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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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達
1939년 ~ 2008년
대한민국의 기업가이자 범죄자. 호는 청원(靑園).
퇴직경찰관의 복지를 위해 건설된 경우회 소유 골프장을 공사비 과다책정·증자 등 방법을 통해 실질적으로 소유권을 잠식해간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은바 있다. 이상달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향임을 내세워 5공이래 경찰수뇌부의 후원자 역할을 해오며 경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널리 소문나 있는 인물이다. 재직때는 물론이고 퇴직후에도 챙기며 투자와 인사까지 개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1939년 경상남도 고령군 고령면(현 대가야읍)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1962년 경희대학교를 나와 1970년대 건설경기 붐이 일때 재일교포인 아는 형이 불도저를 사줘 1969년 30세에 회사(약수건설)를 설립하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1976년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토공전문업체인 삼강중장비를 설립함으로써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를 이끌어 줄 마땅한 후원자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전두환이 취임하자 같은 합천 출신 인사를 통한 로비로 고액 건설사업을 따내기 시작한다. 같은 동향 출신인 점을 고려한 결과다. 건설토목공사에서 골프장 건설공사로 사업 방향을 튼 것도 이 무렵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대한민국 경찰청 전신인 치안본부의 고위간부들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며 경찰인사까지도 개입하는 실력자로 등장했다. 뒤이어 삼남개발을 설립했다. 삼남개발은 이상달과 경우회가 절반씩 투자해서 만든 골프장 투자 회사이다. 1992년에는 대한중기협회 회장을 지냈다.
1993년 5월 이인섭 전 경찰청장과 친구 옥기진[1] 전 치안감 등 전직 경찰 수뇌부 5명이 이상달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상달 역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또 골프장 진입로 공사비용을 이중으로 계산해 총 112억원을 챙긴 혐의와, 경우회장의 도장을 도용해 약 200억원의 공사비를 300억원대로 속인 혐의도 받았다.
이상달이 운영해오던 삼강중장비는 같은 해 6월8일 부도가 났다. 은행에 2650만원의 어음 결제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수백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던 이상달은 불과 2000만원대의 돈을 갚지 못해 회사를 부도처리한 것이다. 비리 관련 수사가 시작되고 난 직후의 일이라 미심쩍은 대목으로 꼽힌다. 그런데 검찰은 이상달이 지병이 악화해 수감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순천향대 병원에 입원하자 이상달을 결국 불구속 기소했다. 이상달은 배임 및 뇌물공여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994년 정강중기 대표이사에 이어 1998년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상달은 특히 전두환, 노태우 재임 시절 경찰요직을 독식하다시피한 경상북도 출신 상당수의 '후원자'로 등장, 재직때뿐 아니라 퇴직 후에도 이들을 돌봐준 것으로 경찰주변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각종 행사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결국 2008년 사망했다.
이상달의 영향력은 사망 후에도 확인된다. 이상달 7주기에는 유족 및 추모객 300여명이 참석했는데, 사회는 길용우가 맡았고 정동기 전 법무부차관이 추모사를 읽었다. 탤런트 강부자[2] 도 참석해 추모 노래를 불렀으며 정경식 전 헌법재판관, 이상윤 전 중앙대 부총장 등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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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세운 기흥컨트리클럽은 전두환 정부 시절 퇴직 경찰관의 모임인 대한민국 재향경우회가 사업권을 따냈다.
경우회는 정강중기 이상달의 투자를 받아 골프장을 건설했다. 이후 기흥컨트리클럽은 뇌물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유권의 절반이 이상달에게 넘어갔다. 현재 기흥컨트리클럽은 삼남개발이 운영하고 있다. 삼남개발 주요 주주는 재향경우회와 SD&J홀딩스로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D&J홀딩스는 이상달의 마누라인 김장자와 네 딸, 네 사위가 지분을 각각 20%씩 보유하고 있다. 차녀 이민정은 우병우와 결혼했다. 기흥컨트리클럽은 42억, 2014년에는 47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총 주식 29만7000주 가운데 반을 보유한 SD&J홀딩스는 지난해 21억원을 배당받았다. 기흥컨트리클럽의 운영회사인 삼남개발에서 이상달과 공동대표이사인 옥기진(거제시 출신)도 이상달에 대해 골프사업장 관계로 역대 경찰청장과 막역한 사이로 지내고 있으며 경정급이상이면 경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다고 극찬했다.
이상달은 장래성 있는 인사들에게 수시로 접근, 친분관계를 쌓은 뒤 요직에 앉으면 인사에 개입하거나 자신의 사업에 비호세력으로 이용해왔다고 한다. 퇴직 경찰관들도 이와 의견이 비슷하다. 이들 고위직이 퇴직하면 부부동반으로 자신이 스폰서가 되어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경찰의 일이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담으로 이상달은 1989년 4월 경찰대학 내 6홀 골프장을 수의계약, 설계, 기조, 배수공사 등을 모두 싼값에 해줘 당시 치안본부장의 지시로 이 골프장이 이상달의 후원으로 건설되었다는 기념팻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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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장자와 사위 우병우가 고령군 향우회 등을 바탕으로 여러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을 받고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우병우 처가 측근 전 직원에 따르면 최태민과 호형호제 사이라고 증언했다.
李相達
1939년 ~ 2008년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가이자 범죄자. 호는 청원(靑園).
퇴직경찰관의 복지를 위해 건설된 경우회 소유 골프장을 공사비 과다책정·증자 등 방법을 통해 실질적으로 소유권을 잠식해간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은바 있다. 이상달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향임을 내세워 5공이래 경찰수뇌부의 후원자 역할을 해오며 경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널리 소문나 있는 인물이다. 재직때는 물론이고 퇴직후에도 챙기며 투자와 인사까지 개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2. 생애
1939년 경상남도 고령군 고령면(현 대가야읍)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1962년 경희대학교를 나와 1970년대 건설경기 붐이 일때 재일교포인 아는 형이 불도저를 사줘 1969년 30세에 회사(약수건설)를 설립하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1976년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토공전문업체인 삼강중장비를 설립함으로써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를 이끌어 줄 마땅한 후원자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전두환이 취임하자 같은 합천 출신 인사를 통한 로비로 고액 건설사업을 따내기 시작한다. 같은 동향 출신인 점을 고려한 결과다. 건설토목공사에서 골프장 건설공사로 사업 방향을 튼 것도 이 무렵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대한민국 경찰청 전신인 치안본부의 고위간부들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며 경찰인사까지도 개입하는 실력자로 등장했다. 뒤이어 삼남개발을 설립했다. 삼남개발은 이상달과 경우회가 절반씩 투자해서 만든 골프장 투자 회사이다. 1992년에는 대한중기협회 회장을 지냈다.
1993년 5월 이인섭 전 경찰청장과 친구 옥기진[1] 전 치안감 등 전직 경찰 수뇌부 5명이 이상달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상달 역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또 골프장 진입로 공사비용을 이중으로 계산해 총 112억원을 챙긴 혐의와, 경우회장의 도장을 도용해 약 200억원의 공사비를 300억원대로 속인 혐의도 받았다.
이상달이 운영해오던 삼강중장비는 같은 해 6월8일 부도가 났다. 은행에 2650만원의 어음 결제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수백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던 이상달은 불과 2000만원대의 돈을 갚지 못해 회사를 부도처리한 것이다. 비리 관련 수사가 시작되고 난 직후의 일이라 미심쩍은 대목으로 꼽힌다. 그런데 검찰은 이상달이 지병이 악화해 수감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순천향대 병원에 입원하자 이상달을 결국 불구속 기소했다. 이상달은 배임 및 뇌물공여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994년 정강중기 대표이사에 이어 1998년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상달은 특히 전두환, 노태우 재임 시절 경찰요직을 독식하다시피한 경상북도 출신 상당수의 '후원자'로 등장, 재직때뿐 아니라 퇴직 후에도 이들을 돌봐준 것으로 경찰주변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각종 행사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결국 2008년 사망했다.
이상달의 영향력은 사망 후에도 확인된다. 이상달 7주기에는 유족 및 추모객 300여명이 참석했는데, 사회는 길용우가 맡았고 정동기 전 법무부차관이 추모사를 읽었다. 탤런트 강부자[2] 도 참석해 추모 노래를 불렀으며 정경식 전 헌법재판관, 이상윤 전 중앙대 부총장 등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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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세운 기흥컨트리클럽은 전두환 정부 시절 퇴직 경찰관의 모임인 대한민국 재향경우회가 사업권을 따냈다.
경우회는 정강중기 이상달의 투자를 받아 골프장을 건설했다. 이후 기흥컨트리클럽은 뇌물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유권의 절반이 이상달에게 넘어갔다. 현재 기흥컨트리클럽은 삼남개발이 운영하고 있다. 삼남개발 주요 주주는 재향경우회와 SD&J홀딩스로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D&J홀딩스는 이상달의 마누라인 김장자와 네 딸, 네 사위가 지분을 각각 20%씩 보유하고 있다. 차녀 이민정은 우병우와 결혼했다. 기흥컨트리클럽은 42억, 2014년에는 47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총 주식 29만7000주 가운데 반을 보유한 SD&J홀딩스는 지난해 21억원을 배당받았다. 기흥컨트리클럽의 운영회사인 삼남개발에서 이상달과 공동대표이사인 옥기진(거제시 출신)도 이상달에 대해 골프사업장 관계로 역대 경찰청장과 막역한 사이로 지내고 있으며 경정급이상이면 경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다고 극찬했다.
이상달은 장래성 있는 인사들에게 수시로 접근, 친분관계를 쌓은 뒤 요직에 앉으면 인사에 개입하거나 자신의 사업에 비호세력으로 이용해왔다고 한다. 퇴직 경찰관들도 이와 의견이 비슷하다. 이들 고위직이 퇴직하면 부부동반으로 자신이 스폰서가 되어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경찰의 일이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담으로 이상달은 1989년 4월 경찰대학 내 6홀 골프장을 수의계약, 설계, 기조, 배수공사 등을 모두 싼값에 해줘 당시 치안본부장의 지시로 이 골프장이 이상달의 후원으로 건설되었다는 기념팻말이 세워져 있다.#
3.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친분 배경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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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장자와 사위 우병우가 고령군 향우회 등을 바탕으로 여러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을 받고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우병우 처가 측근 전 직원에 따르면 최태민과 호형호제 사이라고 증언했다.
4. 둘러보기
[1] 옥기진은 이상달의 사위처럼 검찰 출두 명령을 받기도 전에 잠적하는 추태를 저질렀다.[2] 맨 아래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최태민의 새마음봉사단의 일원이 아니였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3] 2016년 12월 30일 박진현(여·32·변시2) 변호사가 사임하고 배진혁 변호사(37·사법연수원 43기)가 합류하였다.[4] 제5기 헌법재판소 소장. 2017년 1월 31일 퇴임[5]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 2017년 3월 13일 퇴임[6]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 출신, 연수원 21기.[7] 판사 출신, 연수원 15기.[8] 판사 출신, 연수원 36기.[9] 검사 출신, 연수원 33기.[10] 검사 출신, 연수원 36기.[11] 로스쿨 출신, 변시 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