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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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先伊
1920년 12월 20일 ~ 2003년 2월 6일
최태민의 5번째 부인으로,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최순득, 최서원, 최순천을 낳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원 중 한 사람.[1] 각각 세 딸들의 자녀들이자 외손주인 정유라와 장시호, 서현덕, 서애덕의 외할머니이다. 2003년 앓고 있던 지병으로 사망했다. 좀 여장부스러운 스타일이었는지[2] 임선이와 임선이의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조순제는 임선이가 "최씨 일가의 몸통"이라고 비판했다.
조순제는 최태민의 경제적 능력을 깎아내리며,[3] 친모인 임선이의 금전적 수완을 높이 평가했다.[4] 셈이 빠르고 직감적으로 돈냄새를 맡는 직감이나, 흘러들어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켜쥐는 과감성 등에서 뛰어났다는 평. 하지만 최태민의 4번째 부인의 아들인 최재석은 핏줄로 이어진 친자식들만 편애하던 악덕 계모였다고 그녀의 인간성을 평가절하했다.[5]
사실 조순제와 최재석의 견해가 크게 엇갈리진 않는 것이, 둘은 임선이가 금전적으로 예민하고 행동거지가 과감하며 내 몫만은 철저히 챙긴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조순제 녹취록의 '우리 모친 만나서 (최태민이) 사람 됐지'라는 발언 역시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던 최태민이 임선이를 만나 경제활동을 시작했다는 의미일 뿐, 임선이가 현모양처라서 최태민을 교화시켜 인간 만들었다는 뉘앙스는 전혀 아니다.[6] 동일한 녹취록에서 인간 됐다는 최태민이 결혼 후에도 나쁜 짓 참 많이 했다는 증언이 구체적,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세간에 최태민의 경제활동이라고 알려진 것은 무당/사이비교주 행세 및 구국선교단 등 관변단체 활동인데 이 때문에 최태민 역시 임선이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오히려 부부가 공모해 일가가 부정축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실제 최태민의 유산은 훗날 임선이의 자식들에게만 상속되었고, 심지어 최태민이 임선이와 그 자식들에 의해 타살당한거 아니냐는 최재석의 주장까지 나오는 것을 볼 때 임선이가 최태민의 대외활동에 관여했을 개연성이 있는 편이며, 이 가정을 전제하면 40년간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의 초창기 코어는 최태민 말고 임선이였던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물론 이미 당사자가 사망한 후라 부질없는 논쟁인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그녀의 정체와 행적에 관해서 언론의 관심이 모아졌다. [채널A·동아일보 단독] 최태민 뒤의 ‘진짜 실세’ 임선이. 박근혜는 평소 임선이를 '이모'라고 불렀고, 80살 팔순잔치에는 참석해서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또 그녀가 죽자 장례식에서 상복을 입고 상주 노릇을 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이런 돈독한 관계를 대변하는지 최태민 사후 박근혜의 정계 입문과 국회의원 선거 등을 지원하며 정치인 박근혜를 만드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1998년 재보궐 선거와 2000년 총선 당시 박근혜에게 불법선거자금을 제공했단 전직 운전기사의 증언도 나왔다.# 심지어 박근혜의 삼성동 사저도 임선이, 최순실이 주도해 대신 사준 것 아니냔 강한 의혹을 받고 있다.#
다만 임선이 사후 최순실이 본격적으로 박근혜를 보좌했단 세간의 평과는 달리, 운전기사 등에 따르면 박근혜가 임선이 말을 잘 듣기에 임선이가 전면에 나선 것일 뿐 사실 임선이 자체는 실권자가 아니었고 주로 최순실의 말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는 말도 있다. 이에 좀 더 근거가 될만한 정황을 찾아보자면, 조순제의 아들 조용래가 친할머니인 임선이를 마지막으로 본게 조용래가 30살 쯤이던 1999년 봄 무렵이었는데, 할머니가 자길 보자고 해서 차를 끌고 가 대기하고 있으니 임선이가 최순영[7] 과 함께 왔다고 한다. 이때 임선이는 최순영을 밖에 있으라고 하고 본인과 조용래 단 둘이서만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왜 이렇게 손자가 할머니 한번 만나는 것도 어렵냐"고 한탄하는 조용래에게 임선이는 위로와 팔자 타령을 하며 "통장도 다 뺐겼지만 내가 어떻게든 일정 돈을 보내줄 테니, 앞으론 네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라"고[8] 계좌번호를 하나 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종이로 적어주려니 한사코 거부해서 손에다 적어드렸는데, 결국 돈은 안 들어왔고 이후 최씨 일가와도 왕래가 끊겼다고 한다. 즉, 최태민 생전부터 사후 일정 기간까진 임선이가 실세 노릇을 했을지 모르나, 1990년대 후반쯤부턴 이미 경제권을 비롯한 실권이 최순실을 비롯한 최씨 자매들한테 넘어갔다고 조용래는 판단했다.
林先伊
1920년 12월 20일 ~ 2003년 2월 6일
1. 개요
최태민의 5번째 부인으로,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최순득, 최서원, 최순천을 낳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원 중 한 사람.[1] 각각 세 딸들의 자녀들이자 외손주인 정유라와 장시호, 서현덕, 서애덕의 외할머니이다. 2003년 앓고 있던 지병으로 사망했다. 좀 여장부스러운 스타일이었는지[2] 임선이와 임선이의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조순제는 임선이가 "최씨 일가의 몸통"이라고 비판했다.
조순제는 최태민의 경제적 능력을 깎아내리며,[3] 친모인 임선이의 금전적 수완을 높이 평가했다.[4] 셈이 빠르고 직감적으로 돈냄새를 맡는 직감이나, 흘러들어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켜쥐는 과감성 등에서 뛰어났다는 평. 하지만 최태민의 4번째 부인의 아들인 최재석은 핏줄로 이어진 친자식들만 편애하던 악덕 계모였다고 그녀의 인간성을 평가절하했다.[5]
사실 조순제와 최재석의 견해가 크게 엇갈리진 않는 것이, 둘은 임선이가 금전적으로 예민하고 행동거지가 과감하며 내 몫만은 철저히 챙긴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조순제 녹취록의 '우리 모친 만나서 (최태민이) 사람 됐지'라는 발언 역시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던 최태민이 임선이를 만나 경제활동을 시작했다는 의미일 뿐, 임선이가 현모양처라서 최태민을 교화시켜 인간 만들었다는 뉘앙스는 전혀 아니다.[6] 동일한 녹취록에서 인간 됐다는 최태민이 결혼 후에도 나쁜 짓 참 많이 했다는 증언이 구체적,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세간에 최태민의 경제활동이라고 알려진 것은 무당/사이비교주 행세 및 구국선교단 등 관변단체 활동인데 이 때문에 최태민 역시 임선이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오히려 부부가 공모해 일가가 부정축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실제 최태민의 유산은 훗날 임선이의 자식들에게만 상속되었고, 심지어 최태민이 임선이와 그 자식들에 의해 타살당한거 아니냐는 최재석의 주장까지 나오는 것을 볼 때 임선이가 최태민의 대외활동에 관여했을 개연성이 있는 편이며, 이 가정을 전제하면 40년간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의 초창기 코어는 최태민 말고 임선이였던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물론 이미 당사자가 사망한 후라 부질없는 논쟁인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2. 행적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그녀의 정체와 행적에 관해서 언론의 관심이 모아졌다. [채널A·동아일보 단독] 최태민 뒤의 ‘진짜 실세’ 임선이. 박근혜는 평소 임선이를 '이모'라고 불렀고, 80살 팔순잔치에는 참석해서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또 그녀가 죽자 장례식에서 상복을 입고 상주 노릇을 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이런 돈독한 관계를 대변하는지 최태민 사후 박근혜의 정계 입문과 국회의원 선거 등을 지원하며 정치인 박근혜를 만드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1998년 재보궐 선거와 2000년 총선 당시 박근혜에게 불법선거자금을 제공했단 전직 운전기사의 증언도 나왔다.# 심지어 박근혜의 삼성동 사저도 임선이, 최순실이 주도해 대신 사준 것 아니냔 강한 의혹을 받고 있다.#
다만 임선이 사후 최순실이 본격적으로 박근혜를 보좌했단 세간의 평과는 달리, 운전기사 등에 따르면 박근혜가 임선이 말을 잘 듣기에 임선이가 전면에 나선 것일 뿐 사실 임선이 자체는 실권자가 아니었고 주로 최순실의 말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는 말도 있다. 이에 좀 더 근거가 될만한 정황을 찾아보자면, 조순제의 아들 조용래가 친할머니인 임선이를 마지막으로 본게 조용래가 30살 쯤이던 1999년 봄 무렵이었는데, 할머니가 자길 보자고 해서 차를 끌고 가 대기하고 있으니 임선이가 최순영[7] 과 함께 왔다고 한다. 이때 임선이는 최순영을 밖에 있으라고 하고 본인과 조용래 단 둘이서만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왜 이렇게 손자가 할머니 한번 만나는 것도 어렵냐"고 한탄하는 조용래에게 임선이는 위로와 팔자 타령을 하며 "통장도 다 뺐겼지만 내가 어떻게든 일정 돈을 보내줄 테니, 앞으론 네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라"고[8] 계좌번호를 하나 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종이로 적어주려니 한사코 거부해서 손에다 적어드렸는데, 결국 돈은 안 들어왔고 이후 최씨 일가와도 왕래가 끊겼다고 한다. 즉, 최태민 생전부터 사후 일정 기간까진 임선이가 실세 노릇을 했을지 모르나, 1990년대 후반쯤부턴 이미 경제권을 비롯한 실권이 최순실을 비롯한 최씨 자매들한테 넘어갔다고 조용래는 판단했다.
3. 둘러보기
[1] 최태민과 만나기 전 첫번째 남편이었던 조동찬과의 사이에서 조순제와 조순영을 낳았다. 하지만 조동찬은 1947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죽었고, 조순영은 나중에 최순영이 되었다.[2] 성격도 드세서 사위 뺨을 때릴 정도였다고 한다.(...)[3] 다만 여자 후리는 기술은 뛰어났다고 평했다.(...)[4] 원래 직업이 암달러 상인이었다고 한다...[5] 사실 조순제나 최재석은 젊을 때까지만 해도 최씨 자매들과 친가족처럼 지냈으나, 시간이 지나며 유산 문제 등으로 점점 사이가 나빠졌다.[6] 다만 조순제의 아내 김경옥의 경우 시어머니가 자길 하도 부려먹어서 욕도 많이 했지만, 여자의 인생으로만 놓고 볼땐 남편이 바람둥이라 불쌍한 사람이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7] 조순제의 하나뿐인 친동생이었으나, 최씨로 성을 바꾸고 나선 이부 여동생들인 최순득, 최순실, 최순천 자매의 맏언니 노릇을 하며 오히려 친오빠인 조순제를 멀리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일본 순사보다 조선 앞잡이가 더 얄밉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으니 말다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조순제의 임종 직전엔 조순제 부인의 연락을 받고 병실에 와 조순제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8] 이미 이때부터 최씨 자매들은 임선이가 조순제에게 돈을 주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조순제와 임선이가 서로 만나는 것조차 방해를 받았는데, 임선이의 죽음도 조순제는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고 한다.[9] 2016년 12월 30일 박진현(여·32·변시2) 변호사가 사임하고 배진혁 변호사(37·사법연수원 43기)가 합류하였다.[10] 제5기 헌법재판소 소장. 2017년 1월 31일 퇴임[11]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 2017년 3월 13일 퇴임[12]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 출신, 연수원 21기.[13] 판사 출신, 연수원 15기.[14] 판사 출신, 연수원 36기.[15] 검사 출신, 연수원 33기.[16] 검사 출신, 연수원 36기.[17] 로스쿨 출신, 변시 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