이러한 폭스바겐 비틀의 대박을 등에 업고 폭스바겐은 완전하게 부흥하게 된다. 그 뒤 공전의 초히트작인 전륜구동 해치백 폭스바겐 골프를 내면서 세계 최강자 반열에 든다.
이후 포르쉐에서는 비틀의 플랫폼을 가져와서 개구리 모양의 356이라는 스포츠카를 만들었다. 오리지널 비틀도 수평대향식(복서) 엔진을 달았고 356도 수평대향식 엔진을 달았으니, 완벽하게 궤를 같이하는 회사다.
대한민국에는 효성그룹을 통해 아우디와 함께 들어왔으나 인기를 얻지 못해 1997년 외환 위기 때 철수했고, 2004년 고진모터임포트를 통해 재진출했다. 재진출한 후 골프 2.0 TDI(디젤)가 나오면서 뒤늦게나마 골프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2005년에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라는 대한민국 법인을 설립하여 직판 체제를 구축했으며, 박동훈 당시 아우디폭스코리아 사장의 마케팅으로 폭스바겐의 인기가 증가했다.

3. 특징



3.1. 포르쉐와의 미운 정 고운 정


포르쉐와는 창업주가 같은 형제 기업이다. 포르쉐 회장인 볼프강이 페르디난트 창업주의 친손자고, 폭스바겐의 회장과 감독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외손자다. 지금도 각 기업의 회장들은 서로 사촌 지간이면서 라이벌이다. 다시 말해 원래는 적군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고.
포르쉐와 폭스바겐이 협력한 사례는 적지는 않지만, 딱히 대박이라고 할 만한 물건은 많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포르쉐 914와 924에 사용한 4기통 버전은 엔진을 폭스바겐에서 제조했다. 폭스바겐 투아렉포르쉐 카이엔은 대박난 작품에 속하고, 여기에 아우디 Q7까지 세 차량은 플랫폼(PL 시리즈)이 동일하다. 폭스바겐의 상용 밴인 폭스바겐 트랜스포터의 차체를 갖고 와서 엔진을 세로 배치가 가능하게 개조한 것 이다. 포르쉐 카이엔은 포르쉐가 개발한 자동차 중 '신의 한 수'였는데, 공동 개발 과정에서 개발비를 크게 절감한 포르쉐 카이엔이 대박을 치면서 박스터와 더불어 포르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기 때문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두 기업이 서로를 인수하려고 신경전을 벌였다. 선제공격은 포르쉐의 CEO였던 벤델린 비데킹이 주도했다. 그 결과 포르쉐가 빚을 내서 폭스바겐 지분의 51%까지 차지하는 상황까지 갔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포르쉐 AG의 지주회사인 포르쉐 SE가 폭스바겐 그룹 지주회사인 폭스바겐 AG의 주식을 매입한 것이다. 사실상 마름이자 바지사장에 불과했던 비데킹이 사운을 건 인수합병을 독단적으로 했을 리 없기 때문에 당시 포르쉐 회장이었던 볼프강 포르쉐가 사장인 비데킹의 배후에서 외사촌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당시 폭스바겐 감독이사회 의장과 붙은 걸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곧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크리를 맞아 돈줄이 급해진 포르쉐는 구제 금융을 요청했지만, 생산 설비나 기술 개발 투자가 아닌 100% 돈지랄로 망하게 생긴 까닭에 독일 정부는 당연히 거절했다. 결국 포르쉐 SE가 포르쉐 AG의 주식 절반을 폭스바겐 AG에게 넘겼다. 폭스바겐 AG는 포르쉐 AG의 주식 나머지를 모두 인수하는 과정에서 80억 유로(당시 환율 적용 시 한화 12조 원)를 포르쉐 SE에게 지불했다. 결국 2009년 7월 거꾸로 폭스바겐이 포르쉐를 인수한다. 인수 합병의 결과로 '포르쉐 SE → 폭스바겐 AG → 포르쉐 AG&기존 폭스바겐의 자회사들'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가 성립됐고, 결국, '최후의 승자'는 '포르쉐 창업주 가문'인 '포르쉐-피에히 가문'이 되면서 페르디난트 포르셰 공학 박사가 세운 두 회사는 포르셰-피에히 가문의 것이 됐다.
결국 포르쉐의 폭스바겐 인수 실패의 책임으로 벤델린 비데킹 CEO는 사퇴했고, 페르디난트의 외손자인 볼프강 포르셰가 포르쉐의 후임 CEO를 맡았다. 헌데 2015년 디젤게이트로 마틴 빈터콘 CEO가 사퇴하면서 포르쉐 CEO인 마티아스 뮐러가 VW그룹 CEO로 승격했으니 어째 지위가 다시 역전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3.2. (과거형) 모터스포츠의 무한도전


폭스바겐 및 예하 계열사들을 거느리면서 모터스포츠에 열심이던 회사였으나 2015년 디젤게이트 여파로 인해 점점 위축되고 있다. 디젤게이트 벌금 지불 및 후속대응을 위한 자금조달 때문에 돈 안되는 모든 사업을 축소시키는 중이며, 모터스포츠가 그 활동에서의 0순위다. 아우디, 포르쉐, 토요타 3파전을 이루던 WEC LMP1 클래스에서 2016년을 마지막으로 아우디가 은퇴를 선언했으며, 2년 연속 우승하던 폭스바겐 WRC 랠리팀도 철수를 결정지었다. 포뮬러 1에 진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피에히 의장은 애초에 F1이 회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F1을 싫어했던 인물이라...
아우디 DTM 참가, 스코다 ERC 참가, 세아트 WTCC 참가에 대해서는 철수 여부가 결정된 바가 없으나, 모터스포츠의 꽃인 WEC와 WRC 철수만으로도 이 회사의 모터스포츠 투자가 얼마나 위축되어버렸는지를 입증한다. ERC나 WTCC의 관중규모 및 소요예산은 WRC나 WEC의 반의 반만큼도 되지 않기에.. 두카티, 람보르기니 그리고 벤틀리 매각설이 점점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마저 돌고 있다.
모터스포츠 외에도 분데스리가 축구VfL 볼프스부르크를 운영하고 있는데..

3.3. 중국에서 사랑받는 차



중국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해외 제조사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현지 제조사와의 합작으로 운영하고 있고, 중국에서 판매 중인 해외 브랜드 차량의 대부분은 중국 현지 제조사와의 합작으로 중국에서 생산된 차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사실상 무늬가 해외 브랜드인 국산차인 셈. 폭스바겐의 중국 합작 회사는 '상해대중'(상하이따이중이라고 읽는다)과 FAW-VW(파우 따이중)이 있다. 중국에 외국 업체들이 몰려간 것이 대략 동서 냉전 붕괴 이후인 1990년대부터이지만, 폭스바겐은 이미 '''1980년대 초반'''에 중국에 진출해서 합작 공장을 세웠다. 중국 전용 모델인 산타나를 생산한 것도 이때쯤. 1980년대 초반이라면 중국은 여전히 죽의 장막 소리를 듣던 시기였다. 폭스바겐은 정말 시대를 앞서서 중국에 진출한데다가 꾸준히 브랜드 이미지 유지 및 점유율 상승에 힘을 쓰면서 중국내 제1자동차 업체가 되었다. 폭스바겐(Volkswagen)의 중국 이름인 '''대중(大众)'''은 국민, 민중을 뜻하는 독일어의 '''Volk'''를 번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연히도 '''무리 중(衆)'''의 간체자인 '''众'''자가 폭스바겐의 상징을 뒤집어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어 이름과 제조사의 엠블렘이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더욱 중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물론 그와 별개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중국에서는 자동차는 비싼 사치품이었고 자동차를 일반대중들이 타고 다닐수있을 정도로 먹고살게 된것은 2010년대 들어와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아래에 나오는 공무용으로도 사용한다.
자동차의 프리미엄의 대명사 독일 3사인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도 대형 세단 이상의 프리미엄급 모델과 일부 모델을 제외한 나머지 모델은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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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걸맞게 대중적인 브랜드로써 정말로 몇몇 도시(예를 들어 베이징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방에는 택시뿐만 아니라 공안 차량들의 대부분도 폭스바겐이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중국 내 국산 브랜드들이 국내 경제 발전의 기회를 노려 인지도를 올리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안부는 계속해서 신형 폭스바겐 차량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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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나나 라비다같은 중국 시장 전용 차량도 판매하고 있다.

3.4. 그 외 기술 관련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보그워너(BorgWarner) 사와 합작하여 생산하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DSG/Direct Shift Gearbox)에 엄청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물량빨로 단가를 후려치는지 그 비싼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일부 대형 차량(페이톤이나 투아렉)을 제외한 거의 전 라인업에 쑤셔 넣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일반적인 DSG는 허용 토크의 낮은 한계치 때문에 크고 아름다운 토크를 자랑하는 대형 의 엔진과 조합할 수가 없다. 단 고급 스포츠카 등에 들어가는 다른 듀얼 클러치 변속기그런 거 없다. 가까운 예로 폭스바겐의 형제 회사인 포르쉐듀얼 클러치 변속기인 PDK만 봐도...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의 또 다른 자회사인 부가티의 슈퍼카 베이론 수퍼스포트에 들어가는 DSG는 '''1,200마력, 150kg.m이 넘는 미친 출력을 감당한다!'''
그런데 2014년 그것조차 뛰어넘어 최대 허용 토크를 끌어올린 대형 승용차 10단 DSG를 개발할 거라고 발표...하였으나, 2015년 9월에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디젤게이트로 20조 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 위기에 처하자 연구 개발 역량을 아무래도 축소 시키는 듯하다.

4. 평가


대중차 브랜드이지만 큰 규모와 함께 상당히 긴 역사를 갖추고 있으며 계열사로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고급차와 스포츠카 브랜드를 대거 보유하고 있어 세계적인 인지도와 기술력이 높은 편이다. 특히 유럽 내에서는 계열 대중차 브랜드 스코다세아트를 약간 아랫단계로 놓고 타 대중차 브랜드보다는 약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아예 국내 대표 브랜드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도 한다. 다만 유럽 밖으로 나가면 폭스바겐의 이미지는 딱 싸게 타는 대중차 그 자체로, 특히 멕시코 현지생산 차량이 주로 유통되는 북미에서는 매년 성능과 품질 평가에서 꾸준히 하위권을 찍는 브랜드이다.
독일 자국 내의 평가는 최신 디젤엔진 기술과 DSG로 대표되는 첨단 파워트레인 기술, 블루모션과 4MOTION 등 최첨단 기술을 여태 경쟁 대중 브랜드나 프리미어 브랜드보다 먼저 적용하는 앞선 기술의 메이커 이미지였다. 이런 뛰어난 브랜드력으로 독일 내수 판매 1위는 골프+제타, 2-3위는 큰 차이로 파사트와 폴로가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2015년 9월에 터진 디젤게이트 사건으로 신뢰도를 잃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해당 문단과 독립된 문서를 참고.
메이커의 간판 모델로는 EU 내에서는 mid-size로 분류되는 C세그먼트 전륜 구동 소형차인 골프를 꼽을 수 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골프를 빛나 보이게 하려고 아래 클래스인 폴로를 일부러 거지같이 만든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폴로마저 2010년 세계 올해의 차(Car of the year)를 수상해 버렸다! # 실제로 폭스바겐 자체적으로 시작된 스포츠카도 골프의 가지치기인 GTI였고, MQB 플랫폼 이전 시절에는 골프의 플랫폼을 하나로 신형 딱정벌레티구안, 투란, 파사트, 이오스, 캐디, 시로코, 옥타비아 등 수십가지의 모델을 양산해 냈다. 이런 단일화가 훗날 '''재앙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올드 비틀마이크로버스는 히피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고급차 시장에서의 지위는 낮은 편이다. 폭스바겐 그룹 산하에 거느린 수많은 브랜드[11]가 럭셔리/프리미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기에 폭스바겐이 사실 앞장서서 럭셔리 카 개발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지만, 본격적인 준 프리미어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2000년대 초 투아렉페이톤으로 고급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평타는 치고 있는 투아렉과 달리, 페이톤은 '''완전히 참패했다'''. 폭스바겐 페이톤 문서에 처절한 실패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 사실상 독일, 중국, 한국에서만 근근히 파는 정도에 그쳤다. 업계 전문가들은 페이톤이 실패한 원인을 그 동안 폭스바겐이 유지해 온 '''"대중차"'''로 각인된 브랜드 정체성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쪽 분야는 자연히 계열사에 맡긴다.

5. 미디어에서의 폭스바겐



6. 논란



6.1. 폭스바겐 광고 논란


2015년 6월경부터 어그로를 유발하는 광고로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폭스바겐을 타는 주변 사람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례들을 보여준 후 등장하는 "남들에겐 '''질투''', 당신에겐 '''기회'''"라는 캐치프레이즈. 이러한 캐치프레이즈에 대해 세간에서는 "광고로 허영심을 부추긴다", '''"폭스바겐이 메르세데스-벤츠BMW, 아우디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나 고급 차량도 아닌 주제에 폭스바겐의 차들을 타면 질투를 유발한다고 운운하는 건 주제넘는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보이나, 한편으로는 자동차로 타인을 평가하고 수입차라면 싼 차 비싼 차 할 것 없이 일단 동경하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노린, 현지화를 제대로 한 광고라는 의견도 있다. 내용을 떠나 광고 자체로만 보면 논란이건 어쨌건 널리 알려지게 하는 데는 성공했고, 다소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긴 하지만 네임 밸류에 대한 자신감도 확고하게 드러낸 광고라 할 수 있다.
이 광고의 경우 아래 짤과 묶여서 함께 까이고 있다. '''그나마''' 공조장치의 경우 수동 방식이 아니고 2zone climate로 자동식이다. 그런데, 그 공조장치도 10년 전의 폭스바겐 모델들에 쓰이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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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디젤게이트 (Diesel-gate)


독일차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킨, 자동차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 리콜로 기억될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더욱 추악한 기만과 꼬리자르기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 해당 문서 참고. 참고로 이에 준하는 사건으론 과거 2009년 터진 일본 자동차 기업 토요타토요타 리콜 사태가 있다.

6.3. 오일 펌프의 근본적 문제


폭스바겐 차량중에서도 베스트셀러인 2.0 TDI모델의 경우 오일 펌프를 육각 샤프트로 구동한다. 문제는 이게 굵기가 나무젓가락 수준에, 육각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 차라리 삼각형이었다면 부하가 걸리는 부분이 커서 오랫동안 사용할수 있겠지만, 육각인데다가 굵기마저 나무젓가락 수준이라 8~10만 km 정도 주행 후엔 마모가 시작된다.
육각 샤프트가 마모되면? '''오일 펌프 구동 자체가 중단된다.''' 한마디로 엔진 오일 없이 주행하는 차량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가장 첫번째로 워낙 고rpm에서 고열로 돌아가는 터보차저가 사망하고, 이 상황에서도 계속 주행을 하겠다고 차를 운행하다간 밸브 기구나 타이밍 체인, 심지어 헤드나 피스톤까지도 고장나게 된다. 터보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여기서 조금 더 운행하다가는 차값 수준의 정비 비용을 얻을수도 있고, 운행 자체가 불가능해져 대형 사고로 이어질수도 있다. '''물론 엔진오일 경고등이 들어온다면 즉시 운행을 중단하라'''는 것은 차량 설명서에도 있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런 중요한 오일펌프의 구동을 고작 나무젓가락 만한 육각 샤프트에 맡겨둔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과거 엑셀이나 쏘나타2도 오일 펌프의 구동은 크랭크축을 이용한 내접 기어식이었고, 쌍용의 OM602는 싱글 체인을 이용하여 오일 펌프를 구동했다. 이런 방식의 오일 펌프는 정상적인 환경에선 거의 평생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구조인데... 육각 샤프트로 구동하면 주기적으로 예방정비를 해야 하고, 경고등이 들어온 뒤에는 이미 늦었다. 이 육각 샤프트는 폭스바겐뿐만 아니라 같은 엔진을 사용하는 아우디에서도 공통의 문제점이다. 폭스바겐, 아우디를 운행한다면 꼭 한번 점검해 주자.

6.4. 인체 및 동물 실험


2018년 '''폭스바겐이 원숭이들에게 배기가스를 마시게 하는 실험'''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역시 '''나치 전범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실제로 나치는 유대인 학살에 주로 자동차 및 전차 배기가스를 사용했다.[12] 쿨름호프, 베우제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문서 참고.
'''심지어 사람에 대한 배기가스 실험을 했다고 한다.'''기사. 오죽하면 자동차 회사들이 '''친 나치 성향을 드러낼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걱정할 정도다.

7. 차량 목록



단종된 차량은 ''기울임체'' 표시.

7.1. 스포츠카/세단/해치백/패스트백/왜건


  • 카르만 기아(KARMANN GHIA)
  • SP2
  • XL1 : 2013년부터 250대 한정판으로 판매되는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연비가 무려 리터당 111Km에 달한다는 건 사기극 수준이다. 쉐보레 볼트가 처음 연비 광고를 했을 때처럼 완충 배터리로 달리다가 배터리가 떨어지면 그때 기름 1L로 발전해서 달리는 것.(...) 쉽게 생각하면 이미 내리막길을 달리던 자전거를 페달 약간 밟아줬다고 시속 100km/h 찍었다고 자랑하는 격이다. BMW i8의 높은 연비가 한국에 오니 10km대로 뚝 떨어진 것도 같은 이유.
  • 업!(UP)
  • 폭스바겐 골(GOL) : 브라질 판매용 소형차
    • 사베이로(SAVEIRO) : 골 픽업
    • 보야지(VOYAGE) : 골 세단
    • 파라티(PARATI) : 골 왜건
  • 폴로(POLO)
    • 크로스폴로(CROSSPOLO)
    • 벤토(VENTO)
    • 아메오(AMEO) - 인도 전략 소형차.
    • 버츄스(VIRTUS) - 남미 전략 소형차, 폭스바겐 벤토의 후속
  • 비틀(BEETLE)
  • 골프(GOLF)
    • 골프 바리안트(GOLF VARIANT)
    • 골프 플러스(GOLF PLUS)→골프 스포츠밴(GOLF SPORTSVAN)
    • 크로스골프(CROSSGOLF)
    • 골프 카브리올레(GOLF CABRIOLET)
  • 시로코(SCIROCCO)
  • 제타(JETTA)
  • 파사트(PASSAT)
    • 파사트 바리안트(PASSAT VARIANT)
    • 파사트 올트랙(PASSAT ALLTRACK)
    • 마고탄(MAGOTAN) - 유럽형 파사트의 중국 사양
  • 아테온(ARTEON)
  • 피데온(PHIDEON) : 페이톤의 후속으로, 현재 중국에서만 팔린다.
  • 이오스(EOS)
  • 411/412
  • CC : 1세대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파사트 CC에서 폭스바겐 CC로 변경되었다.
  • 페이톤(PHAETON)
  • 산타나(1세대) : 파사트 2세대 차량을 기반으로 만든 중형차로 중국에서는 1985년부터 3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치고 단종되었다.
  • 블루스포트(BLUESPORT)
  • 보라(Bora)/C-트랙(C-Trek) : 중국 시장 전략 세단/왜건.

7.2. SUV / CUV


  • 티록(T-ROC)
  • 티구안(TIGUAN)
  • 투아렉(TOUAREG)
  • 아틀라스/테라몬트(ATLAS/TERRAMONT)[13]
  • 테라몬트 X/아틀라스 크로스 스포트(TERRAMONT X/ATLAS CROSS SPORT)[14]
  • 테이론(TAYRON) - 중국 시장 전용 SUV[15]
  • 테이론 X(TAYRON X) - 폭스바겐 테이론의 쿠페형 SUV 사양.
  • 타루(TAHRU)/타오스(TAOS) - 중국 시장 전용 SUV[16]/후자는 북미 및 국제 시장 판매 사양.
  • T-크로스(T-CROSS)
  • 니부스

7.3. MPV



7.4. LCV



7.5. 트럭



7.6. ID 시리즈


  • ID.1 - 소형차
  • ID.2 - 소형 CUV
  • ID.3 - 준중형 해치백
  • ID.4 - 준중형 CUV
  • ID.5 - 중형 전기 세단 및 왜건
  • ID.6 - 중국 전략형 전기 SUV
  • ID.7 - 전기 밴
  • ID.8 - 미정
  • ID.9 - 미정

8. 기타


  • 전성기 때는 Das Auto.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독일어로 자동차라는 뜻으로, 영어로 옮기면 'The Car'가 된다. 그만큼 자신감을 드러내는 슬로건이었으나, 2015년 디젤게이트 사건 이후 이것도 자동차냐며 망신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결국 2015년 12월, 폭스바겐 측에서 슬로건을 폐기하기로 결정하였다.국내 시장 진출 초기에는 'Aus Liebe Zum Automobil'이라는 슬로건을 쓰기도 했다.
  • 2018년 4월, 몇십년동안 이어오던 'V, W' 엠블럼을 제거하고 새로운 엠블럼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형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폭스바겐 최고 마케팅 책임자가 "전기차에 관련된 형태로 만들어질 것이다' 라면서 최근 폭스바겐이 노력하고 있는 친환경차량 개발에 대한 포부 역시 밝혀냈다. 관련 기사 그리고 2019년 9월, 신규 엠블럼이 공개되었다. 이전 발표와는 달리 VW 모양은 그대로 유지하고, 선 두께를 줄이고 디테일을 단순화하는 변화만 가해졌다.
  • 독일 폭스바겐 공장에서는 소시지도 만든다. 독일 본사 기준 '199 398 500 A'라는 부품 번호까지 있다[17]. 이 소시지는 독일 볼프스부르크 폭스바겐 본사에서 쿤덴 센터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이 폭스바겐 소시지는 처음에는 자사 직원들의 점심을 위해 소시지를 사오던 것이 그 시초로, 금액 부담으로 인해 결국 소시지 회사를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른 것.# # 1973년 부터 만들어 왔으며, 폭스바겐 소시지로 브랜드화했다. 볼프스부르크 공장 한켠에 30명 정도가 근무하는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커리부어스트용 케찹도 생산하고 있다. 시중에도 물량이 풀리는 듯.

[1] 아우토슈타트의 뜻은 자동차 도시(Auto - 자동차 + Stadt - 도시)[2] 사실 W는 V가 2개 이므로 '더블브이'가 맞다. 실제로 노르웨이에서는 W를 더블베라고 발음한다. W가 더블유로 발음되는 이유는 옛날에 U와 V를 구분없이 썼다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UU'와 같은 단어도 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대로 와서 W로 통합돼서 더블유라고 부르게 되었고, U와 V는 본래 발음대로 회귀했다는 설이 있다.[3] 어원상 영어의 folk에 해당. 제대로 의역하자면 nation 혹은 people에 해당한다. 그리고 volk/people의 번역어로 꼭 인민으로만 해야되는 것은 아닌 만큼 맥락에 따라서 국민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독일어 사전에서 검색해보면 민족, 국민, 군중 등 다양한 단어에 대응한다.[4] Volk와 Wagen 사이의 -s-는 독일어에서 합성어가 만들어질 때 자주 삽입되는 연결 요소(linking element, interfix)이다. 독일어에서 합성어가 만들어질 때 삽입되는 연결 요소는 -s- 외에도 -(e)n-, -er-, -e-, -es-, -(e)ns- 등이 있다.[5] 어원상 영어의 wagon에 해당.[6] 나치당은 공산주의를 적대시했기에 노동조합을 불법화하여 전부 해산시키고, 대신 노동자 권익단체로서 독일노동전선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여기에 가입시켰다.[7] 이후 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에는 그 수가 무려 1030만 명으로 늘어난다.[8] 당시 평균적인 노동자 월급은 대략 150~200라이히스마르크 정도였으니, 약 반년치 소득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2018년 기준 한국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이 300만원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대략 1,500만원 정도인 모닝이나 레이 정도의 경차에 해당한다.[9] 독일은 연비 표기가 한국과는 다른 방식이다. 한국은 연료 1L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표시하는 반면, 독일은 일정 거리(보통 100㎞)를 주행하는데 필요한 연료로 표시한다. 따라서 한국식 연비는 높을수록 효율이 좋은 것이고, 독일식 연비는 반대로 낮을수록 좋은 것이다.[10] 워낙 공장이 대규모였기 때문에, 이어 7월에는 아예 공장과 생산 노동자들이 살 거주구역을 포함한 독립적인 행정구역으로 볼프스부르크도 만들어진다.[11] 대표적으로 포르쉐, 아우디, 벤틀리 등.[12] 이것이 석유를 너무 낭비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아우슈비츠마이다네크 강제수용소에서는 선박 일괄 소독 등의 산업용 살충제였던 치클론 B를 주입하는 학살 방법이 정착된다.[13] 아틀라스는 크기는 미국인들 취향에 맞게 크지만, 투아렉보다 싸고 품질도 떨어지는 차다. 어차피 미국에서는 투아렉이 안팔리고 미국 외 지역에서는 아틀라스가 안팔리니 문제는 없다.[14] 폭스바겐 테라몬트의 쿠페형 버전.[15] 디이 자동차와 합자한 FAW-폭스바겐에서 생산.[16] 상해기차와 합자한 상하이 폭스바겐에서 생산.[17] 폭스바겐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는 부품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