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등장인물

 



1. 개요
2. 기독교 진영
2.1.2. 황가
2.1.2.1. 테오도로스 팔레올로고스
2.1.2.3. 요안니나 칸타쿠지니
2.1.2.4. 디미트리오스 칸타쿠지노스
2.1.3. 모레아 전제국
2.1.3.1.1. 주인공의 능력치에 관해서
2.1.3.2.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2.1.3.3. 가신
2.1.3.3.1. 이바니아
2.1.3.3.2. 돈 프란시스코
2.1.3.3.3. 할리드 무르타트
2.1.3.3.4. 아드리아노스
2.1.3.3.5. 데미클레오테스
2.1.3.3.6.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
2.1.3.3.7. 토마스 마기스트로스
2.1.3.3.8. 암브로시오스 라스카리스
2.1.3.3.9. 니키포로스 주교
2.1.4.1. 지온 카스트리오티
2.1.5.1. 소피야 라자레비치
2.1.5.2. 스테판 라자레비치
2.1.5.3. 주라지 브란코비치
2.1.5.4. 라자르 브란코비치
2.4.1. 마르티노 5세
2.4.2. 에우제니오 4세
2.4.3. 줄리아노 체사리니 추기경
2.5.1. 단 2세
2.5.2. 라두 2세
2.5.5. 헬레네 드라가시나
2.6.1. 알폰소 5세
3. 이슬람 진영
3.1.2. 봉신
3.1.2.1. 찬다를르 할릴 파샤
3.1.2.2. 이스하크 파샤
3.1.2.3. 투라한 베이
3.1.2.4. 아흐메트 왕자
3.1.2.5. 이브라힘 베이
3.1.2.6. 자아노스 파샤
3.1.2.7. 팔리오테스
3.1.2.8. 크리토불러스
3.1.2.9. 스포일러
3.1.3. 반역자[1]
3.1.3.1. 무스타파 첼레비(대 무스타파)
3.1.3.2. 소 무스타파
3.2.1. 아쉬라프 바르스바이
3.2.2. 사이프 앗 딘 자끄마끄
4. 목소리의 주인


1. 개요


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기독교 진영



2.1.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



2.1.1. 황제



2.1.1.1. 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

'''이름'''
'''마누일 2세'''
'''Μανουήλ Β΄'''[2]
'''성'''
'''팔레올로고스'''
'''Παλαιολόγος'''
'''직위'''
'''로마인의 황제요 군주'''[3]
'''생존기간'''
1350.06.27.~1427[4]
'''아버지'''
요안니스 5세
'''어머니'''
엘레니 칸타쿠지니
'''배우자'''
헬레나 드라가슈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19
17[5]
'''26'''
'''27'''
'''23'''
'''26'''
'''존경받는 황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알기에, 사람들은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부황. 형 안드로니코스 4세와는 달리 아버지 요안니스 5세가 자신에게 아무리 정치적으로 엿먹이는 짓을 해도[6] 참아내고, 아버지의 삽질+오래 전부터 지속된 국론분열로 인해 발생한 내전으로 멸망할 뻔한 제국을 재정비해 '''로마 제국의 생명을 반세기 연장'''시킨 장본인이다.
본작에서는 주인공을 황제의 재목으로 알아보지만, 너무 어린 나이 때문에 큰아들 요안니스 8세를 공동황제로 삼고 형제들에게 권력을 분산시킨다. 주인공은 이때 어린 나이로 모레아의 친왕이 된다. 그러나 주인공이 성장한 이후, '오스만에 맞설 재목은 콘스탄티노스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후계 분쟁의 막을 스스로 올리고 결국 요안니스 8세에 의해 수도원에 유폐, 권좌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그 후 주인공이 요안니나의 동생을 시켜 편지를 전달시켰는데, 편지 내용에 대해 아버지라면 이해할 것이라 했다. 그 이후 주인공이 콘스탄티노플 지원을 떠났으니 무라트 2세의 행보에 큰 영향을 줄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로 보이며, 실제로 그 열쇠인 소 무스타파가 무라트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주인공에겐 소생의 기회를 준다. 이러한 그의 혜안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친 요안니스 8세가 찾아와 제위를 돌려드리겠으니 주인공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간청하자 이를 사양하며, 주인공은 칼날이요, 그러나 적을 베는 것에 집중한 탓에 누구한테나 예기를 드러내는 법이니 주인공의 예기가 녹슬지 않도록 '검집'이 되어달라고 충고한다.
그렇게 황제 자리를 내려놓고 말년을 은퇴 상태로 보내던 도중, 197화에서 수도원으로 찾아온 요안니스에게 형제들을 잘 이끌라는 아버지이자 황제로써의 마지막 명을 내린다. 그리고 제국의 부활이라는 바람을 간직한 채로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요안니스...'''라는 말을 끝으로 자식의 품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생전 로마 제국의 부활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마누일 사후 회생제가 그 유지를 받들었고 훌륭히 이루었다.

2.1.1.2.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

'''이름'''
'''요안니스 8세'''
'''Ίωάννης Η΄'''[7][8]
'''성'''
'''팔레올로고스'''
'''Παλαιολόγος'''
'''직위'''
'''로마의 태상황'''이자
'''셀림브리아의 친왕'''
'''생존기간'''
1392.12.18.~?[9]
'''아버지'''
마누일 2세
'''어머니'''
헬레나 드라가슈
'''배우자'''
요안니나 칸타쿠지니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17
'''20'''
13
14
16
17↑
'''검집'''
당신의 눈을 가리던 안개가 모두 걷혔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명백해진 지금, '''당신은 더 이상 주저치 않고서 스스로를 위험 속으로 내던질 겁니다.'''
황제 마누일 2세의 큰 아들. 공동황제이며 매력적이고 친화력이 높은 인물로 타고난 외교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생 콘스탄티노스에 대한 견제와, 아버지 마누일 2세의 마음이 콘스탄티노스를 향하고 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며 콘스탄티노스에 대한 경쟁과 질투를 불태우고 있다. 그래도 너무 어린 동생에게 제국의 부흥이라는 부담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마음도 가진, 마냥 나쁘진 않은 인물. 아니 원래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동생을 대했다가 이로 인한 과도한 책임감과 그걸 알아주지 않는 아버지에 의해서 흑화한 케이스에 가깝다. 어찌 보면 사람은 원래 괜찮았는데 동로마의 고질적인 내전 문제와 엮어서 이 작품 내에선 인식이 나빠진 케이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의무감과 열등감, 그리고 부친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현실로 비뚤어진 듯 보인다. 이후 본인의 대삽질로 인해 제국 중앙 정부가 위험해지자 모레아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게 되어 친왕이 무라트 2세와의 전쟁을 시작하게 만든다. 본인의 말로는 이때서야 부황의 뜻을 깨달았다고. 125화에서 자신이 초래한 제국의 위기를 주인공이 극복해낸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수도원에 유폐되어 있는 아버지 마누일을 찾아가 진심으로 참회하며 제위를 부황에게 돌려드리려 하나 이슬람의 검과 맞서 싸우는 칼날인 주인공의 날카로움이 상하지 않도록 '검집'이 되어달라는 부황의 충고에 완전히 개과천선해 황제로서 주인공을 끝까지 지켜줄 것을 신에게 맹세한다. 이후, 주인공을 공동 황제로 지명한다.
이런 요안니스의 다짐을 증명하듯이, 151화 정리편에서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더라도 주인공을 지키려는 의미가 담긴 '''검집''' 트레잇을 받는다.
2차 대 오스만 전쟁의 승리 뒤 오랜만에 등장해 적은 시간 속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준비를 잘 마칠지 그리고 줄타기 중인 모레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편, 잘못된 길을 선택한 테오도로스를 한탄하고 당장 자신에게 넘어온 디미트리오스에게 독이 든 포도주를 보내는 가혹한 선택을 하면서 주인공을 돕고 있다.
그리고 3차 대 오스만 전쟁에서 주인공이 승리를 거두어 제국이 구원되자 비로소 검집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며 제위에서 내려오고 주인공은 그에 대한 예우로 셀림브리아 친왕위를 내리며, 원한다면 콘스탄티노플에서 계속 살아가는 걸 허용한다.
그 뒤로 아버지처럼 수도원에 들어가 역사서를 집필하고 있으며 주인공보다도 오래 살아 남아 수도원에서 형보다 먼저 가버린 동생을 한탄하는 것이 마지막 등장이다. 저서로는 역사서인 재건기를 남겼고 사후엔 수도사 황제라 불리고 있다고 한다.

2.1.1.3.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이름'''
'''토마스'''
'''Θωμᾶς'''[10]
'''성'''
'''팔레올로고스'''
'''Παλαιολόγος'''
'''직위'''
'''모레아의 친왕'''이자 '''
''''''로마인의 황제요 군주'''
'''생존기간'''
1409~1472.3.14[11]
'''아버지'''
마누일 2세
'''어머니'''
헬레나 드라가슈
'''배우자'''
미혼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1↑'''
19↑
'''22↑'''
'''27↑'''
'''24↑'''
'''26↑'''
'''보속'''
선조들이 저지른 죄는 피를 타고 후손에게도 전해집니다. 원죄와 원죄 아닌 원죄를 짊어진 당신은 이 죄악을 보속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황제 마누일 2세의 여섯째 아들. 드라가시스가 재정복한 이피로스의 친왕이자, 형제들 가운데 막내동생으로 제국의 희망인 넷째 형을 동경하고 있으며 작중 드라가시스의 형제들 중 처음부터 드라가시스에게 우호적인 소년으로 실제 역사에서도 콘스탄티노스 11세를 가장 잘 지원해주었던 형제였다.
드라가시스는 그를 또래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의 수준이라 보았으나 다시 만난 토마스는 긍정적인 의미로 예상을 뛰어넘었고 제국의 수많은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있다고 판단, 비록 나이가 어린 탓에 부족한 면은 많으나 형제들 중 자신의 유일한 정치적 지지자가 되어 줄 사람임을 간파했다. 실제 부황 마누일 2세가 토마스를 이피로스 공국의 친왕으로 임명한 것도 그런 의도에서이다.
마침내 주인공이 오스만에 의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이스트모스 지협에 제노바 함대를 빌려 용병들과 함께 그에게 합류하고, 주인공이 무라트 2세와의 담판에서 휴전을 대가로 토마스가 친왕 대신 아나톨리아 반군 진압전에 제노바 용병대와 같이 인질 역할로 종군하기로 약조하는 등 빡세게 굴려진다.
이후 한동안 본래의 직위인 이피로스의 친왕으로 있으며 존재감이 약해져만 가다가, 주인공이 십자군과 오스만 사이에서 샌드위치 당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서신을 보내며 다시 등장한다. 주인공을 돕기 위해 토마스는 모레아 십자군을 이끄는 디미트리오스에게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해 주인공이 군권을 탈환하는 것을 크게 도왔으며, 당시 모레아 십자군이 명목상으로나마 디미트리오스의 휘하에 있었고 토마스 본인이 이끄는 병력은 단 2백 명에 불과했던 걸 생각해 보면 은혜를 갚기 위해 목숨을 걸고 통수를 친 셈. 또한, 군권 탈환 과정에서 모레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주인공에게 일등공신으로 치하받는다. 거기에 모레아군의 중핵인 기병대를 지휘할 권한을 수여받으면서 에피로스 친왕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관계에서 비로소 주인공의 완전한 측근이 된다. 이로 인해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건 덤.
또한 이피로스를 그동안 별탈 없이 잘 다스려 왔었기에, 2차 대 오스만 전쟁이 종결되고 이피로스의 수도 아르타를 지나갈 때 시민들이 황제의 이름과 함께 토마스도 어느 정도 칭송하는 모습이 지나가듯이 나타난다. 이후 미스트라까지 간 뒤엔 주인공과의 상의 끝에 자신의 나라 이피로스를 모레아에게 넘기는 큰 결단을 내린다. 주인공이 이피로스 작위를 회수한 뒤엔 모레아 기병대장직과 '''제국의 부제''' 자리까지 내리자 상의했던 게 아니었는지 매우 당황했지만, 이내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원죄에 대한 책임감으로 받아들였고, 그 후부터 부제이자 제국의 후계자로써 무거운 직무를 수행[12]한다.
그 뒤에도 주인공을 계속 보좌하며 최종 결전에도 참가, 팔레올로기 파샤를 자기 손으로 끝장낸다. 현재 토마스와 결혼할 상대는 작가가 스포일러라고 하는데 앞으로 토마스의 결혼 상대가 로마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듯싶다. [13]
이후 갈리폴리에 배치되어 오스만 견제에 힘을 쏟다 맘루크 전쟁이 발발하자 총사령관으로 참전, 포케아 결전에서 최종보스 메흐메트 2세를 단 1합에 죽여 전쟁을 종결시켰다. 사망하는 드라가시스의 뒤를 이어받아 황제가 되었고 제국을 완전히 안정화 시키는데 성공하며 소피아의 전횡을 막기 위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며 안드레아스를 자신의 양자로 삼아 황위를 계승시킨다. 유언은 '''"아버지, 그곳에서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1.1.4.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

주인공과 소피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 자줏빛 출생이다. 드라가시스 생전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는 황위를 계승할 수 없다고 공언했지만 드라가시스 사후 토마스의 양자로 입적되어 토마스 뒤를 이어 황제가 된다.
역사가들의 평은 무난, 회생제나 완성자 토마스에 비해 특출난 업적은 없었지만 외국의 문물에 관심이 많았고 제국의 외교적 지위를 굳히는데 힘썼으며 재위기간 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고 한다.

2.1.2. 황가



2.1.2.1. 테오도로스 팔레올로고스

'''이름'''
'''테오도로스'''
'''Θεόδωρος'''[14][15]
'''성'''
'''팔레올로고스'''
'''Παλαιολόγος'''
'''직위'''
'''로마의 부제''' 겸
'''셀림브리아의 친왕'''
'''생존기간'''
1396.?.?.~1422?[16]
'''아버지'''
마누일 2세
'''어머니'''
헬레나 드라가슈
'''배우자'''
아델레네 자카리아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14
16
17
16
15
13
'''제위를 위한 꿈'''
언젠가 당신의 어깨를 두르게 될 자줏빛 망토를 간절히 바랍니다.
황제 마누일 2세의 둘째 아들. 아카이아 공작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딸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중병에 걸려 곧 세상을 떠났고[17] 이로 인해 영지를 상속받아 주인공에게 양도하였다. 이로써 주인공 콘스탄티노스가 모레아(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 수복을 완성하게 되었으며,[18] 이것이 테오도로스와 콘스탄티노스의 밀약, 더 나아가 제위를 쟁탈하기 위해 동맹을 맺은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한 비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테오도로스 본인은 제위에 대해 큰 욕심이 있어. 애초부터 제위를 얻자마자 주인공을 팽할 생각밖에 없었고, 이는 주인공이 요안니나와의 혼담을 파토내고 소피야와의 맞선을 주선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요안니나를 냉큼 낚아채려 한 면모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후 큰형과 마찬가지로 콘스탄티노스를 총애하는 아버지로 인해 완전히 흑화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전파에 해당하는 형과 획책해 아버지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뒤 부제의 지위에 올랐으나 전공을 무리하게 노려 무라트의 8천 정병에 사실상 제국 본국의 가용병력 대부분에 해당하는 2천 명의 병력을 무턱대고 꼴아박았다가 무라트 2세에게 추하게 탈탈 털리고 생사불명 상태이다. 그런데 원 역사에서는 형인 요안니스 8세가 승하하기 4달 전에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라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점으로 볼 때, 오스만군에 포로로 잡혀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스포일러]

2.1.2.2.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Δημήτριος Παλαιολόγος[19], 1407~1432'''[20]
황제 마누일 2세의 일곱째 아들. 실제 역사상에서도 콘스탄티노스 11세와 대립했던 인물로 권력에 대한 탐욕이 강하여 본래 자신이 얻었어야 할 영지를 형 콘스탄티노스가 차지한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 다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황제의 아들들 가운데는 권력이 없는 축이라 정국에 영향력은 없는 상태, 다만 장성한다면 주인공의 내부의 적중 가장 위협적일 것이라 여겨진다.
초반 이후 아직까진 언급이 거의 없긴 하나 151화 정리에서 '''태동'''[21] 트레잇을 받게 됨으로 이후 주인공과 큰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 암시된다. 이후 장성한 뒤 십자군 결성을 위해 찾아온 교황청의 가브리엘레 추기경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서로 협력하고, 원래 자신의 것이 되었어야 할 모레아의 일부를 되찾는 것을 넘어서 아예 주인공이 일궈놓은 모레아 전체를 꿀꺽하려는 도둑놈 심보를 갖는다. 하지만 야망에 비해 그 재능이 군주로선 못난이 수준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프란시스코 등의 작중 인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전혀 없으며 나중에 크루여에서 열등감이 폭발해 발악하다 낙마, 주인공이 으스러진 팔을 칼로 잘라내고 치료를 명하면서 그에게 완벽한 복수를 당하게 되면서 리타이어.[22]
콘스탄티노플로 송환되고 그곳에서 나눈 요안니스와의 독대에선 자신도 인내하고 도전할 수 있으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는 것을 담담히 이야기했고 안드로니코스의 한 수 역시 인정했다. 그 뒤 요안니스가 독이 든 포도주를 보내오고 그것을 형이 건낸 화해의 잔에 자신이 독을 타서 자살했다고 꾸미라고 시종에게 지시한 뒤[23] 잔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다. 끝내 열등감을 버리지 못했으나 마지막에서나마 자신의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인 점에서 팔을 베이고 깨달은 것이 있는 듯하며, 테오도로스보단 나은 모습으로 퇴장했다.

2.1.2.3. 요안니나 칸타쿠지니

'''Ἱωάννινα Καντακουζηνή'''[24]
제국의 대귀족 칸타쿠지노스 가문[25]의 딸. 본명은 요안니나 칸타쿠지니[26]. 주인공 콘스탄티노스와 결혼 직전이었으나, 세르비아의 공주 소피야의 결혼 제의로 인해 파혼된다. 사실은 어릴 때 주인공과 만났던 귀족가의 딸이었다.[27][28]
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만큼[29] 거의 멘붕 수준까지 갔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주인공을 되찾기 위한 결심을 굳힌다.[30] 공동황제 요안니스 8세에게 스스로 정략결혼을 제안, 요안니스 8세의 정치적 입지를 대귀족가 칸타쿠지노스가가 지지해 주는 대신 황권의 공유와, 자신의 순결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로써 후에 황제 계승 분쟁이 일어날 경우 주인공이 황제가 되는데 자신이 정치적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 요안니스 8세가 이것을 받아들임으로서 현재는 공동황제의 황후. 요안니스 8세는 정치적 이유로 받아들였으나 점점 요안니나에게 빠지는 중.
참고로 댓글 창에서 작가가 진 히로인이라고 언급한 바가 있다. 작가의 '설정상' 포지션 설정에 걸맞게, 이바니아나 소피야에게 적극적으로 견제를 시도하고 스킨쉽 면에서도 제일 정상적인 편이지만, 정작 진도는 셋 중에서 제일 후달리는 상황.[31] 특히 소피야가 '황후께서 그러면 안 되죠' 식으로 진도 빼는 걸 번번히 저지하고 있다. '''하지만''' 312회에서 황제와 급격히 진도를 빼게 되었다.[32] [33] 토마스와 프란시스코가 치를 떨 정도로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모양.
여담으로 주인공이 정상 루트로 갔다면 츤데레로 가야 했을 캐릭터. 다만 주인공이 그 루트를 안 택하면서 메가데레로 캐릭터가 변경된 듯하다.
비록 끝까지 주인공 자식은 못 낳았고 그래서 장례식 때 잠시 푸념하기도 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죽는 날까지 드라가시스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2.1.2.4. 디미트리오스 칸타쿠지노스

요안니스 8세의 황후인 요안니나 칸타쿠지노스의 남동생으로 첫 등장시에는 주인공이 세르비아와의 정략동맹을 선택해 요안니나가 파혼당한 것으로 인해 적의를 품고 있었다. 오스만에 의해 수도에 봉쇄가 시작되기 전 요안니스 8세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누이인 요안니나와 난민들을 모레아로 보내고 명가의 일원으로써 수도 방위사령관으로서의 제국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후 제국의 해군제독으로 주인공의 명을 받아 기사단의 협력을 받아 해군을 재건, 맘루크 전쟁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다.

2.1.3. 모레아 전제국



2.1.3.1. 주인공(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 팔레올로고스)

'''이름'''
'''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
'''Κωνσταντῖνος Δραγάσης'''[34]
'''성'''
'''팔레올로고스'''
'''Παλαιολόγος'''
'''직위'''
'''로마인의 황제요 군주'''[35]
'''생존기간'''
1405.2.8~1452.8.22[36]
'''아버지'''
마누일 2세
'''어머니'''
헬레나 드라가슈
'''배우자'''
소피야 라자레비치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7↑'''
'''27↑'''
'''39'''
'''32↑'''
'''39'''
'''21↑'''
'''새천년의 결의'''
지나간 천년이 아니라 나아갈 천년을 위해 싸웁니다. 성장속도에 대폭 보정.
'''떨쳐낸 마지막'''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후라는 이름의 망령은 당신이 나아가는 순간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등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섰고, 이제 스스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스만의 숙적'''
누구도 감히 도전 못한 새 시대의 패자, 새 시대의 주역을 상대할 유일한 숙적은 포기하지 않고 맞서싸워 온 당신뿐입니다. 신이 내린 예언은 사람의 의지를 따라 변하고, 사람의 맹세는 지나온 행적으로 이뤄지기 마련입니다. 예언과 맹세를 바꿀 수 있는 당신이야말로 숙적이라 불리기 합당합니다.
'''붉은 십자가'''
몰락한 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희망. 모두가 체념했을 때 홀로 일어선 자. 가장 비참하게 무너진 순간 수많은 피로 저울의 균형을 맞춘 자. 승리도 패배도 불확실해집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인남캐였으나[37], 어느 날 '너, 연애가 하고 싶지? 미연시 세상으로 보내줄 테니까 마음껏 연애해 보라고.'란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미연시 게임 세계로 전생한 인물. 여러 보정과 스테이터스를 확인할 수 있는 듯 하다. 서술을 볼 때 검은 곱슬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금욕적인 미소년인듯.[38] 오스만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진행하면서 피처럼 붉은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하는데 마치 '붉은 십자군'을 연상케 한다.[39] 무라트 2세와의 대결을 통해 단순히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주권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매우 금욕적이고 무뚝뚝하며 제국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그가 제국 최후의 희망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또 제국 부흥을 위해 어릴 적부터 너무나도 심하게 몸을 혹사하면서 싸워왔기에 정작 제국은 부활하는데 본인은 얼마 못가는거 아니냐는 불안감을 제기하는 독자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스스로를 학대해 가면서 싸우는 걸 보다 못해 주변 인물들이 그를 위해 싸우는 솔선수범형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외에 특이점이라면 초월적인 수준의 인내심. 정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인내하며, 자기 손의 패를 아낀다. 밑에서 서술되겠지만 오스만과 갑작스럽게 전쟁을 하게 되버린 특급 위기상황에서도 예비대는 무조건 남겨두고 행동했으며, 이후 예비대와 아껴둔 패들로 위기를 돌파 후 도약을 준비하다 오스만측의 계략에 말려들어 쓸 수 있는 패가 당장은 바닥나며 외통수로 몰린 나머지 엄청난 굴욕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도 꾹 참고 인내하며 굴욕을 감수한다. 이 인내심 덕에 위기를 돌파한 적도 있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몇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미연시 게임 세계가 중세 판타지나 학원을 배경으로 하는 평범한 미연시가 아닌, 로마 제국오스만 제국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역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했으며, 그 자신은 로마 제국의 4황자 콘스탄티노스로 전생했단 점이었다.[40] [41] 사실, 작가가 주인공이 게임 시스템을 활용하거나 영향을 받는 일 없이 활동한 게 벌써 100화 이상 지났다고 한 점에서부터 미연시를 다룬 작품이라는 자격은 실격되었다. 작중에서는 본명보다 '친왕'[42][43], '드라가시스'로 더 많이 불린다.
몰락 직전의 제국을 부흥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어렸을 때부터 모질게 수련했으나, 미연시의 주인공 아니랄까봐 어릴 적부터 여러 여성의 추파를 받은 듯. 추파를 전부 내쳐내고 능력치를 단련하는 데 전념했으나 본디 평범한 인남캐였던 주인공이기에 성장 속도가 무척 더뎠다는 듯하다. 결국 '''연애를 하지 않은 개월 수에 비례해 성장 보너스가 주어지는''' '솔로 정진'이란 스킬을 습득, 성장에 부스트가 걸린 대신 더욱 깊은 솔로의 길로 접어들었다. 스텟면에선 행정능력, 학식으로는 세계관 최강자급.
모 독자 왈, "100일을 수련해도 무력이 1 상승하지 못하고 수많은 책을 읽어도 행정이 1 상승하지 못하면, 유능한 여자 모아서 위기를 타파하라는 거 아닌가?"라고 의문을 품었다고. 그러나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능력치 오르는 속도와 비교하면 오히려 빠른 편이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주인공이 하렘을 차릴 경우 '팔방미인'이라는 스킬을 얻어, 히로인의 가장 높은 능력치 하나가 자신의 해당 능력치가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무력이 가장 높은 히로인의 무력 수치가 17이면 자기 무력도 17. 그런데 작가 말로는 사실은 능력치 성장은 거의 끝난지라 앞으로 정진해도 능력치가 더 오르긴 힘들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제 솔로로 있어도 능력치가 오르긴 힘드니 이제는 정말로 유능한 여자들을 모아 하렘연애 노선을 진행해도 되는데 문제는 현재 드라가시스가 다른 인간 히로인(?)은 제쳐두고 이 작품의 '''진히로인인 제국'''에 푹 빠져 있다는 것.[44]
어려서부터 부황의 정벌을 도왔으며, 어린 나이에 모레아 전제국(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 지역)의 친왕이 되었고, 14세기 초 앙주 가문과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 이래 제국의 숙원이던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완전 수복에 성공한다. 16세가 되자 제국 내 귀족들의 반발을 감수하며 세르비아의 힘을 얻기 위해 제국 유력 귀족인 칸타쿠지노스 가문[45]의 딸 요안니나와의 정략결혼을 파기하고 세르비아 공주 소피야와 혼인을 결정하고, 이후 세르비아가 성급히 오스만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병크를 일으키자 이 상황을 오히려 오스만의 동맹이라는 명분으로 이용해 라틴계 소국들을 공격, 아테네, 이피로스 등 중부 그리스까지 장악한다.[46][47]
이후 무라트 2세가 집권하고 콘스탄티노플이 요안니스 8세의 병크로 위태로워지자 모레아 공국의 병력을 이끌고 숙적 무라트와 끝없는 전쟁을 시작하여[48], 얼마 뒤 예니체리 대군을 상대로 자신을 비롯해 100인의 기사만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가며 상대해 궤멸시키거나[49] 자신의 죽음을 가장해 무라트의 방심을 유도, 오스만의 정예부대인 시파히를 격파하는 등 기사도 문학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전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전쟁 이후로 주인공에 대한 국민 감정이 광신에 가깝게 바뀌었고, 마침내 대관식을 거행하면서 황제 자리에 오른다. 또한 이 시점부터 주인공은 '''친왕이 아닌 황제로 서술'''된다.[50][51]
작중 초반에 나온 예니체리 대장이나 중부 그리스 영주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최후의 희망이라는 평과 동시에 너무 늦게 나타났다는 평도 많이 듣는 듯하다.[52][53]
이런 성군 반열까지 올라있었기에 권력을 독점해도 상관없었을 거 같았지만 황제는 팔레올로고스 왕조원죄[54]를 엄청나게 경계하며 지금의 모레아가 과거의 니케아 제국과 똑같은 길을 밟아가는 게 아닌지[55] 두려워하고 있기에 전후 미스트라로 개선하자마자 자신의 후계를 미래의 자녀들이 아닌 동생 토마스[56]의 후손으로 이어지게 선언한 것과 작중 내내 조금만 더 무리하면 더 많은 영토를 얻어낼 수도 있었는데도 조금만 먹고 빠진 신중한 행적도 역시 시조인 미하일 8세와 같은 노선을 타지 않으려고 했다는 게 드러난다.
또한 황제는 과거 제국이 파멸한 내전의 원인이 다 황위 계승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모레아의 친왕으로 취임했을 당시부터 중앙 집권을 신봉한 중, 근세 정치인들과 다르게 민회에 힘을 실어주고 고등법원을 설립하는 등, 초보적인 삼권분립에 기반한 지방자치제를 추진하고, 개혁 찬성파인 마기스트로스나 이를 잘 활용하려는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황제파와 민회파로 양분된 제국 의회를 설립하여 최종적으로 '''약간 변형된 입헌군주제'''로 제국의 미래의 정치 시스템을 바꾸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또한 무리하게 영토를 점령하고 강압적으로 지배할 생각 따윈 없는지, 이미 독립 영주들이 자리잡고 있는 알바니아에선 제르지 카스트리오티를 알바니아의 국왕[57]으로 임명했으며, 오스만과의 3차전에서 획득한 세르비아는 소피아를 통해 얻은 본인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한 대신 현 세르비아 국왕인 주라지 브란코비치의 아들에게 양보해서 그를 봉신왕으로 임명하면서 문화/종교로 인한 행정 낭비를 최소화하고, 제국의 큰 틀 안에서 같이 성장하고자 하는 연방국의 그림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최신화에서 지금까지 너무 무리를 한 부작용으로 몸이 급격하게 약해지는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과로사로 죽을 뻔 하다가 사신이 제안한 제국의 미래를 예측하는 체스에서 승리하여 3년의 시간을 벌게 되고 그 사이 친정을 진행하며 옵시키온 지방[58]을 장악한다. 그 사이 포케아 전투에서 토마스의 영웅적인 돌격으로 제국의 대승리와 맘루크와의 협상으로 전쟁이 끝나게 되고 실질적인 황제의 권한은 계승자 토마스에게 모두 넘겨주고 3년이라는 시간을 잘 활용하여 아내들과 함께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민심 안정과 보이지 않은 문제 해결에 주력하다가 향년 47세에 죽음을 맞이하여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지하에 매장된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과 함께 재건된 로마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자신의 원래 세상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면 아마도 장기 휴가를 내서 로마 제국 이곳저곳을 여행할듯. 주인공 사후에도 주인공의 영향력은 제국 내에서 절대적인 듯하다.
1452년 죽을때 까지를 기준으로 황제는 이바니아, 소피아, 요안니나 , 이렇게 세 여성과 연애 플래그가 있었으며 이들 사이에서 난 혈육으로 이바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1430년생인 사생아 장녀 '''헬레네''', 소피아 사이에서 "자줏빛 출생"으로 태어난 1440년생인 장남 '''안드레아스'''가 있다.
칭호는 "세상의 재건자"와 "회생제". 전자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받은 칭호고, 후자는 유럽 군주들에게 종종 보이는 별명이다. "사자심왕"이나 카롤루스 대제 등.

2.1.3.1.1. 주인공의 능력치에 관해서

사족으로, 작중에서 Crusader Kings II 식으로 표현된 주인공의 능력치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작품을 진행하면서 작가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끔씩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의 능력치를 공개한다. 그런데 이 능력치가 실제로 각각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나오지 않았고 기준 또한 평균적인 군주의 능력치가 13에서 16 정도 된다는 내용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기에 주인공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길래 제국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릴 정도인지, 적측인 무라트 2세의 통솔력이 어느 정도이길래 주인공이 연전연패를 거듭하는지 명확히 보기가 어렵고, 이 때문에 다소 상상력을 곁들이더라도 좀 더 알기 쉽게 만들어 볼 필요성이 있다.
작중 3장 시작 직전의 막간(51회)에서 나온 주인공 콘스탄티노스의 능력치를 보았을 때,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0
19
39
24
39
16
이라는 명확한 수치가 주어지고, 이는 각각 통솔-전장에서 지휘하는 병력의 규율과 사기 등과 관련된 전투력, 무력-일기토 시에 발휘되는 개인 무용, 행정-정책과 체제의 효율성과 관련된 내정 능력, 통찰-각종 음모력 및 계책 및 상대의 호불호 파악, 학식-연구와 기술발전+국가 개혁 및 개인권위, 외교-개인적 매력 및 화술, 외교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능력치이다.
이를 작품의 모티브인 Crusader Kings II의 능력치와 비교해봤을 때 diplomacy(외교력) - 외교 / martial(무력) - 통솔 / stewardship(관리력) - 행정 / intrigue(음모력) - 통찰 / knowledge(학식) - 학식이 성립한다. 이집트를 정복해 오스만 제국을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으로 키운 정복군주 셀림 1세의 통솔 능력치가 36이라는 것이 작중에서 명시되었고 이에 비교해서 칭기즈 칸이나 티무르 같은 정복군주들이 인게임에서 20대 중후반의 martial 능력치[59]를 보유하며, 소설 세계관 안에서 일반적인 군주의 능력치가 평균 13에서 16 사이라는 점, 웬만한 크킹 2 캐릭터들의 능력치가 육성을 통한 개입 없이는 최소 5에서 최대 15 사이의 구간을 주로 왔다 갔다 한다는 점을 전부 고려해보면 작품 내에서의 능력치는 크킹 2 기준으로 변환했을 때 약 3분의 2 정도가 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밝힌 '10 전후가 일반적, 20 전후가 우수함, 30 전후가 올타임 네임드급'이라는 설정과도 합치한다.
이런 가정을 한 상황에서 각 능력치를 Crusader Kings II 기준으로 변환해보면
diplomacy
martial
stewardship
intrigue
knowledge
12
13
26
16
26
크킹 2를 플레이하는 유저가 보았을 때 고평가할 만한 수치이다. 인게임상에선 천매강을 위한 우생학이나 세이브로드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NPC 기준으로 각 능력치가 평균 15 정도까지로만 뽑혀나와도 매우 뛰어난 수준의 캐릭터이며, 대충 1~5가 폐급 인물, 6~10이 평범, 11~15가 해당 방면에서 나름 뛰어난 인물이고 16~20이 네임드, 사실상 20을 넘기는 순간부턴 위인의 반열에 들어갈 수준이기에[60] 주인공이 행정능력과 학식 면에선 당대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특출하고 이 점 때문에 단 10년만에 모레아 및 아테네의 행정력이 공고해지고 상업, 문화 면에서도 번영하게 된 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납득이 가능하다. 실제로도 크킹 인겜에서 유저무쌍을 위한 무력을 제외하면 행정이 가장 고평가를 받는다는 점을 볼 때, 천재+매력+예민함 달고 4단계 교육트레잇이랑 미덕까지 주렁주렁 달아서 잘 키운 크킹 플레이어 캐릭터인 셈.
반면 계속해서 주인공의 맞수로 나오고 있는 무라트 2세의 능력치를 환산해보면,
diplomacy
martial
stewardship
intrigue
knowledge
12
21
16
18
14
즉 무라트 2세는 다른 능력들만으로도 그럭저럭 명군 소리를 들을 정도의 수준이지만 통솔력에 한정했을 때만은 역사상으로 급을 겨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소위 '정복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사실상 평범한 군주보다 좀 나은 수준의 통솔력을 보여주는 주인공 콘스탄티노스가 전술/전략 면에 있어서는 탈탈 털리는 모습이 나오는 것에 대해 이해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일신의 능력 면에선 주인공의 약점[61]을 절묘하게 찌르는 극상성인데다, 부족한 능력치도 '''기초 국력의 차이'''로 메꾸고 있기에 이리도 압도적으로 보이는 것이지, 단순히 능력치 비교로 따지면 무라트 2세조차 주인공에겐 상대가 안된다.
덤으로, 주인공이 더이상 솔로정진의 덕을 보기에는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고 하렘을 차리면서 솔로정진의 효과가 사라졌다. 팔방미인의 효과가 적용되었는지는 불명이지만 최신 스테이터스 갱신에서 결의가 '''새천년의 결의'''로 업그레이드되었고, 성장속도에 대폭 보정이 들어가면서 능력치 또한 대폭 상승했다.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7
27
39
32
39
21
이를 크킹식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diplomacy
martial
stewardship
intrigue
knowledge
14
18
26
21
26
크킹으로 따지면 미덕이 원래도 많았지만 여기에 더해 근면+인내+강함 정도가 붙은 수준이며, 특히 통솔과 무력이 크게 상승한 점은 회전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오스만과의 전면전에 있어서 굉장한 이점이 된다. 무라트 또한 1부 최종보스 보정으로 스테이터스 보정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후녀디나 스칸데르베그 같은 일류 지휘관들이 합류했으므로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2.1.3.2.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이름'''
'''안드로니코스'''
'''Ἀνδρόνικος'''[62]
'''성'''
'''팔레올로고스'''
'''Παλαιολόγος'''
'''직위'''
'''테살로니카의 친왕'''이자 '''
''''''모레아의 섭정'''
'''생존기간'''
1403.?.?.~1432.8.14[63]
'''아버지'''
마누일 2세
'''어머니'''
헬레나 드라가슈
'''배우자'''
미혼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0 (-10)
21 (-10)
16 (-10)
17
14
12
'''꺾인 결의'''
계속되는 시련이 당신의 결의를 꺾었습니다. 잔혹한 운명 앞에서 이제 운명이 내릴 결과를 기다릴 따름입니다.
일부 능력치에 마이너스 보정.
황제 마누일 2세의 셋째 아들. 테살로니키(세살로니키)의 황제이나 이름만 나왔을 뿐 작중 비중은 거의 없었다. 작가의 말로는 황제라고 해도 이름 뿐인 황제고 모레아, 콘스탄티노폴리스와도 고립되어 있는 처지라 그냥 자포자기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49화의 내용에 따르면 젊었을 적에는 콘스탄티노스나 요안니스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부흥을 위한 열정에 불타는 청년이었으나 너무나도 강대한 오스만의 압박과 함께 오랜 시간이 지나 점차 병마가 악화될 때쯤[64]에서야 주인공의 노력으로 제국이 부활의 기미를 보인 탓에 체력과 정신 양쪽으로 지쳐버린 듯하다. 사실상 자신을 포함해 제국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주인공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듯하다.
실제 역사에서의 테살로니키는 작중 중부 그리스에서 주인공이 이끄는 모레아와 무라트가 이끄는 오스만의 전쟁이 일어나는 시점인 1422년에 공격당해 1423년에 허무하게 베네치아에게 양도되고 1430년에는 끝내 완전히 함락되고 마는데, 모레아군이 오스만군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주인공이 테살로니키 방면으로의 확장을 통해 제국의 주요 도시들의 육로 연결을 꾀함에 따라 테살로니키에서 군대 수용을 위한 물자 조달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그곳의 총 책임자가 안드로니코스임을 생각해보면 그가 예상대로 본격적으로 등장할 일도 머지 않았다. 그렇게 테살로니키와 관련된 떡밥을 여러 차례 뿌리다가 테살로니키가 베네치아에게 넘어간 후 주인공의 대관식 준비 때 나타나서 주요 등장인물들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했고, 이후 모레아로 가서 주인공의 핵심 조언자 역할을 수행한다.
주인공이 오스만의 세르비아 원정에 종군한 이후엔 건강이 나쁜데도 그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섭정이라는 중책을 맡는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이제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것인가 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이후 모레아로 찾아와 섭정직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는 디미트리오스와 가브리엘레 추기경을 견제하고, 주인공을 빼내면서 알바니아를 회유하는 게 가능한 방법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낸 기회를 주인공이 제대로 낚아채고 오스만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면서, 테살로니키의 황제로 지내면서 심신이 망가지기 이전에 갖고 있던 안드로니코스의 탁월한 능력의 편린이 드러난다.[65]
248화에서 오랜만에 콘스탄티노스와 조우하며 제일 먼저 자식 이야기를 나눈 뒤 자신은 지금까지 평생을 기다려왔고 마침내 자신과 아버지가 그토록 고대하던 제국의 부활을 목전에 두었으나 완전히 악화되어 더 이상 가망이 보이지 않는 몸 상태를 한탄하며 '''"야속하구나... 겨우... 겨우... 보였는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원 역사보다도 3년을 더 살았다.

2.1.3.3. 가신


2.1.3.3.1. 이바니아

'''Ivania'''[66]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1
19
3
10
9
9
'''여기사'''
여성의 몸으로 전장에 나서는 위업을 달성한 당신에게 주어진 칭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보다 훨씬 좋은 칭호는 주어지지 못했군요.
아마 '''다른 누군가'''가 선점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모레아의 친왕이 된 주인공이 고용한 이탈리아 용병단의 그랜드 마스터. 금발벽안의 여성으로 나이는 주인공보다 6살 연상. 첫 등장 당시엔 아직 10대 소녀[67]였기에 주위의 불신을 받았으나 곧 본인의 능력으로 인정받아 300여명의 용병들을 이끌었으니 기사로서는 무척 유능한 무인, 이 점은 주인공도 인정했다. 허나 '''변태'''다.[68] 아무래도 마조히스트로 추정되며 당시 주인공이 겨우 '''10살'''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주인공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해달라고 떼를 쓰거나, 정략결혼 소식을 듣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등 노골적으로 주인공에게 반한 듯. 사실 타입문넷의 자유창작관에 연재되었던 소설의 원안에서는 얀데레가 되어 용병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인공에게 칼을 맞고 죽었다.
하지만 초반엔 가뜩이나 장교가 부족한 모레아 측에서 주인공이 신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유능한 지휘관이었으며[69] 주인공에게 진심으로 충성과 애정을 바치는 헌신적인 인물이다, 요안니나와 함께 이 작품에서 그나마 히로인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여성. 무라트 2세와의 1차 전쟁 시점에선 20대.[70]

주인공을 따르는 데에는 물론 본인이 변태라서 그러는 것도 맞고,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도 맞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온 상황에서 그만이 유일하게 이바니아의 능력을 알아주고 차별을 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도 있는 듯하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 의욕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만 이 때문에 과욕이 될 수도 있다는 프란시스코의 평가를 받았다.
작품 설정의 '주요인물들 능력치 창 (참고만 하세요)' 게시글에서[71] 정리차로 나온 이바니아의 칭호에서 '''여기사'''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데 그 옆에 쓰여진 설명이 의미심장하다. [72]
148화에서는 주인공이 이바니아와 그녀의 용병대를 종신 계약으로 변경하면서 만일 사생아가 태어난다면 자신의 아이로 인정한다는 폭탄 선언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며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주인공의 옆자리를 두고 요안니나와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이는 중. 그리고 끝내 주인공이 이바니아의 마음을 받아들이면서 지난 10여 년간 보내 왔던 충성과 헌신, 그리고 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아, 사실상의 메인 히로인에 등극한다.
이후 주인공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지휘관 자리를 잠시 내려놓고,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주인공이 승전보를 울리며 귀국하면서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주인공을 정중히 맞이하며 아이가 무표정한 콘스탄티노스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이에 웃는 모습을 못 본 지 15년 됐다며 한소리하다 황후의 추궁에 발을 뺀다.[73] 이미 아이가 태어난 지 3년 가까이나 되었지만 아버지인 황제가 이름을 짓기를 원했기에 일부러 "아이"라고만 부르고 있었으며, 황제는 사생아이지만 자신의 혈육이기도 하기에 배려 차원으로 '''헬레네'''[74]라고 이름을 짓는다.
그 후 교회를 비롯한 여러 반발을 감수하고 헬레네를 세례받게 하려고 하자, 늘 당돌했던 이바니아도 주인공이 그동안 쌓아왔던 평판이 무너질까봐 움츠러들 정도로 걱정했지만, 주인공의 고집으로 세례식을 열고 그러던 와중에도 서로 손을 잡는 등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아주 단란한 모습을 보여준다.[75]
헬레네가 장성해서 미르체아와 결혼하고 난 다음 전장에 복귀해서 에게해에 있는 베네치아, 제노바 식민지들을 흡수하러 다녔으며 드라가시스 사후에는 헬레네를 따라 왈라키아로 이사해 훗날 있던 왈라키아 내전에도 개입해 활약하는 등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2.1.3.3.2. 돈 프란시스코

'''이름'''
'''프란시스코'''
'''Francisco'''
'''성'''
'''데 톨레도'''
'''de Toledo'''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4↑'''
'''24↑'''
9↑
16
12↑
12
'''성전의 기사'''
당신은 오랜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무용을 증명한 기사입니다.
풍부한 전투경험을 지닌 덕분에 쉽게 당황하지 않습니다.
아라곤 왕국 출신의 기사로 본디 이베리아 반도에서 레콩키스타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재수복 전쟁이 시들해지자 새로운 성전을 찾아 그리스에까지 흘러들어온 인물이다. 주인공이 백 명의 기사들과 함께 친히 예니체리를 상대할 때 이 싸움에서 살아남으면 사촌이라도 부르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친왕과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아 왕의 사촌 소리를 듣는 인물로 모레아군의 주요 지휘관이다. 이슬람과의 싸움에는 이골이 난 노련한 전사로 아테네 공성전을 준비하면서 적군의 배치를 꿰뚫어보는 장면도 등장했다.
이후 주인공의 상태를 확인, 자신의 치명적인 부상을 숨겨가면서까지 병사들의 동요를 막는 것을 보고 이렇게까지 헌신적인 군주야말로 기독교 세력을 결집해 투르크를 몰아낼 수 있는 인물이라고 확신한다.
조아라 댓글에 따르면 이 인물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듯하다. 돈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Don Francisco de Toledo)란 인물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언급된다고 한다.
이 Don Francisco는 마카리오스 멜리세노스의 저 Chronicon Majus에만 언급되는 인물로, 스페인 용병의 지휘관이며 알렉시우스 콤네노스 황제의 먼 자손, 즉 실제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먼 친척으로, 최후의 벽이 떨어질 때 마지막까지 황제 옆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마카리오스 멜리세노스는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의 증인이 아닌, 증인인 스프란체스의 Chronicon Minus를 기반으로 후대에 살을 붙인 것이기 때문에, 이 인물의 실존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마카리오스 멜리세노스의 거처는 당대에 de Toledo 가문이 세력을 떨치던 곳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물을 창작하여 de Toledo 가와 동로마 황제의 혈연을 만들어 주었다는 현대의 역사학자들의 견해도 존재한다. 실제 싸움을 보지도 않은 역사가가 그에 대해 서술하며 '아킬레우스만큼이나 용맹하게' 등의 미사여구를 붙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일단 기록은 있는 인물이므로 웬만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긴 한데 주인공이 도주하면서 4백여 기만 가지고 시파히 기병대를 막는 임무를 맡는다. 전쟁이 끝나고 귀국한 뒤엔 전장에서의 많은 공로를 인정받아 라틴 기사들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졸지에 무르타티[76]의 지휘권까지 받아 모레아 병권의 핵심인물이 된다.[77][78]
얼마 뒤 프란시스코는 무르타티 지휘관에 적합한 인물로 할리드 무르타트를 영입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시종일관 낙관적이고 유쾌한 프란시스코의 성격과 냉소적이고 현실주의적인 할리드의 성격은 상극인지라 허구한 날 싸워댄다. 그래도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출발해 안드로니코스를 찾아가 방문에서 마주치는 거나, 모레아를 꿀꺽하려는 디미트리오스를 서로 한 술씩 더 떠가면서 혐오하고 가끔씩 만담도 보여주는 등 앙숙이라기보단 만자이 콤비에 가까운 관계라고 볼 수 있고, 몇 년쯤 더 같이 지내면 막역지우가 될 듯하다.
한편 주인공에게 힘들다 힘들다 말하면서도 맡은 바 책임을 확실히 하는 모습이나, 경박한 언행에 비해 책임감이 무거우며 권력욕이 없음에도 주인공에게 살갑게 대한다는 토마스의 평가와 함께 왜 그가 머나먼 이베리아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의문도 제시된다. 이를 볼때 숨겨진 어두운 과거가 있을듯 하다.[79]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향에 아내가 있긴 했는데, 프란시스코 본인이 전장에 나가있는 동안 혼자 임신한 채 집에 남아있다가 아이를 사산했고, 그걸 확인하게 된 건 전장에서 돌아온 뒤였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전쟁터에 있어 아내를 보살피지 못해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무슬림들을 모조리 죽여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였고, 할리드와 티격태격 다퉜던 것도 그가 혐오 대상인 무슬림이었기 때문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최신화 기준으로 토마스에게 열심히 굴려지고 있다. 읽고 쓰는 법을 강제로 다시 익히게 될 수준이라 하며 지금 자신은 칼보다 펜이 익숙하다며 한탄할 정도.
결전에서도 기병들을 이끌며 죽을 뻔한 토마스를 구출하고 카푸쿨루 시파히들을 견제하는 활약을 했으며 전후에도 식량과 은을 교환하는 역할, 즉 행정역을 또 맡으며 무릎꿇고 울부짖는다.. 거기다 추가로 안드레아스의 보모 역할도 맡고 있는 모양.[80]
맘루크 전쟁에서는 이바니아와 함께 제노바, 베네치아 식민지를 흡수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드라가시스 사후에는 서방 외교대신, 황제 친위대장 등의 직책을 수행하다 1468년 세상을 떠난다.[81]

2.1.3.3.3. 할리드 무르타트

'''خالد مرتد / Khalid Murtad[82][83]'''
169화에서 돈 프란시스코가 말했던 무르타티의 지휘관격 인물이자, 제국을 배신했던 오스만 초기 공신 에브레노스 베이의 아들. 본격적인 등장은 172화에서 이루어졌다. 접선지를 무르타티들의 훈련장으로 설정한 것에서부터 철저한 모습을 보였으며[84] 제국의 공동황제라는 직위에 오른 주인공과의 첫 만남에서도 황제고 뭐고 쌩까고 오만한 모습을 보인다.[85] 그런 그에게 배신자의 자식이 할 말이냐며 돈 프란시스코가 일갈하자 '''그 배신자의 충성도 못 얻은 나라가 이제 와서 이름을 내세우는가'''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거론하던 이름이 있다는 말과 함께 '''내게는 뛰어넘어야 할 이름이 있을 뿐이고'''라는 등 명언(?)을 많이 남겼다.
이후 그 뛰어넘어야 할 이름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밝히고, 프란시스코와 종종 다툰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필요한 이유를 어필하면서 '''"폐하께서 진정 오스만의 숙적이시라면 마땅히 움켜쥐어야 할 하나의 검입니다. 십자가를 곁에 두셨으니 이제 당신께로 기울어 온 초승달 또한 곁에 두소서."'''라는 명언을 남긴다.
처음에 보인 태도와는 별개로, 채용되자마자 곧바로 무르타티들의 장비 공급 관련 개혁안을 제출하는 등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으며 전시상황이 가까워졌는데도 여자관계 때문에 추문을 퍼뜨린 상태인 주인공에게 따지러 갔다가 그가 이성을 잃지 않고 시국에 집중하는 것을 알게 되자 신뢰가 더 커진다.
특유의 성정 때문에 모레아의 대부분의 중신들과 사이가 영 좋지 않다. 그의 출신도 출신이지만, 황제 앞에서도 예의를 안 지키는 오만한 성격이 한몫한 듯. 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확실히 인정받고, 본인도 남 앞에서 성격을 죽이는 법을 터득하면서 좀 나아졌다.[86] 현재는 활약상 덕분인지 제국 내 무슬림들의 대표자격인 지위를 얻은 상태로 갈리폴리에 주둔한 토마스를 보좌하고 있다.
그의 출신 배경은 모레아뿐만이 아닌 수도와 서방 세계에서도 이례적인 것이라서, 가브리엘레 추기경과 함께 온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와 접견한 자리에서 무슬림 특유의 복장으로 시선을 받아낸다. 디미트리오스가 추기경과 결탁해 모레아를 꿀꺽하려는 모습에 비아냥거리고, 대놓고 '''네 모가지 따겠다고''' 하며 완벽한 적대감을 드러낸다.[87]
스칸데르베그가 정식으로 주인공 파티에 합류한 뒤엔 자신과 출신배경이 정반대인 그[88]와도 허구한 날 대립각을 세운다. 나는 개가 되기 싫어서 제국으로 왔다는 것을 밝히고 그 와중에 예니체리를 술탄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개라며 신랄하게 까내려 스칸데르베그와 싸움 직전까지 가나, 프란시스코의 제지로 가까스로 물러난다. 사실 스칸데르베그가 자기 소속 부하들인 무르타티들을 갈아버린 장본인이라는 데서 결코 좋게 볼 수 없었던 것도 이런 까내리는 모습에 한몫 거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름 풀어볼 생각이 있었는지 미스트라로 같이 왔을때 대화를 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스칸데르베그가 번영하는 미스트라의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느라 대답을 못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할리드는 돌아선 뒤였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게임 속의 히든 캐릭터였다고 한다.
결전에서는 중앙, 즉 오스만의 주공을 막아내는 역할을 맡으며 아버지를 뛰어넘겠다며 결의를 다진다. 그리고 버텨내는 역할 또한 훌륭하게 수행해 내며 승리에 일조한다.[89]
맘루크 전쟁에서도 무르타티들을 이끌고 활약했고 특히 적장 이브라힘과 이스하크를 전사시키는 활약을 한다. 이후에는 아나톨리아 집정관을 맡게 되며 제국으로 넘어오는 투르크인들을 보며 아버지가 이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지 잠시 회상에 잠기다 나중에 휴가를 얻으면 테살로니카나 가볼까하는 생각을 한다.

2.1.3.3.4. 아드리아노스

'''Ἁδριανὸς'''[90]
본디 마누일 2세의 명령을 받아 친왕을 보좌하러 온 모레아의 행정관료이며, 실제로 생긴 것도 전형적인 관료상인 인물. 하지만 지휘관의 절대부족에 시달리는 모레아의 특성상 군대 지휘관으로도 혹사당하는 불쌍한 인물이다.[91] 깐깐하고 청렴하며 성실한 인물로서 친왕이 언젠가 제위에 올라 제국의 부흥을 이끌 인물로 보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아테네 공성전 중 주인공의 부상으로 지위가 어려워져 아테네의 함락이 확실해지자 사지임을 알면서도 코린토스로 퇴각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역할을 앞으로 주요 지휘관이 될 이바니아와 프란시스코를 대신해 맡는다. 평소 이바니아의 변태성과 돈 프란시스코의 깐족거림에 태클을 걸어왔지만, 내심 저 둘을 친왕을 계속 보좌할 유능한 인재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
희생 직전, 그동안 희생과 헌신에 대한 보답으로 주인공이 짜놓은 판세와 전략을 들은[92] 아드리아노스는 이에 전율하면서 동시에 주인공에게 '''폐하라 불러도 되겠나이까'''라며 마지막 청을 하는데, 이에 대한 답변으로 아직 대관식도 받지 못한 한낮 친왕이지만 언젠가 '''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의 황제가 되도록 하겠다'''며 약속받자 바로 그 자리에서 제국역사상 가장 작고 초라하지만, 더없이 경건한 대관식을 열어 일체의 주저도 없이 '''"폐하"'''라 외친다.
그리고 115화에서 모레아 군의 주력을 철수시키고 잔존 병력으로 시파히들의 추격을 저지하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무라트가 그 장면을 보고 열받으면서 주인공을 확실한 숙적으로 재인식한다.

2.1.3.3.5. 데미클레오테스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7
3
22
13
14
12
'''법률지식'''
당신은 제국이 지닌 놀라운 유산인 법률에 대한 지식을 갖춘 지식인입니다.
수많은 분쟁들을 법으로써 종식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문명적인 행위라 할 수 있겠지요.
이바니아의 용병대와 주인공이 처음 조우했을 때 그 옆에 있던 관료로 처음 등장한다. 즉, 주인공의 가신들 중 제일 먼저 등장한 인물로 대부분의 가신들이 군사적 일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니키포로스 주교와 함께 유이하게 내정을 담당했다.[93] 주로 모레아에서의 제국법 적용이나 외교 쪽에서의 업무를 담당하느라 모레아에 눌러 앉아 그런지 등장이 많이 없었고 가신들 중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원년 멤버인데도 항목도 소설이 완결된 뒤에나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가 있었기에 주인공이 내치에 대해서는 안심한 상태로 오스만과의 전쟁을 진행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 공은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2.1.3.3.6.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

'''Γεώργιος Γεμιστός Πλήθων[94], 1355~ [95]'''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7
2
19
17
37
12
'''개혁정신'''
교회는 부패했고, 이전의 제도들은 더 이상 시대와 맞지 않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듯이 나라 또한 바뀌어야 합니다.
원 역사에서도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진 만큼 이곳에서도 등장했다. 48화에서 주인공이 모레아의 친왕으로서 보여준 놀라운 성과들에 대해 감동하고 이교를 믿는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걱정하면서도 그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
마침 주인공도 아카데미의 설립을 고려하고 있었기에 그를 등용하려하고 그가 작성한 개혁안을 보게 되는데 교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다.[96] 그래도 반대의견을 대주교좌 설립으로 한 방에 버로우시킨 뒤 곧바로 그를 등용한다. 이후 남부 그리스의 영주들을 설득하는 한편 미스트라에서 계속 주인공을 돕다가, 무라트와의 전쟁 이후 모레아와 제국의 미래를 위해 모레아 조정에서 나와 아카데미를 재건하고 관료양성에만 전념한다.
그 뒤 168화에서 오랜만에 등장, 테마 제도의 부활을 두고 토마스 마기스트로스와 논쟁을 벌이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마기스트로스가 로마라는 이름을 언급하자 '''로마! 또 로마인가!'''라며 울부짖으며 콘스탄티노스에게 '''저희는 로마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입니다'''라는 파격적인 말까지 한다.[97]
이후로 줄곧 미스트라에만 있다가 오스만에 대한 십자군 발동 소식을 듣고 황제가 없는 모레아 궁정으로 오랜만에 찾아가 절호의 기회를 이용한 북진에 대해 건의했지만, 프란치스코를 비롯한 참모진들의 반대로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탄한다. 그러다가 오스만에 끌려갔던 주인공이 대승을 거두고 모레아로 금의환향하자 개선식이 열리던 미스트라의 거리로 제자들과 함께 나가 승전을 축하한다. 거기서 이번에 새로 수복한 마케도니아와 이피로스 지방을 관리할 관료들을 올려낼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양성한 아카데미 1기 관료진들에게 출발 준비를 시킨다.
실제 역사에서 플레톤은 1431년부터 1449년까지 쭉 이어진 피렌체 공의회에 정교회의 대표자 자격으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피렌체 공화국의 통치자였던 코지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가 플레톤을 스승으로 모셔 그리스 철학을 공부하고 교우관계를 쌓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외전 중 하나에서 몬페라토로 이주한 주인공이 코지모 데 메디치와 협력관계를 맺었던 것과 유사하게 한 다리 건너 피렌체를 비롯한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과 협력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베네치아와 제노바를 동시에 견제하면서 피렌체를 통한 외교적 중재라는 전략적 구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걸 모티브로 한 건지 메디치가에서 그에게 피렌체로 와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세계관에서는 단호히 거절했다.
드라가시스 사후에도 끝까지 자신은 그리스인이지 로마인이 아니라는 자기 주관을 밀고 나갔고 그랬기에 최후의 그리스인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예전과 달리 모두가 로마인이라 생각한다면 아직은 로마인이라 칭해도 된다고 넘어가는, 로마인이라는 표현 자체에는 이전보다 유해진 모습을 보인다.

2.1.3.3.7. 토마스 마기스트로스

'''Θωμάς Μάγιστρος'''[98]
168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인재. 아카데미에서 게오르기오스 플레톤과 테마 제도의 부활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 첫등장이었다. 그 후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대화를 통해 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거의 일치함을 알게 되었고, 비록 경력과 실적이 없지만, 확실한 근거와 뚜렷한 확신을 갖고 있는 그를 믿었기에 아카데미 1기 생도들 중 가장 먼저 특채하게 된다.
이후 테살리아 지역에서 1세대 인재인 데미클레오테스가 닦아놓은 개혁의 토대를 기반으로 이를 정착시키고 보완하라는 임무를 시작으로 수많은 지방 행정, 군사 임무들에 투입되었고, 그 결과 행정 관료들 중 드라가시스 황제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보좌해 주는 2세대 인재로 성장하게 된다.

2.1.3.3.8. 암브로시오스 라스카리스

'''이름'''
'''암브로시오스'''
'''Αμβρόσιος'''
'''성'''
'''라스카리스'''
'''Λάσκαρης'''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2'''
14
18
19
15
16
'''배신에 충성으로'''
찬탈당한 소년황제의 머나먼 친척으로서 제국에 환멸을 느낀 건 옛날입니다. 가족의 은원보다, 귀족으로서의 명예보다 중요한 건 조국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당신은 선조들과 또래들이 지키고자 한 제국을 외면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라스카리스 황가 방계의 일원으로, 요안니스 4세와는 먼 친척에 해당한다. 주인공이 마케도니아 국경을 시찰할 때 세레에서 마중나온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고, 그 이후 주인공이 교황령으로 떠날 때까지 한동안 그를 수행한다. 주인공의 명령을 철저히 따르긴 하지만, 그 명령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 소시민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황실의 피를 타고나긴 했지만 자기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며, 과거엔 수도원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다만, 수도원에서 일하다 주인공의 수도원 개혁이 있기 전 주인공이 조국을 구하고 재건할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에 스스로 수도원을 나와 군으로 입대하여 주인공을 섬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기 이름을 밝히기 꺼려했던 할리드와는 잠깐의 만남 사이에 친분을 쌓았으며, 그의 추천으로 모레아 민회들에서 구성한 대베네치아 수비군을 이끄는 미스트라 군정지휘관의 자리에 오른다.

2.1.3.3.9. 니키포로스 주교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4
7
11
10
15
11
'''굳건한 신앙심'''
왠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신앙심을 갖추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주인공의 종교측 가신으로 결혼 상대 서류를 들고 콘스탄티노스를 찾아오는 것이 첫 등장이었다. 주인공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데모클리오테스와 의기 투합해 요안니나와 주인공을 이으려 하나 주인공은 소피아와 맺어진다. 그 뒤 모레아에서 주인공의 가신으로서 알바니아의 반란을 일으키거나 베네치아의 침공때도 민병대 수뇌부를 맏고 종교계와 친왕의 가교 역할을 맏는 등의 활약을 한다. 드라가시스의 영향을 받아 종교의 지나친 세속 개입은 없어야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이어갔고 드라가시스 사후로도 기독교 계열 인사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보이며 비록 동방 총대주교보다 일찍 세상을 떠 총대주교가 되진 못하지만 총대주교 급이었다고 인정을 받게 된다.

2.1.4. 알바니아



2.1.4.1. 지온 카스트리오티

'''Gjon Kastrioti, 13??~'''[99]
스칸데르베그의 아버지이자 크루여의 영주, 카스트리오티 가문의 당주 겸 알바니아 지방 기독교인들의 대표로 218화에서 첫 등장해 알바니아의 봉기 가능성을 넌지시 주인공에게 암시하며 스칸데르베그와 오스만을 무력화할 힌트를 얻게 해준다. 219화에선 아들을 사랑하냐는 주인공의 질문에 아들을 술탄의 수족으로 살아가게 놔두느니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그의 목숨을 거두겠다고 단언하며, 오스만을 물리치면서 동시에 아들을 살릴 방법이 있다는 주인공의 말에 놀란다. 그 방법인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는 것'을 힘겹게 받아들인 뒤 자신의 거짓 장례식에서 스칸데르베그를 낚아 전향시키는 데 성공하며, 이후로는 옛 신분과 이름을 버리고 수도원 소속의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된다.
물론 주인공과의 커넥션이 두터워졌기 때문에 권력을 모두 잃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지온의 옛 친구'라는 명목 하에 모레아와 알바니아 양쪽의 궁정 조언자가 되면서 더 커졌다.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된 이후엔 알바니아 국왕의 조언자이자 신하라는 신분에 충실하게 살고 있으며, 얼마나 충실한지 사석에서 아들인 스칸데르베그가 부담스러워 할 정도이다.

2.1.4.2. 제르지 카스트리오티

'''이름'''
'''제르지'''
'''Gjergj'''
'''성'''
'''카스트리오티'''
'''Kastrioti'''
'''직위'''
'''알바니아 국왕'''이자
'''뒤라키온의 총독'''
'''생존기간'''
1405.05.06~[100]
'''아버지'''
지온 카스트리오티
'''어머니'''
보이사바 브란코비치
'''배우자'''
미혼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36'''
'''26'''
'''21'''
'''29'''
'''21'''
13
'''검은 까마귀'''
한 때 당연하다는 말에 모든 걸 납득했던 노예는 없습니다. 자유란 당연하다는 말에 스스로를 속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리한 까마귀는 자신을 묶으려는 목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첫 등장 자체는 스칸데르베그라는 이가 알바니아의 안정화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는 할리드의 언급으로 등장했다. 딱히 맡겨진 군사력이 없는데도 안정화를 이룩하고 있는 것에서 능력이 입증되었으며 주인공이 무라트의 세르비아 원정에 종군하면서 본격적으로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십자군이 일어나자 주인공과 본격적인 만남을 가지고, 첫 만남에서 알바니아인에게 필요한 건 안정, 안전, 풍족함이라 말하고 주인공을 자유를 미끼로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 능구렁이라고 지칭하며 신경전을 벌인다. 이후 아버지인 지온 카스트리오티의 사망 소식과 동시에 터진 계승 분쟁(사실은 드라가시스의 함정이었지만)으로 인해 멘탈이 가루가 된다.[101] 결국 기껏 십자군의 공세를 막기 위해 디라키온을 이중 삼중으로 요새화해놨음에도 불구하고, 방을 빼고 강행군을 시도해 크루여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는 낚시였고 알바니아의 왕이 될 것을 강요받으면서 강제로 오스만 제국을 배신한다.
이렇게 처음엔 주인공과 대립 관계였지만, 자유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며 기존의 자신이 가진 생각에 회의감을 느끼던 중 할리드 무르타트가 자신과 예니체리를 신랄하게 까내린 것을 계기로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102] 이후 알바니아의 왕으로 세워 주겠으며 독립을 원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황제의 제안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오스만과 제국에 대해 잘 알게 되었기에 왕좌에 오르는 것만을 받아들인다.
참고로 스칸데르베그는 모레아에 합류하기 전이든, 후든 작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중에서도 군재가 특출한 인물이다. 공식 스테이터스에서도 등장 예정이 취소된 셀림 1세[103]와 1부 최종보스 보정을 받은 무라트 2세[104]를 포함하더라도 1위에 해당한다. 작중 묘사 또한 질적이나 양적으로 비슷한 적군은 일방적으로 털어버리고, 대략 2배 정도의 머릿수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질적으로 아예 극복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면 승리를 챙기는 게 가능한 초일류 지휘관으로 나오며, 특히 가축과 화공, 햇빛 등을 굉장히 잘 활용하는 전술가로서의 면모가 강조된다. 사실상 스칸데르베그의 합류를 전후로 해서 모레아의 고질적 문제였던 '지휘관의 부족'이 해소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여담으로, 소설에선 실제보다도 상황이 더 좋아졌는데 베네치아와의 양면 전선과 말 안듣는 영주들에게 시달려야 했던 현실과는 달리 알바니아가 제국령이 되면서 모든 영주들이 주인공 아래 뭉치게 되어[105] 통치하기 대단히 편해졌으며 베네치아 또한 주인공의 활약으로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었고 거기에 더해 식민지를 늘리는 데에 있어서 지속적인 외교적 견제를 받는 상황이며 1438년이면 모레아 꼬라박 실패로 모든 이권을 다 뜯기고 아예 신성 로마 제국의 봉신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맘루크 전쟁에서는 사실상 참모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람프사코스 함락, 투라한이 이끄는 아킨지 토벌, 자아노스 파샤가 이끄는 예니체리 격파등의 활약을 이어 나간다. 드라가시스 사후에도 제국 의회로 진출, 토마스의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소피아의 전횡을 막아내는, 제국인이 된 모습을 보인다.

2.1.5. 세르비아



2.1.5.1. 소피야 라자레비치

'''Софија Лазаревић'''
세르비아의 공주. 아름다운 미녀이자 상당한 야심가로, 콘스탄티노스와의 정략 결혼을 주선했다. '귀족 여성은 오로지 권력만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신분과 권력 때문에 사랑을 잃은 과거가 있는 듯 하다.
실제 역사상의 콘스탄티노스 11세 드라가시스는 1428년 에피로스의 공작 카를로 도코의 딸 막달레나와 정략결혼을 했으나 2년 만에 막달레나가 세상을 떠났고 이후 1441년 레스보스 공작 도리노 가틸루시오의 딸 카테리나와 다시 정략결혼했으나 1년만에 카테리나가 세상을 떠난 이후 다시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식도 없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주인공은 본래 역사보다 더 일찍 결혼한 셈인데 정략결혼치곤 실제보다 은근히 오래가는 셈.
주인공 콘스탄티노스에게 세르비아의 동맹관계를 주는 대신, 자신을 황비로 만들어 줄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것을 방관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놓고 불륜하겠다고 선언을 한 셈. 주인공은 오히려 이것이 후에 소피야를 실각시키는 충분한 명분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히로인보다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정치적 파트너에 가까웠고, 세르비아가 오스만의 전쟁에 성급히 뛰어들었다가 헝가리의 참전으로 간신히 현상 유지를 하고, 사실상 헝가리의 속국이 된 이후에는 유대인 공동체를 통한 정보력으로 주인공과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면서 첩보원으로 역할이 고정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NTR 허락 발언에 놀란 반응을 보이면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고, 사랑했던 사람이 시종이었고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인정할 수 없던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후 자신의 진정한 사랑의 대상을 옛 사랑인 시종이 아닌 주인공으로 바꾸면서, 제대로 된 부부의 관계를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양측의 성기능이 시원찮은지[106] 몇 년째 아이를 가지지 못한 상태고, 이 때문에 서로를 조루석녀로 놀리고 지냈으나 [107] 결국 임신했는지 1440년에 드디어 아들인 '''안드레아스''' 황자를 가지게 된다.
여담으로, 원래는 장난기 많고 잘 삐지는 평범한 소녀였지만 첫사랑인 시종이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성격이 권력에 목매는 쪽으로 변한 듯하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주인공에게 빠진 뒤에는 종종 장난기를 보여주거나, 여자 관련해서 뭔 소식이 들렸다하면 삐지는 등 10대 중후반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드라가시스 사후, 황태후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봤는데, 토마스나 다른 사람들의 견제에 부딪히고 아들이 토마스의 양자가 되어서 끝내 황태후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아들의 독립시도에 별 불만 없이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마지막 등장.

2.1.5.2. 스테판 라자레비치

'''Стефан Лазаревић, 1377~1432[108]'''
소피야의 아버지로 세르비아의 전제군주이다. 작중에서는 로마와 혼인 동맹을 맺은 뒤 자신감이 생겨 오스만에 대항해 전쟁을 시작하지만 로마의 도움은 받지 못하고, 오스만에게 탈탈 털렸다가 헝가리의 도움으로 겨우 영토를 보존한다. 그 후로 어떠한 언급도 없이 조용히 있다가, 184화에서 소피야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언급함으로 다시 드러났는데, 문제는 그 시점에 오스만의 봉신 소집령이 뜨자 스테판은 당연히 갈 수가 없으니까 제대로 응하지 못하였으며, 이에 대해 오스만의 무라트가 이를 핑계로 194화 시점에 세르비아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면서 심각한 비상상황에 놓인다. 그렇게 추풍낙엽으로 세르비아 남쪽 도시와 요새들이 무너지는 와중에 스테판은 세르비아를 지키기 위해, 아니면 최대한 저항하기 위해 이웃나라 보스니아의 '"주라지 브란코비치"'에게 세르비아의 공위를 넘기는 조건으로 원군을 요청하는 강수를 쓴다.[109][110]
결국 227화에서 역사대로 주라지에게 왕위를 넘기고 병으로 죽는다.[111] 허나, 그가 죽은 뒤 왕위에 오른 주라지가 오스만이 세르비아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십자군을 탈퇴하고 오스만의 봉신이 될 것을 맹세, 또한 세르비아 북부 지방으로 오스만군이 진군하는 걸 묵인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생전 그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졌다.

2.1.5.3. 주라지 브란코비치

'''Ђурађ Бранковић, 1377~1438[112]'''
현실에선 세르비아의 브란코비치 왕조의 개창자로, 스테판 라자레비치의 조카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운 친족이였기에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즉, 이 세계관 내에선 소피야의 사촌이 되는 셈. 그의 통치 하에 세르비아는 바르나 십자군 초기에 오스만을 격파하고 베오그라드 공성전에서 오스만군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히면서 수명을 약 30년 정도 늘리는 데에 성공했지만, 말년의 후계자 문제가 영 좋지 않아 결국 세르비아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최후의 명군이었다. 특이사항이라면, 그의 아내가 요안니스 6세손녀인 이리니 칸타쿠지니라는 점으로, 마누일 2세 또한 요안니스 6세손자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인공과 주라지의 아내는 7촌 재종숙 관계, 주라지와는 인척 관계에 해당한다.
210화에서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간의 협약에 의해 스테판 사후 세르비아를 계승함과 동시에 보스니아와 한묶음으로 만들 장본인으로 보스니아의 원군을 이끌고 등장하며, 이미 작중 시점에 50대 중반이라 늙었다고 까인다. 근데 만약 현실과 같은 수명을 보유하게 될 경우 앞으로 20년은 더 정정하게 살아갈 거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 오스만을 적대하지만 동시에 권력창출을 위해 소피야의 배후이자 세르비아 귀족들에게 차기 왕위계승자로 큰 지지를 받는 주인공 또한 적대하는 인물로, 어그로를 지나치게 끌었다가 오스만군과의 싸움 과정에서 난입한 주인공에 의해 휘하 병력을 대부분 잃고, 자기 몸만 간수한 채 수도로 빤스런한다. 이후 주인공의 대사로 미루어볼때, 그냥 난전 과정에서 크리토불러스와 마찬가지로 아예 죽여버리려 했던 모양.
그렇게 주인공측과 대립각을 세우더니, 세르비아인들의 전쟁피로가 극심해지자 십자군의 통수를 치고 오스만에게 굴복해 봉신왕으로서 왕좌에 오른다. 하지만 이 판단에 대해 십자군 당사국을 비롯한 유럽 기독교 국가들은 세르비아의 사정 따윈 알 바 아니라 눈총을 받게 되었고, 특히 헝가리를 격노시키고 만다. 결국 오스만 3차전에선 헝가리, 특히 후녀디 휘하의 흑군이 세르비아를 다시 한 번 초토화시킬 위험에 처하자 주인공에게 빌붙고, 스스로 왕좌에서 명예 퇴위하는 대신 아들을 새 왕으로 삼아 모레아의 밑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다. 다만 모레아와 헝가리 간의 밀약에 따라 주라지는 헝가리에게 신병이 인도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검은 군대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수도에서 도망나오지만 그를 따라오고 있던 야노슈에게 붙잡혀 결국 죽음을 맞는다.

2.1.5.4. 라자르 브란코비치

'''Лазар Бранковић, 1421 ~[113]'''
주라지의 여섯 자식 중 막내이자, 실제 역사에서도 주라지의 뒤를 이어 군주가 되는 인물. 작중에서도 실제와 같이 막내임에도 군주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형제들 중 막내라 정통성이 떨어지는 것을 주인공의 권위를 빌어 커버하려는 영리한 모습을 보인다. 스스로 계승권을 주장하는 대신 콘스탄티노플에 사신을 보내 세르비아의 다음 군주가 누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달라고 전해 세르비아의 다음 군주가 되고 싶다는 의중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는[114] 그의 모습에 주인공도 그가 쓸만한 인재라는 것을 눈치채고, 순순히 라자르를 세르비아의 차기 국왕으로 세워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 한은 호의호식할 수 있도록 놔둔다.
이후 주인공이 트라키아와 불가리아의 재건을 위해 일단은 서쪽 영토와 바다에서 관심을 끄려 하면서, 주인공에게서 서방 사령관이라는 고위 관직을 제수받음과 동시에 세르비아 전체의 자치권을 인정받는다. 맘루크 전쟁 때 더 이상 세르비아가 전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인공의 유지를 따를 제국보다 더한 동맹은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원병 반대파를 직접 꺾고 군대를 이끌고 참전한다. 드라가시스 사후, 알바니아의 왕인 제르지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2.2. 신성 로마 제국



2.2.1. 황제



2.2.1.1. 지기스문트 폰 룩셈부르크

'''Sigismund von Luxembourg, 1368.02.15~1433 [115]'''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보헤미아 왕국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 마지막 황제. 20대 시절 니코폴리스 십자군에 참가했다가 오스만한테 탈탈 털린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고, 당시 오스만의 봉신으로서 전투에 종군했던 스테판 라자레비치와 정면으로 맞붙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세르비아를 그닥 탐탁치 않게 보게 되었으며, 오스만에 맞서싸워 복수를 쟁취하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 드래곤 기사단을 창설했다.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으면서 각지의 영주들이 들고일어나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도 어찌저찌 이를 수습하고, 전 국토의 여력을 끌어모아 무려 30년 이상을 오스만과 싸우는 데에 몰두한 인물. 프랑스어, 독일어, 헝가리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등 수개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학식이 높고, 붕괴 직전의 국가를 규합해 이후 후냐디 가문의 인물들이 오스만에 맞서 1세기 이상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줄 정도로 행정수완 또한 뛰어나 명군의 자질을 충분히 지녔지만, 후스 전쟁을 질질 끄는 등 군재로는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중 처음 등장하자마자, 오스만-왈라키아의 침공과 후스 전쟁에 시달리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일단 후스 전쟁은 체사리니 추기경의 중재를 통해 겨우 마무리하고 실제 행보와 비슷하게 오스만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들을 한다. 이런 행보에 부응해 당시 교황인 마르티노 5세가 응하고 신성로마제국 내 일부 제후국들이 동참하여 십자군을 결성하고 세르비아를 구원하기 위해 나서게 되는데, 갑작스런 변수 속에서 왈라키아를 먼저 막는다고 세르비아를 그대로 버리는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준다.[116]
다만 오스만과의 전투를 앞두고 교황청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자마자, 교황청의 결정과 정반대로 파문 당한 드라가시스 황제에게 정식으로 협력을 요청하기를 시도했고[117], 후스 전쟁을 통해 자신의 주적이었던 얀 지슈카와 후스파의 전술들[118]을 그대로 응용함과 동시에, 수적 우세인 오스만군을 막기 위해 고대 이소스 전투의 사례를 그대로 적용시키는 그의 잠재된 군재를 제대로 터트리면서 준비한 끝에 오스만군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오스만 군의 추산치였던 2만 명을 아득히 넘는 3만~4만이라는 정신나간 물량 공세와, 술탄 무라트가 준비한 정신나간 계책[119]으로 기껏 짜둔 방진과 진형이 다 흐트러져 수비군의 이점을 상실당했고, 이런 난전 끝에 최종적으로 양측 다 비슷한 피해[120]를 보긴 했지만 전황을 확 뒤집을 전과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지기스문트의 십자군은 전쟁 수행 능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자칫하면 헝가리 본토가 역으로 위험에 직면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다음을 기약하자는 심정으로 무라트와의 협상에 응하게 되었으며, 협상 테이블에서 오스만의 요구들[121]이 후해 보이면서 알고 보면 상당히 무리한 것이었기에 난색을 표했지만, 무라트의 최후 통첩급 협박[122]에 동요하다가 결국 침통한 표정으로 결국은 오스만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에 화병이 들었는지 원 역사보다 3년이나 이른 1433년에 끝내 오스만에 대한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허나 지기스문트 황제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뜻은 백색기사 후녀디 야노시와 죽기 전 그가 세운 드래곤 기사단에게 그대로 이어져 오스만에 대한 복수의 날을 기약하며 계속 준비하다가, 그가 이루지 못했던 모레아와의 동맹이 성공하자마자 바로 복수전을 개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죽어서나마 뜻을 이루게 되었다.

2.2.1.2. 알브레히트 폰 합스부르크

지기스문트 황제가 죽은 위 제위를 이어받는다. 후녀디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에게 힘을 밀어주었고 이는 오스만의 격파로 이어진다. 거기다 교회 통합으로 인해 서방의 황제로 공인되며 권위가 상승한 건 덤.

2.2.2. 헝가리 왕국



2.2.2.1. 후녀디 야노시

'''이름'''
'''야노시'''
'''János'''
'''성'''
'''후녀디'''
'''Hunyadi'''
'''직위'''
'''헝가리 왕국 국왕'''
'''생존기간'''
1407.?.?~[123]
'''아버지'''
보이크 후녀디
'''어머니'''
알려지지 않음
'''배우자'''
실라키 에르제베트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33'''
'''32'''
'''26'''
'''28'''
18
'''23'''
'''백색기사'''
모든 귀족이 의무를 방만했을 때 홀로 일어서 온갖 희생을 감내한 행적은 당신을 기사도의 화신이라 불리게 만들었습니다. 희생과 헌신으로 무장한 당신을 적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작품 초반부터 등장이 확정되어 있었던 인물 중 하나인데, 마침내 188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실제 별명인 '백색의 기사'라는 말 그대로 순백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고 등장하며, 왈라키아-오스만 연합의 군대로 인해 전멸한 군부대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분노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기에 시체 수습은 하지 않고, 대신 갑옷을 비롯한 군장은 벗겨내어서 챙기라는 냉철한 모습도 보여준다. 또한, 세르비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 서부의 국가들의 세력이 변변찮은 상태에서 그들에 대한 기대를 접고, 주인공이 통치하는 모레아를 대오스만 전략에 있어서 사실상의 유일한 희망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후녀디가 역사상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드러내는 시기는 세르비아의 스테판 라자레비치[124]의 궁정에 있던 시기의 이후로 잡히는데, 원래라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기스문트에게 합류하는 시기가 1431년이기에 이 시기에는 딱히 직위도 없는 백수 시절이다. 또한 군사적 두각을 나타내는 건 1438년 오스만-왈라키아 연합군의 트란실바니아 침공에서 여러 군공을 세우면서이기 때문에,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고향인 트란실바니아로 일찍 돌아와서 활동을 시작했거나, 혹은 지기스문트와 합류하는 게 불발했거나 등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세르비아 십자군과는 별개로 3천 의용군을 이끌고 종군하지만, 주라지의 통수를 얻어맞아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십자군 본대에 합류해 새로 병력을 이끌게 된 후에도 투라한이 이끄는 아킨지의 맹렬한 공세에 병력이 전멸당한다. 하지만 전투에서 십자군 중군을 구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을 본 무라트에게 백색기사라 불리며 그에게서 인정을 받으며, 동시에 오스만과의 다음 전쟁에서 투라한과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지기스문트 황제가 붕어한 이후엔 신성로마제국 내의 서열정리를 하기 바쁜 알브레히트에게 권력을 이임받은 전권대사가 되었음과 동시에, 헝가리의 고명대신으로서 활동한다. 그 이외에도 교황청으로 가서 황제 특사로 활동하기도 하고, 드래곤 기사단의 첫 멤버로서 추가적인 멤버를 영입하고 오스만 3차전에 자신이 직접 훈련한 1만의 흑군을 투입하는 등 더 이상 단순한 한 명의 지휘관이 아닌 통치자로서의 면모 또한 가졌음을 보여준다.[125] 오스만 3차전을 통해 주인공에게 호감과 동질감을 표하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친제국 행보를 보인다. 맘루크 전쟁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이 북이탈리아 정세에 관여하느라 원군을 보일 여력이 없자 2300명의 군대와 폴란드에게 맘루크의 위협을 알려 성전과 주인공에게 강한 호감을 표하던 폴란드가 5천의 군대를 동맹군으로 파병시키고 몰다비아에서도 원군을 지원하게 한다.
맘루크 전쟁 이후,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의 분쟁이 격화되자 지쳐버린 헝가리 귀족들에게 왕으로 추대되며 이에 신성 로마 제국의 귀족들이 그를 궁정대신 직책에서 해임시켜 버리자 왕위를 받아들이고 폴란드의 침공을 막기 위해 제국에 원병을 요청한다. 토마스는 폴란드와 헝가리 사이를 중재하겠다고 외교적 중재와 동시에, 신성 로마 제국의 묵인하에 왈라키아의 종주권을 넘기는 대가로 블라드가 이끄는 6천의 군대를 보내 헝가리를 돕는다.

2.2.3. 기타 봉신



2.2.3.1. 르네 당주

'''René d'Anjou, ???~[126]'''
작중에선 단순히 나폴리의 적법한 계승자 정도로 나오는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기즈와 피몽과 프로방스의 백작, 바르와 로렌과 앙주의 공작, 예루살렘의 명목상 국왕이었던 인물로 부르고뉴의 선량공 필리프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원래라면 기즈 백작으로 당대 프랑스 귀족치곤 평이한 삶을 살았겠지만, 그의 형인 루이 3세 드 앙주가 나폴리계 앙주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조반나 2세에게 시칠리아 왕국의 계승권을 비롯한 여러 권리를 인정받은 뒤 1434년 만 31세의 나이에 말라리아에 걸려 급사하면서 가족들이 갖고 있던 대부분의 영지를 혼자서 모조리 상속받는 행운아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폴리 계승 문제로 알폰소 5세의 숙적이 되면서, 나폴리는 물론 자기 본진인 마르세유가 있는 프로방스마저 약탈당하고 황폐화되는 뜻밖의 재난을 겪기도 한다.
다만 이 세계관에서는 주인공에 의한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는데 바로 교황에 의해 나폴리 왕으로 공인된 것. 비록 그 과정에서 알리폰소가 사주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게 납치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드라가시스가 알리폰소를 물리치면서 다시 석방, 성공리에 대관식을 치룬다. 그랬기에 드라가시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드라가시스가 한 모든 제안에 동의를 던지는 것은 물론 결전을 준비할때도 석궁과 갑옷을 공급하는 등 완전히 친 제국파가 되어준다.

2.2.3.2.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

'''Filippo Maria Visconti, 1392.09.23~[127]'''
작중에선 밀라노의 비스콘티 공작으로 에둘러 표현된다. 10만 플로린을 지불하고 밀라노 공작위를 얻은 뒤 대 롬바르디아 왕국의 건설이라는 원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활발한 정복활동을 벌였고 실제로도 거의 성공할 뻔했던 아버지 지안 갈레아초가 1402년 열병으로 급사하고 밀라노 전체가 공중분해되자, 그의 형인 지안 마리아는 1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콘도티에리들의 도움을 받아 밀라노를 재통합한다. 하지만 1412년 지안 마리아가 암살당하면서 공작위가 필리포 본인에게 돌아왔고 그러한 배경 때문에 정복활동에 집착하다시피 한 인물이다.
형인 지안 마리아가 기벨린파에게 암살당한 점 때문인지 기벨린에 가까웠던 베네치아[128]에게 특히나 더 적대감을 드러냈고, 이 점이 특유의 잔인하고 공격적인 성향과 합쳐져 대이탈리아 전쟁의 서막 격인 롬바르디아 전쟁을 촉발했다. 현실에선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어그로를 끌어 얻어낸 소득도 거의 없이 마클로디오 전투에서의 대패와 브레시아의 상실을 겪었지만, 소설 내에선 주인공의 개입을 통해 병력 손실도 거의 없이 베네치아의 콧대를 바짝 눌러놨음은 물론이고 로마냐까지 꿀꺽하는 이득을 본다.
작중에서 포도 먹방이 유달리 많다.

2.3. 프랑스 왕국



2.3.1. 샤를 7세


'''Charles VII, 1403~[129]'''
그의 유명한 칭호인 승리왕이 붙는 시기는 백년전쟁이 완전히 끝나는 1453년의 일이므로, 샤를 7세가 대관식을 치룬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기엔 아직 영국-부르고뉴 연합과 한창 싸우고 있는 혈기왕성한 유망주에 불과하다. 208화에서 교황의 특사에게 십자군 참여를 요구받자 난색을 표하며 처음 등장하며, 이를 예상한 교황청 측에서 잉글랜드군에 포로로 잡혀있는 잔 다르크를 직접 심문하고 더 나아가 잔 다르크가 치룬 샤를 7세의 대관식의 정당성까지 확인하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꺼내며[130] 궁지에 몰린다.
209화에선 질 드 레를 불러, 잔 다르크를 구출하는 데에 필요한 몸값이 너무 커[131] 구출할 수 없겠다며 잔 다르크를 손절해 그녀의 강력한 지지세력을 흩어지게 만들고, 십자군에서 발을 빼고, 돈도 아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는 냉혈한 모습을 대놓고 보여준다.
이윽고 질 드 레를 계속 격앙시키며, 종국에는 질 드 레 본인이 가문의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잔 다르크를 구출해 십자군에 참가하게 만들겠다는 맹세를 받아내어 직접 돈 낼 것도 없이 잔 다르크를 구하고, 그 지지세력과 함께 발칸 반도로 보내 십자군에 다른 군부대를 보낼 필요도 없게 만드는 치밀한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한편으로는 로마 제국을 구하러 가는 십자군에게 '수백 년간 계속해서 실패했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식으로 비웃는다.(사실, 팩트만 따져보면 십자군 원정을 망하게 만든 건 거의 항상 프랑스 영주들이었던 게 비밀.)[132]
십자군이 실패로 끝난 뒤에 교황청에 잔의 성녀 공인과 그녀의 귀국을 요청했고, 교회통합에 있어서도 지지를 선언하며 주인공에게 뜻밖의 쾌거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 뒤로는 북이탈리아에 야심을 보이며 밀라노와 연합, 신성로마제국을 견제하며 당시 맘루크 전쟁 중이던 제국을 힘들게 만들었는데 이를 안 맘루크가 원정 규모를 배로 늘렸기 때문.

2.3.2. 잔 다르크


'''Jeanne d'Arc, 1412~[133]'''
주인공 측 주요 등장인물들의 스테이터스를 설명하는 화에서 이바니아의 칭호란에 더 좋은 칭호[134]는 누군가가 선점했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208화에서 드디어 제대로 언급되었다. 역사대로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있으며 샤를은 원래 역사대로 그녀를 구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기에 죽음이 거의 확실했으나 [135] 십자군을 선포한 교황에게 협박을 받은 샤를이 잔 다르크와 그들의 일파를 처리할 기회로 십자군 원정이 딱이다 여겨, 잔 다르크 세력의 대표인 질 드 레가 몸값을 내는 조건으로 잔 다르크를 구하는 동시에 그녀를 발칸 반도로 보내려 하고 있다. 이것으로 그녀의 십자군 합류는 확정되었기에, 머지않아 주인공과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즉, 정말로 일이 잘 풀리면 드라가시스-스칸데르베그-후녀디 야노시-잔 다르크라는 드림팀을 만들어 오스만을 작살내며 다닐수 있다.
십자군에 합류한 이후엔 오스만의 군세가 어디로 움직일지에 대해 질드레와 의논하며 백년 전쟁에서의 프랑스의 승리는 이미 증명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십자군이 승리할지 장담할수 없다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십자군은 대패하고 휘하의 영국군마저 이탈해 본국으로 돌아간다. 독자들은 이 상황에서 휘하 군세 중 다수를 잃어 갈 곳이 사라진 잔과 질 드 레가 모레아로 합류해 프랑크 영주의 인생을 걷게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에우제니오 4세가 될 가브리엘레 추기경을 호위해 로마로 향한 뒤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으로 리타이어한다.[136] 이후에도 샤를 7세가 동서교회 통합에서 찬성표를 던지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것으로 등장하지만 이후로는 본편 완결까지 언급이 없었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프랑스 국토가 전쟁의 도가니에서 벗어났고 침략 전쟁에도 회의적일 테니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고향인 동레미로 돌아가 원래 일이던 소치던 일을 하고 있으리라 추측될 뿐.
참고로 작중에서 외모 전반에 대한 묘사가 나온 몇 안 되는 인물인데,[137] 미연시답게 금발에 흰 피부와 조그마한 얼굴과 오밀조밀한 코와 입 그리고 기다란 속눈썹을 가진, 전형적인 서구식 미녀로 언급된다.[138] 물론 이런 겉모습과는 다르게 웬만한 성인 장정 정도는 압도하는 무력을 보여주며[139] 차징으로 적군을 갈아버리는 등 여러 활약을 선보인다.
한편 주인공에 대해선 '주님이 정한 운명에 거스르려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의 본질이 미연시 세상인 것을 볼 때 '''주님=미연시 시스템''', '''주님이 정한 운명=몰락한 제국은 버리고 하렘'''이라 한다면 딱 들어맞는 걸 보면 직관 하나는 엄청나다.[140]

2.3.3. 질 드 레


'''Gilles de Rais[141], 1405~[142]'''
첫 등장은 209화로, 잔 다르크를 손절하려는 샤를 7세의 말에 분노해 주종관계고 뭐고 신경 안 쓰고 그와 언쟁을 벌인다. 이윽고, 잔 다르크를 위해서 자신의 사재를 탈탈 털어서라도 몸값을 지불하겠다고 맹세하면서 원 역사와는 다르게 인생이 또 한번 크게 바뀐다. 이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217화에서 '성처녀가 이끄는 2천 명의 프랑스인 병력이 십자군에 포함되어 남하 중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정황상 이들 병력은 잔 다르크파가 원래 보유중이던 사병 및 의용군이거나, 그게 아니면 질 드 레 본인이 사적으로 고용해서 전비를 댄 병력인 것으로 보이며 이를 통해 실제와는 다르게 보유중이던 대부분의 재산을 십자군 한타에 꼴아박은 셈이 되었다. 다만, 질 드 레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었던 심한 낭비벽이 이를 통해 종식되면서 능력 또한 전성기의 기조를 좀 더 오래 이어가긴 할 듯.
231화에서 잔 다르크와 함께 십자군 분견대를 이끌어 패잔병을 수색하던 도중 후녀디 야노시와 조우하고, 그를 지기스문트가 기다리는 십자군 본대로 인도한다. 232화에선 본대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전쟁의 전개에 대해 불안해하는 잔 다르크를 안심시키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234화에선 마치 바르나 전투 당시 브와디스와프가 주장했던 것처럼 강력한 기사 전력을 통한 교란과 중보병대의 적 진형 붕괴의 콤보로 오스만군을 상대할 것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오스만과 수십 년간 싸워왔던 지기스문트에 의해 거절당하고 잔 다르크 또한 이에 동조하자 주장을 철회한다. 그 와중에 잔 다르크 본인이 아직 시성되거나 한 게 아닌데도 성녀라고 지칭한 점에 대해서 체사리니 추기경이 클레임을 즉각 걸어오고, 이에 자신의 오만한 성정을 최대한 억눌러가면서까지 십자군 내부 분열 등의 상황을 야기시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윽고 오스만군이 도래하자 잔 다르크와 함께 십자군 주력이 몰빵된 우익의 지휘를 맡지만, 나타난 것은 추산치였던 2만 명에 비해 훨씬 많아져 3만 명 이상이 된 대규모의 적군인 예상 밖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오를레앙 공방전이나 파타이 전투 등에서 항상 잔 다르크의 보좌로 활약했고 끝내 약관이 좀 지난 나이에 프랑스군 원수의 직위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143]임과 그에 필요한 능력 또한 충실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어디 안 가는지, 냉철함을 잃지 않고 전장의 분위기를 대강 파악하고는 잔 다르크에게 전황이 불리해지고 아군 진형이 붕괴했을 때의 뒷수습을 미리 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진언한다.
235화에서는 잔 다르크에게 자칫하면 위험한 도박수가 될 수도 있는 선제공격을 강권한다. 이윽고 기사대를 이끌고 선봉에 서서 차징을 시도해 제대로 성공시킨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속도를 늦추다 못해 후퇴하려 하는 잔 다르크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속공을 계속해야 한다 주장하고, 무라트 2세가 전장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시파히들이 전개된 것을을 눈치채면서 자신의 판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진형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면 술탄을 바로 공격하든지, 아니면 시파히들과 맞서 싸우러 진격하든지 둘 중 하나는 꼭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다. 그 후,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보병대를 데리고 와서 잔 다르크와 기사대를 돕기 위해 후방으로 향한다.
237화에선 휘하 보병 병력을 데리고 잔 다르크 휘하 병력과 지기스문트 휘하 병력이 후퇴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다. 후녀디 휘하의 좌익이 전멸당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흩어진 병력들을 규합해 온존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239화에서 십자군의 실패를 안타까워 하는 잔 다르크를 위로하면서도 십자군이 실패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와 동시에 샤를이 자신들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며 그것을 미연에 방지할 계획을 구상한다.
247화에서 마침내 모레아 진영에 합류, 그를 돕고자 했으나 주인공이 맡긴 것은 로마로 돌아가야 하는 가브리엘레 추기경의 호위였다. 그러나 이것도 나름 큰 공이라 판단한 질 드 레는 이것에 동의하고 추기경을 데리고 슈코더르를 떠난다. 떠나면서 나눈 잔 다르크와의 대화에서 드라가시스에 대해 '''기사라고 하기엔 명예를 쫓지 않고 용병이라 하기엔 스스로의 이득을 쫓지 않으니 그의 태도는 군인'''이라는 호의적인 평을 내렸다. 드라가시스의 처지가 조국 프랑스와 유사했다는 것도 이 평가에 한몫 한 듯 보이며 적어도 귀환 전까지 드라가시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는 걸 볼 때 가브리엘레, 잔 다르크와 같이 드라가시스의 이야기를 퍼뜨리며 서유럽에 드라가시스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하다.

2.4. 교황령



2.4.1. 마르티노 5세


'''Papa Martinus V[144], 1368~1435[145]'''
로마 시의 명문가 중 하나인 콜론나 가문 출신으로, 원래는 아비뇽의 대립 교황을 따르던 사람이지만 이후 대립 교황 요한 23세를 통수치고 1417년 11월 11일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웃긴 것은, 원래 이 사람이 주교 라인을 탄 게 아니라 법학자 라인을 타고 추기경까지 벼락출세한 케이스라서 주교 서품은커녕 사제 서품도 받지 못한 상태였고, 교황청은 하는 수 없이 마르티노 5세가 선출 이틀 후 사제 서품을, 그 다음날 주교 서품을 받는 꼼수 아닌 꼼수로 이를 무마했다. 이후 베네벤토를 회복하고, 로마의 건축물들을 복구함과 동시에 수많은 예술가들을 고용해 로마 르네상스의 토대를 마련하며, 가톨릭의 개혁을 시도하는 등 굉장히 유능했던 인물이다.
작중에선 130~131화에서 주인공에게 서신을 전달하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하며, 그 서신의 내용인즉슨 후스파 십자군 참전을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대관식과 공의회 참석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서신의 내용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나라 내전스핀에 빠질 것을 알고 있었던 주인공은 당연히 읽씹을 시전한다.
그래도 근성이 있는지, 199화에선 후스파와의 화친[146]을 이끌어내며, 줄리아노 체사리니 추기경을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로 파견해 지기스문트를 가톨릭 세력은 물론 후스파 또한 인정하는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하고, 오스만의 괴뢰가 되어있는 왈라키아를 트란실바니아의 점령지들을 넘겨주는 걸 대가로 삼아 회유하자는 주장에 분개한 지기스문트를 달래기 위해 '모레아의 십자군 참가'라는 와일드카드를 꺼내든다.
207화에서 오스만에 로마 제국의 사신이 억류되어 있어 개최되지 못하던 공의회보다 앞서 '''오스만에 대한 십자군을 선포했다!'''
208화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 측이 전쟁의 피해 때문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샤를 7세를 협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 그의 병력 일부를 십자군에 합류시킨다.[147]
이후 224화에서 디미트리오스와 가브리엘레 추기경과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들이 요청한 드라가시스 황제 파문을 교황청이 아직까지도 결정내리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마 교황도 드라가시스 황제에 대해 신뢰하고 있기에 파문을 많이 망설이고 있었으며, 이런 교황에게 베네치아 출신 추기경들이 필사적으로 황제를 옹호하면서 파문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듯하였으나...
결국 226화에서 파문을 결정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체사리니 추기경의 영향이 컸다 하는데, 이는 오스만의 개입으로 왈라키아의 군주가 바뀌면서 십자군 본대가 발이 묶이자 모레아 십자군을 빠르게 북상시켜 본대가 상황을 판단할 시간을 벌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모레아 십자군은 드라가시스의 손에 넘어갔고 이 모든 사단을 연 장본인들인 디미트리오스와 가브리엘레 추기경은 각각 장애인이 되거나[148] 인질로 잡혀버리며 자업자득의 상황에 놓인지라 오히려 악수가 되어버렸다. 물론 주인공이 서방 교회를 적대할 일은 한동안 없겠지만 로마 제국의 드라가시스에 대한 신뢰를 생각하면... 제국에서의 영향력을 모조리 상실하고 드라가시스의 파문을 막으려던 베네치아의 영향력만 늘려 평생 이불킥을 할 신세가 될 듯하다.[149]
이후 십자군의 패배와 오스만이 평화 조건으로 강요한 테오도로스의 대관식, 심지어 프랑스의 샤를 8세도 잔 다르크의 성녀 공인 및 송환을 요구하며 압박을 하자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는지 결국 쓰러져 혼절했다고 전해진다. 이 상황으로 인해 교황청에서는 벌써부터 콘클라베를 준비하고 있다.[150] 하지만 이 일련의 사태는 결국 나비효과를 일으켜 북이탈리아와 에게 해의 정세가 완전히 뒤바뀐다. 그리고 1435년까지도 회복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며 결국 교황 자리는 에우제니오 4세에게 넘어간다.

2.4.2. 에우제니오 4세


'''Papa Eugenius IV[151], 1383~[152]'''
이 시기에는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의 추기경을 맡고 있었으며, 실제 역사에선 여러 차례 교황 특사가 되어 분쟁을 중재한 적이 있지만 정작 교황이 되고 나선 바젤 공의회를 개판으로 몰고 간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 역사적 모습에 걸맞게 작중에선 201화에서 삼중성벽 증건과 오스만 제국의 트라키아 약탈로 부가 거의 다 떨어진 로마 제국에게 십자군에 금전적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하는 모습으로 처음 나왔으며, 십자군에 관련해서 모레아의 참전 문제로 논쟁을 벌이던 도중 주인공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요안니스 8세를 분노하게 해 회담이 파토난다. 다만 본인도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를 따라오는 제노바인의 부추김[153]에 마음을 다 잡는다. 결국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모레아 지역에 클레임이 있는 디미트리오스 황자와 교섭해 모레아로 향하는데, 이 이면에는 디미트리오스에게 친 가톨릭 성향을 주입하려는 의도가 있음이 암시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계획은 드라가시스의 파문을 청하면서까지 진행되었지만 224화에서 지지해 주던 디미트리오스가 장애인이 되어 계승권이 사라지면서 완전히 앞날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이후 황제와 어색한 대면을 가지면서 파문과 디미트리오스의 배후에 대해 추궁당하고, 결국 이름 모를 제노바인이 부추겼음을 사실대로 실토한다. 그런데도 십자군에 뒤늦게라도 합류해서 오스만군을 털어내면 파문도 철회되고 명예도 회복될 거라고 말하지만, 이미 황제에게 전멸당할 뻔한 주라지 공을 비롯해서 여러 십자군 영주들이 그런거 무시하고 자신도 똑같이 적대할 거라면서 십자군의 이름을 버리고 모레아의 깃발로 북진하겠다고 선언하자 크게 당황한다. 그리고 십자군이 선제공격하지 못하게 가브리엘레 추기경도 같이 종군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분노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주인공의 군세에 종군하게 되었다..(쌤통이다)
240~241화에서는 아직도 십자군에 대한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으며 드라가시스가 십자군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드라가시스 파문의 대가로 모레아 측에 제대로 찍힌 모습을 보인건 덤.[154]
242화에서는 십자군에 대한 희망회로를 완전히 중지시켰는지 드라가시스에게 술탄과의 싸움에 자신이 있는지와 십자군이 패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레아군에 대해 물어본다. 이에 이미 모레아군은 최악을 겪었고 교황청도 최악을 친구로 삼아야한다는 주인공의 조언에 자신이 진작 주인공을 만났어야 했다고 이야기 한 뒤 주인공 파문과 디미트리오스를 밀어준 것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했었다는 넋두리를 하며 자신의 지난 행적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247화에서는 교황님이 실신했으니 만에 하나 있을 콘클라베를 위해서 자신은 일단 돌아가야겠다는 이야기를 한 뒤 잔 다르크 편으로 이탈리아로 돌아가게 되며 앞으로도 그리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겠다는 약속을 한다. 주인공으로 인해 인생이 긍정적 방향으로 바뀐 또 하나의 인물인 샘이며 앞으로의 정세를 보면 서방에서 가장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도울 인물 중 한명이 될 듯하다.
그리고 최신화 기준으로 교황이 된 것은 확정이 되었으며[155] 아라곤이 콘클라베에 개입한 것을 확인하고 드라가시스를 떠올리지만 그래도 자신은 현재 교황이기에 완전한 도움을 줄 순 없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 아라곤에게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고 있다. 아라곤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주인공이 아라곤을 깨트린 뒤에는 교회통합과 그에 따른 동방제국과 서방제국이라는 2제국 체제로 교황의 권위를 뒷받침, 드래곤 기사단의 상시 십자군화와 그 성공으로 권위가 상승하고 있다.

2.4.3. 줄리아노 체사리니 추기경


'''Giuliano Cesarini, 1398~1432[156]'''
실제 역사에서 마르티노 5세가 동서대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공의회 스페셜리스트들로 구성된 추기경단을 구성할 때 그 필두에 섰던 인물로, 이후 '시뇨레'[157]라는 칭호를 하사받는다. 바젤 공의회에 주요 인물로 참가했던 이력이 있고, 이후 1431년 후스파 문제와 동서대분열을 본격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개최한 피렌체 공의회에는 아예 가브리엘레 추기경과 세트로 묶여서 의장으로 참가한다. 마르티노 5세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수완을 갖추고 있었으며, 실제 역사에선 헝가리에 교황 특사로 가있다가 바르나 전투에 참가해 후스파 전쟁에서 얀 지슈카가 쓰던 걸 보고 배운 마차를 이용한 철통방어 등의 지극히 상식적인 전략전술들을 주장했지만 그대로 씹어버린 브와디스와프 3세의 기병 닥돌 트롤링(...)에 휘말린 이후 다 이겨가던 전투에서 어이없이 전사했다.
작중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2화의 일로, 지기스문트 황제의 서신을 받고 십자군 결성과 관련해서 고심하던 교황 마르티노 5세에게 조언을 건네는 2명의 추기경 중 한 명[158]으로 등장한다. 그가 내놓은 '잔 다르크를 직접 심사하게 만들어 영국에게서 그녀를 빼내는 대신 그대로 십자군 결성에 참가하게 만만든다'라는 계책을 마르티노 5세가 승인하면서, 세르비아와 제국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군 결성이 본격화된다. 이후 추기경단 회의에 참가해있던 것으로 보이는 베네치아측 인사가 그와 눈빛교환을 하고 주인공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라면서 독백을 하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신성 로마 제국이나 헝가리 쪽에서 주로 돌아다니던 그가 직접 나서게 만든 것은 베네치아, 그리고 그 배후의 주인공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9화에서 등장해, 마르티노 5세의 칙명을 받들어 교황 특사로서 보헤미아의 수도인 프라하로 향해 후스파와 관련된 대부분의 교리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후스파가 수 년만에 프라하의 성문을 열고 지기스문트를 진정한 보헤미아의 군주로 받아들이자, 그와 함께 입성하면서 후스 전쟁의 무의미함에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윽고, 둘 사이에서 나눠지던 이야기는 왈라키아의 트란실바니아 침공과 관련된 주제로 넘어가는데, 트란실바니아 문제와 관련해서 분통을 터뜨리던 지기스문트를 어떻게든 설득해 트란실바니아<십자군이라는 공식을 간신히 주입해 병력 파견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한다. 여러모로 최일선에서 일하는 현장 간부의 애환이 느껴지는 장면. 다만, 마지막에 주인공의 파문과 관련된, 안 해도 될 말을 꺼내면서 황제의 경멸을 사게 되었다.
208화에선 마르티노 5세의 칙명을 받들어, 프라하에서 즉석 공의회를 개최하고 동시에 대부분의 후스파를 비롯해 공의회에 동의한 모든 인물들의 파문 조치를 철회한다.
217화에서 십자군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 또한 십자군 대열에 지휘관으로 끼어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26화에선 주인공이 교황의 이름으로 파문을 당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음이 드러난다. 정황상 베네치아인들이 그가 파문을 찬성하는 걸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지만, 왈라키아에서 정변이 발발하면서 헝가리발 십자군 및 세르비아의 형세가 불리해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디미트리오스와 가브리엘레 추기경이 이끄는 모레아 십자군을 이용해보려는 무리수를 던진 게 타이밍이 안 맞아서 최악의 결과로 나타난 듯. 사실상 자기 목을 옭아매는 자충수를 의도치 않게 둔 셈이다. 이윽고, 232화에서 주인공의 파문에 관여한 것 때문인지 지기스문트가 주인공과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 반대했음이 드러난다. 어쩌다 보니 공대 내부의 적이 된 셈.
233화에선 본인의 선택에 의해 모레아가 십자군 전쟁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군세를 구축하면서 오스만군을 협공한다는 지기스문트의 구상이 완전히 박살났다는 질책을 모두에게 듣게 되며, 결국 이 모든 결과는 중세 유럽 최강의 존재인 교황과 추기경 본인의 실책 때문이었음을 인정한다. 아마 이 시점부터 그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바뀌기 시작한 듯.
이후 후녀디에게 '십자군에 참가해서 그렇게 많은 공을 세웠으니, 큰 피해를 입은 부하들과 함께 이쯤에서 십자군에서 슬쩍 빠진다고 해서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취지를 담은 질문을 던지지만, 그가 기사의 덕목 중 하나인 열정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이에 회의에 참가한 다른 인물들과 함께 감화된 모습을 보인다.
234화에선 아직 시성되지 않은 잔 다르크를 '성녀'라고 부르는 질 드 레의 말에 대놓고 언짢아하면서, 그들과 언쟁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오만한 질 드 레의 성정과, 그에 못지 않게 깐깐하고 날카로운 본인의 성정이 제대로 맞붙으면서 불화가 이어지지만 잔 다르크가 숙이고 들어가는 식으로 개입하면서 대치상황은 일단락된다. 이후 십자군 진형에 있어서 지기스문트를 보좌하면서 중진 및 예비대를 지휘하게 되었고, 오스만 본대가 전장에 도래하자, 힘든 싸움이 될 것임을 예상하고 지기스문트 옆에서 조용히 기도한다.
235화에선 잔 다르크의 호칭 관련 문제로 질 드 레와 말싸움을 벌이던 모습은 어디가고, 프랑스군이 압도적으로 잘 싸우는 모습을 보이자 즉시 진군을 통해 그들의 측면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지기스문트 또한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중앙 전선을 크게 밀어붙인다.
236화에선 오스만군 전열의 노예병들이 품고 있던 전리품들을 약탈하기 위해 중진 병력들의 진형이 조각나면서 전선 전체가 뭉그러질 상황에 처하자, 그들을 오스만의 기병대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1천 명의 예비대를 이끌고 시간을 끄는 역할을 자처해서 맡는다. 오스만의 기병 전력과 임무의 위험도를 생각해보면, 이 시점에서 사실상 자살특공을 각오한 셈. 이에 시간끌기 역할을 원래 몸소 맡을 생각이었던 지기스문트는 그에게 의문을 품고, 여기서 오래 전부터 튀르크의 준동을 눈여겨보고 있었음과 반드시 오스만을 지금 막아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보인다. 이를 통해 지기스문트를 설득시키고, 그의 짤막한 기도에 성호를 긋는 것으로 대답하면서 400명의 기병대와 600명의 보병대를 이끌고 3배 이상의 수적 우세에 놓여있는 아킨지들을 막아서기 위해 출동한다.
전선으로 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휘하 병력이 아킨지와 맞닥뜨리게 되자, 그가 한 판단은 400명의 기병을 모조리 하마시켜 보병 방진에 참가시키고 군마는 몸빵으로 쓰는 것이었다. 이는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과감하면서도 오래 버틸 수 있는 전략이었고, 이에 무라트 2세 또한 감탄을 표한다.[159] 이후 죽음을 각오하고 방진을 유지한 채 궁기병 및 중기병들에게서 꽤 오랜 시간을 버텨내는 데에 성공하고, 이는 주인공의 자기희생적이고 영웅적인 행위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얻었음이 암시된다. 하지만 결국 말들이 전부 화살에 맞아 죽자 완전히 포위당하게 되며, 그 상황에서도 방진을 풀지 않고 맞서싸우다 휘하 병력이 대부분 전사하거나 궤주하고 본인 또한 전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을 각오한 용감한 행위 덕분에 중군이 후퇴해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고, 좌익의 후녀디 또한 전투수레 방진을 펼쳐 오스만군 주력 기병대의 공세를 별 피해 없이 막아내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비록 주인공의 파문과 관련해서 큰 오점을 남기긴 했지만,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생애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을 본받아 자살과도 다름없는 행위에 나서 십자군의 열세를 다시금 백중세로 돌려놓은 숨은 영웅이 되고 퇴장한 셈.
덤으로, 그가 죽게 된 경위는 실제 역사에서의 죽음과 거의 정반대의 모습에 해당한다. 실제 역사에선 바르나 전투 당시 상식적인 범위 내의 전략전술을 제시했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전선에선 한걸음 물러서있다가 브와디스와프 3세의 죽음 이후 난전이 벌어지면서 중상을 입고 홀로 도망쳤고, 그 와중에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폭도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변한 헝가리군 분견대에 의해 어이없게 피살당한다. 반면 이 세계관 속에선 십자군을 위해 전황을 다 알고서도 무모한 돌격에 나서, 포위 이후의 난전 와중에서도 끝까지 방진을 풀지 않고 맞서싸우다 휘하 병력들과 함께 하늘에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정도의 멋있는 최후를 맞이했다. 사실상 이 작품 내에서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인생, 정확히는 최후가 바뀐 인물 중 한 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5. 왈라키아 공국



2.5.1. 단 2세


'''дан II данєщи[160], 13??~1438[161]'''
왈라키아의 명군인 미르체아 1세의 5촌 조카로, 첫째 사촌인 미하이 1세가 정치를 개판으로 하자 반란을 일으켜 그를 살해하고 공위에 올랐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는 둘째 사촌인 라두 2세의 수 차례의 반란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기 공위를 되찾아왔으며, 그러면서도 정국의 혼란으로 인해 산산조각난 왈라키아의 국력을 다시금 끌어모아 영웅적인 반오스만 투쟁을 이끌어낸 15세기의 진정한 근성가이. 이 사람이 있었기에 이후의 블라드 용공블라드 가시공의 활약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이 세계관에선 작가의 실수로 숙적인 라두 2세와 완전히 행보가 뒤바뀌어서 228화에선 라두 2세가 오스만과 싸우다 전사하고 정작 본인은 오스만에 먼저 머리를 숙이고 2천 명의 지원군을 십자군을 막으러 파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백성을 지키기 위해 한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후녀디의 흑군에 의해 왈라키아가 초토화되는 걸로 돌아왔다. 그나마 드라가시스의 저지로 후녀디가 초토화를 멈추고 블라드에게 평화적으로 공위를 넘기라는 제안을 하지만 후녀디를 믿지 않던 단은 이를 거절하고 결국 전쟁을 멈추고 싶던 보야르들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2.5.2. 라두 2세


'''Раду II Празнаглава, 13??~1432[162]'''
미르체아 1세의 둘째 아들이자 현실에선 오스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사촌 단 2세에 맞서 공위분쟁 겸 골육상쟁을 수 차례 일으켰던 인물로, 당시 막강했던 오스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정작 본인 능력이 하도 딸려서 번번히 단 2세에 패배하고 말았다. 권력에 정신이 팔려 왈라키아 전역이 오스만의 세력권 하에 들어가게 하고, 자발적인 수많은 영토 손실이라는 매국노짓까지 해먹은 건 덤. 이 때문에 그에겐 프라즈나글라바(Praznaglava)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이 단어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로 대머리, 동시에 백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세계관에선 작가의 실수로 숙적 단 2세와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어서,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고 오스만에 적대하는 참된 군주가 되었다. 거기에, 십자군 측과 트란실바니아 관련해서 조약을 맺어 전쟁 수행을 그만뒀다는 이유로 오스만 측에 의해 처형당해 완벽한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 건 덤.

2.5.3. 블라드 2세


'''Влад II Дракул[163], 1395~1458[164]'''
본인의 업적보단 블라드 가시공의 아버지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사실 본인도 혼란기의 왈라키아를 비록 오스만이라는 뒷배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단번에 휘어잡는 등 한 능력 했었다. 다만, 헝가리 왕국에 붙었다 오스만 제국에 붙었다 하다가 후녀디 야노시의 어그로를 어마어마하게 끌었던 건 확실한 실책.
사실 다른 것보다도 중요한 게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이 시기에는 그가 콘스탄티노플에서 황도를 지키는 지휘관으로 근무했다는 점이었다. 황궁에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는 등의 기록을 보았을 때는 확실히 제국 내에서도 잘나가는 지휘관이긴 했던 듯한데, 현실에선 로마 제국이 너무나도 쇠락해 자기가 왈라키아의 공위를 확보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판단하고 헝가리의 지기스문트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이 세계관에서라면 어떨까? 더군다나, 이 시기엔 아들인 블라드 3세도 아직 오스만에 볼모로 가있지 않은 상황이다.
247화에서 잔 다르크가 가브리엘레 추기경을 데리고 리타이어하면서 제국을 돕지 못하게 된 이후, 작가는 모레아와 오스만의 3세대 인재로 함자 베이[165], 앙겔로이 베이[166] 등과 함께 그를 언급하면서 등장이 확정되었다. 참고
그리고 261화에서 키릴코스에 의해 이름이 언급되며 등장이 머지 않았음을 알렸다.
271화에서 첫 등장을 하는데 거기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음흉한 모습을 보인다. 왈라키아의 군주 자리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기에 제국에게 코가 꿰이기는 싫기 때문. 그리고 저녁으로 3끼를 먹는 대식가적인 모습을 보여 키릴코스의 공작원을 눈물짓게 하는데 이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있을 때 딱 오스만의 포위가 시작되어 배급으로 버텨야 했던 아픈 기억 때문. 결국 주인공이 그의 식비를 대기로 한다.
이후 주인공 밑에서 조력자로 일하면서 불가리아 내에서의 반란 책임자와 왈라키아의 클레임 주장자로서 향후 있을 십자군의 진격을 쉽게 하는 역할을 맡지만, 동시에 자신이 왈라키아 공위를 얻지 못할 시 현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제국을 버릴 것임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결국 십자군 출범 이후 후녀디와 흑군이 왈라키아에서 학살을 저지르는 등 지나치게 심한 대우를 하자, 제국에 충성하는 키릴코스 주교에게 맞서 오스만에게 붙으려 한다.
이를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주인공은 후녀디와의 협상 끝에 왈라키아에서 흑군이 날뛰는 것을 막았고, 동시에 단 2세를 보야르들을 통해 차도살인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그대로 타르고비슈테로 가 왈라키아의 적법한 공작에 오른다. 공작이 된 이후엔 주인공과의 약조[167]를 지켜 다뉴브 강 하류에 빠르게 선적항을 건설하고 다수의 인부를 배치하는 등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결전이 제국의 승리로 끝나자 헝가리의 복수심과 영향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인공에게 제국의 관직을 보내달라는 청원을 하며 주인공이 거절하자 대신 자신의 장남을 제국에 유학보내겠다는 사실상의 인질 제공을 한다.[168] 그런데 378화에서 차남이 제국에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이는 장남으로 알려진 블라드 수도공은 사생아 출신이라 블라드 계보 출신을 적은 족보에도 이름이 없고 미르체아가 장남, 가시공이 차남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장남을 보낸 것이 맞다. 다만 여기서 가시공이 신성로마제국에 있어야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는데 드라가시스 앞에서 한 말은 그냥 한 말이고 실제로 삼남인 라두를 차남으로 속여 보냈을 수도 있으니 뭐..[169]
이후 자신의 아들인 미르체아랑 주인공의 딸인 헬레네가 결혼하게 되며 사돈 관계를 맺는다. 제국 내에서 입지를 상승시키기 위해 맘루크 전쟁때도 미르체아에게 기병 1천을 쥐어주며 원군으로 파병한다. 비록 원 역사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원 역사의 암살 행보만은 피하지는 못했고 이는 이후 미르체아와 블라드 수도공간의 내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2.5.4. 블라드 3세


'''Влад III Цепеш[170], 1431.11.10~[171]'''
우리가 잘 아는 드라큘라의 원형이자, 당대의 대 오스만군 믹서기. 378화 시점에선 15살이다.
1432년 시점에선 아마 아버지인 블라드 2세와 함께 로마 제국에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주인공측에 합류할 확률이 매우 높다. 현실에선 자기 성깔 건드리면 귀족이고 평민이고 뭐고 아무나 평등하게 꼬챙이에 꽂아서 쳐죽이고 다녔던 뒤틀린 심성이 과연 이 세계관에선 어떻게 변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172]
378화에서 드디어 처음 등장하는데 형인 미르체아에 이어 제국에 인질로 오게 된다. 그의 성격이 비뚤어진 이유를 알고 있던 드라가시스가 잘 교육시키고 예우해준 덕분에 원 역사의 비뚤어진 성격은 없이 지극히 정상적이다.[173] 드라가시스는 본디 가시공을 헬레네와 이어줄 생각이었지만 헬레네는 미르체아를 선택한다. 그래도 블라드가 헬레네가 자신이 바란 여성상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면서[174]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왈라키아로 돌아갈 생각이냐는 황제의 물음에 자신의 계승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제국의 군인으로 남겠다고 말할 정도로 제국이 마음에 들은 상태. 주인공도 블라드 2세가 허락하면 토마스 밑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왈라키아 대공 블라드 3세가 아닌 로마 제국의 명장인 블라드로 역사에 남을듯 하다. 실제로 제국의 군인으로서 맘루크 전쟁에서 예비대 2천을 맡아 활약하며, 계승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제국에 남겠다는 결정을 주인공이 반기면서 고위 군직에 오른 상태다. 주인공이 눈여겨볼 정도의 군재를 가지고 있는 인재로 빠르게 재능이 개화하고 있다.

2.5.5. 헬레네 드라가시나


주인공과 이바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다. 성격이 어머니를 닮아 여장부 성격이 강한데 자신을 사생아로 봐주지 않았던 미르체아에게 반해 그와 결혼하게 되고 맘루크 전쟁에도 남편을 따라 참전, 남편이 흔들릴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으로 활약한다. 드라가시스 사후 왈라키아로 넘어가 내전에서 미르체아 편으로 참전, 어머니와 같이 왈라키아를 쓸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활약을 벌인다.

2.6. 아라곤 왕국



2.6.1. 알폰소 5세


'''Alfonso V el Magnànim, 1396.04.24~[175]'''
일명 '현왕 알폰소'로 불리는 인물로, 재위기간 동안 시칠리아와 나폴리, 사르데냐, 코르시카 등지를 정복하고 마르세유에 상륙해 프로방스 공국을 격파했으며 오스만에 적대하는 스칸데르베그 등의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명군. 그의 치세 하에 아라곤 왕국은 전성기에 들어섰고 스페인 연합왕국의 성립 이전까지 잠시나마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아라곤이 최강국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 활발한 정복활동 외에도 나폴리 현지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학문 연구를 지원했으며, 포병의 진가를 이른 시기에 알아채고 전문 포병대를 육성하는 등 팔방미인에 가까운 능력을 보인 인물.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주인공의 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언급 자체는 작중 초반에 공개된 설정에서 아라곤이 로마 제국, 정확히는 라틴 제국의 제위를 노리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면서 대략적으로 나오긴 했지만, 267화에서 다시 한 번 언급이 된 뒤 269화에서 본격적으로 암약하는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목적은 당연히 파문으로 인해 서방과의 교류가 단절된 모레아에 대한 클레임을 교황한테서 얻어내, 그리스를 꿀꺽하는 것. 그 첫 단계가 바로 콘클라베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황령을 도와주겠다며 구슬리는 것으로, 추기경단이 이에 혹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효과가 있나 싶었지만 하필이면 차기 교황이 주인공에게 호의를 품은 가브리엘레 추기경, 에우제니오 4세로 선택되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꼴이 되었다. 더군다나 주인공이 교회 통합이라는 빅딜을 성사시키려 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알브레히트가 이에 적극 협력하려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이후 전개에 따라 그리스에서 땅따먹기를 하기는커녕 주인공과 교황의 공조에 코가 꿰여 오스만과의 싸움에서 국력만 소모하고 얻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제노바하고 손을 잡기는 했지만, 주인공도 다시 베네치아와 손을 잡았을뿐더러 제노바 또한 이득이 없다 싶으면 언제든 편을 갈아탈 수 있는 상황이라...
결국 모든 독자들의 예상대로 주인공과 후냐디의 계책에 완벽히 박살나 포로로 잡히게 되고 기존의 영지외의 어떤 땅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상 유럽 세계에서의 사형 선고를 받게 되자 애걸복걸 하지만 질질 끌려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복수심에 불타 올라 베네치아와 손잡고 제국을 해상에서 견재 하지만 그 사이에 계속 생각을 고쳐 주인공이 성전의 깃발을 올리고 있으니 자신도 이에 협력해 북아프리카의 무슬림을 몰아내고 주인공이 레반트의 무슬림을 몰아내 지중해 기독교 제국을 세우자는 큰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복수심의 칼날을 제노바로 돌리고 오스만의 중재하에 '''막지 못했으니 친구가 된다'''는 신조 하에 제국과 사실상의 동맹관계를 맺는다.
그 뒤 맘루크 전쟁이 터지자 이를 자신의 형벌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 판단, 교황에게 적극 어필해 26척의 함대를 구성해 제국을 지원해준다. 이후에도 제국과의 동맹을 계속 유지해나가고, 주인공 사후에 제국 또한 나폴리와 밀라노가 아라곤과 신성 로마 제국을 함께 견제하자고 하는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며 아라곤 왕국과의 동맹을 유지한다.

3. 이슬람 진영



3.1. 오스만 술탄국



3.1.1. 술탄



3.1.1.1. 메흐메트 1세 첼레비

'''چلبی محمد / Mehmed Çelebi, 1381~1421'''[176][177]
오스만 제국의 제5대 술탄. 마누일 2세와는 후견인과 피후견인 관계로 서로를 아버지, 아들로 칭한다. 총애하는 막내 아들(무스타파)의 미래를 부탁할 정도로 사적으로는 친밀한 사이인듯. 이 사적인 관계로 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은 지금까지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해왔다.
13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누일 2세와 콘스탄티노플의 블라헤르네 정궁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막내아들인 작은 무스타파를 마누일이 후견인이 되는 식으로 맡기며, 아들인 무라트 2세와 관련해서 필연적으로 벌어지게 될 골육상쟁을 생각한 것 때문인지 식사를 멈추고 숨죽여 운다. 이윽고, 식사를 마저 마치고 떠나면서 다시는 그러한 식으로 마누일과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 직감한다.[178]
이후 아무리 세르비아와의 양면 전쟁을 부담하고 있다 해도 모레아의 친왕인 주인공(콘스탄티노스)의 남부 그리스 원정에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으로 대응했는데, 13화의 식사 장면에서 암시되었듯이 막내 아들의 안위를 마누일 2세에게 부탁하기 위해서였음이 밝혀졌다. 술탄으로서의 자신보다는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택했다고.
46화에서에 아들 무라드에게 시해당했다. 작중 표현을 빌리자면 '''"술탄이란 이름으로 지켜주지 못할 바에야...아버지로서 지켜주리라."''' 술탄으로서는 막내아들을 죽여 제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버지로서 막내아들을 살려주고자 하는 마음을 토로한 것이다.[179]

3.1.1.2. 무라트 2세

'''이름'''
'''무라트'''
''' II. Murat'''[180]
'''성'''
'''오스마놀루'''
'''Osmanoğlu[181]'''
'''직위'''
'''오스만 술탄국의 술탄'''[182]
'''생존기간'''
1404.06.16~1446.06.01[183][184]
'''아버지'''
메흐메트 1세
'''어머니'''
알려지지 않음
'''배우자'''
현 시점에선 독신[185]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34↑'''
'''24'''
'''25'''
'''28↑'''
'''25↑'''
'''22↑'''
'''오르한의 맹세'''
친우를 향한 신의보다 대의를 택한 결정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오르한은 정복자로서, 시대의 요구에 응한 자로서 성세를 허락받았습니다. 이처럼 시련은 언제나 대의를 택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오스만은 이번에도 대의를 택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제6대 술탄. 50화와 51화에 걸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왕위를 계승받았다. 술탄으로서 자신들의 적이 누구냐고 신하들에게 물어, 예니체리가 콘스탄티노스를 지목하니, 콘스탄티노스의 행적을 경계하며 그를 숙적으로 인식했다. 요안니스 8세가 사주한 무스타파의 반란을 격파하고 동로마를 위협해 모레아와의 전쟁을 이끌어 낸다. 뛰어난 무장이자 강경파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관대한 성품으로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 같다는 평가까지 받는 인물. 능력치도 전쟁능력으론 주인공보다 높다. 거의 살라딘 급의 관대한 지도자로 미화되어 나온다.
주인공 드라가시스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꺾어야 할 숙적으로 인식하여 신중하고 철저한 태도로 그와 상대하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드라가시스와의 전투에선 오히려 좀 말리는 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거나 드라가시스와의 전쟁에선 유리한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 아테네로 들어간 주인공이 공성전을 준비하자 당대 최신 무기인 대포 16문을 준비하기도 한다. [186]
본편에선 친왕의 잔혹한 행위나 자기 심복까지 버려가면서 저항을 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고 도대체 천년제국이라는게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해야하느냐며 절규하고 그를 진정한 숙적으로 받아들인다,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실현하는 것도 실현하는거지만 도의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하게 된 듯. 사실 저러는 본인도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를 강탈한 패륜아라서 사돈 남말할 처지는 아니긴 하다.[187]
현재 시점까지는 그야 말로 1부 보스 포스를 철철 풍기면서 오스만에 쌓인 막강한 국력과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의 시너지를 통해 수십 화에 걸쳐 주인공을 몰아넣지만, 첫 전쟁에선 소 무스타파를 상대하기 위해, 두 번째 전쟁에선 십자군에 입은 손실이 너무 심해 협상 테이블에 착석했고, 각각 찬다를르 할릴이라는 인재의 영입과 로마 제국 출신 3세대 인재의 등장을 통해 어떻게든 극복하는 데엔 성공했다.
그러나 뒤이은 결전에서 7만의 대군을 동원하나 3만에 불과한 십자군에게 완벽히 패한 뒤 원역사대로 방구석 폐인으로 전락해버리고 사실상 실권은 할릴에게 넘어가버린다. 그리고 1446년 본인의 아들 메흐메트가 정변을 일으키고 그에게 독이 든 포도주를 건네 받으며 본인의 아버지와 똑같은 운명을 맞는다.
여담으로, 무라트는 작중에서 맘에 들어하지 않던 아버지인 메흐메트 1세를 암살하고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메흐메트에 대해 비웃는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정작 그 자신이 군주감에 맞지 않는 모습으로 자라온 맏아들 아흐메트에 대해 걱정하거나 하는 식으로 아버지와 술탄이라는 두 정체성 속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더 많이 보이며 결국 아흐메트를 전장에서 후위를 맡기게 하는 부분을 볼때 자식 문제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호부견자가 따로 없는 셈.

3.1.1.3. 메흐메트 2세 파티흐

'''محمد ثانى‎ فاتح / Mehmed II Fatih'''
'파티흐'라는 별명은 ''''정복자''''를 의미한다. 실제 역사를 감안하면 진정한 최종 보스가 될 듯. 다만 194화 기준으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188] 주인공은 일단 메흐메트의 아버지 무라트 2세와 혈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며 이 사람이 일단 즉위하려면 최소 20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최후반부에나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할릴이 하즈 바이람 벨리의 예언 중 하나였던 아직 열살도 안 된 꼬맹이가 예언을 이룬다는 말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걸로 최초로 언급되었으며 361화에서 자아노스 파샤를 비롯한 예니체리들을 감화시키며 최초로 등장했다. 그 뒤로 원 역사대로 할릴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으나 계속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더러운 짓은 할릴이 다 하고 그 이득은 자신이 먹겠다는 야심을 품고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1446년, 정변을 일으키게 되고 무라트와 할릴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전사했을 때 기준으로 나이가 한국 나이로 16살, 만으로 15살이다.
요안니스 8세가 살해당한 외전에선 히로인으로,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 TS당했으나 대외적으로는 남자로 알려져 있다. 해당 외전은 작가가 구상단계에서 기각한 엔딩에 해당하기 때문에 본편에서도 똑같이 등장하진 않을 것이다. 일단 첫 등장에서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남자 쪽으로 기울었고 친위 쿠데타에서 아들이라고 밝혀졌다.
다만 작가가 일단 해피엔딩이라 했기에 원 역사와 달리 로마[189] 정복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며 정복왕을 뜻하는 파티흐라는 호칭도 못 얻을 가능성이 높다. 즉, 엄청난 강적이지만 끝내 쓰러지는 안습한 처지에 놓일 듯하다.

결국 술탄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선임자의 행적으로 인해 미래가 없는, 사실상 원 역사의 콘스탄티노스 11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190]그 상황에서도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싸우는 등 노력하지만 결국 포케아 회전에서 토마스에 의해 전사한다.

3.1.2. 봉신



3.1.2.1. 찬다를르 할릴 파샤

'''이름'''
'''할릴[191]'''
'''Halil'''
'''성'''
'''찬다를르'''
'''Çandarlı'''
'''직위'''
'''오스만 술탄국의 토후들의 대표이자 사드라잠'''
'''생존기간'''
13??.??.??~1446.06.05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18↑
11
'''24↑'''
'''29↑'''
'''24↑'''
'''29↑'''
'''맹세로 기적에 맞서는 자'''
결코 불가능하리라 여긴 일들이 수차례씩 일어났습니다. 설마라는 가정은 더 이상 무의미합니다. 만일에 대비하는 것만이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148화에서 첫 등장. 오스만 제국 초기 때부터 황실 오스마놀루 가문과 함께한 토후 가문인 찬다를르 가문 출신. 실제 역사에서는 무라트 1세를 보필한 조부 대(大) 찬다를르 할릴 파샤[192], 바예지트 1세를 보필한 숙부 찬다를르 알리 파샤(Çandarlı Ali Pasha), 무라트 2세를 보필한 아버지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Çandarlı Ibrahim Pasha)와 마찬가지로 사드라잠[193]을 지냈다[194]. 사드라잠으로서 무라트 2세와 메흐메트 2세를 보필하였으며 특히 메흐메트의 경우 메흐메트의 스승 역할까지 맡았으나 메흐메트의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반대한 죄로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정복 직후 처형당한다.[195]
소 무스타파가 일으킨 아나톨리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에 나선 무라트 2세의 진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첫 등장. 권력이 너무 커져버린 공신 세력을 숙청하고 중앙집권화를 고심 중인 무라트를 찾아가 아나톨리아에는 여전히 무라트에 충성하는 공신들이 많으며 공신들을 숙청하더라도 자신은 그 도시를 알라께 바치기 위해 여전히 무라트에 충성할 것이라는 맹세를 한다.
점성술사와의 일화 회상을 통해 찬다를르 할릴 역시 무라트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실력을 인정하며 선지자의 예언을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 마지막 장애물로 보고 있고, 속심을 보면 점성술사와의 이야기 회상에서 나온 하늘의 침묵과 주인공이 행했던 기적 때문에 상당히 불안해하며, 가끔씩은 이러한 불안이 폭발하기도 한다. 예언을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땅을 할양 또는 돌려주거나 과거의 적인 베네치아와 손을 잡고, 이와 동시에 적인 기독교 진영을 분열시키기 위해서라면 비열한 계책도 서슴치 않는다. 여기에 그의 필살기나 다름없는 가불기 급의 치밀한 계획 수립이 맞물리니 주인공에게 굉장히 위협적으로 작용하는 건 덤. 하지만 능력이 모든 면에서 주인공에게 한 끗씩 밀리다보니, 그가 무라트에게 바친 계책은 절반의 성공 또는 실패로 끝난다.
무라트가 퇴위한 이후부터는 본격 어마어마한 포스를 뽐내기 시작한다. 갈리폴리로 제국을 틀어막고 자기 목숨을 걸면서 협상을 거는 등 가불기 필살기들을 연발한다.[196] 물론 그 과정에서 오른손을 잃으나 어쨌든 협상은 타결시켰고, 이때 잘린 오른팔을 광기에 찬 웃음을 보이며 인두로 지졌다고 한다. 그걸 본 주인공은 당연히 질린 표정을 지었고. 그 뒤로도 오스만을 살리기 위해 온갖 조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1446년 제국과의 전쟁이 재개되고 그와 동시에 일어난 메흐메트의 쿠데타로 추포되어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난다.

3.1.2.2. 이스하크 파샤

'''이름'''
'''이스하크'''
'''Ishak'''
'''성'''
'''이스하코비치'''
'''Ishaković'''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5↑'''
16
18
19↑
8
14↑
'''흔들리지 않는 자'''
참혹한 패배도, 어떠한 실수도 당신을 동요시키지 못합니다. 술탄을 향한 충성과 오스만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기트 베이의 양아들이자 투라한의 의붓형제로, 일설에 의하면 보스니아인 출신이다. 현실에선 무라트 2세의 친정에 앞장서 헤르체고비나를 평정하고 점령지의 태수로 임명된 인물로, 이후 그의 가문은 손자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태수직을 유지하면서 알바니아 평정 등에도 참가했다.
찬다를르 할릴에 의해 소 무스타파가 봉기하는 와중에도 충성심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아나톨리아의 공신 세력 중 한 명으로 언급되며, 무라트 2세가 마르마라 해협을 건너올 때까지 오스만령 아나톨리아를 사수한 업적을 인정받아 그 투라한과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장수 및 토후들의 무리의 필두에 서서 무라트 2세의 승전을 경축한다. 이러한 행보를 통해 언제나 오스만을 배신할 수 있을 다른 토후들과는 완전히 다른 충성파로 묘사된다.
한편, 무라트에게 부르사가 아닌 자신의 영지, 마니사에서 축하연을 열 것을 청하면서 그를 놀라게 만드는 등 의외의 모습도 많이 보이는데, 그 이유인 즉슨 그가 무라트의 첫째 아들인 아흐메트 왕자의 후견인이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정국이 안정된 이후 무라트가 다시금 아흐메트의 친아버지 역할을 해야 하는게 맞지만, 그가 아흐메트의 친아버지가 아닌 술탄으로서의 역할을 택하면서 종종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특히, 무라트가 루멜리아 전역에서 12세 이상의 소년병까지 징집하고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아흐메트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처우를 내리는 등 십자군을 막기 위해 폭주하다시피 하자 의견 충돌의 수위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으로 심해지고 있으며, 무라트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하긴 하지만 그가 죽은 뒤 술탄의 자리가 가장 총애하는 아들인 알라앗딘이나 예언에 의해 선택받은 메흐메트에게 넘어가기라도 하는 순간 반기를 들고 내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결국 결전에서 아흐메트가 후위를 맡았다는 소리에 분노하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퇴각했으며 그 뒤로도 할릴의 부탁을 들어 카라만 원정군을 지휘하는 등 오스만에 대한 충성은 여전하나 할릴에 맞서는 파벌을 이끌며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맘루크 전쟁에서도 오스만의 지휘관으로 나서나 포케아 결전에서 전사한다.

3.1.2.3. 투라한 베이

'''이름'''
'''투라한'''
'''Turahan'''
'''성'''
'''투라한오올루'''
'''Turahanoğlu'''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8↑'''
'''23↑'''
12
16↑
13
8
'''위기 속의 충신'''
오스만의 깃발 아래엔 언제나 죽음보다 불충을, 불명예를 두려워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명예는 흔들리지 않는 충성에서 비롯됩니다. 충신의 자식은 이번에도 충신으로 남을 것입니다.
사루한의 명신이자 코소보, 스코페의 정복자인 이기트 베이의 아들. 오스만의 또다른 주요 지휘관인 이스하크 파샤와는 의붓형제에 해당한다.
첫 등장은 불가리아의 총독으로서 큰 무스타파 휘하의 불가리아 봉기군을 상대로 우주방어를 펼치는 모습이었고, 이후 오스만 1차전 당시엔 루멜리아에서 여유병력을 모아 무라트 2세의 본대와 합류하고 여러 번의 주요 대외원정에도 종군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한다.
처음엔 불가리아 총독이었지만 작품이 전개되면서 무라트의 친위대장이자 아킨지의 최고지휘관이 되었으며, 어찌 보면 오스만령 루멜리아가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제로 변화해가는 과정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원래라면 무라트 2세와 메흐메트 2세 시기를 거치면서 그리스가 정복된 뒤 테살리아의 봉건귀족으로 전봉되었을 테지만, 오스만이 그리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꿩 대신 닭, 아니 닭 대신 꿩으로 오스만 중앙귀족 중에서도 핵심계층에 편입된 것.
오스만측 지휘관의 쌍두마차급으로 묘사되는 이스하크가 비교적 유하고 무라트에게 태클을 자주 거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비해, 이쪽은 굉장히 과묵하다. 정확히는 '술탄이 내린 명령에 토를 달지 않는다' 정도로 볼 수 있을 듯.
그리고 무라트가 친위 쿠데타로 죽고 난 뒤에도 오스만에 충성을 바치고 맘루크 전쟁이 터지고 지휘관으로 참전하나 제르지한테 패배해 전사한다.

3.1.2.4. 아흐메트 왕자

무라트 2세가 공인한 장남[197]. 상당히 잔혹한 아버지에 비하면 매우 유약하고 어찌보면 인본주의 성향이 강한 왕자이다.
그의 어머니는 무라트가 술탄 찬탈을 위해 에디르네로 떠난 뒤 자신이 인질로 잡혀 남편에게 폐를 끼칠 거 같다는 이유로 자결을 했다고 하며, 이후 무라트의 친우인 이스하크 파샤가 다스리던 마니사에서 지내며 이스하크 파샤를 양아버지이자 후견인으로 생각하며 성장해 왔다고 전해진다.
그의 등장은 소 무스타파가 일으킨 아나톨리아 내전에서 큰 승기를 잡고 난 뒤 열린 연회에서 이스하크 파샤가 마련한 자리에서 몰래 만나는데, 첫 아내에 대한 공허함과 죄책감, 그리고 아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너무 견딜 수가 없어 그를 내보낼 것을 이스하크에게 부탁하고, 아버지인 메흐메트 1세가 느꼈던 아버지로서의 자신과 술탄으로서의 자신의 충돌을 처음으로 느끼며 아흐메트가 비공식적으로나마 계속 이스하크의 양아들로 남는 것을 부탁한다.
이후 무라트가 잔혹하고 정복자로써의 군주 경험을 키워보려고 그 뒤에 있던 콘스탄티노플 포위나, 세르비아 침공, 십자군과의 야전에 적극적으로 참가시켜보고 그랬지만, 그럴 때마다 정복자가 필연적으로 사람을 굳이 죽여야 하는건지 내내 안타까워하고 절규하며, 이스하크 파샤에게 계속 털어놓으며 늘 불안해 보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전쟁이 끝나고 PTSD에 시달려 고통받고 있었으며, 옛날 요안네스 황제가 동생 드라가시스 황제를 끝까지 신뢰했던 것처럼, 지금의 아버지가 자기를 신뢰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휩싸인다.
현 시점에서 이복 동생이라 할 수 있는 알라앗딘 왕자[198]와, 미래에 생길 메흐메트 2세를 보면 결국 제위에 못오르고 그대로 제위 분쟁 속에서 희생당할 불쌍한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이스하크 파샤가 그를 위해 최후의 순간이 되면 아흐메트를 지지하고 반기를 일으키겠다고 다짐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3차 오스만 내전 플레그가 발동된다.
그러나 결전에서 오스만의 패색이 짙어지자 오스만이 원하는 군주는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오스만의 왕자로서 해야할 일을 하겠다며 스스로 후위를 자처, 결국 전사로 삶을 마치게 되고 3차 내전 플래그도 스스로 거두어 갔다.

3.1.2.5. 이브라힘 베이

'''이름'''
'''이브라힘'''
'''Ibrahim'''
'''성'''
'''이스펜디야르오올루'''
'''İsfendiyaroğlu'''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0'''
15
10
11
10
12
'''부족한 경험'''
쓰러진 자들을 대신하기엔 아직 부족합니다. 재능을 꽃피우려면 보다 노력해야 합니다.
이스하크 파샤의 부관이자 오스만의 차세대 인재 중 한 명으로, 자세한 출신 배경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태창 정보 갱신에서 '술탄의 처남'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무라트의 둘째 아내인 술탄 하툰의 첫째 오빠이자 이스펜디야르 토후국의 차기 토후인 이브라힘 2세임이 드러났다. 토후국을 계승할 인물이 왜 오스만에서 노는지가 문제가 될 수 있긴 하지만, 어차피 이브라힘의 아버지인 이스펜디야르 베이가 죽는 건 1440년의 일이니 여동생이 걱정되어서 따라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고 볼 수도 있을 듯.
스테이터스에서 대놓고 '''부족한 경험'''을 지적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차세대 인물들이 벌써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데에 비해 이쪽은 갈 길이 한참 멀다. 왈라키아의 반오스만 정권을 엎는 과정에서 경험을 쌓기야 했지만 오스만이 제타 지방에서 지연전을 벌이다가 그의 실수 아닌 실수로 6천의 병력을 잃는 참패를 당한 것이 좋은 예.
결전에서는 아흐메트 왕자를 보위하다 밀리기 시작하자 탈출을 권유하지만 아흐메트가 거절하면서 오스만을 지켜달라 부탁하자 오스만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고 그 뒤로도 이스하크의 파벌로 들어가 할릴과 대치한다.
이후 독자적인 토후 파벌을 이끌기도 하다 맘루크 전쟁이 터지자 다른 토후들과 함께 사지로 밀려남에도 오스만에 충성을 바쳤고 포케아 결전에도 참전하여 전사한다.

3.1.2.6. 자아노스 파샤

'''이름'''
'''자아노스'''
'''Zağanos'''
'''성'''
'''불명'''[199]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21'''
18
17
'''22'''
18
14
'''예언을 따라'''
침묵한 하늘을 대신해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건 불확실한 예언입니다. 승리를 확신하기보다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은 바로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데브시르메 출신 인물로, 현실에선 메흐메트 2세와 손잡고 라이벌이었던 소 찬다를르 할릴 파샤를 숙청한 뒤 오스만의 12번째 대재상이 된다. 작중에서 맘루크 전쟁 이전까지 대부분의 데브시르메 출신자들이 죽거나 변절하는 동안, 거의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
세르비아의 주라지 브란코비치를 반주라지 귀족들의 봉기 위협에서 지켜주면서 동시에 그를 감시하기 위해, 4천 가량의 병력을 이끌고 소피아 쪽에 주둔한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주라지에게 대놓고 무례한 태도를 취하면서 그의 가신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만, 뒷배가 뒷배인지라 항의하지 못한다.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무라트에게 헌신하는 건 다른 오스만측 인물들과 동일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언이 불확실함 또한 갖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보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하즈 바이람 밸리에게서 무라트가 끝내 실패할 것이라는 것과 관련된 더욱 구체적인 예언을 들은 뒤, 그 예언이 맞아떨어지자 주저 없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소피아 및 세르비아 전체를 버리고 마케도니아로 철수한다. 그 뒤 오랫동안 언급이 없다가 알라앗딘 왕자를 시해하는 역할로 등장하며 정황으로 보아 완전히 할릴 파벌로 들어간 듯 하다가 1446년이 되면 완전히 메흐메트의 편으로 돌아섰다.
그 뒤 맘루크 전쟁에서는 예니체리의 지휘관으로 임명, 포케아 결전 이전에 제르지 카스트리오티가 전장에 못 오게 막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끝내 제르지가 그를 격파했다고 언급되며 생사여부는 언급이 없지만 문맥을 볼 때 예니체리가 전멸했다 했음으로 그 역시 무사하지 못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1.2.7. 팔리오테스

본디 중부 그리스 지역의 영주 중 하나였다. 드라가시스가 네메파트레를 불태운 것에 분노해 오스만제국의 편에 섰다. 그러나 100화에서 직접 드라가시스를 만난 뒤 그가 왜 제국 최후의 희망인지 알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내용 전개를 보면 드라가시스의 부탁을 받고 그가 죽었다고 무라트에게 거짓말은 해준 듯. 그러나 100화, 121화에서 본다면 결국은 술탄을 선택했다. 드라가시스가 너무 늦게 나타났다는 평은 덤.
본래 성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증조부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200년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내전스핀 세트를 포함한 막장스러운 정치로 인해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자 희망을 버리고 체념한 인물로, 주인공과 무라트가 서로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쪽은 이바니아와 대비되는 모습[200]을 보인다. 그가 꺾이는 데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젊은 시절부터 제국을 위해 궐기할 것을 맹세하고 수없이 노력한 아버지가 힘을 잃고 말년에 술에 빠져 살다가 10년 전쯤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125화에서 사망 플래그를 풍기며 드라가시스를 저주하면서도 평생 제국이 부활하리라 믿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미 제국을 버린 자신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으로 신에게 그의 성공을 기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마침내 127화에서 전사한다. 이는 지휘관의 깃발이 꺾인 것을 친왕이 보는 것으로 표현된다.

3.1.2.8. 크리토불러스

'''Μιχαήλ Κριτόβουλος, 1410 ~ 1432[201]'''
임브로스 섬 출신의 지역 영주이자,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메흐메트 2세의 가신 겸 궁정 작가가 되는 인물. 찰코콘뒬리스, 스프란체스 등과 함께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1차 사료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근데 이 인물이 오스만에게 임브로스, 림노스, 타소스 등의 섬들이 평화적으로 넘어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앞잡이이긴 하지만, 아직 20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등장해서 죽은 점을 보았을 때 작가가 뭔가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다.
원래는 제국령에 속했던 에게 해의 임브로스 섬에서 독립[202][203]해서 오스만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벌로 189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며, 인구도 작고 면적도 그리 큰 편이 아닌 이 섬[204]에서 어찌저찌 3백 명의 병력을 이끌고 온 것[205]을 보면 상당한 수완가에 해당한다.
213화에서 주인공의 감시역으로 세르비아 방면 군세에 종군하게 되며, 시종일관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주인공에게 오스만에게 찌를 통한의 죽창 한 방이 준비돼있는지 은근슬쩍 묻는다.
214화에서 주인공에 의해 모레아의 적이자 오스만 측의 프락치인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이 나며, 요새화를 시전하는 세르비아군을 확실히 제압하기 위해 현지병력 충원을 더 하겠다는 주인공의 말에 언짢아한다. 하지만, 215화에서 주라지가 이끄는 세르비아군에 대한 기만책을 준비해놓은 것을 간파하고 태도를 바꿔 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또한 크리토불러스를 죽이고 오스만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인공의 이중 책략이었기 때문에 주라지의 야습에서 진지를 지키다가 세르비아군과 함께 휘하 병력이 몰살당하고 본인 또한 이름모를 병사에 의해 배에 칼을 맞으면서 난전 중 전사.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단 3화만에 허무하게 퇴장한다.

3.1.2.9. 스포일러

'''이름'''
'''테오도로스'''
'''Θεόδωρος'''[206]
'''성'''
'''팔레올로고스'''
'''Παλαιολόγος'''
'''직위'''
'''트라키아의 베이'''
'''생존기간'''
1396.?.?.~1438.02.03.[207]
'''아버지'''
마누일 2세
'''어머니'''
헬레나 드라가슈
'''배우자'''
아델레네 자카리아
통솔
무력
행정
통찰
학식
외교
16↑
'''23↑'''
12↓
18↑
14↓
9↓
'''제위를 쫓는 자'''
자줏빛 망토를 걸치는 영광이 단 하루라도 허락된다면 기꺼이 도모합니다. 단 하루라도 황제로 기억될 수 있으면 그리 행동합니다. 당신에게 황제란 이름은 모든 것입니다.
오스만군에 특공을 걸었다가 참패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136화에서 할릴 파샤와 함께 무라트 앞으로 찾아 간 것으로 생존이 확인되었다. 그는 오스만측 군영에 있었는데 그때 본인의 말이라던지, 무라트의 반응 등으로 볼 때, 포로도 아니고 '''망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
망명 이유는 무라트의 일갈대로 고작 '''제위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한다. 오스만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고 있는지, 그는 옆에서 무라트와 찬다를르 할릴 파샤의 대화를 들으며 오스만과 제국의 국력차를 실감하고 절망해버린다.[208] 한편 찬다를르 할릴 파샤는 그를 일단 보호했다가 교황에게 보내 서방교회 전례를 따르고 교황의 대관식을 받게 하자고 건의한다.[209]
무라트는 그 책략을 승인하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니, 테오도로스에게 제위에 오를 때까지만 조용히 능력을 좀 더 키우고 있으라고 명령한다. 한편 무라트도 황족이 배신했다는 것에 많이 불쾌했는지, '''그것 때문에 조국과 아버지와 형제들을 배신한 것 아니냐.'''고 마지막으로 일갈하고 내보낸다.
현재로서는 제국을 위협할 가장 강력한 내부의 적으로, 아니나다를까 무라트가 주인공을 제거하기 위해 테오도로스의 후견인을 자처, 교황이 대관식을 해줄 것을 협상조건으로 내놓으면서 내분의 불씨가 되었다. 비록 무대관식에 참여하기 위해 로마로 갔다가, 교황 마르티노 5세의 혼절로 대관식 자체가 불투명해지자 오스만으로 송환되긴 하지만 대신 오스만 2차전 당시 정복된 트라키아 지방과 아직 오스만에 잔존한 마케도니아 일부 지방을 총괄하는 총독 '''팔레올로기 파샤'''가 되며, 그 보좌 겸 감시역으로 앙겔로이 파샤, 콤네노이 파샤 등 옛 제국 황족 출신 귀족들을 얻는다.[210]
하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은데 설령 요안니스와 드라가시스를 끝장내고 제위에 올라도 오스만의 최종 목표는 제국의 멸망이다. 당장 무함마드의 콘스탄티노플 정복 예언도 있고 원 역사에서도 오스만의 유럽 영토와 아시아 영토를 가르는 곳에 콘스탄티노플이 있는데 원 역사에서도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기 이전까지 오스만은 콘스탄티노플을 목구멍의 가시로 보았다는 걸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즉, 오스만 입장에서 테오도로스는 일단 황위에 올려 호구 취급을 하다 조금만 반항해도 예언을 빌미로 언제든 쓸어버릴 수 있는 패일 뿐이다. 실제로 스테이터스가 갱신되면서 전쟁에 필요한 통솔, 무력, 통찰은 상승한 반면 통치에 필요한 행정, 학식, 외교는 하락해, 그야말로 '''내전 세력을 이끌기에는 적합하지만 황제로서는 꽝인 인물'''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최종 결전에도 참전했는데 카프쿨루 시파히들을 이끌고 십자군 기병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아 토마스와 조우, 그와 일기토를 벌여 압도하나 예상치 못한 프란시스코의 투검에 당황한 틈을 탄 토마스의 일격으로 죽음을 맞는다.

3.1.3. 반역자[211]



3.1.3.1. 무스타파 첼레비(대 무스타파)

'''Mustafa Çelebi, 1393~1422'''
실존 인물. 실제 역사에선 아버지이자 당시 술탄인 바예지드 1세가 티무르에 의해 참패한 앙카라 전투에 참전했다 실종되었고 이후 자신이 무스타파라 주장하는 인물[212]이 마누일 2세의 전폭적인 후원을 통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키나 1년 만에 격파당하고 죽어 이후 무라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함과 동시에 테살로니키를 빼앗는 원인이 된다.
작품 내에서도 큰 흐름은 다르지 않은데, 작중에선 대 무스타파가 실제로 바예지드 1세의 친아들이 맞는 것으로 설정했고 아버지인 바예지드 1세의 능력이 자신한테도 똑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오만함과 영 좋지 않은 지휘 능력에 어중간하게 오스만 내부 사정을 알고 있어서 아나톨리아쪽 군대가 발칸 반도로 넘어올까 지레 겁먹어 베이의 군대를 격퇴하지 않고 방치한 어리숙함이 결부되어 무라트 2세가 이끄는 군대에 참패하고 본인은 멘붕+발악하다가 단칼에 목숨을 잃는다. 다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주인공 콘스탄티노스가 중부 그리스 전역을 수복한 것과 이로 인한 주전파의 대두, 대 무스타파라는 정치적 수단을 얻은 요안니스 8세의 마누일 2세 유폐 등이 합쳐져서, 마누일 2세 대신 요안니스 8세가 무스타파를 지원하고 그와 공모한 테오도로스는 알보병 이끌고 기습에 나섰다가 병력을 고스란히 날려먹고 본인은 행방불명되는 등의 세세한 면에선 역사와 다른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3.1.3.2. 소 무스타파

'''Mustafa, 1408~1423'''
메흐메트 1세의 막내아들. 실제 역사에서는 어린 나이 탓에 그를 보호하기 위해 마누일 2세를 후견인으로 삼게하였으나 이후 콘스탄티노플을 구원하기 위해 그를 술탄으로 옹립시키는 반란을 지원시키는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소설에서는 메흐메트 1세의 급서 이후 무라트 2세가 반대파 인물들을 대거 숙청하기 시작하자 남동 아나톨리아의 맹주인 카라만 공국으로 도망쳐 반란을 일으켰으나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중이던 무라트 2세가 포위를 풀고 급히 귀환해 공세를 펼쳐 반란을 쉽게 진압하고 나서 붙잡혀 처형된 소 무스타파(1409~1422)의 일대기에 작품 진행을 위한 여러 요소[213]를 섞어서 만든 인물로 보인다. 역사대로라면 카라만 공국으로 도망쳐 반란을 기도했겠지만 작품 내에선 콘스탄티노스의 활약에서 무언가를 예견한 메흐메트 1세가 로마 제국을 후견인으로 삼으면서, 무라트 2세의 존속살해 이후 그가 도망치는 곳이 콘스탄티노플로 바뀌었다.
이 히든 카드로 인해 에피로스 공국/제노바/베니스를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압박과 더불어 오스만의 목덜미를 움켜쥘 수단이 주인공의 손에 들어왔으며, 113화에서 무스타파를 통해 소아시아 지역의 제후들을 움직이려는 속셈 또한 있는 것으로 볼 때 실제 역사와 이리저리 뒤섞여 카라만 공국을 중심으로 한 반 오스만 포위망이 성공하는 분기로 갈 듯하다. 실제로 128화에서 무라트가 투라한에게 급히 싸움을 피하라는 서신을 보낸 것을 보면 무언가 일을 낸 듯 하다. 그리고 콘스탄티노스의 히든카드이었음이 129화에서 밝혀 졌다.
하지만 무라트 2세에게 '''찬다를르 할릴'''이라는 명재상이 등장하면서 그의 반란이 순탄치 않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180화에 벌어진 결전에서 수적 우위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패하면서 사실상 '''반란이 실패로 끝나버렸다.'''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반란 세력이 완벽하게 와해되면서 무스타파는 182화 시점에서 지원 세력 중 하나였던 카라만 토후국으로 도피하게 되고, 승자인 무라트는 내전 피해를 바로 수습한 뒤 곧장 카라만으로 쳐들어가 그를 완벽하게 끝장내기 위해 칼을 들려는 찰나...
183화에서 그의 수급이 무라트에게 찾아온 맘루크 왕조의 사신에게 들려 오는 것으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 맘루크 왕조가 개입한 이유 중 하나가 드라가시스 친왕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소 무스타파의 운명에 대해 친왕이 냉정하게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3.2. 맘루크 왕조



3.2.1. 아쉬라프 바르스바이


'''الأشرف سيف الدين بارسباي / Al-Ashraf Sayf-ad-Din Barsbay, 1???~[214]'''
15세기 초 이슬람 세계의 진정한 최강자이자 수니파 칼리프의 보호자로, 맘루크 왕조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다. 실제로 그의 사후 맘루크가 곧바로 몰락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죽은 지 15년이 지난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으로 오스만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를 꿀꺽하는 시점부터 서서히 맘루크와 오스만 간의 국력의 역전이 일어나기 시작해, 끝내 채 반세기밖에 지나지 않은 바예지트 2세셀림 1세 시기엔 크게 쇠락해 오스만에 한큐에 점령당할 수준으로 전락한다. 사실 더 정확히는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신항로를 개척하면서 밥줄이던 향신료 중개 무역에 커다란 타격을 입어 경제가 휘청휘청거린 영향이 크긴 하지만.
아무튼 그의 업적에는 레반트 지역의 서방과의 사치품 교역을 독점하고 홍해 무역을 매우 장려해 오랜 내부 분열로 피폐해진 맘루크 정부의 재정을 크게 개선한 것과, 아크 코윤루를 조지고 메소포타미아와 상 이집트의 영유권을 재확립한 것이 있다. 이 과정에서 흉악한 카탈루냐제노바의 사략해적들을 족치기 위해 베네치아 공화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163화에서 사신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해, 직접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카라만을 갈아버릴 생각으로 가득차 득의양양하던 무라트 2세를 순식간에 분노하게 만드는 포스를 보여준다. 164화에서 그가 무라트에게 사신을 통해 보내온 것은 다름아닌 작은 무스타파의 수급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말은 카라만과 칸다르를 직접 징계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내 나와바리를 함부로 침범했다간 재미없을 줄 알아라'라는 무언의 협박 서신 또한 함께 보냈다. 그와 동시에, 명목상으로나마 모든 수니파의 구심점인 칼리프를 내세워 당사국들간의 중재를 이끌어내겠다는 제안 또한 보내는 치밀함도 보여준다. 그리고는 사신의 표정을 빌어 무라트를 대놓고 비웃으며, 그러한 외교적 모욕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무라트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함을 통해 그에게 인생 역대급 굴욕을 제대로 먹였음을 확인사살한다. 한편, 사신의 우회적 표현을 통해 그가 주인공과 손을 잡고 오스만을 엿먹이기로 작정했음이 암시된다.
그 뒤로는 병에 걸려 골골대는 동안 티무르 제국의 공세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나 흑양조와 백양조의 봉기라는 마지막 책략을 발동, 공세를 막아낸 뒤 사망한다.

3.2.2. 사이프 앗 딘 자끄마끄


'''سیف الدین جقمق / Sayf ad-Din Jaqmaq, 1373 ~[215]'''
바르스바이가 죽고 난 뒤, 아들인 자말앗딘 유수프가 즉위하자 반란을 일으켜 자말 앗 딘을 폐위하고 술탄이 된 인물이다. 대내외 강경파에 해당하는 바르스바이와는 다르게 온건파에 속했고, 뭔가 업적을 이루기보단 나라 안정에 집중했던 술탄.
실제 역사에서의 행보와 비슷하게, 바르스바이의 죽음 이후 맘루크의 술탄이 되면서 대외정책을 소극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면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흑양 왕조와 백양 왕조를 봉기시켜 티무르와의 전쟁에서 고기방패로 써먹고, 에레트나와 둘카디르에서도 영향력을 빼면서 할릴이 카라만을 오스만의 발 밑에 둘 절호의 찬스라고 판단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 의도가 직속 봉신국인 라마잔을 움직여 카라만의 해안 영토를 점거하고, 동시에 에게 해의 힘의 공백을 유도해 실제 역사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키프로스와 로도스, 더 나아가 동부 지중해를 장악하려는 것임이 374화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381화에서 로도스에 군대를 상륙,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한다. 준비가 다 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216] 너무 늦는다는 판단에 공격을 개시한 것.
그러나 함대는 로도스에서 기사단에게 애를 먹다가 기독교 연합함대에게 사모스에서 괴멸 되었고 육상병력도 포케아 결전에 참전하나 메흐메트가 전사하고 오스만이 완전히 몰락해버리자 피해가 커지기 전에 전면 철수시킨다. 그 뒤 제국과 강화를 맺으면서 소아시아 서부 해안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4. 목소리의 주인


21세기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살고있던 주인공을 15세기 로마 제국으로 보낸 장본인이다. 본디 1화 이후로 오랫동안 언급이 없어 독자들도 모두 잊고 있었는데 400화에서 처음 나온지 4년만에 다시 등장하며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등장하고 나서 드라가시스의 행보가 자신의 예상과 달라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잘 컸다고 칭찬하며 그의 몸이 과로의 후유증으로 약해져 죽을 때가 되었다고 설명한 뒤 자신이 내는 퀴즈를 맞추면 죽음에 3년의 유예를 주고 못 맞추면 비슷한 일을 한 번 더 하자는 사신과의 체스를 제안한다. 드라가시스가 내기에서 승리하자 순순히 3년 뒤에 보자고 물러 났다가 1452년, 주인공의 죽음 뒤[217] 다시 나와 제국의 미래를 보여 준 뒤 주인공을 다시 그가 살던 원래의 세계로 보내주고 자신은 주인공이 바꾼 세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느끼며 살기로 결정한다.
[1] 오스만 정부 입장에서 반역자이기에 이렇게 칭함.[2] 라틴어로는 '''마누엘 2세 팔라이올로구스(Manuel II Palaeologus).'''[3]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황제이자 로마인들의 전제군주. 이하 인물에 대해서는 생략함.[4] 실제 역사에서는 1425년 7월 21일 75세로 붕어. 소설 내에선 2년 정도 더 살다가 자연사했다.[5] 11화 시점의 능력치이긴 하지만, '''그때 시점에서 이미 60대 중반이었다(...)'''[6] 안드로니코스 4세가 내전을 일으키자 마누일에게 계승권을 주었는데, '''제노바에서 다시 한 번 안드로니코스 4세를 옹립하자 제위를 되찾는 대가로 계승권을 도로 안드로니코스 4세에게 주었다.'''[7] 라틴어로는 '''요안네스 8세 팔라이올로구스(Ioannes VIII Palaeologus)'''.[8] 작중에서는 "요안'''네'''스"와 "요안니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지만, 요안니스가 맞다. 요안네스는 작중 시점에서 약 천 년 전 발음.[9] 실제 역사에서는 1448년 10월 31일 콘스탄티노스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붕어했다. 디미트리오스가 콘스탄티노스보다 먼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해 제위를 주장했으나 헬레나 황후에게 버로우...[10] 라틴어로는 '''토마스 팔라이올로구스(Thomas Palaeologus)'''. 테오도로스와 마찬가지로 "토마스"보다 "소마스"가 원음에 가깝지만 작중 표기를 따른다.[11] 실제 역사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 형의 반오스만 노선을 계승해 저항을 시도했으나, 1460년 디미트리오스가 소마스와의 갈등 끝에 오스만에 항복하자 이탈리아 로마로 망명해 동로마 황제로서 여생을 보내다 1465년 5월 12일 사망했다. 제위는 그의 아들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가 물려받았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1494년 프랑스 왕 샤를 8세에게 로마 황제 지위를 팔았다. 이후 죽을 때 다시 한 번 카스티야-아라곤페르디난드 2세이사벨라 1세에게 제위를 팔려고 했으나 아내가 교황에게 장례비용 104두카트를 구걸한 것으로 보아 무산된 듯. 여담으로 프랑스에게 넘어간 로마 황제 칭호는 이후 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 앙리 2세, 프랑수아 2세 시기까지 사용되다 샤를 9세가 1566년 사용을 중단했다. 프랑스 왕만도 못하다고(...)[12] 주인공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황제를 대신하여 여러 행정 사안들에 시달리는데, 대표적으로 군세 문제에 대한 민회의 시험, 형의 여자들 사이에서 중재하는 게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이 일하던 프란치스코는 2중으로 생고생한다.[13] 그가 선택한 것은 평생 독신으로 사는 것이'''었다.''' 처음 플룻에서는.... 직접 혈육을 죽이고 어머니의 죽음을 보면서 혈육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버렸다고. 다만 이 전개는 형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예 후계 계도를 박살내며 지금까지의 제국을 위해 정략결혼하겠다는 캐릭터성의 돌변과 더불어 개연성을 해치는 행위였기에 독자들의 맹비난을 사게 되었고 결국 작가가 나서서 이번 화는 주인공이 위생 개념과 병원체계의 확립을 위한 계기 마련이자 헬레네와 디칸을 이어 사위 계승을 하는 기반이라고 해명했고 작가 자신도 이것이 뇌절 행위였음을 인정, 이후의 플룻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잘못된 전개와 그로 인한 깽판에 의해 소피야와 함께 가장 큰 피해를 본 캐릭터가 되었다. 일단 수정본에서는 가문의 만행을 보고 회의감이 극에 달하나 스프란체스의 설득으로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형이 아들을 낳자 자신이 아들을 낳을 경우 일어날 내전을 막기 위해 평생을 독신으로 살고 안드레아스를 양자로 들이는 것으로 독신 플룻은 유지하게 되었다.[14] 라틴어로는 '''테오도루스 팔라이올로구스(Theodorus Palaeologus)'''. "테오도로스"보다 "세오도로스"가 원음에 가깝지만 여기서는 작중 표기를 따른다.[15] 현실에선 모레아 친왕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작은삼촌인 테오도로스 1세의 뒤를 이어 테오도로스 2세가 되지만, 이 소설에선 셀림브리아 친왕으로 영전했기 때문에 그런 거 없다.[16] 실제 역사에서는 요안니스가 붕어하기 4달 전, 1448년 6월 21일 사망한다.[17] 콘스탄티노스가 암살했다는 암시가 있다. 테오도로스는 그에 대한 증거도 가지고 있다고는 하는데 작가의 말로는 그래 봐야 모레아를 뒤흔들 수는 없으니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한다.[18] 주인공이 베네치아와의 교섭을 통해 통치권을 인정해준 일부 조계지를 제외한 모레아 전 지역이다.[스포일러] 이 문서를 끝까지 정주행하면 그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19] 라틴어로는 '''데메트리우스 팔라이올로구스(Demetrius Palaeologus)'''.[20] 실제 역사에서는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된 이후 황제가 되고 친오스만 노선을 펼쳐 반오스만 노선을 걷던 토마스와 대립하다 결국 1460년 오스만에게 항복한다. 이후 1469년 딸 엘레나가 죽자 수도사가 되었다 1470년 사망.[21] 당신의 마음 속에 씨앗이 자리잡았습니다.[22] 로마 제국의 의술 수준은 당대 타 국가들에 비해 뛰어난 편이었지만 전근대 의술로는 으스러진 팔으로 인한 2차 감염 및 패혈증 등의 합병증을 막을 방법은 최대한 빠른 팔 절단 말고는 없다. 항생제도 존재하지 않는 시절에 어중간하게 치료했다간 최소 해당 신체부위 주변이 썩어들어가서 못 쓰게 되고, 많은 경우 사망에 이른다. 비록 동로마 이후의 계승법에서 '신체결손자는 황제가 될 수 없다'라고 정해놨기 때문에 자신의 황제 클레임을 더는 써먹을 수 없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뭐...[23] 못난 동생은 못난 자식으로 남는게 낫다는 말을 덧붙였다.[24] 이쪽도 요안니스 8세와 마찬가지로 요안니나 칸타쿠'''지노스''' 가문이 옳지만 어째서인지 작중에서는 칸타쿠제노스로 등장. 정확히는 소설상에서 요안네스와 같이 그리스어와 라틴어 발음을 섞어 썼는데 여기서도 그런 듯 하다.[25] 콤니노스 왕조 초기 두각을 드러내어 4차 십자군 직전까지 제국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로 군림했다.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절에도 그 명성은 여전해 2명의 황제까지 배출하기까지 했다(내전 중 찬탈한 것이지만). 주인공이 다스리고 있는 모레아 전제공국 또한 이들이 만든 행정구역이다. 현재 본 가문은 대가 끊겼으나 루마니아 쪽의 방계가 대가 끊기지 않은 채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26] 작중에선 요안니나 칸타쿠제'노스'로 나오지만 칸타쿠지노스는 남성형이므로 여성형인 칸타쿠지니(Καντακουζηνή)가 옳은 표기이다.[27] 첫 만남에서 황족인 주인공에게 어린 치기로 하인으로 삼겠다고 말했다가 친왕이 '''안녕히.'''라는 한마디 후 쿨하게 나가고 나서 시종장에게 말해 그냥 칸타쿠지노스 가문과 연을 끊는 걸로 마무리. 시종장 왈 나중에 울며불며 용서를 구했다고.... 그러나 주인공은 어차피 망할 제국의 황자인데 자기랑 연 맺어봤자 소용없다며 안 받아줬다.[28] 그 뒤로도 요안니나는 계속 콘스탄티노스를 뽈뽈뽈 쫒아다녔다. 시종들이 묵인해 줬다고.[29] 원래 콘스탄티노스를 반쯤 미친 또라이로 보고 있었다가 콘스탄티노스가 시종장하고 대화하는 걸 엿보게 된다.(21화) 거기서 콘스탄티노스는 제국이 역사의 흐름에 무기력하게 굴복했다고 기록되는게 아닌 주권과 신앙을 위해 끝까지 맞서 싸웠다고 기록되기 위해서라도, 제국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이 한 몸 바치겠다고 맹세하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30] 주인공이 자신 대신 소피야를 택한 이유가 오로지 세르비아의 군사력과 국력에 있기에 이것만 극복해내면 그 뒤에 여성으로서의 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기에 국력과 군사력 차이만 극복해내면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31] 전 황제의 황후라는 신분적 제약이 크다. 비록 요안니스가 수도원에 들어갔다지만 이혼을 사회악으로 보는 중세의 가치관 상 이혼하기도 눈치 보이기 때문. 실제로 주인공의 아이를 낳는데 성공한 이바니아와 소피야와 달리 소설 완결 때까지도 아이를 낳지 못했다.[32] 요안니나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한달 동안 매일같이 아침마다 찾아가 방문 너머로 인사를 건넸다고.[33] 정무에 열심이기로 소문난 황제였지만 집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34] 라틴어로는 '''콘스탄티누스 드라가세스 팔라이올로구스(Constantinus Dragases Palaeologus)'''. 세르비아어로는 '''콘스탄틴 드라가슈 팔레올로그(Константин Драгаш Палеолог).'''[35] 146화에서 요안니스 8세가 공동황제로 임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174화에서 공동황제로 즉위한다. 발칸 수복이 끝난 이후엔 요안니스가 자진 퇴위하면서 단독황제가 된다.[36] 실제 역사에서는 다들 알다시피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될 때 전사했다.[37] 정확히는 관공서 복지 담당부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38] 실제로 4월 3일날 공개된 새 표지에서도 검은 곱슬머리에 검은 눈의 미남으로 묘사되었다.[39] 사실은 부상을 입은 상처가 터져 피가 새어나오는 터라 그걸 가리기 위한 방책이다. 이 때문에 시파히 기병과의 싸움 이후 갑옷조차 혼자 제대로 벗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해 이바니아가 갑옷을 벗겨주는 묘사가 있다.[40] 작가의 말에 의하면 흐름에 순응하면 망국의 왕자로서 맘껏 연애하는데 주인공이 알아서 하드모드에 돌입했다고.[41] 발언을 볼 때 실제로 작가는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시리즈를 여러번 플레이해본 것 같다. 실제로 작가로 추정되는 회원이 다음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카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글을 올렸으며, 지도를 그려줬다는 사람은 다음 유로파 카페 운영진이다.[42] '데스포테스'라는 칭호를 적당히 의역한 것. 작가의 말로는 본래 다른 의미가 있긴 있었지만, 현재 동로마에서 데스포티스라는 지위는 그 자체에 힘이 있는 게 아닌 명예직인지라 그나마 비슷한 '친왕'이란 칭호로 설정했다고.[43] 데스포티스(δεσπότης)는 "주인(lord)"이란 뜻으로 현대에는 전제정치(Despotism)의 어원으로 남아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 때부터 황제들 자신을 칭하였으며, 군림하고 있는 황제들의 아들들에게 경칭으로 부여했다. 동전에 바실레우스 대신에 데스포티스가 널리 사용되었다. 12세기, 마누일 1세 콤니노스는 이 칭호를 황제 다음으로 가장 높은 "부여된" 칭호로 구분했다. 처음에 데스포테스 칭호는 사실상 외국의 헝가리의 벨라 3세에게 쓰여 헝가리가 로마의 공납국이라는 의미로 여기게 했다. 나중에, 데스포테스는 데스포타티의 보유자가 될 수 있었는데, 그 국가는 1291년 이후에 로마의 황위 계승권을 보유했던 미스트라스가 수도인 모레아 데스포타티를 예로 들 수있다. 이 칭호의 여성형인 데스포이나는 여성 데스포티스 또는 데스포티스의 황후를 칭했지만, 여제라고도 알려졌다.[44] 그나마 인간 히로인 중에선 이바니아가 가장 점수를 많이 따긴 했다. 결국, 이바니아가 주인공과 처음으로 하룻밤을 가지며 처녀/동정 딱지를 떼고, 주인공의 아이까지 임신했고 앞으로 요안니나와 소피야를 시작으로 다른 히로인들도 서서히 합류하면서 '팔방미인' 스킬이 활성화될 듯하다. 그러면 자연스레 '솔로 정진' 스킬은 무력화될 텐데, 이는 아마도 더 이상 솔로 정진 스킬의 효과를 주인공이 제대로 받지 못할 게 분명하므로 의도적으로 스킬 효과를 변경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45] 칸타쿠지노스 가문은 트라페준타의 가브라스, 이피로스의 앙겔로스 등과 함께 제국 후기의 가장 핵심적인 귀족 가문으로 기능했고, 특히 주인공이 다스리는 땅인 모레아에 먼저 웅거하면서 앙주 가문과 수십 년간 전쟁을 벌여 펠로폰네소스의 절반 이상을 자력으로 수복했을 정도로 모레아 전역에 기반을 잘 갖춰놨기 때문에 혼인을 통한 결속은 굉장히 탐낼 만한 과실이었다.[46] 이피로스는 직접 통치하지 않고 형식상 독립국으로 나둬 동생 토마스를 친왕으로 세웠다.[47] 또한 모레아에 대주교좌를 세워줄 것을 요청함으로서 '제국을 위해 언젠가 제관을 쓰겠다(=황제가 되겠다)'는 선언을 했으며, 이는 오스만과의 전쟁을 막느라 묻혔지만, 모레아가 2번의 전쟁에서 이기고 그리스의 대부분을 회복하자 이 문제가 다시 폭발한다.[48] 모레아가 쥐어짜낼 수 있는 마지막 여력인 6000명의 군사를 모아 맞서 싸우는데, 여기서 또 초인적인 이성을 보여준다. 훗날을 위해서 이피로스 공국에 천여 명 정도의 병사는 남겨둔 것.[49] 겨우 자신과 한 기사만 살아남고 나머서 98명은 전사, 살아남은 스페인(아라곤)의 기사 돈 프란시스코는 친왕의 사촌이라고 불리며 모레아 측의 중요 지휘관이 된다.[50] 당시 주인공은 성 소피아 성당에서 총대주교에게 선서한 뒤, 그동안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겠다, 라며 시민들 앞에서 선언한다.[51] 여담으로 원 역사에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대관식을 가지지 못했고, 이는 아예 수도를 빼앗겼던 시절인 라스카리스 황조를 제외한 그 동안 즉위한 여러 황제들 중에서 유일한 케이스였다.[52] 주인공을 까는게 아니라 안타까워서 나오는 평이라고 볼 수 있다.[53] 이는 이후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 언급되는데, 팔리오테스에 의해 언급된 이후 한참 뒤에 할리드 무르타트의 아버지인 에브레노스 베이가 남긴 말이 간접적으로 언급되면서 오스만 통치 하의 그리스인들이 주인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려준다.[54] 요안니스 4세와 미하일 8세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중시조 미하일은 자신을 믿고 섭정으로 세운 소년 황제 요안니스의 눈을 뽑아버리고 황위를 찬탈했으며, 이 잔인한 찬탈에 분노한 세력과의 내전과 혼란을 틈탄 외부 세력의 침공으로 제국이 몰락하게 만든 실정을 범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고토 수복에 눈이 멀어 다중 전선과 동시에 외교적 고립을 초래한다.[55] 이런 고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이는 소피야로, 옛날 니케아 본토를 비롯한 지방과 콘스탄티노플의 중앙 정부와의 대립으로 난 파국이 가까운 미래에 또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56] 실전을 통해 능력을 입증했으며, 이피로스의 친왕이었기에 지방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거기에 자줏빛 출생이라는 출신 성분이 있기에 수도의 지지 또한 받을 수 있다. 이전 주석에 나온 지방과 수도의 대립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카드[57] 정확히는 봉신왕[58] 오늘날의 이즈니크(니케아) 지역[59] 대충 25에서 27 정도의 어떤 능력치를 보유했을 때, 그 방면에서는 실제 역사인물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업적이나 재능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면 쉽다.[60]칭기즈 칸이 무력 26이다. 역사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명군들은 자기 주 분야에서 대략 10대 후반~20대 초중반의 능력치를 갖는다.[61] 사실 주인공 정도되는 통솔력이면 평범한 인간들 기준으로는 자랑삼을 수 있는 능력이기에 약점이라기엔 어폐가 있지만...다른 능력치가 워낙 넘사벽이라 '평범하게 우수한' 통솔력은 주인공의 약점이 된다.[62] 라틴어로는 '''안드로니쿠스 팔라이올로구스(Andronicus Palaeologus)'''.[63] 실제 역사에서는 1423년 베네치아에게 테살로니키가 양도된 후 모레아로 향한 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수도사로 지내다 테살로니키가 함락되기 전인 1429년 사망했다. 여담으로, 그가 모레아로 향하면서 당시 제국의 친왕 대부분이 모레아로 집중되어 통합된 통치체계가 자리잡지를 못하게 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향후 30년 동안 이어지는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64] 시종이 없으면 걸음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이다. 소설 내에선 상피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나병으로 묘사되는 고질병이 악화되어 병사한다.[65] 249화에서 찬다를르 할릴 파샤의 언급에 따르면, 이것이 드라가시스를 대리해 모레아를 통치하는 자의 계략이라면 '''오스만은 새로운 적수를 만난 것'''이라고 매우 고평가 할 정도였다.[66] 참고로 이바니아라는 이름은 슬라브계 이름인 이반이 여성형으로 변형된 이바나(ivana)에서 파생된 것으로, 정작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계 국가보다도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서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계의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67] 15~16살로 추정.[68] 오죽 심하면 주인공이 그녀를 음란마귀라 하며 한번은 주교를 불러서 연행하게 했다.[69] 얼마나 쓸 인물이 없으면 능력치 중에 무력이 가장 떨어지는 축에 속하는 주인공이 3등 안에 들 정도. 애초에 다스리고 있는 땅도 얼마 없고 인구도 적을 테니 유능한 인물 구하기가 힘든 건 당연하다.[70] 조금 먼 미래인 2차 전쟁 시점에는 아예 30대 초중반(33~34세)이다.[71] 원래는 공지글로 151화쯤에 있었으나, 작품이 조아라 프리미엄으로 전환되면서 다른 공지들, 외전들과 함께 일괄적으로 정리되었다.[72] 만일 쇼타콘이었으면 드라가시스가 장성했을 때 관심을 접었겠지만 그녀는 드라가시스가 장성하고 나서도 드라가시스 일변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바니아의 사랑은 요안니나와 비슷하게 순애보라 할 수 있다.[73] 그도 그럴게 두 황후는 각자 아예 못 보거나 20년이 지났기 때문.[74] '''헬레네 드라가세(Ἑλένη Δραγάση)'''. 황태후이자 할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었다.[75] 다만 이 세례식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는데, 지역 유지 중 하나가 주인공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사생아를 만들고자 자신의 딸을 황제의 침실로 보낸 것. 비록 소피야에게 잡히긴 했지만 이후 부담이 될 듯하다.[76] 종교세를 납부하는 것 대신 군역을 지기로 한 투르크계 궁병[77] 참고로 저번 전쟁에서의 프란시스코의 역할과 프란시스코 본인이 생각하는 역할도 기병 지휘관이다. 즉 본인은 현재 로마의 기병대인 라티니키 이피스와 스트라디오테의 지휘관으로 여겨지는데 경보병인 무르타티의 지휘권을 받아버렸으니... 머리가 아플 만하다.[78] 물론 주인공도 이를 알기에 임시직으로 내려줬지만 적합한 후임자를 찾으라는 막중한 임무를 내렸다.[79] 성전을 찾아왔다는 말로 보면 이슬람 세력에게 무언가 원한이 있거나 아니면 무언가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속죄를 위해 고향을 떠난것이 유력하다.[80] 본질이 미연시 게임이라 그런지 소피아가 드라가시스 일변도라 상대적으로 자식인 안드레아스를 신경쓰지 않고 있기 때문. 정확히는 교육은 시키고 있지만 편법과 같은 정치력쪽에 집중된 상태. 실제로 자식들 보면 성격이 헬레네는 이바니아를 닮아 여장부 성격이고 안드레아스는 소피아를 닮아 차분해 보이나 온갖 잔머리 굴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하는 모습을 보인다.[81] 이때 죽을 때까지 일을 시켰다며 소소하게 농을 던지는데 토마스가 사람 이끄는 일에 쉼이 어딨냐고 받아치는 세종대왕과 황희 드립이 연출됐다.[82] 무르타트는 투르크어로 배교자를 뜻한다.[83] 참고로 할리드란 이름의 유래는 이슬람의 발흥 시절 전설적인 활약을 펼쳐 '신께서 뽑아든 검'이라는 별명을 가진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84] 주인공이 무르타티에 대해 탐탁치 않아해 무력 진압을 택할 시 조직적인 저항을 이끌어내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85] '제 땅과 제 사람들도 지키지 못한 이름에서 어디 허리를 숙여야 할 무게를 느끼는 거지'라는 대사를 뱉는데 정상적이라면 불경죄로 사형당해도 할 말이 없는 말이다.[86] 사실, 할리드가 변절자 그리스인 혼혈 출신이면서 수니파 이슬람을 계속 믿고 있는 이상 절대다수가 정교회 신자인 모레아인들과는 앙숙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보편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말기 제국이라면 더더욱.[87] 드라가시스의 능력과 인내심,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만으로 모레아를 찾아왔데, 능력 검증도 안 돼 있고, 외세를 끌어들여 모레아를 꿀꺽하려는 디미트리오스를 좋게 볼 리가...... 같은 자리에 있던 프란시스코조차 네가 황족이든 아니든 너 같은 놈팽이에게 감히 드라가시스 황제가 수십 년 동안 일군 모레아를 넘길 수 없다며 극렬히 반대한다.[88] 알바니아의 정교도 영주 출신의 변절자vs루멜리아의 수니파 영주 출신의 변절자, 데브시르메 제도로 인해 강제로 징집vs제국의 장군인 아버지가 오스만 쪽으로 변절한 뒤 자신도 따라 입대했다가 탈주, 예니체리vs일반 장교.[89] 주인공도 직접 나서야 한다는 말에 중앙엔 할리드가 있다며 반박했다. 그리고 주인공의 기대대로 할리드는 버텨냄과 공세 돌입을 훌륭히 해내며 가치를 입증한다.[90] 라틴어로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91] 그렇다고 무력이 약한 것은 아니다. 작품 초반 펠로폰네소스 원정에서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해낸 게 아드리아노스이기 때문.[92] 마누일 2세가 가진 인맥으로 소아시아에서 소 무스타파를 술탄으로 옹립시킬 때까지 무라트와 오스만의 신경을 오로지 자신과 모레아라는 미끼에 묶어두는 작전.[93] 심지어 원래 내정파인 아드리아노스도 무장으로 굴려진 걸 보면 순수 내정파인 점은 더욱 눈여겨볼 만하다.[94]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은 고전식 발음이고, 중세 발음으로는 '''"요르요스 예미스토스 플리손"'''이 맞다.[95] 실제 역사에선 1452년경 모레아의 미스트라스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일설에선 1454년 사망했다고도 하는데, 이 경우엔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에 사망한 셈.[96] 플레톤은 실제로도 그리스 신앙을 선호했기에 정교회 중심의 로마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나 다름없는 존재였다.[97] 이 비참한 몰락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2천 년 제국, 즉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빛바랜 영광에 눈이 먼 사람들이 일으킨 내전과,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전통에 매달려 현실을 외면한 자들이 빚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찌른 것.[98] 콘스탄티노스 11세 시절엔 이런 이름을 가진 실존인물이 존재하지 않지만, 1세기쯤 전에 안드로니코스 2세의 조언자이자 역사가, 철학자, 문법학자인 동명이인이 활동했다. 이 사람은 뛰어난 수사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기의 로마 제국의 르네상스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마도 작가는 이 인물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디자인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Μάγιστρος라는 단어는 원래 동로마 제국에서 중앙정부에서 행정을 전담하는 장관직을 뜻하는 단어였으나, 이슬람 세력의 발흥을 전후해 행정조직이 크게 일변하면서 8~9세기에 이르러선 실권이 전혀 없는 명예직 칭호가 되었다. 지방관을 뜻하는 둑스(Δούξ / Doux)라는 단어가 변화해 성씨로 자리잡은 두카스 왕조의 후손들처럼, 이 마기스트로스(Μάγιστρος / Magistros)라는 칭호를 선조가 받아 그게 그대로 성씨로 고착된 것일 수도 있다.[99] 실제 역사에선 1437년 자연사.[100] 현실에선 장기간의 전쟁 수행으로 인해 심신이 약해진 상태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1468년 1월 17일 병사.[101] 덤으로 이 과정에서 현란한 샷건을 보여준다.[102] 점점 데브시르메 제도로 인해 아들을 뺏겨 울부짓던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느끼면서 맹목적인 추종이 흔들리고 이후 3차 오스만 전쟁에 임하면서 주인의 충견이 아닌 주군의 충신으로서 살겠다고 자발적으로 맹세한다.[103] 유일하게 공개된 능력치가 통솔 36.[104] 원래의 통솔은 32, 보정을 받은 결과 34까지 상승.[105] 원 역사의 스칸데르베그는 알바니아의 왕이 아닌 레저 동맹의 대장이었기에 권위가 매우 부족했다. 명령이 아닌 부탁의 형식으로 통치해야 했다는 것.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위에 나온 대로 스칸데르베그의 주군은 드라가시스 황제다. 형식상 스칸데르베그는 황제의 명령과 권위에 복종하는 신하이며, 스칸데르베그에게 개긴다는 것은 황제의 권위에 반역한다는 뜻이다.[106] 신체적 요인보다는 결전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 주인공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소피아도 오스만이나 동유럽 측에 대한 첩보 활동으로 업무량이 상당할 테니.[107] 이 부분은 작가의 플룻 수정으로 설정 자체를 없애버린 부분으로 연재 당시 많은 논란이 발생했었고, 또 이 문제가 해당 부분 전면 수정 선언과 연재 지연화로 이어지면서 몇 달 동안은 독자들끼리 서로 싸우는 등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았다.[108] 실제 역사에선 1427년 7월 19일에 조카 주라지 브란코비치에게 공위를 넘기고 사망한다. 184화에서 소피야의 입으로 이미 병환으로 인해 골골대고 있다는 사실이 언급됐기 때문에, 이번 에피소드가 끝나면 역사대로 사망할 것은 분명하고 후계자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다만 소피야가 '외손주'라는 단어를 언급했던 걸 생각해봤을 때, 만약 주인공이 소피야를 임신시킨다면 주인공과 소피야 간의 밀약+직계 계승권으로 인해 세르비아가 모레아의 영향력을 받게 되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로도스 기사단-모레아-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세르비아+보스니아 연합-야노슈의 트란실바니아-왈라키아의 블라드 3세로 이어지는 초승달 모양 포위망이 결성된 행복회로를 돌릴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226화에서 오스만의 침략이 본격화된 이후에 사망했고, 이로 인해 세르비아가 제국의 영향 아래 들어오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상황.[109] 허나 이에 대해 무라트는 참으로 괘씸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같이 참전한 보스니아는 정말 멍청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110] 참고로 무라트에게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세르비아 남부 출신 귀족으로 스테판의 결정에 대해 매우 불만을 가진 듯한 사람들 또는 지방 유지들이 꽤 있는 듯 하다.[111] 물론 실제 역사보다 5년 더 살았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112] 현실에선 1456년 후계자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고 급사하면서, 오스만의 책략에 의해 세 아들 사이에 분할상속 관련 불화가 일어나고 이틈에 세르비아 전체가 통째로 오스만에게 넘어가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113] 현실에선 1456년 사망한 주라지의 뒤를 이어 세르비아의 군주가 되지만, 형제들 간의 골육상쟁에 휘말렸다가 2년만인 1458년 급사한다.[114] 봉신국의 상속문제는 간섭하지 않는게 원칙이다. 주인공이 세르비아의 군주를 결정하게하는 선례를 넘기며 대신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다. [115] 현실에선 1436년 자연사.[116] 이 때문에 죽을 뻔 했다가 겨우 살아난 후녀디는 알현하기 직전까지 지기스문트 황제를 비난했지만 사실 그 역시 십자군의 변수가 될 모레아와 드라가시스 황제를 계속 의식하고 있었고, 모레아의 십자군 이탈로 십자군 병력 규모가 거의 반토막난 상황에서는 주인공의 협력을 어떻게든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117] 허나 233화 시점에서 그가 보낸 전령들이 모두 오스만군에게 사살당하면서 이 시도는 결국 무산되어버린다.[118] 얀 지슈카의 주 전술이었던 전투수레 방진과 신무기인 핸드캐논이 언급된다.[119] 최전방에 배치된 비정규군에게 금화자루를 지니게 해 약탈에 눈이 먼 십자군의 무질서한 추격을 유도하며 약점을 찾고 있었다.[120] 십자군은 총 9천 명, 오스만은 수천~1만 정도의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121] 전과 똑같이 세르비아의 이중봉신화, 베오그라드 할양, 로마 제국의 적법한 후계자로 테오도로스를 황제로 내세울 것이니 교황이 대관식을 여는 것[122] 패전 소식을 전할 전령과 오스만으로의 복속을 요구하는 사신을 파견해 헝가리를 완전히 분열시키겠다는 것[123] 실제 역사에선 메흐메트 2세에 맞서 베오그라드 전투에서 오스만군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으나, 직후에 찾아온 전염병으로 인해 1456년 사망했다.[124] 소피야의 아버지이며, 1427년 사망한다.[125] 위의 능력치만 봐도 행정, 외교는 전대 황제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마누일과 필적하고 학식도 거의 네임드라 통치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난 걸 알 수 있다.[126] 현실에선 1480년 8월 10일 자연사.[127] 현실에선 1447년 자연사.[128] 정확히 말하자면 베네치아는 신성로마제국 권역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엘프와 기벨린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지만, 강력한 구엘프 지지세력이었던 제노바를 엿먹이기 위해 기벨린에 가까운 스탠스를 취했다. 특히 교황청과의 사이가 많이 멀어진 이후론 교황권 우위를 중요시하는 구엘프에게 빅엿을 날리기 위해서라도 더더욱.[129] 실제 역사에선 1461년 7월 22일 사망.[130] 실제로 샤를 7세가 잔 다르크의 주도로 랭스에서 대관식을 치룬 사건은 당시 여러 대영주들의 느슨한 연합 비스무리한 형태이기도 했던 프랑스의 왕위 정당성을 잉글랜드에게서 뺏어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잔 다르크 본인의 지휘력과 더불어 영주들의 충성을 받아내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 후기 백년전쟁이 프랑스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131] 실제 잔 다르크의 몸값은 직계 왕족과 같은 수준인 1만 리브르에 달했으며, 이는 '''은 800kg, 또는 금 60kg 이상의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 만약 프랑스식 리브르가 아니라 당시 유럽 전역에서 두캇과 함께 통용되던 독일식 리브르라 한다면, '''은 4t 또는 금 300kg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재화에 해당한다.''' 당연히, 당시 백년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프랑스에겐 이 정도 거액을 쉬이 내줄 수는 절대로 없는 일이었다. 단 이전에 프랑스는 잉글랜드 총사령관 탈보트를 포로로 잡아서 1대1 교환까진 아니더라도 웃돈 좀 얹어준다는 조건 하에 포로 교환이 충분히 가능했고, 실제로도 잉글랜드는 잔 다르크와 탈보트의 포로교환을 제의했었다.[132] 실제로 2차, 3차, 4차, 7차, 8차 십자군 원정이 각각 루이 7세, 기 드 뤼지냥필리프 2세, 프랑스 북부 영주들, 루이 9세에 의해 망했으며, 특히 루이 7세기 드 뤼지냥의 트롤링은 너무나도 커서 결국 예루살렘 왕국이 완전히 박살나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133] 실제 역사에선 1431년 5월 30일 잉글랜드에 의해 루앙에서 화형당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역사와 달리 몸값을 지불했기에 명줄이 더 길어졌다.[134] 성처녀, 성녀 등의 칭호로 추측된다. 현재 이바니아의 칭호는 여기사.[135] 취소선을 그었지만 사실이다. 주인공이 빙의된 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 팔레올로고스의 등장으로, 원래는 펠로폰네소스도 장악 못한 로마 제국이 펠로폰네소스는 물론 중부 그리스 전역을 확보하면서 훨씬 강해진 상태이며, 후녀디의 등장과 십자군 선포 시기 또한 10년 앞당겨지는 등 여러가지로 원 역사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상태이다.[136] 이에 대해 247화 코멘트에서 작가가 따로 글을 남겼는데, 현 상황에서 잔 다르크가 모레아군과 함께 다니게 되면 안 그래도 외교적으로 위기에 처했는데 프랑스마저도 적대적으로 변할 수도 있기에 큰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으며, 거기다 엄연히 잔 다르크는 프랑스의 성녀이기에 제국을 도울 동기가 전혀 없다고 함으로써 히로인이 될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그녀를 대신해 제국을 도울 이를 등장 시킬거라 했기에 사실상 여기서는 시대상에 맞게 출현한 까메오나 공략 불가 히로인 정도로 생각해야 할 듯. 다만 '다가가지 못했다' 라는 말로 볼 때, 비록 작가는 접었다 했지만 게임 설정으로는 일단 공략은 가능했던 듯하다.[137] 현재 남아 있는 잔 다르크의 초상화는 모두 상상화다. 즉 작가가 어떻게 묘사해도 다 된다.[138] 실제 사료에선 잔 다르크가 흑발에 전형적인 농민의 딸(다만 외모는 평균 이상)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139] 말 그대로 칼에 실은 힘으로 물푸레나무 같이 단단한 나무로 만들었을 게 분명한 창자루를 일격에 아작내고, 그대로 창자루의 주인인 병사마저 그냥 완력으로 밀어내다 못해 날려버려 적 진형에 내다꽂아 스플뎀을 입히는 수준. 심지어 본인의 힘을 칼이 못 견뎌서, 몇 번 휘두르면 칼날이 망가지는 수준이다. [140] 특히 운명은 실제로 작가가 독자 답변에서 말한 것이다.[141] 본명은 질 드 몽모랑시 라발. '레'라는 성씨는 아버지인 기 드 레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그의 봉토였던 프랑스의 레츠 남작령(현 프랑스 낭트 시 및 근교)의 이름이 성씨에 쓰기 위해 변형된 것이다.[142] 현실에선 소아성애자악마 숭배자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1440년 10월 26일 군중 앞에서 화형된다.[143] 질 드 레는 주인공과 동갑이고, 그가 원수직을 수여받은건 1429년의 일이다. 이 당시 주인공은 제국 본국에 대한 무라트의 전면적 공세가 이어지고 요안니나 등의 수도발 피난민들이 모레아로 속속들이 도착하면서 골머리 깨나 앓고 있었다.[144] 본명은 오도네 콜론나(Oddone Colonna)인데, 이유인즉슨 교황이 되면 원래 사용하던 이름이나 세례명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고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새로운 이름엔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 해당 인물이 살아있던 기간 동안의 행적을 답습하겠다는 의미 또한 존재한다.[145] 실제 역사에선 1431년 2월 20일 뇌졸중으로 선종했다.[146] 여기서 말하는 화친이라는 것은 과격파인 타보르파가 아닌, 다수파이자 온건파인 양형 영성체파와의 화친을 말한다. 실제 역사에선 피렌체 공의회의 일환으로 1436년에 이뤄진 일로, 작품 내에서 주요 사건들의 시점이 5~10년 정도 빨라진 것으로 보아 이 사건도 일찍 일어난 듯하다.[147] 잉글랜드의 참전 여부는 232화에서 1천여 명의 잉글랜드 군이 십자군 본대에 있다고 함에 따라 공식적인 참전이 확인되었다.[148] 동로마 제국의 역사상 신체결손자가 된 것은 해당 신체부위를 모조품으로 만들어 끼우는 노력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영구적인 제위 계승권 박탈을 의미한다. 교황령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인 셈.[149] 당장 헝가리가 드라가시스와 손잡으려 하는 것에서 이미 파문은 의미가 없어져버렸다.[150] 실제 역사에서도 뇌졸중으로 선종한다.[151] 본명은 가브리엘레 콘둘메르(Gabriele Condulmer)[152] 실제 역사에선 1447년 2월 23일 선종.[153] 제노바인은 여기서 제노바 공화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로 이 부추김이 드라가시스에 대한 광신이 이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것인데, 드라가시스의 행적을 아는 독자들은 오히려 이 제노바인의 생각이 제국과 기독교 세계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베니스가 이 일의 원인이던 밀라노의 정복 야욕을 교황을 이용해 해결해버리며 전쟁 후에 완전 고립되게 생겼다. 그리고 이는 제노바인을 따른 가브리엘레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154] 추기경께서 십자군을 걱정하는 것처럼 저희도 제국과 '''정교도인'''들을 걱정해야한다는 니키포로스 주교의 말에서 이미 1차 사살 되었고 나중에 주인공도 나를 도울 생각도 없었으면서 우리도 이러는 것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지 뭐가 문제냐는 말로 확인사살 당했다.[155] 가브리엘레가 에우제니오 4세다 라고 확답은 안 나왔지만 에우제니오 4세가 드라가시스를 잠깐이나마 만났다고 했다. 현재 교황령에 드라가시스를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가브리엘레 추기경 밖에 없으니 사실상 확정인 샘. 그리고 이는 드라가시스와 에우제니오 4세의 대면에서 드라가시스가 오랜만에 뵌다는 대사를 함으로 확정.[156] 현실에선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브와디스와프 3세의 트롤링에 휘말려 사망.[157] 대선배, 또는 원로라는 뜻. 직역하면 '어르신'이 된다.[158] 다른 한 명은 가브리엘레 추기경.[159] 당장에, 자존심이 굉장히 높아서 주인공 정도만을 고평가하는 그가 체사리니 추기경이 주인공을 본받다고 생각할 정도.[160] 단 2세가 살던 시기 왈라키아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함. 혹시 고대 교회 슬라브어의 공식 문자인 초기 키릴 문자에 대해 제대로 아는 분이 계신다면 수정 부탁드립니다[161] 현실에선 1432년 6월 1일 오스만군의 침공에 맞서싸우다 패배하고 전사. 근데 이 세계관에선 숙적인 라두 2세가 똑같은 시기에 오스만의 침공으로 전사한 걸 보면, 작가가 둘의 생애를 착각한 듯하다. 실제로 작가 본인도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했다. 실제 국내에서 루마니아와 같은 동유럽의 역사를 알기 어렵기에 작가가 자료를 얻지 못해 한 착각이라 봐야할 것 같다.[162] 현실에선 1427년 단 2세가 트란실바니아의 헝가리군을 등에 업고 벌인 공세에 맞서다 전사한 것으로 추정. 그에 대한 기록이 1427년 이후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추정'이다.[163] Дракул, 또는 Dracul(드라큘)은 '드래곤'이라는 뜻으로, 번역될 때는 블라드 2세 본인의 작위인 왈라키아 공작과 합쳐져서 '용공'으로 번역된다. 이는 그가 드래곤 기사단에 속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164] 현실에선 바르나 십자군에 종군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가 십자군이 폭망하자, 십자군의 총사령관이었던 후녀디 야노시의 분노를 삼과 동시에 전국토의 기독교 영주들의 반란에 직면해 수도인 타르고비슈테에서 빤스런하던 도중 1447년 11월 페리슈 지방의 늪지대에서 추격대에게 붙잡혀 끔살당했다.[165] 알바니아계 오스만인으로, 오스만 제국의 초대 해군 총사령관. 테살로니카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는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말년에 왈라키아 원정에 나섰다가 블라드 3세에게 크게 패하고 잡혀 꼬챙이형을 당했다.[166] 마흐무트 안젤로비치, 1420~1474. 알렉시오스 3세의 먼 후손으로, 그의 할아버지 대에 오스만이 테살리아를 함락시키면서 형인 미하일로와 함께 세르비아의 주라지 브란코비치에게로 의탁했지만 어쩌다보니 포로가 되었다. 이후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아, 끝내 오스만의 13번째 대재상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167] 왈라키아를 헝가리에게서 지켜주는 대신, 십자군의 다뉴브 강을 통한 물자 조달 및 수송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168] 물론 주인공의 딜레마도 알고 있어 차남을 신성 로마 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169] 다만 소설에서는 차남과 삼남이라 쓰여있다. 이건 확실히 서술 실수인듯.[170] 흔히 알려진 별명인 드라큘라(Дра́кула/Dracula)의 경우 그의 아버지인 블라드 용공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체페슈(Цепеш/Țepeș) 쪽이 '가시공'이라는 별명으로, 그의 잔인한 처형방식인 꼬챙이형에서 따온 '꼬챙이', 또는 '가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171] 현실에선 1477년 1월 살해당했는데, 정작 누구한테 살해당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172] 다만 이 뒤틀린 심성이 오스만에 볼모로 넘어가 당한 온갖 희롱에 감금 생활까지 한 충격 때문에 생겼다고 학자들이 추측하고 있기에 이 소설에서는 애시당초 성격이 안 삐뚤어질 가능성도 제시되었고 실제로 첫등장에서도 뒤틀린 심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173] 다만 옳은 길이라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 원 역사에서의 원리원칙적 성격은(잔혹함과는 별개다.) 그대로 있다.[174] 내용을 보면 헬레네가 미르체아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자(자신을 사생아라 안 불러서) 바로 안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인은 헬레네 같은 여장부 스타일보다는 현모양처가 좋기 때문이라고.[175] 현실에선 나폴리 근교에 위치한 카스텔 델로보에 머물면서 제노바를 침공해 정복할 계획을 세우던 도중, 1458년 6월 27일 자연사한다.[176] 실제 역사 기준 사망일은 5월 21일.[177] 여담으로 '1세'와 '첼레비'라는 말을 같이 써서 '메흐메트 1세 첼레비'라고 표기해서는 안 된다. 일단 첼레비라는 말 자체가 비잔틴 제국이라는 용어처럼 후대 학자들이 붙여준 것이며, 당시 오스만측 사료에는 메흐메트와 황위 다툼을 벌였던 형제들만 첼레비라는 별명을 붙였을 뿐 메메드에게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오늘날 학자들도 '메메드 1세'라 하거나 '메흐메트 첼레비'라고 부르지 두 칭호를 한꺼번에 주욱 붙이지 않는다.[178] 이유는 물론, 자기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179] 실제 역사에서는 자연사했으며, 당시 무라드는 아마시아 총독으로 부임해 있었다. 당시까지 내전의 후유증이 남아 있어 술탄의 자리가 다소 불안정했으므로, 메메드는 내전을 함께 헤쳐나온 재상 바예지드 파샤를 비밀리에 불러 급히 무라드에게 사람을 보내 수도로 올라오게 할 것이며 자신의 죽음은 무라드가 도착한 뒤에야 공표하라고 명령했다.[180] 오스만 터키어로는 مراد ثانى 라고 쓴다.[181] 터키어의 ğ는 자음 앞에서는 앞 모음을 장모음화시키는 기능만을 한다. 한편 Osmanoğlu라는 성은 오스만(Osman)과 터키어로 '아들' 을 뜻하는 'oğlu' 가 결합된 것인데, 이 경우 끊어 읽어야 한다. 즉 장음 표기를 하고 싶다면 '오스만오올루', 하지 않는다면 '오스만올루' 라 표기해야 하며, 작품 내에 오스마놀루라고 되어 있다면 표기 오류.[182]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 전이기에 파디샤(황제)가 아닌 술탄이다.[183] 실제 역사에서는 1451년 2월 3일에 병사했다고 한다[184] 281화 현 시점에선 고작 '''31살'''이다.[185] 최신화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처 2명이 확인 되었다.[186] 우르반은 메메드 2세 시대에 등용된 인물인데, 그는 '대형 사석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 '오스만에 대포라는 무기를 소개한 인물'은 아니다. 무라드 2세 시대인 15세기 전반부터 이미 소형포가 사용되었으며, 더 앞당겨 보는 학자들은 14세기 후반에 이미 쓰였다고도 한다. 한편 우르반이라는 이름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주인공이 오스만 제국의 대포를 본 이상 대책 강구를 위해서라도 기술자를 찾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르반을 만나 우르반의 거포의 단점을 찾거나 아예 기술을 살 수도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우르반이 오스만 제국에 붙기 전 콘스탄티노스를 먼저 찾아 갔으나 제국에 돈이 없어서 메흐메트에게 갔으니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187] 다만 메메드 1세 문단에서 서술했듯이 실제 역사에서는 패륜을 저지른 적이 없다.[188] '''1432년''' 출생, 194~5화 시점이 1430년대 초반이다. 그리고 247화 시점에서 1432년이 되면서 드디어 태어난다.[189] 콘스탄티노플의 다른 호칭이 로마 노바, 즉 새로운 로마이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 자체가 로마 제국이니 이 표현도 맞는 말이다. 참고로 메흐메트 2세는 평생 로마 제국의 완벽한 재건을 꿈꾸었던 인물로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를 정복하려는 시도를 계속했으며(스컨데르베우의 알바니아를 정복하려 했던 것도 바닷길을 이용하면 이탈리아까지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말년에 남부 이탈리아의 오트란토를 함락하기에 이르지만 곧 사망하여 로마 진격은 무산되었다.[190] 정확히는 콘스탄티노스 11세와는 다를 수 있는게 무라트 2세는 능력은 출중했지만 그의 주적이 너무나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빙의한 콘스탄티노스 11세여서 망한 케이스다. 즉, 능력은 뛰어났지만 상대가 너무나 먼치킨이라 망한, 불운한 영웅 케이스로 황위 계승 욕심으로 인한 내전에 시달리고 있어서 자기들이 알아서 자멸한 것도 있는 동로마 제국과는 다르다.[191] 실제 역사에선 '''이브라힘 파샤'''가 작중 시기에 활동했기에 '이브라힘'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작중에선 '할릴'이라고 쓰였기에 일단 이렇게 기록함[192] 정확한 이름은 찬다를르 카라 할릴 하이레딘 파샤(Çandarlı Kara Halil Hayreddin Pasha). 손자와 이름이 같기 때문에 이쪽을 대(大) 찬다를르 할릴 파샤. 손자 쪽을 소(小) 찬다를르 할릴 파샤라고 부른다.[193] Sadrazam. 오스만 제국의 최고위 관직으로 베지리 아잠(Vezir-i âzam)이라고도 하며, 흔히 대재상(Grand Vizier)으로 번역된다.[194] 아버지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가 사드라잠을 지낸 기간이 1421년부터 1429년까지 이므로 작중 1422년인 148화 기준으로 아버지인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가 사드라잠이다.[195] 앞서 서술되었듯이 찬다를르 가문은 대대로 재상을 배출하며 권세를 누렸는데, 술탄으로 즉위한 메메드 2세의 첫 번째 목표가 전제군주로 군림하는 것.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술탄이 주도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룩함으로써 술탄의 권위를 높인다'라는 것이었으며, 그 권위를 이용하여 할릴 파샤를 처형. 튀르크계 귀족들과 가지들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며 전제군주정을 수립한다.[196] 주인공에게 예언을 실행할 이슬람인이 많아도 제국을 지킬 수 있는 이는 황제 당신 밖에 없다는 거나, 동로마 제국 황가의 원죄를 언급하는 등.[197] 실제 역사에서는 장남이라고 하여 황위를 물려주는 법이 없었으므로 공인이고 뭐고 할 것이 없었으며, 무라드 2세의 치세 자체가 다르게 흘러가니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무라드보다 훨씬 일찍 세상을 떠났다.[198] 1425년에 태어났으며, 1443년에 낙마 #s-1로 사고사당한 무라트 2세의 아들로 현재 시점인 280화 기준으로는 이제야 9세밖에 안된 어린 아이이다.[199] 일설에 의하면 크루여와 마트의 백작이자 스칸데르베그의 동맹이었던 나폴리인 브라나가 그의 아버지라고 하며, 이 경우 자아노스의 성씨는 쿠다/자하리아/알타포글리아스 셋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200] 이바니아는 제국과는 별 상관도 없어진 북이탈리아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끝내 그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지만, 팔리오테스는 먼 조상들 시절부터 대대로 제국에 충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꺾이고 침략자인 오스만에게 충성하게 되었다.[201] 현실에선 1470년 자연사.[202] 형식상으로는 제국에 속해 있지만, 봉신 소집에 응할 때 기본적인 보고 조차 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독립상태. 징벌하기에는 충분한 명분이고 주인공도 이를 알고 있으나, 작금의 제국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203] 오스만의 소아시아 해군은 멀쩡한 상태지만, 제국 해군은 해체된 지 100년 가까이 된다. 이유는 유지비가 없어서.(...) 섬을 다스리는 입장으로써 당연히 오스만에게 충성해야 하는 상태.[204] 실면적 279km², 우리나라의 강화도나 남해도보다 작은 면적이며 그나마 시대가 지나면서 늘어난 현대의 인구도 9천 명 수준.[205] 주인공이 모레아의 8천 상비군 중에 1천 명만 이끌고 온 걸 생각해 보면, 그가 인구 1만 명이 채 안 되는 임브로스 섬에서 뽑아낸 병력은 '''1천 명 이상'''이라고 예상 가능하다. [206] 라틴어로는 '''테오도루스 팔래올로구스(Theodorus Palaeologus)'''. "테오도로스"보다 "세오도로스"가 원음에 가깝지만 여기서는 작중 표기를 따른다.[207] 실제 역사에서는 요안니스가 붕어하기 4달 전, 1448년 6월 21일 사망한다.[208] 194화에서 드라가시스 황제도 너무나도 심한 국력차에 똑같이 절망한다. -[209] 물론 212화 시점에선 워낙 오스만이 어그로를 끌기도 했고, 주인공의 명성이 서방 세계에도 잘 알려지면서 별로 영향은 없겠지만 십자군에 대한 변수로 남을 수도 있다.[210] 이 면담에서 앙겔로이와 콤네노이 파샤가 드라가시스를 찬탈자라고 욕하는데, 웃기게도 그들의 선조인 알렉시오스 1세나 이사키오스 2세도 다 쿠데타로 황좌를 얻었다.[211] 오스만 정부 입장에서 반역자이기에 이렇게 칭함.[212] 진위 여부는 판명 불가능. 영문위키에서는 그가 티무르에게 포로로 끌려가 사마르칸트에 억류되어 있다가 1405년에 오스만으로 돌려보내졌고 이후 1413년 즈음에 마누일 2세의 후원으로 오스만의 왕위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배해 1416년 로마 제국의 테살로니키로 튀었고 이후 렘노스 섬에 은거했다가 1421년 메흐메트 1세의 사망 이후 다시 왕위를 주장하면서 군사를 일으켰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두 차례의 반란을 일으킨 무스타파가 진짜 바예지드 1세의 아들이 맞는지, 심지어는 두 반란의 무스타파가 동일 인물인지조차 의견이 분분하다.[213] 메흐메트 1세의 가족애를 나타내줄 '막내아들'이라는 요소와, 대 무스타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소 무스타파의 제국 쪽으로의 망명을 통해 오스만의 왕조 내에서의 분열과 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마지막이자 치명적인 수단의 확보[214] 태생이 맘루크 노예병이기 때문에, 체르케스 출신이라는 점 외에는 아무런 출신 관련 정보가 알려져있지 않다. 현실에선 1438년 사망.[215] 바르스바이와 마찬가지로 자세한 출신은 불명. 현실에선 1453년 노환으로 사망.[216] 베네치아는 완전히 힘을 잃었고 제노바도 모든 식민지를 다 지킬 힘은 안되는 상태이며, 제국 해군도 완전히 재건되지 않았다. 거기다 오스만도 전성기에도 못한 제해권 확보를 지금 할 수 있을리 없다. 즉, 당장의 에게해에 이권이 있는 맘루크 외 국가들의 상태로만 본다면 이만한 호재도 없다.[217] 정확히는 드라가시스라는 주인공이 제국 시기에 가진 몸의 죽음이다. 주인공 자체는 아직 살아있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