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대한민국/병역특례자
1. 개요
예술체육요원으로써 병역 의무에 대해 특례를 받은 병역 특례자 축구선수들을 모아놓은 문서. 대한민국 축구선수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병역법상 이 혜택을 받으려면 올림픽 3위 이내, 즉 메달을 따야하거나, 아시안게임 우승, 즉 금메달을 따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렇게 비중을 높게 두지 않는 두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계는 매우 비중을 높게 두고 준비하며, 그렇기때문에 다른 메이저 축구대회보다 성적이 더 잘 나오는 편이다. 현행법이 1973년 처음 제정되었기 때문에 1973년 이후의 대회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 이 항목에 기재된다.[1][2]
이 기준에 예외되는 사례는 축구계에서 딱 한번 존재했는데, 바로 홈에서 열린 2002 FIFA 월드컵에 출전한 대표팀의 사례다.
2002년이면 곧 현행과 같은 기준이 적용되던 시기로 자연히 축구의 세계선수권인 월드컵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봤자 병역 특례혜택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홈에서 하는 월드컵에서 첫 1승과 첫 16강 진출을 목표로 했던 대한민국이었기에 국회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이번 대회에만 특별법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라는 동기부여를 부여하자는 논의가 이미 대회 전부터 시작되었다. 거기에 대표팀이 16강을 넘어 4강까지 진출했으니 이 특별법은 힘을 얻게 되었고, 결국 당시 대표팀에 속한 선수들 중 미필 선수들이 군 면제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면제를 받은 선수들 대다수가 병역 걱정 없이 해외리그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축구계에 엄청난 자산을 안겨준 선물같은 특별법이 되었다. 이 특별법은 2006 FIFA 월드컵에도 살아남아 적용되었지만, 당시 대표팀이 전체 순위 '''17위'''로 16강에 못가게 되었고 혜택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타 종목의 반발이 거세 월드컵 16강 특별법은 폐지되었다.
2. 병역 특례 제도 도입 시기 (1973~1980)
- 기준 : 올림픽 금메달
- 면제 가능 대회 : 올림픽
- 해당 대회 및 결과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 본선진출 실패
- [3] : 불참
3. 1차 개정 시기 (1980~1984)
- 기준 : 올림픽 메달, 아시안게임 메달, 세계선수권 3위, 세계청소년선수권 3위, 유니버시아드 3위, 아시아선수권 3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3위
- 면제 가능 대회 : 올림픽, 아시안게임 축구, FIFA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축구, AFC 아시안컵, AFC 청소년선수권
- 해당 대회 및 결과
- 1980 AFC 아시안컵 쿠웨이트 : 준우승
- 1980 AFC 청소년 챔피언십 태국 : 우승
- 1981 FIFA 호주 세계청소년대회 : 조별리그 탈락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 본선진출 실패
-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 조별리그 탈락
- 1982 AFC 청소년 챔피언십 태국 : 우승
- 1983 FIFA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 : 4위
- 1984 LA 올림픽 : 본선진출 실패
3.1. 특례 선수 명단
- 1980년 AFC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멤버
- 1982년 AFC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멤버
4. 2차 개정 시기 (1985~1989)
- 기준 : 올림픽 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세계선수권 우승, 유니버시아드 우승
- 면제 가능 대회 : 올림픽, 아시안게임 축구, FIFA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축구
- 해당 대회 및 결과
- 1985 고베 하계 유니버시아드[4] : 5위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 조별리그 탈락
- 1986 서울 아시안게임 : 우승
- 1987 자그레브 유니버시아드 : 준우승
- 1988 서울 올림픽 : 조별리그 탈락
4.1. 특례 선수 명단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종목 금메달리스트[5]
5. 3차 개정 시기 (1990~)
- 기준 : 올림픽 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 면제 가능 대회 : 올림픽, 아시안게임 축구
- 해당 대회 및 결과
-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 동메달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 조별리그 탈락
-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 4위
- 1996 애틀란타 올림픽 : 조별리그 탈락
- 1998 방콕 아시안게임 : 8강
- 2000 시드니 올림픽 : 조별리그 탈락
- 2002 부산 아시안게임 : 동메달
- 2004 아테네 올림픽 : 8강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 4위
- 2008 베이징 올림픽 : 조별리그 탈락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 동메달
- 2012 런던 올림픽 : 동메달
- 2014 인천 아시안게임 : 금메달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 8강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 금메달
- : ?
- 예외[특별법]
- 2002 FIFA 월드컵 대한민국&일본 : 4위
- 2006 FIFA 월드컵 독일 : 조별리그 탈락
5.1. 특례 선수 명단
-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4위 입상 멤버[6]
-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종목 동메달리스트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종목 금메달리스트
- 김승규, 노동건, 곽해성, 김민혁, 김진수, 이주영, 임창우, 장현수, 최성근, 김승대, 김영욱, 문상윤, 박주호, 손준호, 안용우, 윤일록, 이재성, 김신욱, 이용재, 이종호
-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종목 금메달리스트
- 송범근, 조현우, 김문환, 김민재, 김진야, 이시영, 정태욱, 황현수, 김건웅, 김정민, 이승모, 이진현, 장윤호, 조유민, 황인범[7] , 나상호, 손흥민, 이승우, 황의조, 황희찬
5.1.1. 특례 선수들의 해외 진출
3차 특례법 시기 특례 혜택을 받은 선수들은 과거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해외 리그로 진출을 했는데,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국내 축구계가 적극적으로 유럽 진출을 장려하는 분위기로 바뀐 점과 2002 한일 월드컵 선전 이후 국가대표급 선수들에 대한 해외 팀들의 관심 증가가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 구단들이 한국선수를 영입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국내 병역문제였는데 이 문제가 해결된 젊은 선수들은 해외 구단들에게 꽤 매력적인 매물이었던 셈.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수혜받은 뒤 즉시 혹은 나중에라도 해외 경험을 하게 된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축구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축구 선진 대륙인 유럽이 아니라, 금전적 보상은 충분하지만 축구 수준이 그렇게 높다고 할 수 없는 중국이나 중동 리그로 선수들이 쏠리는 현상이 일어나 병역특례 혜택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다.
- 2002년 병역특례자
- 송종국 - 2002-03 시즌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이적
- 박지성, 이영표 - 2002-03 시즌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이적
- 차두리 - 2002-03 시즌 독일 바이어 04 레버쿠젠 이적[8]
- 김남일 - 2002-03 시즌 네덜란드 SBV 엑셀시오르 임대이적[9]
- 이천수 - 2003-04 시즌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 이적[10]
- 안정환 - 2002 시즌 일본 시미즈 S펄스 이적[11]
- 설기현 - 2004-2005 시즌 잉글랜드 울버햄턴 원더러스 이적[12]
- 최태욱 - 2005 시즌 일본 시미즈 S펄스 임대이적
- 현영민 - 2006 시즌 러시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적
- 2012년 병역특례자
- 윤석영 - 2012-13 시즌 잉글랜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 김영권 - 2012 시즌 중국 광저우 헝다 이적
- 오재석 - 2013 시즌 일본 감바 오사카 이적
- 김창수 - 2013시즌 일본 가시와 레이솔 이적
- 김기희 - 2012-13 시즌 카타르 알 사일리야 SC 임대이적
- 기성용 - 2012-13 시즌 잉글랜드 스완지 시티 이적[13]
- 김보경 - 2012-13 시즌 잉글랜드 카디프 시티 이적[14]
- 박종우 - 2014 시즌 중국 광저우 푸리 이적
- 박주영 - 2012-13 시즌 스페인 셀타 비고 임대이적[15]
- 김현성 - 2012 시즌 일본 시미즈 S펄스 임대이적
- 유럽에 진출했던 구자철은 병역혜택 이후 유럽에서 오래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분데스리가에서 10시즌을 활약하며 롱런한다. 지동원 또한 런던올림픽의 활약에 힘입어 주전경쟁에서 밀렸던 선덜랜드 AFC에서 과감히 이적해 분데스리가에서 오래 살아남는 선수가 되었다.
- 아시아 무대에서 이미 활약하던 선수들도 해외 도전을 더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황석호, 정우영 은 그 후 쭉 일본, 중국, 중동 등 여러 아시아 무대를 누비며 선수생활을 지속한다. 남태희는 카타르 리그의 레전드가 되었고, 백성동은 일본에서 5년간 활약하다 2017년 K리그에 늦깍이로 데뷔하며 한국에 복귀했다.
- 2014년 병역특례자
- 김민혁과 이주영, 최성근, 은 J리그에 이미 진출했던 상황으로 해외 무대 도전을 더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중국 슈퍼리그에 막 진출했던 장현수 또한 특례 이후 중국, 일본, 사우디를 다니며 활약한다.[17]
- 선수단의 와일드카드[18] 인 박주호는 가장 병역특례가 절박했던 선수로,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마지노선인 안산 무궁화 입대 기한에 단 1년만을 남겨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1. FSV 마인츠 05도 이런 박주호의 사정을 이해하고 시즌 중이지만 아시안게임에 차출을 허가해주었는데, 다행히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특례자로 지정되면서 박주호는 분데스리가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 2018년 병역특례자
- 선수단에 세계적인 공격수로 거듭난 손흥민이 있었기 때문에 권위가 그렇게 높다고 할 수 없는 아시안게임 축구에 유럽 팬들의 시선이 몰리기도 했다. 손흥민 역시 2014년의 박주호와 마찬가지로 유럽 경력을 합법적으로 이어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던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에 계속 잔류할 수 있게 되었다.
- 조현우는 월드컵 직후 유럽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당장 다음 해가 상주 상무 입대 마지노선인 나이라 여름이적시장에서 이적이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병역을 해결하며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이적 협상을 하는 등 다시 유럽무대 이적 도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럽 진출에는 최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며 국내 명문 울산 현대로 이적한다.
[1] 1973년 제정 당시에는 올림픽 금메달만 적용되었고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법 개정을 통해 기준이 대폭 완화되어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세계청소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아시아선수권, 아시아청소년선수권 3위 이상 입상자가 몽땅 기준에 포함되어 군면제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2] 생각보다 수혜자가 너무 늘어나다보니 결국 1985년 2차 개정을 통해 아시아대회는 제외되었고, 1990년에는 유니버시아드, 세계선수권도 빠지면서 현행 기준이 완성되었다.[3] 보이콧으로 인해 사실상 없는 기회.[4] 1979년 축구가 처음 정식종목이 되었는데 바로 다음 대회 빠졌고, 1985년부터 정식종목으로 부활했다.[5] 이미 병역을 완료한 선수는 제외.[특별법] [6] 이미 병역을 완료한 선수들은 제외.[7] 당시 의경 복무중이었으나 이 메달로 인해 조기전역.[8] 이적 직후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임대[9]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임대 직후 곧바로 재임대.[10] 차두리와 다르게 국내에서 프로 데뷔를 한 뒤 유럽행에 올랐다.[11] 다만 안정환은 이전부터 AC 페루자에 진출했던 상황이다.[12] 마찬가지로 먼저 벨기에 리그에서 활약하던 중이지만, 병역 공백기가 사라졌기 때문에 잉글랜드 2부리그에 진출해 EPL 진출을 노리는 이적을 감행할 수 있었다.[13] 이미 스코틀랜드 셀틱 FC에서 활약중이었으나 병역혜택 직후 EPL 진출에 성공한다.[14] J리그에서 활약중이었으나 병역혜택 직후 잉글랜드 2부리그 진출에 성공, 다음 시즌에는 승격하며 EPL 무대를 밟는다.[15] 아스날 이적 직후 부진과 병역 편벅 의혹등 여러 논란에서 자유로워지며 유럽 도전을 이어나가게 되었고, 결국 프리메라리가 진출에 성공한다.[16] 이후 2019-20 시즌에는 프랑스 리그에 진출한다.[17] 다만 장현수는 이후 체육요원 봉사실적 서류위조 사건으로 인해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한다.[18] 연령 초과 선수[19] 이후 2020-21 시즌 러시아 루빈 카잔으로 이적.[20] 세리에 A에서 활약하다 월드컵에도 자출되었지만, 이후 소속팀이 강등되고 1시즌을 2부리그에서 보낸다. 이후 2019년 여름 출전시간 확보를 위해 벨기에로 이적한다.[21] 인맥 논란에 시달리는 등 대표 합류가 매끄럽지 못했으나, 이후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대회를 폭격해버리며 깔끔하게 병역혜택을 받는다. 이후 대표팀 주전공격수로 거듭나고, 유럽 진출에도 성공하는 등 아시안게임 이후 극적인 커리어 반전을 이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