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戰犯企業
1. 개요
침략 전쟁[1] 시기에 군수물자를 제조하여 납품함으로서 전쟁 행위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가담한 기업을 지칭한다.
혹은 전쟁 당시에 자국이나 점령지 및 식민지의 국민들을 강제 징용하여 이익을 올리는 등, 유엔의 국제노동기구 ILO 29호, ILO 105호 등의 국제 협약에 저촉되는 범죄 행위를 하거나 그 외에도 전쟁 때에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범법행위에 가담한 기업을 일컫기도 한다.
2. 정의의 애매함
전쟁통에 총동원령이 떨어지고 하는 마당에 정부가 강압적으로 군수물자 공급을 요구하는데 일개 기업이 거부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전시에는 일반 소비재 생산하던 공장이 전쟁 물자 공장으로 전환되는 것도 흔하므로 전쟁 물자 공급에 가담한 회사를 모두 전범기업이라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3] 실제로 자발적으로 식민지인을 강제징용하거나 포로를 노예로 착취하여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던가 하는게 아닌 한 국가와 군대가 일으킨 전쟁범죄의 책임을 일개 민간인들에 불과한 기업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을 수 있는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4]
당시의 전시 계엄령 상황에서는 국가가 기업들에게 강제적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기업들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굳이 일본이나 독일같은 추축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과 같은 연합국 국가들도 똑같이 민간 기업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했다. 심지어는 원래 사업분야가 해당 분야와는 전혀 관계없는 애먼 기업에게 생산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세계대전 당시 국가의 강제 생산 명령을 거부한 극히 소수의 기업도 존재하긴 했지만, 해당 기업들은 대부분 좋은 결말을 보지 못했다. 국가에 찍히는 순간 일개 기업 따위는 금방 풍비박산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대전 당시의 국가들은 전시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이라 국가의 권력이 비 전시 상태보다 훨씬 강력하고 각종 물자, 시설을 징발하고 인력을 차출하는 등 초법적 권한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상태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세계대전 당시 전범국의 국가 동원령을 소신껏 거부한 극소수의 회사를 대단하다고 칭찬해줄 수는 있겠지만, 전범국의 총동원령에 동의했다고 전범기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에는 애매한 부분이라는 것.
아무튼 이런 이유로 중장비나 차량, 수송업 쪽에 잔뼈굵은 기업들 중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의 추축국 출신 기업들은 대부분 전범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이 기업들도 당시 시대 상을 생각하면 이해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범기업으로 몰아가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물론 적극적으로 강제징용을 동원한 회사도 없는 것은 아니나, 총력전 상황에서는 일정수준의 자유를 개개인 모두가 희생하는것이 당연시되었던 시대인만큼, 지금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판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어떤 기업이 전범기업이냐를 따지기 전에 어떤 기업이 현재 비도덕한 행동을 자행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즉, 세계대전 당시 국가에게 강제로 징집당했던 일반 병사를 전부 전범으로 몰아붙이지 않듯이, 전범기업의 분류에 있어서는 국가총동원에 의해 강제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등의 부역행위를 하게 된 기업을 죄다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수용소 노역자나 전쟁포로, 식민지인등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이윤을 위해 적극적으로 전쟁 범죄에 가담한 질이 나쁜 기업만을 선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전후에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은 부역 행위였던 간에 반성과 사죄를 했는지에 대한 여부 역시 중요한 판별 기준이라 볼 수 있다.
서양의 기업들은 조선이 국제 외교의 무대에 오르기 100년 전부터 식민지민들의 고혈을 빨아제끼고 있었고, 조선이 일본에 먹힐 때쯤 되면 유럽은 이미 기관총을 앞세워 아프리카 전체가 유럽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특히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이 네 나라는 아직도 이런 잔혹한 식민통치로 축적한 부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영국 기업이나 프랑스 기업을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이처럼, 대부분의 전범기업도 '''전쟁에서 져서 전범기업'''인거지 절대로 영국, 미국보다 악랄해서 전범기업이 된게 아니다. 예를 들어, 겨울전쟁 당시 소련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긴 핀란드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때 추축국에 가입했지만 결국 핀란드는 소련에게 패배하고 전범국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전범기업으로 몰락되어 버린 핀란드 기업을 악(惡)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일본 제국에 부역
2012년 2월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이 전범기업 58개소 리스트를 발표했고, 8월에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에 관여했던 일본 기업 1,493개사를 조사한 결과 지금까지 존재하는 기업 299개사 명단을 확정했다. (참고)
여담으로 299개사 목록 이외에도 이런 저런 목록들이 인터넷에 다수 떠돌고 있으나 이것들은 정부 발표가 아니라 신뢰도는 상당히 떨어진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침략 전쟁/수탈의 가해자이며, 당시 일본 제국에는 총동원령이 법제화되어 있어 일본기업은 직/간접적으로 전쟁 수행에 도움을 주어야만 했으므로 당연하게도 역사가 어느 정도 있는 일본기업은 대부분 전쟁과 관여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전범기업 여부를 가려내는 레퍼런스는 어디까지나 정부 발표이다.[8]
또한, 총동원령이 떨어진 상태에서 일본 기업에게 거부권 따위는 없었고 거부하면 당장 비국민 취급받기 일쑤였으니[9] 일본 군부는 자국 국민들에게도 좋은 군부는 절대 아니었으므로 그들도 어찌보면 피해자로 볼 수도 있다.[10]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장 일제와는 비교하면 실례일 정도로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현대의 국가들을 살펴보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이들도 역시 전시와 같은 국가비상사태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자세한 것은, 계엄령 문서를 참고하자.
일단 한국 정부는 국가총동원에 의해 강제로 일제를 도운 기업이 아닌, 이윤을 위해 적극적으로 전쟁 범죄에 가담한 질이 나쁜 기업만을 선별하여 전범기업 리스트에 올린다고는 한다. 하지만 리스트를 보면 당시 존재하던 대기업은 그냥 거의 다 올라가 있고, 선별에 대한 기준 또한 공개되어 있지 않으므로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11]
대한민국 국무총리실의 인터뷰에 의하면 해당 시기에 있었던 기업을 선별해서 배상문제나 과거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리스트를 마련한 것이고 절대로 낙인을 찍는 목적이 아니라고 보도한 바 있다. 즉, 결론은 강제로 일제에 협력했다고 하더라도 일제가 패망한 1945년 9월 이후 반성과 사죄를 한 기업은 전범기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다만 리스트에 오른 뒤 사죄를 한다고 해서 리스트에서 지워주는지는 의문이고, 그 기준에도 항상 논란이 있어왔지만... 따라서 이 목록은 참고만 하고 최근에 망언을 했다던가 하지 않은 이상 심각한 의미는 두지 않는게 적당하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기업을 욕하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강제징용하고 전쟁포로를 노예로 부리며 나치에 온갖 군수물자를 제공한 독일의 기업들에는 전범기업이라는 말 자체도 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입장에서 일본기업이 더 미운건 당연하겠지만 외국인이 볼때 이중잣대라는 시선은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실제로 일본 국적의 전범기업에 대한 입찰 제한[12] 은 있지만, 독일 및 이탈리아 국적의 전범기업에 대한 입찰 제한은 없다.
3.1. 국무총리실 발표 기업
아래는 그 299개의 기업 중 현존하는 기업의 목록이다.
- 고쟈크교통(주) 江若交通
- (주)교산제작소 京三製作所
- (주)구리모토철공소 栗本鐵工所
- (주)나무라조선소 名村造船所
- (주)단노구미
- (주)미라주건설 ミラージュ
- (주)미야지셀비지 宮地サルベージ
- (주)사가미구미 相模組
- (주)오바야시구미 大林組 - 오사카성 천수각 복원 및 도쿄 스카이트리 등을 지은 건설사.
- (주)오카베철공소 岡部鉄工所
- (주)요도시 吉年 (ヨドシ)
- (주)후지코시 不二越
- JFE계열사
- JFE미네랄(주)
- JFE스틸(주)
- JFE엔지니어링(주)
- NS유나이티드해운(주) NSユナイテッド海運
- 가네마쓰닛산농림(주) 兼松サステック (兼松日産農林)
- 가스가광산(주) 春日鉱山
- 가와사키기선(주) 川崎汽船 “K” Line
- 가와사키 계열사
- 가와사키운송(주)
- 가와사키 중공업(주)
- 가지마건설(주) 鹿島建設
- 가타야마빈라공업(주) 片山鋲螺工業
- 가타쿠라공업(주) 片倉工業
- 간사이 기선(주) 関西汽船
- 간토전화공업(주) 関東電化工業
- 고기(주)
- 고도제철(주)
- 코마츠 제작소 계열사 - 건설장비 세계 제2위
- 고마쓰 산기
- 고마쓰NTC
- KELK(주)
- 고쿠산전기(주)
- 교와핫코기린(주)
- 구라바야시상선(주)
- 구라시에 홀딩스(주)
- 구로사키 하리마(주)
- 구사카베건설(주)
- 군제(주) グンゼ - 의류전문기업. 특히 속옷!
- 나나오해륙운송(주)
- 나오쓰해륙운송(주)
- 나이가이(주)
- 나프테스코(주) - 현대무벡스(舊.현대엘리베이터 SoC 사업부)의 스크린도어는 이 업체의 기술 지원을 받고 있다.
- 노무라흥산(주)
- 니가타조선(주)
- 니시마스건설(주)
- 니혼가단(주)
- 니혼건철(주)
- 니혼경금속(주)
- 니혼고주파강업(주)
- 니혼무선(주)
- 니혼수산(주)
- 니혼야마무라유리(주)
- 니혼우편선(주)
- 니혼유리(주)
- 니혼제지(주)
- 니혼조달(주)
- 니혼주조(주)
- 니혼중화학공업(주)
- 니혼차량제조(주)
- 니혼철판(주)
- 니혼카바이트공업(주)
- 니혼카본(주)
- 니혼통운(주)
- 니혼화학(주)
- 니혼흄(주)
- 닛산화학공업(주) - 닛산자동차와 자본관계 무관. 다만 닛산을 소유한 르노 역시 나치 독일에 부역한 전적이 있는 전범기업이다.
- 닛신제강(주)
- 닛테쓰광업(주) -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그룹 계열사
- 다마이상선(주)
- 다부치전기(주)
- 다쓰타방적(주)
- 다오카화학공업(주)
- 다이도특수강(주)
- 다이도화학공업(주)
- 다이세이건설(주)
- 다이와홀딩스(주) - 가정용 기자재 주력
- 다이요니혼기선(주)
- 다이이치주오기선(주)
- 다이킨공업(주) - 에어컨이 주력
- 다이헤이요 시멘트(주)
- 다이헤이요흥발(주)(주)
- 다치히기업(주)
- 데이카(주)
- 데이코쿠섬유(주)
- 데이코쿠요업(주)
- 뎃켄건설(주)
- 도나미홀딩스(주)
- 도다건설(주)
- 도비시마건설(주)
- 도아건설공업(주)
- 도와홀딩스(주)
- 도요강판(주)
- 도요방적(주)
- 도이마린관공(주)
- 도치기기선(주)
- 도카이고무공업(주)
- 도카이기선(주)
- 도카이카본(주)
- 도쿄가스(주) 東京ガス Tokyo Gas
- 도쿄아사이토방적(주)
- 도쿄제강(주)
- 도쿄제철(주)
- 도큐차량제조(주) 東急車輛製造 - 현 JR 히가시니혼 종합차량제작소.
- 도피공업(주)
- 도호그룹 계열사
- 도호가스(주)
- 도호아연(주)
- 라사공업(주)
- 리코엘레멕스(주)
- 린카이닛산건설(주)
- 린화학공업(주)
- 마부치건설(주)
- 마쓰다주식회사[15]
- 메이지해운(주) 明治海運
- 모리나가제과(주) -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군 전투식량을 생산했다.[16]
- 모지항운(주) 門司港運
- 묘죠시멘트(주)
- 무카이시마독(주)
- 미네페아(주)오모리공장
- 미쓰비시 그룹 계열사 - 제트스트림, 쿠루토가 같은 펜을 만드는 미쓰비시 연필과는 무관한 그룹이다.
- 미쓰비시금속(주)
- 미쓰비시상사(주)
- 미쓰비시신동(주)
- 미쓰비시전기(주)
- 미쓰비시제강(주)
- 미쓰비시 중공업(주)
- 미쓰비시창고(주)
- 미쓰비시화학(주)
- 니콘(주) -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군 군부들 에게 쌍안경, 저격용스코프 잠망경 야마토급 전함의 조준경 등의 군수 물품을 납품하였다. 그리고 재일교포 출신의 사진작가가 니콘 주최의 사진전에 참가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진을 출품하려 하자 니콘이 일방적으로 해당 사진작가를 강제로 참가 취소시킨 뒤 사진전을 개최했다. 이후 우익단체의 협박을 받기도 했다는 듯. 해당 사진작가는 도쿄 지방 법원에 니콘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해당 법원에서는 '니콘의 대응에 정당한 이유는 없었고,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며 사진작가에게 110만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 기린맥주 - 기린맥주가 설립되기 이전, ‘Japan Brewery Company’의 주주 중 한명이 미쓰비시의 이와사키 대표였으며, 기린맥주 설립 이후에도 메이지 야스다 생명보험이라는 계열사를 통해 미쓰비시그룹이 주주로 남아있다.
- 미쓰이 그룹 계열 - 금융 등 일부 계열사는 스미토모 그룹 계열사와 합병.[17]
- 미쓰이금속공업(주)
- 미쓰이농림(주)
- 미쓰이마쓰시마산업(주)
- 미쓰이스미토모건설(주)
- 미쓰이조선(주)
- 미쓰이화학(주)
- (주)도쿄시바우라
- 도시바기계(주)
- 이비덴(주)
- 상선미쓰이오션익스퍼트(주)
- 상선미쓰이조선관리(주)
- 빈고통운(주)
- 사노야건설(주)
- 사와라이즈
- 사토공업
- 산덴교통(주)
- 산요특수제강(주)
- 산코기선(주)
- 산큐(주)
- 산키공업(주)
- 쇼와KDE(주)
- 쇼와비행기공업(주)
- 쇼와산업(주)
- 쇼와전공(주)[18]
- 쇼와철공(주)
- 스가와라검설(주)
- 스미세키 홀딩스(주)
- 스미토모 그룹 계열사 - 금융 등 일부 계열사는 미쓰이 그룹 계열사와 합병.
- 스미토모강관(주)
- 스미토모고무공업(주)
- 스미토모금속공업(주) - 신일본제철과 합병. 현재는 신일철주금.
- 스미토모금속광산(주)
- 스미토모오사카시멘트(주)
- 스미토모전기공업(주)
- 스미토모화학(주)
- 스미토모금속(주) - 신일본제철과 합병. 현재는 신일철주금.
- 스즈요(주)
- 시나가와 리플랙토리즈(주)
- 시미즈건설(주)
- 시미즈해운(주)
- 신일본제철(주) - 스미토모금속공업과 합병. 현재는 신일철주금.
- 신니혼카이중공업(주)
- 신메이공업(주)
- 신에쓰화학공업(주)
- 쓰루가해륙운송(주)
- 쓰루미(주)
- 아라이건설(주)
- 아사히유리(주)
- 아사히카세(주)
- 아소시멘트(주)
- 아이사와공업(주)
- 아이치기계공업(주)
- 아이치시계전기(주)
- 아이치제강(주) - 도요타 그룹 계열사
- 아즈마해운(주)
- 아지노모토(주)
- 아키타해륙운송(주)
- 야마분유화(주)
- 야마하 - 태평양 전쟁 당시 군용 가구와 전투기용 목제 프로펠러나 비행기를 납품하는 군수기업담당이었다. [19]
- 야바시공업(주)
- 얀마(주)
- 오사카가스(주)
- 오사카기선(주)
- 오사카제강(주)
- 오지제지(주)
- 와코도(주)
- 요시자와석회공업(주)
- 요코하마고무(주) 横浜ゴム - 2015-16 시즌부터 2019-20 시즌까지 최초로 계약을 맺고 첼시 FC의 메인 스폰서로 있는 그 곳 맞다.
- 우베금속(주)
- 우베미쓰비시시멘트(주)
- 우베흥산(주)
- 이노항운(주)
- 이노해운(주)
- 이스즈자동차
- 이시다(주)
- 이시하라산업(주)
- 이와타지자키건설(주)
- 일본건류공업(주)
- 전기화학공업(주)
- 제이와이텍스(주)
- 제팬빅터컴퍼니(주)
- 조반흥산(주)
- (주)가나자키구미
- (주)가미쓰제작소
- 주가이광업(주)
- (주)고노이케구미
- (주)고베제강소
- (주)고이케구미
- 주고쿠도료(주)
- 주고쿠전력(주)
- (주)구라레
- (주)구마가이구미
- (주)나카야마제작소
- (주)노가미
- (주)니치로
- (주)니치린
- (주)니혼제강소
- (주)닛치스
- (주)다이세루
- (주)다이조
- (주)다이헤이제작소
- (주)다케나카공무점
- (주)도쿠야마
- (주)리갈코포레이션
- (주)링코코포레이션
- (주)마루하니치로수산
- (주)마쓰무라구미
- (주)미쿠니
- (주)사쿠션가스
- (주)세이사
- (주)세이탄
- (주)신가사독
- (주)아시텍이리에
- (주)야노철공소
- 주에쓰전기공업(주)
- (주)오에무방기제작소
- (주)오에무제작소
- 주오전기공업(주)
- (주)요도가와제강소
- (주)요타이
- (주)이케가이
- (주)쟈판에너지
- (주)제니타카구미
- (주)후지타
- (주)히타치제작소 계열사 - TEC와 대구도시철도공사 3000호대 전동차를 만든 그곳 맞다. 이들은 각각 SLS 중공업과 우진산전에서의 라이선스 생산으로 생산되었는데 이는 라이선스 생산을 통해서 A-train과 모노레일 기술을 우회적으로 코레일과 대구도시철도공사로 이전해오기 위한 결정에 가깝다. 실제로 이후 도입된 코레일 210000호대 전동차에는 TEC에서 이전받은 기술, 특히 대차 핵심기술이 많이 적용되어 있다.
- 히타치조선(주)
- 히타치조선(주)
- 히타치항공기(주)
- 카미오카광업(주)
- 카본(주)
- 파나소닉(주) - 단, 군부에 의한 강제적인 참여였다.[20]
- 풀추
- 하기모리흥산(주)
- 하자마구미(주)
- 하카타항운(주)
- 하코다테 독(주)
- 한신내연기공업(주)
- 호도가야화학공업(주)
- 호쿠에쓰메탈(주)
- 홋카이도탄광기선(주)
- 후루가와기계금속(주)
- 후루가와전기공업(주)
- 후시키해륙운송(주)
- 후지보홀딩(주)
- 후지전기(주)
- 후지중공업(주) - 여기는 전범기업이었던 업체들이 2차세계대전 이후 몰락으로 해체된 뒤에 중요한 기술만 모아서 재결성된 업체인지라 정확히는 전범기업이 아니다. 옛날에는 제너럴 모터스가, 지금은 도요타자동차가 여기 최대주주.
- 히노데우편선(주)
- 히라니시키건설(주)
- 히로시마가스(주) 広島ガス
- 히메지합동화물자동차(주)
3.2. 그 외
- 새역모 관련 기업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항목 참조.
- 동양척식주식회사
- 남만주철도주식회사
- 조선식산은행
- 아오시마 과학교재사 - 프라모델 제작사. 2차대전 때 창립 초기 목제 비행기 전문 제조사였던 시기에 육군항공대와 제휴해서 군국주의 고취 및 미래의 조종사 인력 확보를 위한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소학교 및 중학교 납품용 솔리드 모델 및 핸드런치 글라이더를 납품해서 큰 돈을 벌었던 전력이 있다. 때문에 종전 직후 GHQ로부터 군국주의 고취에 협력한 혐의로 폐업명령을 받은 적이 있으며, 현재에도 아키즈키급 호위함 모형에 독도 침략을 묘사한 박스아트나 휴우가급 헬기항모 모형에 중국의 랴오닝급 항공모함이 침몰하는 컨셉의 박스아트가 있는 등 노골적인 극우 마케팅으로 논란이 되었다.
- SEIKO(세이코) -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군용시계를 납품했다.
- ORIENT - 오리엔트시계 브랜드의 실질적 전신인 동양시계제작소도 군용시계를 납품했었다. 패전 이후 1946년에 노사분규를 견디지 못하고 동양시계가 한번 망한 뒤 '다마계기'란 이름으로 재창업한게 1997년까지 존속했던 오리엔트시계이다. 지금은 세이코가 인수하여 자회사로서 대중적인 중저가라인을 담당하고 있다.
4. 나치 독일에 부역
4.1. 독일
※ 합병/파산/인수 등으로 현재 존재하지 않는 회사들은 ★을 붙인다.
- AEG
- Stowa - 세계대전 당시 군용 시계 납품.
- Laco - 세계대전 당시 군용 시계 납품.
- A. Lange & Sohne - 세계대전 당시 군용 시계 납품.
- BMW/BMW Motorrad - 군용 이륜차 및 항공기용 엔진 생산.[21] Fw 190의 공랭식 엔진도 BMW사의 제품. BMW 지분을 가진 크반트 가문의 귄터 크반트(Günther Quandt)는 1933년 나치당에 가입해 강제수용소의 노동자들을 동원해 공장을 굴렸다. 그의 둘째 부인 마그다 리첼은 국가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와 재혼해 마그다 괴벨스가 되었고, 귄터와 마그다 소생인 하랄트 크반트(Harald Quandt)는 의붓아버지 괴벨스와 어머니 마그다의 자결 이후에도 살아남아 이복형과 함께 크반트 가문을 이끌게 된다.
- ZF - 많은 독일 전차들의 변속기의 개발과 생산을 맡았다. 3호 전차, 4호 전차, 5호 전차에 이 회사의 변속기가 들어간다. 또한, 볼베어링도 생산하였는데, (전차 포탑에 들어가는 포탑링으로 보인다.) 공장이 1944년 대전 말기에 폭격당하여 가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당했다.
- IG 파르벤 - 그 유명한 치클론 B 생산사.[23] 여러 기업의 콘체른으로 전후 분할되었다. 다음은 IG 파르벤의 후신 회사들로 콘체른을 창설한 기업이기도 하다.
- MAN - 2호 전차, 판터 제작사. 뿐만 아니라 유보트 등 대부분의 장비의 디젤 엔진을 제작했다.
- 르노 -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시절에 군용 트럭을 생산한 바 있다. 원래 나치는 탱크 생산을 요구했지만 그나마 르노가 그건 거절했다.
- 도르니에 ★- Do 17, Do335 등을 생산했다.
- 도이체방크 - 알베르트 슈페어와 함께 작당하여 나치의 횡포로 인해 압수당한 유대인들의 재산을 보관한 금고 지기이며, 전쟁 예산을 책정한 전력이 있다.
- 라이카 - 카메라, 거리측정기, 기타 광학기기를 제작해 납품했다.
- 라인메탈 - 88mm 대공포를 비롯한 다양한 구경의 포를 생산했다.
- 루프트한자 ★- 독일군이 항공기 파일럿을 양성하는 용도로 이 회사를 사용했다. 비록 지금의 루프트한자는 서독 정부가 1953년 새로 설립한 루프탁(Luftag)이 파산한 전대 루프트한자의 상표권만 매수한 것이라 직접적 연관은 없으나, 굳이 새로운 항공사 이름을 만들지 않고 파산한 전범기업의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 때문에 약간 논란이 있었다. 참고로 에르하르트 밀히가 세운 회사이다.
- 린더 - 졸링겐의 기업중 하나로 히틀러 유겐트의 단검을 생산, 납품하였다.
- 마우저 - Kar98k, Gew98 등 제식무기
- 메르세데스-벤츠/마이바흐 - 대부분의 전차용/항공기용 가솔린 엔진 제작. Bf109의 엔진인 DB601[24] ~DB605[25] 를 비롯해 융커스와 함께 대부분의 군용기용 수랭식 엔진을 제작했다. VK 16.02 레오파르트 등 전차 포탑[26] , 항공기용 엔진 제조, 뿐만 아니라 동유럽인들과 유대인들을 상대로 나치 친위대 감시 하에 무임금 강제노동을 한 만행도 있다. 또한 히틀러가 벤츠를 의전차량으로 이용하고 다녔다
- 메서슈미트 ★- Bf 109, Me 262 등 군용 항공기 생산.
- 발터(총기회사) - 발터 P38, 발터 PP, 게베어 43 등 제식무기
- 보쉬
- 보커 - 독일의 전통적인 칼 생산지인 졸링겐의 기업중 하나로 슈츠슈타펠의 단검을 생산, 납품하였다.
- 아라도 ★-Ar 234등 군용 항공기 생산.
- 아우디 - 정확히 말하자면 아우디의 전신이자 합병한 호르히가 생산한 호르히 트럭을 납품했다.
- 오펠 - 오펠 블리츠라는 군용 트럭을 납품하였다.
- 융커스 - Ju 87, Ju88 비롯한 군용 항공기와 항공기용 엔진 생산. 현재는 이름만 남아있다.
- 지멘스 - 유대인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군수물자 제공.
- 자이스 - 독일군 제식 저격소총, 티거를 비롯한 전차의 조준경에 들어간 렌즈의 대부분과 군용 쌍안경을 이 회사에서 생산했다.
- 크루프 ★- 장갑차, 경차량 생산. 구스타프 열차포도 크루프가 만들었다. 현재는 티센과 합병하여 티센크루프로써 존속해있다.
- 포르쉐 - 군용 경차량 및 전차 생산. 다만 전차 개발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나치 독일의 전력 증대에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래도 쓰이긴 했다. 엘레판트 등.[27]
- 포케불프 ★- Fw 190, Fw 200등 군용 항공기 생산.
- 폭스바겐 - 애초에 히틀러의 지시를 받아 위의 포르쉐 가문에서 세운 회사. 포로들이나 점령지 주민들을 이용한 노예노동을 굴렸고 공장에 '사망실'이라는 것을 두어서 공장 노예노동자들이 임신을 하거나 하여 가진 아이들을 거기에 가둬 죽을 때 까지 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이유로 포르쉐와 폭스바겐이 합병하여 탄생한 폭스바겐 그룹 역시 통째로 전범기업 딱지를 달고있다.
- 하인켈★ - He 111, He 177등의 폭격기를 주로 생산했다.
- 하노마크 ★- Sd.Kfz. 251 시리즈 장갑차를 제작하였다. 지금은 일본의 전범기업인 코마츠 제작소에게 인수합병 당했다.
- 헨셸 ★- 전차 생산. 그 유명한 티거 전차를 만든 회사다. 지금은 망해서 사라졌다.
- 휴고 보스 - SS와 히틀러 유겐트의 정복을 만들어 납품하고, 소련 및 동유럽 등 전쟁 포로들을 강제 노역시킨 전과가 있었다.
4.2. 미국
1929년 수요의 실종으로 대공황이 발생했을 당시에, 독일은 히틀러로 대변되는 파시즘으로, 소련은 공산주의로, 미국은 '뉴딜정책'으로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문제는 당시 미국의 파워엘리트나 유럽 선진국의 기업가치로 대변되는 소위 기업가들은 '적색공포'에 두려워 했던것이다.
소련은 스탈린의 '''제2의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철저히 폐쇄된 국가계획경제를 실시했는데, 방법은 러시아의 노동과 자본을 소련의 제조업으로 강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진짜 말그대로 농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공장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소련에 남아있는 거의 모든 자본을 중공업에 투자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소련은 빠른 속도로 공업경제를 구축했고, 1929년~1939년 사이에 소련의 1인당 생산은 61%나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농민들의 대규모 강제이주에 따른 부작용이 엄청났던 것이다. 강제집행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나간 것이다. 상황이 재앙겪으로 돌아가자 소련의 사회 분위기는 어수선해졌고,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스탈린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피의 난쟁이''''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예조프 였다. [28]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재앙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1930년대 그 당시 소련은 노동자와 핍박받는 민중의 유토피아가 되고야만다. '''"완전 고용, 완벽한 사회보장 제도, 노후연금. 소련은 노동자의 천국이다!"''' 당대 지식인, 예술가, 노동자치고 소련을 찬양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렇다 보니 앞서 설명한 '적색 공포'가 미국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무서운 현상 중 하나로 여겨졌다. 당장 미국정부가 추진하는 뉴딜정책으로 노동자의 입김이 엄청나게 강해진 미국 기업가들의 입장에서 소련과 같은 공산혁명이 자국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히틀러였다. 공산주의를 배척하고, 소련 땅을 점령해 레벤스라움을 건설하겠다는 엄청난 포부.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노조를 해체하고 노동자의 단결권을 없애버린 것만으로도 히틀러는 기업가들의 영웅이다.
1933년 제너럴 모터스의 회장 크누센은 독일을 방문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된 독일 경제를 보며'''"20세기의 기적"'''이라고 칭송 했는데, 이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었다. 1930년대 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은 히틀러와 독일을 사랑했고, 독일을 위해 물심양면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과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는 1941년까지 독일에 투자한 미국 기업은 대충 헤아려도 스무곳이 넘는데, 포드(자동차), 제너럴 모터스, 코카콜라, 듀퐁, IBM, ITT, 스탠더드 오일 오브 뉴저지(지금의 엑슨모빌), JP모건 등등 다들 이름만 들어도 눈이 돌아갈 만한 기업들이다.
이들 미국 기업인들은 히틀러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프랑스를 함락했을 때 미국에서 승전 파티를 열 정도로 히틀러에게 호의를 보였다. 이유는 당연히 '''"빨갱이를 처단하고 기업의 이익을 수호"'''했기 때문이다. 독일에 진출한 미국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쟁의를 일으키면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게슈타포가 출동해 모두 제압하고 공장을 정상화 시키는 기적을 목도했다. 독일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고, 히틀러는 자신들의 친구였다.[29]
이들 기업은 나치를 도와 독일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고, 나치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면서 이들 기업을 징발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말이 징발이지 기업에 밉보여야 좋을 게 없어 경영에 간섭하지도 않고 이윤을 보장하며 강제노동을 할 노동자까지 제공했다. 당연 언젠가는 돌려받을 미국기업의 자산이라는 이유 때문에 연합군의 폭격대상에서도 가급적 제외되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군수품 하나가 아쉬운 나치독일은 더욱 더 이들 미국계 기업에 의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종전 후 미국기업이라는 이유로 전후 전범기업으로 취급받지도 않았고, 독일에 징발되었다는 이유로 전후 배상금까지 두둑히 받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한 장사를 제2차 세계 대전 때 한 것.
- IBM - IBM의 독일 자회사인 데호막(Dehomag)은 카드 천공기 기술을 독일에 제공했는데, 이 기술을 바탕으로 나치 독일은 유태인을 색출하고 재산을 압수하며 처형하기 위한 자료를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 스탠다드 오일(현 엑슨모빌, 쉐브론)[30] - 개전 후에도 버젓이 독일에게 석유를 팔았다. 심지어는 영국군에게 발각되지 않는 위치여서 당시 독일군 U보트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하던 파나마 근해에서 비밀스럽게 독일군 U보트에게 급유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1942년 미국정부가 적성국 교역 금지법으로 이를 제제하려고 했는데 당시 법이 발의 되었을때 유명한 말을 남긴다. "우리가 공급하는 석유가 없다면 미국은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스탠더드 오일을 비롯한 미국 석유 기업들은 히틀러에게 디젤유, 윤할유, 고무 등의 전략적 물자를 계속 보냈고, 심지어 합성 석유 기술까지 건넸다. 당시 히틀러의 전쟁 물자를 담당했던 알베르트 슈페어는 "합성 석유가 없었다면 히틀러는 결코 폴란드 침공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 제너럴 모터스 - 1939년까지 포드와 더불어 GM은 독일의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70%였다. 이들은 2차세계대전 동안 전쟁수행에 필요한 각종 트럭과 자동차를 생산했고, 심지어는 탱크와 장갑차까지 납품했다. 세계 최초의 실용 제트 전투기인 ME-262엔진은 GM의 자회사인 오펠의 뤼셀스하임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착실하게 돈을 벌었고 그 돈을 스위스 은행을 이용하여 세탁하여 받았다.
- 코카콜라 - 독일의 음료는 맥주였다. 맥주는 독일 내에서 술이 아니라 음료 취급을 받고 있었다. 나치독일은 노동자가 그 '음료'를 먹고 취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맥주대신 콜라를 권장하면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했다(...). 1934년 24만 3000박스, 1939년까지 450만 박스로 늘어났다. 그런데 전쟁이후 독일코카콜라 입장에서는 콜라 원액을 수입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여, 대체제를 개발했는데, 그게 바로 환타다.[31] 당연하면 당연하다지만 이 과정에서는 프랑스, 체코 등에서 강제로 징용된 노동자들의 희생이 따랐으며 코카콜라 본사는 전쟁이 끝난 이후 독일 지사의 수입을 가져갔다.
- 포드 - 헨리 포드가 나치 독일에 공장을 세우기도 했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 정부에게서 파괴된 공장에 대한 보상금도 받아냈다. 또한 포드 자신이 반유대주의적인 성향이 매우 강해서 나치즘에 우호적이었다. 예를 들면 포드의 신문사에서는 국제 유대인 조직이나 시온의정서와 같은 가짜뉴스를 열심히 퍼트렸다. 아돌프 히틀러와 우호적 관계를 가진적이 있었고 나치즘을 지지하는 외교관과 외국 저명인사들에게 주어지는 훈장인 독일 독수리 훈장 중, 최고등급인 독일 독수리 대십자 훈장을 1938년 그의 생일날 받는 영광(?)도 누렸다.
4.3. 프랑스
- 르노 - 점령된 이후 나치에 차량을 납품했고 전후에 부역혐의로 찍혀서 잠시 국영기업 시절을 겪었다.
4.4. 체코슬로바키아
4.5. 벨기에
- FN - 점령 후 나치에 총기를 납품해야 했고, 또 독일군이 사용하는 총기들을 수리해야 했다[32] . 대표적으로 브라우닝 하이파워는 특유의 성능 덕분에 독일군에게 애용되었다[33] . 본의 아니게도,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총기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고, 그 결과 전 세계에서 많이 쓰이는 기관총들 중 하나인 FN MAG를 만들기도 했다. 참고로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인해 전후 서독의 H&K에서 자사 제품인 FN FAL의 라이선스 생산을 요청했을 때도 이를 막았다. H&K에서는 세트메 소총의 영향을 받은 총으로 크게 성장, 현재도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작 나중에 FN사의 히트작 FN FAL을 만들게 되는 기술자 디외도네 셰브는 영국으로 도망쳤다가 벨기에가 함락되자마자 돌아와 FN FAL의 조상뻘즈음인 FN M1949를 냈다.
4.6. 스위스
스위스는 2차 대전 당시에는 영세중립을 표방하였지만 일부 본국 국적 기업들은 독일군을 은밀히 지원한 전적이 있어서 영세중립을 표방한 본국의 태도와 다르게 논란이 되고있다. 스위스 정부에서는 영세중립을 지향하는 연방 정부가 아닌 민간 및 사립 기업들의 임의적인 일이라 부인하지만 이들의 행적이 드러난만큼 벗어날 수 없다.
- 스위스 은행 상당수 - 대전 전 맡겨진 유태인들의 재산을 은닉하고 현재까지도 돌려주지 않고 있으며, 나치와 우스타샤, 파시스트들의 돈세탁용으로도 애용받았다.
- 네슬레 - 스위스가 독일에 점령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독일군에 초콜릿을 납품했으며, 초콜릿 제조 과정에서 독일로부터 받은 유대인들을 이용하여 엄청난 노예 노동을 돌렸다고 한다. 또한 이들을 후원하는 큰손들 중 하나가 바로 스위스 나치당이었다. 결국 2000년에 와서야 당시 노동 피해자들에게 이에 대한 배상을 했다.
- IWC - 나치에게 시계를 납품했다.
4.7. 오스트리아
- 슈타이어 암즈 - 오스트로-다임러, 푸흐와 합자하여 슈타이어-다임러-푸흐를 차려 동부용 궤도 트랙터와 1500A 소형 트럭을 납품했다.
- 보이그랜더 - '코시나 보이그랜더' 라고 알려진 회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다른 독일 광학회사와 같이 쌍안경 등의 광학기기를 납품했다. 단 회사는 1970년대 자이스에게 자진인수 되어 소멸 되었으나 코시나가 브랜드의 판권을 인수하여 현재 보이그랜더의 이름을 달고 출시하고 있다. 창업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하였지만 본사가 독일에 있었고 독일에서 운영된 이력이 있어 독일기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5. 이탈리아 왕국에 부역
6. 그 외
- 드비어스
- 동인도 회사
- Dole
- 델몬트
- BP plc
- 블랙워터
- 화웨이, ZTE와 같은 대부분의 중국 기업들(LG U+ 포함[34] )
- 이라크 전쟁에 물자를 댄 모든 기업 (한국 기업 포함)
7. 관련 문서
[1] 여기서의 전쟁은 일반적으로 '''침략전쟁'''만을 의미한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명분이 있는 전쟁이나, 침략에 맞서 전쟁을 치루는 국가에 물자를 공급한 기업의 경우, 전범기업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2] 다만 이 발언은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이다. 즉 전쟁에 가담했으면 모두 공격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의미.[3] 예를 들어, 미 공군의 커티스 르메이 소장은 ‘일본 도시의 가옥들은 모두 군수공장이었다. 스즈키 가문은 군용 볼트를 만들고 곤도 가문은 군용 너트를 만들었다.’라고 이야기하였다[2] . 즉, 단순히 당시 부품을 포함한 전쟁 물자를 만들었던 기업을 전부 전범기업 취급 한다는 논리는 가내수공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은 물론 국민들까지 전부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리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4] 이를테면, 전시에 군용시계를 생산한 시계 회사를 들 수 있는데, 시계를 생산한 것 하나로만 '해당 국가가 일으킨 전쟁범죄를 거들었다!'고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후술할 문단에는 군용 시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범기업으로 분류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5] 특히나 소니는 일본 기업의 주주들이 대부분 일본계 은행과 일본인 소액주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대주주들이 거의 대부분 외국인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고 단순 지사가 아닌 사업부 규모의 자회사들이 미국과 유럽에 산개해 있어 금융사업 부서를 제외하면 일본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옅다. 다만 창업주 중 한 명은 해군 장교에, 다른 한 명은 일본군 군수품 납품을 넘어 무기개발까지 하던 기업의 사장이고 게이단렌을 통해서 자민당에 지원하고 극우재단인 일본재단에 지원하는 등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6] 심지어 히틀러의 의전차량은 벤츠였다.[7] 이 회사 자체가 히틀러의 지시로 만들어졌다.[8] 게다가 국내에서는 반일감정에 기초하여 일본기업 전반을 까내리며 '''일제를 사용하면 매국'''이라는 논리로 전범기업의 개념을 들먹여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몇몇은 일제 패망 이후 설립된 소니[5] 와 같은 기업 제품을 사용하면 매국이라는 논리를 펼치는데, 소니가 전범기업이라면 타임머신이라도 탔단 말인가? 전범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토요타도 전범 기업이라고 몰아가기도 한다. 나치에 탱크 엔진 및 포탑, 군용 항공기 엔진 등을 납품하고 유대인들을 강제노동시킨 메르세데스-벤츠[6] , 전쟁 포로들과 점령지 주민들을 노예로 굴리고 공장에는 '사망실'이라는 시설을 설치해서 공장 노예들이 임신을 하거나 하여 가진 아이들을 거기에 가둬 죽을 때 까지 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던 폭스바겐[7] 등의 적극 가담형 진짜 전범기업들은 한국에서 이런 논란조차 없는 것을 보면, 토요타가 많이 억울해 할 만한 일이다(...). 이건 회사 오너 집안 중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있다고 그 기업을 친일기업으로 낙인찍는 것과 같은 이치다.[9] 심한 경우 총살까지 서슴치 않았다. 당시 일본 군부가 얼마나 막장이였는지 알수 있는 부분이다.[10] 같은 시기 일제에 부역했던 삼양사와 경방 등도 같은 논리를 편다.[11] 되려 DHC화학 같은 신설한 극우회사는 따로 관리를 받고 있지 않다.[12] 예를 들어, 미츠비시엘리베이터는 지하철에 설치할 수 없으며 히타치, J-TREC, 나브테스코, 교산은 철도회사의 입찰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 이 경우 한국 토종 기업과 합작 또는 기술 제휴 및 면허 생산 형식으로만 참여할 수 있다.[13] 2003년 미쓰비시의 자회사화. 1946년에 상호를 도요공업으로 고쳤다.[14] 1993년 미쓰비시의 자회사화[15] 구 도요코르크공업. 이후 도요공업으로 개명. 일본 해군 공장 역할 하면서 총기를 생산했다.[16] 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의 외가쪽 기업이다.[17] 미쓰이 계열사인 미쓰이 금속광업이 카드뮴을 무단방류하여 일본 4대 공해병 중 하나인 이타이이타이병을 일으킨 가해기업이다[18] 메틸수은을 아가노강에 무단방류하여 일본 4대 공해병 중 하나인 "니이가타 미나마타병(新潟水俣病)" 혹은 "제2미나마타병(第二水俣病)"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19] 국가가 강제적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하여 기업입장에서 어쩔수 없이 참여했다. [20] 억지로 참여하게 된 사례로는 세이코의 경쟁 시계회사 시티즌 정도. 그나마 시티즌은 상당히 조용한 편이다.[21] 일본 지사 회장은 일본 신역회 회원이기도 하다.[2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킷 스폰서를 맡고 있는 회사가 맞다.[23] 아이러니 하게도 유태인 과학자가 발명하여 만든 것이다. 물론 그런 의도로 만든건 아니지만 나치 독일이 대량학살 용도로 썼다.[24] 초~중기형[25] 후기형[26] 이 벤츠가 개발하던 포탑이 슈말투룸 포탑이였다. 하지만 슈말투룸 포탑이 채택된 전차가 독일이 패망하던 시기에 제작한 티거 II밖에 없다. [27] 2차대전기 나치 독일의 병기생산체계의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생산효율성이 큰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닌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예시로 든 엘레판트는 카탈로그 스펙과 활약상을 보면 매우 훌륭한 전차였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나치 독일의 자원을 대량으로 먹어가며 티거/판터에 집중할 역량을 분산시킨 바 있다. 거기에 포르셰 박사의 하이브리드 엔진에 대한 음습한 애정 덕분에 자원은 자원대로 처먹고 끔찍한 결과물을 배설한 경우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엘레판트 정도면 포르셰 사의 전차 치고는 아주 대활약한 케이스에 속한다...[28] 그러나 이러한 대숙청에 대한 기존의 해석(스탈린의 권력 강화 및 사회 불만 세력 단속을 위해 의도적으로 일어났다.)에 대한 반박 역시 적지 않다. 대숙청 항목의 수정주의 문단 참조[29]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3 태평양전쟁I: 괴물로 변해가는 일본, 이성주,생각비행[30] 정확히는 스탠다드 오일의 독일 자회사인 Deutsch-Amerikanische Petroleum.[31] 코카콜라 미국 본사와 무관하게 독일코카콜라에서 개발한 음료. 여담으로 코카콜라 본사는 스위스 등 중립국을 거쳐서 콜라 원액을 독일로 보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32] 단 FN 에르스탈은 본인들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닌 독일이 벨기에 점령후 사실상 강제로 작업을 시킨 것 이다.[33] 단 이때 만들어진 물건들은 FN사 노동자들의 의도적 태업으로 인해 좀 대충 만들어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들이다.[34] 아직은 지켜봐야 하지만 무분별한 망 투입으로 전범기업과 다를 것이 없는 행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