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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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에스토니아인 - 네이버 캐스트
관심 못 받는 유럽의 변방 아닌 변방 - 에스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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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발트 3국 중 최북단에 위치한 국가. 남쪽에는 라트비아, 동쪽으로 러시아, 북쪽의 발트해를 지나면 핀란드가 위치하고 있다. 좀 더 멀리 발트해 서쪽으로 건너가면 스웨덴, 덴마크, 독일, 폴란드도 에스토니아 주변에 위치해 있다. 수도는 탈린(Tallinn). 크게 북부 탈린과 남부 타르투 지방으로 구분되며, 민족언어구성으로는 나르바를 포함한 동부와 수도 탈린은 러시아인 민족 비율이 높고 중서부는 에스토니아인이 주류다.
1918년 2월 28일 건국, 1991년 8월 20일 재건국[1] . 면적은 45,226㎢. 남한의 45% 정도의 면적을 가진다.
2018년 기준으로 이민자 포함 인구는 약 131만 명으로 경기도 수원시 인구보다 조금 더 많다. 인구 밀도는 29명/㎢. 출산률은 가임 여성당 1.63명으로 2005년 1,000명당 출산율은 10.66명, 1,000명당 사망률은 12.86이고,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면서 지금도 인구가 감소세에 있다.
같은 발트 3국에 묶이기는 하지만,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핀란드와는 혈통, 언어적으로 가까우며 스웨덴과도 가까워서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별개로 취급하는 경우도 많다. 론리플래닛 북유럽 가이드북에서는 에스토니아를 북유럽으로 취급한다. 영어 위키백과의 북유럽 항목의 설명에서도 발트 3국을 북유럽으로 분류하지만 남쪽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중앙유럽으로도 자주 분류된다고 하는데 에스토니아는 그런 얘기가 없다.
주요 도시는 탈린, 타르투, 나르바, 페르누인데 이 중 인구의 1/4 정도가 수도 탈린에 거주한다. 통화단위는 2010년 12월 31일까지 '크론'을 사용했으나 2011년 1월부터 '유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Skype를 만든 나라로 유명하다. 그래서 에스토니아인들은 자기 나라를 소개할 때 스카이프 만든 나라라고 소개한다고.
2. 상징
2.1. 국명
현지에서 자국을 부르는 이름은 '''에스티'''(Eesti), '''에스티 바바리크'''(Eesti Vabariik, 에스토니아 공화국)이다.
역사학자들은 에스토니아나 에스티 모두 로마 제국의 역사학자 타키투스의 문헌에서 언급된 아이스티(Aesti)를 유래로 본다. 아이스티는 에스토니아에 해당되는 발트해 연안 지역과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1850년대 에스토니아인들이 근대적 민족주의를 형성할 무렵 자신들의 지역, 민족, 언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에스티가 정착했다. 그리하여 주변 국가에서는 대체로 Aesti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에스토니아를 칭한다.
핀란드어에서는 에스토니아를 비로(Viro)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현 에스토니아의 지역 중 하나인 비루마(Virumaa)에서 유래했다. 라트비아어에서는 에스토니아를 이가우니야(Igaunija)라고 부르는데 13세기에 에스토니아 일대에 존재한 나라 이름인 운가니아(Ungannia)에서 유래한다.
영어에서는 한때 Esthonia라고 칭하기도 했으나 전간기에 에스토니아 정부에서 Estonia로 수정을 요구했고 이것이 수용되었다.
2.2. 국기
파랑, 검정, 흰색의 삼색기이다. 에스토니아인들은 흔히 sinimustvalge(파랑-검정-흰색)이라 부른다. 가로-세로 비율은 7:11로 규정되어 있다.
1820년대에 타르투 대학교 학생회에서 발트 3국 지역의 학생 대표들이 스스로를 상징하는 깃발로 에스토니아 국기의 도안과 같은 깃발을 제정한 것이 유래이다. 그리고 얼마 못가 이 깃발은 민족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자주종종 깃발 사용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린 바 있다.
1918년에 에스토니아가 독립하면서 1922년에 공식적으로 국기로 제정되었지만, 1940년대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하면서 폐지되었으며 소련 정부에서는 이 깃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소련의 점령으로 인해 생긴 망명정부에서는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89년부터 독립운동이 거세져가면서 1990년에 독립선언과 함께 다시 국기로 지정되었다.
국기의 색깔에 대한 의미 부여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의 시인인 Martin Lipp이 파란색을 에스토니아의 하늘, 검은색을 에스토니아의 땅(+에스토니아인의 운명과 수세기 간의 암울한 역사), 하얀색을 순수함과 노력 및 맹세에 빗댄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2.3. 국가
국가는 Mu isamaa, mu õnn ja rõõm(나의 조국, 나의 행복과 기쁨)이다.
3.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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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토의 1/3이 울창한 삼림으로 덮여있어 '유럽의 아마조니아'라고 불리기도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소마 국립공원은 원시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자연유산으로 꼽힌다[2] . 이곳은 에스토니아가 독립한 1991년에 국립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수많은 늪지대와 호수, 철새 도래지 등 빙하기에 형성된 에스토니아의 야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한편 탈린에서 가까운 라헤마 국립공원도 습지 삼림 공원이 보존돼 있어 인기가 좋다.
대체로 빙하기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화작용을 받은 토지는 낮고 평평하다. 기후는 습윤하며, 삼림·습지·목초지가 넓은 편이가. 네덜란드만큼은 아니지만 평균 고도가 낮은 편인데 평균 해발고도가 50m에 불과하고 가장 높은 지대라고 해도 318m에 지나지 않는다.
유혈암(오일셰일)과 석회석, 목재 가 국가 경제의 주 원동력이 되고 있다. 1,400여 개나 되는 호수가 있다. 대부분은 작지만 가장 큰 호수는 3,555㎢에 이르는 페이푸스 호수(Lake Peipus, Peipsi järv)이다. 역사적인 사건으로는 1242년 이 페이푸스 호수의 얼음 위에서 노브고로드 대공 알렉산드르 네프스키가 튜튼기사단을 격파한 '빙상의 전투'가 벌어진 바 있다. 강 줄기도 많아서 162km의 지류인 버한두 강(Võhandu), 패르누 강(Pärnu) 등이 있다.
에스토니아 인근의 섬은 1,500여 개 이상인 것으로 추측되며 가장 큰 두 섬은 사레마(Saaremaa)와 히우마(Hiiumaa)이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냉량습윤한 대륙성 기후이며, 평균기온은 1월 -5.9℃, 7월 16.8℃이고, 연강수량은 600~750㎜이다. 역대 최저 기온은 여게바(Jõgeva)에서 1940년 기록된 -43.5℃였다.
3.1.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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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의 행정구역은 15개 주(maakond)로 이루어져 있다. 주 밑에는 시(linn)와 군(vald)이 존재한다. 다만 나라의 인구가 적어 행정구역의 인구 규모도 따지면 한국의 시나 군보다는 읍과 면에 가까운 규모.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작은 도시인 록사(Loksa) 시의 인구는 2018년 기준 2,738명에 불과하다.
기초자치단체로 2005년에는 34시 193군이 존재했으나, 이후 인구가 적은 지자체 간 통폐합이 이루어져 2018년 현재 14개 시와 65개 군으로 줄어들었다.
4. 역사
5.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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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Riigikogu)는 단원제로, 직접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 101명의 의석이며 봉쇄조항은 5%이다. 선거제도는 '''100%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2015년 총선 결과 개혁당(자유주의)-사회민주당-조국공화연합(중도우파) 연립내각이 전체적으로 의석이 줄었고, 주로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받는 중앙당은 제1야당으로 남았다. 한편 15년 총선에서는 우익 계열의 정당들이 크게 약진했다. 2016년 친러파 중앙당이 개혁당과 대연정을 수립하여 정권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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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일 에스토니아 총선에서 중도우파 에스토니아 개혁당은 4석 불린 대신, 친러파 에스토니아 중앙당이 1석 줄었다. 극우[3] 정당 에스토니아 인민보수당(ERKE)이 7석에서 19석으로 의석을 대폭 불리며 약진했다. 그런데 제1당이 된 개혁당이 연정 구성에 실패하자 친러파인 중도당이 정반대 성향인 EKRE에게 연정을 제안했고, EKRE가 이를 수용하면서 라타스 총리는 극우파와 연정을 이뤄 집권을 연장하게 되었다.
2021년 1월 13일에 위리 라타스 총리가 스캔들에 따른 의혹으로 중앙당 권유에 따라 사임했다.# 이에 따라, 제1당인 개혁당과 제2당인 중도당 간의 연정이 성사되어 개혁당 당수 카야 칼라스[4] 가 총리에 취임, 에스토니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6. 경제
발트 3국에서 가장 선두주자이다. 온라인으로 일하는 외국인에게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허용한다. 보통 외국인 근로자는 일하려는 나라에서 정식으로 취업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체류 자격을 얻는데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노마드 비자는 그런 제약이 없다. 에스토니아에서 사는 동안 솅겐 조약[5] 에 가입한 26국을 90일 한도로 제한 없이 드나들 수도 있다. 2014년에 생긴 100유료를 내면 발급하는 전자영주권제도도 있다.
7. 문화
7.1. 언어
에스토니아어가 공용어이나 불과 30년 전까지 소련령이었고 지금도 러시아 민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러시아어도 아주 널리 쓰인다. 특히 동쪽의 나르바 같은 도시는 90% 이상의 인구가 러시아어를 사용해서 에스토니아어로는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이며, 수도 탈린에도 러시아 민족이 많아서 라스나매에(Lasnamäe) 같은 몇몇 구도 러시아어 사용자의 비중이 60%에 육박한다. 전국적으로 러시아어 사용자는 인구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이다. 다만 러시아 민족은 넓게 퍼져있는 게 아니라 동부와 탈린에 집중돼 있어서 그 외 서부나 시골로 가면 찾아보기 힘들다.
2차대전 이전에는 발트 독일인들이 다수 거주했기 때문에[6] 독일어도 일부 통용되었으나 2차대전 이후 발트 독일인 대부분이 독일 본토로 추방당해서 지금은 독일어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따로 배우는 게 아닌 이상 일상언어로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에스토니아 동남쪽에는 버로(Võro)어 같은 에스토니아어와 가까운 다른 언어들도 사용되는데 사용자 수는 적다.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와 같이 핀-우그르어파(Finno-Ugric languages)에 묶이며, 더 큰 분류로는 우랄어족에 속한다. 물론 위에서 설명했듯이 상호 통하지는 않지만... 공통점이 많아 몇 주만 공부하면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어쨌거나 덕분에 많은 에스토니아인들이 핀란드에 망명했고, 소련 시절에 에스토니아인들은 러시아어 방송 이외에도 핀란드어 방송을 시청하기도 하였다. 외부인으로서는 핀란드어와 에스토니아어의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
국민들 대부분이 영어, 독일어, 핀란드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중 2개의 외국어는 할 줄 안다.
에스토니아도 독립 이후부터 언어와 관련해서는 러시아인들과 갈등이 있는 편이다. 에스토니아에 사는 러시아 민족은 에스토니아 안에서는 일종의 소수민족인데, 보통 소수민족이 전체 인구의 몇십 퍼센트만큼이나 되면 소수민족의 언어도 공용어로 지정하는 게 세계적으로 보통이지만 비러시아 지역의 반러감정과 러시아 민족의 모국 러시아와의 국제관계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단, 에스토니아의 기자는 에스토니아 내에서 러시아어의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러시아어)
7.2. 영화
에스토니아 영화 문서 참고.
7.3. 전통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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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자원이 풍부하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에스토니아의 전통적인 농촌 가옥은 위 사진처럼 통나무집에 갈대 이엉을 얹은 형태가 일반적인 편이었다. 다만 요즘은 민속촌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수준.
7.4. 음식
다른 북·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호밀빵을 주식으로 삼으며 묵직한 고기 요리가 많이 발달해 있다. 전통적으로 외세로부터 오랜 지배를 받아와서 스웨덴 요리, 핀란드 요리, 러시아 요리, 독일 요리. 덴마크 요리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인접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요리와도 영향을 주고받았다. '베리보스르트'(Verivorst)라는 한국의 순대와 유사한 소시지도 자주 먹는 편이다. 그리고 소련에 속해있던 나라이다 보니 조지아 요리나 아르메니아 요리, 아제르바이잔 요리, 중앙아시아 요리 등 구 소련권에 속하던 다른 나라의 요리들도 많이 들어와있으며, 고려인들이 소수 들어와 있다 보니 한국 요리도 들어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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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숫가루와 비슷한 '카마'(Kama)란 음식도 있다. 차이점이라면 주 재료가 귀리가루라는 것과 요구르트에 타서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라는 것. 핀란드에서도 '탈쿠나'(Talkkuna)라고 부르며 먹긴 하지만 에스토니아에서 더 대중적으로 먹는 편이다. 사실 미숫가루와 유사한 요리가 널리고 널린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곡물 가루를 반죽하지 않고 그냥 먹는다는 개념을 생소해하는 편이라, 같은 유럽인들도 이 음식을 꽤 신기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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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초콜릿 대용품으로 이 카마 가루를 유지방과 섞어서 굳힌 '카마타벨'(kamatahvel)이란 과자가 있는데, 지금도 에스토니아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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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삼각기둥 모양의 병으로 판매되는 맥주인 비루(Viru)가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에서 3000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제법 맛이 좋은 편이니 한번쯤 사서 마셔보는것도 좋다. 모양 때문인지 꽃병으로 쓰기 딱 좋아 보인다 .다만 에스토니아 맥주는 수도 탈린의 사쿠(Saku)와 타르투의 알 레 코크(A. Le Coq)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으며 이 물건은 현지에서 인기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7.5.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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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 '노래혁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래로 유명해서 '노래하는 민족', '합창의 나라'라고도 불리며 '에스토니아에서는 세 사람이 모이면 서로 화음을 넣어서 합창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5년에 한 번씩 전국의 아마추어 합창단이 모두 모이는 '에스토니아의 노래 축제'(라울루피두, Laulupidu)는 타르투라는 도시에서 시작해 140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야외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3만 명의 합창단이 수십만 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하는 장관을 연출하며 에스토니아 전 국민은 물론이고 해외에 살고 있는 교민들도 이 날만큼은 모두 찾아와 민요와 현대음악을 곁들여가며 합창을 부른다고 한다.
현재는 노래 축제와 춤 축제가 합쳐진 laulu ja tantsu-pidu 로 진행하고 있으며, 제일 최근의 개최는 2019년 7월 4~7일 이었다.
7.6. 스포츠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농구이지만, 소련 독립 이후로는 나라가 크지 않다보니 별다른 국제대회 성적을 내고 있지 못하다. 농구에서 세계적 강호급인 리투아니아나 유로 진출도 이뤄낸 라트비아에 견주면 에스토니아는 아직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게 그다지 없다.[7]
축구에선 아직 유로 본선 진출을 한 적이 없었으나 2012 유로 예선에선 조 2위를 하는 선전을 벌였다. 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와 격돌을 벌이다가 승점 1점차로 아슬아슬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위인 이탈리아가 26점, 2위인 에스토니아가 16점, 3위 세르비아는 15점, 4위 슬로베니아는 14점.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인 끝에 플레이오프에 아일랜드와 맞붙게되어 희망을 가졌으나 1무 1패(0:4,1:1) 그것도 안방에서 대패를 당하면서 탈락했다.
이 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선 에스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조할 것.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홍정호와 짝을 이루어 센터백으로 활약하고 리버풀 FC에서도 뛴 적이 있는 수비수 라그나르 클라반이 이 나라 출신이다.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활약(?)했던 호주 출신 미드필더 에릭 파르탈루도 에스토니아 계이다. 또한 2019 시즌 수원 FC의 새로운 외국인 공격수인 아니에르는 K리그 최초의 에스토니아 국적 선수이다.
그리고 소련 시절인 1980년 올림픽 요트 종목을 개최하였다.
덴마크 기반의 오버워치 프로팀 REUNITED의 딜러인 vallutaja와 독일 기반의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팀 mousesports의 ropz가 이 나라 출신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랠리 경기인 WRC에서 오트 태나크가 선전하고 있으며 최근 2019년 챔피언에 등극함으로 인해 월드 랠리 챔피언을 배출한 또 하나의 북유럽 국가가 되었다.
7.7. 종교
에스토니아인들은 기독교[8] 를 전통적으로 믿어왔으나 원래부터 기독교보다 토착신앙이 강한 편이었고 소련 지배 시절 국가 무신론의 영향을 받아서 21세기 현재 에스토니아는 세계적으로 매우 비종교적인 나라이다. 2010년 유로바로미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을 믿는 사람은 에스토니아 인구의 18%에 불과해 유럽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2006-08년의 갤럽의 조사에서도 오직 14%만의 에스토니아인이 종교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답해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다.
2000년 통계에 의하면 무종교인이 인구의 70.8%였으며, 인구의 13.6%는 루터파 개신교를, 12.8%는 정교회를 믿었으며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가톨릭, 이슬람[9] , 심지어 불교[10] 를 믿는 사람도 있긴 하다고 한다. 핀란드처럼 자국의 전통 신화를 재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2011년 통계에서는 정교회 신자 16.15%, 개신교인이 9.91%로 나타나 정교회 신자 수가 개신교 신자 수를 역전했다. 민족별로 보면 에스토니아인은 루터파 개신교 13.9%, 정교회 2.7%로 루터회가 우세했지만, 러시아인 사이에서 루터파 개신교는 0.3%에 불과했으나 정교회 신자 비율은 47.5%에 달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전체 인구 중에 종교가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29.3%로, 러시아인(50.5%)에 비해 에스토니아인(19.5%)의 종교인 비율이 훨씬 낮았다. 세대별로 봤을 때는 청년층(17.7%)이 노년층(45.6%)보다 종교인 비율이 적었고, 특히 에스토니아인 청년층의 경우 종교인 비율이 9.1%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에스토니아에서 개신교 예배당들은 소련 시절에 파괴된 채로 그냥 방치되거나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레스토랑 등으로 개조되는 경우도 흔하다.[11] 에스토니아 정교회는 바르톨로메오스 1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자신의 관할권 아래 둔다고 천명함으로써 러시아 정교회와 결별하게 됐는데, 바르톨로메오스 1세는 에스토니아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에 합병된 것은 스탈린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래서 현재 에스토니아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소속의 교회와 모스크바 총대주교 소속의 정교회로 나뉘어 있다.
북유럽 계통 하면 떠오르는 금발벽안이 대부분이며 러시아계도 많지만 중앙아시아계 이민자와 인도계 이민자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8. 사회
마약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에트 공화국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즉 모욕죄, 명예훼손죄가 없으며 어떠한 민사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8.1. 교육
특이하게도 이 나라는 러시아어 학교와 에스토니아어 학교가 따로 존재하는데 보통 에스토니아의 교육 제도는 중등교육까지 의무교육이다. 학제는 두 학교 종류가 조금씩 다르지만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하는 학교나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학교 모두 12학년[12] 의 학제로 되어 있다. 1993년 기준으로 14만 2000명의 학생이 에스토니아어 학교에, 7만 명이 러시아어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각각의 학교는 상대 언어도 가르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학교에서도 고등학교 3년 간은 에스토니아어로 수업을 60%이상 하도록 해 에스토니아어 교육을 강화하였다.
언어가 다양하고 역사적으로 지배했던 나라가 많아서 도시의 이름도 각 언어별로 다른 이름이 전해지고 다양하다. 탈린의 경우 독일어로 레팔(Reval), 타르투의 경우 독일어로는 도르파트(Dorpat), 러시아어로는 유리예프(Дерпт/Юрьев)라고 한다. 가끔 이 지방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 저런 이름이 막 튀어나온다. 과거에 영어권 사람들이 동유럽에 무지했을 때, 독일이나 러시아어 이름를 막 섞어서 쓴 것이기 때문이다.
9. 외교
10. 군사
에스토니아군이 에스토니아의 방위를 책임진다. 장갑차 등으로 구성된다.
11. 관광 정보
수도 탈린의 옛 시가지는 올드타운이라고 불리운다. 중세시대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거나 복원되어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13세기에 지은 성곽과 성벽 사이로 1500년 완공 당시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한 올레비스떼 성당이 솟아 있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아직도 손님을 맞는다고. 내부에 식당가와 술집, 기념품 가게도 매우 많고 전망도 훌륭하다. 중국인 관광객이 다소 보이나 아시아계 관광객은 매우 드물다. 한국 직항기는 아직 없고 모스크바에서 갈아타는 것이 제일 빠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육로로 버스를 타고 탈린으로 갈 수도 있다. 비록 시간은 6~8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한국인이라면 경험하기 어려운 버스타고 국경을 넘는 일도 해 볼 수 있다. 여유가 있는 여행자들은 페리를 타고 당일치기로 헬싱키를 방문하기도 한다.
다만 이곳도 2차대전 이후에 인구가 많이 늘어 동유럽의 여러 도시처럼 춥고 흐린 날씨와 잘 어울리는(?) 소련 시절의 아파트촌이 라스나매에(Lasnamäe)나 무스타매(Mustamäe) 같은 외곽엔 흔하다고 한다.
탈린을 벗어나면 제2의 도시이자 교육의 도시인 타르투, 러시아로 넘어가는 길목의 국경도시이자 중세시대 성채가 있는 나르바, 차이코프스키가 머무른 걸로 유명한 관광도시 페르누, 독일기사단이 건설한 성에서 중세 유럽 체험 프로그램이 있고 소시지와 버터 등 농축산물로 에스토니아에서 유명한 라크베레 같은 도시들이 있다.
대중교통으로 트램과 우버, 그리고 에스토니아판 우버로 불리는 볼트라는 앱이 있다. 에스토니아도 우버와 일반 택시, 볼트간의 경쟁이 있어서 일반 택시 탔다가 바가지를 쓸 수도.
에스토니아 특유의 산이 없는 지평선 끝까지 울창한 습지 늪지대 삼림과 수많은 호수들이 펼쳐진 소마 국립공원, 그리고 좀 더 작지만 수도 탈린에서 가까운 라헤마 국립공원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나무 데크를 따라 많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늪지대 하면 생각하는 진흙 뻘이 아니라 이끼로 뒤덮여 있으며, 공기 중 물기가 많아지는 가을이 특히 아름답다.
여담으로 에스토니아 관광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에스토니아는 인구 1백만명 당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패션 모델이 74명으로 제일 많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에스토니아인들이 동유럽 국가 여성들보다 영어 실력이 우수해서 해외 진출이 쉽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에스토니아 내 러시아인들의 경우는 무국적자가 많아서 내수 시장이 적은 에스토니아 특성상 패션 모델을 하기 더 불리한 조건이다. 소련 붕괴 직후 경제적으로 혼란을 겪던 시절, 많은 에스토니아인 여성들이 신체 조건[13] 이 되면 해외에서 모델로 일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사실상의 가장 역할을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런 모델들 중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인물로 카르멘 카스가 있다.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1]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괴뢰 정권으로 보기 때문에 공식 건국 연도는 그 이전의 독립국 에스토니아의 건국 연도인 1918년을 따른다.[2] 현지어로 '소마'(Soomaa)란 젖은 땅, 즉 습지라는 뜻이다. 핀란드어로 핀란드를 뜻하는 수오미(Suomi)도 같은 뜻이다.[3] 2019년 EKRE 소속으로 농업부 장관으로 지명된 마르트 얘르비크는 에스토니아의 고위 정치인들이 비밀 유대인들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재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마르틴 헬메는 "우리의 이민 정책에는 한 가지 간단한 규칙만이 필요하다: 흑인이라면, 들어오지 말라(Kui on must, näita ust)"라는 인종주의적 발언을 하는 등의 행보로 논란을 일으켰다. # 마르틴 헬메의 아버지 마르트 헬메 내무장관은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를 두고 '판매원 출신이 총리가 되었다'며 조롱까지도 했다. 외교분쟁으로까지 격화될 수 있었던 심각한 사안. 참고로 뒤의 발언은 유럽 난민 사태 이전에 나온 발언이다.[4] Kaja Kallas. 2019년 총선 당시에도 개혁당의 당수였으며, 이 당시 칼라스의 총리 신임안이 의회에 올라갔으나 부결된 탓에 라타스가 정권연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Siim Kallas 또한 에스토니아 총리(2002.1.~2003.4.) 출신이다.[5] 유럽의 국가 간 국경 개방 약속[6] 로만 폰 운게른 슈테른베르크가 대표적인 에스토니아 출신 발트 독일인이다. 슈미트 망원경을 개발한 광학 기술자 베른하르트 슈미트도 에스토니아 태생 발트 독일인이다.[7] 라트비아는 축구보다는 아이스하키와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등의 썰매 종목이 강하다.[8] 가톨릭, 정교회, 루터회 등 시대에 따라 주류 종파가 달라졌다.[9] 대부분 러시아계 볼가 타타르인이지만 후술할 중앙아시아계 이민자와 인도계 이민자도 있다.[10] 본래 소련 시절에 이주해온 칼미크인, 부랴트인, 중국계 소련인의 후손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토착 에스토니아인이나 러시아계 백인이 불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존재한다.[11] 실제로 예배당이나 성당에 자주 출석을 하는지 안 하는지와는 별개로, 아예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정교회 성당도 예외는 아니라서 소련 시절에 파괴된 정교회 성당은 러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그냥 방치된 경우가 많다.[12] 초등 4년, 중등 5년, 고등 3년[13] 물론 에스토니아인들이 평균 신장이 비교적 큰 관계로 키가 큰 여성을 선호하는 모델 업계의 수요와 잘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다.